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분야의 '이주의 발견'도 골라놓는다. 오랜만에 나온 예술사회학 분야의 책이다. 오스틴 해링턴의 <예술과 사회이론>(이학사, 2014). '사회학적 미학의 길잡이'가 부제. 예술사회학과 사회학적 미학은 거의 호환적인 의미를 갖는 듯싶다.

 

 

저자는 영국 리즈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사회이론과 예술사회학 분야가 주 전공인 듯싶다. <예술과 사회이론>(2004)에 연이어 낸 책이 <현대 사회이론 입문>(2005)이다. <예술과 사회이론>도 이 주제의 입문서라고 보면 되겠다(역자에 따르면 대학원 세미나의 교재로 쓰였다 한다). 어떤 책인가.

예술과 사회를 둘러싼 여러 쟁점을 포괄적으로 다룸으로써 그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주장을 조망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입문서이다. 베버, 짐멜, 벤야민, 크라카우어, 프랑크푸르트학파에서부터 푸코, 부르디외, 하버마스, 보드리야르, 리오타르, 루만, 제임슨까지 예술의 사회적 위치, 미학의 사회적 의의 등을 중요하게 다룬 사상가들의 핵심 견해가 주로 검토된다. 이 책은 예술의 의미를 변화하는 문화제도 및 사회경제구조와 연관해 탐색할 뿐만 아니라, 미적인 가치와 문화정치학, 취미와 사회계급, 돈과 후원,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 신화와 대중문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의미를 둘러싼 논쟁 등 수많은 문제를 알기 쉽게 해명한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빅토리아 일렉산더의 <예술사회학>(살림, 2010)을 포함해서 '예술사회학'이란 제목의 책은 몇 권 나온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1980년대를 풍미했던 아르놀트(아놀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창비)와 함께 자네트 월프의 책들이 떠오르는데, 마침 <예술과 사회이론>에도 월프에 관한 김문환 교수의 글이 실려 있다.

 

 

이 책은 예술의 사회적 의미와 역할을 진지하게 생각해보려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에게나 최적의 안내자가 되어줄 것이다. 옮긴이의 주와 인명 및 용어 해설은 일반 독자의 접근을 좀 더 손쉽게 해줄 것이다. 또한 일찍이 ‘사회미학’이라는 용법을 제안한 바 있는 김문환 서울대 명예교수의 발문 「사회학적 미학이란 무엇인가」는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이며, 부록으로 덧붙인 「미학과 예술사회학―자네트 월프의 경우」도 이 방면의 주요 저자인 자네트 월프의 우리말 번역서 세 권이 모두 절판된 상황에서 유용한 읽을거리가 될 것이다.

절판된 '세 권'은 <철학과 예술사회학>(문학과지성사, 1987), <예술의 사회적 생산>(한마당, 1988), <미학과 예술사회학>(예술과실천, 1994) 등을 말한다. 나도 이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모두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인상 깊게 읽은 기억은 없지만). 오스틴 해링턴의 책은 자네트 월프의 업그레이드 버전쯤 될까? 혹은 영국 예술사회학의 현주소를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14. 0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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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몸단장하는 여자와 훔쳐보는 남자>(이봄, 2013) 덕분에 이름을 기억하게 된 저자는 프랑스의 미술사학자 파스칼 보나푸다. "서양미술 속의 ‘누드화’를 다룬 책이다. 우리가 그동안 말로 꺼내지 않고 에둘러서 했던 이야기, 그럼에도 꼭 하고 싶다면 ‘무례한 사람’이라는 오명을 각오해야 하는 이야기를 그 누구도 아닌 ‘미술사학자’가 꺼낸다. ‘몸단장하는 여인’이라는 주제는 고대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예술의 역사를 관통하는 매우 보기 드문 주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라는 게 책소개.

 

 

 

전시 기획자이자 소설가이기도 하다는 저자의 책은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의 <렘브란트>와 <반 고호>를 포함하여 몇 권 더 나와 있다.

 

 

그래도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서양미술사의 비밀을 누설하다'를 부제로 달고 나온 <몸단장하는 여자와 훔쳐보는 남자>일 수밖에 없는데, 원제는 <무례: 화장대 앞의 여인들>(Indiscretion: Femmes a la toilette)이다. '무분별'이라고 해야 할지 '무례'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화장실에서 몸단장하는 여인들을 몰래 훔쳐보는 행위를 가리키겠다. 바로 저자 보나푸가 그런 무례한 남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아예 서문 제목을 '나는 관음증 환자다'라고 붙였으니 무례하더라도 위선적이진 않다.

 

 

아쉬운 건 번역본의 표지다. 열쇠구멍을 통해 들여다보는 관음증적 시선을 콘셉트로 잡았지만 그다지 에로틱하지 않다. 원서와 비교해봐도 대번에 알 수 있다. 너무 과감한 표지가 부담이 됐을 것도 같지만, 미술사의 고전적인 누드화를 주제로 한 책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열쇠구멍'이나 '훔쳐보는 남자'라는 설정은 좀 식상하다.

 

 

원서의 표지를 그대로 가져왔던 프랜시스 보르젤로의 <누드를 벗기다>(시그마북스, 2012)와 비교해봐도 그렇다. 그럼에도 올해의 마지막 미술책으로 구입했다. '서양미술사의 비밀'을 누설해준다고 하니 한번 들어보려고...

 

13. 12. 28.

 

 

P.S. 파스칼 보나푸의 책 얘기를 하다 보니 떠오른 책은 고갱 그림들로 표지갈이를 한 한스 페터 뒤르의 문명화과정 3부작(<은밀한 몸>, <음락과 폭력>, <에로틱한 가슴>)이다. 2006년에 1판 1쇄가 나오고, 지난달에 소프트카바로 2쇄가 나왔다. 표지만으로도 탐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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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엔 덥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꽤나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특별한 신조가 있어서가 아니라 설치할 공간이 없어서(벽마다 책장이다) 에어컨을 달지 않은 탓에 선풍기 바람으로 꿋꿋하게 버텨야 하는데, 아무래도 독서의 효율은 떨어진다. 독서실을 끊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 돼 잠시 아이스커피 한잔으로 정신을 가다듬다가 '이주의 발견'을 적는다. 몇권의 후보가 있었는데, 더 뒤적거릴 여유도 없어서 눈에 띄는 책을 책상맡에 갖다놓았다. 도널드 프레지오시 편저의 <꼭 읽어야 할 예술이론과 비평 40선>(미진사, 2013). '21세기를 위한 미술사 입문서'라는 건 이 책에 대한 로버트 로젠블럼(뉴욕대 교수)의 평이다.

 

 

제목 그대로 예술이론과 비평 40편을 모아놓은 것으로 미술비평이나 미술사 전공자들의 교재용 책이다. 관련 전공학생들이 학부나 대학원 과정에서 읽어나가는 용도이고, 원저는 옥스포드대학출판부에서 나왔다. 편저자도 나름 명망가이고(그래서 원서를 주문하면서 그의 책도 하나 더 주문했다), 번역은 홍대 미술대학 예술과 교수와 제자들이 맡았다.

 

개인적으로는 '꼭 읽어야 할', 이런 말이 들어간 제목을 싫어하기에, 번역본의 제목은 좀 유감스럽긴 하다. 원저의 제목처럼 <미술사의 기술> 정도로 가거나 <예술이론과 비평 40선> 정도가 좋았겠다. 이 책의 독자가 초등학생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인명에 대해서 역자는 E. Gombrich의 국내 통용 표기인 '곰브리치' 대신에 '곰브릭'이라고 옮겼다. 국내에서는 '곰브리히'로 관례적으로 사용하지만 해외에서 '곰브릭'으로 불린다는 게 이유다(그런 식이면 '언스트 곰브릭'이 돼야 할 것 같은데, 그건 또 '에른스트 곰브릭'이다. '곰브리히'는 출처가 또 어디인지?). 그런 이유라면 '플라톤'도 '플레이토'라고 불러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밖에 나가 보니 이렇게 부르더라"는 거밖에 안 된다. 굳어진 고유명사는 '한국어'란 인식이 필요하다(선집까지 나오고 있어도 '벤야민'을 '베냐민'으로 표기하는 방식에 내가 동의하지 않는 이유다).

 

곰브리치가 재직했던 런던의 '바르부르크연구소'도 독일 태생의 바르부르크(A. Warburg)를 영국에선 '워버그'라고 부른다는 이유로 '워버그연구소'가 됐다. 내가 유감을 가질 건 아니고, 명칭 문제는 전공자들이 알아서 합의를 보면 좋겠다.

 

 

 

디테일한 면에서는 불만스럽지만, 여하튼 이런 앤솔로지를 나는 좋아하는 편이다. 아직도 '대학원' 감각을 갖고 있어서인가 보다. 제이 에멀링의 <20세기 현대예술이론>(미진사, 2013)과 <새로운 미술사를 위한 비평용어 31>(아트북스, 2006)도 원서와 함께 구비해놓았었다. 거기에 조나단 해리스의 <신미술사? 비판적 미술사!>(경성대출판부, 2004)까지. 나름대로 대학원 수준의 이론공부를 할 준비는 다 돼 있다. 그게 가능한 건 이론이 통분야적이기 때문이다. 곧 문학이론이나 영화이론, 미술이론이 따로 분리되지 않는다. 일례로 푸코의 '작가란 무엇인가'나 벤야민의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은 <꼭 읽어야 할 예술이론과 비평 40선>에도 수록돼 있다.

 

책 이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그러니까 당분간은) 체계적인 독서가 어렵겠지만, 언젠가 좀 여유를 갖고서 '40선'에 대한 독서를 해나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위를 먹어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13. 08.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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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1022호)의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김환기 화백의 전기, 이충렬의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유리창, 2013)을 읽고 그의 생애를 간추렸다. 덕분에 김환기 에세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환기미술관, 2005)와 김향안 여사의 에세이 <월하의 마음>(환기미술관, 2005)도 같이 구입했다. 전기는 평전과 달리 작품세계보다는 연대기적 생애 기술에 치중하고 있어서 다른 책들도 곁들여 읽는 게 좋을 듯싶다.

 

 

주간경향(13. 04. 23) ‘한국의 피카소’ 김환기의 생애

 

김환기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나온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온전하게 복원한 김환기 전기’를 표방한다.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화가이자 이중섭, 박수근과 함께 ‘한국 화단의 3대 블루칩’으로 꼽히지만 수화(樹話) 김환기에 대한 온전한 전기는 없었다는 게 저자가 팔을 걷어붙인 이유다. 저자는 이미 <간송 전형필>과 <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를 연이어 펴냄으로써 문화·예술인 전기의 새로운 물꼬를 튼 바 있다.

 

김환기는 어떤 생애를 살았던가. 전남 신안군 안좌도에서 천석지기 지주의 1남 4녀 중 넷째로 태어난 그는 도쿄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귀향했다가 대학 진학을 위해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재차 유학의 길을 떠난다. 손이 귀한 집이라 혼례를 치르긴 했지만 그는 어느 것에도 구애받고 싶지 않았다. 그런 기질에 맞는 것은 예술뿐이었다. 스무살 청년 김환기가 일본대학의 예술학원 미술부에 입학한 이유인데, 흥미롭게도 아버지는 아들의 ‘환쟁이’ 공부를 반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지주로 살 테니 따로 직업을 가질 필요가 없는 이상 무슨 공부를 하든 상관 없을 것이었다.

스스로 처녀작이라고 일컬은 ‘종달새 노래할 때’로 일본 화단의 공모전에서 입상한 김환기는 조선의 전통을 그림에 접목하겠다는 결심을 안고 귀국한다. 김용준, 정지용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친교를 맺고 1941년 첫 국내 개인전을 여는 등의 활동을 하던 그는 곧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1942년 부친이 사망하자 재산을 정리하면서 그는 아내와도 이혼한다. 그러고는 백석과도 교분을 가졌던 일본 시인 노리다케 가츠오의 소개로 이화여전 출신의 변동림을 만난다. 변동림은 시인 이상과 사별한 처지였고 김환기는 딸 셋을 둔 이혼남이었지만 그는 간곡한 구애로 마음을 얻는다. 두 사람은 양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1944년 결혼식을 올린다. 변동림은 결혼하면서 김향안으로 개명했는데, 향안은 원래 김환기가 쓰던 호였다. 김향안은 이후 김환기의 ‘절대적 동반자’가 된다. 그즈음에 김환기는 백자 항아리에서 조선의 정서와 정신을 발견하면서 적극적으로 수집에 나선다. 백자의 발견은 그가 새로운 작품세계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었다.

 



한국전쟁을 겪고 대학 강단에 서지만 한국은 예술가의 꿈을 펼치기엔 너무 좁은 땅이었다. 천박한 문화예술계의 풍토나 국민들의 문화 경시 풍조도 감환기의 마음을 더 넓은 곳으로 돌리게 했다. 그는 자신의 그림이 세계 미술계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고, 그런 남편의 뜻을 펴보기 위해 아내는 프랑스로 떠났다. 1955년의 일이다. 파리의 한 화랑에서 보내온 초청장을 손에 들고 김환기 역시 이듬해 파리로 향한다. 몇 차례 개인전을 열기도 했지만 그는 이 예술의 도시에 안착하진 못했다. 그는 1959년에 귀국해 홍대 미대 교수로 복직하고 학장도 역임한다. 그렇지만 1963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가하게 된 걸 계기로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한 번 더 예술가로서의 성공을 꿈꾼다. 경제적 곤궁에 시달리면서도 화가의 자존심 하나로 창작의 열정을 마음껏 불태운 시기였다. 하지만 꿈을 이루기 전에 1974년 그는 척추 디스크 수술 후 회복 중 불의의 낙상으로 세상을 떠난다. 김광섭의 시 ‘저녁에’에서 착상을 얻은 대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는 고국과 그리운 사람들에 대한 향수를 예술로 승화시킨 그의 대표작이다.

 

 

김환기에 관한 평전은 여럿 나와 있다. 하지만 대개 그의 작품세계의 발전과정을 기술한 미술평론가들의 저작이고 분량도 얇아서 이 걸출한 서양화가의 생애를 전체적으로 들여다보기엔 부족했다. 그런 점에서 ‘정본 김환기 전기’를 목표로 한 이 책은 지난해에 나온 ‘한국미술의 거장 김환기’전(展) 도록 <김환기 1913~1974>(마로니에북스)와 함께 책으로 만날 수 있는 가장 유익한 자료이다.

 

13. 0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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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다이어의 <지속의 순간들>(사흘, 2013)은 이미 '2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 꼽아놓기도 했었는데, 책의 원서를 지난 주말에 받았다. 원서는 몇 종의 버전이 있는데(소프트카바는 두 종), 내가 고른 건 흰 바탕에 주유소 사진이 들어간 표지의 책이다.

 

 

암튼 다이어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저자이지만(영어권에서는 상당한 명망가라고) 이 책 한권으로 자신이 수전 손택과 존 버거와 롤랑 바르트의 레벨이라는 걸 충분히 입증하고 있다(개인적으로는 롤랑 바르트와 존 버거의 책에서 제프 다이어란 이름을 처음 접했다). 그런 만큼 독자로선 주의 깊게 음미하며 읽어야 하는 부담도 있다. 낚시하다가 '물건'이 걸렸을 땐 신중하게 낚아올려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진에 관한 책인 만큼 많은 사진가들이 거명되는데, 일부는 국내에도 소개된 작가들이다. 서두에 나오는 워커 에반스나 도로시아 랭이 그런 경우다(번역본에서는 '도로테아 랭'으로 표기됐다). 로버트 프랭크도 번역됐지만 이미지가 뜨지 않는다.  

 

다이어가 맨처음 꺼내는 화제는 사진집의 구성밥법 혹은 사진의 분류학이다. 가령 에반스는 자신의 작업구상을 정리하면서 '노동자들의 무리에 둘러싸인 모든 계급의 사람들' '자동차들과 자동차가 있는 풍경들' 등의 목록을 설정한다. 다이어가 보기에 이런 목록과 비교되는 것이 루이스 하인의 사진집 <사회적, 산업적 사진들의 목록>이다. 하인은 '완전한 논리를 갖춘 엄격한 목록'을 구성한다. '이민자들' '일터의 여성 노동자들' 같은 주제어가 100가지가 넘고 그에 따른 하위 주제어가 800여 가지에 이르는 식이다.

그에 반해 에반스의 의도에 따라 구성된 목록은, 단일한 규칙에 의해 배열되고 조직된 목록이라고 보기에는 대단히 잠정적이고 우연적이며, 종국에는 지속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그밖의 많은 것들'이란 표현을 보라.) (14쪽)

이런 에반스가 1950년대에 친분을 쌓은 사진가 로버트 프랭크도 마찬기지였다. 프랭크는 자신이 찍을 사진들의 대상에 관한 목록을 이런 식으로 열거한다.

밤이 내린 도시, 주차장, 슈퍼마켓, 고속도로, 자동차 세 대를 소유한 사람과 한 대도 소유하지 못한 사람, 농부와 그의 아이들, 새 집과 기울어진 판잣집, 취향의 받아쓰기, 장엄한 꿈, 광고, 네온 불빛들, 지도자의 얼굴들, 그를 따르는 얼굴들, 가스탱크와 우체국과 뒤뜰들...(18쪽)

이런 분류는 바로 푸코가 <말과 사물>(영어본 제목은 <사물의 질서>)의 서두에서 인용하고 있는 보르헤스를 떠올려준다. '어느 중국백과사전'에서의 인용이라고 눙치면서 보르헤스는 이런 식으로 적었다. "동물들은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a)황제에게 속한 것. (b)술에 취한 것. (c)훈련받은 것. (d)젖먹이 돼지들. (e)인어들. (f)훌륭한 것. (g)길 잃은 개들. (h)이러한 분류에 속하는 것들. (i)미친 듯이 몸을 떨어대는 동물들. (j)수를 셀 수 없는 것들. (k)낙타의 털로 만든 세밀한 붓으로 그릴 수 있는 것들. (l)기타 등등. (m)지금 막 꽃병을 깨뜨린 동물들 (n)멀리서 보면 파리로 보이는 동물들."

 

이 연상은 제프 다이어 자신의 것이다. <말과 사물>과 똑같게 <지속의 순간들> 역시 보르헤스의 인용으로 시작한다. 그러한 분류에서 "영감을 받은 사람은 내가 첫 번째는 아닐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렇지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진들은 이렇게 철저하게 엄격한 방식 혹은 별나고 기이한 방식의 분류법을 따르지 않는다. 그보다는 사진이 가진 무한히 다양한 가능성들을 좋은 뜻에서 무작위로 배열한 이전 사진가들의 시도를 보며 용기를 내어본다."(11쪽) 그 이전 사진가들 가운데 가장 먼저 언급하고 있는 이가 워커 에반스다. 에반스는 제임스 조이스나 헨리 제임스 같은 작가들은 '무의식적 사진가들'이라고 불렀다. 반면에 월트 휘트먼 같은 시인은 대놓고 사진을 찍는 쪽에 속한다.

 

 

그러나 월트 휘트먼은 자신의 시에는 무의식적인 요소가 없다고 단언했다. "<풀잎>의 모든 것들은 문자 그대로 촬영되었다"고 그는 주장했다.(12족)

번역문만 보자면 "<풀잎>의 모든 것들은 문자 그대로 촬영되었다"는 말을 휘트먼이 한 것처럼 보이지만 문맥상으론 워커 에반스의 말이다. "In the case of Walt Whitman there was nothing unconscious about it."를 첫 문장도 "월트 휘트먼의 경우에는 무의식적인 게 전혀 없다"고 해야겠다. 휘트먼의 대표시집 <풀잎> 같은 경우, 에반스가 보기엔 말 그대로 사진 찍기다. 왜냐하면 "그는 가끔, 사진 관련 카탈로그에서 항상 볼 수 있는 광고 문구처럼 읽히는 시"를 쓰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런 게 휘트먼 스타일이다.

...

보라, 힘차고 빠르게 달리는 기관차가 기적을 울리는 모습을.

보라, 농부들이 쟁기질하는 모습을.

보라, 광부들이 갱도를 파내려가는 모습을.

보라, 수도 없는 공장들을.

보라, 공구를 들고 기계를 다루는 기술자들을.

...

에반스가 이런 휘트먼의 시에도 영감을 받았다는 얘기. 제프 다이어는 루이스 하인보다는 그런 에반스와 로버트 프랭크의 작업방식에 호감을 느끼며 그의 사진책(<지속의 순간들>) 또한 그렇게 구성하려고 한다. 무작위적으로 보일 만큼 느슨하지만 정말 무작위는 아닌 어떤 배열 혹은 질서를 사진들에 부여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사진집을 구성하는 더 감각적인 다른 방식이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하인의 방법론적인 접근과 비교하면 대단히 우발적이고 일시적이며, 종종 아무렇게나 시도한 것처럼 보이는 이 책을 본보기로 삼았다.(19쪽)  

'더 감각적인 방식'은 'more sensible ways'를 옮긴 것인데, 사전적 의미도 그렇고 맥락상으로도 '더 분별 있는 방식' 혹은 '더 합리적인 방식'을 뜻한다. 임의적이지 않은 방식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은 부정확한 번역으로 'these ... attempts'를 옮긴 것인 만큼 '이런 시도들'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 워커 에반스와 로버트 프랭크 같은 이들의 시도를 가리킨다. 

 

이상이 저자가 말하는 대략적인 방법론(사진의 분류학)이라면 서론에서 또 하나 밝혀야 하는 것은 책이 다루는 대상이다. 물론 사진이지만 어떤 사진이냐는 것. "이 책은 주로 - 그러나 전적으로는 아니다 - 미국의 사진들을, 적어도 미국에 관한 사진들을 다루게 될 것이다."(22쪽) 처음 의도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미국의 사진을 탐구하는 에세이가 됐다는 것.

 

끝으로 이런 책을 쓸 자격. 흥미롭게도 제프 다이어는 사진에 대해서 문외한이다. 찍는 걸 기준으로 하면 그렇다. "내가 전문적이거나 진지한 사진가가 아니라는 말이 아니다. 나는 카메라 한 대도 없는 사람이다. 내가 사진을 찍을 때는 여행객들이 부탁을 할 때뿐이다."(23쪽) 디카와 폰카 시대인지라 사진기 한 대도 안 갖고 있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나 역시도 사진을 거의 찍지 않으니 저자와 공감하는 바가 있다(그러면서도 그는 사진책을 썼고 나는 읽는다!). 사진에 문외한이면서 사진에 대한 에세이를 쓴다? 하지만 제프 다이어에겐 전력이 있다. 악기를 다룰 줄 모르면서 재즈에 관한 책을 쓴 전력이. 그건 핸디캡이 아니라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

 

물론 내가 사진을 찍지 않는다는 사실은 장애가 될 수 있겠지만, 내가 일종의 순수한 입장에서 사진이라는 매체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내게는, 사진에 관한 글을 쓰면서도 사진을 찍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1980년대 후반에 재즈에 관한 책을 쓰면서도 악기를 하나도 다루지 않았던 것과는 다를 것이라는 예감이 있다.(23-4쪽)  

그가 쓴 재즈책이 <그러나 아름다운>이고 이건 우리말로 번역중이라 한다. 인용문의 두번째 문장은 오역이다. 원문은 "I also have a hunch that not taking photographs is a condition of writing about them in the same way that my not playing a musical instrument was a preconditon for writing about jazz in the late 1980s."다. "악기를 연주하지 않는 것이 1980년대 후반 재즈에 관한 책을 쓰는 데 전제조건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진을 찍지 않는 것이 사진에 대한 책을 쓰는 조건이라는 예감도 든다."

 

물론 차이점도 있다. 재즈에 관한 책을 쓸 때는 참고할 만한 책이 거의 없었지만 사진에 관해서는 좋은 책이 많이 나와 있다는 것. 그러면서 거명하는 이름이 수전 손택과 존 버거와 롤랑 바르트다. 그밖에 훌륭한 연구서나 에세이도 많고. "그러니 내가 쉽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바(bar)가 높이 걸쳐져 있으니 나는 그저 그 아래서 자유로이 거닐기만 하면 되니까." <지속의 순간들>은 그렇게 하여 쓰이게 된 책이다.

 

 

'시작하며'라고 따로 분절된 <지속의 순간들>의 서두를 간추려보았다(원저에는 따로 제목이 붙어 있지 않다). 사실은 페이퍼의 제목이 말해주듯, 제프 다이어가 쓴 영화책이 눈에 띄어 글을 시작한 것인데(겸사겸사 오역도 지적하고) 말이 생각보다 길어졌다(임시보관함에 넣어두면서 쓰기 시작한 게 일주일 전이다). 영화책이라고 했지만 정확하게 어떤 성격의 책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의 책 <조나>가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잠입자>(<스토커>)를 다뤘다는 것만 알고 바로 주문했다. 

 

 

<잠입자>에 대해서 한권의 책을 쓸 정도의 저자라면 나는 더 볼 것도 없이 전폭적으로 지지할 준비가 돼 있다. 주문한 책은 3월에 받아볼 텐데, 기대가 된다. <지속의 순간들>로 우리에게 처음 소개된 제프 다이어는 올해의 첫 발견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13. 0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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