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대 사상의 세계>(살림, 2004)의 저자 벤저민 슈워츠의 또 다른 책이 출간됐다. <부와 권력을 찾아서>(한길사, 2006)가 그것인데, 제목만 봐서는 이게 중국학, 내지는 중국사상사에 관한 책이란 걸 짐작하기 어렵겠다. 원제가 'In Search of Wealth and Power'(1964)이니까 역자나 출판사의 잘못은 아닌데, 그래도 좀더 풀어주었다면 낫지 않았을까 싶다. 원서의 부제는 '옌푸(엄복)와 서양'이다. 소개의 글과 리뷰 한 편을 옮겨온다.  

-19세기 들어서 서구 문명과 맞딱뜨린 중국의 모습을 엄복(嚴復, 1853~1921)이라는 당대의 학자를 통해 들여다본다. 20세기 서구에서 대표적인 중국학자로 기록된 학자 벤저민 슈워츠의 주저로, 그는 도올 김용옥의 유학 시절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다.

-엄복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존 스튜어트의 <자유론> 등 서양의 지식과 사상을 번역, 중국에 적극적으로 소개하여 중국의 유교적 전통과 서구사상의 조화를 시도한 인물이다. 노신과 모택동 역시 그의 번역을 통해 서양 문물을 접했을 정도로 근대 중국을 형성하는 데 엄복이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중국의 한 선각적인 지식인 엄복의 눈에 비친 서구사상은 어떤 모습이었고 어떻게 해석되고 받아들여졌을까? 이 의문에 집중하는 책 전반에서 서구의 지식의 사상은 엄복과 슈워츠에 의해 이중으로 걸러진다. 즉 중국인 엄복이 본 서양을 서양인 슈워츠가 다시 보는 '번역의 번역서'인 셈이다.

-'국가의 부강'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했던 엄복의 서구 문물 번역은 대부분이 의역, 더 나아가 '창조적 왜곡'으로 나타난다. 권력의 외부로 밀려난 삶을 살다가 심지어 말년에는 서구 문물에 대한 신봉을 포기하고 노장사상에 천착하기도 하는데, 지은이는 여러 각도에서 엄복의 학문에 대한 태도를 살펴보며 그에 대한 이해와 변호를 시도한다. 그 가운데 근대화의 문제, 산업사회의 자유·평등·민주주의 이념 등에 대해 전반적인 비판과 통찰을 보여준다. 

경향신문(06. 07. 08) 한 중국인이 본 서구사상과 한계

하버드대 교수였던 벤저민 슈워츠(1916~99)가 쓴 <부와 권력을 찾아서>는 엄복(嚴復·1853~1921)의 눈에 비친 서구사상과 그 한계를 살핀다. 중국인이 본 서양을 서양인이 다시 본, ‘번역의 번역서’인 셈이다. 엄복은 근대서양의 사상을 중국에 첫 소개한 계몽사상가. “(국가의 부강이라는) 거대한 근대적 과업을 달성키 위하여 피눈물나는 ‘붓의 투쟁’을 벌인 인물”(김용옥)이다.

(*)도올의 추천사: 엄복이라는 인간에 대해 나는 많은 말을 할 수가 없다. 바로 이 책이 너무도 많은 말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이며 나의 박사학위 지도교수인 하버드대 벤저민 슈워츠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용옥! 한 세기 전에 태어났더라면 너도 이와 같은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사진은 슈워츠 교수와 그의 지도로 학위를 받고 갓 귀국하여 고려대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의 김용옥.)

-지구최강 중국이 동네북이 된 당시 그는 영국 유학 이후 서양의 부와 힘의 비밀을 찾는 데 젊음을 바쳤다. 애덤 스미스, 밀, 몽테스키외 등을 중국어로 옮겼다. 루쉰과 마오쩌둥이 그의 책을 읽으며 컸다. 그는 영국의 진화론적 윤리학의 철학자 스펜서(1820∼1903)의 정신적 제자였다(*엄복의 사회진화론이 한국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박노자의 <우승과 열패의 신화>를 참조할 수 있다. 하지만, 허버트 스페서의 책은 국내에 번역된 바 없는 듯하다. 이럴 때의 당혹감이라니!).  

-하지만 ‘의역(意譯)’의 방법으로 ‘원전’을 왜곡했다. 중국의 부강을 위해. 예컨대 스펜서는 국가를 개인 자유를 억압하는 악으로 봤으나, 엄복은 국가주의를 강조했다. 스펜서가 비판한 영국의 제국주의적 팽창도 긍정적으로 여겼다. 그의 결론은 이렇다. “개인의 자유를 바탕으로 한 역동적 에너지의 분출이 생존투쟁을 거쳐 이룩한 힘이 바로 국가의 힘으로 연결된다.” 그가 보기에 서양문화는 인간 에너지를 고양시키고 있었다. 중국은 황제와 극소수 관리가 세상 전체를 결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엄복은 1차대전 등을 겪으며 서양의 진보란 이기심·살육·파렴치와 동전의 양면이라고 느꼈다. 노장을 새로 읽으며 은둔생활을 하다 죽었다. 우리는 엄복의 질문 앞에 서 있다. 부강이 최고 가치일까. 그렇다고 노장이 대안일까(*물론 부와 권력을 찾는 엄복의 제자들은 우리 주변에 널리고 널렸다.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기란 얼마나 힘든 것인지!).(김중식 기자)

06. 07.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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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옌푸와 사회진화론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06-12 22:40 
    얼마전부터 중국 근대 지식인들에 관한 책과 사회진화론에 관한 책들을 모으고 있는데, 계기가 된 건 옌푸(엄복)의 <천연론>(소명출판, 2008)과 <정치학이란 무엇인가>(성균관대출판부, 2009)를 지난달에 뒤늦게발견한 때문이다. <천연론>은 토머스 헉슬리의 <진화와 윤리>(지만지, 2009)의 중국어 번역이다. 그러니까 그걸 다시 우리말로 옮기는 건 '중역'인데, 그럼에도 이 중역이 의미가 있는 건은 옌푸의

 

 

 

 

최근에 나온 책들 가운데 미국학과 관련하여 단연 눈에 띄는 책은 세이무어 마틴 립셋의 <미국 예외주의>(후마니타스, 2006)이다. 미국학에 대해서라면 역시나 최근에 나온 편역서 <미국학의 이론과 실제>(서울대출판부, 2006)이나 국내 저자들의 <한국에서의 미국학>(한국외대출판부, 2005), <미국학>(살림, 2003) 등이 '교과서'적인 성격을 갖고 있지만, 내가 읽고 싶은 책은 보다 '리얼한' 쪽이고 <미국 예외주의>는 거기에 부합해 보인다. 굳이 꼽자면 루이스 메넌드의 <메타피지컬 클럽>(민음사, 2006)과 함께 올 상반기에 나온 미국학 관련 '두 권의 책'이다. 하지만 아직 손에 들지 못한지라, 프리뷰 차원에서 언론의 리뷰 하나를 옮겨오고, 아울러 인용차원에서 교수신문에 게재된 '해외 동향 보고' 하나를 옮겨온다. 이 보고는 이주 문제를 통해서 '미국 예외주의'를 비판하는 세 권의 책들을 다루고 있다.

   

중앙일보(06. 07. 08) 자유국가 미국에선 왜 사회주의 힘 못 쓰나

-미국은 독특한 나라다. 이 나라 국민은 낙태의 합법화이나 동성애자 권리 같은 종교나 윤리 문제를 놓고 편을 갈라 국가가 '쩍' 갈라질 정도로 떠들썩하게 싸운다. 하지만 미 정치학회와 사회학회 회장을 모두 지낸 지은이에 따르면 이는 미국 밖에선 쟁점이 되지 않는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같은 가톨릭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개인 문제에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며 왈가왈부하는 건 미국뿐이다.

-게다가 미국은 선진국에선 유일하게 전국민 건강보험이 없다. 산업화한 나라 가운데 소득분배는 가장 불평등하며, 사회보장 지출 비율은 최하위권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대통령의 성추문을 탄핵의 이유로 삼을 만큼 도덕주의가 넘친다. 유럽이라면 웃고 말았을 건데, 원.

-하지만 이런 부정적인 면과 동시에 미국은 감탄할 만큼 개방적인 민주주의 국가라는 긍정적 면이 있다. 1994년의 설문 결과를 보면 미국과 미국인의 특성이 잘 드러난다. 응답자의 74%가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고 답했다. 88%는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된 사람을 존경하며, 78%는 미국의 힘이 대부분 기업가의 성공에서 비롯된다고 여긴다. 기회 평등 아래 개인 능력을 존중하는 특성이 잘 드러난다.

-응답자들은 또 '성공 기회를 얻는 것과 실패로부터 보호받는 것' 사이에서 76%가 기회를 선호했으며 20%만이 안전보장을 택했다. 사회보장보다 기회 평등을 선호한 것이다. 사실 역사적으로 볼 때 미국에서 평등주의는 건국의 이유이며, 능력주의는 사회의 근간이다. 이 둘은 미국을 진취적이고 힘있는 나라로 만든 원동력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이런 미국의 특징이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쏟아내는 '양날의 칼'이라고 강조한다. 예로 능력주의는 개인의 책임감과 진취성을 기르지만 동시에 이기적 행동과 소수자에 대한 포용력 부족으로 이어질 수 있다. 패배자의 범죄.부정.소송남발을 부르기도 한다. 유럽과는 현저히 다른 이런 특징은 미국을 자유국가에선 드물게 사회주가 힘을 쓰지 못하는 국가로 이끌었다. 유럽에선 중세부터의 전통에 따라 계급이 고정된 신분을 뜻했다. 이 때문에 노동계급은 자신을 계급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이는 사회주의 정당활동으로 이어졌다.

-반면 평등에서 출발해 개인의 진취성을 강조하는 미국에선 계급을 경제적인 성취의 결과로만 봤다. 기회의 평등을 보장받으니 계급의식이 싹틀 여지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주의 정당이 뿌리내릴 틈새가 없었다는 논리다. 흥미로운 설명이다. 다만 흑인들은 결과의 평등을 주장하며 개인 진취성보다 국가 개입과 지원을 요구한다. 아무튼 미국은 특이한 나라다.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미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읽은 책이다. 미국과 갈수록 닮아가는 우리 사회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채인택 기자) 

교수신문(06. 07. 08) 과장된 ‘미국 例外主義’에 대한 역사적 객관화

-미국이 다른 국가나 지역과는 다르다는 관념, 즉 미국 예외주의는 멀게는 토크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토크빌은 1835년 출간된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미국이 그 기원과 민족적 성격, 그리고 역사적인 진화과정과 정치적, 종교적 제도 등에서 유럽의 국가들과는 근본적으로 상이하다고 결론 내린다.

 

 

 

 

미국 예외주의, 토크빌과 엥겔스의 관찰에 기원
-이러한 미국 예외주의의 결론을 도출하는 데 있어 이주문제는 핵심적인 고려사항 중 하나였다. 특히 그는 미국의 예기치 못한 급격한 성장을 미국의 무제한적이고 관대한 이주 정책과 그러한 이주를 수용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광대한 토지자원 및 토지사용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정책에서 발견했다.

-즉, 로크적 소유관념에 기반한 이주자들의 토지소유와 그것에 기반한 자유로운 시민들의 자발적 결사 속에서 미국 민주주의의 예외성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필라델피아와 뉴욕에서 그가 발견한 가난한 흑인들과 유럽 이주자들로 인해 미국 사회가 ‘이주의 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물론 이주와 관련해 미국 예외주의를 주장한 이는 토크빌만은 아니었다. 1893년에 엥겔스는 미국에서 사회주의정당이 존재하기 힘든 이유를 이주에 따른 노동자 계급 내부의 인종적, 문화혈통적 분화에서 찾았다. 이주는 노동자 계급을 토박이와 외국인으로 나뉠 뿐만 아니라, 후자는 다시 아일랜드인, 독일인, 체코인, 폴란드인, 스칸디나비아인, 그리고 흑인 등으로 나뉜다는 것이다.

-이주에 의해 형성된 이러한 인종적·문화혈통적 분화 속에서, 진정으로 강력한 비정상적인 동기부여 없이는 노동자 계급이 하나의 단일한 정당을 형성하는 것은 힘들다고 엥겔스는 결론 내린다. 이러한 엥겔스의 주장은 이후 좀바르트에 의해 미국에서 노동운동이 발전하지 못하는 핵심 요인으로서 간주되면서 미국 예외주의 담론의 한 축을 형성했다.

-최근에 출간된 이주문제에 관한 세 권의 책은 직간접적으로 이러한 미국 예외주의의에 도전한다. 우선 졸버그(Ari Zolberg)의 ‘A Nation by Design’(하버드대출판부, 2006)은 식민지 시대부터 현재까지의 미국의 이주정책을 국제 자본주의 및 국가 체제와, 자본 대 노동 및 국가 정체성과 관련된 국내 세력들 간의 관계속에서 추적함으로써, 토크빌이 미국을 방문했던 시대가 토크빌이 언급한 것처럼 무제한적인 이주가 허용되던 시대가 아니라, 각각의 주(state)나 연방 차원에서 다양한 이주정책이 관철되고 있었던 시기였다는 점을 증명한다. 그리고 이주 문제, 특히 국가의 이주 정책을 미국 예외주의라는 틀에서 보기보다는, 다른 국가와의 비교적 관점을 통해서 바라보고 있다.

이주자들의 노동조합도 가능해
-파인(Janice Fine)의 ‘Worker Centers’(코넬대출판부, 2006)는 1970년부터 현재까지 성장한 이주자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노동센터에 대해 연구한 것이다. 이 저작의 핵심적인 주장의 하나는 이주자 공동체의 내부에서 노동조합이 형성될 수 있고 노동운동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즉, 엥겔스가 노동 운동이나 사회주의 정당 건설에 부정적으로 작동한다고 주장한 인종이나 문화혈통적 집단이 사실상 노동운동의 기반이 돼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의의는 그람시적인 의미에서 미국 노동운동의 예외주의를 주장한 카츠넬슨(Ira Katznelson)과 비교해보면 좀 더 분명해진다. 이미 20여년전에 출간된 ‘City Trenches’(시카고대출판부, 1981)에서 그는 미국의 노동운동이 유럽에 비해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를 도시에서 노동자들이 진지를 구축하는 방식에서 찾았다. 즉, 노동의 논리로서 구성되는 작업장과는 달리, 그들의 삶의 공간인 공동체라는 진지의 구성 논리는 이주자들의 인종이나 문화혈통적 집단의 논리에 따라 구축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의 공간과 삶의 공간의 철저한 분리를 그는 미국 예외주의의 핵심으로 파악했다.

-이주의 문제를 통해 미국 예외주의에 직간접적으로 도전하는 두 저작과는 달리, 헤이덕(Ron Hayduk)의 ‘Democracy for All’(Routledge, 2006)은 미국 예외주의가 간과해왔던 예외성에 착목한다. 이주자들의 투표권에 초점을 맞춘 그의 연구는 미국에서 1776년부터 1926년까지 40개 이상의 주에서 시민권과 상관없이 이주자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초기 미국인들은 이방인들에 대한 투표권의 부여를 이주자들이 미국사회로 통합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파악해 장려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19세기 후반부터 이주자들에 의한 투표가 기존의 정치, 경제적 지배세력에게 위협이 되면서, 그들의 투표권은 박탈됐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미국 예외주의와 이주 문제와 관련한 저작들의 최소한의 공통점은 기존 미국 예외주의의 탈역사적으로 획일화된 관념에 대한 비판이라 볼 수 있다. 기존의 미국 예외주의는 토크빌에 기원을 두고 있든, 엥겔스에 기원을 두고 있든 미국 예외주의의 내용이 시공간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관념에 취약하다.

그러나 미국인들에게 ‘예외’는 ‘일상’이다
-이러한 기존의 미국 예외주의의 내용적 고정성은 미국을 연구하는 데 있어 방법론적 전략을 구축하는 데 동어반복의 오류나 종속변수에 초점을 맞출 때 나타나는 독립변수의 과장을 피하기 어려운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좀더 중요한 문제는 기존의 미국 예외주의의 내용적 고정성이 이주자들에게 미치는 효과일 것이다.

-물론 립셋(Seymour Martin Lipset)이 적절히 언급하고 있듯이 미국 예외주의의 내용은 양날의 칼을 가지고 있다. 즉,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 예외주의의 긍정적인 면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주자들이 있다면, 그들의 사유나 운동은 비미국적으로 취급되거나 부정적인 개념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데 있다. 즉, 미국에서 미국 예외주의는 ‘예외’가 아닌 반면에, 그러한 이주자들의 사유와 운동은 일탈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최근의 세 저작이 중요해지는 맥락은 바로 이러한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이충훈 미국통신원)

06. 07. 09.

P.S. 조금 연착한 한겨레의 리뷰도 자료삼아 옮겨놓는다. 리뷰로서는 가장 자세하다.

한겨레(06. 07. 15) 마르크스를 사랑한 ‘네오콘’ 립셋 읽으면 미국이 보인다

-세이무어 마틴 립셋은 미국을 들여다보는 흥미로운 통로다. 좌파와 우파를 넘나드는 기묘하고 독특한 학문적 세계를 지녔다. 그의 사상적 편력은 미국 지성사를 대표한다. 립셋은 미국 정치학회와 사회학회 회장을 동시에 역임한 유일한 학자다. 세계 사회과학계의 ‘대부’로서 자타가 공인하는 두 자리를 번갈아 차지했으니 립셋의 학문적 성취는 불문가지다. 계층계급적 분석을 통해 정당과 민주주의 문제에 천착한 그를 빼놓고는 미국 사회과학을 말할 수 없고, 미국으로부터 결정적 영향을 받은 한국 정치학과 사회학을 논할 수 없다.

-그가 쓴 <미국 예외주의>(후마니타스 펴냄)가 국내에 번역됐다. 미국의 과거와 현재, 좌파와 우파를 동시에 살펴볼 기회다. 그의 저술 가운데 국내에 번역된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사상적 편력은 더욱 흥미롭다. 원래 립셋은 트로츠키주의 성향의 좌파 학자였다. 스탈린주의를 강력하게 비판하는 과정에서 미국 좌파 지식인 내에서 ‘반스탈린주의 분파’를 대표하게 됐다. 그러나 60년대에 등장한 미국 신좌파의 ‘반국가주의’ 성향과 거리를 두면서, 오히려 공화당의 구보수주의와 친화성을 발휘한다. 민주주의·인권 등의 가치를 미국 외부에 전파시키는 적극적 구실을 강조하는 대목에서 공화당 우파와 만난 것이다. 실제로 네오콘 1세대의 대부분은 이후 레이건·부시 정권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면서 네오콘 2세대를 창출했다.

-그러나 정작 립셋은 레이건 정부 출범을 전후해 ‘동료 네오콘’들과도 결별했다. 그는 시장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유럽 사민주의의 복지프로그램을 미국에 뿌리내리는 데 관심을 둔다. 립셋은 “레이건과 대처는 네오콘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정통 신보수주의자’와는 거리가 먼 고전적 시장자유주의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여러 정치학 이론을 내놓았다. ‘민주주의가 발전하려면 이에 걸맞은 사회경제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테제가 그의 작품이다(*이젠 상식 아닌가? 그러한 기반 없는 민주주의란 조선인민민주주의 정도라고 나는 생각한다). 오늘날까지도 한국의 우파들이 즐겨 사용하는 레토릭이다. 립셋 역시 근대화론자였던 셈인데, 역사의 진보를 사회경제적 토대로부터 찾았던 카를 마르크스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미국 예외주의>를 비롯한 립셋의 여러 저술에는 마르크스가 즐겨 인용된다(*우파의 레토릭이 마르크스로부터 영감을 얻은 것이다?! 그럼 좌파의 영감은 어디에서?).

-“한국의 정당구조는 사회적 갈등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최장집 고려대 교수의 주장도 립셋의 방법론에서 일부 영향을 받았다. 립셋은 “사회는 갈등으로 이뤄졌는데 이를 억압하면 더 급진화된다. 현대 민주주의는 이런 갈등을 정당을 통해 드러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갈등을 정당체제 안으로 포섭해야 한다는 립셋의 방법론을 최 교수는 한국적 현실에서 더 ‘급진화’시킨 셈이다.

-지난 2000년 립셋은 그의 마지막 저술인 <민주주의 세기>(Democratic Century)를 집필하다 쓰러졌다. 그의 제자들이 모여 책을 완성하긴 했지만, 1922년 태어나 여든을 넘긴 그가 또다른 글을 남기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1995년에 출간한 <미국 예외주의>는 립셋이 손수 완성한 사실상의 최후 저술이 된 셈이다. 이 책을 보면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악마’와 싸우는 데 모든 것을 바치는 미국인들의 종교적 열정을 적나라하게 이해할 수 있다. 실은 립셋 스스로가 그렇게 살았다. 그를 사랑할지 미워할지는 나중의 문제다.(안수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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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날짜 한국일보에서 미국 작가 레이몬드 챈들러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장르소설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혹은 그럴 만한 여유를 못내는) 처지이지만 '챈들러 컬렉션'에 대한 욕심을 부추기는 기사였다. 여기에 옮겨놓는 걸로 당분간은 그 욕심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필자는 최윤필 기자이며, 타이틀은 "추리소설 대표주자 레이먼드 챈들러: "썩은 도시 LA, 검은 속 보여주지""이다.

-“‘필립 말로’ 시리즈는 정직한 한 인간이 부패한 사회에서 고귀하게 살아가려는 분투를 담고 있습니다. 그 분투에서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는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그는 빈털터리가 되거나 시니컬해지거나 삶에 관한 경구를 내뱉거나 간혹 정사를 즐기게 될 지도 모릅니다. 혹은 그는 할리우드의 영화제작자처럼 사악해지고 남의 비위나 맞추며 무례해질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말로 또래의 젊은 남자가 고상하게 부를 누릴 수 있을까요. 부정하지 않고서야 성공할 수 없는 냉혹하고도 분명한 현실을 받아들여 스스로를 타락시키지 않고 말입니다.”- 챈들러가 존 하우스만(영화제작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추리문학계의 거물 스티븐 킹은 ‘창작론’이라는 부제를 단 저서 <유혹하는 글쓰기>(김영사)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직유는 1940년대와 1950년대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이나 한심한 싸구려 소설에서 찾아낸 것들이다”고 썼다. 그는 ‘하드보일드 추리소설’과 ‘한심한 싸구려 소설’을 구분했지만, 40~50년대 당시의 미국 문단에서 그 둘의 구분은 무의미했다. 그 ‘한심한 싸구려’ 하드보일드 작가들은 하지만, 당대의 근엄한 주류들을 비웃듯 40년대 할리우드의 ‘필름 느와르’라는 흐름을 선도했고, 사후 하드보일드 리얼리즘의 고전으로 영미권 문학의 진지한 논문 주제 가운데 하나가 됐다.

-이들이 바로, 대시엘 해멧, 로스 맥도널드, 그리고 여기 소개하는 레이먼드 챈들러(1888~1959)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기나긴 이별>은 12번을 읽었다. 그는 나의 영웅이었다”고 말했고, 폴 오스터가 “그는 미국을 이야기하는 새로운 방식을 고안해냈고, 이후 미국을 예전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던 바로 ‘그’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기자생활을 하며 시와 수필을 썼고, 여러 직업을 전전한 끝에 석유회사 부사장으로 출세하지만, 음주와 장기 결근으로 쫓겨난 이력의 작가다. 펄프 매거진에 범죄단편을 기고하며 문학 인생을 시작한 그는 첫 장편 <빅 슬립>(39년)부터 후기 걸작 <기나긴 이별>(54년)까지 6권의 장편 추리소설(박현주 옮김, 북하우스)을 썼다.

 

 

 

 

-오스터의 말처럼, 그의 문학은 현대 미국을 읽는 효율적인 코드 가운데 하나다. 인종의 용광로라는 미국에서도 가장 비등점이 높은 도시 LA를, 군수산업을 필두로 한 산업문명의 어지러운 성장과 사회ㆍ사상ㆍ가치의 부패와 혼란으로 뒤숭숭했던 30년대 말~ 50년대를 그의 소설은 말 그대로 하드보일드하게 관류한다. 그의 ‘페르소나’라 해도 좋을, 사립 탐정 ‘필립 말로’ 와 함께(*아래는 말로 역의 험프리 보가트).

-183㎝의 키에 85㎏의 당당한 체구, 경찰직에서 해고당한 33살 독신의 낭만적 냉소주의자 ‘말로’. 그는 고전적 의미에서의 정의의 투사도, 영웅도 아니다. 자신의 일에 때로는 목숨도 걸지만 사명감 따위는 없다. 한 마디로 그는 세상과 삶 자체를 냉소하는 ‘삐딱한 프로’다. 경찰 일에 협조하지 않았다고 경찰은 그를 욱대기고 그는 경찰을 이죽거리는 장면이다. “베이시티에서는 그 이유만으로 당신을 죽여버릴 수 있었어.”(경찰) “베이시티에서는 파란 넥타이를 매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날 죽일 수 있었겠지.”(말로) “그 이유만으로 당신을 영업정지시킬 수 있었어.”(경찰) “고려해보시지. 난 이 직업을 좋아한 적이 없었거든.”(말로) -<리틀 시스터>에서

-챈들러 문장의 매력은, 인물의 내면까지 공간에 투영시키며 치밀하게 그리고 집요하게 끌고 가는 묘사의 힘, 그리고 ‘~듯이’ ‘~처럼’으로 이어지는 그 특유의 비유에서 찾을 수 있다. 가령 이런 문장. “장군은 다시 천천히, 일자리를 얻지 못한 쇼걸이 마지막 남은 고급스타킹을 사용하듯 조심스럽게 힘을 사용해서 말했다.” -‘빅슬립’에서

-챈들러는, 그리고 ‘말로’는 당대의 타락과 위선을 혐오하고 배척하는 대신, 냉소와 조롱, 연민과 익살로 포용한다. 고독한 감성과 치밀한 추리의 세계로 품는다. <빅슬립>의 33살 청년 탐정 말로는 <하이 윈도> <안녕 내사랑> <호수의 여인> <리틀 시스터> <기나긴 이별>까지 편을 이어가며 자신만의 아름다운 염세주의 미학을 구축해간다.

-냉혹하고 현실적인 팜므 파탈형 여성들을 주로 그렸던 소설에서와 달리, 18살 연상의 아내를 생애를 두고 열렬히 사랑했다는 챈들러는 <기나긴 이별> 발표 직후 아내가 숨지자 실의에 빠져 알코올 중독자로 살다 세상을 떠난다.

-그의 첫 장편 <빅 슬립>은 지난 해 말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의 100대 영어소설에 들었고, 그의 팬 대다수가 최고로 꼽는 <기나긴 이별>은 ‘히치콕 매거진’선정 세계 10대 추리소설에 꼽혔다. 올 여름, 그와의 연애에 빠져보자(*내가 올여름에 챈들러에 빠질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지만, 그렇다고 이 페이퍼가 'long goodbye'가  되기를 바라진 않는다. 암만!).

06. 07.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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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7-09 15:43   좋아요 0 | URL
저는 그 탐정의 표준전 모델이 된 필립 말로가 싫어요 ㅠ.ㅠ 그래도 퍼갑니다^^

로쟈 2006-07-09 15:49   좋아요 0 | URL
추리소설 애호가께서 안티-말로시라니까 다소 의외이긴 합니다.^^
 

지난달에 언론에 소개되었던 책 하나는 재미 사회학자 신기욱 교수의 <한국의 혈통 민족주의(Ethnic Nationalism in Korea)>이다(같은 제목이 '한국의 종족적 민족주의'로도 번역되었다). 문화일보의 인터뷰 기사와 동아일보의 소개 기사를 옮겨놓는다. 번역본이 출간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 '프리뷰'에 집어넣는다.

cover for Ethnic Nationalism in Korea

문화일보(06. 06. 27)  ‘혈통 민족’ 강조가 사상 빈곤 불렀다

-“지난 100년 동안 한국사회를 강하게 움직인 사회구성원리는 가족주의나 유교보다는 단일민족의식, 즉 혈 통에 기반한 민족주의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 3국 모두 다른 지역에 비해 민족주의가 매우 강한 게 특징이지요. 최근의 한·일, 한·중, 중·일 관계의 긴장은 뿌리가 모두 민족주의에 기반하고 있으며 각국의 정치권에서 이를 이용해온 측면 이 큽니다.”

-최근 미국 스탠퍼드대 출판부에서 <한국의 혈통 민족주의(Ethnic Nationalism in Korea·사진)>란 영문저서를 출간한 신기욱(46)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APARC) 소장 겸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 역사에서 근대에 들어와 도입된 과도한 민족주의가 오늘날 한국사회의 사상적 빈곤을 초래했다”고 비 판했다. 스탠퍼드대 APARC의 아시아지부(일본) 개설 협의와 다음달(*이달) 6~7일 고려대 국제한국학센터(소장 이종화 교수)가 개최하는 제2차 국제한국학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중인 신 교수는 지난 23일 문화일보 회의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최근의 뉴라이트와 뉴레프트를 포함한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이념적·철학적 기반이 약하다”며 이 같이 밝혔다.

-“프랑스와 영국은 자유주의를 기반으로 민족주의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파시즘으로 가지 않고 민주주의를 유지했던 반면, 자유주의 기반이 약했던 독일과 일본은 파시즘과 군국주의로 치달았습 니다. 우리도 19세기 말~20세기 초 자유주의 사상이 들어와 논의가 활발했지만, 일제의 침략을 받으면서 외부와 싸우기 위해 내 부단결을 강조하다 보니까 인권 등 자유주의가 뿌리를 내리지 못 했어요.”

-3부 13개 장으로 구성된 신 교수의 책은 단일민족의식에 기초한 한국 민족주의의 역사적 기원과 민족주의의 정치, 세계화와 통일 등 현재의 이슈까지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1945년 이후 민족주의가 이승만, 김일성, 박정희 등 남북한 정권에 의해 권력유지를 위해 활용되면서 강화된 것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시각에서 접근했다.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나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시대론 모두 그 핵심은 세계질서를 민족국가간 의 치열한 경쟁으로 보는 사회진화론적 시각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가 약화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됐다고 볼 수 있지요.”

-신 교수는 21세기에도 상당기간 한국사회에서 민족주의가 강세를 발휘할 것으로 내다봤다. 분단된 현실에서 통일의 당위성을 부 여하는 게 민족주의이고 중·일간 헤게모니 다툼이 시작된 동북 아시아 정세에서 우리의 생존을 위해 내부단결을 강조하다보면 세계화·지역화라는 추세에도 불구하고 민족주의가 강조될 수밖 에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10~20년 사이 영향력이 줄어들 것 같지 않은 민족주의 의 부정적 측면을 최소화하기 위해 제도화가 중요한 과제입니다. 외국인노동자와 같은 민족이지만 현실세계에서 2류 시민으로 전락한 조선족, 앞으로 남한 주도로 통일될 경우 한국에서 북한주 민의 위치 등을 생각할 때, 문화적 다양성을 수용하고 이들의 인권을 보호해 줄 수 있는 법적 장치 마련이 필요해요.”

-스탠퍼드대 APARC 내 한국학 프로그램 책임자이기도 한 신 교수 는 민족주의 외에도 식민지 근대성이나 한·미관계, 과거사 문제 등 최근 국내 학계에서 첨예한 이슈가 되고 있는 사안들에 대해, 외국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연구자의 시각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왔다.

 

 

 



-“근대성을 가치 개념으로 보고 ‘일제가 한국을 수탈했느냐, 아니면 근대화시켰느냐’는 이분법적인 질문이 잘못됐다”고 강조 한 신 교수는 식민지 시기 한국인들이 어떻게 근대의 모습을 만들어갔는지를 밝히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식민지 근대의 인정과 관계없이 이광수는 한국 근대문학의 효시이기 때문이다.

-현재 신 교수는 두 권의 책을 준비 중이다. 1992년부터 2004년까지 한·미 양국의 신문에 실린 언론기사를 계량적으로 분석해 최근 한·미관계 변화상을 살펴보는 연구서와 오는 10월 출간예정 인 과거사와 화해문제를 다룬 편저서다. “언론 분석 결과, 한·미관계의 터닝포인트는 김대중 정부 때입니다. 당시 북한문제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한·미관계가 벌어지기 시작했어요. 최근 북한 미사일도 한국쪽에서 자꾸 다른 견해를 나타내지 않습니까. 한국에선 북한이 무슨 위협이 되느냐 하지만, 미국에선 핵물질 등이 글로벌 테러리스트에게 넘어갈 가능성 등 실질적인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또 과거사를 한국전쟁과 광주항쟁 등 내부적인 문제와 일본과의 외부적인 문제로 나눠 본 신 교수는 “한국은 남미 독재정권이나 독일·폴란드의 경우와는 달리 내·외부적인 과거사 문제가 모두 겹치는 특수한 사례”라며 “한·중·일 모두 동아시아의 화 해와 평화를 위한 비전있는 리더가 없는 탓에 내부적인 문제에 비해, 외부적인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신 교수는 “주로 인문학 중심인 미국 대학의 한국학연구소와 정책 중심인 동부의 싱크탱크와 달리 사회과학 중심으로 현대문제 와 정책적 함의가 큰 문제들에 초점을 맞춰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스탠퍼드대 APARC와 한국학 프로그램의 운영방침을 밝혔다.(최영창 기자)

동아일보(06. 06. 13) "美스텐퍼드대 신기욱 교수 ‘한국의 종족적 민족주의’ 발간"

-“과도한 민족주의가 한국사회의 사상적 빈곤을 낳았다.” 한국사회의 반지성적 풍토를 민족주의의 팽창과 결부해서 분석한 책이 미국 스탠퍼드대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APARC) 소장으로 있는 신기욱(사회학) 교수가 쓴 <한국의 종족적 민족주의>(Ethnic Nationalism in Korea)이다.

-신 교수는 영문으로 발간된 이 책에서 현재 한국 반미주의의 뿌리로서 한국 민족주의가 19세기 후반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형성, 변형, 성장해 왔는지를 △역사적 기원 △민족주의의 정치 △현재의 이슈로 나눠서 심층 분석했다.

-신 교수는 한국의 민족주의가 일제의 침략에 대항담론으로 형성되는 과정에서 혈연과 단일민족의식이 강조되면서 그 기원부터 종족적 민족주의의 성격을 지니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런 한국민족주의는 1920년대 이후 사회주의와 경쟁을 하면서 민족이 계급을 대신할 개념으로 최우선시됐고 그 과정에서 민족지상주의로 변질됐다는 것.

-신 교수는 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혈연적 종족적 민족주의는 유럽과 일본에서 유행하던 파시즘의 영향을 받았으며 사회주의를 배격한다는 점에서도 양자의 친근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남선, 이광수 등 식민지 시대 민족주의자들이 친일노선을 걷게 된 것도 일제 군국주의와 이런 속성을 공유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신 교수는 이런 혈연적 종족적 민족주의의 전통은 광복 이후 권위주의 및 공산주의와 결합하며 남북 독재정권의 중요한 이념적 기반으로 계승됐다고 주장했다. 이승만, 박정희 정권이 일본의 군국주의 체제와 유사한 면모를 보이고, 북한이 사회주의의 외피 아래 유례를 찾기 힘든 민족주의로 빠진 것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

 

 

 



-한국의 근대화는 자유주의에 기반해 민족국가를 성립하며 민주화를 이루어 갔던 영국 프랑스 등과 달리 자유주의가 결핍된 채 집단적 혈연적 민족주의의 발전이 이뤄져 결국 나치즘과 군국주의로 귀결됐던 독일이나 일본의 모델을 닮았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자유주의의 결핍과 과도한 민족주의의 발전으로 한국 좌우 진영 모두가 독자적인 이론과 철학적 기반을 개발하는 방향으로 나가지 못하고 민족주의에 기생한 수구주의와 독재주의를 낳았다는 분석이다.

-신 교수는 특히 박정희의 조국 근대화는 물론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또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시대론 등 시대별 핵심 담론에 세계질서를 민족국가 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보는 사회진화론적 시각에 기초한 민족주의적 사고가 뚜렷하다며 그 극복을 강조했다.

-남북통일이 이뤄질 때까지는 민족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 신 교수는 혈연적 민족주의가 통일의 당위성을 부여하고 남북한 주민 간의 공유의식을 제공한다는 점에선 유용할지 몰라도, 더욱 민주적이고 시민적인 민족의 정체성을 만들지 못하는 한 독일 통일보다 더 힘겨운 과정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한국사회가 글로벌화돼 타민족의 수가 늘고 문화적 다양성이 절실해짐에 따라, 그리고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통일 준비를 위해서도 새로운 민족 정체성의 정립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권재현 기자)

06. 07.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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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07-06 10:15   좋아요 0 | URL
이 책 구하려고 했는데, 교보문고 광화점에 하드커버 7만원 짜리 -_-; 밖에 없어서 할 수 없이 페이퍼백 주문했습니다. 그래도 이런 책은 빨리 한국에 비치 해 놓아야 하는 건데... 주문하니 1달은 걸린다는 데요? ㅡ.ㅡ;

로쟈 2006-07-06 11:34   좋아요 0 | URL
아마존이 간혹 더 빠를 수도 있습니다. <아케이드 프로젝트>가 2주도 안돼 온 걸 보면(물론 어떤 걸 몇 달이 걸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인문학은 돈 좀 드는 학문이죠...
 

신흥 경제대국 BRICs에서 꼬리에 매달려 있지만, 21세기 중반에는 세계최대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거라고 점쳐지기도 하는 나라가 이웃 중국이다. '눈부신' 압축 경제성장으로 국내외적으로 '중국 바람'을 일으킨 지 벌써 오래다(대학가의 경우는 전공 지원률이 이를 말해준다). "떼놈들이 오고 있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개인적 관심은 그런 경제력과는 다소 무관하게 최근 중국에서 불고 있다는 '공자 열풍'에 힘입고 있다. 공자와 모택동의 나라, 그게 나의 상식을 구성하는 중국이다. 최근 이 '중국의 힘'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폄하하는 책 <중국이라는 거짓말>(문학세계사, 2006)이 출간되었는데, 저는 프랑스의 보수주의 지식인 기 소르망이다(내가 오래전에 읽었던 책은 <20세기를 움직인 사상가들>이다). 번역본의 출간에 맞춰 내한한 모양인데, 그의 인터뷰를 옮겨온다.   

경향신문(06. 07. 04) 기 소르망 “中, 공산당 있는 한 진보·변화 없어”

-“마오쩌둥 시대에 중국 공산당은 아기를 삶아 비료로 썼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실각한 이탈리아의 우파 성향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중국과의 관계악화를 무릅쓰면서 새삼스레 중국의 과거사를 들춰낸 것은 자국 내 총선에서 좌파를 견제하려다 뱉은 외교적 ‘실언’이다.

 

 

 



-프랑스의 자유주의 또는 신보수주의 성향 문화평론가 기 소르망(62)은 현재의 중국 공산당에 대해 확신을 갖고 비판하는 사람이다. 그는 4일 자신이 쓴 <중국이라는 거짓말>(문학세계사) 홍보차 방한한 자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서구가 가진 중국에 대한 이상한 ‘신비화’를 교정해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했다(*이러한 교정의 대상이 어찌 중국뿐이랴! '미국이라는 거짓말' '일본이라는 거짓말', 그리고 '한국이라는 거짓말'...).

-서구에 비친 중국은 환상‘반만년 역사에 빛나는 문화대국’ ‘왕조국가의 전통을 이어받은 권위주의 정부’ 등 서구에 비친 중국의 모습이 잘못된 신비화라고 굳게 믿는 그는 지난해 초 작심하고 중국의 한 농촌마을에 들어가 꼬박 1년을 보냈다(*책상머리에서 잔머리 굴리는 지식인은 아닌 것이다). 반체제 성향 중국인들의 도움을 받아 농촌 사람들과 톈안먼 사태 희생자 유족 등의 애환을 들었다. 그리고는 ‘닭의 해:중국인들과 폭동’이라는 프랑스어판 원제목을 가진 책을 내놨다. 그 책이 프랑스에서 히트를 친 지 5개월도 안 돼 한국어판이 나온 것은 유독 한국에서 그가 ‘유럽의 지성’ ‘세계적 석학’으로 알려져 있는 풍토와 무관치 않다(*작가 베르베르처럼 소르망도 한국에서 '통하는' 지식인인 듯. 한국통?).

-“우리가 아는 중국은 공산당의 프로파간다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소르망이 기자회견 내내 강조한 말이다. 그는 현재 중국 내 인권상황이 ‘아기를 삶아 비료로 쓰는’ 마오쩌둥 시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여전히 매우 비관적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중국 공산당의 권위주의 통치 때문이다. 그는 “중국 공산당은 어떤 변화나 개혁에도 반대한다”고 말했다. “기자와 종교인, 지식인들을 광범위하게 탄압하는 중국 공산당 체제 하에서 어떠한 진보와 변화도 있을 수 없다”고도 말했다.

-그는 중국의 경제성장에 대해서도 “놀라울 것이 없다”고 평가했다. “중국의 성장은 기적도 아니고, 창의성도 없다”는 것이다. 중국 경제성장의 토대가 저가 노동력을 이용한 저가 수출품에 기반한 것일 뿐 어떤 새로운 모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중국 경제성장이 ‘열매가 비교적 고루 나눠진’ 한국 모델과도 대조적이라고 했다. 아울러 중국 경제의 미래에 대해서도 “부가가치성 산업으로 나아갈 어떠한 조짐도 안 보인다는 점에서 비관적”이라고 말했다.(*아래 사진은 상하이시 전경.)



-소르망은 중국 농촌의 빈곤문제 해결에 대해서도 비관적이다. 후진타오 주석이 농촌 발전에 힘쓰겠다고 한 최근 발표도 ‘구두선’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사실 농민 출신이 거의 없고 도시에서 자란 기술관료가 대부분인 공산당은 농촌 발전으로 득볼 게 전혀 없다”면서 “게다가 농촌에 투자하게 되면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둔화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공산당 입장에선 농촌 발전보다 농촌의 저가 노동력을 활용하는 데에만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사실 중국이란 나라가 놀라운 것은 일부 지역의 비약적인 경제성장이 아니라 13억이 넘는 인구가 그냥 먹고산다는 거 아닌가?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과 비교해 보더라도 이건 그 자체로 그냥 놀라운 일이다).

-그는 “이 모든 절망보다 더한 것은 자신의 책이 중국어로 출간됐지만 그 책을 공산당 간부들만 볼 뿐 일반 독자들은 전혀 접할 기회가 없다는 데 있다”고 했다. 미래 경제성장도 비관적그는 이번에 한국에 오기 전에 중국에 들렀을 정도로 중국 출입에 제약을 받고 있지 않다. 그는 “아마도 베이징 당국은 서구 지성인들이 2012년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 운동을 벌이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느라 우리의 활동은 제약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르망은 민주국가들이 중국 내 반체제 인사들을 지원해줘야 할지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내에 만연한 민족주의 성향 때문이다. 그는 “중국인들은 심지어 반체제 인사들도 외국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얘기하면 ‘내정간섭’으로 받아들인다”면서 “만약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 운동을 벌이면 반체제 인사들도 공산당을 중심으로 더욱 단결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난 5월 중국을 방문해 ‘민주주의’에 대해 강연한 것과 같이 미국 정부도, 한국 정부도 중국 공산당에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한국 정부도?! 소르망이 한국에 대해서는 별로 공부하지 않은 모양이다).

-한국인들에겐 그리 새롭게 다가오지 않는 이 책이 미국 국무부가 매년 발표하는 ‘중국인권보고서’와 차이점이 있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미 인권보고서는 피상적이고 개별 사례에만 주목했지만 나는 인권을 탄압하는 것은 결국 시스템의 문제라고 봤다”고 대답했다. 미 정부가 중국 공산당을 대놓고 비판하지 못하지만 자신은 공산당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는 점을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 북한 인권에 대해 물었다. “북한에 몇번 가보고 느낀 점은 중국의 식민지 같았어요. 북한의 인권상황은 중국의 60년대 인권상황과 흡사해 보여요.” 그의 다음 책 제목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06. 07. 05.

 

 

 

 

P.S. 현재의 중국과 그 장래에 대해서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는 책들도 드물진 않다. <중국은 가짜다>나 <중국의 몰락> 같은 책들이 그런 종류이다(기억에 중국인 자신들의 비판서들도 출간된 적이 있다). 보다 균형잡힌 시각을 얻기 위해서는 조너선 스펜스의 <현대 중국을 찾아서1.2>(이산, 1998) 정도는 교양으로 읽어둬야겠다. 한비야의 <중국견문록>(푸른숲, 2001)나 정운영의 <중국경제산책>(생각의나무, 2001)은 가장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한국인의 시각으로 읽은 중국이다. 5년쯤 전이니 지금의 중국은 또 달라졌을지 모를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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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94 2006-07-05 15:29   좋아요 0 | URL
오타요~ 조너선 스펜스의 <현대 국을 찾아서1.2>(이산, 1998) 정도는

로쟈 2006-07-05 16:06   좋아요 0 | URL
띄어쓰기하다가 삭제됐군요.^^

2006-07-05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7-05 23:52   좋아요 0 | URL
**님/ 직접 읽어본 바는 없지만 가장 '대중적인' 책이어서 집어넣었습니다. 사실 소르망이 중국에 체류했던 기간도 1년이니까 기간이 절대적인 변수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어디서 누굴 만나고 어떻게 살아봤느냐가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 같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