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11월말에 올린 모스크바 통신문은 "책은 무조건 즐겁게 읽어라"란 제목을 달고 있는데, 그 후반부는 올해초에 '공부냐 학습이냐'란 페이퍼로 따로 정리해놓은 바 있다. 그 전반부를 이미지 버전으로 정리해서 창고에 넣어둔다. 제목은 페나크의 소설에서 인용한 '즐거운 도망, 즐거운 저항'으로 바꿔달고. 다시 읽어보니 '나의 독서론'도 겸하고 있다. 

낮에 (점심이 아니라) 아침을 먹고서 수업에 들어가기 위해 나서는 참에 문 우편함에 인쇄 우편물이 들어 있는 걸 발견했다. 북매거진 <텍스트>(23호)였다. 지난 22호부터 20일 간행 체제로 바뀌고서 두번째로 나온 것인데(22호에 나는 ‘체홉론’을 기고한바 있다), 표지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실용적’이었지만, ‘책과 시대’란 가볍지 않은 주제를 특집으로 다루고 있었다. 제목의 인용구는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처럼>(문학과지성사)에 대한 서평의 제목이기도 한데, <텍스트>의 표지에는 그의 글이 조금 더 인용돼 있다.



 

 

  

“지금까지 우리의 인격을 형성해온 책읽기란 대개는 순응하고 따르는 책읽기라기보다는, 무언가에 반하고 맞서는 책읽기였다. 즉 이제껏 우리가 책을 읽어온 것은, 마치 세상과 등지듯 현실을 거부하고 현실과 대립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때론 우리가 현실 도피자처럼 여겨지고 현실마저 우리가 탐닉하는 독서의 매력에 가려져 아득해질지언정, 어디까지나 우리는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 도망자,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탈주자인 것이다. 모든 독서는 저마다 무언가에 대한 저항 행위이다.”(<소설처럼>, 103-4쪽)

두 개의 인용구를 종합하면, 책읽기는 ‘즐거운 도망’이고, ‘즐거운 저항’이다. 도망치면서 저항하는 것인지, 저항하면서 도망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에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한없이 도망치고 한없이 저항한다. 아니, 도망치기 위해서, 저항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 건지도 모르겠다. (페나크에 따르면) 그것이 책읽기의 의의이다. 중요한 것은 무조건 즐거워야 한다는 것. 만약에 당신이 책을 읽으면서 즐겁지 않(았)다면, 당신은 제대로 도망가지도, 저항하지도 못한 것이 된다(그건 당신이 변변찮다는 얘기이다). 그러니, 책은 무조건, 절대적으로, 악착같이 즐겁게 읽을 필요가 있다(물론 애초에 그럴 만한 책을 고르는 안목이 중요하다).  


 

 

 

 

‘즐거운 책읽기’와 관련하여 나에게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책이 두 권 있다. 그건 김현의 평론집 <책읽기의 괴로움>(민음사)과 롤랑 바르트의 <텍스트의 즐거움>(동문선)이다. 기억에 <책읽기의 괴로움>은 최인훈의 <회색인>에 대한 평문의 제목을 표제로 한 책이었다. 나는 김현 전집으로 다른 책과 묶여서 나온 <책읽기의 괴로움>도 갖고 있지만, 내가 더 아끼는 건 민음사판의 초판본이다. <분석과 해석> 이전에 나온 것이니까 아마도 80년대 초반에 나왔을 법한데, 내가 중학교 때부터 문학평론집을 읽은 건 아니므로 내가 이 책을 구한 건 당연히 훨씬 나중이다(물론 책은 이미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다 읽은 뒤이다).  

절판됐던 그 책을 구한 건 아마도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90년대 초반에 새로 개장한 영풍문고에서였다. 아마 재고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던 책이 나온 듯한데, 나는 한 권 남아 있던 이 책을 집어들고서 쾌재를 부른 적이 있다(요컨대, 이런 게 ‘책 구하기의 즐거움’이다). 그게, 마지막 한 권이었는지는 어떻게 아느냐고? 그걸 확인해보려고, 책을 사고 며칠 안 돼서 서점에 또 가봤기 때문이다(더는 진열돼 있지 않았다). 해서, 한동안 내가 가장 즐겨 들르던 서점이 영풍문고였고, 영풍문고는 내게 <책읽기의 괴로움>으로 각인돼 있다. 

사실, (내 기억에) 김현이 말한 ‘책읽기의 괴로움’은 책을 통해서 읽을 수밖에 없는 ‘세상 읽기의 괴로움’을 뜻한다. 그러니까 그 자체로는 ‘즐거운 책읽기’를 괴롭게 만드는 건 세상인 셈. 하지만, 책읽기의 즐거움은 그런 괴로움을 기꺼이 감수하도록 하는 즐거움이며,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쾌락원칙을 넘어선다. 즉, 책읽기의 즐거움은 쾌락이 아니라 향락이다.

 

  

 

 

 

바르트의 책 <텍스트의 즐거움>은 우리말로 두 종의 번역서가 나와 있는데(나에겐 이 두 번역본과 영역본이 있다), 읽은 만한 건 김희영 교수가 옮긴 동문선본이다(연대출판부본은 ‘책읽기의 괴로움’을 강요하는 번역이다). 바르트의 책들은 우리말 전집이 기획/출간되고 있을 정도이니까 우리에게 친숙한 편이지만, 아쉽게도 그의 유미적인/유희적인 문체 때문에 쉽게 읽히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사랑의 단상>이나 <카메라 루시다> 정도가 예외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편, 우리말로 번역된 바르트의 책들은 대부분 러시아어로도 번역돼 있다(<카메라 루시다>, 즉 <밝은 방>만 아직 보지 못했다). 더 번역된 건 두툼한 선집 외에 정도. 그 중에서 내가 산 건 아직까지는 <기호의 제국> 한 권뿐인데, 그건 내가 영역본을 따로 갖고 있지 않아서이다.

<텍스트의 즐거움>을 읽기 위해서 먼저 읽어야 하는 것은 '저자의 죽음'과 '작품에서 텍스트로(From Work to Text)'라는 바르트의 두 짧은 평문이다(동문선본에 같이 번역돼 있을 듯하다). 어떤 책을 ‘작품(Work)’으로 간주하는 건 간단히 말해서, 그걸 산출한 ‘주인’ 혹은 ‘아버지’로서의 저자를 상정하고, 그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을 작품 읽기의 목적으로 삼는 태도이다(따라서 신학적이며 형이상학적인 태도이다). 반면에 어떤 책을 ‘텍스트(Text)’로 간주하는 건(‘교재’란 의미의 ‘텍스트’가 아니다), 더 이상 그런 의미작용의 중심으로서의 저자를 고려하지 않는 태도이다. 그래서, ‘저자의 죽음’이다(이건 반형이상학적이며 탕아적인 태도이다).

바르트는 ‘작품’의 은유로 ‘유기체’를 드는 반면에 ‘텍스트’의 은유로는 ‘덫’을 든다. 하나는 채워져 있고, 다른 하나는 비어 있다. 그래서, 작품은 독자가 ‘읽어내는’ 것이지만, 텍스트는 독자가 ‘채워넣는’ 것이 된다. 해서, (바르트의 다른 용어로 표현하자면) ‘작품’이 독자가 읽어내는 텍스트(readerly text)에 대응한다면, ‘텍스트’는 독자가 써나가는 텍스트(writerly text)에 대응한다.


나는 러시아 문학 이전에 ‘문학’이 전공이다 보니까 문학이론/비평 또한 관심에서 제쳐놓을 수가 없(었)는데(해서 문학이론서들을 지겨울 정도로 많이 읽었다. 그런데, 이 ‘이론’이라는 게 말 그대로 ‘모든 것’에 대한 지식을 요구한다. ‘공부’하기엔 좋은 동네인 셈), 이른바 ‘이론’은 20세기 후반 인문학의 주도적인 담론이었다. 그 기폭제가 (프랑스) 구조주의였다면(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구조주의는 ‘현실’을 ‘구조’로 대체/환원했다) 문학비평에서 ‘구조주의 혁명’을 주도했던 바르트의 위치는 간과될 수 없다(물론 그는 <텍스트의 즐거움>(1973)을 경계로 포스트 구조주의로 넘어간다). 

 

특이한 건 그가 주로 아카데미즘의 바깥에서 활동했다는 것.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기호체계의 사상을 가르치는 교수로 취임하는 것이 1977년이니까 1953년 <글쓰기의 영도>(이 또한 우리말 번역이 있는데, ‘번역의 0도’쯤으로 불릴 만하다)로 ‘데뷔’한 지 22년이 지나서야 그는 ‘변변한’ 직업을 갖게 된다(이전에 그가 몸담았던 연구소 등에서의 지위나 보수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지만). 그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되는 것은 불과 몇 년 후이다(내 기억에는 1980년이고 그의 유작이 <밝은 방>, 곧 <카메라 루시다>이다).


아마도 그런 전기적 이력이 보다 ‘본격적인’ 구조주의 비평가라는 제라르 주네트보다 바르트에게 더 친밀감을 갖게 하는 듯하다(나는 두툼한 영어판 바르트 전기도 갖고 있으며, 1/3쯤 읽었더랬다). 그건 ‘불문학자’ 김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여서, 그는 <프랑스비평사: 현대편>(문학과지성사)에서 주네트 대신에 바르트에게 한 장을 할애한다(곽광수 교수 같은 이는 바르트를 딜레탕트 비평가, 좀 ‘재치 있는’ 비평가 정도로 평가절하한다).

 

 

 

 

 

 

 

 

 

 

참고로, 김현이 재구성한 프랑스 현대비평은 '사르트르-바슐라르-바르트-블랑쇼'의 4각형으로 이루어지는바, 이들의 키워드를 차례대로 나열하면 '참여-상상력-언어-죽음'이다(나는 문학을 구성하는 네 원소가 ‘사랑과 가난과 죽음과 언어’라고 생각하는바, 사랑과 상상력, 가난과 참여를 등가화시키면, 두 사각형은 동일한 매트릭스의 변주가 된다).

 

주인/아버지로서의 ‘저자의 죽음’을 선언한 바르트였지만, 사실 그에겐 아버지가 없었다(일찍 여읜 걸로 기억된다). 그래서 그에겐 내내 어머니밖에 없었으며(<밝은 방>은 그 어머니의 죽음에 바쳐진 책이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 (교통사고이긴 했지만) 그는 얼마 더 살지 못했다(참고로 그는 동성애자였다). ‘유복자’ 혹은 ‘아비 없는 자식’이란 점에서 바르트는 한 세대 선배인 사르트르를 따르고 있다(프랑스의 20세기 지성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이들은 사르트르-바르트-데리다이다. 데리다의 죽음으로 이들은 모두 고인이 됐다. 1980년부터 2004년까지이다).

 

어찌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린시절 나에게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79년 박정희의 죽음이 아니라 80년 사르트르의 죽음이었다(*나는 '사르트르의 죽음과 철학'이란 글을 쓴 바 있다). 나는 신문지상에 보도된 그의 죽음에 매료됐고, (‘정치가’가 아닌) ‘작가’의 길을 선망하게 된다(그 길이 이 길이었다니!).

 

 

고등학교 때부터 사르트르의 소설들을 읽었지만, 그렇다고 그의 책들을 모두 읽은 건 아니다(나는 <존재와 무>도 아직 읽지 않았다). 하지만, 국내에서 나온 사르트르에 대한 책들은 거의 다 읽었다. 얼마 전에는 헌책방에서 러시아어로 된 사르트르 연구서를 샀는데(333쪽이고 1,600원) 레오니드 안드레예프란 저자의 이름은 낯설지만, 1994년에 나온 이 책이 러시아에서 나온 ‘최초의 사르트르 연구서’란 점이 마음에 들었다. 사실, (레이몽 아롱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좌파였던 사르트르 세대의 프랑스 지식인들이 과거 소련체제, 그리고 소련의 작가들과 가졌던 ‘친분’을 고려하면(이들의 서신교환도 두툼한 책 한 권 분량이다), 90년대에 들어서야 그의 연구서가 나왔다는 점은 다소 의외이다(소련에서는 ‘부르주아 철학’도 열심히 연구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책읽기의 괴로움>과 <텍스트의 즐거움>, 두 권의 책이 생각난다는 얘기이다. 물론 ‘텍스트’가 그러하듯이 모든 ‘생각’에는 꼬리가 있다(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김현의 유작은 사후에 출간된 일기 <행복한 책읽기>인데, (내 기억에) 생전에 제목을 정해두었다는 그가 염두에 둔 것은 <책읽기의 괴로움>이었을 것이다(돌이켜 보건대, 그의 죽음은 90년대 한국문학의 최대 손실이다. 비평가와 불문학자로서 그의 ‘열정’과 ‘업적’을 넘어설 만한 이는 아직 없으며, 앞으로도 당분간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건 한편으로 고인에게 부끄러운 일이다). 그 ‘행복한 책읽기’가 10년 정도만 더 연장됐어도, 우리는 (그는 4년에 한번 꼴로 책을 냈으므로) 최소한 두 권의 문학비평집과 (그가 <프랑스비평사>에서 포부를 밝힌바) 리쾨르와 데리다 등의 연구서를 더 가질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까운 일이다.

 

 

아마도 1994년에 책이 나온 건 1964년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거부 3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도 갖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니까 올해는 그의 노벨상 수상/거부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어제 날짜 <니자비씨마야>의 ‘엑스 리브리스’의 표제기사가 그걸 상기시켜주었는데, 러시아(소련)에 사르트르가 제일 처음 소개된 것이 바로 그 해 1964년이고, <노브이 미르>란 잡지(1962년에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발표됐던 잡지)에 <말>이 번역/소개됐다(그의 ‘자서전’ <말>은 ‘읽기’와 ‘쓰기’ 두 대목으로 구성돼 있다. *새로운 우리말 번역본이 출간되지 않는 것은 유감스럽다).

 

계기는 물론 그가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 스웨덴 한림원의 선정에 대해서 사르트르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상은 거부한다. 하지만, 돈은 받겠다.”(이를 인용한 러시아 필자는 이것이 ‘진정한 철학적 행위’라고 평한다. 그는 사르트르를 무척 좋아한다고 하니까, 반어적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는(나부터도) 흔히 “나는 노벨상을 거부한다”란 그의 선언을 사르트르 철학(=자유의 철학)의 상징적인 제스처로 이해해왔는데, 알고 보면 그건 절반의 이해였던 셈이다.

 

거기에 덧붙여져야 할 것은 “하지만, 돈은 받겠다!”이다. 그럴 때에라야,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같은 구호가 아주 실감나게 다가오지 않는가?(즉, 실존주의는 마음이 약하고, 돈에 약하다!) 그리고, 그럴 때에라야 실존주의가 왜 프롤레타리아 철학이 아니라 부르주아 철학인가가 명료해지지 않는가? 더불어, 우리는 사르트르를 더 좋아하게 되지 않는가?..

 

내가 갖고 있는 러시아어본 사르트르는 <말>과 <구토> 등이 포함된 작품집과 <보들레르>, <상상적인 것>(그의 초기 상상력 연구서) 등이다(<존재와 무>는 너무 고가여서 사지 못하더라도 ‘전쟁일기’인 <이상한 전쟁의 기록>이나 <문학이란 무엇인가> 등은 형편을 봐서 구할 생각이다. 어린시절 ‘영웅’에 대한 예의로서). <상상적인 것>은 그가 후설의 영향하에 쓴 것으로 흔히 바슐라르의 물질적 상상력 연구와 비교된다(김현의 연구가 있다). 더불어, 얇은 분량의 <보들레르>는 그의 ‘실존적 정신분석’이란 방법론이 구체적으로 적용된 사례이다.

 

<상상적인 것>은 우리말 번역이 없지만, <보들레르>(문학과지성사)는 오래 전에 번역/출간돼 있다(아마 절판됐을 것이다). 나는 지난 달에 2권짜리 보들레르 선집도 구했기 때문에(1권은 시집이고, 2권은 산문집이다) 이젠 좀 읽어보는 일만이 남았다(보들레르를 읽는 건 나의 오랜 숙제 중의 하나이다. 그가 현대시의 ‘시조’이기 때문이다). 한국어와 영어와 러시아어로(들뢰즈가 인용한 프루스트의 말을 빌면, “훌륭한 작품은 모두 외국어로 씌어져 있다”니까 읽는 것도 ‘외국어’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한국어 사르트르는 제법 풍족한 편이다. 작품도 <자유의 길>을 포함해 대부분 번역돼 있고(그의 일기와 플로베르론인 <집안의 백치>, 철학서인 <변증법적 이성비판> 정도를 제외하면) 정명환, 박이문, 박정자 선생들의 소개도 충실하고 수준도 높다. 사실 다른 작가/철학자들의 경우도 이런 정도의 소개 수준만 되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다(이에 견줄 만한 작가는 김화영 교수의 카뮈 정도이다). 사르트르의 전기로는 코헨-솔랄의 3권짜리 전기 <사르트르>가 우리말로 번역돼 있는바, 규모에 맞게 충실하면서도 재미있다.


실존주의 세대(4-50년대)와 구조주의 세대(60년대)를 대표하는 사르트르와 바르트는 각각 ‘타동사’와 ‘자동사’로서의 문학을 주창한 걸로 흔히 비교되는데(하지만 사르트르 자신도 시는 ‘앙가주망(=참여)’에서 제외시켰다), 폴 존슨이 쓴 <지식인들>을 보면, 딱히 그렇게 대조적인 것만도 아니다(지식인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고 있는 그의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브레히트 비판이다). 그는 사르트르를 ‘모피를 뒤집어쓴 잉크’라고 불르는데, 하여간에 이 ‘인간’은 평생 끊임없이 뭔가를 써댄 것이었다(그렇게 써대고 노벨문학상까지 받았으니 할말은 없지만).


즉, 그에게서 글쓰기의 발화주체는 타동사적 주체였지만(사르트르의 글쓰기 주어로서의 ‘나’), 발화행위주체인 사르트르 자신은 자동사적 주체였던 것이다(쉽게 얘기하면, 앙가주망(=타동사)을 주창하는 글들을 그는 자동사적으로 썼다). 그러니, 사르트르의 ‘참여’란 것은 좀 의심스러운 것일까? 거꾸로인 것 같다. 그는 모든 지식인의 참여가 갖는 자동사적 성격(‘자위행위적’ 성격)을 상기시켜주는바, 그런 의미에서 그의 앙가주망은 ‘진짜’ 앙가주망이다(오히려 우리가 의심해 보아야 하는 것은 그런 자위행위적 성격을 부인/배제하는 앙가주망이 아닐까?).


미국의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비평가인 프레드릭 제임슨의 경우를 봐도 그렇다. 그의 박사학위논문은 사르트르인바(‘문체의 기원’이란 제목인가로 책이 나와 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와 형식>(<변증법적 문학이론의 전개>로 번역됨)에서도 (여느 마르크스주의자들과는 달리) 사르트르를 중요하게 다룬다. 하지만, 제임슨을 필두로 한 미국의 강단 좌파들의 ‘정치적 행위’는 (사르트르와 비교해 보더라도) 대학 등의 지식인 사회에만 한정된 것이다. 즉, 그들의 참여는 의미론적으론 타동사이지만, 화용론적으론 자동사적 성격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물며 대부분의 미국 학문은 기능주의적이지 않은가? (직접적인 경험담은 아니지만) 철학이 그렇고, 심리학이 그렇다. 분업화된 분석철학은 철학의 자기소외를 자기존립의 당위적인 조건으로 수용한다는 점에서 자폐적이며, 자아(에고) 심리학은 사회에 대한 (병리적) 개인의 ‘적응’을 중심적인 과제로 설정함으로써 정작 사회의 병리성 자체는 사고하지 못하는 무능력에 직면한다. 가령, 소비자심리학이나 유권자심리학이 자본주의나 민주주의 체제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까? 가령, 분석철학이나 자아심리학은 파농의 탈식민주의를 문제로서 사유할 수 있는가?(최근 파농의 <대지의 저주 받은 사람들>(그린비)이 번역돼 나온 걸로 돼 있다. 기억에, 재번역이다.)


이런 생각은 얼마전 미 대선 결과에 대한 김우창 교수의 시론(時論)을 읽고서 든 것인데, 정작 9.11 테러사건이 발생한 맨하탄 지역에서 부시의 지지율이 20% 미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케리가 패배한 것은 도시 지역의 진보적 지식인/중산층들과 그와는 전혀 다른 사고와 가치관을 가진 전통적/보수적 ‘시골’ 사람들이 서로 유리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이건 마치 제정 러시아시절, 인텔리겐치아와 민중 간의 유리를 상기시킨다).

 

아무리 대학은 좌파 혹은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어도 그 영향력은 대학가 주변에 한정돼 있는 것(한국이라고 사정이 다른 건 아니다. 80년대 대학가와 지방 소도시의 ‘공기’는 너무도 달랐다). 그러니까 미국사회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네트워킹이 부족한 고립사회이다(아메리카는 ‘섬’들로 이루어진 대륙이다). 개방된 고립사회(서로 문은 열어두고 있지만, 아무도 왕래하지 않는다). 그러니, 아무리 (좌파)이론이 ‘첨단’을 가고, 좌파 지식인들이 목소리를 높인다 하더라도 그 사회의 보수성은 쉽게 개선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경우를 타산지석으로 삼는다면, 우리가 좀더 관심을 가져야 할 대목은 사회적 의사소통의 네트워킹을 강화하는 것이다(데리다의 ‘새로운 계몽주의’는 이런 의미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그건 흔한 말로 시민의식의 강화이면서 시민교양의 확충이며, 그로써 지식인과 대중간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다(지식인이 대중화되고, 대중이 지식인화되어야 한다. 마치 모든 노동자가 예술가이어야 한다는 사회주의의 구호처럼, 모든 노동자는 ‘지식인’이 될 필요가 있다. 의사나 교수보다 응급차 운전기사가 더 많은 월급을 받았던 과거 소련에서처럼).

 

 

 

 

 

 

 

 

 

 

그리고 거기에 기본이 되는 것은 기본적인 책들을 읽(히)는 것이고(가령, 시카고시에서 <앵무새 죽이기>를 단체로 읽듯이), 서로 대화/토론하는 것이다(학교에서 왜 ‘말하기’를 교육하지 않는가?). 읽고, 생각하고, 토론하고, 글을 쓰는 것이 생활의 ‘기본’이 될 경우에(학교에서 왜 ‘글쓰기’를 교육하지 않는가?), 민주주의(=존재적 차원)는 (지젝이 지적하는바) 포퓰리즘(=존재론적 차원)으로 추락하지 않게 될 것이다(이런 경우엔 하이데거가 아니라 레비나스를 따라서, '존재에서 존재자로'라고 말해야 할 듯하다). 이 정도도 너무 거창한 것인가?

 

06. 0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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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노마드’, ‘노마디즘’이란 말이 우리 사회의 한 유행어가 되었다. 번역하자면, ‘유목’, ‘유목주의’ 정도가 될 이 단어들이 유행을 타게 된 데에는 대략 두 가지 계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첫째, 세계자본주의 단계가 냉전체제의 해체 이후 대략 1990년대부터 다국적 자본주의 단계로 이행하면서 자본주의하의 ‘보편적 삶의 조건’ 자체에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 알다시피, 신자유주의는 이 다국적 자본주의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지배적 이데올로기로 이 시대에 군림하고 있다.

   

 

 

 

아예 인류사를 유목/정주라는 개념틀로 재기술함으로써 이러한 현 시대적 조건을 ‘오래된 미래’로 사유하려는 경향도 대두한바 자크 아탈리의 <호모 노마드>는 그 대표적인 저작이라 할 만하다. ‘잡노마드’니 ‘디지털 노마드’니 하는 신조어들도 그러한 맥락에서 파생하는 것들인데, 이러한 경향성을 ‘경제적 노마디즘’이라고 지칭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제적 노마디즘의 우상은 칭기스칸인바, 오늘날 그 정신적 후예들은 전세계를 무대로 끊임없이 이동하면서 자본의 새로운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애쓴다. 새로운 권력계급으로서의 ‘하이퍼노마드’이든, 새로운 하층민으로서의 ‘인프라노마드’이든.       

 

 

 

 

그런데, 이러한 경제적 노마디즘에 앞서서 反파시즘적 삶의 양식을 기치로 내걸었던 또 다른 노마디즘도 있었으니 그것이 들뢰즈/가타리의 노마돌로지, 곧 노마드의 철학이다. 국내에서는 이진경의 저작 <노마디즘>을 통해서 널리 알려지게 되는 이 철학적 노마디즘은, 그 주된 전거가 되는 <천 개의 고원>이 1980년에 출간된 만큼 경제적 노마디즘과는 종류와 계보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진경에 따르면, 철학적 노마디즘이란 “끊임없이 자신의 사유를 변이시켜가는, 앉아서 하는 유목”을 가리킨다(그것이 들뢰즈의 노마디즘인지 이진경의 노마디즘인지는 여기서 따지지 않겠다). ‘앉아서 하는 유목’이 ‘싸돌아다니는 유목’과 동종일 리는 없다. 애당초 들뢰즈/가타리는 자본주의 체제의 분열증적 교란과 그로부터의 탈주를 기획했던 만큼 철학적 노마디즘과 경제적 노마디즘은 동일한 이름으로만 불릴 뿐 내용물은 전혀 상반된다고도 말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구분 없이 통칭어로서 ‘노마디즘’ ‘유목주의’란 말이 남용되는 데 있지 않나 싶다(그러한 ‘남용’을 서로가 즐긴 것은 아닌가라는 혐의는 잠시 제쳐놓도록 하자).

최근에 천규석의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를 놓고 벌어진 논란은 노마디즘에 대한 이러한 동상이몽(同床異夢)에 기인한 것이지 않을까? 저자는 “질 들뢰즈나 펠릭스 가타리류의 유목주의(노마디즘)를 국가로부터의 해방철학이라도 되는 양 떠들면서 그것이 신자유주의의 탈을 쓴 세계시장 제국주의와 신침략주의를 합리화하는 변설임을 애써 외면”하는 세력들에 일침을 가하고자 했지만, 들뢰즈/가타리의 (철학적) 유목주의를 신자유주의, 세계시장 제국주의, 신침략주의의 이데올로기로 간주하는 건 과욕인 듯싶다(의혹을 제기하는 것과 단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농사꾼 철학자’라기보다는 ‘옹골진 농사꾼’으로서 천규석의 주된 비판은 들뢰즈/가타리보다는 칭기스칸에 더 집중될 필요가 있었다. 그랬다면, 아마도 국내 ‘철학적 노마디즘’의 또 다른 대표자 이정우의 강파른 비판은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무지의 용기 혹은 지적 몰이해’란 서평에서 이정우는 철학에 대한 천규석의 몰이해를 냉소적으로 몰아붙이는바, “저자야말로 지적 허영심으로 가득 차 지식인인 척하는 인간이 아닌가?”라고 반문한다. 비록 논리보다는 감정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는 비판이지만, 천규석 자신이 그런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어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철학적 노마디즘도 싸잡아서) 모든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라고 말해놓았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유목’인가? ‘유목적 사유의 탄생’이란 부제를 달고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탐독>에서 이정우가 말하는 유목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여러 번 이사를 다니는 일 따위가 아니라 지적 편력으로서의 ‘지적 유목’이다. 자연과학, 사회과학, 역사, 문학 등 여러 담론의 세계를 유랑하면서 ‘가로지르기’가 곧 그에게는 ‘유목’이고 ‘유목적 사유’인 것. ‘앉아서 하는 유목’이란 점에서 이진경과 이정우는 노마디즘관을 공유한다. 그들이 대동소이하게 ‘철학적 노마디즘’으로 분류될 수 있는 근거이다(두 사람은 ‘수유+너머’와 ‘철학아카데미’ 같은 대학 바깥의 연구공동체를 꾸리고 있다는 점에서도 공통된다).    

그러니까 노마디즘을 둘러싼 논란과 혼돈의 대부분은 “노마드란 오늘날 사람들이 자기 현재를 이해하고 정체성을 새롭게 규정하는 방식으로, 특정한 소속 없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사유하는 존재”라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정의하는 데서 비롯되는 듯싶다. 실상, ‘이동 마인드’(천규석의 표현)를 갖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존재와 ‘자유롭게 사유하는’ 존재는 현실에서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자본축적과 생계유지에 바쁜 하이퍼노마드나 인프라노마드는 사유하지 않으며(혹 겉멋으로 들뢰즈/가타리를 끼고 다닐지는 모르겠으나), 철학적 노마드들은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사유하는 게 아니라 앉아서 사유한다. 특정한 소속을 갖지 않거나 기존의 개념틀로부터 벗어나는 걸 지향한다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이 두 부류가 직접 마주할 일도 별로 없을 것이다(요컨대, 경제냐, 철학이냐?). 

한데, 여기서 잠시 제쳐놓았던 문제를 끄집어내자면, 그리고 ‘혼돈 속의 노마디즘’에 대한 김진석의 진단을 빌자면, “탈현대론이 소비문화와 겹치는 과정에서 ‘유목주의’는 아주 광범위하고 모호한 문화적 소비욕망의 대상이 되었고, 90년대 중반 이후 ‘유목주의’는 애초의 철학적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바람을 타는 듯했다.”  

즉, “유목주의가 소비문화의 대상이 되는 과정에 다름아닌 철학의 이름을 내건 책들이 일조한 것은 아닐까”란 의혹을 갖게 되는 것인데, 이 경우 경제적 노마디즘과 철학적 노마디즘은 의미론적으로 무관하더라도 화용론적으로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은 모르게 서로 연루되어 있는 것.    

김진석의 ‘관전평’에 따르면, 들뢰즈 등도 ‘전쟁기계’로서의 유목성을 끊임없이 이야기했듯이 실제 역사 속에서 유목성이 일종의 공격성을 띠었다는 사실마저 부정할 수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들뢰즈 해설자들(혹은 철학적 노마디스트들)은 마치 자본이 전혀 노마디즘과 관계가 없거나 <천 개의 고원>의 주적이 자본주의인 것처럼 암시한다. 앉아서 유목하는 이들이 노마디즘을 지나치게 이상화하는 건 아닌가라는 혐의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목주의자도 생태주의자도 아닌 이들이 가져야 할 태도는 김진석의 지적대로 ‘지역 자치공동체’라든가 ‘국가의 구속력을 벗어나 자유롭게 이동하는 사유’라는 각각의 관념성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일 것이다. 그러한 관념성에서 벗어날 때, 분명 “침략적 이동성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김진석) 그것은 이미 우리 삶의 ‘보편적 조건’처럼 돼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우울은 우리가 오래 껴안고 누워서 뒹굴어야 할 우울이다. 정주민도 유목민도 아니었던 ‘산책자’ 보들레르처럼.

“이곳의 인생은 병원과도 같다. 그곳에서 환자들은 제가끔 침대를 바꾸어 다른 곳에 있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는 병원. 어떤 환자는 난로 앞에 누워 고통하고 싶어하는가 하면, 어떤 환자는 창문 옆자리에서라면 병이 나을 것이라고 믿는다. 나에게는 내가 현재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라면 항상 좋은 것처럼 생각되어지는 것이다...”('이 세상 밖이라면 어느 곳이나')

06. 05. 14.

P.S. 원고지 20매를 청탁받은 원고인지라 분량을 거기에 맞췄다. 모든 글은 지 '팔자'를 갖는다. 보들레르에 대한 얘기는 다음에 자세히 적을 기회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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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ta 2006-05-15 0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글 기다리고 있었는데 드뎌 올라왔군요..^^ 어디에 쓰신글인가요?

몇가지 의문나는 사항이 있어 여쭤보면..

"김진석의 ‘관전평’에 따르면, 들뢰즈 등도 ‘전쟁기계’로서의 유목성을 끊임없이 이야기했듯이 실제 역사 속에서 유목성이 일종의 공격성을 띠었다는 사실마저 부정할 수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들뢰즈 해설자들(혹은 철학적 노마디스트들)은 마치 자본이 전혀 노마디즘과 관계가 없거나 <천 개의 고원>의 주적이 자본주의인 것처럼 암시한다"

라는 부분입니다. 전 아직 <천개의 고원>을 읽어보지 못해서 들뢰즈가 말하는 "전쟁기계로서의 유목성"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모르겠네요. 그 저작에서의 유목성 즉 전쟁기계로서의 유목성은 자본주의와 "전쟁"하는 유목성을 뜻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그 반대라는 이야긴가요? 위 본문에서는 어느것이 들뢰즈가 말하는 "전쟁기계로서의 유목성"인지 잘 모르겠네요.

만약 들뢰즈의 "전쟁기계로서의 유목성"이 자본주의와 전쟁을 하는 반 자본주의적 유목성이라면 위에서 예로드신것의 두번째 측면 즉 "자본주의의 주적"으로 노마디즘을 보는것은 전자(전쟁기계로서의 유목성)와 동일한 시각에서 유목성을 보는 것 아닌가요? 김진석씨는 그런 측면에서 들뢰즈의 "전쟁기계로서의 유목성"을 이야기하신거 같은데..

혹시 제가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으면 바로잡아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님은 이진경씨나 이정우씨의 노마디즘은 "관념적"이다라고 보시는것 같은데
님이 예로드신 보들레르식의 "산책자"적 관점과 이진경씨와같은 관념성은 어디가 서로 다른건지 잘 모르겠습니다..제가 보기엔 둘다 "관념적"으로 보입니다.. "관념적"이라는 것이 세상에 대해 실천적, 능동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관조만하고 "산책"만 하며 우울해하는 것이라면 말이죠.

아 그리고

"어떤 환자는 난로 앞에 누워 고통하고 싶어하는가 하면"

여기에서 "고통하고 싶어하는가 하면"이란 말은 "고통받고 싶어하는가 하면"의 오자같네요..

yoonta 2006-05-15 0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다시 김진석씨의 글을 읽어보니. "전쟁기계로서의 유목성"이 지칭하는 말은 이진경씨나 이정우씨의 유목주의가 아니라 자본과 국가가 가지는 침략적 유목성을 지칭하는 말이군요. 그렇다면 어느정도 이해 안되는 부분이 해소되긴 하는데 이진경씨나 이정우씨가 자본의 이러한 침략적 유목성을 과연 인지하지 못했을까하는 회의가 좀 드네요. 어디선가 신자본주의와 국제투기자본에 대해서 비판하는 글을 본거 같아서요. 그리고 <천개의 고원>의 주적이 자본주의가 아니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그 "주적"은 무엇일까요? 그것도 애매하군요..

로쟈 2006-05-15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을 쓰던 게 날아가서 좀더 간략히 쓰겠습니다.^^ 들뢰즈의 유목주의에 대해서는 <천개의 고원>에서의 12장 '1227년 노마돌로지: 전쟁기계' 장을 막바로 참조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저도 아직 다 읽지 못했습니다('주적'을 발견하시면 알려주십시오). 제가 받는 인상은 제목에도 표기돼 있지만, 전쟁기계로서의 유목성은 자본주의 이전부터 유구하게 작동하는 게 아닌가 싶네요. 자본의 '침략적 유목성'이라곤 하지만, 우리가 생존을 위해 하고 있는 것도 다 그런 거 아닌가요? 김진석의 견해에 공감하는 것은 그가 그러한 공범성(과 우울)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들레르의 시를 인용한 건 똑같이 관념적이라 하더라도 거기엔 아이러니가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세상에 대해 실천적, 능동적으로 개입'만 하면 관념적 오류로부터 자유로운 건가요? 역사상의 많은 '실천적, 능동적 개입'을 떠올려보게 되는데, 좀 의문입니다(yoonta님이 실천적, 능동적이란 말을 또 다르게 정의하신다면 모를까). '고통하고 싶어하는가'는 좀 어색하지만('능동적인' 표현이지 않나요?), 민음사 번역본의 원문 그대로입니다. 그냥 놔두었습니다... 근데, 밤을 새시는군요?!

마늘빵 2006-05-15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어려운 이야기들을 나누시는군요. 전 가져가겠습니다. 꾹.

yoonta 2006-05-15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공범성을 모르고 과연 이진경씨가 노마디즘을 이야기했을까?라는 회의를 저는 한단 거죠. 김진석씨의 비판에 한편 수긍이 가면서도 왠지 그분 의견도 공허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게 이런 의문점 때문입니다.

(보들레르식)문학적 실천이라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시는 로쟈님의 견해에 대해서는 님의 보충설명이 좀 필요한것 같습니다. 나중에 다시 다루어주신다니 그때를 기다려려봐야겠네요..^^

제가 책보다가 종종 밤을 샙니다..^^


로쟈 2006-05-15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신문 인터뷰를 인용한 바 있지만, 이진경씨가 노마디즘에 대해서 얘기하는 내용은 한마디로 '수유+너머'입니다. 그게 '외부'인지에 대한 판단은 자유이겠지만, 저는 시스템 바깥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시스템의 구성적 예외 정도라고 해야겠죠. yoonta님의 '외부'는 어떤 것인지 궁금하지만, 보다 진전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를 기대합니다...

딸기 2006-05-15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앉아서 하는 유목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고, 지식인들이 노마디즘 논의를 하는 동안 진짜 노마드들이 '평평한 지구'에서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yoonta 2006-05-15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이 이야기하시는 이진경씨에 대한 판단은 존중합니다만. 전 님이 좀더 본격적으로 이진경씨나 이정우씨의 텍스트 내부로 들어가 그것의 내적 논리를 구체적으로 논파하는 모습을 보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김진석씨도 그렇고 님도 그렇고 지금처럼 텍스트 '외부'에서 간단한 인상비평을 하는 정도로는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봅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이진경의 <노마디즘>이나 <미-래의 맑스주의>같은 저작들을 독해하셔서 그들 텍스트 내부에 있는 논점들을 비판해주시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님이 그런 작업들을 하는것에 특별한 동기를 발견하지 못하신다면 뭐 할수없는 일이지만요.

로쟈 2006-05-15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님/ 그게 서로 다른 '노마드'라니까 뭐 할말은 없습니다...

yoonta님/ 저보다는 yoonta님이 더 잘하실 수 있을 거 같은데요.^^ <노마디즘>은 부분적으로 읽었습니다. 한데, 아시다시피, <천개의 고원>과 같이 읽어가야 하는 일이 '수유+너머' 같은 공간에서 세미나로 읽는 게 아니라면 여력을 내기가 힘든 일이지요. '노마돌로지' 장에 대해서만큼은 바쁜 일들이 끝나는 대로 마저 읽을 계획은 갖고 있습니다. <미-래의 맑스주의>도 책은 갖고 있는데, 짐작하시겠지만 저는 무슨 -주의에는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역시나 고진의 <트랜스크리틱> 후반부를 마저 읽는 건 여름방학 때나 가능할 거 같습니다. 이정우씨의 <탐독>은 이 참에 얼마간 읽어보았는데, 도올 이상의 자뻑 스타일이더군요. 그게 '자부심'이면 나무랄 것도 없지만 개인적으론 르네 톰의 책들을 번역하는 일에 더 자부심을 갖는 게 낫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데, 실상은 그들보다 더 시급하게 읽어야 할 책들이 얼마나 더 많은 것인지요!..

yoonta 2006-05-15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를 지나치게 과대평가 하시는군녀..^^(근데 농담이시져? ㅋ) 저야 어학실력도 로쟈님만큼도 못되고 글쓰기 실력은 더욱 딸리고..생업에도 종사해야하니..그래서 이처럼 로쟈님의 독서의 흔적이나마 따라가보면서 같이 공부하는 척이라도 하고 있는겁니다..^^
이정우씨의 탐독은 저도 읽어보았는데 "도올식의 자뻑 스타일"이라는 님표현에 어느정도 공감은 합니다만 그분처럼 이과와 문과 그리고 동양과 서양을 넘나들면서 자유롭게 공부하시는 분도 드물죠. 그때문에 그분 특유의 '자부심'이 생기는 것 같기는한데 뭔가 더 생산적인데 그 자부심이 사용되었으면 좋겠다는 부분에서는 로쟈님과 생각을 같이합니다..^^ 트랜스크리틱은 예상외로 난해하더군요. 탐구나 윤리21이 차라리 더 쉽더라고요. 전반부를 조금 남겨두고 읽다가 말았는데 머리속에 정리해야 할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후반부 독해를 (이곳에서)하시게 되면 즐겁게 님 페이퍼를 읽도록 하겠습니다. 꼭 올려주시길...^^

로쟈 2006-05-15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농담 아니었습니다.^^ 제가 말장난을 종종 하는 편이지만, 말장난의 전제조건은 말을 진지하게, 축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저는 언제나 텍스트를 축어적으로 읽습니다. 일단은...

dhkd1246 2007-12-30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연과학, 사회과학, 역사, 문학 등 여러 담론의 세계를 유랑하면서 ‘가로지르기’가 곧 그에게는 ‘유목’이고 ‘유목적 사유’인 것.]

[노마드란 오늘날 사람들이 자기 현재를 이해하고 정체성을 새롭게 규정하는 방식으로, 특정한 소속 없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사유하는 존재]

라고하는 명제가 나에게는 많은 이해를 가져다 줍니다. 삶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좋은 글을 담아갑니다.
 

2000년 봄에 쓴 독서일기의 일부분을 옮겨온다. 칼 뢰비트(1897-1973)의 <지식, 신앙, 회의>에 관한 대목인데, 그의 책으론 <헤겔에서 니체로>(민음사, 2006)가 얼마전에 새단장을 하고 재출간된 바 있다. 기억에 뢰비트는 하이데거의 제자로서 가다머급의 지명도를 갖고 있었던 철학자이다. 저서로는 <역사의 의미>(문예출판사) 등이 더 번역돼 있다.

 

 

 

 

도서관에서 서머셋 모옴의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김성한 옮김(신양사. 1958)와 칼 뢰비트의 <지식, 신앙, 회의>, 임춘갑 옮김(창림사, 1961)을 대출했다. 앞엣것은 The Art of Fiction(1955)의 일부를 옮긴 것이고, 나중것은 Wisen, Glaube und Skepsis(1956)를 옮긴 것이다.

뢰비트 책은 양질의 종이로 되어 있어서 거의 새책이나 다름이 없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고급스러운 교양서적이었을 것이다(*가끔 도서관에서 1960년대에 나온 책들을 찾아보고 감탄할 때가 있다). 물론 키에르케고르와 도스토예프스키 때문에 대출한 것이다. 키에르케고르의 <그리스도교의 훈련>은 70년대말에 평화출판사에서 나온 걸로 돼 있다.

(*)임춘갑 선생 번역의 <그리스도교의 훈련>은 2005년말에 다산글방에서 재출간됐다. 가라타니 고진의 <탐구1>(새물결)에서 키에르케고르에 대한 언급을 참조할 수 있다. 아마 그 책에 대한 관심은 고진에게서 비롯됐을 것이다. <탐구1>에서는 일역본을 따라 <그리스도교의 수련>이라고 옮기고 있다. 아마 이 글은 고진의 책들을 읽던 시절의 일기인 듯하다. 아래 사진은 칼 뢰비트.  

주말에 뢰비트의 <지식, 신앙, 회의>를 다 읽고, 야스퍼스의 전기를 읽고 있다. 뢰비트의 책은 얇은 분량이지만, 힘과 재미가 느껴지는 책이다. 문제의식이 살아있고, 초점도 명확하다. 역자는 저자의 주장을 “철학은 다시금 철학의 본영토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직도 그리스도교의 창조설의 사상에 물들지 않은 그리스철학의 모습으로 돌아가야만 한다”고 요약한다.

하이데거와 사르트르를 비판하면서 니체야말로 유일한 현대철학자라고 추켜세우고 있는 점도 이채롭다. 또 데카르트의 인식론적 아르키메데스의 점과, 키에르케고르의 종교적 아르키메데스의 점에 대한 비교의 꼬투리(이건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이다.)

3장에서 키에르케고르에 대한 비판: “키에르케고르의 역설적 그리스도교는 오로지 세계를 잃고 실존하는 외톨이와, 마찬가지로 세계를 잃은 신, 이 두 개밖에는 모른다. 인간과 세계가 창조주를 통하여 서로 연결되고 서로 병렬케 하는 그런 창조에의 신앙이 키에르케고르에게는 결핍되어 있다. 창조에 관한 이 실존신학적인 결함은 이미 데카르트파의 파스칼에게서 시작되었지만, 이와 마찬가지로 온갖 종류의 실존철학에 있어서는 언제나 존재하고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이 자연적으로 살고, 또 죽는 것, 그러한 것으로서의 세계에 대한 자연적인 개념이 결핍되어 있다.”(123쪽, 강조는 나의 것)

각주에는 “니체의 동일물의 영겁회귀의 철학“이란 글을 참조하도록 되어 있다. 아무튼 이 세계라는 개념의 결핍은 비단 키에르케고르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리다. 생물학과 형이상학, 두 가지만은 사고의 축으로 삼아온 나에게도 근래에 경험하는 현실은 또 다른 실세에게 관심을 갖도록 부추긴다. 그것은 돈, 혹은 경제적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 듯하다.

 

 

 

 

돈의 철학으로서의 경제학, 거기에 숨겨져 있는 법칙과 비약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다(*그런데 이런 건 누구에게 배워야 하나?). 이건 물론 포지티브한 관심은 아니다. 문제를 배제하고 소거시키기 위한 관심이다. 내가 거기에 얽매여 있기 때문.

마지막 4장 “창조와 실존”은 실존철학에 잔재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흔적을 비판하고 있다. 그것은 일종의 토미즘이라는 것이다. “파스칼에서 시작하여 사르트르에 이르러 극단화되어, 비그리스도교화 되고만 현대의 실존 개념은 창조설을 제거한 그리스도교적, 토마스학파적인 존재론이라고 할 수 있다.”(158쪽)

(*)'유령-독자들'을 의식하지 않을 때 나는 그냥 인상적인 구절들과 그에 대한 짤막한 코멘트만을 기록했었다. 이런 빛바랜 글을 밖으로 꺼내놓으니까 좀 머쓱하군. 창고에나 집어넣어야겠다...

06. 0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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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13 0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twoshot 2006-05-13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쓱해서 창고에 집어넣으시면 안됩니다. 삼삼오오, 귀를 쫑긋세우고 모여드는게 어디 유령 뿐이겠습니까...

2006-05-13 0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5-13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여기에 댓글을 달도록 하겠습니다. '문자로 창작되지 않은 것은 문학이 아니다'란 주장에서 방점은 '문자'가 아니라 '창작'에 있었던 모양입니다. '구술된 것을 받아적은 것'은 같은 '기록성'을 갖지만 문학이 아니다라고 하신 걸 보면요. 거기에는 아마도 "'문학'은 '문학을 한다'는 자의식을 가진 개인에 의해서 창작된 것"이라는 주장이 암묵적으로 전제돼 있는 듯합니다('넓은 의미의 문학'도 아니라는 뜻은 모순적인 거 같습니다. 구비문학, 구술문학이란 용어를 우리가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더불어, 저는 개인적으로 네 가지 다른 문학적 태도(문학관)을 분류하는데, 그것들이 반드시 일치될 필요는 없습니다(이념적 태도에서와 마찬가지로). 음유시인적 전통에서 진정한 시인은 (기록된) '시를 쓰지 않은 사람'으로 정의됩니다. 쓴다는 건 어떤 타락이나 진정성의 훼손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즉, 그 경우에 '기록된 시'는 '텍스트'가 아니었습니다('텍스트'는 그 가치에 대한 인준을 요구합니다). 아마 이 문맥에서는 '문학'이 아니라고 말씀드릴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문학'이 너무나도 외연이 넓은 용어인지라 그 개념에 대해서 논란을 벌이는 건 좀 소모적인 듯합니다. 다만, 역사적/형식적으로 정의될 수 있고, 그 경우에도 태도에 따라서 몇 가지 분류/유형학이 가능하다는 것 정도가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2006-05-13 1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5-13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음유시인에 관해서 제가 읽은 건 러시아 기호학자의 논문이기 때문에 별로 도움이 안되실 거 같습니다. 그리고, 후배님의 경우에 '근대문학'을 상당히 폭넓게 정의하는 거 같습니다. '문자'만이 문학의, 근대문학의 충분한 정의를 제공하는 건 아니니까요. 거기에 근대적인 의식, 혹은 문학에 대한 자의식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더불어, '철학'이란 말도 말씀처럼 그렇게 '엄밀하게' 정의될 수 있는 건지는 의문입니다(특히나 한국어에서 '철학'이란 말!). 우리에게 주어진 건 '철학들' 아닌가요?..

2006-05-13 1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최근에 눈길을 끈 외신 기사 두 건을 옮겨놓는다. 나중에 글감이 될 만하겠기에 일단은 '자료'로서 보관해놓고자 하는 것인데, 주제는 '남성'이다. 두 기사 모두 한국일보에 게재된 것으로 첫번째 기사는 '남성 피임약 세계 첫 개발'이란 제목이고, '슈퍼 정자'를 다룬 두번째 기사는 "아빠는 큰 키…푸른 눈…만능 스포츠맨…박사"란 제목이다.

 

 

 

 

한국일보(06. 05. 01) 정자 생산을 중단 시키는 남성 피임약이 세계 최초로 개발된다. 세계적인 의학전문지 란셋(Lancet)은 최신호(28일자)에서 호주와 유럽 14개 지역 등에서 1990~2005년 18~51세 남성 1,500명을 대상으로 30차례 실시한 임상시험 결과,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과 여성호르몬 프로게스트로겐을 함유한 남성 피임약이 100% 효과를 거두었다고 보도했다. 독일 쉐링과 네덜란드 오가논 제약사가 개발한 이 피임약은 향후 3~5년 내에 세계 최초로 시판될 것으로 보인다.

-이 호르몬제 남성 피임약은 여성용 피임약이 배란을 중지시키는 것처럼 정자 생산을 중단시켜 피임효과를 거둔다. 제약사들은 몸에 심는 임플란트와 먹는 약 등 2가지 형태로 만들어 시험해 왔다. 이 남성 피임약은 성욕감퇴 체중증가 우울증 등의 부작용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으며, 일부 임상시험자는 오히려 성욕이 증가했다. 남성 피임약 사용을 중단하면 3~4개월 뒤에는 정자 생산 능력을 완전히 회복할 수 있다.

-연구 책임자인 호주 시드니대 피터 리우 박사는 “이 남성 피임약은 신뢰성이 높고 복원이 용이하기 때문에 콘돔이나 정관수술 등 기존 남성 피임법보다 더 우수하다”고 말했다.

(*)여성 피임약의 개발이 원하지 않는 임신의 공포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 '프리섹스'를 가능하게 함과 동시에 여성의 자기결정권 향상에 혁명적인 기여를 했다는 점은 상식에 속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피임의 책임은 상당 부분 여성에게만 전가해온 것도 사실이다(더불어 '구멍난 콘돔'의 공포도 여전히 연인들을 부자유스럽게 했었다). 이제, 번거로운 수술 대신에 사용이 간편한 먹는 피임약이 상용화된다면, '피임'에 대한 책임은 남녀가 공평하게 나누어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경우, 남성 피임약은 남녀평등이라는 '의식'의 한 가지 물적 토대가 되어주는 것. 상상임신은 가능하지만, 상상피임은 가능하지 않다. 다시 말해서, 피임은 '관념'이 아니라 '현실'이다. 그리고 '현실'이 바뀌어야 '관념'도 바뀌게 된다(혹은 현실은 관념의 변화를 강제한다).   

한국일보(06. 05. 08) 몇 차례 인공수정을 시도했다 실패한 미국 여성 멜리사 와이스(39)는 며칠 전 인터넷에 ‘물건’을 내놓았다. 6년 전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정자은행에서 3,000달러를 주고 산 ‘401호 정자’ 세트였다. 인공 수정이 실패한 그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내놓았는데 순식간에 팔렸다. 뒤늦게 ‘돈을 달라는 대로 줄 테니 남은 것이 없느냐’는 간청도 쏟아졌다. 와이스가 내놓은 401호 정자는 ‘슈퍼 정자’라 불리는 최고품이었다. 수요가 너무 많아 이미 2년 전 동난 것이었다.


 

 

 


-좋은 유전자를 갖고 있거나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충할 정자로 수정하는 ‘맞춤형 수정’이 늘면서 이처럼 일부 품질 좋은 정자는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401호 정자를 제공한 주인공에 대한 관심도 가히 폭발적이다. 정확한 신원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독일계로 193cm의 큰 키에 푸른 눈과 갈색 곱슬머리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사 학위에다 만능 스포츠맨이며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는 효자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제공받아 태어난 아이가 매년 3만명이 넘었고 특히 같은 정자로 태어난 아이가 갈수록 늘고 있다. 401호 정자로 25명이 태어났고 한 보디빌더의 정자로도 같은 수가 탄생했다. 언론은 401호 정자 제공자를 추적하는 한편 미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401호 정자로 태어난 아이들을 일일이 찾아 이들을 비교하는 기사를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401호 정자를 통해 아이를 낳은 엄마들은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받은 여성과 제공받은 정자로 태어난 사람들을 위한 인터넷사이트에서 육아 정보를 주고 받고 있다. 직접 만나 휴일이나 주말을 함께 보내기도 한다.

-이들 역시 정자 제공자가 누구인지 무척 궁금하지만 ‘사생활을 보호 받고 싶다’는 정자 제공자의 바람대로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는다. 같은 정자로 태어난 아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근친상간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영국은 법으로 같은 정자를 제공 받을 수 있는 여성 수를 10명으로 제한했지만 미국은 개별 정자은행 자율에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기사를 읽고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올린 것은 네덜란드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1995)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네덜란드의 작은 마을. 안토니아는 임종을 앞둔 어머니를 찾아 딸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마을에 정착해 어머니의 오래된 농장을 운영하면서 마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이 영화는 독립적인 여성, 안토니아를 중심으로 모녀 4대가 엮어가는 삶의 모습을 서정적으로 그려나가는 가족 연대기라고 할 수 있다. 여성들이 꿈꾸었던 유토피아적 삶의 방식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작품"인 이 영화에서 아이를 갖기 위해 남자를 구하러(실상은 '정자를 구하러') 다니던 모녀의 모습이 얼핏 떠오른 것.

 

 

 

 

정자은행은 이제 그런 '수고'가 더이상 필요하지 않은 시대를 만들어놓았다. 더불어, 일부일처제의 근간도 미래에는 위협받을지 모르겠다. 자신의 정자로 25명의 아이들을 낳는다면, 유전자적 관점에서는 이미 '일부다처제'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기에 그러하다. "큰 키…푸른 눈…만능 스포츠맨…박사"의 정자(유전자)가 선호된다면, 그보다 열등한 남성의 정자는 피임은커녕 갈수록 짝을 찾기 힘들어질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도래할지도 모르는 '슈퍼 정자의 시대', 그건 역설적으로 남성이 '제2의 성'으로 확실하게 전락하는 시대를 뜻하게 될는지?..

06. 05.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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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6-05-09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공공연한 건 아니지만, 우리나라에도 난자 불법거래가 있잖아요. 공부 잘 하는 이쁜 여대생 난자가 극히 선호되죠. 쩝.

2006-05-09 07: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6-05-09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끌리는 제목이군요. 저도 한국일보서 그 기사 봤어요. ^^

로쟈 2006-05-09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관련 분야에 계신가요?^^
아프락사스님/ 뭔가 쓰고 싶도록 만드는 기사였습니다. 한데, 이 페이퍼는 (당장에는) '쓰지 않기 위해서' 올려놓은 것이긴 합니다.^^

조선인 2006-05-10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 관련 분야가 아니라요, 여대 나왔거든요. 사례를 좀 알죠.-.-;;
 

요즘 이 서재를 찾는 분들이 하루에 400여분 안팎이 되는 걸로 뜨지만, 즐찾이 늘거나 주는 것도 아니고 댓글이 더 달리는 것도 아니므로 대부분의 경우 유령-독자들이 아닌가 싶다(아니면 400이란 숫자 자체가 허수이거나). 이런 류의 블로그가 생기기 이전에 혼자 PC에 쳐넣곤 하던 일기와의 차이점이라면 이 '유령들'의 존재인데, 그건 좀 자극적이면서 동시에 성가신 일이기도 하다. 무슨 '유령수업' 같기도 하고...

 

 

 

 

공개된 서재(블로그)인 이상 얼마간의 '공공성'을 충족시켜야 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지만, 또 얼마간은 '사적인' 공간인 이상 나만의 '자유'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 해서, 이 공간에 적어놓는 글들은 교묘한 줄타기, 혹은 이중적인 플레이의 산물이다.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면서, 또 나 자신을 위한 것만은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 작년 1월초 모스크바 통신에 '언더그라운드에 대하여'라고 올려놓았던 글을 다시 정리해서 옮겨온다. 대체 너의 포지션이란 게 뭐냐, 란 질문을 바람결에 듣기도 하는데, 거기에 답한다는 의미도 있다(그러니까 나는 두 번 대답하는 셈이 되겠다).

글의 내용은 대부분 당시에 읽었던 김규항의 칼럼 '희망에 대하여'에 대해 코멘트를 덧붙이는 것으로 돼 있다(칼럼은 <나는 왜 불온한가>에 포함돼 있지 않은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기생적'이며, 텍스트라기보다는 '곁다리텍스트'이다. 사실, '블로그'가 아니라면 이런 류의 텍스트가 살아남았을 리 없다. 좋은 세상이고, 좋은 세월이다. 그럼, 고대되는 이창동의 신작 <밀양>에서부터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보도록 한다.   

 

김훈의 치정소설이 밀양을 배경으로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돌아온 이창동의 신작은 밀양이배경이다(나는 두 주 전쯤에 <씨네21>에서 그런 내용이 실린 인터뷰를 읽었다). 밀양(密陽), 혹은 ‘시크릿 선샤인(Secret Sunshine)’(신작의 영어제목이다).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 그곳에서 일어났다는 걸 보면, 밀양은 햇빛이 좋은 만큼이나 그늘도 깊은 모양이다. 나는 밀양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지만, 어쩌면/잘하면 올해 안에 밀양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스크린에서.

홍상수의 신작 <극장전>도 크랭크인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불과 작년초를 기준으로 한 얘기인데, 왜 이렇게 코믹하게 느껴지는지!). 그의 행보가 빨라진 건 아마도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실패’를 보상하기 위한 것은 아닐까? 그럼, <친절한 금자씨>를 찍는 박찬욱은? <올드보이>의 믿기지 않는 ‘성공’을 재확인하기 위해서! 어쨌거나 이들이 빨리-찍기에 있어서 김기덕과 경쟁하는 것은 (관객으로서) 고무적이다. 허진호도 신작을 찍는다고 하고. 보기에, 한국영화는 현재의 세계영화계에서 보기 드문 활력을 자랑하는 듯하다. 그건, 그렇고 이어지는 건 김규항의 한 최근(?) 칼럼이다(최근에 인터넷에서 읽은 것일 뿐이어서 정말로 최근의 칼럼인지는 자신할 수 없다. 제목은 ‘희망에 대하여’인가 그렇다).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의 9할은 80년대가 준 것이다. 젊은이들의 알록달록한 머리색,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을 권리, 그 대통령을 욕할 자유, 북한군을 인간으로 그린 영화, 민주적인 노동조합...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어 오히려 대수롭지 않은 것들의 9할은 80년대, 그 불의 시대가 준 선물이다. 한국의 80년대는 특별했다. 인류 역사에서 그렇게 많은 인텔리 청년들이 일신의 안위를 뒤로 한 채 세상을 바꾸는 일에 투신하고 스러져간 시대가 있었던가.

이 시작부터 두드러지는 건 그의 ‘나르시시즘’이다: “한국의 80년대는 특별했다.” ‘386’이라는 언론의 표현 대신에 ‘80년대 청년들’이라고 그는 쓰지만, ‘인텔리 청년들’이라고 하는 걸로 봐서 ‘80년대 청년들’의 9할은 ‘80년대 학번의 대학생들’을 지칭한다. 그리고 사실, 그 대학생들/인텔리들이 그렇게 많아진 건 5공의 ‘선심성’ 대학정책 때문이었다(더불어 군사정권은 통행금지를 해지하고, 중고등학교의 두발과 교복을 ‘자율화’했다. 머리에 물을 들이려면 ‘머리’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사립대학의 설립조건을 완화함으로써 대학들이 우후죽순 늘어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졸업정원제라는 걸 도입하면서 대학 입학생 수를 더 늘려놓은 것이다. 해서 “그렇게 많은 인텔리 청년들”의 ‘물적 토대’는 역설적이지만, ‘파시스트들’이 마련해주었다.

더불어, 당시는 경제호황국면이었기 때문에 요즘과 같은 대졸자 취업문제가 거의 없었다. 90년대 후반 이후 대학생/졸업생들이 좀스럽게도 취업문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반면에 ‘80년대 청년들’은 군사정권 타도와 조국의 민주화 같은 ‘대의’에 ‘투신’하다가도 원하기만 하면, 직장인/생활인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 물론 일부 스러져가기도 했지만. 그런데, 김규항은 그런 ‘희생’에 대해서, 다른 세대들이 어떻게 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일까? ‘기념관’이라고 세워달라는 것일까?

 

 

 

 

자기 세대에 대한 은근한 자부심과 나르시시즘이 김규항만의 것은 아닐 것이기에 더 트집을 잡지는 않겠지만(가령, 4.19세대의 자부심, 이명박 세대의 자부심, 김훈 세대의 자부심 등), 그런 자부심을 객관적인 것으로, 보편적인 것으로 주장하면 곤란하다. “인류 역사에서” 운운하는 것이 그렇다. 사실, 그런 청년들의 원조는 러시아이며, 인텔리’란 말 자체가 러시아어 ‘인텔리겐챠(intelligentsia)’의 준말이다(‘인텔리겐챠’란 말 자체는 러시아의 고유어가 아니지만). 그러니 ‘인텔리’라는 부정확한 표현 대신에(흔히 고학력자를 ‘인텔리’라고 지칭하므로) ‘인텔리겐챠’(표준어는 ‘인텔리겐치아’)라고 써주는 것이 옳지만, 김규항은 이 말의 소속을 (무)의식적으로 부인/거부한다. 그 이유는 곧 알게 된다.)

-80년대 청년들의 땀과 피가 땅에 베어(*배어) 파시스트들이 권력의 전면에서 물러나고 절차적 민주주의가 진전될 무렵, 현실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고(물론 그것은 사회주의의 붕괴가 아니라 사회주의의 한 졸렬한 시도의 붕괴였지만) 더 이상 왼쪽으로 당기는 힘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적인 우경화가 시작되었다. 이 모순된 상황은 일견, 한국은 살 만한 나라가 되었고 사회주의적 가치는 시효를 다한 것처럼 보였다. 10여 년을 극악한 군사 파시즘과 싸우던 청년들의 긴장은 그 변화한 상황 속에서 혼란에 빠졌고, 정처 없이 흐트러져갔다.

이 대목에서 현실 사회주의 붕괴를 ‘사회주의 한 졸렬한 시도의 붕괴’라고 한 것은 유감스럽다(짐작에는 이 때문에 이 칼럼에서 ‘인텔리겐챠’는 ‘인텔리’가 되었다). 러시아 인텔리겐챠들의 땀과 피가 땅에 배어(이건 ‘비유’가 아니다. 그들의 희생은 사실 양적으로 한국의 ‘80년대 청년들’과는 비교가 안된다. 남의 나라 역사라고 해서 함부로 말해서는 안된다) 결과적으로 성취한 것이 1917년 사회주의 혁명이며, 2,000만명으로 ‘인민의 적’으로 몰아 희생시켜가면서 건설한 것이 (스탈린식의) 현실 사회주의였다.

이전에 한번 인용한 바 있지만, “스탈린 시대에 소련은 농업집산화, 중공업 중심의 급속한 산업화, 문화혁명 등 여러 조치들을 통하여 위대한 성취와 사회적 변화를 이루어 내었고,(…) 당시 소련은 자본주의 세계가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도 높은 경제성장률을 계속 유지하였고, 그 결과 소련 사회의 모습은 유럽에서 가장 후진적인 문맹자들의 농업국가에서 국민 다수가 문맹에서 벗어난 도시 중심의 산업국가로 완전히 변모하였다.” 

조금 더 인용하자면, “이런 변화는 소련의 많은 사람들, 특히 노동자와 농민 출신의 젊은이들에게는 영웅적인 희생, 교육, 신분 상승 등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도시의 노동자들과 중간계층들은 당시의 어려운 상황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기를 열망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이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고 있다는 확신을 지낸 채, 국민의 모든 힘을 경제 발전에 최대한 동원하려는 정부의 노력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호응은 산업 및 관료제의 팽창, 대대적인 숙청, 교육 기회의 확대 등과 연결되면서 노동자 및 농민 출신의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신분 상승의 기회를 제공하였고, 그 결과 노동계급 및 농민 출신의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수많은 요직을 차지하게 되었다(고등학교 학생수는 1926-7년의 1,834,260명에서 1938-9년의 12,088,772명으로 증가하였고, 고등교육기관 학생수는 1927-8년과 1932-3년 사이에 159,800명에서 469,800명으로 증가했는데, 그 중 노동계급출신의 비중은 25.8%에서 50.3%로 증가하였다. 또한 고등교육기관 졸업생들의 승진은 매우 급속하여 이미 1941년에는 1928-32년 졸업생의 89%와, 1933-7년 졸업생의 72%가 국가 및 당의 지도적인 간부로 성장하였다).”

물론 그런 과정에서 2,000만 명 이상이 희생됐지만, 이게 ‘현실사회주의’였다. 이게 왜 ‘한 졸렬한 시도’인가? 희생자들 때문에? 하면, (A급 좌파가 아닌) ‘B급 좌파’가 정권을 잡게 되면(설마 중앙집권적 권력이라는 게 필요없는 것인가?), 좀 달라지는가? 과연 사회주의건설에 반대하거나 적극 동참하지 않는 세력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거기서는 ‘희생’ 혹은 ‘숙청’의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가? 가령 개량적 진보주의에서부터, 중도보수, 수구보수, 수구꼴통에 이르는, 그리하여 아마도 현재 인구의 70%는 확실히 넘을 만한, 3,000만 명은 확실히 넘을 만한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어떻게 개량하고 개조할 것인가? 무엇으로 그들의 동참을 ‘강제’하는가? 그들의 자발적 동참을 기다리는가?

소련은 자연자원이라도 풍부했지만 그마저 없는 한국의 생존은 어떤 방식으로 확보할 것인가? (자본주의 이후) 생산수단의 공유, 공동생산과 공동분배라는 ‘아름다운 원칙’을 과연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일국사회주의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가? 그럼, 전세계의 사회주의화, 공산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사회주의적 가치’가 시효를 다하지 않았다면, 다른 프로그램은 무엇인가? 혹 모든 (이성적인) ‘프로그램’은 그 자체로 실현불가능한 자기모순을 안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기대하는 건 이런 물음들에 대한 대답 혹은 의견이지만, 김규항의 칼럼은 무력한 ‘적전(敵前) 분열 이후 10년’으로 넘어간다.

-10년이 지났다. 오늘 그들은 대략 셋으로 나뉜 것으로 보인다. (80년대의 내용은 폐기하고 이력만을 팔아 장사에 나선 부류는 접고 가자. 그런 천박함까지 80년대의 이름으로 언급할 순 없으니.) 첫째, 세상이 달라졌다는 의견에 명백하게 반대하며 80년대의 연속성을 유지하며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들이다. 손에 꼽을 만치 적은 그들은 곤란한 처지에 있다. 그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세상이 변했다고 합의했고, 그런 합의를 기반으로 하는 방식의 운동이 각광을 받는 상황에서, 그들이 지키는 신념은 낡은 것으로 비쳐지기 일쑤다. 그러나 (세상이 변했다는 의견에 찬성하고 안 하고를 떠나) 그들은 ‘여전히 남은 문제들’과 싸우는 유일한 세력이다. 그들은 낡은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새로운 세상에 접근한 사람들이다.

“오늘 그들은” 대략 셋으로 나뉘었다고 하지만, “어제(=80년대) 그들은” 그렇게 구분될 수 있었을까? “80년대의 내용은 폐기하고 이력만을 팔아 장사에 나선 부류”라고 몰아붙이고 있는 이들의 상당수가 80년대 운동권의 (잘나가는) 핵심들이었다(이 ‘장사꾼’들이 ‘386 국회의원들’을 지칭하는지, ‘벤처사업가’들을 지칭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그들이 10년 후에는 ‘이력을 팔아 장사에 나설 천박한 부류’들로 분류될 수 있었을까? 그런데, 지금 그들이 그런 식으로 분류되고 걸러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80년대라는 폭압적 상황하에서는 눈에 띄지 않았던 ‘사소한’ 차이들이 ‘오늘’ 드러난 것.

레닌주의의 기치하에서는 스탈린도 트로츠키도 부하린도 모두가 한몸이고 한 통속이었다. 하지만, 혁명이 성공하고 세상이 달라지자 그들은 스탈린파와 트로츠키파와 부하린파로 분리/분열돼 가고 사회주의의 적통과 반동으로 구분/숙청된다. 그런 식으로 어제의 동지는 오늘의 적이다(김규항의 박노해 비판을 떠올려보라. 하지만, 80년대 누가 박노해를, 혹은 노동해방문학을 비판할 수 있었을까? 혹은 김수환 추기경은? 80년대 누가 추기경을 비판할 수 있었을까?). 왜? 세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세상이 달라졌다는 의견에 명백하게 반대하며 80년대의 연속성을 유지하며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들”로 분류되는 이들은 쿠스투리차의 영화제목을 빌리자면 ‘언더그라운드’의 사람들이다. ‘80년대의 연속성’이 뜻하는 것은 무엇인가?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라는 점에서 전두환(파쇼정권)이나 김영삼(문민정부), 김대중(국민의 정부), 노무현(참여정부)이 다 똑같다는 것이다. 전선(戰線)의 외양만이 바뀌었을 뿐, 근본적인 사회적 적대관계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으며 그런 적대의 혁파를 위해 자신을 희생/투신하는 사람들! 이러한 논리의 자연적 귀결은, 이전에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인간개조 혹은 인간복제이며(그것만이 ‘근본적인 변화’이기에), 네그리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기계-인간에 대한 적극적인 긍정이다. 그것은 김규항의 입장이기도 한가?

하지만, 그는 한 문단 내에서 이야기를 묘하게 비튼다. “80년대의 연속성을 유지하며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들”이 “(세상이 변했다는 의견에 찬성하고 안 하고를 떠나) 그들은 ‘여전히 남은 문제들’과 싸우는 유일한 세력”으로도 지칭되는 것이다. “세상이 변했다는 의견에 찬성하고 안 하고를 떠나”라는 건 이들간에도 두 부류가 있다는 얘기인가? 이 문단의 시작에서 이들은 “세상이 달라졌다는 의견에 명백하게 반대”한다고 분명히 언급되었다. 이 두 구절이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가? 그들은 “세상이 변했다는 의견에 찬성하고 안 하고를 떠나” “세상이 달라졌다는 의견에 명백하게 반대”하는 것인가?

그리고 “여전히 남은 문제들”은 뭔가? ‘남은 문제들’이란 말은 해결된 문제들도 있다는 얘기 아닌가? 세상이 달라지지 않았는데, 해결된 문제들은 무엇인가? “여전히 남은 문제들만” 마저(!) 해결하면 ‘근본적인 변화’가 성취되는가? 여기에 논리적 균열이 있는 건 아닌가? 나로선 이 균열이 “그들은 낡은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새로운 세상에 접근한 사람들이다.”라는 역설적인 결론에 의해 봉합된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둘째, 이른바 90년대 이후의 변화한 상황을 근본적인 변화로 규정하고 적응한 사람들이다. 이를테면 90년대 중반 이후 급부상한 부르주아적 시민운동이다. 그런 새로운 방식의 운동은 80년대의 전체운동 중심 운동의 그물에 담지 못했던 중산층의 이런저런 문제들을 챙기며, 준 정당에 가까운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그 성과야 지나칠 만큼 충분한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지만, 문제는 그런 운동이 오늘의 유일한 운동인 양 주장되는 일이다. 그런 주장들은 바로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운동을 어리석고 낡았다고 비난하는 일이 된다.(그들은 여전히 ‘80년대의 연속성’이나 ‘변혁의 전망’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그들의 실제 활동 속에서 그런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유지를 위해 많은 것을 타협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언론에 의지하다 보니 언론문제에 불분명한 입장을 보인다든가, 언론에서 다뤄줄 만한 주제에 편중한다든가, 그 번듯한 살림을 꾸리기 위해선 과격해 보이지 않아야 한다든가 하는 문제들은 그들의 족쇄다.)

여기에 또다른 부류가 있다. 이들과 첫번째 부류와의 종차(種差)는 90년대 이후의 변화를 보는 시각에 달려 있다. 첫번째 부류(=언더그라운드)가 90년대를 80년대로부터의 근본적인 변화라고 인정하지 않는 데 반해서, 두번째 부류는 그걸 인정한다. 그리고 거기에 적응한다. 그런데 여전히 ‘80년대의 연속성’이란 말을 쓴다. 그런 그들을 김규항은 ‘부르주아적 시민운동가들’이라고 일컫을 모양이다. 이들에 대한 그의 태도는 이중적인데, 그들의 인식과 운동방식에 ‘반대’하진 않지만, 그것이 운동의 전부인 걸로 간주되는/간주하는 건 반대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운동은 (부르주아적) 한계를 명백하게 갖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론 그들과 달리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운동”을 사람들로 하여금 간과하게(결과적으론 ‘낡은 운동’으로 비난하게) 하기 때문이다.

-셋째, 이력을 팔아 장사에 나설 만큼 간교하지도 변화한 상황에 적응할 만큼 재빠르지도 못했지만, 여전히 신념을 지키며 살기엔 변화한 상황의 혼란과 피로를 이길 수 없었던 사람들이다. 80년대의 청년들의 가장 많은 부분일 그들은 말 그대로 청년 시절의 노고가 허망해져버린 사람들이다. 남들이 일신의 안위를 준비하느라 열심일 때 거리와 현장을 내달려야 했던 그들은, 꼭 그만큼 경쟁에 뒤진 삶을 어색하게 꾸려간다. <한겨레>를 구독하고 남들보다 진지한 책을 읽고 선거 때면 조금이라도 진보적인 정당에 투표하기도 하지만, 그런 작은 노력들은 이미 천민자본주의의 정신에 사로잡힌 그들의 주변으로부터 은근한 경멸의 대상일 뿐이다.

어떤 근거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김규항은 이 세번째 부류를 ‘80년대 청년들의 가장 많은 부분’, 즉 대다수로 규정한다. 아마도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그의 ‘80년대 청년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제한된 범위의 ‘운동권’을 뜻하는지도 모르겠다(소위 ‘운동권’ 바깥에 있었던 나로선 그 속뜻을 알지 못하겠다). 정말로 그 운동권 ‘대다수’는 “말 그대로 청년 시절의 노고가 허망해져버린 사람들”인지? 그래서 “경쟁에 뒤진 삶을 어색하게” 꾸리면서 “주변으로부터 은근한 경멸의 대상일 뿐”인지?

나로서 약간 혼란스러운 것은 칼럼의 서두에서 “인류 역사에서 그렇게 많은 인텔리 청년들이 일신의 안위를 뒤로 한 채 세상을 바꾸는 일에 투신하고 스러져간 시대가 있었던가.”라고 감회를 섞어 얘기한 것과 그 인텔리 청년들(=80년대 청년들) 대다수가 “주변으로부터 은근한 경멸의 대상일 뿐”이라는 이 대목에서의 지적 사이의 간극이다. 내가 아는 ‘그렇게 많은 인텔리 청년들’은 ‘경멸의 대상’이 아니며(그들은 오히려 나보다 잘나간다. 집행유예를 받았던 한 친구는 10년후 내게 <부자 아빠와 가난한 아빠>를 읽어보라고 권했었다), 혹 ‘경멸의 대상’일지도 모르는 ‘80년대 청년들’은 ‘대다수’가 아니라 ‘소수’이다(어떤 다수가 ‘경멸받는다면’, 오히려 경멸받지 않는 소수가 비정상 아닌가?).

‘은근한’ 경멸? “(겉으론 아니지만) 네들이 속으로 날 경멸하는 걸 다 알아!” 같은 건가? 그건 자의식의 일종이고 피해의식의 일종 아닌가? 사회/운동의 대의(大義)를 위해서 거리와 현장을 내달려야 했다면, ‘그만큼 경쟁에 뒤진 삶’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오히려 자랑스러워해야 하는 것 아닌가? 거꾸로 그런 경력 때문에 ‘경쟁에 앞선 삶’이어야 정상인가? 더불어, 운동을 했으면 반드시 ‘보상’을 받아야 하나? 민주화 운동 유공자들처럼? ‘고상하지만 무력한’ 이들(=아름다운 영혼들)의 주변은 ‘천민자본주의 정신’에 사로잡혀 있다고 하는데, 이 주변인들은 다수인 세번째 부류보다도 더 다수인가? 이러한 의문들은 칼럼의 주장에 시비를 걸려는 게 아니라 그 ‘진의’를 좀더 명료하게 해두기 위해서 제기하는 것이다.

-오늘 80년대의 청년들은 (변화한 세상에 적응한 사람들을 빼고는) 대개 세상의 경멸에 처해 있다. 희한한 일은, 사람들은 그 청년들이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의 9할을 주었다는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그 청년들을 마치 어리석은 과거를 가진 사람처럼 경멸하곤 한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런 동의는 그런 경멸을 위한 준비일 뿐이다. 그 청년들이 ‘그 80년대에 데모 한번 안 해본 놈들’에게서까지 받는 그런 경멸은 과연 온당한 것일까.

여기서도 ‘80년대 청년들’이라고 다소간 모호하게 지칭되고 있는 이들은 ‘그 80년대에 데모 한번 안 해본 놈들’과 대비되고 있는데, 그렇다고 그 모호성이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80년대 청년들’은 ‘한번이라도 데모 해본 놈들’부터 ‘데모현장이 강의실이었던 분들’에 이르기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갖기 때문이다. 전자라면 절대 다수이고 후자라면 소수 정예이지만, 내가 보기에 김규항은 이들을 뒤섞는다. ‘절대 다수’가 ‘어리석은 과거를 가진 사람’으로서 경멸 받는 것은 넌센스이므로, ‘어리석은 과거를 가진 사람’이라고 지칭되는 이들은 적어도 운동 경력 때문에 ‘훈장’이라도 달고 나온 이들을 가리켜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정말로 ‘80년대 청년들’로 지칭될 만큼, ‘인류 역사’를 들먹일 만큼 다수였는가? 운동을 위해서 일신을 내던질 수 있었던 그들이 지금에 와서 새삼 주변(=사람들)의 시선에 그토록 민감할 이유는 또 무엇인가? 분명 사람들의 정신이 ‘천민자본주의 정신’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들의 경멸이야말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며, 오히려 그런 주변인들로부터 환영/존경받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 아닐까? ‘천민자본주의 정신’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사람은 제대로 볼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존경해줄 수 있는 것인지? 자세하게 읽으려고 하면, 칼럼은 이해되지 않는 대목들이 수두룩하다.

가령, “희한한 일은, 사람들은 그 청년들이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의 9할을 주었다는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그 청년들을 마치 어리석은 과거를 가진 사람처럼 경멸하곤 한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런 동의는 그런 경멸을 위한 준비일 뿐이다.”라는 대목은 전형적인 히스테리증자의 담론을 떠올리게 한다(예컨대, 히스테리증자에게는 어떠한 사랑의 고백도 변심으로 의심받을 것이다. “저 남자가 갑자기 무관심해졌어. 딴 여자가 생긴 거야!” “저 남자가 왜 갑자기 친절하지? 딴 여자가 생긴 걸 감추려고 하는군!”).

이 ‘동의’를 ‘존경’으로 바꾸어도 사태는 역전되지 않을 것이다. 히스테리증자에게서는 그 ‘존경’ 또한 ‘경멸’을 위한 준비일 뿐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경멸이 아닌 진정한 동의이며, 존경인지는 어떻게 판별할 수 있는가? (궁예처럼) 보면 아는가? 하여간에 이런 식의 징징대는 소리는 듣기에 불편하다(영화 <람보>의 끝장면에서 남들의 ‘경멸’에 대해 자못 억울하다는 듯이 징징대는 ‘람보’ 실베스타 스탤론과 무엇이 다른가? 참고로, 이 <람보>는 레이건 시대의 미국, 80년대 시대정신의 영화적 상관물이었다).

“그 청년들이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의 9할을 주었다”는 대목은 어떤가? 그들은 무얼 돌려받기 위해서 주었는가? ‘인류 역사’는 차치하고 한국의 근현대사만 보더라도 모든 앞선 세대는 자신들이 피땀흘린 노고의 대가를 후대에 물려주었다. 이건 당연한 것 아닌가? 이전 통신문에서 살펴본 김훈의 세대만 하더라도 한국사회의 ‘물적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그 이전에 한국전쟁의 참전세대가 아니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있지도 않았다. 도대체 무얼 말하자는 것인가?

사실, 김규항이 80년대 청년들이 주었다고 주장하는 건 비판적 사회 ‘의식’ 아닌가? ‘의식화’란 당대의 상투어. 그 ‘의식’이란 소프트웨어는 ‘물적 토대’라는 하드웨어가 없이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을까? 결국 이건 하나마나 한 얘기 아닌가? “그 청년들이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의 9할을 주었”는데, 어쩌라는 얘기인가? ‘80년대 청년들’은 무슨 특별한 역사적 사명의 유전자라도 갖고 태어났었더란 말인가? 지금의 2000년대 학번들도 노무현 정부가 아닌, 5공 정권하에서였다면, 일신의 안위를 뒤로 한 채 세상을 바꾸는 일에 투신했을 것이다. 그건 한 개인의 앙가주망 이전에 ‘시대정신’이자 시대적 요청이(었으)니까.

-하는 말대로, 그들이 80년대의 후반기에 그렇게 열심하던 사상 투쟁이나 사회구성체 논쟁은 분명 과열된 부분이 있었고 그들의 운동엔 편중된 부분이 있었다. 그들이 90년대의 혼란에 그렇게 무력하게 흐트러진 일 또한 그런 부분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새로운 전망을 찾기 위해선 그런 오류에 대한 비판은 필요하다. 오히려 80년대가 종료한 지 10여년이 지났지만 그런 오류에 대한 정확한 비판과 토론이 진행되지 않은 일은 아쉬운 일이다.

김훈의 인터뷰에서 이 대목에 상응하는 부분은 박정희의 ‘정치적 과오’에 대해서 “물론 그런 것까지 없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어.”라고 답하는 부분이다. 김규항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물론 80년대 운동에 과열된/편중된 부분이 없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김훈의 경우에도 지적했지만, 이런 판타지야말로 자기기만이다. 나는 당시에 그렇게 ‘열심하던’ 사상투쟁 등속도 혐오스러웠지만(그들은 주체사상이나 스탈린주의는 전폭적으로 지지하면서 ‘소프트 스탈린체제’였던 박정희나 그 ‘외설적 이면’으로서의 전두환은 혐오했다), 그러한 ‘오류/과오’까지가 온전하게 80년대 청년 정신의 일부라고 생각하며, 때문에 그와는 분리될 수 없다고 본다

우경화된 파쇼정권에 대응하기 위해서 필요 이상의 ‘좌경화’가 요구되었던 건 당연한 일, 이해할 만한 일 아닌가? 그게 옳거나 그르다고 판정하는 것은 이차적이다. 운동은 이성에 의해 조율되지 않으며, 거기에 언제나 동반되는 것은 ‘광기’이다. 김규항의 지적대로, (80년대 청년들이) “90년대의 혼란에 그렇게 무력하게 흐트러진 일 또한 그런 부분과 관련이 있을 것”인바, (김규항의 주장대로) 그들이 현재 사람들로부터 경멸받는다면, 그건 일정 부분 자기책임이다. 이제 결론이다.

-문제는, 80년대의 오류에 대한 그런 비판들이 새로운 전망을 찾기 위한 생산적인 목적이 아닌 엉뚱한 목적,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주장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확실히 80년대의 정신은 ‘지나친 자본주의’로서 신자유주의 정신과 적대적이며, 80년대의 정신이 아무 구분없이 경멸되어야 할 필요가 바로 거기 있다. 오늘의 정신, 신자유주의의 정신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하루가 다르게 벌어지는 빈부의 격차를 당연시하는, 모든 경제적 실패를 노동자의 책임으로 넘겨지는, 아이들이 아파트 평수대로 신분을 나누는, 일류대학이 부자의 자식들로 채워지는, 오로지 돈이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부모가 자식에게 선생이 제자에게 올바로 살라고 가르치는 일이 자식과 제자의 인생을 망치는 일이 되는, 정신이다. 과연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희망은 부당한 경멸을 돌려주는 일에서만 출발할 것이다. 80년대, 그 위엄을 되찾아야 할 때다.

“80년대의 정신이 아무 구분없이 경멸되어야 할 필요가 바로 거기 있다.”라는 대목은 문맥과 맞지 않는데, 오타가 아니라면 아이러니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즉, ‘80년대의 정신’은 ‘신자유주의 정신’과 적대적이기에, 그 ‘신자유주의 정신’이 지배적인 정신, ‘오늘의 정신’이 된 우리시대에 ‘경멸’받는다는 것. 그런 맥락에서라면, 사람들의 경멸은 ‘80년대 정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징표일 것이므로 (부당한 것으로 불평해야 할 게 아니라) 오히려 환영해마지 않아야 할 것이다. 더불어, ‘80년대 청년들’이 김규항의 주장대로 경멸받는 ‘다수’라면, 신자유주의 정신을 상대로 좌절할 이유는 무엇인가?

저항의 ‘물적 토대’를 문제삼는 거라면 모를까(그건 좀 어렵고 복잡하다), 그가 내내 내세우고 있는 것은 ‘정신’, 곧 ‘의식’ 아닌가? 부당한 결멸 정도를 (되)돌려주는 일에서 ‘희망’이 출발될 수 있다면, 이 또한 너무도 쉬운 일 아닌가? 자신을 은근히 경멸하던 주변 사람들에게 당장 내일 아침부터 경멸의 시선을 되돌려주면 되는 것이니까. 그걸로 80년대, 그 위엄을 되찾을 수 있는 거라면 말이다.

끝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그 위엄’의 내용이다. ‘그 위엄’을 되찾아야 하지만, 그리고 그걸 ‘재단언(reassert)’해야 하지만, 정작 그 위엄의 내용은 아직 정리되지/갖춰지지 않았다. 80년대의 오류에 대한 비판이 (그간에 편파적으로 진행되었을 뿐) 아직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80년대가 종료한 지 10여년이 지났지만 그런 오류에 대한 정확한 비판과 토론이 진행되지 않은 일은 아쉬운 일이다.” 이러한 상황에 그대로 적용가능한 것은 재작년 연말인가 하머바스(독일)와 데리다(프랑스) 등 대표적인 서유럽 지식인/철학자들의 ‘시국선언’에 대한 지젝의 비판이다.

 

 

 

 

자신들의 선언서에서 두 철학자는 유럽이 자신의 “윤리-정치적 유산”을 재단언할 힘을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한바, 지젝은 그것이 충분하지 않다고 비판한다. 왜나면, “우리가 미국 정치와 문명 속에서 비난받아야 하는 것으로 그리고 위험한 것으로 발견하는 것은 유럽 자체의 일부이며, 유럽적 기획의 가능한 결과들 중 하나”(<이라크>, 50쪽)이기 때문이다. 즉 “미국은 유럽 자체의 왜곡된 거울이다.”(즉 미국이란 거울에 비쳐지고 있는 것은 유럽 자신의 얼굴이다.)

해서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은 자기비판이다. “유럽 자체에 대해 비판적으로 개입하기를 원치 않는 이들은 미국에 대해서도 침묵해야 한다.”(51쪽) 그것이 지젝의 단언이며, 이는 새로운 주장으로 이어진다. “유럽적 유산의 방어가 연대와 인권이라는 위협받는 유럽적 민주주의 전통의 방어에 국한된다면 전투는 이미 패배한 것이다. 유럽의 유산이 방어되기 위해서는 유럽이 스스로를 재창안해야 한다. 방어의 행위 속에서 우리는 방어해야만 하는 그 무엇을 재창안해야 한다.”(51쪽)

즉 한쪽에서는 우리의 ‘금송아지’를 보호/방어하기 위해서 피 흘리는 가운데, 한쪽에서는 그 ‘금송아지’를 열심히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나는 김규항이 옹호하며 재단언하고자 하는 ‘80년대 정신’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 자체의 오류를 제거한, 순수하게 진보적인 ‘80년대 정신’(=금송아지)이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건 그 정신의 윤곽과 아직 ‘참호’(=언더그라운드) 안에서 전투를 계속하고 있는 소수의 전사(戰士)들, 그리고 대다수 ‘패잔병들’뿐이다. 때문에, “80년대, 그 위엄”을 한편으론 되찾아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런 게 아직 없으므로) 만들어내야 한다.

해서, 남들의 경멸에 신경쓰거나 발목 잡혀 있을 때가 아니며, 자화자찬하거나 징징댈 시간이 아니다. 과연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그건, 한가한 질문이다. “누가 승리를 말하는가? 극복이 전부인 것을.”(릴케)이란 시구를 조금 비틀어서 말하자면, “누가 희망을 말하는가? 전진이 전부인 것을.” 묵묵한 전진이…(*여기까지가 본문이었다. 이어지는 것은 본문에 덧붙인 군말이었다.) 

 

 

 

 

김규항의 칼럼에 대한 논평에 생각보다 길어졌다.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의 9할은 80년대가 준 것이다.”란 첫문장을 읽으면서부터 마음이 답답해지기 시작해서, 결국은 한때 그의 칼럼의 애독자였지만 나는 더 이상 그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했다. 나는 분류하자면, “세금 왕창 내는” ‘중도 우파’도 부르주아도 아니지만, 김규항의 분류대로라면 ‘80년대 청년’도 아니다. ‘80년대 인텔리’이긴 하지만, 나는 일단 ‘팔아먹을 이력’이 없고, 세상이 좀 달라졌다고 믿기 때문에 ‘80년대적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지 않으며, 남들만큼 ‘간교하지도’ ‘재빠르지도’ 않아서 경쟁에 뒤진 감은 있지만, 그건 자업자득 정도로 여긴다(그러니 굳이 분류하면, 세번째 부류의 ‘변이형’ 정도 될까?).

단 하나, 내가 내심으로 자긍심을 갖는 것은 세상이 좀 달라지긴 했어도 나의 정치적 태도는 80년대나 지금이나 그다지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다. 김훈의 분류대로 하자면, 나는 ‘회색분자’이어서(최인훈의 명명에 따르면, ‘회색인’), 그다지 달라질 게 없는 건지도 모르지만. 내 주변에서 80년대에 ‘운동’을 잘하던 이들은 대부분 지금도 잘나간다(한나라당 공천까지 신청해 가면서). 그들에 주눅들어 하던 이들은 지금도 그냥 그 주변에서 주눅든 채 살아가고. 그리고, 나 같은 회색분자는 지금도 회색분자이다(나도 기회주의적으로 좀 처신하고 싶고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빌어먹을 ‘기회’란 게 안 주어진다. ‘기회’는 나를 경멸하는 모양이다). 이건 일종의 생태학이다. ‘운동생태학’. ‘운동윤리학’ 이전에 말이다.

나는 김규항이 자신을 어떻게 분류할지 궁금하다. 아마도 “세상이 달라졌다는 의견에 명백하게 반대하며 80년대의 연속성을 유지하며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들”에 속하리라, 혹은 속해야만 하리라. 적어도 ‘B급 좌파’라는 명패에 값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손에 꼽을 만치 적은 그들”의 “곤란한 처지”에 합류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 또한 정말로 ‘곤란한 처지’에 있는지? ‘언더그라운드’의 처지라면, 세 부류를 ‘개관(槪觀)’할 만한 처지가 안된다. 그걸 개관하기 위해서는 언더그라운드 ‘바깥’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그는 세상이 변했다는 것도 알고 있어야 하며(그럴 경우, 운동방식 또한 바뀌어야 한다) 동시에 그럼에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어야 한다(그럴 경우, 운동방식은 바뀌면 안된다). 그러니까 그의 처지를 규정하는 건 모종의 아포리아이다. 본문에서 “세상이 변했다는 의견에 찬성하고 안 하고를 떠나”라는 애매한/유보적 표현은 짐작에 아마도 그래서 들어갔을 것이다. 김규항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



본문에서 한번 언급했던 쿠스투리차의 영화 <언더그라운드>(1995)의 줄거리는 이렇다. “1941년 독일에게 점령당한 유고의 베오그라드. 무기밀매를 하던 블래키와 마르코는 지하실에 무기생산고를 만든다. 이로부터 3년후, 마르코는 블래키를 독일군으로부터 구출해 지하실로 숨게 한다. 하지만 유고가 해방된 후에도 마르코는 지하실 사람들을 속여 계속 무기를 만들게 하는 한편 블래키가 사랑하는 여자 나탈리아를 빼앗고, 티토의 측근이 되어 부와 명예를 누린다. 블래키의 아들 요반의 결혼식날 언더그라운드는 사고로 파괴되고 아직도 전쟁이 진행중인 것으로 믿고 있는 블래키는 자신의 영웅담을 영화화하고 있는 촬영현장에 도착해 진짜 총을 발사한다. 1992년 다시 전쟁에 휩싸인 베오그라드. 마르코와 나탈리아는 블래키의 지하군에 의해 살해된다. 마지막, 블래키의 죽음에 의해 잉태된 꿈의 장면, 모든 죽은 사람들이 햇살 밝은 곳에서 축제를 벌이는데 그들이 딛고 있는 땅이 육지로부터 떨어져 나간다.”(김소영 교수의 요약)

유고 내전에 관한 이 ‘블랙 코미디’에서조차도 언더그라운드의 사람들은 관객의 마음을 무겁게 했었다. 반복해서 말하자면, “세상이 달라졌다는 의견에 명백하게 반대하며 80년대의 연속성을 유지하며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들”로 분류되는 이들은 이 ‘언더그라운드’의 사람들을 닮았다. 나는 그들이 세상을 어떻게 견뎌내는지 가늠할 수 없다(1980년부터만 잡아도 벌써 25년째이다!). 그들과는 달리 나에게 먹구름 같던 80년대는 지난 김영삼 정부때 전두환, 노태우가 내란수괴죄 등으로 수감되면서 비로소 막을 내렸다. 두 사람이 구속되는 날, 나는 젊은 날 머리속을 내내 감싸던 무거운 안개 같은 것이 걷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87년 6월의 ‘함성’이 그날에서야 비로소 결실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을 듯했다). 나는 그 이후의 한국 정치사에 대해서는 케세라 세라, 될 대로 되라이다. 그건 무관심이 아니라 낙관이다(더 이상의 후퇴는 없을 거라는).

나는 우리의 삶에서 정치가 해줄 수 있는 몫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며, 나머지 문제들, “여전히 남은 문제들”은 종교(=종교 없는 종교)와 예술/문학에 의해서 해결이 모색되어야 한다고 본다(데리다의 저작들 중 일부는 'Acts of Religion'과 'Acts of Literature'란 제목으로 묶였는데, 나의 모든 관심 또한 그 사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내가 엊그제, 그러니까 지난해의 마지막날 저녁에 읽은 단편소설은 체홉의 <다락방이 있는 집>(1896)인데(‘운동’의 방식에 대한 두 가지 입장 차이가 이 단편의 이데올로기적 테마를 구성한다), 거기에 등장하는 화자(=화가)는 이렇게 말한다. “필요한 건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이 아니라, 정신적 능력을 발휘하기 위한 자유입니다. 초등학교가 아니라 대학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내가 보기에, 정신의 자유, 정신의 대학은 정치가 충족시켜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초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대학(교육)’을 유보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지구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굶어죽는데, 어떻게 너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느냐고 말할 수도 없다. 그건 또다른 ‘폭력’이다(인간에겐 생명보다 더 중요한 가치들이 있다!).

내게 ‘언더그라운드’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80년대의 연속성’이란 무엇인가? <언더그라운드>에서 2차 대전이 계속 진행중이라고 믿고 있듯이, 군사파쇼 정권과 피억압 민중간의 대립구도의 연속성인가? 아니면, 다국적자본의 신자유주의와 전세계 노동계급간의 대립구도의 연속성? 어쨌거나 5공 때의 구호는 매번 반복되었다. “김영삼 정권 타도하자!” “김대중 정권 타도하자!” “노무현 정권 끝장내자!”(하지만, 그 구호들이 언제 실현됐던가? 메아리 없는 구호는 ‘구호를 위한 구호’로 귀결되는 것 아닌가?) 그러한 구호들에서 지속적인 것은 ‘타도하자/끝장내자’라는 ‘관성’이다. 영어로는 ‘overthrow’.

'Overthrow'는 타도/전복하다란 뜻도 되지만, 야구 용어로는 폭투(暴投), 그러니까 투수가 공을 너무 멀리 너무 높게 던지는 걸 말한다.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요구는 폭투처럼 콘트롤이 안되는 요구이다. ‘근본적인 변화’라는 건 아무도 정의/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와일드(wild)하며, ‘정의(正義)’를 닮았다(짓궂게도 5공의 집권여당은 ‘민주정의당’이었다. ‘80년대 청년들’과 집권여당의 지향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일치했던 것. ‘민주주의’와 ‘정의’!). 단, 그것이 ‘근본주의’에 붙들리지 않는 한에서 말이다. 하지만, ‘폭투로서의 정의(Justice as a Overthrow)’가 힘을 갖기 위해서는,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혹은 위엄을 내세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해야 한다.

 

 

 



정의로서의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는/요구하는 사람들이 왜 경멸 받는가? 그건 힘이 없기 때문이다. 김훈의 표현을 갖다 쓰자면, ‘물적 토대’가 없기 때문이다(그런 이유로 김훈은 좌파를 ‘멸시’한다). 몽테뉴-파스칼의 통찰을 다시 반복하자면, “힘없는 정의는 무기력하다. 정의 없는 힘은 전제적이다. 힘없는 정의는 반격(=경멸)을 받는데, 왜냐하면 항상 사악한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정의 없는 힘은 비난을 받는다. 따라서 정의와 힘을 결합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정당한 것이 강해지거나 강한 것이 정당해져야 한다.”(데리다, <법의 힘>, 27쪽)

책임질 수 없는 구호들만을 남발하는 걸로 자신이 정의(=근본적인 변화)에 편에 서 있다고 믿는 건 착각이거나 오만이다. 그건 자신들이 ‘물적 토대’(=힘)를 갖고 있기에 곧 정의롭다고 믿는 것만큼이나 오도된 것이다. 자신의 말(=구호)에 책임지고, 그 말에 ‘물적 토대’(=힘)를 부여함으로써, 말의 위엄을 되찾을 수 있을 때만이 정의는 반격/경멸을 받지 않게 된다. 거기에 비하면, “그 청년들이 ‘그 80년대에 데모 한번 안 해본 놈들’에게서까지 받는 그런 경멸은 과연 온당한 것일까.”라고 따위의 질문은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는 것은 과연 온당한 것일까.”라는 질문만큼이나 부차적이며 한가하다. 사자가 양을 잡아먹는 것은 그것이 정당(온당)해서가 아니다.



지난주에(*2005년초) 인터넷에는 지난해 10월에 사망한 철학자 데리다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창간 50주년 기념연설(발체)문이 영역본과 함께 올라왔었는데(강연은 5월에 있었고, 강연문은 11월호에 게재됐다),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다음의 문단이었다. 나는 한 문단을 둘로 나누어서 영역과 국역을 같이 제시하겠다(국역은 신기섭님의 것을 약간 수정했다).

Caught between US hegemony and the rising power of China and Arab/Muslim theocracy, Europe has a unique responsibility. I am hardly thought of as a Eurocentric intellectual; these past 40 years, I have more often been accused of the opposite. But I do believe, without the slightest sense of European nationalism or much confidence in the European Union as we currently know it, that we must fight for what the word Europe means today. This includes our Enlightenment heritage, and also an awareness and regretful acceptance of the totalitarian, genocidal and colonialist crimes of the past. Europe’s heritage is irreplaceable and vital for the future of the world. We must fight to hold on to it. We should not allow Europe to be reduced to the status of a common market, or a common currency, or a neo-nationalist conglomerate, or a military power.

“미국의 헤게모니와 중국의 떠오르는 힘, 그리고 아랍/이슬람의 신권 정치 사이에 낀 유럽은 독특한 책임을 지고 있다. 나는 ‘유럽 중심적인’ 지식인이 아니며, 지난 40년 동안 정반대의 이유로 곤욕을 치러왔다. 하지만, 나는 한치의 유럽 국수주의도 갖지 않고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유럽연합에 대해 그다지 신뢰하지 않으면서도 오늘날 ‘유럽’이란 말이 의미하는 바를 위해서 우리가 싸워야만 한다고 확고하게 믿는다. 여기에는 계몽주의의 전통과 함께, 과거 전체주의의 범죄행위와 인종학살, 식민주의적 범죄행위에 대한 인식과 이에 대한 유감도 포함된다. 이러한 유럽의 전통은 대체될 수 없으며, 세계의 미래를 위해서 아주 중요하다. 우리는 이걸 지키기 위해서 싸워야 한다. 우리는 유럽이 그저 하나의 시장이나 하나의 통화체제, 혹은 새로운 형태의 국가연합이나 통합된 군사력 등으로 축소되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

문단의 이러한 전반부가 연설의 핵심을 구성하지만, 내가 더 주목한 것은 이어지는 후반부의 유보조항이다: “Though, on that last point, I am tempted to agree with those who argue that the EU needs a common defence force and foreign policy. Such a force could help to support a transformed UN, based in Europe and given the means to enact its own resolutions without having to negotiate with vested interests, or with unilateralist opportunism from that technological, economic and military bully, the United States of America.”(비록, ‘통합된 군사력’이라는 이 마지막 요점에서는 유럽연합이 공동의 방위력과 외교정책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동조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만 말이다. 그러한 힘은 유엔이 기술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불량배 국가인 미국과 타협하지 않고, 미국의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는 가운데 유럽에 근거를 두고서 독자적으로 그 결의를 실행할 수 있는 기구로 탈바꿈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강조는 나의 것인데, 강조된 것은, 그리고 데리다가 특별히 부각시키고 있는 것은 바로 ‘힘’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군사력(a military power)’. ‘불량배’(=미국)과 타협하지 않으면서 유엔이 자신의 결의를 독자적으로 실행하는 걸 도와주기 위해서라도 유럽연합의 힘(군사력)은 불가불 요구된다고 이 ‘해체철학자’는 보는 것이다. 이 힘이 바로 어떤 발언이나 결의에 수행력을 덧붙여주는 ‘물적 토대’이다. 이러한 물적 토대에 의해서 뒷받침되지 않는 정의는 곧 반격 받으며, 조롱과 경멸의 대상이 된다. 철학자마저 이러할진대, 하물며 ‘운동가’가 세상 사람들의 경멸이나 탓하고 있다는 건 넌센스이다.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의 9할은 80년대가 준 것이다.”에서 내가 읽는 것은 바로 그 넌센스이다...

06. 05.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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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기계 2006-05-08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개인적으로 로쟈님의 글을 따로 프린트해서 보관하기도 하는 애독자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가끔 로쟈님이 이렇게 자신의 옛글을 정리하실 때 유령 같은 독자의 입장에선 정리하기가 조금 성가시기도 합니다.^^ 개인적인 결벽인지는 모르지만 '초판 글'과 '개정판 글'을 다 함께 챙겨 보관합니다. 정말 맘에 드는 글은 (이미지 버전을 위해) 칼라로 뽑아내기도 하고요. 개인적인 일이지만, 한편으론 로쟈님의 "이중적인 플레이"에 대한 최소한의 화답입니다. 만난 적도 없는데, 자신만을 위한 글을 정리하는 로쟈님의 글을 챙겨 읽을 땐 제게는 로쟈님이 유령 같이 느껴집니다.^^ 꾸벅.

로쟈 2006-05-08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령-독자 한분이 자수하셨군요.^^ 관심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은 애초에 3조각인가로 나뉘어 올려졌었기 때문에, 한데 모아놓으면 시각적으로도 보기 편하지 않을까 싶네요. 거기에 이미지들도 몇 개 들어가 있으니까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고. 뭐, 핑계를 대자면 그렇습니다. 가끔은 교정과 비판도 해주시길...

로쟈 2006-05-08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교수신문'의 기사를 담뽀뽀님의 서재에서 읽곤 합니다. '러시아문학'이란 리뷰란을 따로 빼놓아도 많은 분들이 제 '출신성분'에 대해서 오해하거나 되묻곤 하시더군요...

여울 2006-05-08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수하게 진보적인 ‘80년대 정신’(=금송아지)이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건 그 정신의 윤곽과 아직 ‘참호’(=언더그라운드) 안에서 전투를 계속하고 있는 소수의 전사(戰士)들, 그리고 대다수 ‘패잔병들’뿐이다. 때문에, “80년대, 그 위엄”을 한편으론 되찾아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런 게 아직 없으므로) 만들어내야 한다.

" 과연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그건, 한가한 질문이다. “누가 승리를 말하는가? 극복이 전부인 것을.”(릴케)이란 시구를 조금 비틀어서 말하자면, “누가 희망을 말하는가? 전진이 전부인 것을.” 묵묵한 전진이" ... 그쵸!!! 좋은 하루 되시구요.

릴케 현상 2006-05-08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알라딘에 서재를 만든 계기가 재작년쯤에 네이버에서 '알라딘에 로쟈라는 사람 글이 읽을 게 많다'는 코멘트를 보고 들어와 본 거였더랬는데, 그동안 읽기는 거의 다 읽었더랬는데요^^ 사실 사소한 교정들은 가끔 봐드릴 수 있지만(가끔 눈에 띈다는...) 별로 중요한 건 아닌 듯해서염=3=3=3

로쟈 2006-05-08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로 중요하지 않더라도 알려주십시오. 서재주인장에게만.^^ 제 눈의 티를 못보는 것처럼 자기 글의 오타나 오류도 잘 눈에 띄지 않거든요. 고친다고는 하지만...

yoonta 2006-05-09 0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글 그냥 스킵하려다가 읽었는데 좀 논란의 소지가 있는 글이네요..스탈린식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평가부분에서 님은 김규항씨가 졸렬한 시도라고 평한것을두고 2000만명이라는 큰 희생을 치르고 획득한 정치제도이기 때문에 혹은 2000만명을 희생시키는 행위자체가 졸렬하지 않고 위대한? 업적 혹은 시도라고 보시는 건가요? 당시의 정치적 투쟁에서 승리한 레닌주의노선이 당시의 러시아 상황에서 가장 올바른 결론이었다고 보시는건가요?


p.s.끝까지 읽으려는데 어디가 인용글이고 어디가 님의 코멘트인지 넘 헷갈리네요..
-가 문단 맨 앞에 있는 것이 인용글이고..-가 없는 것이 님의 코멘트인가요? 전에는
(*)표시로 구분하신거 같은데 이글에는 그런 구분이 잘 안되어있군요. 번거로우시더라도 (*)표시 혹은 다른 표시로 확실히 구분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로쟈 2006-05-09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문에만 (-)표시가 있습니다(인용문이 많지 않을 때는 굳이 *표를 달지 않습니다). 그리고, '현실사회주의'에 관해서, '가장 올바른 결론'과 '가장 현실적인 결론'은 구별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역사는 가장 올바른 경로를 선택하지 않습니다(그것이 '현실적'이지 않을 경우엔 더더욱). '현실 사회주의'와는 '다른 사회주의' '진정한 사회주의'를 꿈꾸는 이들에게 갖는 저의 불만은 그러한 상상력이 '현실 자본주의'에 대해서 면죄부를 준다는 데 있습니다(우리는 또 얼마든지 '이상적 자본주의' '도덕적 자본주의'를 꿈꿀 수 있으니까요).

2000천만명 운운은 '대단하다'는 뜻에서입니다. 그러한 '공포정치'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었던 것은 사회계급의 전면적인 교체 덕분이었다고들 얘기합니다. 그 많은 자리는 물론 숙청된 이들이 마련해준 것이며, 적어도 그 희생자들의 수만큼 사회적 신분 이동이 가능했던 거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그러니까 모두가 '피해자'는 아닌 겁니다). 저는 그러한 피의 숙청 없이, 어떠한 방식의 계급투쟁이 가능한지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본문에서 지적한대로, 소위 진보좌파라는 이들이 나머지 (최소한) 70%의 '반동분자'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하구요. 이에 대한 해명 없이 '가장 올바른'을 늘어놓는 것은 아름다운 소리이기는 하지만, 귀기울여볼 만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yoonta 2006-05-09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에는 그런 피의 숙청이 필요할만큼 강제와 폭력이 필요한 혁명이라면 차라리 '일어나지 않는게 좋았던 혁명'이라고 생각합니다. 2000만명의 희생을 치러서 얻은 댓가가 과연 무엇이었던가요? 2000만명을 죽인다음 그 위치를 차지할수있었던 노동계급?들의 신분상승이 그 희생만큼의 값어치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서 그렇게 피로서 성립된 현실사회주의가 오늘날까지 잘 작동되었던가요?

물론 "가장 올바른 결론"이 항상 "가장 현실적인 결론"이 되지는 않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당시에 '현실적'이었던 레닌주의, 스탈린주의적 사회주의에 "면죄부"를 준는 것도 마찬가지로 아닙니다..

로쟈 2006-05-09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제와 폭력'이 불필요한 '혁명'에 대해서는 제 상상력이 따라가지 못하겠습니다(더불어, 레닌-스탈린주의적 '과잉'이 혁명을 이끈 것이므로, 사실상 그러한 '과잉'을 제거한다면 말씀대로 혁명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한데, 모두가 좋은 게 좋은 건가요? 노동자도 좋고, 자본가도 좋은? yoonta님의 '가장 올바른 결론'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경청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단, 그것이 윤리적인/추상적인 결론만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yoonta 2006-05-09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 급격한 사회적 변화를 야기하는 일반적 의미의 정치적 혁명에는 일정정도의 "강제와 폭력" 수반될수밖에 없죠. 하지만 그것이 꼭 2000만명을 숙청시키는 야만이어야만 했을까요?

레닌이 죽기직전에 그랬다죠. 스탈린은 너무 잔혹한 인물이기 때문에 자신의 후계자가 될만한 인물이 아니라고. 하지만 레닌에 의해 성공한 10월혁명은 스탈린에 의한 권력장악과 그의 전횡을 가능하게한 밑바탕을 마련해주었죠. 로쟈님도 잘 아시겠지만 당시의 러시아에서 볼세비키는 사회주의계열 내부에서도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그들에 의한 혁명은 어떻게 보면 혁명이라기보다는 소수에 의한 쿠테타에 가까웠다고 봅니다. 혁명?의 성공후 그들은 수많은 노동자들을 배신했죠. 모든 권력이 소비에트로 간 것이 아니라 모든 권력은 레닌에게로 갔으니까요..-_- 크론슈타트에서는 레닌에 의한 이러한 권력독점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 반혁명적 성격을 인지하고 대대적인 봉기를 일으키기도 했고요..

10월혁명에 대한 평가는 그리고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는 이런 일련의 논의들을 꼼꼼히 점검해보아야 하는 사항이기 때문에 그리 간단히 다루어질만한 사항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가장 올바른 결론"은 아직은 이곳에서 이야기할 상황은 아닌것 같네요. 단 그것이 윤리적이고/추상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만 밝힙니다.

yoonta 2006-05-09 0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마저 읽었네요..중 후반부도 마찬가지로 논란거리가 많은 내용이군요..

한마디만 코멘트해보면..그렇다면 좌파가 획득해야만 하는 그 "물적토대"란 무엇인가요? 돈인가요? 아니면 정치적 군사적 권력? 만약 그렇다면 이런 것들이야 말로 좌파가 혐오하고 거부해왔던것들 아닌가요? 그런 것들이 아니라면 그들의 물적 토대는 도대체 무엇이죠?

님이 이부분에서 비판하려고 하는 좌파의 문제점 즉 공허한 구호만 남발하고 그 구호의 실천성, 물적토대를 담보하지 못하는 모습들은 여러점에서 비판받을 만한 부분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구호의 의의조차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죠. 많은 경우 그들의 구호나 이야기가 공허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도 애초부터 그들에게 (자본주의적)기회가 주지 않는 현실, "(자본주의적)기회가 그들을 경멸하"는 현실때문이니까요. 그들이 필요로하는 "물적토대"는 자본주의적 기회나 물적토대라기보다는 자본주의의 외부를 지향하는 물적토대이기 때문이고, 기회이기 때문이니까요.

한가지 동의하는 부분은 왜 우리를 경멸하느냐고 투덜대는 것보다는 "금송아지"를 계속해서 묵묵히 만들어내는 일들을 해야한다는 부분입니다. 그런점에서 김규항씨의 이글은 그가 아직도 80년대의 향수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로쟈 2006-05-09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구호의 의의조차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죠. 많은 경우 그들의 구호나 이야기가 공허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도 애초부터 그들에게 (자본주의적)기회가 주지 않는 현실, "(자본주의적)기회가 그들을 경멸하"는 현실때문이니까요. 그들이 필요로하는 "물적토대"는 자본주의적 기회나 물적토대라기보다는 자본주의의 외부를 지향하는 물적토대이기 때문이고, 기회이기 때문이니까요."로 yoonta님의 생각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대략 어떤 입장이신지 가늠할 수 있겠습니다(이진경주의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혹 차이가 있다면, 나중에 덧붙여주시면 좋겠습니다). '자본주의의 외부'에 대한 상상력도 시간이 되시면 나누어주시길. 제 기본적인 생각은 노마디즘 유행에 대한 간략한 코멘트의 형태로 조만간 제시될 것입니다...

yoonta 2006-05-09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저는 이진경주의가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그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네요. 제가 "자본주의적 외부"라는 표현을 사용해서 그런 추측을 하셨나본데 그것은 이진경주의 혹은 노마디즘을 염두에두고 쓴 표현은 아닙니다. 저는 단지 좌파적 상상력이라는 것이 자본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을 목표로 작동되는 것이고 그것에 기초한 '자본주의의 외부'를 지향해야 하는 것이 그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외부'라는 표현을 했던 것입니다.

2006-05-09 2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5-09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필요없는'은 그대로 놔두어도 될 거 같고, 나머지는 모두 수정했습니다. 저보다 꼼꼼하게 읽으시니까 두렵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