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와 소크라테스에 관한 책들을 뒤적이다가 저녁을 먹은 후에 잠시 손에 든 책은 오늘 마이리스트로 올려놓은 피터 노왁의 <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문학동네, 2012)다. 주로 어제와 그제 주문한 책들이 저녁녘에 한꺼번에 배송됐는데(오늘도 열 권이 넘는다), 그중 한 권이다. 찾아보니 그제 이정전 교수의 <시장은 정의로운가>(김영사, 2012)와 새로 나온 <햄릿>(열린책들, 2012)과 같이 묶어서 주문했었다.

 

 

 

'전쟁과 포르노, 패스트푸드가 빚어낸 현대 과학기술의 역사'라는 부제가 사실 책의 핵심을 알려주기에 일독은 옵션인 책이다. 조금 부연해서 "음탕하고, 사람을 살상하고, 건강을 해치는 '나쁜 것들'이 현대문명을 발전시켜 왔다!"고 주장하는 책 정도로 정리해두면 된다. 그래도 잠시 머리를 식힐 겸 조금 읽어보다가 번역상의 '미스'가 눈에 띄기에 적어둔다. 그전에 책에 대한 설명이 조금은 필요하겠다.

 

일단 CBS의 과학기술 전문기자인 저자가 이런 책을 쓰게 된 배경이다. "사실 나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에게서 이 책에 대한 영감을 받았다. 바로 패리스 힐튼이다." 알다시피 한때 섹스 비디오 파문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힐튼호텔 상속녀다. "순순히 인정하긴 부끄럽지만, 어쨌거나 나의 뮤즈는 재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호텔 상속녀였다"고 저자는 순순히 고백한다. 이젠 기억에도 가물가물하지만, 때는 2004년이었다고 한다. 문제의 스캔들이 터진 해가.

 

 

물론 저자인 노왁도 문제의 비디오에 관심을 가졌는데, 이유는 좀 남달랐다. 비디오 화면이 초록색이라는 점이었으니까. 그건 "조명 없이 어둠 속에서 야간 투시 기법으로 촬영했기 때문"이고, 그는 섹스 기술이 아니라 비디오 촬영 기술에 호기심이 생겼다. 이 야간 투시기법은 어떤 기시감을 안겨주었는데, 며칠 뒤에야 어디서 본 것인지 떠올리게 된다. 바로 CNN으로 생중계됐던 걸프전이다. "공중에서는 대공포화가 빗발치고 땅에서는 무시무시한 폭발이 잇따르는 장면이 눈에 선하다. 이라크가 몰락하는 걸 지켜보는 내 뇌리에 박힌 영상은 힐튼의 섹스 비디오와 마찬가지로 온통 에메랄드빛이었다."(16쪽)

 

 

이 발견이 말하자면 저자에겐 '유레카!'였다. 그는 "걸프전쟁과 섹스 비디오의 관계를 생각하다 문득 군에서 개발한 기술을 가져와 소비재에 접목시킨 다른 예는 뭐가 있을가 궁금해졌"고, 더 많은 사실을 캐냈다. 전쟁과 포르노그래피 기술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내가 읽은 대목. 

 

두 산업 간에 이런 유대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는 건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적에 맞서 싸우고 전쟁에서 이기려는 욕망은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가장 강한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본능 인간의 기본욕구인 동시에 중요한 행동을 이끌어내는 동기이기도 하다.(17쪽)

 

두 산업은 물론 '전쟁산업'과 '포르노산업'이다. 이 두 산업에 관련된 '두 가지 본능'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가장 강한 본능"이기에 서로 유대 관계가 있다 하더라도 놀랄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한데 인용문에서 '두 가지 본능'을 굵은 글씨로 강조한 건 바로 앞 문장에서는 "적에 맞서 싸우고 전쟁에서 이기려는 욕망" 하나만 나오기 때문이다. 하나를 빼먹은 듯해서 원문을 구글에서 찾아봤다.

 

The technological savvy of these two indurstries should come as no suprise. Lust and the need to fight or compete are two of the most primitive and powerful human instincts. They are our basest needs, a duo of forces that drive many of our key actions."

"두 산업 간에 이런 유대 관계"는 "The technological savvy of these two indurstries"를 옮긴 것인데, 'technological'도 옮겨주는 게 좋았겠다. 'technological savvy'는 느낌엔 '기술적 짝짝꿍' 정도가 어울릴 듯싶다. 원문에서 두 가지 본능으로 지시된 건 "Lust and the need to fight or compete"다. 거기서 'Lust(성욕)'는 누락하고 'the need to fight or compete'만 "적에 맞서 싸우고 전쟁에서 이기려는 욕망"이라고 옮기는 바람에 앞뒤 호응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옮기면, "성욕과 전쟁욕구, 혹은 경쟁욕구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면서 강력한 두 가지 본능이다."

 

 

이 두 가지 욕구에 물론 하나가 더 추가돼야 한다. 바로 식욕이다. 그렇게 해서 '와꾸'가 맞춰졌다. 전쟁, 섹스, 그리고 음식. 이게 '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란 제목이 뜻하는 바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여전히 식량을 얻고 섹스를 하기 위해 싸우고, 섹스를 하려고 음식과 선물을 이용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어느새 서로 교차하는 이 세 가지 고유 본능에 집착하게 되었다." 저자는 이것을 '부끄러운 삼위일체'라고 부른다. 저자가 의도한 '현대 과학기술의 역사'는 어느새 '인간의 역사'를 넘보고 있는 형국이다...

 

12. 03. 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점심을 먹고 외출하기 전 자투리 시간에 무얼 할까 잠시 생각하다가 '로쟈의 한줄'을 적기로 한다. <모비딕>의 한줄이다. 지난주 구입도서 가운데 가장 반가운 책의 하나는 멜빌의 <모비딕>(작가정신, 2011) 보급판이었는데, 아셰트클래식판으로 나온 <모비딕>(작가정신, 2010)은 일단 너무 두껍고, 너무 무거워서 휴대가 불편했다. 게다가 참고로 들어가 있는 삽화들이 본문과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참고용'이었기에 빠져도 독서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이번 보급판에선 삽화를 빼고 페이지당 행수를 두 줄 늘렸다(25행에서 27행으로). 그렇게 해서 전체 페이지수는 817쪽에서 718쪽으로 100쪽이 줄었다. 기분상 무게는 절반으로 줄어든 느낌이다. 같은 번역본을 보급판으로 다시 구한 이유인데, 책에 대한 집중도는 더 좋아질 듯해서 마음에 든다. <모비딕>의 세계문학전집판들이 경쟁 번역본으로 나오기 전까지는 '정본' 역할을 해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 가지 '옥에 티'가 교정돼 있지 않기에 지적해놓는다. <모비딕>의 핵심장 중의 하나인 36장 '뒷갑판' 말미에서 에이해브 선장이 이번 항해의 목적이 흰고래 모비딕을 잡는 데 있다고 말하고 유일한 반대자인 일등항해사 스타벅까지 설득하는 장면으로 부하 선원을 압도하는 그의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에이해브의 완력 앞에 일, 이, 삼등 항해사가 모두 움츠러드는 장면은 이렇게 기술된다.  

그 강력하고 긴박하고 신비스러운 선장의 태도 앞에서 세 항해사는 기가 꺾여 움츠러들었다. 스터브 플래스크는 눈길을 돌렸고, 정직한 스터브는 눈을 내리깔았다.(아셰트판, 249쪽; 보급판, 219쪽) 

이 대목의 오류는 누구라도 지적할 수 있다. 기가 꺾인 '세 항해사'에 대한 묘사인데, '스터브-플래스크-스터브'라고 해서 '스터브'만 두 번 호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의 '정직한 스터브'는 '정직한 스타벅'으로 고쳐져야 한다. 참고로, 원문은 이렇다(내가 참고한 건 펭귄판이다).   

The three mates quailed before his strong, sustained, and mystic aspect. Stubb and Flask looked sideways from him; the honest eye of Starbuck fell downright.

완성도 높은 번역이기에, 이 정도 흠도 교정이 되면 좋겠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바로 이어지는 37장 '해질녘'의 첫 문단에도 한 줄이 첨가되면 좋겠다.  

나는 하얗고 탁한 자국을 남긴다. 내가 항해하는 곳이며 어디에든 창백한 물, 그보다 더 창백한 얼굴, 질투심 많은 파도는 내가 남긴 자국을 삼키려고 옆으로 비스듬히 부풀어 오른다.(아셰트판, 251쪽, 보급판 221족) 

이 대목의 원문은 이렇다.  

I leave a white and turbid wake; pale waters, paler cheeks, where'er I sail. The envious billows sidelong swell to whelm my track; let them; but fisrt I pass

차이는 원문의 마지막 문장 'let them; but fisrt I pass'(뒤따라오라지, 하지만 내가 먼저다)가 번역문에는 누락됐다는 점. 몇 단어 안 되지만, 에이해브의 성격을 말해주는 부분이어서 나름대로 중요한 대목이라는 생각이다. 방대한 분량에 견주면 사소한 오류에 지나지 않지만, 더 정밀한, 더 좋은 번역본으로 나오는 게 모두에게 더 좋은 일이지 않겠는가... 

11. 05. 19.


댓글(7) 먼댓글(0) 좋아요(5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1-05-19 13:55   좋아요 0 | URL
"뒤따라오라지, 하지만 내가 먼저다."
짧지만 아주 멋진 번역인데요. 나중에 다른 번역자들은 이 문장을 어떻게 옮겼는지 각 번역본들을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겠는데요 ㅎㅎ^^

로쟈 2011-05-19 20:49   좋아요 0 | URL
다른 번역본은 확인해보지 못했고, 그냥 제 식으로의 번역입니다.^^;

비로그인 2011-05-19 18:08   좋아요 0 | URL
흑흑 저는 양장본을 싫어해서 못마땅해하며 샀는데 이런 식으로 보급판이 나와 뒤통수를 치다뇨ㅜㅜ

로쟈 2011-05-19 20:50   좋아요 0 | URL
알면서 얻어맞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일즈 2011-05-19 21:29   좋아요 0 | URL
백경을 원서로 보려고 이해가 잘 안되면서 여러번 읽다 보니까 이 생각 저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 중에 하나가 시점이 이스마엘에서 인디언 피쿽으로 바뀌면 어떨까하는 겁니다. 포경선 선원과 선장에 대한 묘사도 많이 달라지겠지만 백경을 바라보는 관점도 매우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 로빈슨 크루소를 다소 관점을 바꿔 프라이데이 입장을 넣은 방드르디라는 소설을 즐겁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혹시 그런 소설이 이미 나왔다면 알고 싶고요^^

로쟈 2011-05-19 22:44   좋아요 0 | URL
'되받아쓰기'를 말씀하시는군요. <모비딕>은 아직 못 들어봤습니다. 하지만 <모비딕> 자체가 상당히 도전적이긴 합니다. 그렇게 해석하는 경향도 있구요...

pyenjea 2011-06-13 09:4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작가정신 편집부입니다. 정성을 기울였는데도, 저희가 미흡한 부분이 있었네요. 말씀해주신 부분 역자와 상의해서 다음 쇄에서 수정하기로 했습니다. ^^ 로쟈 님께서 찾아주신 덕분에 책의 오점을 수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지금보다 더 잘 다듬어진 모비딕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에드워드 윌슨의 <바이오필리아>(사이언스북스, 2010)에 실린 최재천 교수의 추천사('생명도 알아야 사랑한다')를 읽다가 멸종된 '황금두꺼비'가 궁금해 찾아봤다. 최교수가 코스타리카 고산지대에서 아스텍개미의 행동과 생태를 연구하던 시절 보았다는 두꺼비다.  

어느 날 밤 숲속에서 나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오렌지색의 황금두꺼비를 보았다. 어른 한 사람이 제대로 들어앉기도 비좁을 정도의 물웅덩이에 언뜻 세어 봐도 족히 스무 마리는 넘을 듯한 수컷 두꺼비들이 마치 우리 옛이야기 '선녀와 나무꾼'에 나오는 선녀들처럼 멱을 감고 있었다. 그들에게 방해가 될까 두려워 숨소리마저 죽인 채 나무 뒤에 숨어 그들을 관찰하는 내 모습은 영락없는 나무꾼이었다. 다만 그들이 수컷 선녀들이란 게 아쉬울 뿐이었다. 그들은 고혹적인 몸매를 뽐내려는 듯 다리를 길게 뻗기도 하고 물웅덩이에 첨벙 뛰어들어 헤엄을 치기도 했다. 그 해 1986년 나는 그들을 딱 두 번 보았고 그게 내가 그들을 본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이렇게 생긴 두꺼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60년내 중반에 처음 이들을 발견한 미국의 양서파충류학자는 "온몸이 거의 형광에 가까운 오렌지색으로 뒤덮인 작고 섬세한 두꺼비를 보고 누군가가 그 두꺼비를 통째로 오렌지색 에나멜 페인트 통에 담갔다 꺼낸 것은 아닐까 의심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을 과학자들이 마지막으로 본 게 1989년 5월 15일이고, 국제자연보호연맹은 2004년 그들이 완전히 절멸한 것으로 보고했다고 한다.  

이 황금두꺼비 이야기는 최 교수의 에세이집 <열대예찬>에도 나온다고 하므로("이럴 줄 알았으면 그들이 벗어놓은 옷가지라도 한두 개 숨겨 둘 걸"이란 한탄을 적어놓았다) 나도 한번 읽었을 텐데, 잊고 있었다. 생명사랑을 주제로 한 책의 서두에서 다시 읽게 되니까 느낌이 또 다르다. 지구상에서 이젠 다시 볼 수 없는 두꺼비라니! 

과학자들은 지금과 같은 수준의 환경 파괴가 지속된다면 2030년경에는 현존 동식물의 2퍼센트가 절멸하거나 조기 절멸할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금 세기말에는 절반이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들의 빈 자리를 아마도 늘어만 가는 '인구'가 채울 것이다. 쓰레기들과 함께. 생명사랑에는 동의하지만, 인간사랑에는 조금 머뭇거리게 되는 일요일 밤이다... 

10. 11. 07.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0-11-07 2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9 0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이버의 '지식인의 서재'에서 '소설가 황석영의 서재'를 구경했다(http://bookshelf.naver.com/story/view.nhn?intlct_no=43). 책상에 <강남몽>(창비, 2010)도 놓여 있어서인지 '황석영'이란 글자에 자동적으로 눈길이 갔다.  

  

약 4500여권의 책이 단정하게 꽂혀 있는 서재인데, 약간 어두워보이는 것만 제외하면 나로서도 꿈꾸어볼 만하다. 흥미를 끈 것은 '내 인생의 책'이라고 작가가 꼽은 책들. 질베르 뒤랑의 <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들>(문학동네, 2007), 페르낭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까치글방, 1995-1997), 테리 이글턴의 <우리 시대의 비극론>(경성대출판부, 2006) 등 묵직한 인문서들이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소설만 읽지 말고 그런 책들도 좀 보라는 권유로도 읽힌다.  

작가의 '작업비밀'은 그 다음에 선정된 책들에서 암시된다. 블라지미르 프로프의 <민담의 역사적 기원>(문학과지성사, 1990), 김태곤의 <한국무가집>(집문당), 그리고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펴내는 <한국구비문학대계> 등이 그것이다. 모두 구비문학과 관련된 책들이다.  

러시아의 저명한 민속학자이자 문학이론가 프로프가 거명이 돼 반가운데, <민담의 역사적 기원>에 대한 작가의 설명에는 오류가 있다. 저자의 성별이 바뀐 것(때문에 이런 '교정' 페이퍼도 올려놓는다)

꽤 오래된 책인데 제가 참 애용했던 책이에요. 프로프라는 여류 인류학자의 명저로 제가 정말 좋아하는 책이에요. 소련 연방에 있는 여러 부족들의 민담 설화를 분석해 놓은 책이에요. 여기 보면 이야기의 구조가 어떤 공통성과 창의성, 그리고 보편성을 가지는지 잘 기술해 놓았습니다. 우리 민담 설화의 근원이 시베리아 무속과 굉장히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 민담의 원형이 여기에도 많이 나와 있습니다.

 

'블라지미르'란 이름에서도 알 수 있지만, 저자는 '여성 인류학자'가 아니라 남성 인문학자다(국역본의 역자가 여성이긴 하다). 기억의 착오가 아닌가 싶다.  

<민담의 역사적 기원>과 함께 프로프의 대표작이자 가장 유명한 책은 <민담의 형태론>이다. 무슨 문학서도 아닌데 번역서만 네댓 종이 나와 있는 책이다(분량이 좀 얇긴 하다) 

 

그 외 <구전문학과 현실>(교문사, 1990), <러시아 민담연구>(한국외대출판부, 2005) 등이 더 소개돼 있으며, <희극적인 것과 웃음에 대하여>는 번역중인 것으로 안다. 한편, 작가가 애독서라고 밝힌 <민담의 역사적 기원>은 현재 절판된 상태인데, 이 참에 재출간되기를 기대한다...  

10. 07. 06.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푸른바다 2010-07-06 21:27   좋아요 0 | URL
저도 방금 구경하고 왔습니다.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의 책을 2권이나 추천한 것도 이채롭네요. 대표적인 오역서로 소문나 있는 데리다의 <해체>가 추천서 목록에 있다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소설가의 상상력은 오역도 극복할 수 있는 모양입니다.^^ 좋은 번역서들도 금새 절판되 버리고 마는 요즈음 오래전에 번역되었던 이 오역서가 아직도 절판되지 않고 있는 것도 신기합니다. 아마도 데리다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던 역자가 한국인들이 알기 쉬운 방식으로 창작하지 않았나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프로프의 번역은 괜찮은가요? 그리고 어떤 책을 가장 먼저 읽어야 할까요?

로쟈 2010-07-06 22:01   좋아요 0 | URL
추천도서란 게 그냥 서가에서 눈에 띄는 책 몇 권 주워섬기는 게 아닐까 싶어요.^^; 민담을 제가 좋아하는 편이 아니어서 프로프를 정독한 적은 없습니다. <민담의 형태론>은 워낙에 서사학 책들에 잘 정리돼 있었죠. 원전 번역은 근래에 나왔는데, 확인해보지 못했습니다...

파파 2010-07-07 22:36   좋아요 0 | URL
<민담의 역사적 기원> 이 책과 <러시아 민담연구> 이 책은 서로 다른 책인가요? 같은 책인 줄 알고 대신할 수 있겠다했는데..^^a

로쟈 2010-07-07 22:57   좋아요 0 | URL
네, 별개의 책입니다.
 

엊저녁에 알라딘 공부방 2기 강의가 있었다. '인문학으로 마음의 가난을 벗어나는 법'이 주제였고, 나는 <로쟈의 인문학 서재>(산책자, 2009)에 들어 있는 '늙어가는 느릅나무들'이란 글과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열린책들, 2008) 끝부분에 나오는 한 대목을 자료로 이용했다(이제 보니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가져온 걸로 오기했다). 그 대목은 옮겨놓는다. 밑줄긋기에 더 적합해 보이지만 '로쟈의 한줄'로 분류해놓으면서. 물론 그 한 줄은 '노르웨의는 어떻게 되어 갑니까?'를 염두에 둔 것이다.  

 

전쟁(2차대전)이 터지자 나는 평화나 위안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찮은 존재가 되지 않으려면 어려운 시절에 인간이 필요로 하는 자부심을 찾아야 하겠기에, 다시 크레타의 산으로 갔다. 언젠가 나는 일요일 예배가 끝난 다음 성당 입구의 계단에 앉아서 남자다운 용감성을 찾는 방법에 대해 젊은이들에게 얘기하는 늙은 노병을 보았다. 「가능하다면 두려움을 부릅뜬 눈으로 빤히 보아라.」 그가 말했다. 「그러면 두려움은 겁이 나서 도망칠 테니까.」 그래서 나는 지팡이를 들고, 어깨에 배낭을 메고 산으로 갔다. 독일군이 노르웨이로 쳐들어가 정복하려고 싸우던 무렵이었다.

어느 날 대낮에 프실로리티 기슭을 건너가려니까 사나운 목소리가 높은 곳에서 들려왔다.
「어이, 여봐요, 잠깐 기다려요! 하나 물어봅시다!」
머리를 들어 보니 어떤 남자가 커다란 바위에서 뒤로 물러나 고꾸라지듯 내려왔다. 그는 바위에서 바위로 성큼성큼 내려왔고, 그의 발밑에는 돌멩이들이 굴러 요란한 소리가 나서 산 전체가 그와 함께 무너지는 듯싶었다. 그가 늙고 덩치가 큰 양치기라는 사실을 이제 나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를 기다렸다. 무얼 알고 싶어서 저렇게 극성일가? 나는 궁금했다.

그가 가까이 와서 바위 위에 섰다. 겉으로 드러난 가슴은 털이 나고 김이 피어올랐다.
「이봐요, 노르웨이는 어떻게 되어 갑니까?」 그는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그는 어느 나라가 곧 정복되리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노르웨이가 어떤 나라이고, 어디에 위치했으며, 어떤 사람들이 사는 곳인지 전혀 몰랐다. 그가 분명히 알았던 사실이라고는 자유가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었다.
「상황이 좋아졌어요, 영감님, 좋아졌어요.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내가 대답했다.
「다행이구먼.」 성호를 그으면서 늙은 양치기가 큰소리로 말했다.
「담배 태우시겠어요?」 내가 물었다.
「제기랄! 내가 뭣하러 담배를 피워요? 나는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노르웨이만 별일 없다면 그만이지!」
그 말을 하고 그는 지팡이를 휘두르며 양 떼를 찾아 기어올라갔다.

그리스의 공기는 정말로 신성하고, 자유는 틀림없이 여기서 탄생했으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세계의 어느 농부나 양치기도 자유를 위해 싸우는 미지의 머나먼 나라의 시련에 대해서 그토록 고민하고 실감나게 의식하지는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자유란 자기가 낳은 딸이나 마찬가지여서, 노르웨이의 투쟁은 그 그리스 양치기의 투쟁이기도 하다.

10. 05. 20. 

P.S. 크레타의 양치기 노인이 아직 살아있다면 분명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이봐요, 한국은 어떻게 되어 갑니까?" 비록 한국이 어떤 나라이고, 어디에 위치했으며, 어떤 사람들이 사는 곳인지 전혀 모르더라도 말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ge02 2010-05-20 13:21   좋아요 0 | URL
엊저녁 인문학 공부방에 참여했었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인용했다는데, 왜 전혀 기억나지 않을까....늙어가는 뇌를 탓했더랬습니다...ㅎㅎ <영혼의 자서전>도 읽어봐야겠네요. 수줍은 소년같은 첫인상은 의외(!)였습니다.....글에서 느껴지던 악동같은 분위기가 강의 중반 이후 살아나더군요.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치유불가능한 호모사피엔자들의 연대를 위한, 지속적인 글쓰기를 기대합니다.

로쟈 2010-05-21 09:40   좋아요 0 | URL
네, 제가 조르바와 카찬차키스를 혼동했어요.^^ 제가 '소년'과 '악동' 사이에서 진동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