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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에 읽는 도스토예프스키>(랜덤하우스중앙, 2005)를 읽었다. 이 '30분 시리즈'에서 <니체>와 함께 지난주에 구입한 책인데, 비록 만만한 분량이긴 하나 30분은 족히 더 걸리고 아마 1시간 정도는 투자해서 읽어야 할 분량. 물론 이런 가이드북에 큰 기대를 걸어서는 곤란하지만, 책은 기대보다는 잘 짜여져 있으며 저자 로즈 밀러의 식견 또한 여간한 수준은 아니다. 그는 주로 영어권 연구서들을 참조하고 있는데, 이래저래 알려주는 정보도 요긴하다.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는 모출스키의 <도스토예프스키>(책세상, 2000)와 함께 읽으면 좋을 듯하다. 공부 요령이기도 한데, 어떤 주제나 인물에 대해서 좀 두꺼운 책과 얇은 책을 나란히 읽으면 '정리'와 '부연설명'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한데, 번역 자체가 비교적 만족스러운 <니체>에 비하면 <도스토예프스키>는 몇 가지 오류가 눈에 띈다. 주로 러시아 인명과 관련된 것들인데, 직접적으로는 역자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은 그닥 참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어서 씁쓸하다(교정자도 안 읽었다는 얘기이고). 비근한 예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맏형 드미트리의 애칭이다. 영어 표기로는 'Mitya'가 되는데, 이걸 '미챠(미쨔)' 대신에 '미트야'로 옮긴 것. '카테리나'의 애칭 'Katya'는 마찬가지 방식으로 '카챠(까쨔)' 대신에 '카트야'가 돼 버렸는데, 좀 우스운 해프닝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친구였던 비평가 '스트라호프(Strakhov)'가 '스트라코프'로 옮겨진 것도 부주의하다. <도스토예프스키 읽기 사전>(열린책들, 2002)도 출간돼 있기 때문에 굳이 우리말 번역본을 직접 읽어보지 않더라도 고유명사 표기에서의 오류들은 피해갈 수 있었을 텐데, 그마저 참조하지 않은 것은 오만이거나 객기일 터이다.

또 그런 태도는 꼭 그 이상의 실수들을 낳게 된다. 책에서 여러 차례 인용되고 있는 연구서로 <도스토예프스키와 문학 창조과정>이 있는데, 역자는 그 저자를 '장 콕토'라고 옮겨 놓았다(86쪽 등). 터무니없는 오류인데, 'Dostoevsky and the Process of Literary Creation'란 연구서의 저자는 저자는 자크 카토(Jacques Catteau)이다. 원저는 불어이며, 저자 로즈 밀러는 영역본(캠브리지대 출판부, 1989)에서 인용하고 있다(원저는 불어권에서 나온 가장 유명한 도스토예프스키 연구서이다). 또 135쪽에서 <도스토예프스키 읽기(Reading Dostoevsky)>의 저자이자 저명한 러시아문학 연구자인 'V. 테라스(Victor Terras)'를 'V. 테릿'이라고 옮긴 것도 오류이다. 아울러 본문에서 거명된 연구문헌들의 국역본이 참고문헌란에서 많이 누락돼 있는 것은 아쉽다. 요즘처럼 정보검색이 편리한 시대에 이런 누락이 발생하는 것은 그저 성실성의 문제일 뿐이다.

이런 류의 가이드북을 읽으면서 내가 염두에 두는 것은 '만약에 내가 이런 책을 쓴다면'이다. 물론 관건은 분량이며, 얼마만큼 핵심을 압축해서 전달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물론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서라면 훨씬 두툼한 분량의 책을 써야하겠지만(나의 장기적인 목표는 2021년이다. 작가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 거기에 힌트가 될 만한 사항 하나. 92쪽에서 '자크 카토'를 인용하고 있는 대목: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고상한 인물들 중에서도 돈키호테는 가장 완성된 인물이다. 하지만 돈 키호테의 고상함은 그가 동시에 우스꽝스러운 인물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동시대 작가 투르게네프에게서 돈키호테가 햄릿과 함께 인물의 두 전형이었다면,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 돈키호테의 짝은 그리스도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고상함'과 돈키호테의 '우스꽝스러움'을 동시에 구현하고자 했던, 세계문학사에서 아마 유례가 드문 작가이다. 물론 <백치>의 주인공 미슈킨(므이슈킨) 얘기이다. 사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자체가 진지함과 우스꽝스러움의 결합체이긴 하다. 그런 의미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세르반테스 이래의 산문문학 전통을 계승하고 있기도 하다. 그 전통을 가까이로는 고골로부터 이어받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나는 그러한 전통을 '파토스(pathos)의 문학'에 견주어 '바토스(bathos)의 문학'이라고 부르길 좋아한다.  

내가 '바토스'란 단어를 처음 본 건 나보코프의 <러시아문학 강의>에서였던 듯한데, 그는 고골 문학의 특이한 정서를 '바토스'란 말로 표현했다. '돈강법'이라고 옮겨지는 바토스는 "점차로 끌어올린 장중한 어조를 갑자기 익살스럽게 떨어뜨리기"란 (음악)기법을 뜻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파토스'에 상응하는 폭넓은 뜻으로 새기며, 그때 바토스는 고양된 정념과 익살의 혼종을 뜻하게 된다. 그리고 내가 경애해마지 않는 것이 세르반테스에서 고골로, 도스토예프스키로 이어져오는 바로 그러한 '바토스의 문학'이다.   

세르반테스와 같은 스페인어권에서 그러한 바토스를 가장 숭고하게 구현하고 있는 작품이 멕스코 영화의 거장 아르투로 립스테인의 <짙은 선홍색>(1996)이다(나는 지난 세기에 한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봤는데, 이 영화가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는 것은 상당히 미스테리한 일이다). '내 인생의 걸작' 중 한편인데, 내용을 살짝 퍼오면 이렇다.

"뚱뚱하고 볼품없는, 게다가 입에서는 심한 구취까지 나는 간호사 코랄은 두 아이를 가진 과부다. 누군가의 관심이나 호감을 끌지 못하는 코랄. 그렇지만 누구 못지 않은 열정과 낭만을 내면에 갖고 있는 욕구불만의 여자다. 잘생긴 영화배우 샤를르 브와이에를 연모하는 코랄은 어느날 잡지에 실린 사교란에 자칭 샤를르 브와이에를 닮은 남자라는 니콜라스의 광고를 보고 가슴이 부풀어 편지를 쓴다. 샤를르 브와이에처럼 우아하고 매력적인 스페인 신사 니콜라스의 방문을 받은 코랄, 그녀는 한눈에 사랑에 빠져버린다. 그러나 실상 그의 정체는 빈털터리에다가 대머리를 감추기 위해 가발을 쓰고, 엉터리 스페인 억양을 흉내내어 돈많고 홀로사는 여자들을 꼬셔 돈을 뜯어내는 삼류 제비였다."

"뚱뚱하고 못생긴데다가 재산도 없고 두 아이의 엄마인 코랄은 당연히 니콜라스의 표적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갈 차비마저 없는 빈털터리인 니콜라스는 코랄과 하룻밤을 보내고는 그녀의 지갑을 훔쳐서 달아난다. 그리고는 이내 그녀에 대해서는 잊는다. 그러던 어느날, 코랄이 두 아이를 데이고 니콜라스를 찾는다. 당황한 니콜라스는 그녀의 청혼을 단호히 거절하고 코랄에게 엄마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라고 충고한다. 실망한 코랄은 니콜라스가 자신의 아이들 때문에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그길로 두 아이를 고아원 앞에 버리고 니콜라스의 집으로 돌아온다."(코랄이 엉엉 울면서 사랑을 위해 두 아이를 고아원에 버리는 장면은 압권 중의 하나이다.)

"니콜라스가 외출한 빈 집에서 코랄이 발견한 것은 자신과 똑같이 수많은 여자들에게서 온 편지와 사진, 그리고 NO가 그려진 자신의 편지였다. 코랄은 니콜라스의 과거의 의문스러운 약점을 잡아 니콜라스를 꼼짝 못하게 하고는 진심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아이까지 버리고 자신만을 사랑한다는 코랄의 광적인 사랑에 감동받은 니콜라스는 그녀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이제 둘은 동업자가 된 것이다. 코랄은 니콜라스의 사업이 번창하도록 돕기로 하고 표적이 될 여자들을 직접 고른다. 그러나 사업이 무르익어 갈때마다 질투심에 눈이 먼 코랄은 순간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곤 한다. 이제 그들은 단순한 동업자가 아닌 피로 맺어진 불안하고 광적인 사랑의 동반자가 된 것이다." 결국은 형장에까지 이르게 되는 이 커플의 엽기 살인행각을 따라가는 로드무비가 <짙은 선홍색>이다. 그리고 그런 게 내가 말하는 '바토스의 영화'이다.

 

 

 

 

또 다른 사례로 가령 낭만적 동경의 상징인 '푸른 꽃'의 경우는 어떤가? 나는 그 동경의 대상을 '푸르죽죽한 꽃'으로 변형시킨 시를 써보기도 했는데, 이런 식이다.    

  푸른 꽃향기에 나는 중독 되었구나 나는 눈이 멀었구나

  그대 살을 맞댄 자리에 이렇듯 깊이 박힌 대못이여, 내 몸의 가시여, 횡재여

  어느 입에 발린 사랑이 또한 나를 놓고 통곡을 하랴, 가슴을 치며, 물 말아먹으며

  마음의 일용할 양식을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바대로 다 가져가리니

  가시를 묻은 자리에 피어나는 꽃들이여, 가시나무 꽃들이여

  너희의 다복한 일상에 어찌 찔리는 바 없지 않으랴

  우리가 서로를 아파하고 아프게 하며 이렇게 살아가는 음풍농월에 지화자,

  언젠가 햇빛 짱짱한 날에 백마 타고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우리를 

  개 패듯이 패리니

  그날에 마치 짙푸른 깻잎처럼 다시 푸르게 피어날

  목숨의 향연이여, 인과(因果)의 향연이여, 푸르죽죽한 꽃향기여!

 

여기엔 물론 노발리스의 '푸른 꽃', 이육사의 '광야', 니체의 '초인'의 어구나 이미지들이 혼종돼 있으며 그러한 혼종을 통해서 의도하는 효과가 '바토스'이다. 이 바토스는 파토스를 부정하면서도 보존한다는 점에서 변증법적 지양의 한 문학적 등가물이기도 하다. 언젠가 보다 체계적인 '바토스의 시학'에 바탕을 둔 도스토예프스키론을 쓰고자 한다. 그것이 내 인생의 한 목표, 즉 '푸르죽죽한 꽃'이다...

 

05.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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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29 15: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5-11-29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한때는 제 별명이 '개그맨'이기도 했습니다. 실없이 웃긴다고...

토마스 2005-12-07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짙은 선홍색>은 국내에서 개봉된 바 있습니다^^
 

 

 

 

 

3년전 '한겨레21'에 러시아계 한국인 박노자 교수의 칼럼으로 도스토예프스키 비판이 두 차례 실린 적이 있다. 도스토예프스키 카페도 운영하고 있었던지라 그와 관련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적은 생각들을 (그닥 달라진 바 없기에) 그대로 여기에 옮겨놓는다. 그리고 후반부엔 그때 다른 분이 퍼온 칼럼을 붙여놓는다. 그 글들은 <하얀 가면의 제국>(한겨레신문사, 2003)에 재수록돼 있다(나는 책을 갖고 있지만 다시 읽어보진 않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나라, 러시아'란 제목의 첫머리에.(사실, 그 글들의 초점은 도스토예프스키 자체라기보다는 러시아에 대한 한국인들의 스테레오타이프적인 선입관이 교정될 필요가 있다는 문제제기에 있다.)

기본적으로 나는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와 인간 도스토예프스키는 분리해서 고려해야 한다는 보는 입장이다. 인간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의 아내 안나 그리고리예브나의 증언대로라면), '위대한 인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작가로서의 도스토예프스키는 위대하다. 그것이 차이이다. 박노자 교수는 대개 (잡지 발행인으로서도 활동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시론(時論)을 근거로 하여 그의 국수주의적이고 반동적인 태도를 비판하지만, 그것인 도스토예프스키의 전모를 대신할 수는 없다(한 작가의 세계관이나 정치관이 그의 문학의 크기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박노자 교수도 작가의 '위대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거인'의 명암을 올바로 보자고 제안할 뿐이다. 내게 그 명암이란 새로운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러한 '결함'이 도스토예프스키를 더욱 신뢰하도록 만든다(나이브한 이들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을 지지하며, 그의 정치학이나 윤리학은 자신의 <작가일기> 등에서 공표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의 '대심문관' 편 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지만 작가로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우리의 현실과 인간조건을 (단순하게 환원하는 것이 아니라) 대단히 복잡하게 사고했다. 소설은 복잡성의 정신이라는 쿤데라의 주장에 따라 그것을 달리 '소설의 승리'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정치관에 대한 질문을 받고 쓴 답장입니다. 박노자 교수의 도스토예프스키 비판과 관련한 저의 견해이기도 하니까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은 정치와 별 상관이 없긴 하지만 좋아하는 작가인만큼 궁금하고, 또 박노자의 칼럼으로 더욱 궁금해졌거든요. 박노자의 말을 받아들인다 해도 그 과정이 이해가 되는것도 아니구요. 그와 같이 다층적인 성격을 가졌던 사람이 황제에게 충성한 보수파였다거나 평생 독실한 그리스도교 신자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지요."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이 정치와 별 상관이 없다는 건 좀 편향된 의견입니다.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의 한 특징은 시류적인 문제들에 대한 작가의 의견이 강하게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투르게네프가 그러하고(그의 성격은 비사교적, 비정치적인데, 벨린스키와의 교우가 그를 사회소설 작가로 이끕니다. 하지만 그의 성격이 어디 가지는 않아서 대개의 소설이 페시미즘적인 결말을 갖고 있습니다), 고골과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러합니다. 톨스토이는 푸슈킨과 마찬가지로 좀 예외인데, 이들은 서구식 미학주의를 수용한 경우입니다. 즉 미는 진과 선의 영역과는 좀 다른 걸로 생각하는 것이죠.

-<안나 카레니나>를 쓴 이후의 톨스토이는 물론 자신의 그런 미학관을 포기/비판하고, '미=선'의 자리로 복귀합니다. 반면에 고골과 도스토예프스키는 <친구들과의 왕복서한>이나 <작가일기> 등과 같은 저널적인 글들에서 아주 노골적으로 국수적인 슬라브주의와 러시아 정교주의를 지지하고 옹호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왈, "인간(유럽인들)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먼저 러시아인이 되어야 한다."(*고골의 <친구들과의 왕복서한>은 근간 예정이고, 도스토에프스키의 <작가의 일기>(벽호, 1995)는 발췌역으로 나왔었는데 현재는 절판됐다.) 

"하지만 그의 타민족에 대한 관점은 상당히 편벽되고 유치한 수준이니(폴란드, 독일, 동양에 대한 경멸, 프랑스에 대한 선망과 멸시 등등. 러시아에 대한 자학적인 비판도 만만치 않지만), 그에겐 사회적인 시각에 대한 균형이 결여되어 있었다고도 볼 수 있을까요?"

-적어도 인간 도스토예프스키의 경우(저는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와 인간 도스토예프스키가 좀 구별된다고 봅니다)는 유치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그건 그의 전기들에 묘사되고 있는 기묘한 성벽들을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회적 시각에 대한 균형의 결여'는 좀더 탐구해야 하는 주제인데, 가령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와 나치즘의 관계가 도스토예프스키의 경우와 유사하지 않을까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어떻게 그처럼 위대한 철학자가 국수적 민족주의(나치즘)에 동조할 수 있었을까? 그건 어떤 '실수'가 아니라 그의 사상에 이미 내재되어 있는 어떤 성향의 발로로 보는 것이 최근의 시각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경우도 비슷하지 않을까요?(이 문제는 좀더 세밀한 논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인지 도스토예프스키 특유의 '혼의 리얼리즘'은 곧바로 '그리스도의 구원'으로 비약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에게 <죄와 벌>은 황당한 작품이었지요. <죄와 벌>을 읽은때가 몇 년 전인데, 그때는 라스콜리니코프가 자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훨씬 자연스러웠거든요. 그렇게 치밀하고 논리적으로 파격을 행했던 사람이 갑자기 회심을 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때 느낀대로 하자면 '자존심도 없는' 결말이었지요. 자기를 그렇게 솔직하게 드러내는 작가인데도 도스토예프스키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인물입니다."

 

 

 

 

-<죄와 벌>에 관한 건 좋은 지적이십니다.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많은 논란이 되는 문제이구요. 라스콜리니코프의 '회심'은 정확히는 에필로그에서 이루어집니다.(이 주제에 관해서는 르네 지라르의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김현 편, <르네 지라르 혹은 폭력의 구조>에 부록으로 실려 있습니다.) 따라서 이 에필로그의 성격에 대해서는 여러 비판적인 의견이 있었고, 저도 그러한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적어도 소설의 본문에서는 라스콜리니코프에게서 회심의 계기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죠(그러면 에필로그의 회심은 좀 억지스러운 것이 될 터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페테르부르크라는 폐쇄적(악마적) 공간에서 그러한 회심이 가능하지 않게 묘사한 것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볼 수도 있습니다.

 

 

 

 

-(독백적인!) 시사적인 글들 속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우리의 이문열이나 조갑제 스타일의 인물처럼 보입니다.(이문열이 도스토예프스키를 아주 좋아합니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사정이 좀 다르다고 봅니다. 바흐친이 다성악적 소설이라고 했지만, 거기엔 작가의 이념적 목소리는 결코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그것이 (도스토예프스키적) 소설의 승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의 소설들에선 어떠한 문제도 단순하게 처리되고 있지 않습니다. 비판의 표적이 되고 있는 <악령>만 하더라도 단순한 (소설이 아닌) 정치 팜플렛을 의도했지만, '소설'로 확장된 <악령>은 거대한 형이상학적 심연이 되고 맙니다. 그것을 단순한 정치적 주장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좀 무리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의 소설들은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를 뛰어넘고 있다고나 할까요(이 점이 도스토예프스키와 이문열의 차이이기도 합니다)...   

[박노자의 세계와 한국] 2002년08월13일 제422호

거인 도스토예프스키의 명암

-그의 끔찍한 군사주의·배타주의 사상은 빨갱이 딱지를 떼기 위한 노력이었나

1877년 말, 러시아와 터키의 전쟁이 막바지를 향할 무렵이다. 우세한 무기를 갖고 있는 러시아 군대는 터키의 수도인 이스탄불(비잔틴 제국 시절의 옛 이름은 콘스탄티노플)을 위협할 정도로 확실한 승리를 거두고 있었다. 서구의 금융자본에 의한 착취, 러시아의 끊임없는 남하, 근대화 부진으로 ‘유럽의 병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약해진 터키 제국은, 발칸 지역에 대한 패권을 러시아에 넘겨주는 셈이 되었다.

-독일인과 손잡고 프랑스를 박살내자?

30여년 뒤에 바로 발칸의 패권 문제가 발단이 되어 러시아 제국을 무너뜨릴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질 줄 알 리 없는 러시아의 보수적 지식인들은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이라는 이슬람식 명칭을 그들은 외면한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토론하고 있다. ‘러시아 문명론’을 내놓은 당대 우파의 유명 논객 다닐레프스키(N.Y.Danilevsky)는, 콘스탄티노플을 “러시아를 위시한 모든 동방민족을 위한 자유 도시로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당시의 분위기를 고려한다면 꽤 관대한 제안이었다. 그러나 서구에 대한 멸시와 러시아의 ‘영성’에 대한 거의 광적인 집착에서 다닐레브스키보다 한수 위인 우파의 저명한 작가 도스토예프스키(1821∼81)는 “그 따위 비열한 타협”이라며 단호하게 반대한다:

“러시아인과 기타 슬라브 민족들이 서로 비교라도 될 만한가? 러시아는 기타 슬라브의 각 민족보다 위대하고, 모든 민족들을 하나로 묶어도 그들보다 위대하다. 거인이 난쟁이들 보고 평등을 설교해봤자 쓸데없는 일 아닌가? 우리가 점령한 콘스탄티노플은 영원히 우리만의 도시로 남아야 하고, 콘스탄티노플과 인근 지역, 그리고 흑해와 지중해 사이의 해협을 지키기 위해 육·해군을 주둔해야 한다”(<작가의 일기>,1877년 11월)

이 정도면, 도스토예프스키를 ‘도덕성의 절대성과 인간의 심층적인 심리를 매우 깊숙이 아는 작가’로만 알고 있는 한국의 일반 독자는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무고한 생명을 살해한 일은 절대로 선(善)이 될 수 없다”는 이념을 기조로 전 세계의 독자를 매료시킨 <죄와 벌>을 쓴 사람이, 콘스탄티노플을 ‘우리 도시’로 만들기 위해 어느 정도로 많은 무고한 생명들이 죽어야 하는지는 몰랐던 것일까? 위대한 인본주의자로 알려진 사람이 폭력으로 남의 것을 빼앗는 일에 왜 그토록 열중했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도스토예프스키의 1인 잡지인 <작가의 일기>를 읽으면, 더 큰 수수께끼에 맞닥뜨린다. 왜냐하면 그 다음에 도스토예프스키는 ‘짐승 같은’ 터키인들을 쫓아낸 뒤에 “사회주의의 모태가 된 프랑스를 독일인과 함께 손잡아 박살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늘어놓기 때문이다. 즉 권위주의적인 독일 제국과 함께 사회주의를 허용할 만큼 ‘타락한’ 민주적 프랑스를 멸망시키는 것이 러시아의 ‘민족적 사명’이라는 이야기다. 그 과정을, 도스토예프스키는 “이슬람 짐승들과 적그리스도인 사회주의를 예수의 이름으로 이기는 성전(聖戰)”이라고 부른다.

-끈질긴 ‘훈육주의’경향

작품 속에서는 ‘생명 존중’을 그토록 강조한 도스토예프스키가, 왜 자신의 사회 참여적인 잡지에서 이처럼 끔찍한 군사주의적·배타주의적 언어를 썼을까? 일설에 따르면 자신의 농노를 학대하다가 살해당한 가혹하고 속물적인 아버지를 두었고, 군사기술자학교(일종의 사관학교)에서 온갖 집단 괴롭히기를 목격·체험한 도스토예프스키는, 젊었을 때부터 악(惡)의 문제에 대해 매서운 성찰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1840년대)에 그는 초기 사회주의적 성향의 혁명가와 어울려 개혁·혁명을 통한 악의 제거와 인간·사회의 개선을 꾀했다.

그러나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젊은 도스토예프스키의 구도(求道)를, 제정 러시아 정권은 가혹하게 차단해버렸다. 갑작스러운 체포(1849년)와 사형 선고, 총살 현장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영원한 듯한 수십분, 그리고 마지막 순간의 감형(사실 ‘훈육을 위한 연극’이었다.). 그 뒤 4년간 시베리아 감옥살이를 하고 졸병으로 오지에서 4년간 복무한 그에게는 ‘사상범 전과자’라는 빨갱이 딱지가 붙었다. 혁명적 신념이 강한 사람이라면 그러한 상황에서 망명을 하거나 혁명에 투신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베리아에서 사회주의를 포기한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때부터 정반대 길을 가기로 한다. 그는 자신의 ‘불온한’ 과거를 애써 부정하고 오히려 반사회주의운동의 선봉에 서는 특별한 ‘충성’을 보인다. 특히 귀족계·황실과 관계가 가까워진 1870년대 후반에 그는 ‘빨갱이 딱지를 떼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일제 시대의 많은 전향자들처럼 러시아 제국의 국체(國體)인 정교회 신앙과 관제 민족주의로 돌아온 전향자 도스토예프스키는 ‘국체 명징(明徵)’- 즉 어용적 이념의 강조·선포- 에 남다른 공을 들였다.

‘전향’ 이후에도 그의 평생 화두인 ‘악의 문제’에 대한 고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고민의 형태는 완전히 바뀌었다. 악을 가능하게 하는 환경을 ‘단순한 표피’로 규정한 채 도스토예프스키는 ‘영혼 속의 악의 본질’에 대한 탐구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종교적 색채가 강한 이러한 탐구는 종교를 명분으로 내거는 제정 러시아 사회에서 환영할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영혼 속에 악한 본질이 내재돼 있다는, 성악설(性惡說)적인 면모가 짙은 그의 결론은 러시아 국교인 정교회의 교리보다는 고대·중세의 신비주의적 이단인 그노시스교(Gnosticism·靈知敎)에 더 가깝기도 했다. 자신의 ‘온건함’을 입증하려는 욕망에 불탄 도스토예프스키는 교회와 국가의 역할을 더 강조했다. 러시아 진보진영으로부터 오랫동안 비웃음을 받아온 최초의 ‘반사회주의적 소설’ 가운데 하나인 <악령>을 쓴 1870년대의 도스토예프스키는, 교회와 국가가 없는 한 인간의 악한 본질이 그대로 드러나 사회가 생지옥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의심치 않는 ‘기독교적 국가’의 광신도였다.

“하나님이 없는 한 모든 것들이 다 허용돼 있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명언은, “하나님의 신앙을 강요·훈육하는 교회와 국가가 없으면 모든 악이 허용돼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작가의 일기>에서 체벌과 범죄에 대한 엄벌을 옹호한 것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끈질긴 훈육주의적 경향과 연결지어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의 악을 억제해주는’ 국가와 교회를 비판하는 사회주의자들은 물론 제1호 적이었다. 19세기 초반의 유토피아적 사회주의 책을 읽었을 뿐, 그 외의 진보운동 관련 소식을 보수적 신문을 통해서만 읽은 도스토예프스키는, 모든 사회주의자들을 ‘억제를 받지 못해 악한 본질이 발전된 적그리스도형 인간’으로 취급했다. 노동자들이 빼앗긴 여유의 자유, 경영 참여와 정치 참여의 자유를 노동자에게 돌려주려는 것이 사회주의의 취지였다는 것은, 사회주의를 배태한 유럽의 문화토양을 매우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는 도스토예프스키로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작가로서의 위대성을 바로보기 위하여

그는 사회주의를 배태한 유럽- 특히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강한 프랑스- 의 자유주의마저도, ‘하나님의 은근한 부정’으로 규정해 저주하기에 이르렀다. 기독교 문화권인 유럽에 대한 인식이 그 정도였으면 러시아 제국의 경쟁자인 터키 같은 비유럽 국가에 대한 그의 생각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결국 ‘인간의 악한 본질을 억제하는 구세(救世)의 위업(偉業)’으로서 가장 ‘건전한’- 즉 보수적이며 권위주의적인- 러시아와 독일의 세계 제패는 그의 열망이 될 수밖에 없었다. 위에서 언급한 <작가의 일기> 1877년 11월호에서 러시아 육·해군에 대한 애착과 관심의 비결은 바로 이 같은 세계관과 욕망의 구조였다.

이념가로서의 도스토예프스키가 광적인 수구주의로 기울어졌다고 해서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천재성을 간과할 수는 없다. 천부적 재능에 고생과 고민으로 점철된 그의 인생은 그를 위대한 작가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소설의 저변에 흐르는 인간에 대한 불신과 ‘외부로부터의 훈육’에 대한 기대 심리, 국가 권력에 대한 거의 맹목적 시각 등을 바로 이해해야 그의 작가로서의 위대성도 바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거인의 명암을 다 아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거인에 대한 존중이 아닌가 싶다.

-이 글은 410호에(아래 참조) 실린 ‘도스토예프스키를 선망한다고?’를 읽은 독자들이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내용을 요청해 쓴 것입니다. 편집자  

[박노자의 세계와 한국] 2002년05월22일 제410호

도스토예프스키를 선망한다고?

-한국과 러시아, ‘서구인들이 강요한 색안경’을 벗고 서로의 진실을 아는 길

88올림픽 때 미국과 축구 경기를 벌인 옛 소련팀이 한국 관중의 응원을 받아 미국인의 질투를 산 획기적인 사건이 어언 15년이 지났다. 두 나라의 관계가 그동안 온갖 기복을 거듭했지만, 민간교류는 꾸준히 증가해왔다. 한국 유학생들이 러시아 대학의 외국 학생의 주종을 이루고, 러시아 출신의 노동자·기술자·상인·프로그래머 수천명이 한국의 곳곳에 흩어져 있는 현재, 두 나라의 민간인들은 더 이상 서로에게 생소하지 않다. 그러면 그들은 이미 낯익은 서로를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가? 어떤 스테레오타이프(고정관념)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가? 한·러 교류의 발전을 지켜봐온 필자는 이에 대해 간단한 인상을 적어보겠다.

-사실과 허위의식의 비율

한국과의 교류에 관여하는 러시아인 쪽의 ‘눈’을 이야기하면, 맨 처음 느끼는 것은 한국의 과거나 역사·문화에 대한 무지다. 한국학(내지 인접 학문)을 직업으로 하는 극소수를 제외한다면, 대다수의 한국 인식 수준은 서구인의 평균과 다르지 않다. 무지의 원인인 자국(自國)과 서구·미국 중심의 편향된 오리엔탈리즘적 학교 교육과 매체의 보도를 이해 못 할 바도 아니지만, 러시아에서 살고 있는 한인 교포나 러시아와 한국의 해방운동의 역사적인 관계를 생각하면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흥미로운 것은 그나마 영문 자료라도 읽어가면서 ‘한국 공부’를 조금씩 하려고 하는 재한 프로그래머나 교수 등과 달리, 한국과 업무상 관련이 있는 고급 관료들은 그러한 노력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몇해 전 협상에서 통역을 맡은 부장관급의 러시아 관료와 사석에서 나눈 대화가 지금도 기억난다. 한국의 경제발전으로 화제를 돌리자, 원래 직업이 교육자(!)인 부장관이 마치 상식적인 사실을 이야기하듯 “100년 전에는 동굴에서나 살던 한국 사람들을 고층 아파트에서 살게 한 것이 미국의 원조지 딴 요인이 있나”와 같은 말을 거듭 했다. 주변부 국가의 매판형 지배층다운 그런 관료들의 숭미(崇美)의 병과 한심한 무지는 두 나라 관계에서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기 쉽다. 러시아를 독일 중심의 유럽에 예속시키려는 푸틴 정권의 종속적 노선은, 고질화된 오리엔탈리즘의 병폐를 고치기는커녕 오히려 심화시킨 셈이다.

러시아를 보는 한국인들의 눈은 과연 얼마나 다를까? 러시아에서 오랫동안 머물고 있는 한국인들의 러시아어나 문화에 대한 학습 열의는, 주한 러시아인의 한국에 대한 관심도보다 더 높다는 것도 필자가 많이 본 일이다. ‘학이시습’(學而時習)을 이상시한 조상의 문화정신에 감사해야 하는지, 아니면 주러 서구인들이 주한 서구인들보다 주재 국가의 문화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는 사실과 연결시켜야 되는지는 모르겠다. 문제는, 한국인들이 알고 있는 러시아에 관한 상식에서, 사실과 서구·미국의 프로파간다에 의한 허위의식의 비율이 과연 얼마나 되는가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제정 러시아 관료층의 위선과 아첨, 철저한 인간성의 말살을 천재적으로 풍자한 살티코프-시체드린(Saltykov-Shchedrin)보다 관료층의 상부와 밀접하게 유착한 골수 보수주의자 도스토예프스키를 ‘대표적인 지성인’으로 꼽는다는 것은, 미국·서구 보수층의 ‘가치 서열’을 그대로 따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적인 인간의 해방을 갈망한 미래 지향적인 스크랴빈(A.Skryabin)의 음악보다 보수적인 차이코프스키를 선호하는 것도, 서구의 ‘정전’(正典·canon)을 추종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한 마디로 ‘평균적인’ 한국인이 러시아에 대해 덜 무지하지만, 러시아를 ‘서구인의 러시아관(觀)’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향은 마찬가지다.

-상인과 노동자의 판이하게 다른 만족도

두 나라를 오가는 사람들의 서로에 대한 만족도는 어떤가? 필자의 관측으로 체감적인 만족도는 객관적인 현실뿐 아니라 주관적인 기대의 수준에도 많이 달려 있다. 물론 기대의 주체인 여행자의 사회·경제적인 신분도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면 한국의 공산품을 사러 다니는 러시아의 상인(‘보따리꾼’이라고 하지만, 그 규모는 ‘보따리’의 수준을 넘는다)들은, 한국을 ‘바이어’가 장사를 편하게 할 수 있는 세계적 규모의 ‘무역 대국’이라는 기대를 안고 온다. 필자가 지켜본 대부분의 경우 그들의 기대는 충족됐다. 기대 이상의 상운(商運)을 만난 일도 많았다. 한국을 늘 만족해하는 한 상인이 필자에게 “한국은 실제로 기적의 나라야! 아니, 재고에 없는 물건마저도 주문하기만 하면 1주 내로 이렇게 많이 만들다니, 라인을 어쩜 이렇게까지 돌릴 수 있어?”라고 묻곤 했다. 외국인 노동자와 한국인 비정규직들이 하루에 10∼12시간씩 고함소리를 들으며 사람을 기절시킬 만한 속도로 일한 그 공장의 라인이 돌아가는 모습을 상인이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한국에 노동(특히 미등록 막노동)을 하러 오는 러시아 출신들이 한국을 ‘착취와 폭력의 대국’으로 본다는 사실이 과연 이상한 것일까? 그들의 실망의 정도를 이해하려면, 한국의경제 기적과 근대화를 찬양하는 주류 신문 외에 한국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접하지 못한 그들은 한국의 ‘합리적인 노무 관리’(?)에 큰 기대를 걸고 온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한국에 대한 러시아인의 만족도는 한마디로 한국 근대의 어느 측면을 접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수출 능력으로 득을 얻는 사람의 ‘한국’과, 그 수출 능력을 뒷받침해주는 착취공장에 건강과 인권, 생명까지도 바쳐야 하는 사람의 ‘한국’을 보는 눈은 천양지차다.

한국의 근대성에 큰 기대를 걸고 오는 러시아인과 달리, 러시아로 가는 한국인들은 역시 서구·미국의 매체를 따르는 한국 매체의 보도대로 ‘위험한 후진국’으로 가는 줄로 알고 경계심·체념의 태도를 미리 준비한다. 그들이 실제로 부정적인 경험(경찰관의 돈 갈취나 폭력·사기·범죄)을 할 때마다, 실망보다는 “역시 생각대로구나!”를 반복한다. 처음의 상상조차 뛰어넘을 만한 정도의 부정적인 경험만 아니면, 러시아에서 체류하는 한인은 쉽게 분노를 터뜨리지 않는다. 경찰이 이유 없이 돈을 요구해도, 학교 당국이 노골적인 전횡을 저질러도, 행정 관료들이 뇌물 갈취에 혈안이 돼도, 재러 한인의 대다수는 “후진국은 다 그렇지”라고 하며 그대로 따른다.

현재 러시아 관료들의 저질성에 대해서는 필자도 의심하지 않는다. 문제는 ‘돈 먹는 하마’인 러시아의 관료 체제에 돈을 계속 먹인다고 해서 선진화의 날이 오겠는가? 서로의 앞날을 위해서라면 러시아의 발전을 막는 관료 기구들에게 오히려 당당한 모습으로 맞서는 것이 낫지 않을까?

-'제정 러시아’흠모와 ‘소련’혐오

스테레오타이프를 이야기하자면, 역시 서구적인 오리엔탈리즘 식으로 한국인들을 ‘동양인’으로 여겨서 역대 극우정권이 악질화·고질화한 온갖 봉건적인 폐습들을 ‘동양 문화의 유산’으로 오해하는 러시아인들의 태도부터 꼬집어야 한다. 즉 주한 서구인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러시아인들도 학교 체벌을, 동양 사회에서 동양인의 사고방식이나 체질상 없어서는 안 될 문화 형태로 보고 있다. 제정 러시아에서도 만연한 체벌들을 레닌의 초기 공산당 정부가 전면 폐지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물론 주머니 사정이 허락한다면 주한 러시아인들은 자신들의 귀한 ‘서양 아이들’을 외국인 학교로 보내려고 한다. 마찬가지로, 군번·학번을 숭배하는 권위주의 사회가 낳은 연령 차별주의나 연소자 하대를, ‘동양 사회에서 당연한 일’로 취급하여 본인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한 분통을 터뜨리지 않는다. 많은 한국인들의 스테레오타이프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으로, 서구·미국의 보수주의자들에게서 배운 듯한 제정 러시아의 ‘고급 문화’에 대한 흠모와, 옛 소련 시기를 ‘기형’으로 보는 태도를 꼽을 수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로마노프 왕가의 왕궁(겨울 궁전)의 사치 앞에서 넋을 잃는 한국 관광객들을 이해 못 할 바도 아니지만, 70%의 문맹률과 흉년마다 아사자 몇십만명씩을 낸 제정 러시아를 흠모하는 것은 고혈을 빼앗긴 백성에 대한 모독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너무나 많은 면에서 서로 닮은 한국과 러시아는 지금 서구인들이 강요한 ‘색안경’을 끼고 서로를 쳐다보는 셈이다. 주한 러시아인들이 갖고 있는 ‘한강의 기적’, ‘무역의 대국’, ‘유교적인 규율과 서열의 나라’의 이미지도, 러시아를 접촉하는 많은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도스토예프스키와 차이코프스키의 찬란한 고향, 공산주의 때문에 후진국이 된 나라’라는 생각도, 결국 냉전시대의 미국·서구의 보수 언론·학계가 만들어낸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스테레오타이프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 상대 나라 민중의 고생과 투쟁의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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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YG의 생각
    from vizualizer's me2DAY 2008-07-19 12:42 
    도스토예프스키 비판에 관하여 - 로쟈의 저공비행
 
 
urblue 2005-11-11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퍼갑니다. (__)

일요일의마음 2005-11-11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한 칠팔 년 전에 마광수의 산문을 읽었는데,(기억은 잘 안나지만) 도스토예프스키의 보수성에 대해 치를 떨며 일반인들이 보수적이라고 생각하는 톨스토이가 오히려 비교적 낫다고 했던 것 같네요. 그런데 제 기억으로는 마광수는 시론을 얘기한 게 아니라 소설 작품들을 보수적이라고 해석했던 것 같은데...제가 잘못 기억한 걸까요?

yoonta 2005-11-11 2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글을 쓰셨군요..(혹시 학위논문도 도스토예프스키로 쓰셨나요?) 저야 문학도 잘 모르는 사람이고..도스토예프스키도 잘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인간 도스토예프스키와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다르다는 로쟈님의 평가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데요..인간의 내면 혹은 심리의 다층성과 다면성을 보여주는 그의 글쓰기를 단순히 사회,정치적 요소로 환원시키는 일과 작가로서의 그와 보수주의자로서의 그를 혼동하는 일은 그에 대한 편향된 시각일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위 글에서 님은 도스토예프스키와 이문열 그리고 하이데거를 비교하셨는데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문열보다는 하이데거에 가깝다는 논지의 말씀을 하시면서 하이데거의 나치연루는 단순히 그의 정치적 판단의 실패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그의 철학의 본질적 구성부분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라는 말씀을 하셨네요..

최근 번역된 데리다의 <정신에 대해서>라는 책을 보면 하이데거의 정신/정신적인 것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방식을 분석하면서 데리다는 하이데거가 '사유의 경건함'을 유지시키고 '기술'에 의한 '정신'의 퇴락을 방지하기 위한 '정신'Geist의 역할을 강조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정신에 대한 강조로 인해 결과적으로 그는 그가 그렇게 단절하려고 했던 서양의 전통형이상학과 인간중심주의 그리고 기독교적인 성격과 독일국수주의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인데요..도스토예프스키도 마찬가지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사로잡히면서 인간 내면을 심층적으로 서술해내고 있기는 하지만 그 질문의 제기방식 자체에서 오는 인간중심적이고 기독교주의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을 제기할수 있다는 것이죠..때문에 하이데거나 도스토예프스키 양자 모두는 그들의 근원적 출발점들(기독교주의적이며 인간중심적인)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볼수있지 않을까요? 하이데거(독일민족주의와 기독교주의)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정치적 수구성(슬라브주의와 기독교주의)도 이러한 근원적 한계에서 나오는 것이고요..

때문에 비록 도스토예프스키를 하이데거에 대한 평가에서도 적용될수있는 것처럼 작가적 그와 정치적 판단 주체로서의 그를 분리해서 사고할 수있을지라도 그의 문학과 정치적 판단은 보다 근원적 지점에서는 양자가 결합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고..그렇다면 그를 (요 전 페이퍼에 쓰신 것처럼) 니체를 넘어선 '윤리적 주체의 구체성'의 한 예로 제시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지않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니체는 비록 전통형이상학이라는 양식성의 한계를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기독교적) '신'의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반기독교주의자임을 자처했기 때문이지요..

그런 점에서 저는 도스토예프스키보다는 니체가 서양적 사유의 한계밖으로 한 발 더 나아간 사고를 보여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승주나무 2005-11-11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잘 읽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좋아해서 장편을 다 읽고, 그에 대한 글도 써 보았지만, 이렇게 작품 외적인 그의 견해를 들여다볼 기회는 없었는데..
많이 배운 것 같습니다.

비로그인 2005-11-11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생각하기에 도스또예프스끼는 포스트모더니티를 예견하였고 동시에 그 포스트모더니티가 가져올 문제점을 스메르쨔꼬프를 통해 갈파하고 있었던 정말이지 위대한 작가라고 생각합니다.이반과 스메르쨔꼬프...

로쟈 2005-11-13 1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산책님/ 예상하실 수 있는 바이지만, 혁명 이후 톨스토이는 레닌에 의해서 '러시아 혁명의 거울'로 추앙받은 반면에 도스토예프스키는 반동적이고 퇴폐적인 작가로 격하됩니다(적어도 1930년대까지는 이러한 경향이 지속됩니다). 자신의 문학에 끼친 도스토예프스키의 영향에 대해서 고리키가 자아비판까지 해야 했으니까요. 도스토예프스키의 부상은 제1, 2차 세계대전 등이 가져온 '폐허의식'과 유럽식 합리주의에 대한 회의와 맞물려 있는 거 같습니다. 해서, 마광수의 도스토예프스키 보수성 비판은 일리있되 독창적인 건 아닙니다. 성에 대한 집요한 관심도 마광수는 톨스토이와 공유하고 있죠. 차이라면 톨스토이는 약골이 아니어서 아주 왕성한 '생활'을 누렸다는 것 정도겠죠.

yoonta님/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서는 학부 졸업논문을 썼더랬죠.^^ 공정하게 말하기 위해서라면 니체와 하이데거를 읽으신 만큼 도스토예프스키도 읽어주시면 되겠습니다. 참고로, 스위스의 한 광장에서였나요, 니체가 학대받는 말을 끌어안고 흐느끼다가 정신을 잃은/놓은 장면. <죄와 벌>에서의 장면을 반복하고 있기도 합니다. 삶을 문학이 모방한다지만, 삶 또한 문학을 모방하기도 하는데, 그 한 가지 사례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톨스토이가(보다 정확하게는 투르게네프가) 러시아문학의 '쇼펜하우어주의'를 대표한다면, 도스토예프스키는 '니체주의'와 가장 강한 친연성을 갖습니다. 제가 주목하는 건, 아직은 그들간의 차이보다는 친연성입니다.

yoonta 2005-11-13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어보지 않은건 아니에요..^^ 죄와벌 그리고 까라마조프의 형제들 정도는 보았죠..특히 까라마조프는 감동적으로 본 작품입니다. 다만 니체나 하이데거등에 대해서 공부했던 것 만큼은 아니라는 점에서 로쟈님 말대로 좀더 '읽어줄' 필요는 있는 것 같네요.

문제는 철학이라는 것과 문학이라는 것이 무엇인가하는 지점에 있는 것 같습니다. 니체의 글쓰기나 들뢰즈의 글쓰기가 일부러 전통적인 철학적 글쓰기를 지양하고 '사건'으로서의 '생성'으로서의 글쓰기를 하였던 이유에 대해서 동의한다면 어떻게보면 철학은 문학으로서 '완성'되어야하는 어떤 건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럼에도 철학과 문학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 차이는 마치 정신분석학에 비유하자면 정신분석가와 '증상'을 보이는 환자와의 차이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요? 양자가 서로에 대해서 '전이'한다는 점에서 '친연성'을 보여주기도 하고요..

님과같이 니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비교하다보니 누가 더 '잘났나?'를 비교하는게 부질없는 짓인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치네요...^^

로쟈 2005-11-14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oonta님의 비유에 따르자면(물론 yoonta님만의 비유는 아니지만) 철학이 '정신분석가'라면 문학은 '환자'가 되겠군요. 일리 있는 의견이나 그런 만큼 '통속적'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비평과 진단>의 들뢰즈라면 동의하지 않을 의견입니다. 문학과 정신분석학의 관계는 사실 더 복잡하니까요. 프로이트의 '도스토예프스키와 부친살해'도 한 가지 사례가 될 것입니다. 그는 도스토예프스키, 혹은 '정신병동의 셰익스피어'에게서 많은 걸 배우고 있습니다(자신의 이론을 적용하는 게 아니라).

yoonta 2005-11-14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통속적'이라..어떤 의미에서 그렇게 보셨는진 모르지만 제 말은 어디까지나 비유지 문학이 정말로 '환자'라는 이야기는 아닌데요? 그리고 설령 문학이 환자라고 하더라도 그때문에 문학이 '폄하'되는 건지도 잘 모르겠고요. 정신분석학자처럼 논리적이고 이성적이어야만 '우월한'사고라는 편견을 가지고 계신건 아닌지..그리고 프로이트는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만 배운게 아니라 그들의 '환자'들에게서도 배운 것 아니었던가요?

로쟈 2005-11-14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환자'란 말이 폄하의 의미가 아니듯이 '통속적'이란 말이 폄하의 의미를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흔히 그렇게 생각하기 쉽다는 의미에서 쓴 말입니다. 제 의견은 의사-환자의 이분법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정신분석학자처럼 논리적이고 이성적이어야만 '우월한'사고라는 편견을 제가 갖고 있다면, 굳이 도스토예프스키 등의 문학을 옹호할 필요가 없습니다(정신분석학이 얼마만큼 논리적/이성적인가란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덧붙이자면, yoonta님은 문학/예술이 비논리적이며 비이성적(감성적)이라는 편견을 갖고 계신 건가요?

yoonta 2005-11-14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까지나 상대적인것 아닌가요? 문학과 철학사이의 관계는 이런 댓글로 답하기에는 쉽지않은 복잡한 관계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철학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문학/예술은 감성적이고 '기표'의 효과에 의한 '사건'으로의 생성의 측면이 강하다는 거죠. 그것이 편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로쟈님이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는게 아니냐는 말은 기분나쁘시다면 취소..^^ 꼭 그렇다는 의미로 쓴 문장은 아닙니다..

로쟈 2005-11-14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댓글로 다루기에는 덩치가 너무 큰 문제입니다. 나중에 책 한 권씩 쓰도록 할까요?^^ 더 좋은 건 그런 주제를 다룬 책이 나와주는 것이겠지만...
 

3년전 가을에 쓴 두 개의 짧은 글을 편집해서 옮겨온다. 우연히 다시 읽게 되었는데, 요즘의 관심사와도 무관하지 않아서 읽을 만했다. 새롭게 몇 마디 보탰지만, 보탠 말들에 따로 표시를 하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이 글은 2002년 가을의 글이면서 2005년 가을의 글이기도 하다.  

 

 

 

 

 

 

 

  

 

 

<비평>(2002년 가을호)에 주제서평으로 '피에르 부르디외'가 실렸다. 서동욱의 <들뢰즈의 철학>(민음사, 2002)과 함께 산 책인데, 부르디외는 내게 언제나 안티-철학을 연상케 하는 사회학자라는 점에서 들뢰즈와 부르디외란 조합은 아이러니컬하다. <파스칼적 명상>(동문선, 2001)을 다룬 홍성호 교수의 글에서 재인용한 부르디외의 고백(나는 그 책의 서반부밖에 읽지 못했다):


"나는 내가 지식인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정당화되었다고 진정으로 느껴본 적이 전혀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의 사유에서 철학적 주지주의 같은 그런 위상에 연결될 수 있는 모든 것을 추방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나 자신 안에 있는 지식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이러한 부르디외의 철학(적 주지주의) 비판이 비록 바깥으로부터의 비판이긴 해도 철학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비판(철학을 흡수/해소시키려는 전략) 못지 않게 문제적이며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대담에서 부르디외는 마르크스를 철학화(philosophizing)하는, 그래서 생각하기에 좋은 것(good to think)으로 만드는 알튀세르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는데(아마도 고종석과의 대담이었던 듯하다. 기억에 대담은 <책읽기/ 책일기>(문학동네, 1997)에 실려 있다), 그의 이러한 비판은 레비스트로스의 관념론적 인류학에 대한 마빈 해리스의 유물론적 비판과 짝지을 만하다(해리스는 <문화유물론>(민음사, 1996)에서 레비스트로스의 <신화학>(한길사, 2005)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신랄하게 비판한다).

 

아무려나 부르디외의 고백은 그 연장선상에서 읽힌다. 단적으로 말해서 철학은 자신이 말해지는 장소(where)에 대해서 무지하며 둔감하다. 그래서 철학은 어디에서나(everwhere)나 적용가능할 걸로(이게 소위 보편성이다) 착각한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나는 아무데서나(nowhere)의 다른 이름이다. 팍스 로마나나 팍스 아메리카와 같은 착각과 패권의 남용이 철학에도 작동하고 있는데, 이름붙이자면 '팍스 필로소피카'쯤이 될까?


근대 철학적 인식론의 경우에도 '그것은 무엇인가?(What is it?)'란 물음의 무엇(what)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소위 형이상학의 '고질'이다). 그 인식의 주체는 보편적 주체이지 (고진이 말하는) 단독자가 아닌다. 즉 그 주체는 아무도 아닌(noman) 모든 사람(everyman)이다. 거기엔 그것이 누구에게 진리인지, 어디에서 진리로 통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반성이 결여되어 있다. 나에게 부르디외의 사회학은 무엇보다도 그러한 철학의 결함에 대한 추궁으로 읽힌다. 그의 장이론이 얘기하는 것이 바로 모든 상징적 재화가 거래되는 장소(where) 아닌가? 철학적 담론이 그 자신이 통용되고 정당화되는 장소의 상대성에 주목하지 않을 때, 역설적으로 상대화되고 사소화된다. 이에 대한 가장 신랄한 문학적 사례는 안톤 체홉의 단편들과 희곡들에서 찾을 수 있다(동완 선생의 체홉 번역을 나는 좋아한다. 재작년에 신원문화사에서 재출간되었다).

 

 

 

 

 

 

 

 

 

 

철학이 그 장소의 문제에 그나마 관심을 기울여 얻어낸 것은 자신의 기원으로서의 '그리스'이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백이다: "철학자는 모두 그리스인이다."(리쾨르) 데리다 밝혀놓고 있는 것은 이 그리스적 기원으로부터 철학이 탈출하는 것의 불가능성이다. 그것이 불가능한 것은 철학의 언어들이 갖고 있는 그리스적 기원 때문이다. 그 탈출가능성을 말하는 언어들이 이미 그리스적 기원의 언어들이라는 것. 따라서 탈출은 말이 아닌 제스처로써만 가능하다. 마임으로만. 따라서 그리스와는 다른 기원의 철학을 모색하는 들뢰즈의 철학은 언어로써 언어의 바깥을 지향하는 '마임의 철학'이다. '아무데서나(nowhere)' 대신에 들뢰즈가 내세우는 것은 '지금-여기(now-here)'이고 '에레혼(erehwon)'이다.


서동욱의 '경험론과 철학'이란 글은 철학의 다른 가능성으로서 유대적 기원(레비나스)과 노마드적 기원(들뢰즈)을 암시한다. 나는 그것이 또다른 철학으로 불려야 할지 아니면 철학을 넘어선(비철학) 다른 무엇가로 호명되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들뢰즈의 철학은 'non-philosophy'로 지칭되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의 기원에 대한, 장소에 대한 물음 앞에까지 철학이 도달해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사실 이러한 물음은 철학이 충분히 사회학화될 때 더 잘 규명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안톤 체홉의 사할린 섬 리포트도 그런 의미를 갖는 건 아닐까?

 

 

 

 

 

 

 

 

 

 

참고로, 철학에서 누구(who)의 문제를 제기한 것은 니체이다. 그에게 동일한 사태 혹은 진리는 주체의 존재양식에 따라 다르게 현상하는 것이었다. 이 점은 들뢰즈가 <니체와 철학>(1962)의 서두에서부터 표나게 내세우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니체의 가장 일반적인 기획은 철학에 의미와 가치의 개념을 도입하는 데 있다. 분명, 현대 철학은 대부분 니체 덕으로 살아왔고, 여전히 니체 덕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아마도 니체가 원했던 식은 아니었을 것이다. 니체는 의미와 가치의 철학이 비판이어야 함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 칸트가 가치의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참된 비판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점, 바로 이것이 니체가 저작에 착수하게 된 동기들 가운데 하나였다... 가치철학이란 참된 비판의 실현이며, 전면적인 비판을 실현하는 유일한 방식, 다시 말하자면 철학을 '망치질'로 만드는 방식이다."

 

 

 

 

 

 

 

 

 

 

그러한 니체 자신이 가장 높이 평가했던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 '유일무이한 심리학자' 도스토예프스키이다. 문학사가인 치제프스키를 따르자면,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은 칸트 비판에 있어서도 니체와 같은 전선에 선다. 아니 보다 더 철저하다. 치제프스키는 '도스토예프스키에 있어서 분신의 주제'란 논문(르네 웰렉 편, <도스토예프스키 연구>, 열린책들, 184-210쪽)에서 이렇게 말한다(이 글은 가장 훌륭한 도스토예프스키론 중의 하나이다.)

 

다시 말해서, 도스토예프스키가 주장하는 사랑은 보편적/추상적 인간에 대한 사랑도 아니고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도 아니다. 그것은 구체적인 개인으로서의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이것이 <톨스토이가 가르친 성경이야기> 류에 상응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르침이며,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의 진정한 주제이다. "여러분 사랑해요!"라는 말보다 쉬운 고백은 없다. 그것은 제스처이다. "나는 모든 인간을 사랑한다"고 일기에 적어놓는 일도 기분나면 매일같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건 자기애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정작 어려운 사랑은 바로 곁에 있는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그리스도는 말했다. 그는 그 외에 다른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어도 무방하다. 그런데, 그러한 사랑을 말하는 순간, 철학은 그 구체적인 사랑을 철학화한다. 그게 철학의 본성이기 때문이다(그래서 이건 '크라잉게임'이다). 그러한 사랑을 말하기 위해서라면 철학은 좀 변신할 필요가 있다. 들뢰즈의 온갖-되기를 그런 맥락에서 읽을 수는 없을까? 들뢰즈의 다양체(multiplicity)를 '나'도 '인간'도 아닌 '이웃'으로 읽을 수는 없을까? 그렇게 읽을 수 있는 어떤 내재성의 공간이 주어진다면, 거기서 니체를 통과해온 도스토예프키는 들뢰즈와 대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지에 입을 맞추면서 자신을 놓아버린 익명적, 비인칭적 주체로서...

 

05. 11. 10. 

 

P.S. 이 글의 원 재료는 '철학이냐 사회학이냐"와 "칸트와 도스토예프스키"이다. 해서 "철학이냐 문학이냐"란 제목으로 통합하려고 했으나 '이웃'을 사랑해야겠기에 OR 대신에 AND를 넣어, "철학 또는 문학" 혹은 그냥 "들뢰즈와 도스토예프스키"라고 해둔다...


"인간의 윤리적 행위는 세 가지 양상을 가진다. <누군가가(Someone) 어디에서(Somewhere) 어떻게든지(Somehow)>가 어떤 윤리적 행위에 필연적으로 연루된다. 처음의 두 요소는 완전히 구체적이고 개인적이다. 그러나 세 번째 것은 추상적으로, 즉 논리적인 용어로 채택될 수 있다. 추상적이라는 것은 가장 원초적이며 가장 단순한 형태이다. 바로 이런 까닭 때문에 우리는 도덕철학의 역사에서 윤리적 행위의 첫 번재 두 요소들을 무시하거나 혹은 추상적 사유의 방식으로 그것들을 도식화하든가 하는 경향을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윤리적 행위의 <어떻게(how)>는 <누가(who)>와 <어디에서(where)>로부터 완전히 추상화함으로써 성립되는 것이다..."

 

 

 

 

 

 

 

 

 

 

 

그렇게 성립하게 되는 형식적 윤리와 법사상에 대한 예리한 분석/해명은 서동욱의 <차이와 타자>(민음사, 2000)의 제6장 '들뢰즈의 법개념'에서 찾아볼 수 있다(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대목이다). 이때 명시적으로 참조되는 작품은 카프카의 <유형지에서> 같은 것이다. 그러한 형식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니체와 도스토예프스키는 한 편이 될 수 있지만, 치체프스키-도스토예프스키는 니체마저도 불충분하다고 지적한다. '영원회귀'라는 반복이 또다른 '보편화' '형식화'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영원회귀'를 주제로 한 가장 인상적인 영화는 빌 머레이 주연의 <사랑의 블랙홀>이다. 문학작품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민음사, 1990), 그리고 네하마스의 <니체, 문학으로서의 삶>(책세상, 1994)도 읽을 만한 통찰을 포함하고 있다.  

 

 

 

 

 

 

 

 

 

 

다시 치체프스키: "우리가 의식적으로 윤리적 합리주의자들이 아닌 사상가들 속에서조차도 윤리적 주체에 대한 그런 강조의 결핍을 발견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심지어 칸트의 '정언명령'조차 윤리적 주체의 개인적 구체성을 무시하고 있다. 칸트에게는 <도덕적 법칙들은 자연의 일반법칙들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윤리적 세계의 주요한 특징은 그것의 획일성과 단조로움이다... 게오르그 짐멜이 명확하게 제시했던 것처럼 '영원회귀'에 대한 그(니체)의 가르침은 도덕적 세계의 획일성과 단조로움에 대한 칸트의 개념에 단지 또 하나의 형식만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칸트, 피히테, 니체, 이들 세 사람의 사상가들 속에서 윤리적 주체는 개인적 구체성의 주요한 특징을 상실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반복될 수도 복제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비판의 요점은 칸트나 니체의 윤리학이 윤리적 주체를 배제함으로써 윤리적 행위를 추상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에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 자유의 영역이란 건 윤리적 주체의 구체성의 영역이다. 보다 원론적인 질문을 던지자면, 철학이 인간의 자유를 충분하게 다룰 수 있느냐는 것, 혹은 철학이냐 문학이냐(문학적인 니체가 언제나 철학적인 니체를 넘어선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의 장소', '자유의 영역'은 달리 해석되고 있다. 즉, 그는 '이웃'이라는 기독교적 개념, 다시 말해 다수의 윤리적 주체들의 구체적인 개인적 존재를 기본적인 윤리적 전제사항으로 받아들이고서 출발한다. 윤리적 합리주의는 일반적으로 오직 인간에 대한 사랑만을 이해할 뿐 '이웃'은 낯설고 멀리 있다. 그러나 우리의 윤리적 행위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명확히 '이웃'이라는 구체적 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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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11 1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5-11-11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알라딘에서는 '문화유물론'을 치시면 됩니다. 품절된 책이지만. 원제는 제 기억에 'Cultural Materialism'이고, <문화의 수수께끼>의 저자 마빈 해리스 주장하는 자신의 방법론입니다.

yoonta 2005-11-11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눈에 띄는 오자들...^^
모마드적 기원---->노마드적 기원
요수들을----->요소들을

도스토예프스키를 상당히 좋아하시나보군요..니체를 넘어선 윤리적 주체의 구체성을 그에게서 보실정도면 말이죠..님의 글을 보면서 질문이 생기는데..박노자의 <하얀 가면의 제국>을 읽어보면 도스토예프스키를 '골수보수주의자'로 평가하더군요..그의 작품을 "악을 가능하게하는 환경을 '단순한 표피'로 규정한 채 '영혼 속의 악의 본질'에 대한 탐구에 매달렸다"고 보더군요..즉 인간의 윤리의식을 사회환경속에서 이끌어 내는 것이 아니라 "영혼속에 악의 본질이 내재돼 있다는 성악설"을 취해서 나온 방식이라는 겁니다. 때문에 기독교적 국가와 교회가 인간을 훈육해야만 사회가 생지옥이 되는 것을 막을수 있다고 하는 홉스적 국가관을 가지고 있다고 보더군요. 이런 요소들 때문에 그는 당시의 자유분방한 서방국가들보다는 슬라브중심의 민족주의에 집착하였고 타민족에 대한 침략(예컨데 터키)등을 노골적으로 지지하기도 하였다더군요..이런 관점은 분명 님이 평가하시는 도스토예프스키와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는데요..님이 위에서 말씀하신 이웃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윤리적 주체로서의 개인이 (박노자의 해석을 받아들인다면) 결국은 국가나 기독교에 의해 훈육되어야만 하는 대상에 불과한 것이고 그런 것을 전제로한 '윤리'라고 한다면 제가 받아들일수 없는 '윤리적' 주체가 될것 같은데..로쟈님은 이러한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로쟈 2005-11-11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에 쓴 것들에 오타가 많군요(타자를 잘 못쳤던 모양입니다.^^) 박노자의 도스토예프스키 비판은 저도 읽었었고, 그에 대한 질문도 3년 전에 받았었습니다. 그때 제가 적었던 걸 겸사겸사 페이퍼로 옮겨놓겠습니다...
 

 

 

 

 

강의 준비로 러시아 형식주의 영화론에 대한 책을 읽다가 잠시 '딴짓'을 한다('러시아 형식주의'에 대해 몇 마디 광고한다는 명분으로!). 문학이론입문서로서 가장 널리 알려진 <문학이론입문>(창비사, 1989)에서 저자인 테리 이글턴은 20세기 문학이론의 기점을 빅토르 슈클로프스키의 에세이 '기법으로서의 예술'(1917)로 잡는다(이글턴의 책은 인간사랑에서도 번역서가 뒤에 나왔지만 창비사판을 권한다). 가까이에 번역서가 눈에 띄지 않아 원서(1983) 서문의 첫 문장을 그대로 인용하면 이렇다: "If one wanted to put a date on the beginnings of the transformation which has overtaken literary theory in this century, one could do worse than settle on 1917, the year in which the young Russian Formalist Victor Shklovsky published his pioneering essay 'Art as Device'."

'젊은 러시아 형식주의자(the young Russian Formalist)'라고 한 건 그때 슈클로프스키(1893-1984)의 나이가 24살이었기 때문이다(그는 90세 이상 장수했는데, 그건 그의 '타협적인' 성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형식주의자들 가운데에서 1920년대 맑스주의자들의 공세에 가장 먼저 백기를 들고 투항한 이가 소위 형식주의의 '마니페스토'를 쓴 슈클로프스키였다). 여하튼 이 혁명적인 에세이가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바로 그 해에 발표되었다는 건 우연의 일치이면서도 의미심장하다('러시아 형식주의'는 '러시아 혁명'과 운명을 같이 한다? 실상 형식주의의 궤멸과 함께 소비에트 러시아는 레닌주의에서 스탈린주의 체제로 넘어가게 된다. 아니 순서적으로는 거꾸로가 맞겠다. 스탈린 체제의 성립과 함께 '이론적 아방가르드'로서의 형식주의는 궤멸한다).

자신의 기념비적인 에세이에서 슈클로프스키가 '간판'처럼 내세운 명제는 예술이란 기법의 총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법들이 의도하는 효과가 '낯설게하기'이다. 그리하여 예술이란 다름아닌 '낯설게하기'이다. 가령, 화장을 거의 '떡칠'을 해서 애인이 못알아봤다면(보다 정확하게는 '힘들게 알아봤다면': '누구시더라?') 그 화장이 '예술'이다. 혹은 평소에 '떡칠'을 하고 다니다가 어느날 용감하게 노메이크업을 해서 다시금 애인이 못알아보게 만들었다면(보다 정확하게는 '힘들게 알아보도록 했다면': '당신이야?!') 그 맨얼굴이 또한 '예술'이다. 물론 전문적인 얘기로 하자면 끝이 없는 까닭에 대략 그렇다고만 해두자(나는 따로 책 한 권을 준비중이다).

'낯설게 하기'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과 예리한 분석, 그러니까 '낯설게 하기의 미학과 정치학'에 대해서는 이장욱의 <혁명과 모더니즘>(랜덤하우스중앙, 2005)을 참조할 수 있으며(바흐친과 로트만에 대한 글들도 시려 있다), 국내 필자들에 의한 연구서 <러시아 형식주의>(한국외대출판부, 2001)에도 요점이 정리돼 있다. 참고로 브레히트 서사극에서의 '생소화 효과' 혹은 '소격 효과'라는 것은 이 형식주의의 '낯설게 하기'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또 에코의 <낯설게하기의 즐거움>(열린책들,  2003)은 (비록 원제는 아닌 듯하지만) 기법으로서의 '낯설게하기'가 얼마나 널리 쓰이고 있는가를 가늠하도록 해준다(에코는 로트만의 <문화기호학(Universe of the mind)> 영역본 서문을 쓰고 있기도 하다).  

 

 

 

 

슈클로프스키의 이 유명한 에세이는 세 가지 우리말 번역본을 갖고 있다. 가장 먼저 나온 건 토도로프가 러시아 형식주의 문학론을 프랑스어로 번역하여 소개한 <문학의 이론>(1965)에서 김치수 교수가 9편의 글을 발췌/번역한 <러시아 형식주의>(이화여대출판부, 1981/1988)이다. 츠베탕 토도로프(1939- )에 대해서 개괄적인 내용은 존 레흐트의 '인명사전' <현대사상가 50>(현실문화연구, 1996/2003)를 참조할 수 있다(생년이 '1941년'으로 오기돼 있다). 저자 레흐트는 크리스테바 전문가.

크리스테바(1941- )와 마찬가지로 불가리아 출신의 걸출한 '사무라이' 토도로프는 1963년에 파리로 건너가 롤랑 바르트의 제자가 된다. 그가 방대한 분량(315쪽)의 <문학의 이론>(로만 야콥슨이 서문을 썼다)을 불어로 옮겨 출간한 것은 러시아 형식주의 문학론의 소개라는 기본 취지 외에도 프랑스 지식사회에 대한 입문의식 성격을 갖고 있었으리라. 즉, 그 책의 화용론적 의미는 토도로프의 자기 존재증명이었던 것. 그의 나이 26살 때의 일이다. 

토도로프를 모방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크리스테바도 바흐친론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그녀는 1967년, 26살에 '말, 대화, 그리고 소설'이라는 바흐친론을 당시 전위적인 잡지 <텔켈>에 게재함으로써 일약 주목받게 되며(그녀는 편집장이던 솔레르스와 결혼한다) 바흐친의 <도스토예프스키의 시학> 불어판 역시 그녀의 주도로 1970년에 출간된다. 거기에 그녀가 쓴 저명한 서문이 '시학의 파괴'이다. 참고로, 크리스테바 선집이 작년에 러시아에서 출간됐으며, '말, 대화, 그리고 소설'의 우리말 번역은 <바흐친과 문학이론>(문학과지성사, 1995)에 수록돼 있다(물론 매우 어려운 논문이며, 국역본은 일부 오역을 포함하고 있다).

 

 

 

 

토도로프의 책들은 <구조시학>(문학과지성사, 1985)을 필두로 하여 여러 권이 출간돼 있고, (몇 권 나오다가 중단됐지만) 90년대 중반엔 한국문화사에서 토도로프 전집까지 기획했었다. <상징의 이론>(한국문화사, 1995), <덧없는 행복: 루소론/ 환상문학 서설>(한국문화사, 1996), <비평의 비평>(한국문화사, 1999) 등이 전집의 일환으로 나왔던 책들이다. 그 외에도 <산문의 시학> 번역서 2종(문예출판사, 1992; 예림기획, 2003), <담론의 장르>(예림기획, 2004) 등의 이론서와 <일상예찬>(뿌리와이파리, 2003)이 국내에 번역/소개돼 있다. 절판된 책이지만, 바흐친 연구서 <바흐찐: 문학사회학과 대화이론>(까치, 1989)은 얇지만 매우 통찰력 있는 개론서이다. 토도로프의 책은 대부분 영역돼 있으며, 일어의 경우에도 사정은 비슷할 듯하다(러시아어본은 본 적이 없다).

 

 

 

 

스승인 바르트가 구조주의자에서 포스트구조주의자로 변신해가는 데 반해서 토도로프는 제라르 주네트와 함께 가장 철저하게 문학에서의 구조주의를 대표하는 이론가로 남게 되는데(정신분석에 대한 그의 거부감은 좀 유별나다), 그의 그러한 면모를 가장 잘 보여주는 책은 <환상문학 서설>이다. 문학에서의 환상성 혹은 환상문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필독해봐야 할 책이다(주로 영역본으로 읽은 탓에 국역본의 상태에 대해서는 자신할 수 없지만). <환상문학 서설>은 한 문학적 장르에 구조주의적 방법론이 어떻게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는가를 선구적으로 타진하고 있는 책이며 1970년에 나왔다. 로즈메리 잭슨의 <환상성>(문학동네, 2001)은 그러한 토도로프의 성취를 사회/정치적 맥락과 정신분석학적 분석으로 보완하고 있는 책이다. 두 사람에게서 모두 중요한 전거로 쓰이고 있는 작품은 푸슈킨의 <스페이드 여왕>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환상예술의 최고봉'으로 격찬한 작품.  

토도로프 얘기가 괜히 길어졌는데, 하여간에 토도로프가 러시아 형식주의를 최초로 서구에 소개했다는 말씀이고, 그런 사정은 우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는 것. 이어서 나온 것이 <러시아 형식주의 문학이론>(청하, 1986)인데, 이 책은 레몬과 레이스가 편집한 유명한 영어본 엔솔로지 <러시아 형식주의 비평(Russian Formalist Criticism)>(1965)을 옮긴 것이다. 슈클로프스키의 글 2편과 토마세프스키, 에이헨바움의 글 각각 1편이 실려 있다. 검색하다 보니까 <러시아 형식주의 문학이론>(월인재, 1980/1995)도 눈에 띄는데(이런 건 '희귀본'이다!), 역자가 한기찬이라 돼 있는 걸로 보아 청하 번역본이 다시 출간됐던 듯하다(전문번역가인 한기찬씨는 청하의 번역자로 활동한 바 있으며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 그의 손이 간 번역이다).  

참고로, 또다른 영어본 '형식주의'로는 <러시아 시학 선집(Readings in Russian)>(1971/2002)이 있는바, 더 많은 분야에 걸친 19편 대표적인 글들이 영역돼 있다(이 책은 마테이카와 포모르스카가 편집했는데, 포모르스카는 저명한 시학자이자 야콥슨의 아내이다). 현재는 절판됐지만 조주관 교수 편역의 <러시아 현대비평 이론>(민음사, 1993)은 러시아 원전을 번역한 것이되, 편제와 주석 등은 <러시아 시학 선집>을 참고한 책이다. 물론 이 책에도 '기법으로서의 예술'이 번역돼 있는바, 내가 말하는 세번째 번역이다.   

말이 너무 길어져서 형식주의 텍스트의 독어본, 러시아본 얘기는 다른 기회로 미루어야겠다. 형식주의 2차 문헌, 그러니까 형식주의 연구서나 참고문헌으로 가장 먼저 꼽아야 하는 책은 물론 빅토르 어얼리치의 <러시아 형식주의>(문학과지성사, 1983)이다. 형식주의의 역사(1부)와 이론(2부)를 다루고 있는데, 원저(1955 초판)은 저자의 박사학위논문이며, (러시아를 포함하여) 형식주의를 포괄적으로 다룬 최초의 연구서이다. 이에 견줄 만한 책으론 독일 학자 한젠 뢰베의 방대한 연구서 <러시아 형식주의>가 있으며 이 책은 러시아어로도 번역돼 있다(물론 분량상 이런 책이 국내에 번역/소개될 가능성은 당분간 제로다).

 

 

 

 

문예학자 페터 지마의 <문예미학>(을유문화사, 1993)에는 러시아 형식주의와 (야콥슨과 무카르좁스키가 주도한) 체코 구조주의에 대한 비교적 자세한 소개가 들어 있다(이미지가 없어서 <이데올로기와 이론>을 대신 띄워놓았다). 형식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고전적인 것은 트로츠키의 <문학과 혁명>(한겨레, 1989; 과학과사상, 1990)인데, 제5장이 '형식주의 시학파와 마르크스주의'이다("그들은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태초에 행위가 있었다고 믿는다."란 구절로 마무리된다). 트로츠키의 비판은 예리하지만 진행중이던 형식주의의 잠재적 역량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과소평가는 프레드릭 제임슨의 형식주의/구조주의 비판서 <언어의 감옥>(까치, 1990)에서도 읽혀진다. 반면에 <형식주의와 마르크스주의>(현상과인식, 1983)의 저자 토니 베네트는 둘 사이에 생산적인 접점을 찾아보려고 한 경우이다.

슈클로프스키와 함께 형식주의를 주도했던 대표적인 이론가로 에이헨바움과 티냐노프(트이냐노프)를 들 수 있으며, 흔히 형식주의 3기의 대표자로 불리는 티냐노프에 이르게 되면 형식주의는 자기 극복과 갱신의 생산적인 이론적 모태(매트릭스)를 발견하는 데까지 나간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시도는 외압에 의해 좌절되며 형식주의의 유산은 제대로 관리/계승되지 못했다(아직 살아있는 이태리 사람 프랑코 모레티와 이미 죽은 러시아 사람 유리 로트만이 내가 보기엔 형식주의의 가장 걸출한 계승자이다).

이러한 사정은 영화론이라는 분야에 한정지어도 마찬가지이다. 형식주의 영화론 엔솔로지인 <영화의 형식과 기호>(열린책들, 1995/2001)에는 티냐노프와 에이헨바움, 야콥슨, 세 사람의 논문이 번역돼 있는데, 원본은 러시아어본이 아니라 <러시아 형식주의 영화이론(Russian Formalist Film Theory)>(1981)라는 영어본 엔솔로지이다(러시아에는 이런 류의 책이 아직 나와 있지도 않다). 내용은 들뢰즈의 영화론 이상으로 읽어나가기 어렵다. 반면에 같이 실린 로트만의 영화론 <영화기호학과 미학의 문제>은 읽기 편하며 내용도 간명하다. 로트만과 치비얀 공저의 <스크린과의 대화>(우물이 있는집, 2005)는 로트만 사후에 출간된 그 후속편이라 할 만하겠다(그러니까 세트로 읽는 게 좋겠다). <영화기호학>(민음사, 1994)은 <영화기호학과 미학의 문제>와 같은 책이다. 

참고로, 러시아/형식주의 영화론의 계승자로 치비얀과 함께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는 미하일 얌폴스키이다(그의 영화론 한 권은 영역돼 있다). 티냐노프의 형식주의와 현상학, 그리고 들뢰즈를 이론적 지반으로 삼고 있는데, 작년에 그의 주저 <언어-신체-사건>이 출간됐다. 비록 로트만보다 더 멀리 가고 있지만 이 역시 조만간 국내에 번역/소개되지는 않을 듯하다...

05. 11. 10.    

P.S. 부랴부랴 끊는다. 젠장, '딴짓'은 아무때나 하면 안되겠다. 내일 강의는 누가 대신해준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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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다 2005-11-10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이 깊어만 가는군요. 요즘은 정신없이 바빠서 가을을 음미할 틈도 없네요. 러시아 형식주의는 저도 관심이 가는 주제입니다. 기대하겠사와요.
그나저나 로쟈님 요즘은 조금 여유가 있으신가봐요? 자주 올려주시는 좋은 글들 잘 읽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자주자주 브리핑 해주세요~~~히히

2005-11-10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5-11-10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니다님/ '자주'라니요? 안될 말씀입니다.^^ **님/ 저까지 걱정해드리진 않겠습니다. 잘 하시겠지요.^^

코끼리 2006-12-29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시아 형식주의 문학이론>(월인재) 초판은 1980년입니다. 내용은 청하본과 같습니다. 로쟈님의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

로쟈 2006-12-30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제가 월인재판은 보지 못했습니다.^^
 

 

 

 

 

 

 

 

 

 

지난번에 신간 러시아 판타지 소설 <나이트 워치>를 소개하면서 러시아 입문서 두 권에 대해서도 덧붙인바 있는데, 그걸 조금 보완하고자 한다. 오늘자 한국일보의 '강정의 나쁜취향'에서 러시아 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다루어지기도 해서 대략 '분위기'도 좋은 걸로 간주하고 말이다. 물론 우호적인 분위기만 형성돼 있는 건 아니다. 며칠전 뉴스에서는 극동러시아에서 가짜 술을 마시고 주민 19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타전됐으니까.

 

인테르팍스통신에 따르면,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3일까지 마가단 시에서 가짜 술을 마신 주민 23명이 복통증세로 입원해 이가운데 19명이 사망했다. 말 그대로 독주(毒酒)를 제조하고 또 그걸 마신 것인데, 지역 내무국(우리의 경찰)은 '사마곤'이라는 가내 술을 제조해 판매한 지역 주민 4명을 검거했다고(대낮에 아직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 나라가 러시아 말고 또 있을지 궁금하다). 해서, "러시아는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다." 웬만해야 말이지.

 

"러시아는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다"(1866)는 사실 19세기 러시아의 표도르 이바노비치 츄체프(1803-1873)의 시구이다(다른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시도 제목이 없는 경우 대개 1행을 제목처럼 사용한다). 츄체프란 이름을 영어로 음역하면 'Tjutchev'가 되는데, 이에 대한 우리말 표기는 '튜체프', '츄체프', '쮸체프' 등 다양하다('쮸쳅'이라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 귀족출신에다 외교관이었는데 시인으로 인정받은 것은 좀 나이가 들어서이다. 해서 '철지난 낭만주의' 경향의 철학적인 시들을 주로 썼다. 

 

하지만 문학사에서의 평가는 후한 편이어서 푸슈킨(1799-1837) 이후의 19세기 최대 시인으로 꼽힌다. 그리고 그러한 평가에 한몫한 이가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이다. <츄체프와 도스토예프스키>란 연구서가 있는 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다. 사실, 둘의 친연성은 "러시아는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선언적인 시에서도 유추해볼 수 있다(도스토예프스키 왈, "유럽은 러시아를 이해할 수 없지만 러시아는 유럽을 이해할 수 있다." 왜 아니겠어?). 

 

 

츄체프의 시들은 더러 우리말로 번역/소개돼 있지만 시집으론 <말로 표현한 사상을 거짓말이다>(새미, 2001)가 유일하다. 어차피 시란 (잘) 번역되지 않으므로 아쉽지만 유감스러울 정도는 아니다. 그 번역시집은 내가 안 갖고 있는데, 지금 인용하고자 하는 번역은 예일 리치먼드의 <러시아, 러시아인>(일조각, 2004), 107쪽에도 실려 있는 것이다.   

 

지성만으로는 러시아를 이해할 수 없네,

별난 기준이 그 광대함을 채우고 있기에;

러시아는 홀로 유일무이하게 서 있도다 -

러시아에서는 오로지 믿음뿐.

 

매우 유익한 러시아 입문서로서 내가 추천까지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시만큼은 부정확하게 번역되었다. 음역한 원문과 영역, 그리고 나의 번역을 차례로 나열하면 이렇다: 

 

Umom Rossiju ne ponjat',

Arshinom obshchim ne izmerit';

U nej osobennaja stat' -

V Rossiju mozhno tol'ko verit'.

 

One cannot understand Russia with the mind;

She cannot be measured with a common yardstick.

She has a special image.

One can only believe in Russia.         

 


러시아는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다.

러시아는 보편적인 척도로 잴 수 없다.

러시아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으니

러시아를 우리는 단지 믿을 수 있을 뿐이다.

시 흉내를 내느라고 '러시아'란 두운을 맞추었는데, 내용은 간단하다. 러시아는 뭔가 특별하기 때문에 이성으론 이해할 수 없고 다만 믿을 수 있을 뿐이라는 것. 그러니 "지성만으로는 러시아를 이해할 수 없네,/ 별난 기준이 그 광대함을 채우고 있기에;/ 러시아는 홀로 유일무이하게 서 있도다-/ 러시아에서는 오로지 믿음뿐."이란 번역(특히 2행)이 부분적으로 엉뚱하다는 건 알 수 있다. 요컨대, 우리는 "러시아는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시조차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   

 

 

 

 

어제 날짜 한겨레의 칼럼 '유레카'는 '영혼의 모독'이란 제목을 달고 있었는데, 이렇게 시작된다: "'사형은 영혼의 모독이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이다. 작가는 <백치>에서 토로한다. '선고문이 낭독되면 이젠 죽음이 기정사실화합니다. 바로 여기에 무서운 고통이 있습니다. 이보다 더 가혹한 고통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리고 덧붙여진다: "상상이 아니었다. 절절한 체험이다. 38살 때다. 사회주의 혁명사상을 논의하던 모임에 참여했다는 이유였다. 체포됐다.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대에 올랐다. 집행하던 순간이었다. 니콜라이 1세의 특사가 내렸다. 시베리아 유형에 처했다." 짧은 문장들로 아주 긴박했던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는데, 문제는 '38살 때' 아니라 '28살 때'라는 것('38살'은 필자의 착오 혹은 상상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1821년생이고 그가 페트라셰프스키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시베리아 유형에 처해지는 것은 1849년의 일이다. 팩트에 좀더 주의를 기울였으면 좋았겠다.

흥미로운 일이지만, 이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 혹은 '러시아 백치'는 들뢰즈 읽기에서도 종종 마주치게 된다. 들뢰즈의 철학극장, 혹은 철학의 경연장에서는 두 종류의 백치가 등장하는데, 그것은 '데카르트적 백치'('방법론적 백치'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와 '러시아 백치'이다. 라이크만이 <들뢰즈 커넥션>(현실문화연구, 2005)에서 정리하고 있는 대목을 따라가본다: 

"데카르트의 경연에서는 '백치'라는 새로운 개념적 인물이 등장한다. 이 백치는 프랑스어 같은 이성적 언어를 선호하는 인물로, 프랑스어는 학술어인 라틴어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다. 들뢰즈는 이 인물이 독창적인 형상임을(비록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에 의해 예견된 것이라 할지라도) 알게 된다... 그러나 이 새로운 인물과 그 빛은 동시에 코기토, 즉 '나는 생각한다'를 철학의 최초의 출발점, 즉 전제조건 없는 출발점으로 만들려는 데카르트의 시도 안에 있는 암묵적인 가정을 드러낸다. 이 가정은 데카르트가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는 것이라고 선언하는 '통념'이라는 가정을 말한다."(77쪽)

비문인가 싶어 다시 읽어보니 굵은 글씨로 내가 표시한 대목은 오역이다(아무래도 역자의 '영어'에 좀 문제가 있는 듯하다). 원문은 "an Idiot who prefers a rational language like French, which anyone can understand to learned Latin."(37쪽) 표시한 대로 'prefer A to B' 구문이고, 여기서는 A에 해당하는 것이 '프랑스어' 그리고 B에 해당하는 것이 '학문어로서의 라틴어'이다. 데카르트적 백치는 현학적인 라틴어 대신에 프랑스어 같이 합리적인 언어를 선택한다는 것.

반면에 '새로운 인물(new persona)'로서의 '러시아 백치'란 데카르트적 백치의 '암묵적인 가정' 마저도 벗어던진 백치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떤 새로운 인물이 통념이라는 사유학적인 기본전제 없이도 해나갈 수 있도록 나타나게 되며, 대신에 러시아문학에서 백치 또는 배우지 않은 사유자라 불리는 인물 형태의 조건에 근접하게 된다."(78쪽) '백치 또는 배우지 않은 사유자'는 'Idiot or unlearned thinker'의 번역이다.

그러니까 러시아 백치는 데카르트적 백치를 더 극단에까지 밀어붙인 형상이라 할 만하다. 그는 프랑스어 같은 자연어의 규칙마저 기꺼이/즐겁게 포기하는 것이다(참고로, 러시아문학에서 가장 철저한 '데카르트적 백치'의 형상이 등장하는 작품으로 톨스토이의 <참회록>(1882)을 들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만큼 <참회록>은 러시아적이기보다는 프랑스적이다. 톨스토이에게서 <참회록>은 새로운 삶을 위한 '방법서설'격의 작품이다).

 

 

 

 

그렇다면, "철학에서 우리는 데카르트의 백치보다는 러시아의 백치를 보는 데서 출발한다."(In philosophy, we start to see a Russian rather than a Cartesian Idiot.) 그 백치는 "프랑스어와 같은 '자연어'에서조차도 개념적으로 낯선 어떤 것을 찾기 시작한다." 이때 들뢰즈가 예시하는 사례는 "폴란드어로 글을 쓰거나 철학적인 독일어를 '춤'으로 만들려는 니체의 꿈"이다. 그리고 (들뢰즈가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라이크만이 들고 있는 사례는 "늘 공적인 교수직과 새로운 분석철학의 '스콜라주의'의 도래에 대해 안절부절" 못했던 비트겐슈타인이다. 거기에 내가 들고 싶은 사례는 실제로 춤을 추었던 러시아의 무용수 니진스키이다(그의 일기 <영혼의 절규>를 보라. 러시아어 원제는 <감정>). 그리고 영화의 용도를 전혀 다른 것으로 만든 타르코프스키. 하면, 니체도 비트겐슈타인도 니진스키도 타르코프스키도 모두가 백치였던 것. 러시아 백치.

다시 들뢰즈: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에서 실제로 철학에서 '전제들 없이 시작하는' 유일한 길은 일종의 러시아 백치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통념이라는 가설을 포기하고, 자신의 '해석 나침반'을 던져 버리고, 그 대신 자신의 '백치짓'을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특이한' 스타일로 바꾸고자 노력하는 그런 백치가."(79쪽) 그런 러시아 백치는 보여주는 것은 무엇인가?

"러시아 백치가 보여주는 것은, 철학적 사유는 학습되는 것이 아니며, 뿐만 아니라 철학이 자유롭게 창조된다는 말은 모든 사람이 동의할 때나 규칙에 따라 놀이할 때가 아니라, 반대로 규칙이 무엇이며 놀이자가 누구인지가 미리 주어지지 않는 대신 (그것들이) 새롭게 창조되는 개념과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들과 함께 등장할 때다."(79-80쪽) 그러니까 데카르트적 백치가 최소한의 규칙을 갖고서 출발한다면, 러시아 백치는 그마저도 빼먹고서 춤을 춘다. 이어지는 문장은 좀 길다.

"다시 말해 이런 백치들은, 처음에는 직관에 의해 주어지고 그 다음에는 많은 복합된 방식으로, 들뢰즈가 인용하기를 좋아한 라이프니츠의 격언, 즉 '우리는 항구에 닿았다고 생각할 때 사실은 여전히 바다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뿐'이라는 격언이 암시하는 방식으로 다른 개념들과 얽히게 되는 개념들을 창조함으로써, 더이상 고정된 방법들이나 선행하는 형식들에서 나왔다고 말할 수조차 없으며 그 대신 자신의 특이한 문제들로 작업하는 데 만족하는 철학을 통해 '실천학적으로 가정'된 것을 극화하도록 돕는다."(80쪽)

이해를 돕기 위해서 줄거리는 굵은 글씨로 표시했는데, 다소 부정확한 대목이 있다. 굵은 글씨로 표기한 대목의 원문은 이렇다: "Such Idiots help dramatize, in other words, what is 'pragmatically supposed' by a philosophy that no longer even purports to be derived from fixed methods or prior forms, that is instead content to work out its pecular problems..."(38쪽) 

역자는 'content to'를 '-에 만족하는'으로 옮겼는데, 'content to-inf'는 ('willing to-inf'처럼) '기꺼이 -하다'란 뜻이 아닌가 한다. 그러니까 우리의 백치들은 사전의 어떤 공식이나 방법 등의 도움을 받지 않고 그 고유한(그리고 아주 복잡한) 문제들을 풀기 위해 기꺼이 달려드는 것. 해서 이 백치들은 난생 처음 수박을 먹어보고(물론 '수박'이란 개념도 갖기 이전에), 난생 처음 헤엄을 쳐본 이들이다(물론 '수영'의 방법도 배우기 이전에). 아무도 가르쳐주기 전에.

 

 

 

 

그렇다면 이 백치와 유사한 형상, 혹은 인물은 <안티 오이디푸스>(와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에 나오는 손재주꾼(handyman)이겠다. 국역본 번역으론 "우리는 이것저것 긁어보아 잘 꾸려내는 자들이다." 불어로는 'bricoleurs'. '개념 없는 자들', 하지만, 개념 대신에 재주를 갖고 있는 자들. 그래서 아무런 개념도 없이 기꺼이 자르고 오려붙이고 해서 무얼 만들거나 아니면 결국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놓는 자들. 아이들. 백치들. 이쯤이면 들뢰즈가 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그토록 경탄해마지 않는지 이해할 만하다. 그에게, 혹은 진정한 경험론자에게 세계는 말 그대로 '원더랜드'인 것!  

 

 

 

 

'앨리스'의 러시아식 이름은 '아냐'이다. 그리고, '아니시야', '안토니나' '안나'가 다 같은 이름들이다. '안나 카레니나'. 이 대목에서 얼마전 장정일 선집의 한권으로 다시 나온 소설 <보트 하우스>(김영사, 2005)를 잠시 떠올려보는 것도 괜찮겠다(이전에 '모스크바통신'에서 한번 소개한 바 있다). IMF가 배경인 소설에서 주인공 애라가 다니는 노문과에는 그녀가 다니는 노문과에는 네 남자 친구가 있었는데, “음악을 좋아하는 차이코프스키. 영화를 좋아하는 타르코프스키. 문학을 좋아하는 도스토예프스키. 미술을 좋아하는 칸딘스키.”가 그들이었다. 이 “네 명의 ‘스키’는 단돈 5만원을 주고 산 폐차 직전의 차를 타고 4년 동안 함께 단짝이 되어” 어울려 다녔는데, “강북에서 프롤레타리아의 피를 빨아, 강남에 부르주아의 천국을 만든 거”라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한 건을 계획한다.

“‘스키’들이 정한 곳은 압구정동에 있는 외제품 전문 백화점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거기에 당도했을 때는 거리에는 차량과 인파가 붐볐고 백화점은 아직까지 영업중이었다. 유럽식 외관을 하고 있는 외제품 전문 백화점의 대리석 벽에 넷이 나란히 오줌을 누기 위해서는 유치장행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에코와 푸코 그리고 바흐친을 이리 저리 섞고 아전인수식으로 변조하여 장래의 문화평론가로 행세하게 될 노어노문학과의 네 ‘스키’들은 전혀 그런 대가를 치를 생각이 없었다. 길거리에 방뇨를 하는 것은 꺼림칙하지 않지만 파출소에 붙들려 들어가 경을 치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맥주와 보드카까지 섞어 마신 ‘스키’들은 보무도 당당하게 백화점 현관으로 걸어 들어가서 도우미의 안내를 받아 현관에서 가장 가까운 화장실을 찾아 들어가 시원하게 오줌을 눈다. 그러면서 “너무나 자연스레, 생리적으로, 체제 친화적이 되었다.” 이들과 같이 차를 타고 동행하던 애라는 히스테리를 부리며 차에서 내려 인도로 뛰어가는데, 그런 “까닭을 이 멍청한 ‘스키’들은 조금도 알지 못했지만, 어떤 현상도 자신들이 분석하지 못할 게 없다고 믿는 이 시건방진 ‘스키’들은 그 가운데 한 명의 ‘스키’가 중얼거리는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흠, 알 수가 없는 여자군. 안나 까레니나야.” 

05. 11. 08.

P.S. 들뢰즈의 '백치'는 영어로 Idiot(백치)로 옮겨지고 어떨 땐 fool(바보)로도 옮겨진다. (라이크만도 혼용하고 있는) 이 '백치'와 '바보'가 같은 것인지 구별되는 것인지 나는 아직 분간이 되지 않는다. 이전에 '바보를 포함하고 있는 세계'에서 헷갈렸던 이유이다. 어쨌거나 들뢰즈에 관한 페이퍼들이 몇 주째 밀려 있다. 머리속에서 웅성대는 말들을 얼른 쫓아내고 싶은데, 그간에 그럴 만한 시간을 내지 못했다. 오늘은 또 '백치들' 때문에 공치고. 하긴 이런 글에 공연히 시간을 축내며 '목숨 거는' 이유는 나 자신도 모를 일이다. 하긴 '로쟈'는 러시아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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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네파벨 2005-11-08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너무나 잼있게 읽다가 (러시아 문학이라고는 근처에도 안가보고 들뢰즈와도 당근 안친하고-일때문에 들뢰즈 책을 억지로 몇구절 찾아본 적이 있기는 하지만-아무튼 무식이 깊은 제가 보기에도 재미있게 쓰셨네요...)

쿤데라의 소설에서도 바로 이런 이야기....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러시아인"에 대해 나오죠. 불멸에서...쿤데라가 호모 센티멘털리스(감정? 감성? 감상? 지상주의자들) 라는 개념을 설명하면서...
러시아를 유럽의 합리주의에 오염되지 않은 위대한 감성의 나라로 소개하지요.
러시아에서 누군가가 거절받은 사랑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면 감성이 메말라 비틀어진 이성의 나라 프랑스의 변호사들이 (잃어버린 감성에 대한 향수로!) 떼거지로 모스크바행 기차 한칸을 전세내 러시아로 달려가 치정범을 변호하고...치정범이 감사의 뜻으로 변호사에게 키스를 퍼부으면 변호사가 질겁을 하고 뒤로 물러나고.....상처받은 치정범이 또 살인을 저지르고...그래서 그 모든 것이 강아지와 순대의 셈노래(이게 무엇일까요? 뭔지 전혀 모르겠지만 또 알 것도 같은 알쏭달쏭한 번역문의 수수께끼처럼 신비스러운 매력^^)처럼 반복되었다......뭐 그런 내용의...

그나저나 데카르트적 백치와 러시아적 백치가 어떤건지 정말 궁금하네요. 특히 데카르트적 백치라는게 과연 무엇일지....궁금...궁금....

이네파벨 2005-11-08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글을 올리는 동안 나머지 부분을 올려주셨군요...
데카르트적 백치와 러시아 백치....흑흑 제겐 너무 어렵군요....
백치라는 말의 정의 조차 헷갈리고 있어욤...ㅠ.ㅠ

내가 바로 백치가 아닐까...나는 무슨 백치일까? (한국산 백치~)

로쟈 2005-11-08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읽어보시면 아마 이해되실 겁니다.^^

이네파벨 2005-11-08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히...어려워요.....

어딘가...좌뇌형 인간과 우뇌형 인간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자연과학쪽이 저의 일차적 관심사이니만큼...)

아무튼 오후를 축내가며 써주신 글....한 사람의 독자로서 감사드려요.

오후의 졸음을 쫓는 커피와 함께...정말 맛있게..향기롭게 음미했습니다.

yoonta 2005-11-08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테의 신곡에서부터 시..그리고 산문집까지 문학이라는 '원더랜드'에서 좌충우돌하시는 로쟈님의 모습도 '백치'라고 한다면 로쟈님에 대한 칭찬인까요?...
하루빨리 데카르트적 백치성을 회복하시어...흄의 경험론이후 진척이 없는 들뢰즈관련 페이퍼좀 올려주세염..눈 빠집니당.^^

그런데..들뢰즈커넥션번역은..쫌 심하네요..원서를 사볼라도 비싸서 못사고 있는뎅..어디 남아도는 복사본이라도 없으신지...ㅜ.ㅜ

이리스 2005-11-08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그냥 읽고만 지나가던 독자 --; 인데 오늘은 그래도 댓글 한줄 올리고 갑니다. 좋은글 항상 감사하게 읽고 있습니다. 꾸벅~

로쟈 2005-11-09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oonta님/ 눈 빠지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주중에 강의 두 개 하고 논문 쓰고 애보면서, 게다가 집에서는 인터넷이 안되는 상황에서 몇 마디 올리기가 쉽지 않네요. <들뢰즈 커넥션>은 저처럼 복사하시면 됩니다. 국립도서관이나 대학도서관 등에서 (대출은 안되더라도) 복사는 가능하니까요. 저도 한때 국립도서관에서 하루 3-4시간씩 복사하곤 했습니다. 돈이 안되면 몸을 팔아야죠.^^ 낡은구두님/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 새구두 한 켤레 장만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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