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엔 대개 한겨레를 사서 보기 때문에 한국일보를 지면에서 읽는 건 드문 편이다. 그래도 내일을 한 부 사서 읽어봐야겠다. '이대현의 영화로 보는 세상' 꼭지 때문이다. 최근 한중일 3국 합작으로 제작하고 안성기와 유덕화가 주연한 영화 <묵공>이 상영중인 걸로 안다. 관심을 갖던 차에 며칠전 한 사이트에서 영어자막으로 된 영화를 다운받아서 초반부만을 봤는데, 기사에서는 제목에도 들어가 있는 묵자/묵가의 사상에 대해서 유례없이 긴 분량으로 다루고 있다(설마 지면에 다 실리는 것일까?). 필자의 열기가 느껴지는 기사이다. 일독해 볼 만하다(묵독해야 하는 건가?).

한국일보(07. 01. 11) <묵공>이여, 당신의 꿈이 만든 집단자살극을 아는가

'묵자' 읽기에 빠진 적이 있었다. 3, 4년 전이니 공교롭게도 노무현정부가 들어선 것과 때를 같이한다. 물론 우연의 일치였다. 책을 정리하다 읽지 않고 두었던 <묵자>를 발견하고 펼쳐본 것이 계기였다. 첫 장부터 눈길을 사로 잡았다. 평등과 기득권타도, 분배를 외치며 집권한 노무현정부에 대한 기대와도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낙원'을 꿈꾸었던 묵자. 2,500년 전 그는 꿈은 정말 멋지고 원대했다. 차별 없는 하늘같은 나라. 내남없이 서로 사랑하는 겸애(兼愛)는 500년 후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한 예수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고, 계급차이 없이 가진 것을 골고루 나누고 아껴쓰는 절검(節儉)은 마르크스의 사회ㆍ경제 사상과 다르지 않았다.

중국 천하가 갈갈이 찢기어 언제 오늘의 형제가 적이 돼 쳐들어 올지 모르는 상황에, 죽고 죽이는 약육강식의 전쟁으로 피냄새가 마를 날이 없는 춘추전국시대에 홀연히 '반전'구호를 과감히 들고나온 좌파의 시조. 그는 스스로를'북방의 천한 사람'이라고 했다. 봉건제도와 계급사회에서 고통 받는 백성에 눈을 돌려 기존의 신분사회를 기반으로 한 철학인 유학 대신 '겸애'를 주장하며 '머리에서 발꿈치까지 털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자신이 이로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면 끝까지 행하는 사람'이었다. 낡고 검은 옷에 맨발로 천하를 돌며 이웃 사랑을 외친 운동가이자 묵가의 교주였다. 전쟁에 지치고, 가난에 신물이 난 백성들은 열광했다. 그들을 향해 그는 외쳤다.

“하늘은 우리 모두를 똑 같이 사랑한다. 그 은혜를 저버린 자는 어김없이 천벌을 받으리라. 하늘을 숭배하는 자, 하늘의 두려워하는 자, 하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자, 하늘의 이치를 본받는 자는 성(盛)하리라. 그의 혼은 하늘에 있으리라. 하늘을 비웃는 자,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 하늘을 배반하는 자는 멸(滅)하리라. 몸뚱이와 영혼이 함께 땅에서 썩어 흔적조차 사라지리라.”

“하늘은 가름(差別)하지 않는다. 세상 모든 곳, 모든 생명에게 비와 이슬을 내려주고, 빛과 바람을 맞게 한다. 이것이 하늘의 마음이다. 천하는 큰 나라 작은 나라 할 것 없이 '하늘'의 고을이다. 어리고 나이 많고 귀하고 천한 구별 없이 모두 '하늘'의 자식이다. 가는 터럭이라도 할지라도 하늘이 만들지 않은 게 없다. 그런데 어찌 하늘이 천하를 아울러 사랑하고 이롭게 하지 않겠는가.

“가름은 사람에게서 나왔다. 탐욕이 세상을 갈라놓고, 전쟁을 만들고, 빈부를 만들고, 계급을 만들었으며 귀함과 천함을 구분 지어 놓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바로 이 가름을 없애는 일이다. 가름을 없애기 위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 힘이 있으면 서로 도와주고, 바른 도(道)를 알고 있으면 서로 가르쳐주고, 재물이 있으면 서로 나눠주라.”

이 얼마나 멋진 주장인가. 인류가 꿈꾸는 지상낙원의 모델을 보는 듯했다. 정말 인류사에 감춰진, 불운하게도 덜 알려진 위대한 사상이 여기에 있었구나. 본격적으로 <묵자>를 만나보기로 작정했다. 묵자를 몇 번이고 다시 읽고, 묵자를 언급한 중국 고전들을 찾았다. 이런 위대한 사상가를 우리가 잘 모르고 있었다니. 노무현정부는 뭘 하나. 자신들의 통치철학이 될 수 있는 모델이 여기에 있는데…'

고전 읽기의 즐거움 중 하나는 그것을 현실과 끝없이 비교하는 일일 것이다. <묵자>도 그랬다. 기존 세력과 가치관(유학)에 대항하며 변혁을 꿈꾸는 묵자의 외침은 그 반역의 강도만큼이나 매력적이었다. 마치 노무현의 좌파정부가 처음 그랬듯이(*이 좌파정부에는 따옴표를 붙여야 하지 않을까?).

묵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를 외쳤다. “의로움이야말로 올바른 것이며 천하의 보배다. 의로움은 어리석고 천한 것에서 나오지 않는다. 반드시 귀하고 지혜로운 것에게서 나온다. 그럼 무엇이 귀하고 지혜로운가. 하늘이 귀하고 하늘이 지혜로울 다름이니, 의로움은 하늘에서 나오는 것이다. 만약 의로움을 행하기가 불가능하더라도 절대 그 길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목수가 나무를 깎다가 잘 되지 않는다고 먹줄을 버릴 수는 절대 없다. 이를 따르는 것이 '천의'(天義)다.”

묵가는 확신주의자들이었다. “칭찬 받으려 의를 행한다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가는 것이 진실로 올바른 도라면 미친놈 소리를 듣는다 한들 무슨 상관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은 입으로만 그러지 않고 몸소 실천했다. 목수 출신인 묵자 스스로 몸에 따라 옷을 입고, 배나 채우려 음식을 먹으며 떠돌아다니는 천한 사람들과 친하게 지냈다. 음악을 부정하고, 전쟁이 있는 곳이면 열흘이 걸리더라도 달려가 그 부당성을 호소했다.

김학주 교수는 그의 저서 <묵자, 그 생애·사상과 묵가>(명문당 펴냄)에서 그런 이들을 이렇게 규정했다. "지배자의 비위를 건드리고 시대조류를 어기며 낮은 서민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과격한 주장들을 내세우고, 또 자기 희생을 무릅쓰며 그러한 주장들을 실천하였다는 것은 종교적인 신념 없이는 모두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묵가는 묵자를 정점으로 받드는 조직적인 집단을 이루어, 그 집단의 주장과 조직을 위하여서는 자기 희생을 가벼이 여기며 일사분란하게 단결하였으니, 이것도 종교집단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믿어진다. 따라서 묵자는 단순한 사상가가 아니라 묵가라는 종교의 교주였고, 그의 사상은 종교적인 신앙을 바탕으로 한 것이며 묵가는 단순한 학파가 아니라 당시 사회를 개혁하려고 노력했던 종교집단이기도 했다.

이를 증명하는 사건이 묵가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어쩌면 인류 최초로 기록될 끔찍한 종교적 집단자살극이. BC381년의 일이다. 이날의 사건을 소설식으로 꾸며보면 이렇다. 맹승은 '검은 무리'의 우두머리를 일컫는 거자(巨子)다. 그는 친한 친구이자 스승이기도 한 초나라 양성군의 부탁으로 제자 183명과 함께 그의 성을 지키는 일을 맡기로 했다. 성에 도착하던 날, 양성군은 옥을 반으로 깨뜨려 하나를 맹승에게 주며 말했다. “우리 이걸 부신(符信)으로 삼아 나눠 차세. 믿음의 맹서일세. 어떤 일이 있을 땐 이 부신을 서로 합치고 기꺼이 서로를 따르기로 하세.”

맹승은 훗날 언젠가는 이 옥 조각이 자신과 제자들의 피를 요구할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어제의 충신이 오늘 역적이 되고, 아침에 초의 땅이 저녁에 진의 땅이 되는 배반과 전쟁의 혼란시대가 아닌가. 그러나 맹승은 이 위험천만하고 어리석은 맹서에 흔쾌히 동의했다. 그가 베풀어준 은혜를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맹승은 젊은 시절 양성군의 식객이었다. 양성군은 그를 따르는 제자들도 함께 거두어 주었다. 다른 식객이 주인을 도운답시고 빈둥대며 입만 나불거리는 것과 달리 맹승과 제자들은 잠시도 쉬지않고 집 안의 궂은 일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맹승을 양성군은 좋아했다. 기꺼이 대부로 대접했고, 친구가 돼 아침 저녁 겸상까지 하면서 대화를 나눴다. 그 때 맹승은 다짐했다.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든, 어떻게 보든 이 친구와의 신뢰는 지키리라.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키고자 하는 하늘의 의로움이란 이런 것이 아닌가.'

초나라 왕이 승하했다. 한달 전이었다. 초나라도, 양성군에게도 비극의 전조였다. 양성군은 서둘러 맹승에게 성을 맡기고 왕궁으로 갔다. 도읍인 영(?)으로 떠나는 양성군의 얼굴에는 비장한 빛이 감돌았다. 그 이유를, 그리고 그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는 이유를 맹승은 이제야 알았다. 왕의 장례가 있기도 전에 재상 오기가 죽었다. 천하의 별이 또 하나 떨어졌다. 그가 누구인가. 불과 6년 만에 덩치만 컸지 허약하기 그지없는 이 나라를 200년 전 장왕시대의 영광으로 되돌려놓지 않았는가. 구차하게 이웃 나라와 손잡지 않고 위와 한의 남하를 막고, 날로 세력을 뻗치는 진(秦)의 깊숙한 곳까지 공격, 천하를 다투던 인물이 아닌가.

적들은 그의 이름만 듣고도 몸을 떨었다. 잔인함과 출세욕과 뛰어난 용병술로 숱한 일화를 남기지 않았던가. 그는 노(魯)의 장수가 되기 위해 적인 제(齊) 출신 아내의 목을 서슴없이 베었다. 병사들과 똑 같은 옷을 입고, 밥을 먹었다. 행군할 때도 말이나 수레를 타지 않고 병사들과 함께 걸었으며 자기 식량을 직접 들고 다니는 등 기꺼이 병사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었다. 병사들은 그 모습에 감격했다. 오기는 알고 있었다. 승리는 무기도, 병사의 수도, 맛있는 음식에도 있지 않고 병사들의 사기에 있다는 것을.

장수에게 감격한 병사는 '목숨 아끼지 않은 전사'가 된다. 그것을 알고 있는 한 어머니는 종기가 난 아들의 고름을 그가 직접 빨아주었다는 소식에 통곡했다. 사람들이 연유를 물으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전에 남편이 종기가 났을 때, 그가 고름을 빨아주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그에 감격해 물불 안 가리고 싸워 결국 죽었습니다. 이제 내 아들까지 그렇게 될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왕의 신임도 두터울 수 밖에 없었다. 오기는 군사 뿐 아니라, 정치와 경제개혁의 칼도 휘둘렀다. 그의 전략은 간단했다. 그냥 있는 것 잘 정리해 두 배로 만들기였다. 재물만 탐하면서 불평불만 해대는 귀족과 관리들을 쓸어내 버렸다. 그리고 불필요한 관직을 없앴다. 예외는 없었다. 빈둥거리는 왕실의 친척의 봉록을 없애고 그것으로 군사를 길렀다. 군대는 풍족해졌고, 병사들의 사기는 더욱 높았다. 그런 병사들을 이끌고 오기는 남쪽의 백월(百越)을 평정하고, 북쪽의 진(陣), 채(蔡)를 정벌했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권력과 부정하게 얻은 재물을 뺏긴 왕족과 귀족들이 가만 있을 리 없었다. 나라의 부강보다 자신의 이익이 중요한 그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았다. 기회는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강력한 그의 후원자인 왕이 죽은 것이다. 왕의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그 거사에 양성군도 가담했다.

쫓기다 막다른 길에 몰린 오기는 왕의 시신 아래 숨었다. 그들은 오기를 향해 화살을 퍼부었다. 화살은 오기는 몸에 무수히 꽂혔고 그들은 오기의 사지를 수레에 묶어 찢어 죽였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화살이 왕의 시신에도 무수히 가서 막힌 것이었다. 아차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역시 오기는 지략은 그들보다 한 수 위였다. 죽어가면서도 원수를 갚을 방법을 찾은 것이었다. 멍청한 그들은 오기가 왜 도왕의 시신 아래로 숨었는지 자신들의 목이 날아갈 위험에 처하고서야 알았다. 덜 떨어진 태자 역시 아버지의 절대 신임을 받고 있던 오기가 아니꼽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불효자로 남기는 싫었다. 그래서 그는 숙왕(肅王)에 오르자마자 장수 영윤(令尹)을 불러 명령했다. "아버지의 시신에 화살을 쏜 자들을 모조리 잡아 죽여라. 그 일족까지 죽이고, 그들의 성을 거둬들여라."

그 일로 이미 70여 집안이 도륙됐다. 이제 마지막 양성군 차례다. 더구나 순순히 목을 내놓지 않고 도망가버렸으니 왕의 분노는 더욱 크리라. 왕의 명령은 정당하다. 그 정당함에 맞서는 것은 반역이다. 맹승은 고개를 돌려 제자들을 보았다. '저들은 몸이 가루가 되도록 싸우다 죽을 것이다. 그래도 왕의 군대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목숨을 위해 대신 지켜주기로 약속한 남의 성을 내줄 수도 없다. "내일이면 왕의 군대는 올 것이고, 우리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맹승은 바람을 피하려 고개를 잔뜩 숙인 채 누(樓)로 걸음을 옮겼다. 양상군의 만류를 뿌리치고 누구보다 앞장서 백성들과 함께 들판에서 일하느라 땀에 절어 여기저기 버캐가 핀 헐렁한, 정강이까지 올라온 검은 홑바지가 뼈만 남은 앙상한 다리를 깃대 삼아 사납게 펄럭였다. 금방이라도 바람에 날려갈 것이 불안해 보였다. 자루가 긴 창인 극(戟)을 지팡이 삼아 겨우 몸을 가누어 누에 오른 맹승은 바람에 꺾인 흰 수염을 손으로 한번 쓰다듬고는, 이마를 잔뜩 찌푸린 채 실눈으로 남쪽 벌판을 응시했다. 극의 끝에 달린 붉은 천이 그의 머리 위에서 펄럭였다. 왕의 군대 전령이 다녀간 지 반나절. 벌판에는 흙먼지만 자욱할 뿐이다.

흙바람에 30리 밖에 있는 왕의 군대도 전진을 멈추고 쉬고 있으리라. 이런 흙바람 속에서 굳이 군사를 몰아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 이것은 적과의 전쟁이 아니다. 난동에 가담한 한 신하의 목숨과 재산을 거둬들이는 일이다. 순순히 항복하고 성을 내 준다면, 굳이 칼에 피를 적실 이유가 없다. 모두 왕의 백성이고, 땅이기 때문이다. 전령은 그 시한을 오늘 해지기 전까지라고 했다.

“우리 뿐이로구나.” 짧게 한숨을 섞어 이렇게 중얼거린 맹승은 고개를 돌려 누 아래 먼지를 뒤집어쓴 채, 깃발처럼 펄럭이며 서있는 185명의 제자를 내려다 보았다. '검은 무리'의 상징이 돼버린 누더기 칡 베옷, 땡볕에 그을린 새까만 얼굴, 바지 아래로 드러난 앙상한 종아리, 너덜해진 짚신이 그들의 고된 노동과 절약으로 살아온 세월을 말해주고 있었다. 콩국과 냉수로 끼니를 채워 온 그들의 생활을 숨김없이 드러내 주고 있었다.

'옛날 우(禹) 임금처럼 소나기에 목욕하고, 거센 바람에 머리 빚으면서 장딴지의 살과 정강이의 털이 없어질 만큼 밤낮으로 고생하면서도 거둔 것은 나눠주며 살아왔다. 그게 우리의 법이지 않는가. 단 한번, 단 한명 그것을 어긴 적은 없었다. 죽음 앞이라고 달라지지 않는다. 저들은 어떤 길이라도 따를 것이다. 모두 불에 뛰어들고, 칼날을 밟으라면 밟을 것이다.'

'길은 하나 밖에 없다.' 맹승은 눈을 감았다. 눈앞의 모든 것이 사라졌다. 자신의 존재마저 사라지는 듯했다. 그는 빛보다 어둠이 늘 더 편안했다. 스승은 빛이야말로 하늘이 주시는 평등의 선물이라고 했지만 그는 어둠이야말로 '하나'이고 '평등'이라고 생각했다. 삼라만상이 어둠에 복종할 때, 세상에는 평화가 찾아오지 않았던가. 누구도 어둠을 거스를 수는 없다. 어둠 속에서 어지러운 세상은 사라진다. 어둠 속에서 꾸는 세상에 대한 꿈은 또 얼마나 좋은가. 꿈을 배반하는 건 늘 어둠을 증발시켜 버리는 환한 태양이다.

마른기침을 해도 먼지 먹은 목이 터지지 않아 맹승은 허리에 찬 물통을 열어 남아있는 물을 모두 마셨다. 먼지 먹은 얼굴들의 시선이 버려지는 물통을 따라 일제히 움직였다 다시 그의 얼굴로 모였다. 그들 역시 결단의 순간이 왔음을 직감적으로 느끼는 듯했다. '검은 무리'의 맹서를 읊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맹승은 옥 조각을 쥔 왼손을 높이 쳐들었다. 그것이 무슨 신호라도 되듯 조용해졌다. 바람을 가르며 맹승이 입을 열었다.

“제자들이여, 검은 무리여! 나는 이 성을 지켜달라는 부탁을 받고, 약속으로 이 부신까지 받았다. 그런데 지금 서로 합쳐 뜻을 따르기로 한 다른 한쪽 부신은 볼 수 없고, 힘으로는 왕의 군대를 막을 수 없다…” 맹승은 잠시 말을 끊었다. 바람을 피하기 위해 눈을 감고 고개를 모로 돌렸다. 검은 구름 뒤에서 해가 떨어지고 있는지 사위는 더욱 검었다. '검은 하늘, 검은 땅, 검은 사람… 잠시 후면 이 모든 것을 지울 더욱 짙은 어둠이 우리를 찾아 오겠지.' 제자들은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지킬 수 없다면, 스스로 죽을 수 밖에 없다.”

놀란 눈동자들이 일제히 맹승을 향했다. 낮은 신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바람소리에 귀가 웅웅댔다. 맹승은 그들의 눈길을 피해 자신의 키보다 1자는 족히 더 긴 극의 끝을 바라보았다. 맨 위에서부터 날이 자루와 직각으로 한 뼘 간격으로 짧게 뻗어 있었다. 아주 짧은 순간, 맹승은 '이 극은 남을 죽이기는 좋은 무기지만, 자살하기에는 자루가 너무 길다'고 생각했다.

침묵을 깬 건 수제자 서약(徐弱)이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죽음이 두려워서도 아닙니다. 죽어서 양성군에게 도움이 된다면 죽는 것이 옳지만, 우리의 죽음이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데, 단지 우리의 도(道)를 지키다 우리들만 세상에서 없어지게 되는 것은 안 될 일입니다.” 서약의 말에 용기를 얻은 듯, 뒤쪽에서 젊고 낯선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우리는 양성군의 일족도, 그의 군사도 아닙니다. 우리의 죽음을 양성군도 바라지 않을지 모릅니다…”

모두 놀라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을 보며 맹승은 이름을 생각해내려 애썼다. '뭐더라. 완(緩)이지 아마. 늘 얼굴에 깊은 그늘을 갖고 있는….' 그가 떠듬거렸다. 자신의 말에 스스로 자신이 없는지 목소리가 점점 오그라들었다. “…어쩌면 우리의 죽음이야말로 친구의 신의와 뜻을 저버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맹승이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결코 그렇지 않다. 나와 양성군의 관계는 스승도 되고 벗도 되며, 벗도 되고 신하도 된다. 죽지 않는다면 이제부터 엄한 스승을 구할 때 사람들은 반드시 '검은 무리'에게서 찾지 않을 것이며, 현명한 벗을 구함에 있어서도 '검은 무리'에게서 찾지 않을 것이며, 훌륭한 신하를 구함에 있어서도 그럴 것이다. 우리가 죽는 까닭은 우리의 의(義)를 행하고, 우리의 업(業)을 계승케 하려는 것이다. 거자는 송(宋)에 머물고 있는 전양(田襄)에게 물려 줄 것이다. 전양은 현명한 사람이니 어찌 '검은 무리'의 존재가 세상에서 끊어질까 걱정하겠는가?”

그들의 죽음을 알기라도 한 듯 지붕 위의 까마귀가 날개를 퍼덕이며 요란하게 울었다. 맹승은 기도하듯 눈을 감고 있는데 갑자기 고함소리가 들렸다. 놀란 맹승이 눈을 번쩍 떴다. “스승님의 뜻이 정 그러시다면 청하옵건대 제가 먼저 죽어 길을 열어드리겠습니다.” 역시 서약이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그의 짧은 칼이 그의 목을 뚫고 있었다. 외마디 소리와 함께 분수처럼 검붉은 피가 솟구쳤다. 뿜어져 나온 피가 장작 타는 듯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졌다. 동시에 쿵 하고 서약이 쓰러졌다. 그의 죽음이 신호라도 되듯 제자들이 일제히 '검은 무리'의 맹약을 암송했다.

“우리는 모두 하늘의 자식이다. 남이란 없다. 남을 내 부모형제처럼 섬긴다. 재물은 남을 위해 쓰며, 빈궁하게 산다. 우리에게는 나라도 왕도 규범도 없다. 오직 하늘의 의로움만을 따른다. 전쟁을 단호히 반대한다. 말한 것은 반드시 지키며, 지도자에 절대 복종하며 죽음도 기꺼이 바친다.”

맹승은 오른손에 잡은 과를 발 앞에 비스듬히 세워놓고는 힘차게 끌어 당겼다. 세번째 날이 그의 목을 찌르고 들어왔다. 귀에서 세찬 바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목에 뭔가 자꾸 걸렸다. 기침을 해보려 했지만 되질 않았다. 뭔가에 머리가 세차게 부딪쳤다. 눈에 하늘이 보였다. 어둠, 그것도 아주 진한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다. 사방에서 기침소리가 났다. 둘러보려 했지만 고개가 돌아가지 않았다. 아직도 누군가 맹약을 중얼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겨우 눈동자를 움직여 주변을 보았다. 검은 피가 메마른 땅 여기저기 흩어지고 있었다.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기 시작했다. 눈앞에 시꺼먼 물체가 달려드는 것 같았다. 저 놈의 까마귀. 맹승은 놈을 노려보기 위해 눈을 크게 뜬다고 떴지만 어두워 사위를 분간할 수 없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해가 질 무렵 왕의 군대가 도착했다. 대장 영윤은 검은 무리의 주검을 보고 경악했다. 어떻게 친구와의 약속 때문에, 스승의 한마디에 한 사람의 도망자 없이 모두 스스로 목에 칼을 찔러 넣을 수 있단 말인가. 신념과 집단을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가벼이 여기는 '검은 무리'라는 말은 들었지만 영윤은 이렇게까지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는 붓을 들어 보고서에 이렇게 썼다. '양성군의 성을 거두다. 광기의 무리 183명 모두 자살하다.'

 

 

 

 

정말 상상만해도 끔찍한 이 사건을 소설가 최인호는 <유림>(열림원)에서 '오늘날 맹신적 사교집단의 테러리즘'으로 규정하기까지 했다. 자신의 도를 지키기 위해 가장 소중한 생명을 스스로 버리는 모습에서 고귀함을 느끼기 보다는 광신의 섬뜩함이 느껴진다. 그 테러리즘이 타인을 향했을 때를 상상하면 더욱 그렇다. 광신이야말로 자신과 다른 상대에게 무자비할 수 있지 않은가. 애써 묵자 시대에서 찾지 않더라도 지금 우리사회가 그렇지 않은가. 그 사실을 발견하는 순간 <묵자>는 잠시 엄청난 환상을 심어주고, 현실만 더욱 어지럽히는 한낱 꿈처럼 보였다.

안성기가 왕의 군대의 대장 항엄중 역을 맡아 눈길을 끄는 홍콩 장지량 감독의 한ㆍ중ㆍ일 합작 영화 <묵공>(墨功)은 그러나 이 집단자살극을 싹 감추고 홀로 찾아온 묵자의 거자인 혁리(류더화)의 영웅적인 방어전쟁을 그리고 있다. 일본 만화가 원작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차마 광신도의 자살극으로는 차마 묵자의 '반전' '평화' '겸애'사상을 이야기 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묵자>에 나와있는 것처럼 방어라면 일가견이 있는 묵자의 전술을 보여주려면 자살항복으론 안되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영화는 액션 사극일 수 밖에 없고, 그 속에서 묵자의 사상을 논하기란 쉽지 않다. 영화는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성이 있어야 황궁도 있다. 저을 무찔러야 자유가 있다. 전쟁은 피하는 게 좋다. 전쟁에서 안 억울한 사람 있나. 비공(非攻)과 겸애만이 평화의 길. 전쟁에서는 산 자나 죽은 자나 불행하기는 마찬가지. 사람이 사람을 왜 죽여야 하지'란 대사를 간헐적으로 내뱉을 뿐이다.

그러나 용감히 전쟁을 치르면서 혁리가 한탄하는 이런 말조차도, 정반대로 싸우기를 포기하고 '도'를 지킨다며 집단 자살한 행동만큼이나 백성들에게 아무 것도 주지 못한다. 어쩌면 “모든 이를 사랑하라는 것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라는 양성의 왕이 한 말이야말로 묵자에게는 날카로운 비수일 것이다. 결국 성을 지키고, 백성을 지킨 사람은 혁리가 아닌 바로 그 왕이었다.

꿈은 꿈일 뿐이다. 결코 현실일 수 없다. 현실과 거리가 먼 꿈일수록 달콤하다. 사람들은 쉽게 그 꿈에 열광하고, 희망을 품는다. 꿈이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이며 꿈 꾸는 자가 행복한 이유다. 그래서 세상은 늘 꿈으로 가득하고, 그 꿈에 사람들은 취하고, 꿈에 취한 사람들의 더욱 고통스런 신음을 남긴다.(이대현 편집위원) 

07. 01. 12.

P.S. 오전에 한국일보를 사서 읽었지만 기사는 찾을 수 없었다. 짐작대로 지면기사는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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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sculp 2007-01-12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화 안보셨으면 한번 보세요. 재미있습니다. 만화에서는 권력관계가 더 드러나게 그린것으로 기억하는데요. 그리고 그당시 최첨단 공격과 방어 기술이 나오긴 하는데 만화인지 실제인지 구분은 안되더라고요.

로쟈 2007-01-12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주변에서 추천하는 만화는 많은데, 만화세대가 책을 싫어하는 것만큼이나 저는 만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hallonin 2007-01-12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묵공은 장예모의 영웅과 반대 지점에서 깃발을 세우고 있다고 한 씨네21의 김혜리 편집위원의 지적이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긴 글을 쓴 분에게는 체 게바라의 꿈과 현실에 대한 유명한 한마디가 적절한 대답이 될 수 있겠군요.

파란여우 2007-01-14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이 잼난 글을 왜 이제서야 읽게 된 걸까요.
읽다가 아주 잼나고 좋은 문장을 발견해서 퍼가요.

로쟈 2007-01-14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dafuck님/ 맞습니다...
파란여우님/ 그러게요.^^ 동양 고전이라면 저보다 여우님이 일가견이 있으실 텐데오...

Mephistopheles 2007-01-15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묵공"이라는 만화책은 요즘 구해보고 싶어도 구하기가 힘들더라구요..^^
 

잠깐 머리도 식힐 겸 신문기사들을 둘러보려는데 바로 눈에 띄는 기사가 있다. 이탈리아의 영화제작자 카를로 폰티(1912-2007)의 타계 기사이다. 그 유명한 배우 소피아 로렌(1934- )의 남편이었고 데이비드 린의 영화 <닥터 지바고>(1965)의 제작자였다(필모그라피를 보니 펠리니의 <길>도 그의 손을 거쳤다). 영화계의 '큰손'이었다고 할 만하다. 기사를 읽어보니 이 제작자-여배우 커플의 사랑이 '의외로' 파란만장한데, 사실 <닥터 지바고>에서 줄리 크리스티가 맡았던 라라 역으로 그가 점찍은 여배우도 원래는 아내인 소피아 로렌이었다고 한다. 나이가 많고 키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데이비드 린이 받아들이지 않았다지만.

한겨레(07. 01. 11) ‘소피아 로렌’의 남자라 행복했어요

영화배우 소피아 로렌(오른쪽)의 남편이자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영화 제작자인 카를로 폰티(94·왼쪽)가 9일 타계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1912년 밀라노에서 태어난 그는 1938년부터 50여년 동안 <닥터 지바고> <길>(La Strada) 등 모두 150편 이상의 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대중에게 이탈리아의 육체파 여배우인 소피아 로렌의 유일한 남편으로 더 선명히 각인되어 있다. 폰티는 1952년 당시 불과 17살이던 소피아 라자로를 미인대회 심사위원석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나폴리 빈민가 출신인 이 선이 굵은 미녀에게 한 표를 던졌음은 물론이다. 이후 자신이 제작한 다큐멘터리성 영화에 라자로를 기용했다. 그리고 성도 로렌으로 바꿔 불렀다.

하지만 20살 어린 로렌과의 사랑이 결실을 맺기까지는 험난했다. 그는 유부남이었고 당시 그의 고국은 이혼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로렌과의 사랑을 철저히 비밀로 한 뒤, 1957년 멕시코에서 양쪽 변호사만을 내세운 채 신랑·신부 없는 결혼식을 올렸다. 이 사실이 이탈리아 언론에 알려진 뒤 콘티는 중혼 혐의로 기소당했다. 로렌은 당시를 “나는 끝없는 지옥불과 파문의 위협에 처해 있었다. 사람들은 우리를 공공의 죄인들로 손가락질했다”고 회상했다. 로렌은 이 결혼식에 대해 “몇시간 동안 울었던 기억 밖에 없다”고 밝혔다.(*아래 사진은 1961년의 두 사람) 

두 사람은 결혼식 이후 타국을 떠돌았고, 결국 멕시코 결혼을 무효화한 뒤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런 ‘사랑의 곡절’은 프랑스 시민권 획득으로 결말을 맺었다. 조르주 퐁피두 당시 프랑스 대통령의 배려로 시민권을 받은 뒤, 1966년 파리에서 두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호사가들은 폰티의 여배우 편력과 로렌 주위를 맴돌았던 많은 남자들을 떠올리며 결혼이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예측은 어긋났다.

폰티는 로렌뿐 아니라 지나 롤로브리지다 등 걸출한 이탈리아 배우를 발굴하고 키웠다. 많은 여배우들과 염문을 뿌렸다. 하지만 그는 폐렴 합병증으로 9일 저녁 스위스 제네바의 한 병원에서 사망할 때까지 아내와 함께했다. 로렌이 그가 숨을 거두는 순간을 지켜봤다고 친지들은 전했다.(강성만 기자)

07. 01. 11.  

P.S. 사랑은 세월을 버티는 힘이지만 세월은 사랑을 지워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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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80 2007-01-11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녁밥 먹으면서 뉴스로 봤어요.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는 제 친구는 "외울 것 하나 늘었다"며 인상을 찌푸리더군요. 헐리우드 외부에서 공고한 힘을 보여준 몇 안되는 제작자였는데 여성 편력으로만 한 사람의 인생이 평가되는 것 같아 좀 착잡합니다.

로쟈 2007-01-12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사에 따르면 '편력'이랄 게 없는데요.^^ 기사의 타이틀도 "‘소피아 로렌’의 남자라 행복했어요"이니까요...

딸기 2007-01-12 0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낫
닥터지바고도 데이비드린 감독의 작품이군요 +.+
'인도로 가는길' 밖에 몰랐는데... 대단한 감독이군요!!!
(딴소리 하다 가서 죄송)

로쟈 2007-01-12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도로 가는 길'은 거의 마지막 작품이구요,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닥터 지바고' 같은 영화들이 그의 전성기 걸작들입니다...
 

북데일리에 실린 북리뷰 하나를 스크랩해놓는다. 일본의 저명한 비평가 하스미 시게히코의 <감독 오스지로>(한나래, 2001)에 관한 것이다. 진작부터 갖고 있던 책이지만 아직 읽지는 않았는데, 그건 내가 오즈의 영화들을 아직 보지 않은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영화를 즐겨 볼 무렵에는 쉽게 구하기 어려웠고, 요즘처럼 DVD타이틀이 거의 다 출시돼 있기 때문에 약간의 성의와 시간만 투자한다면 얼마든지 볼 수 있게 된 시점에서는 여유 시간이 잘 나지 않는다. 그래도 마침 지난주 용산 부근에 갔다가 <동경이야기>의 DVD를 구한 김에 이번 겨울이 가기 전에 몇 작품을 관람해볼 생각이다. 이 기사를 챙겨두는 건 그런 연유에서이다.  

북데일리(07. 01. 09) 위대한 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의 매력

일본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두 분류로 나뉜다. 오즈 야스지로를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말장난 같지만 특이하게도 오즈는 사후에 일본 영화계에서 절대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오즈 영화가 한국 디비디 시장에 범람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회자되고 신인 감독들 중 대다수가 오즈의 팬이라며 자처하고 나선다. 빔 벤더스나 허우샤오시엔, 압바스키아로스타미는 그에게 헌사 하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정성일 영화 평론가는 오즈를 거론할 때 “위대한”이란 형용사를 붙인다. 무엇이 그렇게 위대하고 대단한 것일까? 모두가 보는 영화이지만 하지만 누구도 정확하게 말하지 못했던 영화가 바로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동경 대학교 총장이자 영화 및 문학 비평가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는 정성일 영화 평론가가 자처하여 세르쥬 다네, 김현씨와 함께 스승으로 칭하는 하스미 시게히코는 구로사와 기요시, 슈오 마사유키, 아오야마 신지같은 동시대의 걸출한 감독들을 배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책 <감독 오즈 야시즈로>(한나래, 2001)는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들을 비평하는 책이다. 비평에 앞서 알아두어야 할 것은 좋은 영화평론의 귀결은 그 영화와 감독에 대한 연애편지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책 <감독 오즈 야시즈로>는 좋은 글쓰기의 표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며 더 나아가 오즈를 열렬히 예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오즈의 영화를 보았거나 혹은 오즈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거나 책의 매혹에 빠질 것이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오즈를 둘러싼 신화를 해체하면서 시작하고 그 해체를 부정에서 다시 긍정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한다. 첫 번째로 오즈를 예찬하는 언사들이 모두 부정적인 것으로 이루어졌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오즈의 영화에는 카메라가 움직이지 않는다, 낮은 위치의 카메라는 위치도 변하지 않는다. 이동 촬영이 거의 없다. 부감은 예외적 경우 외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이런 오즈 영화를 칭송하는 자들이 사용하는 언어들이 사실은 거의 다 부정적인 언사로 이루어져있거나 결여를 지칭하는 언사로 지칭되어 있다. 이런 언사들인 오즈를 더욱더 세밀하게 바라보기를 가로 막는 장치였으며 벽으로 작용하였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그런 것을 모두 삭제하고 부정적 언사가 아니라 긍정의 언사로 다가간다. 그리고 지금까지 가시적으로 보이는 것들 이외의 점을 지적하고 그 불가시함의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오즈의 영화는 부정적 언사들과 함께 단조롭다거나 혹은 “가족주의”드라마로 화자되어왔다. 그래서 그 단조로움 안에서 모든 영화들이 비슷하다고 했지만, 하스미 시게히코는 현존하지 않는 오즈의 작품들을 시나리오 속에서 재발견하거나 서구 비평가들에게 무시되어왔던 오즈의 초기 무성영화와 필름 느와르 속에서 견고하게 굳어져 있는 오즈적 일관성을 탈피한다. 그리고 영화 역사서에 줄곧 등장하는 그런 비평과 평가들을 일부 부정하거나 혹은 긍정하지만 그 비밀을 말하지 않았던 것을 설명한다.

가장 놀라운 것은 하스미 시게히코는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으로 영화를 해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는 오즈의 영화에서 인물들이 옷을 갈아입는 것을 말하거나 혹은 먹는 것을 말한다. 또는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오즈의 영화에서 딸이 시집을 갈 때 갈아입었던 옷의 비밀, 혹은 남성들이 갈아입었던 옷의 의미와 먹는 것을 통하여 내부와 외부를 연결짓는 오즈의 내러티브 연결법을 설명하면서 그렇게 내부와 외부를 차단 된 것이 아닌 열린 공간으로 나아가게 했던 오즈의 위대함을 역설한다. 또한 누구도 계산하거나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 중에 하나가 오즈의 딸들이 거의 비슷한 연령대에 머물러있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오즈의 영화가 세트로 촬영되었다는 것에서 출발하여 집안 구조의 단일성과 그 단일성이 대부분의 작품에서 반복되었다는 것을 알리고 세트 구조를 해체하기 시작한다. 이 세트 구조의 해체는 곧 오즈의 카메라와 시선이 머무르는 곳을 알려주며 그 시선이 부딪치는 내부의 차단성에 대해서 우리가 공공연히 감동을 받는다고 말한다. 특히나 1층과 2층을 연결해주는 계단은 영화상에는 존재하지만 세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불가시의 영역이다. (오즈의 영화에서 계단은 대부분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래서 붕 떠버린 2층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을 설명하고 그 1층과 2층의 공간에서 구분되는 성역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책은 후반부에 도달해서 오즈의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그렇게 궁금해 하던 비밀을 풀기 시작한다. 왜 오즈의 영화에서는 환기작용을 하듯이 종종 이유 없는 하늘과 공장의 굴뚝 혹은 빨래가 등장할까? 그 설명의 시작에서 하스미 시게히코는 인물들이 모두 이동할 때 나란히 서있다는 것과(이것은 다른 영화에서 볼 수 없는 장면으로 항상 걸어갈 때 인물들은 나란히 걷게 되는 특징이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시선의 등방향성이다. 외부로 나아갔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시선으로 옮겨간다. 지하철역에서나 거리에서나 집단적으로 서 있을 때 사람들은 한 방향으로 몸을 기울이고 한쪽으로 시선을 옮기게 된다. 다가오는 오즈의 가상선의 파괴는 오즈가 어떻게 영화적 규칙을 파괴하고 있는지를 영화적으로 설명한다. 그것은 결국 영화라는 매체가 동시에 두 가지 시선을 담을 수 없다는 한계를 오즈가 알고 있었기에 구도-역구도를 이용하여 그 시선을 한 대상이 보는 것처럼 조작한다. 이것은 마치 보고는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불안감을 조장할 수도 있다. 트뤼포는 오즈의 이런 법칙들을 보고나서 이렇게 말했다.

“오즈의 영화에서는 한 사람을 이쪽 카메라에서 찍었다라고 생각하면 다음에 상대를 반대편으로 되받아쳐 찍는 듯 한 인상을 받습니다. 이것은 인상이 아니라 그렇게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연출로, 보는 쪽으로서는 한 사람의 시선을 따라가면 사실 거기에는 상대가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에 휩싸여 버립니다. 카메라가 되받아 칠 때마다 이미 대화 상대가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하스미 시게히코는 여기에 덧붙인다. “오즈의 시선은 전혀 배려가 없는 것이고, 그래서 이런 눈동자에 둘러싸여 사는 것은 불가능하며. 또한 그런 것을 오즈 자신도 충분히 의식하였을 것이다.” 오즈는 그 자신이 “영화에는 문법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처럼 가상의 선을 파괴하고 영화적 문법을 해체하여 시선을 통한 불안감을 주고 기묘한 공간 감각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풀어야 될 난제가 도달한다. 즉 그 비어있는 공간과 사물을 쇼트가 느닷없이 담는 이유는 무엇인가? 구도-역구도 쇼트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두 명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이는 쇼트가 바로 그 비어버린 쇼트 혹은 이유 없는 정물들이다. 앞에서 그 실험적 쇼트들은 서로 다른 시선을 만들어 공간을 해체한다. 서로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거나 혹은 누군가 한명은 공간에서 이탈해있는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그 정물에서 오즈는 서로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던 사람들 혹은 전쟁 전-후세대 할 것 없이 모든 장벽을 허물고 잠시나마 그 쇼트를 바라보게 한다는 것이다. “오즈적 ‘작품’이 선동하는 영화적 감성이 높아지는 것은 보다 추상적인 동시에 보다 직접적인, 즉 누구나 틀림없이 눈에 간직하지만 쉽게 서정과는 타협하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놓치기 쉬운 이미지의 힘에서 오는 것이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단조로운 영화라고 칭해지던 오즈의 평가에서 더 깊게 들어가서 오즈의 일상적인 것들이 어떤 수수께끼를 가지고 있는지 명쾌하게 풀어준다. 그렇지만 그는 못내 아쉬운 마음을 털어놓는다. 어쩌면 오즈 생전에 이런 평가들이 있었다면 그의 초기 영화들이 유실되지 않고 우리가 지금처럼 극장에서 그의 필름을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는 오즈가 만들어낸 영화가 전 세계를 울릴 수 있다고 자부하며 오즈의 마음은 동시대적이면서 전 세계적인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좋은 글쓰기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으며 더 궁극적으로는 영화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를 책 읽기를 통해서 경험하게 해준다.(이도훈 시민기자) 

07. 01.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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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1-09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즈...다다미 쇼트를 보기 위해 의무감(?)을 가지고 본 적이 있는.. 오랜만에 만나는 이름이어서 반갑네요.국민의 25%가 봤다는 '괴물'도 지난 일요일 비디오로 볼 정도로 아기랑 씨름하고 있으니...^^

로쟈 2007-01-09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결혼하니까 제일 먼저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게 영화더군요. 둘다 영화광이 아닌 다음에야...

2007-01-10 04: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1-10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얼른 써주시길!^^

노부후사 2007-01-10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은 오이를 썰 때 칼에 오이가 많이 들러 붙으시나요?

로쟈 2007-01-10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고난도'의 질문이신가요? 오이를 썰 일은 별로 없는데(간혹 냉면을 먹을 때 빼고)...

노부후사 2007-01-11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즈가 '만춘'에서 구사하는 유머입니다. 오이를 썰 때 칼에 오이가 많이 들러붙으면 질투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로쟈 2007-01-11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저는 질투할 일이 별로 없는가 봅니다(그래서 '발전'이 없는 건가)...
 

얼마전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2006년 최고의 영화 10편을 꼽으면서 1위에 올려놓은 작품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이다. 이 노익장 감독은 지난해 태평양전쟁을 소재로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두 편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각각 10월과 12월에 미국과 일본에서 개봉되었다고 하고, 이스트우드는 평단의 압도적인 지지 속에 골든글로브 및 아카데미의 유력한 작품상/감독상 후보로 점쳐지고 있단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해마다 문제작들을 쏟아내는 그의 열정이 경이롭다. 여하튼 올해 가장 주목해볼 만한 영화들 중의 두 편이 이스트우드의 작품일 거라는 예상은 해볼 수 있겠다(더불어, 영화와 역사를 연구하는 이들의 과제목록이 하나 더 늘겠다. '이스트우드가 새로 쓴 역사'라고).  

Letters from Iwo Jima

중앙일보(07. 01. 09) 이스트우드가 새로 쓴 역사

할리우드의 거장 클린트 이스트우드(77) 감독은 "역사는 승자와 패자 양쪽의 눈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통설을 단호히 거부한 그의 손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가 다시 쓰여졌다. 2차 대전 최대의 격전으로 꼽히는 이오지마(硫黃島) 전투를 미군과 일본군의 시각에서 각각 조명한 영화 '아버지의 깃발'(미.일 지난해 10월 개봉)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미.일 지난해 12월 개봉)를 통해서다.

이에 따라 이스트우드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가 15일 시상하는 제64회 골든글로브상에서 유력한 감독상 후보로 꼽히고 있다. 후보 자리는 모두 다섯인데, 그는 두 영화로 각각 감독상 후보에 올라 혼자서 두 자리를 차지하는 진기록도 세웠다. 일본에선 특히 '이오지마…'가 평론가와 관객 모두에게서 호평을 받으며 연말연시 흥행 1위를 기록했다.

두 영화는 공통적으로 전투에 참가한 병사들의 인간적 고민에 초점을 맞춘다. 1945년 2월 19일 미군의 상륙으로 시작된 이오지마 전투는 한 달가량 이어졌다. 양쪽 모두에서 2만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 하루하루 죽음과 맞서 싸워야 했던 병사들의 고뇌도 깊었다.



'아버지…'은 고지에 대형 성조기를 세우는 미군 병사의 모습을 담은 사진의 진실성을 추적한다. 영화에 따르면 사진은 연출됐을 뿐 아니라 사진 속 병사 중 한 명은 언론에 알려진 것과 다른 인물이다. 깃발도 하나가 아닌 여러 개였다. 그렇지만 미국 정부는 세 명의 병사를 영웅으로 미화한 뒤 전쟁국채 발행을 위한 홍보요원으로 적극 활용한다. 이들은 "우릴 영웅으로 만드는 건 사기다. 진정한 영웅은 전장에서 죽어간 전우들"이라고 항의하지만 묵살된다.



'이오지마…'의 주인공은 섬 수비대 사령관 구리바야시(와타나베 겐) 중장과 말단 병사 사이고(니노미야 가즈나리)다. 원치 않는 전쟁에 조국의 이름으로 불려온 이들은 수시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편지를 띄운다. 따라서 영화는 전쟁을 미화하거나 전사자를 영웅으로 떠받드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아버지…'은 다음달 15일 국내 개봉 예정이며, '이오지마…'는 아직 개봉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주정완 기자)

◆이오지마(硫黃島)=일본 도쿄에서 남쪽으로 약 1100㎞ 떨어진 태평양의 작은 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일본 본토를 향해 폭격기를 띄우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미군은 이오지마 비행장을 확보한 1945년 3월부터 도쿄 대공습을 감행해 확실한 승기를 잡게 된다.(*아주 오래전이지만 나는 가장 처절했다는 이 전투를 담은 영화 <유황도>를 본 적이 있다. 이스트우드가 쓴 '다른 역사'가 기대된다.)

마이데일리(07. 01. 08) 클린트 이스트우드, 오스카 전초전 美NBR 작품상

클린트 이스트우드(76)가 감독한 영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Letters From Iwo Jima)가 전미비평가위원회(National Board Of Review) 선정 최우수작품상에 선정됐다. 7일(현지시간) 영화전문잡비 버라이어티, 헐리우드닷컴 등은 이 영화가 비평가위원회 선정 최우수 작품상 수상작으로 결정됐다고 보도했다. 비평가위원회 수상결과는 아카데미시상식, 골든글로브 등에 많은 영향을 보여와 오스카 전초전으로 불린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지난 2005년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휩쓸었다. 비평가위원회 감독상은 ‘디파티드’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선정됐고 남자배우상은 ‘라스트 킹 오브 스코틀랜드’의 포레스트 휘태커, 여자배우상은 ‘더 퀸’의 헬렌 메린이 뽑혔다.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 일본의 최대 격전지였던 태평양의 이오지마(유황도) 전투를 그린 영화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지난해 이 영화와 똑같이 이오지마 전투를 영화로 제작한 ‘우리 아버지의 깃발’을 감독했고 연이어 ‘아오지마에서 온 편지’를 선보였다. ‘우리 아버지의 깃발’은 미국 군인 입장에서 이오지마를 그렸고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일본군의 시각에서 바라본 전투를 필름에 담았다.

Letters from Iwo Jima

‘우리 아버지의 깃발’은 라이언 필립, 제시 브래포드 등이 출연했으며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라스트 사무라이’로 잘 알려진 와타나베 켄이 주연을 맡아 일본어로 촬영됐다.



이오지마 전투는 6명의 미국 해병대 대원이 섬 정상에 성조기를 뽑는(*꽂는?) AP보도 사진으로 유명하며 ‘우리 아버지의 깃발’은 이 사진을 모티브로한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이오지마 전투는 미군 2만 4800명이 사상자를 냈고 일본군은 2만명 이상이 전사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이경호 기자) 

07. 01.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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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뤽 고다르 특별전이 열린다. 1월 3일부터이고 장소는 서울아트시네마이다. 관련기사를 읽은 건 '씨네21'에서인데, 유운성 평론가가 쓴 기사의 타이틀은 '이미지의 정치학을 사유한다'이다. 여기서는 경향신문의 간략한 소개기사만을 옮겨놓는다. 주로 80년대의 대표작들이 상영되는데, <주말 Week-end> <원 플러스 원 One Plus One> <즐거운 자식 Le gai savoir> <넘버 2 Numéro deux> <잘 돼 갑니까? Comment ca va> <열정 Passion> <카르멘이란 이름 Prénom Carmen> <탐정 Détective> 등 총 여덟 작품 가운데, <주말>과 <카르멘이란 이름>을 제외한 여섯 편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상영되는 것이라고 한다. 영화팬들이라면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경향신문(06. 12. 29) 실험 가득한 ‘대가의 美學’ 장 뤼크 고다르전

현대 영화의 혁명가’ 장 뤼크 고다르 특별전이 1월3∼14일 종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감독 데뷔 이전 평론가로 활동했던 고다르는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를 통해 관습적인 영화문법에 함몰돼 있던 이전 세대 프랑스 감독들을 혹독히 비판했다. 그는 1959년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를 내놓으며 새로운 영화언어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입증해보였다. 프랑수와 트뤼포 등과 함께 프랑스 누벨 바그를 이끌었고, 68년 5월혁명 이후에는 ‘지가 베르토프’ 집단을 조직해 기존 상업 배급망과 절연한 급진적 제작 환경을 실험했다. 상업영화계에 복귀한 80년대 이후에도 영화 미학의 한계를 실험하는 파격적 작품들을 제작했다.

이번 특별전에는 그동안 국내에서 보기 힘들었던 60년대 후반∼80년대 초반 작품 8편이 소개된다. ‘주말’(67)은 파리 교외로 빠져나가려는 끝없는 자동차 대열을 10분간 보여주는 수평 트래킹 샷으로 유명한 걸작이다. 중산층 부부의 순탄치 않은 주말 여행 과정을 보여준다. 고다르는 영화의 공간적 깊이감을 의도적으로 제거해 현대 자본주의 세계의 얄팍함을 폭로한다. ‘원 플러스 원’(68)은 신보를 녹음중이던 록그룹 롤링 스톤스와 흑인 민권 운동가의 인터뷰를 콜라주해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다. 대안 매체로서의 비디오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넘버2’(75), 이미지와 텍스트의 상관성에 대한 탐구 ‘잘 돼 갑니까’(76)도 보기 힘들었던 작품이다. ‘열정’(82)에선 이자벨 위페르, 한나 쉬굴라 등 유럽권 명우들의 연기를 볼 수 있다. 김성태씨(파리3대학 영화학 박사)와 김성욱씨(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가 6, 7일 강연을 통해 작품 이해를 돕는다.(백승찬 기자)

형편상 상영작들을 모두 챙겨볼 여유는 없는데, 그래도 <열정>(1982) 정도는 시간을 내고 싶다. 이자벨 위페르와 한나 쉬굴라라는 걸출한 여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본전은 뽑을 영화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개에 따르면, "렘브란트, 고야, 앵그르, 들라크루아, 엘 그레코의 걸작들을 영화적 활인화로 완벽하게 재현해낸 촬영감독 라울 쿠타르의 솜씨는 탄성을 내뱉게 만든다. 시몬느 베이유의 저서 <중력과 은총>에 대한 헌사이기도 한 이 영화를 두고 콜린 매케이브는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고다르 작품'이라 평하기도 했다"니까 더욱 궁금하기도 하고.

   

영화의 시놉시스는 이렇다: "레흐 바웬사를 앞세운 자유 노조가 집권에 성공한 즈음, 폴란드 영화감독 예르지는 프랑스에서 TV 영화를 만든다. 명화들을 재현하는 이 영화는  예산을 초과하고, 영감마저 바닥난 듯 보이는 예르지는 지지부진하게 연출 작업을 한다. 한나는 영화 스태프들이 묵는 호텔 주인이다. 그녀는 공장을 운영하는 미셸과 함께 사는데, 미셀은 공장에서 일하던 이자벨을 해고한다. 한나와 이자벨은 예르지에게 끌리고, 호텔 메이드들은 영화 엑스트라가 되기 위해 일을 그만둔다. 이 영화를 알랭 베르갈라는 실재계와 사랑의 스펙타클의 차이에 대한 다큐멘터리라 칭했다." 이것만으로는 물론 갈피를 잡을 수 없지만...

 

 

 

 

한편, 고다르와 관련하여 놀라운 점은 그에 관한 단행본 저작이 거의 전무하다는 것. 내가 갖고 있는 책으로는 리차드 라우니의 <장 뤽 고다르>(예니, 1991)와 제임스 모나코의 <뉴 웨이브1,2>(한나래, 1996) 정도가 고다르와 누벨 바그를 다루고 있다. 고다르의 영화가 갖는 영화사적 맥락에 대해서는 로도윅의 <현대 영화이론의 궤적>(한나래,  1999), 로버트 스탬의 <자기반영의 영화와 문학>(한나래, 1998), 안니 골드만의 <영화와 현대사회>(민음사, 1998) 등을 참조할 수 있다. 모두가 중량감 있는 책들이다.

그 중에서도 로도윅의 <현대 영화이론의 궤적>은 원제가 <정치적 모더니즘의 위기(The Crisis of Political Modernism)>(1989)이며, 조만간 자세히 읽을 계획을 갖고 있는 책이다. 그러고 보면 2000년 이후에 이 주제와 관련한 무게 있는 책들이 전혀 출간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영화/영상의 시대'란 말을 무색하게 한다. 다들 무슨 공부를 하는 것일까?(물론 전공자들이야 번역서를 필요로 하지 않는지도 모르겠지만.)

07. 01.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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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3 0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유 2007-01-03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들라크루아적이고 앵그르적이네요. 잘 알았습니다.^^

나비80 2007-01-11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로쟈님의 페이퍼를 보고 있자면 세상이 풍요로운 느낌입니다.

로쟈 2007-01-12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안타깝게도 시간이 안 날 거 같습니다.--;
소이부답님/ 좋게 봐주시는 것일 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