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개봉예정작에는 이미 '걸작'이란 소문이 파다한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신작 <이스턴 프라미스>가 포함돼 있다. 명불허전이므로 간단한 소개 기사들만을 챙겨둔다(개인적으론 러시아 마피아를 소재로 한 영화여서 더 기대가 크다). 그럼에도 기사는 꼼꼼히 읽지 마시길...  

 

한겨레(08. 12. 08) 비극은 한 권의 일기서 시작됐지

‘냉혹함’과 ‘포근함’은 서로 다른 세계의 언어다. 새 생명이 태어나는 조산실의 풍경과 사내들이 서로의 목을 향해 칼질을 서슴지 않는 ‘조직’의 세계는 좀처럼 상대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스파이더>(2002)와 <폭력의 역사>(2005)에서 기묘한 느낌의 세계를 구축해 온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신작 <이스턴 프라미스>는 화해할 수 없는 두 세계가 충돌할 때 나타나는 풍경들을 서늘하게 그린다.

런던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는 조산사 안나(나오미 와츠)는 ‘타티아나’란 이름의 열네 살짜리 그루지야 소녀가 낳은 아기를 받아 낸다. 숨진 소녀와 살아난 아기. 안나는 아기의 연고를 찾기 위해 소녀의 일기장에 꽂힌 명함 주소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인자해 보이는 노인 세미온(이민 뮬러-스탈)이 안나를 맞는다. 세미온은 겉으로는 고급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신사지만, 실제로는 동유럽에 근거를 둔 런던 최대 범죄 조직 ‘보리 V 자콘’의 두목이다. 세미온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안나는 조직의 운전수 니콜라이(비고 모텐슨)에게 묘한 ‘끌림’을 느낀다.

안나는 러시아어로 써진 소녀의 일기를 읽을 수 없다. 세미온은 안나에게 “일기를 번역해 주겠다”고 말하고, 안나는 그에게 일기 사본을 넘긴다. 일기에는 안나가 모르는 뜻밖의 비밀이 담겨 있다. 그래서 ‘세미온의 세계’는 ‘안나의 세계’에 개입한다. 니콜라이는 안나에게 “당신이 있을 곳은 저기 좋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에요. 저 같은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셔야 합니다”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비정한 조직은 니콜라이를 세미온의 아들 키릴(뱅상 카셀) 대신 사지에 내몬다. 사우나실 안에서 무방비 상태로 두 괴한의 침입을 받은 니콜라이가 보여주는 절박한 폭력의 몸짓은 영화의 ‘백미’라 꼽을 만하다. 싸늘한 주검이 된 타티아나가 그랬듯 니콜라이도, 세미온도 한때는 ‘포근함’의 세계에 속했던 사람들은 아니었을까. 11일 개봉.(길윤형 기자)

필름2.0(08. 12. 05) 크로넨버그의 새로운 경지

한 가족사를 통해 폭력의 생태를 짚어나가는 <이스턴 프라미스>는 끊임없이 인간의 본성을 탐구한 크로넨버그가 다시 새로운 경지에 올라섰음을 증명하는 걸작이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런던. 평범한 외관의 이발소와 약국에서 뜻밖의 사건들이 일어난다. 중년 남자가 이발하는 도중 청년에게 살해당하고 약국을 찾은 임신 중인 소녀는 하혈을 하며 기절한다. 소녀는 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지만 아이를 낳고 죽는다. 유품인 일기장에서 소녀의 이름이 ‘타티아나’임을 알게 된 간호사 안나(나오미 왓츠)는 러시아어로 쓰인 수첩 내용을 번역해 아기의 연고지를 찾기로 한다. 안나는 수첩에서 발견한 명함의 식당인 ‘트랜스 시베리아’를 찾아간다. 새미온(아민 뮬러-스탈)이라는 러시아인이 운영하는 이곳에서 안나는 새미온 가족의 운전수로 일하는 니콜라이(비고 모텐슨)를 만난다. 하지만 안나는 곧 식당이 러시아 마피아의 유럽 본거지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니콜라이는 위험에 처한 안나와 아기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이스턴 프라미스>는 주제와 형식면에서 <폭력의 역사>(2005)와 연작으로 묶을 수 있는 작품이다. 일명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폭력 2부작’이라 불리는 두 영화는 모두 ‘폭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크로넨버그가 그리는 폭력은 여타 영화들이 폭력을 이야기하고 사용하는 방식과 사뭇 다르다. 그의 폭력은 특정한 공간, 주체, 이유, 대상을 갖지 않는다. 폭력이 존재하는 곳은 어두운 뒷골목이 아니라 대낮의 식당 혹은 이발소처럼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이고 폭력을 행하는 이는 익명성이 두드러지는 사람들이다.

세상의 모든 가치에서 우위를 점하는 폭력은 그 자체가 존재 이유다. 그런 폭력으로부터는 보통 사람들도 안전하지 않다. 즉 크로넨버그가 영화에서 그리는 폭력은 평범한 인간과 일상에 기생하는 종류의 것이다. 때문에 쉽사리 발견되지 않고, 은밀하기에 깊고 단단하다. 더욱 무서운 것은 폭력이 인간 본연의 선처럼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크로넨버그가 영화에 담는 것은 바로 이런 폭력의 절대성이다. <폭력의 역사>는 가족 드라마를 내세워 일상에 잠복한 폭력의 속성을 정교하게 그린 수작이었다. 마찬가지로 한 가족사를 통해 폭력의 생태를 짚어나가는 <이스턴 프라미스>는 끊임없이 인간의 본성을 탐구한 크로넨버그가 다시 새로운 경지에 올라섰음을 증명하는 걸작이다.

온화한 인상의 식당주인 새미온은 사실 런던 최대 범죄 조직인 러시아 마피아단 ‘보리 V 자콘’의 보스다. 그의 아들 키릴(뱅상 카셀)은 조직의 2인자로서 이발소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청부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운전수인 니콜라이는 조직의 해결사다. 하지만 이들의 존재가 두려운 것은 단순히 마피아여서가 아니다. 이들의 악행이 평범한 사람들에게까지 미치기 때문이다. 범죄세계와 무관한 안나는 연고가 없는 어린 산모가 남긴 아이 때문에 마피아 조직의 타깃이 된다. <폭력의 역사>에서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날 벌어진 사건이 평온한 가정과 마을을 피로 물들였듯이 안나의 일상에도 폭력의 공포가 스며든 것이다.

하지만 <폭력의 역사>가 톰(비고 모텐슨)의 과거가 드러나면서 마을 전체에 피어오르던 폭력의 기운을 담았다면 <이스턴 프라미스>는 폭력의 실체를 좀 더 구체화, 형상화해 보여준다. 건실한 가장의 외피를 뒤집어쓰고 있던 폭력은 <이스턴 프라미스>에서 갱들의 몸을 빌려 표현된다. 검은 정장과 선글라스의 남자들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폭력의 잔혹함을 예감케 한다. 그만큼 폭력의 묘사 역시 직접적이다. 아이들의 교내 싸움, 부부간의 섹스 등을 통해 일상에 도사리는 폭력성을 우회적으로 그려내기도 했던 <폭력의 역사>와 달리 영화는 첫 장면부터 폭력의 섬뜩한 실체를 보여준다.

특이할 것 없는 평범한 이발소에서 어수룩해 보이는 청년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유쾌한 농담을 건네던 남자의 목을 칼로 가른다. 벌어진 살 틈으로 피가 뿜어져 나오는 이 장면은 사실적이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하지만 폭력을 그리는 크로넨버그의 수사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단연 중반부 사우나 격투 신. 니콜라이가 두 명의 킬러와 맨몸으로 싸우는 이 장면은 영화가 구사할 수 있는 폭력의 최대치를 보여준다. 오감이 압도되는 이 장면에서는 가학적이거나 피학적인 쾌감조차 느끼기 힘들다.

크로넨버그가 우리가 몰랐던 일상의 이면이 드러나는 무대로 범죄 도시의 이미지가 희미한 런던을 택한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이곳에서 크로넨버그는 구원도 희망도 찾아보기 힘든 세계를 구축한다. 평범하면서도 어딘가 냉기 어린 고요가 흐르는 런던의 풍경을 잡아내기 위해서 제작진은 런던의 뒷골목을 샅샅이 뒤졌다. 장소 헌팅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러시아인들을 주인공으로 한 만큼 다문화적 특성이 드러난 곳이어야 했다. 고심 끝에 낙찰된 장소는 킬번, 그린위치, 해크니, 할레스덴 등 외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런던의 변두리다.

일상의 한복판에 던져진 폭력의 양상을 탐색하는 크로넨버그는 또 다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폭력의 역사>에서 ‘폭력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나?’로 시작된 질문은 <이스턴 프라미스>에 이르러 ‘구원은 있나?’로 확장된다. 크로넨버그는 이례적으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몇 가지 단서는 남겨놓는다. 아이와 후반부의 반전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구원을 바라도 되는 것일까. 하지만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간 후에도 이 질문에 답하기란 힘들다.

영화가 담은 폭력의 속성은 결국 변하지 않을 인간의 본질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아이라는 명백한 구원의 요소가 일종의 연민 어린 판타지로 보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폭력을 통해 마침내 인간과 세상의 본질을 관통한 <이스턴 프라미스>는 크로넨버그의 경이적인 성취를 보여주는 영화다.

문신으로 새겨 넣은 폭력의 역사

<이스턴 프라미스> 속 문신은 힘의 과시라기보다 개인의 정체성, 역사와 맞닿아 있다.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수감 기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심지어 그 사람의 성적 취향까지도 드러낸다. 비고 모텐슨의 등과 손목, 발목, 손가락에까지 새겨진 문신은 총 43개. 옥스퍼드 문신 박물관에서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약 4시간 동안 작업한 결과다. 호랑이, 별, 아기와 함께 있는 성모마리아, 십자가, 바벨탑, 예수, 벌거벗은 천사, 나뭇가지, 단추, 까마귀, 약탈자, 스콜피온, 단검, 문장 등 다양한 종류의 문신이 새겨져 있다. 문신들은 각각의 의미를 지니는데 대표적인 문신의 뜻을 살펴본다.

발목 수갑 문신 수용자들이 자신의 발목을 그어버리던 베드로 시대의 오마주

가슴의 십자가 종교적 의미가 아닌 모범이 될 만한 도둑이라는 의미를 내포

세 개의 둥근 지붕 모양 교회 3개의 다른 감옥을 의미

무릎의 별 문양 실제 마피아 집단인 보리의 영속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조직 내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을 뜻함

08. 12. 07.

P.S. 최근 데이비드 린치의 책도 출간된 김에, 이 '또 다른 데이비드'의 책도 소개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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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7 2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08 2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08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08 2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08-12-08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굉장히...노골적인 영화였어요.
특히 아민뮬러스탈의 이중적인 모습은 뮤직박스 이후 두번째 만났습니다.

로쟈 2008-12-08 21:26   좋아요 0 | URL
저도 기대가 됩니다...

드팀전 2008-12-08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작이지요. 비고 모텐슨은 정말 러시아사람처럼 영어를 하던데. <씨네21><필름2.0>이 '배트맨' 이후 집중적으로 좋아라하고 있습니다.ㅋㅋ

로쟈 2008-12-08 21:26   좋아요 0 | URL
네 걸작이 '자주' 나오고 있습니다.^^

수유 2008-12-08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연말이 되니 좋은 영화들이 한두편 들어오나요, 수첩에 적어야겠습니다!!

로쟈 2008-12-08 21:26   좋아요 0 | URL
볼 만한 영화들은 많은 듯싶어요...

하이드 2008-12-08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등의 해골은 살인자,
팔에 호랑이 문신은 행동대장.

무삭제로 나온다고 얘기 들었는데, 그렇다면 정말 ㄷㄷㄷ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이라고 해서 괴영화를 예상했는데, 지극히 현실적인 영화여서, 더 오래오래 남을듯합니다.

로쟈 2008-12-08 21:27   좋아요 0 | URL
하이드님 취향이시죠?^^

2008-12-09 0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09 0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yoonakim 2008-12-09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나 많은 매서운 눈들이 있어서 전 이제 영화에 대해 모라고 말을 하기가 겁납니다^^

로쟈 2008-12-09 14:05   좋아요 0 | URL
영화평론도 사양업종이라잖아요.^^;
 

여성들의 완소남 배우 소지섭의 재기작 정도로만 알고 있던 영화 <영화는 영화다>가 '문제작'이란 사실은 최근에 영화/시사 잡지의 기사들을 보고서야 알았다. 데뷔작을 찍은 장훈 감독이 김기덕 감독 연출부 출신이란 것도. 게다가 이 액션영화의 시나리오를 김기덕 감독이 썼고, 이 저예산 영화에 100만 관객이 들었다는 것도! 그래서 정작 김기덕 감독의 최신작 <비몽>보다도 더 관심을 갖게 됐다(기회가 주어진다면 <영화는 영화다>를 먼저 보겠다는 얘기다). 주초에 읽은 시사인의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비몽>과 관련한 인터뷰기사는 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312776.html 참조).   

시사인(08. 09. 30) “영화요?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생사람 잡지 말고 호구조사부터 들어가자. <영화는 영화다>를 만든 장훈 감독(34)은 영화 전문지 <KINO>에서 기자로 일하다 독립영화 감독으로 두각을 나타낸 그 장훈 감독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혼동한다.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영화 학자조차 그런 실수를 저질렀다. 고백하자면 기자도 그 장훈과 동일인물이라고 짐작했다.

그만큼 장훈 감독은 영화판 안에서조차 베일에 싸인 사람이다. 유일한 ‘정보’라고 해봐야 김기덕 감독 아래에서 오랫동안 조감독 생활을 했다는 것 정도. 미술을 공부했고, 별다른 배경 없이 영화계에 등장했다는 점도 김기덕 감독과 닮았다.

그런 그가 ‘사고’를 쳤다. 7억원도 안 들인 저예산 작품인 <영화는 영화다>가 관객 100만명을 돌파했다. 제작비의 열 배 가까운 수입을 벌어들인 것이다. 평단의 반응도 뜨거웠다. 최근 지속된 한국 영화의 불황 속에 내린 단비였다. 무엇보다 그 감독이 글자 그대로 무명의 ‘신인’이라는 점에서 화제가 됐다.

감독이 배우를 조립할 순 없어

그런데 직접 만나본 장훈 감독은 영 뜻밖이었다. 혈기와 패기 넘치는 신인 감독의 풍모를 기대한 건 오산이었다. 말수가 적었고, 목소리는 낮았다. 액션 장면 난무하는 장편영화 촬영을 겨우 47일 만에 끝마친 열혈 감독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뜻밖인 건 겉모습만이 아니었다. 이 젊은 감독은 현장을 장악하려 들지 않았다. 

“어떤 배우나 스태프라도 결국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더군요. 몸이 안 될 때도 있고, 마음이 안 열릴 때도 있고요. 하지만 저는 영화 속 봉 감독처럼 무리하게 주문하지는 않아요. 각자가 할 수 있는 능력에 한계가 있는데, 그 이상을 요구하다보면 어떤 경우엔 그 사람이 가진 정체성을 완전히 무너뜨려야 하는 일도 생기잖아요.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영화는 찍을 수 있을지 몰라도 제가 그 사람을 다시 조립해줄 수는 없잖아요.”



장 감독에게는 김기덕 감독의 후광이 서려 있다. <영화는 영화다> 시나리오의 원작을 김기덕 감독이 썼고 영화 제작도 김기덕필름에서 맡았다. 영화 촬영 때 배우와 스태프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 것도 김기덕 감독의 영향 때문이다. 혹여 김 감독의 ‘그늘’에 갇히는 것이 아닌지 걱정될 법도 한데, 스스로도 김기덕 감독의 후광을 마다하지 않는다.

“김기덕 감독님에게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앞으로도 더 배울 것이 많지요. 특히 김기덕 감독은 다른 사람 돈으로 영화를 만들 땐 결코 손해를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셨어요. 영화는 로또가 아니기 때문에 대박을 꿈꾸진 않더라도 손해 보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다음 영화를 또 준비할 수 있으니까요.”

장훈 감독과 김기덕 감독의 만남은 학창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술대학에 다니던 시절, 학교 강연에 김 감독을 초빙한 인연으로 자주 연락을 주고받았다. 졸업할 무렵인 2003년, 취업과 영화를 고민하던 그에게 김 감독이 <사마리아> 연출부에서 일할 것을 권했다. ‘한번 일해보면’ 영화판 일을 계속할지 결정할 수 있으리라는 조언이었다. 그 뒤 연출부 막일부터 시작해, 첫 영화로 ‘입봉(첫 작품 데뷔를 뜻하는 영화계 은어)’할 때까지 둘은 햇수로 6년 동안 한 배를 탔다.     

첫 작품부터 화제를 몰고 온 걸출한 신인이지만, 그의 ‘히스토리’는 평범하기 짝이 없다. 영화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누구처럼 장안에 소문난 ‘시네마 키드’도 아니었다. 대학 시절 학내 신문에 만평을 그린 것 정도가 제법 특출난 이력이다. 

제가 원래 나서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에요. 학창 시절에도 존재감 없이 사는 게 좋았어요. 유명해지고 싶어서 영화한 것도 아니고…. 다만 영화 공부는 나름 열심히 했어요. 제가 약간 메모광인데, 영화 볼 때 늘 수첩을 옆에 끼고 이런저런 메모를 했습니다. 어두운 극장에서 메모를 해놓고, 집에 돌아와 다시 옮겨 적곤 했지요. 그러다 보면 영화에 대해 갖는 저의 생각이 좀더 구체화되고 발전하더군요. 그런 생각의 실마리를 잡아내기 위해서, 더 열심히 메모를 했습니다.”

중요한 건 영화가 아니라 삶

장 감독은 주변 동생들이 더러 영화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오면 일단 고개부터 젓고 본다. 속으로는 그들이 영화 쪽에서 일하기를 바라면서도 그렇다. 현직에 있는 선배가 ‘하지 말라’고 말리는데도 끝내 하겠다고 나서는 각오가 있어야 ‘사람답게 살기 힘든’ 영화판에서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일이란 게 어렵지요. 직장이라고 말하기도 어렵고, 촬영 들어가면 명절 때도 집에 못 가기 일쑤고…. 어떤 감독님은 작업 공간이 없어서 PC방에서 컵라면 먹으면서 시나리오 작업을 한답니다. 캐스팅하고 싶은 배우들 사진을 모니터 화면에 깔아놓고, 힘들 때마다 그 사진 보고 힘내서 시나리오를 쓰는 거죠. 그럼에도 이 일을 계속하는 걸 보면 설명하기 힘든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영화는 영화다>에서 영화배우 수타(강지환)가  “당신이 연기가 뭔지 알아?”라고 묻자 주인공 강패(소지섭)는 이렇게 답한다. “연기란 게 별 거 있나, 인생 잘 만나서 편하게 남 흉내나 내면서 사는 거지.” 장훈 감독에게도 똑같이 물었다. 당신, 영화가 뭔지 아느냐고.

“아직은 ‘삶을 위한 은유인 것 같다’는 대답밖에 할 수 없네요. 삶이 중요하지요. 하지만 영화 작업을 더 하다보면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어떤 영화를 만드느냐에 따라 매번 달라지는 것이겠죠. 그래서 매번 새로운 해답에 도달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영화는 영화다’라고 당차게 선언한 젊은 감독의 해답 찾기는, 실은 이제 막 시작인 셈이다.(이오성기자)

장훈 감독 : 1975년생. 대학에서 시각디자인 전공하고 졸업 뒤 김기덕 감독 연출부 생활.  2003년 <사마리아> 연출부 / 2004년 <신부수업> <빈집> 연출부 / 2005년 <활> 조감독 / 2006년 <시간> 조감독 / 2008년 <영화는 영화다> 연출.

08. 10.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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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10-03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 나서 영화평 멋지게 써주세요.소지섭,강지환은 정말 훤칠하고 길쭉길쭉하죠?

로쟈 2008-10-04 00:56   좋아요 0 | URL
조만간 볼 기회는 없을 듯싶은데요.^^;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나는 부산영화제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 '외지인'도 물론 그런 축제에 손님으로 참여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것이 부산 시민들(만)의 '특권'이어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서울에는 없는 것 하나씩을 지방도시들이 다들 나눠가진다면 좋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오늘 개막한 제13회 영화제에도 개막작 <스탈린의 선물>을 비롯해서 눈길을 유혹하는 영화들이 많다. 모두 그림의 떡이라 생각하지만, 왕가위의 <동사서독 리덕스>는 '떡 중의 떡'으로 특히나 침이 고이게 만든다. 기본 골격은 달라지지 않았을 법한데, 어떻게 새로 편집됐는지 궁금하다. 게다가 홍콩 최고배우들이 총출동하는 영화이니만큼, 허무하고도 허무한 인생사를 주제로 함에도 불구하고 호사스럽고도 호사스러운 영화가 아니었던가(나는 첫 개봉 당시 명보극장과 명보아트홀에서 연거푸 본 기억이 있다. 같은 날 저녁에). 정식으로 개봉되기를 기대한다.

한국일보(08. 10. 02) '동사서독…' 부산서 놓치면 후회할 영화들!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는 필리핀과 중앙아시아 등 그 동안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아시아권 영화들에 주목했다. 카자흐스탄 영화 <스탈린의 선물>(감독 루스템 압드라쉐프)가 개막작으로 지정된 것이 그 방증이다. 아시아권 23개국에서 초청된 50여 편의 영화는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색다른 감동을 안겨줄 것이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인 필리핀-프랑스 합작 영화 <서비스>(감독 브리얀테 멘도사)는 현대를 사는 인간의 위선을 비판한 수작이다. 여성들에게는 죽어가는 커리어우먼의 마지막 100일을 그린 필리핀 영화 <100>(감독 크리스 마르티네즈)를 추천한다. 이 외에도 필리핀 영화 <고해><제이>와 카자흐스탄 영화 <무당의 춤>도 눈에 띈다.

보다 상업적인 영화를 원하는 팬들에게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 <동사서독 리덕스>가 제격이다.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도 특별 상영됐던 <동사서독 리덕스>는 고(故) 장국영의 모습을 비롯해 홍콩 유명배우를 한꺼번에 만들 수 있는 작품이다. 또한 영화 <참새>(감독 두기봉)는 오랜만에 홍콩 누와르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아시아 각국 영웅의 이야기를 다룬 섹션인 '아시아의 슈퍼히어로'로 빼놓을 수 없다. 한국 영웅의 원조라 할 수 있는 홍길동의 이야기를 다룬 1967년작 <홍길동전>(감독 신동헌)을 비롯해 <머큐리맨>(태국) <라스틱맨>(필리핀) <치착맨2>(말레이시아> 등 다양한 '맨'을 만나볼 수 있다. 끝으로 영화제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개막작 <스탈린의 선물>과 폐막작 <나는 행복합니다>(감독 윤종찬)은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다.(안진용기자)

08. 10. 02.

P.S. <동사서독 리덕스>의 예고편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Oos8-vS6Dz4 참조. 더불어, 칸느영화제에서의 특별시사회에 관한 뉴스보도는 http://www.youtube.com/watch?v=2MKW28H1xHI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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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3 0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03 2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팀전 2008-10-03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참 좋아했던 영화입니다. 이번 영화제에서도 제일 먼저 표가 동났다고 하더군요.
시간이 되어 다시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로쟈 2008-10-03 21:08   좋아요 0 | URL
아, 부산이시죠?!^^
 

나이를 먹다 보니 낯익은 유명인사들의 부음도 자주 접하게 된다. 현지시간으로는 엊그제(26일)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 배우 폴 뉴먼의 경우도 내겐 '낯익은' 유명인사다. 부음기사에서 그가 1925년생이었다는 걸 알고는 잠시 놀랐다. '멋진 악당' 혹은 '멋진 중년'을 상징하는 배우의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기억에는 많이 잡아줘도 60대에서 멈춘 배우이건만). 그의 명복을 빌면서 부음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 1969년 만들어진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에 출연한 폴 뉴먼(왼쪽)과 로버트 레드포드

한겨레(08. 09. 29) 행동하는 ‘멋진 악당’ 천상의 무대로

깊고 푸른 눈을 가진 인자한 얼굴의 노 신사는 담담하게 말한다. “이봐 마이클. 눈을 크게 뜨고 보게! 이것이 우리가 선택한 인생이고, 끌고 온 인생이야. 단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중 누구도 천국에 가지 못할 것이라는 거지.”(<로드 투 퍼디션> 중에서)

26일(현지시각) 숨진 할리우드의 노 신사 폴 뉴먼은 50여 년의 연기 인생 속에서 늘 세계와 불화하는 ‘악당’이자 ‘반 영웅’이었다. 1963년 <허드>에서 자신의 윤택한 삶을 위해 병든 소를 파는 이중적인 인간 ‘허드’를 연기했고, 67년 <폭력탈옥>에서는 삐딱하고 쿨한 자기 파괴적인 죄수 ‘루크’를 맡았다. 로버트 레드포드와 함께 주연을 맡은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는 유쾌한 은행털이 강도 ‘부치 캐시디’로 열연을 펼쳤다.

2002년, <로드 투 퍼디션>에서 77살의 노 배우는 젊은 톰 행크스를 앞에 놓고 1930년대 시카고 암흑가의 냉혈한 보스 ‘존 루니’를 섬뜩하게 재현해 낸다. <뉴욕타임즈>는 27일 인터넷판에서 그를 “어떤 배우도 그만큼 불완전한 인간을 많이 연기하진 못했다”고 평했다.

뉴먼은 스크린 바깥에서도 인상적인 삶을 살았다. 그는 열정적으로 베트남 전쟁에 반대했으며, 인권을 적극 옹호했다. 그래서 리처드 닉슨의 ‘블랙리스트’(enemies list)에 오르기도 했는데, 뉴먼을 이를 두고 자주 “내가 이룬 가장 자랑스런 성취”라고 자부심을 보였다.

그는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유일한 아들 스콧이 78년 알콜과 약물 과용으로 숨지자 ‘스콧 뉴먼 재단’을 설립하고 약물 반대 영화들을 위한 모금 활동을 벌였다. 또 1982년 만든 ‘뉴먼즈 오운’이라는 식품회사가 크게 성공하자, 여기서 번 수익금 2억달러를 자선사업을 위해 사용했다. 암과 같은 큰 질병에 걸린 아이들을 위해 여름 캠프도 만들었으며, 항암 치료 탓에 머리털이 빠진 아이들을 위해 카우보이 모자를 직접 골랐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뉴먼은 또 미국 자동차 경주대회를 여러 번 석권한 훌륭한 카레이서기도 했다.

뉴먼은 열정적인 배우였고, 행동하는 양심이었으며, 무엇보다 매우 유쾌한 사람이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 부부는 성명을 내어 “미국의 아이콘이자 박애주의자, 어린이들을 위한 챔피언이었다”고 그를 기렸다.(길윤형기자)

 

경향신문(08. 09. 29) [여적]폴 뉴먼

영화사상 최고의 ‘라스트 신’을 꼽으라면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한 ‘내일을 향해 쏴라’(원제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를 우선 떠올리게 된다. 1969년 개봉된 이 영화는 1890년대 전설적 갱의 실화를 토대로 한 것이다. 현금수송 열차와 은행을 터는 강도 행각을 벌이면서도 인간적 냄새를 풍기는 두 젊은이는 탄광촌 은신처에서 군대에 포위되자 ‘이번엔 호주로 가자’고 다짐하며 권총을 치켜들고 뛰쳐나온다. 순간 화면이 정지되고 빗발처럼 쏟아지는 총탄소리가 여운을 남기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비극적 결말의 갱 영화이지만 인간미와 유머 감각이 돋보인다.

폴 뉴먼이 암 투병 끝에 83세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다. ‘스팅’ ‘상처뿐인 영광’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허슬러’ ‘컬러 오브 머니’ 등 숱한 화제작으로 이름을 떨친 그의 강렬하고도 우수에 찬 푸른 눈은 반항적 젊은이, 차가운 승부사, 정의로운 중년, 관조적인 노년 등 다양한 캐릭터를 낳으며 세계인들의 심금을 흔들었다.

하지만 실생활에서의 뉴먼은 더욱 멋진 매력의 소유자다. 무엇보다 그는 ‘초현실적 기업 모델’을 창시한 기업인으로 유명하다. 1982년 설립한 ‘뉴먼즈 오운’이 그것이다. 인공조미료나 방부제가 없는 친환경 드레싱을 제조·판매하는 이 회사는 초기 자본금 1만2000달러에 첫해 수익만 92만달러를 올리는 대성공을 거뒀지만, 다음해 수익금 100%를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뉴먼은 단 한 푼의 월급도 받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최근까지 미국과 해외에 기부한 금액은 2억2000만달러(약 2200억원). 이밖에도 난치병 아이들을 위한 산골짜기 캠프를 미국 31개주와 해외 28개국에 건설하고 가난한 예술가들을 돕기 위한 레스토랑 경영에 나서는 등 나눔과 베풂의 삶에 정열을 바쳤다.

그는 생전에 이런 말을 했다. “우리처럼 부유한 사람들에 대한 감세는 범죄와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지금도 충분히 사치스럽게 살고 있다.” “나는 무척 운이 좋았다. 행운을 타고난 사람들은 그들보다 불운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심을 갖는 기업이 늘고 있다지만, 뉴먼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투철한 원칙과 신념을 가진 기업인들이 얼마나 될까.(송충식 논설실장)

08. 09. 28.

P.S. '폴 뉴먼'하면 <내일을 향해 쏴라>나 <스팅> 같은 영화를 단박에 떠올릴 수 있을 터인데, 개인적으론 장년의 그가 신예 톰 크루즈와 주연했던 영화 <컬러 오브 머니>(1986)의 인상도 강하다. 극장에서 폴 뉴먼을 본 최초의 영화였던 듯하다. 폴 뉴먼이란 배우의 존재감을 대형 스크린에서 맛보게 해준 영화(http://www.youtube.com/watch?v=U9rGDYjVr0c). 감독은 마틴 스코시즈였다. 그러고 보니 그맘때는 나도 당구를 쳤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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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9-28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삶을 살단 간 배우군요. '우리처럼 부유한 사람들에 대한 감세는 범죄와 다를 바 없다'라는 구절이 콕! 박히네요.

로쟈 2008-09-28 22:44   좋아요 0 | URL
네, 있는 사람들이 탐욕만 버린다면 좀 멋지게 사는 건 그닥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요...

조선인 2008-09-29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이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ㅠ.ㅠ

로쟈 2008-09-29 22:33   좋아요 0 | URL
젊었을 때는 톰 크루즈보다 더 멋있더군요...

비연 2008-09-29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돌아가셨군요. 명복을 빕니다. 로쟈님의 브리핑으로 그의 생애를 한번 더 돌아보게 되네요. 이제, 그 옛날 제 마음에 추억으로 남겨진 명장면 속의 배우들이 하나둘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로쟈 2008-09-29 22:32   좋아요 0 | URL
한 세대가 가는 거 같습니다...

sophia49 2008-10-16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제 블로그에 담아갑니다.
올려주신 폴 뉴먼의 이야기...넘 좋아요.

로쟈 2008-10-16 21:18   좋아요 0 | URL
네, 이건 제가 책사랑에 안 옮겨놓았던가요?..
 

무더위 때문에 밤낮이 바뀌었다. 그래서 좀 어둑해져야지 무얼 해볼 생각이 든다. 이럴 때는 영화도 심야영화가 제격이다. 이번주에 개봉하는 영화 <다크 나이트>가 딱 심야관람용인데, 이미 '걸작'이라는 입소문이 파다하다. 팀 버튼의 <배트맨>을 능가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사실 팀 버튼과는 코드가 잘 맞지 않아서 재미있게 봤을 테지만 별로 인상에 남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다크 나이트>는 흥미를 끈다. 매일같이 한심한 뉴스들만 쏟아지는 것도 이 '비극적인 영웅'에 대한 판타지를 부추긴다. 지난주 심야에 본 <놈놈놈>이 다 해갈시켜주지 못한 갈증을 <다크 나이트>는 해소시켜줄지 모른다(<놈놈놈>은 뮤직비디오로 훌륭하다).  

한겨레(08. 08. 04) '다크 나이트’ 악의 화신 vs 고뇌하는 영웅

6일 국내에서 개봉하는 <다크 나이트>가 북미에서 개봉 10일 만에 3억달러가 넘는 흥행 신기록을 세우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미 개봉 전부터 ‘걸작’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던 <다크 나이트>는 슈퍼히어로에 열광하는 미국만이 아니라 기자시사회를 연 국내에서도 호평 일색이다. 과연 팀 버튼의 <배트맨>을 능가하는 걸작이 나올 수 있을까 의심했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는 팀 버튼과는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신화를 만들었다.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팀 버튼의 <배트맨>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그러면서도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새로운 걸작을 만들어낸 것이다.


<다크 나이트>는 야심만만하게도, 낮 장면으로 시작한다. 게다가 첫 장면의 주인공은 배트맨이 아니라 조커다. 팀 버튼이 <배트맨2>에서 펭귄맨을 중심에 세운 적이 있긴 하지만, <다크 나이트>의 전략은 그것과 다르다. 슈퍼히어로의 신화를 뒤틀린 엽기 동화로 대체하는 전략을 썼던 <배트맨2>와 달리, <다크 나이트>는 코믹북의 이미지에 머물렀던 슈퍼히어로를 완벽하게 현실로 이끌어낸다. <다크 나이트>를 보고 있으면 조커이건, 배트맨이건 그들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느껴진다. 그럴 듯하다, 라는 느낌을 넘어서 거의 완벽한 리얼리티를 구현한다. 현실의 어디에선가 그들을 보았던 것 같은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사실 ‘배트맨’이란 캐릭터는 슈퍼히어로 중에서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였다. 배트맨이 처음 등장했던 1930년대 말은 미국의 갱단이 사회 곳곳으로 한창 세력을 넓혀가던 시점이었다. 일상에서 갱단의 폭력을 목도했던 시민들에게는 정말로 배트맨과 같은 ‘자경단’이 필요했다. 또한 배트맨은 외계에서 오거나 기이한 사고로 초인이 된 것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로 슈퍼히어로를 택한 존재다. 악당에게 부모를 잃고, 복수의 일념으로 자신을 단련하여 ‘초인’이 된 사나이. 공포의 존재인 ‘박쥐’를 자신의 상징으로 사용한, 선과 악의 경계에서 흔들리며 고뇌하는 슈퍼히어로. ‘보이 스카우트’의 정의를 구현하는 슈퍼맨과는 대조적으로, 배트맨은 악의 근원을 쫓아가며 때로 악에 물들기도 하는 ‘탐정’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초월적인 영웅이 아니라, 우리도 능히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은 슈퍼히어로가 바로 배트맨이었다.

<다크 나이트>는 현실적이면서도 만화적인 캐릭터 배트맨을 필름 누아르와 갱스터의 공간으로 과감하게 밀어 넣는다. 초현실주의적인 판타지로 <배트맨>을 재구성했던 팀 버튼과는 정반대의 지점에서, 배트맨이라는 존재를 재해석한 것이다. 다만 <배트맨>과 <다크 나이트>의 원점에는 1986년에 발표된 프랭크 밀러의 <다크 나이트 리턴스>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다크 나이트 리턴스>에서 배트맨은 권력의 일부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시민들을 위한 자경단이 된다. 배트맨은 진짜 정의를 지키기 위한 ‘범죄자’, 즉 진정한 다크 나이트가 되는 것이다. <다크 나이트 리턴스>와 <왓치맨> 등 미국 만화가 성인들의 오락이자 예술인 그래픽 노블로 성장하면서 성취했던 모든 것들은 이제 영화로 녹아들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악을 멸하고자 폭력이라는 위법을 택한 배트맨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정의를 위해 싸우면서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모순은, 지금 한국 사회에 현존하는 상황이다. 슈퍼히어로는 단지 가상의 존재가 아니다. 현대의 슈퍼히어로는 21세기 대중의 이상이며, 그들이 갈구하는 새로운 영웅 신화다. <다크 나이트>야말로 가장 완벽한 비극적인 영웅이고.(김봉석/영화평론가)

08. 08. 04.

P.S. 영화평론가 김봉석씨가 시사인에 쓴 기사도 참조할 만하다(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50). <다크 나이트>란 걸작의 배경에 '그래픽 노블'의 힘이 놓여 있다는 걸 지적하고 있다.

시사인(08. 07. 29) '배트맨’의 힘은 ‘그래픽 노블’의 힘

지난 7월18일 북미에서 개봉한 <다크 나이트>는 사흘 동안 무려 1억80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신기록을 세우며 승승장구한다. 단지 흥행기록만이 아니다. 각종 매체의 비평에서도 찬사 일색이고, 세계 최대 영화 정보 사이트인 IMDB에서도 역대 1위였던 <대부>를 누르고 최고 평점을 기록했다. <배트맨>의 팀 버턴을 시작으로 <엑스맨>의 브라이언 싱어와 <스파이더맨>의 샘 레이미가 슈퍼히어로 영화, 코믹스 영화의 수준을 한 계단 높여놓기는 했지만 <다크 나이트>의 엄청난 성공은 어리둥절한 기분마저 들게 한다. 코믹스 영화라는 장르가 갱스터, 필름 누아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왜 슈퍼히어로, 그 중에서도 배트맨은 팀 버턴과 크리스토퍼 놀란 같은 명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일까? 왜 사람들은 ‘배트맨’에 열광하는 것일까? 1930년대에 시작된 <배트맨>은 가장 현실적인 슈퍼히어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슈퍼맨이나 엑스맨 등은 초월적 능력을 지닌 존재다. 하지만 배트맨은 다르다. 그는 악당에게 부모를 잃었고,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 세상의 악을 없애는 슈퍼히어로가 되었다. 수많은 무술을 익히고 강력한 무기를 장착한 배트맨은, 국가권력이 더 이상 제어할 수 없는 악을 스스로 처단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자경단’이다. 경찰이 세상의 모든 악을 없애지는 않는다. 권력이 정해놓은 법질서의 바깥에서 암약하거나 슬쩍 빠져나가 버리는 악이 너무나도 많다. 경찰이나 검찰이 부패한 경우도 있고, 법의 한계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런 경우를 볼 때마다, 우리는 배트맨을 원하게 된다. 나에게 힘만 있다면, 당장 거리에 나서 악당을 처단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영화 제목에서 ‘배트맨’을 뺀 까닭
하지만 그것이 과연 정의를 위한 것인지, 그런 행동으로 과연 완전한 정의가 도래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박쥐 가면을 뒤집어쓰고 거리에 나선 순간부터, 배트맨은 고뇌할 수밖에 없다. 왜 경찰이나 검찰에게 맡기지 않고, 배트맨은 스스로 정의의 수호자가 된 것일까? 만약 그가 정당하다면, 왜 그는 가면을 쓰는 것일까? 어쩌면 배트맨은 단지 사적인 복수를 위해, 아니 부모를 죽인 악당에게 복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해소하기 위해 악당을 물리치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은 아닐까?

<다크 나이트>의 배경인 고담 시에서도 유사한 의문이 제기된다. 배트맨이 악당을 잡기는 하지만, 똑같이 법을 어기고 폭력을 행사하는 점은 어떻게 볼 것인가? 단지 정의를 위한다는 이유만으로, 위법을 용납할 것인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크 나이트’라는 제목이다. <배트맨> <배트맨 포에버> <배트맨과 로빈> <배트맨 비긴즈>로 대중에게 이미 익숙해진 ‘배트맨’을 버리고 왜 <다크 나이트>라고 했을까? 그 이유는 1986년에 발간된 프랭크 밀러의 <다크 나이트 리턴즈>에 있다. <다크 나이트 리턴즈>에서 배트맨은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싸우는 어둠의 전사가 된다. <다크 나이트 리턴즈>는 배트맨이라는 슈퍼히어로에게 새로운 캐릭터를 부여하며, 철학과 정치 논쟁을 일으킨 기념비적 작품이다. 최근 국내에도 출간된 앨런 무어의 <왓치맨>과 함께, 코믹스라고 불리던 미국 만화를 성인의 ‘그래픽 노블’로 끌어올린 걸작이다.

‘다크 나이트’는 어둠의 기사, 밤의 기사라는 뜻이다. <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은 정의로운 검사 하비 덴트를 ‘화이트 나이트’라고 부른다. 하비 덴트는 고담 시의 악당 절반을 감옥에 집어넣고, 조커를 잡기 위해 자기 목숨까지도 내건다. 배트맨은, 자기가 아니라 하비 덴트가 시민의 영웅, 고담 시의 영웅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하비를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서 배트맨은 무엇이든 한다. 하지만 ‘화이트 나이트’는 성공하지 못한다. 오히려 혼돈과 악의 화신인 조커에 의해, 그의 내면에 있던 광기가 분출하며 새로운 악당 ‘투 페이스’가 되어버린다.



투 페이스는 어쩌면, 배트맨과 조커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조커는 완벽한 광기와 혼돈의 상징이다. 그가 어디서 왔는지, 어떤 일을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는 돈에도 욕심이 없고, 권력에도 욕심이 없다. 단지 그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죽여버리는 데만 열중한다. 그런 조커가 배트맨에게 말한다. 절대로 너를 죽이지 않을 거라고. 너와 노는 것이 가장 신나기 때문에. 네가 있어야만 내가 완성된다고. 그 말의 의미는, 조커의 극단에 배트맨이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린 조커와 달리, 배트맨은 모든 것을 짊어지고 있다. 복수를 위해 시작한 ‘자경단’이지만, 배트맨은 결코 선을 넘지 못한다. 누구도 죽이지 않고, 무엇도 파괴할 수 없다. 배트맨은 모든 것을 지켜야만 한다. 다만 법 테두리 안에서만 활동하면 제대로 악을 처단할 수 없기에, 스스로 세간의 비난을 받으며 묵묵하게 정의를 수호하는 ‘다크 나이트’를 자임하는 것이다.

슈퍼히어로 영화가 뭔지 보여주다
<배트맨 비긴즈>에 이어 <다크 나이트>를 연출한 크리스토퍼 놀란은 슈퍼히어로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준다. 액션이나 스펙터클은 물론 최고다. 그리고 슈퍼히어로라는 비현실적인 존재가 사실은 대중의 이상이며 현대의 신화에 비견될 존재임을 탁월하게 증명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단지 크리스토퍼 놀란의 재능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다크 나이트 리턴즈>는 물론 최근 출간된 제프 로브와 짐 리의 <배트맨:허쉬>와 조지 프랫의 <배트맨:악마의 십자가>를 보면, ‘배트맨’이라는 캐릭터가 수십 년 세월 동안 엄청난 세공과 실험적인 변주를 거치며 다듬어져온 과정임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배트맨:허쉬>는 배트맨의 모든 조연과 악당 캐릭터는 물론 슈퍼맨까지 등장해 심오한 캐릭터로 다듬어진 배트맨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이런 ‘그래픽 노블’의 성과가 있었기에, 팀 버턴의 <배트맨>과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가 존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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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8-04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다리고 있는 영화 중에 하나랍니다.
배트맨도 배트맨이지만 배우들이 굉장히 좋기 때문에요.
한 명은 이제 더 이상 볼 순 없지만요.

로쟈 2008-08-05 09:10   좋아요 0 | URL
네, 히스 레저죠. 팬들이 많더군요...

2008-08-05 0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8-05 0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8-05 0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