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잔뜩 흐린 날씨이지만 '가을의 문턱'이란 느낌은 아직 들지 않는다. 그래도 며칠 있으면 9월이고 가을이다. 그 전에 해야 할일들 때문에 무턱대고 시간이 흘러가는 게 전혀 반갑지 않지만 시간은 냉정한 편이니 기어이 가을이 오고야 말 것이다. 어느 시인의 말대로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온다"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9월의 읽을 만한 책을 골라놓는다. 언젠가도 적었지만, 이런 페이퍼 만드는 일을 계속하는 건 10년 뒤에 돌이켜보기 위해서다. 당장의 효용은 나중 문제다.  

1. 문학 

신경숙 작가가 고른 책은 박완서 선생의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현대문학, 2010)다. 어느새 팔순이다. "자서전격으로 읽어도 좋을 대목들이 수두룩하고 죽비로 등을 얻어맞는 듯한 따끔한 비판이 수두룩하고 노년의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의 미미하고 보잘 것 없는 생명들을 향한 예찬이 또한 음표처럼 수두룩하게 불려 나온다."라고 평했다. 찾아보니 산문집으론 <어른노릇 사람노릇>(작가정신, 2009)과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세계사, 2002)가 더 있다.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한양출판, 1994)로 읽은 기억이 난다. 어느새 16년 전이군...   

 

어제 갑작스레 타계한 이윤기 선생의 산문집도 추모의 뜻을 담아 (뒤늦게) 골라본다. 내가 아는 타이틀은 <무지개와 프리즘>(생각의나무, 1998)이 마지막이었다.   

<잎만 아름다워도 꽃대접을 받는다>(동아일보사, 2009/2000), <내려올 때 보았네>(비채, 2007), 그리고 <무지개와 프리즘>(미래인, 2007; 생각의나무, 2002/1998)이 우리에게 남겨졌다.   

2. 역사 

이덕일 소장이 고른 역사서는 저명한 중국사가 조너선 스펜스의 <룽산으로의 귀환>(이산, 2010)이다. 간단히 말하면 "장다이(張岱)라는 한족(漢族) 출신의 지식인을 통해 명·청 교체기의 역사를 조명한 책"이다. 관심도서로 점찍어 놓고 아직 구하지 못한 터인데 다시금 흥미를 갖게 된다. 사실 조너선 스펜스의 어느 책이건 읽을 만하다. 좀 값싼 표현이지만 역사서의 '블루칩'이라고 할까. 이미 열댓권이 출간돼 있는 가운데 최근에 나온 걸로는 <근대 중국의 서양인 고문들>(이산, 2009), <중국인 후의 기이한 유럽 편력>(서해문집, 2007)을 체크해놓는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추천한 철학서는 <하버드, 철학을 인터뷰하다>(돌베개, 2010)이다. 이 책의 오역에 대해선 이미 지적한 바 있고, 아직 수정판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추천도서로 올라온 건 의외인데, 추천자가 번역서를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으리라고 추정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아래와 같은 추천사에서 나로선 아이러니를 느낄 수밖에 없다. 물론 원저라면 이런 추천사에 값할 수 있다. 속히 개정 번역본이 나오길 기대한다.  

여기 인터뷰한 철학자들이 철학에 대하여 공통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관점에서 철학과 삶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한 다양성에고 불구하고 한 가지 공통점은 철학 고전을 읽으라고 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고전의 지혜를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는 지렛대로 사용하는 창조적 작업이 우리가 해야 할이라고 힘주어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철학적 사고가 가지고 있는 다양성을 창조적으로 풀어내는 과정을 독자로 하여금 지켜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철학에 대한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좋은 입문서 역할을 하고 있다. 의미있는 삶을 살려고 하는 모든 사람에게 일독을 권한다.

 

<하버드>보다 눈길을 끄는 책은 사실 알랭 바디우의 <철학을 위한 선언>(길, 2010)이다. 오래전 <철학을 위한 선언>(백의, 1995)로 번역됐던 책인데, 이번에 바디우의 제자이자 전문가라고 할 서용순 박사에 의해 재번역됐다. 믿을 만한 정본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한다. 바디우 철학 전반에 대한 역자의 해제도 포함하고 있어서 입문서로도 요긴할 듯싶다.   

4. 정치/사회  

강정인 교수가 고른 책은 강수돌의 <이장이 된 교수, 전원일기를 쓰다>(지성사, 2010)다. '이장이 된 교수'는 물론 저자인 강수돌 고려대 교수를 가리킨다. 이젠 제법 널리 알려진 일인데, 노동문제를 전공한 경영학 교수의 '삶의 경영'에 관한 이야기에 귀기울여 봐도 좋겠다. 소개는 이렇다.    

이 책은 경영학 교수이자 시골의 농부인 저자가 들려주는 살림살이 농사와 참된 삶의 경영에 관한 얘기다. 저자는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라고 주장한다. 방법론으로 ‘오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고 주문한다. 참된 삶의 경영, 곧 행복은 ‘인간성, 효율성, 생태성’이라는 세 가지 가치 사이에 ‘조화와 균형’을 도모하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행복은 자본주의가 요란하게 떠들어대는 ‘돈 많이 버는 삶’ 또는 ‘과시적인 소비에 몰두하는 삶’도 아니며, ‘자아실현’이나 ‘자아완성’ 등 서구 계몽주의가 이상화한 개인주의적 행복도 아니다. 이 세상을 초탈하여 ‘저세상에서의 구원’을 추구하는 종교적인 행복도 아니며, 인위적인 문명을 거부하고 현세초월적인 사유에 노니는 고고한 행복도 아니다. ‘온 사회가 불행한데 나 혼자 행복한 것이 어떤 면에서는 죄악일 수도 있다’는 그러한 공동체 지향적 삶이다

 

5. 경제/경영 

이준구 교수가 고른 책은 피터 번스타인의 <금, 인간의 영혼을 소유하다>(작가정신, 2010)다. 책은 예전에 나온 <황금의 지배>(작가정신, 2001)를 다시 펴낸 것이라 하고, 저자는 나로선 과문하지만 경제/금융분야의 전문 저술가라 한다. 이준구 교수가 팬을 자처할 정도로 탁월한 이야기꾼이라고도 하고. 소개는 이렇다.  

금은 철이나 구리와 다름없는 한낱 금속일 뿐이다. 그런데도 금은 우리의 영혼을 온통 뒤흔들어버릴 만큼 엄청난 마력을 갖고 있다. 그 동안 동서고금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금 때문에 미친 사람처럼 웃다가 지옥에 빠진 사람처럼 울부짖었는지 상상해 보라! 그 하찮은 금속을 얻기 위해 귀하디귀한 목숨까지 휴지조각처럼 버린 사람도 부지기수로 많았다. 이 책은 이와 같은 금의 엄청난 마력이 빚어낸 수많은 사건들을 얘기해 주고 있다. 피터 번스타인이 들려주는 금에 얽힌 이야기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흥미진진하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모아놓을 수 있었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황금의 지배'라고 하니까 폴커 라인하르트의 <탐욕의 지배>(말글빛냄, 2010)도 떠올리게 된다. '돈과 탐욕에 사로잡힌 인간의 인색함'이 책의 주제다.   

6. 과학 

최영주 교수가 추천한 책은 요로 다케시의 <유쾌한 공생을 꿈꾸다>(전나무숲, 2010). 곤충 채집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해 사회적 문제에 대한 비판까지 다루고 있는 책이라고.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곤충 채집을 열정적으로 좋아하여 그 연구를 희망하였지만 최종 진로는 결국 의과대학을 선택하고 해부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은퇴 후 평생 원했던 곤충 채집에 다시 발 벗고 나섰던 일본 지성인의 <유쾌한 공생을 꿈꾸다>는 곤충이야기만은 아니다. 이 책은 활동하는 지식인의 철학 에세이기도 하고 또 자연과학에 관한 이야기기도 하다. 아니 사회의 문제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해부하는 행동하는 비판가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론 다소 뒤늦게 출간된 데이비드 봄의 <전체와 접힌 질서>(시스테마, 2010)에 눈길이 간다(<현대물리학의 철학적 테두리>(민음사, 1991)로 번역됐던 책이다). 예전에 '신과학'이라고 한창 소개되던 시절에 자주 언급된 물리학계의 이단아. 양자물리학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을 제시한 책이니 나로선 판단하기 어렵지만, 여하튼 '데이비드 봄'이란 이름은 반갑다. 저자에 대한 소개는 이렇다.  

오펜하이머의 제자, 아인슈타인의 동료라는 사실처럼 봄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이론물리학자였다. 하지만 버클리 대학에서 공부하던 시절, 공산단에 가입하고 정치활동을 했던 전력이 매카시즘의 도마 위에 올랐고 졸지에 공산주의자로 내몰리며 평생을 망명과 이민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데이비드 봄은 학계의 변방에서 연구를 이어나가며 양자론의 대안 해석을 발표한다. 양자론의 아킬레스 건인 '숨은 변수'를 해결한 '숨은 변수 이론'으로 양자론을 설명하는 코펜하겐 해석의 대안 해석을 제시한 것이다. 

 

7. 예술 

김춘미 교수가 고른 책은 이용숙의 <춤의 유혹>(열대림, 2010). <춤에 빠져들다>(열대림, 2004)의 개정판이다. 추천의 이유는 이렇다.  

첫째는 최근 들어 나이와 직업을 불문하고 춤의 유혹을 느끼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 큰 관심 속에 책이 다시 읽힐 것이라는 데 있다. 둘째는 저자 역시 춤과는 멀었던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독문학과 음악학 공부를 한 분으로 어느 날 소설을 읽다가 그 안에 등장하는 춤 이야기가 재미있어 문화센터를 찾게 되었고, 그러면서 책까지 내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저자는 춤의 유혹을 느끼고 있는 독자의 마음을 잘 안다.(...) 그리고 아마 이 책에서 제일 먼저 읽는 게 좋을 듯한 인터뷰 코너가 책의 세 번째 장점이다. 춤과 더불어 사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담 았다. 다양한 일을 하면서 생활에 바쁜 사람들이 제각각 무슨 이유에서 어떤 통로로 춤을 접하게 되었고, 춤을 통해 어떻게 생활의 활력을 찾았는지, 이 코너에서는 그 생생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개인적으론 '춤의 유혹'이란 말이 떠올려주는 건 영화 <탱고 레슨>(1997)이다. 말 그대로 춤(특히 탱고)의 유혹에 바쳐진 영화였다.    

8. 교양 

이한우 기자가 추천한 책은 <후세 다츠지>(지식여행, 2010)이다. "일본인으로 일제하 조선인을 위해 봉사했던 한 인물을 재조명한 책"이라고 간명하게 소개된다. 그래도 몇 줄 더한 소개를 읽어보면 이렇다. 

1920년 5월 '전통적인 변호사'에서 '민중의 변호사'로 거듭나겠다는 '자기 혁명의 고백'을 선언한 후 암울한 일제 강점기에 양심적인 인권변호사로 활약한 후세 다츠지. 그는 전 생애에 걸쳐 핍박받는 민족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헌신했다. 이 책은 '후세 다츠지전'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던, 강연회의 강연록과 후세 다츠지의 행보와 사상에 대한 논고 두 편을 엮어서 만든 책이다.

내친 김에 일제 강점기에 대해서 되돌아보는 책들도 꼽아본다. 1910년의 기사들을 엮은 <1910년 오늘은>(서해문집, 2010)과 정혜경의 <조선 청년이여 황국의 신민이 되어라>(서해문집, 2010) 등이다. 후자는 식민지 시절 강제동원의 역사를 살피고 있는 책이다.    

9. 실용

손수호 논설위원이 추천한 책은 오경순의<번역투의 유혹>(이학사, 2010)이다. "우리 말과 글에 스며든 일본어의 실상을 파헤치고 있는 책". '번역투'보다 좀더 본질적인 문제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번역과 한국의 근대'를 다룰 수밖에 없는데, 김욱동 교수의 <번역과 한국의 근대>(소명출판, 2010), <근대의 세 번역자>(소명출판, 2010)을 통해서 문제의 윤곽을 그려볼 수 있겠다.  

10. 우리 시대 환경책

내 맘대로 고르는 책은 최근에 나온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동녘, 2010)가 인상적이어서 생명운동가 겸 '외로운 잡독가' 최성각의 독서잡설과 산문집으로 한다. "책은 나의 담요이고, 모닥불이고, 때로는 몽둥이였다"고 고백하는 저자에 대해서 소설가 김성동 선생은 이렇게 평했다.  

‘삶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막막한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하늘 밑의 벌레라면 꼭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치명적인 독주와도 같은 이 책을 읽는 이는 어지러워서 시원한 냉수를 찾게 될 것이다. 그러나 냉장고 속에 넣어둔 얼음물 또한 오염된 물이라는 것을 깨닫고 부르르 몸을 떨게 될 것이다. 이 책에 실린 몇 편은 안 읽는 것이 좋겠다. 너무나도 무섭고 끔찍하며 그리고 슬픈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생명운동가 최성각이 쓴 이 책은 어떤 공포소설보다도 무서운 책이다. ‘환경운동을 하는 글쟁이’라고 스스로 낮추고 있지만 최성각은 사상가이다. 이 기절초풍하고 혼비백산하는 정신의 대공황시대에 한 점 등불 든 생명사상가인 것이다.

특히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에는 부록으로 우리 시대 환경책 목록이 수록돼 있다. 저자가 고른 '환경고전 17권'과 '다음 100년을 살리는 141권의 환경책' 리스트다. 리스트만 일람해보는 것으로도 뭔가 채워지는 느낌이다... 

10. 08. 28.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으론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고른다. 괴테의 작품 중에서도 이제까지 가장 많이 번역된 작품이지만 최근 들어 또 3종 이상이 출간됐다. 비교해서 읽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문학동네판과 펭귄클래식판은 관행적인 제목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그대로 쓰고 있고, 을유문화사판은 전공자들의 문제제기를 반영하여 <젊은 베르터의 고통>으로 고쳤다. 이미 굳어진 제목이긴 한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젊은 베르터의 고통' 사이의 차이에 대해서 9월에 생각해볼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 가을은 또 왠지 슬퍼지기 시작하는 계절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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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2010-08-28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윤기 선생의 사망 소식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아직 젊은 나이고 더 좋은 업적을 내실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가 딸과 시작했던 셰익스피어 전집 번역 작업도 이렇게 허무하게 종지부를 찍게 되는 군요. 따님 혼자서라도 그 일을 마무리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의 책들을 많이 읽어본 건 아니고, 몇몇 번역본에 논란이 있다는 것도 알고는 있지만, 아무튼 그는 열심히 노력하신 분이고 서양문화의 이해에 대한 공헌도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데이비드 봄의 책은 <현대물리학의 철학적 테두리>라는 제목으로 민음사 대우학술총서로 번역되었던 책입니다. 오래된 새책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the implicate order'는 보통 '내함된 질서' 혹은 '내포 질서(민음사 판)'로 번역되었는데 '접힌 질서'는 새로운 번역용어로군요. 전 개인적으론 '내함된 질서'라는 말을 좋아합니다만... '접힌 질서'는 잘 와닿지 않습니다.^^ 아무튼 새번역본은 구 번역본보다 나은 점이 있겠지요.

독일어에 문외한인 저로선 '고통'이 '슬픔'보다 독일어 단어의 의미에 더 가까우리란 걸 부정할 도린 없지만, '슬픔'이 이미 한국어에 깊숙히 들어와 있는데 굳이 '고통'으로 바꾸어야할 이유를 이해하긴 힘들군요. '슬픔'이라는 단어는 '고통'이라는 한국어 단어가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게 합니다. 독일어의 원의가 무엇이었던 간에 베르테르가 느낀 것은 단순한 '고통'이 아닌 '슬픔'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로쟈 2010-08-28 12:51   좋아요 0 | URL
아, 책은 기억이 나는데, 저자가 '데이비드 보음'이라고 돼 있네요. 알려주셔서 감사. 말씀대로 슬픔이 고통보단 의미역이 넓지요. '고뇌'란 후보도 있는데, 이번 번역서는 '고통'을 골랐더군요. 차별화 전략이긴 한데, 번역에서도 유의미한 차이가 있는지는 읽어봐야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윤기 선생은 담배 때문에 건강이 안 좋으시단 얘기는 전부터 있었어요...

2010-08-28 1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28 1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죽이든 밥이든 마감을 훌쩍 넘긴 원고를 일단 보내놓고 다른 일로 넘어가기 전에 잠시 쉬는 손으로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고른다. 아, 벌써 8월이구나, 라고 쓰려다 보니, 그런 표현이 가장 안 어울리는 달이 또 8월인 것 같다. 어제도 덥고 오늘은 더 덥고, 하는 날의 연속이니까. 그냥 내일 강의준비도 하면서 쉬엄쉬엄 책이나 고른다. 가만히 노는 꼴을 못 보는 걸 보면 이럴 땐 꼭 시골 할머니 마음이다.  

1. 문학 

신경숙 작가가 추천한 문학분야의 책은 김은국의 <순교자>(문학동네, 2010)이다. "6ㆍ25전쟁을 배경으로 이념 대립으로 인한 사건을 통해 겪는 신앙과 양심의 갈등을 묘사한 책으로 한국계 최초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른 재미작가 김은국의 대표작"이라는 게 소개다. 사실 지난 학기에 이 작품을 교양강좌 커리큘럼에 집어넣었다가 을유문화사판이 품절되는 바람에 다루지 못했는데(덕분에 카뮈의 <최초의 인간>을 읽었다), 문학동네판이 새로 나와서 내년 봄학기에 다루려고 한다. 김욱동 교수의 연구서 <김은국>(서울대출판부, 2007)도 강의준비용으로 구비해두었는데, 왠일인지 보이지 않는다.   

2. 역사 

이덕일 소장이 추천한 역사분야의 책은 이언 아몬드의 <십자가 초승달 동맹>(미지북스, 2010). "저자는 ‘유럽(Europe)’이라는 어원이 ‘아랍(Arab)’처럼 서쪽이나 암흑, 뒤처짐을 뜻하는 고대 셈어 ‘에레브(ereb)’에서 왔다는 사실처럼 유럽과 이슬람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면서, 11세기 에스파냐에서부터 19세기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들이 동맹을 맺고 공동의 적과 싸웠던 사례를 5장에 걸쳐 전해주고 있다.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는 요즘말로 혈맹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많은 공동 전쟁을 치렀다."  

원제에서처럼 두 가지 종교로 갈려 있음에도 같은 동맹군으로 싸운 전력이 있다는 것은 유럽/아랍의 이분법이 얼마나 유효한지 회의를 갖게 만든다. 이러한 이분법의 무력화는 딱 데리다식의 전략인데, 저자의 최신작이 아니나 다를까 <수피즘과 해체>(2010)이다. 데리다와 이븐 아라비를 비교하고 있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고른 철학분야의 책은 마리에타 맥카티의 <나를 찾아온 철학씨>(타임북스, 2010). 원제는 '철학이 어떻게 당신의 삶을 구제해줄 수 있는가'. 조금 자세한 소개는 이렇다.  

저자 마리에타 맥카티는 철학 클럽을 운영하면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정답 없는 질문을 자신과 남들에게 던지면서 살아간다. 왜 정답 없는 질문을 철학자는 던질까? 정답이 없는 질문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창조적 사고를 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헬스 클럽에서 몸을 단련하듯이, 철학은 우리의 정신을 단련시킨다. 정신의 단련은 생각하는 훈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마치 근육이 성장하는 것은 파열의 고통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처럼 말이다. 맥카티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함, 의사소통, 시각, 유연함, 공감, 개성, 소속, 평온함, 가능성, 기쁨과 같이 지극히 평범하고 우리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주제들이다. 현대 문명의 기술들은 우리 육체의 편리함을 추구하다 보니, 정신적 건강함에 대한 배려를 상실한다. 정신적 건강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대화와 토론을 이 책을 통해서 할 수 있다

마치 짝을 맞춘 듯한 제목의 책은 알렉산드르 졸리앙의 <고마워요, 철학부인>(푸른숲, 2010). "장애를 운명으로 여기며 자기를 부정하고 세상을 외면하던 알렉상드르 졸리앙이 철학을 통해 어떻게, 얼마나 달라지게 되었는지를 편지 형식으로 풀어 쓴 독특한 철학 에세이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자신의 경험을 가감 없이 열어 보여준다. <고마워요, 철학 부인>은 단지 세상을 해석하는 철학이 아니라 자신을 변화시킨 깨달음으로서 철학을 드러내 보여주는 책"이라고 소개된다. 두 권 다 저자는 생소하지만, 그런 만큼 부담감 없이 읽어볼 수 있겠다. 옆집에 사는 철학씨, 철학부인을 만나는 것처럼.   

4. 정치/사회 

강정인 교수가 고른 정치/사회분야의 책은 박찬승의 <마을로 간 한국전쟁>(돌베개, 2010)이다. 소개기사를 스크랩해놓은 적이 있는데, "이 책은 마을에서 벌어진 갈등과 상호 학살을 중심으로 한국전쟁을 분석한 한국전쟁의 미시사이다. 이 책은 저자가 전라남도와 충청남도에 소재한 다섯 마을을 분석대상으로 삼아 10여 년간 해당 지역을 현장 답사하며 관련자 구술을 채록하고 희생자 씨족 가문의 족보까지 꼼꼼히 조사하여 얻은 연구 성과물"이다. 강정인 교수의 평은 이렇다.  

저자는 마을에 잠복해 있던 민간차원의 갈등이 남북한 국가권력의 침투와 맞물려 비극적인 충돌과 학살로 귀결되었던 역사적 사실을 되돌아보면서, 오늘날 남북관계나 한국사회에서 갈등을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가는 능력이 과연 얼마나 성숙했는가를 되묻는다.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이한 해에 출간된 이 책은 한국전쟁에 관한 기념비적 저작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런 구술사/미시사 책으로 작년에 나온 김영미 교수의 <그들의 새마을운동>(푸른역사, 2009)도 떠올리게 한다. 한편 저자의 다른 책으론 <한국 근현대사를 읽는다>(경인문화사, 2010)도 올해 나온 책이다.   

5. 경제/경영 

이준구 교수가 고른 경제/경영서는 역시 한번 소개한 적이 있는데, 군터 파울리의 <블루 이코노미>(가교출판, 2010)다. 제목대로라면 '청색 경제'를 주장하는 책인데, 소개는 이렇다.    

이 책의 저자 군터 파울리(Gunter Pauli)는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는 전 세계 지식인들의 모임인 로마클럽의 초창기 회원으로 활약했다. 로마클럽은 더 이상의 성장이 환경에 심각한 위협을 가져올 것임을 경고한 <성장의 한계>(Limits to Growth)라는 책을 출판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지구의 미래를 위해 더 이상의 성장을 자제해야 한다는 결론은 사람들을 큰 충격에 빠뜨렸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에서 태도를 180도 바꿔 성장과 환경 보호가 양립가능한 명제라고 말한다. 40여 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그의 생각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는 녹색경제(green economy)를 대체할 ‘청색경제(blue economy)’를 주창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녹색경제는 환경 보호라는 목표의 달성을 위해 기업과 소비자에게 많은 비용을 요구하는 문제점을 갖는다고 한다. 이에 비해 청색경제에서는 환경을 보호하면서 더 큰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지난번에 <블루 이코노미>와 함께 묶었던 책은 재닌 베니어스의 <생체모방>(시스테마, 2010)인데(http://blog.aladin.co.kr/mramor/3855767), 생체모방, 생태모방이란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라면 필히 챙겨두어야겠다.   

6. 과학  

최영주 교수가 고른 과학분야의 책은 로널드 넘버스의 <과학과 종교는 적인가 동지인가>(뜨인돌, 2010). 이미 적잖은 책들이 나온 주제인데, "이 책은 이러한 과학사의 전통적 통념이, 즉 과학과 종교가 끊임없이 대립하였다는 통념이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즉 과학적 관점 때문에 목숨을 잃은 과학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지동설의 갈릴레오나 진화론의 다윈의 신앙 이야기 등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를 통해 과학과 종교의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종교와 과학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책으론 최근에 나온 칼 세이건의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사이언스북스, 2010)도 떠오른다. '신의 존재에 관한 한 과학자의 견해'가 책의 부제다. 그리고 물론 작년에 나온 <종교전쟁>(사이언스북스, 2009)도 다시 떠오르고. 그러고 보니 이 책은 아직 구입하지 않았군...  

7. 예술 

김춘미 교수가 추천한 예술분야의 책은  이기영의 <민화에 홀리다>(효형출판, 2010). 드디어 처음 보는 책이 등장했다. "외교학과를 나와 발전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어느 날 도자기에 빠져 도예가가 된 필자가 그동안 사랑했던 민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거기에 현대적 미감으로 민화를 다시 창조해내고 있는 작가 서공임의 작품 80여 점이 함께 우리를 매료시키는 책"이라는 게 소개의 변이다. 민화에 대한 책은 그간에 아주 드물지 않았나 싶다. 우리 옛 그림에 대한 책으론 김정애의 <우리 옛 그림의 마음>(아트북스, 2010)이 최근에 나온 책이고, 작년에 나온 걸로는 오주석 선생의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월간미술, 2009)이 있다.  

8. 교양 

이한우 기자가 고른 교양분야의 책은 김동진의 <파란눈의 한국혼 헐버트>(참좋은친구, 2010)이다. 한국현대사와 긴밀한 연관이 있는 '파란눈'임을 예감할 수 있는데, '한국혼 헐버트'의 간단한 행적은 이렇다.  

한국 이름은 흘법(訖法) 혹은 할보(轄甫)였던 헐버트가 1886년 5월21일 벙커, 길모어 부부와 함께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조선에 도착한 것은 7월4일. 벙커나 길모어 부부 모두 청년 이승만의 개화정신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인물들이다. 이 시절 이승만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곧 대한민국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뜻이다. 이 때부터 20년간 한국에 살면서 헐버트가 보여준 활동의 범위는 말 그대로 눈부셨다. 교육자이자 한글학자, 역사학자이자 언론인, 선교사이자 독립운동가로서 다양한 활동을 펼친 그는 고종을 위해, 서재필을 위해 그리고 이승만을 위해 헌신적인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헐버트란 이름은 생소하지만 한국과 인연을 맺은 외국인 가운데 언더우드란 이름은 가장 유명하지 않을까 싶다. 찾아보니 몇 권의 책이 나와 있다. <언더우드가 이야기>(살림, 2005)도 있고, <조선견문록>(이숲, 2008)도 있다. <언더우드가 이야기>에 대한 소개는 이렇다. "4대에 걸쳐 한국에 살며 120년간 한국 근현대사의 영욕을 함께 한 언더우드 가문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선교를 위해 한국에 도착해 선교 및 교육, 의료 사업을 진행했던 언더우드 1세부터 얼마전 출국한 언더우드 4세까지, 한국을 사랑한 한 서양인 가문 이야기와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가 함께 펼쳐진다."  

9. 실용 

손수호 논설위원이 추천한 실용분야의 책은 매니 하워드의 <내 뒷마당의 제국>(시작, 2010)이다. 표지가 내용을 짐작하게 하는데, 가장 생소한 책이지만 소개는 가장 흥미진진하다.   

뉴욕에서 요리평론가로 이름을 날리던 저자가 로커보어를 자처하면서 푸드마일 실험에 도전했다. 직업으로 미뤄 음식에 일가견이 있고, 도심에 살면서 가장 가까운 곳의 식재료를 추구하니 자연스럽게 자신의 집 뒷마당에 눈길이 꽂혔다. 마당을 갈아엎어 농사를 짓고, 축사(畜舍)를 손수 지어 가금(家禽)을 기르면서 진행한 농장 6개월 프로젝트의 결과는? 참담한 실패다. 교본을 따라 해도 이상하게 작물은 자라지 않았고 가축은 쉽게 배반했다. 토네이도가 농장을 때려 쑥대밭을 만들었다. 그런 곡절 끝에 첫 만찬에 올라온 찬거리는 구운 닭 반 마리와 콜라도 그린(Collard green, 배추 비슷하게 생겼다), 토마토 세 조각. 땅의 정직함, 계란 하나와 가지 한 조각의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책 중간 중간에 배치된 사진이 실험의 치열함을 말해준다. 배수로를 확보하기 위해 가슴팍까지 구덩이를 파는 모습, 닭을 잡아 털을 뽑아 요리하는 장면 등이 서바이벌 게임의 치열함을 말해준다. 가장 극적인 후일담은 아내에 대한 감사의 글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음에도 히스와 제이크를 품에 안고 떠나지 않은 아내가 고맙다”. 마당에서 뛰노는 닭을 보기는커녕 고구마 하나 제 손으로 캐보지 않았으면서 식탐에 젖은 사람이 읽으면 쿵∼ 감동이 내려앉을 책이다. 

책의 부제가 '자급자족에 도전하는 뉴요커의 리얼 생태 서바이벌'. 이보다는 덜 격렬하지만 유사한 컨셉의 책으론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담은 다마무라 도요오의 <전원의 쾌락>(뮤진트리, 2010)도 있다. "도쿄에서 태어나고 자란 부부가 밭농사를 지어보겠다며 멀리 일본 알프스가 바라보이는 신슈지역 해발 850m 도부마치의 언덕에 집을 짓고, 말로는 다 표현하기 힘들 만큼 고된 초보 농사꾼의 수습 기간을 온 몸으로 겪어낸 몇 년간의 시간을 토마토 페이스트처럼 진하게 농축시켜 열두 달의 일상으로 유쾌하게 그려낸 것"으로 소개되는 책이다.   

한국책도 하나 얹자면 서화숙의 <마당의 순례자>(웅진지식하우스, 2009) "27년간의 기자생활로 독해진 마음을 풀고, 22년간의 아파트 생활을 끝내고,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서 진짜 삶을 찾은 동화작가이자 한국일보 기자인 서화숙의 에세이"이다. 부제는 '부암동 푸른 마당에서 누리는 고혹한 자유'. 부암동이란 동네는 언젠가 한번 가봤는데, 독특한 정취를 뽐내는 곳이었다(같은 서울인데도 '관광객'들이 많아서 불편하기도 하다고). 큼직한 도서관만 하나 있으면 금상첨화겠다... 

10. 루이스 멈퍼드  

내 맘대로 고르는 책은 루이스 멈퍼드(멈포드)다. 어차피 8월 마지막 주에 <메트로폴리탄 게릴라>(텍스트, 2010)의 저자인 박홍규 선생과 대담을 하게 돼 있어서(http://blog.aladin.co.kr/mramor/3933690) 일독해봐야 하는 책들이다. 내가 갖고 있는 건 이번에 나온 <유토피아 이야기>(텍스트, 2010) 외 <예술과 기술>(민음사, 1999)뿐이니 큰 부담은 없다. 하지만 전에 소개됐던 <역사 속의 도시> 등이 다시 나오면 좋겠다.  

10. 07. 28.  

P.S. 8월의 읽을 만한 고전은 카프카의 <소송>이다. 최근 들어 매년 새 번역본이 출간되고 있어서 '입맛'을 다시고 있던 차였다. 계획은 세 종의 번역서를 대조해서 읽고 뭔가 써보는 것인데, 잘 될지는 모르겠다. 오손 웰스의 영화 <심판>도 다시 보고 싶군. 답답한 여름에 갑갑한 영화를 보는 것도 이열치열의 한 가지일까... 

  

10. 0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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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자나 2010-07-31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뒷마당의 제국> 소개글을 보니, 미국 기자의 프랑스 남부 정착기 <프로방스에서의 1년>이 생각나네요. 약간은 낭만적이고 목가적인 전원 풍경이 묘사되어서 한 때 프로방스 붐을 일게 했다는... 사회학적 내지 생태학적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고찰한 책들을 비롯해서 "도시 지식인의 귀농기"라는 주제도 한 아름은 되겠군요.

로쟈 2010-07-31 09:38   좋아요 0 | URL
이번주 국내서에도 <홍천강변에서 주경야독 20년>이 있네요...
 

7월로 넘어가기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이 남아 있지만, 쾌락원칙을 따르는 마음은 또 얼른 '본격적인' 방학으로 넘어갔으면 한다. 방학이라고 해야 대학강의만 없을 뿐이고 다른 일은 두 배가 되지만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에 대한 '로망'을 아무래도 무시하기 어렵다. 그 7월에 읽을 만한 책을 골라본다. 여름이 독서의 계절이라면 7월은 그 정점이 아닐까. 이달부터는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선정한 책들의 추천사가 한 줄로 짧아졌다. 덕분에 나도 '슬림'한 페이퍼를 올려놓을 수 있겠다.   

1. 문학  

신경숙 작가가 고른 책은 마종기 시인의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비채, 2010). "모국어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으로 투명한 서정의 언어를 선보이는 마종기 시인의 시와 시작(詩作)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는 소개다. 시집은 지난 봄에 <하늘의 맨살>(문학과지성사, 2010)이 출간됐다. 루시드폴과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아주 사적인, 긴 만남>(웅진지식하우스, 2009)도 이를 테면 같이 읽어볼 만한 책이다.  

 

사실 마종기 시인의 전집은 환갑을 맞은 해이던 지난 1999년에 나온 바 있다. 이후로 시인은 세 권의 시집을 더 펴냈으니 '전집'이 무색하게 됐다. 칠순을 넘긴 시인의 열정이 아직 열일곱 살 소년 같다.   

2. 역사 

이덕일 소장이 추천한 책은 김시혁의 <통아프리카사>(다산북스, 2010). "월드컵이 열리는 아프리카 대륙의 역사를 우리 시각에서 평이하게 서술하여 읽어볼 만하다."는 것. 이건 안 읽어봐도 알 수 있는 추천 사유다. 아프리카사의 경우는 이미 한 차례 붐이 있었다. 분위기를 보니 '한비야 추천도서 목록'에 포함돼 베스트셀러가 된 루츠 판 다이크의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웅진지식하우스, 2005)가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한 권 더 보탠다면 존 아일리프의 <아프리카의 역사>(이산, 2002)도 통사다. 월드컵 기간에 아프리카의 역사 한 권 정도 떼는 것도 '에티켓'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추천한 철학분야의책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 2010). 알라딘에선 따로 소개가 필요없는 책으로 인문서 가운데는 올 상반기 최고 베스트셀러일 듯싶다. 속칭 '대박'이 난 책. 추천사유는 "일상생활에서 벌어질 수 있는 정의의 딜레마에 대한 도전적인 개설서로 매우 흥미로운 책"이라는 거. 아마도'하버드대 20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라는 소개가 독자들에게 어필하지 않았나 싶다. 같은 저자의 책인 <공동체주의와 공공성>(철학과현실사, 2008)에는 전혀 손길이 미치지 않는 것도 그런 심증을 갖게 한다. 어깃장을 놓자면 스테판 뮬홀의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한울, 2007)까지는 읽어주셔야 샌델을 포함한 '공동체주의'의 윤곽을 잡을 수 있다. 경로야 어찌됐던 간에 '정의'와 '도덕'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모을 수 있다면 지극히 다행스럽다.   

4. 정치/사회 

강정인 교수가 추천한 책은 <온 국민 주치의 제도>(시대의창, 2010). "우리나라 의료 체계의 문제점을 알기 쉽게 잘 지적하면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 추천사유다. 미국도의료 보험제도가 약간 바뀌었기에 좀 지나간 얘기일 수도 있지만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것은 역시나 마이클 무어의 <식코>(2008). 그리고 또 마침 출간된 책이 <또 하나의 혁명쿠바 일차진료>(메이데이, 2010)다. "쿠바에서 ‘건강형평성’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정치적인 것이 되었으며 이 개념을 제도화시켜 전 세계 유일한 일차의료제도를 만들어냈는가를 보여주는 책". 도입여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영리병원 문제를 다룬 책도 출간되길 기대해본다(영리병원의 문제점을 지적한 기고칼럼은 http://h21.hani.co.kr/arti/culture/science/27588.html 참조).    

5. 경제/경영  

이준구 교수가 추천한 경제/경영서는 <새뮤얼슨 교수의 마지막 강의>(YBM Sisa, 2010). "현대 경제학계의 거인 새뮤얼슨 교수의 경제 평론을 모아서 펴낸 책으로 대가다운 안목이 돋보이는 평론에서 경제에 관해 많은 것을 배우게 한다."고. '평론'이라고 하지만 분량상 '칼럼' 모음집 성격의 책이다. 특이한 건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라는 새뮤얼슨의 책이 국내에 소개된 게 별로 없다는 점. 대표작인 <경제학>이 1959년부터 몇 차례 번역된 듯싶지만, 작년에 19판이 나온 원저를 따라가기엔 역부족이다. 평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다고 해야 할까. 공저인 <위대한 경제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지식산업사, 2008) 정도가 아직 절판되지 않은 책이다(서문만 쓴 책이지 않을까 싶다).   

6. 과학 

최영주 교수가 고른 과학분야의 책은 빌 브라이슨의 <거인들의 생각과 힘>(까치, 2010). "자신의 분야 이상을 뛰어넘는 창조적 생각으로 이 세상을 이끈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이 추천사유다. 저자가 빌 브라이슨으로 뜨지만 그가 서론과 편집을 맡았고 나머지는 영국의 대표적인 과학자들이 쓴 책으로 영국 '왕립학회 창립 350주년 기념 과학 에세이집'이다. 왕립학회의 역사가 곧 근대과학사라면 '대단한' 일이긴 하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빌 브라이슨의 대표작 <거의 모든 것의 역사>(까치,2003)을 다시 손에 들 수도 있겠다. 시간이 없으신 문들은 일러스트레이션판으로. 시간이 남는 분들은 아예 원서로.    

7. 예술 

김춘미 교수가 추천한 예술분야의 책은 이태호의 <옛 화가들은 우리 땅을 어떻게 그렸나>(생각의나무, 2010). "옛날 화가들이 다양한 재료 위에 그려낸 우리 땅의 모습이 집성되어 매우 흥미롭고 유익한 책"이라는 평이다. 그러고 보니 흥미로운 주제고, 진작에 이런 책이 나오지 않은 게 이상하다. 미술사가인 저자는 <옛 화가들은 우리 얼굴을 어떻게 그렸나>(생각의나무, 2008)란 전작도 갖고 있다. '시리즈'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 싶다. 검색해보니 <미술로 본 한국의 에로티시즘>(여성신문사, 1998)이 절판된 책으로 뜬다. 때가 안 맞었던 듯한데, 포맷을 좀 바꾸면(표지라도) 재출간해도 되지 않을까싶다.   

8. 교양 

이한우 기자가 고른 교양서는 스티븐 로져 피셔의 <문자의 역사>(21세기북스, 2010)다. "지식 전달의 근본 매체인 문자의 탄생과 변화를 추적하며, 특히 한글의 세계적 위상을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는 게 추천사유다. <문자의 역사>란 타이틀로는 이전에도 두어 권 책이 나온 바 있지만, 가장 탄탄해 보인다.     

9. 교양 

손수호 논설위원이 추천한 교양서는 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의 <축구란 무엇인가>(민음인, 2010). "전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인 스포츠가 된 축구의 역사와 흥행에 성공한 비밀을 해독하고 있다"고. <끝나지 않는 축구 이야기>(북마크, 2010)나 <우리가 보지 못했던 우리 선수>(왓북, 2010) 같은 국내서도 눈에 띈다. 일단 '마크'만 해놓는다.    

10. 정신병 

내 맘대로 고르는 주제는 '정신병'이다. 그건 무엇보다도 '가장 유명한 정신병자'의 파울 슈레버의 회상록이 번역돼 나왔기 때문이다.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자음과모음, 2010). 프로이트부터 벤야민, 라캉, 들뢰즈/가타리, 지젝, 카네티, 샌트너 등의 지성인들을 매혹시킨 바로 그 회상록이다. 나는 영역본과 샌트너의 연구서만 갖고 있었는데, 좀 여유를 찾으면 이제 이 기이한 정신병의 세계로 들어가볼 수 있겠다.  

   

그러러면 들뢰즈/가타리의 <앙띠 오이디푸스>도 다시 나올 필요가 있다. 나도 사실 '슈레버'란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건 <앙띠 오이디푸스>의 서두 덕분이었다. 푸코가 재판기록과 진술을 편집해놓은 <나, 피에르 리비에르>(앨피, 2008)도 이 참에 같이 읽어볼 수 있겠다. 피에르 리비에르는 젊은 농부로 1835년 6월 3일, 프랑스 노르망디의 작은 농촌 마을에서 모친과 누이 그리고 남동생을 살해한 존속살해범이다. 절판된 책으론 엽기적인 '파팽 자매' 이야기를 다룬 <잔혹과 매혹>(이제이북스, 2005)도 같은 범주로 분류될 수 있는 책이다. 간단한 사건 개요는 이렇다.  

1933년 2월, 프랑스의 시골 도시 르 망에서 하녀로 일하던 한 자매가 주인 모녀의 눈알을 뽑아 죽인 사건이 발생했다. 눈알을 다 뽑은 뒤 자매는 망치로 주인 모녀의 머리를 때리고, 부엌칼로 몸통과 다리를 베었다. 일을 마친 자매는 범행을 은폐하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다락방에 있는 침대 위에 나란히 누웠다. 그리고 얼마 후에 들이닥친 경찰에게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순순히 체포당했다.



이 기이한 사건이 다양한 담론들을 생산해낸 건 당연한 일. 장 주네는 희곡 <하녀들>을 썼고(사진은 공연 이미지), 몇 차례 영화화되기도 했다. 여하튼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엔 이런 책들도 읽어볼 수 있겠다는 것.   

10. 06. 26.  

P.S. '7월의 읽을 만한 고전'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다. 이 역시 우연찮게도 존속살해 사건을 다루고 있군. 개인적으론 한겨레교육문화센터의 강의도 예정돼 있어서 다시 읽어봐야 할 작품인데, 이번엔 민음사판으로 읽어볼 생각이다. 7월초엔 라스콜리니코프가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는 <죄와 벌>, 그리고 7월말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그런 게 여름나기용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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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0-06-26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보면 전 '율 브리너'가 먼저 생각나곤 해요.(역시 활자보다 영상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티를 팍팍내고 있죠.)

로쟈 2010-06-26 15:32   좋아요 0 | URL
네, 그나마 요즘 학생들은 율 브리너가 누군지도 모릅니다...

sophie 2010-06-26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하녀들이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던 거군요..

로쟈 2010-06-26 15:32   좋아요 0 | URL
네, 영감을 받은 작품들이 더 있을 텐데, 소개된 건 장 주네뿐입니다...

2010-06-26 2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26 2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호모사케르 2010-06-28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겨레 문화센터에 수강신청했습니다. 어떤 책을 먼저 읽어야 하는지.. 오랜만에 들어와서 커리큘럼 안내가 어디있는지 모르겠어요..

로쟈 2010-06-28 15:23   좋아요 0 | URL
http://blog.aladdin.co.kr/mramor/3790488 를 참고하시길.^^ 그냥 갖고 계신 책으로 읽어도 무방합니다...
 

연이은 저녁 강의로 '파김치'가 되고 있다. 엊저녁엔 강연차 대구에 다녀왔는데, 예상보다 많은 청중(학생)이 모여서 애를 먹었다. 그런 경우엔 '남자의 자격'이 보여주듯이 '강사의 자격'이란 게 요구되지만 오전에 20명을 대상으로 한 강의를 하고, 오후엔 300-400명을 상대로 한 강연을 한다는 건 줄넘기를 하다가 갑자기 역도를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내가 역도를 해본 적이 있던가?). 홈쇼핑 방송의 게스트로 한번 나갔을 때도 느낀 거지만, 역할이 비슷해 보이고 같은 콘텐츠의 말을 하더라도 바뀐 장소와 상황은 다른 '기능'으로의 변신을 요구한다. 그럴 준비도 안돼 있지만 뭔가 변신하기엔 너무 피로한 요즘이다('피로파괴'란 말이 요즘은 너무 잘 이해된다). 그런 피로를 무릅쓰고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고르기로 한 건 오늘 오전까지 써야 할 주간지 원고가 다음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이유는 마땅한 책이 없어서다!). 그 빈틈을 막간 삼아 재빨리 골라놓도록 한다(기차와 버스에서 내내 잤더니 잠이 오지 않는 이유도 있군. 눈은 충혈된 상태에서 잠이 안 오는 그런 시츄에이션이다).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선정하는 '6월의 읽을 만한 책' 리스트가 평소보다 빨리 올라왔다.  

1. 문학 

소설가 신경숙씨가 고른 문학서는 룽잉타이의 <눈으로 하는 작별>(사피엔스21, 2010)이다. 오랜만에 외국소설(이 아니라 에세이)인데, 저자는 '중화권 최고의 사회비평가'로 꼽히는 인물이라고. 하지만 "이 책 <눈으로 하는 작별>은 냉철한 비평가의 눈으로가 아니라 두 딸을 가진 엄마의 입장, 또한 엄마이기 이전에 딸의 입장에서 이미 세상을 뜬 아버지 그리고 이제 다시 작별해야 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쓰여진 그 자신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마음이 담긴 인생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는 소개다.     

작별에 관한 책이라고 하니까 떠오른 건 소설가 김형경의 에세이 <좋은 이별>(푸른숲, 2009)이다. 베스트셀러이니까 더 소개할 건 없겠다(나만 안 읽었다고 보면 될까?). 개인적으론 보부아르가 쓴 <작별의 예식> 영역본을 주문해놓고 기다리고 있다(일시품절이어서 지체되고 있다). 사르트르의 죽음에 부쳐 그녀가 한 말. "그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았지만 나의 죽음이 우리를 다시 합치지는 못할 것이다." 실존주의 철학자다운 '쿨한 이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별 뒤에 남는 사람들은 무얼까? 그들도 '생존자'일까? 얼마전에 테렌스 데 프레의 <생존자>(서해문집, 2010)에 대한 포스팅을 했는데, 저자가 1장 '소설 속에 나타난 생존자'에서 다루고 있는 몇 편의 소설들이 눈길을 끌었다. <페스트>, <수선공>,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연옥>, <암병동> 등이 그가 거론하고 있는 작품이다. <페스트>는 내달에 다시 읽은 계획이어서 제외하면 눈에 띄는 건 버나드 맬러머드의 소설 <수선공>동인, 2009)이다. 존재 자체도 모르고 있던 작품인데 바로 주문해서 어제 손에 넣었다.   

흥미롭게도 1913년 러시아 키예프에서의 반유대주의 재판을 소재로 하고 있다. 원작은 1966년에 나왔고 번역대본이 된 2004년판에는 <엄청나게 시끄럽게 믿을 수 없게 가까운>(민음사, 2006)을 쓴 젊은 작가 조너선(조나단) 사프란 포어의 서문이 붙어 있다. 그는 '좋은 책'과 '위대한 책'을 구분하면서 "위대한 책은 우리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이지만 좋은 책은 우리 문화가 원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작품을 '위대한 소설'로 분류한다. <수선공>과 같이 배송된 책은 솔제니친의 <암병동>(홍신문화사, 2009). 번역은 좀 미심쩍은데, 강의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기 위해 주문한 책이다.   

2. 역사  

이덕일씨가 고른 역사분야의 책은 백범흠의 <중국, 외교관의 눈으로 보다>(늘품, 2010). 추천 이유는 이렇다. "저자는 아무리 많은 북방 민족이, 아무리 오랫동안 중원을 정복했어도 최후의 승자는 중국역사, 중국문화 자체라는 관점을 시종 유지한다. 중국 역사, 중국 문화는 거대한 용광로이기 때문에 이민족의 정복 역사도 모두 용해시켜 종국에는 중국 역사·문화로 재창출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중국의 미래에 대한 전 세계적 논쟁에 중요한 시사점이 될 것이다." 저자는 현재 외교부 APEC 과장으로 돼 있다.   

얼른 드는 생각은 중국 내부의 시점에 본 중국이 모습과 비교해보면 좋겠다는 것인데, 일단 자오팅양의 <천하체계>(길, 2010)가 떠오른다. 지난달에 서평을 쓰려다가 미뤄둔 책이기도 하다. 저자가 말하는 핵심은 '천하'와 '세계'의 차이인데, 그는 천하를 '무외(無外)'로 정의한다. 곧 '바깥이 없음'이다. 강의를 듣는 중국학생에게 물어보니 원래 '천하'란 말에 그런 뜻이 들어있지는 않다고. 일상어 감각으론 그렇다는 얘기일 것이니, 자오팅양은 '천하'를 새롭게 '발명'한 셈이기도 하다.   

더불어 눈에 띄는 책은 자오쯔양 중국공산당 총서기 최후의 비밀 회고록 <국가의 죄수>(에버리치홀딩스, 2010). 단연 눈길을 잡아끄는 책이다. 간단한 소개.   

1989년 6월 4일 중국 톈안먼 민주화 운동은 우리의 5·18 광주 학생운동을 떠올릴 만큼 중국이 민주화·현대화로 가는 과정에서 일어난 중요한 사건이다. <국가의 죄수>는 톈안먼 운동 때 광장에 모인 학생들을 독려하고 무력 진압에 반대하다 덩샤오핑에게 숙정된 당 총서기 자오쯔양이 가택 연금 중에 과거를 돌아본 회고록이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고른 철학 분야의 책은 이진우의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서>(책세상, 2010). 제목은 비유적 의미가 아니다. 말 그대로 발 벗고 찾아나선 철학 기행문이다. 

니체는 자신에게 맞는 장소를 찾아서 떠돌아다니는 정신적 육체적 방랑아였다. 뢰켄, 베를린, 라이프치히, 나움부르크, 루체른, 질스마리아, 로마, 밀라노, 사크로몬테, 오르타 호수, 제노바, 토리노. 이 도시들의 공통점은 모두 유럽에 있다는 것, 그 중에서도 독일, 스위스, 이태리에 있다는 것 외에 니체의 삶의 흔적이 뭍어 있는 곳이다. 이진우는 이 발자취를 직접 온 몸으로 2년여에 걸쳐서 추적해나갔다. 직접 차를 몰고 네비게이션의 도움도 없이 찾아 나서기도 했다. 유럽에서 미아가 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약간의 모험을 즐기면서 글을 써나간다. 극단적 상대주의를 주장하는 니체를 박사학위논문으로 쓴 저자다운 자세다.  

'니체'가 언급된 김에 상기하게 되는 책은 하이데거의 <니체1>(길, 2010). 이 또한 하이데거식의 '니체를 찾아서'라고 할 수 있을까? 비트겐슈타인 전공자인 이승종 교수의 <크로스오버 하이데거>(생각의나무, 2010)도 내친 걸음에 같이 읽어볼 수 있겠다. 지금 형편에 이런 책들을 읽으려면 말 그대로 어디 물건너 가야 할 것 같긴 하지만...   

4. 정치/사회 

강정인 교수가 고른 정치/사회 분야의 책은 안동일의 <새로운 4.19>(예지, 2010). 제목 그대로 "이 책은 1960년 4·19 혁명에 참가했던 지은이가 4·19 혁명의 시발점인 2월 28일 대구 학생 데모로부터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 하야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기록을 정리한 것이다." 저자는 <새 천년과 4.19>(삶과꿈, 1999)도 오래전에 출간한 바 있다. 지난 4월에 나온 <4.19와 모더니티>(문학과지성사, 2010)도 같이 읽어볼 만한 책.   

 

5. 경제/경영 

이준구 교수가 고른 경제/경영서는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에 관한 책 <무엇이 당신을 만드는가>(위즈덤하우스, 2010). 편저자는 드러커의 책을 다수 우리말로 옮긴 드러커 전도사이다.   

이 책 전반에 걸쳐 드러커에 대한 편저자의 짙은 애정과 존경을 느낄 수 있다. 드러커의 책을 여러 권 번역하고, 면답하는 과정에서 시쳇말로 그의 ‘광팬’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이 책의 장점은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춰 드러커의 사상세계를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언어의 수준을 넘지 않는 평이한 서술이 독자들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만든다. 공연히 어려운 서술로 독자들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책이 너무나 많은 현실에서 이런 책을 보면 반갑기까지 하다.

편저자가 쓴 다른 책으로 <한권으로 읽는 피터 드러커 명저 39권>(21세기북스, 2009)도 있다. 그 중 한 권일텐데, 개인적으로 눈길이 가는 건 '피터 드러커 사상의 원전'격이라는 <경제인의 종말>(한국경제신문, 2008)이다. "1939년 미국에서 초판이 출간된 후 전세계에서 다양한 언어로 번역출간되었다. 이후 약 40권에 이르는 드러커의 모든 저서들은 자신이 <경제인의 종말>에서 분석하고 예측한 것을 시간의 검증을 거쳐 그 신뢰성과 타당성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드러커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하니 또 호기심이 발동한다. 드러커의 책 가운데 <새로운 현실>(시사영어사, 1989)이 내가 처음 읽은 것이지만 요즘은 찾아볼 수 없다.   

6. 과학 

최영주 교수가 추천한 과학분야의 책은 크리스틴 라센의 <스티븐 호킹>(이상미디어, 2010). 표지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이 저명한 과학자의 전기다. "학생 때 호킹 박사의 강의를 자주 접했고, 현재 천체물리학자가 된 이 책의 저자는 과학자로서의 호킹 박사의 업적뿐 아니라 그의 경이로운 삶에 관한 이야기를, 인간 호킹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자 하였다." 초등학생용 전기들 외에도 두어 권 정도는 더 참고할 수 있겠다.   

7. 예술 

김춘미 교수가 추천한 예술분야의 책은 전용복의 <한국인 전용복>(시공사, 2010). 부제가 “옻칠로 세계를 감동시킨 예술가의 꿈과 집념의 이야기, 한국인 전용복”이란 걸 알고 나서야 대충 내용 짐작이 되는 책이다. 특이한 건 저자가 전용복 자신이라는 것.  

“나는 조선의 칠쟁이다”를 자랑스럽게 세계에 알리고, “목숨을 건다”는 말을 진심으로 하는 이 분은 2008년 9월 6일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옷칠 시계를 만들어 8억 4천만 원에 팔았고, 일본의 자존심 메구로가조엔을 복원해낸 장본인이다. 그런데 그가 살아온 흔적을 읽으니 정말 목숨을 걸고 진정으로 일을 열심히 해냈다. 전용복이 있어서 나도 한국인이라는 데 다시 한번 자부심을 가지게 된다. 어린시절 학교를 그만두고 생존을 위해 해야 했던 많은 일들을 항상 자신을 더 성장하게 만드는 계기로 삼았던 전용복은 그 자체로 훌륭한 근본을 가진 인간이다.

그런 장인정신을 컨셉으로 한 책이라면, <우리 시대의 장인정신을 말하다>(북노마드, 2010)를 같이 끼워넣을 수 있겠다. 유홍준(문화유산), 김영일(음악), 배병우(사진), 정구호(패션), 김봉렬(건축), 조희숙(음식) 등 우리시대 대표적 장인들의 고백을 담고 있다.    

 

8. 교양 

이한우 기자가 고른 교양서는 이종근 외, <한국의 옛집과 꽃담>(생각의나무, 2010)이다. 전통 한옥을 '옛집'으로도 부른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이 경우는 '옛날집'의 '옛집'이 아니다). 소개는 이렇다.  

지방언론사 기자로 오랫동안 지역문화에 관한 저술을 발표해온 저자의 이 책은 단연 눈길을 끈다. 우선 우리 옛집의 담과 굴뚝 등 한옥 중에서도 사람들이 별로 눈길을 주지 않던 부분에 시선을 가져간다. 서울에서는 창덕궁 대조전, 운현궁과 석파랑, 한규설가 등을 살핀다. 지방에서는 전라도의 김성수 생가와 별장, 소쇄원, 경상도의 도동서원, 범어사 등의 구석구석을 돌아본다.

찾아보니 한옥(옛집)과 꽃담에 관한 책들이 몇 권 더 있다. 사실 한옥에는 살아본 적이 없어서 옛집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별로 감이 오지 않는다. 조금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 책을 구해놓고 한번 알아봐야겠다.   

9. 실용 

손수호 논설위원이 고른 실용서는 허시명의 <막걸리, 넌 누구냐?>(예담, 2010). 추천자는 미리 이렇게 적었다. 

오해 없기 바란다. 이 책은 권주가를 부르지 않는다. 알코올을 칭송하는 내용은 더욱 아니다. 막걸리에 대한 인문적 민속적 접근이다. 파란으로 점철된 막걸리의 빛과 그림자를 드러내고 있다. 요즘 말로 ‘올 댓 막걸리’라고나 할까. 술을 잘 못하는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막걸리의 과거와 현재의 이력을 처음으로 정리한 책”이라고 보증을 섰다. 

찾아보니 아예 <막걸리 기행>(한국방송출판, 2010)이란 책도 나와 있다. 나는 술을 잘 못하는 편이지만 술꾼들의 푸짐한 이야기에는 가끔 넋을 놓는 편인데, 한겨레21에 '내가 만난 술꾼'을 연재하고 있는 임범 기자가 2008~2009년 중앙선데이에서 ‘씨네알코올’이란 제목으로 연재한 칼럼을 묶고, 라거 맥주와 칼바도스, 테킬라 라벨 보는 법, 칵테일 만드는 법 등, 술에 관한 각종 팁을 더해서 펴낸 <술꾼의 품격>(씨네21, 2010)도 술에 관한 책에서라면 빼놓을 수 없겠다. "이십대엔 술을 많이 마셨고, 삼십대엔 폭음했고, 사십대에 술을 즐기다가 지금은 애주가가 됐다"는 게 저자의 이력이고 보면 믿어볼 만한 책이다.   

10. 민주주의  

때가 때인 만큼 이달의 주제는 '민주주의'로 고른다. '시민을 위한 민주주의 특강'을 엮은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휴머니스트, 2010)가 출발점이자 참조점이다. 한홍구 교수의 <지금 이 순간의 역사>(한겨레출판, 2010)을 통해서 '한국 민주주의 100년을 돌아보다'를 보충해볼 수 있겠다. '민주공화국에서 국가를 다시 생각하다'란 박명림 교수의 강연은 <한국 1950 전쟁과 평화>(나남출판, 2002)를 통해서 보충하고. 어쩌면 2010년 또한 2009년 못지 않은 불행한 해로 기록될지 모르겠다. 박명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불행하게도 우리 국민의 많은 수는 지금 국가의 공공성이 실종됨으로써 정치적, 법적으로는 시민권 시민성 국민성이 인정받고 있지만,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한국의 통계를 살펴보면 이런 현상이 너무도 심각하게 우리 앞에 다가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의 국민, 하나의 시민이라고 말하기조차 힘든 정도예요. 두 개의 국민, 두 개의 시민으로 분화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91족)  

이러한 현실이 무엇으로 귀결될 것인가? 나는 문명의 붕괴와 파국 외 다른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10. 05. 27.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은 카뮈의 <페스트>(책세상)를 고른다. 고등학교 읽었으니 거의 30년 전에 읽은 작품이다. 어차피 강의도 예정돼 있어서 필독하게 됐다. 그참에 허버트 로트먼의 전기 <카뮈, 지상의 인간>(한길사, 2007)도 훑어볼 생각이다. 올리비에 토드의 <카뮈>(책세상, 2000)과 함께 카뮈에 대한 가장 상세한 전기다. 그나저나 우리의 '페스트'는 언제 끝장을 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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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0-05-27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홈쇼핑 방송의 게스트로 한번 나갔을 때도 느낀 거지만 → !!!! 뭘 파셨어요? 잘하셨을 듯 ㅎ

중국관련 세 책 모두 관심이 가는데 특히 국가의 죄수를 읽어보고 싶네요. 무엇이 당신을 만드는가 랑 두권은 보관함에 쓱~

로쟈 2010-05-28 10:28   좋아요 0 | URL
저야 물론 책을 팔았지요.^^;

길위에서 2010-05-28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으로 하는 작별>은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입니다 ^^;;
6월에도 읽고 싶은 책이 한가득이군요~

로쟈 2010-05-28 11:00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자전적인 소설인 줄 알았어요.^^;

비로그인 2010-05-28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스트는 한번 터지면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손쓸 수 없는 것 아닐까요? 차라리 예방이 중요하고 더이상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는 조처를 취하는 게 최선인 듯한데요. 그런 조처는 의사들이 하는 것이겠고요.

로쟈 2010-05-29 18:56   좋아요 0 | URL
이미 벌어진 일인걸요.^^;

노이에자이트 2010-05-28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앙일보사의 현대문학전집을 상자속에서 아직도 안 꺼냈나요? 그 전집 제1권이 버나드 맬러무드<새로운 인생>입니다.러시안 유대인이라서 포그램 당시의 사건을 소재로 쓴 게 <수선공>이지요.

로쟈 2010-05-29 18:56   좋아요 0 | URL
'아직도'가 아니고, '반영구적'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5-29 22:31   좋아요 0 | URL
영화좋아하시니 로버트 레드포드가 나오는 야구영화 '내츄럴'을 아시겠지요.그 영화 원작이 맬러무드 소설이에요.

로쟈 2010-05-30 20:15   좋아요 0 | URL
ㅎㅎ 그렇담 초면은 아니네요.^^

펠릭스 2010-05-28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로쟈 2010-05-29 18:56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
 

푸른 5월이 시작됐지만, 개인적으론 푸르죽죽이다(이러다가 '광산'으로 가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다). 잠시 하늘 한번 쳐다보는 기분으로 이달의 읽을 만한 책들을 골라본다. 읽을 수 있는 책과 읽고 싶은 책의 차이가 너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1. 문학 

신경숙 작가가 고른 문학분야의 책은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문학동네, 2010)이다. 알라딘 마을에서야 따로 소개가 필요 없는 책이다. 신형철 평론가는 이렇게 평했다(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7235.html).   

이 소설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분류하자면 ‘수용소 문학’쯤 된다. 어떤 사람들은 위대한 이성을 가진 인간의 근대 프로젝트가 아우슈비츠(나치 수용소)와 굴락(소련 수용소)으로 귀결된 것을 냉소한다. 냉소주의는 위험하지만 냉소 자체는 성찰의 촉매가 되기도 한다. 확신에 차 있을 때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4대강을 살려야 한다는 확신에 차 있는 사람들은 낙동강 강바닥의 돌멩이보다도 덜 생각할 것이다.) 수용소는 우리가 ‘생각’을 하기 위해 부단히 되돌아가야 할 상처이고 바로 거기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출발점인지도 모른다. 탁월한 수용소 문학은 과거의 기록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반성이고 미래의 연습이다. 프리모 레비가 그랬고 솔제니친이 그러했다. 수용소의 문학은 문학의 수용소를 해체할 수 있다.

수용소 문학의 '고전'으로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열린책들, 2009)도 꼽아두고 싶다. 단 5권짜리 완역본 대신에 1권만을 '세계문학'에 포함시킨 것은 너무 임의적이란 불만도 적어둔다.  

 

덧붙여, <제1권>과 <암병동>도 재출간되거나 새 번역본이 나오면 좋겠다.    

2. 역사  

이덕일씨가 고른 역사서는 나가사와 가즈토시의 <돈황의 역사와 문화>(사계절, 2010)이다. 돈황에 대한 배경 설명이 좀 필요하겠다(돈황이란 말은 윤후명의 소설 <돈황의 사랑> 덕분에 인구에 회자되지 않았나 싶다).  

실크로드의 천산북로(天山北路)와 천산남로가 갈라지는 교통의 요지에 있는 도시가 돈황(敦煌)이다. 예부터 동서 문명의 교류지였던 돈황 근교에 막고굴(莫高窟)이 있다. 천불동(千佛洞)이라고 불릴 정도로 수많은 석굴들이 있는데 현재는 812개가 남아 있다. 1900년 왕원록(王圓籙)이라는 도사가 막고굴 17굴에서 오호십육국 시대부터 북송 시대에 이르는 문서와 그림 등 5만여 점에 달하는 유물을 발견했다. 당시 구미열강의 침탈에 시달리던 청 조정이 이 유물들의 가치에 주목하지 못하는 사이에 영국의 오럴 스타인과 프랑스의 폴 펠리오같은 인물들이 이를 헐값에 사들여 자국으로 가져갔다. 이는 일종의 문화약탈이지만 그 바람에 세계에는 돈황학이라고 불리는 하나의 학문 분야가 형성되었다.

그런 '돈황학'의 입문서격으로 읽을 수 있겠다. 찾아보니 마쓰오카 유즈루의 <돈황 이야기>(연암서가, 2007)도 돈황학 입문서의 '고전'이라고 소개되는 책이다. 중국쪽 학자로는 리우진바오의 <돈황학이란 무엇인가>(아카넷, 2003)가 소개돼 있다. 보다 전문적인 성격을 지닌 책인데, "동황학 전문 연구가인 지은이는 이 책에서 중국인의 시각에서 영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 등 세계 각지에 분포해 있는 돈황 관련 자료와 연구를 집대성하여 저술해 돈황학 전반에 대한 체계적 이해를 돕고 있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고른 철학분야의 책은 이종은 교수의 <정치와 윤리>(책세상, 2010)다. 정치철학 범주에 속하는 책인데, 소개는 이렇다.  

이 책은 칸트를 위시한 의무론자, 밀로 대표되는 공리주의자, 홉스, 로크, 루소로 대표되는 사회계약론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정치권력에 대한 도덕적 정당화를 시도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의무론자는 행위의 동기와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공리주의자에게는 행위결과의 극대화가 중요하다. 홉스는 절대군주, 로크는 작은 정부, 루소는 일반의지에 기초한 정부를 옹호한다. 각 이론의 논의의 방식은 다르지만, 우리는 민주주의적 정치권력 견제에서 공통점을 발견한다. 오늘날 어지러운 정치현실을 보면 마키아벨리가 왜 영악한 여우와 용맹한 사자의 덕목을 군주에게 요구하는 지가 잘 설명된다.

정치철학적 화두이기도 한 공화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조승래 교수의 <공화국을 위하여>(길, 2010)과 대표적인 현역 철학자들의 <민주주의는 죽었는가?>(난장, 2010)가 요긴한 참조점이 돼줄 듯싶다.   

4. 정치/사회 

강정인 교수가 추천한 책은 <다극화체제, 미국 이후의 세계>(시대의창, 2010)이다. 저자들은 9.11 테러와 최근의 경제 위기 등으로 미국의 패권이 약화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EU, 중국, 인도, 러시아가 포스트 아메리카 시대의 헤게모니를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다극화세계가 개막되면서 세계사가 다시 한 번 공생공영의 다극화와 약육강식의 신제국주의 사이에서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고 본다." 소위 '다극화체제'에 대한 분석과 전망을 담고 있는 책이다. 비슷한 전망을 다루고 있는 책으론 파라그 카나의 <제2세계>(에코리브르, 2009)가 먼저 떠오른다. 미국이 소련의 전례를 따르고 있다고 경고하는 드미트리 오를로프의 <예고된 붕괴>(궁리, 2010)도 나란히 읽어봄직하다.  

5. 경제/경영 

이준구 교수가 추천한 경제분야의 책은 최용석의 <아이폰과 아이패드 애플의 전략>(아라크네, 2010)이다. 추천자의 소개는 이렇다. 

애플사의 야심작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세상을 바꿔놓고 있다. 이 변화의 바람은 IT 산업뿐 아니라 전체 사회, 전체 경제에 휘몰아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이와 같은 급격한 변화를 지각변동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 책은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확산과 함께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를 여러 각도에서 심도 있게 설명해 주고 있다. 우선 우리가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식에 일대혁명이 일어날 것을 예언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영화관과 음식점을 찾아가고, 책을 사서 읽고, 쇼핑을 즐기는 방식에도 변화가 올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보통신혁명은 우리 삶을 통째로 바꿔놓고 있다. 이 혁명의 선두에서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가 흥미진진하게 설명되어 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 사용자가 아니어서 '변화의 바람'이 어떤 것인지 실감하고 있지 못하지만, 몇달 전에 나온 화제작 <구글드>(타임비즈, 2010)와 함께 '트렌드'를 점쳐보는 데 참고할 수 있을 듯하다. '우리가 알던 세상의 종말'이라고 하지 않는가! 거기에 <디지털 혁명의 미래>(청림출판, 2010)까지 얹으면, 애플과 구글,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 삼각편대가 이끌고 가는 '디지털 미래'가 어떤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있겠다.  

6. 과학 

최영주 교수가 추천한 과학분야의 책은 마르쿠스 베네만의 <지능적이고 매혹적인 동물들의 생존게임>(웅진지식하우스, 2010)이다. 책의 내용은 이미 제목이 잘 요약해주고 있다.     

우리가 즐겨먹는 오징어의 바닷속 최면술에 대하여, “계획은 심플하게, 결정은 단호하게, 공격을 재빠르게”, 카멜레온의 필사적 살생기를, 공격의 정석 정공법을 갈매기류의 북방가넷의 청어 사냥법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생물학을 전공한 기자의 눈으로 면밀히 관찰한 동물들의 약육의 세계를 과학적인 근거로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다. 인간상식을 뛰어 넘는 동물들의 생존법은 책의 제목처럼 매혹적이고, 지적이고, 교묘할 정도이다.

'인간상식'을 뛰어넘는다고 하지만, 그러한 생존술에서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인간들도 많다는 사실 또한 역설적이지만 '상식'에 속한다. 같이 읽어볼 만한 책은 마티 크럼프의 <감춰진 생물들의 치명적 사생활>(타임북스, 2010). 저자는 <멍청한 수컷들의 위대한 사랑>(도솔, 2007)이 소개된 바 있는 양서류 전공의 행동생태학자라고. 머리말에서 저자는 이렇게 적고 있다.  

<멍청한 수컷들의 위대한 사랑>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학술적인 논평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동식물 관계에 얽힌 이야기들이다. 내가 목표로 하는 일도 자연 세계를 올바로 인식하도록 도와주자는 것이다. 간간이 내가 인간이 아닌 동물, 식물, 세균, 심지어 곰팡이도 마음에 의식적인 목표를 갖고 행동한다는 암시를 하는 듯도 하고(학자들은 이것을 목적론이라 한다), 혹은 내가 다른 동물에게 인간적인 특징을 부여하고 있는 듯도 할 것이다(학자들은 이것을 의인화라 한다). 하지만 그런 의도보다는 단순히 세상 모든 것을 서로 연관 지어보고, 이 멋진 자연사를 나누고 싶다는 열정으로 내가 좀 오버하고 있다고 생각해주기 바란다.

어디 가나 '멍청한 수컷들'은 차고 넘치는 모양이다. 가벼운 읽을거리고 보아도 좋겠다.   

7. 예술 

김춘미 교수가 추천한 예술분야의 책은 유예진의 <프루스트의 화가들>(현암사, 2010)이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음미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인데, 추천자 소개는 이렇다.  

2008년의 <그림과 함께 읽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매우 훌륭한 책이었는데 너무 잘 만들어서 책이 두껍고 비싸지는 바람에 추천을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유예진이 펴낸 <프루스트의 화가들>은 프루스트를 처음 만나도 낯설지 않게 안내를 잘 하면서 프루스트의 소설 내용과 필연적 관계에 있는 그림들 역시 엄선해서 넣었다. 아름다운 5월에 걸맞는 책이다. 혹시 여력이 있으신 독자는 2008년의 책과 더불어 이 책을 읽으면 더욱 좋으리란 생각이 든다.

물론 그러한 '여력'을 가늠해보기 전에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생갹의나무, 2005)란 질문을 먼저 통과해야겠다. 알랭 드 보통의 질문이다.   

8. 교양 

이한구 기자가 고른 교양서는 폴 브뢰머의 <이라크에서 나의 생활>(한국국방연구원, 2010). 한국국방연구원에서 펴낸 책이라는 점이 눈에 띄는데, 추천자의 소개는 이렇다.  

이 책은 이라크에서 후세인 정권이 붕괴한 후 미국식 민주정부 수립의 임무를 맡고서 2003년 4월부터 1년 4개월 동안 주이라크 미국대사 겸 연합임시행정기구 총독으로 활동했던 폴 브뢰머의 생생한 보고서다. 현지 사정뿐만 아니라 미국내 다양한 입장들과 충돌하고 설득하며 다른 나라에서의 국가건설이라는 과제를 추진해가는 브뢰머의 임무를 마치 화면으로 보듯 생생하게 살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기회다. 국제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 이후 이라크의 내부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는데도 큰 도움을 주고 미국이라는 사회가 대외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처리해가는 지를 아는데도 많은 정보를 준다.

더불어, 추천자는 이 책이 1945년 8월부터 1948년 8월 15일까지의 미 군정 기간을 겪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 많으리라고 말한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저자는 미제국의 '이라크 총독'이었으니까. 더불어, 사병의 시각에서 본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는 올 아카데미영화제 작품상 수장작인 <하트로커>도 참조해볼 만하다. 거기에 '한국전쟁에서 이라크전쟁까지 세계 역사를 조종한 CIA의 모든 것'을 폭로하고 있는 팀 와이너의 <잿더미의 유산>(랜덤하우스코리아, 2008)도 좀 무겁지만 올려놓고 싶다. 소장하기엔 부담스럽고 도서관에서 언제 빌려봐야겠다.   

9. 실용 

손수호 논설위원이 추천한 책은 서영남의 <민들레 국수집의 홀씨 하나>(휴, 2010)이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대접하는 서영남 전직 수사 이야기'란 부제가 책의 내용을 말해준다.  

저자 서영남은 이 책을 통해 ‘민들레 국수집’을 열게 된 사연과 민들레 가족의 우정을 담고 있다. 눈여겨 볼 것이 독특한 운영 방침이다. 정부 지원을 받지 않고, 프로그램에 공모하거나 후원회를 조직하지 않으며, 부자들의 생색내기 돈은 받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 오직 우리 이웃들의 자발적 나눔과 정성으로 식탁을 차려내고 민들레 가족을 보살핀다. 곤경한 사람을 돕는 데 이유는 없다. 봄이 되면 노랗게 꽃을 피우는 민들레처럼. 정부나 부자, 후원회에 대한 독선적인 시각이 거슬리긴 하지만 이게 나눔의 본령인 게 어쩌겠나.  

"소유로부터의 자유,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기쁨,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투신. 사람들은 그에게서 이타행을 실천하는 성자의 모습을 본다."라고 추천자는 적었다. 국수 말아주는 전직 수사 이야기라니까 떠오르는 건 다일공동체의 밥 퍼주는 최일도 목사이다. 찾아보니 <행복하소서>(위즈덤하우스, 2008)까지가 근황이다.   

10. 노무현  

내 마음대로 고르는 이달의 주제는 1주기를 맞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이미 많은 책이 나왔고, 이달에도 아마 더 나올 것이다. 그가 꿈꾼, 하지만 실패한 지점에서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이미 '노무현'이라는 기표는 인간 노무현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것이 한국사회의 '분노 자본'을 모두 끌어담을 컨테이너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10. 05. 02.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은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이다. 언제부턴가 그의 가장 유명한 단편이 된 듯싶은데, 들뢰즈를 비롯해서 많은 철학자들이 이미 주석을 붙인 바 있다. 평론가 복도훈도 <눈먼 자의 초상>(문학동네, 2010)의 서문에서 다시금 이 소설의 주인공 '바틀비'를 호명하고 있어서 인용한다.    

너그럽고도 참을성 있는 중년의 부르주아 신사이자 법류사무소 사장인 화자가 필경사 바틀비에게 이것저것 시키고 묻는다. 서류 좀 검토해주게, 필사를 부탁하네, 안 한다는 건가, 우체국에 다녀와주게, 자, 포목 직원은 어떤가, 자네의 직업을 책임져주지, 자네 고향이 어디인가, 식사 좀 들게, 대답 안 할 건가, 대체 자네는 누구인가. 그러나 돌아오는 바틀비의 대답은 매한가지.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 소설에서 수십 번 반복되는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는 바틀비가 앉아 있는 구석진 책상으로부터 조그맣게 들려오다가, 서서히 그를 둘러싼 법률사무소라는 소우주를 잠식하는가 싶더니, 마침내 옥사에 수감된 바틀비가 아사(餓死)한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바틀비의 망령, 분신처럼 주변을 배회한다. 물론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는 그 말이 발화되고 울리는 장소인 사무소와 옥사,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말에 특별한 위협도 타격도 주지 않는다. 그것들은 여전히 흔들림없이 거기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바틀비의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I would prefer not to)'처럼 그렇게 모든 것을 변화시킬 '상투어(formula)'가 우리에게도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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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쟌느의 느낌
    from avecjang's me2DAY 2010-05-03 14:21 
    갑-을 관계에서 을에게 주어지는 노예계약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내 속의 '바틀비' 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고 중얼거린다.
 
 
비온새벽 2010-05-02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기분이 푸르죽죽하시다니 가슴이 아프네요. 사실은 저도 방금 대형 행거가 무너져서 기분이 거무죽죽합니다 ^^ 저는 로쟈님의 추천도서중에는 숨그네와 애플의 전략을 이번달 목표로 삼아봐야겠어요.

로쟈 2010-05-02 22:20   좋아요 0 | URL
자업자득입니다.^^;

주니다 2010-05-02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야 봄다운 날씨 같아요. 금방 더워져서 여름으로 접어들겠지만..<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시간을 시절로 번역하기도 하나봐요? 한 글자 차이가 주는 뉘앙스가 아주 묘하게 혓바닥을 간지럽히는군요. ㅋㅋ

로쟈 2010-05-02 22:21   좋아요 0 | URL
네, 그래도 '잃어버린 시절'은 좀 어색하죠. 적응은 잘 하셨나요?^^

미지 2010-05-02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만 푸르죽죽한 건 아니었군요.. 오랜만에 날이 좋아 아이한테 미안해서 뒷산에 데리고 갔다가 로쟈님께서 전에 추전하셨던 <우리 안의 과거>란 책을 좀 읽었는데, 숙연해져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앞부분 읽어가는 중이지만, 이 시대의 역사 문제에 대한 테사모리스 스즈키의 매우 진중하고도 세심한 시각이 놀랍더군요...!
"분노자본"은 로쟈님의 용어인가요? 흥미로운데요^^ 언제 해설 들을 기회가 있길 빕니다.

로쟈 2010-05-02 22:53   좋아요 0 | URL
'분노 자본'은 지젝의 '민주주의에서 신의 폭력으로'란 글에서 가져왔습니다. <우리 안의 과거>는 정작 저는 못 챙겨둔 책인데요.^^;

노이에자이트 2010-05-02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틀비라는 사나이의 정체가 뭘까...정말 읽어도 읽어도 묘한 느낌을 주는 소설입니다.공포영화로 만들어도 될 것 같기도 하구요.일종의 돌아이같기도 하구...마지막 장면을 보면 좀 불쌍하다는 느낌도...한 번 또 읽어볼까요.제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 중 한 편이에요.배경이 월스트리트인데 금융공황 당시를 배경으로 해서 바틀비를 다시 써본다면? 하는 생각도 듭니다.

로쟈 2010-05-02 23:28   좋아요 0 | URL
영화화되긴 했는데, '공포영화'인지는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