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이제 고유명사다. 아는 사람은 다 알다시피 홍상수의 신작 제목이기 때문이다. 홍상수의 모든 영화에 관심이 있는 나로서는(하지만 <밤과 낮>은 아직 보지 못했다) 당연히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도 관심을 두게 된다. 박찬욱의 <박쥐>나 봉준호의 <마더>보다도 더 기대를 한다면, 그건 순전히 나의 취향 탓이다. 나는 '영화 같은 영화'보다는 '영화 같지 않은 영화'를 좀더 선호하는 것이다. <박쥐>에 밀려서 동네극장에서는 <똥파리>가 자취를 감추었는데, <박쥐> 때문에 <잘 알지도 못하면서>가 연착하는 게 아닐까 우려된다. 내주에는 영화감상 시간을 좀 내야겠다. 짤막한 소개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09. 05. 04) 잘 알지만 잘 알지 못하는 내 자화상

홍상수 감독의 신작 <잘 알지도 못하면서>가 그의 필모그래피(작품 목록)에서 가장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영화라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독설과 조롱은 전작들에 비해 한결 줄었으며, 감독 자신의 표현대로 “나이가 들어 편안해진” 것처럼 보인다. 나르시시즘에 빠져 살짝 미쳐 있는 여자들, 센 척 하지만 항상 쩔쩔매는 남자들, 어디선가 본 듯한 친숙한 인물들이 우르르 몰려나와서 충분히 있을 법한 말과 행동을 쏟아내는데, 기이하게도 홍상수는 그 익숙함을 낯설게 포착해내는 데 성공한다. 관객은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일상의 조각에 참았던 웃음을 터뜨린다. 

일상을 살짝 비튼 웃음

홍상수의 주인공은 언제나처럼 길 위에 서 있다. 예술영화 감독 구경남(김태우)은 제천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제천에 갔다가, 얼마 뒤 학생들에게 특강하러 제주도에 간다. 영화는 구경남이 제천과 제주에서 만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일상의 장면들을 비틀어 웃음을 이끌어내는 홍상수식 유머는 거의 정점에 이른 듯하다. 이를테면 구경남과 제천영화제 프로그래머 공현희(엄지원)가 처음 만나는 장면. 구경남은 전날 한숨도 못 잤는데,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한두 시간 잤더니 다섯 시간 잔 것처럼 개운하다는 등의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공현희는 제대로 듣지도 않고 말허리를 자르며 명함을 건넨다. 저녁에 열린 파티에서는 여러 사람을 한꺼번에 만나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흥행 감독이 됐다고 어깨에 힘을 주는 후배에게 질투심을 느낀다. 싸잡아 얘기하면 너나없이 다 속물들인데, 그런 속물들이 사는 곳이 바로 세상 아닌가, 홍상수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지키지도 못하면서 vs 잘 알지도 못하면서
홍상수의 주인공은 여전히 연애에 관심이 많지만, 예전처럼 본능적 욕구를 해결하는 데 급급하기보다는 영혼의 ‘짝’을 갈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짝을 만났다고 자부하는 두 커플을 만난다. 그러나 구경남이 확인한바, 부상용(공형진)·유신(정유미) 부부는 자기 안에 갇힌 과대망상의 ‘송충이’이며, 양천수(문창길)·고순(고현정) 부부는 바람을 피운다. 구경남 자신은 이번에도 짝을 찾는 데 실패한다.

제천과 제주라는, 앞 글자가 같은 두 공간의 대구는 ‘지키지도 못하면서’와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대구이기도 하다. 제천에서 만난 공현희는 구경남에게 지키지도 못하면서 왜 약속을 남발하느냐고 타박하고, 제주에서 만난 고순(고현정)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남의 일에 간섭하느냐고 구박한다. 영화는 결국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인간들에 대한 경멸을 드러내고, 스캔들을 비난하는 세상을 향해 “위선 떨지 마, 지가 하고 싶은 거였으면서”(구경남)라고 야유를 보낸다.

 

영화에 대한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극장전>(2005)보다도 훨씬 직접적으로 감독 자신의 작품(혹은 작품 활동)에 대해 대놓고 말하는 ‘영화에 대한 영화’(메타 영화)다. <씨네21>이 실명으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자신의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텍스트 안으로 끌고 들어와 스스로 흔들고 풍자한다. “왜 사람들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영화를 계속 만드느냐”는 학생의 질문에 구경남은 뭐라고 답변하지만 그 말은 공허하게 허공을 떠돌고 결국 상대에게 닿지 않는다. 구경남은 “다음 영화는 200만”이라며, 사람들이 많이 보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다짐하는데, 그래서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지금까지 나온 홍상수의 영화 중 가장 대중적이다.

“사람이 되긴 어려워도 괴물이 되진 맙시다”(<생활의 발견>), “생각을 해야겠다. 생각만이 나를 살릴 수 있어”(<극장전>)와 같은 영화 유행어를 남긴 홍상수는 고현정의 입을 빌려 달관한 사람처럼 일침을 놓는다.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래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딱 아는 만큼만 안다고 해요.”

그의 영화를 보는 것은 홈비디오로 찍어놓은 자기 모습을 극장에서 보는 것처럼 쑥스럽고 민망하다. 그러나 그런 보잘것없는 자화상과 대면한 뒤 극장 문을 나서면 관객은 다시 그 쑥스럽고 민망한 세상 속에서 살아나갈 힘을 얻는다. 홍상수의 유머는 힘이 세다.(이재성기자)  

09. 05.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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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ike You Know It All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5-16 21:40 
    기분전환도 할 겸 오랜만에 동네극장에서 심야영화를 보기로 하고 정한 프로그램은 홍상수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다. 박찬욱의 <박쥐>도 상영중이지만 한편만 봐야 한다면 나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다(여러 리뷰를 보건대 <박쥐>의 감상이 유쾌할 것 같지 않다). 두 시간쯤 남았는데, 마침 감독 인터뷰 기사가 있기에 '기념'으로 스크랩해놓는다. 인터뷰의 홍상수는 이젠 나도 잘 아는 홍상수이다. 아, 그의
 
 
2009-05-05 2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06 07: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06 15: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06 2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06 2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06 2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konstant 2009-05-06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폰지 하우스에서 이 영화 개봉에 맞춰서 홍상수 감독의 전작들을 상영하는
감독전을 3주간이나 진행한다고 하네요~

밥은 굶어도 책사고 영화보느라 돈을 꽤 쓰는 편인데,
안 그래도 가벼운 지갑 속 잔돈까지 탈탈 털어서 챙겨봐야겠어요 ^^

로쟈님은 홍상수 감독 영화 중 어떤 영화를 좋아하시나요?
(전 <오! 수정>만 아직 못 봤는데 그외는 다 좋아합니다;;;)

밀리 2009-06-02 14:52   좋아요 0 | URL
<오!수정>은 꼭 봐야 합니다!!^^;

2009-05-07 1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똥파리'가 말하는 한국사회

지난주에 소개기사를 옮겨놓기도 했는데,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가 내일 개봉한다고 한다. 동네 CGV에서는 상영을 하지 않아서 언제, 어떻게 봐야 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여하튼 몰상식한 뉴스들만 쏟아지고 있는 터라(오늘도 어이없는 언론탄압 기사들이 떴다) 최소한의 정신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한번쯤 보고 싶다. 감독 인터뷰 기사가 눈에 띄기에 스크랩해놓는다.

 

고대신문(09. 04. 06) "세상에 태어난 이상 우린 다 특별해"  

피하고 싶은 것이 우리 곁으로 날아온다. 오는 16일(목)에 개봉하는 영화 <똥파리(Breathless)>다. 지저분한 맨홀 뚜껑 아래에서의 삶을 절절히 그려낸 <똥파리>에서 주연으로 열연한 양익준 감독. 그는 서른다섯의 나이에 스물다섯의 용기 하나로 살아간다. 영화인 양익준과 한 인간으로서의 양익준을 만나봤다.   

#1. 영화가 말을 걸다
영화 제목이 왜 똥파리(Breathless)인가
예전에 어른들이 ‘똥파리’란 말을 많이 썼잖아요. 아마 모르실 수도 있겠지만, 저 같은 경우엔 너무 많이 들어서(웃음). ‘에잇, 이 미천한 놈, 더러운 놈, 우리 곁에 오지 않았으면……’하고 내쳐지는 사람들을 비유하는 말이죠. 이 영화에 등장하는 상훈이나 영재가 다 똥파리로 치부되는 사람들이에요. 영어 제목 ‘Breathless’는 손원평 감독이 지어줬어요. 손 감독은 제가 주연으로 연기했던 <인간적으로 정이 안 가는 인간>(2005)의 감독이었어요. 제 첫 작품부터 계속 제목을 지어줬는데 이번 것은 정말 잘 지어준 것 같아요. 이 세상에 숨 쉴 수 있는 공기는 수북하게 있지만 사람들은 숨을 헐떡이면서 살고 있잖아요. 그래서 ‘똥파리’라는 제목과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프랑스의 거장 장 뤽 고다르(Monsieur Godard)감독의 첫 작품 제목도 ‘Breathless’였대요. 그 때문에 해외 영화인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어요. 

네덜란드에서 귀국한지 얼마 안 됐다. 지난 1월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타이거상을 수상한 소감이 어떠한가
사실 이렇게 얘기하면 ‘로테르담 국제영화제’한테는 미안하지만 예전에 ‘미쟝센 단편영화제(2005)’에서 인기상 받을 때와 처음 만든 단편영화로 ‘서울독립영화제(2005)’에서 관객상 받았을 때가 더 기뻤던 것 같아요. 그 땐 초반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상을 받으면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들어가는 게 싫어서 되도록 빨리 잊어버리려고 해요. 이번 영화제엔 젊은 감독들이 많이 모여서 활기찼고, 상을 받은 것보다도 다른 나라의 감독, 관객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었던 게 더 좋았어요. 자전거를 타고 오시던 네덜란드의 한 중년 여성이 절 보더니 ‘Breathless!’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그래서 한 20분 간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결국 가족이라는 건 모든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고민하는 문제더라고요.  



연출과 주연을 둘 다 맡았다
처음부터 ‘내가 하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했어요. 근데 촬영을 끝내고 편집하면서 ‘아, 내가 괜히 했나?’하고 고민을 했죠. 아무래도 연기만 할 때엔 연기에 온 정신을 집중할 수 있었는데 연출까지 하니까 아무래도 정신이 분산되더라고요. 대사를 잊어버려서 촬영 중간에 ‘잠깐만!’이라고 했던 적도 많고요(웃음). 아무리 때리는 연기라도 정신적으로 고요한 상태에서 집중해야 제대로 할 수 있어요. 인간의 섬세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영화에서 용역깡패 상훈 역을 맡아 잔인하고 폭력적인 장면이 많다. 실제로 싸움을 많이 해봤을 것 같은데
지금까지 남을 먼저 때려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일단 맞으면 그때서야 저에 대한 보호본능으로 싸움을 했죠. 맞아서 몇 번 기절했던 기억도 있고. 영화 속에서 상훈과 닮은꼴인 또 다른 주인공 영재(이환)라는 캐릭터를 보면 집에선 폭력을 행사하지만 밖에선 오히려 두려워해요. 밖에서 억압됐던 것들이 안에서 풀어지는 것. 참 아이러니죠.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폭력성이 내재돼 있어요. 이 폭력성을 배출할 수 있는 통로가 우리 사회에 없어요. 잘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곳곳에 얼마나 많은 폭력이 존재할지 한 번 드러내보고 싶었어요. 영화에선 폭력의 수위가 센 감이 없지 않지만……. 아니, 어떻게 보면 그 수위도 따질 수 없는 거예요. 가족 안에서 아무리 미약한 모순과 문제가 있다고 해도 그 당사자가 힘들다고 느끼면 그게 제일 괴로운 것 아니겠어요? 제가 주위에서 힘들게 봐왔던 이야기를 픽션으로 만들어서 표현한 거예요. 전 일단 착한 사람입니다(웃음).

영화에 개인적 경험이 많이 들어가 있나
네, 부모님과 징글징글했던 모든 것들. 저뿐만 아니라 제 주위 친구들이 그런 경험을 했고요. 지난달 31일(화) 시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 눈빛을 봤는데 고개를 계속 끄덕거리더라고요. 제작할 땐 저로부터 시작했지만 영화가 극장에서 공개된 그 순간부턴 관객들의 이야기가 된 거예요. 저의 어떠한 경험에서 시작됐는가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전적 경험이라기보다 자전적 성찰이 담긴 거죠.

독립영화계에선 유명한 배우인데, 대중들에겐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계속 이렇게 몰랐으면 좋겠어요. 제 삶이 제일 중요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침해받고 싶지 않거든요. 지금은 영화가 개봉되는 시기니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려고 해요. 영화가 거의 막을 내릴 즈음엔 다시 제 삶을 찾아 돌아가야죠. 언제까지 ‘나 상 받은 놈이야, 나 감독이야’ 이러면서 살 수는 없잖아요. 지금은 제 인생에 있어 아주 특별한 시간인 거고요. 그렇지만 전 아주 특별한 지금보다 평범한 시간들, 일상이 더 좋아요.

초창기 배우 시절에 <품행 제로>(2002), <해피에로 크리스마스>(2003),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 등에서 단역을 주로 맡았다. 그 때의 생활이 궁금하다
아, 단역은 아니었는데 많이 편집됐어요. 주조연급 정도였어요. 사실 그 땐 아르바이트로 영화에 출연했어요. 연기는 하고 싶고 돈은 벌어야 하니까 생계를 위해 했던 거죠. 현실적으로 초짜한테 누가 중요한 역할을 주겠어요. 가능성이 보인다고 해도 스타들이 득실거리니 안 되죠. 그런 환경에서는 인정받기 어려워 상업 영화와 독립 영화에 둘 다 출연했어요. 사실 상업 영화중에 내 영화다 싶은 건 없어요. 애착이 가는 영화는 손원평 감독, 이진우 감독이랑 찍었던 단편 영화랑 제 작품 4편 정도예요.  



#2. 평범하고 독특하게 사는 법
첫 인상과 달리 내성적인 것 같다

엄청 내성적이어서 표현을 많이 하고 살려고 하다 보니 말을 많이 하는 성격으로 변한 것 같아요. 요즘엔 처음 만나는 사람하고도 잘 떠들어요. 아무래도 ‘내가 그렇게 모자란 존재가 아니구나’라는 것을 인식하게 돼서인 것 같아요. 예전엔 좋아하는 사람에게 먼저 고백하지 못했어요. ‘쟤는 나보다 크고 높은 사람이야’라는 생각이 드니까 위축돼서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은 제 자신을 제일 존중하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어요. 남들 앞에서 주눅 들지 마세요. 사는 데 별로 도움 안 돼요.

영화배우가 안 됐더라면 지금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 것 같은가
노숙자?(웃음) 그냥 뭘 해도 잘 했을 것 같아요. 열심히 사는 건 습관화돼 있으니까요. 사실 거의 10년 동안 계속 연기만 하면서 살아와서 잘 모르겠어요. 20대 때엔 정말 미친 듯이 연기했던 것 같고, 몇 년 전부터는 연기가 재미있다는 걸 생생하게 느끼고 있어요. 저는 영화배우다, 감독이다 뭐 이런 것보다 그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당신의 20대는 어땠나
상업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고3때부터 막노동하고, 용산전자상가에서 냉장고 배달하면서 생활비를 벌었어요. 그리고 바로 군대에 갔는데 고참들이 대학 얘기를 하더라고요. 대학에 가 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서 군대에서 하루에 두 시간씩 공부해서 수능을 봤어요. 중학교 때부터 조금씩 연기에 대한 꿈을 꾸고 있었고 자연스레 연기과에 진학했죠. 사실 대학 자체가 제게 큰 의미가 있진 않아요. 그때 함께 했던 친구들은 많이 남아 있죠. 지금 이렇게 미친 듯이 연기할 수 있는 것은 학교가 만들어준 것이 아니라, 저와 제 친구들이 스스로 만들어나갔던 덕분인 것 것 같아요. 연기라는 건 절대 누군가가 가르쳐줄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배우가 살아온 흔적들이 결국 연기를 통해 나와요. 대부분의 배우들은 연습을 통한 일관된 감정들이 나오잖아요. 그런 건 제가 볼 땐 되게 재미없어요. 거짓말 같은 느낌들이죠.

살면서 이것만은 꼭 붙잡고 살아야 한다, 이런 게 있다면
사랑. 끊임없는 사랑. 그 중에서도 연인과의 사랑. 그게 삶에 있어 가장 큰 에너지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미움도 헤어짐도 사랑이에요. 어느 순간부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만큼 그리고 저보다도 더 많은 열정을 가진 젊은이들이 사랑은 꼭 제대로 해봤으면 좋겠어요. 남들과 비슷하게 살지 않는 것도 중요해요. 특별한 이유에 의해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태어난 이상 특별한 존재로 살아가야죠. 부모님의 말씀이라고 해도 아닌 건 아니라도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가끔은 싸우기도 할 줄 알아야 해요. 남에게 피해주고 상처 주지 않으면서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거침없이 뛰어드세요. 젊은 데 뭘 망설여요.(노희 기자) 

09. 0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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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07-29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독과 주연을 동시(똥파리),
주연에 대한 느낌이 영화 제5원소의 '게리 올드만'을 나게 합니다.
알파치노,게리올드만,양익준 - 무언가 공통점이 있습니다.
작품의 완성도가 높습니다. 마음도 아픕니다.

돌탑영화의 신지승 감독의 말이 생각납니다.
"풍경보다는 사람의 모습에 촛점을 둔다."
 

예정에 없이 <용의자 X의 헌신>이란 영화를 봤다. 두어 시간쯤 시간을 죽여야 할 일이 생기는 바람에 동네 멀티플렉스에 가서 제일 먼저 시작하는 영화표를 달라고 했다. 그게 <용의자 X의 헌신>이었다(물론 이미 봐도 괜찮을 영화로 분류돼 있었지만). 저명한 일본의 추리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원작자의 이름이 정확하게 '히가시노 게이고'란 것은 영화를 본 이후에야 새겨두게 되었다(기억엔 지난주인가 <씨네21>의 커버스토리로 다루어진 바 있다). 영화만 보더라도 대단히 뛰어난 추리소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알고 보니 저명한 문학상 수상작이다. 게다가 대단히 동양적인(최소한 일본적인) 정서를 담고 있는 점도 흥미로웠다('헌신'이 주는 감동도 있고). '히라시노 게이고의 헌신'을 기리는 의미에서 작가와 영화 관련기사를 모아놓는다(영화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영화 리뷰는 건너뛰시는 게 낫겠다).    

   

한겨레(07. 08. 01) 일본의 대표적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일본의 대표적인 미스터리물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50). 작가 경력 22년이지만, 그의 전성기는 쇠퇴할 줄 모른다. 1985년 <방과후>로 데뷔한 이래, 일본에서 가장 권위있는 대중문학상인 나오키상의 단골 후보 작가였던 그다. 지난해에는 <용의자 X의 헌신>으로 드디어 제134회 나오키상을 거머쥐었다. 총 60여 편의 작품 중 <백야행>을 비롯한 15편이 티브이 드라마화되었다. 한국에서도 번역 출판된 <편지> <숙명>을 포함해 <비밀> <게임의 이름은 유괴> <변신>은 영화화되었다. 한국 독자들에게도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그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았다.  ‘트릭’대신 ‘인간’을 그려낸다.    

'트릭' 대신 '인간'을 그려낸다

대표작 <용의자 X의 헌신>은 일본 미스터리 소설사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3관왕의 기록을 가졌다. 추리문학계에서 유명한 ‘이 미스터리가 최고상’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10’ 등 세 부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던 것이다. 그 비밀은 보통의 미스터리물과는 다른 이야기 구조에 있다. 작가는 처음부터 범인이 하나오카 모녀와 천재수학자 이시가미임을 알려준다. 그럼에도 독자들은 결말까지 도통 책장을 넘기는 일을 멈출 수 없다. 절대 ‘복선’을 깔거나 계산하지 않고 ‘직감’으로 써나가는 능력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고전 추리물과 달리 ‘트릭’ 대신 ‘인간’을 그려내는 것으로 승부한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작품인 <편지>를 읽은 독자들도 “이거 추리소설 맞아?” 하면서 놀란다. 주인공은 살인을 저지른 가해자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살인자의 입장에서 그려내는 범죄를 통해, 그는 사회와 가족과 인간의 화두를 이끌어낸다. 결국 미스터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일반 독자까지도 그의 팬으로 끌어온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지바 마유미(24)도 그중 하나다. 그는 <백야행>이 지난해 티브이 드라마로 화제를 뿌릴 무렵부터 히가시노의 팬이 되었다고 한다. 디브이디는 아예 세트로 구입했고, 다른 소설 <비밀> <환야> 등까지 찾아 읽는 계기가 됐다. 그는 “대부분의 추리소설이 어느 정도 결과가 정해진 미스터리라는 느낌을 받아 심심하다. 반면 항상 대답을 독자에게 위임하는 히가시노의 일관된 패턴은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모든 것’을 특집으로 다룬 문예 무크지 <야성시대>는 “나이를 곱게 먹어 가면서 마음속에는 탁월한 로맨티스트의 면모와 동거하는 남자”라고 작가를 표현한다. 그렇다면 그의 창작의 원천은 무엇일까. 혹시 술이 아닐까. 인터뷰 속 작가의 하루 일과를 보면 그렇다. ‘술시’라는 게 있는데, 바로 술을 마시는 시간이다. 새벽 3시부터 오전 10시까지는 잔다. 오후 4~6시의 운동시간을 전후로 하루 8시간은 온전히 글만 쓴다. 되도록 밤 9시까지는 일을 마친다. 그 뒤 밤 11시부터 잠들기 전까지는 혼자 또는 벗들과 술을 마신다. 그것은 일종의 ‘부친 따라하기’다. 시계수리공이었던 부친이 늦은 밤까지 일을 끝내고 “아아, 오늘은 여기까지 해냈군” 하면서 혼자 술을 마시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마감을 끝내면 이모쇼추(고구마소주)를 마시면서, “그래, 그 대목은 그걸로 괜찮겠지”, “아휴, 거긴 고쳐 쓰는 게 좋았을걸” 하며 되돌아본다. 때로는 벗들을 찾아 도쿄 긴자의 바 ‘문단’을 찾는다. 다양한 업계 사람들을 접하면서 현실 감각을 얻는 곳이다. 편집자들을 만나 인물과 이야기 전개 방향을 논하기도 한다. 

마감 끝난 ‘술시’는 창작의 힘
그는 문예계에서 흔치 않은 이공계 출신이다. 1981년에 오사카부립대학 공학부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졸업과 동시에 일본 전자회사인 ‘덴소사’에 입사해 엔지니어가 되었다. 하지만 1985년 <방과후>로 그해 최고 추리소설 신인작가에게 주는 ‘에도가와 란포 상’을 받으면서 인생이 바뀐다. 그 뒤 도쿄로 상경해 전업 작가의 길을 선택한다. 그의 공학도 경력은 작품 도처의 대사나 이야기 전개에서 맛볼 수 있다. 최근 펴낸 에세이집 <사이언스?>도 그렇다. 과학과 경제·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도구가 수학이라는, 이공계 출신 추리소설가 특유의 과학에세이로 호평받고 있다.

“10명이면 10명 모두 납득하는 살인 동기가 아니라, ‘뭐야? 이런 걸로 사람을 죽여?’ 하는 추리소설에 도전하고 싶었다.” 히가시노의 말이다. 지금이야 받아들여질지 모르지만, 한때는 엄청난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고 한다. 현재 그는 도쿄 중심가의 한 맨션에서 “가족이자 나를 비추는 거울이며 교사이기도 한 위대한 존재”인 네코짱(고양이)을 부양하며 살고 있다.(황자혜/<한겨레21> 도쿄 전문위원)    

 

세계일보(09. 04. 02) 용의자 X의 헌신, 오랜만에 보는 정통 미스터리의 진수 

천재 수학자가 있다. 모든 천재가 그렇듯이 그는 외롭다. 수학에만 열중하고 싶어 기꺼이 사랑도 포기하고 살아왔다. 가세가 기운 탓에 대학 연구실 대신 고등학교 교사를 선택했지만 큰 불편이나 불만은 없다. 하지만 마흔을 넘어서면서 삶이 고달파졌다. 세상은 수학처럼 아름답지도 완벽하지도 않고, 자신이 왜 살아야 하는지 그럴듯한 이유를 댈 수가 없다. 조금씩 죽음을 떠올릴 즈음 계산에 없었던 감정과 맞닥뜨린다. 아파트 옆집에 이사 온 여인에게서 설렘을 느끼게 된 것. 그런데 어느 날 그 여인은 살인을 저질렀다. 이 여인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용의자 X의 헌신’은 오랜만에 정통 미스터리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영화다. 사건의 진실을 감추려는 천재 수학자 이시가미 데쓰야(쓰쓰미 신이치)와 이를 밝히려는 그의 동창이자 천재 물리학자인 유카와 마나부(후쿠야마 마사하루)의 두뇌싸움을 그렸다. 영화는 처음부터 사건의 모든 것을 드러내놓고 시작한다. 여인은 자신의 집을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전 남편을 전깃줄로 목 졸라 죽인다. 이를 목격한 이시가미는 시체를 식별할 수 없도록 얼굴과 지문을 뭉개서 유기했다. 

 

경찰이 확보한 시체와 현장, 증거물도 관객이 지켜본 사건의 전말과 일치한다. 사건 현장 인근에 놓였던 자전거에서 전 남편의 지문을 채취했고 시체 DNA는 그가 최근 생활했던 여관에서 발견된 머리카락의 그것과 일치했다. 그럼에도 그 여인은 경찰에 완벽한 알리바이를 제시하고 사건은 미궁에 빠지게 된다. 이시가미는 과연 어떠한 트릭으로 이처럼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 수 있었을까. ‘기하 문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함수 문제’라는 이시가미의 귀띔이 유카와가 포착한 유일한 단서. 아무도 풀 수 없는 문제를 만든 이시가미와 이를 풀어내는 유카와의 팽팽한 머리싸움과 섬세한 감정묘사, 잘 짜인 플롯, 촘촘하게 배치된 단서들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원작의 탄탄한 줄거리, TV드라마 ‘하얀거탑’과 ‘갈릴레오’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위선을 날카롭게 그려낸 니시타니 히로시 감독의 연출력, 일본 정상급 가수이자 탤런트인 후쿠야마와 쓰쓰미 등의 열연에 힘입어 이 영화는 일본에서만 관객 370여만명을 동원했다. 9일 개봉하며 12세 관람가다.(송민섭기자) 

09. 0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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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부터 내내 컨디션을 저조하게 만든 감기가 여전히 낫지 않고 있다(그렇다고 할일들이 자동 삭제되는 것도 아니건만!). 몇몇 관심도서들에 대한 리뷰기사도 뜨지 않고 해서 두리번거리다 흥미를 끄는 영화리뷰 기사가 있기에 옮겨놓는다. '김기덕 감독의 초기작보다 더 강도가 센 <똥파리>가 말하는 한국'이 부제다. <똥파리>는 처음 들어보는데(하긴 필름2.0이 폐간된 이후에 영화잡지를 읽어본 지도 오래됐다), 양익준 감독의 데뷔작이라고. 독특한 영화에 대한 강박도 작용했겠지만 이 "믿을 수 없을 만큼 폭력적인 영화 <똥파리>는 또한 한국이라는 나라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하니까 은근 궁금하고 기대된다('동팔이'들만 들끓어보이는 게 요즘 한국사회 아닌가?).

씨네21(09. 04. 08) [외신기자클럽] 폭력적인 영화의 구원 

상상해보시라. 인적없는 해변가. 파란 바닷물에 발을 적시며 당신은 한가로이 거닐고 있다. 갑자기 ‘퍽!’ 하고 정체불명의 돌멩이 하나가 당신의 머리를 정통으로 후려친다. 그게 바로 대략 영화 <똥파리>가 우리에게 주는 느낌이다. 부산에서 만난 이 영화는 한국에서 개봉되기 전 이미 유럽 여러 영화제에서 선을 보였다.

도입부. 웬 애송이 녀석 하나가 한 소녀의 뺨을 연거푸 갈긴다. 그러자 어디선가 두 어깨가 시야로 튀어들어온다. 그 어깨의 주인공은 앞의 애송이를 반쯤 죽여놓는다. 그러고는 돌아서서 소녀의 얼굴에 침을 탁 뱉는다. 그로부터 얼마 뒤. 그 사내는 우연히 한 여고생과 마주친다. 한눈에 반했음이 분명하다. 왜냐고? 사내가 여고생의 얼굴에 침을 뱉고 한대 갈기니까. 그녀도 그런 사내에게 반한다. 관객이 그 남자를 어떻게 생각하든 영화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영화를 계속 보려면 관객은 어찌됐든 무조건 그 사내를 쫓아다녀야 한다.  



양익준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과 연기를 한 영화 <똥파리>는 자신만의 독특한 언어를 창출하고 있다. 이 작품에 사용된 언어는 한마디로 욕지거리의 일제사격이라 할 수 있다. 말로 의사소통을 하는 게 아니라 주먹으로 한다. 초반 15분이 지나면 관객은 비로소 이 희한한 의사소통법을 해독하기에 이른다. 장면 하나 하나, 따귀 한대 한대가 계속되면서 영화는 서서히 인물의 겉껍질을 벗긴다. 마치 강도가 금고를 드릴로 뚫듯이. 영화 시작하고 두 시간이 경과한 뒤 영화는 마치 공중곡예를 한 듯 180도 회전해 있다. 처음 관객에게 보여진 인물들의 정체가 그와는 정반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사실은 진짜 피해자였고, 겉보기에 강했던 인물들은 알고 보면 한없이 약한 인물들이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폭력적인 영화 <똥파리>는 또한 한국이라는 나라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양익준 감독은 폭력성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20세기 후반부 한국의 역사를 재조명한다. 이 영화에는 전기파가 움직인다. 전쟁터를 지나 데모진압 현장으로, 가정폭력으로, 그리고 청소년의 비행으로… 이렇게 폭력과 공격성은 유산으로 물려 전해진다. 하나의 스타일을 만들어가던 김기덕 감독의 초기 작품에 나타나는 폭력성보다 더 거친 영화 <똥파리>, 이 작품에 나타나는 폭력성은 끔찍한 의문 하나를 관객의 눈 속에 던져놓는다. 만일 폭력과 식민, 전쟁과 분단을 벗어난 한국을 아는 한국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가정한다면, 폭력성이 한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 혹은 본성을 이룬다는 말인가? 다행히 <똥파리>는 결말 부분에 구원의 길을 열어놓긴 하지만 말이다.

양익준 감독의 처녀작인 이 영화는 현재 영화제작의 전반적 추세와 완전히 결별한다지만, 동시에 한국영화의 전통선상 위에 그대로 놓인다는 점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즉, 이 영화에서는 계속 반복되는 처절한 운명, 가정의 분열,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장녀 등 기존의 전통적 구조들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재창조된다. 이미 잘 알려진 그러한 구조들 모두가 이 작품에 그대로 나타나는 건 사실이지만, 동시에 그 모든 것들이 이 작품 속에서는 다르게 표현된다. 나운규 감독에서 장선우, 김기덕을 거쳐 박찬욱 감독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폭력성 자체가 한국영화의 역사를 그 기원에서부터 관통하고 있다. 이러한 폭력성은 대개 여자들을 강간한다거나 그녀들의 매춘, 심지어는 근친상간 형태로 표현된다.  



이와는 반대로 <똥파리>에서 성(性)문제는 더이상 없다. 이 작품을 위해 새로 발탁된 배우 김꽃비, 그녀가 맡은 역은 여고생이다. 이미 여자가 되어버린 소녀, 창녀라기보다 어머니랄 수 있는 이 인물은, 다른 영화에 흔히 나오는 롤리타와 비교해볼 때 훨씬 더 복잡하고 미묘한 욕망의 대상이다. 한국의 수놈이란 늘 가슴팍을 떡 벌리고 심각한 목소리로 말하면서 눈썹을 잔뜩 찡그린다. 하지만 그런 한국 사내가 갈망하는 건 오로지 하나다. 그건 오목한 치마폭에서 느끼게 되는 여자의 허벅지가 주는 따뜻한 온기다. 그것도 사내다움을 한껏 표현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한강변에 앉아 엉엉 울고 싶은 마음에서.(아드리앙 공보_포지티브 기자/영화평론가)  

09. 04. 08.   

P.S. 소개를 보태자면 "독립영화계의 스타 배우 양익준의 첫 번째 장편영화 <똥파리>가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VPRO 타이거’ 상을 거머쥐었네요. 사채 거둬들이는 용역 깡패와 여고생의 관계를 그린 이 영화는 영화제 유일의 경쟁부문으로 데뷔작을 소개하는 ‘밝은 미래’ 섹션에 초청돼 이란영화 <소년과 바다>, 터키영화 <니쁜 로자리오>와 함께 타이거상을 공동 수상했다는군요. 양익준 감독은 시상식에서 “로테르담, 아이 러브 유! 네덜란드, 아이 러브 유!”라고 외치면서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는데요. <똥파리>의 개봉이 4월 중순. 기다리긴 너무 먼가요. 한국영화가 로테르담에서 타이거상을 받은 것은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박찬옥 감독의 <질투는 나의 힘>에 이어 세 번째랍니다."(장미, '<똥파리>, 국제무대에서 비상하다') 

P.S.2. 전직 대통령 가족이 재임중에 뇌물성 돈을 받았다고 한다. 사법처리까지 가게 될는지는 지켜봐야겠지만, 그리고 좀 유감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론 나쁘지 않은 소식이다.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이나 자기들 비리만 아니라면 누구라도 건드릴 수 있다는 게 분명해졌으니까. '전임' 따위는 권력도 아닌 것이다. 이제 4년 남짓만 기다리면, 지금 당장에 보고 싶은, '동팔이'들의 말로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은근 기대된다. '전임' 따위는 X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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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양익준 감독 인터뷰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4-15 22:22 
    지난주에 소개기사를 옮겨놓기도 했는데,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가 내일 개봉한다고 한다. 동네 CGV에서는 상영을 하지 않아서 언제, 어떻게 봐야 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여하튼 몰상식한 뉴스들만 쏟아지고 있는 터라(오늘도 어이없는 언론탄압 기사들이 떴다) 최소한의 정신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한번쯤 보고 싶다. 감독 인터뷰 기사가 눈에 띄기에 스크랩해놓는다.   고대신문(09. 04. 06) "세상
 
 
 

'구로사와'란 성은 아직도 '아키라'란 이름을 떠올리게 하지만 젊은 세대 영화광이라면 '기요시'란 이름이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호러 영화의 거장으로 꼽히는 구로사와 기요시 말이다(나는 <큐어>밖에 보지 못했지만). 그의 신작 <도쿄 소나타>가 이번주에 개봉했다. 영화를 보는 일이 점점 드물어지고 있지만, 이번주에 한 편을 볼 수 있다면, 혹은 봐야 한다면 나의 선택은 <도쿄 소나타>다. 선택에 도움을 준 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21(09. 03. 20) 도쿄의 먹구름이 서울을 뒤덮다 

가족의 위기는 뺑소니 사고처럼 찾아온다. 도쿄의 그 가족은 누구도 특별히 잘못한 일은 없지만 저마다 심각한 위기에 빠진다. 단지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로 사고를 당하는 속수무책의 피해자처럼, 더구나 피해 보상은 물론 원망할 구체적 대상도 찾지 못하는 뺑소니 사고처럼 위기는 찾아온다. 가족을 위기로 몰아넣은 원인은 강간범도, 사기꾼도, 살인범도 아니고 단지 ‘사회’(의 변화)다. 그리고 그 문화에 순응하며 살아온 무감한 기성세대, 자신이다.

엄마는 외롭고 아들은 답답했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도쿄 소나타>는 평생 고용의 신화가 깨진 일본에서 시작한다. 실직한 아버지, 외로운 전업주부인 엄마,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큰아들, 아버지의 권위에 눌린 작은아들. 그들도 우리처럼, 저마다 가족이라 더욱 말하지 못하는 비밀을 가졌다. 아버지는 아침이면 꼬박꼬박 만원버스를 타고 회사에 가서 야근도 했을 것이고, 어머니는 가족을 위해 정성껏 따뜻한 저녁을 준비했을 것이며, 아들들은 특별한 말썽을 부리지 않고 학교에 다녔을 것이다. 누구도 심각한 잘못을 범하지 않았고 누구도 이들의 행복을 침해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이들은 출구 없는 절망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마치 속수무책으로 치고 지나가는 뺑소니 사고처럼 이들은 현실이란 괴물에 치였을 뿐이다. 또 다른 실직자인 아버지 친구의 말처럼 “서서히 가라앉는 배에서 구명보트 없이 죽기만을 기다리는 신세”, 그것은 오늘날 다수가 공감할 만한 현실이다.  

구로사와 감독은 <도쿄 소나타>에 대해 “나는 현재 도쿄의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가족의 이야기를 거의 과장 없이 그려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한다. 이렇게 평범한 가족의 오늘은 <밝은 미래> <큐어> <절규> 등을 만든 호러영화의 거장이 지나온 영화 세계만큼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절망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암울한 <도쿄 소나타>의 세계가 설득력 넘치는 일본의, 또한 우리의 얘기로 들리는 것이다.

일본인 1명을 고용할 돈으로 중국인 3명을 쓴다, 너무나 자명한 논리라 이제는 한 인간에 대한 예의나 한 가족의 생계 따위를 들이대고 맞서기조차 어렵게 돼버렸다. 그렇게 비용 절감을 좇는 자본의 논리에 따라 아버지(가가와 데루유키)는 오랫동안 근무했던 일자리를 잃는다. 그리고 예정된 추락. 구직은 번번이 실패하고, 무료 급식으로 점심을 때우는 일상이 이어진다. 하지만 전통적인 가부장인 그는 차마 가족에게 사실을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세상에 비밀은 없다. 아내(고이즈미 교코)는 우연히 무료 급식을 받는 남편을 목격하고, 오랫동안 삭여온 그녀의 외로움은 강도의 침입을 계기로 터진다.  

대학을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큰아들(고야나기 유)은 세계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운운하며 미군에 입대한다. 구로사와 감독은 일본 시민도 미군에 입대가 가능한 세계로 현실을 비틀어, 일본 청년세대의 세계관을 드러낸다. 이에 대해 감독은 “나는 진심으로 우리의 상황이 걱정스럽다”며 “하지만 영화 속 아버지처럼 나에겐 청년들이 전쟁에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설득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말한다. 기껏해야 프리터(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고 남는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사람들)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본의 ‘88만원 세대’에게 미군 입대는 답답한 현실을 벗어날 출구로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막내인 켄지(가이 이노와키)는 피아노를 배우고 싶지만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힌다. 결코 꿈을 꺾지 않는 소년은 급식비를 레슨비로 유용해 피아노를 배운다.  

<도쿄 소나타>는 사회 기사처럼 전형적인 4인의 핵가족을 통해 오늘의 현실을 서술한다. 그들 하나하나엔 극단적 면모가 없지만, 그들의 일상을 퍼즐처럼 맞춘 그림은 해결이 어려운(혹은 불가능한) 악몽이다. 인물은 담담한데, 영화는 쓸쓸하고, 관객은 서글프다. 도대체 이들을 위한 대안이란 존재하기 어려운 탓이다. 여기에 배우들의 사실감 넘치는 연기는 영화를 살아 있는 현실로 만든다. 아버지 역의 가가와는 <유레루>에서 오다기리 조와 함께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고, 한국의 봉준호(<도쿄!>), 중국의 장원(<귀신이 온다>)이 선택하는 아시아의 배우다. 엄마 역의 고이즈미는 <구구는 고양이다>를 통해 깊은 인상을 남긴 배우로 <도쿄 소나타>로 일본의 영화지 <키네마준보>가 주는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무엇보다 켄지를 연기한 1995년생 가이는 야무진 얼굴로 놀라운 연기를 펼친다. 마치 <아무도 모른다>의 야기라 유야를 보았을 때처럼 아역이라 믿기 어려운 연기다. 

실직한 가장, 기성세대 권위주의
구로사와 감독이 가리키는 어둠의 원천은 단지 어쩌지 못하는 현실만이 아니다. 가장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 가족의 숨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 기성세대의 권위주의도 불행의 근원이다. 왜 큰아들이 전쟁의 위협을 감수하고 미군에 입대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지, 막내에게 피아노를 배운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허공에 뻗은 아내의 손에서 떨어지는 외로움이 어디서 오는지, 가장인 그는 살피지 못한다. 그도 대부분의 아버지처럼 ‘무신경의 평범성’을 넘어서지 못한 인물이다. 그렇게 그는 일본이고, 아버지다. 그러나 <도쿄 소나타>가 절망의 침묵으로 끝나진 않는다. 가족들 모두가 집 밖에서 보내는 하룻밤 동안에 격렬한 사건을 겪는다. 그리고 울리는 아름다움 피아노 연주곡. 이렇게 끝나는 <도쿄 소나타>는 ‘서울 소나타’처럼 들린다. 지금 여기도 도쿄의 하늘처럼 불황의 먹구름이 가득하고, 가부장의 무신경도 일본의 그것 못지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켄지가 사는 도쿄의 어느 동네는 마치 서울의 성북구나 구로구 어디쯤 같기도 하다. 2008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은 <도쿄 소나타>는 3월19일 개봉한다.(신윤동욱기자) 

09. 03. 21.  

P.S. '평생 고용의 신화가 깨진 일본'이란 구절에서 다시 떠올리게 되는 책은 리처드 세넷의 <뉴캐피털리즘>(위즈덤하우스, 2009)이다(요즘 가방에 넣고 다니는 탓도 있다). 덧붙여 일본의 반빈곤 네트워크에 관한 소개기사 '자르지 말라, 빈곤에 반대한다'(http://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24555.html)도 떠올려본다.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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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r 2009-03-23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루는 이야기도 그렇고, 카가와 테루유키와 코이즈미 교코 주연이라는 얘기에 봐야겠구나 했어요. 가능한 빨리 보지 않으면 금방 내려갈 듯 하니 서둘러야겠지요;

로쟈 2009-03-24 00:25   좋아요 0 | URL
네, 아무래도 그러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