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에 없이 <용의자 X의 헌신>이란 영화를 봤다. 두어 시간쯤 시간을 죽여야 할 일이 생기는 바람에 동네 멀티플렉스에 가서 제일 먼저 시작하는 영화표를 달라고 했다. 그게 <용의자 X의 헌신>이었다(물론 이미 봐도 괜찮을 영화로 분류돼 있었지만). 저명한 일본의 추리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원작자의 이름이 정확하게 '히가시노 게이고'란 것은 영화를 본 이후에야 새겨두게 되었다(기억엔 지난주인가 <씨네21>의 커버스토리로 다루어진 바 있다). 영화만 보더라도 대단히 뛰어난 추리소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알고 보니 저명한 문학상 수상작이다. 게다가 대단히 동양적인(최소한 일본적인) 정서를 담고 있는 점도 흥미로웠다('헌신'이 주는 감동도 있고). '히라시노 게이고의 헌신'을 기리는 의미에서 작가와 영화 관련기사를 모아놓는다(영화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영화 리뷰는 건너뛰시는 게 낫겠다).    

   

한겨레(07. 08. 01) 일본의 대표적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일본의 대표적인 미스터리물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50). 작가 경력 22년이지만, 그의 전성기는 쇠퇴할 줄 모른다. 1985년 <방과후>로 데뷔한 이래, 일본에서 가장 권위있는 대중문학상인 나오키상의 단골 후보 작가였던 그다. 지난해에는 <용의자 X의 헌신>으로 드디어 제134회 나오키상을 거머쥐었다. 총 60여 편의 작품 중 <백야행>을 비롯한 15편이 티브이 드라마화되었다. 한국에서도 번역 출판된 <편지> <숙명>을 포함해 <비밀> <게임의 이름은 유괴> <변신>은 영화화되었다. 한국 독자들에게도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그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았다.  ‘트릭’대신 ‘인간’을 그려낸다.    

'트릭' 대신 '인간'을 그려낸다

대표작 <용의자 X의 헌신>은 일본 미스터리 소설사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3관왕의 기록을 가졌다. 추리문학계에서 유명한 ‘이 미스터리가 최고상’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10’ 등 세 부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던 것이다. 그 비밀은 보통의 미스터리물과는 다른 이야기 구조에 있다. 작가는 처음부터 범인이 하나오카 모녀와 천재수학자 이시가미임을 알려준다. 그럼에도 독자들은 결말까지 도통 책장을 넘기는 일을 멈출 수 없다. 절대 ‘복선’을 깔거나 계산하지 않고 ‘직감’으로 써나가는 능력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고전 추리물과 달리 ‘트릭’ 대신 ‘인간’을 그려내는 것으로 승부한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작품인 <편지>를 읽은 독자들도 “이거 추리소설 맞아?” 하면서 놀란다. 주인공은 살인을 저지른 가해자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살인자의 입장에서 그려내는 범죄를 통해, 그는 사회와 가족과 인간의 화두를 이끌어낸다. 결국 미스터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일반 독자까지도 그의 팬으로 끌어온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지바 마유미(24)도 그중 하나다. 그는 <백야행>이 지난해 티브이 드라마로 화제를 뿌릴 무렵부터 히가시노의 팬이 되었다고 한다. 디브이디는 아예 세트로 구입했고, 다른 소설 <비밀> <환야> 등까지 찾아 읽는 계기가 됐다. 그는 “대부분의 추리소설이 어느 정도 결과가 정해진 미스터리라는 느낌을 받아 심심하다. 반면 항상 대답을 독자에게 위임하는 히가시노의 일관된 패턴은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모든 것’을 특집으로 다룬 문예 무크지 <야성시대>는 “나이를 곱게 먹어 가면서 마음속에는 탁월한 로맨티스트의 면모와 동거하는 남자”라고 작가를 표현한다. 그렇다면 그의 창작의 원천은 무엇일까. 혹시 술이 아닐까. 인터뷰 속 작가의 하루 일과를 보면 그렇다. ‘술시’라는 게 있는데, 바로 술을 마시는 시간이다. 새벽 3시부터 오전 10시까지는 잔다. 오후 4~6시의 운동시간을 전후로 하루 8시간은 온전히 글만 쓴다. 되도록 밤 9시까지는 일을 마친다. 그 뒤 밤 11시부터 잠들기 전까지는 혼자 또는 벗들과 술을 마신다. 그것은 일종의 ‘부친 따라하기’다. 시계수리공이었던 부친이 늦은 밤까지 일을 끝내고 “아아, 오늘은 여기까지 해냈군” 하면서 혼자 술을 마시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마감을 끝내면 이모쇼추(고구마소주)를 마시면서, “그래, 그 대목은 그걸로 괜찮겠지”, “아휴, 거긴 고쳐 쓰는 게 좋았을걸” 하며 되돌아본다. 때로는 벗들을 찾아 도쿄 긴자의 바 ‘문단’을 찾는다. 다양한 업계 사람들을 접하면서 현실 감각을 얻는 곳이다. 편집자들을 만나 인물과 이야기 전개 방향을 논하기도 한다. 

마감 끝난 ‘술시’는 창작의 힘
그는 문예계에서 흔치 않은 이공계 출신이다. 1981년에 오사카부립대학 공학부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졸업과 동시에 일본 전자회사인 ‘덴소사’에 입사해 엔지니어가 되었다. 하지만 1985년 <방과후>로 그해 최고 추리소설 신인작가에게 주는 ‘에도가와 란포 상’을 받으면서 인생이 바뀐다. 그 뒤 도쿄로 상경해 전업 작가의 길을 선택한다. 그의 공학도 경력은 작품 도처의 대사나 이야기 전개에서 맛볼 수 있다. 최근 펴낸 에세이집 <사이언스?>도 그렇다. 과학과 경제·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도구가 수학이라는, 이공계 출신 추리소설가 특유의 과학에세이로 호평받고 있다.

“10명이면 10명 모두 납득하는 살인 동기가 아니라, ‘뭐야? 이런 걸로 사람을 죽여?’ 하는 추리소설에 도전하고 싶었다.” 히가시노의 말이다. 지금이야 받아들여질지 모르지만, 한때는 엄청난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고 한다. 현재 그는 도쿄 중심가의 한 맨션에서 “가족이자 나를 비추는 거울이며 교사이기도 한 위대한 존재”인 네코짱(고양이)을 부양하며 살고 있다.(황자혜/<한겨레21> 도쿄 전문위원)    

 

세계일보(09. 04. 02) 용의자 X의 헌신, 오랜만에 보는 정통 미스터리의 진수 

천재 수학자가 있다. 모든 천재가 그렇듯이 그는 외롭다. 수학에만 열중하고 싶어 기꺼이 사랑도 포기하고 살아왔다. 가세가 기운 탓에 대학 연구실 대신 고등학교 교사를 선택했지만 큰 불편이나 불만은 없다. 하지만 마흔을 넘어서면서 삶이 고달파졌다. 세상은 수학처럼 아름답지도 완벽하지도 않고, 자신이 왜 살아야 하는지 그럴듯한 이유를 댈 수가 없다. 조금씩 죽음을 떠올릴 즈음 계산에 없었던 감정과 맞닥뜨린다. 아파트 옆집에 이사 온 여인에게서 설렘을 느끼게 된 것. 그런데 어느 날 그 여인은 살인을 저질렀다. 이 여인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용의자 X의 헌신’은 오랜만에 정통 미스터리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영화다. 사건의 진실을 감추려는 천재 수학자 이시가미 데쓰야(쓰쓰미 신이치)와 이를 밝히려는 그의 동창이자 천재 물리학자인 유카와 마나부(후쿠야마 마사하루)의 두뇌싸움을 그렸다. 영화는 처음부터 사건의 모든 것을 드러내놓고 시작한다. 여인은 자신의 집을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전 남편을 전깃줄로 목 졸라 죽인다. 이를 목격한 이시가미는 시체를 식별할 수 없도록 얼굴과 지문을 뭉개서 유기했다. 

 

경찰이 확보한 시체와 현장, 증거물도 관객이 지켜본 사건의 전말과 일치한다. 사건 현장 인근에 놓였던 자전거에서 전 남편의 지문을 채취했고 시체 DNA는 그가 최근 생활했던 여관에서 발견된 머리카락의 그것과 일치했다. 그럼에도 그 여인은 경찰에 완벽한 알리바이를 제시하고 사건은 미궁에 빠지게 된다. 이시가미는 과연 어떠한 트릭으로 이처럼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 수 있었을까. ‘기하 문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함수 문제’라는 이시가미의 귀띔이 유카와가 포착한 유일한 단서. 아무도 풀 수 없는 문제를 만든 이시가미와 이를 풀어내는 유카와의 팽팽한 머리싸움과 섬세한 감정묘사, 잘 짜인 플롯, 촘촘하게 배치된 단서들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원작의 탄탄한 줄거리, TV드라마 ‘하얀거탑’과 ‘갈릴레오’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위선을 날카롭게 그려낸 니시타니 히로시 감독의 연출력, 일본 정상급 가수이자 탤런트인 후쿠야마와 쓰쓰미 등의 열연에 힘입어 이 영화는 일본에서만 관객 370여만명을 동원했다. 9일 개봉하며 12세 관람가다.(송민섭기자) 

09. 0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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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부터 내내 컨디션을 저조하게 만든 감기가 여전히 낫지 않고 있다(그렇다고 할일들이 자동 삭제되는 것도 아니건만!). 몇몇 관심도서들에 대한 리뷰기사도 뜨지 않고 해서 두리번거리다 흥미를 끄는 영화리뷰 기사가 있기에 옮겨놓는다. '김기덕 감독의 초기작보다 더 강도가 센 <똥파리>가 말하는 한국'이 부제다. <똥파리>는 처음 들어보는데(하긴 필름2.0이 폐간된 이후에 영화잡지를 읽어본 지도 오래됐다), 양익준 감독의 데뷔작이라고. 독특한 영화에 대한 강박도 작용했겠지만 이 "믿을 수 없을 만큼 폭력적인 영화 <똥파리>는 또한 한국이라는 나라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하니까 은근 궁금하고 기대된다('동팔이'들만 들끓어보이는 게 요즘 한국사회 아닌가?).

씨네21(09. 04. 08) [외신기자클럽] 폭력적인 영화의 구원 

상상해보시라. 인적없는 해변가. 파란 바닷물에 발을 적시며 당신은 한가로이 거닐고 있다. 갑자기 ‘퍽!’ 하고 정체불명의 돌멩이 하나가 당신의 머리를 정통으로 후려친다. 그게 바로 대략 영화 <똥파리>가 우리에게 주는 느낌이다. 부산에서 만난 이 영화는 한국에서 개봉되기 전 이미 유럽 여러 영화제에서 선을 보였다.

도입부. 웬 애송이 녀석 하나가 한 소녀의 뺨을 연거푸 갈긴다. 그러자 어디선가 두 어깨가 시야로 튀어들어온다. 그 어깨의 주인공은 앞의 애송이를 반쯤 죽여놓는다. 그러고는 돌아서서 소녀의 얼굴에 침을 탁 뱉는다. 그로부터 얼마 뒤. 그 사내는 우연히 한 여고생과 마주친다. 한눈에 반했음이 분명하다. 왜냐고? 사내가 여고생의 얼굴에 침을 뱉고 한대 갈기니까. 그녀도 그런 사내에게 반한다. 관객이 그 남자를 어떻게 생각하든 영화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영화를 계속 보려면 관객은 어찌됐든 무조건 그 사내를 쫓아다녀야 한다.  



양익준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과 연기를 한 영화 <똥파리>는 자신만의 독특한 언어를 창출하고 있다. 이 작품에 사용된 언어는 한마디로 욕지거리의 일제사격이라 할 수 있다. 말로 의사소통을 하는 게 아니라 주먹으로 한다. 초반 15분이 지나면 관객은 비로소 이 희한한 의사소통법을 해독하기에 이른다. 장면 하나 하나, 따귀 한대 한대가 계속되면서 영화는 서서히 인물의 겉껍질을 벗긴다. 마치 강도가 금고를 드릴로 뚫듯이. 영화 시작하고 두 시간이 경과한 뒤 영화는 마치 공중곡예를 한 듯 180도 회전해 있다. 처음 관객에게 보여진 인물들의 정체가 그와는 정반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사실은 진짜 피해자였고, 겉보기에 강했던 인물들은 알고 보면 한없이 약한 인물들이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폭력적인 영화 <똥파리>는 또한 한국이라는 나라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양익준 감독은 폭력성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20세기 후반부 한국의 역사를 재조명한다. 이 영화에는 전기파가 움직인다. 전쟁터를 지나 데모진압 현장으로, 가정폭력으로, 그리고 청소년의 비행으로… 이렇게 폭력과 공격성은 유산으로 물려 전해진다. 하나의 스타일을 만들어가던 김기덕 감독의 초기 작품에 나타나는 폭력성보다 더 거친 영화 <똥파리>, 이 작품에 나타나는 폭력성은 끔찍한 의문 하나를 관객의 눈 속에 던져놓는다. 만일 폭력과 식민, 전쟁과 분단을 벗어난 한국을 아는 한국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가정한다면, 폭력성이 한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 혹은 본성을 이룬다는 말인가? 다행히 <똥파리>는 결말 부분에 구원의 길을 열어놓긴 하지만 말이다.

양익준 감독의 처녀작인 이 영화는 현재 영화제작의 전반적 추세와 완전히 결별한다지만, 동시에 한국영화의 전통선상 위에 그대로 놓인다는 점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즉, 이 영화에서는 계속 반복되는 처절한 운명, 가정의 분열,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장녀 등 기존의 전통적 구조들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재창조된다. 이미 잘 알려진 그러한 구조들 모두가 이 작품에 그대로 나타나는 건 사실이지만, 동시에 그 모든 것들이 이 작품 속에서는 다르게 표현된다. 나운규 감독에서 장선우, 김기덕을 거쳐 박찬욱 감독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폭력성 자체가 한국영화의 역사를 그 기원에서부터 관통하고 있다. 이러한 폭력성은 대개 여자들을 강간한다거나 그녀들의 매춘, 심지어는 근친상간 형태로 표현된다.  



이와는 반대로 <똥파리>에서 성(性)문제는 더이상 없다. 이 작품을 위해 새로 발탁된 배우 김꽃비, 그녀가 맡은 역은 여고생이다. 이미 여자가 되어버린 소녀, 창녀라기보다 어머니랄 수 있는 이 인물은, 다른 영화에 흔히 나오는 롤리타와 비교해볼 때 훨씬 더 복잡하고 미묘한 욕망의 대상이다. 한국의 수놈이란 늘 가슴팍을 떡 벌리고 심각한 목소리로 말하면서 눈썹을 잔뜩 찡그린다. 하지만 그런 한국 사내가 갈망하는 건 오로지 하나다. 그건 오목한 치마폭에서 느끼게 되는 여자의 허벅지가 주는 따뜻한 온기다. 그것도 사내다움을 한껏 표현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한강변에 앉아 엉엉 울고 싶은 마음에서.(아드리앙 공보_포지티브 기자/영화평론가)  

09. 04. 08.   

P.S. 소개를 보태자면 "독립영화계의 스타 배우 양익준의 첫 번째 장편영화 <똥파리>가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VPRO 타이거’ 상을 거머쥐었네요. 사채 거둬들이는 용역 깡패와 여고생의 관계를 그린 이 영화는 영화제 유일의 경쟁부문으로 데뷔작을 소개하는 ‘밝은 미래’ 섹션에 초청돼 이란영화 <소년과 바다>, 터키영화 <니쁜 로자리오>와 함께 타이거상을 공동 수상했다는군요. 양익준 감독은 시상식에서 “로테르담, 아이 러브 유! 네덜란드, 아이 러브 유!”라고 외치면서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는데요. <똥파리>의 개봉이 4월 중순. 기다리긴 너무 먼가요. 한국영화가 로테르담에서 타이거상을 받은 것은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박찬옥 감독의 <질투는 나의 힘>에 이어 세 번째랍니다."(장미, '<똥파리>, 국제무대에서 비상하다') 

P.S.2. 전직 대통령 가족이 재임중에 뇌물성 돈을 받았다고 한다. 사법처리까지 가게 될는지는 지켜봐야겠지만, 그리고 좀 유감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론 나쁘지 않은 소식이다.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이나 자기들 비리만 아니라면 누구라도 건드릴 수 있다는 게 분명해졌으니까. '전임' 따위는 권력도 아닌 것이다. 이제 4년 남짓만 기다리면, 지금 당장에 보고 싶은, '동팔이'들의 말로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은근 기대된다. '전임' 따위는 X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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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양익준 감독 인터뷰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4-15 22:22 
    지난주에 소개기사를 옮겨놓기도 했는데,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가 내일 개봉한다고 한다. 동네 CGV에서는 상영을 하지 않아서 언제, 어떻게 봐야 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여하튼 몰상식한 뉴스들만 쏟아지고 있는 터라(오늘도 어이없는 언론탄압 기사들이 떴다) 최소한의 정신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한번쯤 보고 싶다. 감독 인터뷰 기사가 눈에 띄기에 스크랩해놓는다.   고대신문(09. 04. 06) "세상
 
 
 

'구로사와'란 성은 아직도 '아키라'란 이름을 떠올리게 하지만 젊은 세대 영화광이라면 '기요시'란 이름이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호러 영화의 거장으로 꼽히는 구로사와 기요시 말이다(나는 <큐어>밖에 보지 못했지만). 그의 신작 <도쿄 소나타>가 이번주에 개봉했다. 영화를 보는 일이 점점 드물어지고 있지만, 이번주에 한 편을 볼 수 있다면, 혹은 봐야 한다면 나의 선택은 <도쿄 소나타>다. 선택에 도움을 준 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21(09. 03. 20) 도쿄의 먹구름이 서울을 뒤덮다 

가족의 위기는 뺑소니 사고처럼 찾아온다. 도쿄의 그 가족은 누구도 특별히 잘못한 일은 없지만 저마다 심각한 위기에 빠진다. 단지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로 사고를 당하는 속수무책의 피해자처럼, 더구나 피해 보상은 물론 원망할 구체적 대상도 찾지 못하는 뺑소니 사고처럼 위기는 찾아온다. 가족을 위기로 몰아넣은 원인은 강간범도, 사기꾼도, 살인범도 아니고 단지 ‘사회’(의 변화)다. 그리고 그 문화에 순응하며 살아온 무감한 기성세대, 자신이다.

엄마는 외롭고 아들은 답답했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도쿄 소나타>는 평생 고용의 신화가 깨진 일본에서 시작한다. 실직한 아버지, 외로운 전업주부인 엄마,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큰아들, 아버지의 권위에 눌린 작은아들. 그들도 우리처럼, 저마다 가족이라 더욱 말하지 못하는 비밀을 가졌다. 아버지는 아침이면 꼬박꼬박 만원버스를 타고 회사에 가서 야근도 했을 것이고, 어머니는 가족을 위해 정성껏 따뜻한 저녁을 준비했을 것이며, 아들들은 특별한 말썽을 부리지 않고 학교에 다녔을 것이다. 누구도 심각한 잘못을 범하지 않았고 누구도 이들의 행복을 침해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이들은 출구 없는 절망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마치 속수무책으로 치고 지나가는 뺑소니 사고처럼 이들은 현실이란 괴물에 치였을 뿐이다. 또 다른 실직자인 아버지 친구의 말처럼 “서서히 가라앉는 배에서 구명보트 없이 죽기만을 기다리는 신세”, 그것은 오늘날 다수가 공감할 만한 현실이다.  

구로사와 감독은 <도쿄 소나타>에 대해 “나는 현재 도쿄의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가족의 이야기를 거의 과장 없이 그려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한다. 이렇게 평범한 가족의 오늘은 <밝은 미래> <큐어> <절규> 등을 만든 호러영화의 거장이 지나온 영화 세계만큼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절망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암울한 <도쿄 소나타>의 세계가 설득력 넘치는 일본의, 또한 우리의 얘기로 들리는 것이다.

일본인 1명을 고용할 돈으로 중국인 3명을 쓴다, 너무나 자명한 논리라 이제는 한 인간에 대한 예의나 한 가족의 생계 따위를 들이대고 맞서기조차 어렵게 돼버렸다. 그렇게 비용 절감을 좇는 자본의 논리에 따라 아버지(가가와 데루유키)는 오랫동안 근무했던 일자리를 잃는다. 그리고 예정된 추락. 구직은 번번이 실패하고, 무료 급식으로 점심을 때우는 일상이 이어진다. 하지만 전통적인 가부장인 그는 차마 가족에게 사실을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세상에 비밀은 없다. 아내(고이즈미 교코)는 우연히 무료 급식을 받는 남편을 목격하고, 오랫동안 삭여온 그녀의 외로움은 강도의 침입을 계기로 터진다.  

대학을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큰아들(고야나기 유)은 세계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운운하며 미군에 입대한다. 구로사와 감독은 일본 시민도 미군에 입대가 가능한 세계로 현실을 비틀어, 일본 청년세대의 세계관을 드러낸다. 이에 대해 감독은 “나는 진심으로 우리의 상황이 걱정스럽다”며 “하지만 영화 속 아버지처럼 나에겐 청년들이 전쟁에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설득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말한다. 기껏해야 프리터(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고 남는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사람들)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본의 ‘88만원 세대’에게 미군 입대는 답답한 현실을 벗어날 출구로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막내인 켄지(가이 이노와키)는 피아노를 배우고 싶지만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힌다. 결코 꿈을 꺾지 않는 소년은 급식비를 레슨비로 유용해 피아노를 배운다.  

<도쿄 소나타>는 사회 기사처럼 전형적인 4인의 핵가족을 통해 오늘의 현실을 서술한다. 그들 하나하나엔 극단적 면모가 없지만, 그들의 일상을 퍼즐처럼 맞춘 그림은 해결이 어려운(혹은 불가능한) 악몽이다. 인물은 담담한데, 영화는 쓸쓸하고, 관객은 서글프다. 도대체 이들을 위한 대안이란 존재하기 어려운 탓이다. 여기에 배우들의 사실감 넘치는 연기는 영화를 살아 있는 현실로 만든다. 아버지 역의 가가와는 <유레루>에서 오다기리 조와 함께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고, 한국의 봉준호(<도쿄!>), 중국의 장원(<귀신이 온다>)이 선택하는 아시아의 배우다. 엄마 역의 고이즈미는 <구구는 고양이다>를 통해 깊은 인상을 남긴 배우로 <도쿄 소나타>로 일본의 영화지 <키네마준보>가 주는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무엇보다 켄지를 연기한 1995년생 가이는 야무진 얼굴로 놀라운 연기를 펼친다. 마치 <아무도 모른다>의 야기라 유야를 보았을 때처럼 아역이라 믿기 어려운 연기다. 

실직한 가장, 기성세대 권위주의
구로사와 감독이 가리키는 어둠의 원천은 단지 어쩌지 못하는 현실만이 아니다. 가장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 가족의 숨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 기성세대의 권위주의도 불행의 근원이다. 왜 큰아들이 전쟁의 위협을 감수하고 미군에 입대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지, 막내에게 피아노를 배운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허공에 뻗은 아내의 손에서 떨어지는 외로움이 어디서 오는지, 가장인 그는 살피지 못한다. 그도 대부분의 아버지처럼 ‘무신경의 평범성’을 넘어서지 못한 인물이다. 그렇게 그는 일본이고, 아버지다. 그러나 <도쿄 소나타>가 절망의 침묵으로 끝나진 않는다. 가족들 모두가 집 밖에서 보내는 하룻밤 동안에 격렬한 사건을 겪는다. 그리고 울리는 아름다움 피아노 연주곡. 이렇게 끝나는 <도쿄 소나타>는 ‘서울 소나타’처럼 들린다. 지금 여기도 도쿄의 하늘처럼 불황의 먹구름이 가득하고, 가부장의 무신경도 일본의 그것 못지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켄지가 사는 도쿄의 어느 동네는 마치 서울의 성북구나 구로구 어디쯤 같기도 하다. 2008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은 <도쿄 소나타>는 3월19일 개봉한다.(신윤동욱기자) 

09. 03. 21.  

P.S. '평생 고용의 신화가 깨진 일본'이란 구절에서 다시 떠올리게 되는 책은 리처드 세넷의 <뉴캐피털리즘>(위즈덤하우스, 2009)이다(요즘 가방에 넣고 다니는 탓도 있다). 덧붙여 일본의 반빈곤 네트워크에 관한 소개기사 '자르지 말라, 빈곤에 반대한다'(http://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24555.html)도 떠올려본다.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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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rcheis 2009-03-23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루는 이야기도 그렇고, 카가와 테루유키와 코이즈미 교코 주연이라는 얘기에 봐야겠구나 했어요. 가능한 빨리 보지 않으면 금방 내려갈 듯 하니 서둘러야겠지요;

로쟈 2009-03-24 00:25   좋아요 0 | URL
네, 아무래도 그러할 듯합니다...
 

알다시피, 인도의 빈민가를 다룬 대니 보일의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지난주에 아카데미 영화상을 석권했다. 관련기사 몇 편을 모아놓는다. '슬럼독 밀리어네어'라는 판타지를 걷어낸 '현실'은 어떤 것인지 한번 더 직시할 필요가 있다. '퀴즈쇼'와는 다른 현실을...

경향신문(09. 02. 28) '슬럼독 밀리어네어’로 본 지구촌 빈민가의 삶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8개부문을 석권한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어린 주인공들이 26일 인도 뭄바이의 슬럼가에 ‘금의환향’해 주민들의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영화에 등장했다 해서 이 아이들과 슬럼 주민들의 삶이 갑자기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세계 곳곳 슬럼 주민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빈곤과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슬럼은 지구촌 전체에 확산되고 있지만 슬럼가 출신이 ‘밀리어네어(백만장자)’가 되는 것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미 CNN방송은 이날 영화에 출연했던 아자루딘 이스마일(10)과 루비나 알리(9) 두 어린이가 귀환하자 뭄바이 공항에 시민이 몰려들어 환호했다고 보도했다. 시내에서 열린 축제가 끝나자, 두 아이는 철길 옆 판잣집 안의 플라스틱 박스들 밑으로 들어가 잠을 잤다. 이날 ‘더타임스오브인디아’는 다라비 슬럼을 재개발하려는 시 당국의 야심찬 계획이 주민 이주대책 문제로 늦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인도의 경제수도 뭄바이에서는 인구 1400만명 중 1000만명 이상이 슬럼가의 무허가 판잣집에 산다. 당국은 다라비 슬럼을 없애려 하지만 살 곳을 잃게 될 빈민들의 저항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재개발 압력과 그에 맞선 빈민들의 충돌은 비단 인도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동아프리카 최대도시인 케냐 나이로비의 키베라 슬럼도 그중 하나다. 케냐 시골과 주변국들에서 온 빈민 1000만명 이상이 거주하는 이 슬럼은 동물의 낙원을 자랑하는 케냐의 치부다. 케냐 정부는 오는 7월부터 키베라 재개발을 시작할 방침이지만 26일 주민들과 이주대책을 합의하는 데 실패했다.   

멕시코의 광역수도권(ZMVM)에는 신도시들을 따라 슬럼들이 띠처럼 둘러 있다. 이집트 사막에는 맘루크 왕조 시절의 묘지에 사는 빈민이 늘면서 ‘사자(死者)의 도시’라는 기묘한 마을이 생겼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파벨라(‘빈민촌’이라는 뜻), 파키스탄 카라치 근교의 오랑기 타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캄풍바루(‘새 마을’), 터키 이스탄불의 게체콘두(‘하룻밤에 지은 집’), 이라크 바그다드의 사드르시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소웨토 등 슬럼의 이름은 다양하지만 사는 모양은 비슷하다. 오염된 물과 공기, 에너지난, 질병과 실업, 마약과 범죄, 높은 자살률 등이 슬럼들의 공통분모다.  

제3세계 대도시의 슬럼들은 대개 1970년대 후반의 채무위기와 80년대 국제통화기금(IMF) 주도하의 구조조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미국 사회학자 마이크 데이비스는 “제3세계의 슬럼화는 산업이 성장하면서 농촌 주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밀려들어오면서 일어난 ‘선진국형 슬럼화’와는 다른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오늘날 제3세계 슬럼 주민들은 더 나은 여건을 찾아 도시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농촌에서 삶의 기반을 잃어 등떠밀려 나오게 된 사람들이라는 얘기다.

세계 곳곳에서 인구 1000만명 이상의 거대도시, 이른바 ‘메가시티’가 늘어난 것은 슬럼이 커졌기 때문이다. 유엔은 지난해 전 세계 인구 중 도시 거주자가 절반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했다. 그중 10억명 이상이 슬럼에 살고 있다. 2050년이 되면 세계 인구의 70%가 도시에 살 것이며 그중 절반은 슬럼 주민일 것으로 예상된다.

부의 독과점에 맞선 슬럼 빈민들의 저항은 새로운 흐름이 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부재지주의 집을 차지하는 ‘스쿼팅(squatting·무단점유)’이다. 유럽과 미국에서 시작된 스쿼팅 지지자들은 “재산권보다 생존권이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2005년 남아공 항구도시 더반에서는 ‘아발랄리 운동(AbM)’이라는 무단점유 캠페인이 시작돼 전국으로 퍼졌다. 인도 서벵골에서는 2007년 토지퇴거반대위원회(BUPC)가 결성됐다. 브라질에서는 대농장주들에 맞선 ‘토지 없는 농민운동(MST)’에 이어 ‘집 없는 노동자운동(MTST)’이 일어나 800만채 이상을 점유했다.

반면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들은 주로 슬럼 없애기에 초점을 맞춘다. 유엔 인간거주계획(UN-HABITAT)과 세계은행 등은 2001년부터 ‘슬럼 없는 도시’라는 이름으로 빈민가 주거여건 개선과 교육지원 등을 하고 있다. 그러나 개도국의 구조적 빈곤을 건드리지 못하는 캠페인은 ‘빈민 강제퇴출’이라는 부작용만 낸다는 비판도 많다.(구정은기자)   

아시아경제(09. 02. 28) '슬럼독' 아역배우, 영화 인기로 '일희일비' 

아카데미시상식 8개 부문 수상작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출연한 10세 소년이 영화의 성공으로 일희일비하고 있다. 영국 타블로이드 '더 선'에 따르면 이 영화에 출연한 아자루딘 이스마일은 미국 LA에서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하고 26일(현지시간) 인도 뭄바이로 돌아온 이튿날 아버지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아자루딘의 아버지 모하메드는 이웃과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아들을 발로 차고 뺨을 때렸다.  

모하메드가 아들을 구타한 것은 아자루딘이 장시간 비행과 주위의 관심에 극심한 피로감을 느껴 혼자 있기를 원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더 선'은 모하메드가 아들의 인기를 이용해 뭄바이 다라비 슬럼가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더 선'에 따르면 모하메드는 "아들을 때린 것에 대해 사과한다"며 "아들의 귀국으로 인해 혼란을 겪었고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래서 순간 이성을 잃은 것 같다. 나는 내 아이를 사랑하며 아들이 돌아와 매우 행복하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26일 영국 BBC 온라인판은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빈민가 아역배우들이 새집으로 이사할 예정이라고 인도 정부관리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인도 정부가 아자루딘과 알리의 가족에게 무상으로 집을 마련해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두 가족은 현재 영화의 실제 배경인 뭄바이의 빈민가에 살고 있다. 지역 주택협회의 아마르지트 싱 회장은 "이 아이들이 국가에 영광을 안겨줬기 때문에 무상으로 집을 받아야 한다"면서 "마하라슈트라 주지사도 이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한편 '트레인스포팅'의 대니 보일 감독이 연출한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인도 뭄바이 빈민가에서 자란 소년이 거액의 상금이 걸린 퀴즈쇼 결승에 진출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고경석 기자) 

경향신문09. 03. 02) [베이징에서]부자 나라, 가난한 국민  

인도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중국에서 적잖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아카데미상 8개 부문을 휩쓴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면에는 아시아영화가 할리우드와의 경쟁에서 승리했다는 반오리엔탈리즘도 깔려 있다. ‘중국신문주간’이 이 영화를 두고 ‘아시아’적 요소를 잉태했다고 평가한 것이 그 사례다.

중국 지식인들에게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자국의 현실을 들여다보는 창(窓)이다. 사회평론가 왕궈창은 ‘우리도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찍을 용기가 있다’라는 칼럼에서 왜 중국에는 비판적 리얼리즘 영화가 나오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중국에도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묘사된 경찰의 강압수사, 아동학대, 빈부격차 같은 사회모순이 만연해 있지 않느냐는 우회적인 발언처럼 들린다.

중국인들은 <슬럼독 밀리어네어>(빈민굴의 백만장자)를 ‘핀민푸웡(貧民富翁)’이라 부른다. 이 영화 제목은 지식인들이 중국을 얘기할 때 쓰는 ‘푸궈충민(富國窮民:부유한 나라, 가난한 국민)’이라는 말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지난해 중국은 국내총생산(GDP)에서 독일을 제치고 세계 3위로 부상했다. 무역액도 3위이고, 외환보유액은 세계 최고다. 그러나 개인 소득은 최하위권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07년 말 중국의 1인당 GDP는 2485달러로 세계 99위에 그쳤다.

지난 30년간 중국 공산당은 ‘국부(國富)’ 만들기에 주력했다. 파이를 키운 뒤 나누자며 인민들을 다독였다. 그러나 금융위기로 수출과 투자를 통한 경제성장이 한계에 부딪치자 선 성장 후 분배론이 흔들리고 있다. 중국이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길은 국민 소비를 통한 내수확대뿐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880조원대의 재정 투자에 나섰다. 전자제품을 사는 농민에게 보조금을 주는 가전하향(家電下鄕) 정책도 시행 중이다.

국부에 대한 분배 구조의 개선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인민들에게 지갑을 열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경제전문가들은 중국 정부가 진정으로 내수진작을 통한 소비 확대에 나서려면 민영화 등을 통해 국부를 국민에게 환원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중국의 국유지와 11만 국영기업체의 보유 자산 총액은 79조위안에 달한다. 이를 민영화하면 국민 한 사람당 6만위안이 돌아간다. 국영기업체 상장 주식만 민간에 돌려도 13억 인민은 각각 5500위안어치의 주식을 소유할 수 있다. 2조달러(약 13조위안) 규모의 외환보유액을 국민에게 분배할 경우에는 각각 1만위안을 손에 쥐게 된다.

그러나 공산당이 영도하는 중국에서 국부가 민간으로 환원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차선책은 의료, 교육, 주거 분야의 사회보장제를 확충하고 노동자의 세금을 줄여주는 일이다. 3일 시작되는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는 경제위기 등 민생 문제가 집중 거론될 것이라고 한다. 이 자리에서 국부(國富)와 민부(民富)의 균형을 이루는 방안도 논의됐으면 한다. 공자도 “없는 것보다 고르지 못한 것을 걱정하라(不患寡而患不均)”고 하지 않았던가.(조운찬 특파원)  

09. 03.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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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03-03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0년대에 빈민운동가 솔 알린스키가 청계천 판자촌을 방문해서 이런 지옥같은 곳이 있다니...했답니다.

로쟈 2009-03-03 23:38   좋아요 0 | URL
용산 참사도 '지옥'에서나 일어나는 일이죠...

노승영 2009-03-04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보고 싶은 영화가 꽤 되네요.
지난번에 말씀하신 『마오쩌둥』 오류는 아래 글에 덧글로 올려주시거나
제 이메일로 보내주세요.
http://cafe.naver.com/translate2meditate/12

로쟈 2009-03-04 21:11   좋아요 0 | URL
네, 알겠습니다. 한데, 4월은 돼야 할 것 같아요. 요즘 마구 쪼들리고 있어서요.--;
 

이번주는 신간보다 개봉영화 기사가 더 흥미롭다. 어제 책 이사를 하면서 읽은 일간지 3종과 주간지 1종에서 스크랩해놓기로 한 기사도 그렇다. <왓치맨> 개봉을 맞아 '슈퍼 히어로 영화의 진화'에 대해서 살피고 있다. '상업성이 떨어지는'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라고 하니까 <왓치맨>도, 비록 그래픽 노블의 독자는 아니지만, 부쩍 관심을 끈다. 지난 여름에 본 <다크나이트>에 대한 호감도 아직 남아 있는 상태라 그런 듯하다...  


왓치맨 소설 같은 만화가 원작 심각한 주제 그대로 옮겨 ‘청소년 관람불가’ 작품 

경향신문(09. 02. 27) 슈퍼 히어로 영화, 오락이거나 철학이거나

‘슈퍼 히어로 영화는 어디까지 진화할 것인가.’ ‘슈퍼 히어로 영화는 청소년용’이라고 생각해온 관객이 3월5일 개봉하는 <왓치맨>을 본다면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23일 언론 시사를 통해 한국에서 처음 공개된 영화 <왓치맨>은 작정한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다. 유혈 낭자한 폭력 장면은 예사이고 농도 짙은 베드신도 있다. 표현 수위만 문제가 아니다. 영화에 담긴 암울한 세계관과 역사관이야말로 청소년에겐 이해 불가다. 

  

◇ 성인용 슈퍼 히어로 영화 = <왓치맨>은 1986년 발간된 동명의 그래픽 노블(소설같은 구성·대사가 가미된 만화)을 원작으로 한다. 이 작품을 ‘100대 영문 소설’에 포함시킨 미국 시사주간 타임지는 “<왓치맨>은 냉혹한 심리학적 사실주의, 중첩된 이야기구조, 반복되는 모티브를 보여주는 매혹적인 그림을 포함한다…. <왓치맨>은 젊은 매체의 진화에 분수령이 됐다”고 평했다.

<왓치맨> 속 미국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3선에 성공했으며, 소련과는 여전히 핵전쟁 위기를 겪고 있다. 20세기 초반부터 활약해온 ‘코스튬 히어로’는 활동을 금지하는 법안에 의해 강제로 은퇴당한 상태다. ‘코스튬 히어로’란 법망을 벗어난 범죄자를 사적으로 응징하는 일종의 자경단이다. 전직 코스튬 히어로였던 ‘코미디언’이 살해당하자, 또다른 히어로 로어셰크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옛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은밀히 사건을 수사한다. 히어로 살해사건의 뒤에는 거대한 음모가 있었다.

<왓치맨>은 SF(과학소설)의 하위 장르인 ‘대체 역사’ 영화다. 히어로들의 활동은 미국의 현대사와 교묘히 교직돼있다. 히어로들의 참전에 힘입어 미국은 베트남전을 승리로 이끌었고, 보수 세력의 사주를 받은 ‘코미디언’은 J.F. 케네디를 암살했다. 이들은 남미의 공산정권 전복에도 기여한 것으로 설정돼있다.  

이 영화는 기존 슈퍼 히어로 장르의 관습을 반성한다. 정의를 지키고자 일어선 히어로들은 가면을 쓴 채 무법자를 퇴치했지만, 어느덧 시민들은 ‘감시받지 않는 히어로’를 불안해하기 시작한다. <왓치맨>은 ‘불법을 불법으로 응징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왓치맨> 속 히어로들은 하나같이 불완전한 인물이다. 과대망상에 빠져있거나, 일상에 만족하는 배나온 성불구의 중년이 됐거나, 인간적인 감정을 잃어가거나, 정부의 편에서 약자를 핍박한다. 완벽한 선인 슈퍼맨의 시대는 지나간 지 오래다. 지난해 영화 홍보를 위해 미리 방한한 잭 스나이더 감독은 “기존 슈퍼 히어로들은 왜 은행 강도를 잡거나 나무 위의 고양이를 구하는데 열중하는가가 의문이었다”며 “<왓치맨>을 통해 영웅의 어두운 면모를 드러내고, 슈퍼 히어로의 신화를 해부하려 했다”고 말했다.

원작의 심각한 주제를 고스란히 옮겨온 탓에 영화 <왓치맨>은 상업성이 떨어지는 듯보인다. 161분이라는 상영시간, 슈퍼 히어로 영화의 최대 관객층인 청소년을 포기한 등급은 흥행에 부담이다. 극중 유일하게 초인간적인 능력을 가진 ‘닥터 맨해튼’은 무한한 우주 속 유한한 인간의 보잘것없음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기도 한다.   


다크나이트 ‘악과 동거 가능한가’ 질문 철학·상업성 동시에 만족

◇ 미래의 슈퍼 히어로 영화는 = 지난해 여름 개봉한 <다크 나이트>는 슈퍼 히어로 영화의 분수령이었다. ‘악과의 평화로운 동거는 가능한가’ ‘목적이 옳으면 수단은 정당화되는가’ 같은 질문을 던진 이 영화는 152분에 이르는 상영시간 부담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400만 관객을 동원했다. ‘슈퍼 히어로 영화’가 철학적이면서 동시에 상업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아이언맨 바람둥이 영웅 앞세워 미국 군수산업 비판도

리안 감독의 <헐크>는 ‘찢어진 반바지를 입은 초록 괴물’ 정도로 여겨졌던 헐크 이야기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더한 성인 취향 드라마였다. <엑스맨>은 소수의 슈퍼 히어로를 동성애자, 유색인종같이 핍박받는 소수자의 시선으로 그려냈다. 심지어 바람둥이 백만장자를 슈퍼 히어로로 등장시킨 매끈한 상업영화 <아이언맨>조차 미국의 군수산업, 중동 정책에 대해 비판했다.

영화평론가 김봉석씨는 “할리우드에서 영화화되면서 대중적으로 변모하긴 했지만, 그래픽 노블은 원래 성인을 위한 문학이었다”면서 “앞으로 슈퍼 히어로 영화는 <아이언맨>처럼 오락성을 내세운 영화와 <왓치맨>처럼 심오하고 마이너한 영화로 구분돼 발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백승찬기자) 

09. 0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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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02-28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왓치맨을 처음 읽었을 땐 조금 버거웠는데.(만화치고는 글이 지나치게 많죠. 그래서 그래픽 노블일지도 모르겠지만.) 두번째 읽었을 땐 이거 물건이구나.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답니다.

로쟈 2009-03-01 13:11   좋아요 0 | URL
네, 그렇군요. 좋아하는 장르는 아니지만 관심은 갖게 됩니다...

라로 2009-02-28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왓치맨은 원래 12권짜리 만화가 원작이죠~.그걸 그래픽노블로 만들었고,,,
'슈퍼 히어로 영화의 최대 관객층인 청소년을 포기한 등급은 흥행에 부담이다'라고 하셨는데
사실 왓치맨의 팬들은 청소년들보다 중장년층이 더 많을거에요.
왓치맨을 청소년때 읽었던 사람들이 다 커서 엄청 기다리고 있는 걸로 압니다.
그리고 왓치맨의 작가는 그 어떤 히어로 만화를 그린 작가들보다 훨 유명하고 대단한 작가이니까요.
하지만 본인이 자신의 작품을 영화화 하는걸 반대하는지라 영화에서 원작자의 이름이 안나올거라고 하더군요.
예전에 나왔던 젠틀맨스리그도 그의 작품이죠.
유혈이 낭자하다고 하여 관람이 꺼려지지만 저역시 기대되는 작품이에요.

로쟈 2009-03-01 13:11   좋아요 0 | URL
나중에 영화평도 기대해보겠습니다.^^

Kircheis 2009-02-28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업성이 떨어지는', '청소년 관람불가' 이 두가지에 관심이 커졌습니다. 배트맨을 제외한 슈퍼 히어로물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데, 이건 봐야겠네요.

로쟈 2009-03-01 13:12   좋아요 0 | URL
취향이 비슷하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