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인 셈치고 '이주의 저자'를 골라놓는다. 국내 저자 3인으로, 각각 디자인연구자, 역사학자, 철학자다. 먼저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저자 박해천 교수가 '콘유 삼부작'의 마지막 책으로 <아수라장의 모더니티>(워크룸프레스, 2015)를 펴냈다. 삼부작이라고는 하지만 출판사는 제각각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아파트 게임>에 이은 박해천의 ‘콘유’ 삼부작 완결편. 1970~80년대 고도성장기 아파트 단지 개발과 그에 따른 중산층 문화에 주로 초점을 맞춘 전작과 달리, 1950년대 한국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가 전쟁의 기계들이 던져준 모더니티의 충격부터 새로운 감각의 변화를 요구하는 21세기 테크놀로지까지, 우리 삶을 뿌리부터 바꿔놓은 인공물을 함께 다룬다.

우리의 주거 공간에 대한 관점과 시야를 확장해준 공로가 '콘유 삼부작'에 돌릴 수 있을 터이다. 시리즈이니 만큼 이번 책도 놓칠 순 없겠다.

 

 

한국 고대사 연구자인 송호정 교수도 오랜만에 책을 펴냈다. <처음 읽는 부여사>(사계절, 2015). '한국 고대국가의 원류 부여사 700'이 부제다. 부여사에 관해서는 거의 최초의 단행본이라 한다.

<처음 읽는 부여사>는 '국내 1호 고조선 박사'인 한국교원대학교 송호정 교수가 그동안 고대사의 변방에 있었던 부여의 역사를 한국 고대국가의 출발점이자 원류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국내외 연구 성과를 종합해 저술한 책으로, 부여의 기원부터 성장과 쇠퇴, 제도, 생활과 문화에 이르기까지 지금껏 부여에 관해 밝혀진 모든 것을 집대성한 최초의 단행본이다.

일단 700년이란 긴 시간 동안 국가의 명맥을 유지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사실 부여에 관해서라면 몇 가지 단편적인 사실 말고 아는 게 거의 없잖은가). 좀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올해 재간본이 나온 스테디셀러 <논리는 나의 힘>(우리학교, 2015)의 저자 최훈 교수도 신간을 펴냈다. <위험한 철학책>(바다출판사, 2015). '왜 그 생각은 철학이 되었을까'가 부제로 철학자들의 위험한 생각들을 엮었다. 예컨대 '인간에게 자유의지는 없다''동물은 고통을 못 느낀다''갓난아이는 죽여도 상관없다''국가는 가능한 한 없는 것이 좋다' 같은 생각들이다.  

보통 사람의 상식을 뛰어넘는 철학자들의 위험한 생각을 엮어냈다. 철학은 기존에 있던 지식이나 상식을 의심하고 반론을 제기하고 새로운 생각을 내놓으면서 발전해왔다. 따라서 진정한 철학은 위험하고 불온할 수밖에 없다. 철학자들은 보통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든 없든 그 결과에 상관없이 이성의 냉철함과 엄밀함으로 끝까지 밀어붙인다. 저자는 철학자들의 사고 과정을 따라가 보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철학 입문서로도 요긴해 보인다...

 

15. 10.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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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완연하여 저녁 외출 때 긴팔을 입었다. 몸도 그렇지만 마음도 이제 추운 날들을 준비해야 할 듯. 그 전에 낙엽들이 지는 걸 보게 될 터이다. 어김없이... 페이퍼 거리가 밀렸는데, 아무래도 피로가 쌓이다 보니 예전만큼 활발한 포스팅은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주말이니 만큼 '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이번주에는 철학/고전 분야에서 3인이다.

 

 

먼저 프랑스 철학자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의 주저 <쟁론>(경성대출판부, 2015)이 번역돼 나왔다. 얼마 전 <리오타르, 왜 철학을 하는가?>(북노마드, 2015)가 번역된 것도 사실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포스트모던의 조건>(민음사, 1992)으로 널리 알려진 철학자이지만, 사실 '보고서' 성격의 책이었기에 철학적 주저라고 하기엔 어색했다. <쟁론>은 그래도 철학자로서 그의 존재감을 확인시켜줄 듯싶다. 오래 전에 영역본만 구해놓았었는데, 읽어볼 기회가 생겨 다행이다. 출판사의 책소개는 이렇다.

쟁론은 두 가지 논의 모두에 적용될 수 있는 판단 규칙의 결여로 인해 공정하게 해결될 수 없는, 두 당사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한 경우이다. 이러한 쟁론을 계쟁인 양 간주하여 동일한 판단 규칙을 양쪽에 적용한다면, 둘 중 적어도 한 쪽에 대해 잘못을 범한 게 된다. 잘못은 우리가 판단의 준거로 삼는 어떤 장르의 담론 규칙들이, 판단되는 담론/들의 장르 또는 장르들의 규칙들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생겨난다.

책소개라고 하기에도 멋쩍다(학출판부 책이라서 그런가).. 리오타르의 어떤 저작이다, 라는 내용이 빠져 있기에. 그냥 제목 '쟁론'에 대한 설명으로 읽으면 되겠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의 신작도 나왔다. <에로스의 종말>(문학과지성사, 2015). 보통 일년에 한권씩 나왔는데, 지난 봄에 <심리정치>(문학과지성사, 2015)가 나왔으니 올해는 두 권이다. 게다가 제목에도 변화가 있다(네 글자 제목에서 여섯 글자로). 어떤 의미에서, 에로스의 종말인가.

오늘날 왜 에로스적인 경험이 불가능하게 되었는지를 열정적으로 증명해 보인다. 저자는 사랑의 위기가 타자의 침식 과정과 자아의 나르시시즘 경향의 확산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설명한다. 자기애를 지닌 주체는 자기 자신을 위해 타자를 배제하는 부정적 경계선을 긋는다. 그는 타자의 타자성을 인식하고 인정할 줄 모른다. 이러한 나르시시즘의 지옥 안에서 타자의 실존에 대한 근원적인 경험인 에로스는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나르시시즘의 지옥'이 에로스의 종말을 낳았다고 하면 수긍을 하겠는데, 사회역사적 상황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지 않나 싶다. 우리의 경우는 '에로스의 포기'라고 해야 할까.

 

 

동양 정치사상 전공자로 활발한 저술과 강연활동을 펼치고 있는 신동준 (21세기 정경연구소) 소장의 책들도 연거푸 나오고 있다. 이번에 나온 건 <동서 인문학의 뿌리를 찾아서>(인간사랑, 2015). 동서 인문고전을 비교/대조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대표적인 동서고전의 정수를 뽑아 그 이동을 밝혀 놓았다. 공자와 소크라테스, 맹자와 플라톤, 순자와 아리스토텔레스, 한비자와 마키아벨리, 사마천과 헤로도토스, 진수와 플루타르코스를 비교하면서 고금동서를 관통하는 진정한 영웅의 난세리더십을 추적하고 있다. 춘추전국시대와 삼국시대를 방불 하는 21세기 G2시대의 난세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략을 독자들 스스로 찾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서이다. 이 책을 통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임기응변의 지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공맹과 플라톤 정도는 읽어본 독자들이 고전에 대한 이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데 요긴할 듯싶다...

 

15. 10.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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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마지막 '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박홍규, 강준만 교수와 2013년 세상을 떠난 소설가 최인호이다. 먼저 '박홍규의 고전산책' 시리즈로 <내 친구 톨스토이>(들녘, 2015)가 출간됐다. 청소년 독자를 겨냥한 책인데, 톨스토이 입문서로도 읽을 수 있겠다. 안 그래도 10월부터 톨스토이 강의가 예정돼 있어서 나로선 반가운 책이다.

 

 

일종의 톨스토이 평전으로 읽는다면 지난 봄에 나온 <함석헌과 간디>(들녘, 2015)에 잇대어 읽을 수도 있는데, 이건 'PEACE by PEACE' 시리즈로 나온 책이다. 간디에 대해서는 이번에 나온 김진의 <간디와의 대화, 어떻게 살 것인가>(스타북스, 2015)와 겹쳐 읽어도 좋겠다. 비폭력 평화사상가라는 점에서 톨스토이와 간디는 같이 묶인다.

 

 

세 권의 책을 한꺼번에 펴냈으니 강준만 교수도 '이달의 저자'(라는 게 있다면) 강력한 후보다. <재미있는 영어 인문학 이야기2>(인물과사상사, 2015)는 시리즈니까 제쳐놓으면 주목거리는 <지방 식민지 독립선언>(인물과사상사, 2015)이다. '서울민국 타파가 나라를 살린다'가 부제. <지방은 식민지다!>(개마고원, 2008)의 업그레이판으로 봐야겠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지방을 정치.경제.문화.교육.언론 등 전 분야에서 서울에 종속된 내부식민지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식민지 독립투쟁을 촉구한다. 여기서 저자는, 우리가 대충은 알고 있다고 여기지만 막상 들여다보니 너무도 낯선 지방의 현실을 펼쳐 보여준다. 내부식민지 탈출을 위해 저자는 지역균형발전기금 조성과 수도권규제철폐의 빅딜 등 여러 아이디어를 제안하지만 그 핵심은 지역주의에서 지방주의로의 전환이다.

그러한 변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청년들이 정당으로 쳐들어가는 것도 한 방책이리라. <청년이여, 정당으로 쳐들어가라!>(인물과사상사, 2015)는 청년들에게 정당으로 쳐들어가라고 권유하면서 그 선행 조건으로 '정치 사랑'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하는 책이다. "현 단계에선 정치를 사랑하는 것으로 족하며, 그리할 경우 나머지 일은 저절로 풀린다고 말한다. 슬랙티비즘이나 약한 연결의 힘에 기대를 걸고, 생활정치를 전업으로 할 대표 선수들에게 작은 관심과 지원을 보내주는 행동이 뒤따를 것이라고 희망한다."

 

 

최인호의 <나는 나를 기억한다 1,2>(여백, 2015)는 작가의 2주기에 맞춰 출간된 책이다(어제가 2주기였다). 작가가 생전에 기획한 책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작가의 유지에 따라 기획된 책이다. 최인호 작가가 7년 전에 구상한 것으로, 책의 제목 역시 작가가 오스트리아의 유명 지휘자인 카를 뵘이 쓴 <나는 정확히 기억한다>에서 영감을 얻어 정해둔 것이었다. 이 책은 작가 최인호의 젊은 날을 기록한 문학적 자서전이자, 최인호 문학의 시원을 살필 수 있는 매우 특별한 작품집이라고 할 수 있다. 1권 '시간이 품은 나의 기억들'과, 2권 '시간이 품은 나의 습작들'로 구성되어 있다. 제목이 의미하는 대로 1권은 작가의 젊은 시절에 대한 기록이며, 2권은 작가의 미발표 작품 모음집이다.

찾아보니 작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법정 스님과의 대담집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여백, 2015)가 지난 겨울에 나왔었다. 작가는 떠나도 글은 남는다...

호15. 0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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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저자'를 골라놓는다. 경제학자 1인과 역사학자 2인이다. 먼저 칼럼니스트와 방송진행자로도 활동했던 고 정운영 선집이 10주기를 맞아 출간됐다. <시선>(생각의힘, 2015).

 

 

되짚어보니 내가 처음 접한 저자의 책도 칼럼집 <광대의 경제학>(까치, 1989), <저 낮은 경제학을 위하여>(까치, 1990)과 <시지프의 언어>(까치, 1993)이었다. '경제학 칼럼집'이란 말도 생소하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밖에 <신세기 랩소디>(산처럼, 2002), 유작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웅진지식하우스, 2006)까지 아홉 권의 칼럼집을 펴냈는데, 이번 <시선>은 그 중에서 고른 글들이다.

마르크스 경제학자, 경제평론가, 시사프로그램 진행자 등으로 활동하며 좌우를 막론한 최고의 논객이자 당대의 문장가로 호명되었던 정운영을 오늘 다시 만난다. 이 책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 만에 펴내는 선집이다. 첫 번째 칼럼집 <광대의 경제학>(1989)에서부터 마지막 칼럼집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2006)까지 모두 아홉 권의 칼럼집에서 저자의 사상을 잘 반영하면서도 여전히 시의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글들을 가려 뽑은 것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를 포괄하는 르네상스적 비판정신과 곡조 있는 글쓰기의 정점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재회의 감회가 없지 않다.

 

 

고려사 연구자 이승한 교수의 새책도 출간됐다. <고려왕조의 위기, 혹은 세계화 시대>(푸른역사, 2015). <고려무인이야기>(전4권) 이후에 '몽골 제국과 고려' 시리즈에 매진하고 있는데, 이번 책은 <쿠빌라이 칸의 일본 원정과 충렬왕>(푸른역사, 2009), <혼혈 왕, 충선왕>(푸른역사, 2012)에 뒤이은 것이다. 제목의 '세계화 시대'는 물론 몽골 제국 시대를 가리킨다.

이 책에서 특히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원 간섭기에 고려의 정치 사회를 주도한 부원배附元輩라는 세력이다. 몽골 제국에 체류하면서 무종과 인종 두 형제 황제를 옹립한 충선왕은 두 황제의 재위 동안 최고의 권력을 누렸다. 특히 인종 황제의 각별한 총애를 받은 충선왕은 몽골 제국의 2인자에 가까웠다. 개인적으로 충선왕은 그렇게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양국 사이의 경계나 고려 사회의 정체성은 오히려 희미해져갔다. 달리 표현하자면 고려 사회가 몽골 세계 제국에 동화되어갔거나 세계화 시대에 적극적으로 부응해갔다고 말할 수도 있다.

놀라운 사실들을 꽤 발견하게 되는데, 달리 말하면 고려사에 대한 우리의 상식이 얼마나 부족한지 확인하게 된다.

 

 

재알 조선사학자로 특히 조선 근대사 연구의 권위자인 조경달 교수의 책도 연이어 나오고 있다. 개론서에 해당하는 <근대 조선과 일본>(열린책들, 2015), <식민지 조선과 일본>(한양대출판부, 2015)가 최근에 나온 책들이고, <식민지기 조선의 지식인과 민중>(선인문화사, 2012)가 근년에 나왔던 책.

 

 

근대 민중운동사가 주 전공분야였던 것으로 아는데, 동학과 갑오농민전쟁을 다룬 <이단의 민중반란>(역사비평사, 2008)이 국내에 처음 소개된 책이었다. 이후에 나온 <민중과 유토피아>(역사비평사, 2009)는 절판돼 아쉬운데, 대체가능한 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면 다시 출간되길 기대한다. 공저로는 <일본, 한국 병합을 말하다>(열린책들, 2011)까지가 현재 소개된 저자의 책이다. 가장 편하게는 입문서격의 <근대 조선과 일본>부터 손에 들어도 좋겠다.

갑오농민전쟁 등 조선 민중사 연구로 유명한 재일 사학자 조경달 교수가 그간의 연구 결과를 집약해 서술한 통한의 한국 근대 통사. 19세기 중반 대원군 집권기부터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이 멸망하던 날까지 반세기에 걸친 역사를 정치 문화를 중심으로 통사적으로 기술하는 한편으로, 비교사적 차원에서 근대 한일 관계를 고찰하고 있다. 근대 조선은 어떤 연유로 일본과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되었는가? 근대 서구와 접촉하면서 비교적 원만하게 국민 국가로 전환한 일본과 달리, 조선에서는 국민 국가로의 전환이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았다. 왜 그러했는가? 조경달은 한일 양국의 정치 문화의 차이에서 그 답을 찾는다.

15. 0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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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만에 '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국내 시인, 소설가, 평론가 순이다. 먼저, 이성복. '이성복 시론'으로 세 권이 한꺼번에 출간됐다. 분량으로는 한권으로 합본해도 될 만하지만 글의 양식이 달라서 따로 묶은 듯하다.

 

시인 이성복이 오래전부터 시에 대한 사유는 물론이요, 동서양 철학과 수학, 천체물리학 등 여러 학문을 넘나드는 깊은 독서와 공부의 흔적을 자신의 문학적 거울로 삼아온 내력이 2013년 벽두 10년 만에 출간된 시집 <래여애반다라> 이후 치러진 인터뷰와 대담 등을 통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의 시를 찾고 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공부의 궤적을 좇아 들여다보고 싶은 열망을 함께 키워온 셈이다. 그의 시집 출간은 결코 잦은 편이랄 수 없었고, 그의 행보 역시 거처한 대구에서 학생들과 공부하고 자신의 글에만 집중하는 두문불출에 가까웠기에 그 열망의 크기는 줄지 않고 궁금증만 더해갔을 뿐이다. 이번에 나온 시론집 3권은 바로 이런 독자들의 궁금증과 갈망에 화답하는 책이다.

그 가운데 <무한화서>는 2002년에서 2015년까지 이루어진 대학원 시 창작 강의를 아포리즘의 형식으로 정리한 것인데, 아포리즘에 대한 그의 여전한 선호를 확인할 수 있다(가령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문학동네, 2001)도 바로 떠올릴 수 있다). 이런 식이다.

우리는 망망대해의 물거품 하나에도 못 미쳐요. 문학이란 건 허망한 존재가 자기 허망함을 알고 딴짓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에요. 비참하게 깨져도 한심하게 무너지지는 않겠다는 것. 모든 것이 허망해도, 허망하지 않은 게 꼭 하나 있어요. 일체가 허망하다고 말하는 이것! 이 공부를 오래 해야 독하게 벼려져요.

그의 시와 시론을 허망함의 교재로 삼아도 좋겠다.

 

 

소설가 김원우가 새로 펴낸 책은 소설이 아니라 소설 작법서다.<작가를 위하여>(글항아리, 2015). 작가로서는 <산책자의 눈길>(강, 2008), <일본 탐독>(글항아리, 2014)에 뒤이은 또 하나의 외도라고 할까. '소설 잘 쓰기의 모든 것'이 부제로 700쪽이 넘는 두툼한 책이다.

'재미없다'는 독후감이 통설로 굳어진 국내 소설에 대한 작가의 의구심과 반성에서 시작해 좋은 소설, 그럴듯한 소설, 읽히는 소설, 진지한 소설을 왜 써야만 하고, 어떻게 쓰는가에 대한 기초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문장 하나하나에 저자의 사유가 체계화되어 있다. 저자가 사유의 완결성을 좇으며 문장을 조립해나가는 과정은 소설가로서 어떻게 언어와의 사투를 벌여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소설작법서'란 띠지의 문구가 궁금증을 부추긴다. 한번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이어령의 '시 문학 수업'으로 <언어로 세운 집>(아르테, 2015)이 출간됐다. 그의 수많은 책들 가운데 나의 관심은 주로 문학론에 한정되는데, 다시 찾으니 평론집 <저항의 문학>(문학사상사, 2003), 청마 유치환 시의 기호론적 분석으로 <공간의 기호학>(민음사, 2000) 등이 모두 절판된 상태다. <언어로 세운 집>에 수록된 글들도 19년 전에 한 일간지에 연재되었던 것이라니까 1996년의 글이다. <공간의 기호학>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을 듯하다. 부제 역시 '기호학으로 스캔한 추억의 한국시 32편'. 시 분석의 바탕에 기호학이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그저 시에 대한 주관적 감상평을 나열한 뻔한 해설서가 아니다. 한국 문학 비평의 신기원을 열었던 이어령 교수는 시의 시대적 배경이나 시인의 전기적 배경에 치우쳐 시를 오독해온 우리에게 시어 하나하나의 깊은 의미를 일깨워주며, 문학 텍스트 속에 숨겨진 상징을 기호학으로 분석함으로써 일상의 평범한 언어에 감추어진 시의 아름다운 비밀을 파헤쳐 보여준다.

이어령이라는 한 시대의 지성이 한국 현대시와 만나는 장면이 궁금하다면 일독해봄직하다...

 

15. 0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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