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끄려다가 얼떨결에 읽게 된 지난주 시사인의 기사다(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42). 스크랩해놓는다고 하면서 깜박 잊고 지나갔었다(얼마전 번역/오역과 관련한 글을 쓸 일이 있었는데, 미리 사건이 터졌다면 흥미로운 사례로 들 뻔했다). 생각난 김에 챙겨놓고 눈을 붙여야겠다.

시사인(08. 07. 15) 한국 번역사에 길이 남을 일

만세. 오역하면 처벌된다. 학식이 드높으시고 글공부의 깊이가 한량없으신 검사 다섯 분이, 무려 다섯 분이, 문장 하나하나의 오역을 이 잡듯이 뒤져주신다. 온갖 오역과 짜깁기 번역에 오랫동안 신음해온 우리 지식계에도 드디어 서광이 비치려나? 초고 제출 요구에다 압수 수색까지 해서 엉터리 번역자와 출판사를 아주 요절을 내주시려나?

번역 일을 하는 사람의 처지에서, 이번 <PD수첩>에 대한 검찰 수사는 정말이지 인상 깊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 오하라의 마지막 대사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를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니까”라고 번역해낸 것이 가장 유명한 명번역이었다면(참고로 일본어 번역을 그대로 따온 것이라고도 한다), <PD수첩> 오역 논란도 한국 번역사에 길이 남을 일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 설마 이걸로 처벌받는다면 말이다.

광우병에 걸린 것이 아닌지 전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는 <PD수첩>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Actually I could not understand how my daughter could possibly have contracted…the possible…human form of mad cow disease.”

즉, “인간 광우병이라니, 그런 희귀한 병이 대체 어쩌다 우리 딸한테 생겼는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라는 뜻이다(방송 내용으로 보아 이 말 뒤에는 “농장 주변에 간 적도, 외국 여행을 간 적도 없는데”라는 구절이 덧붙었다). <PD수첩>은 “사실은 내 딸이 인간 광우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라고 번역한 자막을 내보냈다.

그런데 검찰은 “우리 딸이 광우병에 걸렸을 리가 없다”라고 번역했어야 마땅한데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처벌해야겠다고 한다. 하늘에 떨어지는 해를 보며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라고 말하지 않았으니 처벌한다는 것과 별로 다를 바 없다.

만일 누군가가 “폐암이라니 정말 모를 일이다. 우리 남편은 평생 담배도 피워본 적 없고 운동도 열심히 했는데”라고 하면 듣는 사람은 “남편이 폐암에 걸렸을 리가 없다”라고 해석해서 알아들어야 하는가? 게다가 “폐암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라고 번역하면 처벌받아야 하는가?

삼성 특검도 검사 한 명에 검사보 세 명이었는데
물론 <PD수첩>이 미국산 쇠고기가 위험하다는 논조로 내용을 몰고 가긴 했다. 하지만 그게 문제라면 ‘한국 경제 대폭락 다가온다’ ‘중국 올림픽 분위기 썰렁’ ‘아침 걸러도 살 안 쪄’ ‘촛불시위 과격 양상’ ‘해삼 멸종 위기’ 등등의 기사 작성자도 죄다 조사하고 처벌할 일이다. 마음먹고 보면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는데 굳이 한쪽 면만 부각시킨 ‘왜곡’을 저질렀으니 말이다.

<PD수첩> 수사는 명예훼손 건이라 한다. 정부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정부의 명예를 어마어마하고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떨어뜨린 ‘미국 동물성 사료금지 오역사건’부터 수사하라. 검사 다섯 명을 배치해서. 번역 초고 제출을 요구하고. 불응하면 농림수산식품부 청사를 압수 수색해서라도. 누군가가 그랬다. 삼성 특검도 검사 한 명에 검사보 세 명이었는데, 번역을 잘했니 못했니 하는 일에 검사를 다섯 명이나 투입한다고.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최내현_월간 판타스틱 발행인)

08. 0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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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07-23 08:48   좋아요 0 | URL
검사들이 고시공부하느라 영어를 못했나보지요...그래서 5명이 필요한가봐요..지금 사전 뒤적이고 있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러니까 맹박군이 '영어공용화'이야기를 꺼냈나봅니다.
역설적이게도 온 국민이 영어에 능통하다면 저 문장을 가지고 쪽팔리게 자동차면허를 제외하고 최고의 국가고시라고 하는 사시출신 검사5명이 머리대고 앉아서 사전 뒤적일 필요도 없을텐데...

하여간 저도 영어를 잘하고 싶어요.예전에 좀 탄력받았을 때 계속했으면 좋았을 것을.직무상관도가 영 떨어지다보니 자연스럽게 안하게 되요. 요즘은 다시 관심이 갑니다. 전 우리 아이도 영어를 잘했으면 좋겠어요.(이거 또 오해받기 좋겠지만...) 외국애들이랑 자연스럽게 의사소통하고,또 영어로된 어려운 책도 따로 번역없이 술술 읽어나가고...더 넓고 많은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전에 영어학원 다닐때 수업시간에 무식한 영어선생이랑 무식한 영어잘하는 학생이 무식하게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는데...제 생각은 100이나 그걸 50밖에 설명하지 못하니까 돌겠더라구요.

며칠전부터 이마미치 도모노부의 <단테신곡 강의>를 보고 있는데 다시금 번역의 중요성에 대해 느낍니다. 여러 판본의 번역문을 짧게 비교해주고 있어서지요.그걸 읽다보면 번역의 미묘한 차이가 주는 미적 감각의 다층적인 차이에 대해 짧은 감탄을 쏟습니다. 모든 국민이 다 영어를 잘할 수 없으니 번역가를 키운다는 일본의 방향성이 우리에게도 필요한 대안이 아닐까 합니다.

로쟈 2008-07-23 21:55   좋아요 0 | URL
이마미치 교수의 책을 읽다 보면 일본 인문학이 만만찮게 느껴지지요. 우리도 분발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노이에자이트 2008-07-23 23:00   좋아요 0 | URL
음...요 문장을 제가 아는 울프 여사에게 물어봐야겠네요.러시아어도 하는 캐나다 여성이랍니다.

로쟈 2008-07-24 22:07   좋아요 0 | URL
한국어도 잘해야 하는데요.^^

노이에자이트 2008-07-25 17:22   좋아요 0 | URL
물어본 결과 검찰의 해석은 틀렸고 피디수첩 것도 맞는 것은 아니라는데 영어가 딸려서 울프여사의 말을 잘 못알아 먹었어요.영어 그만 두고 예전처럼 한자 강의를 해야 하나 봐요.이렇게 영어가 어려워서야 원...가정법이 어렵긴 어렵네요.영어 하기 싫어...

로쟈 2008-07-25 17:34   좋아요 0 | URL
이도저도 안 맞으면 재판 오래가겠군요...
 

여전히 이명박 정부의 국정수행을 지지한다는 십 몇 퍼센트의 MB마니아들을 제외한다면 대다수 국민들에게 현시국은 한심하거나 더러운 세상이다. 개인사로도 다들 바쁜 와중에 나라 걱정까지 하려니 없던 지병까지도 생기겠다(얼마전부터 나는 음식물을 삼키는 일이 조금 불편해졌다). 그렇다고 딱히 '수'가 보이는 것도 아니어서 답답하고 갑갑한 마음에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시국의 '최전선'에 있는 시사주간지 두 편집장의 권두언을 나란히 읽게 됐다. '수'가 없으면 '법'이라도 필요한지라 챙겨놓는다.   

한겨레21(06. 07. 21) 더러운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

“나는 시를 짓겠어요.”

허난설헌이 말한다. 여인이라 천대받고 가난한 여인은 더 천대받는 세상.

“용모인들 남에게 떨어지리오/ 바느질 길쌈 솜씨 모두 좋은데/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난 탓에/ …온종일 창가에서 베만 짠다네/ …베틀에는 한 필 베가 짜였는데/ 뉘집 아씨 시집갈 때 옷감 되려나// 손으로 가위 잡고 가위질하면/ 추운 밤 열 손가락 곱아오는데/ 남 위해 시집갈 옷 짜고 있건만/ 자기는 해마다 홀로 산다네.”(‘가난한 여인을 읊음’)

기방에 빠진 남편은 가족을 돌보지 않고 모진 시집살이 속에 두 아이마저 잃은 그는 스물일곱 연꽃 같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으나, 그의 문집은 명나라와 일본에서까지 이름을 얻었다.

“나는 칼을 들겠소.”

홍경래가 말한다. 출신에 따라 입신 길이 열리고 닫히는 세상.

“당일 (과거시험) 방에 이름이 오른 자들을 보니 거개가 귀족의 자질(子姪)들이었다. 경래의 노한 눈에서는 불꽃이 일었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가 감히 위를 범해 세상을 바꿀 결심을 각제 된 것은 이때부터였다.”(<홍경래전>)

난을 일으켜 여러 고을을 함락시키고 창고를 열어 백성의 배고픔을 달래며 추호도 백성을 범하지 않았으나, 정주성에서 싸우다 전사했다. 이 싸움에서 관군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2천 명을 죽였다.

“나는 책을 읽으며 농사를 짓겠네.”

성호 이익이 말한다. 이해관계에 얽매여 파당을 짓고 돈과 힘을 차지한 쪽이 상대방을 찍어내는 세상.

“법이 오래되면 폐단이 생기고, 폐단이 생기면 반드시 변혁이 따르게 마련인데, 이는 통상적인 이치이다.” “왕도정치는 전지(田地)의 분배를 근간으로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구차할 뿐이다. 분배가 균등치 못하고 권리의 강약이 같지 않은데 어찌 국가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

당쟁에 휘말려 부친이 숨지고 형마저 극형을 당한 뒤 시골로 내려가 스스로 농사를 지으며 빈궁하게 살았으나, 그의 철학은 “추구하는 바가 공자·맹자에 접근했다”는 정약용의 상찬처럼 조선 후기를 빛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또 이번호 기사들을 읽으면서 혹 더러운 세상에 탄식하고 정신의 이물감에 잠 못 이룰 독자들을 위해, 바르지 못한 시대에 처해 선현들이 짚어간 길 몇 가지를 소개했다. 저마다 풍진 세상을 만났으나 마음만은 더럽히지 않고 의기를 꺾지 않았으니, 연꽃같이 피어난 시심은 거룩하고 의분 담긴 칼끝은 서늘하며 호미로 새긴 논지는 길이 빛날밖에.

물론 그때는 지금보다 더 가혹한 세상이었고, 그들은 우리보다 더 걸출한 인물이었을 게다. 참신한 21세기의 상상력으로 각자 처지에 맞는 대처법을 궁리해보시길. 이름하여, 더러운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

*최근까지 <한겨레21>에 연재된 ‘이덕일의 시대에 도전한 사람들’이 <시원하게 나를 죽여라>(한겨레출판)라는 책으로 묶여 나왔다. 이 칼럼의 인용 부분은 모두 책에서 재인용한 것이다.(박용현 한겨레21 편집장)

시사IN(08. 06. 30) 이명박 정부에서의 절망 탈출법

참 오랜만에 ‘구악’이라는 말을 다시 여러 군데에서 듣게 된다. 구악이란 군부독재 시절부터 철저하게 권력과 사주의 편에 서서 곡필을 휘둘러온 퇴물 기자를 가리키는 말로, 일종의 언론계 전문 용어다. 촌지와 향응 문화 속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은 양지만 골라 다녔지만 민주화와 함께 서리를 맞아 역사에서 퇴장하는가 싶었다. 그러던 것이 이명박 정부 출범과 동시에 언론계 기관장 자리를 노리고 떼를 지어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들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경탄할 만한 탐욕을 가졌다.

기자 시절 이런 구악을 상사로 모시게 되면 지옥을 맛본다. 전 직장에서도 언론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한 사람과 같이 일을 한 적이 있는데 제정신을 갖고 버티기가 힘들었다. 그는 지시만 할 줄 알지 소통이란 걸 몰랐다. 언론도 기업이기 때문에 살아남아야 하고, 살아남으려면 권력이나 대기업의 편에 설 수밖에 없다고 지치지도 않고 주절거렸다. 기자들이 항의하면 그는 마지못해 사과하는 척했다가 급한 소나기만 피하고 나면 어느새 시치미 떼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똑같은 일을 되풀이했다.



그와 일하면서 우울증에 걸리지 않으려고 나름으로 연구를 많이 했다. 도가 수행자가 한다는 유체이탈도 자주 써먹었다. 정신을 육체에서 분리해 회의실 천장을 날아다니며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회의 장면을 지켜보노라면 절로 웃음이 나와 울분이 가라앉곤 했다. 그와 지낸 몇 년 동안 유체이탈 분야에서 상당한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불행에서 벗어날까 책도 많이 뒤져봤는데 소득은 별로 없었다. 과학자들이 제시한, 절망에서 놓여나는 구체적인 방법은 창의력을 발휘하라든가,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라는 정도였다.

이명박 정부 들어와 시간이 갈수록 극도의 분노와 절망을 표출하는 이들이 자꾸 늘어만 간다. 얘기를 들어보면 구악과 생활하면서 겪게 되는 증상과 비슷하다.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위장 반성했다고 분노하고, 그리고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하던 일을 계속하려고 시도하는 걸 보며 절망한다. 이제 100일밖에 안 지났는데 남은 4년 몇 개월을 어떻게 견뎌내느냐고 하소연한다.

이순신 장군 동상 밑에서 유체이탈을 해 ‘명박산성’ 뒤에 웅크린 대통령의 초라한 모습을 지켜본다면 위안이 되려나. 매일 밤 창의력을 발휘해 공권력을 희롱하고 경찰버스를 끌어내느라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걸 보면 시위대는 이미 절망 탈출법을 체득한 것 같기도 하다.(문정우 편집국장)

08. 07. 22.

P.S. '명박산성'이 위키백과에도 등재돼 있다(http://ko.wikipedia.org/wiki/%EB%AA%85%EB%B0%95%EC%82%B0%EC%84%B1). '이견'이 제기되어 '삭제 토론'중이라고 하는데, 그나마 누리꾼들의 이런 수고가 요즘은 '절망' 속에서도 사는 재미를 잠시나마 느끼게 해주는군. 몇 군데 둘러보다가 찾은 오늘의 굿뉴스와 배드뉴스. 나쁜 쪽은 너무  많아서 꼽을 수도 없다. 단적으로, 외국인들이 31일째 주식을 매도하고 있다는 소식(http://news.hankooki.com/lpage/economy/200807/h2008072202484984010.htm). "지금까지는 미국경제(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따른 신용경색)로 인해 외국인들이 주식을 팔고 있다고 믿어왔지만, 이젠 한국경제(경기침체+기업실적악화) 자체가 문제라는 시각이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한다. 한국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도 별로 전망이 없다는 걸 그들은 아는 모양이다. 그런 가운데 좋은 소식이란 '정치인DB'가 구축될 예정이라는 것(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7220023375&code=940401). "의정활동 내용과 이력, 발언 등을 기록한 정치인 온라인 이력 시스템을 만드는 시도다. 촛불정국에서 드러난 정치권의 무능력에 실망한 대학생들이 네티즌 손으로 직접 정치인 자료를 축적하고 평가할 필요성을 느낀 결과물로 나온 것이다." 당장 다음 선거에서부터라도 활용된다면 좋겠다. 국민들의 '닭짓'을 중단시켜줄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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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8-07-22 09:21   좋아요 0 | URL
참 살기 힘든 세상입니다. -_-

로쟈 2008-07-22 10:36   좋아요 0 | URL
거기에 공부할 건 왜 그리 많은지요. 요즘은 독도사에다 엠네스티에 대해서까지 학습하고 있으니...

연두부 2008-07-22 11:54   좋아요 0 | URL
헉 제 말이 바로 이거 거든요...요즘은 아침에 출근해서 인터넷 클릭하기가 두렵습니다....게다가 어쩌다 어제먹은 술이 덜깬 상태이면..분노와 참담함에 눈물바람까지...쩝

로쟈 2008-07-22 22:43   좋아요 0 | URL
자초한 부분도 없지 않으니 더 참담하지요...

수유 2008-07-23 18:24   좋아요 0 | URL
나는 책을 읽으며 농사를 짓겠네..
비록 공맹에 이르지 못할지라도...
그러고 싶네요, 정말로. 농사는 못지어도 밥은 지으면서.

로쟈 2008-07-23 21:56   좋아요 0 | URL
곧 방학이시네요.^^

수유 2008-07-24 12:13   좋아요 0 | URL
이번 방학은 꽝입니다. 이미 방학은 했지만 오늘도 학교이라나요.;;

로쟈 2008-07-24 22:08   좋아요 0 | URL
에어콘은 나오지 않나요?^^

노이에자이트 2008-07-23 22:49   좋아요 0 | URL
2005년도 독도파동 때 상당한 분량을 기록해 놓은 일기를 보니 어쩌면 올해와 똑같은지...그 당시 이미 허무맹랑한 제안으로 밝혀진 것을 올해도 똑같이 읊어주시는 정치인들과 지식인들...대체 왜 이럴까요.

로쟈 2008-07-24 22:07   좋아요 0 | URL
그래서 DB가 필요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7-25 17:33   좋아요 0 | URL
제가 독도의 식생에 대해 조금 알아요.거기 식수로 쓸 수 있는 샘이 두갠가 있는데 지금 독도경비대 마시기도 빠듯하대요.그런데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자면서 무슨 호텔을 짓자, 심지어 주택단지를 짓자 하는데, 누가 거기 와서 호텔 종업원을 하며 주민이 있으면 학교도 지어야 하는데...그리고 거기는 고속버스나 비행기 타고 가는 곳도 아니고 악천후와 높은 파도때문에 일 년에 갈 수 있는 날이 얼마 안 돼요.

로쟈 2008-07-26 00:44   좋아요 0 | URL
그냥 다 '쇼'라고 해야겠지요...

노이에자이트 2008-07-26 22:57   좋아요 0 | URL
쇼가 재미가 있어야 쇼지요.이거 원 짜증나서...

로쟈 2008-07-27 16:31   좋아요 0 | URL
가증스러운 쇼들도 있으니까요...
 

최초의 흑인 후보가 등장함으로써 올 미국 대선은 다른 때보다 '흥행'할 여지가 많지만 과연 오바마의 리더십이 '미국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장담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노골적인 미국식 '로비 정치'와 '국가적 경매'로 비유되는 미 대선판 자체가 '희망'의 걸림돌이다(차라리 '경매 민주주의'란 말을 붙이고 싶어진다). 이를 짚어주고 있는 칼럼을 옮겨놓는다(http://h21.hani.co.kr/section-021165000/2008/07/021165000200807020717068.html).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어서다.

한겨레21(08. 07. 02) 미 대통령 선거는 경매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철인 요즘, 필자는 민주당 후보로 확정된 버락 오바마 쪽으로부터 일주일에 한 번꼴로 편지를 받고 있다. 나이만 동갑일 뿐 일면식도 없는 그가 미국식으로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면서 시작하는 전자우편을 보내온 지 벌써 석 달째다. 하지만 필자는 한 번도 그에게 답장을 하지 않았다. 선거 진행 상황에 관한 간략한 소식 뒤에 이어지는 편지의 요점인즉, ‘오늘 중으로 25달러를 기부해달라’는 것이다. 필자 역시 다른 후보들에 비해 그에게 상대적으로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 시민도 아닐 뿐더러 적은 액수일망정 그의 선거운동 비용에 보태려고 기꺼이 주머니를 털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우리 같은 외국인들까지 가세하지 않더라도 민주당과 오바마 진영에는 돈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고 25달러 타령
오늘 오바마 선거운동 관리자인 데이비드 플러프로부터 받은 편지에는 상대방인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 쪽이 지난 5월에만 무려 4500만달러(약 450억원)를 주로 워싱턴의 로비스트들과 특수 이익집단들로부터 모금했다는 폭로성 비난이 실려 있다. 매케인보다 당 차원의 후보 지명이 몇 달이나 늦어진 오바마로서는 빨리 따라잡아야 하니, ‘이번달 중 새로운 개인 기부자 2만 명 확보’라는 목표 달성에 협조해달라는 부탁이 이어진다. “오늘의 25달러 기부가 당신의 영향력을 2배로 만들 것”이라면서, 자기들의 ‘운동’에 동참할 것을 믿고 “미리 감사를 전한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오는 11월 본선까지는 150만 명의 개인 기부자들이 동참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바마는 미국의 정치 지형에 급진적인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지금까지 벌여온 선거운동이 전통적인 방식과 달리 각 지역의 자발적인 풀뿌리 운동을 광범위하게 동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선거비용도 대부분 전국의 소액기부자들로부터 모금한 것이다. 민주당도 당 차원에서 오바마의 선거자금 모금 정책을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과연 오바마는 워싱턴의 악명 높은 ‘로비 정치’를 ‘풀뿌리 정치’로 바꾸는 데 성공할 것인가? 더 지켜봐야겠지만, 아직까지 그 대답은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오바마는 공화당과 민주당이라는 미국의 양당제 틀 속에서 나온 정치인이지, 기존 정치구조로부터 독립적인 ‘제3의 후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는 미국 정치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자본과 특수 이익단체, 기득권 집단들의 끈질기고도 효율적인 회유와 저항의 견고한 벽을 넘어야 한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그런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1968년과 같은 폭발적인 대중운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1960년대 초반의 존 F. 케네디, 그리고 1990년대 빌 클린턴의 경험을 보라. 새로운 정치세대의 등장이라는 축복을 받으며 대통령직을 시작한 그들이었지만, 워싱턴 정치는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부여해준 온건한 이미지 탓에 민주당의 타락이 은폐되는 역설적인 결과를 가져오기까지 했다.

금융자본이 오바마에게 접근하는 이유는
회의적인 시각을 뒷받침해주는 기사들이 벌써 나오고 있다. 오바마가 민주당 후보로 선출되는 데 필요한 대의원을 확보한 직후, <로이터통신>은 미국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월스트리트에서 민주당과 오바마 진영으로 선거자금이 몰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오바마가 지금까지 발표한 경제·통상 정책이 매케인 쪽보다 자신들에게 불리함에도, 미국과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금융자본이 오바마를 ‘주요 투자처’로 간주해 접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유무역, 각종 규제, 법인세, 배당세 등 자신들의 이익과 직결되는 문제에 대한 오바마의 정책을 ‘수정’하고자 하는 그들의 목적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5월 말까지 오바마 쪽이 월가로부터 받은 선거자금은 모두 790만달러(약 8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케인 쪽보다 거의 2배가 많은 액수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대기업들은 후보 개인에게 기부하는 것 말고도 양당의 전당대회 행사비용을 충당해주는 방식으로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있다. AT&T, 엑셀에너지 등 대기업들이 오는 8월과 9월에 치러질 공화당과 민주당 전당대회 비용 1억1200만달러(약 1120억원)의 80%를 지원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록히드마틴 같은 방위산업체와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 업체들로부터도 지원금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정치자금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는 책임정치센터(www.opensecrets.org)에 따르면, 지난해에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서기로 선언한 이후 오바마는 지난 5월 말까지 총 2억6500만달러(약 2700억원)를 거둬들였다. 힐러리 클린턴은 2억1400만달러(약 2150억원), 그리고 매케인은 9600만달러(약 970억원)를 선거자금으로 모금했다. 이미 중도에서 탈락한 후보들은 제쳐두고라도 3명이 모금한 액수만 벌써 5억7500만달러(약 5800억원)가 넘었다. 이게 미다스의 손이 아니고 무엇인가? 누가 최종 승자인가를 가리는 대통령 선거 날짜가 11월에 있으니, 그때까지 버티기 위해서는 양당 후보가 각각 5천억원씩 필요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2명이 합쳐 1조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액수다.

이처럼 엄청난 돈을 들이며 치러지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일러 혹자는 ‘국가적 경매’(national auction)라고 조롱한다. 지금 공화당 후보로 나서고 있는 매케인 상원의원도 공화당의 ‘이단아’ 노릇을 하며 개혁 성향을 보일 때는 미국의 선거자금 모금 체계를 가리켜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응찰자에게 국가를 팔아넘김으로써 공직을 유지하려는 양당 공모하의 정교한 직권남용 체제”라고 비난한 바 있다.



업자들에 사로잡힌 정치인들
19세기 후반 미국의 경제력이 한창 번성하고 제국주의 정책을 감행할 때 작가 마크 트웨인은, 겉은 번쩍거리나 속은 부패한 당대 미국 사회를 ‘도금시대’(The Gilded Age)라고 풍자했다. 1970년대 중반 이래 미국 정치는 돈잔치로 전락해 ‘제2의 도금시대’가 도래했다. 대통령과 의회는 거대기업과 이익단체의 매수 대상 일순위에 올랐다. 정부와 의회는 물론, 심지어 사법부까지 그들의 이익을 반영하고 있다. 미국 정치는, 그리고 아메리카제국은 거대기업과 군수산업체, 에너지업계에서부터 광우병 발생의 위험을 기꺼이 무릅쓰고 쇠고기 수출을 감행하는 축산업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방면에서 막대한 정치자금을 매개로 정치인들을 포섭하는 ‘업자들’에 사로잡혀 있다. 그 사이에 미국의 ‘국익’도, 전 국민을 위한 의료보험도, 공립학교의 재정도 질식돼가고 있는 것이다.(김창진 성공회대 교수·사회과학부)

08. 07.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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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호 2008-07-14 21:36   좋아요 0 | URL
퍼오신 글은 흥미롭긴 하지만 저는 약간 다른 생각이 있어요. 원래 민주당 자체가 월가의 이해를 대변해오지 않았나..하는거죠. 그니깐 노골적인 석유와 무기 깡패냐 아니면 금융깡패냐..이런 차이인거 같아요. 캘리니코스가 제3의 길을 까는 걸 보면(얼마전에 인간사랑에서 캘리니코스의 책을 보내줬는데..역시 초 보수주의자인 저에게는 좀 당황스러운 내용이 많더군요, 흠...) 복지를 강화하면서 동시에 자본주의의 노예로 만드는 클린턴과 블레어의 입장을 비판하더군요. 그런 면에서는 월 스트리트가 오바마를 지지하는게 하등 놀라울게 없다는 거죠.

로쟈 2008-07-19 11:01   좋아요 0 | URL
그렇다고 공화당은 월가와 반목해왔다고 볼 수 있을까요? 당선가능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싶은데요...
 

번역 관련 기사를 하나 더 옮겨놓는다. 이번에는 한국어번역이 아니라 영어번역 문제다. 한국문학번역원이 실태를 조사한 결과 신뢰성이 높은 번역은 대상작품 72종(41편) 가운데 7종에 불과했다고 한다. 거기에 절반이 넘는 45종 가량이 신뢰하기 어려운 번역이었다는 것. 그래도 절반 가량은 읽을 만한 번역이라고 하니 번역원장의 말대로 '예상했던 것보다는 긍정적인 결과'일는지도 모른다. 번역을 통한 문화적 소통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보다 자세하게 다루고 있는 기사는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807/h2008070202550186330.htm 참조).   

한겨레(08. 07. 02) "영어번역 한국소설 절반 가량 오·졸역”

영어로 번역된 한국 소설 중 절반 가량이 오역이나 졸역 등으로 작품 이해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문학번역원(번역원·원장 윤지관)이 1일 발표한 ‘영어권 기 출간도서 번역평가 사업’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작품 41편 가운데 충실성과 가독성 등의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작품이 21편으로 전체의 51%에 머물렀다.

구체적으로는 신뢰성이 아주 큰 에이제로(A0) 등급이 7종(17%), 신뢰할 만한 비플러스(B+) 등급이 14종(34%)였던 반면, 신뢰성에서 문제가 되는 비제로(B0)와 그 이하인 시플러스(C+) 및 시제로(C0) 등급이 각각 10종(25%)과 5종(12%), 5종(12%)씩이었다. 에이플러스(A+) 등급은 없었으며, 축약본이어서 판정을 유보한 작품이 두 종이었다. 작품이 아닌 번역본 종수별로 환산하면, 비제로 등급 이하가 45종(64%)이어서 전체의 3분의 2 가까이가 신뢰하기 어려운 번역본에 해당했다.

번역원이 이번 사업에서 조사 대상으로 삼은 것은 영어로 번역된 한국 현대 소설 196종(장르 종합 56종은 별도) 가운데 41편 72종이었다. 시기상으로는 1917년에 발표된 이광수의 장편 <무정>에서부터 1999년 작인 공지영씨의 단편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에까지 이른다. 이번 사업의 평가위원장을 맡은 송승철 한림대 교수(영문학)는 “가장 많이 번역된 작품, 시대별 안배, 문학사적 의의 등을 고려해 평가 대상을 선정했다”며 “조심스럽긴 하지만, 이번 평가 결과가 한국 소설 영문 번역 전체의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대표성을 지닐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번역원이 밝힌 오역·졸역의 사례로는 “화를 보지 마오”(이상, <날개>)를 “Don’t look at disaster”(올바른 번역은 ‘Don’t suffer misfortune’)로 엉뚱하게 옮긴 경우, “다낭에 거주하는 민간인들의 명단이다”(황석영, <무기의 그늘>)가 “This is the last of the civilians in Danang”(편집 과정에서 list가 last로 바뀜)으로 표기된 경우 등이 대표적이다. 그 밖에 한국어 실력 부족으로 인한 오역과 번역자의 자의적인 축약 또는 해설적 첨가 등의 문제가 있었다.

이번 사업을 주관한 번역원의 윤지관 원장은 “미국의 대학 등에서 영어로 된 한국 소설을 교재로 쓰고자 할 때 쓸 만한 텍스트가 없다는 등의 문제 제기가 있어 지난해 1월부터 사업을 시작했다”며 “그러나 실제로 평가 작업을 해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는 긍정적인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송승철 위원장은 “가독성보다는 충실성 쪽에 좀더 무게를 두고 평가했기 때문에 개별적으로는 불만을 느끼는 번역자들도 있을 것이라고 본다”며 “이번 평가 결과가 생산적인 토론으로 이어져 번역 비평을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번역원은 소설에 이어 시의 영문 번역에 대한 평가 작업 결과를 내년 상반기 중에 내놓을 예정이다.(최재봉 문학전문기자)

08. 07.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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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7-02 00:09   좋아요 0 | URL
농촌소설 같은 경우는 옛날 농기구,나물,제사의식 등은 우리말 뜻도 모를 단어도 많던데 그걸 외국어로 번역하다니 대단한 실력이 요구되겠죠.

로쟈 2008-07-02 00:12   좋아요 0 | URL
거꾸로 외국소설을 우리말로 옮길 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어요...
 

'국민주권과 국가폭력'(http://blog.aladin.co.kr/mramor/2160267)이란 페이퍼에서 언급된 '마르크스주의적 국가이론'이 내게 떠올려주는 이름은 니코스 풀란차스(1936-1979)이다(알튀세르, 그람시와 함께 한동안 자주 언급되다가 국내에서는 '잊혀진' 이론가이다). 얼마전 한 대학원신문에 관련기사가 게재된 것이 그를 상기하는 데 도움을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래전 일이지만 '국가이론'에 관한 책들이 앞다투어 나왔던 적이 있다. 사회과학 서적들이 여전히 대학가에서 읽히던 때의 일이다. 나는 풀란차스를 직접 읽은 적은 없고, 2차 문헌에서만 주로 보았지만 아래 기사를 읽으면서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된다. 물론 최근의 시국과 무관하지 않다. 기사는 학술저널 담비에서 옮겨놓는다(http://www.dambee.net/news/read.php?section=&rsec=&idxno=10089).

고려대 대학원신문(146호) 인용만 될 뿐 읽혀지지는 않는 이론가 풀란차스

이른바 ‘혁명의 시대’였던 1980년대를 지나면서 한국에서 ‘자본주의 국가이론’에 대한 논의는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물론 간간히 정치경제학이나 발전사회학에서 ‘개발국가론’을 필두로 국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는 했었다. 하지만 이는 상당부분 네오 베버리안들의 이론적 공헌에 힘입은 것으로, 이전 시대와는 질적으로 구분되는 ‘자본주의’의 뚜렷한 속성 및 그것의 속살을 형성하는 계급관계에 주목하는 ‘자본주의 국가이론’이라 지칭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없지 않았다.

문제는 이처럼 ‘자본주의 국가이론’에 대한 학문적 관심은 소멸되었을지언정, 한국의 자본주의 국가는 여전히 왕성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민주화 이후 ‘국가’의 역할, 운영, 그 외형에 투사된 다채로운 계급관계의 중요성은 더욱 더 커졌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는 민주주의가 정착한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 관한 이론들을 외우다시피 학습하다가, 정작 우리가 민주화되고 민주주의가 나름대로 작동하게 된 현 시점에 와서는 ‘국가이론’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서구에서 더 이상 많이 논의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덩달아 관심 없어하는 한국 학문의 고질적인 문제점은 여기서도 예외없이 나타난다.



민주화이후, 외환위기 이후 10년에 걸쳐 민주세력들의 정부가 실패하는 것을 경험한 지금, 그리고 ‘노동’의 무기력함과 ‘삼성’으로 대변되는 자본의 전방위적 위력을 모두가 실감하고 있는 지금, 그리스 태생의 맑스주의 이론가 니코스 풀란차스의 저작『국가, 권력, 사회주의』는 우리에게 ‘자본주의 국가’에 대해서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인문,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이들은 이른바 ‘상대적 자율성’의 이론가로서 혹은 알튀세르와 함께 ‘구조주의 맑스주의자’로서 풀란차스의 이름에 매우 친숙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해설서내지 논문에 언급된 ‘밀리반드와 풀란차스 논쟁’,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의 개념을 습득하는 데에 주력할 뿐, 그의 저작을 직접 읽는 이들을 주변에서 보기는 쉽지 않다. 기자역시 글을 쓸 때, ‘자본주의 국가’나 ‘상대적 자율성’을 언급하면서, 몇 해 전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떠듬떠듬 읽은 그의 초기저작 『정치권력과 사회계급』의 영문판을 기계적으로 '(Poulantzas, 1973)'으로 인용했던 기억이 있다.



영역이론에서 관계이론으로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이, 한 이론가의 이론내지 사상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주저들을 꼼꼼히 읽어내야 한다. 풀란차스 역시 예외가 아니다. 지금 소개하는 그의 저작『국가, 권력, 사회주의』에서 전개되고 있는 풀란차스의 이론은 우리가 흔히 그의 이론이라고 알 던 것과 사뭇 다르다. 뛰어난 국가이론가이자 풀란차스에 대한 권위있는 해설서를 집필한 밥 제숍의 개념화처럼 풀란차스는 기존 자신의 ‘영역이론’이 ‘관계이론’으로 진화했음을 이 책에서 확연히 보여주고 있다.

과거 그의 출세작인 『정치권력과 사회계급』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국가라는 정치적 상부구조를 분석하기 위한 개념들의 복잡한 위계체계를 만들어 내려는 시도, 즉 특수한 생산양식에서의 국가의 영역이론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제숍의 지적처럼 국가는 자신을 위해 다양한 계급으로부터 권력을 빼앗아 권력을 획득하는 주체가 아니며, 국가를 초월해 자리잡고 있는 지배적 계급주체에 의해 장악되어 있는 도구적인 권력의 저장소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국가는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조직하는 전략적 장이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풀란차스는 권력은 관계적이라는 푸코의 지적을 상이한 인식론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수용한다. 계급갈등과 모순에 많은 방점을 둔 그는 책의 상당부분을 할애하여 국가는 헤게모니 분파의 정치적 책략에 유리하도록 구성되어 있는 권력네트워크의 교차를 통해 형성되는 전략적 장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계급관계의 물질적 응축인 국가
예의 자본주의의 고유한 특징인 ‘국가’와 ‘경제’의 공간사이의 상대적 분리로(즉 정치와 경제의 형태분리) 논의를 시작하는(21p) 풀란차스는 먼저 자본주의 국가의 제도에 있어서 물질적 틀을 이루고 있는 요소들인 정신노동과 육체노동간의 분업, 개체화, 법, 민족에 대해서 논술한다(61~162p). 맑스 특유의 ‘물신주의 비판’과 유사한 방식으로 사회적 분업에 따라 사람들을 계급이 아닌 법적-정치적 ‘민주시민들’로 개체화하면서도 민족의 이름으로 이들의 통일성을 구현하는 메커니즘을 분석한 후 그는 앞서의 물질적 틀을 만들어내면서도, 그에 영향받기도 하는 계급들과 계급분파들 사이의 세력관계를 고찰한다(162~204p). 자본주의 국가는 독자적인 정치현상으로 고찰되어야 하며, 상이한 국면에서 정치적 계급투쟁의 특유성과 관련지워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계급투쟁은 역동적 과정을 거치면서 국가장치내에서 재생산되고 변화되기 때문이다.



‘구조편향적이다’, ‘정치편향적이다’, ‘기능주의적이다’라는 풀란차스에 대한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작은 현대의 우리에게도 많은 함의를 제공한다. 또한 그의 후기저작까지 고려했을 때, 비판의 일정부분은 수긍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공부를 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그의 저작이 갖는 난점은 무엇보다도 ‘지독한 난해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뭐 고전이 쉽게 읽힌다면 그것도 좀 이상하다 할 수 있겠지만, 풀란차스 저작의 난해함은 도가 지나치다는게 기자의 판단이다. 일단 독해가 가능해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텐데 그게 쉽지가 않다. 하지만 설령 기자처럼 글의 절반 정도만 이해하더라도 지금 ‘한국의 국가’를 분석하는데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번역본의 절판’이라는 극한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원우들에게 소개한다.(김경필 기자)

08. 0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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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7-01 00:24   좋아요 0 | URL
풀란차스가 왜 자살했는지 아시면 알려주세요.위키피디아에는 그건 안 나와 있네요.

로쟈 2008-07-01 13:17   좋아요 0 | URL
저도 모르는 일입니다. 찾아보시면 알려주시길.^^;

소경 2008-07-01 08:55   좋아요 0 | URL
"오히려 국가는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조직하는 전략적 장이라는 것이다."는 오늘 사회를 꼭 찝어주는 군요. 응당 받아야할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 내용을 불식되고, 납득이 되지 않을 사항들을 정당화되게 하는 구도는 역시 국가의 전략적인 장에서 발효가 되는게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네요......

로쟈 2008-07-01 13:18   좋아요 0 | URL
'민주주의론'만 가지고 현정부를 이해하려고 하면 애로가 많다는 뜻도 되겠죠...

han86866 2008-07-01 14:14   좋아요 0 | URL
카더라통신수준의 얘기라 올리기 민망하지만 풀란차스가 자살을 한것은 68이후 70년대를 거치면서 전통적인 맑시즘적 계급분석의 한계(사회계급스펙트럼의 다양화)와 계급혁명에대한 좌절과 회의때문이라 들었습니다

로쟈 2008-07-01 17:07   좋아요 0 | URL
이론가답게 자살 이유 치곤 좀 추상적이군요.^^;

노이에자이트 2008-07-01 23:57   좋아요 0 | URL
그것 참...알 듯 모를 듯 하네요.70년대 들어서 스페인의 프랑코.폴투갈의 살라자르 등 파시스트 지도자들이 다 죽어서 기쁠 듯한데...그리스 군사정권 때문인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