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강의 공지다. 대구현대백화점 문화센터에서는 봄학기에 영국문학 강의를 5회에 걸쳐서 진행한다(매월 2/4주 금요일 오후 2시-4시). 제인 오스틴부터 토머스 하디까지다. 구체적인 일정은 아래와 같다. 


로쟈와 함께 읽는 영국문학


1강 3월 22일_ 제인 오스틴, <설득>



2강 4월 12일_ 찰스 디킨스, <올리버 트위스트>



3강 4월 26일_ 샬럿 브론테, <제인 에어>



4강 5월 10일_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



5강 5월 24일_ 토머스 하디, <테스>



19. 0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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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새 봄학기 강의공지 시기가 되었다. 판교현대백화점 문화센터에서는 현재 진행하는 있는 일본문학 강의에 이어서 이번 봄학기에는 중국문학 강의를 진행한다. 매주 수요일 오후 3시30분-5시10분에 진행되며, 3월 13일의 특강에 이어서 본강의는 3월 20일부터 5월 22일까지 10주에 걸쳐서 진행된다.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로쟈와 다시 읽는 세계문학 - 중국


특강 3월 13일_ 펄 벅의 <대지> 다시 읽기



1강 3월 20일_ 라오서, <마씨 부자>



2강 3월 27일_ 바진, <휴식의 정원>



3강 4월 03일_ 샤오홍, <생사의 장>



4강 4월 10일_ 다이허우잉, <사람아 아, 사람아>



5강 4월 17일_ 왕샤오보, <혁명시대의 연애>



6강 4월 24일_ 모옌, <개구리>



7강 5월 01일_ 위화, <인생>



8강 5월 08일_ 위화, <형제>



9강 5월 15일_ 쑤퉁, <나 제왕의 생애>



10강 5월 22일_ 쑤통, <참새 이야기>



19. 0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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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1212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유발 하라리의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 대해서 썼다. 21가지의 레슨을 제공하고 있지만 주로 데이터 독재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주간경향(19. 01. 28) 빅데이터 알고리즘 시대, 어떻게 살까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의 독자라면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제안’도 비켜갈 수 없다. 전작들을 통해 현생인류의 과거와 현재를 명철하게 기술한 하라리는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이제 우리에게 더 나은 미래의 선택이 가능할지 탐문한다. 우리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역사학자로 부상한 그의 예견과 제언은 무엇인가. 


이미 <호모 데우스>에서 자세히 기술한 대로 인류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단계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고, 이에 따라 새로운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생명기술 혁명은 인간의 신체는 물론 뇌와 감정까지도 판독 가능한 대상으로 변화시켰고, 정보기술 혁명은 이를 데이터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해주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빅데이터 알고리즘은 이제 우리 자신보다 우리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터이다.


과거에는 데이터 처리역량의 한계 때문에 정보를 한곳에 집중하는 사회주의 방식이 정보처리 권한을 분산하는 민주주의 방식에 비해 비효율적이었다. 구소련이 미국과의 체제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인데, 빅데이터의 등장으로 이제 국면이 바뀌었다. 20세기에 장애가 되었던 권위주의 모델이 거꾸로 21세기에는 결정적인 이점을 갖게 될 수 있다. 이러한 전망하에 하라리는 현재의 민주주의가 빅데이터 알고리즘 시대, 혹은 인공지능 시대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심한다. “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해야 한다. 안 그러면 인간은 ‘디지털 독재’ 안에서 살게 될 것이다.”

빅데이터 알고리즘은 민주주의에만 위협이 되는 것이 아니다. 부와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되면서 절대다수는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하거나 심지어 잉여가 된다. 지금도 최고 부유층 1%가 전세계 부의 절반을 차지한다. 심지어 최고 부유층 100명이 최저 빈곤층 40억명보다 더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러한 불평등은 더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육체적·인지적 능력을 증강시키는 고가의 치료술이 개발되면서 인류는 생물학적 계층으로 쪼개질 전망이다. 부유층이 부만 차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와 창의력, 건강까지 차지함으로써 ‘소규모의 슈퍼휴먼 계층과 쓸모없는 호모 사피엔스 대중의 하위계층’으로 양분되는 것이다.

컴퓨터가 아니라 우리 인간이 해킹되는 시대에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전면적 지배로부터 과연 우리는 벗어날 수 있을까. 자기 존재와 삶의 미래에 대한 통제권을 우리가 갖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라리는 우리가 알고리즘보다, 아마존보다, 정부보다 더 빨리 달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달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짐이 가벼워야 한다. 짐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고 있는 허구적 이야기들이다. 무엇이 실체이고 무엇이 허구인가. 확인하는 방법은 그것이 고통을 느끼는지 물어보는 것이다. 민족, 국가, 기업, 돈 같은 것은 결코 고통을 경험할 수 없다. 오직 실체로서 인간만이 고통을 느낀다. 허구적 이야기들에 현혹되지 않고 그러한 고통의 자리에서 모든 것을 재평가하라는 것이 하라리의 주문이다. 


19. 01. 23.














P.S. 세속주의에 대한 설명에서 "1789년 바스티유 감옥으로 몰려가서 루이 14세의 폭군 체제를 무너뜨린 민중을 높이 평가한다."(311쪽)고 나오는데, '루이 14세'는 물론 '루이 16세'의 오기다. 내가 갖고 있는 1쇄의 표기가 그러한데, 이후에 교정되었는지 모르겠다. 하라리 3부작은 이번에 스페셜 에디션판으로도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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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공지다. 내년 2월7일부터 28일까지 매주 목요일 오전(10시10분-12시10분)에 한우리 광명지부에서 '로쟈와 함께 읽는 사상고전' 강의를 진행한다(1월의 '한국시' 강의에 이어지는 강좌다). 책세상문고에서 밀의 <자유론>에서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당선언>까지 사상 고전 네 권을 골랐다. 구체적인 일정은 아래와 같다(수강문의는 02-897-1235/010-8926-5607)


로쟈와 함께 읽는 사상고전

1강 2월 07일_ 밀, <자유론>


2강 2월 14일_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3강 2월 21일_ 엥겔스,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


4강 2월 28일_ 마르크스/엥겔스, <공산당선언>


18.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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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1308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리처드 번스타인의 <우리는 왜 한나 아렌트를 읽는가>(한길사)를 읽고 적었다. 아렌트 입문서가 여럿 나와 있는데, 각각의 특장이 있으므로 비교해서 읽어도 좋겠다. 그러고 보니 올해의 마지막 리뷰다...


 














주간경향(18. 12. 31) 아돌프 아이히만은 악의 화신이었나


20세기의 주요 정치사상가로서 한나 아렌트의 책은 대부분 소개되었고 안내서 또한 적지 않다. 그럼에도 리처드 번스타인의 책이 갖는 의의를 찾자면 저자가 아렌트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찾을 수 있다. 아렌트 사상의 주요 개념들 가운데 그는 특히 ‘난민’과 ‘악의 평범성’, 그리고 ‘혁명정신’에 주목한다. 다른 저자라면 ‘정치’나 ‘인간의 조건’ 등을 내세울 수도 있었다. 주제를 한정하는 건 아니지만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식을 바꿈으로써 저자는 아렌트를 이해하는 새로운 경로를 제시한다. 

아렌트의 생애에 대한 간략한 스케치에 뒤이어 특별히 강조되는 것은 난민으로서의 경험이다. 나치 하의 독일에서 탈출하여 프랑스로 망명하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갈 때까지 아렌트는 독일계 유대인 난민이었다. 미국에 이주해서도 정식으로 시민이 되기까지 그녀는 18년간 무국적자였다. 본래 난민은 어떤 행위나 정치적 견해 때문에 피난처로 내몰린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20세기의 역사는 그 의미를 변화시켰다. 아렌트도 그런 경우이지만 나치는 유대인 전체를 난민으로 만들었다. 아렌트는 자신의 경험에서 출발해 무국적 난민의 양산 과정을 성찰한다. 그리고 이 성찰은 전체주의 체제의 탄생과 그 유산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아렌트의 주저는 <전체주의의 기원>과 <인간의 조건>이지만 그녀를 유명인사로 만든 건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 취재기였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악의 화신이 아니라 평범한 인물로 묘사한다. 소위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로 아렌트가 지적한 것은 순전한 무사유와 상상력의 결여였다. 아이히만은 유대인들을 강제수용소와 죽음으로 내모는 데 아주 능숙했지만 희생자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상상력을 결여하고 있었고 ‘확장된 심성’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이후에 아렌트가 아이히만의 연기에 속았다는 비판도 제기되었지만 악의 평범성 개념은 여전히 중요하다. 핵심은 악을 신화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화는 사유를 봉쇄한다. 거꾸로 사유를 중단하는 순간 우리를 아주 쉽게 악으로 인도될 수 있다는 것을 아렌트는 경고한다. 

아렌트에게 인간은 무엇보다 정치적 동물이다. 인간 존재의 복수성, 즉 우리가 여럿이 함께 살아간다는 조건이 정치적 행위의 바탕이다. 행위로서의 정치란 복수성이라는 조건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공적 공간을 보존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복수성을 제거하고 획일화하려는 전체주의는 정치가 아니라 반정치의 산물이다. 우리는 각자의 차별화된 관점을 갖고서 펑등하게 공적 공간에서 함께 행위한다. 그런 기회와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 다름 아닌 혁명이다.

아렌트는 1871년의 파리코뮌과 1917년 러시아의 소비에트, 그리고 독일 스파르타당의 봉기와 1956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봉기 때의 평의회를 혁명정신의 사례로 지목한다. 저자는 거기에 덧붙여 1980년대 동유럽과 중부유럽에서 확산된 정치운동을 아렌트가 목도했다면 혁명정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추가적인 사례로 인용했으리라고 추정한다. 그리고 2016∼2017년 한국의 촛불시위도 마찬가지로 혁명정신의 발현이라는 사실을 적시한다. “시민이 함께하고 공동으로 행위하며, 공적 자유를 실천하고 역사의 경로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깊은 확신”이 바로 아렌트의 유산이며 우리 시대에 갖는 적실성이다.


18.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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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7 23: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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