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 한국일보 객원논설위원의 칼럼이 얼마전부터 '언어학 카페 말들의 모험'으로 바뀌었다.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거쳐서 다시 '전공'인 말들의 세계, 언어학의 세계로 돌아온 것. <감염된 언어>(개마고원, 1999/2007)을 읽고서 '아, 고종석!'이라고 무릎을 쳤던 나로선 반가운 일이다. 이런 칼럼이 일간지에 연재된다는 사실 자체도 고무적이고. 그가 세 차례에 걸쳐 나눠 실은 '번역이라는 고역'을 옮겨놓는다. 소쉬르 언어학의 기본용어들을 소개하면서 용어번역의 이런저런 문제들을 숙고해보도록 한다.    

한국일보(09. 10. 12) 번역이라는 고역(苦役) (上)

고바야시 히데오(小林英夫ㆍ1903~1978)라는 일본인 언어학자가 있습니다. "고바야시 히데오? 들어본 이름이군!" 하는 독자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 고바야시 히데오는 언어학자 고바야시 히데오가 아니라 예술비평가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ㆍ1902~1983)이기 쉬울 거예요. 성(姓)은 같지만, 이름의 한자가 다릅니다.

언어학자 고바야시 히데오는 이름이 닮은 한 살 위의 평론가만큼 20세기 일본 지성사를 요란스럽게 살아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언어학사 책 한 구석에 흐릿한 윤곽으로 웅크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를 일으켜 세워 양지바른 곳으로 불러내 봅시다.

스물다섯 살 때인 1928년, 고바야시 히데오는 소쉬르의 <일반언어학강의>(CLG)를 일본어로 옮겨 출간했습니다. 고쇼인(岡書院)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이 일본어판 CLG의 표제는 <겐고가쿠겐론(言語學原論)>이었습니다. <겐고가쿠겐론>은 1916년 로잔과 파리에서 초판이 나온 CLG의 첫번째 번역본입니다. 그러니까 프랑스어로 쓰인 CLG의 첫 번역본은 일본어판이었습니다. 오늘날 CLG는 한국어를 포함한 스물 남짓의 자연언어들로 번역돼 있습니다.

유럽어 번역본이 일본어 번역본보다 시기적으로 늦은 데는 유럽인들이 일본인들보다 프랑스어를 읽기가 더 쉬웠다는 사정도 개입했겠습니다만, 그 사실 때문에 고바야시 히데오의 높은 안목을 지나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원서가 나오고 10여 년 세월이 지나는 동안 프랑스어권 바깥의 어느 언어학자도 굳이 번역할 생각을 하지 않았던 CLG가 일본인 청년 고바야시의 눈에는 단번에 '고전(古典)'으로 비쳤던 것입니다. <겐고가쿠겐론>은 1939년 출판사를 이와나미쇼텐(岩波書店)으로 옮겼고, 1972년 고바야시가 직접 개역(改譯)하면서 표제를 원서 제목에 맞추어 <잇판겐고가쿠고기(一般言語學講義)>로 바꿨습니다.  

그런데 고바야시 히데오 이래 수많은 CLG 번역자들은 소쉬르 고유의 프랑스어 용어들, 곧 우리가 지난번에 살폈던 '랑그' '파롤' '랑가주' '시니피앙' '시니피에' 따위를 어떻게 처리했을까요? 맞춤한 역어(譯語)를 찾기 힘들다는 핑계로 우리처럼 프랑스어 단어를 그대로 썼을까요? 아니면 억지로라도 그 대응어를 찾아냈을까요? 역자들 대부분이 그 용어들에 대응함직한 말을 제 모국어에서 찾아내려 애썼습니다. 그 애씀의 과정은 소쉬르를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이론의 영역을 넓힌 이들이 새로운 개념을 담기 위해서 고를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새 말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예컨대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문화적 복제자'(replicator)라는 개념을 담기 위해 '밈'(meme)이라는 말을 새로 고안해냈습니다. 그러나 더 일반적인 경우는 이미 사용되고 있는 일상어에 특별한 뜻을 담는 것입니다. 소쉬르의 '랑그'(langue), '파롤'(parole), '랑가주'(langage)가 전형적입니다.

일상 프랑스어에서 '랑그' '파롤' '랑가주'는 평이한 말입니다. '랑그'는 그저 '언어'라는 뜻입니다. 랑그 마테르넬(langue maternelle)은 '모국어'이고, 랑그 알망드(langue allemande)는 독일어입니다. '파롤'은 그저 '말'이라는 뜻입니다. 파롤 드 디외(parole de Dieu)는 '하느님의 말씀' 곧 복음(福音)입니다. '랑가주'는, '랑그'보다 조금 무거운 느낌을 주긴 하지만, 역시 '언어'라는 뜻입니다.

랑가주 나튀렐(langage naturel)은 '자연언어'이고, 랑가주 아르티피시엘(langage artificiel)은 '인공언어'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들의 쓰임새가 다르기는 하지만, 본디부터 그 말들에 각각 언어의 추상적 측면, 언어의 구체적 측면, 언어활동 전체라는 뜻이 또렷이 담겼던 것은 아닙니다. 이 말들에 그 특별한 개념들을 담은 것은 소쉬르지요.

이 때, 프랑스어의 일상어 단어들(여기선 '랑그' '파롤' '랑가주')에 거의 대응하는 일상어 단어들을 갖춘 자연언어로 소쉬르 용어를 옮기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 해당 일상어를 그냥 가져와도, 어차피 CLG에 소쉬르의 설명이 있으니, 독자들이 오해할 여지가 크지 않습니다. 스페인어가 그런 경우입니다. 소쉬르의 '랑그'를 '렝과'(lengua)로, '파롤'을 '아블라'(habla)로, '랑가주'를 '렝과헤'(lenguaje)로 옮기는 데, 스페인어 배경의 언어학자들은 거의 다 동의합니다.

그런데 이탈리아어만 해도 일이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일상 이탈리아어에는 일상 프랑스어의 '랑그'와 '랑가주'에 해당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링과'(lingua)와 '링과조'(linguaggio)가 그것입니다. 그러니 소쉬르의 '랑그'를 '링과'로, '랑가주'를 '링과조'로 옮기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문제는 '파롤'에 있습니다. 물론 일상 이탈리아어에는 일상 프랑스어 '파롤'에 얼추 대응하는 단어도 있습니다. '파롤라'(parola)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탈리아어 '파롤라'는 그저 '말'이라는 뜻으로 쓰기도 하지만, '낱말' 곧 '단어'(프랑스어의 mot)라는 뜻으로 더 자주 씁니다.

소쉬르 식으로 표현하자면, 프랑스어 '파롤'과 이탈리아어 '파롤라'는 가치(valeur)가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CLG에는 '단어'(mot)라는 말이 여러 차례 나옵니다. 그러니, '파롤'을 '파롤라'로 옮겨 버리면, 프랑스어 '모'(motㆍ단어)를 번역할 말이 없어집니다. 이런 혼돈을 무릅쓰고 소쉬르의 '파롤'을 '파롤라'로 번역하는 이탈리아인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이탈리아 언어학자들은 소쉬르의 '파롤'을 고스란히 가져와 그냥 '파롤'이라고 씁니다. 본문의 다른 단어들과 체(體)를 달리해, 외국어 단어라는 것을 드러내줄 때가 많지요.

프랑스어 '랑그'와 '랑가주'의 (형태적) 구별이 없는 자연언어의 경우, 소쉬르가 특별한 의미를 담은 이 두 단어를 구별하는 것은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닙니다. 예컨대 영어가 그렇습니다.(일본어나 한국어는 말할 나위도 없지요) 일상 프랑스어의 '랑그'와 '랑가주'는 둘 다 일상 영어의 '랭귀지'(language)에 해당합니다. 웨이드 배스킨(Wade Baskin)이라는 언어학자는 CLG를 영어로 번역하면서 '랑그'를 '랭귀지'로, '파롤'을 '스피킹'(speaking)으로, '랑가주'를 '스피치'(speech)로 일관되게 옮겼습니다. 로이 해리스(Roy Harris)라는 언어학자의 전략은 전혀 달랐습니다. <소쉬르 읽기(Reading Saussure)>라는 단행본 소쉬르 연구서를 내기도 한 해리스는 CLG를 영어로 옮기면서, 가장 중요한 단어라 할 '랑그'를 그때그때 맥락에 따라 달리 번역했습니다.

소쉬르가 특별한 의미를 담은 '랑그'는 '랭귀지 스트럭처'(language structure), '링귀스틱 스트럭처'(linguistic structure), '링귀스틱 시스템'(linguistic system) 따위로 옮긴 반면에, 일상적 의미의 '랑그'는 앞의 관사를 변화시켜 가며 '랭귀지'로 옮겼습니다. '랑가주' 역시 그저 '랭귀지'로 옮겼지요. 해리스는 또 '랑가주'를 '스피치'로 옮긴 것(배스킨이 그랬지요)이 엄청난 오역이라고 공박하면서(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우리들도 공감할 수 있는 지적입니다), '스피치'를 '파롤'의 역어로 삼았습니다. 해리스의 주장과 실천이 그의 옳음을 증명해주지는 못하지만, 번역이라는 행위의 어려움을 증명하는 것은 확실합니다.

아무런 선례의 혜택도 입지 못한 고바야시 히데오는 소쉬르 용어들을 뭐라 옮겼을까요? 그는 '랑그'를 '겐고(言語)'로, '파롤'을 '겐(言ㆍ말)'으로, '랑가주'를 '겐고가쓰도(言語活動)'로 번역했습니다. 또 '시니피앙'은 '노키(能記)'로, '시니피에'는 '쇼키(所記)'로 옮겼습니다. 고바야시의 선례를 따라 한국어판 CLG(들)도 '랑그'를 '언어'로, '랑가주'를 '언어활동'으로, '시니피앙'과 '시니피에'를 각각 '능기'와 '소기'로 옮겼습니다. 한국어판에서는 '파롤'을 주로 '화언(話言)'이라 옮기는데, 이 말 역시 일본식 조어(造語) 냄새를 풍깁니다. 게다가 고바야시의 '겐'이 일상어인 데 견주어, '화언'이라는 말은 일상에서 너무나 먼 말입니다. '화언'은 소쉬르가 '랑그'와 대립시켜 거론한 '파롤'의 역어로밖에 쓰지 않는 말이고, 그래서 프랑스어 '파롤'과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말입니다.

청각이미지와 개념을 각각 가리키는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역어들은 더욱 그렇지요.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역시 일상 프랑스어치고는 조금 무거운 말이지만, '능기'와 '소기'에 댈 게 아닙니다. '기표'나 '기의', '기고보(記號母)'나 '기고시(記號子)' 같은 다른 한일(韓日) 역어들도 그렇습니다. '시니피앙'과 '시니피에'라는 말을 그냥 쓰느니만 외려 못하게 돼버렸지요.  

한국일보(09. 10. 19) 번역이라는 고역 <中> 

소쉬르 용어의 번역 문제를 조금 더 짚어봅시다. 언어활동('랑가주')의 개인측면과 사회측면을 각각 '파롤'과 '랑그'라고 부르면서, 소쉬르는 일상 프랑스어 '파롤' '랑그' '랑가주'의 의미가 자신의 일반언어학 용어 '파롤' '랑그' '랑가주'의 의미에 너무 깊이 간섭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던 모양입니다. 그는 '랑가주'를 '랑그'와 '파롤'로 나누어 논한 뒤, 얼른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우리가 정의한 것은 사물이지 낱말이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겠다. 그러므로 언어에 따라서 몇몇 용어들이 모호해져 서로 깔끔하게 대응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가 확립한 구별에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고 나서 소쉬르는 독일어와 라틴어의 예를 듭니다. 그의 말을 계속 들어보지요. "가령 독일어 Sprache는 '랑그'와 '랑가주'를 뜻한다. Rede는 '파롤'에 얼추 대응하지만, 거기에 '디스쿠르'(discoursㆍ담화)라는 특수 의미를 보탠다. 라틴어 sermo는 외려 '랑가주'와 '파롤'을 의미하는 한편, lingua는 '랑그'를 가리킨다. 어떤 낱말도 앞에서 자세히 설명한 개념들 중 하나에 정확히 대응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낱말에 내려진 모든 정의(定義)는 헛되다. 사물을 정의하기 위해 낱말에서 출발하는 것은 나쁜 방법이다."

<일반언어학강의>(CLG)의 라틴어 번역본은 없습니다. CLG가 출판된 20세기 초는 라틴어가 이미 유럽 지식사회의 공용 문어 자리를 잃은 지 오래니 그럴 만합니다. 독일어 번역본은 당연히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제가 지닌 것은, 헤르만 로멜(Herman Lommel)이라는 사람이 옮긴 <그룬트프라겐 데어 알게마이넨 슈프라흐비센샤프트(Grundfragen der Allgemeinen Sparchwissenschaft)>입니다. 1967년 베를린에서 나온 책이군요. 원본 표제의 '강의'(Cours)가 로멜의 독일어 번역본에선 '근본문제'(Grundfragen)로 바뀐 게 눈에 띕니다.

그렇다면 로멜은 소쉬르의 '랑그' '파롤' '랑가주'를 뭐라 옮겼을까요? 독일어에 능숙했던 소쉬르의 조언을 따랐을까요? 곧이곧대로 따르진 않았습니다. 로멜은 '랑그'를 '슈프라헤(Sprache)'로, '파롤'을 '슈프레현(Sprechenㆍ말)'으로, '랑가주'를 '멘슐리혜 레데(menschliche Rede)'로 옮겼습니다. 독일어 감각이 무디니, 이 번역이 잘된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판단을 삼가겠습니다. '랑가주'를 '멘슐리혜 레데' 곧 '사람의 말'로 옮긴 데서, 로멜이 겪었을 고충이 드러납니다.

일상 프랑스어의 '랑그'와 '랑가주'에 (의미적으로만이 아니라 형태적으로) 대응하는 낱말을 제 어휘목록에 지닌 자연언어들(지난번에 살핀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가 그랬지요) 이외의 언어(영어가 그랬지요)로 이 두 용어를 구별해 옮기는 것은 역시 어려운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영어와 독일어가 그럴진대, 일본어로 이 둘을 구별해 옮기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을 겁니다. 고바야시 히데오가 그것들을 '겐고(言語)'와 '겐고가쓰도(言語活動)'로 옮긴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이 두 역어는, '랑그'와 '랑가주'처럼, 형태적 공통인수를 지녔습니다. 그리고 '랑그'가 '랑가주'의 부분집합이듯, '겐고'가 '겐고가쓰'의 부분집합임이 한눈에 드러납니다.

일상 프랑스어의 '랑가주'보다 일상 일본어의 '겐고가쓰도'가 조금 무거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군요. 번역이라는 병치레가 수반하는 발열(發熱) 증상 정도로 생각합시다. '파롤'을 '겐(言)'으로 옮긴 것도 잘된 번역 같습니다. "겐(言) 오 마타나이"(말할 것도 없다, 자명한 일이다) 같은 예에서 보듯, 일상 일본어 '겐'은 일상프랑스어 '파롤'에 얼추 대응합니다.

그러나 '파롤'의 한국어 번역어 '화언(話言)' 앞에선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군요. 물론 이 말을 표제어로 올린 한국어사전도 있긴 합니다. 예컨대 이희승 국어대사전엔 '화언'이 "말을 함. 이야기함. 또, 그 말이나 이야기"라 풀이돼 있습니다. 그러나 일상 한국어에서 '화언'은 죽은 낱말, 없는 낱말입니다. 반면에 '파롤'은 일상 프랑스어에서 싱싱하게 꿈틀거리는 낱말입니다. 그 두 말 사이의 거리는, 일상 독일어 '페어슈탄트(Verstand)'나 일상 영어 '언더스탠딩(understanding)'과 한국어 '오성(悟性)' 사이의 거리보다 훨씬 더 멀어 보입니다.

'오성'이라는 말도, 철학적 맥락 바깥에선 쓰지 않는 탓에, 부적절한 역어의 대표적 예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립니다(사실 일본사람들이 '고세이ㆍ悟性'로 옮긴 것을 그냥 베껴온 것이긴 합니다). 그런데 '화언'은 '오성'보다 더 굳어있는 말입니다. '파롤'을 '화언'으로 옮기는 것은 그 말을 아무 의미 없는 소리뭉치로, 예컨대 '비디비디'나 '쿵빠짜'로 옮기는 것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비디비디'나 '쿵빠짜'가 한국어 공간에서 생명 없는 말이듯, '화? 역시 방부제로 처리한 주검이나 다름없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파롤'을 차라리 '말'로 옮기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그 말이 소쉬르 언어학의 맥락에선 언어활동의 개인측면을 가리킨다는 것이 어차피 명시될 테니 말입니다. '말'이라는 말이 영 내키지 않았다면(도무지 학술용어처럼 들리지 않았다면: 사실 이건 커다란 편견이지요. 학술어는 흔히 일상어의 특별한 사용일 뿐이니까요), 이탈리아 사람들처럼 그냥 '파롤'이라고 놔둘 수도 있었을 겁니다.

우리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예를 따르려 합니다. 아니 그들보다 더 나아가려 합니다. '파롤'은 물론이고 '랑그'나 '랑가주'라는 말도, 소쉬르의 맥락에서는, 그냥 가져다 쓸 생각입니다. '시니피앙'과 '시니피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능기'와 '소기', '기표'와 '기의'라는 말의 생기가 '시니피앙'과 '시니피에'라는 말의 생기보다(심지어 한국어 텍스트 안에서도) 덜하다고 여겨서입니다.

소쉬르 번역과 관련해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용어가 또 있습니다. '음성학'과 '음운론'입니다. 지금의 언어학자들에게 음성학은 '포네티크(phonetiqueㆍ영어로는 phonetics)'의 대응어이고, 음운론은 '포놀로지(phonologieㆍ영어로는 phonology)'의 대응어입니다. '포놀로지'와 '포네미크(phonemiqueㆍ영어로는 phonemics)'를 구별하는 언어학자도 있는데, 말소리에 관한 이 학문들의 분류와 그 내용은 언젠가 자세히 살필 기회가 있을 겁니다. 이 자리에선 음성학과 음운론의 차이를 짧게 얘기하고, 이 용어들이 소쉬르 번역에서 왜 문제가 되는지만 살피겠습니다.

음성학은 음성을 연구하는 학문이고, 음운론은 음운(이라기보다 차라리 '음소'라고 해야겠네요. 음운과 음소의 구별에 대해선 뒷날을 기약합시다)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음성은 말소리 일반을 가리키고, 음소는 한 자연언어에서 실현되는 말소리 가운데 의미와 관련이 있는 말소리들을 가리킵니다. 아주 거칠게 도식화한다면, 음성학은 파롤의 언어학에 속하고, 음운론은 랑그의 언어학에 속합니다.

'동물의 살'을 뜻하는 한국어 낱말은 '고기'입니다. 이 단어의 첫 자음과 둘째 자음은 다 'ㄱ'으로 표기됐지만, 서로 다른 소리로 실현됩니다. 즉 첫 자음은 [k]로 실현되고 둘째 자음은 [g]로 실현됩니다. 둘째 자음도 본디는 [k]였지만, 두 모음(두 유성음) 사이에서 유성음으로 변한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어 화자들에게 이 두 소리는 똑같이 들립니다. 한국어 음성학은 이 [g] 소리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어 음운론은 거기 관심이 없습니다. 한국어에서 [g]는 독립된 음소가 아니라 음소 {k}의 환경적 변이음일 뿐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물고기'에서는 첫 'ㄱ'이 /k'/로 실현됩니다. 이 경우의 /k'/도 음소 {k}의 환경적 변이음이긴 합니다. 그러나 한국어 음운론은 /g/와는 달리 /k'/에는 관심이 있습니다. '굴'[kul]과 '꿀'[k'ul]의 비교에서 보듯, 한국어에서 {k'}는 {k}와 대립해 의미 차이를 만들어내는 버젓한 음소이기 때문입니다.

CLG 서론의 마지막 장(章)과 그 부록은 'phonologie'에 대한 논의입니다. 그런데 소쉬르가 여기서 실제로 논의하는 것은 (음운론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음성학'이라고 부르는 것과 거의 겹칩니다. 소쉬르의 phonologie는 오늘날의 phonologie와 의미가 전혀 다르다는 얘기입니다. 이 때 이 'phonogie'를 '음운론'이라 옮겨야 할까요, 아니면 '음성학'이라 옮겨야 할까요? CLG의 한국어판 둘 가운데 한쪽은 '음성학'을 골랐고, 다른 쪽은 '음운론'을 택했네요. 영어로는 이 'phonologie'를 'phonology'로 옮기는 게 옳을까요, 아니면 'phonetics'로 옮기는 게 옳을까요. 웨이드 배스킨은 'phonology'라 옮겼고, 로이 해리스는 'physiological phonetics'라 옮겼군요. 참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한국일보(09. 10. 26) 번역이라는 고역 <下>

방부 처리한 주검에 '파롤'의 한국어 역어 '화언'을 견주며, 저는 번역자의 무성의와 무감각을 탓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공정한 비판이었을까요? 부분적으로만 그렇습니다. 소쉬르의 '파롤'이 일상어의 특별한 사용이었듯, 한국어에서도 특별한 사용을 통해 전문용어 노릇을 겸할 수 있는 일상어를 찾아냈다면 좋았겠지만, 번역자 처지에선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사실 적지 않은 (전문용어들의) 역어들이 주검 상태에서 생애를 시작합니다. 운이 좋아 거기 생기가 깃들이면 그 낱말이 일상어로 자리잡게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그 말은 전문용어 사전 속에만 숨어있게 됩니다. '화언'은 운이 나빴을 뿐입니다.

이를테면 메이지(明治) 시대 초기의 일본인들은, 오늘날 한국인들이 '화언'이란 말에서 느끼는 낯섦보다 더 지독한 생경함을 '샤카이(社會)'라는 말에서 느꼈을 겁니다. 오늘날의 일본인들은 영어 낱말 society를 대뜸 '샤카이'에 대응시킵니다. 일본사람들을 따라서, 오늘날의 한국인들도 society를 즉시 '사회'에 대응시킵니다. 그렇지만, 일본어에서 '샤카이'가 society의 역어로 정착된 것은 18세기 말 이래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뒤의 일입니다.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가운데 큰 것 하나는 일본 전통사회에 society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동료들끼리의 결합을 뜻하는 society는 전통 일본에도 있었지요. 그러나 가장 넓은 범위의 서로 모르는 개인들이 모여 이룬 집단을 뜻하는 society는 일본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만큼 이 단어의 번역은 쉽지 않았고, 최후의 승자로 남은 '샤카이'조차 처음엔 '방부 처리한 주검'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 말이 생기를 얻은 것은 수많은 일본인들이 그 말을 society라는 의미로 사용한 덕분입니다. '샤카이'가 운이 좋았던 거지요. 현대 일본의 정신적 초석을 놓은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ㆍ1835~1901)만 해도, 1868년 영어로 된 경제학 교과서를 <세이요지조 가이헨(西洋事情 外篇)>이라는 표제로 일역하며, society를 '닌겐고사이(人間交際)' '고사이(交際)' '구니(國)' 따위로 옮겼습니다. 세이후(政府)나 세조쿠(世俗), 소타이진(總體人) 같은 낱말도 그 시절 '샤카이'의 경쟁어였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현대한국어 문장이나 현대일본어 문장은, 심지어 그 문장들이 한국학이나 일본학을 논하고 있을 때조차, 압도적으로 '번역된 유럽'이라는 점을 지적해야겠습니다.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이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글에는 한두 세기 전 한국인이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들(주로 한자어)이 많은데, 그 말들은 대개 유럽 사회에서 태어난 개념들을 번역한 것입니다.

그 번역의 주체는 18세기의 란가쿠샤(蘭學者ㆍ네덜란드어 문헌들을 통해서 유럽 문화를 연구하던 이들)와 19세기 중엽 이래의 에이가쿠샤(英學者ㆍ영어 문헌을 통해 서양 문화를 연구하던 이들)를 비롯한 일본인 번역가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두 세기 남짓 기간에 걸쳐 유럽(아메리카까지 포함한) 문화 전체를 한자로 옮겨내 제것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 '번역된 유럽'은, 19세기 말 이래 반세기 이상 한국이 일본문화권의 일부를 이루면서, 고스란히 한국어에 이식됐습니다. ('란가쿠[蘭學]' 이래 일본인들이 수행한 번역활동을 비롯해 번역행위의 세계문명사적 의의와 그 양상은 졸저 <감염된 언어>[1999]의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라는 글에 비교적 소상히 적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저는 '번역된 유럽어'로 독자 여러분과 소통하고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닙니다. 란가쿠샤 이래의 일본인 번역가들은 유럽을 한자어로 옮기면서, 이미 동아시아에 존재했던 비슷한 개념어를 가져다 쓰기도 했지만, 완전히 새로운 말을 만들어낸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그 신조어들은, 대체로, 우리의 '화언' 같은 주검 상태로 일본어 세계에(그리고 나중에는 한국어 세계에) 머리를 들이밀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신조어들 가운데 수많은 말이 살아남아 지금 현대일본어와 현대한국어 어휘부의 뼈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새 번역어들이 주검 상태에서 생기를 얻는 과정을 야나부 아키라(柳父章)라는 일본인 번역학자는 '카세트 효과'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카세트'는 보석상자라는 뜻입니다. 그의 말을 잠깐 들어볼까요? "새로 만든 말은 카세트를 닮았다. 그 말 자체가 매력이다. 그리고 속에 깊은 의미가 틀림없이 담겼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가 사람들을 끌어서 자꾸 그 말을 쓰도록 부추긴다. 빈약한 의미밖에 지니지 못한 신조어는 그 반복 사용 과정을 통해 이윽고 풍부한 의미를 갖게 된다. 처음엔 단지 아름다움 때문에 보석상자를 찾던 사람들이 끝내 보석을 간수하는 데 그 상자를 쓰는 것과 마찬가지다. 의미나 역할이 아니라 말 자체에 매혹되는 첫 체험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결국 그 말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번역을 위해 새로 만들어진 말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보석상자 같은 것이다."(<번역이란 무엇인가>)

그러니까 야나부에 따르면 수많은 신조어들이 처음엔 빈 보석상자였다가 나중엔 보석이 담긴 상자가 되는 겁니다. 물론 끝내 빈 보석상자에 머물러 사람들의 손길에서 멀어지는 경우도 많지요. 영어 단어 'society'의 역어 자리를 놓고 '샤카이'와 경쟁하던 '닌겐고사이'나 '소타이진'처럼 말입니다. 사람들은 오직 '샤카이'라는 카세트에 보석을 담았던 것입니다. '파롤'의 역어 '화언'은 아직 빈 카세트 같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안에 보석이 담길 것 같지 않습니다. 보석을 담게 될 카세트는 차라리 '파롤'이라는 외래어 같군요. '카세트 효과'는 신조어에서만이 아니라 외래어에서도 나타납니다. 처음 듣는 외래어는 빈 카세트일 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빈약한 의미밖에 지니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거기 매혹된 사람들이 자꾸 쓰다 보면 언젠가 보석을 담게 됩니다. 다시 말해 시나브로 풍부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렇지만 '화언'이 영원히 빈 카세트로 남게 된다 해도, 역자들을 크게 탓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번역의 역사에서 끝내 빈 카세트로 남게 된 말은 무수히 많으니까요. 오히려 그 번역의 시도를 상찬하는 것이 올바를 것 같습니다. 번역은 한 세상에 또 한 세상을 들여놓아 세상을 입체화하는 엄청난 일이니까요. 란가쿠 이래 일본인들의 번역활동이 일본에(그리고 나중에는 한국에) 유럽 전체를 들여놓아 일본인들의(그리고 이내 한국인들의) 세계인식을 크게 확장시켰듯 말입니다.

번역이 늘 인식의 지평을 넓히겠다는 욕망에서 실천되는 것은 아닙니다. 번역은 때로 일종의 배타적 종족주의, 문화적 국수주의를 연료로 삼기도 합니다. 모국어 순화운동이 그 전형적 예입니다. 일본인들이 '메이시(名詞)'라고 옮긴 영어 낱말 noun을 우리 역시 '명사'라고 옮깁니다. 그러나 언어민족주의자들은 이 번역어를 다시 '이름씨'로 번역합니다. 일본인들이 '도시(動詞)'라고 옮긴 영어 낱말 verb를 우리 역시 '동사'라고 옮깁니다. 그러나 언어민족주의자들은 이 번역어를 다시 '움직씨'로 번역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이 이중번역에 커다란 뜻이 있을까요?

물론 개인 수준에서만이 아니라 민족 수준에서도 자존감은 매우 커다란 심리적 자산입니다. '명사'나 '동사'라는 말이 '메이시'나 '도시'라는 일본어를 그대로 베낀 것은 분명하고, 그것이 언짢아 '이름씨'나 '움직씨'라는 말을 만들어내 쓰고 싶어하는 마음을 깔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름씨'나 '움직씨'가 '명사'나 '동사'보다 '혈통적으로' 한국어에 가까워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이름씨'나 '움직씨'는 한자로 표기할 수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명사'와 '동사'가 '메이시'와 '도시'를 고스란히 베껴낸 것이라면, '이름씨'와 '움직씨'도 '명사'와 '동사'를 고스란히 베껴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두 번째 번역을 통해서 인식의 지평이 조금이라도 넓어졌다 할 수는 없으니까요. 말하자면 '이름씨'와 '움직씨'는 지적 작업의 결과라기보다 말놀이의 결과입니다. '메이시'와 '도시'가 지적 작업의 결과인 것과는 크게 다르죠. 지적 작업에 이르지 못하는 이 말놀이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낱말의 생명력이 반드시 '혈통'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다시 야나부의 말투를 빌려오자면, '명사'와 '동사'는 이제 보석을 가득 채운 카세트입니다. '이름씨'와 '움직씨'는 민족주의자들의 수십 년 열정을 비웃듯 아직도 빈 카세트인 것 같습니다. 여기에 언젠가 보석이 담길 거라 자신할 수도 없고요. 

09. 11. 01. 

 

P.S. 칼럼에서 주로 언급되고 있는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는 두 종류의 한국어본이 있지만, 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은 최승언 역의 <일반언어학 강의>(민음사)가 유일하다. 바로 이 책에서 '파롤'의 번역어로 '화언'을 쓰고 있다. 발췌본인 김현권 역의 <일반언어학 강의>(지만지, 2009)에서는 어떤 번역어들을 사용하고 있는지 아직 확인해보지 못했다. 제자들이 받아적은 강의록을 옮긴 <일반언어학 강의>와 달리 뒤늦게 발견된 소쉬르 자신의 노트를 대본으로 한 <일반언어학 노트>(인간사랑, 2007)는 <일반언어학 강의>의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독해볼 만한 책이다. 나도 작년쯤 구입만 해놓은 상태이지만.   

  

고종석이 인용하고 있는 필자 가운데 한 사람인 야나부 아키라의 책으론 <번역어 성립사정>(일빛, 2003)이 있다. 그의 다른 책들도 소개됐으면 싶지만(칼럼으로 봐서는 <번역이란 무엇인가>란 책도 있는 듯하니까) <번역어 성립사정>마저 절판된 게 우리의 궁색한 현실이다. 고종석의 <감연된 언어>도 물론 같이 읽어봐야 하는 책이며, 한권 더 덧붙이자면 이연숙의 <국어라는 사상>(소명출판, 2006). 일본에서의 '국어' 개념의 성립과정을 살펴봄으로써 근대 일본의 언어 인식의 근저를 밝히고자 한 책이다. 1996년 이와나미서점에서 출간되어 이듬해 산토리학예상을 수상하는 등 일본에서 화제를 모았다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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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ine 2009-11-01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한국의 경우 소쉬르 연구의 깊이는 굉장히 얕은 상황에서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통해서 랑그, 파롤, 기표등의 용어가 알려지면서 그 개념이 모호해지는 측면이 있는거 같습니다. 사실 라캉은 소쉬르를 추켜새우긴 해도 그가 쓰는 개념과는 안드로메다급으로 다른 의미로 이 개념을 쓰고 있는데 말이죠...

로쟈 2009-11-01 20:37   좋아요 0 | URL
소쉬르보다 라캉이 먼저 소개된 건 아니구요, 국내에서 소쉬르 연구가 라캉 연구보다 깊이가 얕은 것도 아닙니다. 기표와 기의의 관계를 새롭게 해석하지만, 소쉬르와 야콥슨의 언어학이 없었다면 라캉의 정신분석학(정신분석학의 언어학적 전회)도 어려웠겠죠...

2009-11-01 2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01 2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park6 2010-03-15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재 소쉬르의 일반 언어학 강의(민음사)를 읽고 있습니다.

이글을 통해 소쉬르 읽기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요ㅎㅎ

이런 좋은 글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몽인의 <어우야담>(돌베개, 2006)의 번역에 대한 '논쟁'이 2년전 한겨레 지면에 실린 적이 있다. 나는 절반만 따라가다가 이후의 진행과정을 챙겨놓지 못했는데, 뒤늦게 발견하게 되어 뒷북성 스크랩을 해놓는다. 이상수 기자의 마지막 정리 글로서 한겨레의 필진네트워크에서 가져왔다(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188892.html). 이런 스크랩이야 비공개로 해놓아도 되지만, 번역에 대한 시각(특히 '누가 독자인가?'란 대목)과 "인문학은 굶어죽을 각오로 하는 학문"이라고 주장하는 대목은 널리 읽히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공개해놓는다.  

 

① [서평] 야사와 괴담으로 읽는 조선시대 /이상수
② [반론] 번역과 소통의 맥락 /신익철
③ [답변] 반론던진 신익철교수에 답한다 /이상수
④ [재반론] 이상수 기자의 지적에 대한 답변 /신익철

한겨레(07. 02. 26) [필진] 옛글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을 것인가

2006년 말 유몽인의 <어우야담>을 옮겨 펴낸 신익철 교수는 내가 쓴 글에 대해 1월 22일 다시 긴 글의 반론을 보내오셨다. 성의에 깊이 감사드린다. 주고받는 이야기가 시작되었으니 뭔가 생산적인 논의로 마무리될 수 있길 희망하며 이 글을 다시 쓴다. ‘과도한 표현’이 다시 문제가 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앞으로는 ‘표현’을 삼가고 가능하면 마른 말투로 쓰려고 한다.

1. 옛글에서 무엇을 풀이할 것인가

내가 쓴 기사를 포함해 신 교수와 서로 두 차례씩 글을 주고받으면서 우선 가장 중요한 논점이 된 건 한마디로 ‘옛 글 속에 나오는 오늘날과 다른 표현이나 생각을 어떻게 옮길 것인가’하는 문제이다. 옛글과 현대어의 문장 구조나 어법상의 차이는 번역 작업의 기본이므로 논외로 하겠다. 옛 글 속에 나오는 말을 풀이 없이 오늘날 글에 그대로 노출시킬 때 뜻이 통하지 않거나 독자들이 어리둥절할 낱말은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① 옛 사람의 이름(字와 號 등을 포함), 지명, 책 이름 등 고유명사, 관직의 이름, 건물의 이름 : 이 경우는 그것이 인명·지명·서명·관직명임을 밝혀주면 일단 독자가 책을 읽어내려가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유몽웅(柳夢熊), 서강(西江), 총병(總兵), <이륜행실(二倫行實)>, 모화관(慕華館) 등이 그런 예일 것이다. 인명이나 지명에 얽힌 고사를 이용해 글을 썼다면 이해를 돕기 위해 이를 소개해줄 필요가 있다. (여기서 든 낱말의 예는 모두 신 교수 등이 옮긴 <어우야담>에서 뽑은 것임. 아래도 마찬가지.)

② 옛 사람들이 쓰던 기물(器物)이나 행위방식 : 이 또한 간단하게 뜻을 적어주면 독자가 글을 읽어 내려가는 데 역시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정표(旌表, 효자, 충신, 열녀에게 旌門을 지어 포상하는 일)’, ‘결채(結綵, 색실 등을 지붕이나 문에 내걸어 임금이나 중국 사신을 맞이하기 위해 장식하는 일)’ 등이 그런 예이다.

③ 오늘날과 다른 옛 사람들의 일상적 표현 : 이 대목에 대해선 학자마다 견해차이가 있을 수 있다. 어떤 학자는 예스러움을 살리기 위해 옛 사람들의 표현을 가능하면 그대로 살리자고 주장할 것이고, 그럴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가령 ‘동탑(同榻, 537쪽)’ 같은 낱말이 그런 예이다. 신 교수 등의 한글본에 실린 주석에 따르면 이 낱말은 ‘같은 스승 밑에서 함께 공부한 동창생’이란 뜻이다. 나는 이런 낱말은 본문에서 ‘같은 스승에게 배운…’이라고 옮겨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으로는 “아무개의 동탑인 아무개가…”라고 옮긴다고 해서 고전의 깊이가 더 살아난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고전을 독해(讀解)하는 걸 업으로 삼고 있는 전문 연구 독자를 겨냥한 글이라면 이런 낱말에 대해서 충실하게 전거를 찾고 풀이글을 달 필요가 있겠지만, 일반 독자를 위한 글이라면 그냥 오늘날 통하는 말로 옮겨서 뜻이 통하면 그만이라고 나는 본다. 그러나 당시엔 일상적인 표현이라 하더라도, 오늘날 현대인들이 친숙하지 않은 술어라면 풀이가 필요할 것이다. ‘갑자순(甲子旬)’같은 예가 그럴 것이다. 

④ 오늘날과 다른 옛 사람들의 생각이나 의식세계가 반영된 표현 : 이런 낱말들은 글쓴이의 의식세계를 반영하고 있으므로 되레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이런 경우 어떤 맥락에서 어떤 표현을 동원하고 있는지 그대로 전달하고 풀이글로 그 내용을 충실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앞의 두 차례 글에서 문제 삼은 ‘상국(上國)’이나 ‘방언(方言)’ 등이 그런 예에 속할 것이다.

위의 네 가지 범주 가운데 ①과 ②는 번역이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 가령 명나라의 군사 지휘관인 ‘총병’을 ‘총사령관’이라고 옮기고 ‘결채’를 ‘환영 장식’이라고 옮기면 뜻은 거의 비슷하게 통할지 몰라도 오해의 소지를 남기거나 과잉 번역이 될 수 있다. 이런 경우 옛 글을 그대로 적고 풀이글을 붙여주는 게 바람직하다.

③과 ④의 경우는 일단 번역이 가능하다. 특히 ③의 경우는 우리말로 옮기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나는 본다. 그렇게 옮긴다고 해도 이해의 맥락에서 볼 때 거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④의 경우는 옛 표현을 그대로 살리고, 그 의식세계의 맥락을 반드시 풀이글로 적어두는 게 필요하다는 게 나의 주장이다. 문제가 됐던 ‘방언(方言)’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신 교수가 지난 번 글에서 들었던 <어우야담>에 나오는 아래의 문장을 가지고 말해보자.

“(김시습은) 오 세 때부터 능히 글을 지었기에 오세(五歲)라고 자호하였는데, 방언으로 오세(傲世: 세상을 오만하게 내려본다는 뜻)와 음이 같았다.” (49면)

이 경우 번역자가 다음의 세 가지 방식으로 처리하는 게 가능할 것이다.

(가) 김시습은 오 세 때부터 능히 글을 지었기에 오세라고 자호하였는데, 방언으로 오세와 음이 같았다.

(나) 김시습은 오 세 때부터 능히 글을 지었기에 오세라고 자호하였는데, 조선어로 오세와 음이 같았다.

(다) 김시습은 오 세 때부터 능히 글을 지었기에 오세라고 자호하였는데, 방언*으로 오세와 음이 같았다. [* ‘방언’이란 중국의 언어인 한문만이 ‘진서(眞書)’, 곧 ‘참된 글’이고 주변 국가의 말들은 ‘변방의 말’이란 뜻으로 부르는 말. 여기서는 조선어를 가리킴.]

신 교수 등의 번역서는 대체로 (가)의 방식을 취하였고, 나는 (다)의 방식이 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가)의 방식을 취할 경우 옛 글의 ‘표현’을 일단 그대로 독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현대 독자가 읽을 때 전공자가 아니라면 정확한 의미를 읽어내지 못하거나 불편할 수 있다. (나)의 방식을 취할 경우 현대 독자가 걸림 없이 수월하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옛글을 쓴 이가 지니고 있던 오늘날의 세계관이나 의식과는 다른 세계관이나 의식세계를 제대로 드러내 보여줄 수 없을 뿐 아니라, 옛 사람의 의식에 전제되어 있는 세계관을 오늘날의 것과 다를 게 없는 것으로 독자가 오해할 여지가 남는다.

이 문제와 관련해 신 교수는 지난번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필자는 북한과 남한의 고전 번역의 차이점을 떠올려 본다. 북한의 고전 번역본은 대부분 대중과의 소통을 가장 우선하여 많은 고전의 어휘들을 의역하여 현대어로 풀어쓰는 방식이다. 이에 비해 남한의 번역본은 주 독자층을 어떻게 상정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북한에 비해서는 고전의 어휘를 그대로 되살려 쓰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신 교수의 지적에 위의 분석틀을 적용시킨다면, 북한은 (나)의 방식을 선호하고, 남한의 연구자들은 개별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가)의 방식을 선호한다는 지적이다. 나는 이 두 가지가 다 일정한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다)의 방식을 제시한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신 교수 등의 이번 <어우야담> 번역서는 어떤 대목에서는 (가)의 방식을, 다른 대목에서는 (나)의 방식을 취하였다. ‘방언’이란 낱말만 가지고도 그 예를 충분히 찾을 수 있다. 가령 다음과 같은 대목은 (나)의 방식을 취했다고 할 수 있다.

“구라파란 그 지역말로 ‘커다란 서쪽’이란 뜻이다.” (214쪽)

“이마두는 이인이다. 천하를 두루 보고서 이에 <천하여지도>를 그리고, 각기 그 지역의 말로써 여러 나라에 이름을 붙였다.” (216쪽)

위의 인용문에서 밑줄 그은 곳은 원문 ‘방언(方言)’을 옮긴 대목이다. 이렇게 어떤 곳에서는 (가)의 방식으로, 다른 곳에서는 (나)의 방식으로 옮기면서 아무런 설명이 없는 점도 나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불만족스럽다. (내가 이 책에 관해 어떤 디지털 색인(索引) 기능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이런 대목을 바로 찾아낼 수 있는 것은, 이 책을 처음 받아 밤새워 읽었을 때 이미 이런 대목들이 눈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 교수는 나의 글에 대해 지난 번 반박의 글에서 아래와 같이 주장했다.

“우리가 중세 보편주의 문명권의 지식인에게서 근대 민족주의적 의식을 찾으려는 의도는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이러한 시각이 획일시되어 중세 문명권에서 살아간 지식인의 의식세계를 곡해하는 데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고 본다. 민족주의적 시각이 없어 중세 보편주의적 세계관에 함몰되어 있는 것도 문제이지만, 근대 민족주의적 시각을 당대의 세계관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적용하는 태도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위의 몇 문장 안 되는 글을 두고도 논의할 거리가 적지 않지만, 논의의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번역’ 문제에 국한하기로 하겠다. 한 가지 여기 밝혀두고 넘어가고 싶은 건, 난 민족주의의 시각에서 중국의 중화주의나 황실사관을 비판하고 있는 게 아니며, 되레 (신 교수의 용어를 빌리자면) ‘보편주의’의 시각에서 그것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편주의의 시각에서 볼 때, 중국만이 황제가 있는 나라이고, 천하의 ‘가운데’에 있는 나라이며, 중국의 문자인 한자만이 참된 문자라는 시각은 편협한 특수주의라고 나는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당시의 세계관에 젖어 있을 수밖에 없는 조선시대의 지식인에게 오늘날의 의식세계를 뒤집어씌워도 안 되고, 그렇다고 해서 당시의 세계관이 지닌 문제점을 드러내는 일을 게을리 해서도 안 된다는 맥락으로 이해하는 한에서, 나는 신 교수의 위의 주장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그의 지적은 방향을 잃었다. 위의 지적은 (가) 또는 (나)의 방식으로 번역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해당하는 지적이지, (다)의 방식을 주장하는 이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지적이기 때문이다. “중세 문명권에서 살아간 지식인의 의식세계를 곡해하는 데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는 우려는 말하자면 (나)의 방식을 고집하는 이들을 향한 것이다. 또한 “민족주의적 시각이 없어 중세 보편주의적 세계관에 함몰되어 있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은 (가)의 방식에 대한 우려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결국 신 교수는 이번에 <어우야담>을 펴내면서 (가) 또는 (나)의 방식으로 번역한 뒤, 필자가 “(다)의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지적을 하자, “번역은 모름지기 (가) 또는 (나)의 방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하고 있는 셈이다. 의사소통이란 이렇게 어려운 문제이다.

다시 주장을 분명하게 하자면, 나는 유몽인에게 “근대 민족주의적 의식”을 뒤집어 씌워, 그가 ‘방언’이라고 적고 있는 부분을 뜯어고치자고 주장한 적이 없다. (다)의 방식처럼 거기에 적절한 풀이글을 다는 게 번역자의 의무라고 지적했을 뿐이다. 나는 되레 유몽인의 글에 여러 차례 등장하는, 중국과 조선의 관계에 대한 조선조 선비들의 시각을 포함해 그들의 의식세계를 엿볼 수 있는 낱말들을 충실히 본디 그대로 살려두고, 대신 그 의미의 맥락과 쓰임새를 분명하게 독자들에게 전달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의 방법이 최선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2. 누가 독자인가?

신 교수 등이 이번에 내놓은 <어우야담>이 이런 혼선을 겪은 건 ‘누가 독자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견고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고 나는 본다. 신 교수 등은 이 책을 내놓으면서 어떤 독자들이 읽을 것이라고 기대했는가. 연구자들인가, 아니면 일반 독자들인가. 대단히 송구한 발언이지만, 내가 보기에 연구자들이 읽기엔 부족한 대목이 없지 않다고 할 수밖에 없고, 일반 독자들이 읽기엔 불친절한 대목이 없지 않다고 할 수밖에 없다.

먼저 연구자의 시각에서 이 책을 뜯어보자. 지난 번 글에서 나는 <장자>와 관련한 두 대목의 오역을 지적했고, 신 교수는 두 대목의 오역을 인정한 뒤, 다른 대목에서는 옮긴이들이 얼마나 충실하게 교감했으며 주석 작업을 진행했는지 비교적 길게 설명했다. 나는 진심으로 옮긴이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한글본도 도움이 되려니와, 무엇보다 각종 <어우야담> 판본을 견주어 놓은 한문본 작업은 앞으로 <어우야담>을 연구하는 이들이 참조할 때마다 고마움을 느끼게 만들 것임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왕에 우리가 “우리 출판문화와 학술연구의 발전”을 위해 말머리를 연 이상 이 문제 역시 냉정하게 논할 수밖에 없다. 신 교수는 지난 번 글에서 “‘아는 것은 안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모르는 것은 의미가 통하지 않는 대목 그대로 남겨두는 학자적 양심이 무엇보다 요구된다’라는 이 기자의 지적에 대해서는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며 “우리 나름대로 행한 수고와 양심을 보여주기 위해” 역자들의 주석 작업을 비교적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럼에도 이 책의 주석 작업에 대한 나의 시각은 변함이 없다. 나 또한 내 말에 책임을 져야 하므로 내가 지난번 글처럼 판단한 근거를 몇 가지 들어보겠다.  

이번 번역본은 어떤 대목은 전거를 밝히고 있으면서, 다른 대목에선 전거를 밝히지 않고 그냥 넘어가고 있다. 일관성이 없으므로 연구자가 읽을 때는 혼란스럽다. 전거가 있다는 건지 없다는 건지, 있는데 찾아보지 않았다는 건지, 오늘날 판본에 없거나 다르다는 건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이래서는 <어우야담>의 완정본이 될 수 없다. 가령 아래의 경우들이 그렇다.

① 그러므로 <서경>에 이렇게 이르고 있다. “별에는 바람을 좋아하는 것이 있으며, 비를 좋아하는 것이 있다.” (508쪽)

→ 이 구절은 내가 찾아본 결과 <서경(書經)> ‘홍범(洪範)’편에 나오는 글이다. <서경>에는 “星有好風, 星有好雨.”이라고 하여 “星有好風好雨.”라고 한 <어우야담>과 몇 글자 다르다. 또 <서경>은 백성과의 관계를 논하는 맥락에서 나온 말이고, <어우야담>에서는 천문기상을 논하면서 나온 것이어서 맥락 또한 다르다.

② <좌전>에 이르길, “화살이 내 손을 뚫고 팔꿈치에 미쳤으나 내가 부러트리고 말을 몰았다.” (621쪽)

→ 이 구절 역시 찾아보니 <좌전(左傳)> ‘성공(成公) 2년’(B.C. 589년) 조에 나오는 기사이다.

오늘날 고전들은 모두 색인(索引) 작업이 나와 있고 또 대부분의 주요 고전들은 전산화되어 있기 때문에 조금만 수고를 들이면 전거를 당장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문제 또한 ‘매우 사소한 문제’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런 철저한 작업을 거치지 않고서 우리는 <어우야담>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가령 당시 조선조 지식인들이 <서경>이나 <좌전>을 어떤 판본으로 어떻게 읽었는지가 이런 사소한 대목에서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옮긴이들은 어떤 곳에는 원문을 찾아 밝혀두고, 다른 곳에선 아무 설명 없이 넘어가고 있다. 그러면 연구자의 시각에서 볼 때 옮긴이들이 도대체 어떤 원칙을 가지고 주석 작업을 했는지에 대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대목은 일반 독자의 시각에서 볼 때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이 정도에서 그치기로 하겠다. 그러나 연구자뿐 아니라 일반 독자의 시각에서도 불만스러울 수 있는 대목이 몇 가지 있다. 나 또한 독자로서 궁금한 것, 두 가지만 질문을 드리겠다. 이건 정말 질문이다.

1) ‘태사공’은 누구인가  

<어우야담>에는 적어도 세 차례 ‘태사공(太史公)’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것을 나는 발견하였다. ①홍도 가족의 인생유전(#10, 41쪽) ②황여헌과 정사룡의 문장(#185, 318쪽) ③제목과 무관한 시권(#337, 541쪽) 등이 그런 예이다.  

‘태사공’이란 잘 알려진 바대로 한(漢)나라 때 중국의 역사가인 사마담(司馬談)과 사마천(司馬遷) 부자로 인해 널리 알려진 관직 이름이다. 한나라 왕실의 역사기록관인 사마담-사마천 부자는 대를 이어 <사기(史記)>를 완성했는데, “태사공은 말한다”(太史公曰)이란 형식으로 역사의 중요한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 날카로운 시각의 평가를 남겼다.

그런데 <어우야담>에 바로 그 “태사공은 말한다”(太史公曰)는 코멘트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코멘트가 등장할 때마다 매우 신선했고 가벼운 전율을 느꼈다. 모차르트가 망나니 질을 하다 아버지의 얼굴과 마주했을 때의 느낌이 이랬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나는 독자로서 매우 궁금하다. 도대체 <어우야담>에 등장하는 이 태사공이란 누구인가.

태사공이 코멘트하고 있는 내용은 모두 <어우야담>에 소개된 사람과 사건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이 대목이 사마천의 말을 따온 것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유몽인이 스스로를 그렇게 부른 것일까. 유몽인은 대사간(大司諫)의 벼슬을 지냈는데, 당시 관행으로 대사간이 스스로를 ‘태사공’이라 부를 수 있었던 걸까? 일반적으로 태사공이란 사관(史官)을 지칭하는 것이고, 사간(司諫)이란 임금에게 시정에 대해 건의하는 간관(諫官)이 아닌가.

만약 유몽인이 스스로를 ‘태사공’이라 지칭한 것이라면, 이는 유몽인이 <어우야담>을 저술할 때의 자의식과 태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매우 중요하게 평가해야 할 대목일 것이다.

그러나 유몽인이 스스로를 ‘태사공’이라 지칭한 것이라 하더라도 의문이 다 풀리지는 않는다. 유몽인은 <어우야담>에 소개한 많은 인물과 사건에 대해 스스로 자유롭게 개입하면서 평가를 남기고 있다. 그럴 때 그는 스스로를 ‘태사공’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가 자칭 ‘태사공’이라고 한 게 아니라면, 그 사안과 인물에 대한 당시 사관(史官)의 평가를 유몽인이 옮기면서 “태사공은 말한다”라고 한 것일까? 그러나 사관이 기록한 사초(史草)는 당시 임금도 감히 볼 수 없었던 물건이므로 사관의 평가를 유몽인이 열람하거나 들을 수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도대체 어찌 된 걸까.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자기 나라에서 벌어졌던 이런 사태에 대해 제대로 모른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나의 무식함을 드러내는 질문이라 하더라도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다. <어우야담>에 등장하는 ‘태사공’이란 누구인가. 신 교수 등이 이번에 상재한 책에선 의문을 풀지 못했다. 혹시 이미 이에 관한 연구가 발표된 바 있거나 신 교수 등 옮긴이들이 이에 관한 연구가 있으시다면 이번 기회를 빌려 소개해주시길 부탁드린다.

이런 대목이야말로 옮긴이들의 풀이가 절실하게 필요한 대목인 것은 아닐까? 만약 이 문제가 아직 학계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라면, 적어도 지금까지 연구로는 왜 유몽인이 ‘태사공왈’이란 표현을 등장시켰는지 해명되지 않았다는 풀이글이라도 그 말이 등장하는 대목에 달아놓았어야 하지 않을까. <어우야담>을 전공한 이들이 다른 연구자와 독자들에게 해야 할 서비스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2) 갑자순(甲子旬), 갑인순(甲寅旬), 갑신순(甲申旬), 갑오순(甲午旬) 등은 무슨 뜻인가   

역시 나의 무식함을 드러낼 수 있는 질문이지만 궁금한 걸 푸는 게 더 중요하니 어쩔 수 없다. 나는 이번에 서평을 쓰기 위해 신 교수 등이 펴낸 한글본 <어우야담>을 읽으면서 ‘일기의 관찰과 예후’(#319, 505~512쪽)라는 글을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조선(한국)이 지리적 기후적으로 중국과 다르므로 일식의 관찰이나 일기 변화 등도 중국과 다를 수밖에 없다. 한국의 천문 관측이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논란이 있다. 유몽인의 <어우야담>은 이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가 궁금한 사항이 아닐 수 없다.

이 대목은 번역이 좀 까다로운 대목에 속한다. 옛사람들의 천문지식이나 자연현상에 대한 이해가 오늘날과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 가지만 옮긴이들에게 질문을 드리고 싶다. 이 글에 나오는 갑자순(甲子旬), 갑인순(甲寅旬), 갑신순(甲申旬), 갑오순(甲午旬) 등은 무슨 뜻인가. 음력의 용어인 것으로 짐작은 가지만 한글본에는 풀이글이 없어 전혀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절기의 변화에 따라 일기가 달라짐을 서술한 듯한데 분명하지가 않다. 가르침을 구한다.

또 ‘일기의 관찰과 예후’라는 글의 끄트머리에는 여기 서술한 내용이 “유대정이 일찍이 눈으로 보아 징험한 것”이라고 유몽인은 기록했는데, 흥미로운 건 여기 나오는 내용들 가운데 적지 않은 부분이 중국의 민간 속담에도 구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령 구름이 동쪽으로 가느냐, 아니면 서, 남, 북쪽으로 가느냐에 따라 내리는 비의 양이 달라진다는 내용 따위가 그런 것들이다. 구름이 가는 방향이란 다름 아니라 바람이 부는 방향이다.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내리는 비의 양이 달라진다는 관찰은 경험적으로 사실일 수 있지만, 어떤 지형이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가령 구름이 높은 산을 넘을 때 비를 뿌리고 간다는 건 자연과학적으로도 사실이지만, 높은 산이 어느 쪽에 있느냐에 따라 관찰 사실은 달라질 수 있다.

결국 갑자순(甲子旬), 갑인순(甲寅旬), 갑신순(甲申旬), 갑오순(甲午旬) 등이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유대정이 일찍이 눈으로 보아 징험한 것”의 내용과 진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여기서 상론할 겨를은 없지만, 중국의 속담과 유몽인의 기록을 비교해보건대, <어우야담>에 실린 유대정이란 인물의 천문 현상 관찰 내용이 중국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너무 시시콜콜하고 시답잖은 문제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런 대목 또한 조선조 선비들의 의식형태를 평가하는 데 쓰일 수 있는 자료 가운데 하나라고 나는 본다. 오늘날은 <삼국사기>에 실린 일식(日蝕) 관련 기록까지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계산하고 검증해보는 시대다. 갑자순, 갑인순 이런 용어가 무슨 뜻인지 정확히 밝혀놓지 않고 넘어가서는 번역을 완성했다고 할 수 없다. 일반 독자의 시각에서 볼 때에도 ‘일기의 관찰과 예후’같은 글의 번역과 해석은 한번 읽고 이해하기에 충분하지가 않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 내가 보기에 이번 신 교수 등이 상재한 <어우야담>은 연구자들이 읽기엔 부족한 대목이 적지 않다고 할 수밖에 없고,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도 수월하지 않은 대목이 적지 않다고 평할 수밖에 없다. 연구자들이 독자를 대상으로 풀어주어야 할 궁금증이 충분히 해소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이런 문제를 논하는 까닭은, 우리가 옛 글을 오늘날의 글로 풀어 출판하면서 도대체 어떻게 옮겨야 경제적이면서도 의미의 왜곡을 피할 수 있고, 또 어떤 대목에 진정한 풀이글이 필요한가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아무런 사감(私感) 없이 “우리 출판문화와 학술연구의 발전”을 위해서 이런 불편한 문제를 논하는 필자의 충정을 신 교수 등이 이해해주리라 믿을 뿐이다.

3. 인문학은 굶어죽을 각오로 하는 학문이다

마지막으로, 신 교수는 지난 글에서 “우리의 번역 수준을 떨어뜨리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 “대부분의 번역이 자본주의 시장의 논리에 내맡겨져 있으며, 국가적 차원에서 고전 번역을 체계적으로 점검하며 지원하는 시스템이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그 대목을 모두 따놓자면 아래와 같다.

필자는 한국한문학을 전공하기에, 중국 주석서를 참조하는 경우가 많다. 이 기자의 지적대로 중국의 주석서가 한국의 번역서에 비해 수준이 높다는 데에는 공감하며, 역자들의 <어우야담> 번역서가 이런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점 역시 충분히 인정한다. 나는 여기에는 경제 지표나 주석자들의 열성과 노고만으로 단순 대비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개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먼저, 중국은 완벽한 주석서를 출간하기까지의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하며, 이에 대한 학계의 평가가 높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에 비해 우리 학계에서는 번역서에 대해 평가가 매우 미미하다. 대부분 번역서는 일반 논문 한 편보다도 못하거나, 기껏해야 동등한 비중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리고 번역서에 대한 평가가 전무하다시피 하니, 대부분의 학자들이 여기에 열성과 노고를 바치려 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 함께 대부분의 번역이 자본주의 시장의 논리에 내맡겨져 있으며, 국가적 차원에서 고전 번역을 체계적으로 점검하며 지원하는 시스템이 미미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주요 고전에 대한 교감을 수반한 수준 높은 번역을 수행하기 힘들게 하며, 우리의 번역 수준을 떨어뜨리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한국이라는 땅에 발붙이고 살면서 나름대로 인문학을 공부하는 천학비재한 사람으로서 위의 대목에 동의할 수 없기에 내 생각을 적어보고자 한다.

국가 쳐다보지 마라  

우선 나는 인문학을 하는 사람이 국가가 뭘 해주길 바라며 그쪽을 자꾸 쳐다보는 데 대해 좋게 여기지 않는다. 국가가 하는 일은 무엇을 하든 그건 결국 국가의 사업이다. 언제 어느 곳에 존재했던 국가가 진정한 인문 정신의 발양을 위해 투자했던가? 어떤 계몽군주의 위대한 발자취도 결국은 군주와 통치자들의 치적을 위한 사업일 뿐이다.

물론 나는 국가의 예산 가운데 좀더 많은 부분을 인문 분야로 돌리도록 하는 데에는 적극 찬성한다. 그거야 당연히 나쁠 게 없다. 그럼에도 인문학을 한다는 행위는 어떤 상황에서도 국가와 무관하다. 국가가 돈을 주든 말든, 누가 알아주든 말든, 높은 평가를 해주든 말든,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것이 인문학을 공부하는 가장 기초적인 태도라고 나는 믿는다. 그게 좋아서 인문학을 하는 게 아닐까. 늙음이 오는 것도 모르는 채. 사실 난 국가가 제대로 된 인문학 연구를 악랄하게 방해하던 시절에 대학을 다녔기 때문에, 국가가 쓸데없이 나서서 간섭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천만 다행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존경하는 선배 한 사람은 직장에 사표 던지는 데 3초 이상 걸리는 걸 수치스러워 하는 어른이다. 물론 사표 던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대전제이겠지만. 몇 년 전에도 그는 서너 번째쯤 되는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흐린 술집에 앉아 있었다. 나는 나도 단골인 그 술집에서 그를 우연히 만났다. 그는 그날 아내가 귀갓길에 쌀을 사오라고 했는데 지갑을 열어보니 2만원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걸로 그는 집에 들어가는 길가에서 난초 파는 이를 만나 춘란을 한 뿌리 샀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난이 중요하지 쌀이 중요해?”

그렇다. 난이 중요하지 쌀은 중요하지 않다. 이건 한 가난한 인문학도의 행위예술이다.

나는 굶어죽을 각오로 하는 게 인문학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대학에서 오라고 해도 가지 않고 안경알을 가는 걸로 생업을 삼다 폐병 걸려 죽었고, 인문학의 정신과 같은 맥락의 치열한 삶을 살았던 모차르트도 고흐도 살아생전엔 아무런 영화도 누리지 못하고 가난뱅이로 비참하게 죽었다. 그러나 그런 죽음도 작은 일이다.

중국의 학자들, 대부분 가난하다. 개혁개방 이전, 중국공산당의 지배체제 아래서 그들은 국가에 예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연구 성과는 모두 국가에 귀속되었다. 개혁개방 이후 좀 달라지긴 했지만, 연구기관과 연구원을 국가가 장악해야 한다고 믿는 공산당의 방침에는 지금까지 아무런 변화가 없다. 중국 대학교수의 기본급은 이천 몇 백 위안, 한국 돈으로 30만원 남짓이다. 그들이 펴낸 책은 전공자가 아니라면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송나라 명나라 청나라 때의 선비들처럼 꾸준히 그 길을 가고 있다. 이건 매우 강렬한 인문학의 전통이다. 우리가 자꾸 국가나 자본 쪽을 쳐다보면 이런 인문학의 전통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道)가 존중받지 아니한다

몽골이 중국을 지배했을 때, 어떤 지식인은 몽골의 원(元) 제국 조정에 들어가 녹을 먹었고 어떤 지식인은 그걸 거부했다. 허형(許衡)과 유인(劉因)은 각각 양쪽을 대표하는 경우로 이름을 남겼다. 허형이 원나라 조정의 부름을 받고 베이징으로 가던 도중에 유인을 방문했다. 유인은 허형에게 “단 한번의 부름에 응한 것은 지나치게 가벼운 처신이 아닌가”하고 슬쩍 나무랐다. 그러자 허형은 “이렇게 하지 않으면 도(道)가 행해지지 않을 것이오”(不如此道不行)라고 받아쳤다. 나중에 원나라 조정은 유인에게도 벼슬을 주겠다고 불렀지만 유인은 끝내 응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그 이유를 묻자 유인은 이렇게 답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도(道)가 존중받지 않을 것이오.”(不如此道不尊)

인문학자라고 굶어죽으란 법은 없다. 인문학 저변의 확산을 위해 대중적 저술을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며, 나는 그런 쪽에 재능을 가진 이들의 작업을 높이 평가한다. 허형이 한 말처럼 그렇게 대중화작업을 하지 않으면 “도가 행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대중화 작업은 인문학의 ‘샘’이 아니라 ‘흐름’이라고 본다. 인문학의 샘이 마르지 않게 솟아나도록 하기 위해선 유인처럼 “이렇게 하지 않으면 도(道)가 존중받지 않을 것”이라고 고집하는 태도가 인문학을 하는 이들의 중심에 서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뚝심이 마음에 자리 잡고 있다면, 어떤 글을 상재하든, 무엇을 중요하게 다루고 무엇을 아낌없이 버릴 것인지가 분명해질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상이 신 교수께서 성의 있게 올려주신 글에 대한 나의 또 다른 몇 가지 단상들이다.

[추신] 나는 이 글 또한 중국에서 마무리했다. 지난달 24일 귀국한 뒤 30일 다시 중국으로 나와 여기저기를 돌다 쿤밍(昆明)에서 이 글을 내 블로그에 올린다. 이 글을 읽는 많은 이들이 신 교수 등 연구자들이 6년 광음(光陰) 피와 땀으로 옮긴 <어우야담>을 한 권 사서 서재에 모셔두길 권유한다. 한국 인문학의 진일보를 위한 발전 기금을 낸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책 디자인도 그지없이 세련됐고 장정도 말끔한 얼굴을 하고 있다. 내가 여기서 논한 건 좀더 나은 번역을 위해 함께 고민해보고 싶은 내용을 얘기한 것이다. 독자 제현들의 혜량(惠諒)을 구한다.  

09. 08. 30. 

P.S. 국가와 인문학의 관계, 그리고 인문학 대중화 문제를 명쾌하게 정리해주고 있어서 인상적이다. 중국통답게 중국 학자들의 학문 태도를 예로 들면서 궁핍한 여건 속에서도 "송나라 명나라 청나라 때의 선비들처럼 꾸준히 그 길을 가고 있다. 이건 매우 강렬한 인문학의 전통이다. 우리가 자꾸 국가나 자본 쪽을 쳐다보면 이런 인문학의 전통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 대목이 특히 그렇다.  

하지만 "기본급은 이천 몇 백 위안, 한국 돈으로 30만원 남짓"의 대우를 받더라도 '굶어죽을 각오'로 하는 게 인문학이고 인문학 전통이라면(하지만 사회주의 국가이기에 다른 특혜들이 주어진다. 적어도 자료수집에 관한 비용은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안다), 우리에게 그러한 인문학은 전통은커녕 진작에 씨가 마른 게 아닌가 싶다(적어도 나의 견문으론 그렇다). 더구나 CEO가 대통령을 하고 돈이 존중받는 나라에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도(道)가 존중받지 않을 것”이란 유인의 말은 존경스럽지만, 우리의 현실이 아니다(한국인은 구원은 믿으려고 할 망정 도(道)는 존중하지 않는다). 나는 '안경알 가는 철학자'를 스피노자 이후에 들어본 바가 없다. 이 또한 인문학자들의 '로망'이요 '노스텔지어'가 아닐까 한다.   

덧붙이자면, 나는 국가와 학문은 생각보다 끈끈한 관계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위기지학'(자기 자신을 위한 학문)이라고 하지만, 인간은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의미에서) 정치적 동물이고 사회적 동물이다. 그러한 인간조건에서 해방된 '학문'이 나는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명한 중국학자 지셴린(계선림)의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건 그의 대인다운 여유와 애국심이었다. 비록 문화혁명시에 혹독한 고초를 당하고 자살까지 시도했던 학자였지만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그의 자부심은 확고한 것이었다. 그 또한 중국의 '강렬한 인문학의 전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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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08-30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가와 인문학의 관계, 그리고 인문학 대중화 문제를 명쾌하게 정리해주고,,,"를
다른 말로는 'Back to Back'며, 이 반대말은 '엎친데 덥침',,,

로쟈 2009-08-31 00:30   좋아요 0 | URL
^^

펠릭스 2009-08-31 01:14   좋아요 0 | URL
인문학이 인간 존재감을 일께워 줄 것이라는 기대감속에
올바른 절망만이 있을 뿐이라는 뜻을 음미하고 있습니다.

2009-08-30 2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30 2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ti 2009-08-30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진 글이네요. 퍼가요^^

로쟈 2009-08-31 00:28   좋아요 0 | URL
이상수 전 기자는 사실 동양철학 박사입니다...

델러웨이부인 2009-08-30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봤습니다~

로쟈 2009-08-31 00:29   좋아요 0 | URL
의외로 반응이 좋네요.^^

2009-08-31 0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31 0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philocinema 2009-08-31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호 논박의 전과정을 지켜볼 수 있어 많은 도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로쟈 2009-09-01 20:57   좋아요 0 | URL
옮겨놓는 건 별로 힘든 일이 아닙니다.^^;
 

격주간으로 간행되는 <기획회의>(254호)는 '번역출판7'로 나왔다. <번역출판>이란 잡지를 따로 내지 않고, '잡지 속의 잡지' 형태로 펴내는데, 이번이 일곱번째라는 뜻이다. 이번호는 '번역의 난제와 과제들'이란 특집을 마련하고 있는데(특집의 내용은 목차를 참고하시길), 어찌하다 보니 '여는글'을 맡아서 쓰게 됐다. 여기에 옮겨놓는다.   

기획회의(09. 08. 20) [여는글] 에반드로스-번역자를 위하여 

과분하게도 ‘번역의 방법론’이란 특집의 ‘여는글’을 맡게 됐다. 온라인에서 ‘번역비평 이전의 번역비평’을 해온 데다가, 몇 달 전에 낸 책 <로쟈의 인문학 서재>(산책자, 2009)에도 마지막 장을 ‘로쟈의 번역비평’이라고 해놓았으니 청탁을 피해갈 도리가 없었다. 자칭 ‘곁다리 인문학자’인 나는 동시에 ‘많이 게으른 번역가’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조금 부지런한 번역비평가’의 자리에서 번역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말해보고자 한다. 거창하게 말하면, 번역의 패러다임 전환에 대한 것이다. 

 

번역의 방법론과 관련하여 언제나 논란거리가 되는 것은 직역/의역의 문제다. <번역의 탄생>(교양인, 2009) 저자의 표현으론 ‘들이밀까, 아니면 길들일까’의 딜레마이다. 딜레마인 만큼 딱 떨어지는 해답은 있을 수 없겠고, 책의 성격이나 역자의 선호에 따라서 선택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번역이란 외국어를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 한국어를 바로 세우는 작업이다.”(이희재)0라고 보는 입장에선 한국어에 잘 맞지 않는 부자연스런 조어나 구문을 최대한 피하고, 반대로 한국어의 특징을 최대한 살려서 쓰자고 주장할 수 있다. 그것이 우리말과 전통에 대한 뿌리 깊은 열등감에서 벗어나 문화적 자존심과 자신감을 되찾자는 뜻이기도 하다면 반대하기도 어려운 일이 아닐까. 그것은 일종의 방향성이다.    

희랍비극 전집을 완역하고 있는 천병희 선생의 경우는 좋은 사례다. 자신의 번역을 새롭게 가다듬어 출간하면서 선생은 “직역으로 인한 어색하고 애매모호한 표현들을 줄이는 등 우리 시대의 언어감각을 고려해 가독성을 높이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같은 고전학자인 강대진 박사는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숲, 2008)을 평하면서 조금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중앙대대학원신문>, 08. 11. 12). 희랍인들은 높은 사람을 부를 때 ‘아무개의 머리여’, 또는 ‘아무개의 힘이여’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그래서 단국대판의 「오이디푸스왕」에서 오이디푸스는 자기 아내 이오카스테를 향해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나의 아내 이오카스테의 머리여”(950행)라고 불렀고, 이것은 희랍어 원문을 그대로 옮기면 ‘내 아내 이오카스테의 가장 사랑스런 머리여’에 가깝다고 한다. 새 번역본은 이 구절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내 아내 이오카스테여”라고 ‘의역’했지만 그는 그보다는 이전 번역이 더 마음에 든다는 것이다. 그의 입장은 “낯선 것은 낯설게 옮기고, 없던 것은 되도록 덧붙이지 말자는 것”이니 직역과 들이밀기를 선호한다고 할 수 있다.   

일반화시켜서 말하면, 직역이냐 의역이냐의 문제는 ‘이오카스테의 머리’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걸려 있다. 그렇다면, 그녀의 죽음을 알리는 사자(전령)의 말은 어떻게 옮겨야 할까. 천병희 선생은 “가장 짧은 이야기를 주고받자면 신과 같은 이오카스테의 머리가 죽었습니다.”(문예출판사판, 1235행)라고 옮겼던 것을 “여러분이 빨리 아시도록 가장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이오카스테 왕비님께서 세상을 떠나셨어요.”(숲판)라고 고쳤다(‘빨리 아시도록’과 ‘가장 간단히’는 중복되는 표현이다). 다른 번역본에서 “아주 짧게 말씀드리죠. 왕비 이오카스테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조우현 역)라고 옮겨진 대목이다. 이 경우에도 강대진 박사는 “이오카스테의 머리가 죽었습니다”를 선호할 듯싶지만, 그런 표현이 높은 사람에 대한 존대의 느낌을 전달해주는지는 의문이다. 한국어 독자나 관객에겐 ‘낯선 것으로부터 오는 시련’을 감내케 하거나 오히려 코믹한 느낌이 들게 하지 않을까. ‘머리’의 높임말로 ‘두상(頭上)’을 써서 “이오카스테의 두상이 돌아가셨습니다.”라고 해도 사정은 별반 나아지지 않을 성싶다.  

한편으로 강대진 박사는 “서양말에 원래 존대법이 없으니 번역에서도 존대법이 너무 두드러지게 쓰지는 말자는 쪽”의 의견도 피력한다. ‘서양말’에 대한 대단한 환대다. 하지만 지나친 공손은 오히려 예의에 벗어난다고 했다. 더불어 그러한 태도는 은연중에 우리 자신과 우리말에 대한 비하적 태도로 비춰질까 염려된다. 나는 반대로 <번역의 탄생>의 저자처럼 우리말에 대한 자신감과 우리말을 존대하는 태도가 더 먼저, 그리고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이오카스테의 머리’ 정도는 잘라먹어도 좋다고 보는 것이다(대신에 주석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번역자에게 그런 정도의 ‘권위’는 주어져도 좋다. 그것은 어떤 권위인가? 자크 랑시에르의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길, 2008)에 등장하는 한 가지 사례를 떠올려본다.   

지난 1988년 프랑스 대선은 미테랑 대통령과 시라크 총리가 맞붙어 화제를 모았었다. 권력(potestas), 곧 대권을 쟁취하기 위해서 당시 도전자였던 ‘젊은’ 시라크는 역량(potentia)을 내세운 반면에 ‘늙은’ 미테랑은 현자의 권위(auctoritas)를 앞세웠다. 처음엔 시라크의 우세가 점쳐졌지만 아무런 공약 없이 단지 프랑스의 국론 분열이 내전을 초래할 수 있다는 위협을 반(反)공약으로 내건 미테랑이 결국은 승리했다. 그의 ‘위협’ 앞에서 프랑스 국민들은 ‘역량’보다는 ‘권위’를 선택했던 것이다. 이 ‘권위’를 랑시에르는 티투스 리비우스를 따라서 ‘에반드로스의 덕’이라고 말한다.  

에반드로스는 헤르메스의 아들로서 아욱토르(auctor)였다. 저자(author)란 말의 어원이기도 한 이 ‘아욱토르’는 창시자란 뜻도 갖지만 랑시에르는 ‘메시지의 전문가’란 뜻으로 새긴다. 그는 “세계의 소음 속에서 의미를 식별할 줄 아는 자”이다. 그는 신의 메시지를 알아듣고 목동들의 싸움을 진정시키기도 했다. 그렇듯 아욱토르는 말을 잘 알아듣고 말의 기적을 연출할 수 있는 말의 장인이며 그의 권위는 거기에서 비롯되었다(미테랑은 글쓰기를 즐긴 대통령이었다). 이제 작가와 다름없는 말의 장인으로서 번역자에게도 그런 권위는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혹은 번역자 또한 그런 권위를 스스로 찾아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번역은 글쓰기다>(즐거운상상, 2009)의 저자가 일러주는 것처럼 사실 번역가를 겸한 작가들은 부지기수로 많다. 마르셀 프루스트도, 루쉰도, 미셸 투르니에도, 무라카미 하루키도 모두 번역가-작가이다. 요즘은 대다수 번역가들이 동의하는 것이지만 번역에서 더 중요한 것은 외국어실력이 아니라 한국어 실력이고 글쓰기 능력이다. “번역가의 진정한 실력은 이 글쓰기에서 결판난다.”(이종인)는 전문번역가의 말이 더이상 과장이 아니다. 그러니 단순한 전달자, 곧 헤르메스-번역자에서 더 나아가 저자로서의 번역자, 에반드로스-번역자를 자임하는 걸 주저할 필요가 없다. 물론 에반드로스-번역자로 ‘재탄생’하기 위해서는 이번 특집의 제언들도 꼼꼼히 챙겨두어야겠다. 번역에 대한 많은 고민과 함께 번역자의 권위가 드높아지기를 기대한다. 

09. 08. 29. 

 

P.S. 바로 최근에 강대진 박사의 소포클레스 번역이 출간됐다. <오이디푸스왕>(민음사, 2009)으로 표제작 외 3편의 작품이 더 묶여 있다. 950행과 1235행이 각각 어떻게 옮겨졌을까 궁금해서 찾아봤다. 전자는 "오, 아내인 이오카스테의 가장 친근한 머리여"로, 후자는 "말하고 듣기에 가장 짧은 것을 택해 이야기하자면, 여신 같은 이오카스테께서 돌아가셨습니다."라고 옮겼다. "여신 같은 이오카스의 머리께서 돌아가셨습니다"라고 하기엔 아무래도 너무 어색했던 듯하다. 

아무튼 두 (세대) 고전학자의 정역본 번역을 갖게 되어 소포클레스 읽기가 한층 수월하고 고급스러워졌다. 하지만 아쉬움도 없지 않다. 강대진 박사는 옮긴이 서문에서 "내가 이 번역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한 동료는 "연극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번역을 부탁한다."라고 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별로 그럴 생각이 없었다."고 못박았는데, 덕분에 역자의 의도대로 "매끄러움과는 거리가 먼 '읽기 불편한' 문장"들이 더러 나온다. 하므로 이 작품의 공연 대본은 다른 번역을 알아보아야 한다.   

셰익스피어 번역에서도 그렇지만, 소포클레스의 작품이 당대의 관객들에게 '읽기 불편한' 딱딱한 문장들로 공연됐을지 의문이다. 역자는 합창에 자주 사용되는 희랍어 감탄사들, 가령 '오이모이', '오 포포이', '토토토이', '이우 이우' 등을 '아아' '오오'라는 밋밋한 표현으로밖에 옮기지 못한 점을 무척 아쉬워하는데, 그런 생생한 현장감이 다른 한편으론 '읽기 불편한' 문장들을 통해서 재생될 수 있을 거라고 보는 것일까?  

내가 읽어본 번역본들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오이디푸스왕> 공연에 가장 적합한 대본은 연극학 전공자인 강태경 교수의 번역본이다. 영역본을 중역한 탓에 '이오카스테'를 '요카스타'라고 옮기는 식이지만, 그리고 부정확한 대목도 직역본보다는 불가불 많을 듯싶지만, 한국어로는 훨씬 매끄럽고 연극적이다. 곧 드라마틱하다. 간단한 대사이지만, 극의 마지막 부분에서 왕비 이오카스테의 죽음을 전하는 전령의 긴박한 보고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여러분이 빨리 아시도록 가장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이오카스테 왕비님께서 세상을 떠나셨어요.”(천병희) 
"말하고 듣기에 가장 짧은 것을 택해 이야기하자면, 여신 같은 이오카스테께서 돌아가셨습니다."(강대진) 
"서둘러 말씀드리자면, 왕비 요카스타께서 - 돌아가셨소."(강태경)
  

드라마는 의미도 중요하지만 극의 파토스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번역은 어렵고 어렵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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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08-29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문을 보지 않았지만, '강태경'버전을 제 식으로 표현한다면 "여러분, 왕비께서-돌아가셨습니다." 입니다. 물론 저는 원문에 충실하지 못했습니다. 번역자가 무엇을 첫번째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머릿말에 원문에 충실했다는 말은 번역자의 큰 덕목을 실천했다는 생각을 하지만 어찌보면 복지부동형같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거든요. 즉 직독이 독자의 판단이나 선택을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모래알을 씹는 경우처럼 뱉어버리거나 집중력 저하로 독자 자신을 탓(불편)합니다.
(추천,안전효의 영어 길들이기/번역편)

로쟈 2009-08-29 20:13   좋아요 0 | URL
네, 자신을 투명한 투과물 정도로 간주함으로써 번역자의 존재감과 함께 책임으로부터도 비껴나는 게 아닌가 싶어요...

outis 2009-09-15 08:14   좋아요 0 | URL
특히 고전 원전 번역의 경우, 모래알 씹는 느낌을 자신의 문화적 지층을 다양하게 하는 것으로 방향 전환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기초적인 지식과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전에 대한 접근과 이해가, 안이한 태도로 입 벌리고 받아 먹기 식의 접근 방식을 가질 때는, 사실 아주 쉬운 단어로 된 문장도 모래알 씹는 느낌일 수 있거든요. 특히, 일본어식, 영어식 문법을 따른 번역과 '비문'의 경우는 '시적'표현의 허용과는 다른 번역의 고질병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시적 표현을 최대한 살리면서 번역하는 것과 한국어로 글쓰기를 잘하는 것은 다른 문제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혼동한다는 것이죠.

로쟈 2009-09-15 20:16   좋아요 0 | URL
다양한 수준의 번역이 가능할 거라고 봅니다. 제 바람은 희곡은 경우엔 공연용으로도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고, 정확한 번역과 이런 용도가 서로 상충할 수밖에 없는지는 의문입니다...

기인 2009-08-29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엇을 옮기고 싶으냐의 차이겠지만, 저는 강대진 선생님 번역이 더 '이질감'을 전달해주는 것 같아서 마음에 듭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것이 원본의 느낌과 더 유사한지는 알 수 없지만요. ㅎㅎ
희랍 희곡을 읽는 독자들의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서도 다르겠네요. 역시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ㅜㅠ

로쟈 2009-08-29 20:11   좋아요 0 | URL
번역에서 제 관심은 '독자'와 '효과'쪽에 더 가 있습니다. 공연된 작품을 번역했는데, 공연할 수 없다면, 무얼 옮긴 것인가 의문을 갖게 되고요. 전공자들의 번역을 읽을 때마다 갖게 되는 생각은 '다른 전공자'를 위한 번역이 아닌가 하는 것이에요. 어차피 번역은 불가능하다는 전제에서 시작해야 '소통'이 가능하다는 게 번역의 역설이라고 봅니다...

outis 2009-09-15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극 공연용 대본은 연출가와 각색자의 능력에 따라 생산 가능합니다. 시적(詩的)인 표현들을 대화체로 옮기기 위해서 번역자 본연의 최선을 다하지 않고 구태의연한 표현들에 안주한다면, 그야말로 '에반드로스의 덕목'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희랍 비극이 운율을 가진, 합창형식이 주요한 가무(歌舞)극이라는 것을 고려했을 때,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오히려 희랍 비극을 즐길 수 있는 출발점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극의 시적 표현들을 '잘라먹는'다고 해서 공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한국에서 공연되었던 <오이디푸스 왕> 연극 작품들은 시적 표현을 최대한 살린 번역본을 가지고도 연출가의 능력에 따라서 충분히 공연 가능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는 것이 아닐까요?

로쟈 2009-09-15 20:15   좋아요 0 | URL
국내에서 공연된 <오이디푸스왕>은 본 적이 없는데, 한번 봐야겠네요...

노승영 2010-02-02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포클레스를 눈으로 감상하고 싶은 사람은 천병희 역을
그리스어 원서를 읽을 때 참고하고 싶은 사람은 강대진 역을
공연에 쓰고 싶은 사람은 강태경 역을 보면 되겠네요.
한국 독자에게 세 가지 방식으로 읽힐 수 있는 소포클레스는 행복한 작가일듯... ^^
 

한겨레에서 번역에 관한 블로그 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73594.html). 관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절반은 번역과 번역비평 담론을 모니터링할 필요 때문이기도 하다. '중간언어'란 표현이 눈길을 끄는데, 학술용어인지 필자의 용어인지 잘 모르겠다. 필자에 대해선 기사 외에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  

한겨레(09 08. 28) [블로그] 번역에 대한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언어를 전공하는 이들이 가장 접근하기 쉬울거라 -자(自) 타(他)가- 여기는 알바가 번역이다. 이것만큼 철저한 오해가 또 없다. 해당 외국어를 잘한다고해서 대상어로 옮기는 작업에 능할것이란 억측은 이 바닥을 너무 만만히 본 탓이다. 게다가 외국어를 잘한다는 기준이란 게 또 모호하기 그지없다. 왜냐면 외국어는 지금 '잘하고 있다'가 내일도 '잘 할 것이다'를 입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인이 돼서 배운 언어는 쉽게 화석화되기에 하루라도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지 않으면 딱딱하게 굳어져버린다. 결국 ‘잘한다’는 말은 현재상태를 이름과 동시에 일련의 미래동작들-한 마리 죽여도 어느샌가 스멀스멀 또 한 마리 기어 나오는 집에 눌러 앉은 바퀴처럼 끝끝내 최후의 결정타를 날릴수 없는 어휘군단에 변함없는 성실함으로 대처하며 아무리 발버둥 손버둥쳐도 정점(네이티브)엔 도달할 수 없다는 냉엄한 사실을 수시로 인정하는 동시에 외국어와 모국어 사이의 적절한 지점에 계속 위치하는-이 수행되리란 기대를 포함한 말이다.

번역에 있어 모국어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유는 해당 외국어보다 모국어가 비교적 등한시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일본어-한국어>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한국어 표현을 일본어로 바꾸는 것보다 일본어 표현을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을 더 많이 본다. 일견 웃기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사실 나 자신조차도 예외가 아닌데 이런 현상의 이유는 1.일본어 표현을 적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2.이해는 하고 있지만 그에 상응하는 한국어 표현을 모르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던 한->일이 일->한 보다 쉽다고 느끼는 이유는 적어도 내 생각으로는 학습자 자신이 기실 한->일이 아니라 한국어->중간언어(일본어지만 동시에 일본어라고 할 수 없는 학습자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는 자각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간언어는 학습자가 책에서 읽거나 티브이・라디오에서 듣거나 혹은 일본인 친구와의 대화로부터 의식・무의식적으로 익혀 세운 하나의 언어세계이다. 이 언어세계의 주인은 당연히 그것을 세운 학습자 자신이기에 외국어임에도 불구하고 익숙하고 친숙하게 느껴지게 마련인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면 일본어->한국어 번역에 있어 주요한 어려움은 2.에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한국어를 닦고 기름칠하고 부품갈아주는 작업을 하는 '일본어 학습자'가 드물기 때문이다.

올해 선정된 모(母)대학의 번역 상에서 찾은 재미난 발견 하나가 있다. 일본어 부문과 영어 부문의 수상작과 가작을 비교해 본 결과 먼저 일본어의 경우 수상작과 가작 사이에 큰 차이를 못 느꼈다는 점이다. 수상작은 철저히 원문을 따라 걸었다는 인상이 강했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부분에서는 직역에 가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번역의 젤 어려운 점은 어디까지 내딜 수 있을까를 가늠하는 것이다. 너무 가버리면 창작이 되고 범생처럼 얌전히 주의깊게 가면 직역같아서 왠지 껄끄럽다. 이런 점에서 가작은 좀 더 가볍게 원문과 나란히 걸으려고 했다는 흔적이 보였다.  

다음으로 영어의 경우는 -원문을 번역문과 비교하면서 그 차이를 자알 이해할 만큼의 영어독해 능력을 겸비하지 못한지라 한국어에 한해서 말한다면-수상작과 가작 사이의 질 차이가 확연했다. 수상작에 납득이 갔다. 일본어와 다른 흥미로운 점은 질 차이뿐만 아니라 번역자의 원문 해석에 있어서도 큰 차이를 보였다. 이런 정도라면 동일한 원문이라도 번역자별로 읽어보는 재미가 있겠다 싶었다. 왜 일본어 번역은 비슷비슷한데 영어 번역은 이리도 다른 걸까라고 일반화하는 건 위험하지만 암튼 흥미로운 실마리란 생각이 들었다.

가와카미 히로미(川上弘美)의 단편 중에 <ぽたん>이란 작품이 있다. 문고판으로 4페이지 정도의, 길이로 보자면 단편이라기 보단 콩트에 가까운게 아닌가 싶다. 1페이지 정도 시험삼아 한국어로 옮겨봤는데 -'번역'은 내게 있어 일종의 자그만 로망이라 함부로 입에 올리기가 민망스럽다 ^^- 평이한 문장임에도 만만찮다. 좋은 한국어 문장이 내 머릿속에 충분히 비축되어 있지 않음을 통감했다. 무엇보다 이 단편의 제목을 어떻게 옮기면 좋을까? 같은 의성어 혹은 의태어로?-무엇보다 ‘ぽたん’이란 단어는 사전에도 올라와 있지 않다. -혹은 내용을 고려한 전혀 다른 제목? 귀국하면 한국어 번역본을 찾아서 비교해 볼 생각이다.   

지금 떠오르는 가장 맘에 드는 번역 제목은 1967년 영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다. 원제목은 <Guess Who's Coming To Dinner>였다. 이 멋진 번역 제목은 기실 일본에서 붙인 것으로 우리는 그것을 그대로 가져와 쓴 것이라고 한다. 씁쓸하다. 

09. 08. 29. 

 

P.S. 최근에 발견하여 구입한 번역학 관련서는 한국번역학회에서 옮긴 <라우트리지 번역학 백과사전>(한신문화사, 2009)이다. 1부에선 번역학 용어들에 대한 해제를, 그리고 2부에서는 각 나라와 지역의 번역 전통을 다루고 있다. 책은 1998년에 나온 초판을 옮긴 것인데, 참고로 올해 2판이 새로 나왔으며 온라인에서 발췌독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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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08-29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간언어'를 'interface-language'(자작용어)라고 하면 어떨까요?

로쟈 2009-08-29 13:57   좋아요 0 | URL
interface를 '자작'이라고도 옮기나요?..

펠릭스 2009-08-29 14:43   좋아요 0 | URL
제가 만든 '조어'라는 말인데요.

로쟈 2009-08-29 20:14   좋아요 0 | URL
ㅎ 제가 잘못 봤네요...

Sati 2009-08-29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간언어 interlanguage, промежуточный язык'는 학술용어가 된 듯 합니다. 애당초 기계어 계발이나 기계번역, 외국어교수법, 이중언어사용 이론쪽에서 언급되던 표현인데, 포탈검색해보니 최근에는 영어학원쪽에서도 많이 사용하는가 봐요.

로쟈 2009-08-29 20:15   좋아요 0 | URL
닉을 바꾸셨네요.^^ 영어학원쪽에서도 많이 사용한다고 하니 새로운 정보입니다...

Sati 2009-08-29 20:35   좋아요 0 | URL
닉 이쁘죠? ㅎㅎ 매트릭스 다시 보다가, 이 아이가 너무 이뻐서 바꿔버렸어요. 종이로 된 번역에 대한 로쟈님의 글을 자꾸 접하게 되서 너무 반가운 거 있죠. 방금 손 청결제(1인당 1병밖에 안 파네요... 전시분위기...)랑 기획회의 주문 넣고 왔어요.^^

서울비 2009-08-30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Interlanguage 중간언어는 제2언어 학습자가 모국어와 학습목표어 사이에 중간언어를 갖는다는 1970년대 SLA(second language acquisition) 이론에서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후, 영어교육학, 언어습득론 관련하여 편하게 인용되는 용어입니다.

로쟈 2009-08-31 00:26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정보 감사합니다...
 

가라타니 고진의 <트랜스크리틱>을 참조할 필요가 있어서 들춰보다가 관련기사를 검색해봤다. 두달 전 기사 가운데 흥미를 끄는 것이 있어서 스크랩해놓는다. 가라타니가 인용하고 있는 저작들이 대부분 일역본이며, 이것은 자국 번역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의 표현이라는 지적이다. 그의 책을 즐겨 읽는 독자에겐 새삼스러운 사실이 아니지만, 우리 학계/비평계의 현실과는 사뭇 거리가 있는 일이기도 해서 음미해볼 여지를 남긴다.  

조선일보(09. 06. 01) [일사일언] 번역에 대한 자신감 

한국에서 문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일본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은 매우 익숙한 이름이다. 3~4년 전 '근대문학은 끝났다'라는, 듣는 이에 따라서는 다소 황망한 선언을 앞세워 한국에 상륙한 가라타니는 문단에 그야말로 뜨거운 논쟁을 일으켰다. 일부는 그를 따라 오늘의 한국문학에 무차별한 사망 선고를 내렸고, 또 다른 이는 문학에 대한 그의 이해 폭이 협소하다면서 반감을 피력하였다. 가라타니에 대한 한때의 뜨거운 열기는 이제 어느 정도 가셨지만 아직까지도 그에 대한 언급이 간헐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톺아보면, 최소한 그가 일본이라는 국경을 넘어 세계적 지식인으로 발돋움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얼마 전 그를 세계적인 지식인으로 알리는 데 공헌한 주저 《트랜스크리틱》을 다시 읽다가 새삼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는 칸트와 마르크스 등 서양 철학자들을 활용하는 대목에서 버젓이 일본어 번역판을 인용하고 있음을 각주로 알렸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원어(原語)에 대한 강박은 일반의 상식을 초월한다. 그래서 실제로는 번역서에 의존하여 글을 읽는데도, 특정 대목을 자신의 글에 인용할 때는 가능한 한 원서의 내용을 참조했다는 사실을 알리려 애쓰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라타니는 어떻게 해서 이러한 강박으로부터 벗어난 것일까. 무엇보다도 자국어에 대한 애정과 메이지(明治) 시대부터 본격화된 일본의 150여년 번역사에 대한 깊은 자신감 때문일 것이다. 가라타니에 호의적이지 않은 나 자신도, 자국어에 대한 그의 저 도저한 자부심 앞에서는 난연(赧然)해질 수밖에 없다.(강동호_문학평론가) 

09. 08. 08.   

P.S.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그런 자신감은 우리의 현실과 너무 거리가 멀다. 당장 <트랜스크리틱>(힌길사, 2005)만 하더라도 이런저런 번역상의 오류를 적잖게 포함하고 있다. 예전에 '자세히 읽기'를 시도하다가 그만둔 적이 있는데(밥벌이가 아니잖은가!) 그때 마저 지적하지 못한 대목도 다시 보니 아직 많다. 가라타니의 대표적인 저작인 만큼 다시 손을 보아 개정판이 나왔으면 좋겠다(현재 품절상태다).  

개인적으론 지젝의 <시차적 관점>과 함께 필독해볼 만한 '우리시대의 고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최근엔 한 설문에 추천도 했다.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젊은 대학(원)생이라면 이 두 권을 독파함으로써 사고의 높이를 두 단계 이상 높여놓을 수 있을 것이다. 도전해보기를 권장해마지 않는다. 물론 가급적이면 원서와 같이 읽는 게 좋겠다. 그게 원문에 대한 독해력도 키워줄 뿐더러 다른 책들을 읽을 때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이런 오류들을 피해갈 수 있도록 해준다.   

가령, "칸트가 보편성을 일반성과 엄격하게 구별한 것은 코페르니쿠스 이후이 근대과학이 초래한 문제에서 나왔다. 그것은 베이컨(Roger Bacon, 1214-94)으로 대표되는 실증 귀납의 중시와는 다르다."(83쪽)에서는 무엇이 잘못됐을까?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을 엉뚱하게도 13세기 사람 '로저 베이컨'으로 탈바꿈시켜놓은 것이 오류다. 일어판의 오류인지 한국어본 편집자의 부주의인지는 모르겠으나 애꿎게도 독자만 골탕을 먹는다. 

이보다 더 문제적인 건 물론 오역이다. "<순수이성비판>에서 칸트는 확실히 하나의 주관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주관을 무시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주관과의 합의 또는 공동 주관성이 보편성을 가져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85쪽)라는 대목 같은 것. 영어본으론 이렇다. "Critique of Pure Reason begins by describing a single subjectivity, to be sure. This does not mean, however, that Kant neglected the existence of the multitude of other subjects. Rather, he did not even dream that univesality could be attained by an agreement among plural subjectivities, that is, by intersubjectivity."(43쪽)  

요즘 우리의 번역관행을 보면 'subjectivity'는 '주관'보다는 '주체성'이라고 옮겨질 가능성이 높은데, 가라타니의 용례를 따라서 뒷부분(뒷문장)을 다시 옮기면 "실상 칸트는 보편성이 복수의 주관들 간의 합의를 통해서, 곧 상호주관성을 통해서 얻어질 수 있으리라곤 꿈도 꾸지 않았을 뿐이다." 정도다. 일어본과 영어본의 편차를 감안하더라도 부정문을 긍정문으로 옮긴 건 가장 안 좋은 종류의 오역이다. 이렇게 되면 '번역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실제로는 번역서에 의존하여 글을 읽는데도, 특정 대목을 자신의 글에 인용할 때는 가능한 한 원서의 내용을 참조했다는 사실을 알리려 애쓰는" 허황한 작태가 관행적인 현실이 된다. 번역자들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아직 '주마가편'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번역에 흠이나 잡자는 것이 아니다. 번역본만 인용하면서 한국어로도 <트랜스크리틱> 같은 이론적 저작이 쓰여질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무망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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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i 2009-08-08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아쇠를 누가 당기냐가 관건일 거 같아요. 번역을 학위논문으로 인정해주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도 괜찮을 듯요. <번역비평>을 적어도 계간으로만 바꿔도 좀 활기가 생기지 않을까요?

로쟈 2009-08-09 12:10   좋아요 0 | URL
계간지가 나온다고 사정이 달라질 것 같진 않지만(팔리는 책은 아니니까요) 문제의식을 확산시킬 순 있을 듯해요. 먹거리나 읽을거리나 마찬가지라고 하면 좀더 관심을 두어볼 만한데요...

2009-08-08 2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09 1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PhEAV 2009-08-09 0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석사학위 논문 정도라면 정말 번역으로 대체될만 할텐데요...

로쟈 2009-08-09 12:07   좋아요 0 | URL
분야에 따라선 박사논문도 번역과 주해로 대체될 수 있겠죠. 미국 등지에선 실제로 그렇게 하는 걸로 압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8-09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탕화면은 어느 나라 경치인가요? 멋지네요.

Sati 2009-08-09 20:47   좋아요 0 | URL
당나귀 등에 책 한 짐 싣고 저기 들어가서 한 십 년 썩으면 행복하겠어요 :)

펠릭스 2009-08-10 06:26   좋아요 0 | URL
그리스의 수도원입니다. 수도원에는 책이 많이 있는데요.
줄타고 올라가서 희귀본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습니다.

로쟈 2009-08-11 09:36   좋아요 0 | URL
네, 그리스의 수도원이랍니다...

베토벤 2009-08-09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3~4년 전 '근대문학은 끝났다'라는, 듣는 이에 따라서는 다소 황망한 선언을 앞세워 한국에 상륙한 가라타니는 문단에 그야말로 뜨거운 논쟁을 일으켰다. "

태클을 걸자면 '상륙'이라는 단어도 그렇고 위의 문장도 그닥 맘에 들지 않네요. 가라타니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저 문장과 이후의 문장들로 인해 '근대문학의 종언' 이전의 작업들이 그닥 제대로 취급받지 못한 인상을 줄 수 있을 듯 합니다. 제가 과민한 건가요.

로쟈 2009-08-11 09:37   좋아요 0 | URL
네, '상륙'은 그보다 먼저죠...

2009-08-10 07: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11 09: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울프심 2009-08-14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랜스크리틱을 거의 다 읽어가고 있는데, 직장인이 읽기에는 조금 부담감이 있더군요. 더불어서, 고진이 언급하는 각 책들을 잘 읽어보지 않았기에 뭐라 말할 수 없지만, 각 사상가들을 가로지르면서 언급하는 대목과 앞서의 서평에서도 언급했듯이, 번역서만으로도 자신의 사상의 토대를 이룰수 있는 환경이 무척 부럽네요. 조금씩 조금씩 읽어가고 있지만,215페이지의 키에르케고르의 인용구 중 「사랑의 기술」은 조금 의아합니다. 키에르케고르의 역서로는 국역으로「사랑의 역사」가 있고 영문으로는 「Work of Love」는 있어도 이것이 일본의 번역본인지 잘모르겠네요. 아마존과 일본아마존을 조금 살펴보았는데 그런 책은 없는 것 같은데..

로쟈 2009-08-14 21:50   좋아요 0 | URL
네, <사랑의 기술>도 오역입니다. 말씀대로, <사랑의 역사>가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