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보따리의 책을 싸들고 귀가하면서 이동중에 읽은 책은 조선희 전 한국영상자료원장의 <클래식중독>(마음산책, 2009). 요네하라 마리의 <마녀의 한 다스>(마음산책, 2009) 2판의 러시아어 표기 감수를 맡은 덕분에 출판사에서 증정본으로 보내온 것으로, 실상은 내가 먼저 부탁한 책이다(검색해보니 '조선희'란 저자가 여럿이군). 한국영화(사)를 더듬는 김에 김혜리의 <영화를 멈추다>(한국영상자료원, 2008)와 이효인의 <영화로 읽는 한국 사회문화사>(개마고원, 2003)도 조만간 챙겨두어야겠다(그러고 보니 이효인 교수도 영상자료원장을 지냈군).

 

제목만 갖고는 무슨 책인지 짐작하기 어려운데, 부제가 '새것보다 짜릿한 한국 고전영화 이야기'이다. 씨네21의 첫 편집장을 역임한 저자가 3년간 영상자료원장으로 지내면서 거둔 소출 가운데 하나. 한국 영화감독론과 작품론도 겸하고 있는 책인데, 이런 유형으론 오래전에 읽은 이효인의 <한국의 영화감독 13인>(열린책들, 1994)을 떠올리게 한다. 그건 '고전영화' 감독들이 아니라 나름대로 동시대 감독이었던 이장호, 장선우 감독 이야기를 내가 먼저 읽은 탓이겠다.   

첫장에서 다뤄지고 있는 이가 '잊혀진 천재' 이장호 감독인데, 그의 문제작 <바람 불어 좋은 날>(1980)을 오랜만에 상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대학 1학년때 변두리 상영관에서 <바보선언> 등과 함께 보았던 영화로 나대로는 가장 좋아하는 한국영화 가운데 하나. 책에 대한 독후감은 다른 꼭지들도 읽은 후에 고려해보기로 하고, 일단은 얼마전 한겨레에 실린 저자 인터뷰 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09. 10. 10) “개봉은 잠깐…아카이브는 영원하죠” 

조선희(49) 전 한국영상자료원장은 최근 3년 임기를 ‘무사히’ 마쳤다. 하루도 에누리 없이 꼬박 3년이다. 그의 재임 기간이 새삼 관심을 끄는 건, 이명박 정부의 ‘전 정권 인사 일괄 퇴출 방침’의 쓰나미 속에서 살아남은 거의 유일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낯선 곳으로 3년 동안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라는 조씨를 지난 7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그는 “고대 출신이라서 살려준 것이라는 둥, 여자 티오(할당 인원)라는 둥 턱도 없는 해석들이 많았다”며 “나는 고대 인맥에 구명운동을 한 적이 없으며, 이 정부 들어 양성평등 개념이 크게 후퇴했으니 여자 티오도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기관이라서’라는 해석도 있는데, 어느 정도 맞는 말인 것 같다”며 “가장 결정적인 것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개인적인 판단이었는데, 아무리 전부터 아는 사이였다고 해도 영상자료원이 영화진흥위원회처럼 정치적으로 중요한 기관이었다면 달랐을 것”이라고 했다.

업무 성과로만 본다면 그는 연임도 가능했다. 취임 당시 4년째 동결됐던 예산을 2배 이상 늘렸으며, 고전 영화를 대대적으로 발굴·복원했고, 복원한 영화들을 칸 영화제 클래식 부문에 3년 연속 진출시켰다. 100여편에 불과했던 독립영화 필름을 1600여편으로 늘려놓았고, 디지털 아카이빙을 시작했다. 각종 회고전과 특별전, 기획전으로 자료원 지하 1층 극장은 아연 활기가 넘쳤고, 인터넷으로 고전 영화를 볼 수 있는 온라인 브이오디(VOD) 서비스는 대중과의 거리를 좁혔다.

조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일벌레다. 무작정 열심히 한다기보다는 성과를 중시하고 또 즐긴다. 자료원 직원들은 조 원장 재임 시절을 “피곤했지만 행복하게 일했다. 무엇보다 성과가 있어서 신이 났다”고 회고한다. 자료원의 존재감이 가장 높게 부각된 시기라는 평이 다수다.

조씨는 “개봉은 잠깐이고 아카이브는 영원하다”는 말로 자료원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최근 한국 영화에 대해서는 어떤 종류의 열광이 있지만, 그마저도 개봉 1년만 지나면 차갑게 식어버리는 현상, 옛날 영화에 대해서는 비정상적으로 관심이 없는 분위기를 바로잡고 싶었다”고 했다.

퇴임에 맞춰 출간한 <클래식 중독>(마음산책)은 고전 영화의 향기에 취했던 지난 3년의 갈무리다. 그의 개인적 경험과 비평, 감독과의 대화, 스타들의 사생활 등으로 엮은 ‘살아 있는 한국영화사’다. <한겨레> 문화부 기자와 <씨네 21> 편집장, 한국영상자료원장을 거치며 길어올린 인간 조선희의 개인 아카이브를 구경하노라면, 거장 감독을 중심으로 분류한 한국 영화의 근현대사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걸어 들어가게 된다.

같은 책 말미에 그는 “기관장 일괄 퇴출 정책은 가까스로 구축한 합리적인 시스템(산하기관장 공모제와 임기제)을 한방에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더 문제”라며 “권력으로 못하는 게 없으면 그것이 파시즘”이라고 썼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침묵할 수 없었다”고 조씨는 덧붙였다. 말이 나온 김에, 퇴임 직전까지 유 장관이 주재하는 문화부 산하 공공기관장 회의에 참석했던 그에게 이명박 정부 내부의 풍경을 물었다. 그러나 조씨는 “간첩 짓을 하기는 싫다”며 입을 닫았다.

깃드는 곳마다 족적을 남기는 그의 비결은 단순히 일에 대한 열정만이 아니라 의리와 성과를 존중하는 (어찌 보면 보수적인) 태도에 있는 것일까. 다음 인생 행로가 세번째 소설 집필이든, “재밌는 사업으로 돈을 버는 것”이든 그는 반드시 ‘성과’를 내고야 말리라.(이재성 기자) 

09. 10. 27.  

P.S. 기사 말미에도 언급이 있지만, 조선희 씨는 소설을 쓰기 위해 19년간의 기자생활을 그만 둔 이력이 있다(<클래식중독>을 읽으면서 언젠가 주워들은 기억을 상기하게 됐지만 소설가 김형경 씨가 저자의 여고 동창이다). <클래식중독>을 읽으며 저자의 두 소설, 장편소설 <열정과 불안>(생각의나무, 2002)과 단편집 <햇빛 찬란한 나날>(실천문학사, 2006)도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로선 '재밌는 사업'보다 '세번째 소설'이 더 기대되는 건 물론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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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10-27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를 부탁해(영화), 엄마를 부탁해(소설), 아가씨를 부탁해(드라마),,,
부탁하지 못한 제 성격은 능력없는 욕심쟁이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로쟈 2009-10-29 15:12   좋아요 0 | URL
아가씨를 부탁해도 있나 보군요.^^
 

아침에 외부 강연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이번주 <씨네21>에서 영화평론가 겸 감독 정성일씨의 인터뷰기사를 읽었다. 인터뷰어는 김혜리 기자. 데뷔작 <카페 느와르>에 관해 검색해보니 베니스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고 내달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후 일반개봉될 예정이라 한다. 상영시간이 무려 3시간 17분이다. 이 '리얼 시네필'의 영화세계에 대한 기대와 함께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김혜리가 만난 사람'은 주말에나 링크해놓아야겠다). 

뉴스엔(09. 09. 17) 영화평론가 정성일 감독데뷔작 베니스영화제 호평 

영화평론가 출신 연출자 정성일 감독의 데뷔작 영화 ‘카페 느와르’(제작 영화사 북극성)이 지난 12일 폐막한 제66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상영을 마쳤다. 비록 경쟁부문은 아니지만 비평가 주간 섹션에 진출한 ‘카페 느와르’는 관객의 열띤 호응과 관심을 받았으며 상영 후 관객들의 열렬한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런 관객들의 관심도가 현지 언론과 관계자들의 눈길을 더욱 잡아 끌게 했다. 독특한 형식미와 영화 곳곳에 감독이 의도한 기발한 정치적 의미들로 인해 신인감독의 작품이지만 걸작이라는 평가까지 받았다. 영화제 집행위원장 브르노 토리는 “독특한 형식미를 지닌 영화다”, 선정위원 안토 줄리오 맨치노는 “신인감독 작품으로는 보기 힘들 걸작이다”, 부위원장 겸 선정위원 프랑체스코 디 파체는 “영화 곳곳에 숨어 있는 정치적인 의미를 발견한다면 놀라움을 금치 못할 영화다”고 호평했다.

한편 ‘카페 느와르’는 오는 10월8일 개막하는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에도 진출한 상태. 이는 베니스 영화제의 비평가 주간 섹션 진출에 이어서 두 번째 국제영화제 진출이다.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은 현재 한국영화를 대표할 만한 작품을 뽑아 상영하는 섹션으로 매년 그 해에 화제와 관심을 받은 한국영화가 초청됐다.

2008년 제13회에는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임순례 감독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 등이 상영됐다. ‘카페 느와르’는 이번 부산 영화제를 통해 첫 국내 상영을 할 예정이어서 영화 관계자들과 팬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카페 느와르’는 슬픈 사랑에 중독된 영수(신하균)와 그가 죽도록 사랑하는 여인 미연(문정희), 그를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또 다른 미연(김혜나) 그리고 영수가 사랑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다시 만나는 선화(정유미)와 은하(요조), 다섯 사람의 사랑을 그린다.(홍정원기자)  

09. 09. 21.  

P.S. 기사의 마지막 문단 정도가 내가 얼추 들었던 영화의 줄거리인데, 인터뷰를 읽어보니 영화는 1,2부로 구성돼 있고 1부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기초한 것이라면 2부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에 토대한 것이라 한다. 감독은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에서 영화의 시작점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고 하는데, 그의 초점은 멜로드라마가 아니라 <베르테르>에 나타난 계급 갈등이라고("영화 곳곳에 숨어 있는 정치적인 의미"란 이런 걸 가리키겠다). 영화의 두 부분은 어떻게 관련되는가? 

"아주 상투적으로는 두 부분은 각기 삶과 죽음입니다. 1부의 원작은 괴테의 18세기 독일 이야기(<베르테르>), 2부의 원작은 도스토예프스키의 19세기 러시아 이야기(<백야>)예요. 즉, 혁명 전 유럽과 혁명 뒤 러시아죠. 한쪽이 액추얼한 가능성이라면 다른 하나는 버추얼한 가능성이죠. 주인공 영수를 따라가면서 두 개의 시대정신이 어떤 방식으로 공존하는가를 보여주는 게 중요했어요. 어느 쪽에 마음을 기댈지는 관객의 선택이에요. 저는 우리 시대가 정치나 자본주의에 대해, 자기의 삶에 대해 너무 낭만적인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제발 그렇게 낭만적으로 보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영화 중간에 브레이크를 넣을 수밖에 없었어요." 

이 정도의 배경 지식을 갖고 영화를 봐도 좋겠다. 참고로 영화의 부제는 '세계 소년소녀 교양문학전집'이다.'이 영화를 이렇게 보아주세요'라는 가이드라인인데, 감독의 표현을 빌면, 이 영화를 볼 때는 '교양'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붙였다고. 나로선 좋아하는 배우 정유미의 출연작이기도 해서 더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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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화를 통해 완성된 책의 리얼리즘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12-27 23:34 
    '라캉'으로 검색을 하니 제일 먼저 뜨는 기사가 이번주에 개봉하는 영화 <카페 느와르>에 대한 소개평이다. 안 그래도 뒤늦은 개봉 소식을 접하고 한번 보고 싶던 차였다(지난주에 언론시사회가 있었고, 오늘은 VIP시사회가 열렸다고 한다). 이 참에 스크랩해놓는다.       무비스트(10. 12. 27) 영화를 통해 완성된 책의 리얼리즘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감독으로
 
 
philocinema 2009-09-21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어달전 홍상수 감독 '극장전'의 DVD를 관람하던중
comentary를 진행하던 정성일씨의
영화에 대한 놀라운 관찰과 깊이 있는 분석을 들으면서,

안 그래도 평소 그의 글에 매료되었던 저는,

'정성일씨가 직접 영화를 찍으면 어떤 영화가 될까'라는 설레이는
상상을 해보았었는데, 그의 영화가 제작되어 상영예정이라는 소식은
가슴을 쿵쾅거리는 설레임을 안겨 주는군요!

그런데 과연 그의 영화를 개봉해줄 개봉관이 충분할지를 생각해보면 암울합니다.
제가 사는 대전에선 올 봄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단 한군데의 멀티플렉스에서 딱 1주일만 걸고 내렸는데,
그나마 홍감독은 재야의 이름값이라도 있지...

여하튼 정감독의 영화를 대전서 개봉 않는다면
다른 지역에라도 달려가 보고 싶은 마음이 한 가득입니다.

PS: 극장에서 이미 보았지만 또 보고 싶고
관심 있는 주위 사람과도 영화를 나누고 싶어
주문했던 '잘 알지도 못하면서' DVD가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
오늘 퇴근후 아내와 다시 보려합니다.
기다려집니다.


로쟈 2009-09-21 18:50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대중성이 강한 영화는 아닐 텐데, 상영시간도 길어서 정말 몇 개 극장에서나 개봉될 거 같아요...

마노아 2009-09-21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런데 혹시 카테고리 정리하셨나요? 뭔가 좀 사라진 느낌이...

로쟈 2009-09-21 18:43   좋아요 0 | URL
요즘 정리할 시간도 없는데요.^^;

마노아 2009-09-21 19:35   좋아요 0 | URL
확실히 서재지수는 떨어졌어요. 그래서 글을 숨겼나 했지요.^^

로쟈 2009-09-21 20:23   좋아요 0 | URL
마이리스트의 카운트가 잘못 돼 있는데요...

펠릭스 2009-09-21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계천(?)을 비슷듬히 거니는 그녀의 마음은 어디를 향할까요?
아, 쓸어지는 그녀(진보)는 어디에 있을까요? 혹시 소주에
취해 깃발같은 꿈을 포기하지나 않았을까요? 혹시 어디 숨긴
권총을 생각하고 있지나 않을까요!

로쟈 2009-09-21 21:39   좋아요 0 | URL
<백야>에 권총 얘기는 안 나오는데요.^^

델러웨이부인 2009-09-21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유미, 저도 좋아하는 배우예요. 정성일 교수도요. 그의 <영화의 이해>를 수강했던 적이 있답니다. 무려 15년 전 일이네요. 김혜리 기자 인터뷰 좋죠. 어쩌면 그리 되는지~

로쟈 2009-09-21 21:38   좋아요 0 | URL
첫 평론집까지 출간된다고 해서 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누굴까 2009-09-25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성일 평론가가 드뎌 입봉을 하셨군요. 예전에 정성일씨가 쓰신 KINO 의 평론들의 현학적(?)인 표현에 좌절했던 기억이 있군요...너무 어렵게 쓰셔서..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 "라깡의 어법으로 말하면.... 구조화 되어 있다"..뭐 이런식..ㅠㅠ 물론 로쟈님이 보시면 다 이해하시 겠지만.... 영화도 왠지 어렵지 않을까 걱정되네요.

로쟈 2009-09-25 20:53   좋아요 0 | URL
네, 비문도 가끔씩 나오죠. 그래도 그만한 열정(이면서 순정)을 가진 평론가는 반세기에 한명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휴가는커녕 별다른 휴식 없이 방학을 보내려니까 기진맥진에 기력 소진이다. 남은 두 주도 별다른 비전이 없고, 아마도 가을에 '후유증'을 앓을 듯싶다. 경제적, 문화적 '빈민들'의 바캉스라면 '북캉스'이거나 영화관람일 수밖에 없는데, 아이와 같이 본 영화를 빼면 이번 여름에 극장에서 한 편의 영화도 보지 못했다(<바더 마인호프>와 <퍼블릭 에너미> 정도는 봐도 좋았을 것이다). 여름이 가기 전에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루마니아 영화 <사일런트 웨딩>은 챙겨두고 싶다. 동구권 영화를 원래 좋아하는 편이고, 게다가 '스탈린' 시대가 배경이고, 쿠스투리차 풍이면 '무조건'이다. 쿠스투리차의 <약속해줘>는 또 언제 개봉했더란 말인가. '빈민'에겐 실망할 여유도 주어지지 않는군... 

한겨레(09. 08. 17) 스탈린 죽음에 '립싱크 결혼식'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특이한 사연만을 찾아다니는 티브이 방송 프로그램 촬영팀이 루마니아의 한 작은 마을에 도착한다. 촬영팀을 맞는 것은 한때 이 마을의 술집 매춘부였던 노파. 할머니와 농밀한 성적 농담을 주고받던 촬영팀은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낀다. 마을에 여자들만 산다는 걸 알게 된 이들은 그 이유를 취재하기 시작한다.   

루마니아 영화 <사일런트 웨딩>은 루마니아인들이 실제로 경험한 역사적 비극을 농담하듯 가볍게 재구성한다. 난쟁이, 매춘부, 하인 출신 공산당원 등 전형적인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영화가 따분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영화 전반에 흐르는 희극적 제스처 덕분이다. 재치와 유머는 비극을 유쾌하게 승화하는 데 아주 유용하게 사용된다. 예를 들어 스탈린주의자들의 무식함과 아둔함을 채플린식 슬랩스틱 코미디로 번안해 과장되게 표현하는 식이다.

때는 1953년 루마니아. 스탈린의 폭정이 목을 죄어 오던 무렵, 같은 마을에 사는 이안쿠(알렉산드루 포토체안)와 마라(메다 안드레아 빅토르)는 사랑에 푹 빠져 있다. 피끓는 청춘을 주체할 수 없는 둘은 들판과 창고를 가리지 않는다. 곡물과 빨래 등을 활용한 아름답고 독창적인 에로티시즘이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마라의 아버지는 결혼도 하지 않고 “붙어먹는” 이들을 창피해한다. 그러다 이안쿠가 결혼을 결심하자 마을은 축제 분위기로 바뀐다. 결혼식 당일, 술과 음식을 잔뜩 준비한 마을 사람들이 집시 음악에 들떠 있는 찰나, 마을 하인 출신의 공산당원 고고니아가 소련군 장교를 대동하고 나타난다. 스탈린이 죽었으니 모든 회합을 금지한다는 명령이 떨어진다. 결혼식도 장례식도 금지된다.    

영화의 절정은 밤중에 치르는 결혼식 장면이다. 대화와 웃음은 당연히 금지된다. 포크와 나이프는 모두 수거하고, 컵에 헝겊을 말아 건배를 한다. 강요된 침묵 속에 뱃속의 꼬르륵 소리나 방귀 소리는 더욱 크게 들리기 마련이다. 웃음이나 방귀처럼, 막는다고 막을 수 없는 것이 민중의 건강한 생명력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에미르 쿠스투리차의 루마니아 판본으로 볼 수 있을 만큼 마술적 리얼리즘의 흔적이 보이는 이 영화는 막 잡은 생선처럼 생기 있는 언어로 폭포수 같은 문화 세례를 제공한다. 지난주 국내 개봉한 쿠스투리차의 <약속해줘>가 안겨준 실망에 비하면 이 영화는 가히 청출어람이다. 루마니아의 국민 배우이자 연극 연출가인 호라치우 멀러엘레의 영화 데뷔작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 원작을 읽자마자 각본을 써서 유명 감독들에게 보여줬으나 결국 임자를 찾지 못하고 자비를 털어 직접 연출하게 됐다고 한다. 멀러엘레 감독은 <4개월 3주 그리고 2일>로 2007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크리스티안 문지우 감독과 함께 루마니아 누벨바그의 기수로 떠오르고 있다.(이재성기자) 

09. 0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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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08-17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칭 유미적 탐미주의자임을 내세운 마광수 님은
'결혼하지 않고 붙어먹은' 현대 남녀에 대한
'성애'와 '성담'을 소설화했다.
마교수가 '성적 급함과 리얼리티'를 '영구식 코미디'로
변환하였다면 그의 책들에 '19금'이 장애가 되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지난 야한 공간곁으로 우회하며 즐거워 한다.

로쟈 2009-08-18 10:13   좋아요 0 | URL
그런 이야기가 너무 많은 탓에 경쟁력이 없었지요...

Kir 2009-08-18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더 마인호프>랑 <약속해줘>, <퍼블릭 에너미>는 봤고, <사일런트 웨딩>은 곧 볼 예정이예요. <퍼블릭 에너미>는 조니뎁과 음악 외에는 별로지만, 나쁘지 않았어요. 어째 바쁘신 로쟈님을 약올리는 댓글인 것 같네요;

로쟈 2009-08-21 10:05   좋아요 0 | URL
흠, 약올리시는 댓글 맞습니다.^^;

폭설 2009-10-23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더 마인호프>는 구경 조차 할수 없었고 (과연 개봉은 한 건지?)
<퍼블릭 에너미>는 소문 보다 별로였고
<사일런트 웨딩>은 자꾸 자꾸 생각이 나네요.
9월 개봉 영화중 가장 괜찮은 영화였나고나 할까요?

배경이 루마니아라는 것에 호기심이 일었고...
루마니아 사람들도 처음부터 스탈린에 맹종한 것이 아닌
어쩔수 없이 무릎을 꿇은 것이었더군요.

주인공 아부지의 넉넉한 허리둘레하며 축하객 모두가 혼연일체로 입만 벙긋하면서
피로연을 진행하다 투당탕! 실수로 소음을 내고는 공포에 떨다가도 다시 마음을 진정하고
피로연을 이어갔는데 그런 섬세한 연출은 어떻게 하며 연기는 또 어떻게 할수 있는지....

결혼식을 위하여 소 두마리(?) 돼지 네 마리(?)를 잡았댔나.
참 통도 컸습니다. 그만큼 낙천적이었다는 뜻도 될텐데....^^

전 이 영화를 보고 루마니아의 역사가 궁금해 졌습니다.^^

<언노운 우먼>도 괜찮았는데...

로쟈님은 <러브 오브 시베리아>를 보신 적이 있는지... 저는 줄리아 오몬드와 주인공
러시아 남자의 사랑 얘기 보다 그외의 것들, 러시아 감옥과, 민속, 고색창연한 풍경, 문화, 시베리아 원시림과
그곳을 달리는 기차등 러시아적인 모든 것들이 신기해서 이 영화를 좋게 봤는데...^^


로쟈 2009-10-23 21:51   좋아요 0 | URL
네, 러시아 영화감상이란 과목도 강의한 적이 있었는데, <러브 오브 시베리아>를 매학기 보여줬었죠.^^

털세곰 2009-11-09 0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 사일런트 웨딩을 놓쳤습니다. 영화 보러 가는 차 안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 때문에 완전히 산통깨져 극장이고 뭐고 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후론, 결국 ...
로쟈님, 혹 이 영화 어둠의 경로를 통해 나려받기 할 수 있는 방법 알 수 있을까요?
다음학기 영화로 보는 현대 슬라브 유럽 이란 요상한 과목을 강의해야 하는데 이 영화를 넣을 생각이거든요. 문쥬의 4, 3, 2는 어째 수업시간에 공개된 장소에서 틀기에는 좀 거시기한데 얘는 괜찮을 것 같아선요 ...

아, 그리고 위에 분이 말씀하신 언노운 우먼 역시 잼나게 본 영화입니다. 크세니야 라파포르트(К. Раппапорт)라는 유태인 혈통의 페쩨르부르그 연극여배우의 연기가 정말 좋습니다. 2002년 말르이 극장에서 바냐 아저씨에서 열연할 때부터 범상치않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탈리아에 스카웃돼 갔더군요.

로쟈 2009-11-09 19:04   좋아요 0 | URL
영화는 저도 못 봤어요. 말씀을 들으니 좀 구해봐야겠다는 생각은 드네요.^^
 

아침에 경향신문에서 읽은 인터뷰기사는 '마을영화'를 만드는 신지승 감독 부부 이야기였다. 우연히 지난주에 두 분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독특한 영화제작 방식과 '또 다른 영화'에 대한 열정이 인상적이었다. 두 사람이 제작하는 새로운 개념의 영화를 '마을영화'라고 지칭하지만 별칭도 여럿 된다. '마을공동체영화' '돌탑영화' '심청이젖동냥영화' 등등.  

최근에 펴낸 책 <떠돌이 감독의 돌로 영화만들기>(아름다운사람들, 2009)의 서문에서 저자들은 이렇게 적었다. "영화라는 것과는 인연이 없을 것같이 생각해온 사라들, 진짜 용기도 없고 재주도 없을 것 같은 사람들,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주저했던 사람들, 평범하고 무료한 일상 속에 묻혀 살았던 사람들과 함께 돌탑영화를 만들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거창한 시대적 소명과 간교한 자본적 전략을 극복하고, 감독 개인의 미학적 취향과 주관을 넘어 화두를 변방으로 삼고 지역적 삶으로 회귀하여 동네잔치 같은 영화를 만들면서 마냥 행복했고 마냥 즐거웠다." 아래 기사에서도 그 즐거움은 얼마간 묻어나는 듯싶다... 

 

경향신문(09. 07. 02) '마을영화’ 만드는 신지승·이은경 부부   

영화는 산업이다. 제작에서부터 배포에 이르기까지 자본의 뒷받침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다. 한데 이 자명한 사실을 거부하는 이들이 있다. 돈 없이도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신지승(46)·이은경(40) 부부다. 영화제작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출연료는 0원, 영화촬영에 동원되는 배우와 스태프에게 소요되는 식사와 숙박 등의 제비용도 들지 않는단다. 해답은 ‘마을영화(혹은 공동체 영화라고도 부른다)’이다. 감독은 신씨가, 제작은 아내 이씨가 맡는다. 배우는 전국의 마을 주민들이다. 때로 아이들도 동원된다. 주민들은 배우일 뿐 아니라 때론 영화감독이 되기도 하고 손이 모자라면 붐마이크를 들고 녹음기사를 하기도 한다. 연기를 배운 적이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카메라 한번 만져본 적 없고 심지어는 영화 자체를 본 적도 없는 고령의 노인들과 함께 영화를 촬영하는 일이 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부부를 만나러 길을 떠났다. 부부의 작업실 겸 거처는 경기 양평 용문산 자락. 사륜구동 차가 있어야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가파른 산중턱이다. 집에는 여러 명을 수용해 영화교육과 상영이 이뤄지는 작업실이 있고, 집 앞 경사로 한쪽에는 돌을 쌓아 만든 작은 규모의 노천원형극장이 있다. 영화제작과 관람이 한 공간에서 이뤄지는 원스톱제작 시스템이 숲속 한 가운데 구축된 셈.

지금의 공간을 만들고, 마을영화의 개념을 바로 세우기까지 부부는 지난 10년간 고군분투했다. 충무로와 여의도 등 영화사와 드라마프로덕션에서 10여년간 연출부 생활을 하다 데뷔가 어그러지면서 좌절한 뒤 지금의 양평에 귀촌한 것이 99년.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작품창작에도 한계를 느끼면서였다. 연고도 없는 곳에 와서 몇년간은 힘들었다. 하지만 오히려 서울이 아닌 시골에서 새로운 영화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지금 한국의 영화는 돈으로 만드는 겁니다. 자본을 투자해도 단기에 최대한의 성과를 얻어내려고 하다보니 더욱 상업화가 되죠. 독립영화도 마찬가지예요. 독립영화 감독들조차도 언젠가는 상품으로서 자신의 영화를 들고 대중과 만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투자비가 많지 않다보니 오래 촬영하고 오래 묵히고 고민해가면서 영화를 만들 수 있어요.”

마을영화의 개념을 구체화시킨 것은 2003년 무렵. 가진 돈 탈탈 털어 5t 트럭을 사들여 작업을 하고 먹고 자고 씻을 수 있도록 개조한 뒤 트럭을 타고 전국의 마을을 누볐다. 영화현장에서 부부의 연을 맺어, 실무를 맡아 온갖 뒷감당을 다 해내는 아내 이씨도 물론 함께였다. 부부가 제작하는 영화에는 성공이니 복수, 살인 등 보편적인 영화의 소재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며 빚어내는 소소한 일상이 소재로 등장한다. 송아지를 잃어버려 화병이 나 누워버린 할아버지, 고춧값 100원 차이로 서로 싸우는 할머니, 경로잔치의 주인공인 노인들이 스스로 잔치 준비를 위해 전을 만드는 씁쓸한 현실, 이주여성 며느리와 시어머니간의 갈등 등 작지만 농촌의 단면이 담긴 모든 것들이 소재가 된다.  

“기존의 드라마는 복수와 선악의 문제를 다루고 갈등이 있고 이것이 풀리면서 완결되잖아요? 마을영화에서는 생활속 갈등을 다룹니다. 마을마다 고유한 술이 있듯이, 마을영화도 마을마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갖고 있죠. 마을영화는 마을 사람들이 빚어내는 드라마입니다.”

마을영화는 자본과 대중의 입맛에 맞춰 기획된 상업영화, 독립영화와는 분명히 선을 긋는다. 제작 방식도 통상의 영화제작과는 차이가 난다. 영화제작 방식은 대강 이렇다. 역사, 설화 등을 통해 영화의 단초를 찾은 뒤 영화촬영지를 고른다. 마을 이장을 통해 연락을 넣고 협조를 구하는 것은 필수. 요즘엔 직접 의뢰가 오기도 한다. 다음 단계는 사전답사를 통해 주민들을 인터뷰하고 소재를 수집하는 것. 그 후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면서 전체 주제를 잡아나가고 편집 등 마무리 작업을 한다. 그게 끝이 아니다. 제작의 마무리는 주민들과 함께하는 ‘달빛영화제’다. 야외에 천막을 치고 모두 함께 마을영화 시사회를 즐기는 것이다.

기존 영화제작과 가장 큰 차이라면 사전에 시나리오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열려진 상태에서 작업을 합니다. 시나리오를 들고 가면 일단 그건 감독 개인의 영화가 되는 겁니다. 마을영화는 백지상태에서 출발합니다. 이야기의 원형을 마을에서 구해요. 여러개의 에피소드가 통합되면서 하나의 구성체가 돼 가는 거죠.”

신씨는 상업주의에 물든 한국 영화계의 대안을 마을 공동체에서 찾고 있었다. 그는 “마을은 자본주의의 물신 숭배를 극복하고 인간 정신의 가치를 위협하는 퇴폐성을 극복할 수 있는 공동체 창작의 소립자”라고 강조했다. 그뿐만 아니라 마을주민들에게는 유쾌한 체험이자 놀이며 치유의 경험을 제공하는 예술행위라고 설명했다.

“전남 화순에 갔었어요. 겨울이라 농한기였는데, 경로당에 가니 노인분들이 60~70여명 앉아계시더군요. 영화 이야기를 했더니 즐거운 소일거리로 받아들이시더군요. 나이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누구나 즐겁고자 하는 놀이의 욕구를 갖고 있습니다. 예술은 즐거운 것이라는 데서부터 마을영화는 출발합니다.”

마을 주민들의 어설픈 연기가 혹여 영화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사실 농어촌의 잔잔한 일상을 완결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일이 어렵지 ‘전원일기’류의 연기는 어렵지 않아요. 오히려 시골분들이 예술적 그릇이 더 커요. 무엇을 하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다 알아요. 상황만 주어지면 스스로 알아서 대사를 해요. 서로 연기를 지켜보며 스스로 감독이 되어 훈수를 두기도 하죠.”

때문에 촬영 현장은 모두 함께 웃고 즐기는 축제의 장이다. 신씨는 공동체 구성원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력을 요하는 마을영화 작업은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문화예술교육·미디어교육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이건 미디어 운동이 아니라 영화를 찍는 행위, 예술창작행위예요. 영화를 통한 미디어교육이라든가 문화예술교육은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에게는 가능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하루하루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주민들에게는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그 분들이 기껍게 참여해야 영화제작이 진행되거든요.”

부부는 지난 10여년간 60여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대부분 중·단편. 90분 이상의 장편도 10편이 넘는다. 작지만 성과도 있다. 환경을 소재로 한 영화는 영화제에 초청되고 청소년과 노인들이 배우로, 스태프로 참여한 영화는 청소년영화제, 노인영화제 등에서도 초청을 받아 상영됐다. “마을영화가 널리 알려지진 못했지만 영화계 내부에서는 파급력이 크다고 봅니다. 영상자료원이 진행하는 ‘찾아가는 영화관’이나 독립영화배급지원센터가 진행하는 ‘우리동네 극장만들기’ 등 최근에 커뮤니티를 위한 영화상영 이벤트가 늘고 있어요. 물론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이 제작에 참여한 영화를 상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죠. 그런 면에서 마을영화는 앞으로 더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하나의 문화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도 보고요. 맛집을 찾아가듯, 마을영화를 보려면 그 마을로 가도록 만드는 거죠.” 



부부는 최근 그간의 경험을 모아 마을영화의 이론과 방법론, 비전을 담은 책 <떠돌이 감독의 돌로 영화만들기>(아름다운사람들)를 펴내기도 했다. 자본과 분업화된 시스템, 전문인력 없이는 불가능해보이는 영화제작을 농어촌 주민들과 유쾌하게 진행하고 있는 부부와 이들이 제작한 마을영화를 관람하고 서울로 돌아오면서 오랫동안 잊고 있던 예술의 본질을 되새겨봤다.(윤민용기자) 

09. 07.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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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9-07-02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왜 땡스투를 할 수 없나요????

로쟈 2009-07-02 22:21   좋아요 0 | URL
제가 스크랩한 기사에 대해서는 책의 이미지만 따붙이고 있습니다...

2009-07-02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02 2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02 2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02 2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펠릭스 2009-07-19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KBS "책 읽는 밤", 제11화를 봤다.
영화의 특징은,
1. 동시에 한 공간에서 함께 감상.
2. 감상자의 시각 등에 자동으로 옴.
3. 시작과 결말이 평균 3시간 소요.
4. 감상후 다른 공간으로 쉽게 이동.
5. 비주얼한 세계로 순간 퐁당 가능.
감상자가 직접 배우가 될 수 있는 "마을영화",
있는 그대로 출연할 수 있는 편안한 영화만들기.
"극장이라는 곳은 공동묘지와 같다." -신지승 감독 -
 
잘 알지도 못하면서

기분전환도 할 겸 오랜만에 동네극장에서 심야영화를 보기로 하고 정한 프로그램은 홍상수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다. 박찬욱의 <박쥐>도 상영중이지만 한편만 봐야 한다면 나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다(여러 리뷰를 보건대 <박쥐>의 감상이 유쾌할 것 같지 않다). 두 시간쯤 남았는데, 마침 감독 인터뷰 기사가 있기에 '기념'으로 스크랩해놓는다. 인터뷰의 홍상수는 이젠 나도 잘 아는 홍상수이다. 아, 그의 취미는 처음 알았다. 그러고 보니 영어제목이 'Like You Know It All'이군...  

서울신문(09. 05. 16) 칸 영화제 초청받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홍상수 감독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이 아니다. 홍상수(49) 감독 이야기다. 그의 최근 동선은 누가 봐도 혀를 내두르게 한다. 이달 전주영화제(단편 ‘첩첩산중’)와 칸영화제(‘잘 알지도 못하면서’)가 부른 데 이어, 8월 열리는 로카르노영화제에서도 그를 심사위원으로 초청했다.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지만, 홍 감독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9번째 장편 ‘잘 알지도 못하면서’(14일 개봉)에 호평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은 영화감독인 구경남(김태우)이 제천과 제주를 방문하면서 겪는 일화를 담고 있다. 두 곳에서 차례로 여자를 만나지만, 오해와 과욕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만다. 홍 감독은 바쁜 와중에도 이메일 인터뷰에 흔쾌히 응했다.

→평소 영감을 얻는 곳은.

-남들이 보면 일상적인 상황인데, 나한테는 영화적으로 풀어나가면 내가 하고 싶었던 질문들을 그 구현과정에서 ‘저절로’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직감으로 들 때가 있다. 난 거기서 시작한다.

→작품이 더 편안하고 재미있어진다는 평에 “나이가 들어서”라고 했는데 혹시 세계관이나 작품관이 바뀌었나.

-항상 지향하는 곳은 밝은 곳, 힘찬 곳, 명료한 곳이었다(어떤 것을 명료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명료함까지 포함해서). 내가 겪은 것이 있고, 생긴 게 있어서 나의 경로가 있었던 것 같다. 처음 영화 시작했을 때 내가 가졌던 관심들과 지금의 것들이 달라진 것이 있다. 난 언제나 부분으로서만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를 따로 ‘관(觀)’으로서 얘기하면 과정에 대한 왜곡된 설명이 될 것이다. 영화가 나에겐 최선의 표현이라고 믿고 싶다.

→주인공 구경남에 혹시 본인의 모습도 투영이 됐나.

-모델이 있어야 작업을 하는 사람이지만, 모델과 최소한의 거리가 있어야 작업이 가능하다. 그래서 한 인물을 위해서 모델 여럿을 섞기도 하고, 모델 아닌 읽고 보고 들은 것들을 섞기도 한다. 구경남은 (퍼센티지는 모르겠고) 나와 김태우와 다른 언급 안 된 모델들과 내가 읽고 보고 들은 것들의 합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몇몇 인물의 경우, 연기가 어색한 것이 사실이다. 개의치 않는 건가, 특별한 느낌을 유도하기 위한 건가.

-내가 어떤 건 많이 꼼꼼하고, 어떤 건 조금 설렁설렁한다. 주어진 촬영 조건 속에서 더 중요한 것을 기준으로 오케이를 내면서 찍어간다. 그렇게 보였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개인적으로’ 별로 걸리지 않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이야기나 대사가 앞뒤에서 대구를 이루거나, 약간의 변형을 거쳐 반복된다. 이 기법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이 있나.

-삶이 일직선으로 나간다고 믿는 것도 대구·반복의 구조처럼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누군가의 눈에는 대구가 더 사실적인 삶의 구조일 수 있다. 입력된 해석의 틀이 너무 강해서 우린 삶의 현상을 맨눈으로 제대로 보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허다하다. 부분으로 봐서는 같지만 둘을 놓고 보면 꼭 다른 점이 보이고, 너무 다른 것이라도 같이 놔두고 보면 꼭 같은 면이 발견된다. 우린 그런 부분의 발견을 통해서 입력된 틀의 허구를 운 좋게 확인할 수도 있다, 가끔.

→감독의 영화를 보면, 현실의 비루하고 약간은 추잡한 모습들이 그럴 듯하게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 모습을 그리는 것은 ‘이런 것도 우리네 삶의 모습이다.’라고 인정하기 위함인가.

-표현대로 ‘비루하고 약간 추잡한 게’ 우리가 매일 사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비루하지 않고 추잡하지 않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순간들도 있지만…. 난 과장된 사고와 근거 없는 환상 때문에 삶이 불필요하게 더 힘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사고 과장과 환상들을 끄집어내서 같이 보려 하는 맘이 있다. 그런 맘 때문인지 어떤 삶의 부분들이 다른 부분들보다 더 자주 선택되는 것 같다.

→여성 관객분들 중에 간혹 “홍상수 영화에 나오는 여자들은 다 한번 건드리면 쉽게 넘어오는 것으로 그려져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더라.

-그런 분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아는 어느 주체적이고 튼튼한 정신의 여자분은 내 영화를 아주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사실이다. 둘은 뭘 다르게 보는 걸까. 한 분은 (어떤 이유나 목적의식으로) 그 여자 인물의 행동 액면가에 반응하는 것 같고, 한 분은 영화의 맥락과 태도에 감흥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

→홍 감독의 영화는 대개 현재 시점으로 진행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방식을 특별히 싫어하는 이유가 있나.

-시간대가 늘어지면 시간 점프가 커지고, 그 사이를 설명 없이 건너가려면 (설명을 할 수는 없고) 뭔가 전형성에 많이 의존해야 해야 할 것 같다. 모른 척하고 그냥 건너갈 수도 있지만 그건 척하는 것 같고, 쿨한 척. 근접 시간대의 미세한 차이 속에서 뭔가를 얘기해야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게 되는 것 같다.

→소위 특급 배우를 잘 기용하지 않는다. 캐스팅의 원칙이나 기준이 있다면.

-대강 이야기가 정해지면 배우들을 만나기 시작하는데, 그 배우란 사람 속에서 어떤 맥을 읽게 된다. 그 맥이란 게 그 사람을 ‘내 식으로 이해하는’ 어떤 기억 속의 인물의 환기같은 건데, 그걸 잡고 내가 미리 준비한 걸 섞으면서 과정을 시작한다. 



→취미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취미라고 부를 것은 없다. 첫 영화하고 상금 탄 돈으로 뭔가 사둬야겠다고 해서 피아노를 샀다. 제대로 배운 적은 없지만, 가끔 그걸 5분, 10분씩 치면 재미있다.

→감독의 연애관이 궁금하다.

-연애보다는 삶이 재미있다. 애인보다는 친구가 최고다.

→칸 영화제에 5번째로 가게 된 소감은.

-불러주니 가는 것이고, 내가 작업을 계속하는 데 도움되는 일이려니 생각하고 가는 게 크다.(강아연 기자) 

09. 05. 16. 

 

P.S. 영화는 예상보다 조금 길었지만 예상대로 아주 재미있었다(그런데 객석은 텅 비어 있었다. 한 10명쯤 같이 본 듯하다). 이 저예산 영화에 아마도 무보수로 출연했을 배우들의 연기도 모두 좋았다. 공형진, 유준상 등의 연기. 그러나 압권은 정유미였다. <사랑니> <가족의 탄생> 등의 영화에서 이미 본 배우이고 간간이 그녀의 연기에 대한 호평도 들었지만, 이렇게 놀라운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인 줄은 미처 몰랐다(스크린에서 보지 않았기 때문일까?). 좋아하는 배우가 한 명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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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9-05-17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족의 탄생에서 정유미씨가 무척 눈에 띄더군요. 그러고 나서 사랑니를 우연히 다시 봤는데 거기 있더라구요^^ 어떤 드라마에서 얼핏 봤을 때는 노다메 칸타빌레의 노다메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

로쟈 2009-05-17 14:49   좋아요 0 | URL
제가 일본 드라마는 안 봐서요.^^;

딸기 2009-05-17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유미라는 배우였군요. 고현정인줄 알았어요.

로쟈 2009-05-17 14:48   좋아요 0 | URL
아, 위쪽 사진은 고현정 맞습니다. 정유미는 좀더 작은 배역으로 나옵니다...

딸기 2009-05-18 23:42   좋아요 0 | URL
위에 쓰신 글에 여자가 두 명 나오잖아요. 위 사진에 남자랑 앉아있는 여자는 고현정인 거죠? 그럼 밑의 독사진은 누구인가요?

로쟈 2009-05-19 00:24   좋아요 0 | URL
독사진이 정유미예요...

노이에자이트 2009-05-17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현정 누나는 우리 고향사람(전남 화순에서 국민학교 2학년까지 다녔던가...여하튼)입니다.그 동네에 고씨 집성촌이 있지요.
정유미 누나는 우에노 주리 닮았다는 자명한 산책 님의 말씀인데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음...이 누나도 귀엽네요.
로쟈 님은 제시카를 알았고 저는 정유미를 알았네요.

로쟈 2009-05-17 22:34   좋아요 0 | URL
연기를 한번 보셔야 하는데요.^^

노이에자이트 2009-05-17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에노 주리도 귀여워요.검색 한번 해보세요.로쟈 님 고향에서 나온 이쁜 연예인은 누구인가요?

로쟈 2009-05-19 00:25   좋아요 0 | URL
글쎄요, 딱히...^^;

노이에자이트 2009-05-19 23:39   좋아요 0 | URL
광주 및 인근 전남 지역출신 이쁜 연예인 엄청나게 많은데...문근영,유빈,한지혜,구하라 등등...그 외에도 수두룩합니다.로쟈 님도 찾아보면 고향출신 연예인이 나올 거예요.

릴케 현상 2009-05-18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 우에노 주리라는 이름은 외워둬야겠네요...전 일드를 보는 방법도 몰라요. 만화의 이미지를 떠올려서 말씀드린 건데^^

Kir 2009-05-19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도 정유미의 매력에 빠지셨군요^^ 이 친구 정말 매력적이예요. 요새도 검색하면 바로 볼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몇년 전에 <폴라로이드 작동법>이라고, 굉장히 호평받은 단편영화가 있었어요. 친구의 추천으로 봤다가 이 아가씨한테 반해버렸지요. 그 다음부터 영화 출연작은 다 챙겨보고 있는데, 이 영화는 아직입니다. 내리기 전에 빨리 봐야될텐데,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로쟈 2009-05-20 00:51   좋아요 0 | URL
네, 영화를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