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한국인을 바라보는 책 두 권이 최근에 나왔다. 22명의 한국인이 쓴 <한국학의 즐거움>(휴머니스트, 2011)과 벽안의 한국학자가 쓴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노마드북스, 2011)가 그것이다. 전자는 구입했고 후자는 주문을 넣을 참인데, 소개기사도 찾아서 미리 스크랩해놓는다.   

서울신문(11. 09. 17)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 펴낸 이만열 교수

이 땅에는 많은 이방인들이 부대끼며 살고 있다. 생활 자체를 해결하기 위한 이주민이며, 종교적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종교인, 학문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매진하는 학자 등 그 삶의 양식도 다양하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문학의 부활과 교육의 개혁이라고 외치는 이방인이 있다. 이만열 (47·미국명 이매뉴얼 페스트라이시)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최근 낸 책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노마드북스 펴냄)에서도 그의 지론은 또렷이 드러난다



책의 부제는 ‘하버드 박사의 한국 표류기’. 부제 그대로 예일대와 타이완국립대, 도쿄대, 서울대에서 한·중·일 3국의 고전문학을 공부하고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가 한국의 대학 교수로 살면서 느끼고 체험한 것들을 풀어낸, 일종의 한국 사회 비평서다. 그중에서도 교육과 인문학 부분에서 한국과 한국인을 겨냥한 비판과 개선에 대한 주문이 매섭다. 서울신문사 편집국에서 만난 그의 일성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국인들은 분명히 중국, 일본과는 다른 친화의 사교력을 갖고 있어요. 큰 장점이지요. 미국, 유럽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K팝을 비롯한 한류가 급속하고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 현상도 그 연장 선상에 있다고 봅니다.” 한류뿐만 아니라 한국의 문화와 과학 기술은 구석구석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지만 정작 한국인들은 그 우수성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아 아쉽다고 한다. “한국은 전쟁 후 압축성장을 통해 기적과도 같은 지금의 모습과 역량을 일궜지만 인문학적 교육을 소홀히 해 삶의 질과 정신적 가치를 상실했습니다.” 외형의 성장에 매몰된 내적 가치의 소멸은 성장의 크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손실이란 주장이다.

숭산 스님에게 감화돼 한국 선불교에 귀의해 지금은 독일에서 선원을 이끌고 있는 현각 스님과는 예일대 동기. 하버드대에서 공부한 뒤 한국 문화에 깊숙이 빠져들었다는 점도 두 사람이 갖는 공통점이다. “현각 스님은 한국 불교에 빠졌고, 나는 한국 유교에 젖어 살고 있는 셈이지요. 한국과 한국 문화가 좋아 살고 있는 점은 같지만 한국의 지식인으로 살고 싶다는 점은 현각과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지요.”

한국인 부인과 결혼해 낳은 1남 1녀도 모두 국제학교가 아닌 한국 학교에 보내고 있다. “이제 한국은 더 이상 아시아의 변방이 아닙니다. 지구촌 곳곳의 사람들이 한국에서 살기 위해, 한국을 배우기 위해 몰려들고 있습니다. ‘다문화 사회’는 멀리 있는 명제가 아니라 당장 부대끼고 해결해야 할 현실의 문제입니다. 한국인들도 더 멀리 보고 세상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아량과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의 ‘한’은 크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더 큰 나라가 돼야지요.” 그런 점에서 한국의 교육은 큰 문제라고 거듭 말한다.

연암 박지원의 소설 10편을 영어로 번역했고 하버드대 박사학위의 주제도 ‘중국의 통속소설이 한국과 일본에 미친 영향’이었다. 한국 문화는 고전, 현대를 가리지 않는 모든 영역에서 뛰어나지만 정작 한국인들은 그 가치를 잘 모르고, 외국에 알리려 들지도 않는 점이 항상 아쉽단다. “뜨거운 음식을 먹고도 ‘시원하다’는 표현을 쓰고, 친구를 ‘웬수’라 부르는 반어법은 한국 문화의 유연함과 풍요로움을 엿볼 수 있는 큰 단초이지요.” 미래의 학문과 관심 영역이 지금과는 사뭇 다를 것이라는 이 교수. 시대에 머물지 않는 세상의 순환 원리며 통찰력을 키울 수 있는 인문학이야말로 한국의 찬란한 자산과 문화유산을 새롭게 부활시킬 지렛대라고 말한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지요.” (김성호 편집위원)   

한국일보(11. 09. 10) 알면 알수록 빠져드는 한국인, 한국문화…

어제 회식에서는 삼겹살과 소주로 허기진 배를 달래고도 남았지만, 아니다 다를까 된장찌개에 공기밥 없이 자리는 끝나지 않았다. 추석 차례상을 물리고 한 상 차린 음식 다 먹고 난 뒤에도 역시 나물 반찬에 밥 한 술 뜨지 않으면 한 끼 못 먹은 게 된다. 이웃 중국이나 일본도 밥을 귀하게 여기는 문화이지만, 그네들은 쌀이 아닌 밀이나 메밀로 만든 면도 아주 즐긴다. 한국인에게 밥은, 특히 새하얀 쌀밥은 말 그대로 은유적 의미 하나 안 보태 '생명'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듯하다.

<한국학의 즐거움>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이 책은 우리 문화 속에 자리잡은 한국적인 것에 대한 전문가들의 22가지 스케치를 담고 있다. 한국만의 독특함이라고 해도 좋고 한국인의 생활에 깊게 뿌리 박은 사고방식, 행태라고 해도 좋을 것들에 대한 소묘다. 철학이나 종교, 마음, 사랑을 주제로 풀어놓은 글이 있는가 하면 음식, 건축, 미술 이야기가 있고 과학, 의학, 경제, 역사도 다룬다. '한류'의 본령이라 할 한국 드라마, 영화가 지닌 정체성을 탐구한 글도 있다.

밥 이야기를 좀더 해 보자. 민속학자인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쓴 '한국의 음식'이라는 글에는 1890년대 주막에서 개다리소반을 받아 식사하는 도포와 갓 차림의 남자 사진이 등장한다. 밥상 위에는 밥그릇, 국그릇과 김치 보시기, 간장종지, 장아찌, 나물, 콩자반 등을 담은 접시 등 모두 8개의 그릇이 놓여 있다. 인상적인 것은 밥그릇, 국그릇의 크기다. 밥그릇은 높이가 9㎝, 입의 지름이 거의 13㎝ 정도 되고 거기에 밥을 가득 담았다. 요즘 세 끼 분량쯤 된다. 국그릇은 더 크다. 주 교수에 따르면 임진왜란 피난기인 <쇄미록>에는 전쟁통인데도 불구하고 '한 끼'에 7홉(420g)의 쌀로 밥을 지어먹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조선 사람들이 대식가였다는 것은 선교사 등 외국인의 기록에도 제법 등장한다.

주 교수는 이를 '조선 사회가 절대 빈곤의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먹을 것이 생기면 물불 가리지 않고 먹었'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정확한 이유를 알기는 힘들지만 조선 사람들은, 늘 먹을 게 모자라 소식(小食) 문화를 정착시킨 에도(江戶) 시대 일본인과는 반대의 길을 걸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한국 종교는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만큼이나 많은 문제를 갖고 있'다는 쓴 소리로 시작하는 종교학자 최준식 이화여대 교수의 글도 읽어 볼만하다. '한국 종교는 망해야 산다'고 줄곧 이야기 해온 최 교수이지만 이 글에서는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종교의 순기능과 거기서 느끼는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한국이 종교 면에서 정말 특이한 것은 '공간적으로 동서양의 대표 종교가 다 들어와 비슷한 세력으로 각축하고 있고 시간적으로 고대 종교와 현대 종교가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설명한다. 석가탄신일과 성탄절을 다같이 공휴일로 지정한 나라가 없다는 거다.

한류 열풍의 주역인 드라마, 영화도 물론 한국적인 것을 탐구하는 '한국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이영미씨는 '안 봐도 줄거리가 뻔하다'는, 그러면 당연히 재미가 없어야 할 한국 드라마가 지닌 매력의 정체를 맛을 잘 몰랐는데 어느 순간 톡 쏘아서 눈물 쏙 빼고 정신 못 차리게 하는 '청양고추'의 맛에 비유했다. 뼈대는 엉성하지만 '거기에 붙어 있는 살들이 매우 맛깔스럽고 풍부하며 매력적'이어서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은 '이성적으로 쉽게 분석되는 뼈대의 취약성에 불만을 터뜨리면서도 각 부분이 선사하는 여러 풍부한 매력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작품을 계속 재미있게 보게 되는 것'이다.

백석의 시를 통해 한국인의 마음 근저에 자리잡은 한(恨)의 정체를 더듬거나(시인 장석주), 근대화 이후 주류가 된 일국사 중심의 역사서술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문명교류사의 관점에서 한국사를 보자(김기봉 경기대 교수)는 문제제기도 있다. 광복 이후 한국식 경제 성장의 특징을 요약해, 공정한 경쟁을 통한 성공이라는 믿음과 그에 대한 분노라고 해석하는 류동민 충남대 교수는 지금 한국 경제는 그 같은 믿음과 분노의 상호작용으로 또 다른 갈림길에 서있다고 지적했다.

'한국학'이라는 학술적인 용어로 포장하긴 했지만 이 책이 앞으로 한국학 논의를 위해 무슨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각각의 글은 비슷한 체제를 따랐다기보다 그냥 필자들의 단상 같은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읽을수록 재미가 난다. '한국인 당신은 누구입니까'에 대한 작은 대답을 이 책이 선사하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김범수기자) 

11. 0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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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주말 북리뷰를 훑어봤는데, 모르는 새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관심도서는 이미 구입했거나 장바구니에 들어가 있으니 일은 덜었다. 그래도 주말기분을 낼 수 없으니 좀 아쉽다. 대신에 오랫동안 미뤄둔 책들이나 주문을 넣었다(루카치의 미학 같은 책). 이주의 이슈도서는 석유고갈 시대를 다룬 <장기비상시대>(갈라파고스, 2011)다. 이 역시 장바구니에 들어가 있는데, 기회가 되면 석유 문제를 다룬 책들과 엮어서 읽어보려고 한다.  

  

한겨레(11. 09. 17) 석유 고갈 시대 그린 ‘21세기판 신곡 지옥편’

미국인 지은이의 이름을 보지 않고 책을 펼쳤다면 한국 웹사이트 토론방의 논객이 쓴 것으로 착각할 만한 책이다. 석유 문제를 꾸준히 주목해온 사회비평가인 제임스 하워드 컨스틀러의 책 <장기비상시대>는 신랄하고 통쾌하고 그리고 음울하게 석유 고갈 이후의 시대를 조망한다. 자기네 정권을 보호하기 위해 속으로는 강한 이스라엘을 원하는 아랍 나라들, 이를 묵인하는 미국 정부의 정책을 ‘가면놀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물론 에너지를 펑펑 쓰는 미국 시민들에 대해서도 ‘합의된 집단 최면상태’라고 직격탄을 날린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유머 감각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석유 없는 세상’을 뜻하는 제목 <장기비상시대>에 ‘장기’란 말이 붙은 것은 그 어떤 대체에너지도 석유를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원자력, 태양력, 풍력은 사실상 석유에너지로 만들어진 핵연료나 전지 등을 사용하는 석유에너지의 연장선인 탓이다.

석유는 지구가 만들어낸 거의 완벽한 고효율 에너지다. 방수재료 정도로만 쓰이던 석유가 1850년부터 본격적으로 연료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대전환을 맞았다. 석유에 힘입어 각종 산업이 막대한 부를 만들어내면서 19세기 중반 10억명이던 지구 인구는 200년도 못되어 70억명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인간에게 자신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생명체이며 과학기술은 한계가 없다는 오만한 생각에까지 이르게 됐다고 지은이는 통박한다. 그리고 석유가 빠르게 고갈되고 있는 지금도 정치인들은 물론 모든 사람들이 ‘뭐 어떻게 되겠지’라는 무책임한 기대감에 취해있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책은 석유가 가져다준 환상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또 정치·경제적 관점으로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1차, 2차 세계대전은 석유 때문에 시작된 전쟁이며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왜 경찰국가를 자처하며 이라크를 침공했는지를 시대순으로 조명한다. 또 석유가 가져온 이 풍요의 시대가 지금 어떻게 종말을 향해 달리고 있는지 국제경제, 지역경제, 환경, 보건 등의 관점으로도 살펴본다. 특히 석유 잔존량의 60%가 매장돼 있는 중동 국가와 미국의 유착에 대한 입체적인 분석은 국제 역학관계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기자 출신답게 풍부한 예시를 보여주며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끌고 간다. 



지은이는 석유시대 이후 세상인 장기비상시대가 이미 진행중이라고 말한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가와르 유전은 시추량의 80%가 바닷물인 상황이고, 영국의 북해 유전은 2005년 생산량이 전년에 비해 50%나 줄어드는 등 석유 고갈의 징조들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장기비상시대는 인류사에 유례가 없는 대혼란을 야기할 것이며, 인류가 앞서 겪었던 세계대전이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은 석유를 둘러싼 미래 전쟁에 견주면 축구경기 수준일 정도로 심각하다고 강조한다. 석유가 예상보다 빨리 고갈될 경우, 가스와 전기가 끊긴 고층 건물들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고, 자동차 의존도가 높은 도시 주변의 타운하우스들은 빈민가가 되며, 제조업이 붕괴되면서 많은 이들이 농업에 다시 종사하는 신봉건시대가 도래할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2005년 이 책이 나왔을 때 미국 언론들은 ‘21세기판 단테의 <신곡> 지옥편’이라고 평하기도 했다.(권은중 기자) 

11. 09. 17. 

 

P.S. 석유 고갈 혹은 종말 문제를 다룬 책들을 골랐다. 조금 더 가벼운 분량으로 다룬 책들도 몇 권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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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교사로 산다는 것>(양철북, 2011)이어서 교사들을 위한 책인 줄 알았는데, 저자 조너선 코졸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책은 12년 내내 아이들을 학교에 맡겨야 하는 학부모와 교사를 위해 집필되었다." 그러니 '학부모'도 읽을 책이고, 비록 미국의 차별적인 교육과 사회적 불평들을 고발하는 내용이지만(저자는 그러한 고발과 비판에 주력해온 교육자이자 지식인이다) 우리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면 경청해볼 만하다. '학교교육의 진실과 불복종 교육'이 부제. '교육계의 촘스키'로도 불리는 코졸의 책으론 <젊은 교사에게 보내는 편지>(문예출판사, 2008)과 <야만적 불평등>(문예출판사, 2010)이 더 소개돼 있다... 

 

경향신문(11. 09. 03) 정의 향한 비판정신 아이들이 갖도록 교사들이 도와줘라  

하버드대와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전도 유망한 백인 청년이 있었다. 그는 미국 사회에서 지배 엘리트의 삶을 보장받았지만, 흑인들이 사는 빈민 지역인 보스턴 록스베리의 한 공립초등학교 교사로 1965년에 지원했다. 학교는 열악했다. 교실은 부족했고 4학년 아이들의 학업 수준은 1·2학년 수준에 머물렀다. 교사에게 맞아 손가락이 뒤틀린 아이는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사회에 대한 적개심으로 마음의 문을 꼭꼭 닫아버린 아이들이 즐비했다. 신참 교사는 아이들의 다친 마음을 어루만졌다. 규칙과 명령으로 도배된 게시판의 자료를 뜯어냈고, 사회교과서를 교실에서 치워버렸다. 그 자리에 호안 미로와 파울 클레의 그림을 걸었고, 슈만과 라벨의 음악을 아이들에게 들려줬다. 결국 그는 쫓겨났다. 인종차별에 저항했던 흑인 시인 랭스턴 휴즈의 시를 아이들에게 읽어줬던 그 다음날, ‘교과 과정 불이행’이라는 죄목이었다.

누구인가? 미국의 가난한 아이들과 평생을 함께 살아온 교육운동가 조너선 코졸(75)이다. 그는 첫 부임지에서 쫓겨난 지 20년 만에 빈민가의 공립학교로 다시 돌아왔다. 학교는 여전히 인종 분리와 빈곤 문제를 겪고 있었다. 코졸은 교실 현장에서, 또 숱한 저작들을 통해 미국 교육정책 속에 도사린 신보수주의 이데올로기와 투쟁했다. 그중에서도 <젊은 교사에게 보내는 편지>와 <야만적 불평등>은 국내에도 번역돼 많은 교사들에게 적잖은 감동을 안겼다.

 

<교사로 산다는 것>은 1981년 미국에서 첫 출간됐다가 2009년 개정판으로 다시 선보인 책이다. 국내에 이미 소개된 두 종의 저서보다 먼저 쓰였지만, 한국 독자들에게는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올 내용이 많다. 모두 15개의 항목으로 이뤄졌다. 그 하나하나가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곱씹어볼 만한 것들이다.

코졸은 가장 먼저 교사들에게 “아이들이 정의를 향한 비판정신과 권위에 복종하지 않는 자유로운 생각을 갖도록 도와주라”고 권한다. 그는 ‘선생님은 ~라고 생각해’라고 말하지 말고, ‘나는 ~라고 생각해’ 혹은 ‘나는 ~를 느껴’라고 말하라고 강조한다. 명령에 복종하거나 이미 주어진 정답을 되뇌는 교사가 되지 말고, “주체적으로 사고하는 본보기”가 되어라는 의미에서다. 또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아’라는 점잖고 교양있는 말은 “말썽부리지 않는 순종적인 인간을 길러내기 위한 관행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극단도 극단 나름이고, 극단적으로 나쁜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조치도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책의 곳곳에서 교사들에게 싸움의 깃발을 쥐여주는 코졸이 특히 공들이는 대목은 ‘잘리지 않고 싸우는 법’이다. 노련한 전략가인 그는 “체제가 좋아하는 것을 받아들이라”고 조언한다. 예컨대 흑인해방 운동가 말콤X보다는 교과서가 더 좋아하는 마틴 루터 킹을 거론하라는 것이다. 다만, 교과서에 나와 있는 것처럼 백인 친화적이고 인내심 많은 인물로서가 아니라 극단적인 주장을 옹호하다가 구속되기도 했던 진면목을 가르치라는 것이다. 교과서가 숭배하는 헬렌 켈러를 가르칠 때에도 “교과서가 이상하게 왜곡시켜놓은 것”을 그대로 따르지 말고, “헬렌 켈러가 가난한 이들을 위해 투쟁했던 것을 가르치고, 교실에 붙어 있는 헬렌 켈러의 사진 밑에 그가 했던 ‘우리 국민은 자유롭지 못하다’를 써 붙여놓으라”고 권한다.

열정으로 가득한 책에는 가슴을 파고드는 인상적인 문장들이 적지 않다. 그중 이런 것도 있다. “학생의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 수업은 공책에 필기한 내용도 아니고, 교과서에 인쇄된 궁색한 문장도 아니다. 그것은 수업하는 내내 교사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메시지다.” (문학수 선임기자) 

11. 09. 14.  

P.S. 책의 해제는 이계삼 교사가 쓰고 있는데, 그의 교단 에세이들에도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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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울비의 알림
    from seoulrain's me2day 2011-09-15 02:28 
    [책]교사로 산다는 것 — 조나단 코졸의 책 등. (via 로쟈)
 
 
2011-09-15 1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17 0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18 2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명절 연휴가 시작된다고는 하지만 밀린 원고 더미와 씨름해야 하는 처지에선 휴일도 달갑지 않다. 차라리 '휴일은 없다!'고 말하고 싶다. 당장 읽을 책은 아니지만, 이번주에 구입한 도서목록에는 미국의 대한 환상에서 께어나라고 일갈하는 책 두 권도 포함돼 있다. 김광기의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동아시아, 2011)와 크리스 헤지스의 <미국의 굴욕>(아름드리미디어, 2011)이 그것이다. 서평기사를 찾아 스크랩해놓는다. '짝퉁 미국'인 나라의 미래는 좀 다를지 생각해봐야겠다...  

경향신문(11. 09. 10) "미국 위기 본질은 승자독식에 의한 신뢰의 위기”

미국 전역에서 도로를 파헤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쉽게 닳는 아스팔트 대신 비용이 적게 드는 자갈을 깔기 위함이다. 재정압박 때문에 낡은 도로를 방치하는 주 정부도 허다하다. 미국의 한 교수는 이를 다루는 세미나를 개최하면서 ‘석기시대로의 귀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석기시대’는 곳곳에서 관찰된다. 뉴욕과 시카고 같은 대도시를 포함해 미국 전역에서는 ‘집에서 닭 키우기’가 유행이다. 경기침체로 주식인 육류를 사서 섭취하기가 어렵게 되자 직접 병아리를 사서 키워 닭고기와 계란을 먹으려 한다는 것이다.

김광기 경북대 교수(48)가 최근 펴낸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동아시아)에서 보여주는 미국의 모습은 생경하다. ‘치부’를 애써 들춰냈다기보다 일상 그 자체가 치부가 돼 버린 미국인들에 대한 세밀화다.

김 교수는 지난 7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 또한 1990년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을 때는 미국을 ‘하나의 전범’으로 생각했다고 했다. “2008년 안식년을 미국에서 보내면서 ‘콩깍지’가 벗겨졌습니다. 미국은 그 전에 알고 있던 것과 완전히 변했다는 것을 느꼈어요.”

물론 2007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몰락’을 말하는 것은 새롭지 않다. 사회학자로서 김 교수가 집중한 것은 경제위기의 통계적·수치적 측면이 아니라 미국 사람들의 ‘일상 생활’에 드러난 쇠퇴의 조짐들이다. 그는 작은 풍경들을 포착해 “고구마 줄기를 뽑아내듯” 그 속내를 읽는 데 집중했다.

2010년 8월 조지아주 애틀랜타 인근의 이스트포인트에서 공공임대주택 신청서를 배부하는 날 3만명의 시민이 몰렸다. 인구가 4만여명인 이 작은 도시에서는 이날 혼잡으로 62명이 다쳤다. 경제위기로 미국에서 2010년 한 해에만 집을 압류당한 사람들이 105만명에 이르면서 유일한 희망으로 공공주택이 떠오른 때문이다. 노숙자 수가 불어나 관리비용이 증가하자 비행기를 태워 다른 주로 보내는 주 정부도 있었다. 

책에서 미국의 음울한 풍경은 계속 이어진다. 1972년 이래 처음으로 미국의 수감자가 줄었지만, 범죄가 줄어든 게 아니라 교정비용을 줄이기 위해 재소자들을 조기석방한 때문이었다. 주 경찰들은 공용 신용카드를 주유소에서 받아주지 않는 탓에 연료를 넣지 못해 순찰을 돌지 못한다. 공공학교들은 학생 수 탓이 아니라 운영할 돈이 없어 문을 닫고 있다.

김 교수는 미국의 위기가 단순히 경제적 위기가 아니라고 말한다. 사회적 ‘신뢰의 위기’라는 것이다. “미국에 머물면서 아파트 잔디밭에서 아이들을 놀게 할 수가 없었어요. 온통 개가 쏟아낸 배설물들이 널려 있었죠. 처음 유학왔을 때만 해도 그런 일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뉴햄프셔주에서 개똥이 너무 많으니 유전자를 검사해서 추적하자는 얘기도 나왔다고 해요.” 금융위기를 불러온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자체도 상환을 생각하지 않는 무분별한 대출, ‘가불 문화’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추천서’ 한 장이면 모든 것을 신뢰하던 미국의 분위기도 사라졌다. 미국의 어느 중학교에서는 재정 확충을 위해 학생들이 20달러의 초콜릿을 사면 점수를 올려주겠다고 해 논란을 빚었다. ‘신뢰의 위기’는 고위층부터 일반인들에게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금융위기를 불러온 자들은 회전문인사를 통해 다시 정·재계에 진출하고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고의로 차를 버리거나 불을 지른 뒤 보험금을 청구하고, 렌터카에 기름 대신 물을 채워 반납하기도 한다.

이 신뢰의 위기는 결국 상위 10% 사람들이 미국 전체 수입의 절반을 가져가는 ‘승자독식’ 때문이라는 것이 김 교수의 생각이다. 앞의 얘기로 돌아가면 요즘 미국인들이 총과 닭, 씨앗을 사려고 안달인 까닭은 ‘나 외에 타인의 도움은 없다’는 절박한 인식 때문이다. “건국이념으로 내놓은 자유와 평등, 인권과 정의라는 것들은 어느새 사라졌습니다. 우리도 언제까지나 맹목적으로 미국을 따라서는 안됩니다. 미국이 외환위기 때 ‘글로벌 스탠더드’를 내세우며 투명성을 요구했지만, 금융위기를 보면 가장 불투명한 집단이 그들이었죠.” 김 교수는 “있는 그대로의 미국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들을 학자적 양심을 걸고 보여주고 싶어” 이 책을 썼다고 말했다.(황경상기자)  

내일신문(11. 09. 10) 감추고 싶어하는 미국에 관한 5가지 불편한 진실

비판적 언론인이자 작가인 저자 크리스 헤지스는 단언한다. 미국은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다고. 프로 스포츠, 연예산업과 유명인 문화, 리얼리티 예능 프로가 전 국민의 눈과 귀를 홀리고 일상을 규정하는 나라, 소수의 지배층이 권력과 돈, 지식과 정보를 독점한 채 자신들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그것들을 마음대로 조작하고 이용해 먹는 나라라고.

미국은 현재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자 자본주의의 꽃으로 불린다. 크리스 헤지스는 이런 미국에 메스를 들이댄다. 미국의 숨은 치부를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미국이 처한 위기, 나아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처한 위기의 본질을 통찰하고 있다. 그 결과 저자는 "미국은 지금 죽어가고 있다"고 선언한다. 이 파탄의 조짐은 단순히 금융위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정치 경제 문화에서부터 일상과 정신세계에 이르기까지 체제와 삶 전반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본다.

이런 사회에서는 본모습보다 이미지가 더 중요하고, 진실보다 광고와 선전이 더 설득력 있다. 그래서 이런 사회에서는 잡동사니 정보와 유명인의 뒷공론이 지식이 되고, 포르노는 사랑이 되며, 교육은 체제 유지와 권력 세습의 도구가 되고, 심리학은 행복을 파는 돌팔이 과학이 되며, 빚은 경제를 끌어가는 동력이 된다.

이런 사회에서는 현실이 절망스러울수록 더욱 공상에 집착하며 선동과 허풍에 의존해 위로와 안심을 구한다. 역사가 증명하듯이 이런 선동은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오락을 제공하면서 독재정치로 나아간다. 오늘날 정부와 기업이 하나로 결탁한 이른바 '법인형 국가' '기업정부'의 결과가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미국이 지적 능력, 도덕성, 교육, 정신, 경제 면에서 돌이킬 수 없는 위기에 빠져들고 있음을 통찰한다. 그리하여 미국이 이런 환상들에서 깨어나 자기 앞에 놓인 엄연한 한계와 맞서지 않으면 끝내 파멸에 이르고 말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한다.(안찬수 기자) 

11. 09. 10.  

P.S. "상위 10% 사람들이 미국 전체 수입의 절반을 가져가는 ‘승자독식’" 문제와 관련해서는 최근에 나온 대니얼 리그니의 <나쁜 사회>(21세기북스, 2011)도 참고할 만하다. 사회 양극화 문제를 다룬 책으로 "저자 대니얼 리그니는 우리 사회를 부익부 빈익빈의 악순환으로 몰고 가는 ‘마태 효과’(The Matthew Effect)를 모든 사회 분야에 걸쳐 연구한 최초의 학자다. 그는 이 책을 통해서 경제 분야의 마태 효과에 대한 분석뿐 아니라 정치.과학.교육.문화 등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마태 효과로 인해 일어나는 양극화 현상을 설명하고, 사회를 ‘나쁘게’ 만드는 마태 효과의 모든 것을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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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la 2011-09-10 15:15   좋아요 0 | URL
한가위 잘 쇠세요!
뜬금없이...

로쟈 2011-09-10 18:51   좋아요 0 | URL
네, 즐거운 연휴 되시길...

토토랑 2011-09-11 03:10   좋아요 0 | URL
으흠..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페이퍼네요. 지금 미국 샌디에고에 머물고 있거든요.
지난번 미국 외환부채 상한액 증액 법안관련 이슈때도 우리나라 언론에 오히려 기사가 나지..
미국엔 은행에 근무하는 사람조차도 뭐 그거요~ 벌거 아녜요 하는분위기..왠지 물어본 사람이 무안해질정도의 시큰둥한 반응
대선 끝나고 나면 영향있겠죠 한마디 끝...

어느 동네를 가든지 카트에 짐 싣고 밀고다니는 노숙자들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옆에 카운티에는 쌍둥이 학교 보내는데 Supply list로 학기초에 보내는 학용품만 백만원어치 샀다고 하네요..
미국에 오래산 시민권자들은 멕시코애들 노인들 과잉복지 때문에 재정이 어렵다는 그런 인식도 많은거 같아요. 다자녀 혜택이 좀 있다보니 멕시코나 이민자들이 자녀가 많거든요.

그치만 아직 영어 못하는 옆에서 보기에는,, 주급으로 주는 월급과 월세....
집세가 방 2개 조그만 아파트가 $1600 정도 하거든요. 수욜날 주급은 주는데 그날은 마트가 좀 붐벼요. 세금때고 월 400만원 받는다 쳐도, 주급이면 100만원..월세내야할돈 떼고 최소 $400 제하고, $600 남으면 마트한번 갔다오면 또 돈 나가고 이래저래 뭐 사면 또 없고. 정신바짝 안차리고 관리안하면 돈 모으기 힘들겠드라구요.

집값의 10% 현금만 들고 있어도 집 살수 있는데,,그게 월세보다 훨 싸게 치는데도.. 2~3 천만원 정도의 목돈을 마련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하네요. 그 참 이런사람들이 우리나라오면 못살겠구나 싶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여기서 Job 못잡은 애들이 우리나라와서 그냥 영어강사 몇년 뛰다가 가는구나 싶기도 하고 여러가지 생각이 들더라구요..

미국의 미래와 한국의 미래.. 그 참..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문제네요. 로쟈님이 골라주신 책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로쟈 2011-09-11 09:53   좋아요 0 | URL
보통의 한국인이 생각하는 미국과 실제 미국은 많이 다른 듯해요. <미국의 굴욕>의 원제대로 '환상의 제국'이라고 할까요...

미국사람 2011-09-15 03:09   좋아요 0 | URL
토토님 예기에 한마디 합니다.
저는 뉴욕쪽이라 서부쪽과는 상황이 좀 다르긴 합니다. 감안하시길

여기서는 지금 집값의 10% 가지고는 집을 못사구요 30% 정도는 주어야합니다. 문제는 30%를 주어도 은행에서 융자를 잘 안내줍니다.(단 금리는 엄청 쌉니다.) 토토님 말씀은 100%까지도 융자해주던 2008년 리만 브라더스 붕괴 이전 상황입니다.

지금 미국은 1945년 전쟁 종결 이후 최악의 경제 상황입니다. 1929년 처럼 대공황이 나야 되는데 대공황 경험이 한번 있으니 미 중앙은행에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통해 공황이 오는 것을 막고 있는 중이라 보면 됩니다.

만일 2009년 이후에 미국에 와서 현 상황만을 보고 미국에 대해 말씀하신다면 최악의 상황만 보일테니 토토님과 같은 관찰이 나오겠지요.

물론 현재의 미국은 지옥행 기차를 타고 있는 중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1998년 한국의 환란 이후 상황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듯 합니다.

소개하신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라는 책도 비슷한 내용이라 생각됩니다. 읽어보지 않아 말하긴 어렵지만 개별적으로는 다 맞는 말이지만 전체적으로는 맞다고 하기 어려운 책일 겁니다.
 

뒤늦게 이중톈을 읽고 있다. 그의 책을 대부분 갖고 있지만 나는 지난 여름 <초한지 강의>(에버리치홀딩스, 2007)와 <백가쟁명>(에버리치홀딩스, 2010)을 흥미롭게 읽으면서 비로소 그의 독자가 됐다. 최근 읽고 있는 건 <이중톈, 제국을 말하다>(에버리치홀딩스, 2008)인데, 발행일이 2008년 5월 15일이고 구매일도 똑같다. 책이 나오자 마자 구했다는 걸 알겠다('이중톈 읽기' 리스트도 만들어놓은 날도 5월 15일이었다). 하지만 아마도 다른 책들에 떠밀린 듯하고 정작 손에 든 건 3년도 더 지난 다음이다. 독서도 다 때가 있다고 해야 할까. 여하튼 <제국을 말하다>에 이어서 <제국의 슬픔>(에버리치홀딩스, 2007)과 <이중톈, 중국인을 말하다>(은행나무, 2008)까지 독서목록에 올려놓고 있다(책을 어디다 두었는지 조만간 찾아봐야겠다). 저자 스스로 대표작이라 꼽기도 한 <이중톈, 제국을 말하다>에 관한 기사를 검색해 보니 작년 여름 것이 있기에 참고삼아 스크랩해놓는다.  

 

경향신문(10. 07. 24) 중국제국의 재건과 ‘역사 망각’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며, 제국도 아니다.”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가 신성로마제국을 두고 퍼부은 독설에 가까운 촌철살인의 풍자다. 신성로마제국은 나폴레옹에게 멸망하기까지 시나브로 국력이 쇠잔하고 분열이 이어지면서 17세기부터는 껍데기만 남은 제국이었다.

중국이 초강대국도 아니고 선진국도 아니며 제국은 더욱 아니라는 엄살 섞인 항변을 들고 나올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볼테르의 명언이다. 현대 중국의 설계자 덩샤오핑이 ‘도광양회’(드러내지 않고 실력을 기른다)를 당부할 때만해도 그런 이중성은 납득할 만했다. 하지만 ‘화평굴기’(평화롭게 우뚝 선다)를 부르짖는 지금의 중국이라면 사뭇 달라진다. 중국은 동양 최초로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한 진시황 이래 2132년 동안 제국으로 호령한 화려무비한 전력이 있지 않은가.

중국의 인기 역사저술가 이중톈은 화려한 중국 역사의 겉면보다 쓰라린 실패와 아픈 기억을 <제국의 슬픔>이란 책으로 담아낸 바 있다. 이중톈이 자신의 최고 역작이라 자신 있게 말한 <이중톈 제국을 말하다>(에버리치홀딩스)에서 과거 중국제국 시스템을 비판적으로 해부한 점은 인상적이다.

그는 중국 역사를 제국 시스템이라는 프레임으로 정치사와 문화사를 아우르는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재구성했다. 이중톈이 진시황 이래 청 제국의 멸망에 이르기까지 제국 유지의 핵심요소로 꼽은 것은 ‘중앙집권’ ‘윤리치국’ ‘관원대리’(官員代理) 세 가지로 요약되는 시스템이다. 진시황이 군현제와 그에 걸맞은 관원대리라는 하드웨어를 창조했다면, 한무제는 여기에다 윤리치국이라는 소프트웨어를 더해 완벽한 제국의 틀을 만들었다. 윤리치국이란 중국의 제자백가 사상 가운데 유가를 정치의 도구로 채택한 것을 일컫는다. 한나라 이후 모든 왕조는 이 트로이카를 앞세워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왕조의 명맥을 유지했다. 20세기 초 들어 강대한 제국이 하루아침에 자멸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결국 이 시스템 때문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는 중국의 실정에 맞는 ‘공화’ ‘민주’ ‘헌정’만이 미래의 근본 해결책이라고 처방했다. 중국 학계에서 ‘후진타오 주석은 몰라도 이중톈은 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이중톈이기에 그의 한마디는 무겁게 들릴 수밖에 없다. 순환론적 역사관에 따르면 제국이란 제도는 그 시스템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가 있고 한계에 도달한 제국은 무너진다. 무너진 제국은 제국을 형성했던 사회구조나 구성원의 삶의 질이 이전보다 훨씬 열악해진다. 영웅적 지도자가 나타나 다시 통합을 시도하고 제국이 재건된다.

중국이 또다시 세계 제국으로 굴기하는 걸 보면 순환론을 부정하기도 어렵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과시한 ‘한·당(漢唐)으로 돌아가자’는 구호는 이미 제국의 야욕을 세계 만방에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한나라 때나 당나라 때나 한민족의 역사는 아픈 기억으로 아로새겨져 있다. 그러잖아도 최근 중국의 행태는 한반도 통일과정에서 가장 큰 장애물이 중국 제국이 될 지 모른다는 점을 확연히 각인시켜주고 있다.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는 중국인들의 특성이 드러나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역사적 교훈은 제국이 혼자 강압적인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중국계 미국 석학인 에이미 추아는 명저 <제국의 미래>에서 제국의 필요조건으로 ‘관용’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1989년 베이징의 봄 이후 중국은 청년 정신까지 성장을 멈췄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중톈도 지적하듯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면 언젠가는 다시 역사의 심판을 받고 말리라.(김학순 기자)  

11. 09. 07. 

 

P.S. 이중톈과 함께 또 몰아서 읽으려는 저자는 이중톈 못지않은 필력을 자랑하는 중국사학자 레이 황이다. 그의 책도 번역된 건 모두 갖고 있는데, 일단 <허드슨 강변에서 중국사를 이야기하다>(푸른역사, 2001)를 책상 가까이에 옮겨놓았다. 진순신의 <중국사 이야기>까지 더하면, 내내 중국사 이야기를 들으며 올가을을 보내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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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중국의 위대함
    from 아흐퉁! 미잔트롭 2011-09-08 06:08 
    요즘 중국을 보면 저 나라가 공산당 나라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사회 경제 제도에 자본주의의 요소들를 파격적으로 도입하고도공산당은 엄연히 존재하고 평범한 서민의 집 벽에 모택동 초상화가 걸려있는 현상은 참 묘하다.러시아의 초기사회주의자들은 농노를 해방시킨 짜리를 암살했다. 러시아는 혁명초기에 마지막 황제의 가족을 총살시키고 암매장했다.마지막 황후의 언니는 산 채로 우물에 던져졌다. 새 러시아에서 마지막 황제는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베르톨루치의 <마
 
 
미국사람 2011-09-08 00:49   좋아요 0 | URL
에이미 추아를 석학으로 <제국의 미래>를 명저로 꼽는 것은 약간 심한 느낌..
여러가지 책을 잘 섞어서 배낀 정도의 책입니다.

그것보다는 애 키우는 법 소개서인 타이거 마더( Battle Hymn of the Tiger Mother) 정도가 에이미 추아에게 맞는 듯 합니다.

예일대 교수 이긴 하지만 법대교수이니 수준에 오른 역사 서적을 쓰기에는 조금 힘이 부친 듯 합니다.

로쟈 2011-09-09 09:51   좋아요 0 | URL
독자에 따라 평가는 다른가 봅니다. 그래도 한국에선 예일대 교수란 후광이 있지요...

2011-09-08 0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09 0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