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이번주 '필름2.0'에서 <송길한 시나리오 선집>(커뮤니케이션북스, 2006) 출간 기념 특별상영회에 관한 화보기사를 읽었는데, 생각난 김에 지난달 중순에 게재된 김영진 편집위원의 칼럼을 옮겨놓도록 한다. '송길한'이란 이름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두루 본 관객이라면 기억에 남았을 법하다. 알라딘의 작가 소개는 이렇게 돼 있다.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나리오 <흑조(黑潮)>가 당선된 이후 전업 작가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언약> <마루치 아라치> <둘도 없는 너> <낯선 곳에서 하룻밤> <짝코> <만다라> <우상의 눈물> <나비 품에서 울었다> <삐에로와 국화> <불의 딸> <안개마을> <비구니> <길소뜸> <티켓> <씨받이> <아메리카 아메리카> <불의 나라><명자 아키코 소냐> <동행>(MBC특집드라마 1, 2부) <아낌 없이 주련다>(종군위안부 노부코) <서울 만신> 등 90여 편의 작품을 집필했다. <짝코> <만다라> <불의 딱> <티켓>으로는 대종상 각본상을, <만다라> <길소뜸>으로 한국연극영화상(백상예술대상) 시나리오상, <백구야 훨훨 날지 마라> <길소뜸>으로 영화평론가협회 영평상 시나리오상, <씨받이>로 작가협회 시나리오 대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권과 영상작가전문교육원에서 시나리오 창작을 가르치고 있으며 전주국제영화제 고문과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부이사장을 역임하고 있다. 시나리오 선집 <비구니>와 장편소설 <명자 아키코 소냐> 등의 저서가 있다.
무려 90여편의 작품을 썼다고 하니까 내가 본 영화들의 상당수가 거기에 포함된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겠다. 거의 70-80년대 한국영화를 쥐락펴락하신 게 아닌가 싶다. 이만하면 '장인'이다. 송 작가처럼 자신의 인장을 영화에 새겨넣을 수 있는 후배 작가들이 앞으로 더 많이 눈에 띄었으면 좋겠다.
송길한 작가 <짝코> 상영회
좌권택 우희라.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송길한 작가를 가운데 두고 <짝코>의 주인공들이 다시 한자리에서 만났다. 지난 19일 서울 서초동 한국영상자료원 고전영화관에서는 시나리오 작가 송길한의 시나리오 선집 출간을 기념하는 <짝코> 특별상영회(주최 영상자료원, 커뮤니케이션북스)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짝코> 외에도 송길한 작가의 <티켓>을 촬영한 구중모 촬영감독, <짝코>에서 짝코를 쫓는 또 다른 주인공 최윤석, 송길한 작가의 <길소뜸> <만다라> 등을 촬영한 정일성 촬영감독, 배우 안성기, 지상학 작가, 김홍준 감독, 변영주 감독, 조선희 영상자료원장 등도 참석해 한 노작가의 소중한 선집에 박수를 보냈다. 임권택 감독은 “송길한 작가와 함께하면서 내 작품들이 중요한 틀을 잡아가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주성철 기자)
필름2.0(07. 01. 18) 시나리오 작가 송길한
송길한 시나리오 선집을 단숨에 읽었다. 이번에 출간된 그의 시나리오 선집에는 <짝코> <길소뜸> <만다라> 등 주로 임권택 감독과 함께 작업한 그의 대표작들과 1980년대 중반 불교계의 반발로 제작 중지된 <비구니>, 그리고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용으로 쓴 <반란> 등의 미발표 신작이 실려 있다.
사춘기 시절에 본 뭔가 예술적 향기가 있는 한국영화라면 대개 송길한의 각본이었다는 추억을 환기하면서 역사, 구원, 욕망, 분단, 윤리 등 거창한 테마를 갖고 있는 그의 각본에 그토록 인간적인 숨결이 스며 있는가를 보며 새삼 놀랐다. 그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은 현대적 일상과는 거리가 멀며 그 세대의 역사적 상처를 깊이 간직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이런 인물들을 역사책의 딱딱한 글귀 속에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우리 이웃으로 보여주는 게 그의 저력이었다. 깊은 맛이 있는 된장찌개를 먹는데 가끔 그 손맛의 주인이 겪은 신산스런 삶이 생각나서 울컥하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과 비슷한 여운을 그의 작품은 준다. 책상에서 머리로만 쓴 게 아니라 동시대 삶의 상처의 흔적을 몸으로 껴안고 있는 자만이 쓸 수 있는 그런 글이다.
송길한이 한창 활동한 1970년대와 80년대는 한국영화의 암흑기였다. 1970년대 그는 영화사의 주문에 따라 글을 쓰며 자기 재능을 탕진하고 있다는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당시 영화는 대중문화의 천덕꾸러기였다. 1980년대에 그는 다부지게 자기가 쓰고 싶은 소재에 매달렸는데 <짝코>와 <만다라>는 그의 작품세계의 일종의 분수령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대표작 <짝코>를 극장에서 본 대중은 극히 적었다. 우수 반공영화로 정부로부터 두 차례나 표창 받은 이 영화를 송길한과 임권택은 반공이 아니라 분단의 상처에 관한 것으로 찍었다. 그런데도 당시 그걸 알아주던 눈 밝은 시선은 많지 않았다. 좋은 영화를 만들어도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시대였다.
세월이 많이 흘러 외형적으로 한국 영화산업이 꽤 성장했지만 송길한의 각본은 이제 영화화되지 않는다. 이런 재능은 길이 기억되고 또 오늘에 되살릴 의무가 후배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송길한은 왜 요즘 활동하지 않는 것일까. 그의 재능이 낡아서일까. 시대가 변했기 때문일까. 그가 굳이 스크린에 불러오려는 여순반란사건과 같은 <반란>의 소재를 요즘 대중은 원하지 않기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그와 동시대의 감독들이 이제 현장에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임권택도 이제는 송길한과 함께 작업하지 않는다. 이런 게 시나리오 작가의 비애라면 비애다. 파트너십이 작가의 명줄을 좌우하는 것이다. 테오 앙겔로풀로스와 늘 함께 작업하는 토니노 게라와 같은 작가의 존재가 충무로에선 허락되지 않는다. 송길한의 시나리오 선집을 읽으며 그게 안타까웠다.
송길한의 불행이라면 그에게 근기가 있었을 때 시대는 너무 옹졸하고 가혹했다는 것이다. 좋은 영화를 만들어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던 시대는 곧 누구든 해야 할 이야기를 아무도 하지 않았던 시대의 무능과도 통한다. 이 시나리오 선집을 읽으며 가장 통절했던 것은 역사상 가장 굵은 상처를 간직하고 살았던 송길한의 세대가 아직 하지 못한 얘기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상상력이 왕성했던 시기를 군사독재정권의 검열이 지속되던 수십 년 동안 보냈다. 책의 말미에 실린 인터뷰에서 송길한이 대수로울 것도 없이 회고하는 검열에 관한 한 에피소드는 너무 징그러워서 정떨어지는 그 시절의 강압을 드러낸다.
강원도 속초를 무대로 몸을 파는 다방 레지들의 삶을 그린 임권택 감독의 <티켓>(1986)이란 영화는 반사회적이라는 이유로 검열에서 고초를 겪었고 그 개별사례는 희극적이다. “<티켓>의 타이틀을 외래어라고 못 쓰게 한 겁니다. 그래서 가서 그랬어요. 그럼 ‘잉크’는 어떻게 해야 되냐고. 올림픽 티켓을 땄다, 무슨 티켓 하지 않느냐, 근데 왜 티켓이 외래어라고 안 되냐고 들이받은 거죠…. 그래서 제목을 ‘분홍티켓’이라고 바꿔 갔어요. 검열관들 반응을 보려고. 분홍티켓이라니까 그들도 어처구니없어 하며 아주 인심 쓰듯이, ‘그냥 쓰세요. 쓰는데 영화 맨 앞에다 자막이나 하나 넣으세요.’ 그래서 자막이 들어가게 된 거에요. 조셉 콘래드의 말, ‘인생은 한 장의 담배종이에 한 마디로 요약된다. 태어나고, 고뇌하고, 그리고 죽는다. 그러나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긴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그 말에서 담배종이를 티켓으로 바꿔 자막을 붙였죠. 그랬더니 그들도 만족하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걸었는데 검열관들이 자막이 있는지 없는지 한 일주일 동안 극장에서 확인하고 갔어요. 그래서 말했죠. 내가 큰 실수를 했다. 확인해보니까 티켓이 아니라 담배종이더라. 자막을 계속 붙이면 그쪽이나 우리나 쪽팔릴 텐데 괜찮겠냐고 넌지시 물었더니 자막 떼어내라고 하더라고요. 코미디죠. 완전 코미디. 러닝타임 112분에 달하는 원판은 반사회적 영화로 찍혀 12분이나 가위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죠. 게다가 대사 중에 티켓이란 말은 모조리 삭제당하고 화면도 여기저기 단축돼 그야말로 난도질이나 다름없었어요.”
시나리오 선집 말미에 실린 변재란 교수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밝힌 바에 따르면 그의 최고작으로 꼽힐 만한 <만다라>는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쓴 시나리오다. 영화의 배경이 겨울이라 눈이 녹기 전에 원고가 나와야 했다는 것이다. 충무로 작가들이 가는 허름한 여관에서 그는 만 4일 동안 1분도 자지 않고 각본을 썼다. 조감독이 여관과 영화사를 오가며 송길한이 원고를 쓰는 대로 정리해서 책으로 만들었다. 4일을 밥 먹을 시간도 없이 필사적으로 매달려 써낸 이 비상한 집중력의 산물이 <만다라>라는 것이다.
송길한의 작품은 <짝코>나 <길소뜸> 등 분단과 같은 거대한 역사적 상흔을 소재로 한 것이나 <만다라>와 <비구니>에서처럼 불가적 구원이라는 큰 관념과 대결하는 소재와 만났을 때도 사람 사는 속내를 보여주는 찰진 친밀감을 준다. 그렇게 쓴 작품 대다수가 종종 허름한 여관방에서 단기간에 써내려간 결과물이라는 건 그의 평소 삶이 얼마나 촘촘한 경험으로 채워져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이번 시나리오 선집에 실린 <반란>이라는 작품을 쓰기 위해 송길한은 햇수로 만 2년, 만 1년여 동안을 여수에서 살다시피 했다. “간접적으로 루머로 들었던 사람들도 생존자로 포함시키고 취재를 했어요. 근데 거기 여수 인민위원회 위원장이 목매 죽은 석천사 뒤 소나무가 있어요. 내가 글 쓰는 방이 석천사 그 운동장만큼이나 넓은 객실인데 거기서 혼자 앉아 밤새워 글을 썼거든요, 근데 늦가을부터 막 바람 불고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고 하니까 망자들이 살아 나타날 것 같더라고요, 섬뜩섬뜩했었지요.”
그가 동시대에 겪은 역사적 비극을 다시 스크린에 불러오기 위해서는 그만큼 다시 그 시절을 살아보려는 노력이 뒤따른다. 그건 만만치 않은 작업이어서 오래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송길한의 회고에 따르면 임권택 감독은 송길한에게 작업을 의뢰하면서 늘 ‘어이, 이번에 한번 또 죽어볼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번에 한번 써볼 거야?’라는 말과 전혀 다른 그 필사적인 어감에서 이 세대에게 절실했던 체험의 육화라는 고전적인 글쓰기 형태를 떠올리게 된다.
송길한의 시나리오는 손목을 놀려 쓴 게 아니다. 관객을 의식하며 쓴 게 아니다. 그가 보는 인생과 사람에 대해 쓴 것이다. 그건 재능 이상의 문제다. 그가 체험한 동시대의 곡절을 그의 마음과 손을 빌려 옮기는 것이다. <만다라>를 찍을 때 그는 헌팅을 위해 호남 일대를 임권택 감독, 정일성 촬영감독과 돌아다니면서 식당 같은 곳에서 대통령이 된 전두환 장군의 모습이 텔레비전에 나오면 치를 떨곤 했다. 겨울공화국에서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별로 없었다. <만다라>의 첫 장면,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는 버스가 군인들의 검문을 받고 자기 신분을 증명할 길 없는 지산 스님이 타박을 받는 스산하고 살벌한 풍경은 그런 공기에서 나온 것이다.
1970년대 내내 영화사로부터 의뢰받은 싸구려 영화의 각본을 썼던 송길한은 시나리오 작가 그만 한다는 각오로 자기 작품을 쓴다는 의지를 세웠고 마침 경력의 분기점을 맞았던 임권택 감독을 만났다. 그들의 첫 걸작인 <짝코>는 빨치산 망실공비와 그를 쫓는 지리산 토벌대 경찰의 평생에 걸친 추적극인데 그들은 자기 삶이 다 망가진 상태에서 왜 그러는지도 모른 채 쫓고 쫓긴다. 그들은 왜, 라는 질문을 죽기 직전에야 던진다. 잦은 플래시백으로 두 인물의 삶을 응축해 달려가는 이 영화의 각본은 기법적으로 우수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이야기에 남한의 역사를 비유적으로 등치시키는 기적을 이뤄낸다. 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 중에 아직 이만한 무게를 지닌 영화는 나오지 않았다.
송길한의 시나리오 선집을 읽으면서 그의 작품이력이 현재진행형이 될 수는 없는가를 생각했다. <반란>과 같은 그의 신작은 다큐멘터리를 위해 쓰인 것이라고 하지만 너무 설명적이고 나열형이다. 여기에 픽션이 가미돼야 하는데 송길한은 충분히 가미될 수 있다고 책의 말미에 실린 인터뷰에서 말한다. 이건 한 대가급 시나리오 작가의 명운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너무 할 말이 많았지만 말할 수 없었던, 아직 말할 게 많이 남아 있는 그 세대의 작업에 대해 우리가 너무 무심한 게 아닌가라는 자책을 갖게 한다. 그가 계속 건필하고 한국영화계에서도 그의 작업을 끌어안는 그런 상황이 왔으면 좋겠다.(김영진 편집위원)
07. 01. 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