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제학자 갤브레이스 교수가 어젯밤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1908-2006). 아마도 내일 아침 신문마다 이 저명한 경제학자의 타계 소식을 전할 듯한데, 강의 계획안을 만드는 일을 하다가 잠시 짬을 내어 고인의 부고기사와 사소한 추억 거리를 떠올려본다. 기사는 한겨레와 세계일보의 것이다.

한겨레(06. 04. 30) 부의 분배와 같은 논란적인 주제를 연구해 온 세계적인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29일 밤(현지시각)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의 마운트 오번 병원에서 숨졌다고 <아에프페 통신> 등 외신들이 전했다. 향년 97세.

-1908년 10월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태어난 갤브레이스는 1934년 이후 하버드대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경제학뿐 아니라 경영학·역사학·사회학도 폭넓게 연구했다. <뉴욕타임스>는 “갤브레이스는 복잡하고 재미없는 주제를 학식있는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데 능력을 보임으로써 존경과 질투를 한몸에 받았으며, 때론 장광설로 경멸을 받기도 했다”고 고인을 평가했다. 33권의 저서를 남긴 갤브레이스는 58년 펴낸 <풍요로운 사회>에서 “미국의 경제는 개인의 부를 낳았지만 학교나 고속도로와 같은 공공수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며 성장 위주의 미국 경제정책을 통렬히 비판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해 온 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년 동안 미국 정치 무대에서 거물로 통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에서 빌 클린턴에 이르기까지 민주당 대통령의 자문역으로 일하거나 연설문 작성에 관여하는 등 미국 민주당의 방향과 민주당 지도자들의 사고에 큰 영향을 끼쳤다.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 시절인 61∼63년에는 인도대사를 지내기도 했다. 베트남전 탓에 린든 존슨 대통령과 결국 결별하기는 했지만, 존슨 대통령이 ‘위대한 사회’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크게 기여했다. 정부에서 일한 경험 등을 토대로 <트라이엄프>(1968년) 등 소설 세 편을 쓰기도 했다.

-미국의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이 그를 “경제학자보다 경제학 외부에 더 영향을 끼친 경제학자”라고 표현한 대로, 그의 업적이 과대포장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기현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그의 제도경제학이 사회적인 비판에 자주 이용됐지만 실제 그의 이론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경제학자는 미국이나 한국에서도 별로 없다”며 “다만 그가 사회적 발언을 많이 했다는 점에서 경제학자로서 높이 살 만하다”고 평가했다.

-홍 교수는 “그의 비판이론의 핵심은 ‘집단간 갈등이 직접적 의사소통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예컨대 자원배분을 왜곡하는 독점도 시민단체·전문가 집단의 비판, 곧 ‘정치적 대항력’을 통해 조절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갤브레이스는 사회에 비판적이었지만, 이런 정치적 대항력을 들어 사회에 대해 비관적이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세계일보(06. 04. 30) '자유주의 경제학자’로 미국에서 널리 알려진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하버드대 명예교수가 지난 29일 향년 97세로 사망했다. UPI통신 등 미 언론에 따르면 갤브레이스 교수 가족은 이날 그가 최근 2주 동안 입원해 있던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소재의 한 병원에서 고령으로 숨을 거뒀다고 발표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출신 갤브레이스 교수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빌 클린턴 행정부까지 오랜 기간 민주당 정권의 경제 자문역으로 활동했으며,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에는 인도 주재 대사를 지내기도 했다. 그는 또 1946년과 2000년 각각 해리 트루먼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으로부터 자유메달을 수상했고, 미국 경제학회장을 역임했다.

 

-갤브레이스 교수는 온타리오 농대와 토론토대를 다녔으며, 버클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1934년 하버드대에서 강의하기 시작했다. 그는 <풍요로운 사회>, <불확실성의 시대>, <대공황> 등의 저서를 통해 자유주의 경제학자로 이름을 알렸으며, 특히 1958년 발간된 <풍요로운 사회>는 미국의 모던라이브러리 출판사가 구성한 도서 평가위원회에서 ‘금세기 영어로 된 논픽션 분야 100대 서적’ 가운데 46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2차대전 이후 각종 사회 문제 해결에 대한 정부 개입을 지지했다. 저서 <풍요로운 사회>에서도 그는 “미국 경제가 개인적 부를 창출하고 있지만 학교와 고속도로 등 공공 수요에는 적절히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 개입을 촉구했다.

-1975년 하버드대 교수에서 은퇴한 그는 자신의 저서와 같은 제목의 영국 TV 시리즈 ‘불확실성의 시대’를 진행해 더욱 명성을 얻었다. 신랄하고 통렬한 풍자로 미국 사회를 비판해온 신장 2m의 거구 갤브레이스 교수는 집필을 위해 버몬트주 산악지역에 있는 별장에서 수개월 동안 칩거하는 등 억척스러운 ‘일벌레’로 알려져 있다.

-1998년에는 소련 경제학자 스타니슬라프 멘슈코프와 <자본주의, 공산주의, 그리고 공존:고통스런 과거에서 더 나은 가능성으로>를 공동 집필하기도 했다(*<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공존>(영남대출판부, 1990) 등으로 번역돼 있다).  

내가 대학에 들어왔을 때 가장 유명했던 현역 경제학자가 갤브레이스였고, 가장 유명한 책은 <불확실성의 시대>였다. 그래서 아마 소장하게 된 것이 범우사판 <불확실성의 시대>였을 것이다. 세로읽기여서 다 읽어볼 엄두를 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내가 산 최초의 경제학 관련서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1977년의 BBC TV강좌를 토대로 한 만큼 대중적이었던 이 경제사 책은 칼 세이건(1934-1996)의 <코스모스>를 떠올리게 한다(학원사판 <코스모스>를 나는 고등학교 때 사서 읽었다. 내가 산 최초의 천문학 책). 두 사람 다 소위 '최고의 경제학자나'나 '최고의 천문학자'로 남지는 않겠지만, 가장 친근하고 대중적이었던 경제학자와 천문학자로 기억될 듯하다.  

 

 

 

 

<불확실성의 시대> 이후로도 나는 갤브레이스의 책들을 여러 권 더 샀다. 비교적 두껍지 않은 책들이었지만, <만족의 문화>(동아일보사, 1993) 정도를 빼면 완독한 책은 거의 없다(폴 크루그먼의 책들도 그런 식이다). 그래도 나는 갤브레이스가 '기본'이라고 생각해왔다(이른바 '각인' 행동이란 것. 정신의 '성장기'에 영향을 준 저자나 책들을 우리는 잊지 못한다. 더불어 '비판적 거리'를 갖지 못한다).

이번에 부음을 듣고 갤브레이스의 책들을 검색해보다가 다소 놀라고 실망했는데, 그토록 많이 번역되었건만 제대로 남아있는 책이 한두 권밖에 없었다! 미국 현지사정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국내에서는 '잊혀질 경제학자'에 속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우리는 '불확실성'이 제거된 시대에 살고 있는가? 하긴 우리 사회는 '위험사회'요, 우리 시대는 '확실한' 테러리즘의 시대, 제국주의의 시대이다!).

비록 그의 업적이 '과대 포장'된 점이 없지 않다고 하나 젊은 날의 '영웅들'을 하나둘 잃어간다는 건 쓸쓸한 일이다. 우리는 아마도, 앞으로 궁극적으로는 '풍요로운 사회'의 '만족의 문화'를 지향하게 될 터인데(그게 대한민국의 꿈인가?), 갤브레이스의 충고쯤은 기억해둠 직하지 않을까? 고인의 명복을 빈다.

06. 0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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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ioli 2006-04-30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확성실의 시대를 재밌게 읽었는데, 참 안타깝네요.
거인의 죽음을 직접 목도하는 데 은근한 기쁨도 있긴 하지만요.^^

로쟈 2006-04-30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근한 기쁨'의 이면은 이제 '우리'도 나이를 좀 먹었다는 '슬픔'이죠...

maritime 2006-09-05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다큐를 보니 빈국에 대한 서방국가들의 정책를 꼬집는 고령의 갤브레이스가 나오더군요. 지식인이 걸어가야할 전형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로쟈 2006-09-05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정도 '양심'도 드문 시대인 거 같습니다...
 

강의준비를 위해 지난 학기 강의자료들을 정리하다가 프린트아웃 해놓은 모스크바 통신문 하나를 읽었다. 2005년 1월 17일에 모스크바에서 씌어진 것인데, 귀국을 2주 가량 남겨놓은 시점이었다. 거의 막바지 통신문이었고, 분량으로 보아 5-6시간은 족히 걸렸을 법하다. 최근에 교수신문에서 '우리 학문과 철학'이란 기고문을 옮겨놓은 바 있는데, 그와 관련한 '나의 의견'으로 참조가 될 만하겠기에 정리해서 '창고'로 옮겨놓는다(다시 읽으면서 '철학적 농담'이라면 나도 어디 가서 빠지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초월적 비평과 치과적 진료'라는 이전 통신문의 '보유'로 씌어진 것이지만, 여기서는 '철학적 로고스와 문학적 로고스'로 제목을 고쳐달도록 하겠다. 내가 보유하고자(보태어 채워넣고자) 했던 문단(=구멍)을 밝히고 있는 대목에서부터 시작해보자(아래는 모스크바 대학 건물의 일부).

 

짐작에 주로 ‘구멍’에 해당한 건 다음의 한 단락이다: “한편, 소설적 로고스/시적 로고스에 대한 참조 없이 철학적 로고스만으로도 철학은 구성될 수 있다(주로 수학/논리학에서 바탕을 마련하고 있는 후설의 현상학이나 초기 분석철학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하지만, 소설적 로고스/시적 로고스를 끊임없이 참조함으로써 자극과 영감을 얻는 철학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들뢰즈, 데리다, 후기 하이데거 등을 단번에 꼽을 수 있으며, 사르트르도 물론 여기에 포함된다. 더불어 도스토예프스키와 탈무드로부터 근원적인 영감을 얻고 있는 레비나스의 윤리학까지).” 이와 비교할 때 다른 구멍들은 부차적/부수적이거나 사소한 듯하며, 나는 이 문단에 대해서만 주로 군말을 채워넣기로 하겠다.

이 문단에서 나는 로고스에 대한 모종의 유형학을 제시하고 있는데(‘로고스’는 이성, 논리, 언어를 포괄하는 말로 사용하겠다), 나열된 걸로만 따지자면 로고스에는 철학적 로고스도 있고, 소설적/시적 로고스도 있다(다른 문단에서 ‘과학적 로고스’도 언급했지만, 여기선 생략한다). 그리고 그러한 전제하에서라면, 소설적/시적 로고스(‘문학적 로고스’라고 통칭하겠다)의 포함 유무에 따라 (내가 보기엔) 철학의 두 가지 유형이 가능하다. (1)철학=철학적 로고스, (2)철학=철학적 로고스+문학적 로고스. 그러니까, 인용한 문단은 그러한 유형학을 풀어서 얘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첫번째 유형의 사례로 후설의 현상학과 초기 분석철학(전기 비트겐슈타인과 논리실증주의)을 들었고, 두번째 유형의 사례로 들뢰즈, 데리다, 후기 하이데거, 레비나스 등을 들었다(흔히 ‘철학의 미학화’라고 비판받기도 하는 유형이다).

나는 이 두 유형 사이에 어떤 우열을 가정하지 않았다. 내가 주장한 건 이 두 가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건 반대로 문학의 경우에도 두 가지 유형이 가능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1)문학=문학적 로고스, (2)문학=문학적 로고스+철학적 로고스. 문학적 로고스와 철학적 로고스를 모두 구성인자로 갖고 있음에도, 어떤 경우엔 철학이 되고 어떤 경우엔 문학이 되는가란 질문이 가능한데, 나는 각각의 경우에 (야콥슨의 용어를 쓰자면) ‘지배소(dominant)’가 다른 거라고 답하겠다(쉽게 말하면, 방점이 다른 것). 해서, ‘문학적인 철학’(실존주의가 대표적이다)이 있는 반면에, ‘철학적인 시/소설’(릴케나 퐁주의 시, 혹은 투르니에나 아이리스 머독의 소설을 예로 들 수 있을까)도 있는 것이다. 철학적 로고스와 문학적 로고스를 양 극점으로 놓는다면, 철학과 문학의 이 네 가지 유형은 스펙트럼화될 수 있다.

<철학적 로고스 – 철학적/문학적 로고스 – 문학적/철학적 로고스 – 문학적 로고스>

이러한 스펙트럼이 갖는 장점은 철학과 문학의 관계를 (단선적으로가 아니라) ‘중층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즉 철학이냐 문학이냐라는 이분법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 더불어, 너무 철학적이라거나 문학적이라는 이유로 각각의 ‘동네’에서 배제되는 ‘경계적’ 작가/철학자들을 이러한 구도에서는 정당하게 고려할 수 있다(가령, 니체의 경우).

흔히 이성이나 논리와 동일시되는 로고스를 언어적 차원에서 재규정할 경우에, 스펙트럼의 양 극단에 놓이는 것은 ‘기의-논리의 극대화’와 ‘기표-논리의 극대화’이다. 기의-논리가 극대화된 지점에서 우리는 자연어에서 기표성을 배제한, 아니 자연어 자체를 배제한 기호논리학의 세계를 만나게 되며(‘자연어’란 한국어, 영어, 일어 같은 개별 언어를 말한다), 기표-논리가 극대화된 지점에서 우리는 자언어의 기의성을 최대한 배제한 (기표의) 순수유희를 만나게 된다(가령 칼리그람이나 철자시). 전자는 세탁기처럼 기표의 때를 계속 세탁해대며(그렇게 해서 언어를 ‘흰 빨래’처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내가 이해하는 ‘백색의 신화’이다), 후자는 단어에 폭탄을(아니면 쓰레기통이라도) 갖다 퍼부음으로써, 기의를 증발시키거나 해체시킨다.

즉, 극단적으로는 철학적 로고스가 자연어를 인공어화 하려는 지향성을 갖는다면 문학적 로고스는 자연어를 자움어(러시아 미래파의 표현을 빌자면 ‘새의 언어’)화 하려는 지향성을 갖는다('자움'은 '초이성'이란 뜻이다). 가령, “나리 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란 동요에서 리듬을 만들기 위해 들어간 “나리 나리”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기에 철학적 로고스의 관점에선 불필요한 ‘잉여’이지만, 문학적 로고스의 관점에선 오히려 필수적인/본질적인 ‘요소’이다. 더불어 지난 통신문의 제목을 만들어준, 나보코프의 칼람부르 ‘dental and transcendental’은 철학적 로고스가 보기엔 불쾌한 넌센스에 불과하겠지만, 문학적 로고스가 보기엔 유희적 ‘통찰’을 담고 있다. 거기에서 암시되는 바이지만, 언어의 유형학 또한 하나의 스펙트럼을 구성한다. 그건 아래와 같다.

<인공어(=기호) - 자연어 - 시어 - 자움어(=새의 언어)>

‘2차 모델화 체계’(유리 로트만)로서의 문학어는 자연어를 재모델화, 재코드화한 것이다. 그러한 재모델화/재코드화의 방식은 다양해서, 장르나 문체, 기법 등을 포괄한다. 러시아 형식주의의 대표적인 이론가인 슈클로프스키의 표현을 빌리자면, 예술(=문학)이란 기법의 총합에 지나지 않는다(로트만에 따르면, 이 기법에는 또 플러스(+) 기법과 마이너스(-) 기법이 있다. 문학이론도 깊이 들어가자면 나름대로 복잡한데, 여기선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

 

 

 

 

조금 단순화시켜서 말하자면 문학이란 자연어를 낯설게 사용한 것이다(해서, 지각을 지연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오브제를 데포르마시옹(deformation)함으로써 미적 효과를 창출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공통적인 건 어떤 형태(form)에 대해서 사고한다는 점이고, 그런 점에서, 문학은 조형예술과 먼 거리에 있지 않다(미국의 신비평가들은 시를 ‘잘 빚어진 항아리’에 비유했다).

문학적 로고스는 기본적으로 언어의 조형화, 혹은 조형적 언어를 통해서 의미를 산출한다(야콥슨을 따라서 좀 어렵게 말하자면, 그것은 통합체적인 언어를 계열축에 따라 투사한다). 즉, 문학은 어떤 조형적 입체이며, 거기서 중요한 건 볼륨이다. 언어는 문학적 로고스 안에서 자신의 풍만함을 자랑한다(철학에 코기토가 있다면 문학에는 코르셋이 있다).

반면에 철학적 사유의 근간은, 그것이 형식논리(아리스토텔레스)이건 변증법적 논리(헤겔)이건 간에 논리에 있으며(해서 ‘논증’은 철학적 로고스의 가장 중요한 구성소이다. 논리는 철학의 정신을 구성하는 ‘뼈다귀’이다), 논리에서 중요한 것은 순서(order)이다(문학의 언어가 주로 분칠하고 치장하는 언어라면, 철학의 언어는 명령하고 주문/요청하는 언어이다). 똑 같은 언표들이라도 배치순서가 바뀌면 (문학에서는 새로운 의미가 창출되지만) 철학적 논리는 한순간에 비논리 혹은 모순으로 전락한다(예컨대 3단논법의 논항들을 뒤섞어보라). 그러한 논리가 지향하는 것은 모순의 배제 혹은 지양이다. 의미론적 차원에서 논리적 모순의 등가물은 넌센스(무의미)이다. 때문에, 어떤 철학적 논증/저작에 대해 ‘넌센스’라고 말하는 것은 그에 대한 최대의 모욕이 된다(가령, “그게 말이 되냐?”) 반면에 문학에서의 ‘넌센스’는 그 자체가 하나의 기법이자 전략이며, 장르, 더 나아가 사조를 이루기도 한다.

철학적 논리를 구성함에 있어서 순서가 중요하다고 하면, 철학적 담론의 구성인자가 되는 언어에 대해서 엄격한 훈령이 하달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른바 ‘동작 그만!’이 요구되는 것이다. 해서, 풍만한 문학이 ‘언어의 카니발’을 떠올리게 한다면, 강파른 철학은 ‘사유의 학교’(야스퍼스)를 넘어서 ‘사유의 군대’이기도 하다(우리가 학교 졸업하면 군대 가듯이). 그리하여 좋은 문학이 우리를 도취시키는 문학이라면, 좋은 철학은 우리에게 어떠한 빈틈도 내보이지 않는 깐깐한 철학이다(칸트에게, 헤겔에게, 스피노자에게 빈틈이 있던가?). 이러한 철학이 요구하는 언어는 당연히 바지춤 추스르기에도 바쁜 어영부영하는 자연어가 아니라 깍두기 머리에 자세 제대로 나오는 보편어 혹은 인공어이다(JSA 출신인 한 후배는 요새도 자세가 나온다).

 

알다시피, 철학사에서 그러한 보편어의 역할을 해온 것이 중세와 근세의 라틴어였고, 요즘은 영어이다(아마도 독어가 넘버2 정도이고). 해서, 적어도 국제적인 철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아니 하다 못해 철학 전공이라고 명함이라도 내밀기 위해서는 영어로 책이나 논문을 써야 하는 것(한국어로 논문을 쓴 철학박사들? 그들도 최소한 번역투의 문장으로 논문을 써야 한다. 영어나 독어에서 바로 번역한 듯한 논문. 즉, “이게 원래는 한국어 논문(수준)이 아닙니다”는 걸 보여주고 암시하는 논문 말이다). 이때 영어는 일개 자연어가 아니라 특별한 자연어, 즉 보편어로서의 위상을 점유한다(미국이 일개 국민/민족국가 레벨을 넘어서듯이). 그러니 다들 철학은 주로 미국에서(혹은 독일에서) 공부하는 것이며(러시아 철학 전공자는 내가 아는 한 한 명도 없다), 철학을 말할 때는 영어나 독어를 반드시 병기해야 하는 것이다(한국어라는 자연어는 철학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인으로서 미국철학회 회장까지 역임한 재미철학자 김재권의 경우, 미국의 철학과 대학원생들에게 철학논문 문장의 모범으로 제시될 정도로 탁월한 영어를 구사하는데, 대학생 때 미정부 장학생으로 유학을 떠난 그가 한국어를 거의 망실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한국어라는 자연어가 그의 ‘보편적’ 사고에 거의 ‘간섭’을 하지 않는 것). 나는 대학 1학년때 <한국에서 철학하는 자세들>(심재룡 편)이란 책을 읽었었는데, 거기에 수록된 글에서 김재권이 강조한 것은 한국에서 철학하는 ‘보편적’ 자세였다. 즉, 철학함에 있어서 국적은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 그 국적이란 건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언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즉, 철학함에 있어서 자연어의 구속은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 왜냐? 철학의 문제들이란 보편적이기 때문에(하지만, 그에게 자연어인 영어는 동시에 보편어이기도 하다는 걸 우리는 고려해야 한다).

분석철학 계통의 심리철학 권위자인 김재권의 ‘보편적 문제’란 심신문제, 즉 ‘mind-body problem’이다. 주로, 마인드(=심리현상)와 바디(=물리현상) 간의 관계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의 문제. 형식논리상으로 기본적인 입장은 둘로 나뉜다. 관념론(마인드는 바디와는 별개로 ‘실재’한다)과 유물론(마인드는 부재하거나 바디에 수반되는 현상이다). 물론 각각의 입장은 다시 세분되며(가령, 유물론은 환원적 유물론과 비환원적 유물론으로 나뉠 수 있다) 김재권은 자신이 제창한 ‘수반이론’으로 유명한데, 분류하자면 ‘환원적 유물론’에 속한다(내가 이해한 대로 얘기하자면, 기본적으로 심리현상은 물리현상으로 환원가능하며, 물리현상에 수반되는 현상이라는 것).

나는 그의 주장에 많은 부분 동의하지만, 그 동의는 ‘심신문제’라는 (임의적인) 문제틀을 고수하는 한에서이다. 그 문제틀의 임의성에 대해서는 언젠가 김재권의 내한 강연을 언급하면서 김용옥이 지적한 것인데(아마도 무슨 TV강연에서였다), 가령 기(氣)철학적 세계관 혹은 논리에 선다면, 마인드와 바디라는 별개의 ‘실체’는 인정될 수 없으며 따라서 마인드가 바디에 수반된다든가 하는 논리도 어불성설(語不成說)이 된다(우리말의 ‘몸’/‘맘=마음’ 또한 마인드/바디와는 다른 ‘논리’를 갖고 있다). 김재권은 심신문제의 보편성을 주장하지만, 그의 수반이론이 진지하게 수용/검토되는 것은 (제도적으로) 영미권의 분석철학계 내에서일 뿐이다(혹은 그러한 문제틀이 ‘이식된’ 한국 대학의 철학과도 포함될는지 모른다).



물론 수반이론은 대단히 ‘논리적인’ 이론이며, (비판도 허용하지만) 설득력 있는 이론이다. 하지만, 이론의 논리성이 반드시 문제틀의 보편성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그건 나름대로 재미있는 ‘미식 축구’가 ‘재미의 보편성’을 주장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한국에서 수반이론을 말하고 김재권을 대단한 철학자로 추켜세우는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이론이 보편적이거나 최고의 심신이론이어서가 아니라 그가 한국인, 적어도 한국계 철학자이기 때문이다(비록 그가 한국어를 거의 잊었다고 하더라도).

김재권이 분석철학계의 가장 저명한 한국인 철학자라면 현상학계에서 대가급으로 인정받는 한국인 철학자는 역시 미국과 독일에서 활동하는 조가경이다(훨씬 아래 세대로는 분석철학의 이승종, 현상학의 이남인 정도가 유명한 듯하데, 공통적인 건 영어/독어로 책을 썼다는 것). 그의 초기 주저가 한국어로 쓴 <실존철학>인데, 이후에 외국으로 떠난 그가 독어, 혹은 영어로 써서 명성을 얻은 책들은 내 기억에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았다.

20세기 전반기 서구철학의 가장 대표적인 두 조류가 현상학과 분석철학이라고 할 때, 두 한국인 철학자가 관련학계에서 인정받는다는 것은 물론 유감스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해둘 것은 두 사람이 ‘한국인’ 철학자일 뿐이며, 자연어로서의 ‘한국어’가 걸려있는 ‘한국철학’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그건 ‘한국인 문학’이 ‘한국문학’과 별개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두 사람은 한국어 철학, 즉 자연어 철학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인데, 사실 그러한 문제의식의 결여/부재는 현상학과 분석철학의 철학적 입장/강령에 기본적으로 새겨져 있는 것이기도 하다(결여/부재가 새겨져 있다?).

 

20세기 서구철학을 흔히 ‘언어적 전회’(Linguistic turn)로 특징지을 때(한때 분석철학계의 기린아였던 리처드 로티는 <언어적 전회>란 책을 편집하기도 했다), 그것이 주목한 것은 사유와 언어의 관계, 보다 구체적으로는 사유에 있어서 언어의 매개성이었다. 아주 당연한 듯하지만, 우리는 ‘언어’로 사유한다는 것. 즉, 사유의 언어-의존성에 대한 자각이 ‘언어적 전회’의 일차적인 내용이다. 그리고 이때의 언어란 바로 ‘자연어’로서, 그리고 ‘일상어’로서의 개별 국어이며, ‘언어적 전회’는 이 자연어/일상어의 ‘존재성’을 인정하게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태는 정반대로 간다. 언어-의존성에 대한 자각의 이면은 이러한 자연어/일상어의 ‘병리성’에 대한 인식이었기 때문이다.

즉, 우리의 사유는 자연어로 이루어지는바, 철학적 사유가 오류를 범하는 주된 이유가 그 자연어의 병리성(=결함)에 있는 게 아닌가 라는 데 생각이 미친 것이다. 비유컨대, 철학적 작전이 매번 실패하는 원인이 ‘병력 자원’의 부실에 있다는 걸 사단장-철학이 알게 된 것. 이후에 대대적인 군기교육이 이루어진다는 건 아주 당연하다(아예 “적은 우리 안에 있다!”고 선언하면서).

 

 

 

 

철학의 과제가 ‘언어비판’, 더 나아가 ‘언어치료’에 있다고 하는 주장은 이러한 사정을 잘 요약한다(주객이 전도된 것이지만, 분석철학은 전투의 승리가 아니라 사병-언어의 닦달에 더 관심을 두게 된다. 맥아더-비트겐슈타인은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의 해소’일 뿐”이라는 어록까지 남기며 철학계에서 잠시 사라지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 다시 등장하는 것이 기호로서의 인공어이다. 철학논문은 가급적 기호논리와 명제함수, 수식 등으로 가득 채우고, 자연어는 가급적 배제할 것(비유컨대, 이러한 인공어들이 ‘특전사’라면, 자연어는 ‘방위병’이었다). 철학은 점점 소수정예화하며, 자신들의 은어만으로 소통하게 된다. 그런 틈바구니 속에서 방위병-자연어의 애환이 무시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한편 현상학의 창시자 후설이 직면했던 문제는 영미의 분석철학과는 다소 달랐다. 한전숙의 <현상학>(민음사)에 소개된 일화에 따르면, 어릴 적에 후설은 무슨 공이 같은 걸 죽창 갈아서 송곳을 만드는 일에 몰입했다. 이런 케이스를 의대생들은 흔히 ‘옵세(obsessed)’라고 부르는데, 저자는 후설의 ‘라디칼리즈무스’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든다. 중도적인 입장에서 내가 현상학을 정의하자면, 그건 ‘Obsessed Radicalism’쯤 되겠다(‘강박적 급진주의’ 혹은 ‘강박적 근본주의’?). 왜 근본적/급진적이냐면, ‘엄밀한 학’으로서의 철학을 다시 정초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로티의 분류에 따르면, 현상학 또한 정초주의적 철학에 속한다. 정초주의적 철학들이 목을 매는 것은 철학의 확실한 토대, 곧 ‘확실성’이다. 어떠한 ‘지진’과 ‘해일’로부터도 자유로운. 혹은 그럴 거라고 착각하는).

자세한 내막을 알지는 못하지만(주저인 <논리연구>가 아직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았다. 그러니, 현상학에 대해서 한마디 하려면 그 방대한 저작을 영어나 독어로 읽으라는 것. 나는 <현상학> 입문서나 <현상학적 운동> 같은 책을 참조하는 수밖에 없었다. 한편, 러시아어로는 후설이 제법 번역돼 있다), 후설은 수학적 대상들이 논리적인 것이냐(=논리주의) 심리적인 것이냐(=심리학주의)는 논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제3의 것이라는 걸 입증하고자 했는데, 주로 그의 문제의식은 당시에 대두하던 심리학으로부터 철학 고유의 영역을 발견/보존하는 것이었다(당시 늙은 철학은 학문계의 새로운 강자인 심리학과 ‘의식’이란 방을 같이 쓰게 됐으므로 자기-갱신이 요구됐던 것. 철학의 회춘).

상식적인 얘기를 좀 늘어놓자면, 그렇게 해서 그가 발견한 것이 ‘지향적 의식작용’(=노에시스)과 ‘지향적 대상’(=노에마)이다. 지향적 의식이란 건 특정 개인의 심리상태나 의식을 초월한다는 점에서 ‘초월적 의식’이고(<논리연구>와 거의 동시에 나온 책이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인데, 현상학은 철저하게 ‘의식철학’이라는 점에서 ‘무의식의 과학’인 정신분석학과 대비된다. 현상학적 입장에서 프로이트를 수용한 것이 사르트르의 실존적 정신분석이다. 그는 무의식을 ‘자기기만’이자 ‘넌센스’로 간주했다), 지향적 대상은 그러한 의식에 현상하는 대상이라는 점에서 실제 대상을 넘어서는 ‘초월적 대상’이다.



어떤 개별적 의식이 어떻게 초월적 의식이 되는가? 그건 옵세적 ‘집중’을 통해서이다. 공이를 갈아서 송곳을 만들듯이 한 가지 일에 집중하다 보면, 아무 생각이 없어지고 텅빈 상태가 된다. 멍청하게 되는 거지만, 좋게 얘기하면 사심(私心)으로부터 자유로운 ‘맑은 연못’처럼 된다(현상학과는 좀 다른 방식이지만, 롤즈의 <정의론> 또한 그런 식의 ‘맑은 연못’, 혹은 백지상태로의 환원을 상정한다. 정의의 조건으로서). 그 ‘맑은 연못’이 초월적 의식이다. 그건 개별적인 의식과 무관하다. 그리고 그러한 의식의 상관물로서 연못에 비치는 것이 초월적 대상이다. 이제 그렇게 비친 것이 대상의 본질이며 그것을 ‘그대로’ 기술하는 것, 그게 현상학적 기술이다.

대학 1학년 첫학기에 들은 종교학 강의에서 ‘종교현상학’에 정통하던 담당교수는 현상학의 예로 “독서백편 의자현(讀書百篇 意自現)”이란 한문 구절을 들었다. 책을 백번(백편?) 읽으면, 뜻이 저절로 나타난다는 것(현상학적 연애술? 백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책을 백번 읽는 게 말하자면 ‘송곳 갈기’이고, 지향적 의식작용이다. 그러면, 먹물 뿌려놓은 글자들(=실제 대상)에서 ‘뜻’이라는 지향적 대상이 우리의 머리속에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옳거니, 그거로군!”).

사실 여기까지는 방법론상으로 별문제가 없어 보인다. 문제는 그러한 지향적 대상을 ‘그대로’ 기술하는 것. 무엇으로? 자연어로! 후설의 철학적 작전은 나무랄 데 없지만(제갈공명 뺨 치지만), 작전을 실행할 병사들(=방위병들!)을 그는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듯하다(비유컨대, 분석철학은 훈련만 뭐빠지게 하고, 현상학은 작전만 아주 열심히 세운다. 해서 분석철학엔 작전이 부재하고, 현상학은 병사들이 부실하다). 그의 관심은 주로 언어보다는 의식이며, 언어 이전의 경험에 집중돼 있는 것이다(이것이 내가 후설이 ‘언어적 전회’ 이전의 철학자라고 보는 이유이다).

 

 

 



지난번 통신문에서 사르트르의 <구토> 얘기를 잠깐 했지만, 이 소설은 셀린느의 소설 외에도 후설의 현상학이 없었더라면 씌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1933년(28세) 베를린에 있는 아카데미 프랑세즈에서 불어를 가르치면서 1년간 체재하는데(레이몽 아롱이 부추겼다던가?), 거기서 후설의 현상학을 접하고 폭 빠지게 된다. 아마도 후설을 오래 사숙했더라면, 후배인 메를로-퐁티처럼 ‘정통’ 현상학자가 됐을지도 모르지만(메를로-퐁티는 벨기에의 루뱅에 있는 후설-아카이브에서 후기 후설의 원고들을 직접 열람하고 <지각의 현상학>을 구상한다), 사르트르는 살짝 현상학의 맛만 보고 돌아오기 때문에(혹은 폼만 잡고 돌아오기 때문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현상학을 전개하게 된다. 그게 <상상력>과 <존재와 무> 등의 저작으로 출현하게 되고.

이 사르트르(혹은 로캉탱)의 지향적 대상은 주로 잉크병이나 물컵 종류이다. <구토>는 시작에서부터 현상학적 집중/환원을 시연(試演)해 보이는바, “예를 들어 여기에 나의 잉크병이 든 종이 상자가 있다고 하자. 내가 ‘전에’는 그것을 어떻게 보았으며 지금은 그것을 어떻게… 그런데 그것은 직육면체요 테이블 위에… 이렇게 말하는 것은 어리석다. 그런 것이라면 아무 할말이 없다. 바로 그런 일을 피해야만 한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을 신기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구토>, 하서, 5-6쪽)

로캉탱의 말을 빌어오자면, 현상학은 현상학적 환원이란 절차를 통해서 “아무렇지도 않은 것을 신기하게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다. 그것은 잉크병 하나, 맥주병 하나에 대해서도 책 한권 분량을 써낼 만한 ‘꺼리’들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현상학이 아니라면 <존재와 무>는 분량을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상학이 그런 꺼리를 제공해주지 못하는 구석이 있으니, 대표적인 것이 ‘역사’이다(‘역사현상학’이라고 최근에 좀 개척되는 듯도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역사는 지향적 대상으로 삼기에는 너무 덩치가 크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시간 경험이나 지각 경험 따위는 자신의 직접적인(내밀한) 경험의 대상으로서 ‘현상학적 환원’이 가능하다(후설이나 하이데거나 다 ‘시간’만을 존재의 중요한 범주로서 다루었다. 그건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역사를 어떻게 환원하는가? 역사는 어디에 있는가? 더불어, 현상학은 현실의 긴급성에 대응하지 못한다. 송곳이 될 때까지 갈아야 하고, 뭐가 나타날 때까지 백번을 보거나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라크 폭격 장면을 백번쯤 반복해서 보면 혹 모르겠다, ‘미 제국주의’라는 뜻이 노에마로서 현상하는지도...

 

나는 앞에서 언어적 전회의 내용이 사유의 언어-의존성에 대한 자각이면서 동시에 (철학어로서) 자연어의 자격미달(=병리성)에 대한 인식이었다고 했는데, 그럴 경우 그에 대한 방책으로서 두 가지 방향성이 주어진다. 왼쪽으로도 갈 수도, 오른쪽으로 갈 수도 있는 것. 비유컨대, 방위병-자연어/일상어에게는 두 갈래 길이 놓여 있다. 특전사-인공어로의 길과 당번병-시어로의 길(특전사와 ‘특권층’인 당번병은 무시당하지 않는다).

<인공어 ← 자연어 → 시어>

(1)<자연어→인공어>라는 방향은 이미 라이프니츠가 주장한바 있는데, <논리-철학논고>의 비트겐슈타인이나 비엔나학파(논리실증주의)의 철학자들이 선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어중이떠중이들의 언어(=일상어)에 오염되지 않은 언어로 통해서 ‘건강한’ 사유가 구축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이 수축주의적 방향은 언어-의존성이란 문제를 횡단하는 것이 아니라 회피하는 것이다(반면에 현상학은 언어-의존성이란 문제를 간과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인간이 너무 잡다한 종이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성찰을 아바타나 사이버 모델에 의존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2)<자연어→시어>라는 방향은 후설의 수제자였지만, 현상학에서 존재론으로 ‘전향’함으로써 후설에게 배신감을 안겨준 하이데거에서 사례를 찾을 수 있다(‘우리말로 철학하기’에 나선 이기상 교수가 하이데거 전공자인 것은 자연스럽다). 어차피 사유가 언어-의존적이라면, 최상의 언어, 최고의 언어를 사유의 질료로 삼아야 한다는 건 자연스러운 요구이다. 그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말할 때, 그 언어는 ‘일요일의 언어’인 시어인 것이다. 은유적인 언어가 개념어보다도 더 탁월한 사유의 질료라는 걸 입증해 보인 니체의 경우도 이러한 계보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문학적 대상의 이념성’이라는 후설적 주제의 박사학위논문을 구상했지만(‘철학자 데리다’에 대한 정치한 분석서를 쓴 로돌프 가셰는 데리다에게 가장 중요한 철학자가 후설이라고 말했다), 끝내 완결짓지 못하고 그라마톨로지와 차연의 세계로 넘어가게 되는 데리다의경우도 하이데거와 유사한 ‘전향’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데리다 전문가로서 김상환 교수가 가장 유려한 문체를 자랑하는 것은 당연하다. 데리다 전문가가 글을 못쓴다는 건 넌센스이다). 지향성이나 이념성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는 언어인 것이다(사실 언어와 철학이란 문제는 훨씬 방대한 규모의 논의를 필요로 한다. 이런 정도의 글은 ‘농담’에 지나지 않는다. 언젠가 나는 이 문제와 정면대결할 기회가 오기를 기대한다. 방위병들을 데리고?).

대략 이러한 전제를 가지고, 서두에서 ‘구멍’으로 제시한 문단을 다시 읽어보기로 한다: “한편, 소설적 로고스/시적 로고스에 대한 참조 없이 철학적 로고스만으로도 철학은 구성될 수 있다(주로 수학/논리학에서 바탕을 마련하고 있는 후설의 현상학이나 초기 분석철학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일단 나의 방점은 철학적 로고스만으로도 철학이 구성될 수 있다는 것이며, 괄호안의 내용은 그 사례이다.

 

 

 

 

러셀은 자신의 <서양철학사>에서 서양철학자들을 신학적 계보와 수학적 계보로 구분한바 있다. 그에 따를 때, 후설이나 비트겐슈타인 등은 모두 수학적 계보에 속한다. 나는 후설의 현상학이 수학/논리학에서 바탕을 마련하고 있다는 지적이 어떤 근거에서 무리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가 현상학적 환원의 사례로 자주 드는 것도 삼각형 같은 것인데 말이다(어떠한 변양에도 동일성이 유지되는 이상형/이념형으로서의 삼각형이 삼각형의 노에마이다). 사실, 후설에 대한 관심은 일차적 관심이 아니라, 하이데거나 데리다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이차적 관심이다. 내가 직접적인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철학자에 대해서 여러 말을 늘어놓지 않겠다(그런 후설이 내게 지향적 대상으로 현상할 리도 만무하고).

그리고 이어서, “하지만, 소설적 로고스/시적 로고스를 끊임없이 참조함으로써 자극과 영감을 얻는 철학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들뢰즈, 데리다, 후기 하이데거 등을 단번에 꼽을 수 있으며, 사르트르도 물론 여기에 포함된다. 더불어 도스토예프스키와 탈무드로부터 근원적인 영감을 얻고 있는 레비나스의 윤리학까지).” 이제껏 해명해 온 것이니 여기서도 이해하기에 억지스러운 대목은 없어 보인다(에스토니아 태생의 레비나스는 어린시절 읽은 러시아 문학에 깊은 감화를 받았음을 고백한다).

나는 두 가지 유형의 철학에서 어떤 우열을 가정하지는 않았지만, 특별히 두번째 유형, 즉 소설적 로고스/시적 로고스와 철학적 로고스의 교합으로 이루어진 철학(그건 문학이어도 무방하다)에 애착을 갖고 있다(나는 이미 지난번 통신문의 말미에서 갈채와 꽃다발을 던진바 있다). 때문에, 사르트르와 데리다가 나의 ‘영웅’이었던 건 우연이 아니다. 나는 로고스의 마임극을 사랑하는 것이다… 

 

 

 

 
P.S. 짧게 마감하려고 했던 글이 본의 아니게 또 (예상보다) 길어졌다. 좀 딱딱한 글이었던 것 같아서 시 한편을 옮겨둔다. 오규원의 <대방동 조흥은행과 주택은행 사이>이다(언젠가 한번 인용한 적이 있다). 아마도 ‘한국현대시와 현상학’이란 테마의 평문을 쓴다면, 내 생각에 오규원은 가장 먼저 거론돼야 하는 시인의 한 사람이다(다만, 그의 주된 관심은 의식과 대상이 아니라 현상과 언어이다). 그는 사르트르가 잉크병을 바라보듯이 ‘대방동 조흥은행과 주택은행 사이’를 바라본다. 아마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으리라. 세보고 또 세보았으리라. 그리고 그걸 기술한다. 정확하게 있는 것들만. 정확하게 반짝이는 것들만.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들, 하지만, 없지 않고 차라리 있는 것들이 때로 정겹고 그냥 아름답다. 비록 깨어져 있더라도.

대방동 조흥은행과 주택은행 사이에는 플라타너스가 쉰일곱 그루, 빌딩의 창문이 칠백열아홉, 여관이 넷, 여인숙이 둘, 햇빛에는 모두 반짝입니다.

대방동의 조흥은행과 주택은행 사이에는 양념통닭집이 다섯, 호프집이 넷, 왕족발집이 셋, 개소주집이 둘, 레스토랑이 셋, 카페가 넷, 자동판매기가 넷, 복권 판매소가 한 군데 있습니다. 마땅히 보신탕집이 둘 있습니다. 비가 오면 모두 비에 젖습니다. 산부인과가 둘, 치과가 셋, 이발소가 넷, 미장원이 여섯, 모두 선팅을 해 비가 와도 반짝입니다.

빨간 우체통이 둘, 학교 담장 밑에 버려진 자전거가 한 대, 동작구 소속 노란 소형 청소차가 둘, 영화 포스터가 불법으로 부착된 벽이 셋, 비디오 가게가 여섯, 골목에 숨어 잘 보이지 않는 전당포 안내 표지판과 장의사 하나, 보도 블록 위에 방치된 하수도 공사용 대형 원통 시멘트관 쉰여섯이 눈을 뜨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표 가변 차선 표시등 하나도!

대방동 조흥은행과 주택은행 사이에는 한 줄에 아홉 개씩 마름모꼴로 놓인 보도 블록이 구천오백네 개, 그 가운데 깨어진 것이 하나, 둘…… 여섯…… 열다섯…… 스물아홉…… 마흔둘……

 

P.S.2. 이 ‘깨어져 있음’에 대한 관심이 내게 빈틈없는 철학적 로고스보다는 문학적 로고스에 끌리도록 만든다(‘빈틈없는 것들’이 철학적 로고스에 끌린다면, ‘깨어진 것들’은 문학적 로고스에서 안식을 찾는다). 우리는 거기에 그렇게 깨어져 있는 것들이다. 하이데거의 현존재(Dasein), 즉 ‘거기에 있음(being-there)’을 비틀어서 말하자면, 우리는 ‘거기에 깨어져 있음(being-broken-there)’이다. 그렇게 ‘널브러져 있음(being-scattered-there)’이다. 그렇게 ‘찌그러져 있음(being-battered-there)’이다. ‘모어-베터-블루스(More better blues)’를 들으며(이 ‘blues’에 군복이란 뜻도 있다는 건 아이러니이다)... 그렇게 (얼룩덜룩) ‘희미해져 있음(being-blured-there)’이다. 그렇게 ‘어색해져 있음(being-awkward-there)’이다.

 

 

 

 

“어색해진 짧은 머리를 보여주긴 싫었어…”를 흥얼거리며, 신병반(awakward squard)으로 들어갔었지… 몇 달이 지나고 나는 당번병 방에서 <자기 앞의 생>을 읽었지. 거기서 제대만을 기다리고 있었지. ‘기다리고 있음(being-waiting-there)’. 그리고 또 몇 달이 지나고 몇 달이 지나고 나는 출근하는 대신에 시립도서관에 가서 <농담>을 빌려와 읽었지. 그리고는 이렇게 물어보았어. “O my life, o my God, you have to be joking?!” 그러더니 쩝쩝, 아직도 이런 농담을 쓰고 있네, 젠장...

06. 0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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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4-26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님 철학의 어떤 분야 강의하세요? 궁금궁금.

로쟈 2006-04-26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문학강의 하는데요(--;)...

마늘빵 2006-04-26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로쟈님 철학 전공 아니셨나요? 아 러시아 문학이세요? 엄... 온갖 철학자들을 다 다루셔서 철학전공하신줄 알았어요.

로쟈 2006-04-26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적 농담'이 부전공입니다...

마늘빵 2006-04-26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대단하신 내공이십니다.

로쟈 2006-04-26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농담에도 내공이 필요하긴 합니다. 거울 보면서 매일 연습합니다.^^

2006-04-27 15: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yoakeaftermopo3 2021-09-29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정말 대단하시다는 말밖에는 ...
 

 

 

 

 

 

 

 

시인 기형도(1960-1989)의 기일은 3월 7일이지만, 내가 그를 한번쯤 떠올리게 되는 날은 4월 5일, 식목일이며, 그건 순전히 그의 시 '식목제' 덕분이다(그는 전세주 엘리엇의 '4월' 한달 가운데, '5일' 하루를 자신의 것으로 임대하고 있다). 1983년 연세대 재학 시절 윤동주문학상에 응모하여 당선된 작품이니까 그가 20대 초반에 쓴 것이며 그런 만큼 푸르고(상승에의 의지) 어둡다(침잠에의 강박). 요즘은 고등학교의 문학교과서에도 들어가 있다는 시이므로 '기본교양' 차원에서라도 아는 체 해두는 게 좋겠다. 

 

 

어느 날 불현듯

물 묻은 저녁 세상에 낮게 엎드려

물끄러미 팔을 뻗어 너를 가늠할 때

너는 어느 시간의 흙 속에

아득히 묻혀 있느냐.

축축한 안개 속에서 어둠은

망가진 소리 하나하나 다듬으며

이 땅 위로 무수한 이파리를 길어 올린다.  

낯선 사람들, 괭이 소리 삽 소리

단단히 묻어 두고 떠난 벌판

어디쯤일까 내가 연기처럼 더듬더듬 피어올랐던

이제는 침묵의 목책 속에 갇힌 먼 땅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 흘러간다.

어디로 흘러가느냐, 마음 한 자락 어느 곳 걸어 두는 법 없이

희망을 포기하려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리, 흘러간다 어느 곳이든 기척 없이

자리를 바꾸던 늙은 구름의 말을 배우며

나는 없어질 듯 없어질 듯 생(生) 속에 섞여 들었네.

이따금 나만을 향해 다가오는 고통이 즐거웠지만

슬픔 또한 정말 경미한 것이었다.  

한 때의 헛된 집착으로 솟는 맑은 눈물을 다스리며

아, 어느 개인 날 낯선 동네에 작은 꽃들이 피면 축복하며 지나가고

어느 궂은 날은 죽은 꽃 위에 잠시 머물다 흘러갔으므로

나는 일찍이 어느 곳에 나를 묻어 두고

이다지 어지러운 이파리로만 날고 있는가.

돌아보면 힘없는 추억들만을

이곳저곳 숨죽여 세워 두었네.

흘러간다. 모든 마지막 문들은 벌판을 향해 열리는데

아, 가랑잎 한 장 뒤집히는 소리에도

세상은 저리 쉽게 떠내려간다.

보느냐, 마주보이는 시간은 미루나무 무수히 곧게 서 있듯

멀수록 무서운 얼굴이다 그러나,

희망도 절망도 같은 줄기가 틔우는 작은 이파리일 뿐, 그리하여 나는

살아가리라 어디 있느냐

식목제(植木祭)의 캄캄한 밤이여, 바람 속에 견고한 불의 입상(立像)이 되어

싱싱한 줄기로 솟아오를 거냐, 어느 날이냐 곧이어 소스라치며

내 유년의 떨리던, 짧은 넋이여.

 

 

시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기 전에, '교과서식' 요점정리를 옮겨온다. 시에 대해서는 이렇게 해야 '안심'이 되는 독자들도 있기 때문에.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성격 : 감상적, 독백적, 회고적, 애상적, 연민과 회상의 어조
-심상 : 시각적, 상징적,
-어조 : 우울하고 비판적인 어조, 자기 고백적인 어조, 연민과 회상의 어조
-제재 : 식목제, 나무 심기
-주제 : 식목제에서 느끼는 비관적인 삶, 유년의 아픔에 대한 회상(回想), 전망이 부재하는 삶에 대한 인식과 성찰
-표현 : 지은이의 경험과 의식을 개인적 상징을 통해 독창적이면서도 우울하게 표현
-구조 : 과거(뿌리)-현재(이파리)-미래(줄기)로 시상이 전개된다.

 

1연 : 1-13행 :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1-13행까지에서 화자는 ‘과거에 대해 회상’하고 있다. 어느 날 문득 시적 화자는 자신의 과거의 삶을 뒤돌아보니 그것은 땅속에서 묻힌 나무의 뿌리처럼 아득하기만 하고 손에 쉽사리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이처럼 과거로 돌아가기는 어렵기에 화자는 현재의 삶을 살아갈 뿐이라고 한다.


2연 : 14-26행 : 화자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특정한 목표나 희망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상함을 느끼며 주어진 삶을 살아갈 뿐이다. 그 삶에는 고통도 있고, 슬픔도 있으며 때로는 삶의 결실도 있으나 화자의 삶은 ‘어지러운 이파리’로만 힘없이 진행되고 있다.


3연 : 27-36행 : 과거에 대한 회상을 기반으로 한 ‘앞으로의 삶’이다. 화자는 살아가면서 늘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그 과거는 쉽게 포착되지 않으며, 먼 과거일수록 유쾌하지 않았던 기억과 마주치게 된다. 나뭇가지가 모두 한 뿌리에서 뻗어나가듯 희망과 절망도 모두 같은 곳에서 연원함으로 아직은 ‘짧은 넋’이지만 과거를 반추하여 앞으로의 삶의 길을 '흘러간다.‘

 

 

기형도 식의 기본구도에 대해서는 이전에 '기형도의 보편문법'이란 글에서 적어놓은 바 있다. 전기적으로 참조할 필요가 있는 것은 1975년 5월에(그러니까 중3 때이다) 기형도의 바로 손위 누이가 불의의 사고로 죽음을 맞은 일. <기형도 전집>의 연보에서는 "이 무렵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씌어 있다. 이러한 전후관계를 그대로 수용하자면, 기형도 시의 발생론적 밑자리에 놓여 있는 것은 누이의 죽음이라는 외상(트라우마)이다. 그리고 이 '상처'를 다스릴 수 없다는 사실이 그의 삶의 정처없는 유동성(흘러간다, 떠내려간다)을 낳는다.

 

어느 날 불현듯

물 묻은 저녁 세상에 낮게 엎드려

물끄러미 팔을 뻗어 너를 가늠할 때

너는 어느 시간의 흙 속에

아득히 묻혀 있느냐.

 

그러한 맥락에서, 시의 시작 부분은 아주 구상적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어느 날 '물 묻은 저녁', 그러니까 울적한 저녁에 '물끄러미 팔을 뻗어' 가늠할 수 있는 대상이란 유년시절에 같이 팔베개 하고 누워있기도 했을 누이이다. 하지만, 그 '너'는 없다. "너는 어느 시간의 흙 속에 아득히 묻혀 있느냐"에서 '직접적으로' 암시되고 있듯이 '너'는 중의적으로 외상적 근원으로서의 '죽은 누이'이다(해설서들에서는 제목을 고려하여 '너'를 '나무의 의인화'로 보며, 나중에 화자 자신과 동일시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나'(시적 자아)가 '죽은 누이'(대상)와 스스로를 동일시할 때, 이것은 그대로 우울증의 발생도식을 따르는 것이 된다. 프로이트가 규정한바, 우울증이란 상실한 대상과 자신을 무의식적/나르시시즘적으로 동일시함으로써 대상 상실이 자아 상실로 전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대상과 자아 사이의 갈등은 동일시에 의해 변형된 자아와 초자아 사이의 갈등으로 변모되고, 이것은 대상화된 자아에 대한 애증의 감정을 낳으면서 급격한 자기애의 상실, 곧 자기 비하로 이어진다.

 

낯선 사람들, 괭이 소리 삽 소리

단단히 묻어 두고 떠난 벌판

어디쯤일까 내가 연기처럼 더듬더듬 피어올랐던

이제는 침묵의 목책 속에 갇힌 먼 땅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 흘러간다.

 

이 대목에서 처음 등장하는 대명사 '나'는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대상과 자아의 동일시에 의해서 변형된 자아이다(기형도의 시적 자아 '나'는 '원래의 자아'와 '죽은 누이'의 합체이다). 그것은 낯선 사람들이 '누이'(대상)를 묻어 두고 떠난 벌판에서 '더듬더듬 피어올랐던' 기억을 갖고 있다. 그 시적 자아는 마치 망자의 유령처럼 어떤 형체(육체)를 갖고 있지 않기에 '흘러간다'. 바로 앞대목은 그런 문맥에서 다시 읽을 수 있다.

 

축축한 안개 속에서 어둠은

망가진 소리 하나하나 다듬으며

이 땅 위로 무수한 이파리를 길어 올린다.  

 

'망가진 소리'란 '괭이 소리 삽 소리', 즉 죽은 자를 매장하던 소리였으며, 그것은 '망가진 육체'에 상응한다. 어둠, 혹은 '나'의 무의식은 그 '망가진 소리 하나하나 다듬으며' '무수한 이파리를 길어 올린다'. 죽음의 자리에서 그렇게 길어올려진 '이파리'가 바로 시적 자아의 (엘리엇의 용어를 쓰자면) '객관적 상관물'이다. 

 

어디로 흘러가느냐, 마음 한 자락 어느 곳 걸어 두는 법 없이

희망을 포기하려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리, 흘러간다 어느 곳이든 기척 없이

자리를 바꾸던 늙은 구름의 말을 배우며

나는 없어질 듯 없어질 듯 생(生) 속에 섞여 들었네.

이따금 나만을 향해 다가오는 고통이 즐거웠지만

슬픔 또한 정말 경미한 것이었다.  

 

이어지는 것은 그러한 '나=이파리'의 유령적 삶이다. '없어질 듯 없어질 듯 생 속에 섞여 든' 그의 삶은 기형도 버전의 '살아있는 죽음(living dead)'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에겐 삶의 일상적인 '즐거움'과 '슬픔'이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한다.  

 

한 때의 헛된 집착으로 솟는 맑은 눈물을 다스리며

아, 어느 개인 날 낯선 동네에 작은 꽃들이 피면 축복하며 지나가고

어느 궂은 날은 죽은 꽃 위에 잠시 머물다 흘러갔으므로

나는 일찍이 어느 곳에 나를 묻어 두고

이다지 어지러운 이파리로만 날고 있는가.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나는 일찍이 어느 곳에 나를 묻어 두고"에서 보이는 두 '자아'의 분리/대립이다. 그것은 시적 자아로서의 '나=이파리'와 '누이'(대상)의 죽음과 함께 같이 매장된 원래의 '나' 사이의 분리/대립에 대한 '확인'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한 '확인'이 의미를 갖는 것은 그것이 자기 자신에 대한 객관화, 즉 성찰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힘없는 추억들만을

이곳저곳 숨죽여 세워 두었네. 

흘러간다. 모든 마지막 문들은 벌판을 향해 열리는데

아, 가랑잎 한 장 뒤집히는 소리에도

세상은 저리 쉽게 떠내려간다.

 

라는 구절이 이어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힘없는 추억들'이란 '나=이파리'의 추억들이며, 그것은 '살아있는 죽음'의 '숨죽인' 추억들이다. 이러한 추억들로는 삶도 세상도 물론 지탱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확인/성찰이 '없어질 듯 없어질 듯'한 생이 아니라 '견고한' 새로운 생의 의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이 시의 대단원이자 '발견'이다.

 

보느냐, 마주보이는 시간은 미루나무 무수히 곧게 서 있듯

멀수록 무서운 얼굴이다 그러나,

희망도 절망도 같은 줄기가 틔우는 작은 이파리일 뿐, 그리하여 나는

살아가리라 어디 있느냐

식목제(植木祭)의 캄캄한 밤이여, 바람 속에 견고한 불의 입상(立像)이 되어

싱싱한 줄기로 솟아오를 거냐, 어느 날이냐 곧이어 소스라치며

내 유년의 떨리던, 짧은 넋이여.

 

'마주보이는 시간'은 더이상 과거가 아닌 미래의 시간일 것이다. 그것은 구름처럼 흘러가는 게 아니라 '미루나무'처럼 곧게 서 있는 시간이다. 그러한 시간을 두려움 속에서도 정면으로 응시할 때 시적 자아는 자기 안에서 새로운 삶의 의지를 발견한다. 그 발견은 '줄기'의 발견이다.   

 

희망도 절망도 같은 줄기가 틔우는 작은 이파리일 뿐

 

고로, 시적 자아에게서 '새로운 삶'이라는 것은 '나-이파리'에서 '나-줄기'로의 이행에 대응한다. "그리하여 나는/ 살아가리라"는 의지의 표명은 그러한 구도를 전제로 한다. 이러한 의지가 이제 당당하게 과거를 호출한다 "어디 있느냐/ 식목제의 캄캄한 밤이여". 또 이와 동격을 이루는 것: "어느 날이냐 곧이어 소스라치며/ 내 유년의 떨리던, 짧은 넋이여".

 

동일한 구문형식으로 돼 있는 이 두 문장에서 짝이 되고 있는 것은 '식목제의 캄캄한 밤'과 '유년의 짧은 넋'이다. '짦은 넋'은 '짧은 생애를 산 넋'이란 뜻으로 읽으면 되겠다(그래서 '캄캄한 밤'과 조응한다). 즉, 그의 '죽은 누이'를 가리키는 것이면서도 동시와 그 누이와 합체가 된 서정적 화자 자신이기도 하다. 이 근원적 과거의 시점("어느 날이냐")과 장소("어디 있느냐")를 이제 불러세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장래의 대한 '나'의 당찬 결의를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더이상 '이파리'가 아닌 '나'를 보여주겠다는 것. "바람 속에 견고한 불의 입상(立像)이 되어/ 싱싱한 줄기로 솟아오를 거냐"란 구절이 뜻하는 바이다. 여기서 '불의 입상'은 나무의 은유이면서 (나무가 흔히 상징하듯이) 한 가계(家系)의 기둥이다. 더이상 '나-이파리'가 아닌, '나-줄기', 더 나아가 '나-불의 입상'이 될 거라는 다짐 혹은 예감.

 

앞에서 '나무심기'(=식목)가 죽은 누이의 매장(하관)에 대한 알레고리가 될 수 있다고 했는데, '식목제'에서의 '제(祭)'가 뜻하는 건 말 그대로 '제의(ritual)'이다. 이 제의는, 반복하지만, '니-이파리'에서 '나-줄기'로의 통과제의이다. 성년의 문턱에서 기형도가 반드시 넘어가야 했을 어떤 과정이면서 절차.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인 기형도의 생애에서 그러한 이행은 완수되지 않는다. '견고한 불의 입상' 같은 강렬한 남성적 이미지는 그에게서 지극히 예외적이라는 것이 한 반증이다. 더불어, 이 시의 마지막 단락이 행가름에 있어서 지극히 혼란스러우면서 중의적인 것도 예시적이라고 할 수 있다(이 대목에서 통사론과 의미론이 서로 길항한다). 그는 끝까지 자신의 '이파리' 존재론과 단절하지 못했다. 물론 이에 대한 총체적 해명은 보다 널따란 다른 자리를 필요로 한다.

 

06. 04. 05.

 

P.S. 기형도의 '제망매가'로 씌어진 시는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와 <기형도 전집>에 수록돼 있는 '가을무덤'(연도 미상)이다. 그 시의 마지막 연은 이렇다.

 

편안히 누운

내 누이야.

네 파리한 얼굴에 술을 부으면

눈물처럼 튀어오르는 술방울이

이 못난 영혼을 휘감고

온몸을 뒤흔드는 것이 어인 까닭이냐.

 

육필 원고(사진)가 남아 있는 시 '풀'은 1979년, 그러니까 대학 1학년때 씌어진 것인데, 2연과 4연을 옮기면 이렇다(강조는 나의 것이다).

 

긴 설움을

잠으로 흐르는 구름 속을 서성이며

팔뚝 위로 정맥을 드러내고

흔들리는 영혼으로 살았다.

 

(...)

 

이제를 뿌리를 내리리라

차라리 웃음을 울어야 하는 풀이 되어

부대끼며 살아보자

발을 얽고 흐느껴보자

 

이 시의 구도 또한 '식목제'의 그것과 대동소이하다. "흔들리는 영혼으로 살았다" -> "이제는 뿌리를 내리리라" 하지만, 그의 뿌리는 너무 얕은 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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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ts 2006-04-05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로쟈님. 낮에 봤을 때 진행중이었는데, 금방 이리 긴 글이..^^ 자주 오는데 인사는 처음 드리네요. 어렵기는 하지만 가끔은 추천하고 퍼가기도 했음을, 뒤늦게 고백합니다..^^

로쟈 2006-04-05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처음 뵙겠습니다. 식목일 행사가 (생각보다) 좀 길어져서 저도 당혹스러웠습니다.^^
 

집에 인터넷이 개통된 지 일주일만에 '주간 서재의 달인'의 되어 어제 5,000원의 적립금을 받았다. 31등을 목표로 한 '서재질'이긴 했지만 대번에 20위권 안으로 진입하게 되어 좀 머쓱했다(더불어 느낀 건 약간의 우쭐함과 함께 '배신감'이었다. 남들은 이런 '허접한' 일에 더이상 신경쓰지 않는구나! 라는 데 생각이 미친 때문). 어제 거기에 대한 감상을 '알라디너의 길'이란 제목의 페이퍼로 썼는데, 등록하기를 누르는 순간 먹통이 되더니 날아가버렸다. 나의 '뼈저린 반성'과 함께(황지우의 시 '뼈아픈 후회'를 패러디한 반성문이 어제 쓴 글의 골자였다). 여하튼 기억을 더듬어서 다시 쓴다. 내용이 그대로 보전될 리는 물론 없지만.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책 이야기들을 좀 내뱉음으로써 나대로는 '청결한' 정신상태를 유지하자는 게 페어퍼들을 올리는 기본 취지인데, 보기에 따라서는 유난스러워 보일 만도 하고('이 사람'을 보라고 하지 않는가!), 이젠 적립금 '수혜자'까지 돼 버렸으니 발뺌도 못하게 됐다. 지난주부터 집에서 야심한 시각에도 서재를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게 된 탓에 얻게 된 장점은 '진행중'인 글을 거의 만들지 않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고, 그건 내심으로 내가 가장 부듯하게 생각하는 것이다(물론 예전에 '진행중'이라고 미뤄놓은 글들이 채무처럼 아직도 꽤 남아있지만).

 

하지만, 이런 시간투자는 다른 일들(특히 생계!)에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당연 든다. 한데, 문제는 나날이 늘어나는 '수거물'들이다. 거의 처치 곤란한 수준이다. 떠오르는 단상들과 참견들을 긁어모으면 매달 책 한권 분량은 적어내려갈 듯하다. 하니, 취지야 그럴 듯하다고 쳐도 방도는 좀 달리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게 요즘 드는 생각이다. 그렇게 생각을 가다듬으며 다시 읽는 '뼈아픈 후회'.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모든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도 있고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도로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의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젋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니었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나의 희생, 나의 자기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들 넣어주는 바람뿐

 

 

나는 이런 식의 과장된 수사나 자기 비하에 공감하는 바가 거의 없다. 거기에 모든 게 걸려 있지 않다면, 그냥 후회의 포즈에 불과하기 때문에. '폐허'를 간직하고 있다지만 작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행사에 조직위의 예술총감독으로 참여하면서 보여준 공로로 얼마전 문화훈장까지 수상한 황지우 시인은 올해부터는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장으로 봉직하고 있다. 지난 2월 신입생들 맞으면서 그가 '공인'으로서 건넨 축사의 일부는 이렇다고:

 

“바람둥이 제우스가 앙앙대는 부인 헤라와 부부 싸움을 하다가, 패기 시작했는데, 요즘 말로 하면 가정 폭력의 원조였다. 아들 헤파이스토스가 대드니까, 제우스는 아들을 발로 차버렸다. 하늘 끝에서 지상으로 추락한 헤파이스토스는 절름발이가 됐지만, 그는 최고의 대장장이가 됐다. 무릇 예술가란 어딘가 눈에 띄는 결함이나 결핍이 있다. 예술가는 견딜 수 없는 결핍 속에서 위대한 무엇을 해낸다. 여러분도 자신의 결함을 자신의 특징으로 ‘잇빠이’ 키워라.”(강조는 나의 것) 

 

 

 

 

 

 

 

 

  

여기서 총장님 말씀에 끼어든 '잇빠이'가 시인의 표징이자 자존심이다. 더불어 처신에 대한 그의 자기 정당화이다. 또한 더불어, 이 예술가론은 막바로 그의 시론이기도 하다는 걸 굳이 덧붙일 필요가 있을까? '뼈아픈 후회'는 그 자신의 사소한 '결함'을 '잇빠이' 뽑아낸 게 아닐까? 연이어 공직을 맡게 된 시인의 소감은 이렇다: “인생 ×됐다. 몽골 초원에서 양떼를 키우며 살고 싶었는데, 또 덫에 걸려 시간을 차압당했다. 지금 몽골의 내 양떼들이 눈을 맞으며 흩어져 있을 텐데….” 그 양떼들이 아마도 시인/총장 황지우가 또 '잇빠이' 키우고 있는 자신의 내밀한(공공연한) 판타지일 것이다. 게눈 속의 연꽃처럼. 아래는 시인/총장 황지우.

 

  

여하튼 그의 '뼈아픈 후회'를 본받아 '뼈저린 반성'을 산문적으로 해보자면, 이런 식이 될 것이다: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책들이 놓였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모든 책들, 어딘가 몇 군데는 찢기고 해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책들의 사막도 있고,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도로 이 무시무시한 책탐에까지 끼어들어오지는 못했다(오, 숱한 구박이여!).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의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아빠는 자기 생각만 해!")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이어지는 운문.

 

책에 묻혀 아무도 사랑해 볼 틈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저린 반성은 바로 그거다

그 시덥잖은 책들을 위해 그 누구누구를 더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젋은 시절, 철없는 욕심에

내가 자청한 책사기는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니었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나의 희생, 나의 자기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잔소리 없이는 들어오지 않는 나의 서재

다만 죽은 저자들의 머리맡에 가라앉는 책먼지뿐.

 

 

신이시여, 이것이 정녕 알라디너의 길이옵니까?!

 

06. 04. 04.

 

P.S. 얼마간 예상했던 것이긴 한데, 오늘(04. 05)로써 서재를 즐겨찾는 분이 600명에 이르렀다. 300명을 넘어선 지 대략 9개월만이다. 과거에도 혼자서 자주 써오던 '독서일기'였지만, 본의 아니게(나는 알라딘의 '고객'이었을 뿐이었다!) '나의 서재'라는 블로그를 갖게 된 이후에는 다른 이들의 이목에도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즐겨찾는 분들의 1/3 가량은 '로쟈'에 대한 이런저런 '비호감' 때문에 서재를 찾는 '적들'이 아닌가 싶고, 반대로 1/3 정도는 소극적으로라도 로쟈를 지지/응원해주시는 '우군'들이 아닌가 싶다. 어느 경우이든, 그리고 언제든 나는 배울 준비가 돼 있다(나의 '수다'는 궁극적으로 세상을 더 많이 알고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한 노력이다). 즐겨 찾으시는 만큼 즐겨 꼬집어주시고 가르쳐주시길 기대한다.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 알라디너 모두의 '파이팅!'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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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 2006-04-04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아가버린 것'은 허망합니다. '날아가버린 것'은 더이상 로쟈님의 것이 아니니 넘 미련두지 마셔요....^^;

twoshot 2006-04-04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립금 5천원...5천만원도 아니고 5천원 아니겠습니까. 요새는 시집도 6천원이니까 별 도움은 안되겠군요. 그냥 사막을 건널때 낙타에게 물 한모금 먹이면 되겠네요...그리고 낙타를 잡아먹어야 하는건가...쿨럭..

2006-04-04 1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4-04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님/ 흔한 일인데요, 뭐.
marcus님/ 낙타들은 당연히 먹어치워야 하지 않을까요? '책'에 그렇게 나와 있다면!
**님/ 제딴엔 가벼운 수다들이 '무게중심'을 잡는다시니까 제가 무게 좀 잡겠습니다. 한데, 지금 타고 계신 건 뭔가요?^^

마늘빵 2006-04-04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은 오천원 받을 만한 자격 충분해요. 저 방금 로쟈님한테 땡스투 두 개 눌렀어요. 잘했죠?

로쟈 2006-04-04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잘 하셨습니다.^^

로드무비 2006-04-05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시덥잖은 책들을 위해 그 누구누구를 더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밑줄 쫘악.^^


연우주 2006-05-11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늦은 댓글이지만 글 너무 좋은데요? 황지우 시집 검색하다 찾았습니다. 와우! 패러디 글도 너무 좋습니다.

2006-06-17 2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6-17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여력이 안됩니다.^^
 

 

 

 

 

'4월은 잔인한 달'이란 구절은 물론 T. S. 엘리엇(1888-1965)의 <황무지>(1922) 서두에 나오는 것이면서, 이제는 4월이면 한번쯤 떠올리게 되는 시구이다. 흔히 프란츠 카프카 문학의 위업을 말하면서, 그가 26개의 알파벳 중에서 'K'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작가라 평하기도 하는데(그건 셰익스피어도 하지 못한 일이다), 내가 보기에 엘리엇은 자신의 이 명구절 때문에 일년 12달 중에서 4월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어쩐지 4월에는 그의 서명이 새겨져 있는 것 같지 않으신지? 특히나 시 애호가나 시인들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이에 견줄 만한 노래로는 딥퍼플의 'April'과 사이먼&가펑클의 'April come she will' 정도가 떠오른다).

가령, 정은숙 시인의 한 칼럼도 이런 식이다: "내게 봄은 엘리엇과 함께 온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이 시인의 절규가 생각난다. ‘차라리 겨울은 우리를 따뜻하게 했다’는 이 시인의 ‘황무지’ 일절은 내게 봄이라는 계절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신열(身熱)처럼 그렇게 봄은 다가오는 것이다." 굳이 신열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게도 봄은, 특히 4월은 엘리엇과 함께 온다(몇년 전부터는 장국영(1956-2003)과 함께 온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아졌겠지만, 이들에게도 '4월은 잔인한 달'인 것만은 틀림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읽기/쓰기에 관한 빽빽한 일정들이 달력에 표시돼 있는 4월의 '잔인함'을 확인하노라면 새삼 엘리엇의 시구는 아직도 생생한 '현실'이다. 

"응, 요즘 T. S. 엘리엇의 <황무지>를 읽고 있구나." 그리고는 처음 서두의 몇 줄을 읊어댄다. 그런 식으로 과거에는 청소년 드라마에서도 종종 대사로 나오기도 했던 대목을 여기에 옮겨본다.     

APRIL is the crue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Winter kept us warm, covering

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球根)으로 가냘픈 생명을 키워왔다.

 

내가 읽은 번역은 황동규 시인/교수의 번역이지만, 현재 엘리엇 관련서들은 모스크바에서 구한 영-러 대역본 선집을 제외하곤 모두 박스에 들어가 있는지라 인터넷에 떠도는 걸 가져온 인용 번역은 출처를 알 수 없다. 하여간에, 이 자리에서의 요는 'APRIL is the cruelest month'라고 한번 읊조리듯 읽어주는 것이다(엘리엇의 낭송도 인터넷에는 떠다닌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흔히 알려져 있지만, 직역하자면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다. 사실 이건 너무 잔인한 표현인데, 1-12월이 모두 잔인하지만 그 중에서도 4월이 가장 잔인하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로선 공연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게 아니라 그냥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푸념을 좀 늘어놓은 다음에 좀 기다렸다가 '5월은 푸르구나!'로 넘어가는 게 낫겠다.      

 

 

 

 

요즘은 그런 거 같지 않지만, 예전엔 시인이라면 <황무지> 정도의 '난해시'는 읽고 해석할 줄 알아야 했다. 작고한 구상 시인의 <현대시창작입문>(현대문학, 1989)에서도 시인의 기본 교양으로서 황무지 읽기와 해설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어서 읽으면서 이채롭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은 상식이 돼 있지만, 여하튼 <황무지>를 읽기 위해서는 엘리엇이 많은 영감을 얻어왔다다는 프레이저의 <황금가지> 정도는 미리 읽거나 같이 읽어줘야 한다(엘리엇 왈: "나의 <황무지>는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를 시로 옮긴 것에 불과하다"). 거기에 성배 찾기와 어부왕 전설 등에 관한 유용한 연구를 담고 있는 제시 웨스턴의 <제식에서 로망스로>(문학과지성사, 1988)도 교양 필독서이다. <황무지> 정도를 읽고 토론하는 정도는 '교양' 범주에 속한다고(주석본 읽기를 포함해서) 거기에 동의할 만한 독자들은 갈수록 줄어들 듯하다(<황무지>가 게임으로 만들어지지 않는 한).   

학부 2학년 때 비교문학 강의를 들으면서 'T.S.엘리엇과 한국문학'이란 주제의 팀발표를 맡은 인연도 있고 해서 엘리엇에 관한 자료들은 국내의 연구서들을 포함하여 나름대로 갖고 있지만 영문학도도 아닌 데다가 현재 자료들을 열람할 만한 여건도 아니어서 더 아는 체하는 대신에 여기서는 신정현 교수(서울대 영문과)의 '고전해제'(동아일보, 2005. 06. 02)를 옮겨오도록 한다. 다만 강조는 나의 것이다.   

T.S. Eliot

 

 

 

 

 

 

-1922년에 발표된 엘리엇의 시 <황무지>는 20세기 현대 문명에 갇혀 생명의 기운을 잃은 서구인의 자화상이다. 20세기의 기술혁명을 바탕으로 치러진 1차 세계대전은 양측 군인 사상자만 3500만 명에 이르는 형언하기 어려운 아픔이었다. 죽음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죽음에 이르는 길은 얼마나 더 참혹하고 처절했던가? 작가는 시를 통해 스스로 만든 재앙의 굴레를 자신의 머리 위에 쓴 사람들의 죽은 영혼을 해부하고 있다. 누구일까? 그리고 무엇일까? 북러시아의 들쥐처럼 집단자살의 충동에 시달리며 거역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문명으로의 길을 걷고 있는 그들은? 인간에게 내린 신의 축복, 문명을 생명이 깃들 수 없는 황무지로 만든 이의 정체는 무엇인가? 20세기 최대의 시인 엘리엇은 섬뜩한 이미지와 푸가풍의 반복적이고 다음성적인 리듬으로 끊임없이 이 물음을 곱씹고 있다.  

-황무지란 원래 생명이 서식할 수 없는 불모의 땅이지만, 이 시에서 황무지는 생명이 깃들 수 없는 문명을 뜻한다. 그렇다면 20세기 문명은 왜 생명을 잉태할 수도, 생명을 길러 낼 수도 없게 되었나? <세티리콘>에서 따온 이 시의 서시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얻는 열쇠다. 늙어 쪼그라들어 작은 병 속에 갇혀 추녀 끝에 매달려 살게 된 무녀 시빌에게 한 아이가 묻는다. “시빌, 너 무얼 원하니?” 시빌이 대답한다. “나는 죽고 싶어!”  

-아폴로 신은 무녀 시빌을 총애해 어느 날 소원을 하나 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시빌은 먼지 한 줌을 움켜잡으며 말했다. “먼지알만큼 많은 삶을 내게 주십시오.” 그녀는 젊음은 단 한 번밖에 없는 인간으로서의 ‘먼지알만큼 많은 삶’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무한히 오래 살고 싶었을 뿐, 젊음을 재창조하며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지 못한 시빌의 모습과, 그저 많은 문명의 이기는 원하지만 그곳에서 행복과 희열을 얻는 방법을 찾지 못하는 현대 서구인들의 모습은 너무나 똑같지 않은가? 

-20세기를 넘어서면서 맞닥뜨린 문명의 막다른 골목에서 엘리엇은 서구인의 삶에 서린 ‘무한한 늙음’과 ‘죽음만이 유일한 소망’이 되어 버린 깊은 절망을 보았다. 그러나 그를 더욱 절망하게 한 것은 그 절망조차도 의식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정신적 황폐함이었다. 시빌의 절망에는 아직 희망은 있다. 그녀는 죽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그 뒤에는 재생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의 절망에는 희망이 없다. 그 황폐한 정신을 가지고 죽음을 피해 다닐 뿐, 재생의 길을 걷지 않기 때문이다.  

-황무지에 등장하는 겨울에 따스함을 쫓아 남쪽으로 가는 유한계급의 사람, 종교적 신념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 문명의 값진 유산을 허식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상류계층 속물, 생명력의 원천으로서 성(性)의 의미를 생각하지 못하는 방탕한 여인, 상업적 이익에만 몰두하는 장사치, 구원의 기사를 유혹해 위험에 빠뜨리는 거리의 여인 등 수많은 인물은 모두 황폐한 정신을 지녔으면서도 그것으로 절망하지 않는, 정신적으로 죽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이 시의 제목은 생명이 깃들 수 없는 황폐한 문명에 붙여진 것임과 동시에 젊음의 재창조가 없는 영겁의 삶에도 두려움을 갖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황폐한 정신에 붙여진 것이다.

덧붙여서, 역시나 동아일보(1996. 04. 28)에 게재됐던 엘리엇 관련기사를 옮겨온다(필자는 확인하지 않았다). 그의 전기에 관한 내용도 포함하고 있어서 유익하다.

-미국 미네소타대는 지난 56년 4월 30일 한 시인의 강연회를 위해 대학 전용 축구장을 내줄 수 밖에 없었다. 실제 이날 모인 청중은 1만 5천여명에 달했다. 강연회의 주인공은 4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영국 시인 T.S 엘리엇(1888∼1965). 그는 이날을회상하며 "거대한 투우장으로 들어가는 투우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같은 강연 모습은 서구문학사상 전무후무한 것이었다. 문인들에게 20세기를 대표하는 시인 한 사람만을 고르라면 바로 엘리엇이 선택될가능성이 가장 높다. 금세기 최대의 문제작으로 꼽히는 그의 시 <황무지> 때문이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球根)으로 가냘픈 생명을 키워왔다 .


-5부 4백 33행으로 이뤄진 <황무지>는 딱 떨어지게 해석되는 시가 아니다. 1차대전 후의 '시대적 환멸과 허무사상'을 노래한 시라고 하는가 하면 '현대문명의 불모성'을 노래한 시라고 보기도 한다. 심지어는 불교시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엘리엇 자신은 이같은 해석을 모두 거부하고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쓴 시'에 불과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같은 다면성을 갖춘 <황무지>는 20세기 모더니즘의 대표작으로 손꼽히고 있으며 지난 22년 출판된 후 새로운 시의 대명사로 통해왔다. 다양한 인용과 다채로운어법등을 통해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혁신적인 기법의 시세계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났다. 조부는 대학 창립자이자 목사였으며 엘리엇은 엄격한 가풍 속에 방종과 쾌락을 멀리하고 수줍음을 잘 타는 아이로 자라났다. 하버드대에 입학한 그는 철학에 빠져들어 박사과정까지 마치게 된다. 그는 1908년부터 런던에서 머물렀는데 미모의 무용수 비비언 헤이우드를 만나 결혼했지만그녀의 정신질환으로 결혼생활은 불행하기만 했다. 그는 1917년부터 9년간 로이드 은행 행원으로 일하면서 격무에도 불구하고 문학적으로 큰 비약을 했다. 1920년 최초의 비평선집 <신성한 숲>을 펴내 비평가로서 위치를 확립했다. 여기서 그는 시란 시인의 개성을 떠난 독자적인 생명체라는 '개성 배제의 시론'과 시인의 감성은 객관적 이미지로 표현돼야 한다는 '객관적 상관물' 이론을 펼쳤는데 이는 이후 구미비평계를 휩쓴 '신비평'의 기초가 됐다.

 

-엘리엇은 출판편집인으로서도 큰 활약을 했다. 그는 문예지 <크라이테리언>의 편집책임자로서 로렌스, 조이스, 헉슬리 등의 글을 실었으며 대형출판사 '페이버'사의 편집이사로서 역량있는 신인들을 발굴했다. 한편 그는 극작가로도 활약해 <성당의 살인>, <가족의 재회> 등의 시극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엘리엇 문학의 본령은 어디까지나 시였다. 그는 8년간의 작업 끝에 지난 43년 장시 <네 사중주>를 출간했다. 영문학계에서는 엘리엇에게 유명세를 안겨준 것은 <황무지>이지만 그를 대표하는 걸작은 <네 사중주>로 보고 있다. 초기 시의 난해성을 극복하고 통일된 구조와 안정된 세계관을 보여주는 원숙한 작품이라는 것. 엘리엇에게 노벨문학상수상을 안겨준 것도 <네 사중주>였다.

 

 

-노벨상 수상 이후 그는 잇따르는 상훈(賞勳)속에 비서였던 39세 연하의 발레리 플레처와 결혼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06. 04. 02.

P.S. 엘리엇에게 4월맞이 '눈도장'을 찍었으니 이젠 본격적으로 각자의 '잔인한 4월'과 맞닥뜨려야 할 시간이다. 그 시간이 '시간의 재(Ashes of Time)'가 될 때까지 <동사서독>(1994)의 구양봉(장국영)처럼, 머리 풀어헤치고(혹은 새로 밀고서) 떠날지어다. 이크, 적들은 벌써 와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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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황무지'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4-03 00:46 
    이번달 <고교 독서평설>에 실은 글을 옮겨놓는다. 엘리엇의 시 <황무지>에 대한 갑론을박을 다루었는데, 아주 오랜만에 시와 함께 관련논문을 10편쯤 읽고서 작성한 것이다. 몇 가지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어 흥미로웠고 이해의 가닥을 나대로 잡을 수 있었다. 제목엔 '깊이 읽기'란 말이 들어갔지만, 실제로는 '깊이 읽기'를 위한 심호흡이자 워밍업 정도이다. 여유가 되면 나중에 본격적으로 다뤄보고 싶다(물론 더
 
 
산손 2006-06-07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티리콘 ㅋㅋ 왜 모든 걸 영어식으로 읽으면 된다고 생각하는지 이런 것도 간단히 찾아보면 되는 데 ;; 여담으로 원래 <사티리콘 Satyricon>에서 인용한 어구 대신에 엘리엇이 붙이려고 했던 건 콘라드 소설 속 화자가 커츠 죽는 걸 이야기하는 부분이라고 하는데(마지막 부분이 horror! horror!) 에즈라 파운드 씨가 딴지 걸어서 바꿨다고 하네요. 이미 알고 계신지도 ;; 저기 사진에 있는 'annotated'에 나와 있습니다.

로쟈 2006-06-07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공자들의 '티내기'죠. 그 정점은 <옥스포드 영문학사>일 겁니다. 'horror, horror...'는 <어둠의 속>을 원작으로 한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에서 말론 브란도(커츠)의 마지막 대사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