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할일과 시름에 머리가 무겁고 어지럽던 차에 조금이라도 마음을 가라앉히게 되는 글을 읽었다.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이 며칠전 타계한 중국의 '국보급' 학자 지셴린 선생을 추모하는 글이다. 한국에 다른 제자가 더 있는지 모르겠지만 연배로 보아 정수일 선생이 한국인으로서는 수제자가 아닌가 싶다. 고인의 학덕과 사제간의 학연이 학문의 길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보게 한다.   

프레시안(09. 07. 16) 스승 지셴린 선생을 기리며 

지난 11일 향년 98세로 타계한 지셴린 베이징대 명예교수는 12개 언어에 능통한 중국의 대학자로 중국언론에서는 그를 '인간 국보'로 불러왔다. 특히 베이징대 동방어문학부를 창설한 그는 우리나라 문명교류학의 대가인 정수일 선생의 스승이기도 하다. 1952년 베이징대 동방어문학부에 입학한 그는 지셴린 선생의 권유로 아랍어를 공부하게 됐으며 그 이후 문명교류학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현재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정수일 선생이 자신을 학문의 길로 이끈 옛 스승을 기리는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백수(白壽)를 눈앞에 둔 노스승 지셴린(季羨林) 선생님이 타계하셨다는 비보를 접한 순간 슬픔과 애달픔을 금할 수 없다. '국학의 대사', '학계의 태두', '국보'로 높이 추앙 받아온 선생님의 타계는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 학계의 크나큰 손실이다. 옷을 여미고 머리 숙여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하는 바이다.

노스승과의 첫 인연은 5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2년 여름, 중국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국가통일시험에 합격되었다는 소식만 듣고 한달음으로 베이징대학에 찾아갔을 때, 대학은 시내에서 지금의 자리로 이사하느라 개교를 미루고 한창 기숙사를 짓고 있었다. 신입생이 기거할 곳은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아득히 먼 변방 옌벤에서 마차와 버스, 기차를 번갈아 타며 나흘이나 걸려 찾아온 곳에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동방어문학부 신입생으로서 의지할 곳은 학부 주임(학장)이신 지 선생님뿐이었다. 학자풍의 인자하신 선생님께서는 사연을 들으시고 나서 무턱대고 자택에 와 지내라는 것이다. 초면에 차마 그럴 수는 없어 사양하니, 친히 대학 관리부서로 이끌고 가 대책을 신신 당부한다. 결국 실내 체육관 2층에 매트리스를 깔고 임시 거처를 마련하게 되었다. 거기서 달포나 지내는 동안 선생님은 몇 번이고 찾아오셨다. 

학기가 시작되자 동방어학 중(당시는 9개 어학) 전공어학을 선정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물론 전공은 학교 당국으로부터 최종 배정하지만, 학생들의 지망은 참고하기 때문에 사색이 필요하다. 역시 상의를 드릴 분은 선생님이시었다. 12개 언어에 달통하신 선생님께서는 한국어와의 상관성을 들어 몽골어나, 아니면 전망성으로 미루어 아랍어를 공부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주셨다. 사실 한국어와 몽골어와의 관련성은 어슴푸레하게나마 알고 있었지만, 아랍어의 '전망성'에 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었다. 결국 아랍어과로 배정되었다. 선생님의 뜻 깊은 배려였었을 것이다. 이렇게 아랍어와의 인연은 시작되었고, 그 후 지금까지 50여년간 내내 아랍-이슬람 세계와 씨름하면서 선생님의 그 탁월한 원경지명과 사려에 거듭거듭 감복하곤 한다.

선생님은 인문학의 모든 분야를 두루 통섭하신 학계의 태두이시며 동양학의 거장이시다. 선생님의 학문적 연구분야만 해도 인도 고대언어, 토카리스탄어, 인도 고대문학, 인도불교사, 중국불교사, 중앙아시아불교사, 당사(唐史), 중국-인도 문화교류사, 중국-외국 문화교류사, 중국-서구 문화의 비교, 미학과 중국 고대 문학예술론, 독일 및 서양 문학, 비교문학, 민간 문학, 산문창작 등 실로 다종다양하며 분야마다에서 발군의 업적을 남기셨으니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80년대에 이미 『지셴린문집』24권이 출간되었다. 그래서 선생님께는 고문자학자. 사학자. 동방학자. 사상가. 번역가. 불교학자. 산스크리트어학자. 작가 등 근 열 가지 학문적 전문가 칭호가 따라 다닌다.

특히 산스크리트어 고전 학문분야에서는 세계적 석학으로서 명성이 높다. 해박한 고전 지식으로 동양학의 원류를 밝히시는 선생님의 강의와 논저는 구지욕에 불타는 우리 젊은 학도들의 가슴속을 깊이 파고들었다. 40여년이 지나서 이순(耳順)을 훨씬 넘긴 나이에 이 제자가 감방에서 만학으로나마 산스크리트어를 익히려고 한 것은 바로 선생님이 일찍이 심어주신 학문인자(因子)의 싹 돋음이다. 이것이야말로 제자가 스승의 학문을 이어받는 '사자상승(師資相承)'일진대, 학문은 그래야 이어지고 살찌는 법이다. 

1955년 말, 카이로대학 유학을 앞두고 선생님 댁에 들렀다.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시며 제자의 두 손을 꼭 잡고 축하를 보내주셨다. 한 말씀 부탁드리니, 잠시 사색에 잠기셨다가 '아랍은 고전의 보고'이니 고전부터 독파하라고 당부하시면서 아랍 고전에 관한 연구는 독일이 가장 앞섰다고 덧붙이신다. 학문에 달관한 스승의 그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짐작하고는 그대로 하리라 마음먹었다. 유학기간 어렵지만 고전에로의 접근만은 끈을 놓지 않았다. 그 접근을 위해 스승이 예시한대로 독일어에도 손을 댔다. 고전은 학문의 샘이다. 샘물만이 참 물이다. 강물이나 냇물은 이미 참 물이 아니다. 뿌리 없이 휘젓기만 하는 얄팍한 학문적 세태를 탈피하는 첩경은 '고전벽(癖)'이다. '고전벽'에 미쳐야 학문의 경지에 미치게 된다. 이것은 스승의 가르침에서 터득한 제자의 학문적 신조다. 스승을 떠나보내는 이 순간, 이 신조가 새삼 되새겨진다.

세월은 어느새 10년을 훌쩍 뛰어넘어 환국을 앞둔 어느 날 인사차로 노스승을 찾아갔다. 그날도 선생님은 고적 속에 파묻혀 계셨다. 이제 머리에는 서리가 내려앉기 시작한다. 찾아온 사연을 말씀드리니, 처음엔 섬뜩 놀래시다가 이내 평정을 되찾으시면서 특유의 인자함과 소탈함으로 동정을 표시하신다. 앞에서도 보다시피, 선생님은 늘 제자를 중국 경내에 사는 한 소수민족인 조선족의 일원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조선(한국)의 한 젊은이로 보셨기에 제자의 환국을 오히려 의젓하게 생각하시는 것이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를 노스승과의 만남은 아쉬움을 감싸는 환담으로 이어졌다. 인생과 학문에 관해 또 한 차례 많은 귀중한 가르침과 당부를 주셨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위국효용'(爲國效用), 즉 '나라(조국)를 위해 배운 것을 효과 있게 쓰라'는 독려였다. 그러시면서 산스크리트어 번역시 한 권을 송별 선물로 주셨다. 노스승은 참으로 학문도 바닥 없이 깊거니와 도량도 한량없이 넓으신 분이다.

선생님은 높은 학덕만큼이나 인품 또한 고매하다. 늘 빛바랜 중산복 차림에 천으로 지은 책가방을 자전거 핸들에 걸쳐놓고 대학 캠퍼스를 누비던 그 수수하고 소탈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선생님은 부드러우면서도 결코 불의 앞에선 굽히지 않는 유약한 지식인이 아닌, 강인한 지성인의 표상이시다. 선생님의 삶의 좌우명은 도연명의 시 한 수에서 따온 "거칠고 변화 많은 세상에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면 걱정할 것이 없으리"다. 얼마나 호방하고 떳떳한 인생관인가. 뒤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 무지막지한 '문화대혁명' 때는 죽음을 무릅쓰고 앞장서 맞받아 나가셨다고 한다. 



당시를 회고한 책 『우붕잡억(牛棚雜憶)』(『외양간의 갖가지 기억』, 여기서 '외양간'은 '문화대혁명' 때 비판 대상자들이 갇혀있던 장소를 빗댄 말)에 의하면, 스승은 연금상태에서 낮에는 홍위병들로부터 '비판'을 받으면서도 밤에는 서양시를 중국어로 번역하셨다고 한다. 지성인의 참 모습이다. 그래서 국무총리 원자바오(溫家寶)는 병석에 누워계시는 선생님을 다섯 차례나 방문해 치국(治國)의 가르침을 구하면서 '정신적 스승'으로 높이 모셨다고 한다. 지금 학계의 거목이 쓰러졌으니 세상이 다시 방황하게 될 것이라고 중국인들이 우려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학문이 중히 여겨지고, 학자가 대접 받는 사회만이 진정한 문명사회이고 바람직한 미래사회다.

스승이란 자신의 삶을 일깨워주고 이끌어주는 사표이다. 스승의 가르침과 이끄심이 있기에 사람은 성숙하고 사회는 발전한다. 참 사표, 참 제자가 고갈된 사회는 병들고 썩은 사회, 무망(無望)의 사회다. '하루 스승 백년 어버이'(一日之師 百歲之父)라는 말은 스승의 가르침이 얼마나 소중하고 영원한가를 일러준다. 스승과 제자의 인연이야말로 전세와 현세, 그리고 내세까지 이어지는 '사제삼세'(師弟三世)라고 하니, 인연치고는 가장 끈질긴 인연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럴진대 스승이 남기고 간 유업은 제자가 맡아 수행해야 한다. 학문에 국경이 없듯이 사제 간에도 국경이 따로 있을 수 없다. 노스승과 같이 덕재(德才)를 겸비한 세기의 '사건 창조적 인물'에겐 더더욱 그러하다. 

스승이시여, 저승에서 이승의 학문개화(學問開花)를 지켜보시면서 고이 잠드시소서. 다시 한번 머리 숙여 명목을 비는 바이다.

2009년 7월 15일
불초제자 정 수 일 삼가  

09. 07. 16. 

P.S. 지셴린 선생의 산문집 <다 지나간다>(추수밭, 2009)에도 '나를 이끈 참 스승'이란 인상적인 글이 실려 있다. 그의 스승으로 베이징대 총장을 역임한 저명한 학자이자 지식인 후스(胡適, 1891-1962) 선생을 추모하는 글이다. 독일에서 학위를 받은 지셴린은 후스 선생의 초빙과 보증으로 베이징대에 자리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알라딘에서 검색되는 후스(호적)의 저작으론 <중국 현대 단막극선>(한국학술정보, 2007)과 <중국의 지성 5인이 뽑은 고전 200>(예문서원, 2000)이 있다(찾아보니 후스의 <중국고대철학사>가 60년대에 소개된 적이 있다). 둘다 공저이고 공편이다. 중국 현대 지성사에 관한 마땅한 책이 있는지 모르겠다. 생각나는 건 육건동의 <진인각, 최후의 20년>(사계절출판, 2008) 정도다(지셴린을 후스에게 소개한 이가 진인각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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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셴린 선생의 인생 이야기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2-21 00:57 
    작년에 세상을 떠난 중국의 석학 지셴린(계선림) 선생의 에세이집이 두 권 더 출간됐다. 며칠 전에 우연히 알게 됐는데, <인생>(멜론, 2010), <병상잡기>(뮤진트리, 2010)가 그 두 권의 책이다. <우붕잡억>(미다스북스, 2004)이 품절상태라 현재 읽을 수 있는 건 <다 지나간다>(추수밭, 2009)까지 세  권이다. 노(老)석학의 담담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겠다.
 
 
Sati 2009-07-17 03:35   좋아요 0 | URL
정수일역의 <왕오천축국전>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프로필이 특이해서, 비장한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보는 느낌이랄까.

로쟈 2009-07-18 10:38   좋아요 0 | URL
학문후속세대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아서 요즘은 한 학자의 죽음이 한 시대의 종언처럼도 여겨집니다...

카스피 2009-07-17 10:33   좋아요 0 | URL
정수일 교수라면 '무하마드 깐수'란 이름으로 간첩 활동을 하다 검거된 분인가요?
체포당시에 출중한 아랍어 실력과 동남아인 같은 외모로 우릴 깜짝 놀라게 했죠.근데 오늘 사진보니 완전히 한국사람이군요^^

로쟈 2009-07-18 10:38   좋아요 0 | URL
네, 오래 수감되셨었죠...

얼음동자 2009-07-17 15:56   좋아요 0 | URL
이런 글을 보면 고전이 어려워서 멀리하다가도 고전을 읽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금 들어요~

로쟈 2009-07-18 10:41   좋아요 0 | URL
우리가(인간의 뇌가) 고전을 읽도록 태어나지 않은 건 확실하지만, 그런 만큼 고전읽기는 자기극복의 한 양태란 생각도 듭니다...
 

지난주 교수신문의 '출판 트렌드' 기사를 옮겨놓는다. '책으로 들여다 본 책들의 풍경'을 다루고 있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도 언급되고 있지만, 그보다는 근간에 나온 '책읽기 책'들을 구경해본다는 의미가 있다. (픽션들을 잘 챙기지 않은 탓에) 몇 권의 책은 나도 기사를 보고 처음 알게 되었다... 

 

교수신문(09. 07. 06) 우리는 모두 통한다… 책으로 들여다 본 책들의 풍경  

카를로 프라베티의 장편소설 『책을 처방해드립니다(Calvina)』(김민숙 옮김, 문학동네, 2009) 한국어판 제목이 가리키는 것은 소설의 일부분이다. 네 번째 꼭지 제목인 ‘남자애야, 여자애야?’로는 다소 미흡하다. 전체 내용은 ‘칼비노야, 칼비나야?’라는 식의 제목이 걸맞다. 이 소설은 양자택일로 일관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일거양득한다. 둘 중에 굳이 어떤 것을 선택하지 않으면서도 둘 다 얻는다.

이러한 양자택일의 역설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성취한 바 있다. 거의 모든 격언이 그렇듯, ‘살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의 문제 또한 삶과 죽음의 극한 대비(혹은 그것의 들이밂)보다 앞뒤 맥락이 더 중요하다. “마음에 더 숭고한 태도는, 고통으로 난폭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견디는 것인가. 아니면 무기를 쳐들어 난관의 바다에 맞서는, 그리고, 거부하며 그것을 끝장내는 것인가.”(김정환 옮김)

아무튼 프라베티의 소설에 등장하는 노부인은 책을 처방한다. 노부인은 책장에서 책을 꺼내 창백한 남자에게 건네며 이렇게 말한다. “아침에 열 쪽, 정오에 또 열 쪽, 그리고 자기 전에 스무 쪽 읽으세요.” 독서가 정신건강을 돕는다는 게 그 이유다.

서평집을 두 권이나 펴낸 ‘회사원 철학자’는 회사원이 아니라 ‘철학자’다. 회사에 다닌다고 철학박사학위 소지자를 ‘일반’ 회사원이라 할 수는 없다. 인문학 서재의 주인 역시 ‘평범한’ 사람은 아닐 것으로 여겼다. 맞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이현우 지음, 산책자, 2009), 바꿔 말해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을 운영하는 ‘곁다리 인문학자’는 세칭 명문대를 다녔다. 그는 문인자격증을 갖고 있다. 



나는 로쟈가 20대인 줄 알았다. <한겨레21> 칼럼 ‘로쟈의 인문학 서재’에 실린 필자 사진을 보고선 30대로 생각했다. 나보다 한 살 어린 그는 이제 40대에 들어섰다. 로쟈는 로자 룩셈부르크가 아니고 『죄와 벌』의 로지온 라스콜리니코프다. 로쟈는 “로지온의 애칭이다. ”고전에 대해 약간 배타적인 나는 로쟈의 고전론에 반발한다. “우리가 고전을 읽으며 고전에서 배워야 하는 삶은 당당한 삶이고 기품 있는 삶이다.” 과연 그러하고, 정말 그래야 하나?

『Calvina』에도 살짝 등장하는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의 고전관이 외려 미덥다. 칼비노가 말하는 고전은 다시 읽는 것을 강조하는 책이다. 여기서 “‘다시’라는 말은 유명 저작을 아직 읽지 않았음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의 궁색한 위선을 드러낸다.” 나는 『안나 카레니나』를 이제야 읽고 있지만 별로 안 부끄럽다. 로쟈가 우리말로 옮긴 러시아 영화감독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의 인터뷰는 매우 인상적이다. 그리고 사르트르는, 확실히, 깬다. 노벨상은 거부하지만 상금은 받겠다고 했다니



『번역가의 서재』(한길사, 2008)는 번역가 김석희의 ‘역자 후기’ 모음으로, 첫 10년간의 번역 작업을 정리한 『북마니아를 위한 에필로그 60』(1997)에 이은 두 번째 10년 동안의 매듭이다. 번역가는 세 번째 ‘역자 후기 모음집’을 펴내면서 은퇴하길 바란다. 



루이스 버즈비의 『노란 불빛의 서점』(정신아 옮김, 문학동네, 2009)은 ‘서점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배운 한 남자의 이야기’다. 나도 한때는 거의 매일 서점을 드나들었다. 도서관에도 자주 갔다. “마음은 뜨겁게 불타오르는데 몸은 조용히 가라앉는 그 비밀스러운 곳”(뒤표지)은 서점일까, 도서관일까. 도서관일 것도 같지만 서점이 정답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서점 취업문을 두드린 버즈비는 서점에서 10년 일하고 출판사 외판원을 7년 했다. 지금은 현업에서 손을 뗀 상태지만 일주일에 다섯 번은 서점에 간다는 그가 부럽다. 디지털도서관이 도서관이 아닌 것처럼 인터넷서점은 서점이 아니다. 인터넷서점에선 뜨겁게 불타오르는 마음과 조용히 가라앉는 몸이 연출하는 ‘황홀한’ 형용모순을 체험하게 어려워서다. 



조지 오웰과 알베르토 망구엘은 서점에서 일한 적이 있는 작가다. 산문선집 『코끼리를 쏘다』(박경서 옮김, 실천문학사, 2003)에 실린 「서점의 추억」에 나타난 오웰의 헌책방 점원 경험담은 다분히 부정적이다. “내가 서점을 경영하고 싶지 않은 진짜 이유는, 책방에 있는 동안 책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피그말리온 서점의 16살짜리 알바였던 망구엘은 서점에 들른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주며 강한 문학적 영감을 얻는다. 



“출판인은 ‘책의 공화국’을 꿈꾼다. 책을 통해 지성과 이성의 유토피아를 추구한다.” 한길사 김언호 대표는 『책의 공화국에서-내가 만난 시대의 현인들, 책만들기 희망만들기』(한길사, 2009) ‘책머리에 부치는 말’을 마무리하며 종로서적 폐업의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참으로 의미 있는 문화적 인프라를 우리 사회는 내팽개치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고마움의 표현으로 ‘책머리에 부치는 말’을 맺는다. “고맙습니다./책 만드는 일을 하게 되어/정말 고맙습니다.” 나는 ‘책 공화국’의 일개 시민인 것이, 책 동네 주민의 한사람인 것이 참말 감사하다.(최성일 출판평론가) 

09. 07. 12. 

 

P.S. 말이 나온 김에 '서평집' 혹은 '독서 에세이' 범주에 속하는 신간을 몇 권 더 꼽자면, 이권우의 <죽도록 책만 읽는>(연암서가, 2009)와 장석주의 <취서만필>(평단문화사, 2009), 그리고 구본준, 김미영의 <서른 살 직장인, 책읽기를 배우다>(위즈덤하우스, 2009). 앞의 두 저자는 각각 도서평론가와 문학평론가이니 '업자들'의 책이고, 뒤엣책은 기자인 두 사람이 '책읽기'에 대한 답을 찾아 취재여행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독서 에세이'라기보다는 '독서인 에세이'라고 해야 할까.    

 

'업자'가 아닌 순수 직장 독서인의 책으론 성수선의 <밑줄긋는 여자>(웅진윙스, 2009)도 신간이다. 굳이 더 소개가 필요하진 않겠지만, 제목은 카롤린 봉그랑의 <밑줄긋는 남자>에서 따온 것이다. 특이한 책으론 도서관 사서들의 이야기를 적은 스콧 더글라스의 <쉿, 조용히!>(부키, 2009). 이 또한 '독서 에세이'라기보다는 '사서 에세이'라고 해야 할 듯하니 새로운 하위장르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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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07-14 23:35   좋아요 0 | URL
최초로 책을 샀던 서점을 기억합니다. 그 서점은 작은 구멍가게 같았읍니다. 그때 구입한 소월 시집은 지금도 제 책장에 있읍니다. 걸어 갔다, 걸어 온 그 길이 제 최초의 사유의 길이었습니다.(중1)

로쟈 2009-07-13 23:03   좋아요 0 | URL
저는 기억을 못하겠는데요.^^;

푸른바다 2009-07-15 01:26   좋아요 0 | URL
요즈음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사르트르 평전>을 읽고 있는데, 거기는 사르트르가 노벨상 거부는 물론 돈도 받지 않은 걸로 되어 있던데요^^ 어느 것이 진실인지 모르겠네요^^

로쟈 2009-07-15 22:51   좋아요 0 | URL
몇 쪽인가요? 저도 내막이 궁금합니다.^^

푸른바다 2009-07-16 01:55   좋아요 0 | URL
454-458쪽을 보면 노벨 문학상과 관련된 절들이 있습니다. 레비의 글이 문제를 제기하는 식으로 되어 있어서 다른 해석의 여지를 남기지만, 레비는 왜 사르트르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고 그 상금을 멋지게 사용하지 않았는지, 예를 들어 그가 칭송해 마지 않던 남아메리카의 민주화 투사 중의 한명(체 게바라?)에게 주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만약 사르트르가 노벨상 수상을 '상징적'으로만 거부하고 상금을 받아서 개인적인 목적으로 사용했다면 그에 대한 기술도 있어야 할 맥락입니다^^ 처음에는 노벨상을 거부하다 입장을 바꿔 수상하고 상금 전액을 스웨덴 문학을 위해 자선 사업에 기부한 버나드 쇼와 노벨상 상금을 개인적 사치를 위해 사용한 모리악을 대비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된 사실은 사르트르가 레지옹 도뇌르 훈장도 거부했고, 학술원과도 거리를 두었으며, 심지어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자리도 거절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상황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역시 '해석'의 여지를 남기기는 합니다만, 미셸 푸코도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강의한 것을 생각해 보면 사르트르의 철저함이 숙연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거의 완벽한 비제도권 철학자였던 것 같습니다^^

2009-07-16 0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펠릭스 2009-07-16 04:33   좋아요 0 | URL
고등학교를 졸업한 비제도권 철학자, "맘대로 하데, 책임저라!", 남이 '예'라고 할때, 본인 '노'라고 한 격입니다. 음, 거창한 이유보다는 본인의 성격일 수도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로쟈 2009-07-16 08:44   좋아요 0 | URL
상을 거절하면 상금도 받지않는 게 당연한 일이어서, 저도 그때 기사를 읽으며 의외였습니다. 제가 잘못 읽지 않았다면 다른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가 싶어서요. 레비에 책에도 자세하게 나오진 않았는데요...

푸른바다 2009-07-16 11:39   좋아요 0 | URL
비밀글이 제게 보이는데요? 로쟈님에게도 보이는 지 모르겠네요. 러시아 어로 되어 있으니 로쟈님은 이해하실 수 있겠네요^^ 구글 번역기로 영역해보니 내용 파악은 가능하군요. 사르트르 인터뷰인데, 돈 문제로 고민했으나 결국은 받지 않은 것으로 보이네요.
구글 번역기로 쥬판치치의 슬로베니아로 된 인터뷰를 영역해서 읽어 본적이 있는데, 내용 파악은 가능하더군요^^ 서구어들이 얼마나 서로 밀착되어 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펠렉스님: 사르트르는 고졸자는 아니라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고등사범은 고등학교가 아니라 프랑스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최고의 대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자로서 사르트르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했다면 더 평가를 받을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사르트르 역시 최고 학력의 소유자였습니다...

로쟈 2009-07-16 12:16   좋아요 0 | URL
네, 그건 사르트르의 공식 거부 성명이구요. 문제는 이후에 그가 상금은 받겠다고 수정 제안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실현되지 않은 듯하지만). 저는 그 얘기를 좀 자세히 알고 싶었어요...

푸른바다 2009-07-16 13:47   좋아요 0 | URL
저도 궁금한 건 반드시 확인하는 성격이라, 점심시간에 인터넷을 뒤져서 아래와 같은 문장을 찾아냈습니다^^

"In 1964 he was awarded the Nobel Prize in Literature, but he declined it stating that "It is not the same thing if I sign Jean-Paul Sartre or if I sign Jean-Paul Sartre, Nobel Prize winner. A writer must refuse to allow himself to be transformed into an institution, even if it takes place in the most honorable form". However, he later wrote to the Swedish Academy asking for the monetary prize to be sent on to him in confidence; a request that was refused." (http://profiles.friendster.com/90800214).

말씀대로 상금을 받으려는 시도는 했던 것 같군요^^

위키피디아에 아래와 같은 내용도 있습니다^^
He was the first Nobel Laureate to voluntarily decline the Nobel Prize,[19] and he had previously refused the Légion d'honneur, in 1945. The prize was announced 1964 22 October; on 14 October, Sartre had written a letter to the Nobel Institute, asking to be removed from the list of nominees, and that he would not accept the prize if awarded, but the letter went unread;[20] on 23 October, Le Figaro published a statement by Sartre explaining his refusal.

However, Lars Gyllensten, long time member of the Nobel prize committee has claimed in his autobiography that Sartre later tried to access the prize money, but was subsequently turned down.[21] Allegedly, the French philosopher in 1975 wrote a letter to the Nobel Prize committee saying that he had changed his mind about the prize, at least when it came to the money. At which point the prize committee is said to have declined the request, stating that the funds had been reinvested in the Nobel institute.

노벨상 커미티 중의 한 사람이었던 Gyllensten, Lars이 밝힌 모양이고 그 출전은 다음과 같답니다^^ "Gyllensten, Lars (2000), Minnen, bara minnen, Stockholm: Albert Bonniers förlag, p. 282, ISBN 9100571407"

편지를 10년이나 지난 1975년에 쓴 것을 보니, 병으로 고생하던 시절이었고 돈이 궁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추측이 듭니다...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상금을 요청하는 편지가 10년 후에 씌여졌다는 걸 알게 된게 새로운 것 같네요...

로쟈 2009-07-16 13:16   좋아요 0 | URL
네,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을 텐데, '평전'들에선 다루지 않아서요.^^;

지양 2009-07-15 01:08   좋아요 0 | URL
저는 아직도 <서재 결혼시키기>보다 재미있는 독서 에세이를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

펠릭스 2009-07-16 05:3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도 읽어봐야 겠습니다.

사람들은 중독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던데요.
기부 중독이니 뭐니 하면서요. 책 중독이라는 말도 있겠죠?

기억에 남는 TV문학관이 있었는데요.
어떤 노인이(학자같았는데) 자신의 서재에 꽉 찼던 책들을 어느 날
한 권도 없이 텅비워 놓고, 매우 만족해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찾아봐야 겠습니다)

어떤 친구집에 갔었는데, 의외로 친구의 방에는 별 책이 없었습니다.
책이 차 있을 줄 알았는데, 많이 읽는 것과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과는 다른듯 합니다.

저는 '서재'가 부럽지만, 별로 좋아한 말(서재)은 아닙니다.
스님 방을 본적이 있었는데, 그 방에는 책이 없었습니다.
학자의 방에 책이 없다면 죽음이죠.

좋아하는 것과 소유는 다른 듯합니다. 물론 수도자와 학자는
다르지만요. 독서 중독도 그 나름이라 생각했읍니다. 고수들은
선별을 잘 한듯 합니다.


 
종교를 둘러싼 과학전쟁

다윈 탄생 200주년, 진화론(<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을 맞는 기획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것은 얼마전에 마무리된 한국일보의 '다윈은 미래다'이다. 지난주 출간된 화제작 <종교전쟁>(사이언스북스, 2009)과도 관련하여 참고가 될 듯싶어서 3부 '해외 석한 인터뷰' 가운데 '진화론 논쟁의 核 리처드 도키스' 편을 스크랩해놓는다. 이 걸출한 다윈주의자는 <이기적 유전자>, <만들어진 신> 등의 저작으로 이미 국내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대담은 역시나 한국에선 가장 열정적인 다윈주의 전도사 최재천 교수가 맡았다.    



한국일보(09. 05. 20) "우주의 시작·생명의 의미 답할 수 있는 건 종교아닌 과학"

도킨스를 만난 곳은 옥스퍼드 외곽에 있는 그의 자택이었다. 널찍한 거실 벽을 책으로 가득 채웠는데, 수십 가지 언어로 번역된 그의 저서만으로도 서가가 촘촘했다. 물철쭉 빛이 도는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도킨스는 예상보다 작은 체구에 차분한 목소리였다. 생명의 근원과 종교의 본질을 얘기하는 도킨스의 가랑이 사이를, 하얀색 말티즈종 강아지 두 마리가 헤집고 돌아다녔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1976년 <이기적 유전자>를 낼 때 겨우 35세였습니다.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의 생각, 그리고 당신의 삶을 바꿨습니다. 책을 쓰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리처드 도킨스 옥스퍼드대 교수= 그때는 반(反)집단선택론의 흐름이 있었습니다. 콘래드 로렌스, 로버트 아드리 등의 책들이 아주 인기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면서 인류를 위한 행동을 한다는 거죠

▲최= 몇 해 전 한국의 어떤 미술공모전에서 '이기적 유전자'라는 제목의 조각작품이 우승을 차지했어요. 호기심에 가봤는데 제목과 작품을 연결시키기 힘든 기묘한 것이었습니다.(웃음) 당신 저서 제목을 딴 '눈먼 시계공'이라는 SF소설도 한국의 한 신문에 연재 중입니다. 당신은 대중을 사로잡는 표현력을 지닌 것 같습니다. 혹시 작가가 되려고 했던 적은 없었나요. 



▲도킨스= 그런 야망을 가진 적은 없어요. 옥스퍼드대 학부생은 쓰기 훈련을 받습니다. 일주일에 에세이 하나씩 써야 하는데, 난 그걸 즐겼던 것 같습니다.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은 편이고요. 그런 경험이 날 도운 것 같네요.  

가벼운 질문을 이어 던졌는데 돌아온 도킨스의 대답은 짧고 신중했다. 책 속에서 거침없이 기존의 통념을 무너뜨리는 그의 이미지와 거리가 있었다. 최 교수가 "사람들은 당신을 '다윈의 불독'이라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날더러 '도킨스의 푸들'이라고 한다"는 말을 하고 나서야 도킨스는 웃음을 보였다. 한참 웃고 난 뒤 그는 "다윈의 불독은 내가 아니라 허버트 헉슬리의 별명"이라고 말했다. 숱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만들어진 신>에 대한 얘기로 넘어가자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최= 흥미롭게도 에드워드 윌슨, 다니엘 데넷, 당신이 2006년 모두 종교에 관한 책을 썼습니다. 윌슨이 제게 말하기를, 당신은 윌슨의 책을 읽고 "당신은 (기독교를 대하는 태도가) 외교관 같다"고 말했더니, 윌슨이 당신에게 "넌 기독교에 맞서는 전사 같다"고 답했다고 하더군요. <만들어진 신>을 보면 당신은 거의 기독교에 전쟁을 선포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도킨스= 나는 과학자로서 우주와 생명과 진리를 이해하려면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세계관이 있을 수 있더라도 그것이 진리가 아니라 잘못된 믿음에 바탕을 둔 것이라면 나는 맹렬한 적대감을 느낍니다. 표면상 설득력이 있고 매혹적이지만 수백만 인구를 오도하고 있는 겁니다. 기독교뿐 아니라 이슬람교, 힌두교 다 마찬가집니다. 아무 증거도 없이 그저 수천 년 전에 씌여져 있다는 이유로 곧이곧대로 믿는 겁니다. 사람의 마음이 이토록 쉽게 꾐에 넘어간다는 것은 터무니 없는 패착입니다. 나는 싸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면, 인류가 종교를 갖게 된 것도 일종의 진화적 적응의 산물 아닙니까?

▲도킨스= 아, 물론 그럴 겁니다. 심리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중요한 연구주제입니다. 당신이나 나나 다윈주의자니까 그 관점에서 얘기해 봅시다. 종교는 그 자체로서 생존가치를 갖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기질의 부산물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겁니다. 나방과 비슷한 겁니다. 촛불 속으로 뛰어드는 나방의 성향은 당연히 아무런 생존가치가 없죠. 불빛의 원천이 오직 태양이나 달, 별이었던 시절에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한 곤충 신경계의 부수적 산물일 뿐입니다. 나는 부모가 아이들에게 자신의 '종교 딱지'를 붙이는 것을 죄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이들이 기도하는 소리를 들으면, 부모들을 앉혀두고 "그런 걸 시키면 안 돼"하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 행동은 어린이들에게 공산주의를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최 = 사실 아내를 따라서 수년 간 교회에 다닌 적이 있습니다. 제 아들은 아주 독실한 기독교인이 됐죠. 제가 잘못한 걸까요?

▲도킨스= (웃으며)아내 말을 들은 건 잘했죠. 다만 아들이 안 됐네요.

▲최= 저는 사실 스티븐 J 굴드(도킨스와 대척점에 서있었던 고(故) 하버드대 고생물학자로 종교와 과학이 충돌하지 않을 수 있다는 NOMA(Non-overlapping Magiseria)라는 관점을 견지했다)의 생각에 가깝습니다.

▲도킨스= 궁극적으로 NOMA가 가능할까요? 종교는 예수가 물 위를 걷는 것 같은 기적을 말하는데 이는 결국 종교와 과학 사이의 선을 넘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은근슬쩍 기적을 믿으면서 한편으로 굴드가 말한 궁극의 질문이나 윤리는 종교의 몫이라고 하는 거죠. 하지만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윤리적 판단을 하기 위해 꼭 종교가 필요합니까? '우주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우리는 왜 여기에 존재하는가'와 같은 궁극의 질문도 종교의 전문분야는 아닙니다. 아직 답은 나오지 않았을지 모르나 그 대답을 할 수 있는 건 종교가 아니라 과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바마는 외교적 협상을 하면서 중간지대에서 타협을 할 수 있겠죠. 하지만 과학자에겐 그런 '중간지대'가 불가능합니다. 그런 말로 스스로를 속여서 굴드의 편에 서지 않기를 바랍니다.

잠시 인터뷰의 주객이 바뀐 듯한 분위기가 흐른 뒤, 진화에 대한 보다 일반적인 대화가 이어졌다. 도킨스는 33년 전 쓴 <이기적 유전자>가 한국에서 여전히 교재로 사용되며 많은 학생들의 세계관을 흔들어 놓고 있다는 사실을 신기하게 받아들였다.

▲최= 인류는 어떻게 진화할 것이라고 보십니까. 인류는 놀라운 기술들, 예컨대 인공지능이나 로봇 기술을 갖게 됐습니다. 스티븐 J 굴드는 "인류는 진화를 멈췄다"고 얘기한 적도 있는데요.

▲도킨스= 기간을 나눠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300만년쯤 오래 지나면 인류의 뇌가 두 배쯤 커져 월등해지지 않을까 궁금해 합니다. 그러려면 뇌가 큰 사람들이 가장 자식을 많이 낳아야겠죠?(웃음) 하지만 이런 전망에는 회의적입니다. 보다 짧은 기간을 두고 이야기해보면 에이즈에 대한 면역의 예를 들 수 있습니다. 보츠와나처럼 전체 인구의 상당수가 에이즈에 감염된 나라에는 에이즈 바이러스에 면역이 있는 여성들이 있어요. 그것은 강력한 자연선택의 한 예일 수 있습니다. 신장 변화를 볼까요. 20세기 들어 사람들의 키는 극적으로 커졌습니다. 일반적으로 영양 공급의 개선 덕으로 생각하지만, 거기에 어떤 복잡한 선택 작용이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여성이 성적으로 성숙하는 연령도 계속 낮아지고 있습니다. 어쨌든 문화적 진화는 훨씬 빠르고 드라마틱하겠죠. 지금까지의 진화와는 아주 다른 중요한 진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최= '이기적(selfish)'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면, 이 단어는 당신을 엄청나게 유명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오랜 세월 엄청난 두통을 줬을 것 같은데요.

▲도킨스= 첫 질문으로 돌아가보죠. <이기적 유전자>를 쓴 동기가 뭐냐는 질문 말이에요. 다시 말하지만 그건 '반 집단선택론' 움직임의 일환이었습니다. 나는 집단이 아닌 자연선택의 단위, 그리고 그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단을 찾았어요. 그 답은 각각 '유전자'와 '이기적'이라는 것이었죠. 그런데 그것을 조합해 놓고 나니, 생명의 본질에 대한 인류의 오랜 관념을 통째로 뒤집는 것이 되고 말았죠. 



▲최= 다시 그 책을 쓴 시점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이기적 유전자'라는 제목을 쓸 건가요.

이 질문에, 도킨스는 잠시 창 밖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겼다. 그리고 확신에 찬 "Yes"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대답이 돌아왔다.

▲도킨스= 글쎄요. '이기적 유전자-이타적 개체' 정도는 어떨까요. 그때 '불멸의 유전자'로 하자는 제안도 있었는데, 그때 그걸 왜 안 받아들였을까요. '불멸의'라는 표현이 더 사람을 고양시키고, 시적인 표현인데….

▲최= 마지막 질문입니다. 두 세기 전의 인간인 다윈이 현대에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왜 우리는 다윈을 기억해야 하는 것일까요. 



▲도킨스= 다윈은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했습니다.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죠. 이 행성(지구)에서도 우주 다른 모든 곳과 마찬가지로 물리학의 법칙이 지배합니다. 하지만, 이 행성에서는 어쩌면 우주에서 유일할지도 모를 특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죠. 생명체가 날개를 펄럭이고, 헤엄을 치고, 점프를 하고, 죽이고, 지배합니다. 그 신비로운 현상은 자연선택이라는 과정에 의해 이뤄집니다. 그 과정은 마침내 그것을 이해하는 신경계, 곧 뇌의 진화에까지 이르렀어요. 그것에 대한 앎이 다윈이 우리에게 준 것입니다

09. 06. 21.  





P.S. 2006년에 <만들어진 신>과 나란히 출간된 걸로 소개된 에드워드 윌슨의 <창조>와 다니엘 데넷의 <주문 깨기>도 마저 번역되면 좋겠다. '해외 석학 인터뷰'에 연재된 데넷(http://news.hankooki.com/lpage/it_tech/200905/h2009052703171823760.htm#)과 윌슨(http://news.hankooki.com/lpage/it_tech/200906/h2009060303354023760.htm)의 인터뷰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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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울비의 알림
    from seoulrain's me2DAY 2009-06-23 00:40 
    리차드 도킨스 인터뷰 — via 로쟈
 
 
델러웨이부인 2009-06-25 13:19   좋아요 0 | URL
이기적 유전자가 그런 뜻이었군요. <이타적 인간의 출현>도 같은 맥락인가 보아요.

로쟈 2009-06-26 12:28   좋아요 0 | URL
네, '이기적'이란 건 '의인화'한 표현이죠. 인간의 이타적 행동의 진화에 대한 설명은 <이기적 유전자>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이름이나 닉네임을 온라인상에서 검색해보는 걸 '허영검색'이라고 한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산책자, 2009)의 출간 이후에 그 허영검색이란 걸 종종 해본다. 책과 관련하여 나도 모르는 기사나 리뷰가 뜨기 때문이다(자주는 아니지만 의외의 리뷰를 만나면 반갑다). 어제는 '뉴스' 쪽에서도 관련기사를 읽을 수 있었는데, 블룩(blook)과 출판권력의 구조 재편을 다룬 주간한국의 기사였다. 그냥 읽고 지나치면 말 일이지만, "하루 70여만 명이 방문하는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이라고 엉뚱하게 소개돼 있어서 스크랩해놓는다. 최근 80만명이 넘어섰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총방문자수이다. '하루 70여만명'쯤 방문해야 '파워블로거'가 되는 거라면, 나는 아직 멀었다!..  

주간한국(09. 06. 17) 블룩(blook), 출판 권력 재편하나 

주부 김향숙(41ㆍ여) 씨는 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를 삶의 통찰과 연결짓는 에세이를 써왔다. 글을 쓰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생각도 정리되는 치유의 감정을 느꼈다. 자신이 쓴 글을 세상에 내보이고 싶은 욕심이 있었지만 방법을 잘 알 수 없었다. 기성작가도 아닌 일반인이 출판사 문을 두드리는 용기를 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모인 온라인 글쓰기 클럽을 발견한 것이다. 그도 고부간의 갈등을 비롯한 자신의 가족에 대한 고백적인 글을 나누기가 처음에는 어려웠다. 하지만 정기적으로 모여 글쓰기 정보를 공유하고 비평하며 내공을 길렀다. 이들은 결국 공동저작의 책을 내기로 뜻을 모았다. 수익금도 ‘어린이 재단’의 결식 아동 돕기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공유’하기로 했다. 이들은 출판사에 찾아가 자신의 글을 부탁하지 않았다. ‘가족’이라는 한 가지 주제로 기획하고 쓴 글을 모아 출판사를 선택했다.  

지난달 4일 ‘지식노마드’에서 나온 ‘사랑하지만 한 번도 말하지 않았습니다’가 그 결정체. 이 책은 김 씨를 비롯해 온라인에서 만난 글쓰기 블로그 회원 10명이 자신의 가족이야기를 모아 엮은 것이다. 김 씨는 “책 출간이라는 꿈을 이뤄서 너무 기쁘다”며 “저술부터 출간까지 클럽 회원들 스스로의 힘으로 해 힘들기도 했지만 고생한 만큼 보람됐다”고 말했다.

블로그의 내용을 책으로 만든 ‘블룩(blook)’이 출판 권력의 지형을 재편하고 있다. 출판의 중심이 제작자에서 소비자로 급속히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작가와 일반인으로 나뉘는 출판 주체의 경계마저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블룩이란 ‘책(book)’과 ‘블로그(blog)’의 합성어로 블로그에 올라왔던 글을 묶어 낸 책을 일컫는 신조어다.

출판 순서의 변화가 가장 두드러진다. 출판사가 작가의 글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네티즌이 블로그의 글을 먼저 선택한다. 경우에 따라 블로거가 출판사를 직접 선택해 출판하는 경우도 있다. ‘출판사-저자-독자’에서 ‘저자/독자-출판사-독자’의 구조로 제작과 유통의 순서가 뒤바뀌는 것이다. 자연히 출판 권력의 방향 역시 변화한다. 출판의 무게 중심이 출판사에서 저자, 독자로 기울어지고 있는 것이다.

김중태 IT문화원 원장은 “옛날 같으면 책을 한 권 내려면 출판사의 간택을 받으려 노력해야 했지만 블룩의 출현으로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며 “이 같은 변화는 창작의 주체로서 전업작가의 권위마저 위태롭게 할 정도”라고 말했다.

블룩, 출판의 중심을 출판사에서 일반인으로
출판사가 저자를 고르고 선택하며 중심에 서는 출판 관행이 블룩을 통해 변화하고 있다. 전문적 작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모여 글과 글 쓰기 방법을 공유하며 공동저작으로 책을 내는 일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지만 한 번도 말하지 않았습니다’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월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SNS)에서 만난 29명의 블로거들이 다양한 온라인 툴을 활용해 직접 만들어 낸 ‘2009년 블로그로 살아남다’가 대표적인 예. 이들은 출판사의 도움 없이 기획부터 집필, 디자인, 인쇄, 유통까지 출판의 전 과정을 자신들의 힘으로 해내는 기염을 토했다. 저자의 직업은 기업가, 마술사, 프로그래머, 응원단장, 마케터, 디자이너, 컨설턴트 등 다양하다.

제작부터 출판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한 달. 블로거 클럽의 한 회원이 블로그에 대한 글을 함께 쓰자는 글을 올린 뒤 많은 댓글과 토론글이 올라왔다. 50명의 회원이 주제별로 글을 써서 원고에 응모했다. 2번의 준비모임과 작업 끝에 책이 나왔다. 제작 과정의 중심 역시 출판사가 아닌 블로거였다. 출판할 글은 각자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뒤 트랙백을 걸어 서로 연결했다. 디자이너가 MS오피스 퍼블리셔로 만든 표준 편집기로 각자가 글을 편집했다. 퍼블리셔 프로그램 사용법은 웹 카메라와 동영상 강의를 사용했다. 책의 표지나 표지시안은 구글 앱스(Apps)의 양식생성 기능을 썼다.  

생활ㆍ문화ㆍ시사, 담론의 주체 바꾸는 ‘블룩’
블룩의 출현은 출판권력과 저자의 변화를 통해 생활ㆍ문화ㆍ시사 담론의 주체를 전문가에서 일반인으로 역전시키고 있다. 일반인이 예술관련 비평이나 담론을 쉽게 꺼낼 수 없었던 분위기를 바꾼 것이다. 김홍기의 블로그, 문화의 제국(blog.daum.net/film-art)에 연재됐던 ‘하하 미술관(2009)’, ‘샤넬 미술관에 가다(2008)’ 등은 책으로 나와 더 인기를 끌었다. ‘샤넬 미술관에 가다’는 미술을 통해 보는 패션의 숨은 이야기다. ‘하하 미술관’은 미술 심리 치유 에세이다. 이철우의 심리학 책인 '인관관계가 행복해지는 나를 위한 심리학(2007)' 역시 블로그 연재를 먼저 한 블룩이다. 



블룩의 유행은 정치비평 등을 통한 시사담론을 이끄는 오피니언 리더를 교수, 언론인 등 일부계층에서 일반인까지 확대시키고 있다. 하루 70여만 명이 방문하는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http://blog.aladin.co.kr/mramor)’의 주인 이현우(42) 씨는 문화 에세이 ‘로자의 인문학 서재(2009)’를 펴내 인기를 끌고 있다. 그는 서울대 노어노문학과 강사다.
  

블로거 ‘MP4/13’과 김용민 시사평론가가 공동 집필한 책인 ‘블로거, 명박을 쏘다(2008)’도 화제를 일으켰다. ‘MP4/13’는 ‘고소영’ 라인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유명 블로거다. 그는 지난 2007년 2월 자신의 블로그에 ‘이명박 정부 고소영 라인이 뜬다’는 제목의 글을 써 하루 22만여 명의 방문자가 그의 블로그를 찾기도 했다. 의사인 박경철의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2008)' 역시 블로그 글의 모음이다.  



특히 요리 관련 블로그 글의 출간은 블룩의 활성화를 견인했다. 김용환 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쓴 요리법을 책으로 옮긴 ‘2000원으로 밥상차리기’는 지난 2003년 출간해 현재까지 70만여 부가 팔렸다. 이 책은 간단한 조리방법과 완성 사진으로 구성된 일반적인 요리책과 달리 사진으로 조리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해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요리책인 ‘혜나네 집에 100만 명이 다녀간 까닭은(2006)’도 인기를 끌었다. 



여행ㆍ생활 부문에서도 블룩은 베스트 셀러의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해왔다. 오영욱의 ‘오기사 여행을 스케치하다’(2008), ‘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2006), ‘깜삐돌리오 언덕에 앉아 그림을 그리다’(2005)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박성빈의 여행책 ‘그리우면 떠나라-Nova의 슬프도록 아름다운 이별스크랩(2006)’도 있다. ‘황혜경의 ‘반나절이면 집이 확 바뀌는 레테의 5만원 인테리어(2006)’, 송민경의 ‘명품 다이어트 & 셀프 휘트니스(2005)' 등도 온라인에서 인기를 끈 글이 오프라인 책으로 나와 히트한 블룩 성공사례다.

전문 작가들도 변화에 발맞추기 시작, 외국에서는 이미 대세
전업작가들도 일부지만 이런 변화에 발맞춰 블룩의 대열에 동참을 시도하고 있다. 블로그에 글을 먼저 올리고 책 출간을 나중에 하는 식으로 변화에 발맞추고 있는 것이다. 출판권력의 변화는 일부 출판사의 전횡에 시달리던 문단이 더 바라던 바일 수도 있다. 정도상 소설가는 신작 장편소설 ‘낙타’를 8일부터 문학동네 인터넷 커뮤니티(http://cafe.naver.com/mhdn)에 일일 연재하기 시작했다. 황석영은 ‘개밥바라기 별(2008)’을 블로그에 출간보다 먼저 연재한 바 있다. 박범신도 블로그에 ‘촐라체(2008)’를 연재했다.

아마존 (www.amazon.com)에서는 블룩이 베스트셀러가 되는게 더 이상 이변이 아니다. 블로거가 책 창작과 유통의 중심이 돼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비즈니스 위크’에 따르면 블룩은 2005년 미국 출판계 베스트 셀러의 2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MS 프로그램 관리자 출신의 미국인 조엘 스폴스키는 경영에 관한 자신의 블로그(www.joelonsoftware.com) 글을 묶어 ‘조엘 온 소프트웨어(2005)’를 펴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독일인 필립 렌센은 자신의 블로그인 ‘구글 블로코프(blog.outer-court.com)’에 올린 글을 모아 ‘구글을 재밌게 사용하는 55가지 방법(2006)’을 내놓기도 했다. ‘블룩’이라는 출판의 방법이 구글을 즐겨 쓰는 평범한 사람을 화제작의 저자로 바꿔놓은 것이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도 언제든 출판계의 강자로 떠오를 수 있는 세상이다.(김청환기자) 

09. 0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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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블룩의 시대와 출판의 향방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11-12 12:29 
    올 한해 출판계를 결산하는 한국일보의 연재기사에서 '블룩(blook)'을 다룬 꼭지를 옮겨놓는다. 블록에 대해서는 나도 한 발을 담그고 있기 때문인데, 기사에서도 언급이 되고 있다. 더불어, 자세히 보니 관련이미지가 '로쟈의 저공비행'이기도 하다. 다시금 바닥이 좁구나란 생각이 드는데, 내년에는 더 많은 블로거들의 더 풍성한 '블룩'이 햇빛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흠, 나부터도 어서 2, 3탄을 준비해야 할까...   한국일보(09. 11
 
 
드팀전 2009-06-18 12:19   좋아요 0 | URL
최근에 제가 좋아하고, 자주 펴보는 블룩이...'산타벨라'분의 책입니다.ㅋㅋ
워터코인을 토양 위에 하는 수경재배로 완전히 성공시켰다는...이 만족감.
하나는 뚝배기에 하나는 못쓰는 법랑 주전자에...

로쟈 2009-06-18 14:07   좋아요 0 | URL
대단한 블로거들이 참 많은 듯해요.^^ 블룩 판매량이 의외일 정도로...

2009-06-18 16: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1 1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게으름뱅이_톰 2009-06-22 18:22   좋아요 0 | URL
출판까지 한달! 놀라워요. 글쓰는 블로거들의 로망이 아닐까요? 블룩. ^^

로쟈 2009-06-22 23:11   좋아요 0 | URL
'로망'이라고 하기엔 너무 쉬워진 듯해요.^^
 

지난 '6.9 작가선언'에는 "촌스러워서 살 수가 없다"는 한줄선언도 포함돼 있었는데, 정말로 촌스러운 일들이 너무도 태연하게, 너무도 자주, 게다가 '강압적'으로 벌어지고 있어서 감정의 갈피를 잡기가 어렵다(이젠 '촌스러운'보다도 몇 단계 아래인 '명박스러운'이라고 해야겠다). 어제는 국세청 게시판에 내부 비판의 글을 올린 직원을 파면시켰다는 기사가 뜨더니 오늘은(내일자) 경찰이 좌파서적 판매동향 파악에 나섰다는 기사가 또 할말을 잊게 한다. 물론 상투적인 '좌파 프레임'으로 시국을 재단하려는 의도이겠지만, 이런 일들이 어이없는 작태에 무감각해지도록 만들려는 '음모'가 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다(이젠 '상식 이하'가 '상식'에 돼가고 있는 것 아닌가). 정말로 두려운 건 이제 이런 행태가 '일상화'되는 것, 더이상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 것이다! 

 

세계일보(09. 06. 15) 경찰, 좌파서적 판매동향 긴급파악 나서 배경에 관심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학계, 시민사회의 시국 선언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경찰이 최근 인터넷 서점 업체에 좌파적 시각을 담은 서적들의 판매 동향을 일일이 점검하고 나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2일 인터넷 서점 업체 A사 측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 11일과 12일 서울 본사와 출판 공장 등에 잇따라 전화를 걸어 서울대 김수행 교수의 저서 ‘김수행, 자본론으로 한국 경제를 말하다’(시대의창)와 ‘자본론 1·2·3’ 시리즈(비봉출판사),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시대의창) 등 소위 좌파 서적을 특정하며 이들 서적의 최근 판매 현황에 대해 상세하게 파악했다.   

인터넷 서점 A사에 전화한 경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시국이 어수선한데 좌파 서적 판매량이 요즘 많이 늘어났느냐”며 특히 ‘자본론’ 시리즈 등 3권의 판매 추이를 집중적으로 물었다고 A사 관계자는 전했다. 특히 경찰은 “최근 정부로부터 공문이 내려와 인터넷 서점 등에서 좌파 서적의 판매고 현황을 급히 파악 중이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가정보원이나 검찰 등 정보·사정 기관이 최근 시국 선언 정국에서 이명박 정부에 반하는 좌파 세력의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A사 관계자도 “경찰이 이른바 반 정부 세력들의 움직임에 촉각을 기울이며 동향을 상세히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최근 출판 시장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추모 열기에 힘입어 노 전 대통령 관련 서적이 베스트셀러 상위에 오르며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출판인회의가 교보문고와 예스24 등 전국의 온·오프라인 서점 11곳에서 지난 5일∼11일 판매된 부수를 종합한 결과, 노 전 대통령의 에세이 ‘여보, 나 좀 도와줘’가 6월 둘째주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 1위에 올랐다. 또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도 14위에 올라 출간 7년 만에 20위 안에 들었다.  

한편 정부는 지난해 ‘나쁜 사마리아인들’, ‘지상에 숟가락 하나’, ‘대한민국사’ 등 23권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했으나,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오히려 판매량이 평소보다 7배 이상 늘어나는 등 급증한 바 있다. 당시 네티즌들은 “2003년 MBC ‘느낌표’ 선정도로서 뽑혔던 현기영 작가의 ‘지상에 숟가락 하나’나 작고한 아동문학가 권정생씨의 글을 모은 ‘우리들의 하나님’을 불온서적으로 선정하는 현실이 이해가 안 간다”, “누구의 머리 속에서 ‘불온’의 기준이 정해지는지 궁금하다”, “이 참에 좋은 책들 소개해줘서 고맙다”며 정부를 비난했다.(김형구기자) 

09. 0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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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9-06-14 19:23   좋아요 0 | URL
토 나오네용;;

로쟈 2009-06-15 08:08   좋아요 0 | URL
식전에 읽으면 안되겠네요.--;

비로그인 2009-06-14 20:12   좋아요 0 | URL
파하하하하하하하하하
무덤에서 일어난 시체들이 정권을 잡으니
이렇게 웃을 일도 생기는군요

로쟈 2009-06-15 08:07   좋아요 0 | URL
좀비들인가요...

게으름뱅이_톰 2009-06-14 21:10   좋아요 0 | URL
하아아아... 촌스러움의 강도로 말하자면
촌스러움 <<<<<<<<<<<<<<넘사벽<<<<<<명박스러움

정부에서 공문이 내려와...를 보다가 멍해졌어요. 기도 안 막히네.

로쟈 2009-06-15 08:07   좋아요 0 | URL
'영혼이 없는 공무원'이 과장인 줄 알았어요...

바람돌이 2009-06-14 22:27   좋아요 0 | URL
왜 또 좌파서적 리스트 만들어 좌악 돌리면 되겠네요. 판매량 증가을 위해...
mb가 싫어하면 모든 국민이 좋아하잖아요.

로쟈 2009-06-15 08:06   좋아요 0 | URL
30% 지지자는 빼고요...

마늘빵 2009-06-14 22:35   좋아요 0 | URL
ㅎㅎ 이건 뭐. 이제 책 판매량 검열까지 하는군요.

로쟈 2009-06-15 08:06   좋아요 0 | URL
소설에서 이런 얘기가 나왔다면 리얼리티가 떨어진다고 욕먹을 텐데요...

비연 2009-06-15 00:11   좋아요 0 | URL
판매량 늘리고 싶은 책들 리스트업해서 보내줘야겠어요. 불온서적으로.

로쟈 2009-06-15 08:05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출판계가 불황인데, 나름 애써주네요...

노이에자이트 2009-06-15 00:19   좋아요 0 | URL
한나라당이 여당이 되더니 역시 민정당이 되는군요.오늘은 김대중 전대통령이 정권타도 지침을 내렸다고 주장하네요.1980년에 내란음모 사건을 통해 김대중에게 사형선고 내리던 기세와 비슷합니다.

로쟈 2009-06-15 08:05   좋아요 0 | URL
5공 청산이 아직 안된 것이죠...

게슴츠레 2009-06-15 10:40   좋아요 0 | URL
'반정부세력'을 찾으려면 굳이 이런 뒷조사까지 하지 않아도 시청이나 용산에만 가도 쉽게 볼 수 있을텐데요...어쩌면 그분들은 뒤에 '배후''음모'가 있다고 '믿고 싶어하는 것'일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눈앞에 있는 현실의 공포를 외면한 채 '어딘가 알 수 없는 곳'에서 모든 재앙이 시작되었다는 음모론 식으로요. 사람들과 '대화'를 시도하는 것보다는 그렇게 '나쁜 사람들'의 존재를 상정하는 게 그쪽에서는 나름 마음이 편할 것 같기도 합니다.

로쟈 2009-06-15 15:27   좋아요 0 | URL
'음모론'을 서로 공유하고 있는 건가요?^^

가을산 2009-06-15 15:25   좋아요 0 | URL
자신들이 오른쪽 끝에 있으니
자기들보다 왼쪽에 있는 자들은 온통 좌파로 보이나봅니다.

로쟈 2009-06-15 15:27   좋아요 0 | URL
오른쪽도 아니죠. 그냥 무지와 편견과 탐욕의 복합체죠...

가을산 2009-06-15 15:57   좋아요 0 | URL
그건 현실로 받아들이기에 너무 끔찍한 표현이잖아요.... ㅡ,ㅡ

그나저나... 쿠폰 할인 받으려고 새로 번역된 자본론 시리즈 구입을 늦추고 있었는데, 이거 빨리 사야 하는걸까요?
잘못하면 출판마저 금지되겠네요.

로쟈 2009-06-16 13:29   좋아요 0 | URL
길에서 나온 <자본>도 있는데 그건 미처 체크가 안되나 봐요.^^

노이에자이트 2009-06-16 16:19   좋아요 0 | URL
인터넷으로도 자본 영역본을 볼 수 있는데 이건 어떻게 단속할런지...

로쟈 2009-06-17 08:20   좋아요 0 | URL
거긴 터치 안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