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브이자 아이의 방학 날이지만, 크리스마스와 방학 모두 내겐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지 않아서 그냥 '원고의 날'로 삼고 있다. 그렇다고 편하게 원고만 쓰는 날은 아니고 아이가 감기에 걸린 탓에 '봉사의 날'도 겸하고 있다. 가끔씩 들여다보는 뉴스기사들 가운데, 계간 <진보평론>(겨울호)의 '노동, 노동해방 다시 보기'를 소개하는 기사가 있기에 스크랩해놓는다. 전부터 갖고 있던 생각을 구체화하는 데 도움이 될 듯싶어서다. 요지는 진정한 노동해방을 위해서라면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겨레(10. 12. 24)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 진짜 노동해방이다
쌍용자동차의 대량해고, 현대·기아차 및 지엠(GM)대우차의 비정규직 투쟁, 현대차 노사의 ‘주간연속 2교대제’ 시행 논란 등 최근 자동차 업계에서 나타났던 주요 노동현안들은, 현재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변화와 이에 따라 노동이 처하게 된 객관적 조건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그 함의는 각각 구조적인 대량실업, 노동의 양극화, 실질 소득의 감소 등이다. 이렇게 변화한 조건들 속에서 노동운동은 여전히 ‘노동해방’을 말할 수 있을까?
계간지 <진보평론> 겨울호는 ‘노동, 노동해방 다시 보기’라는 제목의 특집을 통해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던졌다. 편집위원인 이성백(사진) 서울시립대 교수는 ‘노동해방 이념의 재구성’이라는 글에서 “노동해방은 자본으로부터의 해방일 뿐 아니라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라며 노동해방 이념을 재구성하기 위한 시도를 펼쳤다.
그의 문제제기는 ‘노동은 신성하다’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시작한다. 노동 신성성은 서구 시민사회에서 “노동을 강제하기 위한 동원의 이데올로기”로 주로 쓰여 왔다. 카를 마르크스도 “노동은 본질적으로 자기실현 활동이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본질적인 규정에서 소외돼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말해, 마르크스주의자들 역시 노동 신성성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이 교수는 “자유의 왕국은 실제로는 필요와 외적 합목적성에 의해 결정되는 노동이 끝나는 곳에서 비로소 시작한다.(…) 노동시간의 단축이 기본조건이다”라는 <자본론>의 구절 속에서 마르크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끌어낸다. 그는 마르크스의 노동 개념을 생존 유지를 위한 ‘노동’과 인간의 전인적 자기실현을 위한 ‘생활향유활동’으로 나눠서 풀이하고, “노동 신성성의 이데올로기를 떨쳐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 신성성은 왜 부정되어야 하는가? 20세기 후반 자본주의의 축적체제가 크게 변했기 때문이다. 제레미 리프킨이 <노동의 종말>에서 지적했듯, 급속한 정보화는 인간의 노동력을 점차 필요로 하지 않으므로 구조적 대량실업이 발생하는 시대를 만들어냈다. 여기에 신자유주의의 노동 유연화는 노동형태를 바꿔 다양한 패턴의 착취 구조를 만든다. 그 속에서 노동자들의 실질 소득은 갈수록 감소한다. 이에 따라 발생하는 현상이 대량실업, 비정규직, 사회적 빈곤 등이다.
이 교수는 “사회적 총노동시간의 축소가 다수의 노동자들을 일자리로부터 몰아내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곧 일자리에 목맬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을 정규직 또는 취업의 문 앞에 줄세우는 신자유주의적 해결방식이 문제라는 것이다. 여기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 바로 “게으른 자는 먹지도 말라”는 노동 신성성의 이데올로기다. 이 교수는 “21세기 코뮌주의의 이상적 목표는 사적 소유가 철폐된 가운데 적은 시간 일하고 남는 시간은 생명향유활동에 쓰는 것”이라며 ‘노동시간 단축’이 노동운동의 핵심 과제라고 주장한다. 곧 노동해방의 이념이 자본으로부터의 해방뿐 아니라 노동으로부터의 해방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소득을 노동으로부터 분리해 모두에게 보장하자는 ‘기본소득론’과도 연결된다.
박영균 편집위원 역시 ‘노동의 신화와 노동의 종말, 그리고 문화혁명’에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말한다. 그는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물리적-비물리적 네트워크를 통해 공장이 아니더라도 사회적 생산력에 참여하고 있는데, 자본은 자신의 교환체계에 들어온 부문만 노동으로서 가치를 매기고 있는 모순을 짚었다. 때문에 그는 “노동운동이 임금협상이나 노동조건 개선 투쟁에 멈춰선 안 된다”며 “노동으로부터 해방을 통해 자본과 임노동의 계열화 속에서 배제되는 다수의 잉여인구들을 반자본의 저항적 주체로 형성하는 정치적 전략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자본주의적 욕망에서 벗어나기 위한 ‘문화혁명’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는 일자리에서 밀려난 빈곤층, 각종 비정규부문 노동자를 노동운동의 주체로 세우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강연자 편집실장은 ‘주40시간 법정노동시간 단축 투쟁과 노동운동의 과제’를 통해 노동시간 단축의 실질적인 문제들을 짚었다. 그는 주40시간제 도입에도 불구하고 노동시간 유연화의 전통적 형태인 초과근로가 높은 범위로 허용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더 받기 위해 더 일하는’ 방식의 임금구조가 만들어져, 결국 실노동시간도 줄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유연화에 따른 노동자 내부의 격차만 확대됐다는 것이다. 그는 “초과근로에 의거한 임금에서 벗어나, 법정노동시간만큼 일해 생활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며 “민주노총 표준생계비를 상회하는 노동자들의 초과근로 수당을 포기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규직 중심의 전통적인 노동운동 현장에서도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고민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주장인 셈이다.(최원형 기자)
10. 12.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