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강의가 끝나고 모처럼 일찍 귀가했지만 엘리베이터가 점검중이라고 하여(엘리베이터도 놀란 것인가?) 15층까지 걸어올라왔다(젠장, 14층까지 걸어올라오니 다시 작동했다!). 책소포와 함께 들고 온 이번주 교수신문에서 기사들을 훑어보다가 '딸깍발이' 칼럼이 눈에 띄어 옮겨놓는다. 진태원 편집기획위원이 학문후속세대의 사기를 꺾는 한국 학계의 문제적 풍토에 대해서 짚어주고 있다. 새삼스러울 건 없지만,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순진한 인문학도는 참고해볼 만하다. 개인적으론 나도 학생들에게 대학원 진학을 권하지 않은 지 오래된 듯싶다...   

교수신문(10. 12, 20)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K군에게  

안녕하세요, K군. 날이 무척 추워졌습니다. 서울의 아침 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졌다죠? 어수선한 국내외 정국에 매서운 바람까지 몰아치니 마음이 한층 더 스산해지는 느낌입니다.

얼마 전 메일을 통해 앞으로 대학원에 진학해서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조언을 부탁한다고 말씀하셨죠? 제 강의 시간에 K군이 했던 발표나 기말 보고서의 우수함을 생각하면 두말없이 적극 진학을 권장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지금까지 여러 학생들을 가르치고 접해왔지만, K군처럼 우수한 사고력과 글쓰기 능력을 겸비한 학생은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습니다. 깊고 넓은 학문의 세계에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뜻을 펼치기 바랍니다.

이렇게 권하고 싶은 것이 제 본래의 마음이겠지만, 실제로 제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웬만하면 다른 길을 택해보라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권하는 것은 과연 한국에서 학문을 하는 것, 특히 인문학을 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심각하게 회의를 품게 됐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K군처럼 홀어머니에 가정형편이 넉넉지 않아서 국내에서 석ㆍ박사과정을 마쳐야 한다면, 또 서울대 학부 출신도 아니라면, 평생 밥벌이도 제대로 하기 힘든 학문을 하기 위해 과연 십 수 년의 고된 수련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을까 걱정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지금 K군의 머릿속은 다음과 같은 생각으로 가득차 있을 것 같습니다. 외국에서 공부하든 국내에서 공부하든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될까?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해서 무언가 새로운 관점을 세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인문학적으로 해명하는 데 나름대로 기여할 수 있으면 되지. 그리고 학자의 삶이란 게 풍족한 삶일 수는 없으니까 그냥 굶주리지 않을 정도로 생계만 꾸릴 수 있다면, 다소 가난하더라도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서 사는 게 더 보람 있고 행복한 삶이 아닐까. 

만약 이런 생각을 품고 있다면, 그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고 또 위험한 생각입니다. 우선 국내 학계에서는 외국에서 공부했느냐 국내에서 공부했느냐가 큰 문제가 된다는 점입니다.

서울대 학부 출신도 아니면서 국내에서 공부하겠다는 것은 이미 졸업 후에 정규직 취직을 포기하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분야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학계의 비정규직의 삶이란 고달프기 짝이 없습니다. 여러 명의 비정규직 교수의 가슴 아픈 자살이 그것을 단적으로 말해줍니다. 저는 혹시 제가 학문의 길을 권한 누군가가 훗날 이런 참담한 삶의 끝자락에 서게 되지 않을까 정말 두렵습니다.

어찌어찌해서 다행히 취직이 된다 하더라도 한국에서 인문학하기란 그리 보람 있는 일이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한국 학계는 한국 사회의 다른 어떤 분야 못지않게 신자유주의적 체제로 철저히 재편되고 있는 중입니다. 학계의 신자유주의는 크게 두 가지 구호로 집약됩니다. 단기 수익성을 높여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라.

다른 학계에 비해 현저히 뒤처지긴 하지만 인문학계도 나름대로 이 두 개의 지상명령을 충족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정규직 교원이거나 아직 정년보장을 받지 못한 교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1년에 많게는 10여 편에서부터 적게는 3~4편에 이르는 등재지 논문 쓰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수익성의 학문적 기준이 1년에 몇 백 퍼센트의 업적을 남겼느냐로 표시되기 때문에 질적 우수성, 독창성이나 깊이 같은 기준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인문학하기란 논문 작성 기계의 삶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 대신 질적인 평가는 외국 학계에 위임됩니다. 곧 어떤 학자의 질적 우수성은 일차로 그가 외국(=미국)의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로 측정되고, 그 다음에는 그가 외국의 저명학술지에 논문을 실었느냐로 평가됩니다. 따라서 우수 학자의 일차 요건은 유학 경험, 영어로 글 쓰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국내 대학 출신이든 외국 대학 출신이든, 또 동양어권이나 유럽어권 유학생이든 영미권 유학생이든 가리지 않고 관철되는 철의 법칙입니다.

K군, 그러니 영미권의 유명 대학원에 진학할 만한 경제적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 간곡히 권하거니와 학문의 세계에 발을 디디지 말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럴 만한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될 수 있으면 인문학, 특히 철학은 하지 말기 바랍니다. 그 아까운 재능과 인생을 낭비하지 말기 바랍니다.(진태원 편집기획위원/ 고려대 서양철학) 

10.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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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괴즐 2010-12-22 16:08   좋아요 0 | URL
먹먹해지는 글이네요. 시스템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일까요? 어쩌면 인문학도의 대가 끊겨버리면 그때쯤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저도 공부를 계속해야 할지, 이쯤하고 다시 취업준비를 해야할지 고민이 됩니다. 인문학을 공부하던 선배들이 결국 좌절하고 취업전선 앞에서 전혀 새로운 무기들의 선택을 강요당하는 것을 보면서, 저도 어찌해야 할지 갈등이 됩니다.

로쟈 2010-12-23 08:35   좋아요 0 | URL
직업으로서의 인문학 공부는 다시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마립간 2010-12-22 16:38   좋아요 0 | URL
장한나는 철학과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로쟈 2010-12-23 08:34   좋아요 0 | URL
한국이 아니니까요.

mirror 2010-12-22 18:22   좋아요 0 | URL
1. 유학출신 우대의 문제는 한국학계가 근절해야할 문제점입니다. 자신들이 가르친 제자 대신에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신출나기 외국박사를 채용하는 것은 자기배반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는 꼴이죠. 세계 어떤 나라가 자국의 학자를 외국에 의탁해서 양성하나요? 영미학계의 칸트 헤겔 연구자를 독일에 의탁해서 양성하지 않습니다. 자국 고유의 전통을 가진, 칸트 헤겔 연구가 있죠.
2. 영어강의자 우대 현상은 학문을 망하게 하려고 작정한 조치이지요. 동양철학조차 영어잘하는 사람 뽑으니까요.
그러나 진태원은 외국어 논문 쓰기에 대해서 과장을 하고 있군요. 철학과에서 외국어 저널에 논문 쓰는 경우 극히 드뭅니다. 왜냐하면, 영어로 논문 쓰기가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영어 저널에 실릴만한 수준의 논문을 쓸 능력이 없기 때문이죠. 한국어로 뛰어난 논문만 쓸 수 있따면, 영어로는 돈주고 번역시키면 됩니다. 번역료 그다지 비싸지도 않거든요. 자신의 무능력을 외국어로 가리려 해서는 안되죠.
3. 영어권 철학과 대학원에 자기돈 내고 가는 경우 별로 없습니다. 1년에 학비만 4만불 생활비까지 거의 6천만원 이상 부담하고, 비정규직 시간강사가 미래인 철학박사 할 사람이 한국에 몇 사람이나 되겠어요? 간다면 장학금 받고 가죠. 미국 대학원에서는 장학금 받을 기회가 비교적 많습니다. 장학금을 받으려면, 영어를 잘하고, 또 학부 학점이 아주 좋아야 합니다. 고려대학교에서 공부 열심히 한 학생이 미국대학에서 장학금 받기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4. 시간강사가 어려운 것은 한국만이 아닙니다. 독일도 한국만큼 잔인한 시간강사 제도 갖고 있죠. 다만 그들 복지제도가 한국보다 좋아서 고통이 덜합니다. 이탈리아는 교수가 많은 대신 시간강사 제도가 아예 없기 때문에, 수많은 박사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단 자체가 없습니다. 총리와의 토론에서 어떤 여자 인문계 박사가 이런 고충을 얘기하자, 총리께서 자신과 사귀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답변을 하셔서, 사람들을 경악시킨 바 있죠.
5. 인문계열 박사 학위 받아서, 잘 먹고 잘 살 생각은 버리고, 글을 읽는 재미에 만족해야죠. 막스 베버가 직어으로서의 학문에서, 이 한줄이 너의 해석을 천년동안 기다려왔다, 라는 마음가짐이 없다면, 학문 하지 말라고 했지요.

2010-12-22 18: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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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3 06: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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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2 18: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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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3 06: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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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때리다 2010-12-22 18:47   좋아요 0 | URL
저도 졸업하면 뭐 해야 하나 고민이 되는데요. 임상의사가 되고 싶은 맘은 조금도 없는데 인문학관련 대학원을 갈까 했는데 그게 한국 사회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이 듭니다. 이른바 순수 인문학도 그러하고 의료윤리니 하는 학문들도 그닥 의미가 없다고 생각이 됩니다. 물론 밥 벌어 먹기도 힘들 것 같고. 그럼 로스쿨을 갈까 생각도 했는데 로스쿨 나오면 결국 임상의사들처럼 다른 돈버는 기계들 사이에서 똑같이 기계로 전락하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고요. 근데 진태원 교수님 말처럼 '서울대 편중'이라는 건 서울대를 제외한 나머지 예컨데 의대나 카이스트나 경찰대(적어도 수능성적으로는 서울대 부럽지 않은) 나온 사람도 인문학하면 소외되기 십상이라는 건가요?

자꾸때리다 2010-12-22 18:46   좋아요 0 | URL
근데 대학이 신자유주의 체제로 재편된다고 해도 그리 오래갈 것 같지는 않아보이네요. 저도 역사에 대해서 낙관주의자는 아니지만 적어도 이 신자유주의 체제가 영원무궁 존속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체제는 아니라고 2008년에 입증되었는데 말이죠. 적어도 지금 유학가서 돌어올 때 즈음이면 어떠한 형태로든지 (좋아지든 나빠지든) 변화가 있을 것 같아요.

mirror 2010-12-22 19:18   좋아요 0 | URL
1. 한국대학이 이토록 엉망인 이유는 신자유주의와 별로 관련이 없습니다. 다른 나라도 다 신자유주의체제인데, 다른 나라 대학들이 한국대학같지는 않거든요. 신자유주의의 본산인 미국의 대학은 인문학을 가장 강조합니다. 한국사회의 천박함과 내적인 이유로 발행하는 문제점을 신자유주의로 환원하는 버릇은 한국 지식인들의 지적 나태함과 정치적 당파성만을 나타낼 뿐입니다.
2. 인생의 진리는 없죠. 책 몇권 더 읽은 사람이 더 현명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개인적 경험을 말씀드리자면, 자신의 직업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한국사회에서의 의미'를 기준으로 두는 것은 스스로 정직하지 않은 태도일 수 있습니다. 결국은 하고 싶은 공부도 하고 돈도 잘 버는 것을 원하는데, 그런 것을 모두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어느 사회에나 많지 않습니다. 그런 욕심으로는 나중에 후회할 가능서잉 더 많습니다. 저는 평생 시간강사 생활을 각오하지 않는 후배에게 학문의 길을 권하지는 않습니다.
3. 서울대 학부를 진태원이 강조한 이유는 한국 대학의 다수를 서울대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으로 연고대 출신들이 약간 해먹고요. 따라서 다른 대학의 학부출신들은 능력과 비례하는 취직기회를 적게 가질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카이스트와 경찰대학은 인문사회계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죠. 또 한국의 인문사회계는 특히 계량화되지 않은 학문들은 아직 능력을 확고하게 평가할 자세, 능력, 제도를 갖추고 있지 못합니다.

자꾸때리다 2010-12-22 19:18   좋아요 0 | URL
저는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요. 미국이 아직 인문학이 가사 상태라고 부를 수 있는 상태까지는 아닌 이유가 서구권에 깊게 뿌리 박혀 있는 인문학 전통을 몇 십년의 신자유주의 체제가 완전히 뽑아버리지는 못한 것 같고 한국은 그 전통이 아직 깊게 뿌리내리지 못한 시기에 신자유주의 광풍에 휩쓸린 것으로 보입니다. 예전에도 한국 대학에 사회과학 바람이 분 적이 있잖아요.

mirror 2010-12-22 19:45   좋아요 0 | URL
대한민국은 역사상 한번도 인문사회과학을 제대로 한 적이 없습니다. 80년대 사회과학요? 그건 학문적 발전으로 이어지지 못한 잠시의 유행이었죠. 막스주의에 대한 대단한 책이 한국말로 쓰여졌나요? 한국 인문학계는 나쁜 상태에서 더 나빠졌을 뿐입니다.
현재로서는 미국의 인문학이 그 놈의 신자유주의에게 학살당하고 있다는 증거가 별로 없는 것 같은데요? 여전히 쓸데도 없는 기호논리학을 교양강좌로 수십개씩 개설하는 것이 미국 대학들입니다.
아무튼, 평생 시간강사할 각오가 없으시다면, 이쪽 길로 오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게 안전합니다.

sommer 2010-12-23 04:25   좋아요 0 | URL
'안다고 가정된 주체'에게 보낸 편지였을 텐데, 그 편지는 아직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은 거 같네요. 그 편지에 대한 응답이 '계몽적 제스처'를 여전히 취하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말이지요.
더 중요한 문제는 그 주체의 자리를 더 이상 아무도 떠맡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이 아닌가 싶어요. 예를 들어, 유학이 더 이상 계몽의 차원이 아니라, 더 나은 사회보장(권)을 찾아 떠나는 것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는 듯 해요.

로쟈 2010-12-23 06:48   좋아요 0 | URL
사르트르식으로 말하면, 이미 발신자 자신이 예상했던 답변일 듯해요...

토탈리콜 2010-12-23 10:28   좋아요 0 | URL
세상은 누구도 안정을 보장하지 않는것 아닐까요? 우리가 mb를 선택한 순간.. 아니 그시대정신이 이미 그런걸 각오 또는 용인한거슨 아닌지........ 씁 쓸합니다

로쟈 2010-12-23 10:32   좋아요 0 | URL
일반화하기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간극이 커보입니다. 대학 비정규직 강사 문제나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파업사태에서도 확인되듯이...

2010-12-24 0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4 0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4 00: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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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4 08: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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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6 2010-12-25 14:21   좋아요 0 | URL
제가 철학과로 진학하겠다고 했을 때 국어 선생님이 해주신 조언과 비슷하네요.

그분은 제게 아마추어리즘을 설명해주시며 타과로 진학하라고 말하셨어요.

어쨌든 참 씁슬한 글이네요.


로쟈 2010-12-25 20:39   좋아요 0 | URL
굳이 전공이 아니더라도 공부할 수 있는 길은 있으니까요. '직업' 철학자가 되는 건 또 다른 길이고요...

2010-12-25 14: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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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서재의 컴퓨터가 다운되고 아직 복구를 하지 못하는 바람에 거실에 있는 아이 컴퓨터로 '작업'을 하고 있다. 같은 집구석이긴 하지만 뭔가 일을 하려니 좀 '고급한' 난민촌 같다는 생각이 든다. 파일이나 즐찾은 모두 남겨두고 빈손으로 몸만 빠져나와 있어서 그렇다. 기사 검색도 부자유스러운 가운데, 자서전에 관한 칼럼 하나를 스크랩해놓는다. 내달까지 마무리지어야 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자서전 쓰기'이기도 해서다. 러시아에 잠시 다녀올 수도 있는데, 가방에 자서전 몇 권을 챙겨가야겠다. 벤베누토 첼리니의 자서전에도 흥미가 생긴다... 

 

경향신문(10. 12. 04) [서재에서]자서전 이야기 

삶 자체나 작품보다 솔직담백한 자서전 덕분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대표적인 인물이 르네상스 예술가 벤베누토 첼리니(1500~71)다. 미켈란젤로의 제자인 그의 자서전은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돼 있을 정도다. 기행(奇行)을 일삼은 그의 자서전은 르네상스라는 시대적 상황에 걸맞게 진솔하게 써내려간 문체로 인해 오늘날까지 뛰어난 자서전의 하나로 평가받는다.

첼리니의 자서전을 처음 독일어로 번역한 문호 괴테는 낯 뜨거운 정사 장면들은 아예 빼버렸을 정도다. 이렇듯 자신의 이름에 치명적인 사실도 솔직하고 대담하게 드러낸다. 심지어 적과 경쟁자를 살인한 사실도 숨김없이 기록했다. 괴테는 첼리니야말로 르네상스 정신의 실체를 보여준다고 여겼다. 첼리니는 자서전의 집필 자격을 언급하기도 했다. “상당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라면 누구든 출신에 관계없이 자기 업적을 기록한 자서전을 남겨도 괜찮다. 다만 나이는 적어도 마흔 이상이어야 한다.”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1904~89)도 홍보 전략의 하나로 자서전을 출간하는 놀라움을 보였다. 대부분의 화가가 책을 쓴다는 생각조차 못하던 때다. 글 솜씨도 뛰어난 달리는 책 출판이 예술가의 이름을 선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다. 그는 자서전이 잘 팔리도록 자위행위, 성체험, 10살 연상이며 유부녀인 갈라와의 운명적인 사랑과 결혼, 독특한 예술관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얘기로 가득 채웠다. 



흔히 세계 5대 자서전으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장 자크 루소의 <참회록>, 괴테의 <시와 진실>, 한스 안데르센의 <내 생애의 이야기>, 표트르 크로포트킨의 <한 혁명가의 회상>을 꼽는다. 크로포트킨 자서전에 대해선 덴마크 작가 게오르그 브란데스가 책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류의 큰 발자취를 남긴 대가들의 자서전은 크게 3가지 가운데 하나다. ‘이제까지 나는 길을 헤맸다. 그러다 마침내 참다운 길을 발견했다.’ ‘나는 정말 나쁜 사람이다. 그러나 이런 나보다 낫다고 감히 나설 수 있는 자는 누구냐.’ ‘천재는 바로 이런 좋은 환경에서 내면으로부터 서서히 발전해 왔다.’ 첫 번째 사례는 아우구스티누스이고 두 번째는 루소이다. 세 번째는 괴테다. 크로포트킨의 자서전은 3가지 유형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내가 본 자서전 중에서 최고다.” 



아우구스티누스와 루소의 자서전은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자서전과 더불어 3대 고백록으로도 일컬어진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명실상부한 최초의 자서전으로도 자리매김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널리 읽힌 자서전은 <벤저민 프랭클린 자서전>일 가능성이 높다. 하나같이 작품성이 탁월하면서도 솔직하게 썼다고 인정되기 때문이다. 



손꼽히는 자서전이 모두 서양에서 나온 것은 현대적인 의미의 자서전이 동양에선 20세기 이후에야 등장한 영향이 크다. 흥미로운 일화가 이를 잘 말해준다. 마하트마 간디가 1925년 무렵 자서전을 집필하고 있을 때 한 친구가 중단하라면서 이렇게 충고했다고 한다. “어째서 모험을 시작할 마음을 먹었는가? 자서전을 쓰는 일은 서양에만 있는 관습이라네. 알다시피 동양에서는 서양의 영향을 받은 사람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자서전을 쓴 사람이 없다네.” 중국에서도 1933년 후스(胡適)가 40세 때 쓴 <사십자술(四十自述)>이 사실상 첫 자서전으로 꼽힌다.

자서전처럼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저술도 없지만 자서전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부풀리는 저술도 없다. 자서전이 ‘반(反) 자서전’이라는 말도 그래서 생긴 듯하다. 이청준의 소설 <자서전들 씁시다>에 나오는 대필업자 윤지욱이 의뢰자인 인기 코미디언 피문오에게 대필을 중단하겠다며 보낸 마지막 편지가 무척 시사적이다. ‘과거가 아무리 추하고 부끄럽더라도 솔직히 시인할 정직성과 참회할 용기, 자신의 것을 사랑할 애정이 없으면 자서전 발간을 단념하십시오.’(김학순 대기자)  

10. 12. 05.  

P.S. 가장 최근에 구한 자서전은 앙드레 지드의 <한 알의 밀알이 죽지 않으면>(나남, 2010)이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강만길 선생의<역사가의 시간>(창비, 2010). 올해는 두 전 대통령의 자서전이 나온 해이기도 하다. 연말 독서계획에 자서전을 포함시켜도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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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6 20: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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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1 10: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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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6 21: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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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1 10: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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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phia49 2010-12-09 10:05   좋아요 0 | URL
첼리니 자서전, 시와 진실,루소의 참회록,성 어거스틴 고백록,프랭클린 자서전...
모두 추억속에서 한 번씩은 읽었던 책입니다.
편안한 러시아 여행이 되시기 바랍니다.
저도 '시와 진실'은 꼭 다시 읽으려고 새 책을 구입히였지요...

2010-12-11 1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최근 국제면의 가장 큰 화제는 연금개혁안을 둘러싼 프랑스의 대립 정국이다. 사르코지의 법안이 어제 상원을 통과했지만 노동계는 수용불가 방침을 밝혔다. 사태의 추이가 궁금한데, 프랑스 현지의 소식을 전하는 칼럼이 있어서 스크랩해놓는다. 어쩌면 '제2의 68혁명'으로 전화할지도 모른다는 전망도 담고 있다.  

경향신문(10. 10. 23) [목수정의 파리통신]제2의 68혁명이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프랑스가 폭발 직전이다. 연초부터 줄기차게 진행돼 왔던 총파업과 집회가 9월 이후, 7번째. 이 질긴 파업의 공식 이유는 연금개혁 반대지만, 한발자국 다가가서 보면 지금 프랑스는 신자유주의가 비틀어 놓고, 사르코지가 사정없이 밟아주는 반인간적인 사회시스템에 시민들이 온몸으로 저항하고 있는 중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민영화된 프랑스 텔레콤 직원의 연쇄자살 사태로 대변되는, ‘잔혹한 세상’을 이제 모두가 온몸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상원에서의 표결 결과와 무관하게 파업을 확대하겠다고 천명한 노조연합의 발표가 상황의 핵을 집어준다.

광역전철(RER)을 비롯한 전국의 모든 철도 운행이 중단 혹은 3분의 1 수준으로 축소되었다. 오를리 공항의 항공기 운항은 50%가, 샤를드골 공항은 30%가 취소됐다. 정유공장 파업, 석유저장기지 봉쇄로 이미 전국 주유소 3분의 1에서 기름이 바닥났다. 도로에서는 화물연대의 달팽이운행(서행) 파업으로, 평소보다 두 세배나 시간이 걸린다. 노동자의 도시 마르세유에서는 시위대가 공항을 세 시간 넘게 봉쇄했고, 기차역에서는 노동자들과 학생들이 연대해 선로를 점거했다. 프랑스에 온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발도 파업으로 묶여있어야만 했다. 이쯤 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의 일상이 비명을 지를 정도로 심히 불편해진다. 그런데도 이 파업에 대한 지지율은 갈수록 치솟고 강도는 걷잡을 수 없이 높아만 간다. 71%. 파업에 대한 가장 최근 공식지지율이다.

지금의 파업정국을 관통하는 주된 정서는 ‘분노’, 집회장을 휩쓰는 최고의 구호는 “나는 계급투쟁 한다”이다. 로레알사 상속녀 릴리안 베탕쿠르 집안의 진흙탕 재산분쟁, 그녀가 자신의 친구(?)인 사진작가에게 뿌려온 1조5000억원, 시장시절부터 사르코지가 로레알사로부터 받아 챙겨온 정치자금, 사르코지의 검은 돈을 관리해왔고 이번 연금개혁의 실무 장관인 노동부 장관 에릭 뵈르트, 베탕쿠르 집안에 회계담당으로 들어가 그들의 세금을 세탁해주던 장관의 마누라…. 한눈에 헤아리기조차 복잡한 이들의 추악한 커넥션은 연금개혁을 놓고 정부와 노동계가 벌이던 씨름 한가운데서 폭탄처럼 터져버렸고, 그 순간 투쟁은 ‘계급투쟁’으로 규정되었다. “이미 우린 충분히 돼지처럼 일해왔다. 이제 인간답게 살 것을 요구한다. 너희의 금고를 털 차례다. 돈은 베탕쿠르의 금고에, 부자들의 금고에 있다.” 시위대의 요구는 이처럼 선명하다.

노조 위주로 진행되던 파업이 고교생들의 적극적 참여로 번진 것은 지난주. 현재 1100개의 고등학교가 총파업에 동참할 것을 결정했고, 프랑스전국학부모연합은 이런 학생들의 결정을 지지하고 이들과 함께 하기로 했다. 고교생들의 대대적인 참여는 사회 전체를 술렁이게 했다. 그들은 68혁명을 비롯한 지난 세기에 프랑스가 진행해온 모든 사회적 투쟁에서 언제나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기 때문이다. 그들의 단결이 주목할 만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가장 단순하고 명료하게, 그리고 노조집행부 같은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핵심을 향해 돌진할 수 있는 지성과 야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르코지! 너 미쳤니. 애들이 거리에 나섰잖아.” 한 여고생이 집회에 들고나선 피켓은 막다른 골목에서 마주치게 될 이 시퍼런 젊음과 사르코지의 야욕이 벌일 한판 승부를 예고한다. 귀막은 사르코지, 더 심각한 파업, 더 높은 파업지지율, 그 끝에는 새로운 프랑스가 탄생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모두의 이마에 담겨있다. 이 무시무시한 파업 정국을 살아내면서 비릿한 활기를 코 끝으로 느낄 수 있는 이유이다.(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10. 10. 24.  

P.S. 칼럼에 이은 후속기사도 옮겨놓는다. 

경향신문(10.10. 25) "사르코지 ‘부자 정책’에 본능적 계급투쟁”

프랑스 상원에서 지난 22일 연금개혁 수정안이 통과되었다. 찬성 177, 반대 153. 모두가 예상했던 결과지만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상원에 연금개혁법의 250여개 수정안에 대한 일괄상정과 표결을 요청함으로써 다시 한 번, 토론과 합의를 요구하는 전 국민적 요구에 찬물을 끼얹었다. “정부가 그들의 승리를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에 저지른 정신나간 짓”이었다고 주요 노조 ‘노동자의 힘(FO)’ 대표는 평했고, 우파언론 피가로지도 정부가 “법적인 대포”를 동원한 것으로 묘사했다.

법안은 이제 상·하원 합동위원회의 평가와 최종표결을 거쳐 효력을 갖는다. 야당은 1000개가 넘는 개정법안들을 내놓고 토론을 요구했으나, 집권당의 힘으로 사안은 신속히 처리되고 말았다. 그러나 상원의 표결이 현재 촉발된 투쟁의 끝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6개 노조연합 대표들은 표결이 진행되기 전, 결과와 무관하게 10월28일과 11월6일 대규모 반정부 집회를 열 것을 천명하였고 이후 벌어질 시민들의 행보는 모두 사르코지 정부가 자초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지난 금요일 2주간 방학에 들어간 학생들도, 26일에 전국대학생연합의 이름으로 집회를 열 것을 알리며 투쟁을 지속할 것임을 경고했다. “우린 파업을 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해 파업을 계속한다”고 선언한 정유공장 노동자들에 의해 12개의 정유공장은 여전히 멈춘 상태이며, 철도파업도 2주째 계속되고 있다.

계급투쟁. 평균수명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도, 국민연금 금고가 큰 규모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프랑스 시민들은 그런데 왜 이다지도 격렬하게 정부의 연금개혁을 거부하는 것일까. 시위에 나선 시민들은 현 정치권이 행해온 불공정과 불평등이 그들의 가슴에 불을 댕긴 주요인임을 지적한다. “사르코지는 부자들에게만 더 벌게 해주고, 우리에겐 더 일할 것만을 요구한다” “그들은 우리를 레몬처럼 꼭 쥐어짠다”, “기업은 우리로부터 삶을 앗아가고, 정부는 우리로부터 연금을 앗아간다” “프랑스텔레콤처럼 많이 자살하진 않았지만, 우린 모두 우울증과 만성피로·긴장에 사로잡혀 있다”. 마리안지가 전국의 시위현장을 돌면서 담아온 증언들이다. 사람들은 연금개혁이 신자유주의를 강화하고 고착시키는 또 하나의 단계임을 알고, 반기를 든 것이다. “개혁이 필요하다면, 부자들의 금고를 털어라.” 시위대의 주문은 분명하다.

사르코지 3년, 명백해진 것은 “모든 사회관계에서 경쟁구조의 일반화, 공공기관을 비롯한 모든 영역으로 확대된 시장의 논리”이며, 이에 대한 저항은 2005년 유럽헌법 국민투표 부결, 학생들의 투쟁으로 좌절된 ‘최초고용계약’ 등으로 이어져 왔다. 연금개혁의 반대투쟁에 이르러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계급투쟁이 이제 제대로 펼쳐지고 있다”고 사회학자 크리스치앙 라발은 분석한다.

이번 연금개혁의 첫번째 수혜자가 대통령의 형인 기욤 사르코지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 누벨 옵세르바퇴르지를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기욤은 보험회사 메데릭그룹 대표다. 이 회사가 개인연금 분야로 사업을 확장한 것은 2년 전. 내년 1월, 회사 규모 확대를 앞두고 보증공탁금고(CDC)와 국립신용금고(CNP)와의 합자를 이뤄냈다. 뒤의 두 회사는 국회의원과 전직 엘리제궁 비서관에 의해 운영되는 공기업이다.

대통령 형의 회사는 이번 개혁으로 생성될 개인연금 시장을 400억~1000억유로 규모로 내다보며 전체 시장의 17%를 차지할 것을 목표로 세우기까지 했다. 이 모든 국민적 분노를 산 연금개혁, 무리한 일괄처리의 압박 뒤에는 가족과 측근을 위해 한몫을 단단히 잡겠다는 사리사욕이 있었다. 무려 250여개의 조항을 개정하는 이번 과정에서 5년간의 의원 경력으로 40년간 일한 봉급생활자의 연금을 받는, 지나치게 큰 국회의원들의 특혜 조항들은 전혀 개정되지 않았다. “고통은 너희들의 것”이라고 말하는 가진 자들의 메시지도 분명하다.

20년 전부터 연 5주의 유급휴가를 누려온 프랑스인들이다. 그들은 자유, 평등, 박애가 짓밟힐 때 본능적으로 일어선다. 초강수 불통 권력자를 향한 그들의 계급투쟁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목수정 |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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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10-24 18:19   좋아요 0 | URL
로쟈님이 말씀한 바와 같이 혁명의 '힘'이 느껴지구요. 프랑스가 유럽을 대표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총대를 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로쟈 2010-10-26 08:23   좋아요 0 | URL
계급투쟁이란 구호가 다시 살아난 것에 주목하고 싶어요...

비로그인 2010-10-24 13:21   좋아요 0 | URL
말 그대로 "비릿한 활기"가 느껴집니다!
'새로운 프랑스'라는 표현에서 '새로운 유럽'과 '새로운 세계체제'까지 상상하는 건 좀 오버일까요?...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지식인들의 반응은 어떤지 궁금하네요?^^

로쟈 2010-10-26 08:23   좋아요 0 | URL
사르코지가 좀 '도와준다면', 오버가 현실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LAYLA 2010-10-24 18:39   좋아요 0 | URL
유럽애들이 사실 별 생각없이 학교 가기 싫으니까 데모하러 나가는 거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하던데...그렇게 쉽게 자기 의사를 드러낼 수 있다는 거 그리고 부모님이 지지해준다는게 참 멋지네요

로쟈 2010-10-26 08:22   좋아요 0 | URL
그게 '기본'이 돼야겠죠...

자꾸때리다 2010-10-24 23:17   좋아요 0 | URL
그런데 한겨례 기사 보니깐 사실 야당도 연금 개혁안에 대한 마땅한 대안을 못 내놓고 있다고 하던데요... 사실 별로 기대는 안 하는데...

로쟈 2010-10-26 08:21   좋아요 0 | URL
후속기사도 읽어보시길...

mirror 2010-10-29 04:18   좋아요 0 | URL
프랑스에 대환 환상을 가지고 있는 거의 유일한 외국인은 아마도 한국의 지식인들이 아닐가요? 프랑스 여론조사에는 과반수 이상이 통과된 법안을 존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프랑스사람들도 다수가 연금제도가 개혁되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오래전부터 공감하고 있고요. 다만 사르코지가 합리적인 토론을 제대로 하지 않고 밀어부치기 때문에 이런 소요가 발생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독일은 이미 2000년대 중반에 슈뢰더가 이런 개혁을 하면서 약 2년간 설득하고 토론했습니다.
혁명이라니요? 아마 혁명이란, 이상적인 프랑스를 머리속에 갖고 있는 한국의 자칭 좌파들 사이에서만 일어날 거 같군요. 프랑스에 산다고 해서 프랑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해서 적확한 판단을 하는 것은 아니죠. 환상속의 프랑스에서 그만 깨어났으면 합니다.
독일의 연금수령 나이가 아마 67세일 겁니다. 경제적으로 불가피하면 하는 것이죠. 땅파면 돈이 나오는 것은 아니잖아요?
사르코지는 쿠데타로 정권 잡았나요? 이런 사태는 프랑스의 후진적인 정치를 나타낼 뿐이지, 모범적인 현상은 아니죠. 총선에서 집권당에 압도적인 승리를 안겨준지 2달도 안되서 발생한 촛불시위가 한국의 후진적인 정치의 모습을 나타내듯이, 이런 시위는 프랑스가 정치적으로 합리적인 토론이 불가능한 후진적 국가라는 증거일 뿐입니다.
그리고 프랑스는 거의 15년 동안 보수적인 대통령을 선거로 뽑아왔어요. 이런 나라에서 무슨 혁명인가요? 진짜 코미디입니다. 이런 소요사태에 흥분하는 한국 사람들은 더 웃기는 것 같고요.

Spidersens 2010-10-29 17:58   좋아요 0 | URL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에 대해 공감을 표시하고 싶습니다. 타 국가들에 비해 월등히 더 "사유"할 것 같은 프랑스지만, 현실은...

>> 촛불시위가 한국의 후진적인 정치의 모습을 나타내듯이

후진적인 정치를 보여주는 예로 들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보다는 촛불시위를 우리나라 대중이 가진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라 보고 있습니다. (주가를 조작하는 작전 세력에 개인투자자들이 당하듯) 당시 대중—저 자신도 포함해서—은 그럴듯하게 조작된 정보를 유포하는 정치 작전 세력에 취약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로쟈 2010-10-30 08:40   좋아요 0 | URL
혁명은 어지간 해서는 변화하지 않는 '보수적인' 나라에서 일어나는 것이죠. 프랑스도, 러시아도, 어쩌면 한국도...

mirror 2010-10-30 20:01   좋아요 0 | URL
로쟈님은 19세기에 살고 있는것 같군요. 지금의 시위가 변화를 요구하는 시위인가 봅니다? ㅎㅎ...

범사 2010-11-13 21:14   좋아요 0 | URL
미러님은 '혁명'의 의미에 대해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네요.
수천 수만명의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국가체제가 전복되고, 왕조가 무너지고
'병커가 무너지고'
뭐 이런 거창한 역사적 사건들만 혁명인가요?

혁명의 사전적인 정의를 잘 모르시던가,
68혁명이 뭔지 잘 모르시는 것 같네요.

그래서 어이없게도 사르코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냐고 반문을 하시네요.
19세기에 살고있다라...미러님은 25세기에 사시는듯^^
지금같은 우경화가 4세기 정도 계속되면 미러님의 혁명의 정의가 맞지않을까해서요.
 

강서도서관과 개포도서관 사이에 무슨 긴밀한 관계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두 곳에서 강연회를 갖게 됐기에 같이 묶었다(개포도서관의 행사는 연속강좌인 '고전, 영화로 읽다'의 일환이다). 이달 셋째주부터 11월말까지는 거의 매주 도서관이나 대학, 그리고 문화센터 등에서 강연회를 갖는다. '메뚜기도 한 철'이란 말에 견주면 '로쟈의 한 철'쯤 될 모양이다. 계속 공지를 할 터이지만, 지역에서 혹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란다.   

 

강서도서관 손안'애서' 낭독회 

주제: 책을 읽을 자유와 권리에 대하여 
일시: 2010. 10. 21(목) 19:00-21:00
장소: 학습도움방(2층)
대상: 성인 40명(선착순)
수강료: 무료
접수: 방문(전화 3219-7023) 및 온라인 접수      

개포도서관 '고전, 영화로 읽다' 

영화: 미하일 하네케 감독, <피아니스트>(2001, 129분, 청소년 관람불가) 
원작: 엘프리네 옐리네크, <피아노 치는 여자>(1983년)  
주제: 그녀 안에 있는 그녀 자신보다 더 많은 것
일시: 2010. 10. 23(토) 14:00-18:00 
장소: 시청각실(1층) 
대상: 성인 40명 
접수: 전화(3462-1988) 및 홈페이지 
*10월 30일에는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폭력의 영화>에 대한 강대진 박사(고전문헌학자)의 강연이 진행된다.

 10. 10.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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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7 0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07 0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07 1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07 1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원숭이하얀똥꼬 2010-10-15 11:11   좋아요 0 | URL
간만에 블로그에 와서 로쟈님 글을 읽다가 강서도서관 강연회에 대한 정보를 듣고!! 얼른 신청했습니다!!
 

아직 몇달 더 남겨놓고 있지만 2010년에 가장 중요한 인문사회과학서 번역 성과라면 김덕영 교수가 옮긴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길, 2010)고 함께 강신준 교수의 <자본>(길, 2010) 완역을 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여 년의 노고를 담고 있는 대단한 업적인데, 프레시안에 실린 장문의 인터뷰 가운데(http://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00903151812&section=04), <자본>의 현재적 의미를 짚고 있는 후반부를 스크랩해놓는다. <자본> 3권에 대한 강조가 눈에 띈다. 인터뷰어는 강양구 기자다.   

 

지금 왜 <자본>인가?

프레시안 : 자본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책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21세기 지금 이 시점에 <자본>이 다시 번역되어야 하고, 또 가능하면 많은 이들이 읽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강신준 : 그 질문에 대해서는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준비된 답변이 있다. 대개 지금까지 마르크스의 사상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자본>은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데만 주력했지, 자본주의 이후의 대안을 놓고는 침묵했다'고 입을 모았다. 과연 그런가? 나는 20년 넘게 현장의 노동자와 <자본>을 같이 읽으면서 이런 평가에 이의를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자, 생각해 보자. 오늘도 밥벌이에 지친 노동자들이라면 자본주의가 잘못된 체제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택시 기사는 12시간 맞교대로 일해서 하루 14~5만 원을 번다. 그 중 11만 원을 회사에 사납금으로 바치고, 자기는 고작 4~5만 원을 가져간다. 그 택시 기사들이 과연 이런 어처구니없는 자본주의 체제를 정상이라고 생각할까? 850만 명이나 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어떤가? 자동차 공장에서 정규직 노동자인 옆의 동료는 연봉 6~7000만 원을 받는다. 그런데 자기는 그들과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고작 연봉 2000만 원을 가져가는 게 전부다. 이런 비정규직 노동자가 자본주의 체제는 잘못된 것이라는 걸 모를 리가 없다.

그렇다면, 마르크스가 <자본>을 쓴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자본주의 체제의 임금 노동자라면 누구나 자본주의 체제가 잘못돼 있다는 걸 알고 있는데, 왜 그는 번역을 해보면 3000쪽이나 되는 어렵고 방대한 책을 썼을까? 단지 자본주의를 비판하기 위해서 이런 책을 썼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프레시안 : 그럼, <자본>에서 진짜로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강신준 : 마르크스 사상의 핵심에는 변증법이 있다. 그에 따르면 봉건 사회의 모순이 폭발하면서 자본주의 사회가 등장했다. 그 논리대로라면, 바로 이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하나씩 점검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 이후에 등장할 사회, 즉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의 모습도 찾을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그의 기획이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이후 새로운 사회의 구체적 상(긍정의 미래)이나 혹은 그런 사회로 이행하는 방법에 대한 지침(이행 수단)을 쓰지 못한 대신에, <자본>의 곳곳에 그런 '긍정의 미래'의 모습과 '이행 수단'의 내용을 때로는 직접적으로 때로는 간접적으로 남겨 놓았다.

노무현, 김대중 정부를 거치면서 진보 진영에 절실히 필요한 게 바로 '대안' 아니었나? 바로 그 대안의 단초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파헤친 <자본>의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한국 사회는 <자본>의 제대로 된 번역도 가지지 못한 채 어둠 속을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한국 사회에서 <자본> 1, 2, 3권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나? 특히 <자본>에서 가장 대안의 단초가 많이 들어있는 부분은 3권인데, 그것까지 읽은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단언하건대, 한 다섯 명 정도일 것이다. 대안에 대한 가장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을 안 읽었으니 진보의 수준이 낮을 수밖에….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로 촉발된 대공황으로 자본주의의 모순이 극적으로 드러난 상황에서 <자본>은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를 준비하는 대안 논의의 출발점이다. 지금이야말로 자본주의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본>을 읽어야 한다. 바로 지금이 <자본>의 시대다.

금융 위기 예고한 <자본>

프레시안 : 방금 지적한 대로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로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극명하게 드러나면서 전 세계적으로 마르크스의 <자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의 정체를 해명하는 데 <자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1970년대부터 얘기했던 이들도 머쓱해진 상황이다.

강신준 : <자본> 3권을 읽다보면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예를 들자면, 현대 금융의 특징을 얘기할 때 빼놓지 않고 언급되는 게 '레버리지(leverage, 지렛대) 효과'다. 개인이나 기업이 차입금 등 타인의 자본을 지렛대처럼 이용해 이익을 올리려다 결국은 금융 위기와 같은 일이 발생한다. 그런데 바로 이 레버리지 효과가 <자본> 3권에 등장한다. 마르크스는 이 레버리지 효과가 결국에는 공황을 낳는 중요한 원인이라고 보았다. 얼마나 놀라운가? 140년 전의 마르크스가 오늘날 금융 위기의 본질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주류 경제학의 상황을 보자. 



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본다는 <맨큐의 경제학>이나 요즘 대안 교과서로 많이 읽히는 <스티글리츠의 경제학>은 항상 시장에서 시작한다. 현실의 경제는 생산-교환-소비의 3단계로 이어지는데 주류 경제학은 '생산'이 빠지고 '교환(시장)'부터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황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마르크스가 정확히 지적했듯이 공황은 생산 영역에서 시작된다. 자본가는 더 많은 이윤을 얻고자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 이상의 상품을 생산한다. 이렇게 과잉 생산된 상품을 소비하려면 더 많은 소비가 필요한데, 이를 금융 자본이 부풀린다. 여기서 아까 언급한 레버리지 효과가 등장하고. 그러다 더 이상 과잉 생산된 상품을 소비하지 못하는 순간이 오는데 바로 여기서 공황이 발생한다. 생산을 자신의 체계에서 뺀 주류 경제학이 공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1847년 대공황, 1929년 대공황, 2008년 대공황, 이런 전 세계적인 공황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을 지적한 학자는 마르크스가 유일하다. 이런 공황의 메커니즘을 설명한 부분이 <자본> 3권이다. 이곳을 보면 의미심장한 대목이 있다.

"(공황을 촉발하는) 신용의 주요 대변인들은 협잡꾼과 예언자의 얼굴이 함께 뒤섞인 모습을 하고 있다."

'예언자'라는 표현에 주목하자.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공황의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것을 통해서, 자본주의 이후 새로운 사회의 경제의 조건을 따져보려고 했던 것이다. 공황이 일어나는 원인을 파악하면 그것을 극복할 수단을 궁리할 수 있으니까.

프레시안 : 예를 들자면 어떤 식으로 접근하는 게 가능할까?

강신준 :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생산과 소비가 불일치한다. 시장을 맹신하는 주류 경제학자의 바람과는 달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항상 생산이 소비보다 많이 이루어진다. 생산과 소비가 시장에서 균형을 딱 맞춘다면, 왜 기업이 그렇게 많은 비용을 소비자를 현혹하는 광고에 쏟아붓겠나? 이런 불일치의 파국적인 결과가 바로 공황이다. 그렇다면, 공황을 극복하는 방법은 생산과 소비가 가능한 한 일치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두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하나는 시장을 맹신하는 이들이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이다. 100개의 상품을 빌 게이츠 같은 이들이 승자 독식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는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

다른 방식은 1929년 대공황을 겪으면서 케인스가 단초를 제시했던 방법이다. 바로 100개의 상품이 생산되면 무조건 50개를 떼서 사회의 구성원에게 공평하게 나눠주는 방법이다. 그 50개를 '사회 임금'이라고 부를 수 있을 텐데, 그것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바로 복지 제도다. 실제로 1998년부터 전 세계가 금융 위기로 큰 충격을 받았을 때, 가장 피해를 덜 본 국가들이 독일, 덴마크, 스웨덴과 같은 유럽의 복지 국가들이다. 바로 이렇게 <자본> 곳곳에 숨어있는 대안의 단초를 찾는다면,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한 새로운 사회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가 꿈꿨던 사회는…

프레시안 : <자본>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던, 마르크스가 꿈꿨던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강신준 : <자본>을 오랫동안 공부하면서 확실한 답변을 얻었다. 먼저 생산 부분부터 살펴보자.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사회주의'라는 말도, '공산주의'라는 말도 쓴 적이 없다. "생산 수단에 대한 공동의 통제"라는 표현을 쓰긴 했는데, 이것을 "생산 수단의 국유화"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생산은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는 것이고 마르크스는 그것을 명확히 인식했다.

"생산 수단에 대한 공동의 통제"는 노동자 전체가 의사 결정을 포함한 생산의 전 과정에 참여하는 모습을 뜻한다. 그게 무엇인가? 바로 민주주의다. 흔히 마르크스주의하면 즉각적으로 소련의 볼셰비키가 보였던 소수에 의한 독재,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연상한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절대로 마르크스가 얘기했던 그것이 아니다. 



실제로 레닌을 포함한 당대 최고의 마르크스주의자는 모두 다 이 사실에 공감했다. 내가 2006년에 번역한 칼 카우츠키(1854~1938년)의 <프롤레타리아 독재>(한길사 펴냄)를 보면 이런 사실이 잘 나온다. 이 책은 레닌이 1919년 10월 혁명을 통해서 정권을 잡은 후의 행보를 놓고 진행된 논쟁 속에서 나온 것이다.

레닌은 정권을 잡자마자 제헌의회를 해산하고, 비밀 정보기관을 가동해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탄압한다. 프랑스 혁명 때 로베스피에르가 갔던 길을 그대로 따라간 것이다. 이런 레닌의 행보를 놓고 당시 제2인터내셔널의 걸출한 마르크스주의자 세 사람(로자 룩셈부르크, 카우츠키,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이 모두 반대하고 나섰다.

그런데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보면 레닌 역시 자신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공개적으로는 카우츠키에게 "배신자"라고 손가락질했지만, 정작 카우츠키와의 논쟁 속에서는 민주주의 없는 사회주의는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임을 레닌 자신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카우츠키는 이 책 속에서 그런 고민이 담긴 레닌의 글을 인용하면서 주장을 편다.

역사가 말한다. 똑똑한 소수가 "좋은 사회"라는 답을 내놓고 다수가 그것을 따라가는 식으로는 절대로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 그런 사회는 '천국'보다는 '지옥'이 되기 십상이다. 마찬가지로 사회 전체의 수준, 그러니까 그 사회의 노동자의 역량이 사회주의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결코 사회주의의 이상향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

러시아의 상황이 그랬다. 결국 소수의 정치인이 다수의 노동자를 이끌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독재와 폭력으로 귀결되었다. 그 체제를 바로 노동자들이 1991년에 끝장내지 않았나?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소련을 비롯한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는 민주주의를 강조한 마르크스주의가 옳았다는 걸 입증하는 사건이다.

그렇다면, 소비 부분은 어떨까? 마르크스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서 일하고, 필요에 따라서 소비하는 사회"를 말했다. "능력에 따라서 일하는 사회"는 앞에서 얘기한 대로 생산의 전 과정에서 노동자의 의사가 반영되는 것이다. 한편,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욕망을 사회가 더 많이 채워주는 것이 바로 "필요에 따라서 소비하는 사회"다.

독일, 덴마크, 스웨덴과 같은 복지 국가는 교육, 보육, 의료 등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욕망을 사회가 채워주려고 노력했다. 이런 기반에서 생산의 영역에서 개인의 창의성이 마음껏 발현되는 사회야말로 마르크스가 가려고 했던 바로 그런 사회다. 마르크스의 이상은 이미 부분적으로 실현되고 있고, 앞으로도 더 많이 실현할 수 있다.

마르크스 르네상스

프레시안 : <자본>의 완간을 앞두고 2009년 독일에서 1년을 보냈다. 실제로 마르크스와 <자본>에 대한 열광을 실감했나?

강신준 : 난리다. 독일의 베를린에 있을 때 새로운 '마르크스-엥겔스 전집(MEGA)'을 준비하는 학자들과 교류가 많았다. 그 중에 게랄트 후프만 박사가 대학에서 마르크스의 사상을 강의하는데, 금융 위기 이후로 수강 인원이 세 배로 늘어서 나중에는 인원을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독일의 디츠(Dietz) 출판사는 금융 위기 이후 <자본>의 판매량이 2007년에 비해 세 배나 늘었다. 심지어 2009년 기독교민주동맹(기민당)과 사회민주당의 대연정이 깨질 때까지 사민당 소속으로 독일의 재무부 장관이었던 페어 슈타인브뤼크가 "마르크스가 여전히 옳다"고 선언을 하기도 했고.

독일에서는 사민당이 1959년 고데스베르크에서 채택한 강령에서 마르크스주의를 폐기한 이래로 현실 정치에서 마르크스가 설 자리가 없다. 그런데 최근에 오스카 라퐁텐을 중심으로 한 좌파가 사민당을 나와서 결성한 좌파당(LINKE)의 강령에 마르크스에 대한 재해석을 반영하려는 논의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흐름 속에서도 얼마나 마르크스가 되살아날지는 의문이다. 여전히 수십 년의 분단을 경험한 독일 대중에게, 특히 서독 사람에게는 마르크스에 대한 거부감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마르크스에 대한 거부감을 마치 한국의 마르크스에 대한 거부감과 똑같이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독일의 금속산업노동조합에서 펴내는 일반 노동자를 위한 교과서 중 한 권을 보면, 임금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노동자가 받아야 할 임금을 이론적으로 따져보면 '지불노동'과 '부불노동(不拂勞動)'으로 나뉜다." 지불노동, 부불노동, 이런 개념을 사용한 이는 마르크스밖에 없다.

이렇게 독일에서는 마르크스를 명시적으로 내세우지 않지만, 자신들도 모르게 일상생활 곳곳에서 마르크스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것은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 국가도 마찬가지다. 즉, 이런 나라에서는 마르크스를 얘기하지 않아도 모든 논의의 전제에 마르크스의 사상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어떤가? 대중은 물론이고 학자 중에도 마르크스의 주저인 <자본>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사회에서 '마르크스 이후'를 얘기한다.

프레시안 : 요즘에는 마르크스 대신 소스타인 베블런, 칼 폴라니, 생태주의자를 거론하면서 자본주의를 비판한다.

강신준 : 아까 얘기한 것처럼, 마르크스는 그 모든 사람의 출발점이다. 베블런, 헨리 조지, 발터 베냐민, 폴라니, 생태주의자 모두 서양이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한 세기 동안 소화한 마르크스의 유산 위에서 마르크스가 단초로만 제시했던 것, 혹은 그가 생전에 보지 못했던 자본주의의 모습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채우면서 자신의 사상을 마련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들 모두의 출발점이 되는 마르크스의 유산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시류에 휩쓸려 마르크스 이후를 얘기한다. 여러 번 강조하지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본주의 비판과 대안의 출발점이 되는 마르크스, 특히 그의 주저인 <자본>을 다시 읽는 것이다.

냉전 시대 마르크스 연구의 한계

프레시안 : 1960년대부터 특히 유럽을 중심으로 <자본>의 재해석에 목소리를 높인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의 사상 전체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위상을 낮춰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런 흐름은 한국의 지식인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줬는데….

강신준 : 냉전 시대 마르크스의 사상은 단순한 학문이 아니었다. 1917년에 혁명이 일어나고 정권을 탈취하자마자 레닌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당대 최고의 문헌학자 다비드 랴자노프에게 유럽 곳곳에 흩어져 있는 마르크스의 원고를 모아서 정리토록 한 일이었다. 비록 랴자노프는 레닌 사후 스탈린에게 숙청을 당했지만 이 과정에서 상당한 양의 원고가 소련으로 집중됐다.

얼핏 생각하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적자였던 독일의 사민당이 마르크스의 원고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사정이 그렇지 않았다. 1930년대 사민당이 도피 중에 마르크스의 원고의 상당 부분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독지가에게 넘겼기 때문이다. 이 원고의 상당 부분을 지금 네덜란드의 국제사회사연구소(IISG)에서 보관 중이다.

심지어 이때 사민당이 경매 시장에 내놓은 마르크스의 원고 일부는 일본으로도 넘어갔다. 당시 일본의 오하라 연구소의 구성원을 비롯한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유럽까지 와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유고를 수집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일본인의 관심은 지금도 대단해서 한 권에 1500부 정도 찍는 MEGA의 절반 정도가 일본에서 소화된다. 



이런 얘기를 길게 하는 것은 냉전 시대 마르크스 연구의 한계를 지적하기 위해서다. 마르크스의 유고 중 상당 부분, 특히 <자본>을 비롯한 후기 원고의 대부분이 소련을 비롯한 세계 곳곳으로 흩어진 상황에서 서구의 마르크스주의 지식인은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경제학-철학 수고>(강유원 옮김, 이론과실천 펴냄)와 같은 초기 저작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마르크스의 초기 저작에 대한 이들의 관심은 <자본>과 같은 후기 저작을 자기 입맛대로 해석하는 스탈린에 대한 문제제기의 의미도 있었다. 이러다 보니, 마르크스의 사상에서 <자본>을 폄훼하는 흐름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 중심에 바로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등의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있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프레시안 : 마르크스 사상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위상을 간단히 설명한다면….

강신준 : 앞에서도 언급한 MEGA를 예를 들어보자. MEGA는 현재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유고를 보유하고 있는 네덜란드, 독일, 러시아, 일본 등이 공동으로 펴내는 새로운 '마르크스-엥겔스 전집'이다. 총 116권으로 출간될 예정인데 현재 절반인 58권이 나왔다. MEGA는 1부, 2부, 3부, 4부로 구성돼 있는데 이중 2부는 전적으로 <자본>에만 할애됐다.

그런데 이 2부의 권수가 전체 116권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자본>이야말로 마르크스 사상의 모든 것이 용해된 그의 주저인 셈이다. 경제학뿐만 아니라 철학, 역사학, 문학을 공부하는 학자들이 이 <자본>에 달려들어서, 마치 금맥에서 금을 찾듯이 마르크스 사상의 정수를 추출해야 한다. 



<자본> vs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프레시안 :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월급쟁이들 사이에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로버트 기요사키·샤론 레히트 지음, 형선호 옮김, 황금가지 펴냄)라는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적이 있다. 그 책을 읽고서 많은 이들이 "아, 이건 거꾸로 읽는 <자본>이구나"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 책의 메시지는 "노동자로 살면 만날 그 모양 그 꼴이니, 자본가(자산가)가 되어라" 이런 것이었기 때문이다. 착취를 당하는 노동자에게 저항하기보다는 차라리 자본가가 되라고 유혹하는 책이었다. 1980년대에 마르크스와 <자본>에 열광(만) 했던 많은 이들이 이런 유혹에 넘어갔다.

강신준 : <자본>에 엥겔스가 오늘날의 '재테크'를 놓고 이렇게 주석을 써놓았다. 재테크는 노동자가 만들어 놓은 잉여가치를 자본가가 나눠 먹고자 경쟁하는 것이라고. 물론 이런 경쟁에 노동자도 참여할 수 있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는 이런 경쟁에 참여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책이다. 그런데 노동자가 그런 자본가 사이의 경쟁에 참여해 돈을 벌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마르크스가 <자본> 3권에서 개별 자본가가 자본가 사이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확률은 지배할 수 있는 자본의 크기에 비례한다고 써놓았다. 워런 버핏이나 조지 소로스가 대자본을 이용해서 버는 돈과 이른바 '개미'가 버는 돈은 비교할 수가 없다.

여기에서 또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1997년 외환 위기를 지나면서 2000년대에 본격적으로 재테크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1997~98년에 주식 시장, 부동산 시장의 폭락했다가 오르면서 현금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엄청난 차익을 챙기면서 모든 사람이 재테크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버핏이나 소로스나 또 개미들의 몫이 커지려면, 마르크스의 설명을 염두에 두면, 잉여가치가 커져야 한다. 잉여가치가 커지려면 노동자를 착취해야 한다. 누군가의 '대박' 뒤에는 노동자의 '착취'가 반드시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1997~98년을 기점으로 한국 사회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정부의 공식 통계를 봐도, 1997년 이전에는 비정규직이 250만 명이 안 되었다. 그런데 2009년도 비정규직은 570만 명이다. 정부 통계를 그대로 따라도 노동자 300만 명이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전락했다. (학자들은 비정규직이 350만 명에서 850만 명으로 약 500만 명이 늘어난 것으로 본다.) 1997년 이전에 월 250만 원을 받았던 노동자 300만 명이 이제는 150만 원씩 월급을 받고 일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자에게 애초에 월급으로 갔어야 할 돈은 다 어디로 갔는가? 그 돈이 다 재테크 시장에서 대박 터뜨린 이들, 그러니까 버핏, 소로스 같은 사람의 주머니로 돌아간 것이다.

정상적으로 받아야 할 월급 100만 원을 300만 명이 덜 받았다고 치자. 한 달이면 3조 원이다. 1년이면 36조 원, 13년이면 수백조 원이라는 엄청난 규모가 된다. 이렇게 노동자에게 착취한 돈이 다시 그 노동자, 즉 대박을 꿈꾸는 개미에게 돌아올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나는 15층 빌딩에서 뛰어내려 살아남을 확률과 비슷하다고 본다.

물론 개미도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 15층 빌딩에서 뛰어내려도 살아남는 사람이 가끔씩 뉴스에서 화제의 인물로 등장하는 것처럼. 자, 15층 옥상에서 뛰어내릴 자신이 있는 사람은 계속 재테크에 몰두해라. 그럴 자신이 없는 사람은 이 잘못된 자본주의를 가만히 둬서는 안 된다.

나한테 소박한 꿈이 있다. 제대로 된 노동조합이라면,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이렇게 변했으면 좋겠는데, 조합원에게 '노동 계급의 성서'인 이 <자본>을 선물로 줘야 한다. 지금도 노동조합 창립 기념일에 많은 돈을 들여서 조합원에게 선물을 준다. 텐트 같은 것. 그런 데다 돈을 쓸 게 아니라 이 <자본>을 조합원에게 나눠줬으면 좋겠다. 만약 그런 일이 현실이 된다면, 10주든 20주든 노동자들이 원하는 만큼 강의를 할 의향이 있다. 

노동자가 <자본>을 읽는 방법
 
프레시안 : 마르크스 본인도 얘기했듯이 <자본>은 읽기 쉬운 책이 아니다. 사회과학을 공부하지 않은 보통 사람이 <자본>을 읽기는 더욱더 어려울 것이다. 특별히 권하고 싶은 <자본> 읽기 방법이 있는가?  

강신준 : <자본>은 앞부분이 어렵다. 보통 제1편(상품과 화폐)을 읽다가 더 이상 진도가 안 나가는 경우가 많다. 나는 뒷부분부터 읽기를 권한다. 1권 제4편(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부터 읽으면 좋다. 4편의 앞부분도 읽기 힘들면 12장 정도부터 읽으면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다. 제7편(자본의 축적 과정)도 읽어볼 만하다. 특히 7편의 제23장(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 법칙)은 나라와 연도만 빼면 한국의 얘기와 똑같다. 노동자를 정규직/비정규직으로 가르고, 임금을 깎고, 해고를 하고…. 이렇게 1권도 앞이 아니라 뒤부터 읽다 보면 <자본>에 익숙해질 수 있다. 



2권은 경제학 공부를 하지 않은 독자라면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반면에 아까 언급했듯이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를 고민할 때 자극이 될 만한 부분이 많은 3권은 읽어볼 만하다. 특히 공황이 일어나는 메커니즘을 설명한 부분이 중요한데, 한국 사람들은 요즘 화폐 금융 쪽에 상식이 많아서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3권을 읽다 보면 재테크에 눈을 뜰 수도 있다. 나 같으면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같은 책을 읽을 게 아니라 자본주의의 핵심 비밀을 파헤친 <자본>을 읽겠다. (웃음) 



프레시안 : 최근에 낸 <그들의 경제 우리들의 경제학>(길 펴냄)을 포함해 <자본>에 대한 해설서를 몇 차례 펴냈다. 그 책들은 <자본>에 대한 정확한 설명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자본>을 읽을 때 같이 보면 좋을 만한 책이 또 있는가?

강신준 : 요즘에는 <자본> 해설을 하는 책이 많이 나와서 그 중에서 한두 권만 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처음에 폴 말러 스위지의 <자본주의 발전의 이론(The Theory of Capitalist Development)>(이주명 옮김, 필맥 펴냄)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정리가 아주 잘 된 책이다. 그러나 어떤 해설보다도 <자본>을 직접 읽는 게 좋다. <자본>을 강의하는 독일의 교수들에게도 의견을 물었는데, 나랑 똑같은 의견이었다. 한 번 마음먹고 1권의 23장부터 천천히 읽어보라. 답답한 현실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많이 될 뿐만 아니라, 본인이 찾고 있었던 해답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 번역은 진행 중

프레시안 : 오랫동안 <자본> 번역에 매달려 왔다. <자본> 완간 이후에 계획하는 일이 있나?

강신준 : 이렇게 번역한 <자본>을 노동자들과 같이 읽는 일이다. 지난 학기에 전국금속노동조합 조합원 100여 명과 8주 동안 <자본> 강의를 했다. 앞으로 그들과 <자본>을 같이 읽으면서, 그들의 문제의 해답을 같이 찾아볼 생각이다.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자본>에서 단초처럼 제시된 대안을 찾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축적된 성과를 논문으로도 발표하고, 구체적인 정책으로도 내놓을 예정이다.

프레시안 : <자본> 외에도 번역이 안 돼 있거나, 번역이 다시 되어야 할 마르크스의 저작이 있는가?

강신준 : 사실은 MEGA를 펴내는데 참여하는 일본 도호쿠 대학교 오무라 이즈미 교수 등이 중심이 돼 마르크스의 원고 중에서 공황과 관련된 부분만 편집해서 책으로 펴내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일본에서 그 작업이 이뤄지면 그것은 번역을 해서 국내에 소개할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의 저술 계획 속에서 <자본>의 4권에 해당하는 <잉여가치학설사>도 번역해야 하는데, 분량이 많아서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언젠가는 해야 할 작업이다.

프레시안 : 인터뷰 중에 MEGA 얘기가 종종 나왔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철학자들을 포함해 MEGA 번역에 관심이 있는 학자들, 출판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자본> 역자로서 MEGA 번역에 직접 참여할 의사가 있는가?

강신준 : 고민도 하고, 준비도 하는데 엄두가 안 난다. 몇 년이 걸릴지 모를 MEGA 번역을 시작하려면 장애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두 권 하고 그만둘 수 없으니까. 장기간 번역에 몰두하려면 기금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사실 개인적으로 제일 급한 건 <자본>의 문헌 비판이다.

이번에 번역한 <자본>은 일반 독자를 염두에 두고 1957년과 1968년 사이에 소련과 동독이 중심이 되어 발간한 MEW 판이다. 이 <자본>은 엥겔스가 정리한 원본을 놓고 소련, 동독의 학자들이 주를 다는 등의 작업을 한 것이다. 마르크스가 이 <자본>을 완성하기까지 세 벌의 초고가 있었다. 이것을 일일이 검토해서 어떤 부분이 달라졌는지 확인하고, 해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자본> 번역도 아직 끝난 게 아닌 셈이다.

프레시안 : <자본> 역자로서 MEGA 번역을 비롯해서 마르크스의 저서의 번역에 나서려는 이들에게 충고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가? '함부로 시작하지 마!'와 같은…. (웃음)

강신준 : 한국에는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학자가 없다. 시류에 자꾸 흔들린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를 정체를 규명하는 데 마르크스만큼 중요한 학자가 막스 베버인데, 한국에서는 베버를 제대로 연구하는 학자도 없는 것 같다. 그나마 최근에 베버의 주저인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김덕영 옮김, 길 펴냄)이 제대로 번역돼 나왔으니까….

초심을 버리지 않고,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마르크스를 연구하다 보면 언젠가는 광맥에 닿는다. 내가 그렇다. 20년 동안 동아대학교에서 마르크스를 강의하면서 <자본>을 읽었다. 또 해설을 펴내느라 꼼꼼히 본 것도 여러 번이다. 그런데 한 15년이 지난 2004~5년에야 <자본>에 대한 깨달음이 오더라. '아, 이 책의 구조가 이렇구나.' 그 때야 어렴풋이 감이 왔다.

내가 존경하는 학자 중에 고 김진균 선생이 있다. 그 선생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고향 마을의 느티나무는 내가 동네를 떠날 때도 그 자리에 서 있었고, 타지에서 산전수전 다 겪고서 지쳐서 찾아가도 그 자리에 서 있었고, 내가 죽을 때도 그 자리에 서 있다고. 이 느티나무처럼 한 곳에 뿌리를 내려라. 한 길로 매진하면 반드시 열매가 나타난다.

우리의 천국은 우리가 만든다

프레시안 : 마지막 질문이다. <자본>과 같은 공부를 위한 책 외에 즐겨 읽는 책은 무엇인가? 



강신준 : 나는 원래 문학을 좋아한다. 특히 소설을….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끊임없이 옆에 두고 반추한 소설이 이청준의 작품이다. 군대에 있을 때,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읽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견해가 다르겠지만, 나는 이 소설을 굉장히 정치적인 작품으로 여긴다. 그 안에 마르크스가 얘기했던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핵심이 들어 있다. 한 사람이 소록도로 내려가서 나병 환자를 위한 천국을 건설한다. 그런데 정작 그 사람에 천국은 소록도의 환자들에게는 지옥이다. 당신의 천국이 우리의 지옥이다. 천국은 누가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나는 이게 바로 마르크스 사상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이청준의 소설은 여러 번 읽으면서 음미해 볼 만하다. 다른 책에도 관심이 많은 편이다. 최근에는 레닌 관련 책이 여럿 나오지 않았나? 지젝 등이 공저한 것을 비롯해서. 나는 비교적 편견이 없는 사람이라고 자부하는데 사실 쏙 마음에 드는 책이 없었다. 마르크스만큼은 아니어도 레닌의 글에서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찾을 수 있을 텐데, 지금까지의 시도는 불만족스럽다.  

10. 09.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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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의마음 2010-09-05 14:30   좋아요 0 | URL
제가 강신준 교수 수업을 들었다니깐요ㅋ

로쟈 2010-09-05 16:19   좋아요 0 | URL
요즘은 온라인 강의도 하시죠...

2010-09-05 16: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05 16: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diocris 2010-09-05 20:36   좋아요 0 | URL
‘생산 수단에 대한 공동의 통제’는 노동자 전체가 의사 결정을 포함한 생산의 전 과정에 참여하는 모습을 뜻한다면서, 똑같은 일을 하고 다른 임금을 받는 비정규직 문제를 자본주의 체제 때문이라면 한입으로 두말하는 것이니, 한마디로 웃기는 짓이다. 자본주의를 이해하려면 ‘자본’ 말고 다른 책을 읽어라. 보통의 대학교재 중에서도 괜찮은 책이 많다.

로쟈 2010-09-06 12:22   좋아요 0 | URL
독백이신가요?

mediocris 2010-09-06 14:42   좋아요 0 | URL
오만은, 독백이고 싶겠지?

mediocris 2010-09-06 20:06   좋아요 0 | URL
‘비정규직⊂노동자⊂자본주의’인데 비정규직 문제가 자본주의 때문이라니? 예금, 주식하는 노동자가 신자유주의 비판하는 코미디와 뭐가 달라? 그야말로 제 손으로 제 발등 찍기 아냐? 삽질 한번 안 해본 놈들이 노동자를 위해 ‘자본’을 읽고, 노동자를 위해 ‘자본’을 읽으라는 역겨운 계몽과 자위는 제발 그만 두자고.

jmkslyk 2010-09-06 16:40   좋아요 0 | URL
마르크스의 <자본>의 4권에 해당하는 <잉여가치학설사>가 번역되길 바라시는 분들은 자본을 구매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출판사가 역자분도 의욕이 날듯^^

jsredman 2010-09-06 21:46   좋아요 0 | URL
네 꼭 사서 읽어야 할 책입니다.
강신준 교수님 책은 몇 권 읽었는데, 이제야 자본에 도전하네요.

코카추잉 2010-09-12 21:27   좋아요 0 | URL
강신준 교수가 재작년 페스티벌 봄에서 <자본론: 제1장 제1과> 공연 무대에 출연하셨던 것을 봤습니다. 리미니 프로토콜 연출의 이 '포스트 드라마틱 씨어터'는 실제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대거 등장하여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죠. 그 중에서도 강신준 교수가 <자본론>을 번역하게 된 과정을 직접 들려주는 장면은 작지 않은 감동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