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신곡 읽기: "우리네 인생길 반고비에"

14년 전에 올렸던 글이다. 그맘때 단테의 <신곡>을 강의하며 번역본들을 비교해서 읽었던 듯하다. 민음사와 열린책들의 새 번역판이 나오기 전이다. ˝인생길 반고비˝란 말을 ˝전성기˝로 옮긴 사례도 있는데 단테의 전기를 참고하면 일리가 없지 않은 해석이다. 이탈리아문학기행을 다시 가볼 일이 있을까 싶지만 언젠가 다시 해석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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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2 1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로쟈 > <아케이트 프로젝트> 번역에 관한 논란

14년 전에(무려!)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번역을 두고 서평자와 역자 간에 논쟁이 있었고 그걸 옮겨놓았었다. 알라딘이 자꾸 이런 걸 상기시켜주는군. ‘아케이드 프로젝트‘ 자체가 지금은 일부 품절상태이지 않나? 확인해봐야겠다. 내년 가을 프랑스문학기행을 가려니 다시 참조해야 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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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파우스트> 새 번역본이 나올 줄은 예상치 못했는데 무려 ‘전집‘의 첫 두 권으로 출간되었다. 전영애 전 서울대 교수가 옮긴 <파우스트>(길)다. 향후 10년간 20권으로 구성된 ‘괴테 전집‘ 출간계획도 이번에 밝혔다. 과거에 괴테학회 차원에서도 전집을 내다가 흐지부지되고 말았는데(작품 전집이었음에도 그랬다) 이번에 기획된 전집은 훨씬 방대한 규모다. 역자에 따르면 1인 괴테 전집은 전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미 많은 번역본이 나와있는 터라 <파우스트> 번역의 의의는 새삼스러운데 역자는 대부분 운문으로 된 <파우스트>를 가급적 ‘운문처럼‘ 옮기고자 했다. 원작의 운문적 리듬감을 최대한 살리고자 시도한 것이다. 아마도 <괴테 시전집> 번역의 경험이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또 그렇게치면 운문 <파우스트>의 적임자이기도 하다(시인이자 독일시 전공자인 김재혁 교수의 번역본은 펭귄클래식판으로 나와 있다).

좋은 시도기 항상 좋은 결과에 이르는 것은 아니지만(셰익스피어 작품들의 운문번역 시도를 고려하건대) 이미 다수의 번역본이 나와있는 상황에서는 이번 시도가 충분히 높이 평가할 만하고 본다. 이미 여러 번 읽고 또 강의에서도 자주 다룬 작품이지만 첫 번역 시도이기에 처음 읽는 작품인 것처럼 읽어보려 한다. 더불어 무탈한 전집 완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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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에 여러 권의 책을 읽어야 하는 게 전업강사이자 서평가의 일상인데 거기에 독서가의 욕심까지 보태지면 읽는 책은 수십 권으로 불어난다. 책상과 식탁, 그리고 침대에 쌓여 있는 책이 그렇게 수십 권이다. 물론 책장과 방바닥에 있는 책들도 언제든 눈에 띄는 대로 소환된다. 손택의 일기와 노트를 묶은 <의식은 육체의 굴레에 묶여>(이후)는 방바닥에 쌓여 있다가 소환된 책. 지난주엔가 주문했던 원서를 받은 참이라 생각이 나서 펴보았다. 첫 문장에서 깼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어머니는 자서전을 쓸까, 하는 생각을 열없이 깨작거리기 시작했다.˝

손택의 말이 아니라 엮은이인 아들 데이비드 리프의 말이다(아들이 상속자이자 편집자이니 작가의 운명으로는 나쁘지 않다). ‘깨작거리기 시작했다‘가 무얼 옮긴 것인지 찾아보니 ‘toyed‘를 옮긴 것이다. ‘열없이 깨작거리기‘는 toyed desultorily‘란 옮긴 것이고. 의미야 다의적이어서 번역에는 선택지가 존재한다. 그렇지만 우리말 ‘깨작거리다‘는 부정적인 뉘앙스만 갖고 있는데 아들이 어머니에게 쓸 수 있는 말인가.

‘toy‘는 동사로는 ‘만지작거리다‘의 뜻을 갖고 있고 ‘desultorily‘는 ‘산만하게‘‘띄엄띄엄‘ 등이 사전적 의미다. 내가 옮긴다면 그냥 ˝자서전을 써볼까란 생각을 이따금 내비치셨다˝라고 했겠다. ˝열없이 깨작거리기 시작했다˝는 너무 강한 문체적 표현이고 뉘앙스도 너무 부정적이다. 이런 번역은 역자를 의식하게 된다. 번역이 자연스럽게 이해되지 않으면 역자의 개입이 있는 게 아닌가 원문을 찾아보게 되는 것. 번역자의 존재를 드러내느냐 마느냐는 번역론의 유구한 문제지만 나는 필요할 때 드러내고 그렇지 않을 때는 물러나 있는 것이 현명하다고 믿는 입장이다. 번역자의 처세술이다.

손택이 깨작거렸다는 문장에 놀라 급하게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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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9-01-01 17: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수전 손택의 깨작거리기‘라는 제목에 놀라 급하게 읽고 생각없이 좋아요 했다가 급하게 좋아요취소 했습니다. 내용은 공감하지만 새해 첫날부터 이렇게 공개적으로 번역자를 까대시는 것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서재의달인답지 않은 처세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이런 댓글을 남기는 것도 저답지않은 처세입니다만.

로쟈 2019-01-01 20:46   좋아요 3 | URL
네 요즘은 번역에 대해 자주 시비하지 않는데 역자의 선택이 의외여서 다른 의견을 적었을 뿐이에요. 그래도 ‘아침부터‘는 피했습니다.

카키모카 2019-01-02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좋은 지적 같네요. 안지는 별로 안됐지만 서재 잘 보고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로쟈 2019-01-03 22:2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분홍돌고래 2019-01-11 0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번역어 선택에 대한 의견 제시는 번역자를 ‘까대는‘ 것과는 층위가 다른 일이라 봅니다. ‘깨작거리다‘는 보통 부모나 선생 등 연장자의 행위를 묘사하거나 설명할 때 쓰는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올해 제59회 한국출판문화상 수상작들이 발표되었다. 예삼과 본심에 참여했고 번역부문의 심사평을 맡아서 적었다. 올해 번역상은 대작 <카를 마르크스>(아르테)를 옮긴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에게 돌아갔다. 심사평을 옮겨놓는다. 



59회 한국출판문화상 번역 부문 심사평


올해 번역 부문 심사는 수월하게 합의에 도달했다. 번역자의 역량과 번역서의 의의 양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카를 마르크스’를 수상작으로 지목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번역자의 역량으로는 지속적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노승영 번역가가, 번역서의 시의성으로는 수전 팔루디의 ‘백래시’가 호평받았다. 하지만 마르크스 평전의 결정판이라고 할 만한 저작을, 마르크스 생애와 사상에 대한 깊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완역해 낸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의 노고는 특별한 상찬을 받기에 충분했다.


홍 소장은 일찍부터 주류 경제학의 협소함에 반대해 경제학(이코노미)의 어원적 의미('집안 살림'을 뜻하는 '오이코노미아')에 충실한 새로운 경제학을 탐색해 왔다. ‘거대한 전환’ 등 칼 폴라니의 대표 저작들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동시에 ‘살림살이 경제학’의 구상을 담은 저작도 펴냈다. 경제학자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번역 작업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 부은 그의 노고 덕분에 일반 독자도 경제의 근본 문제와 자본주의에 대한 심화된 인식을 가질 수 있었다. ‘카를 마르크스’ 번역도 그 연장선상에서 의의를 가늠할 수 있다.


개러스 스테드먼 존스의 ‘카를 마르크스’는 이제까지 나온 마르크스 평전 가운데 가장 방대한 분량이다. 마르크스와 그의 시대를 면밀하게 재구성함으로써 마르크스에 대한 섣부른 우상화, 조야한 비판에 맞설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준다.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은 마르크스와 그의 사상이 갖는 의의의 재평가가 가능해진다. 역자는 서문에서 그 의의를 ‘프로메테우스 마르크스’에서 ‘시시포스 마르크스’로의 전환으로 집약한다.


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제우스의 불을 훔쳐다 준 은인이자 해방자다. 반면 시시포스는 제우스의 분노를 사서 무거운 바위를 산정까지 밀어 올리는 천형을 받았으나 거기에 굴하지 않는 의지의 화신이다. 그러한 시시포스의 형상은 비단 마르크스뿐 아니라 번역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아무리 많은 문장을 옮겼더라도 다시금 새 문장 앞에 직면하는 존재가 번역자이기 때문이다. 이 방대한 책을 우리말로 옮긴 홍 소장의 번역상 수상을 축하하며 더불어 우리 시대 번역자들께도 경의를 표한다.


18.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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