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를 앞두고 있어서 마음이 조금은 들떠 있지만, 실상 추석은 일년 동안 농사일로 고생한 농부들의 명절이어야 옳다. 내가 이 '가을저녁'을 위해서 무엇을 했을까 돌이켜보면, 아직 갈길이 멀고 '겨울저녁'이라도 챙길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정산은 세밑에 가서 해봐야겠다). 연휴에 써야 할 원고를 때문에, 도서관에 들러 필요한 책 몇 권을 대출하고 자료도 몇 점 복사했다. 그러고 보면 들떠 있을 경황이 전혀 아니다. 명절이긴 하지만 '휴일'과는 거리가 먼 것이니. 다만 나대로의 명절 기분은 몇 권의 책 구경을 하는 것으로 끝내고자 한다.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고르는 일이다. 사실 엊저녁에 해놓았으면 편했을 텐데 인터넷접속이 먹통이 되는 바람에 실행하질 못했다. 멀쩡한 상태에서 접속불량이다가 지금에서야 다시금 연결이 되는 이유는 따로 알지 못한다. 그러려니 하는 수밖에...  

1. 문학 

신경숙 작가가 고른 문학분야의 책은 정찬의 소설집 <두 생애>(문학과지성사, 2009)이다. 7편의 단편이 수록돼 있는데, "이 소설들을 뚫고 지나가는 주제는 인간에게 주어진 고통과 폭력에 대한 성찰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 정찬에게 있어서 이 주제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는 오랫동안 성실하고 꼼꼼하게 이 묵직한 문학적 주제로부터 떠나지 않았던 귀한 작가이다."라고 소개된다. 나는 <그림자 영혼>(세계사, 2000)과 그 이후의 단편 몇 편을 읽은 듯싶다. 안 그래도 '폭력'을 주제로 한 책을 한 권 구상중이던 차여서 이 새 소설집에도 눈길이 간다. 작가의 전작으론 <베니스에서 죽다>(문학과지성사, 2003)과 <희고 둥근 달>(현대문학사, 2006)이다. 3년 터울로 작품집을 내는 꾸준함도 높이 살 만하다.   

2. 역사 

이덕일 소장이 고른 역사분야의 책은 김효순의 <나는 일본인, 인민군, 국군이었다>(서해문집, 2009) 이다. 부제는 '시베리아 억류자, 일제와 분단과 냉전에 짓밟힌 사람들'. 제목에서 이미 '파란만장'한 삶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데, 일제에 징용돼 끌려갔다가 소련의 포로가 되고, 다시 귀환하여 인민군이 되고 국군이 되어야 했던 이들의 삶을 추적한 책. 언론에서 리뷰기사를 읽었을 때 조정래의 소설 <오 하느님>(문학동네, 2007)을 자연스레 상기하게 해주었다. 말이 나온 김에 조정래 선생의 자서전 <황홀한 글감옥>(시사IN북, 2009)도 파란만장에 있어서는 뒤처지지 않을 듯싶다. 그런 굴곡진 삶과 우리의 현대사를 평생 기록해온 작가의 글 역시 '파란만장한' 황홀이 아닐까?   

3. 철학 

김상환 교수가 추천한 철학분야의 책은 황광우의 <인류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생각들>(비아북, 2009). 추천자의 평은 이렇다. "이 책의 장점은 첫째, 고전에 직접적으로 접근할 것을 강력하게 권유하는 입문서다. 둘째, 내용이 알기 쉽게 잘 정리되어 있다. 셋째, 시대적 배경에 대한 적절한 언급이 되어 있다. 넷째, 동서양의 대비가 한 눈에 들어오도록 쓰여졌다. 마지막으로 옥의 티라면, 저자가 자신의 좌편향적인 이념의 경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념에 대한 중립적 입문서이기를 포기한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책속에서 선언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저자의 지적 양심의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좌편향적인 이념의 경도"라고 했지만 내가 서점에서 잠깐 들춰본 대목에선 러시아 혁명과 그 이후의 역사에 대해서 신랄하지만 온건하고 상식적인 비판을 가하고 있었다. '경도'가 무얼 뜻하는지는 찬찬히 읽어봐야 알 것 같다. 아울러 저자의 자전적인 기록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있거라>(창비, 2007)도 바로 읽어봐야겠다. 안 그래도 요즘 필요 때문에 동시대인들의 자서전/평전들을 주목하고 있던 참이다. 참고로, 저자는 "인천지역노동자연맹 교육부장으로 활동하고, 군부독재 시절 '정인'이라는 필명으로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 <들어라 역사의 아침을> 등을 출간했던 황광우 씨가 군사독재정권과 숨가쁘게 대결하던 격변기에, 학교와 감옥, 거리 등에서 민주화를 위해 보낸" 바 있다.  

덧붙여, 나대로 이달에 꼭 읽을 책은 지젝의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그린비, 2009). 서평까지 쓸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4. 정치/사회 

이달부터는 정치사회분야가 통합됐다. 강정인 교수가 추천한 책은 주성수의 <직접 민주주의>(아르케, 2009). 학술적인 성격이 강한 책인데, 소개에 따르면 "저자는 오늘날의 민주주의를 대의민주제와 직접민주제가 혼합된 ‘하이브리드(hybrid)’ 형태로 규정한 후, 위기에 처한 오늘날의 대의민주주의가 ‘아래로부터의’(또는 ‘풀뿌리로부터의’) 직접 민주주의에 의해 개혁․보완되지 않으면 ‘위기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진단한다." 현단계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을 담은 책으로 김영수의 <민주주의를 혁명하라!>(메이데이, 2009)와 김상준의 <미지의 민주주의>(아카넷, 2009)도 같이 읽어보면 좋을 듯싶다.  

5. 경제/경영 

이준구 교수가 추천한 경제경영서는 물에 대한 책이다. 에릭 오르세나의 <물의 미래>(김영사 2009). 경제학 책 가운데 석유에 대한 것은 자주 봤지만, 웬 물인가? 한데, 물 문제도 심각하다고 한다. "물은 모든 생명의 원천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렇게 귀중한 자원을 아껴 쓰려 하지 않는다. 너무나 흔하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세계 여러 나라의 예를 보여주면서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착각인지 일깨워 준다. 오스트레일리아로부터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물의 위기는 전 지구적 차원으로 확산되어 가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우리가 그 동안 물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해 왔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또한 물에 대한 무지가 얼마나 심각한 것이었는지도 함께 깨닫게 된다."는 것이 추천의 변이다.  

사실 '에릭 오르세나'는 소설가의 이름으로 더 낯익은데, 알고 보니 다양한 활동경력을 지닌 지식인이다. "1981년 국제협력부의 고문으로 사회당 정부와 인연을 맺은 뒤 미테랑 대통령의 문화 보좌관 겸 연설문 초안 대필자, 최고행정재판소 심의관, 국립 고등조경학교 학장, 국제해양센터 원장 등 주요 공직을 두루 거쳤다. 그가 발표한 다수의 소설과 에세이들은 이러한 공직을 수행하는 동안 집필되었다. 1998년에는 프랑스 학술원의 회원으로 지명되었다."고 하니 말이다. 그의 다른 책으론 "목화의 주요 생산.유통지인 다섯 대륙 여섯 국가 탐방을 통해 자본주의 세계화를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코튼로드>(황금가지, 2007)와 함께 <문법은 아름다운 노래>(미디어2.0, 2006)라는 소설도 있다. 전형적인 프랑스 지식인-작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6. 과학 

최영주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가 추천한 과학책은 가스가 마사히토의 <100년의 난제, 푸앵카레 추측은 어떻게 풀렸을까?>(살림Math, 2009)이다. 책은 본래 일본 NHK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로 저자 가스가 마사히토는 이 작품의 프로듀서를 맡았다고 한다. 알다시피 푸앵카레의 난제를 푼 사람은 러시아의 수학자 페렐만이었다. 소개에 따르면, 책은 "푸앵카레 추측 해결의 궤적을 찾아 푸앵카레의 고향인 프랑스 낭시와 페렐만 박사가 은둔하고 있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교와 UC버클리 등을 일주하며 푸앵카레 추측이라는 괴물에 도전한 수학자들의 순수한 열정과 고통이 만들어 낸 장대한 드라마를 추적하였다" 한다. 한편, 살림Math는 이름이 말해주듯 수학서 전문 출판사인데, 가장 최근에는 <에바리스트 갈루아, 한 수학 천재를 위한 레퀴엠>(사림Math, 2009)도 펴냈다. '대칭'의 의미와 함께 갈루아의 삶을 엮어넣었다고 한다.   

7. 예술 

김춘미 교수가 추천한 예술분야의 책은 나도 며칠 전에 구입한 안애경의 <핀란드 디자인 산책>(나무수, 2009)이다. 추천의 변을 보니 "언제부터인가 핀란드가 디자인의 메카가 되어가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일찍이 추구해왔던 자연친화적 사고가 그 어느 때보다 인류에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서울시도 핀란드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고. 이미 교육쪽으로는 핀란드식 모델이 적극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한겨레21에서도 특집으로 다룬 바 있고. <핀란드 공부법>(문학동네, 2009)에 대한 반응도 좋은 편이다. 이런 서울시 말고 교육정책 담당자들이 좀 챙겨봐야 할 책들인데...   

8. 교양

이한우 기자가 추천한 교양서는 이재호, 김원중 두 영문학자의 <서양문화 지식사전>(현암사, 2009)이다. 작고한 이재호 교수는 '문화의 오역'을 많이 지적하고 이를 바로 잡으려 애썼던 분인데, 이번 책도 그 연장선상에 놓이는 듯싶다. 가령, "‘Zeus's Brother’를 제우스의 동생이라고 번역한 책들이 많은데 제우스의 형이라고 번역해야 한다. 제우스는 막내이기 때문이다. 즉 개념이나 관용구의 맥락을 풀이해냄으로써 그 정확한 의미를 읽어내는데 두 저자의 작업은 크게 기여했다." 그런 기여에 있어서 고전 전문 번역가 천병희 교수의 업적도 간과할 수 없는데, 과거 <신통기>라고 번역되던 책을 <신들의 계보>(도서출판숲, 2009)로 새롭게 펴냈다. 제우스 집안을 비롯한 신들의 족보는 이제 확실히 챙겨두게 됐다.    

9. 실용 

이달부터는 실용서가 새 카테고리로 추가됐는데, 손수호 국민일보 논설위원이 추천한 책은 자폐증 아이를 둔 가족의 실상을 증언하는 다큐멘터리, <혼자 있는 아이>(홍익출판사, 2009)이다. 덕분에 자폐아에 관한 책을 찾아보니 임상관련 쪽과 사례담 쪽 책들이 눈에 띈다. <자폐아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들녘, 2004)는 '아시아 태평양 장애인경기대회'에서 두 개의 금메달을 획득한 수영선수 진호 군의 어머니가 쓴 책이고,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10>(자음과모음, 2007)은 "자폐아 자녀를 키우고 있는 부모들과 교사, 의사, 재활센터 직원들을 작가가 직접 만나 취재한 것을 토대로 재구성한 만화". 더 자세하게 다루고 있는 책도 나와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10. 편집자

'나대로 고르는 책'은 편집자들을 위한 책을 골랐다. 최근에 트렌드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관련서들이 나오고 있는데, 교과서적인 책은 김학원의 <편집자란 무잇인가>(휴머니스트, 2009)이고, 주간지 편집의 달인이라 할 만한 고경태 씨네21 편집장의 <유혹하는 에디터>(한겨레출판, 2009)도 '색깔 있는 편집 노하우'를 전수하고자 한다. <출판편집자가 말하는 편집자>(부키, 2009)는 현장 편집자들의 실전 체험담을 담고 있다. 사실 편집자를 위한 책들을 일반 독자가 읽어야 할 이유는 드물 것이다. 한데, 내가 놀란 건 국내에 편집자가 10만 명이나 된다는 사실. 인문서 독자의 상당수도 이들 편집자들이라고 하니, 말하자면 편집자는 책의 생산자이면서 주요 소비자이다. 하니, 일반 독자들이 분발해야 할 일일 뿐더러, 저자들도 편집자들의 맘에 들도록 애쓸 이유가 충분하다...  

09. 10. 01.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은 표트르 크로포트킨의 <아나키즘>(개신, 2009)이다. 이 걸출한 러시아 아나키스트를 통해서 '원조' 아나키즘 사상이란 어떤 것인지 음미해보면 좋겠다. 다시 나온 자서전 <한 혁명가의 회상>(우물이있는집, 2009)도 곁들이면 좋겠고, 아나키즘에  대한 개관으로는 하승우의 <아나키즘>(책세상, 2008)을 참조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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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때리다 2009-10-01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상환 교수의 정치적 입장은 어떻게 될까요. 한국 프랑스 철학에서는 권위자라 할 분인데.

로쟈 2009-10-01 19:43   좋아요 0 | URL
저는 한국사회에서 정치적 입장은 그냥 사회경제적 위치/지위라고 생각합니다. '말'로서의 정치적 입장은 장식인 경우가 많고 신뢰하기가 어렵습니다...

펠릭스 2009-10-01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밑에는 한 철학자가 있고, 내 머리위에 책을 미행(尾行)합니다.

로쟈 2009-10-01 19:44   좋아요 0 | URL
사르트르 말씀인가요?^^

펠릭스 2009-10-02 10:20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책들을 미행한 기분입니다.
- '희고 둥근 달 : 스피드한 단문의 흡입
- '오, 하느님 : 다큐적인 회상
-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 : 위대한 실패에 대한 재고찰
- '미지의 민주주의 : 신자유주의의 대안
- '물의 미래 : '공기의 미래'에 대해서도
- '푸앵카레의 추측 : 수학자에 대한 궁금증
- '필란드 디자인 : 핀란드인의 일상 속 디자인
- '신들의 계보 : 비유와 상상력으로 우주 생성의 원리
- '혼자 있는 아이 : 집안에 돌연 비극적인 일(자폐아)
- '유혹하는 에디터 : 매체를 편집한 실무 경험
- '아나키즘 : 권위와 규제에 반대하는 아나키즘

로쟈 2009-10-01 23:28   좋아요 0 | URL
벌써 다 정리하셨네요.^^

philocinema 2009-10-03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나키즘' 관련서들이 가장 눈에 띄는군요.

로쟈 2009-10-03 10:27   좋아요 0 | URL
페이퍼를 쓴 한 가지 목적이죠.^^
 

예상대로 엊그제 내린 비가 가을을 재촉하는 비였던 듯하다. 밤에는 서늘한 기운이 완연하여 여름 내내 열어놓았던 창문을 닫았다. 환절기, 한동안 감기와 신종플루, 그리고 알레르기에 주의해야겠다. 그리곤 또 곧 겨울이 되겠군. 하지만 눈이 내리기 전에 해야 할 일, 겪어야 할 일들을 생각하니 만만치 않다. 파스테르나크의 말대로, 산다는 건 들판을 가로지르는 게 아니다. 밤에 느끼는 계절은 이미 가을인지라 9월의 읽을 만한 책을 미리 골라놓는다. 생각이 나서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사이트에 들어가봤더니 이미 선정해놓았다.  

1. 문학  

신경숙 작가가 고른 문학분야의 책은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예담, 2009). "외모지상주의로 치닫고 있는 이 시대에 던지는 화두 같기도 한 이 소설은 80년대를 배경으로 박민규식 입담이 어느 장을 보나 질펀하게 펼쳐진다.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만난 세 청춘들이 겪는 연애와 성장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는 이 소설은 자본주의가 인간관계를 어떻게 이끌어 가는가 하는 관찰이 곳곳에서 성찰된다. 사랑은 상상력이라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하나의 결말이 아니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결말로 치달을 때까지 작가 박민규가 펼쳐놓은 입담은 놀랍다."는 게 작가의 평이다. 하지만, '놀라움'까지 가기 전에 내가 먼저 느낀 건 유치함인데(나는 그가 맘먹고 유치한 걸 쓰려고 한 게 아닌가 싶다), 중간중간의 분홍색, 파란색 글씨들은 뭔가?(삶이란 뭘까요?). 내 취향은 아니라고 할 밖에(나는 '감상적인' 소설들을 별로 좋아히지 않는다. 신경숙의 <깊은 슬픔> 같은 소설을 재미있게 읽지 못한다. 내 탓인가?).     

9월에 읽을 만한 문학작품에 당연히 하루키의 신작 <1Q84>(문학동네, 2009)를 꼽을 수 있겠지만, 이건 굳이 소개가 필요하지 않으므로 나는 인도 작가 줌파 라이히의 신작에나 눈길을 주기로 한다. <그저 좋은 사람>(마음산책, 2009)이란 작품집이 나왔는데, 표제작 "'그저 좋은 사람'은 줌파 라히리 특유의 재능이 넘치는 작품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정교한 문장과 감정에 대한 풍부한 통찰, 섬세한 묘사가 돋보인다."는 평이다. 퓰리처상 수상작인 <축복받은 집>(동아일보사, 2001/2006) 이후에 <이름 뒤에 숨은 사랑>(마음산책, 2004)이 소개됐었고, <그저 좋은 사람>은 세번째로 소개되는 작품이다.   

2. 역사 

이덕일 소장이 고른 책은 호사카 유지의 <우리 역사 독도>(책문, 2009)이다. 생소한 책인데, 소개에 따르면 "한국은 그간 ‘독도는 우리 것’이라는 주장만 반복했지 미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 사람들이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인식하게 할 이론 개발과 홍보가 미흡했다. 독도영유권에 관한 한국의 주장을 질적으로 몇 단계 끌어올린 『우리 역사 독도』는 저자가 기획하는 일련의 독도 관련 저술의 첫 번째 책이다."그런데, 저자가 일본인? 일본인으로 태어나 한국 체류 15년만에 한국인으로 귀화했다고 하니까 일본인명의 한국인이다. 그러고 보니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김영사, 2007)의 저자인 만큼 구면이다. <일본 古지도에도 독도 없다>(자음과모음, 2005)란 책도 진작에 써두었군. 한일 문화와 역사에 정통한 듯싶은데, 한국인으로 귀화한 이유가 궁금해진다.   

3. 철학 

김상환 교수가 고른 철학분야의 책은 반갑게도 안면이 있는 책이다. 미하일 리클린의 <해체와 파괴>(그린비, 2009). 추천사를 조금 소개하면 이렇다.  

"철학자들과 나눈 11편의 대담을 묶은 책이다. 데리다, 가타리, 로티, 보드리야르, 비릴리오, 지젝 등과 같이 현대 사상사의 지형도를 크게 바꾸어놓은 유명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대담자는 러시아의 해체주의자 미하일 리클린. 저자는 현대 철학사의 가장 큰 봉우리를 데리다의 해체론적 패러다임과 들뢰즈의 분열분석으로 간주한다. 책 제목 ‘해체와 파괴’는 그 두 봉우리에 대한 이름이다.(...) 리클린의 대담집을 읽으면 망각의 늪 속에 빠져있던 이 자명한 사실이 다시 번쩍 떠오른다. 공산혁명과 소비에트, 스탈린과 전체주의를 경험한 러시아의 특수한 역사적 문맥 속에서 서양 첨단 철학의 보편성과 한계를 묻고자 하는 저자의 태도 때문이다. 사소한 대화부터 도발적인 질문까지 여러 수준의 공방이 오고가면서 구수한 커피 향을 빚어내는 대담집이다."   

곁들여서, 대담의 파트너들이기도 한 지젝의 <전체주의가 어쨌다구?>(새물결, 2008)와 수잔 벅 모스의 <꿈의 세계와 파국>(경상대출판부, 2008)도 같이 읽으면 좋겠다. 모두 '러시아의 특수한 역사적 문맥'을 이해하는 데 참조가 될 만한 책들이다. 특히 <꿈의 세계와 파국>은 리클린과의 대담에서 직접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이다.    

4. 정치 

손호철 교수가 추천한 정치분야의 책은 개념사 시리즈의 하나로 나온 김윤철의 <정당>(책세상, 2009)이다. 분량이 얇고 평이하는 점이 이 시리즈가 자주 추천 목록에 오르는 이유인 듯싶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추천사에 따르면, "현대정치와 민주주의는 결국 정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으며 정당이 없는 현대정치와 민주주의는 생각할 수 없다. 정당정치를 가까이서 직접 목격하며 정당정치를 연구해온 한 소장 정치학자가 쓴 이 책은 이 같은 현실과 관련해, 정당에 대해 일반국민들이 알아야 할 상식들을 알기 쉽게 풀어쓴 국민교양서이다."  

'국민교양'에서 조금더 나가면 정당론의 고전으로 꼽힌다는 샤츠슈나이더의 <절반의 인민주권>(후마니타스, 2008)과 누구보나도 '제도화된 민주주의'로서 정당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최장집 교수의 강연집 <민중에서 시민으로>(돌베개, 2009)도 덤으로 읽어볼 수 있겠다.   

5. 경제/경영 

이준구 교수가 꼽은 경제/경영서는 김진애의 <도시 읽는 CEO>(21세기북스, 2009). 책에 대한 평이 후하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도시들은 모두 저마다의 특성을 갖고 있다. 그 특성은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취향, 열망, 가치관, 그리고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도시의 구석구석에 배어 있는 삶의 냄새를 찾아다니는 것은 특별한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이 점에서 볼 때 유서 깊은 건축물이나 거대한 빌딩보다 허름한 뒷골목이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특별히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세계의 유명 도시들을 모두 돌아볼 기회가 없다. 일생 동안 자기 나라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책을 통한 간접 경험이라도 반가울 수밖에 없다. 특히 뛰어난 안목의 전문가가 공들여 쓴 책이라면 더욱 좋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제목에서 얼핏 추측해볼 수 있는데, 책은 CEO 시리즈의 하나로 <사진 읽는 CEO>, <그림 읽는 CEO> 같은 책들이 후속작이다.  

짐작에 'CEO'란 말은 지난 10년간 최고 히트 유행어의 하나일 것이다. CEO에 대한 선망과 숭배는 지난 10년간 한국사회의 변화를 압축적으로 말해준다. '기업지배사회'는 'CEO 지배사회'이기도 하다.     

6. 사회 

김문조 교수가 고른 사회분야의 책은 브뤼노 라투르의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갈무리, 2009). "미셸 세르의 사상적 영향 하에 인류학자로 학계에 입문한 라투르는 후기 저작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에서 지난 수세기 간 “근대”의 이름으로 인류사회에 풍미해 온 지적 편견을 독창적 시각으로 재조명한다. 주체와 객체의 관계성에 천착해 온 근대적 세계관은 자연과 인간의 이분법에 기초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하이브리드의 증식으로 이원론적 해석이 타당성을 상실하게 되면서, 양자를 통합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비(非)근대적 접근”으로 종전의 근대성이 이루지 못한 근대적 기획을 완결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지론이다."   

개인적으론 이미 서평을 쓴 책이므로 앞으로 더 소개됐으면 싶은 책의 이미지만 더 나열해둔다. 미셸 세르와의 대담집 <해명>(솔출판사, 1994)도 다시 나오면 좋겠다.  

7. 과학 

장경애 편집위원이 고른 과학분야의 책은 아닐리르 세르칸의 <우주 엘리베이터>(월북, 2009). 저자가 생소한데, 터키의 우주비행사 후보라고 한다. 소개를 보니, "저자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지구와 정지궤도를 잇는 우주엘리베이터를 개발하려고 할 때 시작점까지 셔틀을 쏘아 올려 승무원이 승객들을 우주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는 곳까지 데려다 주는 구조를 제안했다. 하지만 우주 엘리베이터는 그의 호기심을 보여주는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이 책에서는 건축과 물리를 공부한 저자가 남들과 다른 생각을 즐겨온 여행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장르로는 아이디어 모험담이 아닐까 싶다. 전작이 <좌절하지 않고 타임머신을 만드는 법>(월북, 2009)인 것을 보아도 그렇다. '15세 과학소년들의 시간 여행 분투기'라 한다. 찾아보니 조지 웰즈의 <타임머신>(엔북, 2009)이 나온 게 1895년이다. '영화'와 같은 나이라는 게 흥미롭군...   

8. 예술 

김춘미 교수가 추천한 예술분야의 책은 공주형의 <착한 그림, 선한 화가 박수근>(예경, 2009)이다. "필자 공주형은 박수근의 정직하고 착한 청혼 편지에 끌려 박수근 연구로 박사까지 받게 된 사람이다. 그림과 그림 사이 당대의 역사와 사회상이 펼쳐지고 그 안에 있는 박수근을 잘 보여주는 그의 글은 박수근의 그림을 닮았다."고 소개한다. 분량으로 보아 자세한 설명을 붙이고 있는 듯싶진 않다. '박수근 연구'의 현단계가 어떤 것인지 구경해볼 수는 있겠다.   

9. 교양 

이한우 기자가 추천한 교양분야의 책은 허문명의 <나는 여자다, 나는 역사다>(푸르메, 2009).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대로 여성 평전이다. "이 책에 언급된 12명 여성의 공통점은 스스로 여성임을 한계로 여기지 않고, 설사 한계로 여겼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머물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 새로운 삶을 개척했다는데 있다. 언론인인 저자는 현대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한 여성 거물 12인의 삶을 아주 집약해서 정리하고 있다." 비슷한 컨셉으론 '여성이 세상을 바꾸다' 시리즈의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다>(낮은산, 2009)도 있겠다. 비올레따 빠라(가수), 다이앤 아버스(사진가), 유잔 팔시(영화감독), 케테 콜비츠(화가) 등 네 명의 여성예술가를 다루고 있다. '클라시커50' 시리즈의 <여성>(해냄, 2002)과 <여성예술가>(해냄, 2003)도 인명사전 역할을 해줄 듯싶다.    

10. 작은 책 

내 맘대로 고르는 책은 '작은책' 시리즈다. <작은책>이란 월간지가 있는 줄 몰랐는데(하긴 서점에 들어오지 않고 알라딘에도 입고되지 않는다) <후퇴하는 민주주의>(철수와영희, 2009)를 읽다 보니, 이게 '작은책' 강연을 묶은 책이다. '한국사회비평' 범주에 속하는 이 강연모음집은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철수와영희, 2007)부터 시작해서 <1%의 대한민국>(철수와영희, 2008)을 거쳐 <후퇴하는 민주주의>까지 해마다 한권씩 나오고 있다. 한겨레문화센터의 인터뷰특강 모음집에 뒤서는 것이면서 <거꾸로, 희망이다>(시사IN북, 2009)로 스타트한 시사IN 신년특강 모음집엔 앞서는 것이다.   

'작은책'이지만 필자(강연자)들은 모두 쟁쟁하다. 지하철에서 오며 가며 손에 든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럼 뭐가 좀 달라질지 모르고, 아니면 누가 좀 겁을 먹을지도 모른다. 왜 겁을 먹느냐고? <부동산 계급사회>(후마니타스, 2008)의 저자 손낙구 씨의 강연 제목을 빌면, '집이 많은 놈, 집은 있는 놈, 집도 없는 놈'의 사회가 한국사회라는 문제의식이 공유되고 확산되면 '아파트에 미친' '부동산공화국'을 부추기면서 사욕만 챙기고 있는 누군가는 좌불안석이 되지 않을까? 그래도 최소한의 염치를 기대한다면...  

09. 08. 29.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골랐다. 강의를 위해서 조금 자세히 읽어보려고 하는 참이기도 하다. 다수의 번역본이 출간돼 있고, 내가 갖고 있는 건만 해도 댓종이 넘는다. 전집판과 그 이후에 나온 번역본들을 주로 참조하려고 한다. 차라투스트라와 함께 하려면 나도 곧 '하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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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9 1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29 1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9-01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사카 유지는 국내 신문에 종종 기고하고 있습니다.몇년 전에는 경향신문에 정기기고했지요.부인이 한국인입니다.호사카 유지 아버지의 친구인 한국인 교수가 매우 예절바른 사람이라 한국인에 대해 인상이 좋았다고 하더군요.
신문에 기고하는 독도관련 글에는 '한국인들은 독도는 우리 땅 외칠 줄만 알지 왜 독도가 한국땅인지 설명을 못한다'고 지적하더군요.논리를 개발해서 파고 드는 일본에 맞설 논리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로쟈 2009-09-01 20:57   좋아요 0 | URL
사실 너무 자연스러운 거라서 '논리'까지 개발할 생각을 못했던 거겠죠...
 

조카의 돌잔치에 다녀오느라 외출했더니 급 피곤 모드다. 초저녁에도 무덥다는 느낌은 올여름 들어서 처음인데, 날씨가 정말 그런지 기가 허한 탓인지 헷갈린다. 7월의 일들을 그대로 이끌고 8월로 넘어와서 몸이 더 무거운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처치를 좀 해야 할 터인데, 하고 생각하다가 만만한 일거리부터 해치우기로 한다.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꼽는 일이다. 얼핏 리스트를 보니 내가 읽은 책은 한 권밖에 없다. 책읽는 양으로 공부하는 거라면 다들 낙제 맞는 건 시간문제겠다. 구경하는 셈으로 쳐야지...  

1. 문학 

신경숙 작가가 꼽은 문학분야의 책은 채호기 시인의 <손가락이 뜨겁다>(문학과지성사, 2009). 물론 시집이다. 이런 시들이라 한다. "사랑한다 당신을/ 당신을 껴안는다/ 당신은 없다/ 백지위에/ 당신/ 이 남았다./ 당신/ 을 떼어내/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쓰다듬었다/ 동글동글하고 말랑말랑한 당신"('당신' 중에서) 손가락이 뜨거운 이유가 그런 데 있나 보다. 추천자는 "이 불타오르는 여름날, 이 아름다운 시의 에로스를 수혈 받을 수 있다면 거칠고 포악한 것들을 동글동글하게 바꿔 놓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적었지만, 여름보다는 겨울에 더 적합하지 않을는지. 여름엔 사랑을 좀 식혀주는 시가 더 잘 맞을 듯싶다는 건 나의 편견인가?   

 

신간 외국소설들을 좀 훑어보다가 눈길이 멈춘 작품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민음사, 2009). 동명의 영화가 먼저 떠오를 텐데, "일본계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장편소설. 1989년 부커상 수상작으로, 전 세계 20여 개국에서 번역·출간되었다. 인생의 황혼 녘에 비로소 깨달은 삶의 가치 그리고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허망함과 애잔함을 내밀하게 그려냈다. 앤소니 홉킨스와 엠마 톰슨 주연의 영화 <남아 있는 나날>의 원작 소설이다."라고 하면 더 이상의 소개는 불필요할 듯싶다. 이미 <남아있는 나날>(세종서적, 1994)이라고 한번 번역된 적이 있으나 이번에 좀더 믿을 만한 새 번역으로 다시 나왔다. 뜨거운 것보다는 이런 게 이젠 내 취향에 맞는다.  

그리고 한권 더 고르라면 아냐 울리니치의 <페트로폴리스>(마티, 2009). "모스크바 출신의 아냐 울리니치의 데뷔작으로, 적나라한 풍자로 한 소녀의 성장을 그린다. 미국 도서상 '2007년 35세 미만 작가의 우수소설 5편'에 선정되었으며, '빌리지 보이스'가 뽑은 2007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모든 어리석은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를 찾아나서는 이야기이다."라는 것이 간단한 소개. 일단 러시아가 배경이라는 점이 내겐 강력하게 어필한다. 원저의 표지가 여러 종인데, 맘에 드는 건 페테르부르크와 뉴욕의 이미지를 합성해놓은 것이다. 흠,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하다.     

2. 역사

이덕일 소장이 고른 책은 김선자의 <중국 소수민족 신화기행>(안티쿠스, 2009). 저자는 중국신화 전문가다. 간단한 소개에 따르면 책은 "영토로는 전 중국의 63% 이상을 차지하되 인구수로는 9%가 채 되지 않는 55개 소수민족들의 신화의 세계로 안내한다. 크게 귀주성, 운남성, 티베트, 신장, 만주, 광서성 여섯 지역의 다양한 소수민족들의 오래된 노래를 통해 고대인들의 상상력이 담겨 있는 신화의 원형을 제시한다. 신화 탐구서지만 그 어느 여행서보다 흥미진진한 중국 오지 여행 가이드북이기도 하다." 색다른 가이드 북으로도 읽을 수 있다는 얘기.  

이덕일 소장의 보충 설명으론 "저자는 2007년에 출간한 <만들어진 민족주의-황제신화>에서 중국이 ‘중화문명탐원공정’ 등으로 신화였던 황제를 실존인물로 만드는 이유가 중국 내 소수민족은 물론 한국, 일본 등의 민족까지 황제의 자손으로 만들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음을 밝혀낸 바 있다. <중국 소수민족 신화기행>은 한족(漢族)들이 만드는 이런 정치적인 지배이념에 대해 소수민족들의 오래된 신화로 대답하는 듯하다." 내친 걸음이라면 저자가 옮긴 <중국신화전설1,2>도 독서목록에 올려놓을 수 있겠다. 전설처럼 8월 한달이 지나갈 듯하다...  

  

3. 철학 

김상환 교수가 꼽은 철학분야의 책은 '철학'보다는 '종교'로 분류될 만한 책이다(알라딘의 분류로도 그렇다). 에두아르 쉬레의 <신비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들>(사문난적, 2009). 라마, 크리슈나, 헤르메스, 모세, 오르페우스, 피타고라스, 플라톤, 예수가 책에서 다루고 있는 '선각자들'의 이름이다. 추천사에 따르면, "이 책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영적 선지자들의 종교적 체험을 소설적인 필체로 그려내는 대중 교양서이다. 120년 전에 처음 발표되었지만 아직도 문장들이 젊게 살아 있어 고전적인 저서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저자는 다양한 형태의 종교들이 하나의 원리로 수렴하고 모든 선지자들이 서로의 가르침을 확증하는 관계에 있다는 관점에서 종교의 여명기에서 예수까지의 역사를 서술한다."    

연이어 읽을 만한 책은 오강남 교수의 <또 다른 예수>(예담, 2009). 비교종교학자의 '도마복음' 풀이다. 구원이 아닌 깨달음에 초점을 맞춘 '선각자' 예수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 도마복음이고, 흔히 영지주의(그노시즘)의 복음서로 간주됐지만 저자는 신비주의와 관련하여 이해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한다. 영지주의와 신비주의가 얼마나 다른 것인지 잘 모르겠으니 세르주 위탱의 <신비의 지식, 그노시즘>(문학동네, 1996)이라도 다시 찾아봐야겠다.  

4. 정치 

손호철 교수가 추천한 정치분야의  책은 박찬수 기자의 <청와대 VS 백악관>(개마고원, 2009)이다. 한겨레21에 연재될 때 나도 몇 번 읽어본 동명의 칼럼 모음집. 소개에 따르면, "네 차례의 한국대선과 두 차례의 미국대선을 취재했으며 2년간 청와대 출입기자로, 이후 3년간 워싱턴 특파원으로 청와대와 백악관을 현장에서 살펴본 베타랑 정치 전문기자가 쓴 이 책은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청와대와 백악관에 대한 궁금증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해소해주는 유익하면서도 읽는 재미가 쏠쏠해 피서용으로 안성맞춤이다. 특히 이 책은 항상 시스템이 부재하다는 비판에 시달리는 청와대와 치밀한 시스템을 갖춘 것으로 정평이 난 백악관의 차이를 대비하면서도 권력의 속성 때문에 두 권력기관에 공통점도 아주 많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소위 ‘부시의 입’으로 통하던 전 백악관 대변인 스콧 매클렐런이 부시 행정부의 기만과 진실에 대한 모든 것을 가감 없이 털어놓"은 책 <거짓말 정부>(엘도라도, 2008)가 한 술 더 뜰지 모르겠다. 청와대라고 해서 사정이 다를까 싶지만, '정부는 어떻게 국민을 속이는가?'를 폭로할 대변인이 물론 청와대에는 없을 거라는 점이 청와대와 백악관의 한 가지 차이이기도 하리라. 미국의 또다른 대표적 권력기관 펜타곤의 역사를 다룬 책 <전쟁의 집>(동녘, 2009)도 최근에 나온 책으로 8월의 독서목록에 올려봄 직하다.    

5. 경제/경영 

이준구 교수가 고른 경제/경영분야의 책은 윤종록의 <호모디지쿠스로 진화하라>(생각의나무, 2009). "호모디지쿠스’는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새로운 인간형을 뜻하는 말이다. 저자는 지금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화해 가고 있는지를 찬찬히 설명해 주고 있다."고. 생각해보니 디지털 전도사 네그로폰테의 <디지털이다>(커뮤니케이션북스, 1995)가 소개된 게 얼추 15년쯤 전이 아닌가 싶다. 그 사이에 변화된 세상은 <디지털 해적들의 상상력이 돈을 만든다>(살림Biz, 2009)는 표제에서 잘 드러난다. 소개를 보니 "미국의 '비즈니스위크' 지에 의해 ‘2008년 가장의 혁신적인 책’으로 선정되기도 한 이 책은 재미와 장난이 가득한 젊은이들의 문화가 기존의 생산물들을 차용하고 혼합하고 재창조하는 과정에서 기성 문화와 경제 산업에 커다란 활력은 물론 새로운 부를 창출해내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한다.   

6. 사회 

김문조 교수가 추천한 사회분야의 책은 조너선 색스의 <사회의 재창조>(말글빛냄, 2009). 개인적으론 몇 주 전에 서평을 쓰기도 해서 친숙한 책이다(http://blog.aladin.co.kr/trackback/mramor/2930871 참조). 간단한 소개를 전하면, "랍비 서품을 받은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저자는 오늘날 사회를 잠시 들려 머물고 가는 별장이나 호텔에 비유하면서, 미래 사회는 인류가 정을 붙이고 더불어 살아가야 할 ‘고향’이 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사실 사회의 '재창조'를 위해서는 먼저, 뒤집어 엎어야 하는 게 아닌가도 싶지만, 동시에 정확한 현실 진단도 필수적이지 않을까. 두 대표적인 시사주간지에서 인터뷰특강을 펴낸 <거꾸로, 희망이다>(시사IN북, 2009)와 <화>(한겨레출판, 2009)가 도움이 되겠다. 김어준 총수의 이런 충고. “이런 정부를 상대로 그냥 화를 내거나 분노하면 안 되죠. 주화입마(走火入魔), 내상을 입습니다. 그럴 때는 굉장히 안정적인 바이털 사인을 유지하면서, 차분하고 화사하게 웃으면서 화를 내야 하는데 그걸 전문용어로 ‘엿 먹인다’고 합니다. 상대를 내 눈높이로 끌어내려서 엿을 먹이는 거죠.”   

7. 과학 

장경애 편집장이 고른 과학분야의 책은 <기후, 예고된 재앙>(알마, 2009)이다. 주제 자체는 새롭지도 놀랍지도 않다. 그만큼 많이 다뤄진 '핫 이슈'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온실효과를 현재진행형으로, 즉 기후 변화의 메커니즘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동시에 어떤 경우엔 연구의 불확실성이나 과학적 논쟁까지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 점은 저자들의 의도와 관련돼 있다. 저자들은 급변하는 지구의 기후 변화에 대처하는 의사결정이 시민적 수준에서 내려져야 한다고 믿으며 이를 위해 과학적 논쟁이 본질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추천자는 소개한다.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책으로 <데드라인에 선 기후>(에코리브르, 2009), <6도의 악몽>(세종서적, 2008)도 같이 서가에 올려놓음 직하다. 후자에 대해선 "세계가 점점 뜨거워지면 어떻게 될 것인지 말해주는 묵시록적 입문서, 읽다보면 정신이 번쩍 들면서 부끄러워진다. 과학적 배경이 탄탄한 책이지만, 지옥에 떨어진 자들이 벌 받는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 중세 그림 같기도 하다."(파이낸셜타임스)란 평도 참고해볼 수 있다.    

8. 예술  

김춘미 교수가 추천한 예술분야의 책은 남수영의 <이미지 시대의 역사 기억>(새물결, 2009). 사진에 관한 책인가 했더니 다큐멘터리에 관한 책이라 한다. 소개에 따르면, "이 책은 다큐멘터리의 존재 가치를 새로운 각도에서 조망하고 있어 흥미롭다. 있는 그대로의 객관적인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 다큐멘터리라는 과거의 시각과 달리 필자는 다큐멘터리 역시 이미지의 한 형태로서 그것은 사건과 우리의 현재 및 미래를 잇는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내는 무엇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실 '역사 기억'이란 말은 둔중한 울림을 갖는데, 최근에 나온 <기억과 전쟁>(휴머니스트, 2009)나 테사 모리스 스즈키의 <우리 안의 과거>(휴머니스트, 2006) 등의 책들이 모두 기억을 경유한 역사 인식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기억은 물론 매체에 의한 기억이다. 때문에, '역사 기억'은 사실 '역사-매체-기억'이라는 3항조의 문제이다. <이미지 시대의 역사 기억>도 그런 맥락에서 읽어볼 수 있겠다. 흠, 아예 '역사서'로 분류할 수도 있겠군.    

9. 교양 

이한우 기자가 고른 교양서는 앨리스 스타인바흐의 <한 달에 한 번씩 지구 위를 이사하는 법>(웅진지식하우스, 2009)이다. 표지와 제목만으론 소설인지 에세이인지도 분간이 안되는데, 알라딘 분류상으론 '세계 일주 에세이'다. 보아 하니 이런 계절엔 딱 '경계'해야 할 책인데, 부주의하게도 소개를 읽어버렸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널리스트 앨리스 스타인바흐가 파리, 프라하, 교토, 피렌체 등 세계의 가장 핫한 도시들을 자유로이 떠돌며 자신의 흥미를 끄는 여러 다양한 강좌를 배우며 여행한 지은이의 경쾌한 모험이 펼쳐지는 책이다. 이를 테면 파리에서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프랑스 요리 학교 리츠 에스코피에의 쿠킹 클래스에 등록하고, 영국 스코틀랜드에서는 양치기 개 조련법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는 예술 강좌를 듣고, 영국 윈체스터에서는 제인 오스틴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하며 제인 오스틴 학회에 참가한다. 일본 교토에서는 전통 춤과 다도를 배우고, 체코 프라하에서는 글쓰기 수업을 듣고, 프랑스 아비뇽에서는 갖가지 아름다운 프로방스식 정원을 둘러보는 식이다."   

 

이런 걸 두고 '염장을 지른다'고 하지 않나? 같은 저자의 책으로 <앨리스, 30년 만의 휴가>(21세기북스, 2006)도 소개돼 있는데, 그 정도는 봐줄 만하지만('30년만'이라잖은가?), <한 달에 한 번씩...>은 독자의 처지를 망각한 불쾌한 책이다. 설사 자기 경험담이라 하더라도 이런 경우엔 '소설'이라고 둘러대는 게 독자에 대한 예의다!     

10. 가라타니 고진

이번주에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의 세번째 책으로 <네이션과 미학>(도서출판b, 2009)이 출간됐다. 해서 내 맘대로 고르는 주제는 별 고민 없이 '가라타니 고진'이다. 사실 그의 따끈한 신간을 읽어보는 게 나로선 의무이자 즐거움이다. 그것이 '의무'인 것은 '가라타니 고진의 모든 책'이라고 내가 이미 정해두었기 때문이다(얼추 80%는 읽은 듯하다). 더구나 이번에 나온 책은 그의 '내셔널리즘론의 결정본'이라고 하니 더더욱 독서욕이 자극된다. 지구 위를 이사하기는커녕 동네도 못 벗어나는 위인들에겐 그래도 책이 보상이자 위안이요 자극이자 기쁨이다. 안 그러면 또 어쩔텐가...  

09. 08. 01.  

 

P.S. '이달의 고전'으론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골랐다. 햇빛이 뜨거운 날에는 한번쯤 생각나는 작품이기도 하니까. 게다가 나로선 지난달에 미리 읽었기 때문에, 더 읽을 부담(?)이 없다는 장점도 있다(고르고 보니 지난달엔 '사르트르'였군). 대신에 '카뮈 그 사람'을 이해하는 데 <이방인>과 함께 가장 요긴하다고 생각하는 <최초의 인간>을 이달에 읽어보고 싶다(그는 어머니에 대한 소설로 시작해서 아버지에 대한 소설을 미완으로 남겨놓고 생을 마감했다).  

 

여유가 되면 방대한 전기 <카뮈, 지상의 인간>(한길사, 2007)과 전집의 한권으로 나온 <젊은 시절의 글>(책세상, 2008)도 참조하면 좋겠고. 해서 내년 1학기에는 카뮈의 문학세계에 대한 강의도 해볼 계획이다. 그런 의욕이 나를 조금더 살아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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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08-02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화점이란 남성에겐 사무적인(계획구매) 공간과 비슷하지만,
여성에겐 즐기는(구매와구경) 공간임을 다시느낍니다.
"책에 지배당하는 게 좋으냐, 책을 지배하는 게 좋으냐,
하지만 그 스트레스가 참 좋더라!"(승효상/건축가)
- 문학:류시화의 '첫사랑',
- 역사:다원일체(신화의 대결시대),
- 철학:신비주의자(임마누엘 스베덴보리),
- 정치:영화'대통령의 연인''
- 경제:더불어 살아가는 고향,
- 사회:이념을 넘어서
- 과학:쾌적한 지구 환경,
- 예술:미래의 기억,
- 교양:아름다운 달 여행,
- 고전:'똥파리'등이 생각났습니다.
8월도 심심치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로쟈 2009-08-02 12:22   좋아요 0 | URL
책읽을 여유만 있다면 심심한 계절은 없지요.^^

2009-08-01 2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02 1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09-08-02 0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앨리스 스타인바흐는 제가 아주 좋아하는 작가에요!!!!
그 작가의 글을 올려 주신게 왜 이리 감사한지~.ㅎㅎㅎㅎㅎ

로쟈 2009-08-02 12:22   좋아요 0 | URL
이미 팬들이 있군요.^^

Kir 2009-08-08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달도 고맙습니다^^
 

한때는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라고도 했지만 올해는 '본격적으로 삽질하기 시작한 계절'이라고 해야겠다. 삽질 '늬우스'와 본격적인 노동계 하투로 채워질 듯한 계절에 읽을 만한 책을 꼽을 만한 흥은 나지 않지만, 다른 할일들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서(칠면조가 위급에 처하여 머리를 처박는 것처럼) 단순작업을 해둔다.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골라놓는다. '타임캡슐'의 의미도 언젠가는 갖게 되기를 바라면서... 

1. 문학 

신경숙 작가가 꼽은 문학서는 박범신의 <고산자>(문학동네, 2009)이다. 고산자 김정호의 일대기를 그린 이 소설에 대해선 따로 소개가 필요하지 않겠다. 추천자의 평은 이렇다. "<고산자>는 시대 고증은 물론이고 고산자의 내면이 섬세하게 들여다 보인다. 어느 때는 고산자 당자가 자기 자신에 대해 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그 밀착감으로 인해 고산자의 일생은 역사소설 안에 갇히지 않고 현재 우리 곁에 살아있는 사람처럼 복원되었다. 역사가 유기한 인물인 만큼 부족한 고산자의 연대기에 불어넣은 작가의 상상력이 이루어낸 진경이며 더불어 당시 민초들의 삶도 감칠맛 나게 펼쳐진다."  

거기에 보태어 가벼운 소설과 무거운 소설을 한권씩 보태본다. <맛>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작가 로알드 달이 남긴 유일한 장편소설이라는 <나의 삼촌 오스왈드>(강, 2009)와 스탈린 시대를 배경으로 한 트래비스 홀랜드의 첫번째 장편소설 <사라진 원고>(난장이, 2009). 전자는 "'유쾌하게 즐기며 사는 것'이 인생의 유일한 목표인 오스왈드가 어떤 남자도 쓰러뜨리고 마는 아찔한 미모의 야스민, 정자 영구저장법을 고안해낸 케임브리지 화학과 교수 워슬리와 환상의 팀을 이루어 세기의 천재들을 상대로 기발한 정자 탈취극을 벌인다"는 이야기이고, 후자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해인 1939년 스탈린 치하의 모스크바에서 악명을 떨쳤던 루뱐카 교도소를 배경으로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암울함, 감시와 처벌이라는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삶과 고뇌를 그린 역사소설이다." 상이한 소설들을 읽으며 문학이란 무엇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인지 한번 더 생각해보고 싶다.    

2. 역사 

이덕일 한가람문화연구소장이 꼽은 역사분야의 책은 조셉 커민스의 <라이벌의 역사>(말글빛냄, 2009). 제목과 표지에서 이미 책의 성격을 짐작해볼 수 있다. "<라이벌의 역사>는 라이벌들의 갈등과 대결을 통해 그 시대를 생생하게 보게 한다. 장개석과 모택동, 그리고 프랑스의 드 카스트리 장군과 싸운 베트남의 보 구옌 지압 장군을 제외하면 모두 서양인들이지만 한 시대를 주도한 라이벌의 대결은 양의 동서를 뛰어넘는 흥미를 준다. 서로 다른 캐릭터를 가진 라이벌이 동시대를 끌고 가기 위해 경쟁했다는 자체가 흥미롭다."  

작년 10월에도 이덕일씨는 <남과 북을 만든 라이벌>(역사비평사, 2008)을 '이달의 읽을 만한 책'으로 꼽은 적이 있는데, 아무래도 이런 테마를 역사가들을 흥미로워하는 듯하다. 내가 더 떠올릴 수 있는 책은 몇년 전에 나온 라이벌 시리즈인데, <헤밍웨이 Vs. 피츠제럴드>(갑인공방, 2006), <맬컴 X Vs. 마틴 루터 킹>(갑인공바, 2005) 등. 타이틀만으로도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삐져나올 듯하다.     

3. 철학 

김상환 교수가 꼽은 철학분야의 책은 클로소프스키의 <니체와 악순환>(그린비, 2009)이다. 다른 페이퍼에서 언급한 적이 있어서 군말은 보태지 않는다. 추천자에 따르면, "이제까지의 앎, 이제까지의 가치, 이제까지의 습관을 모두 버리고 전혀 새로운 삶을 계획하자, 이것이 니체의 외침이다. 이런 니체의 외침이 20세기 후반기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하이데거의 니체 강의, 들뢰즈의 니체론 등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 그러나 니체 사상을 현대 사상사 안에 폭발시킨 또 하나의 도화선이 있는데, 그것이 이번에 번역된 클로소프스키의 니체론이다. 철학자가 아닌 소설가, 평론가, 번역가, 영화감독, 화가인 클로소프스키. 그는 바타유, 푸코, 들뢰즈 등과 같은 프랑스 니체주의자들의 구심점이었다. 이 책은 두통과 광기에 시달리는 니체의 인간적인 모습과 영원회귀라는 숭고한 계시 아래 현자의 길을 가는 니체의 모습을 짜임새 있게 엮어가고 있다."  

니체에 관한 국내서로 박홍규의 <반민주적인, 너무나 반민주적인>(필맥, 2008)과 김진석의 <니체는 왜 민주주의에 반대했는가>(개마고원, 2009)는 '민주주의'란 쟁점을 놓고 니체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다룬다는 점에서 논쟁적이다. 그 논쟁이 '악순환'이 아니라 '선순환'으로 귀결된다면 니체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 한 걸음 더 전진할 수 있으리라.

 

4. 정치 

손호철 교수가 추천한 정치분야의 책은 레이코프의 <자유전쟁>(프레시안북, 2009)이다. "언어학과 인지과학을 결합시킨 인지언어학의 창시자로서 우리의 사고는 대부분 무의식적이며 우리는 모두 ‘프레임’이라는 일종의 틀을 통해 사고를 한다는 프레임론을 통해 현대정치를 분석,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조지 레이코프는 인지언어학과 프레임론을 통해 자유라는 개념을 둘러싼 진보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의 개념전쟁을 분석해 또 한 번 현대정치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한 단계 높여주고 있다"는 것이 책에 대한 평이다.   

마침 책상머리에 원서와 함께 놓여 있는 책이기도 한데, 레이코프의 요지는 간단하다. "오늘날 미국에는 자유에 대해 매우 다른 두 가지 해석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이는 미국을 양분하는 두 개의 매우 다른 도덕적, 정치적 세계관에서 비롯된다"는 것. '누구의 자유인가?'란 원제는 그 두 가지 해석의 충돌을 지시한다. 2009년의 한국은 어떤 전쟁터일까?  

5. 경제/경영

이준구 교수가 꼽은 경제/경영서는 지난 5월에 '이달의 읽을 만한 책'으로 고른 바 있는 폴 그루그먼의 <불황의 경제학>(세종서적, 2009)이다. "세계의 경제상황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불과 몇 년 전의 일이 오랜 과거의 일처럼 느껴질 수 있다. 2009년 대폭 개정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이 책은 바로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경제위기를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뛰어난 현실감을 보인다. 아직도 그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서브프라임 위기의 본질에 대해 이처럼 명확하게 분석해 놓은 경우를 다른 데서 보기 힘들다."는 것이 추천의 이유다.   

경제서의 경우엔 주저없이 두 권의 책을 덧붙일 수 있다. 조지프 히스의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이들을 위한 경제학>(마티, 2009)와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길, 2009). 분량상 폴라니의 책은 이달에 다 읽어내기 어렵겠지만, 여름내 곱씹어서 음미해볼 수는 있겠다. 우리 또한 '거대한 전환'의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르니까(어째서 그런한가는 교수신문의 칼럼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8530 을 참조).   

6. 사회 

김문조 교수가 고른 사회분야의 책은 좀 특이하다. 샌드라 하딩의 <누구의 과학이며 누구의 지식인가>(나남, 2009쪽). 저자가 페미니스트 과학자인 만큼 과학서로도 분류됨 직하지만, 추천자는 과학에 관한 사회적 논쟁의 관점에서 보는 듯하다. 페미니즘 과학론에서 하딩이 차지하는 위상에 대한 평가는 이렇다. "최근의 페미니스트 과학론은 크게 인식주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객관적 세계관을 전제로 하는 경험론과 과학지식을 성, 인종, 계급과 같은 사회적 변인에 의해 매개되는 지적 산물로 간주하는 입장론, 그리고 과학지식을 포함한 세상 모든 지식의 편파성·임의성을 강조하는 포스트모던 과학론으로 구분된다. 그런데 과학지식의 사회적 근원을 따지는 입장론을 지향하되, 그것이 지배집단의 통제권을 벗어나 본연의 힘을 발휘할 때 그 해방적 잠재력이 극대화한다는 비판적 자세를 견지하는 저자 하딩은 1, 2부에서 ‘강한 객관성’이라는 개념틀에 입각해 페미니스트 입장론의 핵심적 쟁점과 내용을 상술한 후, 3부 ‘타자들’에서는 성적 쟁점을 넘어선 입장론의 다문화주의적 확장을 시도한다."  

7. 과학 

장경애 편집장이 고른 책은 위르겐 타우츠의 <경이로운 꿀벌의 세계>(이치 사이언스, 2009)이다. 사실 진작에 실물을 확인해보고 싶은 책의 하나였다. 소개에 따르면, "이 책에서는 초개체 꿀벌의 탄생 배경, 여왕벌을 중심으로 한 꿀벌의 생태학, 꿀벌의 시각, 후각, 공간지각, 의사소통 능력,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있던 짝짓기, 벌집의 구조와 기능, 유충의 미래 결정하는 부화의 지혜 등 꿀벌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윌슨과 휘도블러의 <개미 세계 여행>(범양사, 2007)이나 감수를 맡은 최재천 교수의 <개미제국의 발견>(사이언스북스, 1999)의 꿀벌 버전이 아닐까 짐작해본다(분량이 두툼한 편은 아니지만). 

이 책이 막바로 떠올려주는 또 다른 책은 로완 제이콥슨의 <꿀벌 없는 세상, 결실 없는 가을>(에코리브르, 2009)이다. 짐작엔 추천자도 염두에 두었을 법하다. 이렇게 덧붙이고 있으니까. "아인슈타인은 꿀벌이 지구에서 사라지면 인간은 그로부터 4년 정도밖에 생존할 수 없을 거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최근 전 세계적으로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 깨끗한 환경의 지표인 꿀벌이 자취를 감추고 있는 이 시점에 꿀벌의 은밀한 생태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소중하다. 책장을 덮으면서 꿀벌을 돕는 길이 우리 스스로를 돕는 길이란 저자의 에필로그가 마음에 깊이 남는다." 

 

8. 예술 

김춘미 교수가 고른 예술분야의 책은 <20세기 패션 아이콘>(미술문화, 2009)이다. 다양한 분야를 안배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2000년을 10년 앞에 놓고 전 세계의 출판사들이 앞 다투어 20세기를 정리하는 담론들을 쏟아냈던 때가 있다. 여러 각도에서 20세기를 정리한 책들이 재미있기도 하여 한동안 책을 사 모으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2000년하고도 10년이 코앞인 시점에 20세기를 정리한 책이 하나 더 나왔다. 바로 패션의 시각에서 20세기를 정리한 책이다.(...) 미니스커트의 출현은 물론 PVC 재료의 옷, 하이테크를 이용한 미래지향적 의복, 그리고 오늘날 하나가 된 지구촌 문화를 드러내는 옷 등등 많은 화보들이 포함된 이 책과 더불어 20세기를 한번 조망해보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라고 추천의 이유를 적었다.    

 

20세기 패션을 다룬 책으론 <20세기 패션>(시공사, 2003)도 같이 참조해볼 수 있겠다. 내가 더 관심을 갖는 책은 질 리포베츠키의 <패션의 제국>(문예출판사, 1999)인데, 최근에 영역본과 함께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이다. 저자는 "중세 말기에 패션이 출현하여 수세기를 거치면서 그것이 진화해온 주요 경계선들을 이해하는 것"과 함께 "현대사회에서 패션의 힘이 상승하는 것을 이해하고 소비주의와 대중적인 의사소통의 길을 따라 시작한 민주주의 안에서 패션이 차지하는 중요한, 전례없는 위치를 이해하는 것"이 책의 목적이라고 적었다.  

참고로, 영역본의 서문은 리차드 세넷이 썼다. 최근 불거진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을 모색하는 데 가장 참조할 만한 통찰을 제시하고 있는 사회학자가 세넷이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해서 '세넷의 모든 책'이기도 하다).   

 

9. 교양 

이한우 기자가 고른 교양분야의 책은 백승선, 변혜정의 <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가치창조, 2009)이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지만, 크로아티아를 소개하고 안내하는 책이다. 추천자에 따르면, "유럽 구석구석을 참 많이 다녀보았지만 크로아티아와는 인연이 없었다. 그저 크로아티아는 옛 유고 연방의 한 나라였고 축구를 잘하는 작은 나라 정도가 솔직히 내가 가진 정보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만 최근 여행 좋아하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크로아티아 가 보았느냐?”는 질문을 듣는 일이 조금씩 잦아지고 있었다. 이 책, 참으로 잘 만들었다. 한 마디로 크로아티아 같은 책이다."   

흠, 이런 항구 도시들을 내려다보노라면, 여름 한 철이 짧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 크로이티아 이전에 러시아라도 몇 번 더 가봐야 할 텐데, 혹 러시아 여행을 계획하고 계시다면 이병훈의 러시아예술기행 시리즈 <모스끄바가 사랑한 예술가들>(한길사, 2007)과 <백야의 뻬쩨르부르그에서>(한길사, 2009)를 먼저 일독하시는 게 좋겠다.   

그리고 여유 자금이 있다면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도 한번 들러보시길. 지난주 경향신문의 여행기사를 읽고 매력을 느낀 도시인데, "에스토니아의 탈린이란 도시를 들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탈린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도 중 하나다. 서유럽과 북유럽을 잇는 한자동맹의 거점 도시로 고풍스럽고, 크며, 아름답다.(...) 탈린은 완벽한 관광도시다. 곳곳에는 중세의 복장을 한 상인들이 물건을 팔거나, 활쏘기 체험을 권유한다. 또 건물 하나하나에 역사가 깃들어 있다. 전망도 좋아서 덴마크 왕의 정원, 구시청사의 첨탑 등에서는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탈린은 북유럽의 보석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잠시 즐겁긴 하군. 탈린까지는 어떻게 가는가? "핀란드 헬싱키까지는 직항이 생겨 9시간 만에 갈 수 있고, 여기서 배타고 2시간만 가면 탈린이다." 그래, 10년 내로 한번 가보기로 한다...   

10. 좌파 

내 맘대로 고르는 책의 주제는 '좌파'로 골랐다. 최근에 나온 버틀러, 라클라우, 지젝 공저의 <우연성, 헤게모니, 보편성>(도서출판b, 2009)의 부제 '좌파에 대한 현재적 대화들'에서 착안한 것이다. 이 주제에 관해서도 여러 국내외서가 나와 있지만, '좌파란 무엇인가'란 화두에 댭해줄 만한 번역서 세 권을 골랐다. 조지 카치아피카스의 <신좌파의 상상력>(난장, 2009)와 앤소니 기든스의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한울, 2008)를 <우연성, 헤게모니, 보편성>의 오른쪽에 덧붙여두고 싶다. 국내서 가운데는 박노자의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한겨레출판, 2009)를 먼저 꼽아야 할 텐데(흠, 반드시 맨왼쪽 서가에 꽂아두어야 할 책이다). 이미 작년에 '이달의 읽을 만한 책'으로 고른 적이 있는 <한국사회와 좌파의 재정립>(산책자, 2008), 김진석의 <기우뚱한 균형>(개마고원, 2008) 등이 거기에 보태질 수 있겠다. 여하튼 한두 권이라고 읽어볼 수 있으면 남는 장사가 아니겠는가.  

09. 07. 04.  

P.S. 이달의 고전으로는 사르트르를 골랐다. 최근에 '상황4' <시대의 초상>(생각의나무, 2009)이 번역돼 나왔기 때문인데, 이 참에 좀 밀린 사르트르의 책들도 뒤적여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사르트르 평전>(을유문화사, 2009)과 박홍규 교수의 <카페의 아나키스트, 사르트르>(열린시선, 2008) 등이 그 밀린 책들이다. 참고로, <시대의 초상>에서 사르트르가 앙드레 고르의 소설 <배반자>(1958)에 붙인 서문의 제목이 '쥐와 인간'이다. 쥐와 인간에 대한 사르트르식 식별법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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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7-05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조가 아니라 칠면조인가요

로쟈 2009-07-05 19:02   좋아요 0 | URL
흠, 두 가지 설이 있나 봅니다...

Jade 2009-07-06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쥐와 인간에 대한 사르트르식 식별법"에 급 땡기는데요 ㅋㅋ

아, 로쟈님 페이퍼는 어려운 책을 사라고 꼬드기는 마약같아요...아직까진 구매행위가 읽는것으로 잘 이어지고 있지 않은 폐단이 있다만...켁

로쟈 2009-07-06 11:56   좋아요 0 | URL
그래도 출판문화 창달에 기여하시는 것이죠.^^;

푸른바다 2009-07-14 0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르트르 <존재와 무> 새 번역본이 나왔네요. 번역이 어떨지 궁금하군요...

로쟈 2009-07-14 08:04   좋아요 0 | URL
저는 예전 번역이겠거니 했는데, 진짜 새 번역본인가 보네요!..
 

근황을 묻는 질문에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지라, 한데, '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란 이문재 시인의 말을 적용하면 더 없이 게으르게 지내는 것이 요즘인지라 좀 우울하다. 게다가 시국도 우울하고 날은 무덥고. 그런 형편에 또 읽을 만한 책들을 꼽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싶지만, 그런 회의는 '상투적'이란 이유로 일소해버리고 다시금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골라본다.   

1. 문학 

신경숙 작가가 꼽은 문학분야의 책은 전성태의 <늑대>(창비, 2009)다. 지난달에 꼽아두었기 때문에 두 달 연속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이다. 사실 나도 표제작만 읽었다뿐 아직 소설집을 읽은 건 아니므로 '계속' 읽을 만한 책으로 놔두어도 억지는 아니다. 추천의 변은 이렇다. "전성태는 이야기를 무궁무진하게 품고 있는 인상을 주는 작가다. 대체로 이야기에 치중하는 작가들이 디테일에 소홀한 듯싶으나 전성태는 거기서도 비켜나 있다. 특히 이 <늑대>에 수록된 작품들을 이끌어나가는 문장들은 정직하고, 구성은 치밀하며, 시선은 경계에 서 있고, 비판은 성찰과 함께 적확하며 자유롭고, 옹호는 인간의 불가해성과 함께 모범적이며 아름답다." 적확하며 자유롭고 모범적이며 아름다운 소설들을 읽을 일이 어디 흔하겠는가.   

같이 읽어볼 만한 책으론 최근 20주년을 맞은 중국 '천안문 사태'를 배경으로 작품들을 떠올려보았다. 샨 사의 <천안문의 여자>(현대문학, 2006)과 양이의 <시간이 스며드는 아침>(재인, 2009). 중국계 프랑스 작가 샨 사에 대해서는 예전에 쓴 페이퍼(http://blog.aladin.co.kr/mramor/907667)를, 그리고 <시간이 스며드는 아침>에 대해서는 얼마전에 옮겨놓은 기사(http://blog.aladin.co.kr/mramor/2866313)를 참고할 수 있다.  

 

2. 역사 

역사저술가 이덕일씨가 꼽은 역사분야의 책은 조너선 스펜스의 <근대중국의 서양인 고문들>(이산, 2009). "<강희제> 등의 저서를 통해 국내에도 잘 알려진 저자 조너선 스펜스가 중국에 인생을 바친 서양인 16명의 족적과 의미를 추적한 책이다." 스페스의 저작이야 워낙에 유명하기에 따로 군말은 필요하지 않겠다. 개인적으론 이 참에 <무질서의 지배자 마오쩌둥>(푸른숲, 2003)과 <천안문>(이산, 1999)을 읽어보고 싶다.   

 

중국 문화 및 문화연구 관련서로 조금 전문적인 책으론 문화학자이자 중국영화 전문가인 다이진화의 <무중풍경>(산지니, 2007), <거울 속에 있는 듯>(그린비, 2009)과 왕샤오밍 등이 쓴 <21세기 중국의 문화지도>(현실문화연구, 2009)도 기억해둘 만하다. 당장 손에 들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이런 책이 있다는 정보 정도는 챙겨두어도 좋겠다.   

3. 철학 

김상환 교수가 고른 철학분야의 책은 루이지 조야의 <아버지란 무엇인가>(르네상스, 2009). “아버지 혹은 부성(父性)이 오랜 진화의 산물이자 사회·문화적 구성물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해 부성이 탄생, 진화, 몰락해가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묘사했다”는 것이 추천의 변이다. 책은 500쪽 분량으로 두툼한 편이다. '엄마(마더)' 신드롬에 가려져 있는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듯하다. 개인적으론 예전에 필리프 쥘리앵의 <노아의 외투>(한길사, 2000)의 내용을 '아버지란 무엇인가'란 페이퍼로 정리해둔 적이 있다(http://blog.aladin.co.kr/mramor/1527987). 덧붙여 '아버지'란 말은 항상 주자청의 수필 <아버지의 뒷모습>(태학사, 2000)도 떠올리게 한다. 중학교인가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던 글이다. 아, 위화의 <영혼의 식사>(휴머니스트, 2008)에도 아버지 노릇하는 작가의 모습이 유머러스하게 그려져 있다.  

  

4. 정치 

손호철 교수가 꼽은 정치분야의 책은 김욱의 <법을 보는 법: 법치주의의 겉과 속>(개마고원, 2009)이다. "헌법학과 법철학을 공부한 소장 법학자가 쓴 <법을 보는 법 : 법치주의의 겉과 속>은 책의 제목대로 우리가 매일 부딪치는 다양한 ‘법을 보는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의미 있는 책"이라는 게 간단한 소개. 한데, 법치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한국사회에 사법불신이 만연해 있는 것은 '법치주의의 겉과 속'뿐만 아니라 '법조계의 겉과 속'까지도 들여다보아야 해결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듯하다. 김두식 교수의 <헌법의 풍경>(교양인, 2004)과 <불멸의 신성가족>(창비, 2009)은 그런 의미에서 같이 챙겨둘 만한 책이다. 비록 속살까지 다 보여주진 않지만 속사정은 헤아려볼 수 있도록 해준다.  

5. 경제/경영 

이준구 교수가 추천한 경제/경영서는 <김원장 기자의 도시락 경제학>(해냄출판사, 2009). 물론 김원장 기자가 저자인 책이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대중을 위한 경제학 '입문서'격의 책인 듯하다. 평은 이렇다. "소설 읽듯 술술 읽어나갈 수 있는 경제학 해설서를 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읽는 사람을 고문이라도 하려는 듯 어렵게 쓸 필요는 없다.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경제학에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을 써야 마땅한 일이다. 문제는 그 동안 나온 대부분의 경제학 해설서들이 독자의 눈높이를 제대로 맞추지 못해 좌절감만 더 크게 만들었다는 데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친근한 현실의 사례를 통해 독자에게 한 걸음이라도 더 가까이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기자 특유의 센스가 발휘되어 독자에게 가까이 가려는 노력은 한결 더 큰 탄력을 받는다. 요즈음 한창 뜨고 있는 유재석과 박명수의 예를 통해 대체재와 보완재라는 개념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그 좋은 예다."  

'도시락 경제학'에서 더 나아간 설명을 원한다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경제학 강의를 들어볼 수도 있겠다.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황금사자, 2009). 더불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동향에 대해선 도미니크 레비와 제라르 뒤메닐 공저의 <현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그린비, 2009)도 눈길이 갈 만한 책(뒤메닐 교수와의 대담 기사는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358529.html 참조).      

6. 사회 

김문조 교수가 추천한 사회분야의 책은 박경태의 <인종주의>(책세상, 2009). "오랜 동안 소수자 문제를 연구해 온 저자가 그간 온축한 자료나 역량에 기초해 우리와 같은 단일민족 국민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생소한 민족문제를 알기 쉽게 풀이한 <인종주의>는 세계화 시대를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는 세계시민의식을 깨우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는 입문서로 적격이라고 판단되어 적극 추천한다"는 것이 추천의 변이다. "오랜 동안 소수자 문제를 연구해온" 저자의 다른 책으론 <소수자와 한국사회>(후마니타스, 2008)도 눈에 띈다.  

인종주의에 관해서라면, 에티엔 발리바르의 책들이 먼저 떠오르는데, 아직 단행본은 소개된 게 없고 <대중들의 공포>(도서출판b,2007)에 '유럽적 인종주의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인종주의: 여전히 보편주의인가?' 두 편이 번역돼 있다. 읽기는 만만찮겠지만 <인종주의>로 개념사를 학습한 이후라면 참조해볼 만하다.   

7. 과학  

장경애 편집장이 고른 과학분야의 책은 차윤정, 전승훈 공저의 <신갈나무 투쟁기>(지성사, 2009)이다. 10년전 나왔던 책의 개정판인데, "우리나라 숲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신갈나무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 나무의 일대기를 바탕으로 식물 전반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쓴 책". 일종의 스테디셀러다. 두 저자의 <숲 생태학 강의>(지성사, 2009)와 차윤정의 <숲에 빠져 미국을 누비다>(웅진지식하우스, 2009)도 올해 나온 책들. 뭔가에 빠져 지내는 이들 덕분에 '숲 생태학' 관련서들이 점점 울창해지고 있다.   

 

8. 예술 

김춘미 교수가 고른 예술분야의 책은 <정해광, 아프리카를 외치다>(심포지움, 2009). 물론 저자는 정해광씨다. 저자는 생소한데, 동양철학을 공부하고 마드리드 대학에서는 정치철학 박사까지 받았지만 아프리카 미술에 빠진 지 20년째이고 아프리카 미술관도 열었다고 한다. 국내에 아주 드문 아프리카 미술 전문가인 것이다. "케냐의 키부티, 카툰과 음부티아, 탄자니아의 릴랑가, 이디오피아의 타데세와 아세파, 수단의 아마르, 세네갈의 두츠와 케베, 우간다의 아느와르, 콩고의 물람바. 이 열한 명의 유명한 아프리카 현대 미술가들 중 우리에게 익숙하게 다가오는 이름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에게 아프리카 예술은 멀다. 그런데 마침 이 열한 명의 작가와 그들의 그림을 소개하는 재미있는 책이 나와 반가웠다."는 것이 추천의 변이다. 이런 책도 있었구나 싶다.  

 

거기에 보태 이번에 <고뇌의 원근법>(돌베개, 2009)이 출간된 김에 서경식 교수의 미술 에세이 세 권도 이달에 읽을 만한 책으로 꼽아보고 싶다. <청춘의 사신>(창비, 2002), <나의 서양미술 순례>(창비, 2002/1992)까지가 그 세 권의 책이다.   

9. 교양

이한우 기자가 고른 교양분야의 책은 <러셀, 북경에 가다>(천지인, 2009). 저자는 물론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이다. 소개에 따르면, "1920년 북경대 철학과 초빙교수로 초청돼 수많은 중국인들과 만나며 그 결실을 책으로 낸 것이 이 책이다. 그는 여기서 중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치밀하게 탐색한다. 공자까지 거슬러 올라가 중국 문화의 특징을 읽어 내고 서구 문명이 당시 낙후된 중국 사회에 갖는 의미를 놀라울 정도로 예리하게 읽어낸다." 러셀의 대표작은 물론 <서양철학사>(집문당, 2006)이지만, 그리고 그의 <자서전>(사회평론, 2003)도 번역돼 있지만, 여기서는 최근에 나온 에세이집 <우리는 합리적 사고를 포기했는가>(푸른숲, 2008)와 <나는 이렇게 철학을 하였다>(서광사, 2008)를 같이 읽을 만한 책으로 골라본다.    

10. 창비담론 

내 맘대로 고르는 책으론 두달 전에 1차분 세 권이 출간된 '창비담론'을 골랐다. <87년 체제론>이 일차적인 관심도서였지만, 여유가 된다면 <이중과제론>과 <신자유주의 대안론>도 읽어두려고 한다. 한국 지식사회에서 지난 수십 년간 '주장' 노릇을 해온 창비의 어젠다가 무엇이며 어떤 대안들을 내놓고 있는지, 그리고 그 대안의 대안은 가능한지 궁리해봄 직하다. 올 6월은 유난히 뜨거울지도 모른다는 예감도 들고. 87년 여름이나 작년 여름처럼 말이다...  

 

09. 06. 06.  

P.S. 이달의 고전은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골랐다. 내달이면 1주기가 되는데, 한달 앞당겨 읽어보려는 것은(고전이니까 '다시' 읽어보려는 것은) '천국'에 대해서, '당신들의 천국'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해보려는 뜻에서다. 그런 건 7월보다는 6월에 더 잘 맞는 일처럼 보인다. 오늘이 현충일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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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06-06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좋은 책들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그리고 출간하신 책 재미있게 읽고 있답니다. 가끔 곁길로 새서 헤매고 다녀서 그렇지...

로쟈 2009-06-06 17:55   좋아요 0 | URL
제가 헤맨다는 줄 알았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6-07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대중국의 서양인 고문들>에 관심에 가는군요.저는 일본과 한국의 서양인고문에도 관심이 있어요.

로쟈 2009-06-07 20:06   좋아요 0 | URL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