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나온 책들 가운데 좀 특이한 영화관련서들이 눈에 뜬다. 당장 읽을 여력은 없어서 대신 적절한 리뷰들을 찾아 옮겨놓는다. 로버트 그레그의 <영화 속의 국제정치>(한울아카데미, 2007)와 리처트 포튼의 <영화, 아나키스트의 상상력>(이후, 2007)이 그 책들이다(포튼의 책은 지난주에 서점에서 봤다). 리뷰들은 소략하지만 그나마 이 책들을 다룬 지면 자체가 아주 드물다.

동아일보(07. 09. 15) 숨겨진 ‘국제질서’ 읽기…‘영화 속의 국제정치’

아프리카 어느 마을. 하늘을 날던 비행기 조종사가 뭔가를 ‘툭’ 버렸다. 마침 지나가던 원주민이 주워 든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빈 콜라병을 들고 난감해하던 표정. 1980년대 인기를 끌었던 영화 ‘부시맨’의 시작이다. 가볍게 즐겼던 코미디 영화였으나 저자는 고개를 젓는다. ‘한없이 무거운’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의 책 ‘문명의 충돌’을 거론한다. “헌팅턴은 국제정치의 근본적인 분쟁이 국가와 집단의 여러 다른 문명으로 인해 벌어짐을 지적했다. 서구 문명과 전통적인 토착문화의 조우. 영화 부시맨은 이런 국제관계를 살피는 좋은 텍스트가 된다.”

이 책의 목적은 자명하다. 제목(원제 역시 ‘International Relations on Film’)에 그대로 드러난다. 영화를 통해 국제정치를 배우자. 미국에서 정치외교를 가르치는 교수답게 청강생들의 이해를 도우려 영화를 교재로 사용하는 셈이다.

논의점은 다양하다. 해리슨 포드가 출연했던 ‘레이더스’를 통해 제3세계를 바라보는 제국주의 시선을 다룬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는 국제정치의 의사결정 과정이란 논의를 끌어내는 훌륭한 마중물이다. 윤리와 국제법을 다룰 땐 영화 ‘7월 4일생’과 ‘살바도르’를 언급한다.

묵직한 두께에 빡빡한 활자. 주제마저 무겁다. 그런데 책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오히려 술술 읽힌다. 저자의 의도대로 교재가 ‘영화’인 덕분이다. 어려운 국제정치용어들이 익숙한 영화 화면을 타고 스르르 미끄러져 들어온다.

아쉬운 점도 있다. 영화가 대부분 할리우드산(産)이다. 익숙하지 않은 영화를 거론할 땐 이해도도 떨어진다. 왜곡이 가능한 영화 자체만으론 국제정치를 설명할 수 없음은 저자 역시 동의하는 부분. 배운 건 많은데 뒤끝이 가려운 수업을 들은 기분. 강의평가서에 ‘A+’라고 쓰기가 살짝 망설여지는 이유다.(정양환 기자)

디지털타임즈(07. 09. 06) 영화속 아나키스트에 대한 오해와 편견

아나키스트'(Anarchist)라는 단어에는 왠지 부정적인 이미지가 짙다. 아나키스트하면 시위와 테러 같은 불법 행위가 연상된다. 왜 그럴까. 아나키스트는 사전에 `국가와 사회의 권력을 부정하고 개인의 완전한 자유가 보장될 수 있는 사회 실현을 주장하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기존의 질서를 거부하는 이유가 아나키스트의 부정적 이미지를 키운 것일까.

한국영화 시장이 르네상스를 맞으면서 셀 수 없는 영화관련 책이 쏟아져 나왔지만, 아나키스트의 눈으로 영화를 바라본 책은 없었다. 아나키스트들에 대해 소개하는 몇몇의 책들은 있었지만, 이 책들 역시 아나키스트들이 문화 속에서 어떻게 소비되는 지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영화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나키스트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가지게 된 원인을 영화 속에서 찾고 있다. 주류 영화들이 다루는 아나키스트는 폭력과 테러, 범법자들의 전형이었다. 심지어 옷 입는 모양새와 콧수염 기른 모습까지 정형화시키기도 했다.

저자는 영화 속에서 아나키스트들이 그렇게 묘사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을 정치 철학적으로 추적해 밝혀낸다. 또 아나키즘에 대한 확실한 이해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아나코 페미니즘' `아나코 생디칼리즘' `아나키스트 교육학' 등에 대한 이론까지 명쾌하게 밝혀놓고 있다.

특히 국내 출판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아나키스트 인물 설명을 부록으로 붙여 둔 것은 국내 독자들에게 좋은 참고 자료가 된다. 또 아나키스트와 관련된 시시콜콜한 자료까지 잘 갈무리해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예를 들어 19세말과 20세기 초 미국에서 무정부주의자로 활동한 엠마 골드만(Emma Goldman)의 자료관을 통해 공개되지 않은 서신을 소개하고, 영화감독들에게 전화나 e메일로 확인한 내용들까지 소개하고 있다. 아나키스트 단체들의 유인물 내용과 아나키스트들이 등장하는 유럽과 미국의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도 총망라하고 있다.(김응열기자)

07. 09. 17.

P.S. 두 권의 두툼한 책들 대신에 내가 어제 주문한 책은 저명한 페미니스트 영화이론가 로라 멀비의 얇은 최신작 <1초에 24번의 죽음>(현실문화연구, 2007)이다. 멀비의 책으론 <시민 케인>(동문선, 2004)이 먼저 소개된 바 있지만 왠지 이 책부터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95년 탄생 100주년을 맞은 영화의 본질적 측면을 탐구한 영화이론서이자, 대중을 위해 쉽게 쓴 영화에세이"라고 하니까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겠다. 멀비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루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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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에 읽어보려고 했던 영화 리뷰를 좀 뒤늦게 시간을 내서 읽고 옮겨놓는다. 얼마전 개봉됐던 영국 감독 대니얼 고든의 <푸른 눈의 평양시민>(2006)에 관한 것인데, 전작인 <천리마 축구단>(2002)과 <어떤 나라>(2004)를 포함하면 '북한 3부작'이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김동원 감독과 대니얼 고든의 대담은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1001&article_id=33175 참조). 여하튼 2년 터울로 북한에 관한 영화를 꾸준히 제작해낸 열정은 감탄할 만하다. 나로선 아직 한 편도 보지 못했지만 이왕이면 TV에서 방영해도 되는 게 아닐까 한다. 제2차 남북 정상회담도 곧 다가오고 하니 말이다.  

<푸른 눈의 평양시민>은 평양에 살고 있는 미국인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다.

컬처뉴스(07. 08. 30) 삶에서 이데올로기는 무엇인가

영국 감독인 대니얼 고든의 북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참으로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1966년 월드컵에서 8강 신화를 이룩한 북한 선수들을 촬영한 <천리마 축구단>(2002),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는 북한 매스게임의 두 소녀를 기록한 <어떤 나라>(2004)에 이어 그는 1960년대 초중반에 월북한 미국인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푸른 눈의 평양시민>을 2006년에 완성했다. 서양인이 입국하기도 어려운 북한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것도 보통일이 아니지만, 연이어 세 편을, 그것도 거의 6년여의 시간을 들여서 기록했다는 것은 엄청난 작가적 고집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니얼 고든은 하고 많은 나라 가운데 왜 북한을 선택한 것일까? 그의 다큐멘터리를 보면 그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축구광이었던 그의 처음 관심사는 1966년 월드컵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8강에 올랐던 북한 축구였다. 당시 놀라운 활약을 했던 선수들이 이후 국제대회에서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아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또는 그들이 당시 어떻게 8강에 오를 수 있었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고든의 순수한 관심은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면서 북한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게 된다.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면서 대상에 대한 애정이 깊어진,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엄청난 규모의 매스게임을 벌이는 북한을 보면서 그는 북한이 다른 나라와는 전혀 다른 나라라는 것을 차츰 알게 된다. 그리고 그는 북한을 알 수 있는, 다르게 말하면 북한을 서구에 소개하는 소재로서 매스게임을 하는 두 소녀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어떤 나라>를 만들게 되었다. 이 다큐멘터리의 영어 제목인 <정신의 나라 A State of Mind>는 북한의 현실을 그 어떤 것보다 정확히 집어낸다. 미국의 통제 때문에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이겨내려는 정신을 지닌, 단체 활동의 나라이며, 그것을 매스게임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오늘날 북한의 모습 아닌가.

평양에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던 고든은 놀라운 소식을 접하게 된다. 1960년대에 월북한 미군들이 평양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감독은 즉시 이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 얼마나 좋은 소재인가. 미제국주의를 원수로 생각하는 나라에서 미국인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도 남한의 DMZ에서 스스로 월북해서 수도 평양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 <푸른 눈의 평양시민>의 원제가 <경계를 넘어서 Crossing The Line>인 것도 그들이 남한의 휴전선을 넘어 북한으로 망명했기 때문이다.

 

 

 

 

 

 

 

 

 

 

사실 고든은 북한에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면서도 북한 사회를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가령 <천리마 축구단>에서 이제는 늙어버린 축구선수들이 자신들을 격려해주었던 김일성 주석을 기리며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보면서 도저히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때문에 고든은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것은 같은 구미(歐美)인이지만 평양에서 살고 있는 이들을 통해 풀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그들의 솔직한 입장을 듣고 싶었을 것이다. 때문에 <푸른 눈의 평양시민>은 평양에 살고 있는 미국인에 대한 다큐멘터리이자 자신과 미국인의 격차를 해소하거나 확인하는 작업이다.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은 1962년 38선을 넘어 월북한 제임스 드레스녹이다. 그는 자신이 월북한 상황을 솔직하게 말한다. 그는 감독에게 “난 당신들을 믿소. 진실을 찾아온 거니까”라고 말한다. 그의 생애는 불행의 연속이었다. 고아였던 그는 첫째 양부모에게 학대당해 둘째 양부모가 길렀지만 중학교밖에 다닐 수 없었다. 어린 나이에 입대해서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지만, 서독으로 파병 간 사이 부인은 다른 사람을 만나 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으로 온 그는 허가 없이 휴가를 나갔다가 이것이 발각돼 군사법정에 설 위기에 처했다. 군사 재판 하루 전날 결국 그는 DMZ을 넘어 월북했다. 그는 북한 체제가 좋아서 월북한 것이 아니라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월북했다. 이것은 다른 세 명의 경우도 비슷한데, 영화에서 인터뷰를 통해 솔직하게 드러난다.

미국에서 하층민이었던 드레스녹은 북한에서의 생활에 대해 큰 불만이 없다. 미국으로 돌아갔으면 하층민으로 살았을 것이 뻔하지만, 북한에서의 생활은 중산층 이상이다. 자식들은 엘리트 코스인 평양외국어대학에 다니고 있고, 그는 보통강변에서 낚시를 하며 여유 있는 생활을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 국가에서 배급을 주기 때문에 걱정 없이 살 수 있고(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그는 많은 쌀을 배급받았다고 한다), 건강이 좋지 않지만 언제든지 병원을 찾을 수 있다. 하층민으로 살았을 미국이나, 자신이 겪은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생활이다. 그가 북한 체제에 만족을 표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선택이며 그의 환경의 영향 때문이다.

감독은 그것을 아주 편하게 보여준다. 이 다큐멘터리를 위해 감독은 미국의 드레스녹의 집, 그의 어린 시절 친구들, 같이 군에서 근무했던 동료들을 인터뷰한다. 심지어 DMZ으로 들어가서 월북하던 상황을 재현하기도 하고, 당시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하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감독은 평양에 살고 있는 미국인은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이것이 억압적인 체제 속에서 속마음을 토로하지 못하는 위선이 아니라 진짜 그의 진솔한 고백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고든의 이전 영화와 달리 매우 정치적이다. 하긴 소재 자체가 민감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이들 존재 자체가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사건은 발생하고 만다. 드레스녹과 비슷한 시기에 월북한 젠킨스이 일본으로 가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정치적인 해석의 장에 놓이게 된다. 제킨스의 부인이었던 소가가 일본에서 납치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일본으로 돌아간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일본으로 간 젠킨스는 북한 생활은 지옥이었고, 드레스녹에게 많이 맞았다고 증언했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도 일어났다. 북한이 외국인을 납치해 망명자들과 결혼하게 했고, 그렇게 해서 낳은 2세들을 스파이로 활용할 계획이었다는 소문이 이어졌다. 젠킨스의 아내 소가도 북한 스파이들에게 일본어와 일본 문화를 가르치기 위해 납치되었다는 것이다.

감독은 이 문제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 입장을 취하고자 노력한다. 일본으로 가기 전의 드레스녹과 젠킨스의 진술을 담고, 이후 엇갈린 진술을 다시 담는다. 그렇게 해서 감독은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다. 가급적 객관적으로 상황을 담아 관객이 직접 판단하도록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라스트 장면에서 묘한 여운을 남긴다. 영화 내내 김일성 수령에 대해 특별한 말을 하지 않던 드레스녹이 “위대한 수령께선 늘 우리를 각별히 염려해주셨어. 죽는 날까지 나라에서 지켜줄 거야”라는 말을 하고 넓은 광장을 걸어간다. 카메라는 그의 뒷모습을 비춘다. 그리고 광장의 확성기에서 “북한은 지상 낙원입니다”라는 내용의 선전문구가 나온다.

감독은 객관적일 수 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지만, 이 장면을 마지막에 배치함으로써 드레스녹의 말이 모두 허구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그래서 이제까지 드레스녹이 했던 말이 모두 체제의 선전 도구로 사용되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드레스녹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자의 자포자기적 발언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때문에 영화가 끝나고 나서 드레스녹의 말을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이 장면을 통해 이제까지의 모든 것이 회의의 대상이 된 것이다. 

전작을 통해 북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북한을 이해하려고 했던 고든은 3부작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에서 북한 체제에 대해 다소 회의를 품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이 주도하는 통제된 국제 사회도 싫지만, 그렇다고 미국을 반대편에 세운 후 그것을 핑계로 주민을 통제하고 신격화하는 북한의 모습도 긍정할 수 없는 현실이 고든이 접한 상황이다. 고든은 이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인간다운 삶인지, 그런 삶에서 이데올로기는 무엇인지 이 영화를 통해 묻고 있다.(강성률_영화평론가) 

07. 09. 06.

P.S. 참고로 '필름2.0'에 실렸던 감독 대니얼 고든과의 인터뷰기사도 옮겨놓는다(기사를 읽어보니 대니얼 고든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필름2.0(07. 08. 24) "다음엔 평양 밖에서 촬영할 것이다"

<푸른 눈의 평양 시민>으로 ‘북한 삼부작’이 완성됐다.
계획한 건 아니지만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앞으로도 내게 엄청난 이야기라고 판단되는 소재라면 북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계속 만들 생각이다.

<푸른 눈의 평양 시민>을 기획하면서 의도한 건 무엇인가?
북한으로 망명한 미국인 네 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자 했다. 소재가 민감하지만 어떤 정치적인 견해를 밝히고자 한 건 아니다. 처음부터 있는 그대로를 얘기했고 몰래 생각하고 있다가 나중에 덧붙인 것은 없다.

지금 와서 이들에 대한 사연을 밝히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항상 사실을 이야기하려 하고 대상을 솔직하게 대하려 한다. 어떤 사실을 파헤치려고 이 영화를 만든 건 아니다. 나는 한국전쟁을 경험한 역사적 기억이 없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이 없는 상태에서 영화를 만들었고 단지 이 사람들의 얘기가 놀랍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췄다.

편견이 없다는 것이 당신 영화의 강점이다. 하지만 미국인이 북한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어떠한 편견도 갖지 않는다는 게 가능한가?
물론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드레스녹에 대해 워낙에 알려진 바가 없었고 1962년 망명 후에 아무도 본 적이 없는 인물이라 외모가 어떤지도 몰랐다. 물론 촬영 전 그의 스무 살 사진을 본 적은 있지만 실제 만나보고 몸이 그렇게 큰 줄(키 196cm, 몸무게 128kg) 짐작도 못 했다. 그만큼 그가 주는 분위기가 강렬했다. 2004년이 돼서야 만났는데 버지니아 억양으로 1950년대 영어를 쓰면서 가슴에 김일성 배지를 달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신기했다.

젠킨스는 어땠나?
이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어려웠던 게 젠킨스가 북한을 떠남으로 인해 스토리가 바뀐 것이다. 그래서 일단은 젠킨스의 미국 고향에 가서 가족들도 만나고 군대 친구들도 만나며 언젠가 젠킨스가 돌아오리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젠킨스는 인터뷰에 응해주지 않았고 그가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 촬영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논란이 될 만한 부분은 드레스녹과 젠킨스 간의 진실공방을 끝까지 파헤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체제의 우월이 아닌 환경에 적응하는 인간의 이야기를 다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밝히지 않은 것인가?
바로 그게 의도였다. 양쪽의 소리를 모두 들려줬기 때문에 관객이 알아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드레스녹과 젠킨스의 직속 상관을 만나 인터뷰를 했지만 영화에 넣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서 밝힌다면, 드레스녹 상관의 경우, 드레스녹의 월북으로 난처한 상황에 빠져 곤란함을 겪었지만 40년 넘게 북한에서 생활한 것만으로 충분히 벌 받을 만큼 받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반면 젠킨스의 상관은 죽는 날까지 젠킨스를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한 가지 의문은, 북한 삼부작이 평양에 거주하고 있는 일종의 특권층만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의 생활을 가감 없이 보여주려면 그 외 지역의 북한 주민들에 대해서도 다뤄야 하지 않았을까?
영화상에서 밝히지 않았지만 평양이 특별한 도시라는 사실을 전제로 한 거다. 북한 내에서도 모든 사람이 평양에 살고 싶어하고 평양 주민들도 자신들이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북한 삼부작에 나오는 사람들은 평양 내에서도 평균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드레스녹의 경우, 식구가 다섯이지만 방은 두 개밖에 없는 집에서 산다. 물론 평양 외에 대여섯 도시를 방문했었고 31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백두산에도 가봤다. 북한에서 기차를 탄 서양인은 내가 처음이었고 다시 말해, 외부인들이 전혀 본 적이 없는 광경을 봤다는 얘기다. 당연히 평양 밖에서 촬영을 하고 싶은 생각에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기도 해봤지만 평양 외의 지역에서 영화를 만드는 건 너무나 어려웠다. 그나마 북한에서 영화를 촬영할 수 있는 곳은 평양이 유일하다. 그래도 다시 한 번 북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게 된다면 평양 외의 도시에서 진행할 것 같다.

당신이 겪어본 북한 주민들은 어떤 사람이던가?
우리가 만난 북한 사람들은 외교관들이 접한 북한 사람이나, 자선단체가 접한 북한 사람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들은 뭐든지 급하게 하려는 생각이 없다. 자기들이 준비가 되면 자기 방식대로 일을 하는 스타일이다. 남한 사람과는 정반대다.(웃음) 우리는 북한 사람을 대할 때 먼저 이들을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솔직하게 다가갔다. 처음부터 뭔가를 주장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삼부작이 가능했다고 본다.

그래서 기분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던 드레스녹이 지금은 찍기 싫다고 하자 바로 촬영을 중단한 건가?
그건 다른 문젠데 나는 촬영 대상이 불편해하면 당연히 찍지 않는다. 그런 상태에서 촬영을 진행한다는 것이 나로서는 미안하기도 하고.

그것 외에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자신만이 고수하는 원칙이 있나?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중요시하는 건 이야기의 핵심에 도달하는 것이고 원래 했던 이야기가 무언지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재밌게 만들려고 한다. 관객들이 내 영화에 한 시간 반이나 투자하는데 즐겁게 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내레이션으로 크리스천 슬레이터를 기용한 건 그 때문인가?
미국인에 대한 영화이기 때문에 미국인의 내레이션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슬레이터의 열혈 팬인데 그의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가 영화에 무게감을 부여할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출연료를 줄 수 없어도 참여해줄 수 있냐고 물으니 영화가 좋으면 상관없다 그러더라. 그 답례로 김정일이 쓴 <감독의 자세>와 <배우의 자세> 책 두 권을 선물했다.

미국에서는 8월 10일 <푸른 눈의 평양 시민>이 개봉했다. 그쪽의 반응을 접했는지?
그에 대한 반응을 알 수 없는 것이 인터뷰를 위해 8월 11일 영국에서 서울로 출발했다. 접하진 못했지만 당연히 다들 좋아했을 것이라고 본다.(웃음) 뉴욕에서는 3주 전 브루클린이 내려다보이는 건물 옥상에서 300명이 모인 가운데 상영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참석했다. 완전히 매진됐고 반응 역시 무척이나 좋았다.

<푸른 눈의 평양 시민>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 때문에 미국 정부나 군부가 관심을 가질만한데 공식반응을 나타낸 적이 있나?
내가 알기로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다. <천리마 축구단>과 <어떤 나라>도 물론이고. 하지만 <어떤 나라>의 경우, 영국 정부에서 미국 정부에 보내준 것으로 알고 있으며 특히 영국 외교부는 북한의 일상을 보여주기 위해 이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북한 삼부작을 만드느라 영국에 갈 시간이 있기라도 했나?(웃음)
안 그래도 영국에서 한 편을 만들었다.(웃음) 한 달 후에 완성될 예정인데 영국 북부의 광산지역에서 개 경주를 하는 내용이다. 너무 외국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영국에서 찍었는데 주로 밤에 촬영하는 바람에 이번에도 역시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없었다.

우간다 출신의 육상선수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지 않았나?
이 작품을 마친 뒤에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우간다 출신의 육상선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역시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얘기다.
그렇다. 아프리카인으로는 최초로 올림픽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사람이다. 아버지의 부인이 8명이고 자녀가 43명이나 될 만큼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장애물 400m 육상경기에서 금메달을 따는 엄청난 업적을 이뤘다. 그런데 이디아민 정권 때문에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못했고 자기 타이틀을 지킬 수 있는 기회도 박탈당했다. 전세계적으로 기억돼야 할 위인임에도 그렇지 않아 영화로 만들게 됐다.(허남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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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에 전철에서 읽은 기사 하나를 옮겨놓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의 한 사람인 '이자벨 위페르 특별전'이 열린다는 소식이다(위페르에 대해서는 예전에 옐리네크와 함께 잠깐 다룬 적이 있다. http://blog.aladin.co.kr/mramor/926588 침조). 특히 초기작 <레이스 짜는 여인>(1977)의 상영 소식이 눈에 띈다. 개인적으로 위페르를 처음 '발견'한 영화이기도 한데, 아마도 1989년에 TV에서 보았던 듯하다. 어즈버 18년 전이다.

찾아보니 위페르 특별전은 프랑스문화원에서 기획해서 전세계 순회를 하는 모양이다(호주 시네마테크에서 지난달에 열린 바 있다. http://www.qag.qld.gov.au/cinematheque/past_programs/2007/isabelle_huppert 참조). 클로드 샤브롤의 <마담 보바리>는 비디오로 갖고 있지만 <레이스 짜는 여인>은 어디서 구해보나? 상영일정이 (이미 지나간) 오늘과 일요일(9일)에만 잡혀 있다. 사소한 일로 조금 불행해지는군...  

문화일보(07. 09. 04) 佛디바 위페르 ‘30년 연기’ 한눈에

프랑스의 대표적 여배우 중 한 명인 이자벨 위페르의 매혹적인 연기를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행사가 열린다. 4일부터 11월11일까지 서울 대학로 하이퍼텍나다 극장에서 진행되는 ‘순수와 관능을 넘나드는 디바 - 이자벨 위페르 특별전’이 그것. 주한 프랑스문화원과 영화사 진진이 매주 화요일마다 진행해 온 ‘시네 프랑스’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마련된 행사다.

이자벨 위페르는 1971년 데뷔한 이후 30여년 동안 60여편의 작품에 출연해 왔다. 그는 순결한 처녀와 귀족 부인, ‘팜므 파탈’과 강박증을 지닌 중년 여성, 가족을 살해하는 살인마까지 다양한 인물을 자신만의 색깔로 창조해 왔다는 평가를 받는 배우다. 차가운 듯 열정적인 이미지는 다른 여배우에게서 느끼지 못하는 독특한 매력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는 칸, 베를린, 베니스 국제영화제 등 세계 3대 영화제의 연기상을 모두 수상했고 프랑스의 권위있는 영화축제인 세자르영화제 여우주연상에 12번이나 이름이 올랐을 정도로 연기력을 인정 받았다. 칸 영화제 본선에도 그의 출연작 16편이 올라 가장 많이 출품된 배우로 기록돼 있다.



이번 특별전엔 총 10편의 작품이 소개된다. 우선 그에게 두번째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겼던 ‘피아니스트’(2001년)는 국내 팬들도 가장 많이 기억할 작품. 위페르는 젊은 남자 제자와 비극적인 사랑에 빠지는 피아니스트로 출연, 중년 여성의 위태로운 심리와 욕망을 탁월하게 연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위페르의 초기작 중 하나인 ‘레이스 짜는 여인’(1977년)도 상영된다. 미용실 보조로 일하는 순진한 소녀 베아트리스 역을 연기하는 앳된 모습의 위페르를 감상할 수 있다. 클로드 샤브롤 감독과 호흡을 맞춘 ‘마담 보바리’(1992년)와 ‘의식’(1995년)도 매작품마다 변신을 거듭하는 위페르의 연기력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들이다.



장 뤼크 고다르 감독의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인생’, 모리스 피알라 감독의 ‘룰루’ 등도 관객들을 만난다. ‘첫 눈에 반하다’ ‘이별’ ‘왕의 딸’ ‘약속된 인생’ 등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들이어서 더욱 관심이 모아진다. 영화는 매주 화요일 오후 7시와 일요일 오후 4시에 상영된다. 특별전 기간 중엔 이자벨 위페르의 미니 사진전이 열린다. www.dsartcenter.co.kr, www.france.or.kr (강연곤기자)

07. 09. 04.

P.S. <레이스 짜는 여자>의 원작소설은 파스칼 레네(1942- )의 <레이스 뜨는 여자>(예하, 1989)이다('레이스 짜는'보다는 '레이스 뜨는'이 더 우아하지 않나?). 150쪽이 안되는 분량이지만 1974년 공쿠르상 수상작이다. 현재는 절판중인데 이 참에 다시 나와도 좋을 듯싶다.

제목은 '진주 귀고리 소녀'처럼 베르메르의 그림 '레이스 뜨는 여인'에서 따온 것이다(어째 우리말 제목이 다 다를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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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7-09-05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시간이 참 만만치 않군녀...

로쟈 2007-09-05 16:12   좋아요 0 | URL
핑계일 수도 있지만, 사실 목숨 걸로 영화를 볼 나이는 지났죠.^^;

nada 2007-09-05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위뻬르 언니가 레이스를 뜨다니.
그 손은 왠지 남정네 뺨 때리는 데나 적격인 거 같아서. -.-
젊은 시절의 위뻬르 언니가 궁금하네요.
EBS 9월 프로그램에 이자벨 위뻬르 영화가 한 편 있던걸요?
16일에 <사기>란 영화요. 로쟈 님께서 위뻬르 언니 팬이시라고 하니 살짝 귀띔해 드려요.

로쟈 2007-09-05 16:12   좋아요 0 | URL
그래도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걸로 아는데요.^^ 귀뜀은 감사합니다...

anyone 2007-09-05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 적 명화극장에선가 본 <레이스 짜는 여인>은 이상하게 생생합니다. 거기에 나온 여자가 이자벨 위페르였군요. 이번 주말에 꼭 챙겨보아야겠습니다.

로쟈 2007-09-05 16:10   좋아요 0 | URL
저도 다시 봤으면 싶지만 가능하지 않은 시간대라.--;
 

늦은 귀가길에 조간신문을 야간신문으로 읽었다. 아직 한편의 영화도 보지 못했지만 모스크바 영화학교를 졸업했다는 '학력' 떄문에 기억해두고 있는 영화감독 민병훈씨의 두번째 작품 <괜찮아, 울지마>(2001)가 6년만에 개봉한다는 인터뷰 기사를 읽었고 바로 페이퍼로 옮겨질 거라고 직감했다(이런 판단에는 0.1초도 걸리지 않는다). 해야 할 다른 일들을 잠시 미뤄두고 '작업'을 하는 이유이다.

전철에서 읽은 기사를 인터넷에서 찾다보니 소박한 홈피도 눈에 띈다(http://www.letsnotcry.co.kr/). 예고편을 감상했는데, 나로선 무엇보다도 첫번째 영화 <벌이 날다>와 마찬가지로 우즈베키스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든다. 옮겨놓은 스틸사진들만 보아도 영화의 소박한 진심이 느껴진다. 이 정도면 봐둘 만한 영화이다. 인터뷰기사가 정작 영화에 대해서는 별로 다루고 있지 않아 아쉽지만 더 나은 기사도 눈에 띄지 않기에 일단 옮겨놓는다.

한국일보(07. 08. 22) "예술영화도 '한뼘 설 땅'은 필요하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한국에서 예술영화, 혹은 독립영화를 한다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작업을 이렇게 표현한다. 영화를 오락의 수단으로만 찾는 대중 앞에 ‘예술’ 타이틀이 붙는 영화를 찍는 사람들은 늘 외롭다. 이들이 두려워 하는 것은 흥행 실패도, 평단의 혹평도, 인터넷 ‘악플’도 아니다. 영화판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관객의 무관심이다.

민병훈(37)도 그런 고독에 몸부림치는 감독이다. 우여곡절 끝에 그의 두 번째 작품 <괜찮아, 울지마>가 30일 개봉된다. 이 영화는 2001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열렬한 지지를 받은 뒤 2002년 카를로비바리 영화제 비평가상, 테살로니키 영화제 예술 공헌상 등을 휩쓸며 일찌감치 작품가치를 인정받은 수작이다. 그러나 제작완료부터 개봉까지 꼭 6년이 걸렸다. 마케팅비만 수십 억원씩 쏟아 붓는 영화계에서, 총제작비 10억원 미만의 예술영화를 한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_오랜 만의 개봉이라 감회가 남다르겠다.
“100만 관객이 들든 단 1명이 보든, 관객과의 소통을 위해 만든 영화인데 어떻게든 개봉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70% 정도 찍었는데, 제작사가 돈 떨어졌다고 철수하라고 그러고…. 개봉관을 찾지 못하는 가운데 세 번째 영화 <포도나무를 베어라>(2004년)가 먼저 개봉되기도 했다. 원래 영화를 만들 때는 세상 사람들에게 ‘괜찮아, 울지마’라는 얘기를 들려주고 싶었는데, 결국 나 자신을 위한 말이 됐다.”

_대부분 사람들이 영화를 대중문화 상품으로 ‘소비’한다. 예술영화의 대중성, 또는 상업성 확보가 가능할까.
“나도 상업영화를 하고 있다. 투자를 받아서 작품을 만들고, 극장에 걸어서 관람료로 수익을 낸다. 다만 다른 영화들과 색깔이 달라 조금 생소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대학원 이상의 고급 교육을 받은 사람들을 위한 영화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지적 사기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거울>이나 <향수> 같은 영화도, 정작 그 영화를 즐긴 것은 농민들이었다. ‘너 정말 이 영화 이해해?’라는 평론가들의 질문에, 농민들은 ‘시(詩)를 왜 분석해’라고 대답했다. 이른바 예술영화라는 작품들이 결코 소수를 위한 지적 자의식의 산물은 아니다.”

_그렇다면 <트랜스포머> 같은 영화와 <괜찮아, 울지마>는 어떻게 다른가.
“오락영화는 마케팅적인 계산을 먼저 하고 철저히 거기에 맞춰 기획한다. 시작부터 관객의 반응까지 정답이 있는 영화다. 하지만 난 답이 아니라 질문을 주는 영화를 만든다. 관객이 스스로 생각할 여백과, 고통을 이겨내고 답을 찾게 만드는 과정이 중요하다. <트랜스포머>는 그런 것이 생략된 영화고…. 이를테면 장르의 차이지, 영화라는 본질의 차이는 아니라고 본다.”

_<디 워> 신드롬을 어떻게 보나. 그리고 그런 신드롬을 만들어낸 영화산업의 시스템에 대해서는.
“<디 워>든 그것보다 훨씬 못한 영화든, 관객이 거기에 열광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다. 다만 다양성이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영화계 전체, 특히 폭력적인 배급시스템의 책임이다. (소수 상업영화의) 독과점이 분명 자본의 입장에서는 이득이 있다. 하지만 가능성이 있는 영화에 20개 관이라도 잡아 줄 수 있지 않는가? 스크린 쿼터 문제에는 거리에 나서지만, 스크린독과점 문제에는 침묵하는 영화인들도 문제다. 언론도 오락영화를 소개하는 양의 5%만이라도 독립영화를 소개해줬으면 한다.

_ 예술영화가 살아 남을 대안은 무엇일까.
“배급 상황이 나쁠수록 작품에 공을 들여야 한다. 좋은 영화는 결국 관객과 만나게 된다. 영화시장 3%의 관객이 소문을 내 1%의 관객을 더 데리고 올 수 있도록, 그래서 한국영화계의 쏠림현상을 관객 스스로가 거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외국으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도 장 뤽 고다르 특별전이나 이마무라 쇼헤이의 회고전에 1만명 정도의 관객이 들지 않나. 한 나라에 1만명씩, 100개국이면 100만명이 영화를 보는 것이 된다.” 

●괜찮아, 울지마
모스크바에서 도박빚을 지고 우즈베키스탄의 고향 마을로 도망쳐 온 남자의 이야기.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남자의 심리를 통해, 모든 사람들의 내면 속에 감춰진 두려움의 실체를 직면하게 한다. 전작 <벌이 날다>(1998년)처럼 우화적이고 키치적인 소재로 자칫 사변적으로 흐를 수 있는 영화에 운율을 더했다. 탈무드의 한 토막 같은 전설로 현실의 번민에 빠진 주인공에게 슬며시 희망의 빛을 던져 준다. 서울 종로 미로스페이스 단관 개봉.(유상호 기자)

07. 08.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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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da 2007-08-23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박한 돌집을 보니까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같아요.
여백이 있어 보이는 영화, 보러 가고 싶네요.

로쟈 2007-08-23 11:25   좋아요 0 | URL
보고 소감 올려주실 거죠?^^

philocinema 2007-08-23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곳 부여는 개봉관 자체가 없으니...
아니 있어도 이런 시골에 개봉을 하긴 하려는지...
예술영화를 개봉관에서 보려면 서울로 이사를 해야하는건지...

예술영화의 개봉이 서울에 집중되는 것은 또하나의 폭력은 아닌지...

로쟈 2007-08-23 19:17   좋아요 0 | URL
저도 보고 싶다는 것이지 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philocinema 2007-08-23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렴요!

책읽기는즐거움 2007-08-24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기다린지 6년째 이제야 개봉이 되네요. 하재봉씨가 나왔던 <시네마 월드>에서 이 영화를 소개하는걸 보고 정말 보고싶은 영화가 되었는데 기다리다 정말 지쳤다는ㅋ
그때 민병훈 감독과 저 외국배우도 같이 나와서 하재봉씨하고 이야기도 하고 그랬는데...
하여튼 이제라도 개봉되어서 다행입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저 영화를 보고 자꾸 예술영화 예술영화 하는게 오히려 저 영화가 난해하다든가등의 잘못된 신비감만 조성하는 듯 하는 느낌이 드네요.
어디서 민감독이 이야기하는것을 읽었는데 자신의 영화가 그렇게만 보여지는게
싫고 자신도 예술영화를 하는게 아니라고 한 것 같아요
(정확히 기억이 안나네요-_-;;)
어떻게 생각하면 저 영화도 이세상의 수많은 감동적인 영화중 한개라고 볼수도 있는게 아닐까요? 그렇다고 저 작품의 가치가 낮다는게 아니고요ㅋ
일단 보고나서 어렇다 저렇다 말하는게 우선일듯 하네요ㅋ
8월 30일 개봉이라 되어있으니 계획을 잡아야 겠어요

로쟈님 좋은 정보 정말 감사합니다ㅋ
잘못하면 까먹고 가지 못할 번 했네요

로쟈 2007-08-25 01:57   좋아요 0 | URL
정보야 널려 있는 걸요. 다만 보는 눈들이 다를 뿐이지요.^^
 

'사회적 현상'으로까지 의미가 증폭되고 있는 영화 <디워> 신드롬에 관한 좌담기사를 옮겨놓는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영화이지만(나는 극장에서건 TV에서건 심형래 감독의 영화를 본 적이 없고, 더불어 '괴수' 영화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디워 현상' 혹은 '디워 신드롬'은 올해의 문화사회학 주제가 될 만하다(관객 천만을 돌파한다면 문제는 좀더 '심각'해진다. 이 경우는 관객층의 분포에 대한 데이터가 요구된다. 아무래도 <디워>는 '방학특선'이란 성격이 강하기에). 굳이 페이퍼로 '기록'해두는 이유이다. 아래 좌담 내용 중 개인적으로는 "<디워>를 굳이 비평적 입장에서 접근할 필요는 없다. 그럴 경우 얻는 것도 적고…. 반면 산업적으로 접근할 경우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는 의견에 동감한다. 더불어 "<디 워> 신드롬은 심형래 감독이 건드린 대중 심리, 영화 감상의 주체로 나서고 싶다는 대중의 욕구가 결합한 현상"이라는 진단에도. 오르테가 이 가세트라면 '대중의 반역'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물론 그 반역은 이제 '용가리에서 이무기로'만큼 버전-업됐다. 그런 의미에서도 '디워'는 징후적이다...

한국일보(07. 08. 16) '디워' 관객만큼 논란도 폭발… 영화평론가의 이유 찾기

심형래(49) 감독의 <디워>가 역대 한국영화 흥행 ‘톱 10’에 진입했다. 배급사 쇼박스에 따르면 14일까지 총 613만 8,000여명이 <디워>를 관람, <투사부일체>(610만)의 10위 자리를 빼앗았다. 15일 광복절과 뒤이은 주말을 감안하면 <디워>는 이번주 <쉬리>의 기록(9위ㆍ620만)까지 넘으며 1,000만 관객을 향해 맹렬히 돌진할 것 같다.

<디워>의 눈부신 흥행질주 이면에서는 논란도 뜨겁다. 과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나 <괴물>의 흥행을 두고도 충무로 안팎이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그러나 <디워>가 생산하는 논란은 차원이 다르다. 네티즌 대 평론가, 인터넷 토론공간 대 기존 언론매체, 심형래 감독 대 충무로라는 중층적인 전선을 형성하며 하나의 ‘현상’을 낳고 있다. 한쪽에서는 사이버 테러 수준의 막말이 분출되고, 다른 편에서는 부르디외와 그리스 희곡의 이론까지 동원된다.

괴수가 등장하는 SF오락영화 한편이 이처럼 커다란 담론의 원천이 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영화평론가 전찬일(46ㆍ숙명여대 겸염교수), 오동진(43ㆍ동의대 초빙교수), 심영섭(41ㆍ대구사이버대 교수) 씨가 모여 <디워> 신드롬의 겉과 속을 분석해 보았다.(진행= 이대현 문화대기자)

좌담회에 참석한 평론가들은 "<디 워> 신드롬은 심형래 감독이 건드린 대중 심리, 영화 감상의 주체로 나서고 싶다는 대중의 욕구가 결합한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대중은 왜 <디워>의 사수대가 됐는가
<디워>에 대해 대중들이 보이는 반응은 ‘열광’보다는 ‘보호심리’에 가깝다. 과거에도 <인디펜던스 데이> <투모로우> <고질라>처럼 평단의 혹평을 받고도 많은 관객이 든 영화가 있었다. 그러나 <디워>에 대한 반응은 유난스러울 정도로 뜨겁고 감정적이다.

심영섭= 이 영화의 흥행을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경우 승자가 모든 것을 갖고, 대중도 그런 승자에 환호한다. 미식축구를 봐도 점수를 딴 선수에게 공을 한번 더 찰 기회를 준다. 반면 한국사람들은 패자에 애착과 동질감을 느낀다. 씨름경기에도 ‘패자부활전’이라는 게 있다. 진 사람에게 떡 하나라도 주고 싶은 무의식이랄까. 심형래 감독은 그런 대중의 심리를 건드렸다. 심형래는 꼴찌 인생이라고, 나보다 나을 게 없는 패자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날 일등이 된 거다. 그래서 장하고 대견한 거다. 영화의 가치를 따지기 전에, 그런 잠재된 대중심리를 격발시켰다.

전찬일= 나는 다르게 본다. 심형래 감독이 꼴찌였고 패자였다고 생각하는 것은 또다른 신화고 이데올로기다. 한국 연예 역사에서, 가요계에 조용필이 있었다면 코미디계에 심형래가 있었다. 누구보다 돈도 많이 벌었다. 그런데도 TV속 바보스러운 이미지 때문에 약자로 인식됐고, 동정심을 유발할 수 있는 것이다. 대중의 무의식 속의 심형래는, 심형래가 아니라 아직 영구다. 그걸 이용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심형래 감독은 심할 정도로 악용하고 있다. 이미 <디워>에 대한 비판이 불가능할 지경이 돼 버린 배경에는 분명 그런 이미지 조작의 메커니즘이 작용하고 있다.

오동진= 언제부턴가 대중이 영화산업의 주류에서 밀려났다는 피해의식이 있었다. 누구보다 한국영화를 사랑했고, 영화산업이 성장할 수 있게 힘을 준 것이 관객이다. 하지만 평론가와 영화 담당 기자들에 의해 무식한 대중, 즉 꼴찌로 밀려나 버린 것이다. 여기에 대한 반감이 <디워>라는 영화에서 표출된 것이다. 가혹할 정도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관객 600만명까지 가면서, 나의 정서적 취향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고픈 욕구가 생긴 것이다.

<디워>의 한계와 가능성
비록 원치 않는 일이라 할지라도, 영화적 담론을 생산하는 주체들에게 <디워>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주제가 돼 버렸다. ‘심형래 대 충무로’라는 갈등의 실체, 애국주의 마케팅, 유사 할리우드(카피우드) 전략 등이 모두 도마에 오른다. 그런 가운데 정작 주목받지 못하는, 혹은 애써 피해가는 주제는 영화로서의 <디워>의 가치다.

= 한국 관객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스토리다. 이 원칙은 모든 영화에 적용됐으나 <디워>만 제외된다. 다른 영화는 볼 만한 부분이 있어도 스토리가 약하면 깎아내렸는데, 유독 이 영화만 다른 부분으로 스토리의 허약함을 덮고 있다. 이것이 언론매체를 이용하는 심형래 감독의 파워다. 다른 감독들은 절대 하지 않는, 눈물 마케팅 전략을 썼다. 같은 개그맨 출신이라도 이경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영화는 신파가 아닌데, 본인은 신파 전략을 구사했다. 그리고 그게 먹혔다.

= 모두들 ‘특수효과는 뛰어나다’라고 말하고 끝나는데, 특수효과는 사실 시각적 만족을 위한 도구다. 이 영화는 시각적 스펙터클을 구현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을 제외하고도 이 영화가 로우틴(10대 초반)에 먹혀 드는 이유는 영웅신화다. <용가리>와 <괴물>은 한강에서 괴물이 나오지만, <디워>는 미국이 배경이다. 그런데 그것을 물리치는 것은 전생에 한국인이었던 주인공이다. 엉성하고 감동을 주지는 못하지만, 호기심을 줄 수 있는 이야기다.

= <디워>를 굳이 비평적 입장에서 접근할 필요는 없다. 그럴 경우 얻는 것도 적고…. 반면 산업적으로 접근할 경우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다른 영화 얘기지만,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이라는 영화가 나왔다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이 영화나, 또 <디워> 같은 영화는 영화산업에서 일정한 영역을 차지할 것이라고 본다. <디워>는 비주얼의 스펙트럼만으로 7,000원이라는 돈이 아깝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한국 영화산업과 <디워>
그렇다면 <디워>가 한국영화산업에 미칠 영향은. 그리고 심형래가 앞으로 선택할 길은?

= 한국영화의 위기의 큰 원인이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이라면, <디워>는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두 편의 영화가 잘 된다고 해서 영화계 전체의 분위기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 투자확대 측면에서는 영화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영구아트무비는 영화제작보다는 특수효과에 집중하면 좋을 것 같다. 예컨대 동남아시아 영화제작자들이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필요로 할 때, 그것을 수출할 수 있을 것이다. 조지 루카스의 ILM(특수효과 전문회사)처럼 아시아의 특수효과 인프라가 되면 어떨까. 다른 영화인들이 SF에 도전할 때 찾게 되는. 하지만 그것이 영화계 전체가 심형래 감독을 도와줘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왜 봉준호 강우석은 아니고 심형래는 도와줘야 하는가? 그러면 과대망상에 빠질 수도 있다. 다음 작품에서도 심형래라는 이름이 <디워>처럼 먹힐지도 의문이다.

= <디워>는 영화 자체보다 심형래의 인간승리를 보러 극장에 간 관객들이 많다. 심형래 감독의 작품이 계속 성공하려면 콘텐츠가 믿음을 줘야 한다. 제리 브룩하이머처럼, 좋은 제작자가 됐으면 좋겠다.

문화 프로슈머시대의 영화평론
<디워> 논란의 가장 첨예한 전선은 언론과 평단의 혹평과 그것을 반박하는 네티즌(대중)의 목소리다. 대중은 더 이상 평론을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것은 영화비평의 방법에도 변화가 모색돼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은 아닐까.

= 관객은 더 이상 영화에 있어서 수용적 입장에 머무르지 않는다. <디워>는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영화를 소비하는 입장이지만, 텍스트의 가치를 평가하고 싶은 강한 욕망과 자신감이 있다.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플랫폼으로 그것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런 자긍심이 기존 평론가들의 권력과 충돌해 이번의 논란이 발생한 것이다. 평론가들이 더 이상 텍스트 자체만을 분석하려 해서는 안 된다. 문화적, 산업적 측면에서 다양한 비평을 해야 한다.

= 네티즌과 평론가의 역할이 다른데, 서로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한다. 대중은 비평가를 인정하고 비평가도 대중을 낮춰봐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엔터테이너가 아닌 스페셜리스트의 영화평을 싣는 언론의 자세도 필요하다.

07. 0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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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충무로는 왜 "d-war"를 인정하지 않는가..?
    from 깔끄미(입주청소) 2007-08-16 20:51 
    현재 우리나라 영화계는 물론 사회 전반적으로 "d-war"에 대한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영화비평가들이나 전문가들은 디워를 혹평을 한다. 아니다..이정도 수준이면 혹평의 정도를 떠나서 거의 말살이라는 표...
 
 
수유 2007-08-16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조카가 보자 그래서 보게 되었는데, 관람객들은 가족단위가 있긴 했어도 이전의 용가리 때처럼 초등학생들만 들어온 영화는 아니었구요, 다른 영화들 관객층과 크게 다른 점은 없었어요. 대중이 그의 영화에 반응하는 것은 용가리나 그 외 심형래의 괴수영화들과는 확 달라진 CG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편견과 선입견이 작용할 수 있는 평단의 잣대로 그를 평가하지 말라는 대중들의 욕구가 드러난 것 같아요. 위의 오동진 교수의 어떤 스페셜리스트로 보자는 말과도 연결이 되는데 그런 암묵적 동의가 대중들에게 있었던 것 같아요, 신지식인 선정에 관련된 뒤늦은 사회시선도 그랬고.. 그것이 정치적이었거나 우둔한 지도자의 즉흥이라든가..또는 정당하거나 옳거나 비판을 받아야 한다거나 하는 문제와는 다르게 말이죠..여하튼 영화자체의 완결성 같은 건 대중에겐 그리 크게 어필하지 않았다는 점, 애초부터 대중은 심형래에게 그런 기대는 안했을 수도 있어요.. 그게 평단과 대중의 갭 일수도 있지만서두...어린조카도 내용은 좀 이상하지만^^ 그래픽은 좋았고 괜찮았어요 라고 말하더군요^^
영화가 끝나자마자 바로 나가는 사람도 있었고 군데군데 짧은 박수도 있었고.^^

로쟈 2007-08-16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씀대로, 여름방학에 남녀노소 같이 볼 영화가 별로 없기도 하구요. 그나저나 오늘따라 갑자기 서재 방문객이 많아진 게 아무래도 '디워' 탓인가 봅니다. 말로만 신드롬이 아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