'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역사학자 서중석과 소설가 현기영, 그리고 영국 작가 애거사 크리스티를 골랐다.

 

 

먼저, 현대사 연구의 권위자인 서중석 교수의 이름을 걸고 나온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오월의봄, 2015). 프레시안에 연재될 때 몇 번 읽은 적이 있는데, 이번에 단행본 시리즈로 나왔다. 1,2권이 먼저 나왔는데, 1권은 해방과 분단을 다루고 2권은 한국전쟁과 민간인 학살을 다룬다. 예고된 바로는 3권에서 4월 혁명을, 그리고 4권에서는 5.16 쿠데타를 다룬다. 오늘의 역사까지 다 포괄하려면 최소한 서너 권은 더 보태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전체적인 개요에 관해서는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웅진지식하우스, 2013)를 참고하고 각론으로 들어가 주요한 쟁점들에 대해서는 이 <현대사 이야기>를 읽어보면 좋겠다.

 

 

<순이 삼촌>의 작가 현기영의 '중단편 전집'도 세 권으로 갈무리돼 나왔다. <순이 삼촌><아스팔트><마지막 테우리>(창비, 2015)다. "비록 과작이기는 하나 빼어난 문학적 성취를 보여준 현기영 소설의 정수를 일목요연하게 맛볼 수 있는 이 전집은 작가의 등단 40주년을 기념하는 동시에 그의 작품을 새롭게 조명하는 것이다. 역사에 대한 깊은 성찰과 인간에 대한 애정이 녹아든 명편들은 여전히 변함없는 감동을 자아내며 작가의 강직하고 사려깊은 문학적 삶은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는 소개다. 현대 문학사의 중요한 성취를 보여주는 작가들의 선집/전집은 그 성취를 음미하고 재평가하는 좋은 계기가 될 듯싶다. 이런 전집이 더 나오면 좋겠다는 뜻이다(최근에 나온 박완서 산문전집도 떠오르는군).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도 이번에 두 권이 더해졌다. <인생의 양식>과 <두번째 봄>(포레, 2015)인데, 첫 권은 <봄에 나는 없었다>(포레, 2014)였다. 이 시리즈는 애거사 크리스티가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출간한 장편소설 여섯 권을 모은 시리즈니까(저자의 의도를 고러햐면 '메리 웨스트매콧 컬렉션'이어도 무방했겠다) 이제 한 권 남은 셈(<짐>이란 작품이 남았다). <인생의 양식>(1930)에 대한 소개는 이렇다. "애거사가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쓴 이 소설은 버넌 데어라는 음악가와 그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삶을 통해 인간의 나약함과 아이러니한 심리를 통찰하면서 역설적으로 인간의 위대함, 예술과 사랑의 가치를 그린 작품이다." 원서의 표지들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국어판의 표지는 꽤 세련됐다. 그 자체로 소장 욕구를 자극한다...

 

15. 0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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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확연히 봄밤이라고 하긴 어려운 봄밤에 '이주의 저자'를 고른다(자주 듣는 필 콜린스의 'Another Day in Paradise'를 들으며). 이번주에도 국내 저자로만 골랐다. 순서를 어떻게 정할까 잠시 생각하다가, (아무 생각 안 한 듯이) 가나다순으로 정했다.

 

 

그래서 먼저, <보다>(문학동네, 2014)에 이어서 이번엔 <말하다>(문학동네, 2015)를 펴낸 김영하 작가. <읽다>까지 해서 3부작이 될 거란 예고인데, 이런 페이스라면 아마 마지막 3권도 올해 안에 나올 듯싶다. 표지 디자인으로만 보자면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문학동네, 2014)과도 '친구' 먹을 수 있는 책. 산문집이라고 하지만 "<말하다>는 작가 김영하가 데뷔 이후 지금까지 해온 인터뷰와 강연, 대담을 완전히 해체하여 새로운 형식으로 묶은 책이다".

창의력에 대한 그의 강연 '예술가가 되자, 지금 당장'은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인 지식 공유 콘퍼런스인 테드(TED)의 메인 강연으로 소개되어 136만 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고, 지난해 2014년 12월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서 했던 청춘 특강은 젊은층으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냈다. KBS 라디오의 '문화포커스'를 진행한 방송인이었고,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강단에서 서사창작을 가르쳤던 교수,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팟캐스트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의 진행자인 작가 김영하. 이미 거의 모든 형식의 '말하기'를 경험한 그는 <말하다>를 통해 빼어난 말솜씨로 어느 순간 청자의 허를 찌르는, 그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귀기울여 듣고 되새길 만한 말들로 가득하다.

모든 작가가 달변은 아니며 그 반대인 경우도 드물지 않지만, 달변의 작가는 이런 책도 낼 수 있구나, 라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자칭 'C급 경제학자' 우석훈도 슬렁슬렁 두 권의 책을 펴냈다. <잡놈들 전성시대>(새로운현재, 2015)와 <성숙 자본주의>(레디앙, 2015). 반년 전에 <불황 10년>(새로운현재, 2014)과 <솔로 계급의 경제학>(한울, 2014)을 펴냈으니 저자로서 매우 '분주한' 편이다. <성숙 자본주의>를 먼저 주문해서 손에 들었는데, '성숙과 퇴행, 기로에 놓인 한국경제'가 부제다.

자칭 C급 경제학자이며, 진보적 경제학자로 분류돼 왔던 우석훈 박사가 ‘성숙 자본주의’라는 화두를 들고 나왔다. 우석훈은 이 책에서 “2008년 이후로 전 세계가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케인즈 시대로 복귀할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을 만들 것인가, 그 사이에서 우리 모두는 고민 중”이라며, 자신은 한국 경제를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성숙 자본주의’를 제시한 것이다.

"성장은 소수를 부자로 만들고 성숙은 다수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캐치프레이즈로 보아 저자는 '성장'이란 자본주의의 주술에 '성숙'을 해독제로 처방하려는 듯하다. 덕분에 한국경제가 '성장병'에서 치유된다면, 그만한 성과도 없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지, 성숙 자본주의의 구체적인 상은 어떤 것인지는 책에서 확인해봐야겠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도 일년만에 다시 돌아왔다. 이번엔 <심리정치>(문학과지성사, 2015)다. <피로사회>(문학과지성사, 2012)와 <투명사회>(문학과지성사, 2014)를 고려하면 세번째 '네글자 제목' 책이다. 부제는 '신자유주의의 통치술'. 우리의 박태근 MD는 이렇게 평했다.

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한국인이면 누구나 자기를 착취한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즉각 이해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심리정치>를 간결하게 정리한 다음 문장 역시 마찬가지다. “억압 대신 친절로, 금지 대신 유혹으로 개인을 조종하는 신자유주의적 심리정치.” 한병철의 저작이 꾸준히 소개되며 독자에게 호응을 얻는 까닭은 제목에 그대로 드러나는 결론 때문이 아니라(그의 저작 제목은 분석의 결과가 아니라 분석의 대상이라 하겠다), 현실과 이론을 종횡으로 넘나들며 우리가 이미 몸으로 알고 있는 세계의 특성을 간명하고 솔직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아직도 공작정치와 사찰정치의 망령이 우리 주변을 배회하고 있지만, 좀더 세련된 '심리정치' 또한 이미 우리의 현실이다. 구닥다리 정치와 세련된 정치가 마구 뒤섞인 한국적 현실에 대한 인식 도구로 저마다 구비해놓을 만하다. 올해도 어떻듯, 살아남기 위해서, 더 바란다면, 제대로 살기 위해서...

 

15. 0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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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는 제주도에서 강의가 있기에 '이주의 저자'를 미리 당겨서 고른다. 국내 저자 3인의 산문집을 선정의 빌미로 삼는다. 먼저 SF작가이자 영화평론가이자 정체불명의 저자, 듀나의 에세이가 나왔다. <가능한 꿈의 공간들>(씨네21북스, 2015). '이영수'란 이름과 병기돼 있는데, 과문한 탓에 듀나의 본명이 이영수라는 것인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듀나가 개인이 아니라 둘 이상의 집단이란 설도 있지 않았나?).

 

씨네21북스에서 출간한 <가능한 꿈의 공간들>은 듀나가 2000년대 중반부터 매체에 기고한 글과 책을 위해 새로 쓴 글을 엮은 에세이집이다. 사회비평과 영화비평 사이를 오가며 예술, 대중문화, 국내외 이슈, 과학, 장르문학, 쇼 비즈니스에 대한 통찰을 담아냈다. 또한 유신 정권하에 보낸 어린 시절과 80년대 군사정권의 일상, PC통신에서 영화로 교감하던 시절의 추억을 통해 저자의 내밀한 이야기를 드러내기도 한다.

한 사람이건, 두 사람이건, 혹은 몇 사람이건 간에 듀나는 듀나다. 산문집은 픽션과 달리 아무래도 '세대'를 드러낼 수밖에 없어서 대략 저자의 정체성에 대해 어림해볼 수 있으리라. 2000년대 중반부면 10년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다는 얘기일 텐데, 그건 독자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여행이 될 수 있겠다.

 

 

문학평론가이자 '여행가' 정여울의 신작 산문집도 나왔다. <그림자 여행>(추수밭, 2015). <마음의 서재>(천년의상상, 2015) 개정판도 최근에 같이 나왔고. 산문집 혹은 에세이로는 <잘 있지 말아요>(알에치코리아, 2013)에 이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무엇이 그림자 여행인가.

이 책 <그림자 여행>에는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인생길에서 나 자신과 마주하고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삶과 사람, 세상을 다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는 정여울 저자의 에세이 50편과 그 풍경을 담은 50장의 사진, 그 속에서 다채로운 빛깔을 지닌 우리 모두의 그림자가 담겨 있다. 이 책은 쇼 비즈니스와 극 예술의 이면에 대한 탐구, 너무 익숙해서 지나쳐버리는 부조리에 대한 고찰, 영화와 영화관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 그리고 사라져가는 가치와 아득한 꿈의 세계에 대한 몽상까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뭐 이런 소개만으로는 가늠하기 어렵다. 직접 '여행'에 동참해보는 수밖에.

 

 

그리고 시인 신해욱의 산문집도 나왔다. <일인용 책>(봄날의책, 2015). 시인의 일상을 담았다고 하는데(아니면 무얼 담겠는가), 눈에 띄는 건 특이한 형식이다.

시인은 일상을 '어떻게' 담아낼까. 시인은 자신에게 감지된 그 파동이, 가능하면 그대로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산문을 쓴다. 가령 똑같은 피사체를 찍은 사진도 프레임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효과가 아주 다르다. 자신이 접한 것의 감흥이 글이라는 프레임 안으로 들어와서도 그 생동감을 유지하고 있다고 느낄 때까지 시인은 문장의 순서와 호흡을 많이 손본다. 특히, 이 책에 실린 글들은 편편의 용적이 적으니 아무래도 미미한 파동 쪽에 집중한 편이다. 무심하게 스쳐 지나갈 뻔한 것들을 붙잡아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형식, 그것이 700자라는 정해진 형식이었다. 700자가 아니었다면 다른 이야기가 씌어졌을 것이다. 형식이 내용을 창조한 셈이다.

아마도 그런 형식적 제약이 산문임에도 시적 긴장감을 부여해주지 않았을까 싶다. 시집 말고 산문집으로는 <비성년 열전>(현대문학, 2012)이란 책도 있었길래 오늘 주문해서 받았다. 잡지 <현대문학>에 연재했던 에세이 모음이다.

이 글은 인간의 세계에 성공적으로 진입하여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이행하게 된 성년과, '아직' 그렇게 되지 못했으되 이제 곧 그렇게 될 대기 중인 이들인 미성년 사이에서 '이미' 그렇게 되지 않은 이들을 열외의 비성년이라고 명명한다. 그들은 다름 아닌, 우리 곁의 비성년들로 기억될 바틀비, 홀든 콜필드, 카프카 들이다. 작가는 애정을 갖고 그들을 관찰하고 투시하며 그들의 심중의 못다 한 이야기처럼 심도 있게 그려나간다.

흘든 콜필드나 카프카에 대해선 요즘도 자주 강의를 하고 있어서 시인의 생각도 궁금하다. 비성년은 내가 종종 쓰는 표현으로 말하면 어른-아이라고 해도 될까. 성인과 미성년 사이가 비성년이라면, 어른과 아이 사이가 어른-아이다. 바틀비도 그런 형상으로 읽는다는 건 이외이면서 흥미를 끈다. 정신분석의 용어로 상상계와 상징계 사이에 위치하는 존재를 가리켜 비성년이라고 부른다면, 타당하게도 여겨진다. 물론 확실한 건 읽어봐야 알겠다. 그다지 부담스런 책들이 아니니 편하게, 아주 편하게...

 

15. 03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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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 건너뛴 '이주의 저자'를 골라놓는다. 국내 저자 3인인데, 각각 역사학자와 번역가, 그리고 문학평론가이다. 먼저 10권의 '해방일기'를 드디어 완간한 역사학자 김기협. 1945년 8월부터 48년 8월까지 3년의 기간, '해방공간'이라고도 불리는 이 시기를 꼼꼼하게 다룬 책으로 독서가 아니라 '경험'을 제공한다. 2011년 4월에 첫권이 나왔으니 만 4년의 여정이었다(다른 일에 손놓고 이 책들만 완독하는 데도 한달은 걸릴 법하다). 기록 이상의 가치는 어떤 것을 찾을 수 있을까.

 

'해방일기 시리즈'는 내용 면에서는 해방 공간의 한국 정치 지형을 '좌우 대립'이 아니라 중간파와 좌우 양극단의 갈등으로 파악하자는 '중극(中極) 대립'으로 학계의 주목을 끌었다. <해방일기 10권>에서 48년 5월 14일 북한 전력의 이남 공급 중단을 적대적 공생관계의 한 사례로 언급한 것처럼 저자는 '적대적 공생관계'로 맺어진 극좌와 극우가 함께 중도파를 억압하고 침식하고 봉쇄하던 상황과 근거를 밝혀낸 것이다.

어느덧 해방동이 세대가 70대가 되었다. 현대사의 원점을 다시 회고하고 되짚어보는 일은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의 경험을 추체험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역사적 인간'으로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재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줄 것이다.

 

 

<해방일기>에 뒤이어, 해방 이후의 현대사, 이후 세대의 현대사에 대해서는 고경태의 <대한국민 현대사>(푸른숲, 2013), 이근원의 <아빠의 현대사>(레디앙, 2013), 그리고 유시민의 <나의 한국현대사>(돌베개, 2014) 등을 더 참고할 수 있다.

 

 

이어서 인문서 독자라면 이름이 낯설지 않을 번역가 이종인. 올해 나온 번역서만 해도 4권에 이르지만, 단독서도 출간됐다. <살면서 마주한 고전>(책찌, 2015). '전문번역가 이종인이 추천하는 시대의 고전 360'이 부제. 신뢰할 만한 번역자의 고전 가이드북이라고 할까. "서양의 정치학 서적에서부터 현대 영미소설, 한국의 문학작품, 에도시대 하이쿠까지 지역과 시대를 망라한 작품을 두루 소개한 책이다. 어떤 책을 왜 읽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 본 도서는 고전에 대한 참신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같이 나온 책으로 <기독교 고전으로 인간을 말하다>(알에치코리아, 2015)도 소위 '기독교 고전'을 망라하고 있어서(단테의 <신곡>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독서욕을 부추기는 책이고, 채플린의 소설(!) <풋라이트>(시공사, 2015)도 꽤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이다. "사후 40년 만에 공개되는 채플린의 유일한 소설 <풋라이트>와 그것이 후기 걸작 <라임라이트>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복원해낸 기록적인 작품이다." 공저자로 이름이 올라가 있는 데이비드 로빈슨의 노고를 기억해둘 만하다.

 

 

주로 시비평쪽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비평가이자 '시민행성' 공동대표이기도 한 함돈균의 <사물의 철학>(세종서적, 2015)은 비평집이 아니라 에세이다. '질문으로 시작하여 사유로 깊어지는 인문학 수업'이란 부제가 붙었는데, 평범한 사물들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동료 평론가 신형철은 추천사에서 이렇게 평했다.

이 책에서 함돈균은 마치 처음인 듯 사물 하나하나를 다시 사용하면서 세계를 근원적으로 경험해보려 노력한다. 이런 책을 쓰는 데 응당 필요한 꼼꼼함과 기발함도 그는 갖고 있지만, 그보다 더 도드라지는 것은 과감함이며, 그것이 이 책의 개성을 이룬다. 과감한 사유는 고만고만한 동의를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어리둥절한 자극을 준다. 무뚝뚝하게 예리한, 함돈균다운 책이다. 

 

역시나 신형철의 추천사를 따르자면 장석주, 권혁웅, 로제 폴 드루아의 사물에 대한 책들과 함께 나란히 꽂아둘 만하다(신형철은 김선우 시인과 박영택 평론가의 책도 보탰다)...

 

15. 0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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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국내 저자로만 '이주의 저자'를 고른다(찾아보니 5주 연속 국내 저자를 고른 적도 있지만). 먼저 강준만 교수. 작년에 공저를 제외하고 단독 저서만 5권을 펴냈는데, 그게 여느 해에 비해 적어 보일 만큼 다작의 저자다.

 

 

올해 첫 책은 <생각의 문법>(인물과사상사, 2015)이다. '세상을 꿰뚫는 50가지 이론' 시리즈의 셋째 권인데, 앞서 나온 두 권이 <감정독재>(인물과사상사, 2013)와 <우리는 왜 이렇게 사는 걸까?>(인물과상사, 2014)였다. '생각의 문법'이란 무얼 가리키는가?

‘나의 확신’과 ‘너의 확신’이 만나면 충돌만 있을 뿐 소통은 어렵다. 저자는 ‘생각의 문법’ 연구를 통해 ‘확신’은 소통의 적(敵)일 수 있다는 점에 눈을 돌려 보자고 제안한다. “내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니까!”처럼 절대 움직일 수 없는 확신을 가지고 말을 하기 이전에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것에 대해선 어찌 할 것인지 우리 모두 자문자답해보자는 것이다. 저자가 제안하는 것은 ‘확신’과 ‘확신’ 사이에 소통의 다리를 놓아줄 수 있는 ‘공통의 문법’이다. ‘공통의 문법’을 찾기 위해서 이 책에서는 주로 ‘최대공약수’에 해당하는 ‘생각의 문법’을 다루었다.

흠, 하지만 이런 소개만으로는 얼른 감이 오지 않는다. 커뮤니케이션학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저자만의 독창적인 발상인지부터가 모호하다. 그래서 흥미를 끄는 것이기도 하지만...

 

 

언론인 출신으로 현재는 대학 강단에 서고 있는 손석춘 교수도 지난 연말부터 바쁘게 책을 펴내고 있다. 기독교를 다룬 <네가 정말 나를 사랑하느냐>(시대의창, 2014)와 청소년 독자를 위한 <사람은 왜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시를 쓸까>(낮은산, 2015)에 이어서 펴낸 책이 <민중언론학의 논리>(철수와영희, 2015)다. 부제는 '정보혁명 시대 네티즌의 무기'. '민중언론학'이란 조어는 저자가 처음 쓴 게 아닌가 싶다('민중언론'이란 말을 있어도 '민중언론학'은 따로 없었기에).

민중언론학은 한국에서 ‘민중의 죽음’이라는 음울한 담론이 힘을 얻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바로 그 현실에 발을 딛고 그 현실을 넘어설 방안을 찾는 데 학문적 목표를 두고 있다. 이 책은 정보혁명 시대의 언론인인 네티즌이 자기 성찰과 현실 인식을 저해하는 세력이 짜놓은 틀에 갇히면, 네티즌이 ‘가장 멍청한 세대’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네티즌의 언론활동이 더 풍부해지려면 학문적 ‘무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나아가 네티즌이 자신과 이웃을 ‘민중’으로 옳게 호명할 때 비로소 민중들의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제목과 부제가 연결되려면 민중으로서의 자각이 네티즌에게 필요하다는 주장이기도 하겠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99퍼센트'를 매개로 하여 그 둘이 연결될 수도 있겠다 싶다. 덧붙이자면 내겐 '99퍼센트'가 훨씬 더 효과적인 호명처럼 보인다. 전략적으로라도.

 

 

한겨레신문 고경태 기자(라고 알고 있었는데 프로필을 보니 전직으로 돼 있다)도 새 책을 냈다. <1968년 2월 12일>(한겨레출판, 2015). 어떤 날짜인가. 부제 '베트남 퐁니·퐁넛 학살 그리고 세계'가 힌트다.  

1968년. 파리 서부에서 발화된 베트남전 반대시위는 유럽 전체로 번질 만큼 전 세계적인 투쟁으로 불타올랐다. 흑인 민권운동과 반전운동으로 술렁이던 미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즈음 일본에서는 전후 평화운동이 시작되었다. 전 세계적인 항쟁은 ‘68운동’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그리고 2월 12일. 대한민국 군대는 베트남 퐁니·퐁넛을 공격해 무고한 어린아이들과 여자들을 죽였다. 그런데 왜? 잔인한 학살의 기억과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베트남에서의 전쟁은 끝났지만 한국에서의 베트남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곧 베트남 파병 한국군의 양민학살 사건을 다룬 책이다. 참혹한 역사에 대한 기억을 통해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우리는 지난 역사를 통해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으나 반성과 노력을 통해 현재를 바꾸고 미래를 꿈꿀 수 있다. 베트남에서 벌어진 학살의 현장과 그날의 기억은 우리로 하여금 과거의 역사가 지금 우리의 현재를 어떻게 만들어 냈는지를 느끼게 해준다. 그것이야말로 그날의 역사가, 또 그 역사를 추적해낸 필자가 독자에게 바라는 것이다.

 

베트남 학살을 주제로 한 책으로 캠브리지대 인류학과 권헌익 교수의 <학살, 그 이후>(아카이브, 2012)와 같이 읽어봐도 좋겠다. 저자의 다른 책 <또 하나의 냉전>(민음사, 2013)과 공저 <귀신 잡는 할머니: 근대에 맞서는 근대>(현실문화, 2014)도 역사의 상처를 되짚어 보는 책으로 분류할 수 있다...

 

15. 0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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