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과 사유 - 김우창과의 대화
김우창 외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7월
품절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내 마음속에 늘 있었던 것은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영문학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영문학을 이 질문을 통해서 바라보아온 것이 나의 독특한 문제의식이라면 문제의식이 아닌가 합니다. 영문학은 한국의 전통과 관련이 없고, 우리의 삶의 급박성과도 관련이 없고, 또 어떻게 보면 제국주의적 질서 안에서의 힘의 불균형에서 생겨난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왜 영문학을 하는가 하는 질문이 다른 많은 걸 생각하게 하고 읽고 쓰는 데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16-17쪽

고등학교 때부터 문학 그리고 철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분명하게 의식하지는 아니하면서도 내가 가지고 있던 질문들은 철학적인 것들이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정치학에서) 문과나 철학으로 바꾸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문학에서는 외국문학이 국문학보다 더 매력적으로 보이고 그래서 영문과를 택하게 되었지요.-18쪽

내가 서울대에 들어간 해에 서울대에 제일 많이 진학한 고등학교가 광주고등학교였어요. 왜 그랬느냐 하면, 서울 사람들, 경상도 사람들은 후퇴하고 전쟁하느라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광주는 그런 혼란과 고통은 없고 비교적 평화스러웠거든요. 그때 서정주 선생도 조선대학에 와 있었고, 우리 고등학교 선생 중에도 서울대 박홍규 교수가 와서 가르쳤는데, 우리 3학년 담임으로는 이후에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교수가 되신 나종일 선생이 계셨지요.-22쪽

우리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에나 대학에 다닐 때에는 책이 많았어요. 학교 공부는 적고 책은 많은 때였습니다.(...)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 하는 질문은 내가 흔히 받는 질문인데, 나한텐 독일 철학과 독문학이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반드시 영향으로 인한 것만은 아니고 또 그 무렵에 그것을 많이 공부했기 때문은 아니지만, 독일의 관념철학 또는 이상주의, 서양어로는 결국 같은 말이 되는데, 그것에 대하여 늘 친화감을 가져왔던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23-24쪽

헌책방 얘기를 하였지만, 어떤 미국사람이 "아이들은 책 많은 환경에 두면 호기심 때문에 책을 보게 되는 것이니 학생에게 이래라 저래라 말할 필요가 없다"라고 했죠. 우리도 길바닥에 책이 많으니까 저절로 보게 된 거죠. 그리고 오늘날처럼 산업화, 능률화된 사회가 아니라서 책방 주인이 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책방 주인하고 이야기를 많이 했죠. -24쪽

손창섭이나 장용학, 이범선의 소설을 대학교 다닐 때 보고 비참함을 그린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몇 년 전에 다시 보니까 그 시대가 '얼마나 인간적인 시대냐'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직장에서 잘려 먹을 것도 없는데 의사인 친구의 치과 사무실에 나가 아침부터 앉아 있다가 의사가 점심 먹으러 가면 따라가서 먹는 얘기 같은 것을 생각해보면, 능률화되고 경영 합리화가 되어 있는 치과에 가서 그러기 힘들죠. 대학 입학 시험에서도 가령 독일어 시험문제 같은 것은 등사된 것이었는데, 출제 교수가 직접 나와서 읽고 설명하고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허술하다고 할까, 인간적이랄까 그런 면도 있었지요. -28-29쪽

가장 중요했던 건 자유로웠다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대학에서도 그러했습니다.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도 많지 않고 요구도 적으니까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40년째 가르치면서 출석 점검을 별로 하지 않았어요. -33쪽

대학 시절 그리고 그 후에도 사르트르, 키르케고르, 하이데거가 유행했는데, 김동리 선생까지 실존주의를 논했으니까 전쟁과 관계가 있겠지요. 그러나 그 이후에도 실존철학은 내게 중요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돌아보건대, 단순화하여 말하기는 어렵지만, 하이데거는 나에게 추상적 관념이나 체계 또는 이데올로기로써 단순화될 수 없는 세계의 현존에 대한 느낌을 심어준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공리적인 조작, 과학기술적인 조작은 물론이고 관념으로 운산으로 조작되지 않는 신비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그에게 있습니다. 사르트르하면 실존, 자유, 책임, 현실참여 등등을 그의 주된 개념들로 생각할 수 있지만, 되돌아보건대, 나에게 중요했던 것은 인간의 주체적 자유에 대한 독특한 이해, 독일의 관념철학에 연유하면서도 그가 살았던 현실 속에서 특히 강조하게 된 주제척 자유에 대한 이해가 아니었던가 생각합니다.-41-42쪽

전라도 사람이라고 해서 대학 입학하고 취직하는 데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결혼을 하는 데 문제가 있었으면 몰라도 인생에서 전라도 사람이냐 경삼도 사람이냐에 따른 중요한 고비나 계기에 부딪히지 않았기 대문에, 편한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나는 여전히 전라도 사람이라는 범주가 중요한 사회적-구조적 범주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민주적이고 평등한 질서의 확보라는 보다 일반적 과제의 수행으로써 해결되지 않을 문제로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50-51쪽

모든 사람이 작은 개체에 불과하고 또 그 개체가 주어진 사회의 조건에 의하여 현실적으로 또 지적으로 제한된다는 것을 반성하는 것은 바로 보다 큰 보편적 진리로 나아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이지만, 그러한 제한 조건이 모든 정당성의 기준에서의 사실 인식을 불가능하게 한다면, 비판 자체도 부정되는 것이죠.(...) 실존적 상황에 의하여 생각이 제한되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입장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사회 내의 의사소통은 전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됩니다. 그리고 인간의 지적인 작업은 자기 변명과 자기 이익의 옹호를 위한 수단 이외의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마르크스주의의 정치 기획 그리고 노동자가 아닌 지식인으로서의 마르크스의 관계도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되지요. -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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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7-07-21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4년에 이 책이 <사유의 공간>과 함께 출간되었을 때 바로 구입해 탐독하면서 김우창 선생의 학문 세계에 새삼스레 탄복하고 감복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오랜만에 기억을 상기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로쟈 2007-07-21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책으로채우리 2009-12-01 0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히 인터넷 기사를 읽다 알라딘 가입에 이어 이 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예쓰모모 서점만 줄곧 이용하다 알라딘에 발을 붙이려니 낯설 달까요..여긴 방문객이 이렇게 많은 블로그도 있구나 싶고..암튼 책 선택에 편식증이 있는 저에게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행동과 사유가 눈에 띄어서 클릭했어요..왜인지 읽고 싶어집니다. 읽고 나면 유식해질 것 같은 느낌까지 드는데..ㅎ 품절이네요........ ㅡㅡ; 예쓰모모로 가야하나여.....ㅎ여하간 꼭 읽어보겠어요.그런데,로쟈님의 모습은 검정티 청바지 저 모습이신가요. 설마.......어떤 유명한 작가나 석학은 아니겠지요..전 모르게는게 많아요.아.궁금해.
 
꿀벌의 언어 - 이재룡의 문학 이야기
이재룡 지음 / 현대문학 / 2007년 4월
품절


프랑스인, 영국인, 독일인이 각각 낙타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프랑스인은 대뜸 근처 동물원으로 달려갔다. 반 시간가량 낙타에게 빵을 던져주고, 우산으로 쿡쿡 찔러보기도 하고, 동물원의 수위에게 몇 마디 질문도 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저녁나절에 낙타에 대한 재치만점의 자극적 기사를 휘갈겨 신문사에 보냈다.-7쪽

영국인은 홍차를 챙긴 배낭과 편안한 야영도구를 짊어지고 사막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삼년간 체류하며 낙타에 대한 두툼한 보고서를 작성해서 학회에 제출했다. 체계도 없고 결론도 없는 무질서한 글이지만 자료적 가치가 풍부한 보고서였다.-7쪽

한쪽 기사는 경박하고 다른 보고서는 보편적 개념을 담지 못했다고 비웃으며 독일인은 몇 년 동안 도서관에 처박혀 '자아 개념에 입각한 낙타에 대한 개념들'이라는 세 권 분량의 저서를 완성했다. 도서관에서 쓴 그의 저서는 곧바로 다시 도서관 서고에 들어갔다. -7-8쪽

똑같은 과제를 받은 한국인은 어디로 갈까? 동물원, 사막, 도서관에 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눈앞의 컴퓨터에 검색어 '낙타'를 친 뒤 15분 만에 깨끗한 파일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다시 인터넷에 올라간 파일은 통신망을 타고 순식간에 퍼졌다. 입심에만 의존한 재치만점의 화려한 수사학, 체계는 없지만 고지식한 경험론, 낙타와는 무관한 관념론을 적당히 버무리고 사진, 만화, 소리까지 곁들인 동영상이 담긴 파일은 인터넷 최강국에서는 누구나 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 모든 언어를 관장하는 메타언어 '검색'은 우리에게 이제 익숙한 단어이다. 경험주의, 관념주의를 지난 세기의 사유방식이라 비웃는 검색주의가 우리의 이데올로기이다. -8쪽

그러나 조금만 기억을 더듬어보면 검색이란 단어는 별로 유쾌하지 않은 체험과 연관된다. 잠시 검문검색이 있겠습니다, 라는 말에 공연히 가슴 졸였던 시절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때 지구상에서 가장 잦은 검색을 당했던 민족이었다. 속된 말로 많이 맞아본 뒤에 제대로 때릴 줄 알게 된 것이다.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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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타사르 2007-06-17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흥미롭군요-

마늘빵 2007-06-17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나온 책이죠. 관심가던데.

기인 2007-06-18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대단한데요. :)

로쟈 2007-06-18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익한 산문집입니다.^^

곰탱이 2008-01-28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거의 블로깅하는 과정과 흡사합니다. 흥미롭네요 ㅎㅎ

미지 2010-06-12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재밌겟는데요, 저도 읽어봐야겠습니다.
 
우리는 20세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칼 포퍼 지음, 이상헌 옮김 / 생각의나무 / 2000년 1월
절판


소비에트가 쇠퇴한 이유들을 알아보면 매우 흥미롭습니다. 일단 러시아의 마르크스주의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해야겠습니다.(...) 물론 러시아에서는 권력을 가진 공산주의자들로 말미암아 모든 교육단계에 있는 학생들이 공산주의 교리를 배우는 체계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나 흐루시초프 시대가 되었을 때, 공산주의 지도층에서는 어느 누구도 상황을 현상태로 유지하는 수단만 생각할 뿐, 달리 마르크스주의의 교의를 진지하게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한 가지 것만 진지하게 취급되었는데, 그것은 자본주의는 틀림없이 붕괴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마르크스 이론의 나머지 부분은 모두 사라져 버렸지만, 이것만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73-74쪽

그 책(흐루시초프의 회고록)은 20세기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며, 특히 1962년 쿠바 위기로 대표되는 커다란 전환점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소련은 그 시점에서 냉전의 긴장감을 상실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때 소련은 미국을 멸망시키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건 마르크스 정권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사상이 실패한 것이었습니다. 그 시점은 소련이 쇠퇴의 길로 들어서는 시초였으며 그후 전반적인 붕괴로 이어졌습니다. -76쪽

소비에트는 러시아의 물리학자인 사하로프 박사가 회고록에서 말한 사하로프 폭탄을 가질 때까지는 역사가 그들에게 부과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실한 희망을 갖지 못했습니다. 한 인간으로서 사하로프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바꾸게 만든 계기가 된 책이 바로 이 책이었습니다. 나는 한때 그에게 형법적 책임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사하로프의 문제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사하로프는 베리아와 함께 합동으로 스탈린 통치하에서 오랫동안 연구를 했으며, 수소폭탄을 제조하는 것과 관련하여 베리아와 반복적으로 사적인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어쨌든 수년간의 실험을 거쳐서 완성품 폭탄이 1961년에 실제로 만들어졌습니다.(...) 흐루시초프는 그때의 일을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미국이 모르게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을 쿠바에 배치할 생각이 떠오른 것은 불가리아를 방문하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그렇게만 되면 미국은 이미 때를 놓치게 될 것이었다."-77-79쪽

아인슈타인은 독일이 자체적으로 원자폭탄을 제조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폭탄의 사용을 지지하는 편지에 서명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미국을 방어하기 위해서 편지에 서명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하로프는, 우리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 시기에는, 흐루시초프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직 자본주의의 '타파'를 원하는 공산주의자였습니다. 그는 공격적인 공산주의 지도자들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수동적인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정반대로 그는 자본주의는 반드시 타도되어야 한다는 이념을 전적으로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폭탄을 실험했을 당시 그의 나이는 서른아홉 살이었으며, 함대의 포민 소장을 만나러 갔을 때는 마흔 살이었습니다(*사하로프는 핵어뢰 프로젝트를 제안하지만 거절당한다). -86쪽

사하로프는 그가 만든 초강력 폭탄을 실험할 때마다 방사능으로 인해서 수천 명이 암에 걸릴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고, 그래서 실험을 실시하지 않도록 흐루시초프를 설득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흐루시초프는 화를 내며 '정치적인 것'과 '과학적인 이슈'가 섞이게 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내 의무를 다하겠습니다"라고 사하로프가 맹세한 것은 그때였습니다. 사하로프에 대해서 말할 것은 그 밖에도 많습니다. 그래서 그의 회고록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87쪽

나는 말년의 사하로프에 대해서는 여전히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꼭 수정되어야 합니다. 나는 그가 전범으로 생각되기 시작했다고 말해야 하며, 그가 말년에 한 일로 인해서 그의 죄가 완전히 용서를 받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이탈리아의 한 언론인과의 이 대담은 1991년에 이루어졌다.)-88-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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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공화국으로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 1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 비(도서출판b)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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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마르크스는 아나키스트와 대립되는 국가사회주의자로 생각됩니다. 마르크스주의자 중에 그런 사람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마르크스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의 사회주의이념은 명확히 프루동의 것입니다.(...) 프루동은 경제적 계급 대립을 해소하면, 그리고 진정으로 민주주의를 실현하면 국가는 소멸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국가 그 자체가 자립성을 가지고 존재한다는 것을 그는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마르크스는 이와 같은 사고도 계승했습니다. 그가 일시적으로 국가권력을 잡아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통해 자본제경제와 계급사회를 지양한다는 블랑키의 전략을 승인했던 것은 국가주의적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르크스의 결함은 국가주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의 자립성을 보지 않은 아나키즘에 있는 것입니다. -24-25쪽

(1990년 이후) 국가사회주의가 쇠퇴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리버테리언 사회주의도 쇠퇴하고 말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리버테리언 사회주의(어소시에이션이즘)가 단순히 이념적이어서 현실적이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거기에 자본, 네이션, 그리고 국가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소시에이션이즘은 자본, 네이션, 국가를 거절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좋지만, 왜 그것이 존재하는가를 충분히 사고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결국 그것들에 걸려 넘어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가령 리버테리언 사회주의와 같은 종류가 부활한다고 해도 자본, 네이션, 국가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입니다.-27쪽

내가 이 책에서 생각하고 싶은 것은 자본=네이션=국가를 넘어서는 길, 바꿔 말하면 '세계공화국'에 이르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자본, 네이션, 국가가 어떻게 존재하는 것인가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본, 네이션, 국가는 각기 간단히 부정할 수 없는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지양하려고 한다면 먼저 그것들이 무엇인가를 인식해야 합니다. 단순히 그것들을 부정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자본이나 국가의 현실성을 승인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이념'을 조소하게 될 뿐입니다.-27-28쪽

내가 가장 공감하는 사람은 칸트와 프로이트다. <실천이성비판>이든 <쾌락원칙을 넘어서>든 모두 60살이 지나서 이루어진 훌륭한 작업들이다. 나도 내 생각이 정리된 것은 60살을 먹은 이후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극이 된다. 그들은 80살 정도까지 살았다. 나는 100살까지 하고 싶다. 내 작업은 이제부터다.('옮긴이 후기'에서 재인용)-235-2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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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죽음의 빛
자네트 콜롱벨 지음 / 인간사랑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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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겨울에 몇 자 적어둔 게 눈에 띄기에 옮겨놓는다. 책을 완독하지 않았기에 리뷰랄 것도 없지만, 완독할 수 없는 이유는 대고 있으므로 정상은 참작될 수 있겠다...

책머리에 실린 들뢰즈의 말. "내가 사랑하는 한 저자에 관해서만 말한다는 내 이상은, 그를 슬프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것이며, 그가 더 이상 대상이 될 수 없도록, 사람들이 그와 동일시 되지 않도록 충분히 그를 생각하는 것이리라." 이 정도면 대단한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

프롤로그인 '여정과 추억'은 아주 사적인 성격을 지닌 부분이어서 프랑스 지성사에 '과도한' 관심을 가진 독자가 아니라면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다. 푸코에 대한 번역 전기 중에서 가장 읽을 만한 것이라면 디디에 에리봉의 것을 꼽겠다. 그리고 읽은 것은 1장 "불확실성과 유한성". 정독해야 할 만큼 무게 있는 내용도 아니고 정확한 번역도 아니어서 대충 훑어본다. 번역이 부정확하다는 것은, 먼저 "(...) 경기장 안에 나 혼자 있음을 알았을 때 다시금 푸코가 현재해 있었다."(51) '현재[現在]하다'와 '있다'를 나란히 병치시켜 놓는 것은 좋은 번역이 아니다. "푸코가 곁에 있었다" 정도의 뜻이지 싶다.



그리고 <말과 사물>에 나오는 벨라스케즈의 그림 '시녀들(Les Menines)'를 '귀족의 딸들'(78)이라고 번역해 놓은 것. 역자가 <말과 사물> 읽지 않았다고밖에는 볼 수 없다. 그러니 번역 전체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인간사랑'에서 나온 프랑스 철학 관련서들의 번역이 대체로 믿을 만하지 못하다. 역자 선정과 교정 등에서 좀더 많은 주의가 기울어져야 하리라고 본다.

다음으로, 나에게 유의미한 부분. "어떤 말들은 생각할 수 없다. 시간성에 대하여 잘 몰랐던 고전주의 시대의 '삶'이란 말처럼. 각 시대는 여러 상이한 영역에서의 교응을 필요로 한다."(77) 이건 푸코와의 관련 없이도 흥미를 끄는 내용이다. 고전주의 시대의 '삶'이라, 생각할 수 없는! 그리고 푸코의 말 인용. "생각하는 내가, 나의 사고의 내가 내가 생각하지 않는 어떤 것이 되려면, 또 나의 사고가 내가 아닌 어떤 것이 되기 위해서는 도대체 나는 무엇이어야만 하는가?"(90) 이건 <말과 사물>의 "코기토와 사고되지 않은 것(Le Cogito et l'impense)"에 나오는 부분이다.

또 푸코가 한 대담에서 한 말. "삶은 죽게 마련이기 때문에 예술작품이어야 하며..." 이건 니체의 미학주의와 관련하여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다. 앨런 맥길의 <극단의 예언자들>(새물결)에서 푸코에 대한 부분을 참조해야겠다. 끝으로 재미있는 건 앙겔로플로스('안젤로포울로스'로 번역 돼 있다)의 영화 <황새의 멈추어진 걸음(Le Pas suspendu de la cigogne)>에 관해서 언급되고 있다는 점.(113)

책은 반납했다. 너무도 프랑스적인 책이다. 푸코를 읽는 일도 버겁지만 그걸 '프랑스적'으로 읽을 만한 여유를 나는 가지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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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6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놔키스트 2007-01-06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이 엉망인 건 잘 알겠습니다만.. '프랑스적'이라는 의미는 썩 잘 모르겠군요..^^

로쟈 2007-01-06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너무 짤막하기 때문이기도 한데요, 서두의 '여정과 추억' 같은 대목이 제겐 좀 이질적이었습니다. 기억에 그 나라 사람들의 회고담 같은 식이라. '그러니까 제가 프랑스적이라고 한 건 저자가 푸코를 다루는 시각을 가리킵니다. 푸코의 생각 자체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