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국제도서관의 ‘조지 오웰 다시 읽기‘ 강좌의 마지막 일정으로 명동예술극장에서 연극 ‘1984‘를 관람하고 뒤풀이 강의까지 가졌다. 이번주에 개정판으로 다시 나온 박홍규 교수의 <조지 오웰>(푸른들녘)도 겸사겸사 다시 읽었다. 초판보다 많이 증보된 거 아닌가 싶다(30여 쪽 늘어났다).

오웰은 <1984>를 1946년 8월부터 집필하기 시작해서 이듬해 10월에 초고를 완성하는데, 초고의 제목은 ‘유럽 최후의 남자‘였다. 물론 주인고 윈스턴 스미스를 가리키는 제목이다. 제목이 바뀌는 건 1948년 7월에 제2고를 쓰면서부터인데 이 원고를 11월에 완성하고 무리하게 스스로 타이핑해서 12월에 출판사로 넘긴다. 제목이 ‘유럽 최후의 남자‘로 남았다면 우리의 독후감도 사뭇 달라졌겠다.

오웰이 <1984>를 집필한 곳은 스코틀랜드 서쪽 해안 끝자락에 있는 주라 섬이다. 그곳 반힐의 저택에서 초고와 2고를 모두 쓰기에 ‘오웰 문학기행‘을 간다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당장은 상상의 문학기행이다). 얼마전에 찾아본 저택 사진이 박홍규 교수에 책에도 실려 있기에 나도 옮겨 놓는다. ‘유럽 최후의 남자‘가 탄생한 곳이다(‘The Last Man in Europe‘는 ‘유럽 최후의 인간‘으로도 번역된다. 작품에서는 후자의 뉘앙스다).

˝<1984>는 영국과 미국에서 1948년 6월에 거의 동시에 간행되었다˝고 박홍규 교수는 적고 있는데 착오이다. 책은 1949년 6월에 출간되었다. 그해 가을에 건강이 악화된 오웰은 10월 13일 소냐 브라우넬(소냐 오웰이 된다)과 결혼한다. 두번째 결혼이었고 두 사람은 15살 차이였다. 소냐가 중요한 것은 <1984>의 여주인공 줄리아의 모델로 알려지기 때문이다.

오웰은 그로부터 석달 뒤인(박홍규 교수는 ˝두 달 뒤˝라고 잘못 적었다) 1950년 1월 21일 숨을 거둔다(박홍규 교수의 책에는 묘비명을 옮기며 ˝1950년 1월 25일 죽다˝로 날짜를 잘못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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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어제 읽은 시집. 한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서 예비식량처럼 한권 더 챙겨간 시집이 최지인의 첫 시집 <나는 벽에 붙어 잤다>(민음사)다(두 권의 첫 시집을 읽었군). 임솔아의 시집처럼 내가 읽을 수 있는 시와 읽을 수 없는 시로 금세 나뉘었다.

요즘 시집들을 읽으며 느끼는 것인데 보통은 앞부분에 실린 시들이 괜찮고 뒤로 갈수록 좀 부실해진다. 첫 시집의 경우에는 습작기 작품들이 들어가서 그렇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대표시는 대개 표제시인 경우가 많다. 시인이나 편집자도 내세울 만한 시가 뭔지는 아는 것이다.

최지인의 경우도 그런데(이름만으론 여자인 줄 알았다) ‘나는 벽에 붙어 잤다‘란 제목은 ‘비정규‘란 제목에서 가져왔고 이 시집은 이 한 편으로 구제받은 느낌이다. 이 시를 시집에 실린 시들 가운데 나중에 쓴 것이라면 시인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고 먼저 쓴 것이라면 답보중이라는 뜻도 된다. 나머지 상당수의 시들은 ‘연습‘으로 읽힌다.

아버지와 둘이 살았다
잠잘 때 조금만 움직이면
아버지 살이 닿았다
나는 벽에 붙어 잤다

아버지가 출근하니 물으시면
늘 오늘도 늦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골목을 쏘다니는 내내
뒤를 돌아봤다

아버지는 가양동 현장에서 일하셨다
오함마로 벽을 부수는 일 따위를 하셨다
세상에는 벽이 많았고
아버지는 쉴 틈이 없었다

아버지께 당신의 귀가 시간을 여쭤본 이유는
날이 추워진 탓이었다 골목은
언젠가 막다른 길로 이어졌고
나는 아버지보다 늦어야 했으니까

아버지는 내가 얼마나 버는지 궁금해하셨다

배를 곯다 집에 들어가면
현관문을 보며 밥을 먹었다
어쩐 일이니 라고 물으시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외근이라고 말씀드리면 믿으실까
거짓말이 아니니까 나는 체하지 않도록
누런 밥알을 오래 씹었다

그리고 저녁이 될 때까지 계속 걸었다

‘비정규‘의 전문이다. 다 적을 만하니까 다 적은 것이다. 비정규 청년(사실은 비정규직도 아닌 청년)의 일상과 속내가 이보다 선명하게, 그리고 압축적으로 드러난 시도 없을 것이다. 최지인의 시를 떠받치는 건 이 시에서 묘사된 경험과 정서다. 이 핵심이 얼만큼 들어가 있느냐는 배합비율에 따라서 시의 농도(질)가 결정된다. ‘비정규‘가 대표시인 것은 가장 높은 순도를 자랑하기 때문이고 다른 시들이 이에 못 미치는 것은 물을 많이 탔기 때문이다(비정규가 아니라 시인 흉내를 낼 때 그의 시는 묽어진다).

가령 궁색한 신혼살림을 묘사한 ‘개와 돼지의 시간‘의 마지막 연은 이렇다.

좁은 화장실에서 우리
깨끗이 목욕하고
밥을 먹고
밥을 먹고
잤다
아무도 구할 수 없었지만

아무도 구하지 뭇한, 아니 시로서 자기 건사도 하지 못한 시들이 시집에는 널려 있다. 가장의 열패감을 노래한 ‘언더독‘에서도 안쓰러운 장면은 반복된다.

내심 내가 사라졌으면 했다
우리 서로 아프게 하고

테이블에 남은 술과 얼음
옆방에선
누군가 스스로 목을

그런
삶들
피붙이들

이 정도면 시의 소실점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정서는 있지만 시는 그것이 ‘표현‘되어야 한다. ‘비정규‘에서 ‘잘 표현된 불행‘(황현산)을 읽을 수 있었다면 나는 다른 시들에서는 그러지 못했다(예컨대 ‘가양동 현장‘과 ‘오함마‘가 다른 시들에는 빠져있다). 내 탓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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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일정이 아직 남아 있기는 하지만 한주간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난 뒤의 피로와 방심 속에서 ‘이주의 발견‘을 고른다. 레이첼 코벳의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뮤진트리).

제목에서 릴케를 떠올렸다면 시를 좀 읽은 축에 속한다(릴케의 시 ‘표범‘에 나오는 구절이다). 책은 릴케와 로댕의 삶을 같이 다른 일종의 듀오그라피이고, ‘릴케의 로댕, 그 절대성과 상실에 관하여‘가 부제다.

˝이 책은 육십대의 합리적 프랑스인 로댕과 이십대의 낭만파 독일인 릴케. 두 사람의 삶이 얼마나 긴밀하게 얽혀 있었고, 한 사람의 예술적 진전이 어떻게 상대방의 것을 따라갔는지, 너무나 대조적인 두 성향이 어떻게 상호보완적으로 이어졌는지를 기록한 다층적이고 서정적인 탐구서이다.˝

릴케의 로댕론을 기본 자료로 해서 따라가볼 만하다. 10월이 다 지나갔으니 어렵겠지만 11월에는 겨울이 오기 전에, 아주 오랜만에 릴케도 좀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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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올라오는 길에 시와 소설을 같이 쓰는 임솔아의 첫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문학과지성사)을 읽었다. 보통 시집은 최고의 시 한편만 고른다는 기분으로 읽는데, 그러면 밑지지 않으면서 빨리 읽게 되는 이점이 있다. 이 시집에서는 ‘모래‘가 그 한 편이다.

제목대로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이 나오는 시도 들어 있기는 하지만(그들은 ‘예보‘라는 시에 나온다), 내 마음을 끈 것은 ˝오늘은 내가 수두룩했다˝로 시작해서 ˝오늘은 내가 무수했다˝로 마무리되는 시이다.

오늘은 내가 무수했다.
나를 모래처럼 수북하게 쌓아두고 끝까지 세어보았다.
혼자가 아니라는 말은 얼마나 오래 혼자였던 것일까.

시의 마지막 연인데 말장난에다 정서를 얹는 스킬이 이 시인의 장기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런 장기가 제대로 발휘된 시는 많지 않다. ‘모래‘는 표본이 아니라 예외에 가까운 시이다. 처음 세 연을 읽어 본다.

오늘은 내가 수두룩했다.
스팸 메일을 끝까지 읽었다.

난간 아래 악착같이 매달려 있는
물방울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떨어지라고 응원해주었다.

내가 키우는 담쟁이에 몇 개의 입이 있는지
처음으로 세어보았다. 담쟁이를 따라 숫자가 뒤엉켰고 나는
속고 있는 것만 같았다.

기본적으로는 언어유희적 착상에 의해 이끌어지는 시이지만 어떤 정서를 건드린다(주로 동사들이 그런 환기력을 갖는다). 시의 각 연은 모래알처럼 별다른 연관 없이, 끈끈함 없이 나열돼 있는데, 보통은 흠이 되지만 이 시는 제목이 ‘모래‘이기에 그 또한 효과적인 전략으로 간주할 수 있다. 5연에 가서, ˝깁스에 적어주는 낙서들처럼/ 아픔은 문장에게 인기가 좋았다˝는 또 얼마나 재치 있는 진술인가.

그런가 하면 너무 나이브해서 당혹스런 구절도 만나게 된다. ‘아름다움‘이란 시의 한 연이다.

이곳을 떠나본 자들은
지구가 아름다운 별이라 말했다지만
이곳에서만 살아본 나는
지옥이 여기라는 걸 증명하고 싶다.

시집 전체에서도, 그리고 ‘아름다움‘이란 시에서도 맥락을 찾기 어려운 돌발적인 진술이다. ‘포즈‘로서도 점수를 주기 어렵다.

기린이 보고 싶어서
기린을 보러 간다

기린은 보지 못하고
기린을 만든다

(...)

기린에 기린이 없어서
지구에 지구가 없어서
사람에 사람이 없어서
좋다

(...)

세계가 세계로부터 헛걸음을 한다
나는 나를 모형들과 함께 세워둔다 (‘모형‘)

전문을 다 적지는 않았지만 다 적더라도 별로 나아지지 않는 시다. 이렇게 ‘헛걸음‘ 하도록 만드는 ‘시‘까지도 시집에 포함하게 되면 시인의 역량뿐 아니라 저의까지도 의심하게 된다(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시집에는 그 흔한 해설도 붙어 있지 않은데 혹 그런 이유에서인가란 생각도 들었다.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로서 ‘모래‘와 괴괴한 시들의 차이를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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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전반기의 다재다능했던 작가로 시, 소설, 희곡 모든 장르에 걸쳐 작품을 남긴 알프레드 드 뮈세의 대표 소설 <세기아의 고백>이 새 번역본으로 나왔다. 작년에 나온 것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판이고 이번에 나온 건 한국문화사의 학술명저번역총서판이다. 같은 작품의 번역본이건만 책값은 (양장본을 기준으로 해도) 두 배 이상 차이가 나서 과연 번역도 그만한 차이에 값하는지 궁금하다.

찾아보니 뮈세의 작품은 <세기아의 고백> 외에도 시선집과 희곡집이 더 나와 있다. 희곡 가운데서는 <마리안의 변덕>(연극과인간)이 눈에 띄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20세기 프랑스 희곡선‘ 시리즈에 들어가 있다. 역자는 <세기아의 고백>(한국문화사)을 옮긴 김도훈 교수로 뮈세 전공자다.

언젠가 적었는데 뮈세에 대한 관심은 레르몬토프의 <우리시대의 영웅>에 기인한다. 레르몬토프가 영향을 받은 작품 가운데 하나여서다. 기회가 닿으면 두 소설을 비교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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