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인물란의 톱뉴스는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타계 소식이다. 날짜로는 또 오늘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된다. 인물란이 부쩍 붐비는 즈음인데, 나는 그냥 소박하게 내가 아는 지인의 인터뷰 기사만 옮겨놓기로 한다. 방송대TV의 '책을 삼킨TV'에 출연하면서 알게 된 가수 '사이'다(처음엔 '싸이'인 줄 알았다). '유기농펑크포크'란 장르의 창시자이기도 한데, 그의 소박한 인생철학이 경향신문의 창간 65주년 기획특집 기사를 탔다.  


가수 사이의 은행 통장 잔액은 0이지만 조금도 불안하지 않다. 그는 “돈이나 직장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을 떨쳐낸다면 사람들이 돈에 집착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폐가를 고쳐 살고 있는 집 앞에서 지난달 28일 사이가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11. 10. 06) “텃밭 있고, 노래하면 됐지 돈이 왜 필요하죠?”

‘슈퍼 백수’ 가수 사이(38)는 시골에 산다. 전업농은 아니다. 가난하지만 굶지 않고 불편한 것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아 5년 전 서울을 벗어났다. 참깨, 고추, 호박, 배추 등 필요한 먹거리는 집 앞 텃밭에서 해결한다. 더 많이 수확하려고 부지런히 밭일을 하지도 않는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먹는다. 올해는 처음으로 텃밭에 벼도 심었다. 자고 싶으면 자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도 읽고 싶을 때 읽는다.

“그냥 돈 버는 일 안 하고 편히 살고 싶었어요. 산 입에는 거미줄 치지 않잖아요. 시골은 생활비가 덜 드니 많이 안 벌어도 되고요. 거의 모든 문제가 돈에서 나오는데 도시에서는 그런 생활이 불가능하잖아요.”

그는 백수는 아니다. 스스로 노래를 작사·작곡해 앨범을 두 장까지 낸 가수다. 두번째 앨범은 지난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행사 중 ‘거리악사 페스티벌’ 경연대회에서 1등을 차지해 제작비를 지원받았다. 그의 음악을 들은 사람들이 늘면서 각종 공연행사나 시민·사회단체의 집회에서 노래를 해달라는 전화도 많아졌다.

“우리나라 사람은 부지런한 걸 좋아하잖아요. 특히 시골에서는 더 그래요. 근면에 대항하는 사람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자존심을 지키려는 의미에서 슈퍼 백수라고 불러요. 사실 빈둥거릴 때 가사가 잘 떠올라요.”

  

“사람들은 도대체 내말을 믿지 않아/ 돈 없어도 시골에서 팔자가 늘어진 걸/ 잘 먹고 잘 놀고 잘 쉬고 전기세 1600원/ 텔레비전 핸드폰 세탁기 냉장고 없어도 좋아// 농사로 돈을 벌려고 하면 머리가 아파/그냥 줄이고 덜 쓰고 가난해도 괜찮을 걸….”(후략)>

그가 집에서 녹음·편집·앨범디자인 등 모든 것을 혼자 가내수공업으로 만든 음반에 실린 첫 곡 ‘아방가르드 개론 제1장’의 노랫말이다. 그가 가장 많이 낸 전기료가 한 달에 1600원이었다. 경남 산청에서 살 때다. 그러다 2년 전 더 많은 ‘사이’ 그러니까 더 많은 관계를 맺기 위해 충북 괴산으로 왔다. 폐교인 신기학교 사택에서 살다가 지금은 동네주민이 내준 칠성면 율지리의 폐가를 개조해 살고 있다.

“항상 빈집을 찾고, 농사도 남이 안 쓰는 땅에서 지어야 하니 개간해서 밭을 만들면서 화전민처럼 살았죠. 그러다 괴산에 와서 정말 넉넉하게 살고 있어요. 정말 전기의 고마움을 느꼈어요. 음식도 시원하게 보관할 수 있고. 아마 남들처럼 소비하며 살아왔다면 그런 행복은 못 느꼈겠죠.”

그는 통장에 1원 한 푼 없다. 그러나 돈이 없다고 불안해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없으면 없는 대로 덜 먹으면 되니까. 사실 살림은 산청에 있을 때보다 넉넉해요. 남들이 보기에는 가난하지만 지금처럼 넉넉하다고 느낀 적은 없어요. 돈이 생긴다고 저축할 생각도 없어요. 돈 생기면 읍내 나가서 느티(아들)랑 짜장면도 사먹고 쓰면 되죠. 저희는 엥겔계수가 100이에요. 하하.”

그는 음악을 정식으로 공부한 적이 없다. 그러나 그는 모든 곡을 스스로 작사·작곡한다. 자칭 ‘유기농 펑크포크’의 창시자다. 겉은 포크인데 내용은 펑크 스타일이란다. 사람들이 하도 음악장르가 뭐냐고 물어보기에 지었다. 그의 이름처럼 뭔가와 뭔가 사이에 낀 애매한 장르다. 유기농은 시골에 살기 때문에 붙인 일종의 군더더기란다. 사실 자연과 생태는 그의 음악에 중요한 배경이다.

‘당근밭에서 춤추고 있는 노을은 노을보다 아름다워라/ 게으르다고 욕하신 대도 어디까지나 즐거운 마음입니다/마루에 누워 룰루랄라 죄송합니다/ 가난해도 괜찮다고 아무리 얘길해도/얘길해도 믿질 않으니 이것 참 환장할 노릇/새우깡 라깡 데리다주고 어머니 앞에서 고백해봐요/당근밭 노을은 혼자보기 안타까워라.’(당근밭에서 노을을 보았다)

부산 가난한 달동네에서 태어나 그냥 음악이 좋았다. 학교(해동고)에서도 옆 교실까지 들릴 정도로 노래를 불렀다. 전교에 소문난 가수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음악을 하기 위해 무작정 상경했다. 서울에 와서는 국립극장 기관실에서 1년반 동안 일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음악을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돈이 있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시 우울한 음악에 심취했다. 마치 신발을 쳐다보고 힘없이 걷는 것 같다는 ‘슈게이징(Shoegazing)’ 장르였다.

“2004년쯤 명동성당에서 천막농성 중인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밥을 해주던 모임 ‘투쟁과 밥’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길거리밴드를 만들었어요. 이주노동자들의 엉성한 발음으로 하는 구호가 너무 쏙쏙 가슴에 와 닿았어요. 그때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죠. 거지처럼 살아도 괜찮구나 하고 겁이 없어졌죠. 시식코너에서 배 채우면서도 즐거웠어요.”

불러주는 곳이면 어디든 갔다. 홍대앞, 철거민촌, 새만금, 평택 등 전국을 돌아다니며 공연했다. 지율 스님이 천성산 관통도로 건설을 반대하며 단식할 때는 광화문 옆 공터에서 100일 동안 매일 공연을 했다. 스님이 고마움의 표시로 유럽 생태공동체를 둘러볼 수 있도록 주선해줬다. 8명이 1000만원을 들고 2주 동안 놀았다. 거기서도 길거리공연을 했고, 마을에서 일도 하며 밥도 얻어먹었다. 돌아올 때는 200만원이 남았다. 생태에 관심을 갖고 시골로 내려갈 ‘용기’가 생긴 것도 이때다.

“두려움 때문인 거 같아요. 돈 없고, 다닐 회사 없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집착하고. 그건 음악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어요. 홍대도 자본에 먹히고 있잖아요. 외국 뮤지션 불러오는 비싼 티켓값의 무대에 서지 못하거나 TV의 밴드 발굴 프로그램에 들지 못하는 2류라는 두려움이 퍼진 것 같아요.”

그래서 그는 올해 ‘사고’를 쳤다. ‘돈이 위주가 아닌 사람이 주인공인 축제를 위해, 서울이 아니라 지역 그것도 시골에서도 잘 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작고, 어설프고, 불편한 축제를 준비했다’(안내문에서 인용).

지난 3일부터 1박2일 동안 ‘제1회 괴산페스티벌’을 기획했다. 장르별로 홍대에서 유명한 뮤지션들을 한 팀 한 팀 고르고 설득했다. 자신과 경기 명창 권재은씨 등 8팀을 꾸렸다. 괴산에서 같이 음악하는 친구 집 앞 유기농 텃밭에 공연장을 만들었다. 화장실은 땅을 파서 간이로 설치했다. 무대를 밝힐 조명등만 설치했다. 객석은 손님들이 가지고 온 돗자리였다.

“돈이 짜놓은 것만 보지 말고 축제는 만들면 된다는 페스티벌 취지에 다들 동감해줬어요. 사실 참가한 팀들은 모시기 힘든 사람들이죠. 관람료는 즉석에서 자발적으로 내는 후원금이어서 얼마를 줄지도 몰랐어요. 그래도 성공할 거라 확신했어요.”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후원금도 제법 모여 뮤지션들에게 차비라도 줄 수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 개인 후원을 받았는데 150만원이 모였다. 공연자들과 관객 모두 즐거워했다. 잠자리나 음식, 화장실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150만원만 있으면 150명이 함께 잘 먹고, 잘 놀고, 춤추고, 좋은 추억까지 가져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죠.” 



여기저기서 축제를 더 키우자고 제의가 왔지만 거절했다. 내년에도 올해와 비슷한 크기와 사람들이 모여서 비슷하게 놀 수 있게 할 생각이다. 키우면 골치 아픈 일이 많아져서다. 그는 스스로 “게으르다”고 했지만 게으른 것 같지 않았다. 어쩌다 본 그의 공연 일정표는 빽빽했다(가을이면 으레 성수기라서 그렇단다). 방송대 케이블TV 책소개 프로그램에 격주로 출연한다. 음악이 그를 누구보다 행복하고 부지런하게 해주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가난하지만 지금 누구보다 행복하다”고.(박재현 기자)  

11. 10.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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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울비의 알림
    from seoulrain's me2day 2011-10-06 19:17 
    가수 사이의 유기농펑크포크 — '유기농펑크포크'란 장르의 창시자 사이를 소개합니다~ (via 로쟈)

교수신문에서 진보와 진화의 개념이 어떻게 분리됐는지에 관한 학술발표문 발췌기사를 스크랩하려다 엉뚱하게도 월드와이드웹 관련기사에 눈길이 갔다. 꿩 대신 닭으로 옮겨놓는다. WWW가 고안된 지 딱 20년이 됐다고 하니까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한번 성찰해보고 또 앞으로의 변화를 전망해보는 게 좋겠다.   

  

교수신문(11. 08. 29) www가 바꿔놓은 21세기의 삶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지난 1991년 8월 6일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연구원이던 팀 버나스 리(현재 미 MIT교수)는 월드와이드웹을 만들어 처음으로 웹페이지라는 것을 작성했다. 월드와이드웹(WWW) 또는 W3로 불린 이 프로젝트는 그로부터 20년간 과거 인류가 수 백 년 동안 겪었던 것 이상의 변화를 몰고 오며 이 세상과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았다. 웹의 등장으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혁신들이 온라인을 통해서 이뤄지면서 지구촌은 지난 20년간 총체적 변화를 겪었다. 지구 반대편 어느 한 나라 시골에서 터진 뉴스는 이제 구글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웹서비스를 통해 광속으로 전 세계로 확산된다. 최근에는 각종 스마트 기기가 등장해 사회의 모습을 더욱 빨리, 그리고 광범위하게 바꾸고 있다.  

분산, 참여, 공유의 시대. 프로페셔널을 위협하다
웹이라는 것은 결국 웹 페이지들이 서로 링크가 되어 있는 것이다. 영어로‘Web’이 거미줄을 의미하듯이, 정말 다양한 링크가 수많은 페이지들을 엮고 있다. 각각의 페이지들은 URL 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주소를 가지는데, 웹의 초창기 진화는 이러한 페이지들이 광범위하게 만들어지면서 거대한 정보의 네트워크로 발전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정보를 담았던 페이지가 중심이 됐던 웹이 블로그 포스트나 북마크, 트위터, 페이스북 등과 같이 페이지의 정체성을 가진 영구적인 링크의 웹이 돼가고 있다. 이런 링크는 그 사람 자체 또는 작성자가 만들어 놓은 가상의 정체성을 일정하게 유지한다. 또한, 이런 정체성은 외부 사람들의 공유와 참여를 통해 더욱 커다란 가치를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이런 의미의 새로운 세대의 웹을‘웹 2.0’이라고 한다.

웹 2.0의 가치는 분산, 참여, 공유로 대별된다. 웹 1.0이 기존의 커다란 섬으로 상징되던 포탈의 기술이라고 한다면, 웹 2.0은 작은 섬들의 집단과 이들 간의 다리를 건설하는 방식의 기술이다. 이런 참여와 공유의 정신은 거대한 사회적인 운동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인터넷에 연결된 개개인들은 자신의 의견이나 불만을 호소하거나 누군가의 생각을 지지하는 형태로 정치적 행위를 일상화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시민기자들의 속보와 방송을 이용한 실시간 중계의 위력은 과거 촛불시위를 통해서도 느낄 수 있었다. 세계로 눈을 돌리면, 새로운 혁명을 웹이 촉발하는 사례를 요즘 많이 볼 수 있다.

수십년 철권통치에 신음하던 튀니지 민중들에게 웹은 해방구였다. 여기서 촉발된‘자스민(Jasmin) 혁명’은 과거엔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이집트와 리비아, 시리아 등 중동지역의 민주화는 물론 중국과 북한 등 다른 대륙의 정치경제 현실에까지 파장을 미치고 있다. 웹 2.0의 성공은 이미 인터넷이라는 곳이 단순히 정보를 일방적으로 가져오는 곳이 아닌, 양방향성과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는 것에 대한 인식을 불러일으켰고, 대중들의 직접적이고도 실시간적인 참여가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사회로의 변화를 촉진하고 있다. 웹은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커다란 변화를 불러왔다. 



백과사전의 대명사이던‘브리태니커’의 빈자리를 인터넷기반 집단지성의 산물인‘위키피디아’가 대체하고, 백화점이나 잡화점은 온라인쇼핑몰이나 소셜커머스에 잠식당하고 있다. 과거 오프라인 시대의 비즈니스모델은 사라지거나 생존을 위해 변신을 강요받고 있다.

또한, 기존의 대량생산 체제의 철옹성도 그 위상이 하락하고 있다. 과거에는 정해진 품목에 대해 대량생산을 하고, 이로 인한 원가절감과 가격경쟁력을 이루는 것이 중요했다. 현재도 이러한 패러다임이 완전히 무너진 것은 아니지만, 점점 다품종 소량생산 및 롱테일(Long Tail)이라고 불리는 다양한 수요에 입각한 비즈니스가 활성화되고 있다. 이러한 脫대량화 현상은 과거에 중요시됐던 공정과 부품, 근로조건 및 임금 등에 이르는 전반적인 사회현상의 규격화의 중요성도 무너뜨리고 있다. 생산라인과 자신의 역할에 따라 일을 수행하는 분업과 전문화의 철칙도 무너지고 있다.

과거에는 깨기 어려워 보였던 프로페셔널리즘도 붕괴되는 조짐이 보인다. 웹의 개방성과 검색 등을 통해 비전문가로 여겨졌던 사람들도 자신들이 원하는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는데, 이미 블로그를 통해 철저히 직업적인 기자들의 영역으로 생각되었던 저널리즘과 미디어에 아마추어 블로거들의 참여가 가속화되고 있다. 이러한 프로페셔널리즘의 붕괴는 한두 가지 직업군에 국한되는 현상은 아닐 것이다.

분산된 지식과 정보의 결합이 초래할 미래
웹이 발달하면서, 공간과 시간이라는 과거에는 정말 절대적이라고 생각했던 제약조건의 힘도 많이 약화됐다. 이제는 모든 사람이 똑같은 시간에만 모여서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메일도 이용할 수 있고, 원격회의 같은 것을 통해서 서로가 의사소통을 할 수도 있다.
 
또한 공간의 제약이 약해졌기 때문에, 수많은 상품들을 가상의 공간에 진열할 수 있게 됐고, 살아가는 공간 역시 반드시 아주 가까운 도시에 다 같이 모여서 살 필요가 없어졌다. 과거처럼 모든 산업과 교통이 한 곳으로 집중돼 있지 않아도 그리 불편하지 않게 살 수 있게 됐다.

이러한 변화의 바람은 결과적으로 힘의 분산을 가져오게 된다. 정보와 지식이 많은 사람들에게 분산됐고, 이렇게 분산된 지식과 정보는 다시금 웹이라는 가상의 시공간을 통해 다시 관계를 맺고 더욱 발전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과거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대마불사’또는 큰 것만을 좋아하는 전통적인 믿음에도 균열을 가져오고 있다.

무조건 덩치를 키우면 역량이 강화되고, 힘을 키울 수 있다는 사고는 이제 더 이상 먹히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질적인 내용과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특성 및 역량이 숨김없이 드러나는 시대가 됐다. 과거와는 달리 되려 덩치만 크고, 조직의 변화적응력 부족으로 인해 무너지는 기업들이 속출할 것이다. 거대하고 덩치가 큰 조직이 적응하기에는 앞으로의 변화의 속도가 너무나 빠르다. 개개인의 특장점과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작고 효율적인 기업들이 전면에 등장할 것이고, 이들이 세상의 판을 다시 짜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의 웹은 어떤 형태로 발전하게 될까. 웹의 연결이 집이나 사무실에 있던 PC에서 들고 다니는 개인화 장비들로 확대되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전체가 연결되는 시기에 들어서고 있다. 웹은 더 이상 문서와 콘텐츠를 전달하고 주고받는 수준의 데이터 중심의 웹이 아니라 더욱 다양한 인간의 활동영역을 커버하는 인간 중심의 소셜 웹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소셜 웹에 기존의 데이터 웹이 유기적으로 연계돼 있으며, 동시에 이들 사이의 다양한 연결 및 융합서비스 들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서비스들이 매일 엄청나게 등장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실시간으로 다양한 정보를 포함해 연결된 사람들의 상태 및 행위들이 소셜 웹 인프라 구조를 통해서 전파가 되고, 이를 통해 유용한 서비스들은 지속적으로 강화되는 것에 비해, 기존에 만들어졌던 연결과 그와 연관된 서비스들 중에서 집단지성에 의해서 오랜 시간 선택되지 않거나, 유용한 경험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들은 자연스럽게 퇴보를 한다.

이런 현상은 마치 우리의 뇌가 기억을 형성하고, 기억이 잊히는 것과 유사하다. 다음 세대의 웹의 대세를 장악하고 있는 인간중심의 소셜 웹은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을 보다 체계적이고 정형화된 형태로 촉진할 수 있는 쉬운 도구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로 발전할 것이다. 자연스러운 연결과 사회의 움직임이 전체의 의사를 전달하고 이를 판단의 근거로 삼을 수 있는 세계가 된다면, 어쩌면 정치도 바꿀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집단의식을 통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스타크래프트의 저그 종족이 가지고 있는 오버마인드(overmind)가 웹의 미래 기술을 통해 나중에 탄생할지도 모르겠다고 하면 지나친 억측일까.(정지훈 관동의대 명지병원 융합의학과) 

11. 09. 01.  

P.S. 아래는 '월드와이드웹 20년 주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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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부터 고양아람누리의 아람문예아카데미에서 '책을 읽을 자유'를 주제로 한 강좌를 진행한다(http://www.artgy.or.kr/CT/CT0005M.aspx?ticket=2110054&month=3&chargetype=1). 9월 1일(목)부터 11월 17일까지, 12주간 매주 목요일 16:30-18:30이 진행시간이며 장소는 아람누리 음악감상실이다. 유료강좌이며 교재는 <책을 읽을 자유>(현암사, 2010)이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란다.(고 했지만, 신청자 미달로 폐강됐다. 이 역시 참고하시길!)    

 

 -책을 읽을 자유-는 최소한의 자유이지만 동시에 최고급의 자유이다.
 책읽기를 통해서 우리는 어떻게 최소한의 자유에서 최고급의 자유로 뻗어나갈 수 있을까?
 다양한 주제에 대한 로쟈의 책읽기 안내를 통해서 책의 세계 다채로운 경험과 사유의 세계
 사회적 고민과 미학적 즐거움의 세계를 만나보자.
 <책을 읽을 자유>를 기본 교재로 매주 주제별 강의와 질의응답으로 진행.

회차 내용
1회  교양이란 무엇인가
2회  고전은 왜 읽는가
3회  인간 본성에 대하여
4회  번역이란 무엇인가
5회  근대문학의 종언과 한국문학
6회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7회  전체를 고민하는 힘 
8회  유럽중심주의와 보편주의
9회  폭력이란 무엇인가
10회  정치란 무엇인가
11회  역사의 개념과 사랑의 지혜
12회  사회주의냐 공산주의냐
 

11. 08. 28.  

P.S. 참고로, 노원평생학습관(9월 2일부터 30일까지 매주 금요일 저녁 5회), 양천도서관(9월 5일, 19일, 26일 오전 3회), 강서도서관(9월 19일부터 10월 31일까지, 개천절을 제외하고 매주 월요일 저녁 6회)에서 '러시아문학' 강의가 있다. 도서관 강좌는 무료로 진행되므로 러시아문학에 관심을 갖고 계신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란다.(구체적인 일정과 커리큘럼은 도서관에 문의해보시길.) 덧붙여, 9월 24일 오후 3시에는 의정부도서관에서도 특강이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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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내 2011-08-29 23:17   좋아요 0 | URL
노원평생학습관이라...
들으러 가겠습니닷!!! ^-^;

로쟈 2011-08-30 08:26   좋아요 0 | URL
맞아요, 거기 살지요?^^

예브 2011-09-02 11:20   좋아요 0 | URL
교수님~아람문예강좌는..시간이 너무 일렀어요.!
퇴근하고 가면 끝날 시간이더라구요.ㅠ

로쟈 2011-09-03 01:33   좋아요 0 | URL
그게 아마 주부들을 타겟으로 한 강좌 같아요. 폐강된 덕분에 저는 그래도 숨통이 좀 트였습니다.^^;
 

대학밖 인문학습공동체를 어떻게 볼 것인가란 주제를 다룬 기사 두 편을 자료로 스크랩해놓는다. 문학평론가 이명원의 ‘인문학습공동체의 증가 현상을 보는 시각’이란 글을 정리한 기사와 지난봄 교수신문에 실렸던 문학평론가 오창은의 기사다(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이젠 어느 정도 표준화돼 있다는 생각이 든다). 두 사람은 모두 지행네트워크 멤버라는 공통점도 있다. 개인적으론 대학밖 인문학 강의를 많이 해오고 있기에 내용과 무관하지만은 않다. (대학밖) 인문학 붐이 2005, 6년 즈음부터 일어난 현상이라고 하니까(대학의 '인문학 위기론'과 맞물려 있다) 10년쯤 채워진 뒤에는 나름대로 역사적 의미도 따져볼 수 있겠다...    

경향신문(11. 07. 26) “대학 중심 경쟁에서 탈피, 사회 참여의 갈증 풀어줘 인문학습공동체 참여 촉진”

2000년대 들어서 인문학습공동체는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수유+너머’를 필두로 ‘철학아카데미’, ‘다중지성의 정원’ 등은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이들은 대학 중심의 낡은 지식 재생산 구조에서 탈피해, 제도의 외부에서 다양한 지적 활동과 실천을 벌여왔다. 



문학평론가 이명원은 반연간 잡지 ‘시민과 세계’에 기고한 ‘인문학습공동체의 증가 현상을 보는 시각’이라는 글을 통해 이러한 현상의 원인과 한계점을 짚었다. 그는 인문학습공동체의 확산과 대중적 열기가 “제도화된 교육기관이 우리 시대의 뜻있는 지식인과 대중에게 근본적인 비판과 성찰의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전의 교육과 학습 패러다임이 위기에 빠졌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 같은 현상이 조선 후기 관학에 대항해 벌어진 실학운동, 1980년대 폐색 상황에 맞서 벌어진 진보적 학술운동과 같은 맥락이라고 분석한다.

1990년대 들어 학문 분야에서도 ‘무한경쟁’ 체제가 도입되면서, 교수·연구자들은 연구업적을 둘러싼 과도한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기업식 문화가 무차별적으로 침투한 대학에서 학생들은 살아남기 위한 스펙 경쟁에 몰두했고, 카이스트 사태와 같은 비극적 결과가 초래되기도 했다. 이명원은 “사회구성원 모두가 생존을 위한 ‘위험상황’에 처한 현실에서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산다는 일의 존엄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를 찾고자 하는 열망이 인문학습공동체 참여를 촉진하고 있다”고 말한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 들어 ‘민주주의의 위기’가 지적되고 있지만, 오늘날 복잡한 현실의 모순은 ‘거리의 몸싸움’만으로 극복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도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인문학습공동체는 고립된 대중들이 다른 이들과 같은 고민을 공유하고, 사회 참여의 갈증을 풀어낼 수 있게 해 줬다는 것이 이명원의 시각이다. 매년 1만명 이상 쏟아져 나오는 박사학위 소지자들 또한 “지식인으로서의 문제의식을 견지하면서도, 사회운동에 대한 신념도 확장시킬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공동체를 주목하고 ‘대중지식인’으로 거듭났다.  

다만 이명원은 “인문학습공동체 역사가 10여년이 지난 지금, 최초의 설립자나 발기인을 넘어설 후속 주체들이 형성됐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대부분의 공동체는 상징적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움직이지만, 상징의 다원화가 이뤄지지 않는 한 사유와 실천은 관성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미 여러 공동체가 보여주는 ‘커리큘럼의 대동소이화’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들뢰즈와 라캉, 지젝과 네그리를 읽고 강의하는 것”이 “제도 연구공간의 병폐라 할 수 있는 현실과 유리된 추상주의와 수입학의 경향에서 얼마나 자유로운 것”이었는지를 되묻는다. “생활대중의 관점에서는 좀 더 살아있는 육성의 언어를 발견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공동체가 취약한 물적 토대하에서 운영되면서 ‘지식의 자본화’에 반대해 온 그들이 오히려 ‘지식을 대중들에게 팔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도 한계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이러한 공동체의 실험을 제도권으로 순치시키려는 국가권력과 자본의 개입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앞다퉈 인문학 강좌를 개설하고 있고, 인문학을 ‘자기계발의 도구’로 사용하라는 목소리도 이곳저곳에서 들리고 있다. 이명원은 “어떻게 제도와 자본과 권력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난 공동체를 유지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앞으로 10년의 고민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황경상 기자)   

교수신문(11. 04. 18) 대중화 여부 관계없이 학문체계 자체의 위기 반영

인하대 병원에 근무하는 김운용 씨는 지역 도서관을 자주 이용한다. 그러다 지난 2009년 10월에 인천 연수구 도서관에서 개최하는 ‘인문주간 행사’에 참여하면서 인문학에 푹 빠져들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강의를 듣는 것은 쉽지 않은데 마침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강좌가 진행되더라고요. 표정훈, 강유원 선생의 강의를 듣고 인문고전에 매료됐죠. 인문고전은 전공자의 도움 없이 얼개나 개념, 서술 방법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아요. 이 강좌를 통해 왜 인문고전을 읽어야 하는지 자극을 확실히 받았죠.”

김 씨는 인문고전 공부를 통해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세상을 살피게 됐고, 심리적 갈등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게 됐다. 김 씨도 인문고전을 접하기 전까지는 자기개발서를 챙겨 읽곤 했다. “자기개발서라는 것이 많이 읽으면 비슷비슷한 내용의 변주에 지나지 않아요. 자신이 실천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해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한데, 자기개발서가 실천을 대신해주지는 않거든요.” 반면 인문고전은 행복에 대한 자기 기준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고 했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 질문하게 하는 것, 이것이 인문고전의 힘이라고 그는 말한다.

김운용 씨가 2009년 이후 인문학에 기울인 정성은 각별했다. 첫 인문학 강의로 인연을 맺은 철학자 강유원의 인문고전 읽기 강좌를 1년 동안(총 40주 80시간) 수강했고, 국립중앙도서관의 은하문화학교에는 평일 휴가를 내고 참가할 정도로 열성을 보이기도 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지난 3월에는 ‘인하대병원 북토피아 책향기’라는 인문고전 읽기 모임을 만들었다. 인문학 강좌 수강생에서 출발해 인문고전 읽기를 자발적으로 조직하는 인문학적 실천으로 나아간 것이다.  



인문학, 위기인가? 대중화인가?
한국사회에 인문학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은 2005년과 2006년 즈음부터이다. 2005년 성프란시스대학에서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강좌’가 개설됐다. 2006년 1월에는 미국의 교육자 얼 쇼리스의 방한 세미나가 있었고, 연말에는 그의 책『희망의 인문학』이 번역 출간되기도 했다. 이것이 기폭제가 돼 이른바 ‘실천 인문학’, ‘평화인문학’이 활성화됐다. 2007년 3월에는 인권실천시민연대 주최로 의정부 교도소에서 ‘수용자를 위한 인문학 강좌’가 개설됐다. 초기에 인문학과 대중의 만남은 노숙인·수용자·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인문학자들이 찾아가는 실천적 의미가 강했다.

일부 인문학자들의 실천이 잔잔한 감동을 불러오면서, 옛학진은 2006년 9월 ‘인문주간’을 지정해 대학과 지역사회의 인문학적 만남을 주선했다. 대학들은 적극적으로 나서 프로젝트 형식으로 지역사회와 연계해 인문학 강좌를 개최했다. 이것이 대중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일으키자, 구청을 중심으로 한 자치단체와 도서관이 나서서 인문학 강좌 프로그램을 개최하기 시작했다. 비제도권의 인문학적 실천운동이 학문제도 속에 있던 대학 인문학을 흔들어 깨운 형국이다. 



그렇다면, 대중과 인문학이 만남으로써 인문학의 위기는 극복되고 있을까. 인문학 강좌와 인문고전 읽기가 확산되고 있지만, 대학사회에서도 인문학이 부흥했다고 할 수는 없다. 대학 교양강좌에서 인문학에 해당하는 강좌는 여전히 축소되고 있다. 실용주의를 우선시하는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풍토 속에서 이른바 비인기 강좌인 인문학은 외면당하고 있다. 각 대학은 문학·역사·철학 강좌를 줄이고, 대신 교육수혜자의 구미에 맞춰 ‘골프와 비즈니스’, ‘취업역량 개발’과 같은 교양과목을 확대하고 있다.

독일 브레멘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유진홍 씨는 “10여년 전 학부제 전환 논의가 이뤄지면서 인문학의 위기 담론이 제기됐다”면서 “한국 인문학의 위기는 근본적으로 한국적 학문축적 체제의 위기”라고 진단했다.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학 밖의 인문학 열풍에 환호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유진홍 씨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서 인문학의 대중화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인하대 병원의 김운용 씨는 “교양있는 삶에 대한 욕망”을 그 원인으로 꼽았다. 인문학적 토론을 통해 삶의 의미를 다시 사유하게 됐다는 이향미 씨는 “세상이 흘러가는대로 살지 않고, 나만의 가치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터득하게 됐다고 말했다. 현대사회에서 불안 요인은 증가하지만, 이것이 단지 경제적 안정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삶을 성찰하고자 하는 현대인의 욕망도 강해졌다.

이러한 인문학적 교양에 대한 요구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지방 자치단체들이다. 각 구청에서는 인문학 강좌를 경쟁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강남구에는 2008년부터 ‘수요인문학강좌’를, 송파구는 2010년에 ‘대하소설로 배우는 인문학 강좌’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성북구의 ‘성북구민과 함께 하는 인문학 강좌’나 영등포구의 ‘동네 인문학’ 등도 대표적인 사례이다. 



“인문학 열풍, 말랑말랑한 교양수준의 상품화”
문학평론가 이명원은 지금의 인문학 열풍은 “시장의 논리와 연동하면서 상품화 되고 있는 양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삶의 가치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함으로써 정치적 시민의 복권”을 이루는 것이 인문학의 과제 중 하나인데, “시장의 영역에서 인문학이 포섭됨으로써 오히려 말랑말랑한 교양수준”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의 박성식 부대변인도 최근의 인문학 열풍에 대해 “기업과 광고가 인문학적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듯”하다면서, “상품 광고나 기업이 인간화된 모습으로 스스로를 이미지화하는 데 인문학적 방법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인문학은 성장과 효율을 중시하는 자본주의적 가치에 대응하는 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와 관련 윤채영 중산고등학교 교사의 말이 눈길을 끈다. 그는 “제국주의 시대에 인문학이 성장했는데, 이는 지배엘리트들에게 역사와 문학을 가르침으로써 지배의 기술을 전수하는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과거 인문학이 체제 내에서 작동하는 것이라면, 한국 사회의 인문학 대중화도 중산층의 삶의 논리화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는 분석이다.  



살기 위한 인문학, 삶을 위한 인문학
최근 17만부나 팔려 인문고전 읽기 붐을 일으키고 있는 책이『리딩으로 리드하라』이다. 저자는 인문고전을 읽음으로써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인문고전을 번역서가 아닌 원서로 읽고, 베껴쓰라고 권한다. 이러한 당황스러운 주장이 대중을 매혹시키고 있다. 마치 고갈되지 않는 성공의 에너지원으로‘인문고전’의 위치를 격상시킨 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저자가『꿈꾸는 다락방』이라는 자기계발서를 간행해 100만부 이상을 판매한 베스트셀러가라는 사실이다. 자기계발의 자리에 인문고전을 위치시킴으로써 그의‘성공신화’는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리딩으로리드하라』와『꿈꾸는 다락방』사이의 간극은 한국 인문학이 직면한 크레바스처럼 위태롭다. 



그렇기에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영문학)의 이야기는 중요한 사실을 환기시킨다. 그는 “인문학 연구는 대학의 틀 안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는 특성”이 있다면서, “대학밖 인문학은 인문학의 대중적 향유이지 인문학 연구의 대중화로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 인문학이 대학 바깥에서 대중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긍정적이다. 그렇다고, 인문학의 대중화가 인문학 자체의 위기 극복의 대안일 수는 없다. 오히려 대중은 인문학적 인식에 목말라하면서 한국의 언어로 형성된 인문학을 한층 더 요청하고 있다.

인문학 대중화는 노숙인·저소득층·재소자·비정규직 노동자 등과 대화하려는 인문학자들의 실천적 노력과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통치의 기술로 작동하는 ‘순화된 인문학’이 충돌하는 담론 투쟁의 장이 되고 있다. 대학 내 인문학의 위기가 대학 바깥의 인문학 담론의 유행으로 힘을 얻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다. 반면 인문학을 상품화하는 일부 경향은 궁극적으로는 인문학의 가치를 왜곡시키는 것일 뿐이다

인문학은 실용적으로 전환될 수 있는 고갈되지 않는 에너지원이 아니다. 이러한 태도로 접근하는 인문학은 궁극적으로 ‘인문학 해체’ 담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근본주의적 성격을 지닌 인문학이 자본주의 체제의 재활성화의 도구로 전락한다면, 거기에는 ‘절망과 기만의 인문학’이 남게 될 것이다. 살기 위한 인문학이냐, 삶을 위한 인문학이냐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지금 한국 인문학은 대중화 여부와 상관없이 여전히 위기이고, 이것은 한국 학문체계 자체의 위기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한국의 인문학자들은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한국 인문학은 뉴타운·행정수도·후쿠시마 원전·건강한 먹거리 등과 같은 현안에 대해 인문학적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한국 인문학이 자본의 스토리텔링 일부로 편입될 것인가, 체제 바깥을 상상할 수 있는가는 근본적 문제설정과 연결돼 있다.(오창은 지행네트워크 연구위원) 

11. 07. 26.  

 

P.S. 대학밖 인문학 붐과 연관된 흐름은 '자가학습'용 책들의 증가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출간한 '앎과 삶' 시리즈도 그런 맥락에 놓이는 듯싶다. 우리 삶에 필요한 앎을 그때그때 충족해보자는. 1차분으로 <교육>, <20대>, <중국> 세 권이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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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울비의 알림
    from seoulrain's me2day 2011-08-01 14:33 
    인문학습공동체를 어떻게 볼 것인가 — via 로쟈
 
 
정다빈 2011-07-27 14:50   좋아요 0 | URL
서점에서 인문학관련 자기계발서를 볼때마다 일련의 의심과 더 쉽게 인문학을 알 수 있을까하는 유혹을 동시에 느꼈었습니다. 다행히도 지금의 제 선텍이 옳은거 같아 마음이 놓이네요.

로쟈 2011-07-27 22:09   좋아요 0 | URL
자기계발은 자기단련만큼이나 필요하고 불가피한 것인데요, 다만 '누구를 위한'이란 문제의식을 포함해야 될 듯해요...
 

출판동향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원고 발굴이 새 통로로 SNS도 활용되고 있다는 기사다. 출판계에 종사자들에겐 새로운 소식이 아니지만 최근에 구체적인 성과들도 나오고 있어서 '동향'으로 짚어봄직하다. 더 자세한 진단은 이번주에 나온 기회회의(300호 특집호)에 실린 한기호 소장의 글을 참고할 수 있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왼쪽부터 페이스북, 트위터 출판 등으로 눈길을 끄는 이현우(블로그), 이외수(트위터), 이건범(페이스북)씨.   

한국일보(11. 07. 21) SNS '글맥'을 캐라 될성부른 작가가 보인다 

"공식적으로 알립니다. 작년 9월 말부터 12월 말까지 석 달 동안 페이스북에서 '징역'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연재했더랬습니다. 제가 20대 때 두 차례에 걸쳐 3년 가까이 징역살이 했던 내용을 복기한 글이었습니다. 함께 읽던 선후배나 친구들의 반응이 좋았고, 책을 내라는 격려가 있었기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단행본으로 내게 되었습니다."

 

출판기획자 이건범씨가 대학생 시절 학생운동을 하다 옥살이한 경험을 담은 <내 청춘의 감옥>(상상너머 발행)을 지난 달 초 내면서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처음부터 출판까지 생각하며 쓴 글은 아니지만 페이스북 지인들이 적극적으로 책 내기를 권해 단행본 출판으로까지 이어졌다.

출판계의 원고 발굴 통로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무명의 '글쟁이' 발굴 매체로 주목 받기 시작한 블로그에 이어 최근 들어 국내 출판계가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글맥'으로 눈여겨 보고 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20일 격주간 출판전문지 '기획회의'에서 이 같은 국내 출판계 변화를 소개하면서 "이제 누구나 페이스북, 트위터, 블로그 등을 통해 글을 쓰고 저자가 될 수 있는, 누구나 소비자(독자)이면서 생산자(저자)가 되는 프로슈머 시대"라고 지적했다.

한 소장에 따르면 국내 '페북'(페이스북 글로 만든 책)의 원조는 4월 출간된 <페이스북 담벼락에 희망을 걸다>(북셀프 발행). 페이스북을 통해 소망과 나눔의 중요성을 이야기해온 출판인 권영민씨의 글을 묶은 책이다. 권씨는 5월에도 몇몇 필자들과 함께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썼던 글을 묶어 <희망에 입맞춤>이라는 책을 냈다. 페이스북은 블로그처럼 긴 글쓰기가 가능한데다 저자나 출판사가 출판 전에 잠재 독자의 반응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블로그처럼 다양하게 글들이 올라 오고, 출판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기대된다. 



트위터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12만명이 넘는 팔로어를 거느려 국내 트위터계의 '대통령'으로 통하는 소설가 이외수씨의 트위터 글을 모아 지난해 4월 나온 에세이집 <아불류 시불류>(해냄 발행)는 지금까지 15만부가 팔렸다. 명언ㆍ잠언을 모아 1990년대 나왔던 그의 책에 트위터 글을 더해 1월 새로 낸 <코끼리에게 날개 달아 주기>(해냄 발행)도 반년 새 8만부가 나갔다. 

 

하지만 트위터 글이 단행본으로 소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황소자리 출판사 지평님 대표는 "인기 있는 트위터 글을 책으로 만들려고 해 봤지만 한 주제에 '140자'라는 분량이 한계로 다가오더라"며 "당장 출판으로 이어지기보다는 감성과 글 재주 있는 저자를 발굴하기 위한 장 정도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블로그 연재글을 묶어 책으로 내는 '블룩(Blook)'이라는 말까지 있고 실용 분야에 치우쳤던 책 내용도 <로쟈의 인문학 서재>(이현우), <하하 미술관>(김홍기)처럼 인문, 미술 등으로 폭이 넓어지고 있는 블로그 출판만큼 정착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는 말이다

11. 07. 21. 

P.S. 개인적으론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이용하지 않고 있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일이 너무 많다는 것과 '과도한' 소통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블로그도 후임자만 있다면 좋으련만... 

P.S.2. 기획회의(300호) 특집을 다룬 한겨레 기사도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11. 07. 22) 한국을 대표하는 300명의 저자는?

출판 전문지 <기획회의>(격주간·사진)가 최근 발간한 통권 300호에서 특집기획으로 ‘한국의 저자’ 300명을 선정해 발표했다. 선정된 저자들은 문학을 제외한 인문·사회·문화 등 논픽션 부문에서 최근 5년 동안 단행본 저서를 1종 이상 펴낸 생존 필자들 가운데 뽑았다. 300명 명단에는 백낙청, 김우창 등 원로급부터 젊은 인터넷 논객 한윤형 등 대중적 저자들까지 고루 포함돼 있다.

저자들 면면에서 두드러진 현상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활성화로 책 생산 방식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블로그와 페이스북 등을 글쓰기의 장으로 활용해 책을 펴내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기획회의> 발행인인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최근 베스트셀러 동향을 분석한 결과 블로그 연재 글을 책으로 묶은 ‘블룩’(blook: 블로그와 책을 합친 말)의 강세가 두드러진다고 밝혔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쓴 이현우씨, <샤넬, 미술관에 가다> 등을 쓴 패션미술 저술가 김홍기씨 등이 이런 블로그 기반형 저자들이다. 최근에는 페이스북에 연재한 글을 출간하는 ‘페북’도 등장했다. 지난 4월 출간된 <페이스북 담벼락에 희망을 걸다>(권영민)와 출판기획자 이건범이 쓴 <내 청춘의 감옥>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한기호 소장은 1981년 이후 30년 동안 국내 독서 시장 흐름을 네 시기로 정리했다. 1987년 6월 항쟁 이전은 인문사회과학의 시대, 1997년 외환위기까지는 개인주의 발흥의 시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를 자기계발의 시대로 구분했고, 그 뒤 지금에 이르는 시기는 대안의 삶 추구의 시대로 보았다. 전체적으로는 1997년 외환위기 전후로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문사철’ 중심의 교수 저자에서 현장 활동가로 저술의 중심이 옮겨갔다고 그는 분석했다.(임종업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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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11-07-21 13:12   좋아요 0 | URL
과도한 소통이 문제입니다.

로쟈 2011-07-21 15:59   좋아요 0 | URL
소통도 극과 극인 듯해요...

페크pek0501 2011-07-21 14:51   좋아요 0 | URL
친구들 몇이 저를 페이스북으로 초대한다는 이메일을 보냈어요. 블로그만으로도 벅차서 가입하지 않았는데, 로쟈님도 같은 생각인 점이 반갑네요. 공짜로 해답을 얻은 셈...

페이스북 관리할 시간 있으면 책 좀 더 읽고 글 좀 더 써서 블로그에 올리렵니다. ㅋ

로쟈 2011-07-21 15:59   좋아요 0 | URL
저도 초대장이 많이 오곤 했는데, 응답이 없어서인지 요즘은 뜸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