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시피, 인도의 빈민가를 다룬 대니 보일의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지난주에 아카데미 영화상을 석권했다. 관련기사 몇 편을 모아놓는다. '슬럼독 밀리어네어'라는 판타지를 걷어낸 '현실'은 어떤 것인지 한번 더 직시할 필요가 있다. '퀴즈쇼'와는 다른 현실을...

경향신문(09. 02. 28) '슬럼독 밀리어네어’로 본 지구촌 빈민가의 삶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8개부문을 석권한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어린 주인공들이 26일 인도 뭄바이의 슬럼가에 ‘금의환향’해 주민들의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영화에 등장했다 해서 이 아이들과 슬럼 주민들의 삶이 갑자기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세계 곳곳 슬럼 주민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빈곤과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슬럼은 지구촌 전체에 확산되고 있지만 슬럼가 출신이 ‘밀리어네어(백만장자)’가 되는 것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미 CNN방송은 이날 영화에 출연했던 아자루딘 이스마일(10)과 루비나 알리(9) 두 어린이가 귀환하자 뭄바이 공항에 시민이 몰려들어 환호했다고 보도했다. 시내에서 열린 축제가 끝나자, 두 아이는 철길 옆 판잣집 안의 플라스틱 박스들 밑으로 들어가 잠을 잤다. 이날 ‘더타임스오브인디아’는 다라비 슬럼을 재개발하려는 시 당국의 야심찬 계획이 주민 이주대책 문제로 늦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인도의 경제수도 뭄바이에서는 인구 1400만명 중 1000만명 이상이 슬럼가의 무허가 판잣집에 산다. 당국은 다라비 슬럼을 없애려 하지만 살 곳을 잃게 될 빈민들의 저항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재개발 압력과 그에 맞선 빈민들의 충돌은 비단 인도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동아프리카 최대도시인 케냐 나이로비의 키베라 슬럼도 그중 하나다. 케냐 시골과 주변국들에서 온 빈민 1000만명 이상이 거주하는 이 슬럼은 동물의 낙원을 자랑하는 케냐의 치부다. 케냐 정부는 오는 7월부터 키베라 재개발을 시작할 방침이지만 26일 주민들과 이주대책을 합의하는 데 실패했다.   

멕시코의 광역수도권(ZMVM)에는 신도시들을 따라 슬럼들이 띠처럼 둘러 있다. 이집트 사막에는 맘루크 왕조 시절의 묘지에 사는 빈민이 늘면서 ‘사자(死者)의 도시’라는 기묘한 마을이 생겼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파벨라(‘빈민촌’이라는 뜻), 파키스탄 카라치 근교의 오랑기 타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캄풍바루(‘새 마을’), 터키 이스탄불의 게체콘두(‘하룻밤에 지은 집’), 이라크 바그다드의 사드르시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소웨토 등 슬럼의 이름은 다양하지만 사는 모양은 비슷하다. 오염된 물과 공기, 에너지난, 질병과 실업, 마약과 범죄, 높은 자살률 등이 슬럼들의 공통분모다.  

제3세계 대도시의 슬럼들은 대개 1970년대 후반의 채무위기와 80년대 국제통화기금(IMF) 주도하의 구조조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미국 사회학자 마이크 데이비스는 “제3세계의 슬럼화는 산업이 성장하면서 농촌 주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밀려들어오면서 일어난 ‘선진국형 슬럼화’와는 다른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오늘날 제3세계 슬럼 주민들은 더 나은 여건을 찾아 도시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농촌에서 삶의 기반을 잃어 등떠밀려 나오게 된 사람들이라는 얘기다.

세계 곳곳에서 인구 1000만명 이상의 거대도시, 이른바 ‘메가시티’가 늘어난 것은 슬럼이 커졌기 때문이다. 유엔은 지난해 전 세계 인구 중 도시 거주자가 절반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했다. 그중 10억명 이상이 슬럼에 살고 있다. 2050년이 되면 세계 인구의 70%가 도시에 살 것이며 그중 절반은 슬럼 주민일 것으로 예상된다.

부의 독과점에 맞선 슬럼 빈민들의 저항은 새로운 흐름이 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부재지주의 집을 차지하는 ‘스쿼팅(squatting·무단점유)’이다. 유럽과 미국에서 시작된 스쿼팅 지지자들은 “재산권보다 생존권이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2005년 남아공 항구도시 더반에서는 ‘아발랄리 운동(AbM)’이라는 무단점유 캠페인이 시작돼 전국으로 퍼졌다. 인도 서벵골에서는 2007년 토지퇴거반대위원회(BUPC)가 결성됐다. 브라질에서는 대농장주들에 맞선 ‘토지 없는 농민운동(MST)’에 이어 ‘집 없는 노동자운동(MTST)’이 일어나 800만채 이상을 점유했다.

반면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들은 주로 슬럼 없애기에 초점을 맞춘다. 유엔 인간거주계획(UN-HABITAT)과 세계은행 등은 2001년부터 ‘슬럼 없는 도시’라는 이름으로 빈민가 주거여건 개선과 교육지원 등을 하고 있다. 그러나 개도국의 구조적 빈곤을 건드리지 못하는 캠페인은 ‘빈민 강제퇴출’이라는 부작용만 낸다는 비판도 많다.(구정은기자)   

아시아경제(09. 02. 28) '슬럼독' 아역배우, 영화 인기로 '일희일비' 

아카데미시상식 8개 부문 수상작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출연한 10세 소년이 영화의 성공으로 일희일비하고 있다. 영국 타블로이드 '더 선'에 따르면 이 영화에 출연한 아자루딘 이스마일은 미국 LA에서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하고 26일(현지시간) 인도 뭄바이로 돌아온 이튿날 아버지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아자루딘의 아버지 모하메드는 이웃과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아들을 발로 차고 뺨을 때렸다.  

모하메드가 아들을 구타한 것은 아자루딘이 장시간 비행과 주위의 관심에 극심한 피로감을 느껴 혼자 있기를 원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더 선'은 모하메드가 아들의 인기를 이용해 뭄바이 다라비 슬럼가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더 선'에 따르면 모하메드는 "아들을 때린 것에 대해 사과한다"며 "아들의 귀국으로 인해 혼란을 겪었고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래서 순간 이성을 잃은 것 같다. 나는 내 아이를 사랑하며 아들이 돌아와 매우 행복하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26일 영국 BBC 온라인판은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빈민가 아역배우들이 새집으로 이사할 예정이라고 인도 정부관리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인도 정부가 아자루딘과 알리의 가족에게 무상으로 집을 마련해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두 가족은 현재 영화의 실제 배경인 뭄바이의 빈민가에 살고 있다. 지역 주택협회의 아마르지트 싱 회장은 "이 아이들이 국가에 영광을 안겨줬기 때문에 무상으로 집을 받아야 한다"면서 "마하라슈트라 주지사도 이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한편 '트레인스포팅'의 대니 보일 감독이 연출한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인도 뭄바이 빈민가에서 자란 소년이 거액의 상금이 걸린 퀴즈쇼 결승에 진출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고경석 기자) 

경향신문09. 03. 02) [베이징에서]부자 나라, 가난한 국민  

인도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중국에서 적잖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아카데미상 8개 부문을 휩쓴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면에는 아시아영화가 할리우드와의 경쟁에서 승리했다는 반오리엔탈리즘도 깔려 있다. ‘중국신문주간’이 이 영화를 두고 ‘아시아’적 요소를 잉태했다고 평가한 것이 그 사례다.

중국 지식인들에게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자국의 현실을 들여다보는 창(窓)이다. 사회평론가 왕궈창은 ‘우리도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찍을 용기가 있다’라는 칼럼에서 왜 중국에는 비판적 리얼리즘 영화가 나오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중국에도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묘사된 경찰의 강압수사, 아동학대, 빈부격차 같은 사회모순이 만연해 있지 않느냐는 우회적인 발언처럼 들린다.

중국인들은 <슬럼독 밀리어네어>(빈민굴의 백만장자)를 ‘핀민푸웡(貧民富翁)’이라 부른다. 이 영화 제목은 지식인들이 중국을 얘기할 때 쓰는 ‘푸궈충민(富國窮民:부유한 나라, 가난한 국민)’이라는 말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지난해 중국은 국내총생산(GDP)에서 독일을 제치고 세계 3위로 부상했다. 무역액도 3위이고, 외환보유액은 세계 최고다. 그러나 개인 소득은 최하위권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07년 말 중국의 1인당 GDP는 2485달러로 세계 99위에 그쳤다.

지난 30년간 중국 공산당은 ‘국부(國富)’ 만들기에 주력했다. 파이를 키운 뒤 나누자며 인민들을 다독였다. 그러나 금융위기로 수출과 투자를 통한 경제성장이 한계에 부딪치자 선 성장 후 분배론이 흔들리고 있다. 중국이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길은 국민 소비를 통한 내수확대뿐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880조원대의 재정 투자에 나섰다. 전자제품을 사는 농민에게 보조금을 주는 가전하향(家電下鄕) 정책도 시행 중이다.

국부에 대한 분배 구조의 개선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인민들에게 지갑을 열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경제전문가들은 중국 정부가 진정으로 내수진작을 통한 소비 확대에 나서려면 민영화 등을 통해 국부를 국민에게 환원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중국의 국유지와 11만 국영기업체의 보유 자산 총액은 79조위안에 달한다. 이를 민영화하면 국민 한 사람당 6만위안이 돌아간다. 국영기업체 상장 주식만 민간에 돌려도 13억 인민은 각각 5500위안어치의 주식을 소유할 수 있다. 2조달러(약 13조위안) 규모의 외환보유액을 국민에게 분배할 경우에는 각각 1만위안을 손에 쥐게 된다.

그러나 공산당이 영도하는 중국에서 국부가 민간으로 환원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차선책은 의료, 교육, 주거 분야의 사회보장제를 확충하고 노동자의 세금을 줄여주는 일이다. 3일 시작되는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는 경제위기 등 민생 문제가 집중 거론될 것이라고 한다. 이 자리에서 국부(國富)와 민부(民富)의 균형을 이루는 방안도 논의됐으면 한다. 공자도 “없는 것보다 고르지 못한 것을 걱정하라(不患寡而患不均)”고 하지 않았던가.(조운찬 특파원)  

09. 03.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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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03-03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0년대에 빈민운동가 솔 알린스키가 청계천 판자촌을 방문해서 이런 지옥같은 곳이 있다니...했답니다.

로쟈 2009-03-03 23:38   좋아요 0 | URL
용산 참사도 '지옥'에서나 일어나는 일이죠...

노승영 2009-03-04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보고 싶은 영화가 꽤 되네요.
지난번에 말씀하신 『마오쩌둥』 오류는 아래 글에 덧글로 올려주시거나
제 이메일로 보내주세요.
http://cafe.naver.com/translate2meditate/12

로쟈 2009-03-04 21:11   좋아요 0 | URL
네, 알겠습니다. 한데, 4월은 돼야 할 것 같아요. 요즘 마구 쪼들리고 있어서요.--;
 

이번주는 신간보다 개봉영화 기사가 더 흥미롭다. 어제 책 이사를 하면서 읽은 일간지 3종과 주간지 1종에서 스크랩해놓기로 한 기사도 그렇다. <왓치맨> 개봉을 맞아 '슈퍼 히어로 영화의 진화'에 대해서 살피고 있다. '상업성이 떨어지는'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라고 하니까 <왓치맨>도, 비록 그래픽 노블의 독자는 아니지만, 부쩍 관심을 끈다. 지난 여름에 본 <다크나이트>에 대한 호감도 아직 남아 있는 상태라 그런 듯하다...  


왓치맨 소설 같은 만화가 원작 심각한 주제 그대로 옮겨 ‘청소년 관람불가’ 작품 

경향신문(09. 02. 27) 슈퍼 히어로 영화, 오락이거나 철학이거나

‘슈퍼 히어로 영화는 어디까지 진화할 것인가.’ ‘슈퍼 히어로 영화는 청소년용’이라고 생각해온 관객이 3월5일 개봉하는 <왓치맨>을 본다면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23일 언론 시사를 통해 한국에서 처음 공개된 영화 <왓치맨>은 작정한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다. 유혈 낭자한 폭력 장면은 예사이고 농도 짙은 베드신도 있다. 표현 수위만 문제가 아니다. 영화에 담긴 암울한 세계관과 역사관이야말로 청소년에겐 이해 불가다. 

  

◇ 성인용 슈퍼 히어로 영화 = <왓치맨>은 1986년 발간된 동명의 그래픽 노블(소설같은 구성·대사가 가미된 만화)을 원작으로 한다. 이 작품을 ‘100대 영문 소설’에 포함시킨 미국 시사주간 타임지는 “<왓치맨>은 냉혹한 심리학적 사실주의, 중첩된 이야기구조, 반복되는 모티브를 보여주는 매혹적인 그림을 포함한다…. <왓치맨>은 젊은 매체의 진화에 분수령이 됐다”고 평했다.

<왓치맨> 속 미국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3선에 성공했으며, 소련과는 여전히 핵전쟁 위기를 겪고 있다. 20세기 초반부터 활약해온 ‘코스튬 히어로’는 활동을 금지하는 법안에 의해 강제로 은퇴당한 상태다. ‘코스튬 히어로’란 법망을 벗어난 범죄자를 사적으로 응징하는 일종의 자경단이다. 전직 코스튬 히어로였던 ‘코미디언’이 살해당하자, 또다른 히어로 로어셰크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옛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은밀히 사건을 수사한다. 히어로 살해사건의 뒤에는 거대한 음모가 있었다.

<왓치맨>은 SF(과학소설)의 하위 장르인 ‘대체 역사’ 영화다. 히어로들의 활동은 미국의 현대사와 교묘히 교직돼있다. 히어로들의 참전에 힘입어 미국은 베트남전을 승리로 이끌었고, 보수 세력의 사주를 받은 ‘코미디언’은 J.F. 케네디를 암살했다. 이들은 남미의 공산정권 전복에도 기여한 것으로 설정돼있다.  

이 영화는 기존 슈퍼 히어로 장르의 관습을 반성한다. 정의를 지키고자 일어선 히어로들은 가면을 쓴 채 무법자를 퇴치했지만, 어느덧 시민들은 ‘감시받지 않는 히어로’를 불안해하기 시작한다. <왓치맨>은 ‘불법을 불법으로 응징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왓치맨> 속 히어로들은 하나같이 불완전한 인물이다. 과대망상에 빠져있거나, 일상에 만족하는 배나온 성불구의 중년이 됐거나, 인간적인 감정을 잃어가거나, 정부의 편에서 약자를 핍박한다. 완벽한 선인 슈퍼맨의 시대는 지나간 지 오래다. 지난해 영화 홍보를 위해 미리 방한한 잭 스나이더 감독은 “기존 슈퍼 히어로들은 왜 은행 강도를 잡거나 나무 위의 고양이를 구하는데 열중하는가가 의문이었다”며 “<왓치맨>을 통해 영웅의 어두운 면모를 드러내고, 슈퍼 히어로의 신화를 해부하려 했다”고 말했다.

원작의 심각한 주제를 고스란히 옮겨온 탓에 영화 <왓치맨>은 상업성이 떨어지는 듯보인다. 161분이라는 상영시간, 슈퍼 히어로 영화의 최대 관객층인 청소년을 포기한 등급은 흥행에 부담이다. 극중 유일하게 초인간적인 능력을 가진 ‘닥터 맨해튼’은 무한한 우주 속 유한한 인간의 보잘것없음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기도 한다.   


다크나이트 ‘악과 동거 가능한가’ 질문 철학·상업성 동시에 만족

◇ 미래의 슈퍼 히어로 영화는 = 지난해 여름 개봉한 <다크 나이트>는 슈퍼 히어로 영화의 분수령이었다. ‘악과의 평화로운 동거는 가능한가’ ‘목적이 옳으면 수단은 정당화되는가’ 같은 질문을 던진 이 영화는 152분에 이르는 상영시간 부담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400만 관객을 동원했다. ‘슈퍼 히어로 영화’가 철학적이면서 동시에 상업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아이언맨 바람둥이 영웅 앞세워 미국 군수산업 비판도

리안 감독의 <헐크>는 ‘찢어진 반바지를 입은 초록 괴물’ 정도로 여겨졌던 헐크 이야기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더한 성인 취향 드라마였다. <엑스맨>은 소수의 슈퍼 히어로를 동성애자, 유색인종같이 핍박받는 소수자의 시선으로 그려냈다. 심지어 바람둥이 백만장자를 슈퍼 히어로로 등장시킨 매끈한 상업영화 <아이언맨>조차 미국의 군수산업, 중동 정책에 대해 비판했다.

영화평론가 김봉석씨는 “할리우드에서 영화화되면서 대중적으로 변모하긴 했지만, 그래픽 노블은 원래 성인을 위한 문학이었다”면서 “앞으로 슈퍼 히어로 영화는 <아이언맨>처럼 오락성을 내세운 영화와 <왓치맨>처럼 심오하고 마이너한 영화로 구분돼 발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백승찬기자) 

09. 0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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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02-28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왓치맨을 처음 읽었을 땐 조금 버거웠는데.(만화치고는 글이 지나치게 많죠. 그래서 그래픽 노블일지도 모르겠지만.) 두번째 읽었을 땐 이거 물건이구나.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답니다.

로쟈 2009-03-01 13:11   좋아요 0 | URL
네, 그렇군요. 좋아하는 장르는 아니지만 관심은 갖게 됩니다...

라로 2009-02-28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왓치맨은 원래 12권짜리 만화가 원작이죠~.그걸 그래픽노블로 만들었고,,,
'슈퍼 히어로 영화의 최대 관객층인 청소년을 포기한 등급은 흥행에 부담이다'라고 하셨는데
사실 왓치맨의 팬들은 청소년들보다 중장년층이 더 많을거에요.
왓치맨을 청소년때 읽었던 사람들이 다 커서 엄청 기다리고 있는 걸로 압니다.
그리고 왓치맨의 작가는 그 어떤 히어로 만화를 그린 작가들보다 훨 유명하고 대단한 작가이니까요.
하지만 본인이 자신의 작품을 영화화 하는걸 반대하는지라 영화에서 원작자의 이름이 안나올거라고 하더군요.
예전에 나왔던 젠틀맨스리그도 그의 작품이죠.
유혈이 낭자하다고 하여 관람이 꺼려지지만 저역시 기대되는 작품이에요.

로쟈 2009-03-01 13:11   좋아요 0 | URL
나중에 영화평도 기대해보겠습니다.^^

Kir 2009-02-28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업성이 떨어지는', '청소년 관람불가' 이 두가지에 관심이 커졌습니다. 배트맨을 제외한 슈퍼 히어로물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데, 이건 봐야겠네요.

로쟈 2009-03-01 13:12   좋아요 0 | URL
취향이 비슷하시네요.^^
 

이번주 개봉예정작에는 이미 '걸작'이란 소문이 파다한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신작 <이스턴 프라미스>가 포함돼 있다. 명불허전이므로 간단한 소개 기사들만을 챙겨둔다(개인적으론 러시아 마피아를 소재로 한 영화여서 더 기대가 크다). 그럼에도 기사는 꼼꼼히 읽지 마시길...  

 

한겨레(08. 12. 08) 비극은 한 권의 일기서 시작됐지

‘냉혹함’과 ‘포근함’은 서로 다른 세계의 언어다. 새 생명이 태어나는 조산실의 풍경과 사내들이 서로의 목을 향해 칼질을 서슴지 않는 ‘조직’의 세계는 좀처럼 상대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스파이더>(2002)와 <폭력의 역사>(2005)에서 기묘한 느낌의 세계를 구축해 온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신작 <이스턴 프라미스>는 화해할 수 없는 두 세계가 충돌할 때 나타나는 풍경들을 서늘하게 그린다.

런던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는 조산사 안나(나오미 와츠)는 ‘타티아나’란 이름의 열네 살짜리 그루지야 소녀가 낳은 아기를 받아 낸다. 숨진 소녀와 살아난 아기. 안나는 아기의 연고를 찾기 위해 소녀의 일기장에 꽂힌 명함 주소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인자해 보이는 노인 세미온(이민 뮬러-스탈)이 안나를 맞는다. 세미온은 겉으로는 고급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신사지만, 실제로는 동유럽에 근거를 둔 런던 최대 범죄 조직 ‘보리 V 자콘’의 두목이다. 세미온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안나는 조직의 운전수 니콜라이(비고 모텐슨)에게 묘한 ‘끌림’을 느낀다.

안나는 러시아어로 써진 소녀의 일기를 읽을 수 없다. 세미온은 안나에게 “일기를 번역해 주겠다”고 말하고, 안나는 그에게 일기 사본을 넘긴다. 일기에는 안나가 모르는 뜻밖의 비밀이 담겨 있다. 그래서 ‘세미온의 세계’는 ‘안나의 세계’에 개입한다. 니콜라이는 안나에게 “당신이 있을 곳은 저기 좋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에요. 저 같은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셔야 합니다”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비정한 조직은 니콜라이를 세미온의 아들 키릴(뱅상 카셀) 대신 사지에 내몬다. 사우나실 안에서 무방비 상태로 두 괴한의 침입을 받은 니콜라이가 보여주는 절박한 폭력의 몸짓은 영화의 ‘백미’라 꼽을 만하다. 싸늘한 주검이 된 타티아나가 그랬듯 니콜라이도, 세미온도 한때는 ‘포근함’의 세계에 속했던 사람들은 아니었을까. 11일 개봉.(길윤형 기자)

필름2.0(08. 12. 05) 크로넨버그의 새로운 경지

한 가족사를 통해 폭력의 생태를 짚어나가는 <이스턴 프라미스>는 끊임없이 인간의 본성을 탐구한 크로넨버그가 다시 새로운 경지에 올라섰음을 증명하는 걸작이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런던. 평범한 외관의 이발소와 약국에서 뜻밖의 사건들이 일어난다. 중년 남자가 이발하는 도중 청년에게 살해당하고 약국을 찾은 임신 중인 소녀는 하혈을 하며 기절한다. 소녀는 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지만 아이를 낳고 죽는다. 유품인 일기장에서 소녀의 이름이 ‘타티아나’임을 알게 된 간호사 안나(나오미 왓츠)는 러시아어로 쓰인 수첩 내용을 번역해 아기의 연고지를 찾기로 한다. 안나는 수첩에서 발견한 명함의 식당인 ‘트랜스 시베리아’를 찾아간다. 새미온(아민 뮬러-스탈)이라는 러시아인이 운영하는 이곳에서 안나는 새미온 가족의 운전수로 일하는 니콜라이(비고 모텐슨)를 만난다. 하지만 안나는 곧 식당이 러시아 마피아의 유럽 본거지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니콜라이는 위험에 처한 안나와 아기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이스턴 프라미스>는 주제와 형식면에서 <폭력의 역사>(2005)와 연작으로 묶을 수 있는 작품이다. 일명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폭력 2부작’이라 불리는 두 영화는 모두 ‘폭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크로넨버그가 그리는 폭력은 여타 영화들이 폭력을 이야기하고 사용하는 방식과 사뭇 다르다. 그의 폭력은 특정한 공간, 주체, 이유, 대상을 갖지 않는다. 폭력이 존재하는 곳은 어두운 뒷골목이 아니라 대낮의 식당 혹은 이발소처럼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이고 폭력을 행하는 이는 익명성이 두드러지는 사람들이다.

세상의 모든 가치에서 우위를 점하는 폭력은 그 자체가 존재 이유다. 그런 폭력으로부터는 보통 사람들도 안전하지 않다. 즉 크로넨버그가 영화에서 그리는 폭력은 평범한 인간과 일상에 기생하는 종류의 것이다. 때문에 쉽사리 발견되지 않고, 은밀하기에 깊고 단단하다. 더욱 무서운 것은 폭력이 인간 본연의 선처럼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크로넨버그가 영화에 담는 것은 바로 이런 폭력의 절대성이다. <폭력의 역사>는 가족 드라마를 내세워 일상에 잠복한 폭력의 속성을 정교하게 그린 수작이었다. 마찬가지로 한 가족사를 통해 폭력의 생태를 짚어나가는 <이스턴 프라미스>는 끊임없이 인간의 본성을 탐구한 크로넨버그가 다시 새로운 경지에 올라섰음을 증명하는 걸작이다.

온화한 인상의 식당주인 새미온은 사실 런던 최대 범죄 조직인 러시아 마피아단 ‘보리 V 자콘’의 보스다. 그의 아들 키릴(뱅상 카셀)은 조직의 2인자로서 이발소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청부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운전수인 니콜라이는 조직의 해결사다. 하지만 이들의 존재가 두려운 것은 단순히 마피아여서가 아니다. 이들의 악행이 평범한 사람들에게까지 미치기 때문이다. 범죄세계와 무관한 안나는 연고가 없는 어린 산모가 남긴 아이 때문에 마피아 조직의 타깃이 된다. <폭력의 역사>에서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날 벌어진 사건이 평온한 가정과 마을을 피로 물들였듯이 안나의 일상에도 폭력의 공포가 스며든 것이다.

하지만 <폭력의 역사>가 톰(비고 모텐슨)의 과거가 드러나면서 마을 전체에 피어오르던 폭력의 기운을 담았다면 <이스턴 프라미스>는 폭력의 실체를 좀 더 구체화, 형상화해 보여준다. 건실한 가장의 외피를 뒤집어쓰고 있던 폭력은 <이스턴 프라미스>에서 갱들의 몸을 빌려 표현된다. 검은 정장과 선글라스의 남자들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폭력의 잔혹함을 예감케 한다. 그만큼 폭력의 묘사 역시 직접적이다. 아이들의 교내 싸움, 부부간의 섹스 등을 통해 일상에 도사리는 폭력성을 우회적으로 그려내기도 했던 <폭력의 역사>와 달리 영화는 첫 장면부터 폭력의 섬뜩한 실체를 보여준다.

특이할 것 없는 평범한 이발소에서 어수룩해 보이는 청년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유쾌한 농담을 건네던 남자의 목을 칼로 가른다. 벌어진 살 틈으로 피가 뿜어져 나오는 이 장면은 사실적이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하지만 폭력을 그리는 크로넨버그의 수사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단연 중반부 사우나 격투 신. 니콜라이가 두 명의 킬러와 맨몸으로 싸우는 이 장면은 영화가 구사할 수 있는 폭력의 최대치를 보여준다. 오감이 압도되는 이 장면에서는 가학적이거나 피학적인 쾌감조차 느끼기 힘들다.

크로넨버그가 우리가 몰랐던 일상의 이면이 드러나는 무대로 범죄 도시의 이미지가 희미한 런던을 택한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이곳에서 크로넨버그는 구원도 희망도 찾아보기 힘든 세계를 구축한다. 평범하면서도 어딘가 냉기 어린 고요가 흐르는 런던의 풍경을 잡아내기 위해서 제작진은 런던의 뒷골목을 샅샅이 뒤졌다. 장소 헌팅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러시아인들을 주인공으로 한 만큼 다문화적 특성이 드러난 곳이어야 했다. 고심 끝에 낙찰된 장소는 킬번, 그린위치, 해크니, 할레스덴 등 외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런던의 변두리다.

일상의 한복판에 던져진 폭력의 양상을 탐색하는 크로넨버그는 또 다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폭력의 역사>에서 ‘폭력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나?’로 시작된 질문은 <이스턴 프라미스>에 이르러 ‘구원은 있나?’로 확장된다. 크로넨버그는 이례적으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몇 가지 단서는 남겨놓는다. 아이와 후반부의 반전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구원을 바라도 되는 것일까. 하지만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간 후에도 이 질문에 답하기란 힘들다.

영화가 담은 폭력의 속성은 결국 변하지 않을 인간의 본질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아이라는 명백한 구원의 요소가 일종의 연민 어린 판타지로 보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폭력을 통해 마침내 인간과 세상의 본질을 관통한 <이스턴 프라미스>는 크로넨버그의 경이적인 성취를 보여주는 영화다.

문신으로 새겨 넣은 폭력의 역사

<이스턴 프라미스> 속 문신은 힘의 과시라기보다 개인의 정체성, 역사와 맞닿아 있다.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수감 기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심지어 그 사람의 성적 취향까지도 드러낸다. 비고 모텐슨의 등과 손목, 발목, 손가락에까지 새겨진 문신은 총 43개. 옥스퍼드 문신 박물관에서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약 4시간 동안 작업한 결과다. 호랑이, 별, 아기와 함께 있는 성모마리아, 십자가, 바벨탑, 예수, 벌거벗은 천사, 나뭇가지, 단추, 까마귀, 약탈자, 스콜피온, 단검, 문장 등 다양한 종류의 문신이 새겨져 있다. 문신들은 각각의 의미를 지니는데 대표적인 문신의 뜻을 살펴본다.

발목 수갑 문신 수용자들이 자신의 발목을 그어버리던 베드로 시대의 오마주

가슴의 십자가 종교적 의미가 아닌 모범이 될 만한 도둑이라는 의미를 내포

세 개의 둥근 지붕 모양 교회 3개의 다른 감옥을 의미

무릎의 별 문양 실제 마피아 집단인 보리의 영속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조직 내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을 뜻함

08. 12. 07.

P.S. 최근 데이비드 린치의 책도 출간된 김에, 이 '또 다른 데이비드'의 책도 소개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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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7 2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08 2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08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08 2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08-12-08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굉장히...노골적인 영화였어요.
특히 아민뮬러스탈의 이중적인 모습은 뮤직박스 이후 두번째 만났습니다.

로쟈 2008-12-08 21:26   좋아요 0 | URL
저도 기대가 됩니다...

드팀전 2008-12-08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작이지요. 비고 모텐슨은 정말 러시아사람처럼 영어를 하던데. <씨네21><필름2.0>이 '배트맨' 이후 집중적으로 좋아라하고 있습니다.ㅋㅋ

로쟈 2008-12-08 21:26   좋아요 0 | URL
네 걸작이 '자주' 나오고 있습니다.^^

수유 2008-12-08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연말이 되니 좋은 영화들이 한두편 들어오나요, 수첩에 적어야겠습니다!!

로쟈 2008-12-08 21:26   좋아요 0 | URL
볼 만한 영화들은 많은 듯싶어요...

하이드 2008-12-08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등의 해골은 살인자,
팔에 호랑이 문신은 행동대장.

무삭제로 나온다고 얘기 들었는데, 그렇다면 정말 ㄷㄷㄷ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이라고 해서 괴영화를 예상했는데, 지극히 현실적인 영화여서, 더 오래오래 남을듯합니다.

로쟈 2008-12-08 21:27   좋아요 0 | URL
하이드님 취향이시죠?^^

2008-12-09 0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09 0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yoonakim 2008-12-09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나 많은 매서운 눈들이 있어서 전 이제 영화에 대해 모라고 말을 하기가 겁납니다^^

로쟈 2008-12-09 14:05   좋아요 0 | URL
영화평론도 사양업종이라잖아요.^^;
 

여성들의 완소남 배우 소지섭의 재기작 정도로만 알고 있던 영화 <영화는 영화다>가 '문제작'이란 사실은 최근에 영화/시사 잡지의 기사들을 보고서야 알았다. 데뷔작을 찍은 장훈 감독이 김기덕 감독 연출부 출신이란 것도. 게다가 이 액션영화의 시나리오를 김기덕 감독이 썼고, 이 저예산 영화에 100만 관객이 들었다는 것도! 그래서 정작 김기덕 감독의 최신작 <비몽>보다도 더 관심을 갖게 됐다(기회가 주어진다면 <영화는 영화다>를 먼저 보겠다는 얘기다). 주초에 읽은 시사인의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비몽>과 관련한 인터뷰기사는 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312776.html 참조).   

시사인(08. 09. 30) “영화요?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생사람 잡지 말고 호구조사부터 들어가자. <영화는 영화다>를 만든 장훈 감독(34)은 영화 전문지 <KINO>에서 기자로 일하다 독립영화 감독으로 두각을 나타낸 그 장훈 감독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혼동한다.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영화 학자조차 그런 실수를 저질렀다. 고백하자면 기자도 그 장훈과 동일인물이라고 짐작했다.

그만큼 장훈 감독은 영화판 안에서조차 베일에 싸인 사람이다. 유일한 ‘정보’라고 해봐야 김기덕 감독 아래에서 오랫동안 조감독 생활을 했다는 것 정도. 미술을 공부했고, 별다른 배경 없이 영화계에 등장했다는 점도 김기덕 감독과 닮았다.

그런 그가 ‘사고’를 쳤다. 7억원도 안 들인 저예산 작품인 <영화는 영화다>가 관객 100만명을 돌파했다. 제작비의 열 배 가까운 수입을 벌어들인 것이다. 평단의 반응도 뜨거웠다. 최근 지속된 한국 영화의 불황 속에 내린 단비였다. 무엇보다 그 감독이 글자 그대로 무명의 ‘신인’이라는 점에서 화제가 됐다.

감독이 배우를 조립할 순 없어

그런데 직접 만나본 장훈 감독은 영 뜻밖이었다. 혈기와 패기 넘치는 신인 감독의 풍모를 기대한 건 오산이었다. 말수가 적었고, 목소리는 낮았다. 액션 장면 난무하는 장편영화 촬영을 겨우 47일 만에 끝마친 열혈 감독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뜻밖인 건 겉모습만이 아니었다. 이 젊은 감독은 현장을 장악하려 들지 않았다. 

“어떤 배우나 스태프라도 결국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더군요. 몸이 안 될 때도 있고, 마음이 안 열릴 때도 있고요. 하지만 저는 영화 속 봉 감독처럼 무리하게 주문하지는 않아요. 각자가 할 수 있는 능력에 한계가 있는데, 그 이상을 요구하다보면 어떤 경우엔 그 사람이 가진 정체성을 완전히 무너뜨려야 하는 일도 생기잖아요.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영화는 찍을 수 있을지 몰라도 제가 그 사람을 다시 조립해줄 수는 없잖아요.”



장 감독에게는 김기덕 감독의 후광이 서려 있다. <영화는 영화다> 시나리오의 원작을 김기덕 감독이 썼고 영화 제작도 김기덕필름에서 맡았다. 영화 촬영 때 배우와 스태프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 것도 김기덕 감독의 영향 때문이다. 혹여 김 감독의 ‘그늘’에 갇히는 것이 아닌지 걱정될 법도 한데, 스스로도 김기덕 감독의 후광을 마다하지 않는다.

“김기덕 감독님에게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앞으로도 더 배울 것이 많지요. 특히 김기덕 감독은 다른 사람 돈으로 영화를 만들 땐 결코 손해를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셨어요. 영화는 로또가 아니기 때문에 대박을 꿈꾸진 않더라도 손해 보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다음 영화를 또 준비할 수 있으니까요.”

장훈 감독과 김기덕 감독의 만남은 학창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술대학에 다니던 시절, 학교 강연에 김 감독을 초빙한 인연으로 자주 연락을 주고받았다. 졸업할 무렵인 2003년, 취업과 영화를 고민하던 그에게 김 감독이 <사마리아> 연출부에서 일할 것을 권했다. ‘한번 일해보면’ 영화판 일을 계속할지 결정할 수 있으리라는 조언이었다. 그 뒤 연출부 막일부터 시작해, 첫 영화로 ‘입봉(첫 작품 데뷔를 뜻하는 영화계 은어)’할 때까지 둘은 햇수로 6년 동안 한 배를 탔다.     

첫 작품부터 화제를 몰고 온 걸출한 신인이지만, 그의 ‘히스토리’는 평범하기 짝이 없다. 영화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누구처럼 장안에 소문난 ‘시네마 키드’도 아니었다. 대학 시절 학내 신문에 만평을 그린 것 정도가 제법 특출난 이력이다. 

제가 원래 나서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에요. 학창 시절에도 존재감 없이 사는 게 좋았어요. 유명해지고 싶어서 영화한 것도 아니고…. 다만 영화 공부는 나름 열심히 했어요. 제가 약간 메모광인데, 영화 볼 때 늘 수첩을 옆에 끼고 이런저런 메모를 했습니다. 어두운 극장에서 메모를 해놓고, 집에 돌아와 다시 옮겨 적곤 했지요. 그러다 보면 영화에 대해 갖는 저의 생각이 좀더 구체화되고 발전하더군요. 그런 생각의 실마리를 잡아내기 위해서, 더 열심히 메모를 했습니다.”

중요한 건 영화가 아니라 삶

장 감독은 주변 동생들이 더러 영화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오면 일단 고개부터 젓고 본다. 속으로는 그들이 영화 쪽에서 일하기를 바라면서도 그렇다. 현직에 있는 선배가 ‘하지 말라’고 말리는데도 끝내 하겠다고 나서는 각오가 있어야 ‘사람답게 살기 힘든’ 영화판에서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일이란 게 어렵지요. 직장이라고 말하기도 어렵고, 촬영 들어가면 명절 때도 집에 못 가기 일쑤고…. 어떤 감독님은 작업 공간이 없어서 PC방에서 컵라면 먹으면서 시나리오 작업을 한답니다. 캐스팅하고 싶은 배우들 사진을 모니터 화면에 깔아놓고, 힘들 때마다 그 사진 보고 힘내서 시나리오를 쓰는 거죠. 그럼에도 이 일을 계속하는 걸 보면 설명하기 힘든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영화는 영화다>에서 영화배우 수타(강지환)가  “당신이 연기가 뭔지 알아?”라고 묻자 주인공 강패(소지섭)는 이렇게 답한다. “연기란 게 별 거 있나, 인생 잘 만나서 편하게 남 흉내나 내면서 사는 거지.” 장훈 감독에게도 똑같이 물었다. 당신, 영화가 뭔지 아느냐고.

“아직은 ‘삶을 위한 은유인 것 같다’는 대답밖에 할 수 없네요. 삶이 중요하지요. 하지만 영화 작업을 더 하다보면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어떤 영화를 만드느냐에 따라 매번 달라지는 것이겠죠. 그래서 매번 새로운 해답에 도달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영화는 영화다’라고 당차게 선언한 젊은 감독의 해답 찾기는, 실은 이제 막 시작인 셈이다.(이오성기자)

장훈 감독 : 1975년생. 대학에서 시각디자인 전공하고 졸업 뒤 김기덕 감독 연출부 생활.  2003년 <사마리아> 연출부 / 2004년 <신부수업> <빈집> 연출부 / 2005년 <활> 조감독 / 2006년 <시간> 조감독 / 2008년 <영화는 영화다> 연출.

08. 10.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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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10-03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 나서 영화평 멋지게 써주세요.소지섭,강지환은 정말 훤칠하고 길쭉길쭉하죠?

로쟈 2008-10-04 00:56   좋아요 0 | URL
조만간 볼 기회는 없을 듯싶은데요.^^;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나는 부산영화제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 '외지인'도 물론 그런 축제에 손님으로 참여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것이 부산 시민들(만)의 '특권'이어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서울에는 없는 것 하나씩을 지방도시들이 다들 나눠가진다면 좋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오늘 개막한 제13회 영화제에도 개막작 <스탈린의 선물>을 비롯해서 눈길을 유혹하는 영화들이 많다. 모두 그림의 떡이라 생각하지만, 왕가위의 <동사서독 리덕스>는 '떡 중의 떡'으로 특히나 침이 고이게 만든다. 기본 골격은 달라지지 않았을 법한데, 어떻게 새로 편집됐는지 궁금하다. 게다가 홍콩 최고배우들이 총출동하는 영화이니만큼, 허무하고도 허무한 인생사를 주제로 함에도 불구하고 호사스럽고도 호사스러운 영화가 아니었던가(나는 첫 개봉 당시 명보극장과 명보아트홀에서 연거푸 본 기억이 있다. 같은 날 저녁에). 정식으로 개봉되기를 기대한다.

한국일보(08. 10. 02) '동사서독…' 부산서 놓치면 후회할 영화들!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는 필리핀과 중앙아시아 등 그 동안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아시아권 영화들에 주목했다. 카자흐스탄 영화 <스탈린의 선물>(감독 루스템 압드라쉐프)가 개막작으로 지정된 것이 그 방증이다. 아시아권 23개국에서 초청된 50여 편의 영화는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색다른 감동을 안겨줄 것이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인 필리핀-프랑스 합작 영화 <서비스>(감독 브리얀테 멘도사)는 현대를 사는 인간의 위선을 비판한 수작이다. 여성들에게는 죽어가는 커리어우먼의 마지막 100일을 그린 필리핀 영화 <100>(감독 크리스 마르티네즈)를 추천한다. 이 외에도 필리핀 영화 <고해><제이>와 카자흐스탄 영화 <무당의 춤>도 눈에 띈다.

보다 상업적인 영화를 원하는 팬들에게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 <동사서독 리덕스>가 제격이다.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도 특별 상영됐던 <동사서독 리덕스>는 고(故) 장국영의 모습을 비롯해 홍콩 유명배우를 한꺼번에 만들 수 있는 작품이다. 또한 영화 <참새>(감독 두기봉)는 오랜만에 홍콩 누와르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아시아 각국 영웅의 이야기를 다룬 섹션인 '아시아의 슈퍼히어로'로 빼놓을 수 없다. 한국 영웅의 원조라 할 수 있는 홍길동의 이야기를 다룬 1967년작 <홍길동전>(감독 신동헌)을 비롯해 <머큐리맨>(태국) <라스틱맨>(필리핀) <치착맨2>(말레이시아> 등 다양한 '맨'을 만나볼 수 있다. 끝으로 영화제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개막작 <스탈린의 선물>과 폐막작 <나는 행복합니다>(감독 윤종찬)은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다.(안진용기자)

08. 10. 02.

P.S. <동사서독 리덕스>의 예고편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Oos8-vS6Dz4 참조. 더불어, 칸느영화제에서의 특별시사회에 관한 뉴스보도는 http://www.youtube.com/watch?v=2MKW28H1xHI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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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3 0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03 2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팀전 2008-10-03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참 좋아했던 영화입니다. 이번 영화제에서도 제일 먼저 표가 동났다고 하더군요.
시간이 되어 다시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로쟈 2008-10-03 21:08   좋아요 0 | URL
아, 부산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