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06. 05. 10) '이-만-희 전작을 보고 싶다' 김은형 기자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 회고전으로 재조명했던 고 이만희(1931~75) 감독의 전작전 ‘영화천재 이만희’가 12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 있는 한국영상자료원(원장 이효인) 고전영화관에서 열린다. 지금까지 거장 감독의 대표작들을 상영하는 회고전은 종종 열려왔지만 전작을 상영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산에서 상영됐던 10편을 포함한 총 22편이 상영된다. 엄밀히 말해 이번에 상영되는 22편이 이만희 감독의 ‘전작’은 아니다. 61년 <주마등>으로 감독 데뷔한 이만희는 생전에 51편의 영화를 만들었지만 대표작 <만추>를 비롯해 이십여 편의 필름이 분실되거나 소실됐기 때문에 이번 상영작들이 현재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만희 영화세계의 전부다.

상영금지된 지 37년만에 지난해 발견된 ‘휴일’로 개막
데뷔작 ‘주마등’ 대표작 ‘만추’ 등 20여편은 필름 없어

1931년 서울 왕십리에서 태어난 이만희는 한국 전쟁 뒤 연기자를 꿈꾸며 영화 이력을 시작했다. 단역배우와 조감독 생활을 거쳐 61년 감독 데뷔를 했으며 62년 스릴러 영화인 <다이알 112를 돌려라>로 연출력과 흥행력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다음해 연출한 대작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이만희를 당대 최고의 흥행감독으로 끌어올렸으며 볼 거리로서 한국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도약시켰다는 평을 얻었다.

이후 당시 한국 영화감독에게는 두통거리 숙제와도 같던 반공영화를 제작하면서 고초를 겪기도 했다. <7인의 여포로>(1964)에서 북한군이 인간적으로 그려졌다는 이유로 반공법 위반으로 수감됐으며 당국의 검열로 누더기가 된 이 영화가 흥행에 실패해 큰 상처를 입자 이번에는 “진짜 반공영화를 만들자”고 작심해 만든 <군번없는 용사>(1966)역시 북한군의 제복이 너무 멋지다는 이유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아야 했다.

“이만희는 당대 감독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모든 다른 종류의 영화들에서 자기의 작가적 인장을 새긴 인물”이라고 평한 부산국제영화제 이만희 회고전의 기획자 허문영 프로그래머의 말대로 이만희 감독은 스릴러에서 전쟁 스펙터클, 문예영화, 웨스턴, 멜로드라마까지 종횡무진했다. 때로는 모더니즘의 미학을, 때로는 리얼리즘 미학을 구사하면서 독특한 스타일을 일구어갔으며 편집 도중 쓰러져 영영 일어나지 못한 <삼포 가는 길>(1975)을 유작으로 남겼다.

이 가운데 아직 필름을 찾지 못한 <만추>(1966)는 이만희 영화세계의 전환점으로 꼽힌다. 당시 한국영화로는 파격적으로 대사가 거의 없었던 이 영화는 상업적 영화문법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작가주의로 진입했던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어둡고 절망적인 감독의 시선은 <휴일>(1968)에서 정점을 이루게 된다. 이 영화는 “우울하고 퇴폐적인 정서”라는 이유로 개봉이 무산됐다가 지난해 영상자료원 필름보관고에서 극적으로 발견돼 완성된 지 37년만에 관객에게 처음 공개됐다.

<휴일>을 개막작으로 시작되는 전작전에는 <검은 머리> <돌아오지 않는 해병> <마의 계단> <쇠사슬을 끊어라> 등 지난해 부산에서 상영된 대표작 외에도 <여자가 고백할 때> <생명>등 잠깐 개봉했다가 몇십년 동안 창고 속에 보관되어온, 알려지지 않은 작품도 대거 상영된다. 또 이만희와 함께 작업했던 시나리오 작가 백결, 촬영감독 이석기, 배우 백일섭, 양택조씨와 김경형, 김지운, 류승완, 정지우, 허진호 등 이만희 감독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받은 현역 감독들이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한다.

 

편집장이 독자에게  '1960년대를 위하여' 남동철 (05. 12. 23)

최근 CJ-CGV가 발표한 2005년 한국영화산업 결산자료를 보니 올해 극장관객수는 1억4천만명을 돌파할 것이라고 한다. 올 상반기엔 관객수가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다는 지표가 나왔으나 하반기 개봉한 한국영화들이 호조를 보이면서 영화시장이 9년 연속 성장을 멈추지 않게 됐다고 이 자료는 덧붙였다. 산업의 흐름에 관심있는 관계자들이라면 이런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성장폭이 줄고 있다는 점을 우려할 수 있겠으나 크게 봐서 한국영화산업은 아직 괜찮아 보인다. 새삼스럽게 한국영화산업이 호황이라는 걸 강조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관심을 끈 것은 최근 30년간 최고라는 올해 극장관객수가 역대 관객수 기록에선 고작 7번째라는 사실이다. 1969, 1968, 1970, 1967, 1966, 1971년 관객수가 1억4천만명보다 훨씬 많았다는 얘기다. 요즘 관객 가운데 한국영화산업의 전성기가 1960년대 중후반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그때가 지금보다 호황이었던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번호 특집기사에서 <씨네21>의 편집위원을 맡고 있는 김소영, 정성일, 허문영 세 평론가는 올해의 영화로 이만희 감독의 1968년작 <휴일>을 들었다. 실체를 확인할 수 없던 영화를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결과다. 그들은 <휴일>을 볼 수 있음으로 인해 한국영화의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이름이 이만희라는 걸 확인하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잊혀진 전통을 발견한 이 짜릿한 희열이 극소수 전문가들만의 것일 이유는 없다. 한국영상자료원이 이런 기회를 제대로 활용해서 관객과 옛 한국영화 사이에 놓인 거리를 좁혀주길 기대해본다.

관객수 통계와 <휴일>의 예로 확인하듯 1960년대 한국영화의 실체는 아직 드러난 것보다 알려져야 할 것이 더 많다. 군사정권 시절에 생긴 단절이 한국영화사의 공백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공백이 안타까운 이유는 역사에 대한 호기심 때문만이 아니다. 할리우드가 그들의 전통을 화려한 신화로 포장해 반복 재생산하는 걸 보노라면 한국영화가 그렇게 못할 이유는 뭔가, 라는 생각이 든다. 고전기 할리우드를 무대로 삼은 영화들이 수없이 쏟아지는 것처럼 이제는 60년대 충무로에 관한 한국영화가 나올 때도 되지 않았을까? 이번에 <씨네21>이 출판하는 김수용 감독의 회고록 <나의 사랑, 씨네마>을 읽으면서 퍼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문예영화를 연출한 이 노감독의 글은 대단히 영화적이다. 일례로 이만희 감독의 영결식을 묘사한 글을 보자. “나는 어린 유자녀들을 보니 목이 메어 조사를 읽을 수 없었다. 시간을 끌다가 겨우 감정을 가다듬고 마이크 앞에서 입을 뗄 때였다. 갑자기 민방위 훈련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렸고, 사람들은 우르르 지하 다방으로 몰려 들어갔다. 20분 후 다시 마이크 앞에 섰지만 어쩐지 슬픔은 가고 마음도 가라앉았다. 나는 두루마리 조사를 움켜쥐고 즉흥적으로 입을 열었다.” <나의 사랑, 씨네마>는 사료적 가치 못지않게 드라마로서 흥미진진하다.

1960년대를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이것은 호황의 절정을 맞은 한국영화가 기꺼이 맡아야 할 숙제 가운데 하나다(여기엔 <씨네21>이 맡아야 할 몫도 있을 것이다. <나의 사랑, 씨네마>의 출간처럼). 피터 잭슨이 1933년 원작영화를 보고 감독의 꿈을 키워 지금의 <킹콩>을 만든 것 같은 일이 한국영화에서 일어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러고보니, 우리에게 이만희의 <휴일>을 보여달라. 그러면 진짜 멋진 영화를 만들겠다, 고 어디선가 누군가 외치고 있는 듯도 하다.

 

필름2.0(05. 09. 09) '잊혀진 거장 이만희의 영화에 대하여' 김영진 편집위원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대대적인 이만희 감독 회고전을 연다. 이어 내년에는 영상자료원에서 이만희 감독 전작전을 준비하고 있다. 너무 뒤늦은 감이 있지만 이만희 감독에 대한 본격적인 조망이 막 시작되는 참이다. 이것이 왜 너무 뒤늦었는가, 하는 것은 이만희가 동시대의 감독들뿐만 아니라, 그의 영화를 본 이들에게는 누구나 찬탄과 질시를 불러일으켰던 창작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40대 초반의 나이에 일찍 세상을 떴고 그후 한동안 망각에 묻혔다. 때로 명예의 월계관은 살아남은 이들의 전리품이 된다. 단절된 한국영화 역사의 연구에서 이만희는 저만치 밀려 있었다. 그 와중에 이만희에 대한 여러 영화인들의 회고는 거의 전설 수준으로 옮겨지곤 했다.

언젠가 이만희 감독 밑에서 조감독 생활을 한, 반 은퇴 상태에 있는 감독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이만희와 함께한 현장 생활이 거의 경이적인 것이었다고 했다. 이만희는 군사정권 체제 하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에 혐오감을 품고 있었고 자기 창작 생활을 거의 방기하듯이 했다. 그는 늘 술을 마셨고 현재 영화를 찍고 있는 상태에서 이미 다음 영화의 연출료를 받아 다 써버릴 만큼 애주가였다. 그의 때 이른 죽음은 바로 이 술로 인한 간 기능의 악화 때문이었다. 시나리오도 완성하지 않고 곧잘 영화를 찍은 그는 촬영 당일 아침이면 거의 난수표 수준의 암호 같은, 알아볼 수 없는 글씨로 대사를 아무렇게나 갈겨쓴 콘티를 조감독에게 줬는데 거기에 적힌 소도구를 재빨리 동원하는 게 조감독의 가장 큰 임무였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찍었는데도 미스터리 스릴러영화를 잘 만들었던 이만희의 재능은 그것 자체로 미스터리였다는 것이다.

동세대의 감독들에게도 이만희는 연구 대상이었다. 이를테면 누구도 자신을 넘어서는 감독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고 김기영 감독도 이만희의 영화에 대해서는 깜짝 놀란 적이 있다고 회고했다. 김수용 감독도 다른 사람이 넘어설 수 없는 경지에 가 있었던 감독이 이만희였다고 말했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는 요절한 동료감독에 대한 예우일 수도 있지만 그 분들이 모두 동의했던 것은 이만희가 생전에 보여 준 것 이상의 것을 훨씬 더 보여 줄 수 있는 감독이었다는 점이다. 영세한 산업 규모로 굴러가던 60년대와 군사정권의 통제가 엄혹했던 70년대에 만들었던 이만희의 영화는 그런데도 빛나는 성취를 티내고 있었다. 그의 영화 중에는 거의 태작이 없다. 빠른 속도로 되는 대로 찍어낸 그의 영화에 미치광이 같은 시정신이 늘 살아 있었다는 것은 수수께끼다. 임권택 감독도 평론가 정성일 씨와 나눈 인터뷰에서 이만희 감독이 살아 있었으면 자신이 영화를 더 잘 만들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경쟁에 있는 자로서, 아, 저 사람에게 지면 안 되겠다는 경쟁심을 불러일으키는 감독이 있다면 내게는 이만희 감독인 거요. 왜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냐면 내가 <증언>을 찍고 있었을 때 이만희 감독은 나와 마찬가지로 전쟁영화 <들국화는 피었는데>를 만들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 영화가 중간에 말썽이 많이 나고 해서 나머지를 임 감독이 좀 대신해줄 수 없냐고 해서 막장까지 갔는데, 남이 만들던 영화를 할 수는 없는 거요. 바보가 아니면. 그때 내가 속으로 생각을 해본 거요. 내가 만약 대신한다면 이만희 감독이 찍은 영화를 흔적 없이 해낼 수 있겠는가. 그런데 아니더라고. 내가 흉내낼 수 없는 이 감독만의 세계가 있는 거요. 거기에는. 내게는 한국영화에 특히 그 두 사람이야. 김기영 씨하고. 도저히 그 사람들의 스타일은 내가 흉내 내서 비슷하게 할 수가 없겠다는 거지. 독특한 자기 양식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야.”

<들국화는 피었는데>는 1973년에 영화진흥위원회의 전신인 구 영화진흥공사에서 직접 대규모 예산을 들여 제작한 국책 반공 전쟁영화였다. 영화진흥공사는 전쟁영화 연출 경험이 있는 이만희와 임권택에게 각각 <들국화는 피었는데>와 <증언>의 연출을 맡겼다. 사단 병력 규모의 군부대가 엑스트라로 동원되고 한 마을 전체가 세트로 지원된, 당시로선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대작이었다. <들국화는 피었는데>는 극우 논객으로 유명했던 소설가 선우휘가 각본을 썼지만 감독 이만희의 관심은 각본에 담긴 선전영화의 의도에는 관심이 없었다. 특히 영화 초반 수십 분간 전개되는, 북한군의 탱크 위용을 보여 주는 장면은 압권이다. 탱크가 마을과 사람을 짓밟고 지나갈 때 장비가 열악했던 당시의 남한군은 그저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웬만한 총이나 화기에도 끄떡하지 않는 탱크에 맞서 남한군 병사들은 아예 수류탄을 지고 탱크에 뛰어드는 무모한 방법으로 목숨을 버린다. 그것은 영웅적인 활약으로 보인다기보다는 가공할 기계에 맞서는 인간의 힘겨운 투쟁을 그리면서 거의 무력감에 가까운 느낌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영화가 완성됐을 때 북한군의 잔학상과 그런 북한군에 맞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기를 바랐던 정부 당국으로부터 전쟁의 스펙터클에서 비극적인 무력감을 표현한 이 영화가 눈밖에 난 것은 당연했다. 제작 직후 가진 시사회에서 정보 당국은 이 영화에 대해 전면 개작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영화 곳곳에 반공과 애국을 역설하는 상투적인 연설 투의 대사가 수시로 깔리고 화면의 연결이 성긴 흔적이 역력하지만(심지어 밤 전투 장면을 낮에 찍어 이어붙여 놓기도 한다) 감독 이만희는 당시의 제작 현실에서 거의 불가능했던 풍부한 제작 조건에서 작업하면서 찍은 이 전쟁 스펙터클의 초점을 반공이나 북한에 대한 적대심이 아닌, 탱크에 짓밟히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전쟁에 대한 훨씬 더 추상적인 두려움을 보여 준다.

정부가 지원하는 국책 홍보영화조차도 자기 배짱대로 찍어버린 이 강골의 영화감독은, 그러나 또한 매우 서정적인 감성을 지닌 창작자였다. 이번에 영상자료원에서 발견돼 9월 2일 상영됐으며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공개될 이만희의 <휴일>은 지금까지 한번도 상영된 적 없는 작품으로, 이만희의 진면목의 일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이 영화는 제작 당시 너무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상영 금지 처분을 당했다. 전옥숙이 기획하고 백결이 시나리오를 썼으며 신성일과 전지연이 주연한 이 영화는 일요일에 만나 데이트 하는 가난한 연인의 하루를 포착한 것이다. 이렇게 내용을 소개하면 매우 달콤한 영화인 듯싶지만 실은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허무한 정조를 띠며 전개된다. 신성일이 연기하는 허옥은 무일푼 백수 청년으로 가진 것도 능력도 없으면서 턱없는 허풍으로 세상을 대하는 청년이다. 택시비도 없으면서 택시를 잡아타고 목적지 근처에 택시를 세워두곤 구멍가게에서 담배를 사는 척하며 거스름돈은 택시 운전사에게 받으라고 사기를 치며 달아나는 대책 없는 청년이다. 그런 그가 애인을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 애인은 다방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커피값이 없기 때문이다. 다방에서 만날 돈조차 없는 가난한 연인은 그렇게 일요일의 데이트를 시작한다. 나무들이 늘어선 비탈길을 나란히 걸으며 그들은 자신들의 비루한 사랑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꽤 문학적 감성으로 치장된 이들의 대화는 결국 여자가 감추고 있던 비밀을 꺼내는 것으로 이어진다. 여자는 임신을 했고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도 그 뱃속의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여자는 무기력한 남자를 비난하지만 결국 아이를 떼는 데 동의한다. 남자는 낙태 비용을 얻기 위해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 그가 돌아올 때까지 여자는 바람이 몰아치는 남산 중턱 벤치에서 하염없이 남자를 기다린다.

이렇게 펼쳐지는 <휴일> 도입부는 사건이 전개될수록 더 암담한 분위기로 치닫는다. 허옥이 돈을 빌리러 간 친구들은 다 제멋대로다. 여자를 후리는 데만 골몰하는 놈, 사회의 낙오자가 되어 술집에서 개똥 철학만 주워대고 있는 놈, 돈을 모아 현대식 아파트에 살며 목욕을 즐기며 으스대는 놈(그 당시에는 집에서 목욕을 한다는 것이 사회적 신분 상승의 자기 확인 행위였던 모양이다)들을 만나 새삼 깨닫는 것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폐허에 있다는 자각이다. 진부한 음악과 문학적 대사를 끼고 이만희는 이런 상황을 이미지로 다룬다. 술집에서 백수들과 ‘대학을 나오고도 사회에서 낙제한 것은 내 책임이 아냐’라는 따위의 시시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친구를 허옥이 찾아갔을 때 카메라는 그들이 벽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모습을 잡는다. 그들을 비추던 카메라는 그들이 화면 바깥으로 움직여 나갔을 때도 잠시 그들 배경의 벽을 응시하듯 잡는다. 의미 없는 낙서들이 깨알같이 적혀 있는 그 벽에서 잠시 응시한 끝에 우리가 카메라를 통해 얻어내는 감정은 모멸감이라는 것이다. 어떤 지향으로 묶일 수 없는 삶에 대한 모멸이 거기 스며 있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남자는 방황하고 여자는 기다린다. 남자가 담배를 빼어물고 부스럭거리며 성냥을 찾으면 여자가 핸드백에 남자를 위해 지니고 다니는 성냥갑을 꺼내준다. 그러나 남자는 결코 여자의 마음에 아무것도 점화해줄 수 없다. 산부인과에서 낙태할 차례를 기다리며 초조하게 대기실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남녀 주인공의 모습을 담은 영화 속 한 장면에서 카메라는 그들의 꽉 움켜잡은 손을 포착한다. 간호사의 발걸음이 들리고 진료를 받을 것을 채근하는 그녀의 목소리 끝에 내미는 손길은 남녀 주인공의 움켜쥔 손을 떼어놓는다. 사회적으로 공인되지 못한 이들의 결합은 그렇게 무력하다. 더 자세히 밝힐 수는 없으나, 이후 영화 내내 포착되는 주인공의 방황 장면은 60년대 말의 서울의 아름답지만 동시에 흉물스러운 표정을 간직한 풍경을 절묘하게 묘사하고 있다. ‘우리들의 우울한 일요일을 위하여, 우울한 사람들끼리, 내일을 위하여, 어제를 위하여, 여자를 바람 맞힌 그 남자를 위하여, 남자를 바람 맞힌 그 여자를 위하여.’ 따위의 김승옥 소설 풍의 대사들이 술집에서 나누는 건배의 술잔 위로 겹쳐지는 이 영화의 분위기는 극한의 퇴폐와 무기력한 애상으로 치닫는다. 당시의 권력자와 그의 취향을 집행하는 관료들은 이런 퇴폐적인 우울함을 좋아하지 않은 나머지 상영 금지 처분이라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했다. 그런 시대적 맥락까지 더해서 이만희의 <휴일>은 보고 나면 뇌리에 서걱서걱하는 톱밥 소리가 들리는 듯한 감동을 준다. 영상자료원의 시사실에서, 그리고 곧 열릴 부산영화제의 대규모 회고전에서 이만희 감독 영화의 진가를 한번 음미하시길 바란다.

 


씨네21(06. 05. 12)

허문영 평론가가 말하는 지금 이만희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

이 사람은 도대체 어디까지 갔던 것일까

이만희는 그의 영화를 보면 볼수록 더 말하기 힘든 감독이다. 이 말은 한 사람의 관객이자 평자로서 내가 한 감독에게 바칠 수 있는 최상의 찬사다. 이것은 그가 만든 모든 영화가 걸작이라는 뜻은 아니다. 실은 그렇다고 말할 자격도 없다. <만추>를 제외하고도 그의 영화 50편 가운데 우리는 반도 만나지 못했다. 이만희는 이제 막 말해지기 시작했고 앞으로 더 많이, 더 맹렬하게 말해져야 할 감독이다.

그의 작품들은 아예 행방조차 알 수 없거나(<만추> <시장> <7인의 여포로> 등등), 40년의 망각을 넘어 이제 막 도착했거나(<휴일>), 일부의 소리를 잃어버려 혹은 괴상한 계몽영화로 치부돼 창고에 처박혀 있었지만(<물레방아> <생명>), 그들을 한편씩 만날 때마다 보는 사람을 전율케 한다. 이 사람은 도대체 어디까지 갔던 것일까.

이만희의 영화를 볼 때 우리는 1년이면 30여편에 출연하는 배우를 불러놓고 기껏해야 2주에 한편을 촬영하며 그렇게 1년에 대여섯편을 찍어댄, 그러고서도 검열과 삭제와 금지의 지옥을 경유해야 하는 끔찍한 제작환경을 감안해 가산점을 줄 필요가 없다(이 가산점은 실은 정당한 것이지만). 이 천재가 모든 걸 극복했다는 말이 아니며 지혜롭게 타협했다는 말도 아니다. 오히려 그는 그 저주받을 만한 존재 조건을 자신의 내부로 끌어들여 유의미한 상처로 만들어낸다. 이만희의 영화는 그 모든 악조건과 저주와 상처를 끌어안고, 영화를 사랑한 한 사내가 영화라는 매체의 심장에 기어이 이르려는 순간들의 숨막히는 기록이다.

<생명>
<생명>

여기선 다만 <생명>(1969)에 관해 말하고 싶다. <생명>은, 그의 영화 가운데 단 한편만 보기를 권해야 한다면, 가장 마지막에 권하고 싶은 영화다. 이 영화가 가장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가장 개인적이기 때문이다. 한 시간 남짓한 짧은 영화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영화의 첫머리에 이런 구호가 떠오른다. “삼천만 한몸 되어 분쇄하자 북괴만행.” 이 영화는 탄광 매몰과 광부 구출 사건을 다루고 있으므로 ‘북괴만행’과는 무관하다. 그 구호 다음에는 이것이 ‘기록영화’라고 스스로 말한다. 이 영화는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픽션이므로 이것 역시 말이 안 된다. 이런 어이없는 자막이 들어간 자세한 경위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이만희라는 인물이 당대의 질서와 맹렬하게 대립한 자취 혹은 그로 인한 상처의 흔적으로 읽힌다. <생명>은 한몸 되어 분쇄하자고 말해놓고 한몸이 되지 않는다. 기록영화라고 말해놓고 기록하지 않는다(여기선 기록영화라는 장르가 아니라 ‘기록’이라는 말이 함축하는 리얼리스트의 계율이 중요하다). 이만희는 자기가 가장 무관심하고 가장 끌어안기 싫은 표지를 내세우고 그 안에서 완전히 반대편으로 가버린다.

이 영화에서 갱도 붕괴는 사실적으로 묘사되는 게 아니라 “무너졌다”는 외침 하나로 처리된다. 곧이어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몰려드는 기자들, 슬퍼하는 매몰 광부의 가족 등등 이런 영화가 기록해야 할 대상들은 모두 등장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영화는 그 모든 걸 무성의하게 보일 만큼 간략히 처리한다. 이만희는 정말 기록에 무관심하다. 그러나 한 장면은 자꾸 변주되면서 반복된다. 무너진 갱도에 홀로 갇혀 죽어가는 사내(장민호)의 모습. 그는 갱도에 갇혀 반쯤 실신한 상태로 꿈을 꾼다. 포성과 총소리, 비명이 환청으로 들려온다. 잠에서 깨면 좁은 갱도에는 물 떨어지는 소리만 청명하게 울려퍼진다. 이 영화는 이상하게 조용하다. 울부짖음도 분노도 환호도 없다. 그저 광부는 갇혀 죽어가고 있고 그의 가냘픈 신음 소리와 맑은 물소리가 전쟁의 기억이 만들어낸 간헐적인 환청과 함께 폐쇄공간을 채운다.

<생명>이란 영화는 놀랍게도 이것이 거의 전부다(구출 과정도 매몰과 마찬가지로 얼렁뚱땅 묘사된다). <생명>은 오직 갇혀서 죽어가는 사내의 형상에 관한 영화다. 이 영화의 가장 냉혹한 대사. 신문기자(허장강)가 몰려든 사람들로 바빠진 다방 종업원에게 묻는다. “살아날 것 같은가요?” 종업원이 대답한다. “관심 없어요. 다만 빨리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가장 놀라운 순간은 마지막 장면에 등장한다. 매몰 사건이 일어난 첫 장면에서 갱도 아래로부터 지상으로 올라가던 카메라는, 광부가 구출된 뒤에 지상에서 갱도 아래로 수직 낙하한다. 그리고 영화는 끝난다. 저 카메라는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이미 무너져버린 그 갱도로 다시 가서 우리에게 뭘 보여주려는 걸까. 이 기괴한 카메라의 움직임보다 더 가혹한 절망의 영화언어를 기억해내기 힘들다.

이렇게 엉성하고 절충적인 영화에서 이처럼 숭고한 영화적 순간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믿겨지지 않는다. 나는 이만희의 모든 영화가 그런 순간을 또 어디엔가 감추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못하겠다. 그의 영화를 자꾸만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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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 때문에 바타이유에 관한 자료들을 읽고 있는데 문득 켜놓은 TV에서 오래전에 본 영화의 한 장면에 눈에 들어왔다. 대번에 그리스의 영화감독 테오앙겔로풀로스의 <영원과 하루>(1998)란 걸 알 수 있었는데, 신문의 프로그램란에서 확인하니까 맞다. 그의 영화다. 4월 22일(토) 밤 11시. <영원과 하루>.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11번째 영화이자 1998년 칸느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

지난 2004년 11월에 개봉한 걸로 돼 있지만, 내가 본 건 그보다 훨씬 전 한 영화제에서였다(기억에는 동숭아트센터에서 봤다). 대부분의 시간을 졸면서!(나는 <율리시즈의 시선>도 영화관에서 볼 때는 반은 졸면서 봤다). <영원과 하루>에서도 인상적인 몇 장면이 있었지만 그걸 위한 132분은 인내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러시아 감독 타르코프스키와 겉보기에는 가장 유사한 영화적 스타일의 감독이지만, 그의 영화들을 나는 즐기는 편이 못된다(그의 영화들에서 가장 인상적이며 내가 좋아하는 것은 영화'음악'이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수면제 대용으로 보는 이들을 내가 기이하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 이해하는 것은 내게 앙겔로플로스의 영화가 수면제이기 때문이다. '예술 영화'임에는 분명한데, 자신의 인생 여정을 영화에 비유하기도 하는 이 거장의 어떤 면이 내게 친숙하지 않은 걸까라는 게, 좀 미안한 마음에서 내가 갖게 된 자기변호성 의문이다. 

이번에 EBS에서 방영된 <영원과 하루>를 잠시 보다가 그 의문을 풀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했는데, <씨네21>에 실린 짐 호버만의 평에서 일말의 해답을 찾았다(예술 감상에서 동지를 만나는 건 언제나 반가운 일이다). 이번주 <씨네21>에 난 영화소개 기사와 함께 2년전에 실렸던 호버만의 영화평을 같이 옮겨놓는다(인용문에서의 강조는 물론 나의 것이다).

씨네21(2006. 04. 20)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영화를 글로 풀어내는 일은 참으로 덧없게 느껴진다. 말이 덧붙여질수록 그의 영화적 세계는 점점 멀어진다. 그의 영화를 감상하는 가장 옳은 태도는 입을 열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그저 감상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의 열한 번째 영화가 궁금한 독자들께서는 이 글이 영화 감상에 하등 도움될 것이 없다는 점을 미리 인지하시기 바란다.

-<영원과 하루>는 죽음을 앞둔 그리스의 늙은 시인, 알렉산더의 이야기다.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을 병원에서 보내는 대신 19세기의 시인, 솔로모스의 시어들을 찾아 나서는 데 보내기로 한다. 불멸의 시어를 찾아 떠난 여행에서 그는 행복했던 과거로 돌아가기도 하고, 알바니아 난민 소년을 만나 시적인 경험을 나누기도 한다. 영원한 진리를 찾아 떠난 여행이지만, 결국 그는 진리란 그가 경험한 시간 속에 내재된 것임을 깨닫는다.

-이 영화는 노년에 접어든 음유 시인 앙겔로풀로스의 회고록 혹은 자화상이다. <안개 속의 풍경>의 어린 소년부터 그의 많은 영화들 속에 등장했던 ‘알렉산더’라는 이름의 남자가 이 영화에서는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이 된다. 알렉산더는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여 생의 상처를 온몸에 새기고 이제 그 생의 끝에서 영원성을 갈망하는 것일까. 우리는 그 영원성이 알렉산더의 예술세계 혹은 누군가의 시적세계에 잠재된 것이 아니라, 아내와의 아름다웠던 추억, 난민 소년의 입을 통해 나오는 시어, 버스에서 잠을 자는 혁명군 등에게서 빛처럼 퍼져나오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것은 앙겔로풀로스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외부의 관념적인 영원성으로 퇴각한 것이 아니라, 역사와 시간 속에 더욱 침투하여 불멸의 순간들을 포착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시인의 뒤늦은 후회나 회환이 아니라, 영원이란 ‘이미 그곳에’ 늘 존재해왔음을 깨달은 노년의 쓸쓸한 성숙함이다(*이 영화가 지루한 것은 내가 아직 '노년'과 친숙하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라는 게 나의 잠정적인 결론이다).

-그의 다른 영화들처럼, <영원과 하루>에서도 익스트림 롱숏과 딥 포커스, 카메라의 느린 움직임은 영화에 시간의 무게를 실어준다. 안개가 낀 회색빛 그리스의 풍경, 침묵으로 말하는 여백의 공간 역시 여전하다. 솔로모스의 시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환상적인 이야기들과 버스 안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풍경들 속에서 과거와 현실과 미래는 만나고, 젊은 앙겔로풀로스와 노년의 앙겔로풀로스는 조우한다.(*그래도 이 대목이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들이었다.) 그의 영화세계 속에서 역사는 그렇게 교차하고 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남다은 기자)

씨네21(2004. 12. 15)  "자아 도취의 향연" -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가장 미약한 작품 <영원과 하루>

-유럽 예술영화의 쇠망을 느끼게 하며 칸영화제가 그 절정에 이르렀다. 그에 때를 맞춰 지나치게 과대평가되었고 엄청나게 자기중심적인 거장들의 최근작 두편이 선보였다.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영원과 하루>,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하나의 선택>으로 보건대 유럽 예술영화는 멸종 위기에 처해 있고 둔하기 짝이 없다.(*'거장'이란 말에 기죽지 않고 이렇게 말해주는 비평가가 국내에는 드물다. 가령, '국민감독' 임권택에 대해서 누가 이렇게 말하는가?)

-칸의 1998년 황금종려상 수상작, <영원과 하루>는 수년 동안 내가 앉아 버티며 시청한 대여섯개의 앙겔로풀로스 영화들 중 가장 미약한 작품이다. 시 구절과 제멋대로의 피아노 연주, 해변가 아이의 멋진 이미지, 그리고 병원에 입원할 준비를 하고 있는 유럽을 상징하는 알렉산더 역의 브루노 간츠와 함께 영화가 시작되는데 알렉산더는 진부한 배역에 맞게 위대한 작가이며 꽉 찬 중년에 시한부 질병을 앓고 있다. 그의 지병을 거대한 망상이라고 부르자. 앙겔로풀로스는 알렉산더가 하는 모든 일에 거의 세계사적인 의미를 부여할 테니까.(*타르코프스키의 <희생>에는 그러한 '거창한' 나르시시즘이 없다.)

-작가는 깨끗하게 다듬어지고 우스꽝스럽게 조용한 레브라도 개를 딸에게 맡기려고 하면서 자신의 마지막 날을 시작한다. 그리고 납치되어 부유한 남색자들로 가득 찬 버려진 모텔로 끌려온 알바니아 소년을 구하게 된다. 이제부터 무뚝뚝하고 지겹게도 찰리 채플린의 <키드>가 반복되지만 영화 내내 형사 콜롬보가 입었을 듯한 레인코트를 입고 등을 꾸부정하게 하고 있는 간츠의 배역은 너무 기력이 쇠약해 그저 상냥하게 자신의 꼬마를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노인과 소년, 부자와 가난뱅이, 베푸는 이와 귀염둥이, 문명과 그 불만족의 이 상징적인 공생관계는 알바니아의 수용소가 소개되고 알렉산더가 자신의 영혼지기로 생각하는 유배된 19세기 그리스 시인에 대해 임종의 상념에 젖어 있을 때 일종의 역사적 깊이를 얻게 된다. 하지만 내 참을성을 밀어버리게 만드는 것은 영화감독의 지루하고 답답한 스타일이다. 연구의 대상이자 유머가 부재한 앙겔로풀로스의 영화는 졸립게 하는 일련의 장면들과 거만한 줌의 사용들, 느려터진 화이트아웃들로 특징된다.(*바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다!) 그 효과는 거의 없지만 미장센은 어울리지도 않게 매혹적이다. 모든 집들은 건축 잡지의 사진들처럼 불이 밝혀져 있고 병원조차 잘 보존된 지방의 박물관 같은 느낌을 발산하며 도시의 시체 보관실도 유행하는 스테인리스스틸 느낌의 일류 식당처럼 느껴진다.

-<영원과 하루>는 드러내놓고 자기도취적이어서 알렉산더가 죽은 아내의 간지러운 러브레터들에 심취해있을 때조차 쉽게 이게 앙겔로풀로스가 자신에게 쓴 편지려니 싶어진다. 뭐가 더 터무니없을까? 알렉산더가 자기 개를 맡기기 위해 충실한 하인 아들의 가짜 민속결혼식에 방해가 되는 장면일까 아니면 길거리의 아이들이 죽은 동지의 어쭙잖은 소유물을 태우는 장면에서 오보에가 들려오고 카메라가 냉혹하게 움직일 때일까? 추상적 비표현주의자라고 불릴 만한 앙겔로풀로스에겐 인물들을 상상해내거나 배우들을 지도할 특정한 능력이 없다. <영원과 하루>에 좀더 위상있는 배우들이 나왔다면 나았을지도 모른다. 뻣뻣하고 빈약하며 거만하고 한순간 그 자신의 효과에 취했다가 허위 철학에 눌려버린 완전히 예술영화판 <보이지 않는 위협>이 아닐 수 없다.(*<보이지 않는 위협>은 <스타워즈의 에피소드1 -보이지 않는 위험>을 가리키는 게 아닌지? 한편, 주연을 맡은 배우 브루노 간츠는 빔 벤더스의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천사'로 나왔던 배우이다.)

-앙겔로풀로스의 단점이 있지만 기억에 남을 만한 <율리시즈의 시선>은 그 어떤 웅장한 무관심을 받았다. 아니 적어도 2번가에 있는 거의 버려진 황량한 앤솔로지 필름 아카이브의 빈 극장에서는 보여줄 만한 그런 영화였다. 그걸 봤다면 누구나 앙겔로풀로스가 마지막 유럽 예술영화를 만들었다고 믿었을 것이다. 링컨센터의 위상 속에서 개봉되어 평범한 머천트와 아이보리의 공격적인 광고에 힘입고 있는 <영원과 하루>는 그런 분위기의 기이한 요약에 더 가깝다.

-“나 왜 유배 속에 삶을 살아왔나?”, “왜 우린 사랑할 줄 모르고 있었나” 따위의 영원한 질문들을 뻔뻔스럽게 헤대며 앙겔로풀로스는 잉마르 베리만의 무거운 망토를 걸치고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도덕적 고통을 머리에 쓰고 미클로시 얀초의 형식주의를 사용하며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비유적인 풍경을 찾다가 결국 바닷가에서 음치에다 뻣뻣하게 춤을 춰대는 페데리코 펠리니의 대단원을 맞는다.(짐 호버만)(*감독 자신이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올라 있음을 알고 있을 때, 그의 영화는 지루해진다.)

 

참고로 지난 2004년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했던 앙겔로플로스와의 인터뷰들 중 하나를 옮겨놓는다.

nkino(2004. 10. 15) "우리 시대 최고의 거장을 만나다"

-부산영화제와 한국을 처음 찾은 소감이 어떤가?
-테오 앙겔로플로스 |
솔직히 말하면 한국을 느낄 시간이 전혀 없었다. 호텔 방에 완전히 고립되어 있었다.(웃음) 주변의 호텔은 어느 나라나 다 비슷하다. 유일하게 다른 점은 호텔 방에서 바로 바다가 보인다는 것 정도다. 시간이 되면 부산 관광이라도 하고 싶은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리스의 좌파적인 전통 속에서 영화를 시작한 것으로 안다. 젊은 시절의 역사 체험이 영화에 미친 영향은 어떠한가?
-내가 영화를 시작한 때는 그리스가 한창 군부 독재 중이던 1970년이었다. 나나 조국인 그리스에게나 어려운 시기였다. 그 전에는 좌파계 신문사에서 영화비평가로 활동했다. 군부 독재가 시작되면서 군인들이 도시를 점령했다. 군인들은 내가 일하던 신문사를 파괴하고, 아테네는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첫 영화인 <범죄의 재구성>을 찍었다. 이 영화는 산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을 그리고 있다. 어느 정도는 고대 그리스 비극과 신화에서 모티프를 따오긴 했지만, 결국은 실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보통 외지인들이 그리스에서 떠올리는 이미지, 예를 들어 태양빛이 작열하는 유명한 섬들이나 관광지의 그런 이미지가 아닌, 그리스의 이면을 그려냈다. 남자들은 모두 다 외국으로 떠나고 나이든 여자들만 가득한 폐허가 된 그리스 마을. 결국 이 또한 당시 그리스 현실에 대한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는 영화 검열이 엄격한 나라였다. 검열과 규제는 당신의 영화에서 어느 정도로 영향을 미쳤나?
-당연히 너무 어렵고 힘들었다. <범죄의 재구성>은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내용이 없어서 큰 문제는 없었는데, 문제는 두 번째 영화인 <1936년의 나날>에서부터 시작했다. 이 영화가 프랑스에서 개봉되었을 때는 정치적인 이슈를 간접적이고 암묵적으로 이야기하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당시는 그리스 뿐 아니라 유럽 전체가 파시즘의 광풍에 휩쓸려 있었다. 이 영화가 대학생들을 상대로 상영되었던 것이 기억난다. 영화 상영을 마쳤는데, 모인 사람들 누구도 영화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극장 안에는 대학생 들 뿐 아니라 검열 당국에서 나온 형사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 담겨있는 당시 그리스 상황에 대한 은유와 상징들을 그들이 눈치챌까봐 두려웠던 거다.(웃음)

-세 번째 영화인 <유랑극단>은 정치적인 주제를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데 지친 나머지,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주제를 드러낸 작품이다. 영화가 혹시 개봉을 못한다고 해도, 일단 한 번 질러보자는 심사였다. 하지만 역시 사전 검열 문제 때문에 시나리오 없이 촬영을 진행해야만 했다. 혹시 문제가 생길까봐, 배우나 스탭, 제작자의 이름 모두를 크레딧에 올리지 않았다. 배우들도 촬영 당일이 되어야 자신들이 어떤 연기를 해야할 지 알게 되는 그런 도둑 촬영이 대부분이었다.

-최근의 영화 감독들 중 특별히 눈여겨 보는 감독이 있는가?
-사실 요즘에는 다른 사람들의 영화를 보기가 더 힘들어진다. 이렇게 영화제에 가도, 인터뷰에 각종 행사에 끌려다니다 보면 영화 한 편 보기가 힘들다. 타인들의 영화가 그리워지는 시점이다. 최근에 본 영화 중에서는 태국 감독인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열대병>이 맘에 들었다. 그 외에는 아테네에서 본 김기덕 감독의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작년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러시아 영화 <귀환>, 그리고 코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 등도 생각난다.

-당신은 그리스에서 활동하는 유일한 감독이다.
-나는 그리스 국내에서 영화 작업을 하는 유일한 그리스 감독일 것이다. 물론 내게도 외국에서 일하자는 제안은 많이 오지만, 그리스에 남기로 결정하고 작업을 해왔다. 엘리아 카잔이나 존 카사베츠 같은 감독들은 그리스 출신이지만 주로 미국에서 활동했고, 그리스에서 작업한 감독은 <희랍인 조르바>를 만든 마이클 카코야니스 정도가 있을 뿐이다. 현재 그리스 영화는 그리스 내부에서만 알려져 있다. 조금 더 그리스 영화가 해외에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유일한' 그리스 감독이라는 게 좀 놀랍다.)

내친 김에 인터뷰 하나 더. 인터뷰어는 오마이뉴스 심은주 기자이다. 타이틀은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만약에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영화는 아직 종말에 다다르지 않은 것이 되겠다.)

오마이뉴스(2004. 10. 13) "여기, 영화 감독을 꿈꾸는 영화 학도가 있나요? 여러분은 어떤 이유로 영화를 시작하게 되었나요?" 개인적인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지며 이 영화 거장은 말문을 열었다. 그리스 출신의 영화 거장 테오 앙겔로풀로스는 작가주의 예술영화의 최고 경지에 이른 감독으로 유명하다. 역사적·정치적 문제를 서정적인 느낌의 화면에 담아내는 그의 솜씨는 이미 세계 3대 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영화제에서 인정 받아왔다.

-그런 그가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 참가를 위해 처음으로 부산을 찾았다. 영화제 측이 감독과 관객들의 자유로운 토론의 장으로 처음 마련한 마스터클래스는 예매시작부터 매진을 기록할 만큼 관심이 높았다. 12일 오후 1시에 열린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마스터클래스는 어제 허우 샤오시엔에 이은 두 번째 시간.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은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많은 한국 관객들이 객석을 가득 메운 가운데, 2시간 여 동안 심도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신은 문학과 법학 등을 공부했다. 굳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9살 때 마이클 커티스 감독의 영화 <더러운 얼굴의 천사(Angels with dirty face)>를 보고 놀란 이후로 영화가 내 삶 속에 들어왔다. 고교 졸업 후 영화학교에 들어갔는데, 특히 감독 일에 관심을 가졌었다. 당시 '영화가 날 필요로 하는가'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게 되었고, 난 영화를 선택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소규모의 영화 한 편을 찍었다."

-자신의 작품들에 대해 평을 하자면?

"그 질문에 대한 내 의견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 영화를 스스로 평가할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영화가 내겐 '여행'과 같다는 것이다. 단순한 작업이 아닌, 삶 그 자체다. 특히 시나리오나 사전 작업이 아닌, 촬영의 순간이 이런 기분을 더해준다. 난 촬영을 좋아한다."

-<안개 속의 풍경>은 흔히 희망에 대한 영화라 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희망이란 무엇인가?
"희망을 정의할 순 없다. 하지만 희망은 심오하고 깊은 감정이라 말하고 싶다. 예를 들어 안토니오니의 영화 <유랑>에서 인물들이 모두 자살을 택하자, 이를 본 관객들은 그 영화가 희망이 없음을 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안토니오니는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가 긍정적인 행위다"라고 말했다. 나 역시도 같은 생각이다. 나에게 희망은 영웅적인 절망이다."

-당신의 시선은 늘 발칸반도에 머무른다. 다른 곳을 이야기할 생각은 없는가?
"일본에 갔을 때 한 박물관에 들른 적이 있다. 인간의 비극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많았다. 한참 둘러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울며 내게 달려들었다. 일본에 사는 한국인이라 소개한 그는, 내 영화 <유랑극단>을 보며 자신의, 자기 민족의 이야기 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내 생각엔 인간의 정신나간 행동을 발칸 지역을 배경으로 해서 보여줘도 한국을 이야기 할 수 있다고 본다. 영화처럼 국제적인 것이 없다. 국수주의가 모든 이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당신의 영화는 화가들의 그림을 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할 정도로 회화적이다. 좋아하는 화가가 있다면? 
"난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될 수 없었기에 대신 영화 만드는 일을 한다. 실제 모든 회화의 역사는 내 영화와 연관이 있다. 꼬집어 특정 화가를 말할 순 없지만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 피카소를, 달리의 그림을 보면 달리를 흡수한다. 잘 되든, 안 되든 회화 속의 색이나 이미지를 소화해서 영화에 반영하고자 하는 편이다.

-영화에서 당신은 클로즈업을 거의 안 쓴다. 왜 그런가?
"내 작품들은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시테라섬으로의 여행> 이전엔 정치와 역사를 담아내는 데 몰두했고, 그 이후엔 역사는 배경에 두고 전면에 개인과 인간의 운명을 담아냈다. <유랑극단>이나 <알렉산더 대왕> 같은 영화들은 브레히트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들이다. <시테라섬으로의 여행> 이후엔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의 정의와 브레히트의 연극의 정의를 함께 사용한다. 브레히트의 연극의 정의 가운데 '거리감'은 베르히만과 고다르에게도 영향을 끼쳤고, 내게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영화가 세상을 변화시킬 거라 생각하나?
"내 영화 중 하나인 <비키퍼>는 혁명으로 죽었으나 그래도 계속된다는 얘기를 담고 있다. 많은 이가 TV만 보며 정치와 역사적인 문제들엔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 우린 꿈을 갖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해야만 한다."

-당신 영화의 배우들은 연기가 훌륭하다. 특별히 지도하는 바가 있다면?
"배우들은 각자가 모두 다르다. 그런 만큼 '소통'이 중요하다. 이 때의 소통이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대화를 통해, 서로의 마음의 교환을 통해 가능해야 한다. 단순한 방법이지만 스킨십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율리시즈의 시선>을 보면 생각한다. 도대체 당신에게 시선의 해방과 구속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율리시즈의 시선>에서 조셉슨은 시네마떼끄 관장으로 등장한다. 그는 자신을 '없어져 버린 시선을 수집하는 사람'으로 표현한다. 이를 통해 나는 시선에 대해, '과연 나는 아직도 진실을 보고 있는가'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처음 내가 카메라 화면을 보았을 때,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발견했듯 계속 그러고 싶단 소망이 있다. 그 소망을 담고 싶었다."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은 마스터 클래스 시작과 끝에 플라톤의 말을 인용했다. "자신을 알려면 타인에게 자신을 비추어야 한다." 그는 관객없는 영화는 그저 필름이란 물질일 뿐이라며 감독의 시선이 타인의 시선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앙겔로풀로스 감독은 마지막에 자신이 준비한 시를 읽어주며 그에 대한 관객들의 사랑에 답례했다...

06. 0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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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er 2006-04-23 0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드립니다.
짐 호버만의 글은 제 친구가 번역하고 있는데요,
이 글을 보고 반가와서 링크해줬더니 잘 읽었다고 전해달라는군요.
말씀하신 대로 '보이지 않는 위협'은 '보이지 않는 위험'의 오타였다고 하네요. ^^
한편 호버만은 브루노 간츠를 제외한 전체 캐스트가 빈약했다고 지적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하는군요.
덩달아 저도 잘 읽었습니다. ^^

로쟈 2006-04-23 0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친구를 두셨네요.^^ 이미 읽으셨던 글일 텐데 잘 읽으셨다니 머쓱합니다...

푸른별 2006-04-23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보고 내가 느낀 난감함이 아주 명확하게 설명이 되는군요. 글 잘 읽었습니다.
 

며칠전 세상을 떠난 고 신상옥 감독에 관한 추모의 글들을 읽어보다가 몇년 전 <필름2.0>의 특집기사(2003. 05. 07)를 찾게 됐다. 김영진 편집위원의 글인데, '20세기 최고의 영화감독 7인'이 타이틀이다(오해가 있을까봐 페이퍼의 제목에는 '한국'을 더 집어넣었다). 아마도 설문조사에 토대하여 작성된 듯한데, 이 참에 잠시 한국영화 '거장들'의 면면을 확인/기억해 두도록 한다. 기사에서 거명되고 있는 그 7인의 감독은 임권택, 김기영, 유현목, 홍상수, 신상옥, 이창동, 이만희이다(이창동과 이만희는 공동 6위이다). 기사에 포함돼 있는 '응답자 코멘트'는 생략한다(대신에 간간이 '나의 코멘트'는 덧붙이겠다).  

 

 

 

 

-여기 모인 7인의 감독들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얼굴들이다. 타고난 재능과 노력, 남다른 작가 의식으로 역사에 기록될 이들에게 작가의 만신전을 바친다.

1위 임권택 뒤통수의 미학을 보여주는 감독

-임권택은 1980년대 후반 어느 인터뷰에서 "뒤통수를 찍어도 그 인물의 마음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 내 영화의 목표“라고 말했다. 임권택의 영화는 무심하게 보면 흘려 지나치기 쉬운, 그 무수한 뒤통수들로 채워져 있다. 그는 겉으로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형식 속에서 인물의 감정과 세상의 공간적 기운을 꾹꾹 눌러 담는 자기만의 세계로 오랜 충무로 경력 끝에 도달한 미학을 펼쳐보이고 있다. 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데뷔한 후 <춘향뎐> <취화선>의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임권택의 행보는 한 예술가의 고통스러운 성숙의 행로이기도 하면서 충무로라는 전통적인 한국 영화 산업이 배출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미학을 가늠할 수 있는 자취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1960년대 내내 오로지 먹고살기 위하여 영화를 찍었던 임권택은 흥미로운, 그러나 기억되지는 않는 숱한 오락 영화를 연출했으며 본인의 말에 따르면 1973년 작 <잡초>를 계기로 영화를 통해 자신과 세계에 대해 발언할 방법을 진지하게 모색하기 시작했다. <깃발 없는 기수> <족보> 등의 영화로 1970년대 후반 주목받지 못한 채 성큼 진전된 영화 세계에 이른 그는 <짝코> <만다라> 등의 영화를 통해 1980년대 이후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떠올랐다.

-<족보> <짝코> <만다라> 등은 물론이고 <티켓> <길소뜸> <서편제>, 최근작인 <취화선>에 이르기까지 임권택은 저마다의 도덕적, 인간적 결함을 안고 방황하며, 더러는 돌아오지 못하는 세계 속에서 거처할 곳을 찾는 등장인물을 그렸다. 임권택의 영화에서는 당연히 길의 이미지가 떠나지 않는다. 빨치산 토벌 대장 송기열과 빨치산인 백공산의 일생에 걸친 추적과 도피의 삶을 다룬 <짝코>는 물론이고 <만다라>에서의 두 승려의 구도의 길, <길소뜸>에서 동진과 화영이 서로 화해하지 못하는 길, <개벽>에서 해월 최시형이 끊임없이 걷는 길은 모두 인간과 자연을 이어주는 가느다란 선이었다. 임권택 영화 가운데 최고 흥행을 거둔 <서편제>에서도 길은 소리와 함께 주인공의 마음을 전해주는 풍경의 주제를 품고 있다.

 

 

 

 

-2002년 칸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취화선>에서 임권택은 적은 편집과 간결한 화면으로 생략과 압축을 취하는 특유의 스타일을 더 밀고나가면서 <춘향뎐>에서 시도했던 완벽한 형식주의의 세계를 한 예술가의 전기라는 이야기의 세계와 조화시켰다. 그는 여전히 감정의 노출을 절제하는 생략의 싸움을 벌인다. 장승업의 일대기로 이야기의 구심력을 삼으며, 장승업이 그리는 그림과 그가 그림에 채워 넣고자 했던 자연 산수의 풍경을 겹쳐놓은 채 이야기의 원심력을 매듭 짓는 <취화선>은 임권택의 통 큰 미학의 정체를 증명하고 있다. 역사적 상처에 대한 강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지만 임권택은 플롯에 의존하지 않는 모자이크적인 에피소드 구성의 생략을 통해, 화면과 화면의 연결 사이에 큰 관념을 넣을 줄 아는 이 시대의 어른 감독이다. 그가 성취한 것과 성취하지 못한 것은 상당 부분 한국영화의 현재와 통하는 것이기도 하다.(*그래서 임권택은 영화의 거장이라기보다는 '한국 영화', '한국적 영화'의 거장이라고 해야 할 듯.) 

2위 김기영 '영화 작가’에 가장 잘 어울리는 감독

-“인간의 몸을 자르면 검은 피가 나온다”고 생전의 김기영 감독은 말했다. 김기영은 능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감독이다. 하길종 감독은 1970년대에 이미 “김기영은 누구보다 영화를 잘 아는 사람이고 ‘영화 작가’란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감독이다”라고 그를 평했다. 세월의 흐름을 이겨낸 김기영의 황당무계한 발상과 독창성은 지금 봐도 무시무시하다. 1960년에 처음 발표한 뒤 그 뒤 여러 차례 리메이크해서 김기영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된 <하녀> 시리즈는 가정부나 술집 여자가 중산층의 가정에 들어와 그 가정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얘기다. 성적 억압에 시달리는 인간들의 심리를 독특한 화면 색감과 공간 연출을 통해 파헤치며 농촌 출신 여자가 도시 가정을 무너뜨리는 이야기 구조에 은근히 근대화 과정에 있었던 한국 사회에 대한 계급적 통찰까지 새겨놓았다.

 

 

 

 

-그러나 김기영이 처음부터 사이코 스릴러영화를 만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초설>(1958), <10대의 반항>(1959) 등의 영화는 사실주의적 경향이 배어 있다. 그러나 어떤 영화를 만들어도 김기영 특유의 염세적인 비틀린 유머나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독특하게 풍기는 취향이 튀어 나온다. 심지어 김기영의 두번째 장편 극영화인 <양산도>(1955)에는 여주인공이 무덤에 있는 연인과 성교를 하고 함께 하늘로 오르는 장면이 나온다. 1970년대의 김기영은 주로 문학 작품이 원작인 영화를 만들었으며 이광수와 이청준의 소설을 각각 영화로 만든 <흙>과 <이어도>는 원작의 분위기와는 저만큼 떨어져 있지만 영화적으로 훌륭하게 재구성된 이 시기의 걸작이다. 또한 이 시기에 김기영은 저예산 날림 영화지만 종잡을 수 없는 스타일을 지닌 <살인 나비를 쫓는 여자> 등의 영화로 훗날 일부 영화광에게 컬트 감독으로 대접받기도 했다.

-하길종은 그런 김기영의 작품 세계를 정확하게 파악했다. “김기영의 영화는 인습적인 줄거리 틀이 없고 인간의 의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상황만이 있다. 그는 다분히 실험적이고 편집광적인 태도로 인간의 의식 구조에 집착한다. 김기영은 항상 한국 사회의 한 측면을 과장된 수법으로 그렸지만 이야기가 황당무계하냐 아니냐는 것은 따질 필요가 없다. 이야기가 황당하다면 당대의 한국 사회를 황당무계하게 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는 '영화작가'이면서 '감독들이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 아닌가 싶다.) 

3위 유현목 '예술'을 하려 한 감독, 실제로 그렇게 한 감독

-한국의 대표적인 영화사가 이영일은 유현목의 <오발탄>에 대해 “이것은 한국 리얼리즘영화의 전형이다”라고 단언했다. <오발탄>은 오랫동안, 그리고 지금까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얼굴이었다. 한국영화가 아직 산업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온전한 얼굴을 갖추기 전에 만들어진 <오발탄>은 지식인의 실존적 자의식과 몽타주와 화면 구성이라는 영화 미학의 양대 통사를 가장 체계적으로 구사한 걸작으로 칭송받았다.

-그때 이후로 유현목에게는 늘 ‘예술파 감독’이란 별명이 따라붙었다. <공처가 3대> <수학여행> <한> 등의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기는 했지만 유현목 영화의 본령은 역시 비판적인 현실 안목, 전후 불행한 삶의 조건을 내려받은 한국 사회에 대한 도저한 구원 의식, 영화의 미학적 표현에 예민한 손끝을 드러내는 일련의 진지한 작품에 있었다.

 

 

 

 

-<김약국집 딸들> <막차로 온 손님들> <문>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사람의 아들> 등 유현목의 주요 작품을 일별하다 보면, 우리는 그가 흔히 말하는 리얼리즘 스타일의 감독이라기보다는, 곧 현실을 응시하는 감독이라기보다는 현실을 어떻게 형식에 반영할 것인가를 고민했던 모더니즘 취향의 재능이 더 강한 감독임을 깨닫고 놀라게 된다. 동시대의 다른 한국영화 감독들이 그랬던 것처럼, 유현목도 영화사에서 주문받은 작품을 만드는 자의 운명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유현목은 당대의 어떤 감독보다 인간의 실존적인 조건에 고민하고 그에 따르는 가난, 분단, 종교, 근대화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가장 날카로운 카메라의 눈을 들이댄 예민한 예술적 자아의 소유자였다. <오발탄>은 그런 유현목의 예술적 자아가 가장 의기충전했을 때 세상에 나온 작품이며 한국적인 사실주의의 범례로 남는, 동시에 사실주의를 넘어서는 예술적 자아의 증거물로 역사에 제출된, 유현목 영화 세계의 기념비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다른 영화들을 별로 보지 못하기도 했지만, 그의 <오발탄>은 영화사의 과녁에 명중한 영화로 남을 것이다.) 

4위 홍상수 내게 거울을 비춰줘

-홍상수의 등장과 함께 한국영화는 ‘일상’이란 비평 어휘를 얻었다.(*그 일상은, 그러나 매우 '충격적인' 일상이었다. <돼지가 우물의 빠진 날>은 장준환의 <지구를 지켜라>와 함께 쉽게 넘보지 못할, 전설적인 데뷔작으로 남을 것이다.) 대다수 극영화에서 간과하고 무시했던 일상의 극적이지 않은 사건들이 홍상수의 영화에선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듯 차곡차곡 모아진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 개봉했을 때 사람들은 서울에 이토록 누추하고 비루한 일상이 펼쳐진다는 것에 새삼스레 놀랐고, 그 심심해보이는 공간 속에서 그렇게 격정이 은밀하게 휘몰아친다는 것에 또 놀랐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 이어 홍상수는 연애 삼부작이라 할 수 있는 <강원도의 힘> <오! 수정>을 연달아 내놓았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 여러 남녀가 엇갈리며 교차하는 사랑 이야기를 짜맞췄다면 <강원도의 힘>은 같은 시간에 강원도를 따로 여행하는 불륜 관계의 남녀 이야기를 각자의 시점에 따라 1,2부로 나눠 찍은 것이고 <오! 수정>은 남녀의 기억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펼쳐지는 연애담을 펼쳐놓는다.

 

 

 

 

-홍상수는 인간의 의식과 행동의 표면을 꼼꼼하게 관찰하기 위해 영화 형식을 열어놓는 스타일에 능한 감독이며 조금씩 자기 스타일의 영역을 확장했다. <생활의 발견>은 한 남자가 두 여자를 여행중에 만나 진귀한 에피소드를 펼쳐놓는 또 한 편의 연애담이다. 홍상수는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영화를 찍지 않는다. 그는 대부분의 대사와 행위를 현장에서 즉석에서 만들고 살아 움직이는 생물처럼 영화의 전개를 관찰한다. 그것이 그의 영화의 톤을 멜로드라마의 정형화된 과장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슬픔과 웃음과 치욕과 기쁨을 오락가락하는 기묘한 초상화로 꾸민다. 그는 자신의 영화에 대해 "거울을 보듯이 우리 삶을 보는 것이다. 매일 거울로 나를 바라보듯이" 라고 말했다. 그가 영화로 비춘 거울은 앞으로도 볼 만할 것이다.(*그의 <해변의 여인>을 빨리 보고 싶다.) 

5위 신상옥 1960년대 한국영화의 뿌리

-신상옥은 한 명의 영화감독일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1960년대의 한국 영화 시스템을 대변하는 존재였다. 과장하자면 1960년대의 한국영화는 신상옥이 관여하는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로 대별된다고 말할 수도 있다.(*신상옥 감독을 감독이라고만 부르는 건 왠지 부족해 보인다. 그는 '한국영화 시스템' 자체였기에.) 신상옥이 설립한 신필름은 오늘날의 방송국 규모에 견줄 만한 규모와 인력으로 전근대적인 한국 영화 산업 시스템에서 최초로 메이저 스튜디오를 지향한 굉장한 한국 영화 제작의 본거지였다. 신필름을 무대로 신상옥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쌀> <상록수> 등의 예술적인 기품이 묻어나는 영화와 <빨간마후라>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 등의 대작 전쟁 영화와 사극을 고루 찍었다. 신상옥의 작품 세계는 하나의 말로 요약될 수 없는, 대제작자의 욕망과 영화 작가의 욕망이 늘 충돌하는 다양한 색깔을 지닌 것이었지만 그것은 곧 그의 영화가 대다수 한국영화의 장르에 걸쳐 있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신상옥 본인의 표현을 빌면, “한국영화에선 처음으로 화면 사이즈 연출 감각이 드러나는 영화”였으며 <성춘향>은 컬러 현상으로, <빨간마후라>는 특수 효과로 한국 영화 기술사에 남는 영화기도 하다. 신상옥은 평생의 반려자인 최은희를 비롯해 수많은 감독과 배우를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배출했고 잘 알려진 대로 1980년대에는 피랍된 북한에서도 자신의 연출 경력을 이어나갔다. 오늘날 신상옥의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은 거대한 한국 영화 역사의 중간 뿌리를 묶음째로 들여다보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의 영화에선 전근대적인 삶의 자취를 응시하면서도 영화 형식의 현대적인 발언을 대중적인 통로로 쏟아내려 한 맹렬한 야심을 읽을 수 있다.

6위 이창동 영화감독은 지금 출장중

-이창동의 영화 세계는 한국 영화 역사의 오랜 화두였던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이 맨 얼굴로 서로 부딪치는 격전장이다. 이창동 본인은 리얼리즘적 태도를 대중적 화술과 조화시키려는 것이 자신의 영화 세계라고 말하지만 <박하사탕>과 <오아시스> 등의 그의 영화에서 현실을 재현해 보여주려는 그의 태도는 관객의 반응을 섬세하게 고려해 '과연 영화를 보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를 집요하게 묻는 단계에까지 이르고 있다. 이창동은 잘 알려진대로 소설가 출신이며 그의 모든 영화는 상징적 의미가 정연한 논리 체계로 완벽하게 짜여진 폐쇄적 소우주다. 그의 영화에서의 공간과 사물은 어느 것도 무심히 존재하는 법이 없다. 이미 의미론적으로 꽉 채워진 세계에 주인공은 던져져 있으며 그 세계에서 이창동은 삶의 구체적인 꼴을 그리는 자기만의 내기를 건다.(*<박하사탕>을 통해서 이창동은 많은 이들의 시대에 대한 채무를 대신 갚아주었다. 그 점에 대해서 나는 늘 그에게 감사한다. 약간의 채무감을 느끼면서.) 

 

 

 

 

-일산과 영등포를 통해 현재와 과거의 한국 사회에서 잃어버렸고 잃어가고 있는 가치를 담아내려 한 데뷔작 <초록물고기> 이후 <박하사탕>을 통해 이창동은 본격적으로 현실과 영화 형식에 대한 자의식을 드러낸다. <박하사탕>의 주인공 영호는 광주에 계엄군으로 투입되고 독재 정권 시절의 대공분실에서 일하며, 가구점을 운영하는 천민 자본가로 증권에 투자했다가 신세를 망치는, 한국 현대사의 이런저런 현장에 늘 가까이 있던 인물이다. 그는 그 대가로 인간성의 파멸이라는 천형을 받는다. 그를 구원하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영화의 플롯이다. 역순 구조의 플롯을 통해 이 인물은 역사적 인과 관계의 희생자라는 천형에서 가까스로 벗어난다.

-세번째 영화 <오아시스>에서 이창동은 꽉 짜인 의미론적 세계에 불행한 남녀의 사랑을 던져놓고 들고 찍기로 일관하는 느슨한 카메라로 이들의 사랑을 지켜보는 관객의 시선의 정체를 거꾸로 되묻고 있다. 잔인하지만 동시에 통렬한 이 방식을 통해 그는 영화감독으로서의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다. 그렇지만 그는 지금 잠깐 ‘출장중’이다.(*물론 그는 출장에서 돌아왔다. 그의 <밀양>은 언제 햇볕에 나오는지?) 

6위 이만희 시대를 잘못 만난 공인받은 천재

-이만희는 전설의 걸작, 그렇지만 현재 프린트가 남아 있지 않은 <만추>의 감독 바로 그 사람이다. 동세대의 감독들로부터 가장 인정받는 천재가 이만희였으며 자기 삶을 거의 방치하듯이 마구잡이로 영화를 찍었는데도 늘 수일한 영화의 완성도를 일궈냈던 불가사의한 재능의 소유자도 바로 그 사람이다. 이만희는 출세작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이래 어떤 소재의 영화를 만들어도 탁월한 시각미를 지닌, 동시에 긴장감을 주는 이야기를 짜내는 재능으로 부러움을 샀다. 그는 도회적인 우수와 고독을 그리는 데 특히 뛰어났으며 도시 공간을 그리는 데 능했던, 체질적으로 현대적인 감수성을 지닌 감독이었다.(*이만희는 김기영에 이어서 최근에 가장 주목받고 있는 거장이다.) 

 

 

 

 

-한국 영화감독들 가운데 드물게 추리영화를 만드는데도 뛰어났던 이만희는 당시의 억압적인 정치 현실에 좌절해 늘 술에 절어 살았으며 제작자가 의뢰한 숱한 영화를 마구잡이로 찍었지만 자기 색깔을 놓치진 않았다. 심지어 반공 전쟁 영화 <들국화는 피었는데>(1974) 등의 영화도 이만희가 메가폰을 잡자 상투적인 전쟁 무용담을 벗어나는, 체제와 인간의 대결 의식이라는 주제 의식이 돌출되는 박력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만희는 아쉽게도 너무 빨리 세상을 등졌다.

-그의 유작인 <삼포가는 길>(1975)은 황석영의 동명 단편 소설을 각색해 영화로 만든 것이며 영화 속 세 주인공의 따라지 인생에는 당시 한국 사회에 맺힌 슬픔과 삶의 흥이 격정적으로 담겨 있다. 이 영화는 1970년대 한국의 스산한, 그렇지만 고향 같은 푸근함을 동시에 간직한 남도의 풍경을 아스라이 전해주는 이만희 최후의 유작이다.

06. 04. 18.

P.S. 사랑도 이젠 소용 없네. 삼포로 나는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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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8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4-18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마무리가 한발 늦었군요...

행복나침반 2006-04-18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임권택, 홍상수, 이창동의 영화는 별로.
물론, 영화사적인 측면에서 간과할 수 없는 인물임에는 동의하지만, 최고라기엔..;
지금의 2차 붐보다, 영화는 옛날이 훨씬 좋은 것 같아요.

로쟈 2006-04-18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제가 이명세나 박찬욱 감독의 (최근) 영화를 별로 생각하는 것과 비슷할 거 같군요. 취향이야 제각각이니까요...
 

우리말로는 좀 어색하지만, "Everybody, O.K.?"라고 하면 훨씬 간명하고 정감있는(?) 제목이다. 부활절 인사로도 어울리고. 언제나처럼 (가족을 위해) 불들려 부활절 예배를 보러 나가는 길에 혼자 10분 늦게 나가면서 잠시 본 케이블TV. 남선호 감독의 데뷔작 <모두들, 괜찮아요?>를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감독도 영화도 모두 생소했다. 영화주간지를 (꼼꼼히 읽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매주 챙겨보는 편인데, 이런 식으로 '건너뛴' 영화들이 나온다. <씨네21>에서 좀 크게 다루었던 듯한데, 요즘 본전 생각하다가 놓친 것 같기도 하다.

이번에 알게 된 거지만, 감독은 러시아 영화학교 졸업후 10년간 '입봉'을 준비해온 처지이며, 그의 데뷔작이 '자기 얘기'라는 건 충분히 이해할/동정할 만한 일이다(이런 건 남의 얘기 같지 않다). 원래는 '영화감독이 되는 법' 프로젝트였다나. 영화감독 '지망생'이라는 건 명분이고, 그것의 현실태는 무위도식하면서 아내를 등쳐먹는 '백수'이다. 거기에 치매끼가 있는 아버지와 돼바라진 아들, 이 세 남자를 부양하며 사는 주부 가장의 이야기라고 한다. 이런 설정만으로도 딱 '내 스타일'이다(옆사람은 '이상한 영화들'만 좋아한다고 하지만). 내가 지지하는 영화란 얘기이다.

해서, 작년에 나온 <나의 결혼원정기>에 이어서 2006년을 대표할 만한 코미디로 잠정 추천한다. 다 보지도 않은 영화이지만, 영화의 얼개만으로도 충분히 '뜻깊은' 영화라고 생각해서이다. 물론 나로서는 현재 이런 영화를 미리 개봉관에서 볼 수 있을 만큼 좋은 처지에 놓여 있지 않다는 점도 고려되어야겠지만. 대신에 내가 하는/할 수 있는 일은 이런 자리에서나마 좀 띄워주는 것이다. 먼저 이지영 기자의 가벼운 프리뷰.

무비위크(06. 03. 20) 10년째 감독 데뷔에만 매달리고 있는 상훈(김유석)은 마누라를 내조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에겐 치매에 걸린 장인어른(이순재)이 있고, 언제나 아빠 편인 아들내미도 있다. 시나리오를 쓰고, 가끔 번역도 하며 설거지까지 도맡아 하는 상훈의 소소한 일상. 특별히 나쁠 것도 없고 좋을 것도 없다. 한편 남편의 뒷바라지에 있는 대로 날카로워진 아내 민경(김호정)은 노는 남편과 걸핏하면 집을 나갔다 들어오는 친정아버지 때문에 심경이 괴롭다. 이렇게 오순도순 네 가족의 하루는 늘 비슷한 패턴으로 돌아가고 있다.

-먼저 이 영화의 남선호 감독은 그 프로필이 독특하다. 주인공 상훈(김유석)처럼 그 역시 비슷한 인생을 걸어왔다. 남선호 감독은 남들이 모두 알아주는 서울대씩이나(?) 나와서 러시아 국가 영화 위원회 로스키노 산하 영화 학교를 졸업했다. 어디 그뿐이랴. 본인 말로는 Q채널 다큐멘터리 제작 등 소일거리들을 해왔다지만 그의 이력서에 6개월 이상 다닌 정식 직장이란 없다. 극단에서 연출 활동도 했고, 여균동 감독의 장편영화(*<맨>)에 조감독으로 참여했다지만 88년에 졸업한 사람의 이력치고는 너무 허전하다. 그렇다면 그는 과연 어디서 무얼 하다 이제야 첫 작품을 가지고 나타나게 된 걸까. 그 과정과 이유가 궁금하다면, 그의 영화 <모두들, 괜찮아요?>를 보면 된다.

-애초에 ‘영화감독이 되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했던 시나리오는 주인공 상훈의 입을 통해 감독 지망생의 하루를 보여준다. 상훈은 마누라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궁색하게(?) 살고는 있지만 그다지 죄책감은 느끼지 않으며 때로는 당당하다. 맘씨도 좋지, 장인어른을 모시면서도 다른 남편들처럼 툴툴대지 않는다. 한때 잘나갔던 무용수였던 와이프는 이제 먹고 살기 바쁜 학원선생님이 되어 있다. 자, 이 모든 상황에서 집안 꼴은 어떻게 돌아가게 될까. 주인공 상훈과 그의 아내 민경(김호정)은 공과금 연체료 문제로 목에 핏대 세워가며 싸운다. 그리고 꽥꽥 소리 지르는 아내 앞에서 상훈은 이렇게 외친다. “그래, 나도 남들처럼 벌어다주면 될 것 아니야?!”

-감독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한 이 영화는 보는 내내 크고 작은 웃음을 자아낸다. 어쩜 이리도 우리네 사는 이야기와 꼭 같은지 실로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에피소드들이 줄을 잇는다. 특별한 사연이나 사건 없이 마무리되는 구성 역시 편안하기 그지없다. 억지로 커다란 자극을 삽입했었더라면 오히려 억지스러울 뻔했다. 남선호 감독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아, 저렇게 사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한 영화감독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감독이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설파했다.(*이런 류의 일장연설도 백수로서의 자질이자 조건이다.) 이 영화는 그런 감독의 의도에 충분히 화답한다. 적어도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찌푸린 인상보다는 화사한 미소를 띤 채 극장 문을 나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정한석 기자의 좀 진지한 리뷰. 그는 이 영화를 '서로 사랑하는 개털 인생에 대한 영화'라고 규정한다. 그러니까 영화 제목은 개털 인생들에 대한 안부 인사 정도 되겠다.

씨네21(06. 03. 21) 상훈(김유석)은 7년째 데뷔작을 기다리는 만년 영화감독 준비생이다. 하지만 그를 응원하는 어린 아들 병국(강산)의 웅변을 빌려 말하자면, 그도 엄연히 영화감독이다. “영화 한편도 안 만든 영화감독이 어디 있느냐”는 친구의 놀림에도 병국은 “수박장수가 하루 종일 수박 한개를 못 팔았다고 수박장수가 아니냐”고 응수하며 아버지를 변호한다. 한편 상훈에게는 아들 병국처럼 힘이 되는 응원 가족이 있는가 하면, 함께 사는 장인처럼 애먹이는 가족도 있다. 치매에 걸려 툭하면 가출하는 장인(이순재)은 시간 많은 상훈이 주로 돌보아야 하는 골치 아픈 보호대상이다. 장인은 젊은 시절 역마살 낀 삶을 살았고, 가무를 낙으로 여기며 살아온 소문난 한량이었고,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 서로 배다른 아들딸을 낳았지만, 지금은 치매로 그들을 구별조차 못하며 막내딸 민경(김호정)의 집에 얹혀산다.

-민경, 남편 상훈의 소개에 의하면 그녀는 촉망받는 무용가 지망생이었지만, 지금은 아귀같이 소리지르며 학원생들을 호통치는 억척이 무용학원 원장이다. 동시에 그녀는 아들 병국과 남편 상훈과 아버지의 생계까지 모두 떠맡고 있는, 지치고 상처받은 이 집안의 진짜 가장이다. 바로 이들이 <모두들, 괜찮아요?>의 가족 구성원이다. 이 가족에게 괜찮지 않은 일들이 조금씩 벌어진다. 착하기는 하지만 실없이 구는 상훈이 다른 여자에게 과도한 친절과 관심을 표하면서 아내 민경은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게다가 민경의 배다른 오빠가 아버지를 찾아오며 집안에는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그런 일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겠다고 몰래 녹음기를 켜두고 있던 상훈의 행동이 결국 부부싸움을 불러 별거에까지 이른다.

-<모두들, 괜찮아요?>의 애초 제목은 <영화감독이 되는 법>이었다. 제목이 바뀐 것인데, 내용을 이해하는 표지로는 적절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상훈은 말끝마다 영화감독이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실상 영화에는 상훈의 사회적 처지를 절실하게 상기시킬 만한 내용, 즉 영화감독이 되는 길이 얼마나 험난한 절차를 밟는 것인지에 대해 보여주는 일화가 거의 없다. 동료의 촬영장에서 잠깐이나마 현장의 공기를 맡는 그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여주는 것 정도다. 일화는 오로지 가족간 관계 내에, 그것도 언제나 화해 가능한 상태로만 잠재적으로 있을 뿐이다.

-그래서 가식으로 뒤덮인 사회의 일면을 비릿하게 풍자하거나, 그 반대로 아름다운 꿈을 잡기 위해 무작정 갈망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플란다스의 개>의 주인공처럼 교수가 되기 위해 돈을 갖다바치거나 억지로 폭탄주를 마셔야 하는 사회적 설움의 에피소드, <불후의 명작>처럼 로맨스로 현시된 사회적 인정의 판타지 등으로 나아가지 않는 영화다. 인물들이 고민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 이 집안, 이 가족의 문제다. 그러므로 <모두들, 괜찮아요?>는 영화감독이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한 이야기 혹은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데 되지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런 사람이 하나쯤 속해 있는 어느 서민층 가족 공동체의 이야기다.(*참고로 말하자면, 봉준호의 <플란다스의 개>는 '사회적 약자'인 시간강사 일반에 '백수'의 이미지를 들씌운, 사상이 의심스러운 영화이다!) 

-남선호 감독은 그 이야기를 하는 방법으로 자전적 경험에서 영화의 상당 부분을 뽑아냈다고 한다. 오랜 기간 장편 데뷔작을 만들기 위해 준비해온 상황 자체가 그 자신의 경험이고, 영화 속 가족 캐릭터의 구현도 자신의 가족을 돌아보며 가공한 것이다. 무엇보다 자전적인 솔직함에 기초하면서도 자기 연민으로 채워진 일기장이나 반성문이 되지 않은 것은 이 영화의 큰 장점이다. 게다가 역량있는 배우들과 그들이 맡은 흥미로운 인물들은 서로를 잘 찾아들어 그 장점을 더 살려준다. 대체로 3인의 배우들- 김유석, 김호정, 이순재- 은 각자의 초상을 잘 그려내는데, 그중에서도 민경 역을 맡은 김호정은 천성적으로 갖고 있는 여러 음색의 목소리를 잘 드러낸다. <플란다스의 개>에 비슷한 역할을 맡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하지만 각자의 초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연속으로 놓고 보아야 의미가 통하는 가족 초상에 관한 삼면화라고 이 영화를 이해할 때, 서로의 화폭이 묶여 뭔가 흥미로움을 발생시켰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아마도 그건 이상하게 이 영화에 강박적으로 배어 있는 소박함의 지향 때문에 생긴 결함이 아닌가 싶다. 소박해야 한다는 자기 규율의 느낌, 그건 저예산의 표현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되도록 영화를 거창하게 보이고 싶지 않다는 자의식이 작동한 결과로 보인다. 뭔가 수사와 장치들이 따라붙으면 안 된다고 결정한 셈이다. 하지만 소박한 인물들을 살게 하는 것과 영화 자체가 소박한 무엇이 되어버린다는 것은 전적으로 다른 의미다.

-물론 이 영화는 어딘지 모르게 ‘빈자들의, 하지만 서로 사랑하며 힘을 내는 빈자들의 영화’라 불릴 만한 구석이 있다. 이건 결국 같은 의미에서 서로 사랑하는 개털 인생에 대한 영화다. 답답한 마음에 점집을 찾아간 민경에게 무속인은 남편 상훈을 가리켜 ‘개털 인생’이라고 말하는데, 상훈만 개털인 건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그런 상훈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촉망받는 무용가의 꿈을 접고 힘들게 학원을 운영하는 민경도 개털이고, 세월의 힘에 밀려 자아를 잃고 육신만 남은 그녀의 아버지도 개털이다. 그리고 그걸 보는 관객도 상당수는 그들만큼 개털이고, 빈자다. 모두들 괜찮냐고 물어보는 건 그런 마음에서 나온 표현일 것이다. 삶의 암담함이 목까지 차올라 점쟁이라도 찾고 싶었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싸움과 화해를 반복하며 하루를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라면 이 가족의 초상을 감싸안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언제나 문제는 여기다. 그런 사람들은 세상에 너무 많다. 영화가 항상 영화적인 말걸기를 따로 시도해야 하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비영화적인 면에 의해 이해 가능한 영화가 된다는 것은 영화로서는 슬픈 일이 아닌가. 더구나 이 영화는 일반 모두를 겨냥해 보편적 감정이 전달되기를 희망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기 위해 더 풍부한 조음이 필요했거나, 더 집요한 천착이 필요했다는 생각이 남는다. 비유컨대 <모두들, 괜찮아요?>는 재즈처럼 편안하고 자유로운 무언가로 받아들여지길 스스로 희망한 것 같은데, 의아한 건 그 백미가 될 만한 즉흥연주를 들려주지 않는다는 점이다.(*그러니까 이 영화의 감동이 '비영화적인 면'에 의존하고 있다는 비판이 되겠다. 기자는 '개털' 감독에 대해서 너무 많은 걸 기대했던 게 아닐까? "감독이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설파하는 감독에게 말이다.)

06. 0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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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06-04-17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의 결혼원정기는 재미있게 보았는데 이것도 관심 두어 볼께요.

로쟈 2006-04-17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괜찮은 영화'일 거 같습니다...
 

 

 

 

 

우리에겐 타르코프스키와 소더버그에 의해 영화화된 <솔라리스>(1961)로 더 잘 알려진 원작자 스타니스와프 렘(1921-2006)이 지난달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번주 <필름2.0>을 읽다가 알게 된 사실이지만, <씨네21>의 기사를 옮겨오면, "SF영화 <솔라리스>의 작가 스타니스와프 렘이 지난 3월27일 사망했다. 그의 생명을 앗아간 것은 심장 순환계 문제였다. 그는 폴란드 남부도시 크라쿠프에 위치한 한 병원에서 병마와 치열히 싸웠지만, 84살라는 고령의 나이로 버텨내긴 힘들었던 것."

"스타니스와프 렘은 1974년 로봇이 지배하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 <사이버리에이드>를 발표하며 SF소설가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과 같은 세계적 작가가 된 것은 1984년과 2002년 두 차례나 영화로 만들어진 <솔라리스> 때문이다. 소설은 발표 당시 “상업문학 일변도의 미국 과학소설에 맞서 인류 문명의 오만을 풍자하는 철학적 작품”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1984년작은 러시아의 거장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2002년에는 스티븐 소더버그가 감독을 맡았다."(*기사 내용중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는 1972년작이다. 1984년작이라고 한 것은 부주의한 오류이다.)

사실은 이미 작고한 작가로 간주하고 있었기 때문에(망자에게 용서를!) 그의 부음은 잠시 낯설게 느껴졌다. 어쨌거나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이 참에 아직 챙겨두지 못한 그의 소설을 읽는 것도 올해의 과제로 남겨놓도록 한다(러시아에서는 문학전집이 아닌 철학/사상 전집에 렘의 책들이 들어가 있다). 더 많은 그의 책들이 소개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그의 홈피 등에서 필요한 자료와 이미지들을 옮겨온다. 위의 이미지들은 그의 자전적 회고록 <높은 성>의 영어판과 러시아어판 표지. 그리고 아래는 그의 간략한 전기이다. 뒷부분에는 영어로 돼 있어서 좀 불편하지만, <솔라리스>의 각 장에 대한 해설을 옮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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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bert Wiener begins his autobiography with the words "I was a child prodigy." What I would have to say is "I was a monster." Possibly that's a slight exaggeration, but as a young boy I certainly terrorized those around me. I would agree only if my father stood on the table and opened and closed an umbrella, or I might allow myself to be fed only under the table. I don't actually remember these things; they are beginnings that lie beyond the boundary of memory. If I was a child prodigy, it could only have been in the eyes of doting aunts. (...)

-In my fourth year I learned to write, but had nothing of great importance to communicate by that means. The first letter I wrote to my father, from Skole, having gone there with my mother, was a terse account of how all by myself I defecated in a country outhouse that had a board with a hole. What I left out of my report was that in addition I threw into that hole all the keys of our host, who also was a physician... 

(*)Stanislaw Lem was born in Lvov on September 12th 1921 to a family of a laryngologist. Since 1932 he attended the K. S. Szajnocha II State Grammar School in Lvov where he received a secondary school certificate in 1939. Between 1940 and 1941, after the occupation of Lvov by Soviet troops, Lem studied medicine at the Lvov Medical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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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got there in an indirect way, since I first took the entrance exam at the polytechnic, which I thought was more interesting. I passed the exam but as a representative of the "wrong social class" (my father was a wealthy laryngologist, i.e. bourgeois) I was not accepted... My father made use of his connections and with the help of professor Parnas, a famous biochemist, I started studying medicine - albeit half-heartedly.

(*)During the German occupation Lem worked as a mechanic helper and welder for a German firm that recycled raw materials. In 1944, when the Soviet army occupied the city for the second time, Lem resumed his medical studies. In 1946 Lvov was no longer on Polish soil and Lem as a "repatriate" moved to Krakow where he started studying medicine at the Jagiellonian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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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could have earned quite well as a welder... On the one hand it seemed tempting, since in Krakow we had to start from scratch. On the other, however, the thought that I would abort my studies was very upsetting for my father. For some time I could not make up my mind and I eventually opted for medical studies. 

(*) Between 1948 and 1950 Lem worked as a junior research assistant at the Konserwatorium Naukoznawcze (The Circle for the Science of Science) lead by doctor Mieczyslaw Choynowski.

-Every few weeks I had to take a night train and travel to Warsaw - I took the cheapest class since I was quite poor in those times - for endless discussions at the publishing house "Ksiazka i Wiedza". They tortured my Hospital of the Transfiguration, the number of critical reviews was continually growing and all of them proved the book's counterrevolutionary and decadent nature. I was told that this and that had to be redone... And since at the same time they gave me hope the book would eventually be published I kept on writing and revising... Because Hospital of the Transfiguration was considered improper from the "ideological point of view" I was obliged to write further episodes in order to achieve a "compositional balance"...

-In 1950 in the house of the Writers Union in Zakopane I met a certain fat gentleman and one day we went for a walk to the Czarny Staw. My companion was Jerzy Panski from the "Czytelnik" publishing house but I did not know it at that time. During our trip we talked about the absence of polish science fiction... Panski asked whether I was capable of writing such a book. I answered "yes" - not knowing who my companion was, thinking it was just an ordinary fat fellow who happened to be staying at the "Astoria", just as I was. After some time, to my great surprise, I received an author's agreement from "Czytelnik". Having no idea what the book will be about I filled in the blank space with the word "Astronauts"... and in a quite short time I wrote my first book that was soon published.

(*) In 1953 Lem married Barbara Lesniak, a medical doctor (radiolog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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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met her around 1950 and after two or three years of siege she accepted my proposal. We did not have our own apartment at that time; I had a tiny room with mould on the walls and my wife, about to finish her medical studies, lived with her sister at the Sarego Street - so I became a commuting husb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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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ose politically uninteresting times... we used to ski in Zakopane for one month. I also traveled to Zakopane in June because of hay fever, for which there were no medications in those times. I stayed at a house of the Writers Union and worked most of the time. During one of such marathons I wrote Solaris. The same method was employed in the case of some other books. Apart from that nothing interesting was going on; my wife worked as a radiologist and I was an ordinary member of the Writers Union... I still remember my first trips to the East German Republic, with the delegation of Polish writers, and later trips to Prague and the Soviet Union - where they adored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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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1973 in recognition of his achievements Stanislaw Lem was invited to join the Science Fiction Writers of America. However he was soon expelled from this organization because of critical remarks about low standards of American science fiction.

 

(*) In 1982, after the martial law in Poland, Stanislaw Lem left his homeland to study in Berlin as a scholar of the Wissenschaftskolleg. A year later he moved to Vienna. Living abroad Lem wrote his two last books that belong to the genre "fiction": Peace on Earth and Fiasco. The writer returned to Poland in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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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anislaw Lem is a member of the Polish Writers Association and the Polish Pen-Club. Since 1972 Lem is a member of the committee "Poland 2000" under the auspices of the Polish Academy of Sciences; in 1994 he also became a member of the PAU (Polska Akademia Umiejetnosci).  

 

Introduction

During the Soviet era, Polish writer Stanislaw Lem was the most celebrated SF author in the Communist world. Although he read Western SF when he was young, he soon found it shallow and turned for inspiration to the long tradition of Eastern European philosophical fantasy. Western readers not familiar with this tradition often misread his works, expecting more action-oriented, technophilic fiction. Solaris comes closer to being a traditional SF novel than most of his works, but its main thrust is still philosophical. There is a deep strain of irony which runs through this work, for all its occasionally grim moments.

The great Russian experimental director Andrei Tarkovsky made an important film based on the novel which is considerably more confusing that the book. (The pared-down 2002 version by Steven Soderbergh keeps amazingly close--for a Hollywood film--to Lem's original themes and ideas, but its emotional inertness (particularly on the part of George Clooney) prevents it from having the full effect intended. This is one case where reading the book before seeing the film may help you to experience the intended effect better. Perhaps Soderbergh remembered the anguish of Kelvin so clearly from his reading that he didn't realize the need to convey it more vividly to an audience that would not share the same memories.

Chapter 1: The Arrival

The novel begins as the narrator, a scientist named Kris Kelvin, is descending toward the surface of the mysterious planet Solaris. How many instances can you find in this chapter of failures to perceive, breakdowns in communication, etc.? This is to be the main theme of the book. Whereas conventional SF poses puzzles only to solve them, Solaris concentrates on the puzzling nature of reality and the limits of science. The ship that has brought Kelvin to Solaris is called the Promethus, a name associated with civilization and enlightenment in Greek mythology, but also with condemnation to terrible torment. As he enters the station suspended above the planet's surface, note the many instances of wear, disorder and confusion. In the original Polish, Snow's name is "Snaut." What do the many concrete details given suggest about the state of things in the station? Snow's strange initial reaction to Kelvin will be explained later. What features of this chapter are reminiscent of a mystery story?

Chapter 2: The Solarists

Keep in mind the scribbled word "Man!" as you read on. See if you can understand why someone would have written it. Why does Lem treat Kelvin's "premonition" as he does? Much of this novel is a well-informed satire on the process of scientific research and publication. What may seem to the novice like tedious passages of irrelevant exposition reminiscent of Jules Verne (what modern SF fans call "info-dumps"), are in fact often amusing parodies of academic scholarship--especially those which occur later in the novel. Whether or not you catch the humor in these passages, they are crucial for understanding the central themes of the novel. They provide a wide variety of interpretations which succeed only in revealing the minds of the interpreters, leaving Solaris as mysterious as ever. In this way they are strikingly reminiscent of the writings of another Eastern European master, Franz Kafka.

The ability of Solaris to control its own orbit anticipates some of the wilder fantasies built on the "Gaia hypothesis," according to which Earth has the ability to maintain conditions favorable to life. Solaris' ability to remodel the instruments created to study it resembles quantum physics' uncertainty principle: studying subatomic particles affects their behavior in ways that make it impossible to separate the observer from the observation. This theory underlies the whole novel, and embodies many of the most crucial problems facing modern science. "Ignoramus et ignorabimus" is a slogan of the ancient skeptics proclaiming the impossibility of certain knowledge: "We do not know and we will not [cannot] know." Skepticisms' approach to knowledge is being compared to that of quantum physics. What is the difference between these two theories: the "autistic ocean" and the "ocean-yogi?" What does the condition of Gibarian's room suggest? What plan of Gibarian's does Kelvin discover? In what way does the manuscript of this plan reflect the themes of the novel? Note how the ending of the chapter begins to resemble the mood of a ghost or horror story or monster movie. Watch how Lem begins to depart from traditional "monsters-from-outer-space" themes as the story unfolds.

Chapter 3: The Visitors

Even in 1961 the figure of the "giant Negress" would have been offensive to many Western readers; but keep in mind that Lem was writing in Poland, where there were very few black people. As it turns out, there are good reasons for her stereotypically cartoon-like appearance. How does Kelvin try to get more information about the X-ray experiments out of Snow? How did Gibarian die?

Chapter 4: Sartorius

"André Berton" is a pun on the name of the famous surrealist spokesman and leader André Breton, who delighted in breaking down logic by irrationally juxtaposing objects in an arbitrary fashion--an apostle of disorder and madness. ?artorius?is the name of a thigh muscle, not a common personal name in either Polish or English. Lem studied medicine, and was probably taken by the name when he encountered it in his anatomical studies. The identity and nature of Sartorius's child "visitor" are deliberately kept a secret. One can make guesses, but it would be a mistake to treat this as a conventional "mystery" to be "solved." How do we slowly come to realize that Sartorius' secrecy is motivated not so much by fear as by shame? What is significant about the "Negress's" feet? An old-fashioned technique of discovering whether one is dreaming or awake is pinching oneself. What more sophisticated method does Kelvin invent? What does this mean: "I was not mad. The last ray of hope was extinguished"?

Chapter 5: Rheya

The name rendered "Rheya" here is "Harey" in Polish, doubtless altered because it suggests the English masculine name "Harry." In what ways is Rheya like a traditional ghost? What does the hypodermic needle scar suggest, and how is it connected to what Kelvin "had said to her five days earlier"? Why does Kelvin prick himself with the spindle? How does Kelvin discover that this is not the original Rheya? Avenging ghosts deliberately set out to haunt those who have wronged them. In what way is Rheya different? Does this make her more or less terrible? How is the behavior of this Rheya different from that of the original? Why is it significant that she knows about "Pelvis"? What stops Kelvin from strangling Rheya? Why are there no fasteners on Rheya's dress? "Spanner" is British English for "wrench."

Chapter 6: "The Little Apocrypha"

Why is Snow now more willing to visit with Kelvin? The reference to the well-aimed ink bottle comes from a famous incident in which Protestant reformer Martin Luther was visited by the Devil in his study one day and threw an ink-bottle at the figure to frighten it away. Supposedly the stain of the ink remained visible on the wall. What does Snow mean by saying "We have two or three hours at our disposal"? Although scopolamine is famous as "truth serum" it is also a powerful sedative, and that is its use here. What is Snow's theory about the nature of the " visitors"? Snow's long speech on space exploration in the paragraph which begins "It's almost as if you're purposely refusing to understand" is one of the best-known and most often-quoted in the book. What are its main themes and how do they relate to traditional science fiction? "Succubi" is the plural of "succubus," a sort of evil spirit who haunts men by having sex with them. Why is Snow convinced that Solaris is not trying to destroy them? Why does Kelvin consider it important to point out to Snow that his burn wounds have not healed?

Note that this being the early sixties, a growth of beard is considered a sign of emotional collapse. Why does Snow say it might be worth while staying on Solaris although they cannot learn anything about the planet? To understand Berton's theory of how the ocean operates, one must understand something of Freud's theory of the unconscious (not to be confused with the "subconscious"). The unconscious consists of feelings and memories which have been suppressed from the conscious mind by "contrary feelings" mostly having to do with shame and guilt. Although they are not accessible directly, their presence is revealed in a distorted form in dreams and as a powerful distorting force which can cause involuntary mistakes in speech ("Freudian slips"), and neurotic obsessions and illnesses of various kinds. How do Solaris' activities seem to relate to the unconscious? Be careful not to use the common misspelling "unconscience."

Chapter 7: The Conference

What is different about Kelvin's second encounter with a "Rheya"? Why is he so horrified by the sight of the two dresses? What are the main superhuman qualities of "Rheya"? What can you infer from "Rheya's" eating patterns? What does Kelvin discover about the visitor's blood? The objections to Kelvin' s neutrino theory are perfectly sound. The whole passage is merely a pseudo-scientific way of expressing a mystery, though the basic concept is important to grasp. The ocean has somehow created objects with a structure that differs at the deepest level from ordinary atomic structure. An angstrom is one-hundred-millionth of a centimeter. A neutrino has almost no mass and hardly interacts with other matter at all. It therefore makes a good basis for an unsolvable mystery. It is not clear whether or not there is any conscious intention behind the creation of the "phi-creatures." Which possibility is more frightening, in your opinion?

Chapter 8: The Monsters

In what way is this speech of "Rheya's" ironic: "I'm such a coward"? What kind of book does "Rheya" choose to examine? In the long passage describing Giese's work we learn more about the "mimoids." Their name comes from "mimic" and the suffix "oid," which implies similarity. This sort of loving detail is a feature of Jules Verne's fiction, but here it serves a different function. Whereas Verne is seeking to educate (sometimes simply copying out long passages from reference books), Lem uses a Kafkaesque technique to bewilder the reader with a plethora of concrete detail which does little to unveil the mystery, only multiplying possibilities, though in brilliant language. An "erg" is the standard unit of energy, defined as the amount of work done by one dyne acting through a distance of one centimeter. A dyne is the unit of force which in one second can alter the velocity by one centimeter per second of a mass of one gram. Analyze the philosophical statement in the paragraph which begins "The human mind is only capable. . . ." What are its implications? How has Kelvin's attitude toward "Rheya" changed? What does "I'm divorced" mean? According to Freud, the rational and moral parts of our mind dwell in the conscious realm. It is their activity which keeps the unconscious suppressed. Therefore what is the point of beaming encoded versions of their conscious thoughts at the ocean via X-rays? What is the alternative plan, and how does it differ from this?

 

Chapter 9: The Liquid Oxygen

How is the arrival of the "new" Gibarian different from the other strange appearances which have occurred? What has happened to the tape recorder, and why is it important? What is different about the suicide in this chapter? What does "Rheya" learn from it? How have Kelvin's feelings changed? How have "Rheya's" feelings about herself changed? "First contact" with an alien species is a major theme in SF. What does Kelvin have to say on this subject?

Chapter 10: Conversation

Why does Kelvin shout "You're out of your mind!" when Snow suggests that he determine whether the phi-creatures can exist away from the planet's surface by examining the vehicle he earlier launched into orbit? According to the Greek historian Herodotus, when the Persian general Xerxes was frustrated in his attempt to invade Europe by a storm at the Hellespont which made it too rough to cross, he had the stream scourged by beating it with rods, cursing it. This has traditionally been used as an illustration of tyrannical egotism and irrationality. In the paragraph beginning "I'll give you an answer" Snow keenly analyzes Kelvin's motives. What are his main points? Why is Kelvin afraid to carry out the proposed experiment?

Chapter 11: The Thinkers

According to Kelvin, what did human beings have in mind when they first set out for other worlds? This chapter contains a long satirical passage in the Kafkaesque mode tracing the history of Solaristics, a passage also reminiscent of some of the stories of Jorge Luis Borges. The more scholarship you have read, the more amusing it will be. If you are not familiar with much of this sort of thing it may well seem pointless. Identify a few of the patterns that run through this history. The most important passage, one which underlies the philosophy of the entire novel, concerns the pamphlet by Grastrom. This is the other most famous passage in the novel. What are its main messages?

Chapter 12: The Dreams

Describe Kelvin's dream (the long one, told in the paragraph beginning "On the fifteenth day"). What do you think it means? When Snow calls Sartorius "Faust in reverse" he is thinking of the fact that one of Faust's first uses of the devil's powers after signing his famous contract was to make himself decades younger, greatly prolonging his life. "Agonia perpetua" is Latin for "eternal torment, referring to the punishment of the damned in Hell. Snow calls Rheya " Aphrodite, child of Ocean." Why? (Hint: look up Aphrodite in any encyclopedia or mythology handbook.) What do you think Kelvin is feeling in the last paragraph of this chapter?

Chapter 13: Victory

Why can't Rheya and Kelvin "live happily ever after?" How does Kelvin's last dream affect the emotional impact of the immediately following scene? Why does Kelvin want to destroy Solaris at first? What does this title of this chapter mean?

Chapter 14: The Old Mimoid

How has Kelvin been changed by his relationship with "Rheya?" Manicheanism was a religion founded by a third-century prophet named Mani, distantly related to Persian Zarathustrianism. Like the latter, it argued that the presence of evil in the universe could be explained by the existence of an evil god named Ahriman who was perpetually in conflict with a good God named Ahura-Mazda. The sort of imperfect god Kelvin describes had in fact been described by at least two writers before him: Nikos Kazantzakis presents such an image of God in many books, particularly The Saviors of God, and Olaf Stapledon in The Star-Maker; and Lem specifically acknowledges having read the latter.

What is the argument that Kelvin makes against the ability of human beings to create gods according to their individual desires? What do you think of this argument? What do you think Kelvin is trying to do as he plays with the waves? Why is it significant that he cannot actually touch the surface of the ocean? What does the growth of the flower in his hand suggest? "Finis vitae sed non amoris" means "life ends but not love." What does the last sentence of the novel mean?

06. 0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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