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북리뷰란에 연재되고 있는 '김윤식의 문학산책'의 이번주 이야기는 '콰이강의 다리'에 관한 것이다(영화는 http://www.youtube.com/watch?v=7DWlVNCiM8E 참조). 칼럼을 읽다가 의문(호기심)도 생기고 개인적인 기억까지 겹쳐서 '조사'를 좀 해보았다. 몇 마디 보탠다. 모처럼 비가 시원스레 오는군...

한겨레(07. 08. 04) '콰이 강의 다리’의 조선인 포로감시병

휘파람 행진곡의 익살스러움을 아시는가. 그럴 수 없이 경쾌한 행진곡에 누더기 군복 차림의 영국군 포로의 행진이 화면 가득 펼쳐졌소. 차림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그 두목 니콜슨 대령의 당당함, 그를 따르는 병졸들의 해맑은 표정. 영화 <콰이 강의 다리>(1957, 데이비드 린 감독)를 보고 있노라면 연합군 포로 수만 명의 희생 위에서 가까스로 이루어진 태국·미얀마 접경 철도 건설(1942~43)의 비극은 가뭇없고 문득 저 헤겔의 주인·노예의 변증법만이 커다란 얼굴을 내밀고 있소. 다리 건설 과정을 통해 포로수용소 소장 사이토 대령이 노예로 전락하는 과정이 손에 잡힐 듯 펼쳐지지 않겠는가. 설계도를 작성할 수 있는 노예란 벌써 노예일 수 없는 것. 이 점을 1930년대 코제브는 파리고등연구원에서 메를로 퐁티, 조르주 바타유 등에게 가르치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면, 기껏해야 행진곡의 경쾌함이 가까스로 남았을 뿐. 


원작소설의 경우는 어떠할까. 그 자신의 경험에 바탕을 둔 원작자 피에르 불의 소설 <콰이 강의 다리> 제1부에는 이런 대목이 있소. “니콜슨 대령은 두 사람의 거인에게 끌려갔다. 그들은 둘 다 조선인으로 사이토의 호위병이었다”(오징자 역)라고. 잇달아 이렇게도 적혀 있지 않겠는가. “한 주일 동안을 그는 고릴라 같은 조선인 보초병의 얼굴밖에 볼 수 없었다. 그 보초병은 자기 개인의 특권으로 매일같이 쌀밥에 소금을 덧쳐주는 것이었다”라고. 또 썼군요. “니콜슨 대령은 또 다시 얻어맞았다. 그리고 그 못생긴 조선인은 처음의 그 비인간적 대우를 다시 하라는 냉혹한 명령을 받았다. 사이토는 그 호위병까지 때렸다”라고. 일본군은, 포로 감시원으로 조선인을 사용했음이 조금은 드러나 있소. 8년간 말레이시아에서 토목기사로 종사한 작가이고 보면 이 점이 썩 인상적이었던 모양이오.

어째서 일본군은 포로수용소 감시병에 조선인을 사용했을까. 이 물음은 혹시 전범으로 연합군에 의해 처형된 홍사익(1900~46) 중장에도 이어질까(*사진에서 오른쪽 끝). 조선인으로 별을 셋이나 단 이는 홍사익뿐이었음은 모두가 아는 일. 육사 26기이자 조선인으로 유일한 육대 출신의 홍사익이 필리핀 포로수용소 소장으로 간 것은 1944년 10월. 처형 당한 것은 종전 이듬해 9월. 그렇다면 사이토 대령에게 모질지 못한 탓에 얻어맞은 고릴라처럼 생긴 조선인 감시병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이 물음에 대한 실마리 하나를 잠시 볼까요. 조선인 학병으로 비극의 버마 전선에 투입되었다가 귀환한 이의 기록에 따르면 귀국선 캠벨호엔 병정 40여 명이 위안부 5백여 명 그리고 포로감시원 7백여 명이 탑승했다 하오(이가형, <버마 전선 패잔기>). 기억에 의한 기록이기에 그 숫자의 정확성 여부까지는 확인하기 어려우나, 요컨대 기록자의 말 그대로 ‘모두가 불운했던 민족의 제물들’임엔 분명합니다. 조선인 포로감시원 중 전범으로 처형된 조문상(趙文相)의 유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유령으로라도 지상에 떠돌 것이다. 그도 불가능하면 누군가의 기억 속에라도 떠돌 것이다”라고.

<콰이 강의 다리>란 우리에겐 새삼 무엇일까. 하나는 영화이고 또 하나는 소설이다, 라고 스스로 묻고 대답해 봅니다. 환각으로서의 스크린이고 환청으로서의 휘파람 소리이다, 라고. 동시에 사실이고 역사이다, 라고. 그렇다면 실체란 없는 것일까. 만일 실체란 것이 있어야 한다면 거기에 놓인 실체란 저 헤겔이 말하는 주인·노예의 변증법이 아니었을까.(김윤식 / 문학평론가, 명지대 석좌교수)

07. 08. 04.

P.S. 몇 가지 조사해본 내용이란 건 원작자 페에르 불과 <콰이강의 다리>의 국역본에 관한 것이다(홍사익 중장에 대해선 이규태 칼럼을 인터넷에서 읽을 수 있다). 일단 시중에서는 <콰이강의 다리> 국역본을 구할 수 없다는 것. 놀랄 만한 일은 아니지만 좀 의외이다. 칼럼에서 '오징자 역'이라고 돼 있는 것으로 보아 번역본이 나왔었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한데 '오징자'? 불문학 번역자인 '오증자' 교수와 동일인인 듯싶은데 어째서 '오징자'일까, 하며 찾아보니 '오징자'로 검색되는 책들이 있다. <콰이강의 다리>는 여러 종의 번역서가 나와 있었는데, '오징자 역'으로 돼 있는 건 삼진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 12권(1976)이다(같은 번역의 다른 판본들도 나와 있다). 징후/증후에서처럼 한자 음독의 문제일까?  

원작자 피에르 불(1912-1994)은 이름이 말해주듯이 프랑스 작가이다('피에르 불레'로도 표기돼 왔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게 바로 <콰이강의 다리>(1952)와 <혹성탈출>(1963)이다(팀 버튼이 리베이크하기도 했던 바로 그 영화). 얼핏 같은 작가의 작품일까 싶지만, '탈출' 모티브로 묶이는 것도 같다.

이 <혹성탈출>도 예전에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승산서관, 1979) 등으로 번역된 적이 있다. 아마도 일역본에서 중역된 것이 아닐까 싶고, 그 일역본의 제목이 '혹성탈출'인 듯싶다(원제는 '원숭이의 혹성'이다). 이 정도면 대중적인 지명도를 갖춘 작가/작품인데 도서관에서나 찾아 읽어볼 수 있다는 건 좀 이상한 일이 아닐까...

P.S.2. <콰이강의 다리>는 내게 언제는 초등학교 2학년 때를 떠올리게 해준다. 갓 전학온 학교의 담임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들려준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바로 이 영화의 줄거리였다. 덕분에 별다른 기억을 따로 갖고 있지 않은 이 선생님의 인상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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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07-08-04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색도 좋구요. 첨 들어보는 작간데 작품은 영화로 둘 다 본 적 있습니다. 그 두 작품 원작자였구나.

로쟈 2007-08-04 18:29   좋아요 0 | URL
저도 작가의 이름은 이번에 처음 확인했습니다...

2007-08-05 2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8-06 00:14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가능한 일이긴 한데, 그랬다면 좀 쑥스럽군요.^^;
 

'지아장커'란 이름으로 내겐 더 익숙한 중국 감독 자장커의 영화제가 열린다고 한다. 그의 근작 3편을 상영한다는 '자장커 스페셜'이 그것이다. 작년에 워낙 호평을 받은 영화 <스틸 라이프>는 나도 구해놓은 지 오래됐지만 차일피일 미루면 못 보고 있었는데, 이 참에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그러니까 '나대로 스페셜'이다).  

 

문화일보(07. 07. 26) 고속성장 뒤편의 고허한 소시민, 중국의 ‘속살’을 본다

중국 내 독립영화의 흐름을 일컫는 ‘지하전영(地下電影)’. 그 가운데서도 대표적 감독으로 분류되는 자장커(賈樟柯) 감독의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행사가 열린다.

서울 낙원동 소재 필름포럼이 26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개최하는 ‘자장커 스페셜’은 국내에선 다소 낯설지만 빠르게 발전하는 중국 사회의 이면에 숨겨진 소시민들의 공허함과 혼란 등을 주제로 한 작품을 잇따라 선보여 세계 영화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그의 작품 3편을 모았다. 자장커 감독은 ‘플랫폼’ ‘소무’ ‘임소요’ 등 그동안 만들어온 작품들이 중국의 어두운 이면을 파헤친 탓에 중국 내 영화 상영이 금지되기도 했다.

우선 2006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스틸라이프’는 중국 양쯔(揚子)강 중상류 싼샤(三峽)지방을 찾은 두 남녀를 통해 해체와 파괴가 엇갈리고 있는 지금 중국사회를 정확하게 짚어내는 영화. 세계 최대 규모로 지어지고 있는 싼샤댐이 오랫동안 쌓아온 역사와 흔적을 지우는 현장을 담아낸다. 지난 6월 필름포럼에서 개봉했던 작품은 특히 단관 개봉임에도 현재 1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장기 상영되고 있다.

이번 행사에선 또 ‘스틸라이프’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 ‘동’도 소개된다. ‘동’은 신도시 개발과 함께 댐 건설로 2000년 고도가 무너지는 현장을 찾아간 현대화가 류샤오둥의 여정을 자장커 감독이 담은 것. 신도시 건설현장의 노동자들, 그리고 방콕의 젊은 여자모델들을 화폭에 담는 화가의 뒤를 쫓으며 현재의 중국을 예리한 시선으로 고발하는 작품이다. ‘동’은 이번 행사 후 국내에 정식 개봉된다.



이와 함께 상영될 2004년작 ‘세계’는 베이징의 ‘세계공원’에서 댄서로 일하는 타오와 공원 순찰관인 타이셩 등 청춘남녀의 일상을 통해 현재 중국이 안고 있는 모순을 지적하는 작품. 에펠탑, 피라미드로 가득한 공원은 지구의 축소판이며, 현재 중국의 모습이다.

자장커 감독은 행사기간에 맞춰 방한해 관객과의 대화시간(28일 오후 3시) 등을 가질 예정이다. 자세한 상영작 정보와 행사일정은 필름포럼 홈페이지(www.filmforum.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강연곤기자)

경향신문(07. 06. 21) [영화 가로지르기]스틸 라이프

‘스틸 라이프’(감독 자장커)는 가족을 찾아 먼길을 떠난 두 사람의 이야기다. 산밍(한산밍)은 자신의 아내와 딸을 찾아 16년 만에 산샤로 돌아온다. 그러나 산밍이 도착한 산샤는 건설되는 댐 때문에 많은 지역이 수몰된 상태다. 한편 2년 동안 남편과 연락이 끊어진 셴홍(자오 타오)도 남편을 찾아 산샤로 온다. 셴홍은 달라진 남편의 모습에 실망하며 혼자 산샤를 떠난다.

자본주의의 물결은 제일 먼저 인간관계를 이해관계로 대체해 버린다. 영화에는 산밍과 셴홍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상황이 존재한다. 두 사람은 모두 보상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웃들간의 격렬한 아귀 다툼을 우두커니 지켜본다. 이처럼 개발의 광풍은 오랜 인간관계에까지 개입하고 간섭한다.

수몰된 지역을 바라보는 산밍의 눈길에 포착된 풍경은 스산하다. 그 풍경에 스며든 적막은 삶의 벼랑으로 내몰린 서민들의 무력한 침묵으로 이어진다. 산밍과 아내의 대화는 서먹하다. 그 대화의 간극을 채우는 것은 세월의 풍파를 고스란히 겪어야 했던 가난한 자들의 슬픈 침묵이다. 그 침묵에는 개발의 이름으로 삶의 뿌리가 뽑힌 사람들의 울분과 회한이 서려 있다.



번영의 이미지로 치장한 건설과 개발은 그곳에 살고 있는 이들을 ‘합법적’으로 추방한다. 이제 오래된 건물들과 거주하는 사람들은 개발의 걸림돌로 여겨질 뿐이다. 그들은 그 개발의 축제에 초청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개발의 횡포 앞에 정직한 육체로 맞설 수밖에 없는 자들이기도 하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줄타기를 하는 어느 노동자의 모습은 일하는 사람들의 정직한 육체가 처한 위태로운 처지를 상징한다. 이제 그들은 다시 낯선 도시의 가난한 주변부를 향해 떠나야 한다. 산밍도 또 다른 일거리를 찾아 노동자들과 함께 산샤를 떠난다.

개발의 과정은 그곳에 터잡고 살아온 사람들을 냉혹하게 추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그들이 정처없는 유랑민이 되어 현대판 유배 생활을 떠나는 것으로 완성된다. 가난한 자들을 추방하여 그들에게 유랑을 강요하는 개발의 논리는 아무리 합법을 가장하더라도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스틸 라이프’의 산밍이 개발 예정지에서 목격한 것도 소외와 폭력이 아니었던가.

우리 사회 역시 신도시 개발을 둘러싼 풍문 한마디에 요동치는 ‘개발 지향적 사회’다. 한국 사회야말로 개발을 구원으로 맹신하는 ‘개발 강박증’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개발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추방당하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낯선 곳으로 ‘자본에 의한 유배’를 떠나야 하는 것일까.

치밀한 사실성으로 무장했지만, ‘스틸 라이프’에는 초현실적 장면들도 등장한다. 하늘로 발사되는 기이한 건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개발의 논리 앞에서는 결국 그 건물도 언젠가는 철거를 위한 쇠망치질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초현실적 장면에는 한꺼번에 하늘로 사라지지 않는 한 그 건물 역시 철거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과 그런 공상을 통해서라도 철거를 막고 싶은 주변부 주민들의 절박감이 섞여 있다.

개발의 논리 앞에서는 ‘개발된 곳’과 ‘개발되지 못한 곳’의 구분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게 삶의 체취가 묻어 있는 공간들은 가차없이 서열화된다. 하지만 개발의 폭력은 단지 자연적 풍광만을 수몰시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곳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추억도 더불어 수몰됐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공간이 수몰될 때, 그곳에 깃든 사람들의 숨결과 자취도 함께 사라진다.

가난한 자들의 기억, 개발의 걸림돌이 되어버린 자들의 추억은 그렇게 폐기된다. 그들의 추억은 공권력이나 자본에 의해 기록되거나 보호되지 않는다. 사탕과 차를 통해 겨우 자신들의 추억을 되살려 내야 하는 그들의 막막함은 개발에 어울리지 않는 기억들을 모두 수몰시키려는 자본의 위세 앞에서 이내 절망감으로 변한다.



그러나 일을 마치고 함께 앉아 대화를 나누는 산밍과 동료 노동자들의 눈에는 일하는 자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온기가 담겨 있다. 그 담담한 온기는 가난한 자들 간의 우정이자 유대감일 것이다. 건설현장에 버려진 하숙집 청년의 주검을 수습하는 것도 결국 그 노동자들이다.

산밍은 딸과 아내를 데려 가기 위해 산샤를 찾는다. 하지만 산샤를 떠나며 그가 동행한 사람은 딸과 아내가 아니라 산샤에서 만난 노동자들이었다. 함께 땀방울을 흘린 노동자들과 길을 떠나는 산밍의 모습에는 일하는 사람들 사이의 유대감에서 작은 희망을 찾으려는 감독의 의지가 녹아 있다.(황승현|영화평론가)

07. 07. 27.

P.S. 영화 <스틸 라이프>에 대해서는 작년 가을 씨네21에서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장문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1001&article_id=42355). 영화를 보고 나면 한번 더 읽어봐야겠다...  

P.S.2. 이번 '스페셜'을 위해 내한한 지아장커와의 인터뷰 한 꼭지도 옮겨놓는다.

한국일보(07. 07. 30) 중국 독립영화 대표주자 지아장커 감독 내한

중국 독립영화의 대표주자 지아장커(賈樟柯ㆍ37) 감독이 서울에서 진행 중인 자신의 특별전을 맞아 방한했다. 감독은 28일 ‘지아장커 스페셜’이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 필름포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속 성장의 그늘에서 소외되고 파편화된 소시민들의 이야기”라고 자신의 작품들을 설명했다.

“싼샤(三峽) 댐 건설로 1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사람의 터전을 떠나야 했고, 7,8개의 도시가 사라졌어요. 도시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도 해체되고 있어요. 너무도 빠른 속도로.” 데뷔작 <소무>부터 그의 시선은, 일관되게 현대화의 광풍 속에 사라지는 것들을 향해 있다.

이 시선은 세계 최대의 댐 공사인 싼샤공정(三峽工程)에 멎어, 최근작 <동>과 <스틸라이프>를 낳았다. “2,000년 된 도시가 2년 만에 사라지고 있다고. 미치지 않는 것이 이상한 거야.” <스틸라이프> 속 수몰민들의 이 대사에, 감독의 안타까운 절규가 겹쳐진다. 이 영화는 감독에게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안겼다.

“중국에서 점점 ‘현실’을 얘기하는 작가들 사라지고 있어요. 그래서 내가 더 (현실의 문제에) 집착하는 것 같아요.” 감독은 최근 중국영화의 경향에도 비판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첸카이커(陳凱歌), 장이머우(張藝謀) 등 중국영화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선배들이 상업영화로 전환, 판타지에 가까운 사극만 만들어 내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심의를 쉽게 통과하기 위해, 또는 해외에서 팔리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모두들 사극만 찍고 있어요. 하지만 나는 그런 영화를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는 ‘지하전영(地下電映)’이라고 불리는, 중국적 인디영화의 정신을 이어 나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감독의 뜻이 얼마나 반향을 불러 올 수 있을까. 그는 지극히 개인화, 자본주의화하는 중국 젊은이들의 모습에 종종 울분을 토해 왔다. “<스틸라이프>의 DVD가 60만장 정도 팔렸어요. 인터넷에서도 이 문제를 놓고 치열한 토론이 벌어지고요. 이 영화를 보고 싼샤로 여행을 가는 젊은이들도 생겼다고 들었어요.” 세계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중국 내에서 상영관을 찾기 힘든 그이지만, 3,4년 전에 비해서 그의 목소리는 분명히 희망적이었다.

감독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UFO 등 초현실적 이미지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는 변화 속에서, UFO의 등장도 그다지 비현실적이지 않은 것이라 생각했다”며 “모두들 행복을 쫓아 정신없이 달려가지만, 그 행복은 UFO 같은 존재가 아닐까”라고 말했다. 영화의 호흡이 매우 느리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우리 생활이 너무 빨라지고 있다. 생활의 과정을 보여 줄 새도 없이 지나가 버린다. 원래 그대로의 ‘시간’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로우예(婁燁ㆍ42) 등과 함께 6세대 감독으로 분류되는 지아장커는 <임소요> <플랫폼> <소무> 등, 화려한 성장의 외피에 가려진 중국인들의 아픈 내면을 영화에 담아 왔다. 그의 영화는 중국 정부의 개발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 때문에 2004년까지 상영이 금지되기도 했다.

다음달 2일까지 진행되는 지아장커 스페셜에서는 싼샤댐을 다룬 다큐멘터리 <동>과 극영화 <스틸라이프>, 세계화 흐름 속에 중국 민중의 현실을 우화적으로 그려낸 <세계> 등 3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자세한 정보는 필름포럼 홈페이지(www.filmforum.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유상호 기자)

07. 0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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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7-07-28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과 <세계>를 <스틸라이프>와 함께 필름포럼에서 아주 짧게 올리더군요. 난 <스틸라이프>를 보았고 그것은 꼭 <동>과 함께 보아야 한다는 정성일의 말대로 <동>을 볼 생각입니다.
뒤늦게 지아장커의 팬이 되었어요..

로쟈 2007-07-28 17:30   좋아요 0 | URL
나중에 감상을 좀 들어야겠네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근작 <폭력의 역사>(2005)의 국내상영 소식은 예고된 바 있는데, 곧 상영되는 모양이다(데이비드 린치의 신작 <인랜드 엠파이어>와 함께 최근 가장 주목되는 개봉작이다. 상업적으로가 아니라 영화적으로). 이번주 '씨네21'에서는 이 두 감독의 영화세계를 특집으로 다루고 있지만 아직 온라인에서는 읽을 수 없기에 대신 '영화평론가 오동진의 동시 상영관'에서 <폭력의 역사>에 대한 리뷰만을 옮겨놓는다. 분량이 읽기에 적합한 것도 옮겨오는 이유이다(기사에는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다).

문화일보(07. 07. 24) 가정을 지키려는 ‘家長의 폭력’

‘비디오드롬’과 ‘플라이’, ‘크래쉬’와 ‘엑시스텐즈’ 등의 영화로 기억되는 캐나다 감독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는 인간의 육체와 기계가 결합해 이루어지는 하이브리드(hybrid)한 영화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의 영화는 공포와 공상과학(SF)을 오가며 인간의 상상력이 얼마나 극단적일 수 있는지, 더 나아가 인간이 얼마나 혐오스러울 수 있는 존재인가를 파헤친다.

‘비디오드롬’에서는 인간이 텔레비전과 몸을 합치고 ‘크래쉬’에서는 주인공들이 결국 자동차와 섹스를 나누는 식이다. ‘플라이’같은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기계 대신 다른 생명체, 곧 파리의 유전자를 합쳐 결국 파리인간이 되고 만다.

이 해괴망측할 만큼 노골적으로 폭력적인 얘기들을 통해 크로넨버그는 의도적으로 반(反)휴머니즘의 노선으로 자신을 내모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나 그의 이 같은 반인간주의의 목표는 역설적으로 새로운 인간형, 새로운 인간성에 대한 탐구 곧 진짜 휴머니즘에 대한 것이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인간다움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야말로 그의 기이한 상상력이 닿으려고 하는 지점이다.



국내에서 뒤늦게 단관상영되는 크로넨버그의 2005년작 ‘폭력의 역사’는 전작들에 비해 에피소드들이 상당히 ‘인간적’이고 ‘구체적’이라는 데 특징이 있다. 기계인간이나 파리인간 따위는 이번 작품에선 등장하지 않는다. 크로넨버그는 이제 극단적 사유의 관념론자라는 평가를 벗어나려는 듯 인간 삶의 구체적 행태를 뒤좇는 데 주력한다.



미국 인디애나주의 한 작은 마을에서 소박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톰 스톨(비고 메텐슨)은 변호사인 아내 에디(마리아 벨로), 그리고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중년 가장이다. 하지만 그런 주인공의 평온한 일상은 어느 날 이 식당에 별다른 이유없이 살인을 일삼고 다니는 두 남자가 침입하면서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두 악당의 이미지는 마치 트루먼 카포티가 쓴 ‘콜드 블러드’의 두 악한들을 연상시킨다) 톰은 여종업원의 목숨을 위협하는 두 악당을 순식간에 해치우고 자신도 다치게 된다.



이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톰은 사람을 구한 영웅으로 방송을 통해 미국 전역에 알려지게 된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가 악몽이다. 필라델피아에서 왔다는, 언뜻 보기에도 마피아로 보이는 칼 포가티(에드 해리스) 일당은 톰 스톨의 식당과 집을 오가며 그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칼 포가티는 톰이 20년전 필라델피아에서 잔혹하기로 유명했던 킬러 조이 리치였다며 그에게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라고 강요한다. 자신은 절대 조이 리치가 아니라고 부인하던 톰 스톨은 이들의 집요한 추궁에 조금씩 본색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폭력의 역사’라는 다분히 학술적 분위기의 제목과 달리 이 영화는 폭력에 대한 역사적 이론이나 사회정치적인 거대담론을 내세운 작품이 아니다. 그보다는 폭력의 일상성 혹은 그 순환성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영화는 우리가 얼마나 폭력적인 삶에 노출돼 살아가고 있으며 폭력적인 문제에 얼마나 근접해 살아가고 있는가, 그 굴레에서 자유롭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 점을 나타낸다. 더 나아가 폭력은 결국 폭력으로 계속해서 귀결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이 영화가 말하려는 폭력의 일상화는 9·11 이후 전세계에 만연돼 있는 테러의 공포와 무관치 않다. 주인공처럼 일단 폭력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게 되면 자신이 그동안 지키려 애썼던 현재적 삶의 가치가 무엇이든, 잊고 싶은 과거가 어떻든 그 구별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누가 가해자였고 누가 피해자였으며 궁극적으로 누가 선하고 누가 악한가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폭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자기생명력을 가지고 운행되며 그럼으로써 결국 통제불능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아내 에디는 20년 가까이 과거를 속여 온 남편 톰을 용서하지 않는다. 톰으로 하여금 과거의 킬러, 곧 조이 리치의 삶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건 결국 누구인가. 칼 포가티 같은 마피아 일당인가 아니면 톰에게 마음의 벽을 쌓는 아내 에디인가. 폭력의 공모자는 안에 있는가, 밖에 있는가. 영화를 보면서 끊임없이 떠오르는 질문이다.(오동진 영화평론가)

07. 07. 24.

P.S. 폭력에 관한 책 몇 권을 독서목록에 올려놓고 있다. 그러다 공연히 톰의 경우처럼 '폭력적인' 나 자신을 '재발견'하게 될는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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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때리다 2007-07-24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흐. 이런 영화는 CGV 강남 같은 데에서는 개봉 안하나열?

로쟈 2007-07-25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그런 게 보이지 않는 폭력이지요. 대신에 쓸데없는 영화들만 주변에 널려 있는 현실...

수유 2007-07-28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데이비드의 영화는 즐기진 않으나 봐두어야 할 영화로 분류하고 날짜를 정하는 중입니다..그러고보니 즐겨 달려가 행복하게 봐야 할 영화들과 <폭력의 역사>같은 영화와 여유를 가지고 음미하듯 천천히 걸어가 볼 영화들로 내 방학의 영화들이 나누어지네요..^^

로쟈 2007-07-28 21:27   좋아요 0 | URL
방학의 '여유'가 느껴지네요. 부럽습니다.^^;
 

영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80년 광주'를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가 개봉되었다(가 아니고 다음주 25일 개봉예정이다). 지난주부터 언론과 잡지마다 시사회 리뷰들을 싣고 있는데 대체로 평이 좋은 편이다. 한국영화라서, 혹은 '광주'를 다룬 영화라서 띄워주는 분위기가 아니라 모처럼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갖춘 영화의 출현을 반기는 분위기이다. 그런 분위기에 편승해서 극장나들이에 동참해보는 것도 좋겠다(돈이 많이 들어간 영화라니까 본전은 뽑을 수 있도록). 여기서는 컬처뉴스에 실린 리뷰를 읽어보도록 한다.

컬처뉴스(07. 07. 20) 영화 한편의 힘! - <화려한 휴가>의 대중적 흡입력

영화 한 편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는 이미 여러 번 경험한 바 있다. 대중들의 기억 속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거나 희미한 북파공작원 사건의 비극을 다룬 영화 <실미도>가 엄청난 흥행을 하면서 사건의 실체를 규명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해서 일었다. 심지어 9시 메인 뉴스에서 연이어 등장할 정도로 대단했다. 실미도는 순식간에 명소로 떠올랐고 공작원이 처절하게 죽은 신대방 거리에서 추모인들이 노제를 지내기도 했으며, 실제로 북파공작원 출신들은 강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렇게 1200만 명이라는 대대적인 관객이 이 영화를 보면서 <실미도>는 하나의 신드롬이 되어버렸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영화의 힘은 세다.

요즘 한국영화의 주요 흐름 가운데 하나는 팩션영화인데, 팩션영화는 대부분 위에서 언급한 효과를 노린다.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나 인물을 바탕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해 극적 재미를 추구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바탕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 대중들은 영화적 상상력과 역사적 사실을 혼동하기도 한다. 즉 영화적 상상력을 실제적 사건으로 혼동하는 것이다. 팩션영화가 흥행하면 역사적 사실을 추적하는 작업으로 이어지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신드롬이 되면 사소한 것으로까지 관심이 증폭되면서 역사적 사건의 실체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나는 광주민중항쟁을 다룬 <화려한 휴가>가 이런 단계에 올랐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사실 광주민중항쟁을 영화로 만든다고 했을 때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 없었다. 기존에 제도권에서 만들어진 광주에 대한 영화는 대부분 지식인의 패배주의적 시각을 담고 있는 주변부적 영화였다. 단 한 번도 정면에서 다루지 않았다(<부활의 노래>를 제도권 영화로 보기는 어렵다). <꽃잎>이나 <박하사탕>을 보면서 왜 광주를 저렇게밖에 그릴 수 없는지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나는 <박하사탕>에 대해서는 생각을 달리한다). 그러다가 문뜩 한 가지 결론을 얻게 되었다. 지식인의 패배주의적 시각으로 광주를 그린 이들은 대부분 1980년 5월에 성인이었던 이들이다. 성인의 눈으로 양민이 무참히 학살된 사건을 바라본 그들에게 광주는 부채로 남았고, 때문에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감히 광주를 정면에서 그리지 못하도록 한 것이라고. 

그래서 생각하게 되었다. 다음 세대가 등장해야 한다고. 1980년 광주의 원죄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세대가 등장해 정면에서 다루는 것을 보고 싶었다. 총칼 앞에서도 일어서지 않을 수 없었던 이야기를 학수고대했다. 소시민이 영웅(또는 전사원형)이 되어가는 과정은 신화에서 이미 숱하게 보아왔던 익숙한 주제이다. 그러니 충분히 흥행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광주민중항쟁이 점점 잊혀져가는 현실에서, 대자본이 들어가는 영화를 누가 만들려고 하겠는가. 광주민중항쟁을 다루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역사적 사건으로 잊혀지는 것은 아닌지 두렵기도 했다.

사실 광주의 학살이라는, 너무나 무거운 짐으로부터 벗어나 객관적으로 그리는 작업은 매우 어렵고 고단한 작업이다. 피해자나 그의 가족이 엄연히 생존해 있는 상황에서, 게다가 가해자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제 아무리 잘 재현한다고 해도 ‘잘해야 본전’인 게임이다. 때문에, 어쩌면 광주민중항쟁을 그린 영화를 영영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불안감을 한 번에 잠식시킬 수 있는 영화가 ‘화려하게’ 등장했다. <화려한 휴가>가 문제의 영화이다. 이 영화가 특이한 것은 1970년대생이 만들었다는 것이고, 대구 출신의 감독이 연출했다는 것이며, 광주를 정면에서 다루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결합하면 광주의 시각에서 벗어나 광주를 객관적으로 그리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문제가 있다. 이 영화의 순제작비가 100억 원이다. 홍보비를 합치면 120억이 된다. 말 그대로, 블록버스터인데, 이것은 흥행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진다. 이 영화가 흥행에서 참패하면 제작사인 기획시대의 운명이 끝나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영화의 위기가 가속화된다. 감독과 제작사는 분명 이 점을 명심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광주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10일간의 광주를 대중적으로 그리는 것이다. 10일 동안 계엄군에 맞서 싸우지 않을 수 없었던 시민들의 내적 파노라마를 멜로적 감수성으로 그리는 것이다. 이름 없는 시민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캐릭터를 구축한 후 그들의 의리와 투쟁을 신화적 내러티브로 전개해 대중성과 현장성을 동시에 획득하는 것이다. 소시민이 영웅이 되어가는 신화의 구조를 이 영화는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한편으로 감독은 당시의 현장을 복원하는 것에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 이 영화의 현장성을 위해 당시 사진과 다큐를 생생히 화면으로 다시 복원했다. 이미 광주항쟁 비디오나 사진을 본 이들은 한번쯤은 본 듯한 장면들이 영화에서 이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감독은 사실적인 느낌을 살리려고 했다. 물론 사실적인 느낌의 복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해 대중적으로 재미있고 눈물 나도록 포장했다. 100억 원을 들인 영화가 사진이나 다큐와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또는 같아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인지 <화려한 휴가>는, 전혀 다른 사건이지만, <실미도>와 닮아있다. 군인이 등장한다는 점이나 냉전체제의 산물이라거나 주인공이 대거 희생된다는 점, 또는 액션 스펙터클의 볼거리라는 점을 떠나서, 관객들의 입장에서 보면, 정서적 동일시 효과가 이상할 만치 비슷하다.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서 각자의 개성을 토대로 이야기를 구축하다가 마지막에 모두 전사한다는 이야기 구조가 비슷하고, 무엇보다 마지막 전사 시퀀스는 비교 분석이 가능할 정도로 닮았다. 죽어가는 시민군들이 자신의 이름과 하고픈 말을 무전기로 남기고 죽을 때의 모습은 <실미도>에서 병사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는 장면과 거의 비슷하다. 두 영화가 가지는 대중적 흡입력도 상당히 흡사하다. 이 말은 <화려한 휴가>는 대중적으로 흡입력이 크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 영화는 의도한 바를 성취했다. 초반부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나날들이 지나면 처절한 투쟁의 현장이 너무도 애절하게 이어진다. 사이사이 멜로적 코드의 여백이 배치되어 있고 여백을 넘으면 강한 템포의 학살과 투쟁이 이어진다. 때문에 이 영화를 보면 웬만한 이들이라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 눈물을 통해 젊은 세대들에게는 불과 27년 전에 이런 학살이 자행되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교과서가 될 것이고, 기성세대들은 자신들의 원죄의식을 달래주는 한판 굿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5.18에 대한 속죄의 영화이자 뒤늦은 만가(輓歌)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대중영화다 보니 명확한 장점과 뚜렷한 한계를 지닌다. 대중적으로 알리 쉽게 캐릭터를 구축하고 내러티브를 전개해서 누구나 영화를 통해 1980년 광주의 당시 모습을 확인할 있지만,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과잉된 정서로 사건을 다루다 보니 실상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계엄군이 광주를 진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은 당시의 시국 인식보다는 특전사 대장의 충성의 발로처럼 보이고, 해방구를 접한 후 시민군들은 서로를 격려해주는 동지애만 강조할 뿐 그들의 갈등과 분열을 제대로 그리지 못했다. 투쟁하자는 입장과 투항하자는 입장의 대립이 거의 없다. 이런 불만은 이 영화가 시민군들의 입장을 철저하게 옹호한 영화라는, 때문에 대선 정국에서 정치적으로 이용할 영화라는 반대편의 비판을 불러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한계를 충분히 끌어안을 만큼 <화려한 휴가>는 대중적으로 몰입이 강하다. 이것만으로도 일반인이 광주민중항쟁의 실체에 대중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영화 한 편이 모든 것을 다 보여 줄 수는 없다. 영화는 단지 한편의 영화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목적한 바를 충분히 성취했다. 이제 남은 몫은 이후의 영화가 새롭게 다루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시도할 수 있어야 한다. 어차피 역사가 팩트에 대한 해석이듯이, 영화도 광주에 대한 하나의 해석이나 재현에 지나지 않는다. 해석이 다양하고 풍부해지면 그만큼 우리의 현재가 두터워지는 것이고 현재가 두터워지면 과거와 미래도 두터워진다. 이 한 편의 등장으로 광주민중항쟁을 다양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강성률/ 영화평론가)

07. 07. 20.



P.S. 검색해보니, 필자인 1970년대생 영화평론가 강성률씨의 책으론 <영화입문>(리토피아, 2005), <하길종, 혹은 행진했던 영화 바보>(이론과실천, 2005), <친일영화>(로크미디어. 2006) 등이 나와있다...

P.S.2. 생각난 김에 어제 읽은 인터뷰 기사도 옮겨놓는다. <화려한 휴가>의 주연을 맡은 배우 김상경씨와의 인터뷰이다. 내용중에 가장 인상적인 건 김지훈 감독이 이 영화를 일종의 '재난영화'로 찍고 싶어했다는 것. 이 영화의 성취가 그러한 발상에 힘입은 것이리란 생각을 했다.

문화일보(07. 07. 19) ‘5월 광주’… 그 억울함 함께 느꼈으면… 

‘화려한 휴가’의 주인공 김상경을 만났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혈육을 잃고 통곡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역사의 일부가 된 택시 기사 강민우를 맡은 그는 시사 이후 ‘화려한 휴가’에 쏟아진 호평에 무척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는 “배우야 고생해서 찍은 작품의 반응이 좋으면 그보다 행복한 일이 없겠지만 더군다나 5.18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던 어린 관객에서부터 우리 어머니처럼 나이드신 분들까지 모두 공감하고 눈물 흘리는 영화로 완성된 것이 기쁘다”고 말했다.

―정치 이야기가 배제된 광주 영화다. 이런 영화로 완성될 것이라고 예상했나.

“시나리오를 받고 가장 좋았던 게,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라는 점이었다. 정치색이 강하고 민주열사가 주인공인 영화일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읽기 시작했는데 보면서 좀 놀랐다. 초반에는 아주 평범하고 순진한 사람이 여자한테 잘 보이려고 애쓰는 얘기도 코믹하게 나오고. 이 영화를 통해 사람들이 광주를 정치적 무게감 없이 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에게 헌신하는 착한 민우는 그동안 맡아온 캐릭터와 많이 다르다.

“드라마에서는 의사나 변호사, 검사 등 전문직, 영화에서도 남루하긴 한데 그래도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좀 삐딱한 역할을 많이 했다. 이번 영화의 강민우처럼 순수하고 담백한 역할은 처음이다. 그래서 가장 보편적이고 평범한 사람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역사의 무게감을 많이 느끼지 않고 그냥 평범한 일상, 보편적인 감정을 담으려고 했다.”

―김지훈 감독이 어떤 부분을 가장 강조했나.

“역시 평범한 사람들의 심리, 마음을 강조했다. 그냥 보통 사람들이 느꼈을 고통, 이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의 감정…. 감독은 ‘화려한 휴가’가 5·18을 소재로 하지만 정치 영화가 아닌 ‘재난 영화’로 찍고 싶다고 하더라. 갑자기 당한 사람들에게는 재난처럼 느껴졌을 것 같다.

―‘재난 영화’라는 표현에 공감하는지.

“‘재난 영화’의 의미도 여러가지니까 공감한다. 갑자기 당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온 나라에 난리가 난 것 아닌가. 기자 시사 때도 반응이 좋았지만 일반 시사, VIP 시사 때는 정말 좋았다. 자막 올라갈 때까지 사람들이 안나가더라.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피해자들이 느꼈을 감정이 그만큼의 에너지를 갖고 전달된 덕일 것 같다.”

―영화에 가해자가 없다.

가해자나 총을 쏘라고 명령한 사람이 누구인지 하는 것은 다른 데서도 공부할 수 있다. 우리 영화는 그저 그때 광주 사람들의 그 심정, 억울함과 비통함을 공유하자는 영화다. 사실 나도 그랬지만, 타지역에서 5·18 광주를 진짜 가슴으로 느끼고 슬퍼한 사람이 많았을까? 영화를 보면서 그들이 얼마나 억울했을지,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느끼고 공유했으면 좋겠다. 난 내가 나오는 영화를 못보는 편인데 이 영화는 계속 보게 되고, 볼 때마다 울게 된다. 그건 진짜 감정이 담겼기 때문인 것 같다.”

―왜 본인이 출연한 영화를 못보나.

“내가 출연한 것도 잘 못보고, 사실 영화를 잘 안본다. 고민인데, 이제는 내가 가진 이미지를 지우기에 바쁘다. 연기하려고 하면 내가 어디 어디서 연기한 것, 누구 누구의 연기가 떠오른다. 연기 시작한 지 벌써 10년인데 찌꺼기, 때가 많이 낀 것 같다. 순수한 감정에서 연기가 올라와야 할텐데 기술적으로 계산하지 않은 감정을 표현하기가 힘들어진다. 영화를 안보는 대신 다큐멘터리를 즐겨본다. 책도 소설보다는 인문과학서나 인간에 대한 분석이 담긴 책이 좋다. 어떤 내용이든 현실과 밀착되지 않은 이야기는 내 몸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무덤덤한 거 아닌가.

“무덤덤하다면 ‘화려한 휴가’에서 동생이 죽었을 때 그렇게 우는 모습이 나올까? 감수성은 예민한 편이다. 슬픈 다큐멘터리 보다가도 1초면 눈물이 난다. 그냥 믿기지 않는 인위적인 얘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갖고 있는 배우로서의 이미지도 그런 것 같은데, 늘 옆에 있는 것 같고 아주 일상적인데 일상적이지 않은 것을 표현하는 게 난 재밌다.”(전영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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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7-07-20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개봉되었군요. 기다리고 있었는데...

로쟈 2007-07-20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극장에 간판이 다 붙어 있어서 이번주부터인 줄 알았는데, 다음주부터라는군요.^^;

twinpix 2007-07-20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족들과 다다음주 쯤에 볼 예정이에요. 평을 읽어보니 괜찮을 것 같네요.

로쟈 2007-07-21 08:52   좋아요 0 | URL
단체관람을 하시는군요.^^

테렌티우스 2007-07-21 0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0년에 고1이었는데, 이 영화 '꼭' 잘되길 바라봅니다...^^

로쟈 2007-07-21 08:52   좋아요 0 | URL
되돌아보면, 험난한 세월을 사신 거지요.^^;
 

지난번에 '거장들의 영화가 온다'(http://blog.aladin.co.kr/mramor/1378961)란 기사를 소개한 바 있는데, 데이비드 린치의 신작 <인랜드 엠파이어>에 관한 뉴스기사를 찾다가 이달 20∼27일에 CGV압구정에서 열리는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의 개막작으로 상영된다는 걸 알았다(극장개봉은 26일). 그 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이 영화평론가 정성일씨이다. 마침 네이버의 이동진닷컴에서 정성일씨와의 인터뷰를 다루었기에 겸사겸사 읽어보도록 한다(참고로 그가 영화 데뷔작을 찍는다는 소식은 지난달에 잡지를 통해서 알게 됐는데, 영화감독들이 아주 기뻐하며 벼르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동진닷컴(07. 07. 16) [인터뷰] 정성일 평론가, 영화제 개최에서 감독 데뷔까지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이 7월20일부터 7월27일까지 서울 ‘CGV 압구정’에서 열린다. 올 들어 유달리 많은 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이 영화제가 특히 주목되는 이유는 디지털 영화에만 집중하고, 경쟁 부문에 중점을 둔 행사이기 때문이다.

아시아 각국의 신진 감독들이 출품한 이 영화제 경쟁 부문에는 모두 20편이 ‘발견’을 기다리며 포진해 있다. 또한 21세기 디지털 영화의 회고전 성격을 지닌 비경쟁 초청 부문에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10’, 지아장커의 ‘동’, 바흐만 고바디의 ‘전쟁은 끝났다?’, 가와세 나오미의 ‘출산’, 누리 빌제 세일란의 ‘기후’, 박찬욱의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에릭 로메르의 ‘영국 여인과 공작’, 마이클 만 ‘콜래트럴’, 오시이 마모루의 ‘다치구이시 열전’ 등 디지털 영화의 최전선에 섰던 화제작들이 즐비하다. 개막작으로는 데이빗 린치의 첫 디지털 영화인 ‘인랜드 엠파이어’가 상영된다.

그런데 하나 더.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이 주목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정성일이라는 이름 때문이다.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다른 이들이 쓸 수 없는 것을 써온 영화평론가 정성일씨는 지난 20년간 한국 평론계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박기용 한국영화아카데미 원장과 함께 공동 집행위원장으로서 직접 이끌어 온 이 행사의 프로그램 곳곳에서 그의 숨결을 느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가 디지털 영화의 가능성과 미래에 대해 누구보다 깊게 탐구해온 사람이었다는 점에서도 이번 영화제는 관심을 끈다.

영화평론가에게 가장 설레는 순간은 언제일까. 자신의 영화관(映畵觀)을 그대로 투영해 영화제를 열 때, 혹은 보는 자의 위치에서 만드는 자의 위치로 옮아가 감독의 자리에 서게 될 때가 아닐까. 정성일씨는 지금 그 두 가지 일의 시작을 눈 앞에 두고 있다.

해가 쨍쨍했던 15일 오후, 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는 그를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www.cindi.or.kr)이 열리는 ‘CGV 압구정’ 근처 카페에서 팥빙수와 아이스커피를 사이에 둔 채 만났다. 구어임에도 거의 모든 문장을 ‘~어요’가 아닌 ‘~습니다’로 맺는 그의 종결법과, 질문을 듣자마자 대답하게 될 내용의 가짓수를 미리 가늠해 숫자로 박아놓은 뒤 하나씩 설명하는 연역적 화법, 그리고 듣는 이를 거듭 감탄케 만드는 그의 치열함과 뜨거움은 여전했다. 그로부터 듣는 새로운 영화제 이야기. 아울러, 마흔아홉의 나이로 처음 만들게 되는 감독 데뷔작 이야기.



-처음에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을 어떻게 기획하시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작년 여름쯤이었을 겁니다. 우연한 기회에 CJ 문화재단 분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젠 CJ도 영화 사업을 해온 지 10년이 됐으니 사회에 기여하는 일을 해야 되는 게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어떤 일이 가능하냐고 반문하시길래, 영화계의 독과점 폐해를 막을 수 있는 다양성 사업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가장 좋은 방법은 영화제라고 대답했습니다. 영화제는 기업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건강한 사회환원이라는 게 제 견해였기 때문입니다. 그랬더니 문화재단 측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하고서, 몇 주 후 제게 구체적으로 어떤 영화제를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래서 7년 전 전주영화제를 맡았을 때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영화제가 어떤 것이었는지부터 떠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생각을 굴리는 과정에서, 그 사이 테크놀로지가 발전하고 디지털 영화도 발전해왔으니, 이젠 하나의 섹션 정도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디지털 영화제를 해볼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 결과가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입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원장이신 박기용 감독님과 공동 집행위원장으로 일을 하고 계신데요.

“이 영화제를 저 혼자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까지 제가 해온 일은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것이니, 만드는 사람들의 고민은 과연 어떤 것인가, 그리고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영화를 만드는 새로운 세대의 생각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잘 아는 파트너와 함께 논의하면서 진행해야 한다고 본 겁니다. 저는 박기용 감독의 첫 영화인 ‘모텔 선인장’은 특별히 좋아하진 않습니다만, 두번째 영화인 ‘낙타(들)’은 정말 굉장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한국에서 디지털로 만든 중요한 첫 영화가 있다면 이 작품이고, 디지털 한국영화사를 쓴다면 그 영화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느낄만큼 임팩트가 컸습니다.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제가 강의를 해오면서 지켜본 박감독은 일종의 페스탈로치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학생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있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학생들 면전에서는 ‘재능이 없으니 영화를 그만두고 농사나 지어라’고 냉혹하게 말하지만, 그들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열정적으로 무슨 일이든 다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디지털 영화에 대한 확신과 새로운 영화 세대에 대한 사랑을 함께 갖춘 박감독 이상의 파트너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의 프로그래밍과 운영방식을 보면 영화제 이름이 드러내듯 디지털 영화에 집중한다는 특성 외에도 두드러지는 측면들이 있습니다. 전 이런 것들이 이 영화제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먼저, 왜 경쟁 영화제입니까. 경쟁을 중시하면 프로그래밍에 있어서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는 등 운영상 쉽지 않은 점이 많을 것으로 추측되는데요.

“우리끼린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야 하겠지요.(웃음) 심지어 칸 영화제조차 상영작의 3분의 1이 쓰레기 영화입니다. 그런데도 영화제에서는 다들 좋다고만 말합니다. 칸 영화제까지 올라온 것만으로도 훌륭하다고 말하곤 하는데, 저는 그렇게 좋게만 봐주려고 하는 분위기가 역겹다고 생각합니다. 아닌 것은 아닌 것입니다.

필름을 사용하지 않는 디지털 영화가 시작되면서 고무적인 변화도 많지만 나쁜 점들도 생겨났습니다. 무엇보다 디지털을 통해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되면서, 고민이 대폭 줄어들게 됐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필름으로 찍을 때는 모든 게 다 돈이 많이 드는 일이니까, 감독이 매순간 숙고 끝에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디지털이 등장하면서 고민이 사라진 겁니다. 단편도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보다 더 역겨운 것은 센세이셔널한 영화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용기 있는 척 정치적인 토픽을 던져놓고, 사람들이 그 토픽 때문에 지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겁니다. 그 순간 평하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토픽의 긴급성 때문에 마음에 없는 공허한 지지를 하거나, 아예 침묵을 지키는 겁니다. 이런 점들이 디지털 영화가 시작되면서 만연하게 된 조류입니다.

이런 변화 과정에서 영화제들은 관심과 돈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두가지에 집착합니다. 하나는 양의 경제학입니다. 얼마나 많은 영화를 영화제로 끌어올 수 있는가, 하는 점이죠. 그런데 제가 궁금한 것은 그 많은 영화를 다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과연 그 영화제의 프로그래머는 그걸 다 봤느냐 하는 의문인 겁니다. 양의 경제학이 질의 저하를 가져올 수 밖에 없고, 한 편이라도 더 갖고 오기 위한 경쟁이 영화제 사이에서 벌어질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또 하나는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센세이셔널한 영화,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받은 영화, 정치적인 토픽이 있는 영화 위주로 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상은 언뜻 푸짐해 보이는데 먹으면 하나같이 맛 없는 반찬으로 차려진 밥상은 우릴 화나게 하지 않습니까. 이젠 그런 영화제는 충분하다는 겁니다. 새로운 재능을 발견하고 지지하는 올바른 방법은 위로와 격려가 아닙니다. 한 자리에 모아놓고 배틀(battle)을 벌이게 한 뒤 ‘당신의 재능으로 한번 견뎌봐’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걸 돌파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지지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영화제가 하나 뿐이라면 이런 방식이 옳지 않겠지만, 영화제가 충분히 많은 지금은 하나쯤 경쟁 방식을 통해 지지해야 할 이름을 소개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본다는 겁니다.”

-또 하나의 특색은 경쟁 부문이 아시아 영화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부산영화제의 뉴 커런츠 부문도 그렇긴 하지만,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은 경쟁 부문이 핵심이기 때문에 이런 특징이 유독 두드러져 보입니다. 왜 아시아 영화입니까.

“그 질문에 대해서는 주관적으로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건 영화제를 하고 있는 저와 동료들이 전부 아시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시아의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생각하고 싶어서입니다. 한 영화제가 전세계의 모든 영화를 다 알고 싶다는 태도를 갖는 것은 제국주의적 발상이라고 봅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한국에서 열리는 영화제가 전세계 모든 영화들을 다 안고 가고 싶어하는 것은 일종의 백인 신화의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전주영화제를 처음 시작하느라고 전세계의 영화제를 돌아다녔을 때 발견하게 된 것은 아시아에 영화제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는 디지털 영화가 막 시작되었을 때였는데, 이른바 오지에서 새로운 재능들이 나오면서 새로운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아시아의 새로운 재능은 서양 영화제의 게이트키핑(gatekeeping)을 통과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알려질 기회가 없습니다. 저는 그런 새로운 재능들에게 작더라도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그게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전주 영화제 때 제가 의무처럼 염두에 뒀던 겁니다.

지금 영화제 이름이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인 것은 향후 이 영화제가 단계별로 자매결연 도시를 늘려가면서 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시네마 디지털 홍콩’과 ‘시네마 디지털 마닐라’를 거쳐 ‘시네마 디지털 텔아비브’까지 열리기를 바랍니다.”

-시상방식도 참 독특합니다. 일반적으로 유수의 국제영화제는 그 명칭이 무엇이든, 1등상에 해당하는 작품상을 준 뒤 심사위원대상, 감독상 같은 명칭으로 2등상이나 3등상을 수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제는 감독들이 심사위원이 되어 수여하는 감독상을 비롯해 비평가상 젊은비평가상 관객상까지, 심사위원들을 달리해가면서 한 작품만 골라 시상하기로 했습니다. 왜 이런 방식을 고안하신 건가요?

“저희가 생각하는 최고의 결과는 그렇게 네 개의 상을 한 영화가 다 가져가는 것입니다. 심사는 분야별 심사위원끼리 다른 방에서 각자 토론해서 서로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할 겁니다. 이전에 영화 관련 심사를 해보면 항상 느끼는 게 안배의 원칙입니다. 하지만 심사위원 등에 따라서 안배하는 것은 올바른 경쟁 방식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안배를 없애기 위해 각 부문별로 한 편씩에만 상을 주자는 겁니다. 감독들이 그렇듯, 심사위원들도 자기 이름을 걸고 ‘배틀’을 하라는 겁니다.”

-디지털 영화는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예술의 민주주의에는 명암이 공존하고, 유행의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변화가 유독 영화에만 있었던 것은 아닌데요, 일례로 디지털 영화의 등장은 대중음악에서 펑크의 발흥과 비교할 만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미 헨드릭스처럼 뛰어난 테크닉을 지닌 음악 엘리트들이어야 기타를 칠 수 있다고 보았던 60-70년대가 저물 무렵 나타난 펑크는, 섹스 피스톨스의 경우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듯 코드 3개만 알면 아무나 기타를 칠 수 있고 누구나 록밴드로 활동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런데 초기의 이른바 펑크 정신과는 반대로 이젠 펑크 밴드들도 테크닉을 중시하고 가사도 가다듬는 상황이 됐습니다. 펑크에서 출발한 그린 데이 같은 그룹은 이제 9분짜리 대곡까지 연주하니까요. 그렇다면 영화의 경우는 어떨까요. 제가 묻고 싶은 것은 누구나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시느냐는 겁니다. 누구나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게 무슨 뜻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게 쟁점입니다. 그 질문과 관련해서 어떤 사람들은 그게 바로 희망이라고 환호하는 반면, 또 다른 사람들은 그래서 영화를 망쳤다고 탄식하기도 합니다. 저는 두 가지 반응 중 어느 쪽에서도 반문을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나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예술 매체에의 접근에 대한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예전에 특권이었던 일을 이제는 누구나 할 수 있게 됐다는 겁니다.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의 경쟁 부문 출품 감독 면면을 보면 정말 놀랄 만한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중국의 어느 일용 노동자가 돈을 빌려줬다가 받지 못해서 대신 채무자의 DV 카메라를 받아 왔습니다. 그 후로 그 사람은 쉬는 날마다 DV 카메라로 취미 삼아 이것저것 찍기 시작했고 스스로 촬영이나 편집 같은 영화의 테크닉을 깨달아가면서 마침내 영화를 만들게 됐습니다. 저는 그런 영화들이 다 좋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출품된 영화들을 봤을 때 그 결과물들을 보고서 놀랐습니다. 저는 이것이 희망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펑크 초기에 난립한 밴드들 중 섹스 피스톨스나 클래시 같은 몇몇 밴드를 제외하고는 다 쓰레기 밴드들이었습니다. 그게 민주주의의 좋은 점이자 나쁜 점입니다.

이번 영화제 때문에 보게 된 디지털 영화들 중에서는 놀라운 영화도 많지만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영화도 많았던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영화평론가나 영화전문기자 같은 게이트키퍼들의 역할이 더욱 더 중요해졌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취미라고 생각하고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사실 이 영화는 굉장한 거야’, 혹은 ‘당신은 굉장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 형편 없는 영화는 그냥 당신의 블로그에만 올려줘’라고 말할 수 있는 게이트키퍼 말입니다. 예술적 감식안을 갖고 있는 게이트키퍼들은 재능을 발견하거나 충고를 하는 일에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한국 영화 커뮤니티에서 결핍된 게 바로 게이트키핑 장치라고 봅니다. 영화의 만듦새와 상관 없이 영화 외적인 이유로 각광을 받는 작품들이 많은 상황에서, 그런 작품들에 기꺼이 반대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겁니다. 디지털은 그런 점에서 만드는 사람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비평하는 사람에게도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우리가 뛰어난 재능을 알아보지 못해서 그 재능이 스스로 포기하면, 그 책임은 상당 부분 비평하는 사람에게도 있습니다. 반대로 예술 사기꾼을 알아보지 못한 게이트키퍼들도 엄격히 비판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게 비평 커뮤니티의 의무입니다.”



-소설가 김영하씨가 영화제 트레일러(예고편)를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이 영화제의 특성이 감지되는 것 같습니다. 일단 영화를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디지털 영화의 축제와 잘 맞아 떨어지지요. 그런데 한 편으론 그 ‘영화 문외한’ 김영하씨가 문학이라는 또다른 예술 매체의 뛰어난 재능이라는 점에서 정반대의 의미도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 김영하씨에게 트레일러를 의뢰하셨습니까?

“(손가락을 펴 보이면서) 세가지였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김영하씨가 시나리오 각색 작업도 했고 자신의 소설이 영화화되는 일도 경험했기에 상당 부분 알고 있겠거니 짐작했는데, 영화를 무척 좋아하고 많이 본 사람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영화 창작 과정에 대해서 거의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는 게 의외였다는 겁니다. 사실 영화를 좋아하면 현장도 보고 싶어하고 참견도 하고 싶기 마련인데 현장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조직의 쓴 맛을 보여줘야지.’(웃음) 제안을 했더니 흔쾌히 모험을 받아들여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김영하씨는 카메라 자체를 촬영 이틀 전에 받아서 연습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작동법만 익혀서 자동으로 놓고 찍었답니다. 김영하씨의 완성된 트레일러에는 테크닉이 없고 아이디어만 있습니다.

두번째 측면이란 바로 아이디어와 기초적인 작동법만 갖고서 대상과의 스킨십이 가능하겠는가를 우리도 알고 싶었다는 점입니다. 찍어온 것 보니 김영하씨의 말투처럼 트레일러도 툭툭 던지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툭툭 던지면서 사실상 본인은 머리 속에서 편집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저는 박기용 감독이 이 영화제에 관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필름 시네마가 이미지 메이킹이라면, 디지털 시네마는 이미지 테이킹이라고 말했던 것을 인상적으로 들었습니다.

세번째 의미는 이번 작업을 통해 김영하씨가 그걸 보여주었다는 겁니다. 메이킹 한 게 아니라 보이는 것들을 찍었고 그걸 테이킹해서 의미를 만들어낸 것이니까요. 그는 영화로 자기의 문장을 써냈습니다. 굉장히 성공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디지털이라는 테크놀로지에 두려움을 느끼는 아날로그 세대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김영하씨도 했는데 못할 게 무엇이겠습니까.”

-2000년 12월에 영화잡지 키노 편집장을 그만두셨습니다. 그때 하신 인터뷰에서 제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이제 가급적 영화에 대해 글 쓰는 것을 그만두고 싶다고, 사람이 마흔살이 되면 자기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에도 감독으로 영화를 직접 만들려고 하셨고, 프로그래머로 전주 영화제를 출범시키셨습니다.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을 여시고 감독 데뷔를 준비하시는 지금 상황이 그때와 무척 흡사하다고 여겨지는데요, 어떻습니까. 이제 곧 쉰이 되어가시는데 지난 40대를 돌아보시면 어떤 기분이 드시는지요. 2000년에 30대를 단번에 훌쩍 지나갔다고 회고하셨듯, 40대도 그러셨는지요.

그 기간 중에 우선 임권택 감독님에 대한 인터뷰 책을 버전 업 시킴으로써 해묵은 부채를 청산했습니다. 임감독님에 대한 인터뷰를 다시 정리해야 한다는 게 항상 제 마음 속에 부채로 남아 있었으니까요. 그 작업에 거의 2년 반이 걸렸습니다. 그 책을 읽으시는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로선 자랑스런 작업이었습니다. 저는 영화연구자들이 아니라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이 임감독님의 뭔가를 훔쳐내고 싶을 때 가져갈 수 있는 도구상자로 이 책을 활용했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두번째로는 키노라는 잡지를 만들면서 정기적으로 뭔가 마감을 한다는 게 사람을 참 황폐하게 만드는 일이었다는 점을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이동진 기자도 잘 아시겠죠.(웃음) 마감이 끝없이 연속되는 상황에서 충전은 불가능합니다. 자신을 다 퍼내어버리는 것이니까요. 키노를 그만둘 때 쯤에는 제가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그만 두려 한 것은 사실 그보다 2년 전이었는데, 키노가 사정이 어려워서 혼자 빠져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 사이에 무척 황폐해졌는데, 아마도 그 시기의 글들이 제가 쓴 글 중 가장 나쁜 글이었을 겁니다. 그 과정을 끝내고 나서 제게 재활 기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런 시간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임감독님 책을 만들었고, 유랑하다시피 영화제를 떠돌았고, 글은 ‘씨네21’과 ‘말’지 정도만 쓰고 쉬었습니다.

그러자 그 다음엔 무엇보다 이젠 나를 위해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적잖은 자본이 필요하고 스탭도 필요합니다. 두 편의 영화를 준비했는데 그 과정에서 잘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세번째 영화를 준비중인데, 아직 자세히 이야기할 단계는 아니지만, 이제까지 작업한 영화들 중에선 가장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는 감독 데뷔와 관련해서 저 자신이 항상 인용했던 말을 제 자신에게 하고 싶은 겁니다.”



-‘영화를 사랑하는 첫번째 방법은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고, 두번째 방법은 영화평을 쓰는 것이며, 마지막 세번째 방법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라는 프랑수아 트뤼포의 발언을 말씀하시는 거지요?

“네. 그렇습니다. 얼마 전 씨네21을 통해서 정윤철 감독이 저를 인터뷰했을 때 정감독이 마지막으로 ‘왜 영화를 그렇게 만들고 싶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말 속에는 아마도 ‘당신이 영화를 만들면 세상이 깜짝 놀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란 뉘앙스가 들어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게 유치하지 않습니다. 또 그런 영화가 있지도 않습니다.

제가 영화를 만들고 싶은 이유는 딱 한 가집니다. 오랜 세월을 영화를 보고 또 영화 책을 읽으면서 열심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같은 자리를 뱅뱅 맴돈다는 느낌이 들고 있습니다. (가슴에 두 손을 얹고)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겁니다. 그게 정말 너무 괴롭습니다.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합니다. 자다가 벌떡 일어날 정도입니다.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해결 방법은 하나입니다. 다른 이와 고민을 나누고 같이 해결해나가는 방법입니다. 그러려면 영화를 만드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어떤 상황을 어떤 쇼트로 어떻게 찍을 것인가가 정말 중요한데, 내가 여러 쇼트로 고민하고 있는 것을 히치콕이 하나의 쇼트로 해결하는 것을 보면 정말 놀랍습니다.

저는 최근 두기봉의 ‘익사일’을 보면서 천국에 다녀온 기분이었습니다. 인물을 그 공간으로부터 도저히 빼낼 수 없다고 본 상황에서 인물이 아무 충돌 없이 빠져나오는 쇼트가 있는 것은 매직의 순간입니다. 그런 문제를 두고 영화의 친구들과 맹렬히 토론하고 싶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방법을 찾고 싶습니다. 그러면 영화에 대해서 제가 좀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간절한 제 소망은 사실 영화를 조금이라도 더 잘 보고 싶다는 생각인 셈입니다. 그게 저의 가장 큰 욕망입니다.”

-어떤 말씀이신지 너무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렇게 엉뚱한 질문이 불쑥 솟아오릅니다. 꼭 끊임없이 더 나아가야 하십니까. 어떤 지점에서도 완전한 만족이란 불가능하겠지만, 그냥 그대로 영화를 보면 안 되는 걸까요.

“돌려서 반문하겠습니다. 이동진 기자도 영화를 더 잘 보고 싶으시잖습니까. ‘익사일’을 봤을 때, ‘레이디 채털리’나 ‘밀양’을 봤을 때, 혹은 홍상수나 박찬욱의 신작을 봤을 때, 단번에 핵심을 보고 싶잖습니까. 그런 핵심이 희미하게 보이고 스스로가 불안해질 때 괴롭지 않습니까. 영화에 대한 사랑이 의심스러울 때 너무 불안하지 않습니까. 사랑을 확인받고 싶지 않습니까. 영화에 대한 글을 함께 쓰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동진 기자의 글을 보면 어떤 것들은 확신이 있는데 어떤 것은 그렇지 않다는 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확신이 없는 듯 느껴지는 글을 읽을 때는, 테크니컬하게 잘 넘어가는데도 불구하고 제 속으로 ‘불안했을 게야’라고 생각합니다.(웃음) 하지만 글을 쓰는 우리들은 잘 알지 않습니까. 확신이 있을 때 글에 힘이 있고 또 즉각 설득이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확신을 갖고 쓴 글을 보면 배울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아직도 배우는 일이 즐겁습니다. 그런데 누군가의 멋진 글들을 보면서도 거기서 배울 게 한 줄도 없다면 의미가 없는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말은 고스란히 제게도 돌아옵니다. 저도 종종 확신 없이 글을 쓸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너무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확신을 갖고 쓰면 누가 반론해도 거기에 대해 토론할 마음이 있습니다. 영화를 더 잘 보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일본 영화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 같은 사람의 글을 보면 죽고 싶지 않습니까?(웃음) ‘이거 나랑 똑 같은 영화 본 것 맞아?’ 싶어서 너무 괴로워집니다.”

-감독 데뷔작 일정은 어떻게 잡고 계십니까.

“언제 완성해서 개봉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크랭크 인은 늦여름에서 가을 사이일 것 같습니다. 장소 헌팅은 이미 다 끝냈습니다.”

-제목은 정하셨는지요? 성장 영화라는 소문이 있던데 간략하게라도 내용을 말씀해주시지요.

“아직 가제도 없습니다. 그래서 연출부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못합니다. 제목이 없는 영화를 뭐라고 말하겠습니까.(웃음) 내용은 멜로 드라마입니다. 두 여자 사이에서 끝장 나는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그게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영화를 준비하시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습니까.

“편견입니다. 저에 대한 편견 말입니다.”

-아, 그렇지요.

“그렇지요,라구요? (입에 넣은 팥빙수를 내뿜을 뻔 하면서) 그런 게 제일 나쁜 대답인 거 아시죠?(웃음) 제가 불편해 하는 어떤 사람을 원치 않게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영화를 찍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무슨 이야기냐고 계속 물어보길래 ‘조폭영화가 유행하니 저도 조폭영화 한 번 만들어보려구요’라고 건성으로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저를 1분 정도 바라본 뒤에 ‘그러니까 칼을 들고 복수를 하려고 15분 동안 걸어가는 그런 영화군요?’라고 말하더군요.(웃음) 이게 사람들이 내가 영화한다고 하니까 자동적으로 떠올리는 편견이구나, 싶었습니다. 배우들이나 스탭들을 만나볼 때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 답답했습니다. 그런 과정이 다른 감독들과 다른 경우일 겁니다.”

-다른 사람의 영화를 평하는 위치에서 평을 받는 위치로 바뀐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으십니까? 요즘 감독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이 영화 제작 이야기가 자주 화제에 오르는데, 그때마다 ‘두고보자’면서 이를 갈고 있는 분들이 적지 않다는데요.(웃음)

“부담감, 전혀 없습니다. 남이 뭐라고 말하든 관심도 없고 상처도 안 받을 것 같습니다. 시나리오를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올 때에도 저는 전혀 상처 받지 않았습니다. 그게 누구든 지적하는 사람의 말이 맞으면 바로 고쳤습니다. 조금 전에 하신 질문과 비슷한 질문을 저를 아끼시는 분들이 하시곤 합니다. 이 나이에 제가 부서지면 안 될 거라고 생각해서입니다. 그런데 사실 첫번째 영화가 좋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저는 굉장한 영화를 보여주고 싶은 게 아닙니다. 정말로 솔직하게 배운다는 느낌이 제일 큽니다. 저는 준비를 하면서도 스탭들에게 일일이 의견을 구합니다. 막내에게도 물어봅니다. 렌즈에서 인물 동선까지 설명한 뒤 문제 없냐고 물어보는 겁니다. 문제가 없을 리 있겠습니까. 당연히 있다고 하죠.(웃음) 그 문제점에 대한 설명을 듣고 옳으면 따르면 됩니다. 제 영화가 만들어진 후 그 영화에 대한 평들이 나오면 그걸 보고 배울 것 같습니다. 제 말에는 과장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또 이렇게 말하고 자살할 지도 모르죠.(웃음)”

-비평을 통해 일관되게 임권택 홍상수 김기덕 감독을 옹호해 오셨습니다. 반면에 상대적으로 덜 평가하신 감독들도 있습니다. 거칠게 묻겠습니다. 왜 임권택 홍상수 김기덕입니까. 왜 이창동 박찬욱 임상수 봉준호는 아닙니까.

“물론 저는 후자로 거명하신 감독들도 장점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하지만 질문이 간단하니까 저도 간단히 답하겠습니다. 제가 지지하는 감독들의 옹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은 제가 ‘시네마란 무엇인가’를 질문했을 때, 그에 대해 대답을 하거나, 대답을 준비하거나, 시네마를 통해 반문하는 사람들입니다.”



-올해 한국 영화계의 위기는 확실히 질적으로 이전과 다른 것 같습니다. 작년 말부터 올해 상반기까지의 한국영화들을 보면서 어떻게 느끼셨습니까. 산업적인 면 외에 질적인 측면에서 듣고 싶습니다.

영화제와 제 영화를 준비하느라 극장에서 제가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숨’이었습니다. 그 이후에 나온 영화는 디비디로 챙겨본 정도입니다. 그 이전까지라는 전제를 두고 말한다면, 한국영화 그 자체의 문제점이라기 보다는 영화에 대한 관객의 태도에 대한 문제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시네마라는 것에 대한 관객의 무관심이 공포스러울 지경에까지 온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괴물’을 예로 든다면, 적어도 작년엔 그 영화를 중심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많은 논전이 벌어졌습니다. 그런 논쟁 자체는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괴물’은 1300만명이 들었다는 점을 괄호로 치고 보면, 내러티브의 구조나 비주얼한 형식 등에서 확실히 예술영화이거든요. ‘매트릭스’라는 영화가 그런 걸 생각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철학적인 면을 생각하도록 만든 것처럼, ‘괴물’ 역시 ‘왜냐면~’이라고 설명하는 순간 담론을 끌어들여 언술하게 만들었습니다. 영화가 한국사회에서 존재하는 방식에 대해 질문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괴물’의 역할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말부터 분위기가 차갑게 바뀌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마음 편하게 만들었다는 박감독의 말과는 달리 수많은 토론거리를 던지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관객이 토론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겁니다. 이어서 ‘미녀는 괴로워’가 큰 성공을 거둘 때 저는 절망적이라고 봤습니다. 영화를 보고 있는 동안에 이 영화가 그 많은 관객을 끌어들일 때 여기에 뭔가 이야기거리가 있느냐에 대해 저는 아무 것도 부과할 수 없었던 겁니다.



그 다음에 ‘천년학’과 ‘숨’에 대한 차가운 반응이 있었습니다. 담론조차 되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갔습니다. 요즘 한국영화들은 잘디 잘게 부서진 것처럼 극장을 잠시 채우고 사라지는 느낌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비평 담론들이 논쟁을 벌이기 위해서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대해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듯 합니다.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그렇습니다. 이제 대중의 무의식과 욕망을 설명하기 위해서 동원해야 할 영화는 ‘트랜스포머’인 것으로 보입니다. 비극적이지만 사실입니다. 왜냐면 그걸 대중이 바라고 있으니까요. 저는 그 분기점에 있었던 영화가 ‘300’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론 한국영화가 오늘날 이런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 출발점이 바로 웰메이드라는 단어가 생기고부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말을 끌어들인 뒤 끝까지 가면, 그 끝 단계에 할리우드 영화가 있는 겁니다. 결국 한국영화 프로듀서들은 새로운 할리우드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그동안 노력해온 셈입니다. 그 학습의 결과가 올 여름인 거지요. 그 과정 속에서 우리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에 대한 대중의 대답은 할리우드 영화가 됐고, 이제 한국영화는 서브 텍스트 정도로 재배치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올해 여름이 한국영화계에 굉장히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07. 07. 17.

P.S. 생각밖으로 배울 게 많은 인터뷰이다. 가장 중요한 건 영화에 대한 그의 못말리는 애정. 그 천부적 시네필로서의 열정과 게이트키퍼로서의 의무 사이가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자리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한국영화들에 대한 마지막 멘트는 예상밖의 것은 아니지만 음미해볼 필요가 있는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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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나무 2007-07-18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동안 서재가 비었을 때 무지 서운했었습니다. 오래 걸리지 않고 다시 돌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인터뷰 내용입니다.

로쟈 2007-07-18 18:42   좋아요 0 | URL
섬나무님 같은 분이 많지는 않겠지만(!) 덕분에, 없는 부지런을 떨게 됩니다. 책임지세욧!..

책읽기는즐거움 2007-07-18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해 볼 만한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