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유령이 우리의 인문학 동네를 떠돌고 있다. “마돈나가 싱글 앨범을 발표하는 것보다 더 정기적으로 책을 발표”하면서 “동시대의 정치적 무관심에서부터 이웃집 닭한테 잡아먹힐 걱정을 하는 남자에 관한 조크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지절대는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 그 유령의 이름이다. 그 유령은 이미 지난 2003년 가을에 우리 곁을 다녀가기도 했는바 어느새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까지 거느리게 되었다. 우리 주변에 ‘지젝거리는’ 이들이 그들이다. 최근에 급기야는 ‘지젝거리는’ 이들을 위한 교본까지 등장했으니, 토니 마이어스의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가 그것이다.
슬라보예 지젝, 이 슬로베니아 출신의 '괴물' 철학자는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1989)을 통해서 영어권 학계/이론계에 등장한 지 불과 15년 만에 '우리 시대의 사상가' 명단에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등재시켰고, 저자 마이어스의 주장대로 그의 파괴력/영향력은 갈수록 확고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미 <삐딱하기 보기>(시각과 언어, 1995) 이후에 열댓 권이 넘는 지젝의 책들이 우리말로도 번역/소개되었으니 우리 또한 그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그 책들은 한편으론 “오늘날 활동하는 가장 탁월한 사상가” 지젝의 지적 파워를 확인시켜주면서, 다른 한편으론 그의 말들을 (도대체 알아먹지 못할) 지저귀는 언어로 옮겨놓음으로써 가뜩이나 “대중문화로 철학을 더럽히는 철학자”로 오해받는 지젝에 대한 반발과 미움을 더욱 부채질하기도 했다.
이번에 나온 마이어스의 책은 ‘가장 쉬운 지젝 입문서’로서 그러한 오해와 미움을 단번에 불식시켜줄 수 있는 책이다. 저자가 한 입 크기로 적당히 썰어놓은 지젝의 아이디어들을 머릿속에 집어넣다 보면 “아하, 그렇구나!”라는 감탄과 함께 결국엔 저자의 이러한 결론에 동참하게 된다: “우리는 지젝이 라캉으로 ‘되돌아가고’, 라캉이 프로이트로 ‘되돌아간’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지젝에게 ‘되돌아갈’ 것이다.”(231쪽)
이러한 여정의 안내자로서 저자는, 이미 알려진 바대로 지젝에게 영향을 준 세 사람, 즉 헤겔, 마르크스, 라캉에 대한 예비적인 설명을 앞세운 이후에 다섯 가지의 핵심 이슈로 그의 사상을 갈무리한다. (1)주체란 무엇이며, 왜 그토록 중요한가? (2)탈근대성에서 끔찍한 것은 무엇인가? (3)현실과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4)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무엇인가? (5)왜 인종주의는 환상인가?
이 주제들을 다루는 각 장의 말미에 친절하게 요약돼 있는 내용을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을 테지만 지젝에게서 과연 무엇이 새로운가는 잠시 소개할 필요가 있겠다. 가령, 지젝은 대부분의 현대철학자들, 특히 포스트모더니스트들과는 달리 데카르트의 ‘코기토’를 근대적 주체로서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때 그가 말하는 주체(subject)는 ‘자기로의 철회’라는 극단적 상실의 결과로 이르게 되는, 부정성의 텅 빈 지점이고 텅 빈 공간이다. 그리고 이 텅 빈 자리는 주체화(subjectivization)의 과정을 통해서 채워지는바, 주체화란 우리들 자신을 언어 등과 같은 상징적 질서에 종속시키는 과정이다.
여기서 전제되는 것은 ‘주체’와 ‘주체화’의 차이이며, 이 차이는 하이데거에서 존재와 존재자 사이의 ‘존재론적 차이’에 견주어 ‘주체론적 차이’라 이름붙일 만한 것이다(지젝의 철학박사학위 논문은 하이데거에 관한 것이었다). 순수한 부정성으로서의 주체는 아무런 내용물도 갖지 않는 텅 빈 장소이자 공백이지만, 이 공백은 언제나 주체화가 실패하는 지점을 표시한다. 이러한 주체로서의 코기토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에서 지젝은 근대(모던) 주체철학의 계보를 계승한다.
하지만, 그의 주체철학은 탈근대(포스트모던)의 탈-주체철학 이후에, 그것을 비판/극복한 자리에서야 비로소 도래 가능한 철학이다. 그것이 포스트모던 이후, 즉 포스트-포스트모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지젝이 ‘우리 시대의 철학자’로서 자리할 수 있는 이유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의를 우리는 그가 다루는 다른 주제들에서도 확인해볼 수 있다.
아직 현재진행형인 지젝의 사상을 안내하는 여정의 끝에서 저자는 지젝의 이론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소급적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고,“한마디로, 지젝은 존재하게 될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린다(미래에 ‘존재’하게 될 것이기에 그는 현재 ‘유령’이다). 그러한 예언을 다만 미래의 것으로 제쳐놓는다 하더라도, 적어도 1989/1991년 이후의 탈냉전 시대, 그리고 2001년 9.11 이후에 '가능한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지젝의 작업들은 그가 어쩌면 '우리 시대의 헤겔'일지도 모른다는 걸 암시해준다.
그리고, 마이어스의 책은 이 ‘또 다른 헤겔’ 입문서로서 현재로선 더없이 유익한 길잡이이다(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제대로 ‘지젝거리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의의를 책의 제목에 반영하자면,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보다 더 적절한 것은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두려워하랴?"가 될 것이다. 비록 그가 유령이라 한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