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362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지난주 강의에서 톨스토이의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다시 읽은 김에 제인 오스틴의 소설과 비교해서 적었다...
















주간경향(20. 02. 03) 결혼이란 속임수에 불과, 결말은 결국 파국 


<오만과 편견>(1813)의 작가 제인 오스틴은 열렬한 소설 독자이기도 했다. 비록 오스틴이 사망하고 반세기 뒤에나 나오기 때문에 불가능했던 일이지만 근대 서구소설의 정점으로 평가되는 톨스토이의 소설을 읽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두 작가의 독자로서 궁금하다. <전쟁과 평화>나 <안나 카레니나> 같은 대작뿐 아니라 특히 결혼을 주제로 다룬 문제적 중편 <크로이체르 소나타>(1889)를 오스틴은 어떻게 읽었을까. 더 나아가 <크로이체르 소나타> 이후에 오스틴 소설은 연애와 결혼이란 주제를 어떻게 다루게 될까. 


한 독자의 호사가적 흥미만은 아니다. 서로 분리되어 있던 ‘연애’와 ‘결혼’을 소설적 서사로 결합한 공로가 오스틴에게 있다면 톨스토이는 이를 다시금 시빗거리로 만들고 있어서다. 오스틴부터 톨스토이까지가 연애(결혼)소설의 한 사이클이라고 할까. 이야기는 러시아 횡단열차에서 합석한 한 인물이 결혼을 화제로 한 다른 승객들의 대화에 끼어들면서 시작된다. 사랑이 결혼을 신성하게 만든다는 한 부인의 말에 냉소하면서 그는 이렇게 대꾸한다. “평생을 한 여자 또는 한 남자만 사랑한다는 것은 양초 하나가 평생 탄다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는 결혼이란 그저 속임수에 불과할 뿐이어서 파국적 결말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 실례가 ‘아내를 살해한 에피소드의 주인공’으로서 그 자신이다.


이어서 펼쳐지는 것은 주인공 포즈드니셰프가 털어놓는 자기 인생과 결혼생활의 전모다. 지주이자 귀족 계급에 속한 인물로서 그는 젊은 시절 방탕을 일삼았다. 하지만 그것이 부도덕하거나 개인적인 일탈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적당한 방종과 방탕은 상류 사교계의 문화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자신과 같은 상류층의 한 여성과 만나서 결혼한다. 그는 결혼이 상류사회의 결혼시장에서 벌어지는 거래로서 매매춘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유곽의 여성과 사교계의 여성 사이에 아무런 차이도 없다고 믿어서다. “엄밀히 말해서 짧은 기간의 창녀는 경멸을 당하고, 긴 기간의 창녀는 존경을 받는 거지요.” 

작품을 쓸 무렵 톨스토이는 예순에 접어든 나이였고, 선한 삶이라는 인생의 목적에 욕망이 가장 큰 장애가 된다고 보았다. 포즈드니셰프의 말을 빌리자면, 귀족들은 농부들과 달리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음식을 과잉 섭취한다. 과도하게 섭취된 열량은 정욕을 부추기게 되고 도덕적 타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한 계급적 생활조건 때문에 상류계급의 결혼생활은 불가피하게 무절제한 방종과 서로 간의 반목으로 치닫는다. 

적대적인 감정이 쌓여가던 중 포즈드니셰프는 아내와 바이올린 연주자의 관계를 의심하고 급기야는 질투심에 아내를 칼로 찔러서 살해한다. 그 자신의 토로에 따르면 칼로 아내를 찌르기 훨씬 이전에 그는 아내를 죽였다. 욕망의 대상으로만 간주했기 때문이다. 남성과 여성을 포함해 인류는 진리와 선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협력자가 되어야 하지만 남성은 쾌락을 얻을 궁리를 하고 여성은 그런 남성의 욕망을 부추겨서 이용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라면 포즈드니셰프의 살인은 우발적이지만 동시에 필연적이다. 두 주인공이 서로의 오만과 편견을 극복하고 행복한 결혼생활의 입구에 들어서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던 제인 오스틴의 소설 세계로부터 얼마나 멀리 떠나온 것인가!

20. 0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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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유리 로트만의 기호학

14년 전에 올려놓은 글이다. 대학원시절에 쓴 걸 옮겼으니 90년대 후반에 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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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왕가위와 레르몬토프

역시나 14년 전에 올려놓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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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4 06: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4 2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로쟈 > 병사 이반 촌킨의 삶과 이상한 모험

14년 전에 쓴 글이다. 보이노비치의 <병사 이반 촌킨의 삶과 이상한 모험>(문학과지성사)은 재작년(2018)에야 번역돼 나왔다. 그리고 그해 작가 보이노비치도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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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가 평소보다 적은 주임에도 이번주의 라인업 역시 만만찮다. 플로베르와 졸라, 톨스토이, 나보코프, 제인 오스틴 강의가 줄지어 있어서다. 게다가 톨스토이의 단편들은 처음 다루는 작품들이어서 방심할 수 없다. 작품과 항께 읽을 거리들이 있는 것.

내달부터는 양재도서관에서 러시아문학 강의를 진행할 예정인데(6주 일정이고 아직 공지가 나가지 않았다) 톨스토이도 이번에는 단편집을 골랐다. 중장편 위주로만 강의해온 터라 조금 다른 작품을 고르고 싶었다. 단편집 외에도 희곡이 선택지가 될 수 있지만 그의 희곡은 현재 <어둠의 힘>과 <계몽의 열매> 정도만 읽을 수 있는 상태. 세계문학전집판으로 나올 수 있는지는 불투명하다.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 강의책을 차례로 낼 예정인데 준비상황으로는 올해 도스토예프스키. 내년에 톨스토이가 될 것 같다. 규모에 대해서 확정짓지 않아서 전작에 가까운 수준으로 다룰지 대표작만 다룰지 미정인데, 아무튼 내달부터 도스토예프스키 전작 읽기 일정에 들어간다. 내년이 탄생 200주년이라 나대로 뭔가 의미있는 매듭을 지어보고 싶다.

이번에 진행하는 톨스토이 강의도 전쟁과 평화는 4주 강의라 나름대로는 최대한 예우하는 게 된다. 언젠가 대학에서 4주간 읽은 적이 있는데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그때의 강의가 부끄럽게 여겨질 만큼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해에 진전이 있었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는다.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 강의를 책으로 내게 되면 무엇이 과제로 남을까. 러시아문학 강의도 바야흐로 여생만 남겨놓게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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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마음 2020-01-07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현대문학과 함께 도스토예프스키 올해 저에게는 큰선물입니다.작년까지 공부하는게 있어서 책읽을 시간이 부족했는데 작년에 계획한 공부를 끝냈기에 올 한해는 편하게 책읽을수 있는데 때마침 로쟈님 책이 계속나온다니 기쁠 따름입니다^^

로쟈 2020-01-08 08:4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wingles 2020-01-07 2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나오기 전에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를 열심히 읽어놔야 겠군요^^

로쟈 2020-01-08 08:43   좋아요 0 | URL
^^

stella.K 2020-01-08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양재도서관요? 저희 동넨데...

로쟈 2020-01-08 22:13   좋아요 0 | URL
들러보셔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