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권의 계간지'라고 제목을 붙이려다가 밋밋한 듯싶어서 좀 세게 고쳤다. 그래도 실상은 <문화과학>과 <실천문학> 가을호, 두 권의 계간지에 대한 리뷰기사다. 기자들은 기사거리가 없을 때 이런 기사를 쓰는지도 모르겠지만, 정보로서 유익하다.  

   

경향신문(11. 09. 06) 금융위기는 헤게모니 싸움서 비롯…자기통치의 ‘코뮌 공동체’가 해결책

‘혁명의 시기’라는 것이 따로 있을까. 세계체제론적 관점에서 보면 역사상 모든 혁명과 반혁명은 전 지구적 헤게모니(패권) 국가가 몰락하고 새로운 질서 정립을 위한 다툼이 시작될 때 벌어졌다. 세계가 영국이 주도하는 질서 체제로 전환할 때 프랑스혁명(1789)이 발생했다. 미국이 전 지구적 헤게모니 국가로 부상하던 시기에 러시아혁명(1917)이 일어났다.

그렇다면 2007년 시작된 금융위기로 미국 헤게모니의 몰락이 점쳐지는 지금은 어떨까. 계간 ‘문화/과학’ 가을호는 ‘혁명의 계보학’을 특집으로 다루며 현 상황도 비슷하다고 진단한다. ‘문화/과학’ 편집위원회는 총론에서 “금융위기는 주기적 경기침체의 수준이 아니라,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구조적 차원에서 변혁되는 지구적 헤게모니 이행의 문제와 연관돼 있다”고 말한다.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체제론자 조반니 아리기의 주장이 이해를 돕는다. 그는 19세기의 패권국은 영국, 20세기의 패권국은 미국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패권 국가의 부침을 보면 일반적인 구조가 보인다. 첫번째 단계에서는 헤게모니 국가로 금융자본이 집중되고 기축통화의 변화가 나타난다. 헤게모니 국가는 두번째 단계에서 세계 실물경제를 지배하며 이윤을 뽑아낸다. 세번째 단계에서는 실물경제가 침체되는 대신 금융부문이 폭발적으로 팽창한 후 급격히 쇠락한다. 자연스레 오늘날 미국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이 시대 가장 뼈아픈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은 하층계급이다. 헤게모니를 빼앗길 위기에 처한 패권 국가는 이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에 골몰하면서 착취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미국 중심의 국제통화기금(IMF)이 신자유주의를 전 세계에 강요한 것이 대표적이다. 더구나 미국이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긴축재정으로 선회한 이상 주요 경제국들 역시 따라갈 수밖에 없어 복지는 무너지고 사회적 양극화는 심화된다. 이미 이스라엘, 칠레, 영국 등에서 물가폭등과 긴축재정, 청년실업 등의 문제로 시위가 빈발하고 있다. 

 
1907년 러시아 노동자도서관. ‘니조프킨 도서관’은 노동자들이 자기 수입의 2%를 내고 자산을 정치적 대의명분에 따라 공유하는 ‘공동금고’를 운영했다.

변혁은 어디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러시아혁명을 분석한 이득재 대구가톨릭대 교수와 라틴아메리카 혁명을 분석한 안태환 부산외대 HK연구교수의 논문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떠오른다. 그 핵심은 자기통치를 핵심으로 하는 ‘코뮌적 공동체’를 구성하자는 것이다.

이 교수는 “노조도, 혁명적인 당도 존재하지 않던 러시아에서 1905년의 혁명이 분출될 수 있었던 것은 노동자들의 코뮌 경험 덕택”이라고 말한다. 러시아에서는 이미 1860년대부터 각 지역 농장에 코뮌 공동체가 존재했다. 여기에 1905년 혁명 훨씬 이전부터 자기계몽의 열망을 품은 노동자들이 일요학교, 민중의 집, 협동조합을 설립해 활동하면서 주체적인 능력을 키웠다. 이 교수는 “1905년 혁명은 반세기 이상 준비돼온 것”이라고 말한다.

안태환 교수는 1999년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이 집권한 ‘볼리바르 혁명’을 “좌파 지식을 가진 지식인, 정치 세력화된 노조, 기존의 사회주의 정당이 선도한 혁명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1989년 베네수엘라에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반대해 일어난 ‘카라카소’ 대시위 이후 이미 ‘주민평의회’ 등 공동체가 조직돼 있었다는 것이다. 현재 베네수엘라에는 5만여개의 마을 중 1만5000여곳에 주민평의회가 조직돼 있다. 이들은 차베스의 정책을 자유롭게 논쟁하고 비판하면서 직접 항의도 한다. 이러한 자기통치적 주민평의회와 조합운동이 20세기 현실사회주의가 지향하는 생산수단의 ‘전면적 국유화’보다는 ‘사회적 소유’를 점진적으로 늘려가는 방식의 혁명을 일궈냈다는 것이다. 결국 이들은 “혁명이 단순한 국가권력의 쟁취에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말하는 혁명은 세계를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상상하고 창안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황경상 기자)    

경향신문(11. 09. 05) 하버마스·푸코의 빈자리, 지 젝·가라타니가 채웠다

2000년대 한국사회에서 풍미한 사상가는 누구일까. 맨 앞줄에 슬라보예 지젝과 가라타니 고진이 자리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2000년대 이후 지젝의 저서는 23권, 가라타니의 저서는 12권이 번역됐다. 위르겐 하버마스와 미셸 푸코의 인기는 다소 떨어졌다. 하버마스와 푸코의 저서는 2000년대 이전에는 각각 16권, 11권이 번역됐으나 2000년대 이후에는 10권, 7권이 소개됐다. 이 밖에 자크 데리다의 저서는 2000년대 이전 7권, 2000년대 이후 8권으로 꾸준히 소개됐다. 조르조 아감벤과 알랭 바디우, 자크 랑시에르는 2008년 이후에만 7~8종의 번역서가 집중적으로 나와 한국 지식계에서 ‘떠오르는 스타’임이 증명됐다.

이 같은 현상은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국문학)가 계간 ‘실천문학’ 가을호에 기고한 ‘포스트-근대문학의 시대, 또는 연장전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소개됐다. 천 교수는 한국 지식계의 지형을 해외 사상가의 번역서 현황으로 살펴본 뒤 이 중 한국문학과 관련, 가장 의미 있는 지점으로 가라타니 고진의 저서 <근대문학의 종언>에 대한 다기한 반응을 살펴보았다. 

천 교수는 “한국 문학문화의 주체들이 ‘거부’를 포함해서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명제를 어떻게 수용했는가 하는데 2000년대 한국문학의 풍경 전반이 담겨 있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당초 ‘종언’의 의미와 달리 문학활동이나 비평이 권력의 억압이나 자본의 침탈로부터 인간을 방어하는 데 바쳐지지 않고 ‘문학 자체’를 지키는 데 소용된 전도 현상은 ‘한국 근대문학의 죽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고 진단했다. 



<근대문학의 종언>은 2006년 번역, 출간된 후 사상서로는 특이하게 1만부가 판매됐다. 천 교수는 “1990년대 이후 탈정치화된 문학에 대한 분노가 이 책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났다”고 해석했다. 아울러 이 책이 “추상적이고 거시적인 문학사 논의”였음에도 실제 논쟁은 거의 없었고, “문단시스템에 깊이 연루될수록 가라타니의 주장에 생래적 반감을 보인 반면, 현존 문학제도에 대해 비판적일수록 종언 테제의 유효성을 인정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천 교수는 “종언이란 명제를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문학판의 기득권자들, 오늘날 문단문학 재생산의 주체는 자본의 메커니즘에 철저히 종속돼 있거나 그 자체로 자본이 되어 있다”면서 “문학의 정치적 기능을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데 종언론이 쓰여야 함에도 과거로부터 유지돼온 문단권력을 유지하는 데 바쳐졌다”고 말했다.

한편 김정한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는 같은 계간지에 실린 ‘슬라보예 지젝, 사유의 반란’이란 글에서 한국사회에서 지젝 열풍의 원인을 소개했다. 김 교수는 “영화를 독특하게 분석하는 대중문화 비평가로 알려지기 시작한 지젝은 마르크스주의의 개조와 혁신이라는 알튀세르의 문제 설정을 계승했다”면서 “최근 한국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철학자인 발리바르, 라클라우, 바디우, 랑시에르 역시 알튀세르 학파의 일원이었다는 점에서 일관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지젝은 세계 자본주의의 근본적 변화의 전망이 불투명한 시대에 희망과 대안을 찾는 급진적인 흐름을 유지,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며 “2008년 촛불시위는 타인의 ‘믿음에 대한 믿음’(이데올로기)을 해체하라는 지젝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젝의 주장이 점점 더 한 탁월한 철학자의 ‘원맨쇼’로 비춰지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그의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가 어떻게 현실정치와 만날 수 있는가에 대한 실천적 차원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한윤정 기자) 

11. 09. 06.  

P.S. 혁명을 주제로 한 책을 몇권 더 골라봤다. 이중 <혁명의 현실성>의 원제는 <혁명의 리허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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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고르의 <프롤레타리아여 안녕>(생각의나무, 2011)은 지지난주쯤 나온 책인데, 마땅한 소개기사가 뜨지 않았었다(그렇게 넘어가는 책들이 적지 않다). 다시 검색해보니 기사 하나가 뜨기에 스크랩해놓는다. 30년 전 책이지만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노동운동가 하종강 전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은 이렇게 평했다. "기존 노동운동 개념의 오류들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그의 분석은 현실사회에서 충분히 실현가능할 뿐 아니라 마르크스와 작별하지 않은 채 그를 뛰어넘고 싶은 활동가들에게도 충분히 귀감이 될 만하다."   

경향신문(11. 09. 03) 30년전 예견한 노동현실…프롤레타리아는 혁명 주체가 아니다

“한 세기 이상 동안, ‘프롤레타리아’ 사상은 자신의 비현실성을 은폐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 그 사상은 ‘프롤레타리아’ 자체만큼 시효가 지난 것이다.”

프랑스 신좌파의 주요 이론가인 앙드레 고르는 1980년에 쓴 책 <프롤레타리아여 안녕>에서 전통 마르크스주의가 해방의 주체로 제시한 프롤레타리아에 작별을 고한다. 프롤레타리아라는 계급이 이미 자본주의 가치관을 내면화한 ‘자본의 복제품’으로서 지배질서에 편입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고르는 프롤레타리아의 대표자들이 ‘자본’에 의해 설치되어 있던 지배기구를 장악한다 해도, 그들은 자본의 지배와 유사한 것을 재생산할 것이고, 이어서 그들 스스로가 기능적 부르주아지(지배계급)가 되어 “계급의 이름으로 행하는 억압”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고르는 노동계급이 더 이상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없다며 대신 ‘신프롤레타리아’라고 불리는 비노동자들의 비계급을 혁명의 주체로 내세운다. 그가 말한 ‘비계급’은 자동화와 정보화에 의한 노동의 소멸과정에서 생산현장을 떠나게 된 사람들, 혹은 완전하거나 부분적으로 실업상태에 있는 임시직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들은 노동계약과 노사 합의에 따라 안정된 지위를 보장받는 노동자들의 계급과 다르다. 고르는 “이런 전통적인 노동계급은 이제 특혜받는 소수층일 뿐”이라고 밝힌다. 그는 사회적·정치적 투쟁의 새로운 주제는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감소로 그 자체가 목적이고 보상인 자율적 활동을 최대한 확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체성을 잃어버린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이자 새로운 혁명의 주체와 과제를 제시한 이 책은 3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여전히 생명력을 발휘한다. 이 책의 부록으로 1978년에 쓴 ‘실업의 황금시대’라는 글에서 고르는 “자동화시대에는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더 이상 고용창출이 생겨나지 않는다. 많은 경우, 경제성장으로 인해 심지어 고용이 감소한다”며 오늘날 ‘고용없는 성장’을 정확히 예견했다.

불치병에 걸린 아내를 20여년간 간호하다 생전에 함께 약속한 대로 파리 교외 시골마을의 작은 집에서 잠자듯 침대에 나란히 누워 삶을 자유의지로 마감한 앙드레 고르. 그는 사르트르가 ‘유럽에서 가장 날카로운 지성’이라고 평할 만큼 뛰어난 사상가였다. 그는 프랑스 68혁명에 큰 영향을 끼쳤고 일자리 나누기와 함께 재산이나 소득의 많고 적음, 노동 여부나 노동의사와 상관없이 개별적으로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균등하게 지급하는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역설한 선구적인 노동이론가이기도 했다.(주영재기자) 

11. 09. 04.  

P.S. 앙드레 고르의 책은 <D에게 보낸 편지>, <에콜로지카>가 더 번역돼 있다. <경제적 이성 비판>도 소개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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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感階節 2011-09-04 23:36   좋아요 0 | URL
오래 기다리던 책이 나왔네요^^

로쟈 2011-09-05 08:23   좋아요 0 | URL
30년만입니다!^^

park6 2011-09-05 21:01   좋아요 0 | URL
아...앙드레 고르의 'd에게 보낸 편지'를 읽고 감동받은 기억이 나네요~ㅎㅎ

로쟈 2011-09-05 23:47   좋아요 0 | URL
닭살이었단 분들도 계시더군요.^^

허스키 2011-09-06 23:54   좋아요 0 | URL
'D에게 보낸 편지'는 아내가 직접 골라서 신혼여행에 가져가 함께 읽었던 책입니다. 불현듯 의자에 앉아 함께 햇빛 속에서 책을 읽으며 느끼던 그 바람이 그리워집니다.

로쟈 2011-09-07 17:10   좋아요 0 | URL
각별한 인연을 갖고 계시군요.^^
 

서울시장 보선과 맞물려 일찌감치 정치의 계절이 시작됐다. 어제는 안철수 교수가 시장 선거 출마를 고려중이란 기사가 정치면 톱뉴스였다. 그런 즈음이라 이주에 나온 책 가운데, 손호철 교수의 <현대 한국정치>(이매진, 2011), 강준만 교수의 <한국현대사 산책 - 2000년대 편>(인물과사상사, 2011)에 자연스레 눈길이 간다.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았고, 앞으로 어떤 시대를 살 것인지 생각해볼 '의무'가 있다.   

  

한국일보(11. 09. 03) 진보의 두 시각으로 바라 본 갈등의 한국 현대사

한국 현대사는 '압축 성장'이니 '한강의 기적'이니 하는 경제적 찬사의 한편에서 끊임없이 다투고 대립하는, 뺏고 빼앗기는 정치적 사회적 갈등의 역사였다. 한국 현대정치사를 민주주의, 자유, 인권을 중심에 두는 진보의 시각으로 일관되게 분석해온 손호철 서강대 교수와 왕성한 저술활동으로 이름난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한국 현대사 책이 나란히 출간됐다.

손 교수가 자신의 '한국정치 연구 종합판'이라고 소개하는 <현대 한국정치>(이매진 발행)는 이미 냈던 <현대 한국정치-이론과 역사> <해방 60년의 한국정치>를 합치고, 2006년 이후 쓴 노무현 이명박 정부 관련 논문을 더해 무려 900쪽에 가까운 단행본 한 권으로 만든 책이다. 해방 이후 정치체제 분석에서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진보연합정치론까지 20여 년에 걸쳐 '민중사관이라고 부르는 진보적 시각에 기초해' 쓴 글들을 모았다.

옛 논문들이지만 브루스 커밍스의 연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해방 공간의 쟁점을 살핀 글들이나, 1950, 60년대 조봉암과 박정희의 대결 속에서 극우반공ㆍ개발독재체제 속에서도 드러나지 않게 존재했던 진보적 세력의 실체를 파악해내려는 노력들은 여전히 눈길을 끈다. '자학사관'이라는 보수세력의 비난의 표적이 되면서도 그는 경제발전과 민주주의에 드물게 성공했다는 사실이 '그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문제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논지를 일관되게 펴고 있다.

민주화 이후, 특히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공과를 평가하고 향후 진보진영의 미래를 짚는 논문들은 지금 현실 정치 속에 살아 있는 글들이다. 손 교수는 두 정권의 민주화 업적을 평가절하하지 않으면서도, 이들 정권에 대한 보수의 '좌파' 딱지 붙이기와 정반대의 지점에 서서 사회양극화를 불러온 신자유주의 정권이라는 비판의 잣대를 들이댄다. 같은 맥락에서 내년 총선ㆍ대선을 앞두고 진보세력의 '선 진보대연합, 후 조건부 민주대연합'을 주문하고 있다. 

 



강 교수는 시리즈로 내고 있는 <한국 현대사 산책>의 '2000년대 편'(인물과사상사 발행)을 노무현 시대에 초점을 맞춰 5권으로 묶었다. 1940년대부터 10년 단위로 내온 기존 시리즈 중 권수가 가장 많다. 동시대 이야기라서 그가 늘 저술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언론 자료가 풍부하다는 점도 작용했겠지만, 그만큼 이 시기가 파란만장했다는 증거로도 볼 수 있다.

'보수와 진보 등 모든 이념적, 정치적 경계를 가로 질러 모든 시각을 다 소개하는 기록에 무게를' 둔다는 원칙에 따라 강 교수가 훑어 내려간 지난 10년의 한국 현대사는, 우리 모두가 불과 얼마 전 겪어 낸 사건들인데도 마치 드라마를 본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흥미롭다. 9ㆍ11 테러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이제 우리는 모두 미국인이다'는 코드를 찾아낸다. '역사는 룸살롱에서 이뤄지는가'(룸살롱 접대 비리) '영어가 권력이다'(영어 교육 문제)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이명박 논쟁) 등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종횡무진하며 노무현 이명박 시대의 총체적인 한국 사회상을 드러내 보여 주고 있다.

강 교수는 '우리 안에는 노무현만 있는 게 아니라 이명박도 있'고 그 '둘은 늘 충돌한다'고 했다. 그 충돌이 어느 때보나 잦았던 2000년대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는 '열정에서 냉정으로'라는 말로 압축해 표현했다. '아웃사이더' 노무현을 대통령에 당선시킨 열정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길게 가는 건 냉정이라고 했다. 냉정의 실체가 뭐냐고? '꿈 없는 생존경쟁의 시대'라고 그는 답한다.(김범수기자) 

11. 09.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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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4 0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04 0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04 15: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난주에 나온 책 가운데 유배지에서 꽃핀 조선 후기 지식인의 예술과 학문을 다룬 <다산의 재발견>(휴머니스트, 2011)과 <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북스코프, 2011)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당장은 손이 멀지만 조선사에 대한 책도 조금씩 모으고 있는 만큼 조만간 관심을 갖게 될 듯싶다...  

 

한국일보(11. 08. 27) 조선의 예술과 학문, 유배지서 피어나다

역사교사 이영권씨가 쓴 <제주사>를 보면 조선 후기까지 '유배'의 형벌은 사실상 종신형이었지만 갑오개혁 직후인 1895년에 죄의 정도에 따라 기간을 달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1909년 공식적으로 폐지됐다. 사라지고 불과 한 세기이지만 돌아보면 아득히 먼 전통시대 형벌 같은 유배는 사형 다음 가는 중형이었다. 조선시대에 남편이 유배 가자 부인이 목숨을 끊어버린 사례도 있다고 하니 엄한 벌로 인식됐던 것은 틀림 없다.

하지만 중형이라고 해도 죄값을 물어 바로 목숨을 뺏거나 초주검이 될 정도로 매질하는 일반적인 형벌과는 분명히 뉘앙스가 다르다. 정적(政敵)을 '기능부전' 상태로 만들되 목숨까지 뺏지 않는다는 인간적인 면모를 지녔다고 하면 너무 미화하는 걸까.

당파싸움이 치열했던 조선 중ㆍ후기에는 벼슬아치 4명 가운데 한 명꼴로 유배 갈 정도로 이 형벌이 유행했다고 한다. 정약전 약용 형제를 필두로 윤선도 김만중 등 문인 학자들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고, 연산군 광해군 등 왕좌에서 밀려나면 임금도 이 리스트에 올랐다. 물론 유배 당한 이들은 정치적인 패배에서 오는 절망감이 적지 않았을 테고 벽지나 외딴섬에서 빈한한 생활을 견뎌야 하는 고통도 컸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그 형극의 시간을 안식과 마음의 평화를 얻을 기회로 삼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오래도록 둘러볼 호사에 감사하며 문학과 학문에 정진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옛 문인과 학자들이 유배 생활을 어떻게 보냈고 그 어려움 속에서 어떤 예술과 학술적 업적을 길어 올렸는지를 조명한 <다산의 재발견> <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가 나란히 출간됐다. 특히 <다산의 재발견>은 정민 한양대 교수가 4년여 발로 뛰면서 다산의 문집에 묶이지 않은 미공개 서간첩을 찾아 내 정리한 것이어서 값지다. 문서 훼손을 우려한 소장자들이나 학문적 업적을 뺏길까 봐 경계하는 학자들이 자료 보여주길 꺼려해 꽤나 어려움을 겪었던 정 교수는 자신이 새로 확인한 다산의 서간 등 문서들을 '자료 공개는 언제나 윈윈의 게임'이라며 이 책에 모두 실었다.

책은 <다산여황상서간첩> <견월첩> <백운첩> <매옥세궤> <만일암지> 등 저자가 찾아낸 다산의 친필 편지 150여 통을 내용별로 분류해 소개하고 그 서간이 오간 당시 다산의 면모를 되짚어 보는 것이 중심이다. 저자가 '넓고 깊다'는 다산학의 빈 자리를 채우는 작업이다. 덧붙어 있는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의 집단 저술을 가능케 한 다산의 강진 시골 학생 교육법은 다산이 얼마나 선구적인 교육자인지 짐작할 수 있다. 다산이 본처 소생인 시집간 큰 딸, 유배 동안 새 살림을 꾸려 늘그막에 낳은 어린 딸에게 각각 그려준 <매조도> 사연은 콧잔등을 시큰거리게 만든다. 



<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는 이종묵(서울대) 안대회(성균관대) 교수가 사진작가 이한구씨와 함께 유배지를 찾아가 보고 쓴 글들이다. 멀리 고려 문신 이규보에서 시작해 대마도에서 생을 마감한 최익현까지 유배지의 삶과 예술, 학문을 엿볼 수 있다. 사진 편집이 훌륭해 책 읽는 재미를 더한다.(김범수기자) 

11. 0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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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온 2011-10-19 15:29   좋아요 0 | URL
로쟈님...
제주 땅속의 비밀 <대시조전>이란 책을 추천합니다
인류 최초의 문명이 우리 나라 제주도에서 시작되었다 합니다 ^^*

로쟈 2011-10-22 09:10   좋아요 0 | URL
에, 참고하겠습니다...
 

조선시대를 다룬 책 소개기사를 연거푸 올리고 있는데, 이번엔 규장각 연구원인 강문식과 이현진의 <종묘와 사직>(책과함께, 2011), 그리고 임금의 공부를 다룬 김태완의 <경연, 왕의 공부>(역사비평사, 2011), 두 권이다.    

문화일보(11. 08. 26) “조선 종묘·사직, 國運따라 성쇠 겪어”

사극이나 영화 속에서 “이 나라 종묘와 사직이 위태롭다”거나 “종묘와 사직을 위한 길이다” 등의 표현을 자주 보게 된다. 여기서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은 ‘국가’를 뜻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종묘와 사직을 역사·문화 유적지로만 여길 뿐 종묘와 사직이 전통시대, 특히 조선시대에는 국가의 대명사였을 만큼 중요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종묘와 사직은 과연 무엇이기에, 그리고 전통사회에서 얼마나 큰 중요성을 지녔기에 국가를 상징하는 대명사로 사용됐을까.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하 규장각)이 ‘규장각 인문강좌’ 시리즈의 첫 권으로 최근 발간한 ‘종묘와 사직-조선을 떠받친 두 기둥’을 펼쳐보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책은 종묘와 사직의 탄생과 변모 과정, 종묘·사직 제사의 절차와 형식을 밝히고, 종묘와 사직에 숨어 있는 역사적 배경을 풀어냈다. 책에 따르면 종묘와 사직은 국운과 그 운명을 함께 했다. 왕권이 강화되고 중흥되던 시기인 영·정조대에는 종묘와 사직 제도 역시 강화된 반면, 황제국을 표방했지만 국운이 쇠락해가던 대한제국기와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종묘와 사직의 위상도 기울어갔다.

국왕과 왕비는 죽은 후 그 신주가 종묘에 모셔진다. 하지만 영원히 종묘에 모셔진 건 아니었다. 국왕의 공덕을 평가한 뒤 공덕이 크면 옮기지 않는 신주인 불천지주(不遷之主)가 되기도 했지만 정치적 변고에 의해 이들의 신주가 종묘에서 내쳐지기도 하고, 상당한 시간 동안 숱한 논쟁을 거친 후에야 복위되어 종묘에 다시 돌아오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정종은 종묘 정전에 부묘되긴 했지만 국왕이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졌던 묘호가 없었다. 연산군, 광해군처럼 반정에 의해 쫓겨난 왕도 아니었고, 단종처럼 쫓겨났다가 훗날 추승된 왕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가 ‘정종’이라는 묘호를 받기까지는 260여년의 시간이 흘렀다. 정종은 왜 이런 수모를 겪었을까. 이는 정종이 동생인 태종을 ‘세자’로 책봉했기 때문이다. 종묘와 사직은 전쟁터를 누비기도 했다. 1592년 4월14일 임진왜란이 발발해 일본군이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오면서 불과 10여일 만에 수도 한성은 함락 위기를 맞았다. 이에 조선 정부는 4월30일 서울을 버리고 피란길에 오르게 됐고, 이때부터 종묘 신주와 사직 위판의 피란 생활이 시작됐다.

책을 공동 집필한 규장각의 강문식·이현진 박사는 “조선의 종묘와 사직은 동아시아의 보편적 문화와 더불어 조선만의 독특한 유교 문화, 왕실 문화, 농경 문화가 집약돼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며 “바로 이 점에서 조선의 종묘와 사직은 조선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관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김도연기자)   

서울신문(11. 08. 20) 왕과 토론하던 그들… 조선 경연의 모든 것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임금은 어떻게 유교의 가르침을 몸에 익히고, 이를 정사에 반영할 수 있었을까. 원리주의적 성리학의 나라, 조선은 어떻게 임금을 유교에 따라 행동하게 만들었을까.

대학자 기대승·율곡 이이 기록 생생
‘경연, 왕의 공부’(김태완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는 경연이 무엇인지, 그 역할과 내용을 당시 기록에 근거해 풀어놓았다. 유래와 역사와 함께 경연에서 쓰인 교재, 경연관의 선발 방법, 경연이 이루어지는 절차와 목표 등을 당시 자료들과 함께 상세하게 설명했다.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던 유교의 국가 조선에서 왕들의 생각을 어떻게 가다듬게 하고 벼리게 했는지를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경연에 참여, 왕과 토론을 벌이는 경연관 역할을 했던 조선시대 대학자 고봉 기대승과 율곡 이이의 기록도 한 장으로 엮어 당시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기대승의 ‘논사록’(思錄)과 율곡의 ‘경연일기’ 일부를 번역하고 설명해 놓았다. 기대승이 명종 때 홍문관 수찬으로, 선조 때 승지로 왕의 아침 경연인 조강(朝講)에 참여한 27일 31회의 기록을 후학들이 모은 것이 논사록. 이이의 경연일기는 이이가 경연에 참여해 보고 듣고 겪은 내용과 건의한 내용, 당시 사회상들을 정리한 것이다.

조선의 임금은 경연에서 당대 최고의 석학들과 함께 유교 경전과 중국 및 우리나라의 역사를 공부했다. 이 자리는 단순한 경서 공부를 넘어서 실생활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문제들을 유교적 덕목과 가르침에 비추어 토론하는 자리가 됐다. 임금과 신하가 경서의 내용은 물론 실제 사건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가치를 논하면서 보다 나은 정책 방향을 모색하는 계기로 삼았다.

이 때문에 경연은 왕권의 남용을 규제하고 보다 나은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아이디어를 얻는 자리이기도 했다. 당시 경연은 아침의 조강과 정오의 주강(晝講), 오후 석강(夕講)의 삼시강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특강, 보강 형태의 소대(召對)로 구성됐다.

왕의 공부·정책모색 과정 알 수 있어
왕과 신하는 경연의 자리에서 논어, 맹자, 예기, 중용 등 경서는 물론 다양한 역사서를 인용하고 검토하면서 현실 문제의 척도로 삼으려고 노력했다. 따라서 경연은 정책의 일관성과 함께 유교적 가치가 정치와 행정에 미치는 직접적인 자리가 되기도 했다.

논사록에서 기대승은 “언로가 막히면 국가가 위태로워진다.”고 명종에게 진언했고, 을사사화때 화를 입은 이언적 등에 대한 신원문제를 비롯한 사화에 대한 재평가 문제들을 지적하기도 했다. 또 방납 등 당시 공물 납부 문제점 등 행정 폐단을 거론했고, 송나라 효종과 신종 등 격변기 중국의 군주들을 논하면서 왕을 경계시키기도 했다.(이석우 편집위원) 

11. 0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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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ITAS 2011-08-28 22:57   좋아요 0 | URL
너머북스에서 작년에 출간한 <고종 44년의 비원>이라는 책에서 왕을 교육하는 '경연'과 '경학'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되었는데 고종만 다루고 있음에도 재미있었습니다. 이건 조선시대대부분을 아우르고 있어 더 흥미진진하겠네요!

로쟈 2011-08-30 08:29   좋아요 0 | URL
네 '경연에 관한 모든 것' 정도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