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거꾸로 선 꿈의 세계 혹은 허망한 나라

14년 전에 올린 글이다. 진이정 시인의 유고시집에 대해 1994년에 쓴 걸 옮겨놓은 것이다. 가끔은 20대에 쓴 글도 다시 보게 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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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학기가 일단락되어 후련하다는 페이퍼를 쓰다가 지웠다. 방심한 탓인지 곧잘 불청객으로 찾아오는 결막염에 덜미를 잡혀서 핑계삼아 쉬는 중이다. 아침에 적으려던 페이퍼를 적는 것 정도로만 마무리하기로.

다른 게 아니라 도리스 레싱의 대표작 <금색 공책>(창비)이 새로 번역돼 나왔다. 탄생 100주년 기념판이라서 상기하게 되었는데 1919년생이다(지난 2013년 94세의 나이로 영면). 200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을 때 대표작으로 지목된 작품이어서 당시에도 품절상태였던 <황금노트북>(전3권)을 구했던 기억이 난다. 분량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강의에서 다루려고 했는데 절판된 책이라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에 레싱 강의에서는 <다섯째 아이>나 <풀잎은 노래한다> 등을 ‘대타‘로 읽었는데 아무래도 주저를 제쳐놓았다는 아쉬움은 남았다.















이전 번역본(두 종이 있었다) 제목에 따라 <황금노트북>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금색 노트>로 바뀌어 아직 어색한 느낌이 들지만 익숙해질 터이다(그래도 ‘공책‘이란 말은 정말 오랜만에 들어본다). 어떤 작품인가. ˝‘제2의 페미니즘 물결’이 본격적으로 도래하기 전인 1962년에 출간되었지만 레싱 스스로 “여성해방운동에 의해 비로소 탄생한 태도들이 이미 존재하는 것처럼 썼다”고 밝힌 페미니즘 문학의 경전이자 20세기 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이다.˝

앞서 케이트 쇼팽의 <각성>(1899) 새 번역본이 나왔다는 소식을 며칠 전에 다루었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금색 공책>의 출간도 환영할 일이다. 페미니즘 문학의 표준적인 저작들이 연이어 다시 나온 김에 내년에는 여성주의 문학 강의도 업그레이드 해서 진행해볼까 싶다. 레싱의 <마사퀘스트>(1952)는 봄학기 강의에서 읽을 예정인데 <금색 공책>을 연이어 읽어도 좋겠다.

올해 부커상 수상작가인 마거릿 애트우드는 <금색 공책>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20세기 작가들의 러시모어산(미국 초대 대통령 4인이 조각된 바위산)이 있다면, 도리스 레싱은 그곳에 새겨질 가장 확실한 인물이다. 성 격차의 견고한 성이 무너지고, 여성들이 늘어난 자유와 선택 그리고 그에 따라 늘어난 도전에 직면했을 때 도리스 레싱이라는 이름이 그 중심에 있었다. 20대 초반에 만난 <금색 공책>의 주인공 애나 울프는 내 눈을 뜨게 해주었다.˝

레싱의 책으로 이제 기대할 만한 것은 ‘마사 퀘스트‘ 시리즈다. 눈을 뜨고 있기가 불편해서 오늘은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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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한겨레에 실은 '언어의 경계에서' 꼭지를 옮겨놓는다. 플로베르의 마지막 작품이자 미완성 유작 <부바르와 페퀴셰>(1881)에 대해서 적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여러 면에서 대조되는 작품인데, 러시아문학사에 견주면 고골의 문학세계(가령 <죽흔 혼>)와 오히여 친화적이다. 작가적 세계관의 유사성이 작품의 유사성으로 이어지지 않나 싶다. 플로베르와 고골을 비교한 연구가 있는지 궁금하다... 

















한겨레(19. 11. 29) '두 천치'의 무용한 지적 여행


문학 강의에서 곧잘 프랑스문학과 러시아문학 간의 평행이론에 대해 언급한다. 프랑스 근대소설사의 출발점이 되는 작가 발자크와 러시아 국민문학의 아버지 푸시킨의 생년이 똑같이 1799년이라는 사실에 덧붙여 그 뒤를 잇는 플로베르와 도스토옙스키의 생년이 1821년으로 같다. 발자크와 플로베르의 관계를 푸시킨과 도스토옙스키의 관계와 비교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두 나라 문학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한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 정확히 동시대를 살았던 플로베르와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적 여정 역시도 당연히 대비해서 살펴볼 수 있다.













플로베르와 도스토옙스키는 똑같이 의사 아버지를 둔 차남이었고 간질 발작의 경험도 공유한다. 그렇지만 더 많은 대목에서 차이점을 보여주는데, 비밀 정치서클에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시베리아에서 10년 가까운 수감과 유형생활을 했던 도스토옙스키의 경험을 플로베르는 갖고 있지 않다. 또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플로베르와 달리 도스토옙스키는 두 차례의 결혼에서 네 자녀를 둔 가장이었다. 이러한 간단한 차이점만으로도 두 작가의 마지막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플로베르의 유작 <부바르와 페퀴셰>(1881)의 두 주인공이 독신인 데 반해서 도스토옙스키의 마지막 작품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1880)이 부친살해 사건을 다룬다는 점은 자연스러운 차이로 보인다. 물론 두 소설은 그 이상의 차이점을 갖는다.


가장 큰 차이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부바르와 페퀴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두 주인공을 포함하여 내면성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반면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는 주요 인물들은 물론이고 주변적인 인물들조차도 복잡한 내면성의 소유자로 등장한다. 무더운 어느날 길거리 벤치에서 만나 대번에 의기투합하여 친구가 되는 부바르와 페퀴셰만 하더라도 필경사라는 직업으로 어림할 수 있듯이 남다른 개성의 소유자로 보기는 어렵다. 마흔일곱의 동갑내기 필경사인 두 사람은 각자의 사무실에서 반복적이고 단조로운 일상을 살아왔다. 그렇다고 불행했던 건 아니고 그런대로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존심을 갖게 되면서부터 그들은 자신들의 직업에 굴욕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던 차 부바르가 뜻밖에 막대한 유산의 상속자가 되면서 두 사람은 그동안의 생활을 청산하고 시골로 내려가 새로운 인생을 기획한다. 그들은 굴욕에서 벗어나 진짜 삶을 살 수 있을까.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반복적인 모든 시도에서 실패만을 거듭한다. 가령 게걸스럽게 책을 읽고 농사를 지어보지만 결과는 이들의 기대를 벗어나기 일쑤다. 게다가 읽는 책마다 다른 주장을 내놓아서 둘은 낭패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순진하고도 끝없는 지적 호기심은 온갖 학문으로의 지식순례에 나서게 만든다. 화학과 해부학, 생리학, 위생학, 천문학, 동물학, 지질학에 문학과 연극, 미학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지식여행은 그렇지만 놀랍게도 어떠한 종착점에도 이르지 못한다. 부바르와 페퀴셰의 지적 편력은 다른 속물적인 부르주아들에 비하면 평가할 만하지만 궁극적으로 그들을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게 해주지는 않는다. 플로베르의 ‘두 천치’는 다만 지적인 천치가 될 뿐이다. 그들이 다시금 필경에 착수한다는 결말은 플로베르의 도저한 회의주의를 읽게끔 한다. “카라마조프 만세!”로 끝나는 도스토옙스키의 세계와는 너무도 다른 세계다.


19.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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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작가 커트 보니것의 두 작품을 강의에서 읽었다. <고양이 요람>과 <제5도살장>(문학동네). 보니것 자신이 대표작으로 평가한 작품들로 각각 히로시마 원폭 사건과 드레스덴 폭격 사건을 소재로 한다. 다수의 작품이 번역돼 있지만(짐작엔 하루키의 추천사가 한몫 했겠다), 두 편만 읽는다면 이들 작품을 골라야 하리라.

하지만 더 읽는다면? 에세이와 유고집도 나와 있기에 선택지는 넓은 편인데, 요즘 강의에서 다루고 있기도 해서 나로선 1950-60년대 작품들을 고르고 싶다. 장편으로는 데뷔작 <자동 피아노>(1952)부터 일단락이라고 할 <제5도살장>(1969)까지 6편이다(두 권의 단편집이 있다). 흔히 초기 3부작으로 불리는 세 작품과 <고양이 요람> 이후 세 작품. 순서대로는 이렇다.

<자동 피아노>(1952)
<타이탄의 미녀>(1959)
<마더 나이트>(1961)

<고양이 요람>(1963)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1965)
<제5도살장>(1969)

확인해보니 절판돼서 그렇지 <자동 피아노>와 <타이탄의 미녀>까지 모두 번역됐었다. 당장 읽을 수 있는 건 <마더 나이트>와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이고, 단편집도 포함하면 <몽키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1968)까지 세 권이다. 절판된 첫 두 작품까지 읽을지 그냥 <마더 나이트>왼 <로즈워터 씨>로 만족할지 선택해야 한다. 당장은 토머스 핀천으로 넘어가야 하기에 욕심을 버리고 <마더 나이트>와 <로즈워터 씨>나 찾아봐야 할까 싶다. 70년대 이후 보니것은 미래의 과제로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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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초 한겨레에 실은 연재를 뒤늦게 옮겨놓는다(당연히 옮겨놓은 줄 알았다). 스탕달의 <적과 흑>에 대해 적은 것이다.

















한겨레(19. 11. 01) ‘적‘과 ‘흑‘을 소망했던 흙수저 청년 이야기

근대문학은 청년의 문학이라는 것을 스탕달만큼 여실히 보여주는 작가도 없을 것이다. 거꾸로 말하는 것도 가능한데, 스탕달의 문학은 청년의 문학이어서 근대문학에 값하며 근대소설의 새로운 출발점이 된다. 스탕달의 청년 주인공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은 물론 <적과 흑>(1830)의 쥘리앵 소렐이다. 가난한 평민(목수)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형들의 구박이나 받던 처지였지만 쥘리앵은 라틴어 성경을 암송하는 뛰어난 지적 능력 덕분에 레날 시장댁의 가정교사가 된다. 근대란 그렇듯 각자의 능력이 타고난 신분의 제약에서 벗어나 인생역전의 기회를 갖게 해주는 시대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쥘리앵의 인생역전은 어디까지 가능했던가.















포괄적으로 ‘근대‘라고 적었지만 <적과 흑>의 시대적 배경은 프랑스의 왕정복고기다. 1789년 대혁명 이후 구체제가 붕괴되었지만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한 나폴레옹이 완전히 몰락한 이후에 프랑스는 다시금 성직자와 귀족이 지배하는 낡은 체제로 복귀한다. 혁명을 통해서 신분사회는 유동적인 계급사회로 탈바꿈했지만 이 유동성에도 제한이 가해진다. 능력이 기회를 갖게끔 해주지만 이 기회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지는 않는다. 쥘리앵이 그 대표적 사례다. 쥘리앵 소렐은 누구인가. 무엇보다도 그가 나폴레옹 숭배자라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코르시카의 한미한 가문 출신으로 포병 장교를 거처서 황제의 자리에까지 오른 나폴레옹은 신분상승을 꿈꾸는 당대 청년들에게 탁월한 롤모델이었다. 쥘리앵 역시 그런 나폴레옹을 꿈꾼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몰락과 함께 들어선 왕정복고체제는 더이상 그러한 꿈을 용인하려 들지 않는다. 소설의 제목 ‘적과 흑‘은 그런 상황에서의 선택지를 잘 압축하고 있다. 군복의 색인 ‘적‘이 군인으로서의 출세길을 상징한다면 사제복의 색인 ‘흑‘은 성직자로서의 출세길을 뜻한다. 이 두 가지 선택지 가운데 군대에서의 경력을 차단당한 쥘리앵에게는 오직 흑만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선택지가 된다. 성경 암송능력으로 교구신부의 추천을 받아 가정교사가 된 그는 마치 나폴레옹의 군사적 원정을 흉내내듯이 레날 부인의 유혹에 나선다. 그를 짝사랑한 하녀의 밀고로 부인과의 관계가 탄로나서 쫒겨나지만 다시금 파리의 대귀족 라 몰 후작의 비서가 됨으로써 재기의 기회를 잡는다. 쥘리앵은 이번에는 도도한 귀족처녀 마틸드에 대한 유혹에 나서며 아주 어렵게 성공을 거둔다. 그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 마틸드의 처지를 고려해 후작이 그에게 귀족 신분을 마련해준 것이다. 쥘리앵 소렐이 기사 라 베르네이로 재탄생하게 되는 과정이다.

사실 귀족으로 신분을 세탁하고 기병 중위가 되면서 쥘리앵의 인생역전 이야기는 일단락될 수도 있었다. 줠리앵 자신도 ˝내 소설은 끝났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소설은 레날 부인과의 관계를 폭로하는 투서가 후작에게 전달되자 격분한 쥘리앵이 고향에 내려가 레날 부인을 총으로 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스탕달은 단순한 신분상승의 결말 대신에 계급투쟁을 선언하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비극적 영웅의 결말을 선택한다. 살인 미수 혐의로 재판정에 선 쥘리앵은 자신의 진짜 범죄는 하층계급 출신이면서 감히 상류사회에 끼어들려고 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배심원석의 부르주아들에게 비굴하게 자비를 구하는 대신에 당당하게 죽음을 맞는다. 라 베르네이라는 귀족의 지위도 어렵사리 얻어낸 쥘리앵은 스스로를 ‘일개 농부‘로 지칭한다. 역설적으로 그런 행위를 통해서 쥘리앵은 진정 귀족다운 태도를 부르주아들 앞에서 과시한다. 덕분에 <적과 흑>은 신분상승담을 넘어서 계급투쟁의 교과서적인 작품으로 승격된다.


19.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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