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문학평론가와 사회학자, 그리고 물리학자, 3인이다. 먼저 작고한 1990년에 세상을 떠난 문학평론가 김현의 유작 <행복한 책읽기>(문학과지성사, 1992)의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올해가 문학과지성사 창사 40주년이어서 이를 기념하는 책이 몇 권 나왔는데, 이 개정판 역시 그런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행복한 책읽기>는 전집판까지 포함하여 세 가지 판본을 갖게 되었는데, 1986-1989년 사이에 쓰인 저자의 일기를 묶은 것이다. 당대의 평론가에게 일기란 곧 읽기의 기록이었다. 감회를 얹자면, <행복한 책읽기>는 초판을 읽었을 때 나는 아직 20대였다. 이제 23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 그 개정판을 읽는다. 어느덧 저자만큼의 나이가 되어. 89년에 강의실에서 저자의 육성을 들은 것이 마지막 기억인데, 그로부터는 26년의 시간이 흘렀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일도 아니란 걸 다시금 알겠다.

 

 

창사 40주년과 관련해서는 '문지의 논리 1970-2015'라는 부제의 평론선 <한국문학의 가능성>(문학과지성사, 2015)이 출간되었는데, 표제가 된 글이 바로 김현이 1970년에 발표한 평론이다. 그리고 1980년 가을호였던 창간 10주년 기념호의 복각본도 이번에 나왔다. 옛 표지와 활자를 대하니 마치 시간여행이라도 하는 기분이다. 계간 <문학과사회>는 이번 겨울호가 112호인데, 편집진의 세대 교체가 이루어져(엊저녁 2015년 문학동네 시상식 겸 송년회를 가졌던 <문학동네>도 마찬가지다) 내년 봄호부터는 다른 색깔의 잡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새월은 이 모든 것을 강제한다.

 

 

아나키즘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진행해온 사회학자 김성국 교수가 묵직한 분량의 '아나키스트 자유주의 문명전환론'을 펴냈다. <잡종사회와 그 친구들>(이학사, 2015). 저자는 이미 <한국의 아나키스트, 자유와 해방의 전사>(이학사, 2007)과 공저 <지금, 여기의 아나키스트>(이학사, 2012)를 출간했고, 내년에는 아나키스트 3부작을 완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무엇을 주장하고자 하는가.

한국의 대표적인 아나키스트 사회학자인 김성국이 필생의 학문적 열정을 쏟아부은 역작이자, 그의 새로운 이념적 출발을 알리는 책이다. 저자는 '잡종'이라는 핵심 키워드를 바탕으로 아나키스트 자유주의, 잡종사회와 탈근대 문명전환 그리고 개인의 사회학을 논의한다. 구체적으로 고유한 특성을 지닌 유일무이의 존재인 개인에 주목하는 독특한 잡종사회론과 문명전환론을 구상하며, 아나키즘의 실용화와 자유주의의 급진화라는 양 날개를 추구하는 아나키스트 자유주의를 주창하고 있다.

연말이라 두툼한 문제작의 출간은 해를 넘기는 경우가 많은데, <잡종사회와 그 친구들>은 똑같이 이번주에 나온 찰스 테일러의 <자아의 원천들>(새물결, 2015)과 함께 '가는 해'의 자존심을 끝까지 지켜주는 책으로 도드라진다. 

 

 

하버드 대학교의 물리학 교수로 <숨겨진 우주>(사이언스북스, 2008)의 저자 리사 랜들의 최신작이 번역돼 나왔다.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사이언스북스, 2015). 중간에 나온 <이것이 힉스다>(사이언스북스, 2013)까지 포함하면 세번째 책이다. 교양과학서 독자들에게는 올해의 크리스마스 선물감이다. 책의 내용을 어디까지 따라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로서도 반갑다.

저자는 전작 <숨겨진 우주>에서 비틀린 시공간 기하를 이용해 숨겨져 있는 차원과 우리 우주의 3차원 세계를 연결했듯이, 이번에는 입자 물리학과 우주론을 연결 짓는다. 저자는 이번 책을 <숨겨진 우주>의 후속작이지만 동시에 프리퀄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만나는 물체들을 이루고 있는 원자나 쿼크 같은 가장 근본적인 구성 요소들이 우리가 직관적으로 알고 있는 일상적인 물리 법칙과는 완전히 다른 법칙의 지배를 받고 있음을 강조한다. 입자 물리학에서 우주론까지의 현란한 도약과 융합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물음에 답하면서 저자는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종교와 갈등을 빚어 가면서까지 연구를 계속했던 갈릴레오를 불러 내며 물리학과 과학의 가치, 역사, 기초를 탐구하고 있다.

 

리사 랜들의 최신작이라고 했지만,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는 2011년작이고, 그보다 나중에 나온 책으로는 <암흑물질과 공룡>(2015)이 있다. 짐작에는 이 또한 번역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저자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번역돼 나온다면 리사 랜들 3부작으로 부름직하다...

 

15.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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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소설가로 돌아온 번역가 김석희,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장정에 나선 역사학자 주명철, 그리고 미국의 인문학자 마사 누스바움, 3인이다.

 

 

먼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쥘 베른 걸작선'(전20권)의 번역자 김석희 선생. 하지만 출발은 소설가였다. 지금은 흔적도 남아 있지 않지만 소설집 <이상의 날개>와 장편소설 <섬에는 옹달샘> 등을 발표한 바 있다(나는 이 책들을 서점에서 만져본 기억만 갖고 있다). 이후에 역자 후기 모음집만을 따로 묶어서 책을 낼 정도로 창작 대신 번역에만 몰두했던 저자가 제주 귀향과 함께 다시 창작으로 돌아온 것.

1988년 '이상의 날개'를 발표하며 등단한 이후 절필 이전까지 10년간 한 권의 장편소설과 한 권의 소설집을 내놓으며 번역가로서의 눈부신 활약과 더불어 꾸준히 창작활동을 해왔던 소설가 김석희가 오랜 침묵을 깨고 그간의 미출간된 아홉 편의 중단편소설과 등단작까지 포함하여 두 번째 소설집을 우리 앞에 선보인다. 다시 소설가로 돌아가겠다는 선언도 함께다.  

현재는 장편소설을 집필중이라는데, 아무래도 번역가로서의 오랜 경험도 소설에 녹아들지 않을까 싶다. 이번 소설집에 붙인 작가의 말에 이렇게 적었다.

“1998년 가을에 중편소설 발표한 것을 끝으로 창작을 접은 뒤 처음 10년은 내 이름 뒤에 (소설가.번역가)라고, 그 후 10년은 미련 때문에 (번역가.소설가)라고 덧붙이다가, 그 뒤로는 ‘소설가’를 아예 빼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한때나마 도타웠던 애인에 대한 그리움이 왜 없었겠습니까.(...) 다시 시작하면서 나는 무척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다시 소설가로 돌아왔다면 번역가 김석희와는 작별인가 싶어 아쉬운 마음도 없지 않다. 대표 번역작으로 어떤 책을 꼽을지 모르겠지만, 첫 번역작인 존 파울즈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와 비로소 읽을 수 있도록 해준 멜빌의 <모비딕>은 반드시 포함될 듯싶다. 작가로서도 그에 못지 않은 활약을 기대해봐야겠다.

 

 

 

프랑스사, 특히 혁명사가 전공인 주명철 교수가 '프랑스 혁명사 10부작'의 첫 두 권으로 <대서사의 서막>과 <1789>(여문책, 2015)를 펴냈다. 그러 고면 재작년에 나온 <오늘 만나는 프랑스 혁명>(소나무, 2013)은 맛보기에 불과했나 보다. 대장정인 만큼 출사표가 없을 리 없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무엇인가.

한국서양사학회 회장을 지낸 주명철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명예교수의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226년 전인 1789년 7월 14일, 무장한 민중이 바스티유 감옥을 '정복'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프랑스 혁명은 그동안 프랑스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논문과 관련서가 나와 있는 역사적 대사건이었다.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저서와 번역서가 나와 있는 편이긴 하지만 이번처럼 혁명이 시작된 1789년부터 테르미도르 반동이 일어난 1794년까지를 무려 10권에 세밀히 다루려는 저작은 아직까지 출판된 적이 없다. 남의 나라에서 오래전에 일어난 혁명을 이렇게까지 자세히 알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프랑스 혁명의 교훈은 언제라도 우리에게 유용할뿐더러 그간 우리는 프랑스 혁명에 대해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해왔다는 것을 자각하고 우리 목소리로 또 우리 시각으로 프랑스 혁명을 총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학자들의 혁명사가 몇 권 소개된 적이 있지만 대부분 절판된 상태다. 안 그대로 내년에 19세기 프랑스 소설들을 강의에서 다룰 계획이어서 겨울에는 프랑스 혁명사에 빠져볼 참이었는데, 말 그대로 '제때' 책이 나와주었다. 무탈하게 10부작이 완결되기를 기대한다.

 

 

<역량의 창조>(돌베개, 2015)는 올 들어 <혐오와 수치심>(민음사, 2015), <감정의 격동>(새물결, 2015) 등이 연이어 소개된 누스바움의 신작이다(또 다른 신작으로 <정치적 감정> 같은 책도 소개됨직하다). 2013년에 나온 책으로 '인간다운 삶에는 무엇이 필요한가?'가 부제. 소개에도 나오지만 누스바움의 역량론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티아 센과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작업의 성과다. 그 핵심 아이디어가 무엇인지 접해볼 수 있겠다.

마사 누스바움이 제안하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척도, 역량 접근법. 저자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티와 센과 함께 20년 넘게 개진해온 역량 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며 자신의 사상적 정수를 과감 없이 펼친다. 역량 접근법은 경제성장이 아닌 개개인의 행복에 초점을 맞춰 삶의 질을 비교 평가하며 사회정의를 실현하려는 이론이다. 단순히 이론에 머물지 않고 당면한 현실 과제를 해결하려는 정책에 개입했으며, 그것이 일정 부분 인정받아 현재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자유라면 '선택의 자유'를 떠올리지만 누스바움과 센의 제안은 '역량으로서의 자유'다. '하고 싶다'로서의 자유를 넘어서 '할 수 있다'의 자유로 이행해가기. 바로 그 역량이 행복의 밑바탕 아닌가. 내 어림으로는 가난한 사람들을 단순히 구호하는 게 아니라 열정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 복지에 대한 역량론적 접근이다. 더 자세한 이해는 <역량의 창조>를 참고해야겠다...

 

15.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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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불문학자, 종교학자, 사회학자 3인이다. 먼저 불문학자이자 번역가 김화영 교수가 '역자 후기'만을 모아서 <김화영의 번역수첩>(문학동네, 2015)으로 출간했다. 대략 1969년 르 클레지오의 산문 <침묵> 이래 약 46년간 100권이 넘는 책을 번역해왔다고 저자는 회고한다. 알베르 카뮈 전집 번역자로 업적이 가장 크겠지만, 한국어 번역을 통해서 저자가 처음 우리에게 소개한 작가들이 적지 않다.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 김화영이 1974년부터 2014년까지 평생에 걸쳐 매진한 프랑스 문학과 문화에 대한 번역서들의 역자 후기를 집대성한 책이다. 김화영은 누가 시켜서 하는 번역, 의뢰받은 번역은 절대로 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읽고 간절한 마음이 들었던 책들만을 우리말로 풀어냈다. 그가 발견한 작가만 해도 파트릭 모디아노, 미셸 투르니에, 크리스토프 바타유, 르 클레지요, 자크 프레베르, 가브리엘 루아, 로맹 가리, 로제 그르니에, 에마뉘엘 로블레스, 파스칼 자르댕, 알랭 레몽, 실비 제르맹 등이 나열된다.

가장 최근에 나온 것으로는 <이방인>(책세상, 2015) 개정판을 들 수 있겠다(실제 어느 정도 손질을 본 것인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새움판의 번역시비 이후에 나온 판본이기에 비로소 김화영판의 결정본으로 내지 않았을까 싶다). <앙드레 말로 평전>(김영사, 2015)도 재간된 번역본.

 

 

개인적으로는 프랑스 문학도나 애독자들에게 미셸 레몽의 <프랑스 현대시사>나 <프랑스 현대소설사>(현대문학, 2007)를 소개한 공로도 크다고 생각된다. 절판됐지만 <프랑스문학 산책>(세계사, 1989)이 내가 처음 읽은 김화영 교수의 책들 가운데 하나인데, 압축하면 내게는 <산책>부터 <수첩>까지 불문학자 김화영의 세계다.

 

 

고전문헌학자이자 종교학자 배철현 교수가 묵직한 물음을 다룬 책 두 권을 같이 펴냈다. <인간의 위대한 질문>과 <신의 위대한 질문>(21세기북스, 2015)이다. 이전에 저자는 카렌 암스트롱의 <성서 이펙트>(세종서적, 2013)과 브루스 로런스의 <꾸란 이펙트>(세종서적, 2013)을 옮긴 바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읽을 수 있겠다. 가령 <인간의 위대한 질문>은 이런 질문들을 다룬다.

지난 2,00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예수는 누구인가? 또 21세기 한국 사회에서의 예수는 어떤 의미인가? 우리는 서양 사람들이 그들만의 실존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놓은 교리와 도그마를 통해 예수를 보고 있지는 않은가?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배철현 교수는 그 교리와 도그마를 과감히 버리고, 21세기 현대인에게 예수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번 주에 나란히 나온 바트 어만의 <예수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갈라파고스, 2015)와 같이 읽어봐도 좋겠다.

 

 

끝으로 지그문트 바우만. 우리시대의 가장 중요한 사회학자의 한 명이면서 동시에 다작의 학자답게 국내에 소개되는 책도 끊임이 없다. 최근에 와서는 대담 형식의 책이 많은데, 이번에 나온 건 레오니드 돈스키스와의 대담집 <도덕적 불감증>(책읽는수요일, 2015)이다. 번역본 부제는 '유동적 세계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너무나도 소중한 감수성에 관하여'라고 다소 길게 붙었다.

바우만과 돈스키스는 우리 사회에 독특한 종류의 도덕적 불감증을 분석하기 위해 '아디아포라'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아디아포라는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를, 즉 일종의 도덕적 마비 상태를 함축한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활동, 언어, 생각 없이 그저 안전하게 모방하면서 말하거나 행한 모든 것이며, 모두 우리가 성찰하지 않은, 그러나 잠자코 동의한 악들이라며, 윤리적 거울의 원리를 담아 우리의 현실을 가차 없이 비추고 있다.

사회학적 성찰을 연말 독서에 보탠다면 <도덕적 불감증>을 최적의 후보로 꼽을 만하다...

 

15. 12.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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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먼저 <학교 없는 사회>의 저자이자 문명비판가 이반 일리치 전집 1차분이 출간돼 머리에 올린다(전9권으로 이루어지는 이번 전집은 2017년 완간 예정이라 한다). 2000년대 중반에 '이반 일리히 전집'이 나오다가 중단되었고 현재는 모두 절판된 상태였다. 이번에 나온 건 <그림자 노동>과 <전문가들의 사회>(사월의책, 2015) 두 권이다. 지난해에도 일리치의 책은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느린걸음, 2014)이 나왔었으므로 다시금 꾸준히 주목받는 저자로 분류할 수 있다.

 

 

두 권 가운데 <전문가들의 사회>는 일리치의 저서라기보다는 공저다. 어떤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가.

오늘날의 사회는 실로 '전문가 사회'라 불릴 만하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가장 먼저 호출되는 사람이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전문가의 견해는 우리 사회와 개인의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일리치와 공저자들은 이 책에서 현대의 전문가 신화를 남김없이 벗겨낸다전문가는 우리의 타고난 능력을 무능력으로 만듦으로써 삶을 지배한다. 육아, 심리, 교육, 인간관계, 심지어는 삶의 지향까지 그들에 의해 결정된다. 전문가에 의해 시민은 고객으로, 국가는 기업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고, 우리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공동의 정치 역시 실종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전문가 사회의 허구를 꿰뚫어 봄으로써 가능성의 존재인 인간을 회복하기 위한 지침서이기도 하다.

전문가 사회에 대한 일리치의 비판이 얼마나 유효한지 살펴보는 것은 그의 사상이 지닌 현재성을 음미해보는 일이기도 하겠다.

 

 

러시아 문학자 석영중 교수도 새 책을 펴냈다.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배우다'란 부제의 <자유>(예담, 2015)다. 도스토예프스키에 관한 책으로는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예담, 2008)에 이어지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자유란 크게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본능으로서의 자유다. 다른 한편으로는 본능의 극복과 최고의 도덕적 상태를 향한 지향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본능으로서의 자유와 가치로서의 자유를 삶과 소설에서 끈질기게 탐구했다. 유배지에서 그가 목격한 죄수들의 행동이 본능으로서의 자유 획득을 위한 몸부림이었다면 그것을 바라보는 그 자신의 내적인 성숙은 가치로서의 자유를 위한 일종의 정신 수련이었다.

나 또한 강의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을 자주 다루곤 하는데, 유익하게 읽어볼 참이다.

 

 

'피노키오 철학 시리즈'의 저자 양운덕 교수는 신작으로 <사랑의 인문학>(삼인, 2015)을 펴냈다. '사랑의 철학, 사랑의 문학'이 부제다.

셰익스피어에서 쿤데라까지의 문학과, 소크라테스에서 바디우까지의 철학을 아우르며 사랑에 관해 탐색하는 사랑학개론. 저자는 철학과 문학의 경계를 오가며 사랑에 관한 다양한 관점을 전개한다. 사랑의 철학은 진리를 그리워하기에 '이' 사랑과 '저' 사랑을 넘어서는 '하나'의 사랑, 불변적인 사랑에 관심을 갖는다. 반면 사랑의 문학은 사랑의 화학작용으로 인해 전적으로 변형된 개인들에 주목하고, 저마다 다른 사랑의 경험들 그 특이성을 부각시킨다.

사랑도 나 역시 강의에서 자주 다루는, 다룰 수밖에 없는 주제여서 흥미를 끈다. 셰익스피어와 쿤데라, 그리고 플라톤은 강의에서 읽은 적이 있기에 유익한 비교가 되겠다.

 

흠, 이제 다음 주면 12월이군. 올해 내지 못한 책들이 눈에 밟히는 달이 될 텐데, 내년에는 심기일전해서 나 자신도 '이주의 저자'에서 다룰 일이 자주 생겼으면 싶다...

 

15.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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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이번 주에는 평소에 잘 다루지 않은 분야의 저자 3인으로 각각 IT전문 기자, 여행작가, 분쟁전문 기자다.

 

 

 

먼저 한겨레신문 기자이면서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소장 구본권의 <로봇 시대, 인간의 일>(어크로스, 2015)이 출간되었다.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야 할 이들을 위한 안내서'가 부제다. "자율자동차 시대에 운전을 배워야 할까? 사람보다 로봇을 친구로 두는 게 편하지 않을까? 저녁 있는 삶이 가능해질까? 기계와 기술이 인간의 삶을 바꿔나가는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준비해야 할까?" 같은 질문의 대답이 궁금하다면 손에 들 책. '디지털 리터러시'를 다룬 전작 <당신을 공유하시겠습니까?>(어크로스, 2014)와 마찬가지로 기계와 기술이 바꿔놓고 있는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꾸려나갈지 조언해주는 책으로 분류할 수 있다.

 

 

두번째는 배낭여행 1세대이자 30년차 여행작가 이지상이다. 그의 글쓰기 강의 노트가 <여행작가 수업>(엔트리, 2015)으로 묶였다. 부제는 '오래된 여행자 이지상의 매혹적인 글쓰기'. "전 세계 삶의 현장에서 몸소 겪으며 터득한 글쓰기 노하우를 담았다. 치열하게 한 길을 걸어온 한 인간으로서의 철학과 여행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전하는 조언이 담겨 있다. 여행기 취재법에서부터 실용적인 글쓰기 기술, 국내 출판과정에 대한 지식, 글을 쓰면서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만나볼 수 있다."
 

사실 모든 글쓰기 교본은 그 분야의 책 자체다. 저자의 여행기 가운데서는 <혼돈의 캄보디아, 불멸의 앙코르와트>(북하우스, 2007)와 시베리아 횡단기, <겨울의 심장>(북하우스, 2001)을 읽고 싶은데, 오래 전 책이라 그런지 <겨울의 심장>은 절판된 상태다. 책은 구입했었는데, 오래 전이라 읽었던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앙코르와트는 언젠가 가보고 싶어서, 그리고 시베리아는 가고 싶지 않아서 읽고픈 책들이다. 

 

 

'분쟁전문기자'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하영식의 신간도 나왔다. <분쟁전문기자 하영식 IS를 말하다>(불어라바람아, 2015). "저자 하영식이 시리아 북부 코바니에 머물면서 직접 만났던 쿠르드 민족과 예즈디 사람들의 삶을 통하여 IS를 말하고 있다. 왜 시리아에서 IS가 성했는지, 왜 쿠르드 민족은 IS와 맞서 싸우는지를 직접 만났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하여 담담하게, 때로는 열정적으로 말한다. 또한 이집트에서 만난 무슬림들의 삶을 통하여 IS를 지탱하는 이슬람 문화가 어떤 것인지 알려주고 있다."

 

올 한해도 세계를 테러의 공포로 몰아놓은 IS에 대해서는 많은 책이 나와 있지만 국내 저자가 직접 현지를 살펴보고 쓴 책이란 점에서 눈에 띈다. 'IS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과 더불어 경계심을 일깨워주는 것'이 책의 목적이라고. 저자의 다른 책으론 <얼음의 땅 뜨거운 기억>(레디앙, 2010), <남미 인권기행>(레디앙, 2009) 등이 있다. <얼음의 땅 뜨거운 기억>은 제목이 연상시켜주는 대로 시베리아 기행기다. '시베리아에 새겨진 자유와 혁명의 흔적들'이 부제. 시베리아에 안 가기 위해서, 이 책도 챙겨두어야겠다...

 

15.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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