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관련 기사를 읽다 보니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10월의 읽을 만한 책'이라고 꼽은 책 10권의 목록이 눈에 띈다. 기사는 아래와 같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위원장 민병욱)는 올해 ‘10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 <조대리의 트렁크>(백가흠, 창비), <예언가 우리 역사를 말하다>(백승종, 푸른역사), <인간의 미래>(라메즈 남, 동아시아), <한국의 미,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1, 2>(문명대 안휘준 외, 돌베개) 등 모두 10개 분야 10권을 선정, 발표했다.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 등 11명의 ‘좋은 책 선정위원’들이 뽑은 책은 이밖에 <영화로 읽는 정신분석>(김서영, 은행나무), <대국 굴기>(왕지아펑 외, 크레듀), <나는 나를 베팅한다, 그리고 그 후>(김상경, 국일미디어), <위험한 생각들>(존 브룩만, 갤리온), <빅토르 위고의 유럽 방랑>(빅토르 위고, 작가정신), <밴드마녀와 빵공주>(김녹두 이지선, 한겨레출판) 등이다.

이 중에서 <나는 나를 베팅한다, 그리고 그 후>와 <밴드마녀와 빵공주>는 내가 처음 접하는 책이다. 아마도 분야가 자기계발과 아동서가 아닐까 싶다(평소에 내가 검색하지 않는 분야들이다). 기사를 읽다가 문득 나대로 '10월의 읽을 만한 책' 리스트를 꼽아보는 건 어떨까 싶었다. 11명이 모여서 회의하는 것보다 훨씬 덜 번거롭고  간결하게, 게다가 저렴하게 최근에 나온 책들 가운데 리스트를 뽑아본다.



 

 

 

일단 문학쪽은 두 권이다. 모두 최근의 페이퍼들에서 다루었는데(http://blog.aladin.co.kr/mramor/1601982, http://blog.aladin.co.kr/mramor/1596181), 한국소설로는 김애란의 신작소설집 <침이 고인다>(문학과지성사, 2007), 그리고 외국소설로는 미국작가 찰스 부코우스키의 <팩토텀>(문학동네, 2007)을 꼽아둔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아무래도 페이퍼에서 다룬 책들에 먼저 눈길이 간다.

 

 

 

 

철학쪽은 드디어 번역서가 출간된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이제이북스, 2007). 이미 <마르크스의 유령들>(한뜻, 1996)이라고 10년쯤 전에 번역본이 나왔었지만 '데리다를 쫓아내는' 번역이었다. 이번에는 데리다에 관한 불량번역본들에 대한 서평을 쓰다가 아예 번역에 나섰다는 전공자의 번역이어서 믿음이 간다. 개인적으로 최근에 <햄릿>도 자세히 읽은 데다가 러시아어판 <마르크스의 유령들>도 몇 달전에 구해놓은지라 독서를 위한 만반의 준비는 돼 있다. 하지만 시간이 있으려나?.. 

그리고 또다른 철학서로 역시나 데리다급을 고른다. 들뢰즈의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이학사, 2007). 이 또한 지나번에 페이퍼로 다룬 책이다(http://blog.aladin.co.kr/mramor/1584851). 사실은 엊그제 올해 출간된 러시아어판 <안티 오이디푸스>를 데리다의 <산종>과 함께 배송받았고, 조금전에 그걸 들추면서 혼자 흡족해 하던 터였다(<안티 오이디푸스>의 새 번역본은 언제 나오는 것인지 궁금해지는군).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를 뒤적이다가 여차하면 <안티 오이디푸스>로 빠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과연 시간을 낼 수 있을까?

 

 

 

 

어제 '역사적인' 남북 정상간의 만남이 있었지만 남북관계와 통일문제에 관한 책은 내가 별로 읽어본 바가 없어 가장 최근에 나온 전상봉의 <통일, 우리 민족의 마지막 블루오션>(시대의창, 2007)에 대해서 '판단'하기 어렵다. 한국사회에 관한 책으론 보다 재미있어 보이는 책을 고르고 싶다. 한겨레의 '심야통신' 등을 묶은 서경식의 <시대를 건너는 법>(한겨레출판, 2007)과 '명랑좌파' 우석훈의 칼럼집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생각의나무, 2007)가 그 '재미있어 보이는' 책들이다. 별로 즐거운/즐거울 일이 없는 세태이지만 혹 '명랑하게 시대를 건너는 법'을 배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과학책으로는 에드워드 윌슨의 신작 <생명의 편지>(사이언스북스, 2007)와 로렌 아이슬리의 <시간의 창공>(강, 2007)을 고른다. 윌슨의 책은 곧 나온다는 것인데, 보아하니 <생명의 다양성>(까치글방, 1995)과 <생명의 미래>(사이언스북스, 2005)의 연장선상에서 읽을 수 있을 듯하다. 다소 생소한 아이슬리는 고고학자인데, 정재승 교수의 평은 이렇다: "로렌 아이슬리는 뛰어난 인류학자이면서, 동시에 에머슨이나 소로에 비견되는 자연주의자이기도 하다. 그의 글은 존 던의 시에서나 볼 수 있는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문장 곳곳에 가득 배어 있으면서도 브로노프스키의 '과학적 통찰력' 또한 잃지 않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시인의 재능을 가진 과학자'라 부른다." 기꺼이 읽어볼 만하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이론서로는 일본 최초의 소설론이라는 쓰보유치 쇼요의 <소설신수>(고려대출판부, 2007). 근래에 주목한 만한 책들을 계속 내고 있는 고려대출판부의 일본학총서의 하나이다(고모리 요이치의 <무라카미 하루키론>(고려대출판부, 2007)도 역시나 같은 시리즈로 최근에 출간된 책이다). 기억에는 이광수도 탐독했던 책이며 최초의 근대 소설론이라고 할 '문학이란 何오'(1916)에서 언급됐던 책이기도 하다.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지난 여름 새번역본이 나온 <소설의 이론>(문예출판사, 2007)도 같이 읽어볼 만하겠다. 단, 루카치 초심자라면 독해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걸 미리 밝힌다.

 

 

 

 

그리고 알 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은 그의 '도스토예프스키론'의 서론격으로 씌어졌다(본격적인 도스토예프스키론은 끝내 씌어지지 않았지만). 바로 그 도스토예프스키의 최대 걸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민음사, 2007)의 새로운 번역본이 지난주에 출간됐으며 10월의 필독 목록에 올려놓을 만하다('문학적 교양'을 위해서도 이 정도 작품은 읽어주자).

역자는 이미 <악령>(열린책들)을 우리말로 옮긴 바 있는 소설가 겸 러시아문학 전공자 김연경씨. 가장 젊은 세대의 감각으로 읽는 도스토예프스키는 어떨지 궁금하다(각기 다른 번역본들은 턴테이블에 올려놓는 각기 다른 음반들처럼 제각각의 음색과 흥취를 갖는다). 나는 사실 개인적으로 이달에 이 작품에 대한 강의도 해야 하기 때문에 비껴갈 수도 없긴 하다. '10월의 읽을 만한 책' 10권에다가 보너스로 (3권이나!) 덧붙여두는 이유이다...

07. 10.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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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괭이 2007-10-03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말미에 로쟈님에 대한 감사의 말도 들어 있어요. 물론 실명으로다가 ㅋㅋ

로쟈 2007-10-03 01:28   좋아요 0 | URL
로쟈님 만세!..

2007-10-03 0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10-03 09:33   좋아요 0 | URL
벌써 '수고'를 해보셨군요. 저도 시간이 나란히 읽어볼 생각입니다.^^

Joule 2007-10-03 0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덩달아)만...만세!..

로쟈 2007-10-03 09:32   좋아요 0 | URL
^^

푸른괭이 2007-10-03 0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로쟈님 성함 뒤에 괄호치고 "로쟈님과 동일인임"이라고 쓰려다가 괜히 책의 품위(?) 떨어뜨릴까봐 참았는데, 넣을 걸 그랬나요? ^^ ㅋㅋㅋ

로쟈 2007-10-03 09:32   좋아요 0 | URL
품위를 지키시오!..

드팀전 2007-10-03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랑좌파 ...^^ ^^ 명랑해지네요 ㅎㅎㅎ

로쟈 2007-10-03 11:48   좋아요 0 | URL
'명랑'이 원래는 '만화' 앞에 붙는 접두어인데, 좌파도 급수를 따지던 80년대식보다는 좀더 쾌활해질 필요가 있겠어요...

stella.K 2007-10-03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곡도 누가 연주하고, 지휘하고, 또는 노래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참 많이 다르더라구요. 책도 그러겠죠? 전 아직 같은 작품을 누가 번역하느냐에 따라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에 대한 비교는 그다지 안 해봤는데, 열린책들은 있으니 민음사판은 어떤지 비교해 보면 좋겠군요.
그런데 어느 세월에...ㅠ.ㅠ

로쟈 2007-10-03 21:58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음악 애호가라면 번역본들을 대조해 읽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세월'이죠. 한오백년이 필요합니다...

yoonta 2007-10-04 0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른괭이님이 민음사판<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역자님이신가봐요?
그나저나 저는 로쟈님이 번역한 도스토예프스키를 빨리 한번 읽어보고싶은데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 건지요..^^

2007-10-04 08: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 대학원신문에 기고한 글인데, 분량상 다 적지 못한 내용을 보충하고 이미지들을 덧붙여서 옮겨놓는다. 최근에 나온 책들에 대한 소개가 글의 취지이지만 대부분의 책들은 아직 손에 쥐어보지 못했다(그나마 최근에 몇 권 구입한 정도이다. 이 계절이 가기 전에 몇 권 읽으면 다행이겠다). '지정학이란 무엇인가'가 제목으로는 보다 적합하겠지만 며칠전에 같은 제목의 페이퍼를 올려놓았던지라 마지막 문장을 제목으로 삼는다. 정현종의 시구를 바꿔쓰자면, 책 읽을 시간이 많지 않다!.. 

 

가을이 독서와 무관한 계절이 된 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런 탓인지 다른 계절에 비하면 출간되는 책들의 수준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기대에 못 미친다. 최근에 나온 책들의 목록을 뽑으려고 하니까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물론, 걱정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읽을 만하거나 읽어두어야 하는 책들은 언제나 차고 넘치니까.   

 

책에 길이 있다면 그것은 천 갈래 만 갈래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책들이 펼쳐놓는 공간은 그 자체로 ‘지리적 공간’이다. 그 지리적 공간을 삶의 공간과 포개놓을 때 그것은 지정학적 공간이 된다. 지정학적 공간은 현실적인 힘의 비균질적 분포에 따른 굴곡을 갖는다. 고로, “세계는 평평하지 않다.”  

 

 

 

 

 

 

 

 

 

콜린 플린트의 <지정학이란 무엇인가>(길)는 바로 그러한 전제에서 ‘장소의 정치학’을 제안하는 교재용 책이다. “지식이나 표상은 지정학적이다. 자신이 처해 있는 입장에 따라 지식은 달리 구성된다.”는 문구가 그 문제의식을 압축적으로 전달해준다. 한때 국가주의 학문으로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저자와 역자들은 지정학 비판(anti-geopolitics)까지도 포괄하는, 지정학의 적극적인 자기갱신을 시도한다. 헤게모니의 지정학이 가능하다면 탈식민주의 지정학도 가능하다는 게 이들의 문제의식이다.  

 

마침 때맞춰 나온 프레드릭 제임슨의 <지정학적 미학>(현대미학사)은 예술, 보다 구체적으로는 현대영화 또한 이러한 지정학적 문제틀 안에서 사고되어야 한다는 걸 보여준다(*이 책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다룰 예정이다). <보이는 것의 날인>(한나래)과 함께 제임슨의 대표적인 영화론인 이 책은 영화에 대한 그의 변증법적 사유가 도달할 수 있는 높이를 보여준다. 제임슨에 대한 간단한 입문이 필요하다면 애덤 로버츠의 <트랜스 비평가 제임슨>(앨피)를 참고할 수 있겠다. 하지만 모든 경우에 가독성에 대한 기대는 반(反)제임슨적이다(국역본들은 사태를 결코 호전시키지 않는다).

 

 

 

 

 

 

 

 

 

 

지정학의 이론적 틀과 개념적 도구들이 어느 정도 마련됐다면 몇 가지 키워드를 길잡이 삼아서 지정학적 여행을 감행할 수도 있겠다. 미국부터다. 미국의 키워드는 ‘종교’이다. 데이비슨 뢰어 목사의 설교들을 모은 책 <아메리카, 파시즘 그리고 하느님>(샨티)은 미국의 근본주의 기독교와 제국주의적 정치 행위가 어떻게 파시즘으로 귀결되고 있는지 환기시키는 책이다(돈과 권력, 그리고 종교의 왜곡된 조작들로 인해 미국식 민주주의가 끝장났다고 설파하는 목사님 말씀이 왜 남의 얘기 같지만은 않은 것일까?).

 

그리고 류대영의 <미국종교사>(청년사)는 국내 필자가 탈식민주의적 관점에서 쓴 미국 종교 통사이다(*거기에 보태자면 미국의 정체성을 다룬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김영사)과 '미국의 식민지 대한민국'을 다룬 인터뷰집 <하나의 대한민국, 두 개의 현실>(시대의창)도 같이 읽어두면 좋겠다).

 

 

 

 

 

 

 

 

 

이어지는 여정은 ‘혁명’의 나라 프랑스이다. ‘하버드의 석학이 분석한 프랑스인들의 삶’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프렌치 프랑스>(고려대출판부)는 프랑스 문화의 백과사전이라고 할 만한 교재용 책이다. 국내 전공자들이 쓴 <프랑스, 하나 그리고 여럿>(강)과 함께 나란히 읽어봄 직하다. 거기에 ‘프랑스 공화주의의 이면’을 다룬 <공존의 기술>(그린비)은 지난 2005년 ‘방리유 사태’를 추적하고 진단한 글 모음으로 ‘교재들’을 보완해줄 수 있겠다. 필자의 한 사람인 에티엔 발리바르의 주저 <대중들의 공포>(도서출판b)를 그러한 계급적대 문제에 대한 철학적 개입으로 읽어볼 수도 있겠고. 

 

 

 

 

 

 

 

 

 

아직도 ‘나치 독일’이 연상된다면 독일인들이 섭섭해 할 테지만, 히틀러와 그의 나치즘은 여전히 출판계의 단골 메뉴이다. 그 중 최신간은 노먼 메일러의 논픽션 3부작 중 1부로 출간된 <숲속의 성>(뿔). 어린 아돌프 히틀러와 그의 가족, 그리고 그들의 불안정한 삶에 대한 소설인데, 절대 악에 대한 작가의 완벽한 이해를 보여준다는 평이다.  

 

 

 

 

 

 

 

 

 

나치와의 연루로 많은 논란을 낳은 지휘자의 평전과 철학자의 연구서도 겸사겸사 읽어봄 직하다. 각각 헤르베르트 하프너의 <푸르트벵글러>(마티)와 박찬국 교수의 <하이데거는 나치였는가?>(철학과현실사, 2007)이다. 전자는 작년에 나온 <레니 리펜슈탈, 금지된 열정>(마티)에 이어지는 책이고, 후자는 <하이데거와 나치즘>(문예출판사, 2001)의 개정판이다(*부르디외의 <나는 철학자다> 등도 같은 주제의 책이다).

 

 

 

 

 

 

 

 

 

 

 

이제 눈길을 시베리아를 거치거나(김경주, <패스포트>) 지중해를 거쳐서(로버트 카플란, <지중해 오디세이>) 아시아대륙으로 돌릴 차례이지만 어느새 분량이 바닥났다(*<유라시아 천년을 가다>(사계절출판사, 2002)와 <지중해 철학기행>(효형출판, 2007)도 같이 들어볼 만하다). 자판에서 손을 떼고 다시 책상머리에 앉을 때이다. 독서와 무관한 계절은 다른 이들의 몫이니, 가을은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입 닥치고 책이나 읽어!”   

 

 07. 0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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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때리다 2007-09-28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맘에 드는 여자친구 만드는 법> 확실하게 배울 수 있는 책은 없나요?

로쟈 2007-09-28 23:11   좋아요 0 | URL
'The Game'이란 책을 참고해보시길. '작업'에 대해서는 유익한 정보들이 많이 있습니다. 꼭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자꾸때리다 2007-09-28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오타가 있네요? "박찬국 교수의 <히틀러는 나치였는가?>(철학과현실사, 2007)이다. "
히틀러는 나치가 맞잖아요.ㅋㅋㅋ

로쟈 2007-09-28 23:09   좋아요 0 | URL
감사. 히틀러, 히틀러 하다보니 말도 안되는 오타가 들어갔었네요.^^;

마늘빵 2007-09-29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맨 위 사진은 영화 <가을로> 군요. 실제로 영화에선 저 장면은 없었던거 같은데, 검색하면 사진은 나오더라고요.

로쟈 2007-09-29 01:22   좋아요 0 | URL
포스터용 사진인가 봅니다...

섬나무 2007-10-02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생각을 해보는데요... 로쟈님의 '최소한의 도덕'을 위해 바쳐지는 맥시멈의 인내들은 남들에게 없는 어떤 장치가 하나 더 뇌에 장착되어 있거나 남들에게 있는 심장의 퓨즈가 없는 것 같다는...아니면 책 읽는 터미네이터쯤 - 존경스럽단 뜻입니다.^^

로쟈 2007-10-02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책 읽는 터미네이터'도 하나 고용해야겠습니다. 저 혼자 읽기는 좀 벅차서.^^

블루비니 2009-09-28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 책을 나열해놓고, 느낌 몇줄 서술하는 것이 독자들이 책을 선택하는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의아하다. 단순히 '시간 많음'이나 '돈이 남아도는 상황'을 과시한다는 평가를 받지 않으려면, 차라리 책 한권을 '논리적'으로 파해쳐 보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레종 데트르'는 알다시피 '존재 이유'란 뜻의 불어이다. 책마을 소식에 밝은 이라면 이번주에 출간된 김갑수의 '독서 오디세이' <나의 레종 데트르>(미래M&B, 2007)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이 책은 아직 손에 들지 못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낮에 학회에 가는 길에 서점에 들러보았지만 예기치 않은 놀라움, 혹은 발견의 기쁨을 가져다주는 책은 이번주에도 만나지 못했다(물론 대형서점이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다). 나올 만한, 나올 법한 책들만 몇 권 눈에 띄었다. 다소의 실망을 뒤로 한 채 이번주에는 책에 대한 책들이나 읽어볼까 마음 먹었다.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손에 든 책이 <장정일의 독서일기7>(랜덤하우스, 2007)이다. 그의 다른 책들과는 달리 한참 뜸을 들이다가 손에 들었다고 생각했는데(장정일을 들먹이니까 왠지 파란여우님이 생각나는군), 지난 7월에 나온 책이니 아직 한 계절도 지나기 전이다(초판 1쇄인 건 당연하겠고). 그의 책 <장정일의 공부>(랜덤하우스코리아, 2006)를 작년말에 구입했었으니까 1년에 한권씩은 사는 셈이다. 

비록 277쪽의 분량이 두껍다고는 할 수 없지만 10,000원의 정가도 왠지 저렴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전철에서 책을 읽으며 더욱 굳어졌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50권 이상의 책에 대한 알찬, 혹은 재미있는 리뷰를 읽을 수 있으니 그만한 비용은 들임직 하지 않은가(생각해보니까 일곱 번째 이 일기는 범우사가 아닌 랜덤하우스에서 출간됐다. 아마도 그의 '소속사'가 지난번 <공부>때부터 그리로 바뀐 모양이다).

 

 

 

 

가령, 2003년 4월 20일자부터 기록하고 있는 그의 일기에서 맨처음 다루어진 장준하의 <돌베개>(청한문화사, 1971) 얘기를 읽다 보면, 아직 읽지 않은 그의 책을 읽은 듯한 느낌을 갖게 되면서 한편으론 언젠가 읽을 책의 목록으로도 올려두게 되니 일거양득 아닌가. 이번에 검색을 하니 아예 <돌베개>(세계사, 2007)의 새로운 판이 얼마전에 나왔다는 사실도 알게 되고. 아울러 같이 언급되고 있는 광복군 친구였던 김준엽의 <장정 1,2>(나남, 2003)에 대해서도 메모해두게 된다(<장정>은 5권짜리 책이고 1,2권이 광복군 시절을 다룬다). 거기에 저자가 장준하에 대한 평가로 인용하고 있는 서중석의 <비극의 현대지도자>(성균관대출판부, 2002)까지 챙겨두게 되면 '독서일기'로 하는 공부는 소임을 다하게 된다.

 

 

 

 

그뿐인가. 장정일도 헌책방에서 읽었다는 전민조의 <가짜사진 트릭사전>(행림출판사, 1999)을 안 그래도 사진에 문외한인 내가 무슨 수로 알고 찾아서 읽겠는가(찾아보니 그의 책들이 댓 권 이상 출간돼 있다. 사진집인 만큼 도서관에서 편하게 대출해볼 수 있겠다). 하지만 책의 요점이며 요긴한 에피소드 등을 서너 쪽의 일기를 통해서 습득할 수가 있다. 예컨대, "상륙정에서 내려 바닷물에 무릎까지 바지를 적시며 뭍으로 걸어나오는 맥아더의 사진은 종종 인천상륙작전의 한 장면으로 우리들의 뇌리에 인상 깊게 남아 있지만, 사실 그 사진은 일본에 의해 필리핀을 쫓겨났던 맥아더가 필리핀을 탈환할 때의 사진이다."(18쪽) 같은 대목들은 '계몽적인' 효과를 갖지 않는가. 이런 사진을 또 '로쟈'는 찾아놓는다(로쟈의 레종 데트르인가?). 아래 사진이다.

 

이게 가짜라는 것인데, 실상은 좀더 '복잡'하다. "이 사진 역시 미군이 필리핀에 상륙하는 역사적 장면을 놓친 <라이프>지의 기자를 위해 맥아더가 군함을 동원해 상륙 당시를 다시 연출한 사진이다. 필리핀을 쫓겨나면서 '나는 돌아오리라'는 호언을 남겼던 맥아더로서는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이 말했던 바를 실천했음을 증명해 놓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또 맥아더와 인천상륙작전에 관한 책들을 점검해놓는다. 한 가지 더 놀라운 사실. "스페인 내란 당시 프랑코 파의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인민전선 측의 병사를 찍은 로버트 카파의 저 유명한 사진이 연출된 것이라는 사실은 작은 충격이다."(19쪽) 지난봄 로버트 카파 전시회에서도 본 바로 아래의 사진이다(음, 이 '순간의 감동'이 '조작된 감동'이라는 얘기로군).

그밖에도 재미있는 내용들은 계속 이어진다. 그 재미는 주로 고미숙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그린비, 2003)처럼 많이 알려진 책이 아니라 이병주의 <대통령들의 초상>(서당, 1991) 같이 잘 알려지지 않은, "운 좋게 만나지 못했다면 있는 줄도 모르고 넘어갈 뻔한 기서(奇書)"(21쪽)들을 다룰 때 배가된다(장정일이 왜 '기서'라고 부르는지는 직접 확인해보시길).

시인이자, 알고 보면 출판인 출신의 방송인 김갑수의 <나의 레종 데트르>에서 독후감은 <장정일의 독서일기>처럼 연대순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주제별 분류를 따른다. 아직 구입하지 않았기에 알라딘의 맛보기만을 옮겨오면 이런 식이란다(저자 자신이 58년 개띠이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한두 번 만난 인연밖에 없지만 어쩐지 '희경아'라고 부르고 싶은 작가 은희경이 펴낸 <마이너리그>.(...) <마이너리그>는 58년 개띠 네 친구들의 25년간에 걸친 성장소설이다. 이 글을 쓰는 내가 바로 58년 개띠이니 그 시간의 흐름을 체험적으로 추적해나가는 게 가능하다.(...) 이 소설의 가장 우둔한 독법은 적어도 자신의 삶은 만수산들과는 다르게 진지하고 치열했노라고 자위하는 일이다. '이보다 더 한심할 수는 없는' 인물들에게서 위안 받는다면 작가의 교묘한 조롱에 말려 들어가는 것일 테니까. 다음으로 우둔한 독법은 개띠들의 초상을 잘못 그렸다고 작가에게 항변하는 일이다. 의외로 신문서평에 그런 지적이 많이 보인다. 한데 작가가 언제 58년 개띠의 대표선수를 선발하겠다고 했나.('들어라, 58년 개띠들아' 중에서) 

그리고 한겨레 기자를 역임한 언론인 차기태의 <고전, 내 마음의 엘리시움>(필맥, 2007)은 제목이 말해주듯이 '고전 읽기'라는 점에서 앞의 두 책과는 다르다. "성서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부터 알베르 카뮈, 존 스타인벡의 소설까지에 이르기까지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전하는 서양고전에 대한 감상과 해설을 담은 책"이라고 소개돼 있다. 장정일의 책을 사들고 나오다가 신간코너에 있길래 잠시 들춰본 책이다. 역시나 독서일기류의 책들에 주목한 중앙일보의 책소개를 잠시 인용해본다.

독서일기류의 책들이 눈에 띄는 한 주였습니다. 저마다 삶에 울림을 줬던 책들을 소개하고, 현실과 접목시켜 해설하고 있습니다. 그 중 <고전, 내 마음의 엘리시움>(필맥)은 기자 출신인 저자 차기태씨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 플라톤의 『국가론』, 루소의 『에밀』 등 서양 고전의 감상과 해설을 담아낸 책입니다. “수 많은 출판사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진정한 지혜로 초대하는 책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책은 오히려 영혼의 칼을 무디게 만들 뿐이다”는 게 저자가 고전에 빠져든 이유랍니다. “잡초같이 많은 서적 중에서 지혜의 샘물이 되고 영혼의 양식이 되는 것은 결국 고전뿐”이라는 거지요.

 

 

 

 

거기에 덧붙여야 할 문제의식은 물론 믿고 읽을 만한 고전 번역서들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겠다. 원로 종교학자 정진홍 교수의 <고전, 끝나지 않는 울림>(강, 2003)은 유일하게도 다른 책들과 달리 몇 년 전에 나온 책이다. 최근에 나온 독서일기를 다루면서 굳이 거명한 것은 예전에 문예지에 연재될 때 한번 읽었던 글들을 다시 한번 훑어볼 생각에서이다. 책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8편의 고전 가운데 <햄릿>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내가 이번 학기에 강의해야 하는 작품들이어서 문득 생각이 났다.    

끝으로 지난주에 출간된 <오픈북>(을유문화사, 2007)은 "30년째 유력지 '워싱턴 포스트'의 서평란을 이끌고 있는 퓰리처 상 수상 작가이자 서평가 마이클 더다가 유년 시절부터 스무 살까지의 삶을 자신이 읽었던 책들을 통해 회고한 일종의 회고록. 노동자 집안의 아들에서, 우등생으로, 문학 소년, 명문대 장학생이 되기까지의 책과 연계된 삶을 그리고 있다."는 책이다. 물론 나는 더다란 이름도 그의 서평도 읽어본 적이 없지만(국내에 소개된 적도 없는 듯하고) 이런 류의 독서일기는 읽어볼 용의가 있다.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07. 09. 14. 

P.S. <고전, 끝나지 않는 울림>을 펴낸 출판인의 소감도 읽은 기억이 나서 옮겨놓는다. 한겨레(05. 07. 01)에 '권위에서 비껴난 고전읽기'란 타이틀로 게재됐던 기사이다.   

정진홍 선생은 흰 고무신을 신고 아파트 앞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정년퇴임을 앞두고 집 인근에 작업실 용도로 마련하셨다는 자그마한 아파트는 단정했다. 책과 책상, 손님맞이용 탁자와 의자가 다였다. 대학시절 선생의 연구실로 찾아갔을 때 늦가을 오후의 어둑함 속에 불도 켜지 않고 앉아 계셨던 모습이 아마도 이런 정갈함이었지 싶었다. 강출판사로 복귀해서 대책 없는 암중 상태를 하루하루 꺼가고 있는 게 보기 그랬던지 비평하는 후배가 문예지에서 읽은 정진홍 선생의 글 이야기를 꺼냈던 게 그 얼마 전이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아Q정전> <햄릿> 등등의 고전 문학작품에 대한 에세이라고 했다. 그러려고 그랬겠지만 마침 도서관이 코앞에 있었다. 모처럼의 일다운 일이었다. 그러나 웬걸, 여덟 편의 글을 문예지에서 찾아 복사하는 데는 한나절도 안 걸렸다. 이젠 글을 천천히 읽어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백지상태의 멍함이 그리도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선생의 글은 고전작품에 대한 찬양과 독서의 권면이 아니었다. 젊은 시절 나는 이런 작품들을 힘들여 읽고 그 감동 속에서 인간과 세계에 눈떴다, 당신들도 제대로 된 사람이 되려면 이런 작품들은 반드시 읽어야 된다, 라는 흔한 시나리오의 계몽적인 목소리가 거기에는 없었다. 그것은 차라리 고전이라는 권위의 성채에 대한 회의와 부인의 몸짓에 더 가까운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혼돈 속에서 처음 입을 가르고 나오는 물음들의 산이었다. 카라마조프 이야기만 나오면 왜 다들 알료사고, ‘대심문관편’인가. 내 젊은 날의 상처입고 궁핍한 자존심이 가닿은 대목은 전혀 다른 것이 아니었던가. 처음 읽었을 때 <마담 보바리>의 그통속성이라니. 내게 <모비 딕>을 권했던 선배는 정말 작품을 읽기는 읽었던 것일까. 미친 사람을 마음껏 착취하고 조롱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돈 끼호테>는 달리 무엇이란 말인가. 물론 역설이었다.

선생은 거듭 이들 작품을 읽었고, 그 우연하고 해명하기 어려운 반복의 사건 속에서 각 작품의 고전다움을 자신만의 언어로 새롭게 발견하고 그려내고 있었다. 좌절한 독후감의 흔적들이 한 종교학자의 고백의 언어에 실려 고전의 열린 지평을 향해 거슬러오르는 광경이 거기 펼쳐져 있었다. '필독서’라는 권위의 언명에서 비껴나 고전과 젊은 정신들의 다양한 만남을 자극할 가능성이 그렇게, 거기 함께 있었다.

반년 넘게 일을 놓고 있었던 터라 더더욱 어깨에 힘이 들어갔던가 보다. 여덟 편의 글마다 ‘나를 움직인 대목들’을 넣자고 제안해놓고 보니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진홍 선생은 작품들을 하나하나 다시 읽으면서 인용문을 뽑고 거기에 일일이 코멘트를 붙였다. 두 달 남짓 걸렸고 원고량이 350매 가량 되었다. 물론 별도의 원고료를 드리지는 않았다. 작품마다 관련 사진 자료를 찾고 그걸 편집해 넣느라 없는 손발이 바빴다. 그렇게 찾은 사진 자료가 아까워서 본문은 2도 인쇄를 했다. 제목을 정하느라 선생을 괴롭힌 수차례의 전화는 결국 “알아서 하시라”는 체념 섞인 대답 끝에 지금의 다소 계몽적이고 권위적인 제목이 되고 말았다.

46판 양장본으로 만들어 책에 고전적 품격을 불어넣어보려던 생각은 본문 필름에 표지 디자인까지 다 나온 상태에서 제본비라는 암초를 떠올리는 순간 좌초했다. 그 덕분에 본문용지 95그램, 380쪽의 두툼한 책은 페이퍼백이라는 몸에 꼭 죄는 옷을 얻어 입고 말았다. 마음만 바쁜 시절이었다. 고전을 ‘다르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만나고 질문하는 이 책의 고유한 자리를 편집이나 출간 이후의 과정에서 잘 드러내지 못했다는 자책이 좀체 끝나지 않는 아쉬움으로 남아있다.(정홍수/강출판사 대표)

P.S.2. 이 페이퍼는 이번주에 즐찾 1300명을 넘어선 데 대한 '자축'과 '위로'의 의미로도 작성됐다(오늘로써 1303명이다). 1200명을 넘어선 게 지난 7월 초엽이었던 듯한데, 이런 페이스라면 올 겨울에는 1500명을 돌파할 수도 있겠다(총 방문자는 30만명을 넘어서고). 이 서재의 '변화'를 말해주는 다른 지표가 없으니 내가 참조할 수 있는 건 그런 수치들뿐이다. 그때쯤이면 '고마해라'는 소리들이 터져나오지 않을까? 레종 데트르가 다하면, 박수칠 때 떠나도록 해야지.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우기엔, 날이 너무 궂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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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즐찾의 의미
    from 아프락사스, 자유를 찾아서 2007-09-15 10:58 
      로쟈님의 페이퍼를 읽다가 든 생각. 현재 즐찾이 1300까지 늘어났다시면서 앞으로 몇백이 더 늘어나면 스스로 떠나야하지 않을까 생각하시는 듯 하다. 한쪽으로 쏠리는건 바람직하지 않다시면서 민주주의를 위해 떠나는게 좋을거라고. -_- 해서 로쟈님의 페이퍼에 댓글을 달다가 즐찾이 뭘까에 대해 생각해봤다. (개인적으로 로쟈님이 떠나시는건 원치 않는다. 떠나고 말고야 로쟈님의 선택이지만, 지금 떠나시겠다는 것도 아니지
 
 
하이드 2007-09-15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김갑수의 레종데트르 보관함에 담아두었어요. '오픈북'은 다른 동네 서점에서 하는 서평단에 달라고 졸라 놓은 상태구요. 독서일기 중에는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일기' 같은 책이 제 취향에는 가장 맞더군요. 고전 리뷰 책 중에는 해럴드 블룸 책 정도 읽어봤나봐요. 에피소드 관련 책으로는 앤 패디먼의'서재결혼시키기' 가 제일 좋았구요. ^^

로쟈 2007-09-15 01:45   좋아요 0 | URL
<서재 결혼 시키기>는 손에 안들게 됐는데(제 서재만 문제라서^^;) 좋은 평들을 많이 듣네요...

심술 2007-09-15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돌아오리라라는 말을 들으니 갑자기 맥아더랑 터미네이터 아놀드랑 겹쳐 보이는군요. 이병주 대통령들의 초상은 딱하게도 알라딘엔 없네요.

로쟈 2007-09-15 01:47   좋아요 0 | URL
독서일기만 읽으셔도 충분할 거 같습니다. 이병주의 책은 아마도 도서관이나 헌책방을 둘러봐야 할 것 같고요...

전자인간 2007-09-15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버트 카파의 저 논란스러운 사진이 조작이었다는 게 확실히 밝혀진 것인가요? @.@ '혐의'만 있지, 아직 확실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즐찾 1300 축하드리며, 로쟈님의 레종 데트르가 다하는 날이 오지 않기를 빌어 봅니다.

로쟈 2007-09-15 08:46   좋아요 0 | URL
조작여부가 설인지, 사실인지는 저도 모르겠구요, <가짜사진 트릭사진>의 저자는 그리 알고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레종 데트르가 존재하는 한, 마감도 있는 것이죠.^^; 축하는 감사합니다...

마늘빵 2007-09-15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1500명이 안되게 로쟈님의 서재 방문중단운동이라도 벌여야하는거에요? ㅋㅋ
알라딘에 이렇게 많은 서재지기들이 있는줄 몰랐네요. 1300명씩이나. 헐. 축하해요~!

로쟈 2007-09-15 09:42   좋아요 0 | URL
사실 저명 서재인들이 활동을 끊으면서 그리된 감도 없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도 한쪽으로 쏠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고 쫓겨나기 전에(도편추방법이라고 있잖아요) 제 발로 나가는 게 모양새가 나을 거란 생각은 듭니다...

마늘빵 2007-09-15 09:48   좋아요 0 | URL
글쎄요, 다른 분들이 활동하지 않으시는 것에 대해 즐찾숫자가 많다고 하여 로쟈님이 책임을 떠안는건 아닌거 같습니다. 물론 더 많은 분들이 활동하고, 좋은 글 써줬으면 하는 바람은 저도 언제나 갖고 있고, 예전에 좋은 글 올리셨던 분들이 돌아오셨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그렇다고 현재 있는 분이 다른 분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 떠나는건 아닌거 같아요.

로쟈 2007-09-15 10:14   좋아요 0 | URL
우회적으로 말씀드린 것이기도 한데, '로쟈'라는 이름이 유명세를 탈수록 제가 한편으론 '고립감'과 '배신감'을 느끼거든요(요즘엔 나이도 느껴지고). 독서인들의 자발적인 품앗이를 애초에 기대했던 것인데 이게 별로 매력있거나 보람있는 일로 여겨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하긴 저부터도 정신과에 가보란 얘기를 주변에서 들으니까요)...

마늘빵 2007-09-15 10:57   좋아요 0 | URL
꼭 비틀어 보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죠. 로쟈님의 무료 페이퍼를 아직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지만, 무난히 읽을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보는 편입니다. 저 같은 사람들도 많을테고. 도움받는 사람들은 조용히 있는 반면, 여기에 어떤 악의적인 의도가 있다고 비틀어 보는 사람들은 떠들기 마련이죠. 너무 주변의 소리에 신경쓰지 않으셨으면 해요.

2007-09-15 1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15 1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7-09-15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화- 즐찾1300 대단하세요 ^^

(그럼 로쟈님의 즐찾 1300에 부쳐, 라는 새 페이퍼를 작성해야 하나.. 호홋-)

로쟈 2007-09-15 13:48   좋아요 0 | URL
사실 알라딘에서만 '대단한' 수치죠.^^; 유명 블로그들에 비하면 아직 '동네' 수준이고요...

mong 2007-09-15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픈북...읽고 있는데 추천할 만하더군요
환경에도 불구하고 책을 먹고 자라는 저자의 이야기도 와닿고
희망의 인문학도 떠오르구요
워낙에 글을 잘 쓰는 이라 그렇겠지만

로쟈 2007-09-16 00:48   좋아요 0 | URL
30년째 서평란을 맡고 있을 정도라면 저도 무슨 '비결'이 있을 거라고 봅니다...
 

'로쟈의 페이퍼'란 카테고리를 새로 만든다. '로쟈의 서재'에 달려 있는 페이퍼들이면 다 '로쟈의 페이퍼' 아닌가, 란 반문이 가능하지만, 사실 타이틀은 내가 붙인 것이 아니다. 이번 2학기에 중앙대 대학원신문에 '로쟈의 페이퍼'라는 '신간 소개' 코너를 연재하게 됐다. 기획안 자체가 '최근에 나온 책들'을 컨셉으로 한 것이라고 해서 원고 청탁에 넙죽 응했다. 그리고는 또 마감을 놓치고 있다(물론 다른 일들이 계속 겹치고 있긴 하다).

하룻밤 동안에 원고지 60-70매 정도는 거뜬히 채우곤 하지만 막상 10매짜리 청탁원고를 쓰는 일에는 며칠이 걸리기도 한다. 지젝도 그런 증상을 호소한 적이 있는데, 무얼 메모하는 것과 쓰는 것은 차원이 전혀 다른 것이어서 그에 따른 부담에도 차이가 있는 모양이다(그 차이는 자발적인 글쓰기이냐 아니냐의 차이로도 변주된다). 내가 내린 진단이 그렇다. 하지만 처방은?..

이 페이퍼는 그 10-11매짜리 원고를 쓰기 위한 초고이자 메모이다. 겸사겸사 작년 10월 이후로 중단된 '최근에 나온 책들'을 이어갈까 하다가 컨셉을 약간 바꾸기로 했다. 사실 내가 읽지도 않은(심지어 손에 들어보지도 못한) 책들을 나열하고 '소개'하는 일이 나 자신에겐 그다지 유익해보이지 않았다(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이지만 연재를 중단한 데에는 이런 이유도 거들었다).  

 

해서 비슷한 방식이더라도 조금더 유익한 방향의 책소개가 없을까 궁리하다가 고안해 낸 것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 방식이다(이게 말하자면 '로쟈의 페이퍼'의 부제쯤 된다). 그 시작으로 고른 책이 어제 도서관에 갓 들어온 책을 대출해서 두 번이나 읽은 <교양, 모든 것의 시작>(노마드북스, 2007)이다(구내서점에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었다). 왜 두번이냐고? 책이 얇기도(가볍기도) 했고, 한편으론 어제나 그제 읽은 한 구절의 출처를 찾지 못해서 한번 더 훑어본 것이기도 했다(그래도 못 찾았다. 다른 책인 듯하다. 내가 조금 더 예민한 체질이었다면 노이로제에 걸릴 처지이다. 그 와중에 알라딘은 먹통이 되는군).   

 

 

 

 

책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재일교포 지식인 서경식 교수와 미국 시카고대학의 노마 필드 교수, 그리고 일본의 원로 비평가 카토 슈이치(가토 슈이치) 교수 3인의 공저이다. '공저'라고는 돼 있지만 실제로는 강연록이며 세 사람의 회합을 모의한 사람은 가장 연배가 젊은 서경식 교수이다.

도쿄경제대학에 재직중인 그가 지난 2003년 '교양의 재생을 위하여'란 주제의 특별강연회를 마련하였고 다른 두 사람은 그 자리에 초빙되었던 것. 해서 책은 서교수의 서론('왜, 지금 '교양'인가?')을 제외하면 세 사람의 강연과 서교수가 카토 슈이치와 나눈 대담, 이 네 꼭지로 구성돼 있다. 모두가 "이 위기의 시대가 지금 우리에게 요구하는 '인문교양'이란 과연 무엇일까?"란 질문에 답하고자 하는 시도들이다.

 

 

 

 

세 사람의 사진이 나란히 표지에는 박혀 있는데, '재일조선인의 양심'으로 소개돼 있는 서경식 교수(1951- )는 <나의 서양미술 순례>(창비) 이후로 이미 별다른 소개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국내에 여러 저작이 소개돼 있다(현재는 성공회대에 연구교수로 체류중이며 한겨레의 북리뷰란에 '심야통신'을 오랫동안 연재했었다).

그리고 '수전 손택 여사 이후 미국 최고의 지성'이라고 소개된 노마 필드 교수(1947- )는 현재 시카고대학 동아시아언어문화학과장을 맡고 있다는 일본문학/문화 전문가이다(저서들로 봐서는 '수전 손택'과 나란히 거명되는 게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국내에는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창비, 1995)가 소개돼 있다. 필드 교수는 '전쟁과 교양'이란 주제의 강연을 했는데, 읽다 보니까 내용중에 "이제 곧 지천명이 될 나로서도"(80쪽)란 대목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2003년이면 1947년생인 그녀가 56세 때인데(그러니까 지천명이 한참 지난 뒤인데), 어떻게 '곧 지천명이 될' 수 있는지?

카토 슈이치 교수(1919- )는 그간에 '가토 슈이치'로 이름이 표기돼 왔고, 이번에 찾아보니까 여러 권의 책이 출간돼 있다. 마루야마 마사오와의 대담 <번역과 일본의 근대>(이산, 2000)에서 인터뷰어 역을 맡은 이가 가토 슈이치이고, <일본인이란 무엇인가>(소화, 1997), <일본문화의 숨은 형>(소화, 1995), <일본문학사서설1,2>(시사일본어사, 1995-6) 등도 소개돼 있다. 일본어로는 24권짜리 저작집(전집)이 나와 있다고 하니까 상당한 지명도를 갖고 있는 듯하다...

대략 여기까지 쓰고는 시간관계상 더는 미루지 못하고(<교양, 모든 것의 시작>에 대해서는 따로 리뷰를 쓰든지 할 예정이다) 아래와 같이 초고를 작성했다(분량 때문에 약간의 수정이 가해진 후에 게재될 것이다). '현대의 교양'을 실마리로 한 '최근에 나온 책들' 소개이다(역시나 분량상 '제국'과 '폭력', '욕망'을 주제로 한 책들은 제외됐다).


‘로쟈의 페이퍼’는 최근에 나온 책들에 대한 주관적 눈요기이다. “요새 읽을 만한 책들이 없어.”라는 주관적 푸념을 자주 접하지만, 읽기로 작정하면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 또한 객관적 현실이다. 여럿이 다닐 만한 길이 될는지는 장담하기 어렵지만, 몇 권의 책을 길잡이삼아 그 푸념과 현실 사이에서 나대로의 길을 내보도록 한다. 

시작은 <교양, 모든 것의 시작>(노마드북스)이다. 아마도 ‘교양’이란 타이틀을 내걸고 나온 책들 가운데서는 가장 ‘가벼운’ 책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 위기의 시대가 지금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인문교양’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란 묵직한 질문으로 시작하고 있는 책이다. 서경식, 노마 필드, 카도 슈이치, 3인의 공저인데 원래는 일본학생들을 청중으로 한 강연록이지만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아직도 우리가 벗어나지 못한 ‘야만의 시대’에 과연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한 ‘교양’이란 게 가능한지, 그것은 또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과 맞닥뜨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가 또 해야 하는 일은 책을 읽는 것이다. 일단 서경식의 <나의 서양미술 순례>(창비)와 <청춘의 사신>(창비), <소년의 눈물>(돌베개), <난민과 국민 사이>(돌베개) 같은 책들을 일독해볼 수 있겠다. 재일한국인으로 저자가 감당해야 했던 시대의 초상과 영혼의 편력이 펼쳐진다. 또한 그가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프리모 레비의 삶과 성찰을 따라가 보는 것도 제쳐놓을 수 없겠다. 실제로 마지막 장 ‘현대의 교양이란 무엇인가’에서 서경식 교수가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는 것이 프리모 레비의 경우이다.  

 

 

 

 

 

 

 

 

 

 

이미 서경식의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창비)가 작년에 번역돼 나왔고, 레비의 주요 저작인 <이것이 인간인가>(돌베개)와 <주기율표>(돌베개)도 올해 초에 우리말로 출간되었다.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인용된 일화를 보면, 강제수용소에서 동료 죄수가 레비에게 아무 시라도 좋으니 읽어달라는 부탁을 한다. 책 같은 것이 있을 리 없는 상황에서 이탈리아인 레비가 떠올린 것은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몇몇 구절들이었다.    

 

 

 

 

 

 

 

 

 

 

강제노역에 시달리면서도 레비가 프랑스인 동료에게 애써 번역하여 들려주려던 시구는 이런 것이다. “그대는 자신의 타고난 본성을 생각하라./ 그대들은 짐승처럼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덕과 지혜를 구하기 위하여 태어났도다.” 그리고 이러한 시에 용기를 얻어 그는 ‘지옥’과도 같은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반가운 것은 그 <신곡> 또한 이제는 우리말로 편하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 이탈리아아어 완역본으로 2005년에 출간된 한형곤본(서해문집)에 이어서 최근에 박상진본(민음사), 김운찬본(열린책들)이 더 출간되었다. 프리모 레비가 처했던 상황을 떠올리며 <지옥>편이라도 이 가을에 읽어봄 직하다.  

 


 

 

 

 

 

 

강제수용소 얘기가 나온 김에 제러미 벤담의 ‘감시시설, 특히 감옥에 대한 새로운 원리에 관한 논문’ <파놉티콘>(책세상)도 읽어보도록 하자. 잘 알려진 바대로 이 논문은 원형감옥에 대한 벤담의 ‘혁신적인’ 구상을 담고 있다. 이번에 나온 건 특이하게도 프랑스어판 축약본을 우리말로 옮긴 것인데, 덕분에 분량은 50여 쪽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과 함께 푸코의 <감시와 처벌>(나남)도 읽어줘야 한다면 견적은 좀 달라질 수 있겠다. 거기에 미란 보조비치의 <암흑지점: 초기 근대철학에서의 응시와 신체>(도서출판b)에서 표제가 된 장 ‘암흑지점’도 반드시 참조해야 할 글이다. 보조비치가 영어판 <파놉티콘>을 편집하고 붙인 서론이기도 하다.

 

 

 

 

벤담의 <파놉티콘>을 읽으면서 거꾸로 ‘감옥 없는 세상’을 잠시 꿈꿔봤다면,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김영사)을 읽으면서 ‘종교 없는 세상’을 같이 상상해볼 수 있겠다.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 이상이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라는 제사(題詞)부터가 도전적인 이 책은 종교라는 오랜 터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기를 제안한다. 비록 ‘종교’라는 망상에서 우리가 벗어나는 건 ‘민족’이라는 상상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더 어려울 듯하지만.

 

사실 도킨스보다 한술 더 뜨는 것은 슬라보예 지젝의 <죽은 신을 위하여>(길)이다. 그는 유물론적 신학을 주장함으로써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아예 거꾸로 세운다. 평소에 지적 자극이 모자란다고 푸념하는 이라면 한번 도전해볼 만하다. ‘유물론적 신학’의 원안 제공자인 발터 벤야민의 <베를린의 어린시절>(새물결)과 <일반통행로>(새물결)도 덧붙이자면 최근에 나온 책들이다. 특히 <일방통행로>에는 ‘사유의 유격전을 위한 현대의 교본’이란 문구가 붙어 있다. 바야흐로 가을이고 교양이 목표하는 ‘자유로운 인간’을 위한 유격전을 시작할 때다.

 

07. 08. 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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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7-08-30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고료 두둑하게 받아내서 밥 사세요..
환영할 컨셉입니다.

로쟈 2007-08-30 23:14   좋아요 0 | URL
원고료는 책값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2007-08-31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8-31 14:55   좋아요 0 | URL
아마 청탁이 오면 쓰실 수 있을 겁니다.^^

philocinema 2007-08-31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기율표'와 '암흑지점'은 처음 보는 책들이군요!
시간이 나서, 아니 시간을 내서 읽어보고 싶습니다.
소개 잘 받고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로쟈 2007-08-31 18:49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 참고로 <암흑지점>은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닙니다.^^;

마르 2007-08-31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유로운 책읽기, 자유로운 글쓰기.
정말 부럽습니다.
뭐, 당신도 그러면 되지 않겠느냐 하실 수 있겠지만, 실상 특정 주제에 매에 있으면 그런 자유는 자만이 되기 쉽죠. 어쨌든 좋으시겠습니다.

로쟈 2007-08-31 18:52   좋아요 0 | URL
'자유로운' 책읽기/글쓰기는 제가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럴 만한 형편을 만들기가 늘 어렵습니다.--;

마르 2007-08-31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제가 깜빡했습니다.
연구자에겐 늘 한정된 생활이기 마련이지요.
그래도 부럽습니다. 전 조금씩 달아나고 있는 상황이거든요.

2007-09-01 0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01 0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01 0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람혼 2007-09-01 0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마 필드 교수는 예전에 김윤식 선생의 '문학여행기'들 중 어느 한 권에서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으로 본 기억이 납니다. 아마도 김윤식 선생의 단골 인용 모토인 "아득한 회색... 선연한 녹색..."의 문구를 제목으로 차용했던 책으로 기억하는데요, 이른바 '학술여행'이란 것, 언젠가는 한 번 꼭 집중적으로 해보고 싶은 부러운 일임에는 틀림 없는 것 같습니다.^^

로쟈 2007-09-01 22:33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도 그 책을 갖고 있는지 문득 헷갈립니다.^^;

마늘빵 2007-09-01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중대 대학원 신문까지. 축하드립니다. 모든 글은 이곳에서 다 볼 수 있는거죠? :)
그래도 또 여기서 보는거랑, 지면으로 보는거랑 느낌이 다르긴한데.

로쟈 2007-09-01 22:34   좋아요 0 | URL
네, 대부분은 이곳에서도 읽으실 수 있을 텐데, 10매짜리 글들은 쓰긴 어렵고 생색은 안 나고 그렇네요.^^;
 

지난 월요일 교보에 잠시 들렀다가 발견한 의외의 책은 <테오리아 - 20세기를 대표하는 21권의 책>(개마고원, 2006)이었다. '이론(theory)'이란 말의 그리스 어원인 '테오리아'를 국역본의 제목으로 삼았는데, 독어본의 원제는 '세기의 책'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세기가 지난 세기이므로 '20세기의 책'이라 해야겠고, 그 책들이 모두 분류상 '이론서'들이다. 그러니까 테오리아의 어원적 의미대로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들을 대표하는 책 21권에 대한 평설집이라고 해야겠다. '20세기의 이론서 21권'이라고 제목을 붙인 이유이다.

소개에 따르면 책은 "독일에서 개최된 ‘세기의 책-20세기의 이론들’이라는 기획 강의를 바탕으로 했다. 크게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의 사유전통과 학문분야가 20세기에 거두었거나 적어도 거두려고 애쓴 성과는 무엇인가?”와, “그 학문들은 어떻게 그것들의 시대에 관여했고, 구체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위대한 이론은 무엇인가?”의 두 가지 문제 제기를 통해 산출된 결과물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이론에 그치는 것만이 아니라 21세기에도 지속적인 시사성을 지니게 될 것이라고 판단되어 선정한 프로이트에서 하버마스에 이르기까지 모두 21명의 사상가들과 그들의 책, 이론들을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각각의 독특한 접근방법과 깊이를 가지고 밀도 있게 소개했다."

국내에서도 쏟아지고 있는 고전해제서들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을 텐데, 문제는 그 해제/평설의 수준이겠다. "난해한 이론서들에 좀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해당 이론서들을 직접 읽어보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해줄" 수 있는 수준 말이다. 그리고 물론 그것이 적절하고 정확하게 우리말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조건하에서.

21권의 이론서를 다루고 있는 만큼 600쪽 이상의 분량을 자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겠다. 일단은 관심이 가는 책을 다루는 장들만 골라서 읽으면 되는 것이니까. 그런 시간조차 낼 수 없다면, 20세기를 '이론적으로' 관조하는 일에는 마음을 접고 눈길을 떼는 게 옳다. 그리고는 21세기만을 한눈팔지 않고 질주하는 게. 굿바이!

남은 자들끼리 누리는 호사가적 관심거리는 과연 21권을 고른 주최측의 안목(편견 혹은 혜안)을 음미해보는 것이겠다. 대략 '상식적인' 리스트인지라 모험적이라고 할 만한 책을 그닥 눈에 띄지 않지만 몇 권 정도는 '독일'쪽의 관심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한데, 이 21권 가운데 우리말로 읽을 수 있는 책은 몇 권이나 될까? '아르바이트' 중에 잠시 머리도 식힐 겸 세어보도록 한다.

1.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 레나테 슐레지어 

 

프로이트의 대표적인 저작 <꿈의 해석>은 주지하다시피 여러 종의 국역본이 나와 있다. 비록 번역서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하기에는 좀 찜찜하다는 의견이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생각의나무, 2006)에서 제기된 바 있지만.

2. 후설의 <논리 연구> - 미하엘 아스트로

현상학의 창시자 후설의 저작들이 제법 소개되었고 연구서/논문들도 적지 않게 나와 있지만, 특이하게도 그의 초기 대표작인 <논리연구>는 번역돼 있지 않다. 분량의 방대함이 이유인지 내용의 난해함이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여하튼 '고전'의 네임밸류에 걸맞는 번역본이 조만간 나오기를 기대해본다(여담으로 덧붙이자면, 후설의 책은 왜 <논리적 탐구>가 아니라 <논리연구>인가, 혹은 비트겐슈타인의 책은 왜 <철학연구>가 아니라 <철학적 탐구>일까?).

3.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 - 헤르베르트 야우만 

지난 1995년에 범우사판으로 나와 있는 <서구의 몰락>이 유일한 완역본이 아닌가 한다. 대학원 시절에 필요 때문에 1권만 사서 부분적으로 읽은 기억이 있다. 나름대로 '세기의 책'에 꼽힐 만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책이지만, 프랑스에서 21권을 꼽았다면 들어갈 수 있었을까? 

4.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 - 한스 위르겐 헤링어 

 

올해 책세상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새로운 전집이 나오고 있고, <논리철학논고>는 그 전집의 첫권이었다. 두툼한 <철학적 탐구>보다 얇은 <논고>가 선정된 건 그래도 다행스러운 일 아닐까? <탐구>를 읽어야 한다는 부담을 약간은 덜어주니까 말이다. <논고>만을 집중적으로 다룬 해설서로는 박영식 교수의 <비트겐슈타인 연구>(현암사, 1998)가 있다.

5. 베버의 <경제와 사회> - 볼프강 슐룩흐터

국역본은 <경제와 사회 1>(문학과지성사, 2003)로 출간되었다(*이후에 나남에서도 나왔다). 소장도서가 아니어서 당장에 확인할 수는 없지만 완역본은 아니고 더 출간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한다. 국역본의 이미지가 뜨지 않아 대신에 영역본의 것을 옮겨놓는다.

6.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 위르겐 미텔슈트라스 

두말할 것도 없는 책. 5권의 파이날(결선)을 꼽더라도 당연히 들어가야 할 책이다. 국역본으로는 이기상(까치글방, 1998), 소광희(경문사, 1995) 두 분의 번역본과 해설서를 각각 참조할 수 있다.  

7.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 - 헬무트 레텐

독일의 정치학자 칼 슈미트의 저작들은 비교적 많이 소개돼 있는 편이고 거기엔 물론 <정치적인 것의 개념>(법문사, 1992)도 포함된다. 하지만 당장 서점에서 구해볼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이다. 짐작에 21권의 책들 가운데 가장 얇은 책이지 않을까 싶다. <논리철학논고>보다는 얇은 듯하니까. 이미지는 역시나 영역본의 것을 옮겨놓는다. 슈미트에 대한 현대적 해석은 샹탈 무페의 책들을 참조할 수 있다.

8. 겔렌의 <인간> - 카를-지크베르트 레베르크

  

아르놀트 겔렌은 '철학적 인간학'의 대표적인 철학자 중 한 사람이다. 보다 잘 알려진 철학적 인간학자로는 막스 셸러가 있지만(국내에도 더 많이 소개돼 있다), 독일에서는 겔렌의 <인간>이 대표적인 저작으로 꼽히는 모양이다. 겔렌이 책으론 <인간학적 탐구>(이문출판사, 1998)이 유일하게 번역돼 있는 책이지만, <인간>은 그보다 좀더 두툼한 책이다.  

9.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 - 페터 뷔르거 

사르트르에 대해서는 굳이 군말을 덧붙일 필요가 없고(<존재와 무>도 새 번역본이 나올 수 있을까?), 다만 해설을 쓴 '페터 뷔르거'란 이름이 반갑다. <해설자들 가운데 내가 아는 두엇 중의 한명이기 때문이다. 아방가르드론으로 유명한 문예이론가 뷔르거의 책은 <전위예술의 새로운 이해>(심설당, 1986)를 필두로 하여 현재 네 권 가량이 번역/소개돼 있다.

10.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 - 게르하르트 쉬베펜호이저 

이 또한 두말하면 잔소리인 책이겠다. 또한 <계몽의 변증법>이 확실한 고전인 것은 완독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데에서도 알 수 있다. 어쨌든 국역본의 역자가 전면 개정판을 내야했을 만큼 '난해한' 책이기도 해서 적절한 안내서의 도움을 받는 게 좋겠다(영역본의 경우도 몇년 전 전면개역판이 나왔다). 아도르노를 술술 읽는 사람들이 나는 부럽고 미심쩍다.

11. 보부아르의 <제2의 성> - 크리스타 뷔르거 

사르트르 커플의 책들이 나란히 선정된 것도 눈길을 끈다. 이젠 여성학의 '고전'이라고 해야할 책(크리스타 뷔르거는 혹 페터 뷔르거의 부인일까?). 보부아르와 관한 특이사항이 그녀가 국내에서는 철학자로서는 거의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는 점. 주로 출간되는 건 '사랑밖엔 난 몰라' 수준의 보부아르이다(그런 그녀가 여성학의 대모이다!).

12. 바흐친의 '변증법적 사유와 수사학' - 레나테 라흐만 

 

특이한 일이지만 21권의 책이라고 해놓고 유일하게 구체적인 대표작이 명시돼 있지 않은 사상가가 바흐친이다. 일단은 국역본 <말의 미학>(길, 2006)을 대표작으로 꼽아둔다. 그리고 걸출한 연구서 <바흐친의 산문학>(책세상, 2006)은 나의 추천서이다. 해설자인 레나테 라흐만은 독일에서 활동하는 저명한 러시아문학 연구자이자 바흐친 학자이다. 역시나 아는 이름이어서 반갑다.

13. 레비스트로스의 <친족의 기본 구조> - 발터 에어하르트 

 

물론 <친족의 기본구조>는 국역본이 나와 있지 않다. 레비스트로스의 박사학위논문인데, <구조주의 인류학>이나 <신화학>보다 중요한 업적으로 간주하는 데에는 이 책이 구조주의 인류학뿐만 아니라 구조주의의 프로그램 자체를 가장 잘 보여준다는 판단이 전제돼 있지 않나 싶다. 회고 대담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에서 뒷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고, 책의 보다 구체적인 내용 해설은 김형효 교수의 <구조주의의 사유체계와 사상>을 참조할 수 있다.

14. 루카치의 <이성의 파괴> - 라이너 로젠베르크 

흔히 루카치의 범작으로 평가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세기의 책'으로 꼽혀 있어서 놀랐다. 미완의 번역본까지 치면 세 종류의 국역본이 나와 있기도 한 책. 데카당스(반합리주의) 철학 비판서 정도로 나는 알고 있다. 보통 루카치의 주저로는 <역사와 계급의식>을 꼽는 게 일반적인데, 해설을 읽어보고 소장여부를 판단해봐야겠다.

15. 가다머의 <진리와 방법> - 기젤라 페벨

두말하면 잔소리인 책. 하지만, 국역본은 분량상 아직 1/3밖에 나오지 않은 책. 그 사이에 영역본은 개정본이 나왔다. <논리연구>가 한국현상학회의 아킬레스건이라면 <진리와 방법>은 한국해석학회의 '굴욕'이라 할 만하다. 고전 번역에 단합해야 하실 분들이 담합하고 계신 건 아니신지?

16.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 프란츠 폰 쿠체라 

 

<과학혁명의 구조>는 국내에 2종의 번역이 있다. 까치글방본(동아출판사본)과 이화여대출판부본이 그것인데, 교수신문의 번역비평에 따르면 일장일단이 있지만 원저 자체의 난해함을 해소시켜주지는 못한다고. 학부 2학년 때 읽으면서 고전했던 기억이 새롭다(반면에 해설서들은 얼마나 단순명쾌한 것인지!).  

17. 푸코의 <말과 사물> - 우르줄라 링크-헤르

바케트빵처럼 팔려나갔다는 푸코의 이 주저 <말과 사물>(민음사, 1986)이 국내에선 절판중이다. 새 번역본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지만 '언제'라는 건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우리의 빵집들이 고급 바케트를 내놓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리기도 하고(제빵공은 있나?). 이미지로 대신 올려놓은 것은 개리 거팅의 <미셸 푸꼬의 과학적 이성의 고고학>(백의, 1999)이다. <광기의 역사>부터 <지식의 고고학>까지의 자세한 해설을 담고 있는 책이다.

18.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 - 베르너 슈테크마이어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도 절판된 민음사판까지 포함하면 2종의 번역이 나와 있다. 초기 데리다의 간판격이 책이지만 역시나 읽은 사람 몇 되지 않는다(나도 완독하지는 못했다). 개인적으로 국역본들 외에 영어, 불어, 러시아어본까지 갖고 있어서 언젠가는 마스터해줄 책으로 꼽고는 있다. 조만간 해설서들도 나올 듯하고. 현재까지는 마이클 페인의 <읽기 이론/ 이론 읽기>(한신문화사, 1999)의 해설이 요긴하다.

19. 부르디외의 <실천이론 연구> - 에곤 프레이크  

부르디외의 가장 유명한 저작은 물론 <구별짓기>이지만, '이론서'로 꼽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었나 보다. 한데, <실천이론 연구>가 정확히 어느 책을 가리키는지 모르겠다. <실천이성>도 국역본이 나와 있지만 짐작엔 가리키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영역본의 제목이 그렇고, 불어본의 제목은 <실천의 의미> 정도이다. 러시아어본도 출간돼 있는 책.

20. 하버마스의 <소통행위이론> - 콘라트 오트 

 

올해 가장 번듯한 번역본이 나온 책. 역시나 두말할 필요가 없겠다.

21. 루만의 <사회의 사회> - 위르겐 포르만 

 

하버마스와 함께 독일 사회학을 양분하고 있는 니클라스 루만의 책들은 국내에 좀 얄팍한 책들만 세권쯤 출간돼 있다. 거기에 입문서 한두 권. 그의 방대한 저작 <사회체계>가 구내에 번역/소개되기를 기대한다, 고 적었는데 번역돼 나왔다. <사회의 사회>가 그 사회체계론의 일부인지 독립된 저작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해서 결론적으로 21권의 책들 가운데 5-6권 정도가 아직 번역되지 않은 듯하다. 양호한 편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저작들의 지명도를 생각하면 3-4권은 더 번역돼 있어야 했다. 21권의 책들 가운데 독어권의 책이 13권이니까 과반수가 넘는다. 불어 6권, 영어 1권, 러시아어 1권 순이다. 한편, 우리가 자랑할 만한 '세기의 책'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06. 1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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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10-20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역시 독일스러운 면이 있네요 ㅎㅎ 독일철학전공자들의 당당함도 못 본지 꽤 됬네요. :)

로쟈 2006-10-21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스트만 보면 독일철학이 압도한 것처럼 보이는데, 이 역시 시차겠지요...

코르타사르 2006-10-21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갈게용-

파뉘르주 2009-03-07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락해주실 줄 믿고 퍼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