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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티(근대성)에 관한 책들을 다시 모아서 읽어보려고 하는데, 마침 염두에 두고 있는 책들 중 한 권에 대한 상세한 리뷰가 눈에 띄기에 옮겨놓는다. 라울 바네겜의 <일상생활의 혁명>(시울, 2006)에 대한 이재원 그린비 편집장의 리뷰이다(지난번에 라쿠-라바르트에 관한 리뷰를 옮겨온 적이 있다). 국역본이 출간되고 나서 이 책의 영역본은 도서관에 주문하여 부분적으로 복사해놓기도 했는데,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다. 앙리 르페브르와 보드리야르, 그리고 리포베츠키의 책들을 모아서 읽는 김에 바네겜과 기 드보르 등 상황주의자들의 책들도 정리해둘 생각인데, 좋은 길잡이가 될 만한 리뷰이다. 일상의 심미화 경향에 대해서는 따로 읽고 있는 책들이 있어서 조만간 정리해둘 예정이다.

컬처뉴스(07. 03. 26) 삶이 예술이 되게 하라

예술과 정치의 관계, 혹은 정치의 예술화(그도 아니면 예술의 정치화)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지만, 흔히 언급되지 않는 인물들이 있다. 국제상황주의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국제상황주의자들은 오늘날 국내에서도 전설이 된 프랑스 68년혁명의 ‘숨은 원동력’으로 평가받지만, 이들 중 국내에 소개된 인물은 기 드보르(1931~1994), 그리고 이번에 소개할 라울 바네겜(1934~  )밖에 없다. 이는 다른 식으로 말하면, 아직 국내에서 국제상황주의자들은 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프랑스 68년혁명이 혁명 개념에 가져온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아직 폭넓게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침 내년은 68년혁명의 40주기가 되는 해이다. 그런데 내년 5월에도 내게 이런 글을 쓸 기회가 생길지 알 수 없기에 미리 몇 자 적을 요량이다. 따라서 이 글은 68년혁명 40주기를 기념하는 때 이른 축사이기도 하다.

국제상황주의자들은 ‘20세기 최후의 아방가르드’이다. 1909년 2월 20일 이탈리아의 시인 필립포 마리네티가 「미래주의 창립선언」을 발표하며 화려하게 막을 연 20세기의 아방가르드운동은 국제상황주의자들이 해산을 발표한 1972년 3월 23일 공식적으로 끝난 것이다. 아방가르드의 주요 특징은 삶과 예술의 통합을 주장했다는 데 있다. 국제상황주의자들의 구호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선배들의 주장을 “삶이 예술작품이 되게 하라!”라는 구호로 되받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구호가 똑같다고 해서 그 함의까지 똑같은 것은 아니다. 오늘날 국제상황주의자들의 주장을 다시 경청해야 하는 이유를 하나만 들라면 바로 이 점, 그 ‘다른 함의’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국제상황주의자들의 구호가 다른 함의를 갖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이 활동하던 시대 자체가 예전과 달랐기 때문이다. 국제상황주의자들은 ‘스펙터클의 사회’에서 활동했다. 스펙터클의 사회란 우리가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보이는 것’(une chose vue/a thing seen), 즉 우리가 능동적으로 보는 어떤 실체가 아니라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우리에게 보여지는 어떤 외양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오해를 무릅쓰고 더 간단히 말하면, 인간이 구경꾼이 되는 사회이다.

바네겜에 따르면 스펙터클의 사회에서 인간은 삶을 볼지언정 살지는 않는다. 혹은 완전무결한 그 무엇인양 제시되는 ‘보여지는 것’(예컨대 ‘좋은 삶의 표본’)을 모방하면서 살 뿐이다. 또한 이처럼 우리에게 ‘보여지는 것’이 단순히 따라야 할 그 무엇으로 제시되는 것을 넘어 소비되는 상품(소비재)이 된다는 점에서 스펙터클의 사회는 소비사회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즉, 우리는 우리에게 제시된 삶을 소비하지 우리의 삶을 살지 않는다. 또한 이렇듯 적극성이 제거된 삶은 권태로울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스펙터클의 사회는 ‘권태로움의 사회’이기도 하다. 『일생생활의 혁명』(도서출판 시울, 2006)은 바로 이와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삶을 살아보자고 제안하는 책이다.(이 책의 원제 자체가 “젊은 세대를 위한 삶의 지침서”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새로운 삶을 살아갈 것인가? 바네겜은 구경꾼이기를 그치고 참여자가 되라고 촉구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시의 예술가’가 되라고 권유한다. 이때 바네겜이 말하는 시(posie)는 어원 그대로의 시이다. 즉, 시작품(pome) 또는 시작품을 쓰는 기술이 아니라 ‘만들다’(poiein)라는 그리스어 동사에서 파생된 ‘만드는 기술[포이에티케]’(poitik)이다. 따라서 시의 예술가가 되라는 바네겜의 말은 ‘만들어내는 사람[포이에테스]’(poits)이 되라는 말과 같다. 자신의 삶을 직접 만드는 예술가.

바네겜이 그냥 예술가가 아니라 시의 예술가가 되라고 말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바네겜에 따르면 스펙터클의 사회에서는 예술조차 소비재로 축소된다. 그래서 “불행히도 예술가는 스스로를 창조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그는 관객들 앞에서 자세를 잡고 볼거리를 제공한다.” 결국 사람들은 예술가들이 볼거리로 만든 예술작품을 관조하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이 옛 창조자에게 돌멩이를 던지게 됐다는 것이 바네겜의 진단이다. 그러나 누굴 탓할 것인가? “이 태도는 예술가가 유발한 것이다.”  

따라서 바네겜은 “이제 더 이상 예술가는 없다”고 주장한다. 이제는 모두가 예술가가 되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고전적 의미에서의 예술작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앞으로는 열정적으로 삶을 구성하는 것 자체가 예술작품이 될 것이며, “사람들이 만드는 현실과 사건 속에”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슬퍼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매우 잘 된 일이다.”

얼핏 보면 이런 바네겜(그리고 국제상황주의자들)의 주장은 삶과 예술의 통합이라는 점에서 그 이전의 역사적 아방가르드들이 제시했던 주장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그 함의는 상당히 다르다. 이 점을 살펴보려면 다시 포이에티케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포이에티케는 미메시스를 전제로 한다. 즉, 흔히 ‘모방’으로 번역되는 미메시스를 통해 무엇인가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을 미메시스할 것인가,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미메시스란 무엇인가에 있다.

첫 번째로 흔히 우리가 말하는 의미에서의 실제 예술작품을 미메시스하는 방법이 있다. 낭만주의에서 유미주의에 이르는 전통에 발 딛고 있는 아방가르드, 특히 “사람은 스스로 예술작품이 되든지 예술작품의 성격을 띠어야 한다”라고 말했을 때의 오스카 와일드가 이런 방법을 택했다. 즉,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예술작품처럼 자신을 만드는 것, 막말로 하면 폼 나게 사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비루한 현세의 삶을 초월한 가상의 이상화된 존재를 미메시스하는 방법이 있다. 예컨대 히틀러를 곧 도래할 ‘민족으로서의 존재’(un être-peuple), 풍전등화에 처한 유럽 문명 앞에서 비극적 결단을 내려야만 하는 ‘영웅’, 새로운 장래를 약속하는 ‘지도자’와 동일시해 이 총통을 미메시스한 나치가 이런 방법을 택했다. ‘도래할 인민(민중)’을 말하는 구 사회주의권식 예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삶의 심미화’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두 가지 방법 역시 그 자체로 정치적이다. 이 두 가지 방법이 심미화하려고 하는 삶의 지향 자체가 기존의 질서(전자의 경우는 부르주아 문화, 후자의 경우는 기존의 강대국에 종속된 후발 산업국가로서의 위치)에서 벗어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바네겜이 제시하는 방법은 이와 다르다. 그가 미메시스하려고 하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초월적 타자가 아니라 현실의 타자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자신과 다를 바 없이 피와 살을 가진 인간 동료이다. 그는 자신의 인간 동료를 미메시스함으로써 나 아닌 타자와 진정한 소통을 나누고, 그 과정을 통해 자기 안의 타자, 즉 지금과는 다르게 살 수 있는 또 다른 나의 잠재성을 발현하자고 말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 안에 있는 자신의 현존을 식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항상 자기 자신의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바네겜의 말은 바로 이를 뜻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바네겜이 말하는 미메시스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모방’이 아니라 프랑스의 철학자 필립 라쿠-라바르트가 말하는 미메시스와 비슷하다. 라쿠-라바르트의 미메시스는 이미 주어진 어떤 이상적 주체를 모방하는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타자를 모방함으로써 기존에 ‘자기’ 혹은 ‘나’라고 간주되었던 것들을 자기 안에서 제거하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서 자신이 알지 못했던 자기 안의 타자(고유성)를 끄집어내는 기술이다. 즉, 이는 타자에게 자신을 개방함으로써 타자와 자기 자신을 모두 변화시키는 방법이다. 바네겜이 기존 질서를 전복하려는 “급진적 주체성은 재발견된 동일성의 공동전선”이라는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이렇게 보면 68년혁명의 적자로 흔히 여성운동과 동성애운동이 꼽히는 것도 당연하다). 

과연 우리는 바네겜의 말처럼 타인과 진정한 소통을 나눌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서 각자의 잠재성을 끄집어내고, 기존의 삶을 바꿀 동력을 얻을 수 있을까? 바네겜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권력의 억압에 맞서 기존의 삶을 바꾸는 데 필요한 세 가지 자기실현의 원천, 즉 “창조의 열정, 사랑의 열정 그리고 유희의 열정”은 “자기 양육의 욕구, 자기 보호의 욕구”와 같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 세 가지 원천은 모든 존재에 내재해 있다. 그도 아니라면 그것 없이 존재는 더 이상 존재이기를 그친다. 따라서 문제는 다시 실천, 아니 바네겜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인-되기’이다. 안타깝게도 이 요구는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일상생활의 혁명』이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것은 바로 이런 각성이다.(이재원 _ 그린비 편집장)

07. 03. 26. 

P.S. 우리에게 예술가가 되기를 강권한다는 점에서 바네겜과 같은 편에 서는 사상가는 '프랑스의 니체주의자' 미셸 푸코이다. 그 또한 우리의 삶 자체를 '예술작품'으로 만들 것을 권유했다. 내가 읽은 바로는 앨런 메길의 <극단의 예언자들>(새물결, 1996)이 유익한 안내서이다. 니체의 삶-예술론에 대해서는 네하마스의 <니체: 문학으로서의 삶>(책세상, 1994)이 유명하다. 오래전 책이지만 아직 절판되지 않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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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la 2007-03-27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리뷰네요. 전혀 모르는 저도 마음이 동하고 뭔가 정리된 기분이 드는 걸 보면...

주니다 2007-03-28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단히 원고를 쓸 일이 있었는데 이 페이퍼 덕분에 무사히 아는척을 좀 하게 됐습니다. 흐흐흐

로쟈 2007-03-28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놓기만 했을 뿐인데 부듯하군요.^^;
 

레디앙의 연재물 '세계의 사회주의자'에 뜻밖에도 가라타니 고진 편이 다루어졌기에 옮겨놓는다. 단서조항이 없을 수 없는데, 편집자도 옮겨놓고 있는 필자의 견해에 따르면 "그가 사회주의자일 수 있다면, 자신이 새로 만들어낸 기획 속에서일 것"이라는 게 '사회주의자 고진'의 근거이다. 알다시피 고진이 "새로 만들어낸 기획은 NAM을 의미한다". 안 그래도 고진의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책상에 올려놓은 지가 오래인데 바쁜 일들이 얼른 지나가기만을 바랄 따름이다. 아래의 연재는 고진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로도 읽을 만하다.

레디앙(07. 03. 20) '몰락 이후' 쉰이 넘어 코뮨주의자 되다

잊고자 쓰는 사상가가 있다. 그는 개념으로 성을 쌓지 않는다. 남들이 자신의 착상을 하나의 방법론으로 차용할 때면 그 자리에 불을 지르고 떠난다. 형이상학을 극도로 경계하며, 따라서 세계를 하나의 이야기로 지어내는 예언을 멀리한다. 이런 성향을 가진 이에게 ‘~주의ism’는 사상의 죽음을 뜻한다. 예수가 아닌 바울이 기독교(예수주의)를 만들었듯, 마르크스주의가 엥겔스의 산물이듯 ‘주의’는 사상이 하나의 체계로 구축되며 시작된다. 그래서 이동을 감행하는 사상가에게 ‘~주의’는 사상이 멈춰선 자리, 즉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회주의적 전망이 상실된 90년대에, 그것도 쉰이 넘고 나서야 그는 코뮨주의자가 되었다. 바로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의 이야기다.



비평은 위기적 상황으로 자기를 내모는 것

가라타니 고진은 1941년 일본의 효고현에서 태어났다. 10대에 문학 작품을 탐독했지만 문학을 하나의 장르로 다루는 데에 반감을 품고 있었으며, 결국 도쿄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의 사상적 행방은 문학비평가로 시작되었다. 스물아홉에 가라타니 고진은 <소세키론>으로 군조오 신인문학상을 거머쥐면서 문학계에 두각을 나타냈다. 물론 이 시기 그는 영문과 대학원을 진학했지만 경제학과 출신의 문학비평가라는 다소 어색한 그의 이력을 두고 의아해할 필요는 없다. 경제학이든 문학이든 그는 분과학문을 한다는 의식을 갖지 않았다. 다만 그에게는 형이상학과의 싸움이 절실한 문제였다.

형이상학은 역사의 배후에서 역사를 움직이는 이념을 발견한다. 한국에서 널리 읽힌 그의 초기 저작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1978)과 『일본근대문학의 기원』(1980)은 형이상학과의 대결이라는 문제설정을 경제학과 문학이라는 각기 다른 방면에서 펼쳐낸 것들이었다. 그는 이 저작들에서 자본주의와 근대문학을 하나의 형이상학적인 장치로 해명하여 근대인들을 속박하는 관념의 그물을 걷어내고자 했다.

아마도 가라타니 고진이 스물여섯에 발표한 첫 번째 평론 「사상은 어떻게 가능한가」는 이런 점에서 그의 사상적 원점을 이룬다고 하겠다. 그 일절을 주목하자. “사상과 사상이 격투한다고 보일 때도, 실상은 각자의 사상적 절대성과 각자의 현실적 상대성이 모순되는 지점에서 은밀히 행해지는 연기에 지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사상이 각자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곳에서 결전이 이루어진 예는 한 번도 없다.”

확실히 가라타니 고진은 ‘비평가’로서의 자기의식을 갖고 출발했다. 그에게 비평은 다른 텍스트에 기대어 자신의 입장을 전하거나 편을 짓는 작업이 아니었다. 비평이란 사상의 결전이 치러지는 장소 밑바닥에서 이뤄지고 있는 역할극을 끝까지 주시하는 일이다. 대치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입장 가운데서 하나를 택하는 일이 아니라 그렇게 대치할 수 있는 조건, 그 무의식적 구조를 해명하는 일인 것이다. 그 조건과 구조를 밝힌다면 날이 선 온갖 사상적 입장들은 형이상학의 성채를 두르고 있던 부속물임이 드러난다.

물론 이러한 비평에는 으레 자신은 상처입지 않으면서 상황 밖에 서 있다는 푸념이 따르곤 한다. 하지만 고진은 홀로 옳은 곳에 서 있고자 비평하지 않았다. 그에게 비평(critique)이란 위기적인(critical) 상황으로 내몰리는 일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비평 대상만이 아니라 비평하는 자신도 그래야 한다는 점이다. 사상가가 자신의 발화를 자명하다고 여겨 더 이상 거리낌을 갖지 않는다면, 사상은 어느새 상업성을 띤 선교가 되고 만다. 가라타니 고진에게 비평이란 자신을 불명료함으로 내몰아 선교사의 입장을 피하는 일이었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다. 가라타니 고진이 비평가로서 자신의 사상을 개척해나가던 60년대 후반은 서구 지성계에서 소련식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 시기이자 반체제 운동이 번져나가던 시기였다. 전공투의 역사를 지닌 일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았을까. 그는 다만 난무하는 여러 입장들을 곁눈으로 흘기며 자신의 속도로 걸어갔다. 당시 제기된 인간적 마르크스주의도 반체제 운동이 보여준 열정도 그에게는 ‘이념이 만들어낸 병’에 불과했다. 그 무렵의 학생들처럼 거리로 나섰으나 이내 회의를 느끼고는 이념을 걷어낸 자리를 끝까지 응시한다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어떠한 ‘주의자’도 아니었다. 젊은 시절 그에게 입장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입장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어야 했다.



태도 전환

이후 가라타니 고진의 사상적 노정은 『탐구』에서 결실을 이룬다. 형이상학과 맞서 싸운다는 버거운 작업으로 삼십대에 심한 우울증을 앓기도 했지만, 그는 『탐구』를 통해 자신의 스스로 병을 치유했다. 1985년부터 1988년까지 그는 잡지 『군조우』에 『탐구』를 연재했다. “내가 『탐구』를 연재하면서 계속 질문했던 것은 ‘사이’ 혹은 ‘외부’에서 살아가기 위한 조건과 근거였다 할 것이다.”(『탐구Ⅰ』후기) 가라타니 고진은 『탐구』에서 ‘타자의 문제’를 해명하여 역사에 대한 목적론을 부정하면서도 그 반편향으로 해체주의 마냥 어려운 지적 수사에도 빠지지 않는 ‘삶의 비평’을 일궈냈다. 90년대로 넘어가기 직전에 나온 이 책을 두고 일본의 사상지 『유레카』는 90년대 일본 최고의 책으로 선정했다.

그러나 정작 가라타니 고진은 90년대에 들어서자 『탐구Ⅲ』을 쓰겠다던 계획을 중단한다. 가라타니 고진이 90년대 이후 쓴 저작들을 보면 무언가 적극적인 발언을 하겠다는 충동이 가득 묻어난다. 하나의 선명한 입장을 갖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의 태도 전환이 응축되어 있는 저작이 바로 10년간 거듭해서 써낸 『트랜스크리틱』(2000)이다. 『트랜스크리틱』은 확신으로 씌어진 책이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광명을 보기 시작했다”고까지 표현하는데, 사상의 구석진 자리를 응시하려던 과거의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확실히 가라타니 고진은 1989년까지 사회주의라는 이념을 경멸해 왔다. 그는 어떠한 입장에도 속하지 않고 비평하는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사회주의권이 몰락하자 자신이 과거 마르크스주의적 정당이나 국가를 비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들이 지속된다는 전제 아래 유효했음을 자각하기 시작한다. 사회주의는 역사의 ‘거대 서사’와 함께 종언했지만, 아울러 몇 가지 현상이 일어났다. 사회주의의 종언이 서구식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승리라는 ‘서사’가 등장했으며, 민족주의와 원리주의라는 ‘서사’가 부활했다. 아울러 모든 이념을 조소하는 냉소주의도 만연했다.

따라서 가라타니 고진은 사회주의가 현실적으로 끝났을지언정 사상적으로는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오히려 자본주의를 극복할 현실적인 기획에 몸을 담았다. 90년대의 상황이 학문적으로는 회의론적 상대주의가 범람하고 정치적으로는 사회민주주의의 우월성이 구가되었으나 그것들이 점차 파괴력을 잃어갔다는 사정을 감안한다면, 우리는 가라타니 고진이 시대의 변화와 아울러 새로운 곳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야 했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론적으로 구축된 실천의 방향

가라타니 고진은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전망을 가다듬는다. 기억해야 할 대목은 그가 지극히 이론적인 방식으로 자본주의를 폐절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그는 “이론적인 무지를 바탕으로 한 실천은 결코 변혁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자본주의는 정의감과 연민에 기반한 열정으로는 무너지지 않는다. 자본주의가 토대로 삼는 논리구조를 해명할 때 그것을 극복할 단서가 발견된다는 것이다. 그는 자본주의가 ‘교환’에 내재된 근원적인 패러독스로 생겨났다고 이해한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지양할 코뮤니즘 역시 종교적이거나 유토피아적인 상상이 아닌 새로운 교환원리를 통해 탄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우선 자본주의를 스테이트(state, 국가)와 네이션(nation, 공동체)과 겹쳐 사고한다. 89년 이후 가라타니 고진은 ‘자본주의=네이션=스테이트’라는 자신의 정식을 설파하는 데에 경주했다. 그것들 각각은 등가교환, 상호부조, 강탈이라는 교환원리에 대응한다. 먼저 네이션 안에서는 ‘상호부조’가 이루어진다. 등가교환에 따르지 않고 공동의 감정에 기대 서로를 돕는다는 교환원리이다. 스테이트는 강탈을 자신의 교환원리로 삼는데, 그것이 교환인 까닭은 지속적으로 빼앗기 위해 수탈당하는 이들에게 보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국가의 기원을 이룬다. 마지막으로 자본주의는 시장원리에 따라 화폐를 통한 등가교환을 취한다.

이렇듯 상이한 교환원리가 합쳐져 ‘자본주의=네이션=스테이트’라는 삼위일체를 이룬다. 자본주의가 강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자본주의를 깨려고 하면 국가적인 관리가 뒤따르거나 네이션의 감정이 솟구친다. 그래서 우리는 공황에 직면하면 국가기구가 전면화되고 민족주의가 활성화되는 현실을 목도한다. 가라타니 고진에 따르면 강력한 스테이트로 자본주의를 타도하려던 것이 레닌주의이고, 네이션으로 자본주의 극복을 꾀했던 것이 파시즘이다. 이들 모두는 ‘자본주의=네이션=스테이트’라는 사슬을 끊지 못했기에 역사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가라타니 고진은 세 가지 교환원리에 기반해 있는 ‘자본주의=네이션=스테이트’를 무너뜨리기 위해 새로운 교환원리를 제안한다. 그것이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이다.

또 한 가지 자본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이론적인 단서는 자본의 자본화 과정, 즉 화폐(M)-상품(C)-화폐'(M')에 있다. 여기에는 두 차례 개입의 여지가 있다. 첫째는 M-C의 계기, 즉 화폐가 상품으로 전환되는 순간이고, 두 번째는 C-M'의 계기, 즉 상품이 다시 잉여가치가 부가된 화폐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자본의 관점에서 이것은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을 구매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상품을 다시 파는 일이 된다. 무산대중에게 이것은 노동자가 되고 소비자가 되는 일로 나타난다. 가라타니 고진은 이 M-C-M'의 과정을 끊자고 제안한다. 즉 일하지도 상품을 사지도 말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이자 소비자인 대중이 일하지 않고도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안정망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까닭에 가라타니 고진은 ‘생산자/소비자 협동조합의 연합’을 제시한다.



사상의 실패인가 새로운 사상인가

가라타니 고진은 이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90년대 후반부터 그는 본격적인 실험에 나섰는데, 그것이 NAM(New Associationist Movement) 운동이다. NAM 운동은 그가 제안한 최초의 현실운동이었다. 그는 일본에서 NAM 조직을 만들고, 각 지역의 NAM 지부 사이에서 네트워크를 꾸려냈다. 간단히 말해 그가 제안한 NAM 운동은 새로운 교환원리인 어소시에이션에 기반하는 생산자/소비자의 협동조합 운동이었다. 어소시에이션은 개인들의 자유로운 계약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시장경제와 닮아 있지만 잉여가치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또한 공동체의 교환원리인 상호부조와 유사하지만 배타적이지도 구속적이지도 않다. 이러한 발상이 단지 낯설지만은 않다.

한국을 비롯해 세계 여러 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지역통화 운동은 원리적으로 어소시에이션이다. 그가 『가능한 코뮤니즘』이나 『NAM 원리』에서 제시한 LETS(Local Exchange Trading System) 운동 역시 자본이 되지 않는 화폐를 매개로 삼는 지역통화 운동의 일종이다. 그리고 NAM 운동은 노동자로서의 소비자와 소비자로서의 노동자의 연대를 목표로 삼는다. 화폐 경제에서 판매와 구매, 생산과 소비는 분리되어 있다. 이러한 분리는 노동자와 소비자의 분리, 나아가 노동운동과 소비자운동의 분리를 낳는다.

그러나 소비자운동은 실상 입장이 바뀐 노동운동이며, 노동운동 역시 소비자운동인 동안 자신의 국지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소비과정은 육아, 교육, 여가 등 생활세계 전영역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라타니 고진은 생산자/소비자의 협동조합을 통해 자본주의 바깥에서 생활의 지평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그렇다면 그가 기획한 현실운동은 어떻게 되었을까. 결국 가라타니 고진은 FA(Free Association)라는 또 하나의 조어를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라타니 고진은 2002년 「FA선언」을 통해 NAM을 해산시킨다. 자신의 기대와 달리 NAM은 그의 유명세를 바탕으로 한 지식인들의 모임이 되었다. 가라타니 고진이 「FA선언」에서 밝힌 해산 이유 역시 NAM 운동을 지속할 운동체가 부재하다는 것이었다.

가라타니 고진이 현실에서 보여준 시도와 실패는 일본과 한국에서 그를 둘러싼 평가가 갈리는 지점이 되었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그 평가는 예순이 넘은 가라타니 고진의 나이를 상기시키며 “가라타니 고진도 이제 다했다”는 것이 주종을 이룬다. 이것은 정녕 사상의 실패인가. 어떤 의미에서 그의 실패는 예상할 수 있는 것이지 않았을까. 그 사실을 알고도 그는 실패를 감행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현실적인 운동의 실패를 사상의 실패라고 단정짓는 것은 사회주의의 현실적인 몰락 이후 새로운 사회주의를 사상적으로 꾀했던 가라타니 고진에게는 공평치 못한 일이리라.

가라타니 고진은 이제껏 여러 사상적 입장에 가격을 매겨 왔다. 이제 자신의 사상적 궤적을 제작비이자 홍보비 삼아 하나의 입장을 상품으로 내놓았으니, 그것은 팔릴 것인가. 쉽지 않아 보인다. 나 역시 지금의 가라타니 고진에 대해 호의적이고 싶지 않다. 그의 시도는 자신이 서 있는 장소와의 긴장감을 놓쳤으며, 그의 실패는 그마저도 이론적 완결성을 위해 희생되었다. 그의 사상 언저리에서 느낄 수 있었던 그늘과 불쾌함을 더 이상은 찾기가 힘들다.

하지만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 한 사상가를 진정 대면하려면 그 사상이 지닌 탄성을 제멋대로 줄여놓고 쉽사리 평가해서는 안 된다. 가라타니 고진은 지금도 움직이고 있다. 2007년 가라타니 고진은 재직 중이던 컬럼비아 대학과 긴키 대학에서 물러나 일본에서 지인들과 교류하며 또 한 번의 사상적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그는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다. 하지만 자신의 명성에 사로잡히지도, 실패를 두려워하지도 않기에 그는 건강하다. 그리고 이 말도 보탤 수 있겠다. 기꺼이 실패하는 것. 그것이 사회주의자의 역사적 역할이다. 사회주의자는 하나의 입장에 관한 이름이지만 동시에 근본적으로 사고하는 자들이 공유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근본적인 사고는 현실에서 실패할지언정 불씨를 남긴다. 그 불씨는 타오를 것인가.(윤여일 /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

07. 0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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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7-03-22 0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진의 책을 몇권 읽었는데, 어려우면서도 재밌고, 신선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식인의 사유가 이렇게 진행되는구나 보게되는 그런 재미와 참신함은 큰데
'사회주의적 기획'이라 할만한 설득력은 좀 떨어지지 않나, 싶은데.

기인 2007-03-22 0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

로쟈 2007-03-22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님/ 고진은 A급 비평가죠. 일본이 자랑해도 좋을 만한, 우리 주변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은...
기인님/ 그람시로 바꾸신 건가요?^^

yoonta 2007-03-22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진의 자본주의=스테이트=네이션 이론이나 소비의 시각으로 보는 착취구조의 해명은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새롭게 보는 참신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더불어 이에 대한 전통적 노동가치론자들의 반박글들을 보고싶은데 생각보다는 별로 눈에 안 띄는것 같더라구요. NAM의 실패는 좀 예견되었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원래 고진같은 이론가가 대중운동을 주도해 나가는데에는 애초부터 한계가 있었겠죠.
 

담비(http://www.dambee.net/)에서 학술동향기사를 하나 옮겨온다. 담비에는 학술저널들에 실린 논문들을 '리뷰팀'이 정리해주는 기사들이 게재되는데, 어차피 일반 독자들과는 거리가 먼 논문들이지만 '리뷰' 정도는 따라가볼 수 있고, 그게 교양의 한 부분을 이룰 수도 있겠다. 플라톤에 관한 이 정리기사는 '19-20세기 플라톤 연구동향 총정리'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짤막한 리뷰로서는 너무 큰 타이틀이 아닌가 싶지만 믿거나 말거나 한번 읽어봄 직하다. 이제이북스의 플라톤 전집은 곧 나오기 시작하는 건지 궁금하군...  

담비(07. 03. 03) 플라톤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풀라톤의 대화편들은 플라톤의 당대와 그의 사후 이래로 각 시대나 사상가들에 의해 매우 다양하고 상이하게 해석되어 왔다. 이런 플라톤 저작연구의 다양성과 상이성은 근본적으로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이러한 플라톤에 대한 메타철학적 물음에 대한 답변이 시도돼 눈길을 끈다. 주인공은 김진 경희대 교수로 '철학탐구' 제19집에 실린 '플라톤,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서 만나볼 수 있다(*칸트 전공자인 김진 교수와는 동명이인인 모양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1855년 슐라이에르막허(*슐라이어마허)가 플라톤 대화편의 형식과 내용은 '분리될 수 없다'는 관점을 내보였으나, 이러한 해석의 원칙은 당시 헤어만이 이끄는 발전론적 관점 때문에 큰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최근 재음미되고 있다. 그것이 대화드라마적 관점의 연구를 견인해내고 있다. 이것은 대화편 안에 내적으로 구성된 철학적 요소들을 주목함과 동시에 대화편의 문학적, 희곡적 요소들, 등장인물, 무대장치적 묘사, 해설자의 설명, 기타 문학적 장치 등을 고려하여 본다는 뜻이다. 

플라톤은 역사상 유래없이 자신의 전 저작을 대화의 형식으로 저술한 유일무이한 철학자다. 그는 서술의 형식 그 자체를 자신의 철학적 사상에 포함시키려고 했다는 것(*그렇다면 데리다가 벤치마킹하고 있는 철학자는 바로 플라톤?). 김 교수는 플라톤의 대화편이 다른 철학적 대화편의 저술가와 비교해 보았을 때 문학적으로 정교하고 치밀하며 체계적인 구성양식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다양한 희곡적 요소들의 적절한 배치로 저자가 대화의 내용으로만 전달하기 힘든 철학적, 역사적, 대화상황적 뒷배경을 정교하게 묘사한다는 것.  

그러려면 무엇보다 논문식 해석을 지양해야 한다. 대부분의 철학적 저작이 저자가 주장하려는 바가 분명하지만, 플라톤의 저작은 이러한 직접적 이해의 방식이 우선적으로는 배제되어 있다는 것. 일단 플라톤이 등장하지 않는 책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쉽게 그의 주장으로 단정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플라톤의 익명성'이란 주제로 연구자들이 풀어야 할 과제로 남겨져 있다고 한다.

그러면 저자 자신이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대화편을 어떻게 읽어나가야 할까. 여기서 두번째 원칙이 발생하는데, 철학적, 문학적 요소를 꼼꼼히 고려하는 것이다. 철학적 요소의 예를 들자면 질문과 대답같은 것이다. 대부분의 플라톤 대화편에서는 '질문'보다는 '답변'에 무게중심이 가 있다고 한다. 때로 질문을 주장으로 착각하여 해석하는 방식을 지양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 그리고 김 교수는 플라톤 대화편의 대화논증술적 서술들이 가만히 보면 규칙성이 감지된다고 한다. 먼저 가장 많이 등장하는 형식은 "예"와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들이 많다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이런 의미인가 아니면 저런 의미인가"와 같은 선택질문의 형식이 많다.

마지막으로 각 대화편은 완결된 일회적인 통일적 전체라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각 대화편은 플라톤에 의해 탄생된 허구이며, 등장인물들이 역사적 인물이고, 역사적 모티프를 갖는 것이라고 해도, 결국 플라톤이라는 저자에 의해 재구성되고 창조되어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렇게 보면, 대화편끼리 서로 부딪히는 현상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국가편에 나오는 참주와 법률편에 나오는 참주는 매우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국가편의 대화가 이뤄지는 곳이 피레아스(pireas, 당시 상업과 민주정치의 요새)로 시라쿠스(Syrakus) 출신의 거주외국인 케팔로스(Kephalos)의 집이다. 여기 등장하는 케팔로스의 두 아들은 참주정치의 희생자들로 이들에게 참주정의 장점을 얘기할 수 없다는 상황이 있다는 것. 반면 법률편의 상황은 역사적 배경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플라톤이 마음대로 자신의 생각을 주장할 수 있었다는 식이다.

플라톤은 동시대부터 그 난해성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위에서 고찰한 대화드라마적 해석방법은 이러한 난해성을 뚫고 플라톤과 만나기 위해 지난 19~20세기 동안 플라톤 연구자들이 시행착오를 거치며 도달한 대체적인 합의점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리뷰팀)

07. 03.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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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3-08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자료 퍼갑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윌리엄 도울링의 <'정치적 무의식'을 위한 서설>(월인, 2000)의 서문 읽기이다. 원서는 <제임슨, 알튀세르, 마르크스(Jameson, Althusser, Marx)>(코넬대학교출판부, 1984)이고, '<정치적 무의식> 입문(An Introduction to the Political Unconscious)'이 부제이다. 국역본은 그 부제를 제목으로 삼았다. 원저는 147쪽의 '가벼운' 책인데, 번역본은 하드카바에다가 저자의 사진까지 (표지뿐만 아니라) 서장을 장식하고 있어서 좀 격에 맞지 않는다(우리 같은 경우 회갑논총이나 정년퇴임기념논총 등에나 그런 사진을 집어넣는다). 자신의 책도 아니고 제임슨 '입문서'에 그런 치장을 한 걸 알면 저자도 좀 부끄러워하지 않았을까 싶다(독자로선 책값이 비싸지니까 유감스럽고).

"주제 넘는 일이지만, 이 책은 프레드릭 제임슨의 <정치적 무의식>에 대한 하나의 안내서이다."라고 서문의 첫문장이 시작할 때 내가 떠올리는 '주제 넘는 일'은 이러한 외형과 장정에 관련된 것이다. 말 그대로 '찍찍'읽어보고 치워야 할 입문서를 하드카바로 펴내는 것부터 불만스러운데, 번역이 그런 '하드함'을 전혀 받쳐주지 못하기에 더더욱 유감스러운 것이 이 <서설>이다. 과연 저자가 원하는 바대로 <정치적 무의식>을 위한 서설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건지, 아니면 책을 읽는다는 게 단지 '뒷걸음질'에 불과한 건지 이 '서문'에 대한 브리핑을 읽고 판단해보시길(보통 서문은 '곁다리텍스트'에서 다루지만 제대로 된 서문이 아니어서 '브리핑'에 집어넣는다. '곁다리텍스트'도 격이 있어야 한다).

저자는 먼저 책의 용도와 의의에 대해서 규정한다. 이게 연구서나 비평서도 아니고 당대 마르크스주의 비평 혹은 거기서 제임슨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 대한 고찰도 아니라는 것. "다만 이 글은 <정치적 무의식>의 중요성에 대해 익히 들어왔지만 그것으로 인해 지금까지 좌절을 맛보고 있는 독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단순히 태생적으로 중요성을 지닌 한 권의 책에 관해 매우 부담스러운 논의를 시도하려는 것일 뿐이다."(17쪽)

책은 그러니까 <정치적 무의식>에 대해서 '지끔까지 좌절을 맛보고 있는' 영어권 독자들을 위한 것이다(그럼에도 내가 읽은 도울링의 문체는 만연체여서 제임슨만큼이나 읽기 뻑뻑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한국어 독자들에겐 해당사항이 없다. 아직 <정치적 무의식>조차 번역돼 있지 않으니까(해서 <서설>이 먼저 나오는 상황 자체는 코믹하다). <정치적 무의식>? '태생적으로 중요성을 지닌 한 권의 책'이다. '태생적으로'는 'seminally'의 번역인데, 직역하는 '씨눈이 될 만한'이란 뜻이다. 풍부한 열매를 거기서 기대할 수 있다는.

'매우 부담스러운 논의'는 'the very demanding argument'의 번역인데, 여기서 'demanding'의 사전적 의미는 '벅찬'이란 뜻이다. 제임슨의 논의를 압축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일이 저자의 능력에 비해 벅찬 일일 수 있다는 겸양의 표현으로 읽힌다. 물론 '매우 부담스러운 논의'는 오역이 아니며 사실에 부합한다. 실제로 이 번역서를 완독하는 건 상당히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이어서 저자는 왜 이런 류의 '안내서'(introduction)가 필요한가에 대해서 설명한다. 물론 복잡한 이유는 아니다. 아주 중요한 책이지만 그만큼 난해한 책이라는 단순한 이유에서이다. <정치적 무의식>은 과연 어떤 책인가? 왜 중요한가? "실로, 이 책은 서로 다른 다음의 두 가지 입장 가운데 어느 하나에 근거하게 됨으로써 발생적인 중요성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원문은 "Indeed, the book could claim a seminal importance on either of two separate grounds:"

번역문은 우리말로도 비논리적이다. <정치적 무의식>은 두 가지 서로 다른 근거에서 각각 '배아적 중요성'을 갖는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즉, '어느 하나에 근거하게 됨으로써'가 아니라 '어느 쪽으로도'란 뜻이다. 그 두 가지 입장/근거란 무엇인가?

"그 두 가지 입장이란, 알튀세르 저작으로부터 비롯된 프랑스 마르크스주의 부활을 영어로 된 문화적 연구물들에 확대하고자 한 최초의 지속적 시도로서, 그리고 자크 데리다, 미셸 푸코, 질 들뢰즈 같은 사상가들이 경쟁적으로 전개한 여러 프로그램들을 확장된 마르크스주의 속에 포함시키고자 하는 독창적이고 강력한 시도로서의 입장 그것이다."

요컨대 (1)알튀세르적 마르크수즈의를 영어권 문화연구로 확장시키고자 한 시도로서, (2)데리다와 푸코, 들뢰즈 등의 경쟁적인 프로그램을 확장된 마르크스주의 속에 포섭하고자 한 시도로서 <정치적 무의식>은 의의를 갖는다는 것. 거기에 "지금까지 프랑스 후기 구조주의자들에 필적할 만한 사람으로서 영어로 글쓰기 작업을 하는 사람은 제임슨이 유일하다."(18쪽)

이런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워낙의 그의 책들이 난해하기 때문에("최근 그의 사상은 계속해서더 해결하기 어려워지고 복잡해졌으며,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더욱 우회적이고 압축적인 것이 되고 있다") 안내서가 필요하다는 게 저자의 입장이다.

"하지만, 제임슨이 어렵다는 단순한 사실, 혹은 영어로 저술하는 사람들에게 좀더 평이한 영어로 된 안내서가 필요하다는 단순한 사실이 데리다와 라캉 같은 저술가들의 난해함에 대해 몹시 화가 나 있는 사람들을 격분케 할는지 모른다. 그러한 저술가들에 대하여 항상 질문받게 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영어로 저술하는 사람들은 왜 자신이 의미하는 바를 밝히고 말할 수 없는가?"(19쪽) 

그러니까 데리다나 라캉의 난해함도 부족해서 제임슨까지 머리 아프게 하느냐란 불평이 나올 만하다는 것. "왜 그 인간들은 그런 식으로 쓰는 거야?"(버럭) 거기에 한술 더 뜨는 건 인용문의 마지막 문장이다. '평이한 한국어'로 옮겨질 수는 없었던 것일까? 원문은 이렇다: "Why, to ask the question that always gets asked about such writers, can't he just come out and say what he means?"(10쪽)

번역문은 'to ask-'하는 삽입문을 목적을 가리키는 부정사구문으로, '질문(question)'를 '문제'로 오독함으로써 혼란을 자초했다. 다시 옮기면, "데리다나 라캉 같은 저자들에게 항상 던져지는 질문을 그에게도 묻자면, 제임슨은 왜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단순명쾌하게 말할 수 없는 것인가?" 

저자는 "데리다가 여기서 말하려는 게 뭐지?"라고 친구들이 물었을 때 설명하고자 애를 쓰면서 느꼈던 피로감을 되새기면서 이렇게 정리한다. "나는, 의미에 대한 허위이론을 가지고 있을 경우에만 자기가 의미하는 바를 실현할 수 있다고 진술할 수 있다는 것이 데리다가 말하고 있었던 바임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하지만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결코 제임슨은 그 점을 직접 말하지 않았으며, 그리고...(이것들이 우리가 느꼈던 좌절이다.)"

그 '좌절감'을 그대로 전달해준다는 점에서 번역문은 정서적인 '직역'에 가깝다. 마지막 문장의 주어가 '제임슨'이 아니라 '데리다'란 사실만 빼면. 원문은 이렇다: "What Derrida was saying, I later realized, was that  you can come right out and say what you mean only if you've got a false theory of meanng, but even so, he never said that directly, and...(There are the frustrations one felt.)"(11쪽) 그리고 다시 옮기면, "내가 나중에 깨달은 바이지만, 데리다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가 의미에 대한 잘못된 이론을 갖고 있을 경우에만 단순명쾌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정리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실상 데리다는 결코 직접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으며, 게다가...(이런 것이 우리가 느끼는 좌절감이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인 것인가? "<그라마톨로지> 그리고 <정치적 무의식>에 똑같이 제기된 문제는 다름 아닌 법규로서의 문체 문제이다: 알리고자 애쓰고 있는 것을 말해줄tells 뿐만 아니라 보여주기도shows 하는 글쓰기 방식." 여기서 '법규로서의 문체'는 'style as enactment'의 번역인데, 이후에도 여러 차례 등장하는 이 문구에서 'enactment'는 '법규'가 아니라 '연기(演技)' 혹은 '공연'이란 뜻이다. 메시지를 "말해줄 뿐만 아니라 보여주기도" 한다는 게 그런 '연기로서의 문체'를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체는 데리다의 경우 지시적/도구적 언어관에 근거하고 있는 '단순명쾌하게 말하기'에 대한 회의/의문에서 비롯된다. "반면에 제임슨에게 있어서 법규(*연기)로서의 문체 문제는 이론과 실천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적 문제이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그 평이한 문체는, 모든 진실들이 미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불분명해야 할 어떤 필요성도 없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투명한 문체이다."(20쪽) 곧 '평이한 문체'에 대한 요구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라는 것. 

"어떤 책을 통해 인간의 정신이 이루어내는 진보에는 기쁨보다 고통이 훨씬 많다고 제임슨 박사가 말했다. 그는 소설이나 미스터리 이야기에 관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지적 산문이라 부르고자 하는 것에 관해서 18세기적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변증법적 충격에 의해 제임슨이 의도하는 바에는 그러한 종류의 고통, 즉 어떤 어려운 논의를 따라가고자 하는 경우 우리 모두가 느꼈던 고통이 포함되어 있다."(21쪽)

'그러한 종류의 고통(that sort of pain)'에서 'that'이 강조돼 있어서(번역문에는 누락돼 있어서) 굵게 처리했다. 한데, 이런 번역문에서 우리가 느끼는 고통은 '어려운 논의를 따라가고자 하는 경우'에 느끼는 고통과 무관하다. '존슨 박사(Doctor Johnson)'가 난데없이 '제임슨 박사'로 오기돼 있어서 겪는 어리둥절함이 그 원인이기 때문이다.   

'존슨 박사'란 별명으로도 흔히 불리는 이는 영문학의 거장 새뮤얼 존슨(1709-1783)이다(국내에는 그의 풍자적 산문집 <라셀라스>(민음사, 2005)가 번역돼 있다. 번역/소개된 걸로 치면 '거장'이란 말이 무색하군). 잠시 소개를 옮겨오면, "1709년 영국의 중부 지방인 스태퍼드셔 리치필드에서 서적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옥스퍼드의 펨브루크 대학에 입학하였으나 가난으로 중퇴했다. 1737년 작가로서의 삶을 꿈꾸며 런던으로 거처를 옮기고 <산사의 잡지>에 의회 기사를 써주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가면서, 잡지 <산책자>를 냈다. 풍자시 '런던', '욕망의 공허', 비극 <아이린> 등을 발표하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1747년 방대한 사전 편찬 작업을 시작하여 <영어사전>을 혼자 힘으로 팔 년 만에 완성시켜 사전편찬자로서 명성을 떨쳤다. 이러한 문학상의 업적을 인정받아 이후 '존슨 박사(Dr. Johnson)'라 불렸다."

"그의 어머니가 사망한 해인 1759년 <라셀라스>를 집필하고, 1765년에는 셰익스피어 전집의 편찬을 완성하여 출간했다. 이후 십여 년간 정치 논설문 등을 발표했다. 만년에는 17세기 이후의 영국 시인 52명의 전기와 작품론을 정리하여 열 권의 <영국 시인전>을 펴낸 것으로 유명하다. 1784년 런던에서 숨을 거두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치되었다. 1979년 그의 열렬한 추종자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제임스 보즈웰은 그의 전기를 출판했다. 저술뿐 아니라 재치 있는 논객으로도 유명했던 그는 셰익스피어 이후 영국 문학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인물로, 1995년 '워싱턴포스트'는 그를 지난 천 년의 역사에서 최고의 저자로 선정하였다."

이 만한 인물을 '제임슨 박사'로 오기하는 건 무성의의 소치로밖에는 여겨지지 않는다. 이런 불유쾌한 고통과 달리 제임슨이 염두에 두고 있는 고통은 보다 고차적이다. "헌신적인 마르크스주의자가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또 한 가지 종류의 고통, 즉 유일한 탈출구가 정치적-사회적 혁명에 있을 뿐인 하나의 악몽이 역사라고 생각하는 그런 고통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고통 역시 제임슨을 제대로 이해하면서 읽는 대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지금 이 같은 안내서가 그 효과를 파괴하는 것은 아닌가?" 물론 그렇다. "로버트 프로스트가 문학형식으로서의 시에 대해 말한 바와 같이, 변증법적 충격은 해석을 함으로써 소멸되는 것이다." 원문은 "dialectical shock is, as Robert Frost said of poetry, what is lost in translation." 프로스트는 물론 '가지 않은 길'의 시인 프로스트를 말한다. 내 기억에 그는 "시란 번역하면 잃어버리는 것"이란 식으로 정의한 바 있다(그러니까 '해석'이 아니다. 왜 임의로 번역하는가?). 도울링이 얘기하는 것은 만약 읽기 어려운 제임슨을 읽기 편하게 옮겨놓으면 고통이 경감되는 만큼 그 효과도 상실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래서 이어지는 문장은 저자의 당부로 읽어도 무방하겠다.

"하지만 이 안내서를 통해서 <정치적 무의식>에 다가온 독자는 보다 어려운 제임슨의 논의를 있는 그대로 계속 경험하게 될 것이다." 곧, 이 <서설>을 읽고 나서, 혹은 이 <서설>과 함께 반드시 <정치적 무의식>을 읽어야 한다는 것. 결코 안내서가 원저를 대신할 수는 없으며, 그렇게 읽는 것은 원저에 대한 배반이 될 것이다. 배신, 배반...  

이제까지 읽은 것은 8쪽 짜리 서문의 절반 정도이다. 이런 식으로 뒤뚱거리면서 나머지 절반쯤을 더 읽어가야 '서문'을 다 읽게 된다. 그런 수고를 감내할 용의는 있지만 시간은 나의 편이 아니어서 '브리핑'은 이만 줄인다. 책을 덮으려다가 잠시 훑어본 '옮긴이 해설'(저자 서문보다도 앞에 위치해 있다).

"여러 문헌의 도움을 받아 도울링의 저술 의도에 부합하는 번역이 되고자 했으나 아무래도 역부족이었다." -->역자에게도 이 번역은 'demanding work'였던 것.

"이 번역서를 읽을 때, 문맥의 흐름이 자주 끊어지는 짜증스러움을 누구나 가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번역의 난삽함도 난삽함이지만 당혹스러울 정도의 (:)과 (;)의 사용은 독서의 매끄러움을 방해할 것이 분명하다." -->역자는 '귀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본 의도를 살리기 위해 특별히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최대한 원문의 문맥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잘 되진 않았다?

"곳곳에 산재하고 있을 오역은 전적으로 역자의 책임이며 관심 있는 선학과 동학의 질정으로 꾸준히 바로잡아 걸 것을 약속한다." -->2000년 가을에 책이 나왔지만 그간에 '관심 있는 선학과 동학의 질정'은 전혀 없었던 모양이다(짐작엔 이 책을 구입한 사람도 드물겠지만 완독한 사람은 아예 없을 것이다. 차라리 <정치적 무의식>을 완독한다면 모를까). 아직 초판도 다 나가지 않은 듯하니 '꾸준히 바로잡는' 일은 언제 가능할는지...

07. 0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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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2-24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로쟈님의 예리한 메스로 분해되기 직전이네요! 원서는 제본해 놓았습니다만. 로쟈님의 분해가 기대됩니다. :)

로쟈 2007-02-24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도 빠르시네요(말씀드린 대로 대조해서 읽지 않으면 곳곳에서 난감한 번역서입니다). 두어 주 전에 꺼내놓았다가 책정리하면서 다시 치우려고 하는데, 번역이 좋지 않다고 뱉어놓은 말이 있어서 잠시 주워담으려고 합니다. '기대'하실 것까진 없구요.^^;

기인 2007-02-24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불유쾌한 고통과 달리 제임스이 염두에 두고 있는 고통은 보다 고차적이다.
-> 제임슨이
What Derrida was saying, I later realized, was that wou can come right out and say what you mean only if you've got a false theory of meanng, but even so, he never said that directly, and...
에서 wou -> you 입니다.
어제는 오랜만에 후배들이 석사논문 발표하는 것을 보러 갔는데, 후배들 공부하는 것 보니까, 공부할 맘 나던데요 ^^ 선배 중에 김동인으로 박사논문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서 김윤식 선생의 '콤플렉스론'에 대한 비판으로서의 훌륭한 김동인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ㅎ (파란 여우님 김동인 글에 대한 댓글을 보고 ^^ )

로쟈 2007-02-24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정했습니다. 훌륭한 '김동인'인가요, 아니면 '김동인론'인가요?^^
 

'쿤데라와 소설의 지혜'란 주제로 읽을 대목은 쿤데라가 지난 85년 봄(그러니까 22년 전이군) 예루살렘상을 수상하면서 한 연설 '예루살렘 연설: 소설과 유럽'의 한 대목이다. 이 연설은 그의 에세이집 <소설의 기술>(책세상, 1990/2004)에 제 7부로 들어가 있다(나는 국역본을 여러 권 소장하고 있는데, 지금 곁에 있는 건 1994년판이다). 그 중에서도 주로 맨 마지막 문단에 초점을 맞출 예정인데, 그건 이 대목이 리처드 로티의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성>(민음사, 1996)의 에피그라프(제사)로도 쓰였기 때문이다(이하 <우연성>으로 약칭).

확인해보니 <소설의 기술>은 현재 품절상태이고 로티의 <우연성>은 아예 목록에서도 빠져 있다. 불과 10년전에 나온 책이(1996년 12월에 초판이 나왔다) 그렇듯 완벽하게 '망각'된다는 사실은 유감스럽다(게다가 로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국철학자였는데 말이다. 비록 그에 대한 관심은 지젝에 대한 관심으로 대체됐지만). 재판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당분간은 간간이 로티의 책들을 페이퍼에서 자주 언급할 예정이다. 

내가 읽고자 하는 대목은 <소설의 기술>의 176-7쪽에 나오며 <우연성>의 5쪽에서 같은 구절을 읽을 수 있다. <우연성>에서는 출처를 <소설의 예술>로 적어놓았는데, 영역본의 원제 'The Art of the Novel'를 그렇게 옮긴 것이다. 이것이 부가적으로는 알려주는 바는 역자들이 이 책의 국역본을 참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미루어 예상할 수 있는 바이지만 두 번역문이 좀 다르다. 내가 갖고 있는 영역본은 지난 90년에 나온 'faber and faber'판인데 재작년에 새로 판이 나오면서 표지가 아래 이미지처럼 바뀌었다(나는 이전판이 더 맘에 든다). 그 영역본의 페이지로는 164-5쪽이다.

Cover of Kundera, Milan: The Art of the Novel

오랜만에 쿤데라의 소설론을 다시 읽으며 되새기게 되는 것은 그가 얼마나 우아하게 소설을 변호하며 또 얼마나 곡진하게 소설의 지혜를 설파하고 있는가이다. 그의 소설들이 '에세이 소설'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그런 갈래는 그는 최강의 소설가 중 한 사람이다(흔히 쿤데라와 자주 비교되는 하루키를 내가 안 읽는 것은 어쩌면 그의 소설론을 접해보지 못한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소설가의 재즈론이 아니라 소설론을 읽고 싶다)...

각설하고, 진도를 나가도록 한다. <우연성>에는 약간 발췌돼 있는 이 문단을 <소설의 기술>을 중심으로 인용하도록 하겠다.

아젤라스트들, 꾸어온 생각의 공허함, 키취, 이 셋은 신의 웃음의 메아리로 탄생되었고 어느 누구도 진리의 소유자가 아니면서도 모두가 이해될 수 있는 매력적인 상상의 공간을 만들 줄 알았던 예술에 대한, 한 몸에 머리가 셋 달린 단 하나의 적인 것입니다.(176쪽)

이 첫 대목에서 쿤데라가 말하는 예술은 물론 소실을 가리킨다. 여기서 그는 그 예술(=소설)의 적을 지목하고 있는데, 이 적은 하나이다. 단 하나의 몸통에 머리가 셋이다. 그리고 그 머리들이 '아젤라스트들'과 '꾸어온 생각의 공허함'과 '키치(키취)'이다. '아젤라스트'에 대한 설명은 조금 앞부분에 나오는데, 프랑수아 라블레의 신조어로서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웃지 않는 사람, 유머 감각이 없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에 대한 쿤데라의 설명이 재미있다.

소설가와 아젤라스트 사이에 평화란 불가능합니다. 한번도 신의 웃음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아젤라스트들은 진리란 명확한 것이며 모든 사람이 같은 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확신하며, 자신들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는 것과 똑같은 존재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개인이 되는 것은 바로 진리의 명증성을 상실함으로써이고 타인들의 일치된 동의를 잃게 됨으로써인 것입니다. 소설이란 개인들의 상상적인 낙원입니다."(171쪽)

여기서 중요한 건 (남과 같지 않은 존재로서의) 개인에 대한 쿤데라의 정의이며, 소설이란 그러한 개인들의 낙원이라는 그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맨앞의 인용문에서 '꾸어온 생각의 공허함'이란 건 자기 생각이 아닌 남의 생각을 떠들어대는 걸 가리키겠다. 그리고 '키치' 역시 개성의 상실에 대한 증좌이겠고(키치를 '우리들의 행복한 세계'라고 변호하는 건 쿤데라라면 기겁할 일이겠다). 이 모두가 '웃지 않는 자' 아젤라스트와 가족적인 관계에 놓인다. 그들은 한 통속인 것. 이 첫대목에 대한 <우연성>의 번역은 이렇다:

아젤라스트들과, 받아들인 아이디어들에 대해 생각이 없는 자들과, 천박한 자들은 한결같고도 똑같이 신의 웃음의 메아리로 태어난 예술의 적이다. 바꿔 말해서 어느 누구도 진리를 소유하지 않으며, 누구든지 이해되어야 할 권리를 가진 매혹적인 상상의 세계를 창조하였던 예술에 대한, 머리가 셋이나 달린 적이다.

'받아들인 아이디어들에 대한 생각이 없는 자들'과 '천박한 자들'은 각각 'the unthought of received ideas'와 'kitsch'를 인격화한 번역이다. 그리고 다시 반복하자면, 여기서 예술은 소설(예술)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소설은 무엇보다도 어떤 '상상적 공간'이다.

이 상상적 공간은 근대 유럽과 함께 탄생한, 유럽의 이미지, 혹은 최소한 유럽에 대한 우리가 품고 있는 꿈의 이미지인 것입니다. 이 꿈은 숱하게 배반당해 왔지만 그럼에도 우리 모두를 연대감으로 묵어 우리의 조그만 대륙을 멀리 넘어설 수 있게 만들어줄 수 있을 만큼 강한 것이기도 합니다.(<소설의 기술>)

관용으로 이루어진 그 상상의 세계는 근대 유럽과 함께 탄생하였으며, 그것은 바로 유럽의 이미지이다. 혹은, 그것은 적어도 유럽의 꿈이다. 몇 번이고 우리를 배반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그마한 유럽 대륙보다 훨씬더 멀리 뻗치는 우애 속에 우리를 통합시키기에 충분히 강한, 하나의 꿈이다.(<우연성>) 

 

 

 

 

정리하자면, 소설은 (1)근대 유럽과 함께 탄생하였으며 (2)유럽의 이미지 자체이거나 최소한 유럽의 꿈, 유럽에 대한 우리의 꿈이다. 그리고 그것은 (3)유럽을 하나로 묶어준다. 베네딕트 앤더슨의 용어를 빌자면, 쿤데라는 유럽을 소설이 만들어낸 '상상의 공동체'라고도 보는 것이다. 적어도 '근대 유럽'이란 표상은 '근대 소설'의 발생과 불가분적이다. 그리고 하나 더 보태자면 (4)소설은 개인들의 세계이다.

그러나 우리는 개인이 존중받는 세계(소설이라는 상상적 세계와 유럽이라는 현실적 세계)가 허약하며 소멸할 수도 있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지평선 너머로는 우리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는 아젤라스트들의 군대가 보입니다. 선전포고 되지는 않았지만 지속적인 전쟁의 바로 이 시기에, 그리고 그토록 극적이고 잔혹한 운명의 이 도시에서 저는 소설에 대해서만 말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다시 확인되는 바이지만, 이 연설의 제목 '소설과 유럽'이 가리키는 것은 '소설=유럽'이라는 것이다(그러니까 그에게서 '동아시아 소설'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의 대전제는 소설이 근대 유럽의 발명품이라는 점이니까). 그리고 이 둘이면서 하나인 세계는 '개인이 존중받는 세계'로 특징지어진다(쿤데라가 로티와 만나는 접점이기도 하고). 더불어, 이 세계의 적은 '웃지 않는 자들'의 세계이다. 이것이 쿤데라가 예루살렘이란 문제적 공간/도시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그리하여 결론.

제가 보기에 오늘날 유럽 문화가 위협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지닌 가장 소중한 것, 즉 개인에 대한 존중, 개인의 독창적 사고와 침해할 수 없는 사생활의 권리에 대한 존중이 안팎으로 위협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더라도, 유럽 정신의 이 소중한 진수는 소설의 역사 속에, 소설의 지혜 속에 마치 금고처럼 보관되어 있는 것이라고 여기지기 때문입니다.(<소설의 기술>, 강조는 나의 것)

유럽의 문화가 오늘날 위협을 받고 있으며, 내부와 외부로부터의 위협이 유럽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 - 개인에 대한 존중, 개인의 창의적인 생각에 대한 존중 그리고 불가침의 사적인 삶에 대한 개인의 권리 존중 - 에 대한 위협이라고 볼 때, 유럽적 정신의 소중한 본질은 소설의 역사 속에 있는 보석 상자, 즉 소설의 지혜 속에 안전하게 보관중이라고 나는 믿는다.(<우연성>)

 

 

 

 

이 연설에서 오늘날의 시점은 물론 1985년이다. 바로 그 전해인 1984년에 그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발표했으며(예루살렘상 수상 이후 쿤데라는 한동안 노벨문학상의 단골 후보였다), 이어서 소설로만 치자면 <불멸>(1990), <느림>(1993), <정체성>(1998), <향수>(2005)를 차례로 발표한다. 알다시피 이 작품들은 곧바로 우리말로 번역돼 나왔었다.

그리고 소설론/에세이집으로는 <소설의 기술>(1985), (<사유하는 존재의 아름다움>이란 엉뚱한 제목으로 번역된) <배반당한 유언>(1992), <커튼>(2005) 등이 있다. 이전에 한번 언급한 대로 이 <커튼>이 국내에는 아직 번역/소개되지 않고 있다(독어본은 바로 나왔으며 영역본은 올해 나오는 걸로 예정돼 있다). 비록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넘어서는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커튼>의 소개가 지체되고 있는 것은 유감스럽다. 이 페이퍼를 쓰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 소개/번역 작업을 독려하기 위해서이다. 

07. 01. 27 - 30.

P.S. 쿤데라는 서문에서 이 연설의 자초지종에 대해서 이렇게 적었다. "1985년 봄, 나는 예루살렘 상을 받았다. 도미니카 인이며 예루살렘 대학의 교수인 마르셀 뒤부아 신부는 영어로 씌어진 치사를 심한 프랑스어 악센트로 읽었다. 나의 수상연설이 이 책의 마지막 부분, 즉 소설과 유럽에 대한 내 성찰의 마침표가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나는 프랑스어로 된 연설문을 심한 체코어 악센트로 읽었다. 보다 유럽적이고 보다 따뜻하고 보다 정감어린 분위기에서라면 나는 그것을 읽을 수 없었을 것이다."(11쪽)

맨마지막 문장이 좀 튀지 않나? 분명 시상식장에서 쿤데라는 그 연설문을 읽었던 것이니 마지막 문장의 함축은 번역 대로라면 "덜 유럽적이고 덜 따뜻하고 덜 정감어린 분위기"였다는 것이 되겠다. 설사 사실이 그랬더라도 그렇게 적어놓는 건 예의가 아닐 뿐더러 서문에 그렇게 적혀 있는 책도 나는 보지 못했다. 영역본에서 이 문장은 "I could have done it in no setting more throughly European, more cordial or dear to me."라고 돼 있다. 내가 읽기에는 "나는 그보다 더 유럽적이고 더 따뜻하고 더 정감어린 분위기에서 읽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정도이다. 적어도 그게 '분위기'에도 더 맞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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