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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주의의 역사 2 ㅣ 동문선 문예신서 137
프랑수아 도스 지음, 김웅권 옮김 / 동문선 / 2002년 11월
평점 :
서점에서 처음 책을 보고 반갑고 놀라웠다. <구조주의의 역사> 전 4권 중에서 제1권이 출간된 게 4년전, 그러니까 프랑스월드컵이 열리던 해였다. 이제 한일월드컵 해를 기념해서 2권이 나왔으니까 3권은 아마도 2006년 독일월드컵때 보게 될 것인지!? 하여간에 출판사에서 포기한 줄 알았는데, 늦게라도 번역돼 나오니 그나마 다행이다(나오다 만 무책임한 책들이 더러 있다).
이 책이 갖는 강점은 현장감이다. 역사학쪽보다는 저널리즘쪽으로 분류되는 게 타당하다 싶을 정도로, 현장감 넘치는 인터뷰들이 페이지 곳곳에 배치돼 있다. 때문에 구조주의가 '숨쉬던 공기'를 느껴보든 데 가장 적합한 책이라 할 수 있다. 구조주의를 넘어서 후기구조주의니 탈구조주의니 하는 말들이 유행하고, 이젠 그나마 시들해져 가지만, 책을 읽다보면 '생생한' 구조주의와 만나게 된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이 책 1권은 주로 문학전공자 10명의 공역으로 그런대로 읽을 만했지만, 이번 번역은 직역투에다가 짜집기 번역이다. <순진함의 유혹>이나 <20세기 프랑스철학> 같은 몇몇 번역서에서 보여준 역자 김웅권의 솜씨가 아니다(*<20세기 프랑스철학>은 다른 역자의 작품이다). 짜집기 번역 유무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혹은 짜집기 번역의 지표는 고유명사(인명이나 저작명) 표기가 일관적인가를 확인하는 것인데, 22쪽에서는 '블라디미르 프로프의 콩트 형태론'에 관한 레비스트로스의 논문 얘기가 나오고, 같은 저작이 27쪽에서는 <민담의 형태론>이라고 표기되는 것은 이 책이 명백한 짜집기 번역이라는 걸 말해준다(물론 후자가 맞는 번역이다).
프로프의 <민담의 형태론>(1928)은 서사학(narratology)의 기원을 여는 저작으로 60년대에 재발견된다. 국내에도 2종의 역서가 나와 있는데, '콩트 형태론' 운운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이다. 아마도 장별로 나눠서 번역한 것 같은데, 번역이 좀 들쭉날쭉하다. 오역의 또 다른 사례.
14쪽에서, ''하나의 모음이 움직일 때 그것은 전체 체계를 끌고간다는 의미에서 구조주의적인 보어'임을 알게 해주었다.'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구조주의적인 '보어'라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역자는 무슨 말인지 알고 번역했을까? 물론 아닐 것이다. 역자는 아마도 아무생각없이(기계적으로) 번역했을 것이다. 그 부분의 영역은 이렇다(불어본과 대조해 보면 더 확실하겠지만). 'completely structualist insofar as when each vowel moves, the whole system moves with it.'이다. 역자가 보어라고 번역한 것은 여기서 completely이다. 짐작에 불어로 '꽁쁠리뜨망'이란 단어일 듯싶은데, 이것을 '꽁쁠리망'(보어)으로 착각한 듯싶다.
사소한 예들일 수도 있지만, 번역에 대한 신뢰는 이미 땅에 떨어진다. 이 책이 진지한 역사서라기보다는 저널리즘적인 안내서에 가깝고 굉장히 속도감있고 재미있게 읽히는 책이지만, 역자들마저 책을 건성으로 읽는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좋은 책이 좋은 번역을 얻지 못한 듯하여 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