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에서 인터넷 번역비판과 관련한 기사를 옮겨놓는다(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6461). 나 자신도 관련돼 있고 지난주에는 기자의 간단한 이메일 설문에 답을 하기도 했다. 아마도 기자는 지난번 한국일보 기사에 힌트를 얻은 듯하다(http://blog.aladin.co.kr/mramor/2144892). 인터넷 번역비판과 논쟁의 장을 조금씩 열어가는 일에 이 블로그도 한몫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적'으로 확인하게 된다(사실 주변에서는 무슨 '뻘짓'이냐는 시선을 더 많이 받고 있지만)...    

교수신문(08. 06. 30) '장미밭에서 춤추기’를 더 긴장케 하는 블로거의 힘

인터넷이 번역 비판과 논쟁의 장을 조금씩 열어가고 있다. 다른 매체에 비해 분량, 형식, 시기 등의 제한이 없으며 많은 사람들과 소통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넷 서점 블로그는 오역 제기의 근원지로 톡톡히 한몫하고 있다.

파리8대학 명예교수인 자크 랑시에르의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인간사랑, 2007)의 오역 비판은 명예 훼손 고소 사건으로까지 번진 케이스다. 도저히 읽지 못할 번역이라는 게 ‘번역 비평 누리꾼’들의 한결같은 비판이었고, 이 책의 번역자 백승대씨가 알라딘 서점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쟈’, ‘FTA반대balmas’, ‘람혼’ 등을 고소한 것. 이들 중 ‘로쟈’, ‘FTA반대balmas’는 ‘이유없음’으로 현재 고소가 기각된 상태이고 ‘람혼’은 그 이후 다시금 자신의 블로그에 이 책 서론 전체에 대한 장문의 번역 정밀 독해를 올렸다. 지금 이 책은 전량 회수돼 판매 중지에 들어간 상태다.  



오역 정밀 지적해 번역서 전량 회수
백씨가 공개한 이력에 따르면, 그는 2001~2002년 교보증권에 근무했으며 2002년부터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주식투자에 대해 연구했고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그는 “프랑스 철학에 대해 공부해본 적은 없지만, 인터넷에서 번역할 만한 책을 찾아보다 제목이 특이해서 저자를 알아보니 유명한 사람이라서” 번역하게 됐고 “불어 실력은 그다지 없지만, 사전 보고 한글로 옮기는 수준은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워낙 논쟁할 상대들이 아니라서 응대를 하지 않았다. 번역 문제라기보다 그들이 나를 음해하려 했기 때문”에 고소한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가 불거지자 인간사랑 출판사 편집부 홍성례씨는 “비전공자에게 번역을 맡긴 것에 대해 책임을 느낀다”며 “번역자와 합의가 되면, 새로 번역자를 모색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정리했다.



앞선 사례처럼 거센 반발도 있지만, 대부분은 역자나 출판사측이 침묵으로 일관한다는 게 ‘번역 비평 누리꾼’들의 중론이다. 니클라스 루만의 『사회체계이론1·2』(한길사, 2007)에 대한 번역 비판을 <연세대 대학원신문>(제157호)에 기고하고, 분량 상 지적하지 못한 오역들을 인터넷에 올린 블로거 ‘바다라네’는 출판사나 역자에게서 “전혀 반응이 없었다”고 전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Gesellschaft’를 ‘공동체’로 옮긴 것은 최악의 번역어 선택이었고 그 외에도 납득하기 어려운 번역어들이 많을 뿐만 아니라 문장 오역도 2권 후반부에 이르면 거의 한 단락에 하나 이상씩 나온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번역자 박여성 제주대 교수(독일학과)는 “(오류를) 잡아내지 못한 부분이 일부 있었지만, 번역 용어상의 차이 부분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답했다. 더불어 한길사 편집부 배경진씨는 “이후 역자와 상의해 잘못된 부분은 고칠 것”이라고 밝혔다.



인터넷의 장점인 상호 소통력이 번역 논쟁에 활력을 불어 넣기도 한다. 지난달 말께 콜럼비아 대학에서 미학을 가르치는 아서 단토의 『일상적인 것의 변용』(한길사, 2008)의 번역 몇 구절을 놓고 ‘노이에자이트’, ‘qualia’, ‘제레카폴’, ‘규’, ‘carboni68’ 등의 블로거들이 댓글을 통해 논쟁에 참여했다. 50여개가 넘는 댓글이 이어지다 ‘qualia’가 세 가지 쟁점을 간추려 아서 단토 교수에게 메일로 질문을 보내 답신을 받아냄으로써 논쟁은 마무리 됐다. 그 결과, 역자가 ‘하찮은 대상들’로 번역한 ‘these unedifying objects’는 ‘미적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대상들’로, ‘가장 가당치 않은 곳(the least likely places)’의 ‘places’도 역자가 선택한 ‘전시장’이 아니라 ‘qualia’가 지적한 것처럼 ‘전시물’로 이해하는 게 올바른 것으로 판정났다. 



흔치 않은 일이기는 하지만, 인터넷 상의 오역 제기로 인해 번역서가 재출간 돼 ‘책 리콜’에 들어간 사례도 있다. 새뮤얼 이녹 스텀프, 제임스 피저의 『소크라테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열린책들, 2004)는 지난해 11월말께 ‘히드라’라는 블로거에 의해 오자, 오역이 900여 군데 넘게 지적당했다. 예전 종로서적에서 출판된 것(2판)을 다시 출판사 열린책들에서 재출간하는 과정에서 새로이 번역 저본으로 삼았다고 한 7판 내용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결과였다. 얼마 전 개역된 이 책은 그간 출간된 1쇄~9쇄까지의 책들을 대상으로 지난 23일부터 교환에 들어갔다. 열린책들측은 “많은 독자들이 읽어 주셨던 만큼,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이번 책 리콜은 출판사로서 당연한 조처였다”고 밝혔다. 자세한 교환방법을 알려면, 이 출판사의 홈페이지(http://www.openbooks.co.kr)를 참고하면 된다.
 
번역비평에 관한 인식 개선돼야

그간 인터넷을 통해 번역 비평을 해온 누리꾼들은 번역 질 향상을 위해 인터넷의 장점을 보다 적극적으로 살려야 할 필요를 강조했다. 이를테면, 번역 문제를 다루는 전문 매체를 인터넷상에 운영해 서평을 겸하면서 번역 문제를 검토하거나 저작권이 없는 고전들의 경우 공동 번역과 비평을 인터넷을 통해 활성화 하는 방안도 모색해 볼만하다는 의견을 줬다. ‘바다라네’는 “출판사로서는 모험이겠지만, 오역 지적이 이루어지고 역자와 직접 논쟁을 가능케 하는 공간을 인터넷상에 마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출판사를 통한 ‘오역 공개 접수처/논쟁장’에 미치지 못하지만 자신의 역서에 대한 정오표를 인터넷 상에 스스로 공개한 번역자들도 있다.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등을 번역한 ‘FTA반대balmas’와 마르크스의 『경제학-철학 수고』 등을 번역한 강유원씨가 그들이다. 

물론, 인터넷이 ‘오역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그 전에 번역 출판·비평에 대한 인식 전환과 토대 구축이 시급하다. ‘로쟈’는 “역자, 편집자, 독자가 서로 생산적인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저마다의 몫과 역할을 인정해주는 문화가 정착되면 좋겠다. 인문 번역자에 대한 사회적 대우가 나아져야겠고, 번역비평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개선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FTA반대balmas’는 “번역물의 향상을 위해서는 선진국처럼 ‘총서’ 체제를 도입하는 게 시급한 과제다. 학계의 유능한 학자들이 전공과 관련된 ‘총서’를 맡아서 운영하면 번역의 질도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고 밝혔다.

자신이 번역한 ‘역자 후기’만을 모은 두 번째 책을 지난달 펴낸 번역가 김석희씨는 번역 작업을 고통과 쾌락이 공존하는 ‘장미밭에서 춤추기’라고 표현 한 바 있다. 번역자가 장미 가시에 많이 찔릴수록 그 번역서를 읽는 독자들은 장미 향기를 보다 진하게 맡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인터넷을 통한 번역 비판과 논쟁에도 장미의 가시와 향기가 공존하고 있다.(김창한 객원기자)

08. 07. 01.

P.S. 기사에서 언급된 루만의 <사회체계이론> 번역비판은 최근 출간된 <니클라스 루만으로의 초대>(갈무리, 2008)의 역자이자 루만 전공자인 정성훈씨의 것이다. 루만의 대저를 읽을 계획이 있는 독자라면, 미리 이 '입문서'부터 읽는 게 좋을 듯하다...


댓글(17)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늘빵 2008-07-01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산적인 '뻘짓'을 하고 계신 ^^ 로쟈님이 좋습니다. 위에 언급된 발마스님과 다른 분들도. 돈도 안되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지만 의미있는 일을 하고 계신 건 분명한 사실이니까요. :)

로쟈 2008-07-01 17:06   좋아요 0 | URL
뻘짓을 하더라도 '생산적'이려고 애는 쓰고 있습니다.^^;

주니다 2008-07-01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저도 『소크라테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교환해야겠습니다.『일상적인 것의 변용』은 원서도 복사해놨는데, 읽을 시간과 정신적 여유가 없네요. 로쟈님의 여름방학은 언제나처럼 바쁘시겠죠?^^

로쟈 2008-07-01 17:05   좋아요 0 | URL
단토의 책 자체가 후기 저작들보다 읽기 까다롭더군요. 사실 오늘부터야 방학이긴 한데(계절학기가 있지만) 밀린 일들이 '쓰나미' 수준으로 덮쳐오고 있습니다. 살아남아야 할 텐데...

노이에자이트 2008-07-02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서 단토 논쟁에서 저는 별로 댓글 분량도 많지 않았는데 첫번째로 참여했다고 이런 기사에 나오는군요.

로쟈 2008-07-02 00:13   좋아요 0 | URL
^^

람혼 2008-07-02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운 기사로군요.^^

로쟈 2008-07-02 00:49   좋아요 0 | URL
람혼님이 더 반갑습니다.^^

열매 2008-07-02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수신문같은데서 이런 이슈를 상세히 다루어줘야 하는데 이제라도 공론화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학술계의 다양한 첨예한 이슈들이 학술계 내에서의 자정작용으로 걸러져야 하는데 그런 필터링의 기능을 할 곳도 마땅히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일을 해야할 곳이 딴짓만 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니 답답합니다.
<철학과 현실>이라는 철학자들이 내는 잡지를 보면 무슨 보수우파들의 집산지같습니다.
한국 기성의 철학과 교수들의 현실 파악이 얼마나 나이브하고 우파적이며 기성권력에 굴종적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학술적 기능이라도 제대로 하면 좋으련만 그렇지도 못하니 '철학'을 잡든 '현실'을 잡든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해주십사 부탁드리고 싶은 심정으로 한번씩 도서관가면 훑어봅니다. 볼 때마다 실망하구요.

로쟈 2008-07-02 01:11   좋아요 0 | URL
저도 안본 지 오래됐는데, 점점 얇아지고 있더군요...

Kitty 2008-07-02 0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랑스 철학에 대해 공부해본 적은 없지만, 인터넷에서 번역할 만한 책을 찾아보다 제목이 특이해서 저자를 알아보니 유명한 사람이라서” 번역하게 됐고 “불어 실력은 그다지 없지만, 사전 보고 한글로 옮기는 수준은 된다” <- 눈을 믿을 수가 없네요. 이게 정말 번역자가 한 말인가요? 대담하다고 해야할지 솔직하다고 해야할지 어떤 의미에서는 존경스러운(?) 분이네요. 출판사는 또 뭐랍니까...

로쟈 2008-07-02 19:18   좋아요 0 | URL
좀 어이없는 경우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7-02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을 둘러싼 논쟁이 법정까지 가다니...무서워요.

아열대 2008-07-03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밥벌이가 바빠서 확인을 못한 사이 기사까지 나갔군요. ;;
그나저나 기사는 'places'를 전시장이 아니라 전시물이라고 못을 박아 놓았네요. 저는 아직까지도 전시장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
단토의 답장을 보아도 - once we set the object at an aesthetic distance, i.e., once we cannot use it, then we might begin to see that the object is beautiful. The urinal that Duchamp tried to exhibit in 1917 might have been set at an aesthetic distance by virtue of its placement in an exhibition space, like a gallery-라고 되어 있는데 이 구절의 어디를 보아 'places'를 전시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인지 요령부득이로군요. 단토의 설명은 변기라는 오브제가 뒤샹에 의해 전시장에 놓였기 때문에 오직 '사용'의 관점이 담길 뿐인 일상의 눈으로는 발견하지 못할 미적 거리가 생겨나는 것이라는 것이 아닙니까?

로쟈 2008-07-19 11:02   좋아요 0 | URL
덕분에 다시 읽어보니 모호함이 다 가시는 건 아니군요...

김상호 2008-07-14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랑스 철학에 대해 공부해본 적은 없지만, 인터넷에서 번역할 만한 책을 찾아보다 제목이 특이해서 저자를 알아보니 유명한 사람이라서” 번역하게 됐고 “불어 실력은 그다지 없지만, 사전 보고 한글로 옮기는 수준은 된다”와 정말 대단하네요 @.@

로쟈 2008-07-19 11:03   좋아요 0 | URL
'올해의 번역자' 후보입니다...
 

'美 저명 미학자 아서 단토의 책 오역논쟁'이란 기사 타이틀이 있기에 뭔가 해서 클릭해봤더니 '로쟈의 저공비행'에서 벌어진 일을 정리해놓은 기사다(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806/h2008061802344784210.htm). '알라딘통신'에나 들어갈 만한 내용이 일간지에 실려 있어서 흥미롭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필경 기사거리가 부족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 하더라도 관심있게 읽어주는 분들이 있다는 건 불쾌한 일이 아니다. 기사를 자료 삼아 '창고'에 넣어둔다. 

한국일보(08. 06. 18) 美 저명 미학자 아서 단토의 책 오역논쟁

미국 저명 미학자ㆍ미술평론가인 아서 단토(84)의 국내 번역 저서를 둘러싼 인터넷 상의 오역 논쟁에 저자까지 가세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최근 국내 소장학자 및 번역가들이 인터넷을 통해 펼치는 번역비평의 수준과 활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발단은 ‘로쟈’라는 필명으로 잘 알려진 러시아문학 전문가 이현우씨가 지난달 21일 자신의 알라딘 블로그(http://blog.aladin.co.kr/mramor)에 지난달 번역 출간된 아서 단토의 <일상적인 것의 변용>(김혜련 옮김)의 일부 구절에서 발견한 오역을 지적한 일이었다. 이 책은 한길사에서 1996년부터 출간 개시한 고전 시리즈 ‘그레이트북스’의 100번째 책이다.

이씨는 남성용 소변기를 ‘샘’이란 제목으로 미술전에 출품하는 등 일상적 소재를 예술 영역으로 끌어들인 작업으로 유명한 프랑스 조각가 마르셀 뒤샹의 예술 세계를 설명하고 있는 이 책 57쪽의 두 문장을 오역 사례로 제시했다. 해당 구절은 이렇다. “그(뒤샹)의 행위는 하찮은 대상들을 모종의 미적 거리 안에 배치했고, 그 결과 그것들이 미적 향수(享受)에 부적합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간단하게 평가할 수도 있다. 즉 가장 가당치 않은 곳에서 모종의 아름다움이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입증하려던 시도로 볼 수 있다.”

이씨는 두 문장이 얼핏 봐도 모순적이라며 번역자가 앞 문장 ‘그 결과…’ 이하 구절에 해당하는 원문 ‘rendering them as improbable candidates for aesthetic delectation’에서 ‘improbable’(가능할 것 같지 않은)의 반어적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 결과 가능할 법하지 않은 그것들(빗자루, 병걸이, 자전거 바퀴, 소변기 등)을 미적 향수의 대상으로 연출했다’로 번역해야 옳다는 것.

글이 게재된 다음날부터 ‘노이에자이트’ ‘juin’ ‘규’ ‘qualia’ ‘carboni68’ ‘palefire’을 각각 필명으로 쓰는 알라딘 블로거가 차례로 ‘댓글 논쟁’에 가담했다. 이 중 ‘지방 중소도시에 사는 번역가’로 자신을 소개한 ‘qualia’는 이씨의 지적에 동의하면서 문제의 두 문장에서 두 개의 쟁점을 새로 제시하며 논쟁을 주도했다.

하나는 번역자가 ‘하찮은 대상들’로 번역한 ‘these unedifying objects’는 ‘미적 감흥을 불러 일으키지 않는 대상들’로 표현해야 정확하다는 점, 또 하나는 ‘가장 가당치 않은 곳(the least likely places)’에서 ‘places’를 ‘전시장’으로 해석하는 다른 논쟁자들에 맞서 그 단어는 소변기, 빗자루 등 뒤샹의 ‘전시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자기가 듣고 본 것들을 몇 문장에 투사해 과시 대회 같은 분위기로 흘러간다”면서 논쟁에서 빠지겠다고 쓴 한 블로그를 “뜻하지 않게 서로 감정을 다치게 했더라도 끝까지 가는 것이 토론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득, 마음을 돌리기도 했다. 인터넷 논쟁 문화의 성숙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50개의 댓글이 달리며 열흘 넘게 진행된 논쟁을 끝맺은 사람은 저자 아서 단토였다. ‘qualia’가 지난달 25일 세 쟁점에 대한 해답을 요청하며 보낸 이메일 질문지에 이달 2일 답신을 한 것. 단토는 “관심과 열정에 감사한다. 복잡하고 평이한 문장을 함께 구사하는 내 글쓰기 스타일에서 비롯된 의문 같다”면서 질문마다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 모든 쟁점에서 ‘qualia’의 손을 들어주는 답장이었고, 논쟁은 유익하고 평화롭게 마무리됐다.(이훈성기자)

08. 06. 18.

P.S. 내가 쓴 페이퍼는 '앤디 워홀의 비누상자'(http://blog.aladin.co.kr/mramor/2102426) 이고, qualia님의 관련 페이퍼는 '아서 단토 교수님, 답장을 보내주시다'(http://blog.aladin.co.kr/qualia/2120870) 이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Gene님의 의견은 http://geneghong.blogspot.com/2009/01/9.html 참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번역 문제에 관한 원고를 쓸 일이 있어서 관련자료들을 좀 모아놓아야 한다. 지난달 기사이지만 참고삼아 아래기사도 스크랩해놓는다.  

대학신문(08. 04. 12) '번역 선진국’을 향한 발걸음

고등학교 시절 국사와 세계사에 매력을 느껴 국사학과에 입학한 김혜진씨(가명). 그는 ‘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헤로도토스(Herodotos)의 『역사(Historiai)』를 사려고 서점을 찾았다. 하지만 『역사』의 유일한 완역본이 일본어 중역본일뿐더러 역사학 전공자가 번역한 것도 아니었다. 책은 무리없이 읽을 수 있었지만 원전 번역이 단 한 권도 없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 랑케(Leopold von Ranke)의 책을 사려고 발걸음을 옮겼다가 더욱 놀랐다. 완역된 랑케의 책이 한 권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번역출판계는 부실공사?=대한출판문화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2007년 출판된 신간 중에서 번역서가 차지하는 비중은 23%(12,321종)에 달했다. 하지만 이 통계는 ‘납본(새로 발간된 출판물을 해당기관에 제출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는데 평균적으로 출간된 책 중 73%만이 납본된다. 이를 감안하면 서점을 통해 독자들에게 다가간 번역서는 약 1만7천여 권이다. 하지만 번역서 중 대부분은 실용서나 가벼운 에세이류다. 실제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판매부수 상위 30위권 내에서 번역서는 16종에 달했지만 『시크릿』, 『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50가지 비밀』, 『마시멜로 이야기』 등 소위 고전과 거리가 먼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번역은 반역인가』의 저자 박상익 교수(우석대·사회교육학과)는 “국민의 기초교양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서양의 고전들이 번역되지 않고 있다”며 “다들 중요하다고는 말하지만 잘 팔리지 않아 출판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에는 노벨상 수상자 테오도르 몸젠(Theodor Mommsen)의 대표작 『로마사』나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신학대전』 등의 완역본이 없는 실정이다.

번역된 책들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미 번역된 책을 표절해 재번역인 것처럼 출판하는 중복출판, 대리번역 문제 등이 바로 그것이다. 영미문학연구회에서 번역평가사업단을 구성해 출판된 영미문학 번역서를 검토한 결과 표절본이 48%에 육박했다.

오역 역시 큰 문제다. 지난 2005년 이재호 명예교수(성균관대·영어영문학과)는 번역가이자 소설가로 활동 중인 이윤기씨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해 “신화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오역”이라고 비판했다. 이는 ‘오역 논쟁’으로 이어져 학계와 대중 모두의 관심을 끌었다. 지금도 각종 번역서의 오역문제가 인터넷카페 ‘비평고원’이나 개인 블로그 등을 통해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출판사의 피드백은 잘 이뤄지고 있지 않다. 저작권이 살아있는 경우에는 오역이 발견되고 학자들의 수정의지가 있어도 수정하거나 재번역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척박한 번역계 현실=현재 전문 번역가들은 대부분 번역가 이외의 직업을 갖고 있다. 번역료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번역가들은 원고료를 인세 혹은 매절의 형식으로 받는다. 역자인세는 평균적으로 판매가의 5%정도다. 1만원 짜리 책 한 권을 몇 개월에 걸쳐 번역해도 1천권이 팔려야 50만원을 받는 셈이다. 물론 1천권이 팔리기 위해 몇 년이나 걸리는 책들은 허다하다. 매절은 원고지 1매당 일정액을 받는 형식인데 매당 3~4천원 정도가 일반적인 액수다. 출판사와 역자는 책의 성격에 따라서 둘 중 한가지 방식을 혹은 둘을 결합한 방식을 협의해서 선택한다. 그러나 소수의 ‘스타 번역가’들을 제외한다면 번역료만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부당한 대우는 번역이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는 번역가들이 다른 일을 병행할 수밖에 없어 번역에 투자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으로 이어져 번역의 질은 더 저하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번역학회 총무이사 최희섭 교수(전주대·영미언어문화전공)는 “번역가를 일종의 창작자로 대우하는 외국과는 달리 한국 출판시장에서 번역가는 창작자에 종속된 것으로 평가받는다”며 “‘번역 선진국’으로 평가되는 일본에서는 번역가들이 번역료만으로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당 분야의 지식을 갖춘 편집진을 보유하지 못한 출판사도 좋은 번역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이런 출판사들은 교정·교열 이상의 편집이 힘들다. 이제이북스 전응주 대표는 “책의 내용을 이해하고 번역한 원고와 원문을 대조해가며 검토할 수 있는 편집진을 갖춘 출판사가 적다”며 “그만한 능력이 있는 인재들은 출판계보다 수입이 더 많은 분야를 선호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하나 둘 싹트는 대안들=관계자들은 번역시장의 각종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번역비평 문화의 활성화’를 꼽았다.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다빈치 코드』는 공론화된 번역비평이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낸 사례로 평가받는다. 『다빈치 코드』의 번역비평은 학계가 아닌 대중으로부터 시작됐다. 웹상에서 원문과 번역본을 비교하며 오역을 지적하는 누리꾼들이 하나 둘 모였고 급기야는 공개사과를 요구하는 누리꾼들도 있었다. 이에 출판사인 베텔스만코리아는 “흐름에 영향을 줄 만큼 심각한 오역은 아니었다”면서도 25쇄부터 외국소설 전문 번역가의 감수를 거친 개역판을 출간했다.

지난해 한국번역비평학회는 번역시장에서 전문적인 목소리를 내기 위해 『번역비평』 창간호를 발간했다. 회장 황현산 교수(고려대·불어불문학과)는 학회 창립 학술대회에서 “공개적·객관적으로 번역을 논의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학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번역에 대한 학계의 인식도 차츰 나아지고 있다. 교육부(현재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해 5월 발표한 「인문학 진흥 기본계획」에서 “논문형 작품만 학위논문으로 인정해온 관행을 바꿔 동서양 고전을 번역하더라도 박사논문으로 인정하는 제도를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학술진흥재단이나 대학에서도 번역을 연구실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학술진흥재단 인문학지원팀 정혁씨는 “사업에 따라 다르지만 번역서가 저서와 같은 대우를 받는 분야도 있다”며 “오는 7월에 신청을 받기 시작하는 ‘명저번역지원’ 사업 등을 통해 학술기반을 구축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이진환기자)

08. 05. 14.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노이에자이트 2008-05-15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여년 전 나온 김용옥<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우리나라도 번역을 연구실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제 그렇게 되나보군요.하지만 제대로 되려면 대학원생들 시켜 찢어쓰기 번역하고 교수이름만 붙여 책내는 관행이 없어져야 한다고 봅니다.이는 우리나라 특유의 더러운 위계질서가 없어져야만 가능하죠.저는 대학원을 안 가봐서 모르겠는데 박노자 씨 책에서 보고 깜짝 놀랐어요.조폭의 위계질서 같다는...
그리고 삼성문화문고에서 레오폴드 폰 랑케<젊은이를 위한 세계사>번역본이 있는데 역자해설이 전혀 없어서 완역인지 발췌역인지는 모르겠네요.

로쟈 2008-05-15 23:58   좋아요 0 | URL
대학원을 안 가셨다니 의외인데요. 저는 역사학쪽으로 박사학위라도 하신 걸로 알았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5-16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웬 박사? 그냥 독학했습니다.앞으로도 대학원 갈 가능성은 전무합니다.
저는 이병철 씨 최대의 공헌은 수출이 아니라 삼성문화 문고를 만든 거라고 생각합니다(특히 이 책이 진중문고로 군대로 들어간 것은 정말 잘된 일이었습니다).좋은 책들이 꽤 많죠.국한문 혼용과 세로줄 문고의 추억...지금도 헌책방에서 몇 권 씩 구합니다.
문화 강국은 좋은 사전과 좋은 번역이 많은 나라라고 생각합니다.아...그리고 도서관 사서의 자질도 빼놓을 수 없죠.

로쟈 2008-05-16 00:35   좋아요 0 | URL
(삼중당문고가 아닌) 삼성문화문고가 키워낸 인재시군요.^^

노이에자이트 2008-05-16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중당 문고도 좋아해요.20년 전부터 가로줄로 나오더군요.거기는 문학쪽이 많고 인문사회 쪽은 삼성문화문고가 많죠.두 문고에 모두 신세지고 있습니다.지금도...그리고 을유,박영사,탐구당에서 나온 문고본도...이젠 헌책방에서나 가끔 만나지만요...
장정일 씨에겐 삼중당 문고라는 시도 있더군요.

로쟈 2008-05-17 00:01   좋아요 0 | URL
유명한 시죠.^^

여울 2008-05-16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쉽더군요. 새로운 흐름에 대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로 풀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개념도 정립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날림번역을 하는 일들. 번역자에게도 독자에게도 모두 좋지 않은 길로 접어드는 것 같아요. 공동번역도, 번역문화와 생계해결도...논의가 활성화되면 좋겠다 싶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로쟈 2008-05-17 00:01   좋아요 0 | URL
상황이 반전되면 좋겠는데, 좀더 지켜봐야겠습니다...

구미웅 2008-06-04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이진환입니다.

가끔 로쟈님 서재에 오는데 늘 도움 많이 받습니다.

로쟈 2008-06-04 18:18   좋아요 0 | URL
지금 확인하신 걸 보면 아주 가끔 들르시는군요.^^
 

한국고전번역원의 박석무 원장과 한국문학번역원의 윤지관 원장이 번역의 의미와 두 번역원의 과제 등에 대해서 나눈 대담을 스크랩해놓는다. 눈길이 가는 건 '번역에 대한 처우와 번역가 양성' 쪽이다. 우리 고전과 문학 번역에만 한정시킬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한겨레(08. 03. 10) "우리고전 세계에 알리려면 두 번역원 협력해야죠”

한국고전번역원이 지난해 12월 공식 출범했다. 박석무 초대 원장이 부임해서 그동안 민족문화추진회 이름으로 해 왔던 고전 국역 사업을 질적으로 향상시키는 한편, 고전의 대중화·생활화를 위한 방안 마련에도 애쓰고 있다. 한편 지난 2001년에 문을 연 한국문학번역원은 문학작품의 번역을 중심으로 한국 문화의 해외 소개에 주력하고 있다. 박석무 한국고전번역원장과 윤지관 한국문학번역원장이 지난 6일 오후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만나 두 번역원의 현안과 상호 협력 방안, 번역을 둘러싼 사회적 여건 및 개선 방안 등에 관해 의견을 나누었다.

■ 번역의 의미와 고전의 세계화

박석무(이하 박): 먼저 번역이란 무엇인가 하는 원론적인 얘기로부터 시작해 보자. 사실 해방 이후 우리 역사는 전쟁과 독재의 회오리 속에서 우선 먹고사는 문제에 급급하다 보니 삶의 질을 논할 수 있는 바탕은 매우 취약했다. 70년대 이후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서 비로소 문화라는 것에 관심을 가진 게 아닌가 싶다. 번역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같은 맥락인데, 2001년에 한국문학번역원이 설립된 것이라든가, 그에 앞서 민족문화추진회에서 고전 국역 사업을 펼친 것은 역시 삶의 질과 문화를 찾는 국민들의 욕구에 부응하기 위한 시대적 산물이라고 볼 수 있겠다.

윤지관(이하 윤): 박 선생님 말씀에 대체로 동의하면서 좀 더 보충하고 싶다. 문화의 측면을 놓고 볼 때, 우리는 일방적으로 외국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처지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쌍방향적 소통의 중요성이 좀 더 부각되게 되었다. 양쪽 다 넓은 의미의 번역이 필요한 것이다. 한국고전번역원이 40년 전부터 민족문화의 현대화 작업을 수행해 왔기 때문에 그를 바탕으로 세계와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박: 한국문학번역원과 한국고전번역원이 긴밀히 협조해야 할 분야가 바로 우리 고전의 세계화 작업이다. 사실 현재의 고전 번역 수준은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고전 번역은 시, 문, 인문·사회과학, 자연과학 등이 두루 결합된 종합학문에 가깝다. 그만큼 까다로운 것이다. 다산 같은 걸출한 학자가 거의 외국에 번역돼 있지 않은 것은 그런 어려움 때문이겠지만, 매우 안타까운 노릇이다. 다산을 비롯한 소중한 우리 고전의 해외 소개를 위해서는 한국문학번역원의 협조가 절실히 필요하다.

윤: 한국문학번역원은 문학번역을 주된 목적으로 삼는 기관이지만, 고전번역에 대한 지원 역시 꾸준히 해 오고 있다. 지금은 인문·사회 분야만이 아니라 한국어로 된 모든 텍스트의 해외 번역 및 소개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문 고전을 제대로 한국어로 옮겨 놓은 게 드물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한국고전번역원의 역할이 절실하다고 본다. 2003년에 한국문학번역원에서 고전 번역 권장도서 100권의 목록을 작성, 발표한 적이 있는데 사실 목록 작성은 한국고전번역원에서 맡는 식의 분업이 필요한 일이었다.

■ 번역에 대한 처우와 번역가 양성

박: 번역이 어려운 것은 양쪽 언어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어느 한쪽만 능통해서는 훌륭한 번역이 가능하지 않다. 그런데 우리 학계에서는 번역을 중요한 연구 업적으로 평가하는 데 인색하다. 내 얘기를 해서 안됐지만, 내가 번역한 다산 책들을 참조해서 쓴 논문들이 숱하게 나왔다. 그것으로 박사 되고 교수 되는 이들은 많아도 내 번역은 학문적 업적으로 이해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내가 한국학술진흥재단(학진)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학진에서는 번역을 연구 업적으로 인정하도록 제도를 만들었고, 한국고전번역원에서도 성균관대나 고려대 등과 협력관계를 맺어서 번역을 연구업적에 포함시키도록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국가 차원에서 관심을 가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다.

윤: 저 역시 영문학자이면서 번역도 하는 처지에서 박 선생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사실 제대로 된 번역을 하나 하는 데 웬만한 논문 몇 편 쓰는 것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어떤 의미에서 번역이 기초학문이라면 논문은 일종의 실용학문이라 할 수 있다. 번역의 바탕이 있어야 논문도 쓸 수 있다는 뜻이다. 각 전공 분야의 학자 중에서 유능한 번역 인력이 나올 수 있는데, 지금으로서는 그럴 만한 여건이 안 돼 있는 형편이다.

박: 번역이 제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질 높은 번역이 나와야 한다는 게 전제조건이다. 그러기 위해 시급한 것이 번역자 양성이다. 나는 한국고전번역원장 일을 맡으면서 어떤 사업보다 번역자 양성과 교육에 치중하자고 생각하고 있다. 당장 몇 권의 번역서를 내는 것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번역 역량을 갖춘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전국의 한학자들을 수배해서 그들이 젊은 세대를 직접 교육하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윤: 저 역시 처음 한국문학번역원 일을 맡았을 때, 임기 동안 당장 드러나는 성과가 없더라도 번역가 양성을 위한 토대는 마련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실 한국문학작품을 외국어로 번역할 수 있는 외국인 번역자 수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영어에 10명 이내, 불어와 독일어도 각각 다섯 명을 넘지 않는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올해 9월 가칭 번역아카데미라는 번역 교육기관을 설립하기로 하고 얼마 전에 공청회를 열기도 했다.

■ 번역 평가와 국가적 번역 관리 시스템

윤: 역량 있는 번역가 양성과 함께 필요한 것이 기존 번역에 대한 평가 작업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영미문학연구회 공동대표로 있으면서 영미소설번역평가 사업을 시행한 적이 있다. 한국문학번역원장을 맡고 나서도 평가의 필요성을 절감해서 우선 영어로 번역된 소설 50종과 주요 시 작품들에 대한 평가를 하기로 했다. 소설에 대한 결과는 이미 나와서 곧 공표할 예정이고, 시 부문의 결과도 올해 말까지는 나올 것으로 보인다.

박: 한국고전번역원 역시 번역 평가는 필수적이다. 그러려면 예산도 필요하고 평가 전문가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평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큰 일이다. 올해 안에 평가 시스템을 구축해서 실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윤: 한국문학번역원은 우리 문학과 문화의 해외 번역 소개에 관한 유일한 정책기구로 구실하고 있다. 그러나 문학번역에 대해서야 어느 정도 역량이 갖추어져 있다고 해도 다른 문화예술 분야에는 역량이 미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국립극장과 관광공사, 영화진흥위원회 등과 업무협약을 맺어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는데, 궁극적으로는 국가 차원의 번역 시스템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박: 그 때문에 유관 기관끼리의 협조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만 해도 한국학중앙연구원이나 국사편찬위원회, 학술진흥재단 등과 사업 중복 여부와 용어 통일 문제 등을 논의할 협의체가 필요한 실정이다. 더 나아가 북한과 중국, 일본, 베트남 등 한자문화권과 협조관계를 맺을 필요도 있다. 특히 북한과는 양쪽의 번역 역량을 결합시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자 한다. 기회가 닿으면 북한 사회과학원을 방문해서 쌍방의 고전 번역 성과물을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도를 논의하려 한다.

윤: 한국문학의 해외 번역에서도 북한과 협력할 일은 많다고 본다. 북한은 특히 과거 소련 및 동구권 국가 출신 번역자들을 양성해서 우리 고전을 번역하는 데에 힘을 기울였다. 지금도 그쪽의 유능한 한국문학 번역자들은 북에서 훈련받은 이들이 대부분이다.(정리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 박석무 한국고전번역원장은 전남대 법과대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3, 14대 국회의원과 한국학술진흥재단 이사장, 단국대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다산연구소 이사장과 성균관대 석좌 초빙교수로 있다. 번역서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다산산문선> <역주 흠흠신서>(공역) 등이 있고, 저서로 <다산기행>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풀어쓰는 다산 이야기 1, 2>가 있다.

■ 윤지관 한국문학번역원장은 서울대 영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영미문학연구회 공동대표, <실천문학> 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덕성여대 영문과 교수로 있다. 번역서로 <톨스토이냐 도스토옙스키냐> <오만과 편견>(공역) <이성과 감성> 등이 있고, 저서로 <근대사회의 교양과 비평>과 평론집 <민족현실과 문학비평> <리얼리즘의 옹호> 등이 있다.

08. 03. 0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두말할 것도 없이 <논어>는 가장 중요한 동양고전의 하나다. 그 영향력에 있어서 흔히 기독교의 <성경>에 비견될 정도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성경>과 다른 건 소위 '정본'이 없다는 점이다. 국내에 나와 있는 <논어> 번역과 주해만 하더라도 수백 종에 달한다고 하니 좀 역설적이기도 하다(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것만 해도 수십 종이다). 여타 고전들과 다르게 <논어>의 경우에는 너무 많이 번역되어 있는 게 문제라고 할까. 거기에 번역본마다 해석이 불일치한 대목들도 적지 않기에 어느 번역본을 읽어야 '읽었다'고 말할 수 있을는지조차 불분명하다(나부터도 댓 종의 번역본을 갖고 있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지나간 기사이긴 하지만 논어 번역본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교수신문에 연재되었던 '고전번역비평'에서 <논어>에 관한 것이다(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7703). 연재의 첫번째 꼭지이기도 했다.

교수신문(05. 05. 31) 고전번역비평_최고 번역본을 찾아서 (1)공자의 論語

믿고 읽을 만한 번역본을 선별해주는 것이 전문가들에게주어진 과제 중의 과제이다. 특히 공자의 논어(論語)는 1백종이 넘는 번역본이 있어 일반인이 고르기가 쉽지 않다. 논어는 번역의 역사가 깊고 그 수준도 다른 고전들에 비해 높은 편이다. 이강재 서울대 교수는 “이제 논어번역은 원문의 충실성은 기본이고, 얼마나 자기 것으로 소화해서 전달하느냐에 달려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대학생 수준에서 읽기 좋은 논어 번역본을 추천해달라”며 관련 전공 교수 30명에게 설문조사를 했다. 논어 번역은 연구사를 얼마나 섭렵했느냐, 주희의 역주가 있느냐 없느냐, 창조적 번역의 정도에 있어서 지나치는 면은 없는지, 본문을 잘 이해할 수 있는 해제가 있는지 등을 골고루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다. 설문 응답자들은 각각의 책들이 이 중 한두가지를 만족할 뿐, 완벽한 번역본은 아직 없다는 의견을 보였다. 이번 설문에서는 동양연구회(*동양고전연구회)가 번역한 ‘논어’와 유교문화연구소가 번역한 ‘논어’가 각각 6명의 추천을 받아 가장 신뢰할만한 번역본으로 드러났다. 

 

 

 

 

둘다 올해 출간된 것으로 여러 연구자들이 장기간에 걸쳐 공동번역한 것이며, 현대어로 재번역하는 데 중점을 뒀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동양고전연구회가 옮긴 것은 유건종 교수를 중심으로 고려대 출신 학자들의 작업으로 “고어적 표현이나 어색한 표현을 많이 완화시켰다”, “교양적 수준에서 쉽게 읽힌다”, “기존 번역본들이 지닌 장점을 두루 참조해 오역이 최소화했다”, “현대 사상가들의 주석을 참조해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등의 의견이 있었다. 이 번역본은 9명의 연구자들이 격주 토요일마다 모여 강독하고 옮긴 지 9년여 만에 내놓은 결과물로 전문성에 있어서도 그 수준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추천자들은 말한다.

9년의 되씹음 거쳐 성과 얻었다
유교문화연구소가 옮긴 책은 논어의 ‘언해본’을 바탕으로 작업했는데 가장 정통적인 번역으로 꼽힌다. 이 책은 “기본으로 돌아가자”라는 모토를 내걸었는데, 공동번역자들은  일제 때 단절된 조선시대 경전읽기로 다시 돌아가는 마음으로 원전의 고전적 맛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추천 교수들은 “현대적인 표현으로 고쳤으면서도 한문도 적절히 써 고전의 장중한 맛이 살아있다”, “읽기 쉽다” 등을 추천의 이유로 꼽았다. 특히 동양고전을 한 단계 더 들어가서 보고 싶다는 학생들에게 적극 추천된다.

 

 

 



그 다음 총 5명이 추천한 김학주 서울대 명예교수의 번역은 老 대가다운 면모를 여실히 발휘하고 있다. 김학주 교수는 1970년대부터 동양고전을 선두에서 번역하면서 고전부흥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활약했다. 김 교수는 현직에서 퇴직한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예전의 번역본들을 꼼꼼히 재검토한 전면 개정판을 계속 내놓고 있어 주목을 끈 바 있다. “쉽게 풀어 썼으면서도 전문가들끼리의 논쟁거리를 충분히 던져준다”, “이만큼 탁월한 해제를 보기 어렵다”라는 게 교수들의 평이다. “번역에 있어서 학자적 양심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책”이란 말이 따라다니는데, 이미 관용어처럼 굳어져서 형식적으로 해석하고 넘어갈 수 있는 어구들도 더욱더 정확히 풀이해놓았기 때문. 

이기동 성균관대 교수의 번역작업도 많은 추천을 받았다. 이 교수는 ‘논어강설’ 외에도 ‘대학·중용 강설’, ‘노자’, ‘장자’, ‘맹자강설’ 등 수권의 동양고전을 섭렵해 역해서를 내놓고 있어 일가를 이루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의 역본이 네 명으로부터 추천을 받았는데, 이유는 무엇보다 “역자해설에서 본문의 내용을 주변의 현상과 견주면서 풀이하고 있어 이해를 쉽게 돕는다”라는 것인데, 이는 전문성이 탁월하기에 가능했다는 평들이다. 현대어로 번역된 건 물론이다.

참신함과 날카로움-배병삼·황희경
김학주·이기동 교수의 번역은 주희의 주석을 중심으로 해석을 했기 때문에 “공자보다는 주희의 시각을 보여준다”는 의견도 많았는데, 이는 한편으로는 정통적인 흐름 속에서의 논어를 익힐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지만, 늘 듣던 얘기인지라 깊이 음미하지 않으면 자칫 고루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은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도련 교수가 번역한 ‘논어-주주금석’은 주자의 영향에서 탈피해서 논어를 보려는 가장 선구적인 시도이다. “문맥을 정확히 살피는 데 중점을 두고 자구 하나하나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경박하게 주희를 다 쳐내지 않으면서, 정약용의 조선적 글읽기를 참조해 잘 번역했다”는 추천을 받았다.

 

 

 



황희경 교수의 번역은 3명에게 추천받았는데, 그의 번역은 “새로운 시각, 날카로운 해석, 장중한 사상적 깊이”로 특징지을 수 있다. 노신, 김근목, 이택후 등 중국 현대사상가들의 논어 주석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참신하다는 것. 그리고 앞의 문맥들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면서 중간중간 “번역자의 사상이 번득인다”라는 게 추천자들의 공통적 의견이다. 

배병삼 교수의 번역은 ‘튀는 번역’이라고 해 정통유학파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이지만, 오역 없이 원전과 주석을 널리 활용해서 잘 번역했다는 추천을 3명에게 받았다. 무엇보다 한글세대를 위해 완전히 한글로 번역했다는 점, 또한 사회과학자로서의 안목을 곁들였다는 평이다. “오늘날의 문제의식과 잘 연결되도록 논어를 해석했다”라고 전문가들은 견해를 밝힌다. 김형찬 교수의 번역 또한 3표를 얻었다. 그는 기자 출신이면서 동양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의외로 많은 교수들이 추천하고 싶은 번역본이라고 밝혔다. “문장이 고답적이지 않고 일상적인 친근감이 있다”, “젊은 감각에 맞는 언어를 선택했다”라는 게 추천의 변이다.



성백효 번역본-극과 극의 평가
사실 전문가들에게 가장 많이 읽히는 건 성백효 역이다. 주희의 주를 가장 먼저 한글로 번역했고, 문법에 따라서 교과서처럼 정확하게 옮겼기 때문이다. 이번 선정작업에서도 7명 정도가 다른 책을 추천하면서도, 말꼬리에서 성백효 번역이 “가장 정확하고 해제, 주석, 원문, 번역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고어투가 너무나 많다”라는 우려를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이 번역본을 갖고 학부생에게 강의해본 여러 교수들은 이번 추천의 변에서 “성백효 역을 대부분 학생들이 어려워 한다”라고 말했는데, 만약 논어도 읽고 한문도 정식으로 배우기 위한 것이라면 이 책이 괜찮다는 의견도 3건이나 있었다.

그 외에 박기봉 교수 번역도 2명에게 추천됐는데 “완역이 아니고, 직역도 아니지만 책이 작고 맹자도 함께 언급하고 있어서 학생들이 가지고 다니며 편하게 읽기에 좋다”라는 게 추천의 이유다. 그 외에 단수 추천된 책으로는 이을호 역, 황갑연 역, 윤재근 역, 김종무 역, 남희근 역, 이우재 역(이상 교수) 등이 있었다. 추천자들은 학자들이 자신의 인생을 배경으로 해서 논어를 읽은 에세이 류를 추천하기도 했는데, 삶 속에 반추된 논어야 말로 ‘진짜배기’ 아니겠냐는 것이다. 이 쪽으로는 남희근·이우재·안병욱 교수 등의 책이 읽어볼 만하다고 추천되었다.

이번 취재결과 또한 “번역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된 역본들도 있었다. 공자의 논어 자체를 현대적으로 번역시도한 경우 자의적인 해석이 많아도 이에 대해서 쉽게 비판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원본과 대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서집주를 번역한 경우는 원본과 곧바로 대조되기에 명백하게 오류들이 드러난다. 김동길·허호구 교수 역은 “다산의 논어고금주를 번역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오역들이 너무 눈에 많이 띈다”라는 지적을 받았다. 정후수 교수가 옮긴 ‘주희가 집주한 논어’(장락 刊, 2000) 역시 “명백한 오역들이 많다”라는 비판을 받았다.  류종목 교수가 옮긴 ‘논어의 문법적 이해’(문학과지성사 刊, 2000)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지만, 여러모로 자의적이고 무리한 해석이 많다”라는 평을 얻었다.(이은혜 기자)

교수신문(05. 05. 31) 번역의 역사_ 공자의 논어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내용으로 가득차 있는 ‘논어’이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논어를 번역하는 일이 오히려 난해한 문헌을 번역하는 것보다 어렵다. 논어에 관한한 최고의 주석가라고 할 만한 주희의 경우도 자신의 ‘논어집주’에서 “어떤 것이 옳은지 모르겠다(未知孰是)”라는 문구를 여러 차례 삽입해 스스로 텍스트의 내용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하물며 주석과는 달리 완전한 번역어를 제시해야 하는 번역의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다.

현재 논어의 우리말 번역서는 시판되고 있는 것만 1백60여종에 이르고 있으며 절판된 책까지 모두 합치면 3백종이 넘는다. 어떤 동양고전보다 많은 양이다. 하지만 수많은 동양고전 가운데서 논어가 가진 특별한 지위를 감안한다면 그리 많은 양이라 할 수 없다.

우리 나라에서 논어 번역의 역사는 16세기의 ‘논어언해’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근대적인 의미에서 최초의 번역은 1909년 최남선이 간행한 종합잡지 ‘소년’ 9호~12호까지 실렸던 ‘소년논어’라 할 수 있다. ‘소년논어’는 비록 완역은 아니지만 원문의 내용을 우리말로 옮기는 수준에 그친 것이 아니라, 원문의 신성성을 떨쳐버리고 주체적인 의미의 번역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소년논어’는 단순히 한문 문자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선에 그치지 않고 삶의 문맥을 활용해 번역했을 뿐만 아니라 대중어를 이용해 번역했다는 점에서 깜짝 놀랄 만큼 생동감이 뛰어나다. 완역이 되지 못하고 팔일편 첫부분에서 중단되고 만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최남선 이후 지금까지의 논어 번역사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으로는 1974년 박영사에서 문고판으로 간행한 이을호가 옮긴 ‘한글 논어’를 들 수 있다. 이을호 역은 원문에 얽매이지 않고 과감하게 우리의 일상언어로 바꾸어 번역했는데, 자연스러운 대화체를 사용함으로써 마치 공자의 육성을 직접 듣는 것처럼 생동감 있게 번역했을 뿐만 아니라 간결 명료한 번역으로 원문과의 대칭적 구조까지 살렸다는 점에서 절묘한 번역이라 할 만하다. 또 이을호 역은 삶의 문법이 분명히 보이는 번역으로 당시 65세, 막 정년을 앞둔 노학자의 치열한 학문역정을 엿볼 수 있을뿐더러 번역을 통해 권위를 굴레를 벗고 일상 속으로 다가오는 공자의 모습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앞으로 논어를 번역할 이들이 반드시 참고해야 할 탁월한 번역이라 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간행된 1백여종에 가까운 논어번역서 가운데에도 훌륭한 것이 많다. 이 시기의 논어 번역서는 주희나 정약용 등 전통 주석가들의 견해를 번역의 근거로 제시하는 한편 현대 학자들의 견해까지 반영하여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논어 원문에 없는 부분까지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부기하고 있는 점, 기존의 번역서에서 해결하지 못한 난해처를 많은 부분 해결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 기존의 논어 번역보다 한결 심층적인 번역물이 간행되었다. 예컨대 1998년 동녘에서 간행한 한필훈 번역의 ‘한글로 읽는 논어-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하나의 사례로 들 수 있다. 이 책은 논어 본문만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나올 경우에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본문 앞부분에 당시 공자가 그런 말을 하게 된 배경을 간단하게 기술하면서 본문으로 이어지게 편집해서 쉽게 읽히는 논어로 청소년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또 1999년 홍익출판사에서 간행한 김형찬역 ‘논어’는 표현하기 까다로운 특수 용어를 우리말로 적절하게 번역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자로편 21장의 ‘狂者’를 ‘꿈이 큰 사람’으로 번역함으로써 기존의 번역서가 모호하게 처리하고 넘어간 난해처를 분명하고 적절하게 해결하고 있다. 아울러 2000년 시공사에서 간행한 황희경 번역의 ‘논어-삶에 집착하는 사람과 함께하는’의 경우는 학이편 4장을 학이편 1장의 내용으로 해설한 내용, 팔일편 24장에 나오는 의봉인과 공자의 만남을 몽타주 기법으로 해설한 내용 등에서 기존의 논어 번역을 넘어서는 참신함이 엿보인다.

우리는 공자가 논어를 읽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자주 망각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공자가 아니라 논어텍스트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성인으로서의 공자를 가정하고 일상 속의 인간들에게 당신들의 삶은 잘못됐으니 이처럼 비범한 말을 가르침으로 받아들이라는 일방적 훈계로 일관된 번역과 해설을 붙여왔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고전 읽기는 우리의 일상을 얕보는 천박한 사고를 부추겨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현실의 모순을 은폐하고 안락한 도피처를 찾아 떠나게 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고전을 해체하고 우리의 일상 속으로 끌어들이는 길만이 참된 의미에서 우리의 고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삶의 문법으로 번역한 논어를 기다리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전호근 경기대 교수)

교수신문(05. 07. 13) 반론:고전번역 비평 기사에 대한 문제 제기

최근 교수신문에서 기획하여 고전 번역에 대한 비평을 연재하고 있다. 그간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고전 번역에 대한 비평이 없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며, 또한 비평의 목적이 궁극적으로 일반인에게 최고의 번역본을 소개해 준다는 측면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고 보여진다. 다만 기획의 의도와는 달리 번역 비평이 이루어지거나 비평 기사가 작성되는 과정에 대하여 잘못되었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이번 기획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실명 비평이다. 즉 번역서의 저자 실명을 거론하면서 추천된 번역본과 비판된 변역본을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서로의 잘못을 덮어주기에 급급한 우리의 학계에 대한 엄중한 경고이면서 번역의 엄밀성에 대한 강조라는 측면에서 신선한 충격을 주는 부분이다. 그러나 실명 비평의 전제는 비평의 대상에 대한 실명만이 아니라 비평 당사자 역시 실명이어야 하며 비평의 이유에 대한 명확한 내용도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다수의 이름 속에서 혹은 익명성 속에서 명확한 비평의 근거도 없이 실명 비평이 이루어진다면, 이는 비판의 대상이 된 실명 변역자에 대해서 변론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채 이루어지는 일종의 마녀사냥으로 변질되기 쉽다. 이를 좀더 거칠게 표현하자면 사이버상에 난무하는 익명성에 근거한 댓글의 일종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실명 비평의 기획 의도를 잘 살리고자 한다면 실명 비평의 방식에 대한 검토가 선행되어야할 것이다.

이번 기획 기사에서 두 번째로 문제가 되는 것은 추천의 방식이다. 필자 역시 논어에 대한 30명의 추천 교수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필자에게 요구된 추천 방식은 학생들에게 권할만한 논어 번역서가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1-2분 정도 한 차례의 전화 통화뿐이다. 어느 전공 교수라 해도 160여종이 판매되고 있다는 논어의 번역서를 제대로 다 파악할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처음 몇몇 전공 교수를 통해 제한된 우수 번역서를 먼저 선정하고 그에 대한 엄밀한 분석 혹은 추천 교수의 토론을 거친 이후에 추천 번역서 혹은 비판 번역서를 선정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 생각한다. 기사에 제시된 추천 교수가 어떻게 해서 선정된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일방적으로 전화 한 통에 의해 실명 비평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신문에 기사화된다는 것은 상당히 무책임한 대목이다. 많은 교수들은 전화 한 통에 의지해서 무책임하게 작성된 일반 신문의 기사에 의해 속상해하거나 피해를 본 경험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교수를 독자로 삼는 교수신문조차도 이러한 취재 방식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 우리를 매우 슬프게 한다.

또한 추천 교수 명단에 포함된 교수진은 직간접적으로 해당 번역서와 관련된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에 대한 고려이다. 논어에 대한 추천 교수 명단을 살펴볼 때, 가장 추천이 많이 된 것으로 기사화된 유교문화연구소 간행본과 직접적으로 관여된 교수만 해도 네 명이며 간접적으로 관련까지 고려한다면 훨씬 더 많은 수의 교수가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2005년 3월 20일 발행되어 두 달 정도밖에 지나지 않아 아직 시중에 충분히 배포되지도 않은 도서가 제일 많은 교수의 추천을 받는 일이 가능한 것은 아닐까 의구심을 갖는다. 또한 동양고전연구회 번역서의 집필에 직접 참여한 교수 중 세 사람이 이번 추천교수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다른 추천교수 명단을 보아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30인의 추천교수 중 논어 번역서를 낸 바 있는 분이 예닐곱 분이 넘으며 해당 번역서를 낸 교수와 동일한 대학, 동일한 학과에 근무하는 교수나 그 제자가 다수 포함된 것을 볼 때 추천의 객관성에 대해 의구심을 보내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덧붙이고 싶은 것은 논어 번역서와 관련된 기사의 내용 중 상당 부분이 무성의함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번역서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해당 책의 출판연도는 평가의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기사에서는 논어 번역서에 대한 출판연도를 자세히 조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가령 동양고전연구회의 번역서는 2005년이 아닌 2002년에 초판이 나온 것이며, 김학주 교수의 번역서는 2003년이 아닌 1985년에 초판이 나왔다. 뿐만 아니라 기사에서 주희의 주를 가장 먼저 한글로 번역했다고 되어 있는 성백효 선생 번역본의 경우 1990년 5월 초판이 나왔는데, 이는 같은 해 간행된 김도련 교수의 번역본보다도 약간 늦게 출판된 것이며, 1982년 간행되었던 한상갑 교수의 번역에 비하면 훨씬 뒤늦은 것이다. 이러한 오류는 기사가 완성되기 전에 충분한 사전 조사를 하지 않은 채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며, 이것이 의욕적으로 시작한 고전번역 비평에 대한 기획의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할 수 있다.(이강재 서울대 중문학과 교수)

[참고] 이는 문제제기와 관련된 참고자료입니다.

추천인 중 논어 역주서 집필자

[개인 집필자]
이동희 (1997, 계명대 출판부, 논어)
이애희 (1992, 민음사, 공자 사상의 발견) - 직접 역주서가 아닐 수 있음.
임종욱 (2002, 나무아래사람, 논어)
장숙필, 정상봉 (2002, 지식산업사, 논어)
황희경 (2000, 시공사, 논어)
배병삼 (2002, 문학동네, 논어)

동양고전연구회 논어 집필진
고재욱 (강원대 철학과)
김백현 (강릉대 철학과)
* 김병채 (한양대 철학과) -- 추천 교수에 포함
유권종 (중앙대 철학과)
이강수 (연세대 철학과)
이명한 (중앙대 철학과)
* 장숙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 추천 교수에 포함
* 정상봉 (고려대 철학과) -- 추천 교수에 포함

논어 추천 교수 중 유교문화연구소 논어 관련 교수 (직접 관련만)
안재순 (강원대) - 교열위원
이천승 (성균관대) - 집필 위원
최영진 (성균관대) - 기획 당시 유교문화연구소 소장
김영호 (영산대) - 초기 기획 참여

추천 교수 중 영산대 교수(추천된 번역서 역자 배병삼 교수 소속 대학)
배병삼 교수, 김영호 교수, 이상익 교수, 조광호 교수, 황희경 교수

<해명>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논어’가 시리즈의 첫회라 미흡한 점이 많았습니다. 이 점에 대해 앞으로 계속 보완해나겠습니다. 번역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는 취재원의 전문성, 구성에서의 공정성을 더욱 철저히 고려하겠습니다. 다만 5회를 진행하면서 1백20명 교수들 중 몇분 안에 취재가 끝난 경우는 적었습니다. 대부분은 장시간 의견을 밝혔고, 원고지 20~30매로 의견을 밝혀주신 경우도 있었습니다. 번역자를 취재원에 포함시킨 건 기존 번역서에 대해 잘 알기 때문이고, 자기 책은 추천하지 못하게 돼 있었음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이은혜 기자)

08. 01. 22.

Конфуций Суждения и беседыКонфуций Конфуций - Суждения и беседы

P.S. 러시아어 문고본의 <논어>이다. 문고본답게 가격은 저렴해서 3,000원 정도. 제목은 <견해와 대화>로 돼 있다. 오른쪽은 고가 한정본인데 가격은 14만원이 좀 넘는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람혼 2008-01-24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몇 종류의 '번역본'ㅡ이렇듯 <논어>를 '타자화'시키기란 어떤 의미에서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ㅡ을 갖고 있지만, 정말 많은 번역본들이 있군요. 소개글에 감사드립니다. 몇 권은 구해서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로쟈님 말씀처럼 어떤 의미에서 <논어>의 '정본'이 확정되는 일은 참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성경>에 대한 연구가 '해석학(Hermeneutik)'의 탄생을 촉발했던 것과도 같은 에너지를 <논어>에서도 또한 기대하게 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논어>는 예나 지금이나 '문제적'이고 '징후적'인 텍스트로군요.^^

로쟈 2008-01-24 23:31   좋아요 0 | URL
이번에 새삼 알게 된 것이지만 서로 모순적인 번역/해석까지도 '공식적'으로 허용하더군요. 우리가 '상상하는' 공자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