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배송된 책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건 로이스 타이슨의 <비평이론의 모든 것>(앨피, 2012)이다. 일단 제목도 잘 정했다. 원제대로 <현대비평이론>이나 <오늘의 비평이론>이라고 제목을 달았더라면, 비슷비슷한 책들 속에서 눈에 띄기 어려웠을 것이다. 본문만 938쪽에 이르니 사실 '모든 것'이란 제목이 과장은 아니다.

 

 

1장 '비평이론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감히 물어보지 못한 모든 것들'을 읽다가 말미에서 저자의 체험적 고백과 맞닥뜨렸는데, 알고보니 뒷표지에도 인용돼 있는 대목이다. "독자들과 비평이론의 첫 만남과도 무관하지 않을 내 개인적인 일화를 들려주는 것으로 서두를 마무리할까 한다"라고 운을 떼고서 그가 들려주는 것은 데리다와의 만남이다.

내가 자크 데리다의 '인문과학 담론에서의 구조, 기호, 놀이'란 글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천둥을 동반한 폭우를 피해 64년형 시보레 안에 주저앉은 채로 주차장에 틀어박혀 있엇다. 비평이론을 막 배우기 시작할 무렵이었는데, 차 안에서 그 글을 읽고 나서 나는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다. 데리다의 글이나 폭우가 드러내는 장대한 자연의 힘에 감동받아서가 아니라, 단지 내가 무엇을 읽은 건지 전혀 이해할 수 없어서였다.(42쪽)

미국 미시간주 그랜드벨리주립대학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라고 하니까 저자가 명망가는 아니고 일급의 비평가도 아닐지 모르겠다. 하지만 비평이론의 교수자나 소개자로서 역량과 장기를 발휘하게 됐다면 이런 경험이 중요한 자산이 됐겠다(<비평이론의 모든 것>도 2판을 옮긴 것이다). "무엇을 읽을 건지 전혀 이해할 수 없"던 경험에서 출발해 문제를 사고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비슷한 경험을 가진 이들을 그는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충격적인 경험에서 그는 어떤 교훈을 끌어내는가.

그때까지도 나는 내가 제법 똑똑하다고 자부했다. 학교에서 공들여서 철학을 공부했고, 빡빡하고 어려운 글도 훌륭히 '해독'해 내곤 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왜 이 글이 이해가 안 되는 거지?' 나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난 생각보다 똑똑하지 않은 걸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마침내 깨닫게 된 사실은, 이 문제가 단지 데리다의 사상이 난해하기 때문에 빚어진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물론 데리다의 사상이 난해하긴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그보다 내가 데리다의 사상에 익숙하지 않다는 데 있었다.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무언가를 데리다의 생각과 관련지을 수 있는 지점이 적어도 내 경험 안에는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지도도 없이 길을 잃었던 것이다.(42쪽)

그러니까 문제의 핵심은 '이해 불가'가 아니라 '접속 불가'였던 것. 엉뚱한 곳에서 접선을 시도하니 만남이 성사될 리 없었다는 깨달음이다. 이것은 비단 저자뿐 아니라 비평이론 독서에서 낭패감을 맛본 많은 독자들에게도 시사점을 던져주는 발견이다. 문제는 '두뇌'가 아니라 '장소'라는 것. 그래서 저자가 제시하는 방도는 일종의 '로드맵'이다. 

이런 뜻에서 아주 실감나게 표현하자면, 앞으로 다룰 내용들로써 독자들에게 건네려는 것은 일종의 '교통지도' 같은 것이다. 따라서 이 책과 함께할 우리의 노력을 '여행'에 비유하면 적절할 듯싶다. 우리의 목적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데 있지 않다. 지식은 우리가 지금 어떤 존재이며 앞으로 어떤 존재이고 싶은지를 말해주는 무엇이다. 지식은 우리가 우리 자신 및 주변 세계와 맺는 관계를 구성하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자신과 주변 세계를 들여다볼 때 사용하는 렌즈가 바로 지식이기 때문이다. 렌즈를 바꿔 보면 보는 이와 보는 관점 모두 바뀌게 된다. 이러한 원리가 지식을 그토록 무서우면서도 해방적인 것으로, 그토록 고통스럽지만 한편으로는 더없이 즐거운 것으로 변모시킨다. 이론 공부는 그러한 괴로움이 아깝지 않을 만한 즐거움을 선사하며, 이론 공부에 따르는 괴로움은 그 자체로 훌륭한 것임을 깨닫는 데 이 책이 도움이 되면 좋겠다.(43쪽)  

이론에 대한 이런 관점은 저자가 제시하는 '교통지도'가 충분히 신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두께를 생각하면 '긴 여정'이지만 11가지 갈래길로 뻗어나간 여정이기에, 11가지 코스라고 생각하면 부담스러울 것도 없다. 이론공부가 '고생길'이었던 독자들에겐 귀가 다시금 솔깃한 제안이지 않을까.

 

 

현재 문학이론 입문서로 가장 많이 읽히는 건 테리 이글턴의 <문학이론입문>(창비)과 레이먼 셀던의 <현대문학이론>(문학과지성사)이다. 이글턴의 책은 원서가 3판까지 나왔지만 번역본은 개정판이 나오고 있지 않은 게 흠이다. 셀던의 책도 '오늘'이란 기준을 적용하면 좀 올드한 느낌을 준다. 그래도 '첫 걸음'의 의미는 가질 수 있겠고, 거기서 보폭을 좀더 넓혀가고픈 독자라면 <비평이론의 모든 것>을 손에 들 수 있겠다.

 

 

저자는 특별히 이론들간의 차이점과 유사점, 각각의 강점과 약점을 드러내기 위한 준거로 한 작품에 대한 읽기를 시도하는데, 그가 고른 게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1925)이다. 그러니까 책은 '<위대한 개츠비>를 읽는 11가지 방법'에 대한 소개도 겸한다. 김욱동 교수가 <광장을 읽는 일곱 가지 방법>(문학과지성사, 1996)에서 시도한 것과 비슷하다. '일곱 가지'에서 '열한 가지'로 늘었으니 확장판이라고 해도 좋겠다. 각장의 말미에 '더 읽을 거리'에 대한 소개와 '중요한 이론서들'에 대한 언급도 잘 돼 있다(소개된 번역본들에 대한 정보도 충실히 제공하고 있다). 문학 혹은 문화이론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이라면 필독할 만하다(요즘 대학생들은 독서력이 딸린다고 하므로)...   

 

12. 04. 22.

 

 

P.S. 참고로 데리다의 '인문과학 담론에서의 구조, 기호, 놀이'는 <글쓰기와 차이>(동문선, 2001)에 번역돼 있다. 기억엔 엔솔로지 <현대문학 비평론>(한신문화사, 1994)과 <탈구조주의의 이해>(민음사, 1988)에도 번역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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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3 0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전에 내과에 다녀왔는데 토요일이라 그런지 의외로 사람이 많았다. 인간이 생로병사의 몸이란 걸 병원보다 더 명료하게 알려주는 곳이 있을까. 딱히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었지만(무의식적으론 모르겠다) 집에 돌아와 다치바나 다카시의 <암, 생과 사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다>(청어람미디어, 2012)를 손에 들었다.

 

 

다치바나는 2007년에 방광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는데, 처음엔 NHK PD와 함께 '다치바나 다카시가 암에 걸려서 이랬느니 저랬느니' 식의 다큐를 구상했다가 암 자체에 대한 프로그램을 만들게 됐다고. '암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란 가제로 시작한 작업이 2009년 늦가을에 방영된 'NHK 스페셜 - 다치바나 다카시의 암, 생과 사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다'란 다큐이다. 책은 이 다큐(1부)를 바탕으로 다치바나가 <문예춘추>에 연재한 '나는 암수술을 했다'(2부)를 더한 것이다. 아니 연재물이 방송에 많이 반영돼 있기에 다치바나는 2부를 1부보다 먼저 읽어도 좋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서문은 대충 보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암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란 절을 읽었다. 서두가 이렇다. "요즘 일본에서는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이 암에 걸리고, 세 사람 가운데 한 명이 암으로 죽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누군가는 암으로 죽을 수 있습니다. 나만 해도 지금까지 전처, 장인, 친구 등 주변의 여러 사람을 암으로 잃었습니다. 지금도 지인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23쪽) 우리는 서정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암과 교통사고가 사망사유의 수위를 다투고, 병사일 경우 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가장 높지 않나 싶다(우리도 셋의 하나?). 중년의 나이이고 보니 주변에서도 암에 걸린 분이 드물지 않다.

 

놀라운 것은 암에 대한 책이 국내에 드물다는 것. 암 치유에 대한 책들은 많이 나와 있지만(암환자 가족들이 주로 독자다) 암이 무엇인지 대한 책, 말하자면 '암 생물학'에 관한 책은 아주 적다. 다치바나의 책과 같이 보려고 거실 책장에서 빼온 싯다르타 무케르지의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까치, 2011)이 거의 유일하지 않나 싶을 정도다(내가 갖고 있는 게 이 두 권이긴 하다). 그런데 다치바나의 책을 읽다 보니 그게 아주 이상한 일만은 아니다. 인간이 암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게 된 게 얼마되지 않았을 뿐더러, 아직도 모르는 게 많기 때문이다. 다치바나는 이렇게 말한다.

1971년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국가적 정책 목표로 '암극복(War On Cancer)'을 내걸었습니다. 1940년대의 원자폭탄개발이나 1960년대의 우주개발(아폴로계획) 때처럼 나라의 예산과 지적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쏟아 붓는다면 10년 안에 인류 최대의 난치병인 암을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1조엔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습니다.(25쪽)

한데 40년 가까이 지나도 암정복은 아직 난망이다. 오히려 암을 둘러싼 수수께끼는 더 난해해졌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2008년 9월 15일자)가 암과의 전쟁을 총괄한 '우리는 암과 싸웠다... 그러나 승자는 암이었다(We Fought Cancer... And Cancer Won)'라는 기사를 실었을 정도입니다.

이어서 다치바나는 취재차 미국 방문시 만난 암 연구 권위자와 나눈 대화를 소개한다. "미국 암 연구의 중추 중의 중추인 MIT의 로버트 와인버거 박사"이다. 한데 이름이 'Robert Weinberg'이므로 '로버트 와인버그'라고 표기해야 맞다.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에서도 와인버그라고 나온다(이 저명한 암생물학자는 가장 많이 거명되는 인물의 하나다). 어떤 인물인가.

 

박사는 암유전자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며 전 세계 암 연구자들이 표준 교과서로 애용하는 <암 생물학>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암 생물학>이 어떤 책인가 싶어서 바로 또 찾아봤는데, 놀랍게도, 바로 지난달에 번역돼 나왔다! <암의 생물학>(월드사이언스, 2012). 목차를 보니 말 그대로 전문의학서이고 의대 교과서이다. 이 교과서의 저자가 다치바나에게 이렇게 실토한다. 암 정복이 이렇게 오래 걸릴지 알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아니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우리는 암이 애초에 어떤 병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무엇을 모르는지도 몰랐다고 해야 맞을 겁니다."(26쪽)

지금은 어떤가? "여전히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암은 극소수이며, 대부분은 완치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다치바나는 암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져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지적한다. 적어도 암을 대하는 그의 생각은 이렇다.

여기서 우리는 암과 아무리 철저하게 싸우려고 작정해도 그 투쟁은 대개 헛고생으로 끝나리라 예상할 수 있습니다. 암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는 '끝까지 싸운다'가 아니라 '암과 공생한다'고 할까, '암과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28쪽)

해서 '완치'나 '정복' '극복' 같은 말은 암과 관련해서는 조금 눅여서 쓰는 게 현실적이며 좀더 지혜로운 태도로 보인다.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게 지혜라면 말이다. "암과의 투쟁을 마라톤에 비유하자면, 암 극복이란 골인 지점까지는 얼마나 더 달려야 합니까?"란 질문에 대한 사람들의 대답을 다치바나는 이렇게 정리한다. 

나의 질문에 모두들 진지하게 답해주었지만, 10년, 20년이면 극복될 거라고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10년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는데, 그는 제약회사 직원이었습니다). 짧게 잡아도 20년이나 30년은 필요하다는 견해가 태반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일흔 살이니, 그 대답은 곧 내 살아생전에 암이 극복될 희망은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29쪽) 

다치바나의 육성과 함께하는 <암, 생과 사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다>는 그런 현실을 직시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12. 02. 04.

 

 

 

P.S. 암 관련서로 역시나 최근에 나온 책은 'KBS <생로병사의 비밀> 제작팀'의 <암중모색, 암을 이긴 사람들의 비밀>(비타북스, 2012)이다. <생로병사의 비밀>은 책으로도 만들어지는 모양인데, 암 시리즈로는 <위암>, <유방암>, <대장암> 편이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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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9-02 0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2월의 읽을 만한 책'에 올려놓기도 해서 헤겔을 읽어보려고 하는데 주문한 프레더릭 바이저의 <헤겔>(도서출판b, 2012)은 오늘에야 출고가 된다고 하기에 대신 펼친 건 피터 싱어의 <헤겔>(시공사, 2000)이다. 12년전에 나왔고 지금은 절판된 책. 당시 철학자/사상가들 입문서로 '시공 로고스 총서'가 30권 가량 출간된 바 있는데, 그중 하나다. 원저는 1983년에 나왔다. 무려 30년 전 책이다(싱어는 현재 프린스턴대학의 생명윤리학 석좌교수로 있다).

 

 

그렇다고 그렇게 '올드한' 책만은 아니다. 바로 지난해에 옥스포드대학출판부에서 나오는 '아주 짧은 입문서' 시리즈의 하나로 재출간됐기 때문이다(연도를 잘못 봤다. 작년이 아니라 2001년에 출간됐다). 싱어는 이 시리즈의 <마르크스>도 쓰고 있는데, 시리즈판으론 2000년에, 그리고 원래는 1980년에 출간된 책이다. 국내에서도 새 번역본으로 단장하고 출간되면 좋지 않을까 싶다. 이미 '아주 짧은 입문서' 시리즈의 책들이 한겨레출판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계속 나오고 있으니까 그런 분위기를 탈 수도 있겠고.  

 

오래전 기억이지만 지젝을 읽기 전에 읽은 헤겔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난해하기만 한 철학자여서 싱어의 <헤겔>도 별반 인상적이지 않았다. 어제 배송받은 영어본을 보니 짧은 분량 대비로는 가장 훌륭한 소개서라는 추천사가 붙어 있다. 영어권에서 30년의 세월을 버텨낸 비결이 있을 터이다.

 

머리말의 시작은 이렇다. "19세기나 20세기의 어떠한 철학자도 헤겔만큼 세계에 엉청나게 영향을 준 철학자는 없다. 이렇게 결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예외는 아마 칼 마르크스일 것이다 - 마르크스 자신은 헤겔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그러니까 마르크스를 포함해서 19세기 이후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친 철학자가 헤겔이다. 하지만 그런 '영향'만을 고려하여 헤겔을 읽어야 하는 건 아니다.

헤겔의 영향만큼은 헤겔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헤겔 철학이 그 자체로 연구될 만한 가치가 있다.(11쪽)

헤겔 전공자의 번역이긴 하지만 다소 투박한데(헤겔적 번역?) 이 대목의 원문을 보니 이렇게 돼 있다. "Hegel's impact alone makes it important to understand him; but Hegel's philosophy is in any case worth studying for its own sake." 다시 옮긴다면 "헤겔의 영향만으로도 그를 이해하는 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그런 영향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헤겔 철학은 그 자체로 충분히 공부할 만한 가치가 있다." 

 

머리말에서 싱어는 짧은 분량 때문에 불가불 헤겔의 저작에서 다루지 못하는 부분들에 대한 양해를 구한 다음에 자신의 헤겔 이해에 도움을 준 사람들을 열거한다. 옥스포드대학 시절의 헤겔 강의를 담당했던 교수들과 헤겔 연구서의 저자들이다. 특별히 네 명의 저자가 쓴 네 권의 저작을 꼽고 있는데, 하나만 빼고 나머지 세 권은 국내에 소개돼 있다. 

 

 

맨먼저, 리처드 노먼의 <헤겔의 현상학>(1976). 이 책은 '리차드 노만'이란 저자명으로 <헤겔의 정신현상학 입문>(한마당, 1984)이라고 번역됐었다. 그리고 이반 졸의 <헤겔 형이상학 입문>(1969). 이 책은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다. 지금은 영어권에서도 희귀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헤겔>이란 제목을 단 두 권의 책인데, 월터 카우프만의 <헤겔>(1965)과 찰스 테일러의 <헤겔>(1975)이다. 카우프만의 책은 <헤겔>(한길사, 1985)로 나왔었다. 테일러의 두툼한 <헤겔>은 번역되지 않았지만, 대용인 <헤겔과 현대사회>(1979)가 <헤겔철학과 현대의 위기>(서광사, 1988)로 번역돼 있다. 이 세권은 모두 갖고 있고 나대로 들춰보았으니 헤겔에 대해서도 할 만큼은 했다는 생각이 든다.

 

 

 

'헤겔의 시대와 생애'를 첫 장으로 하는 내용은 크게 달라진 게 없는 듯싶지만, 참고문헌에는 아무래도 약간 보충된 게 있다. 대표적인 게 헤겔의 전기에 관해선 테리 핀카드의 <헤겔, 영원한 철학의 거장>(이제이북스, 2006)을 참고하라는 것. 헤겔의 정치철학과 관련한 참고문헌 가운데 국내에 소개된 책은 마르쿠제의 <이성과 혁명>(중원문화, 2011),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2>(민음사, 1989) 등이다. '헤겔을 읽을 시간'이라고 입을 열었기에 몇마디 더 얹었다...

 

12. 02. 01.

 

 

 

P.S. 저녁나절에 예정보다 하루 일찍 프레더릭 바이저의 <헤겔>(도서출판b, 2012)이 배송됐다. 책은 2010년판을 옮긴 것인데 원서에는 2005년 초판에 들어있던 '좀 더 읽을 거리' 대신에 '헤겔 용어 해설'이 실렸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번역본에는 둘다 옮겨졌다. 바이저는 옥스포드에서 찰스 테일러와 이사야 벌린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테일러의 제자답게 가장 훌륭한 헤겔 입문서로 테일러의 <헤겔>(1975)를 꼽고 있다(번역되기엔 너무 방대한 분량의 책이다). 바이저 역시 이반 졸의 <헤겔 형이상학 입문>(1969)를 "매우 명확하지만 짧은 입문을 제공"한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싱어와 달리 카우프만의 <헤겔>(1966)에 대해선 "질이 매우 고르지 못하며 낡았다"고 평가절하한다. 현재 시라큐스대학의 철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바이저의 책으론 <낭만주의의 명령>(그린비, 2011) 외 <이성의 운명>과 <독일 관념론> 등이 더 있다. 영어권에서는 독일 관념론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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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교수신문의 특집은 '중국 ‘喪家狗(집 잃은 개) ’논쟁과 새로운 고전 읽기의 문화적 아이콘 ‘리링(李零)’'이었다. 리링 교수의 <논어, 세번 찢다>(글항아리, 2011) 출간을 계기로, 아직 번역되지 않았지만 그의 <집 잃은 개>가 중국에서 불러일으킨 논쟁을 소개하고 국내에서 논어가 어떻게 번역돼왔나, 공자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살펴보았다. 이 중 '집 잃은 개' 논쟁에 대한 소개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교수신문(11. 08. 16) 대륙신유가들은 왜 그에게 발끈했을까

2000년대 중반 무렵에 이르러 중국에서는 이른바‘논어열기(論語熱)’라고 부르는 거센 바람이 불었다. 거국적으로 불어 닥친‘논어열기’의 진원지는 바로『논어』에 관한 두 권의 책이다. 하나는 베이징사범대학의 위단(于丹)이 쓴『論語心得』이고, 다른 하나는 베이징대의 리링(李零·사진)이 쓴『집 잃은 개 : 논어를 읽다』(원제: 『: 我讀論語』)이다. 위단의 책은 집집마다 한 권씩 비치해 뒀다고 말할 만큼 일반인들에게 널리 읽혔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논어』의 몇몇 구절을 뽑아다가 마음대로 해석해 개인의 명성과 부를 축적하는 데 이용한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마디로『논어』연구자도 아닌 젊은 여성이‘성인의 말씀’을 상업적으로 이용했다는 이유에서 소위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나 전통적 가치를 존중하는 일부 보수적인 사람들로부터 비판 아닌 비난을 받았다. 리링의 경우 역시 엄청나게 많은 부수의 책이 팔리기는 했지만, 위단의 경우와는 달리 주된 독자는 학생이나 식자층이었고, 인터넷과 학술회의석상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집 잃은 개 : 논어를 읽다』(이하『집 잃은 개』)를 비롯한 리링의『논어』관련 저서들은 바로‘대륙신유가’들의 이런 노력과 배치된다. 아니, 바로 그들의 그러한 노력을 비판하고 저지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 그는 공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숭배를 거부하고, 『논어』를 유토피아로 인도할 신성한 경전으로 취급하는 것에 반대한다.

리링이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공자는 성인이 아니고『논어』는 성경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공자는 그저 불운한 지식인일 뿐이고, 『논어』는 제자서와 같은 유가의 전기에 불과하다. 그가 책의 제목으로 정한‘집 잃은 개(喪家狗)’는 바로 그러한 공자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리링은 공자는 성인이 아닐 뿐만 아니라 공자는 결코 자신이 성인으로 불리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공자는 스스로“결코 그들과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며, 실제로 공자는“세상에 살아 있을 때는 천자가 아니었고, 공작의 제후도 아니었고, 후작의 제후도 아니었으며 성인도 아니었다.”

‘말세의 책’, ‘학계의 만담꾼’비난 이어져
그는 공자가 두 가지 상반된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즉 살아 있는 공자 혹은 진짜 공자가 있는가 하면, 죽은 공자 혹은 가짜 공자가 있다는 것이다. 리링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공자는 죽은 공자 혹은 가짜 공자라고 말한다. 즉 공자 사후 추종자들과 역대의 제왕들에 의해 그럴 듯하게 포장된 숭배의 대상이나 얼굴마담으로서의 공자, 예를 들어‘大成至聖文宣先師孔子’와 같이 화려한 옷을 입고 거창한 명함을 내미는 공자는 원래의 공자가 아니라 위조된 공자, 가짜 공자라는 것이다. 중국의 위대한 교육자, 최초의 훈장이 바로 살아 있는 공자의 모습이고 그것이 진짜의 모습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이념적인 틀에 꿰어 맞추는 방식도 부정하고 대중들의 입맛에 맞게 논어를 그저 말랑말랑하고 보기 좋게 버무려 내는 것이 아니라 고고학, 문자학, 문헌학적 증거를 동원해『논어』에서 원래 말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 공자와 그 제자들의 면모가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밝히는 데 주력했다. 예를 들면 공자 사상에서 핵심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仁에 대해 그는“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다”라고 풀이했다. 즉 사람을 도구가 아니라 사람 그 자체로 대접하는 것이 바로 仁의 본뜻이라는 해석이다. 그는 먼저 자기를 사람으로 대하고, 그 다음으로 다른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 바로 공자가 말한 仁이며,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것은 仁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仁에 대한 해석은 상당히 신선한 느낌을 준다.

『논어』에 대한 그의 독특한 해석의 예를 하나 더 보자. 어떤 사람이 공자에게 원한을 끼친 자에게 은덕으로써 갚으면 어떠냐고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以直報怨’이라고 대답했다. 이 구절을 주희는 원한에 대해서는 곧음, 즉 공평무사함으로써 갚는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리링은‘直’을‘똑같은 것’을 뜻한다고 보아 이 구절을 원한에는 원한으로써 갚는다고 풀이했다. 仁의 해석에 비해 상당히 낯설게 느껴지지만, 공자가 이 구절을 말하기에 앞서 원한에 대해 은덕으로 갚는다면 은덕에 대해서는 무엇으로 보답할 것이냐고 물었던 점을 감안하면 원한 맺힌 사람에게 공평무사한 마음으로 대한다는 해석보다는 리링의 해석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리링의『집 잃은 개』에 대한 비판은 주로 문화보수주의자 혹은 대륙신유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그들은 대부분『집 잃은 개』는 신성모독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어떤 이는 지극히 감정적으로 리링의 책을‘말세의 책’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심지어는‘쓰레기’라고까지 비난하기도 했다.

다분히 감정적인 이런 비난 외에 대륙신유가의 맏형 격인 천밍(陳明)은 비교적 논리적인 형식의 글을 발표해 리링을 그저 훈고에만 매달리는 고사변학파와 같다고 하면서 그를‘학계의 만담꾼’이라고 비아냥거렸다. 리링에 대한 비판은 대개 공자를‘喪家狗’, 즉‘집 잃은 개’에 비유했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그가 밝힌 모습이 공자의 진정한 모습이 아니라거나『논어』에 대한 그의 해석에 문제가 있다는 식의 비판은 매우 드물다. 리링은‘집 잃은 개’라는 표현은 공자를 모욕하는 말이 아니며, 그 자신도 그럴 의사가 없고 또 그런 뜻으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리링은“가슴 속에 어떤 이상을 품고 있든 현실 세계에서 정신적 가정을 찾지 못한 사람은 모두 집 잃은 개다”라고 말한다. 사실 이 정의는 상당히 멋있어 보인다. 하지만, 공자를 인류가 발생한 이래 가장 위대한 성인이라고 받들고, 『논어』를 반 권만 가지고도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절대적 진리를 담고 있는 구세의 경전으로 간주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무엄한 도전으로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식상한 도덕적 교훈과 살아 있는 목소리
이 책을 통해 리링이 의도한 것은 2천여 년 동안 그에게 겹겹이 입혀놓은 정치적, 도덕적, 종교적 옷을 벗겨 버리고, 온갖 화려한 색깔로 치장해놓은 분칠을 닦아내 공자의 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논어』의 진정한 의미를 우리에게 알려줌으로써 허구가 아닌 실질적인 토대를 기반으로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자는 데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의 의도가 옳은지 아닌지, 그리고 그의 작업을 통해 공자와『논어』의 진면목이 드러났는지 아닌지를 먼저 따져보는 것이 일의 순서일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리링의 책을 통해 공자가 보다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고, 『논어』에서 식상한 도덕적 교훈이 아니라 공자와 그의 제자들의 살아 있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리링의『집 잃은 개』로 인해 촉발된 논쟁은 공자나『논어』를 비판하는 측과 공자나『논어』를 옹호하는 측의 논쟁이 아니라 공자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그를 신봉하려는 태도와 공자의 원래의 모습과 그의 생각을 존중하려는 태도 사이의 대립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리링의 방대한 저술『집 잃은 개』는 다음과 같은 말로 끝난다. “공자는 중국을 구제할 수 없고, 세계를 구제할 수도 없다. 애초부터 구세주 따위는 없었고, 또 신선이나 黃帝에 의지하지도 않았었다. 인류의 행복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우리들 자신에게 의지해야 한다."(김갑수 호서대 연구교수·중국철학) 

11. 08. 21.  

P.S. 개인적으론 리링의 <논어, 세번 찢다>를 읽으며 비로소 <논어>가 어떤 책인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동양을 만든 13권의 책>(글항아리, 2011)과 이중텐의 <백가쟁명>(에버리치홀딩스, 2011)으로부터도 많은 계발을 얻었다. 책상맡에는 진순신의 <논어 교양강의>(돌베개, 2010)와 함께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논어>(이산, 2001)도 놓여 있다. 번역중이라는 <집 잃은 개>의 출간을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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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논어 번역 어떻게 전개됐나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08-21 15:21 
    리링의 <집 잃은 개>를 둘러싼 논쟁 소개기사에 이어서 국내 논어 번역사를 일별해준 기사도 옮겨놓는다.논어 읽기에 참고할 만하다. 교수신문(11. 08. 16) 국내 논어 번역 어떻게 전개됐나근대적 의미에서 우리나라 논어 번역의 시작은 1908년 최남선이 창간한 잡지 <소년>의 제9호 (1909년 8월)부 터 제12호(1909년 11월)까지 실린 「소년논어」에서 찾을 수 있다. <소년>이 일제에 의해 강제 폐간되면서 「소
 
 
2011-08-22 17: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2 2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번주 한겨레의 북리뷰는 입문서 특집을 싣고 있는데, 고전 읽기와 정치철학 분야의 입문서들이 소개돼 있다. 개인적으로 책 선정에 관여하기도 했기에 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겨레(11. 07. 09) 명쾌한 ‘입문서’ 나침반 삼아 세계 정신문화 여행 한바퀴

‘필독도서’ 목록에 실린 셀 수 없이 많은 교양·인문서의 이름들은 늘 사람을 질리게 만든다. 인류 역사만큼이나 오랫동안 층층이 쌓여온 고전들도 마찬가지다. 내 관심사와 연결되는 책들은 무얼까? 어떤 책부터 봐야 할까? 이런 고민을 하는 이들을 위해 ‘입문서’가 있다. 폭넓은 지식 세계를 간추려서 쉽게 전달해주기 때문에, 읽지 않은 책도 대강 ‘어떤 책이구나’ 감을 잡게 만들어준다. 평소 쏟아져나오는 책들에 좀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안내를 해주는 인터넷 서평꾼 로쟈가 책 선정에 도움을 줬다. 



서양 정신문화의 뿌리는 그리스다. 그리스 연구에 평생을 바친 앙드레 보나르가 쓴 <그리스인 이야기>(전3권, 책과함께)는 서양 문명의 발원지인 그리스에 대해 종합적인 이해를 돕는 책이다. 호메로스부터 에피쿠로스까지, 그리스인들이 처했던 환경적 조건부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을 살피며 그리스인들의 실질적인 삶과 생각이 어떠했는지 드러냈다. 딱딱한 글로서 전해지기 쉬운 그리스 문명의 전체적인 모습을 생생한 삶의 현장으로 전해준다. 많은 그리스 고전들이 탄생한 문명사적 배경을 알 수 있다.  

 

언론인인 데이비드 덴비가 쓴 <위대한 책들과의 만남>(씨앗을뿌리는사람들)은 이름난 서양 고전들을 다루는 책이지만, 접근 방법이 독특하다. 중년의 지은이가 집 근처 컬럼비아대학을 다시 찾아 학부생들이 듣는 교양필수 과목을 1년 동안 청강하고 책을 읽은 경험을 풀어놓은 것이다. 오랫동안 고전을 가까이하지 않았던 지은이는, ‘지금 여기’만 강조하는 미디어 중심의 세상 속에서 “타자와 맞닥뜨리는 만남의 지점이며, 현실을 성찰하는 힘을 준다”며 고전 읽기의 새로운 의미를 강조한다. 



입문서의 가장 큰 함정은, 그저 간략한 소개와 해설에만 치중할 경우 독자들에게 신선한 시각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매일경제> 문화부 기자이자 시인인 허연씨의 <고전탐닉>(마음산책)은 그런 함정을 뛰어넘은 고전 소개서다. 자신의 작업을 ‘사적 고백’이라고 일컫는 지은이는, “내가 그 책들을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이해했으며, 그 책들이 내게 와서 무엇이 되었는지를 말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과 같은 문학작품에서부터 엘리아스 카네티의 <군중과 권력>과 같은 사회과학 서적까지 동서양의 명저 56권을 읽고 나름의 방식으로 정리했다. 짧은 글 속에 명료한 해설과 감상을 담았다.

사회과학에 대한 입문서로는 최근 출간된 우석훈 박사의 <나와 너의 사회과학>(김영사)을 추천한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막막해하는 사람들이 큰 부담 없이 사회과학 공부를 시작할 수 있게 안내하는 책을 내고 싶었다”는 지은이의 말처럼, 사회과학의 핵심적인 개념들을 강의처럼 쉽게 풀어놓았다. 과학주의와 해석학, 환원주의와 다원론, 실존과 선택 등의 딱딱하게 느껴지는 개념들에 좀더 쉽게 다가설 수 있게 한다. 지은이는 엘리트 남성의 전투 용어로 뒤덮인 사회과학의 언어가 여성을 포함한 생활인들의 일상용어로 바뀌어야 ‘사회과학의 르네상스’가 가능하다고 역설한다.

청소년들에게 권하는 입문서로는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갈라파고스)가 있다.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으로 오랫동안 근무했던 지은이가 아들과 대화하는 형식을 통해 국제 기아 문제를 폭넓게 다룬다. 2005년 기준으로 10살 미만의 어린이가 5초에 1명씩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 등 적나라한 기아의 실상도 충격적이지만, ‘왜?’라는 질문이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지은이는 절망적인 굶주림의 현실 반대편에는 다국적 금융자본과 이를 유지하는 과두적 권력이 있다는 사실을 까발리며, “기아에 대한 범세계적 투쟁이 어려운 것은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 국제통화기금의 무차별적인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이라고 질타한다. 서아프리카의 작은 국가 부르키나파소에서 개혁 정치를 펼치며 식량 자급자족을 이뤄냈지만, 프랑스 일부 세력의 사주로 살해당한 상카라 대통령의 이야기는 그 대표적인 본보기다.

지은이는 한국어판 서문에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 변화에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이 단지 빈곤에 대한 보고서가 아니라 인간의 삶과 생각을 변화시키려 하는 인문학 책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최원형 기자)  

한겨레(11. 07. 09) 2012년 ‘정치의 해’ 앞두고 ‘선행학습’

다가오는 2012년은 총선과 대선이 함께 치러지는 ‘정치의 해’다. 현실 정치가 구질구질하다고 느낄수록 ‘정치 혐오증’에 빠질 수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정치철학을 논의해야 할 필요성도 커진다. 정치철학 교과서라 할 수 있는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지난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굴 정치 문제에 대해 좀더 심도 깊게 생각해보게 하는 책들, 어떤 것이 있을까? 



우선 검증된 인기도서 <정의란 무엇인가>가 있다. 이 책은 공리주의, 자유주의, 공동체주의 등 현대 정치철학의 주요 쟁점들을 피부에 와닿는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대신 이 책은 지은이 자신의 정치철학을 또렷하게 강조하지는 않는다. 일본 지바대학 교수 고바야시 마사야가 쓴 <마이클 샌델의 정의사회의 조건>(황금물고기)은 <정의란 무엇인가>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 등 샌델의 주요 저작들을 살피며, ‘열린 공동체’를 지향하는 샌델의 정치철학에 대해 들여다보는 책이다. 지은이는 “샌델의 정치철학의 핵심은 ‘좋은 삶’에 대한 추구, 곧 선이 있는 정의”라며 “공리주의, 자유주의, 공동체주의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고전적인 정의론으로 되돌아간 것”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공공철학’이라는 개념을 통해 샌델이 말하는 공동체가 역사적인 변화에 역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공동체라는 점을 지적한다. 



인문학자 강유원씨가 쓴 <서구 정치사상 고전읽기>(라티오)는 플라톤의 <국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등 정치사상을 다룬 서구의 고전들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일러주는 책이다. 지은이는 고전이 쓰여진 시대의 상황을 고려할 것, 기본 개념을 철저하게 익힐 것 등 고전을 읽을 때 주의할 사항을 정리해준다. 지은이는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이라며 “인간은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존재인데, 공동체 속 인간들 사이에서 생기는 갈등은 말에 의한 설득으로써 해결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설득의 궁극적 근거를 제공해주는 정치사상은, 결국 공동체에 사는 모든 이들이 행복한 삶을 두루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정치철학에 대한 고민을 생각해보려면 철학자 김상봉 전남대 교수와 정치학자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참된 공화국의 건설’을 주제로 펼친 대화를 묶은 <다음 국가를 말하다-공화국을 위한 열세 가지 질문>(웅진지식하우스)이 있다. 정치철학과 역사, 용산 참사와 같은 현실 등을 넘나들며 ‘민주공화국’이란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한다. 지은이들은 “민주국가가 모두에 의한 나라라면, 공화국은 모두를 위한 나라”라는 핵심을 짚어준다. 두 사람의 사유에는 ‘씨알’이란 개념으로 개인과 전체의 관계성을 고민했던 함석헌의 생각이 녹아들어 있다. 정치의 목적, 국가의 본질과 구실 등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던 주제들을 철저하게 우리 삶에 기반해서 펼쳐냈다.(최원형 기자) 

11. 07.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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