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 뜨거웠다. 부끄러웠다. 영화를 보는 내내 한숨이 멈추지 않았으며, 표정은 일그러졌다.  시사회에서 영화를 접한 어느 영화 담당 기자는 "영화 상영시간 내내 얻어맞은 기분이었다"는데 영화 상영 시간 내내 얻어 터진 기분이었다. 

<경계도시 2>를 보는 내내 난 우리 사회의 미숙성함에 놀랐으며 이 때문에 수치스러웠다. 그 수치스러움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한 우리 사회 전체를 향한 것이었으며, 나를 향한 것이기도 했다.   

  

송두율 교수가 37년 만에 귀국길에 오르기 전 한국 사회의 성숙함에 대해 걸었던 기대는, 영화를 보기 전 내가 했던 한국사회에 대한 일말의 기대와 비슷했다. 하지만 독립투사를 때려잡는 일제 시대의 사생아 <국가보안법>과 보수정당과 보수 언론에 의해 진보적 철학자에서 한 순간에 '김철수'라는 거물 간첩으로 추락한 송두율 교수는 진보와 보수가 투쟁하는 집단 광기를 온몸으로 체감하며 한국사회의 이데올로기적 성숙함에 대한 실망에 몸서리쳤다. 영화 상영 시작과 동시에 한국 사회를 향한 나의 기대도 처참히 무너졌다.   

누구보다 레드 콤플렉스에 자유롭다고 자부해왔던 나지만, 나 또한 2003년 당시 송두율 교수가 김철수라는 것에 실망했으며, 노동당 가입은 법적 처벌이 불가피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입국 전 그를 옹호하던 진보 인사들이 그가 노동당에 가입한 사실을 실망하며 그에게 전향을 강권하고, 개인이 아닌 진보 집단의 미래를 위해 희생하라고 요구하는 모습은 2003년의 내가 송두율 교수에게 바랐던 기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를 사형의 중형에 처해야 한다는 어느 보수 사내의 일갈은 2003년 나의 생각보다 조금, 아주 조금 과격할 뿐이다. 나 또한 레드 바이러스에 자유로울 수 없으며 한국사회의 일개 우매한 개인이라는 쓴 웃음이 나왔다. 

북한이 적인 동시에 적이 아닌 아이니러한 상황. 친북=진보, 반북=보수라는 어처구니 없는 도식이 상식으로 통하는 사회.   

7년이 지났지만  한국 사회는 그 당시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국방부 불온도서 선정 사건, 최근의 방문진 이사장의 좌빨 척결 논란, 집권여당 대표의 봉은사 직영 관여 논란까지. 철 지난 이데올로기는 현재진행형이며 여전히 유효하다. 지배세력은 여전히 '좌빨', '친북'등의 언어적 레토릭으로 지지 세력을 규합하고 있으며, 10년 전, 아니 20년 전의 이 철 지난 수법은 여전히 가장 잘 먹히는 전략 중의 전략이다. 이 비상식적인 레토릭에 농락당하는 우리는 레드 콤플렉스의 피의자인 동시에 피해자이다. 언제쯤 우리는 이러한 말장난에 자유로울 수 있을까?      

최근 러시아의 한국 유학생들을 피습한 러시아 스킨헤드가 떠오른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타 인종에 무자비한 폭행과 살인을 저지르는 스킨헤드들. 사상의 색깔이 다른다는 이유로 법적 응징과 무자비한 언어적 폭력을 저지르며 사회적 사형을 선고하는 한국 사회.  

스킨헤드와 한국사회는 무엇이 다른가? 차이가 있다면 스킨헤드 그들이 좀 더 과격할 뿐.

PS. <경계도시 2>의 압권은 사건의 관찰자를 넘어 이미 게임 플레이어로 활동하는 언론의 행태다. 한 때 잠시 마음에 품었던 직업이었기에 다큐 속 기자의 모습은 나에게 실망을 넘어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현상은 정지되어 있으나 언론들의 상호모방적 받아쓰기로 인해 어느새 현상은 유기체가 되어 계속해서 진화 발전한다. <경계인 재독학자 송두율>은 어느새 언론이 던져 준 엄청난 양의 기사를 먹잇감 삼아 건국 이후 최대 <거물 간첩 김철수>로 변모된다. 여론의 관심이 시들해진 후 <거물 간첩 김철수>는 법적으로 <경계인 재독학자 송두율>로 판명났으나 거의 대부분의 언론은 이를 단신으로 처리했다. 언론이 틈만 나면 사명인냥 떠벌리는 진실한 보도와 건전한 비판이란 수사가 실은 사주의 이익을 위한 자극하는 보도와 제 입맛에 맞는 비판은 아닐까? 출소 후 언론에 진실함을 호소했던 송두율 교수의 외침이 메아리가 되어 아직도 내 귓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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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을 1년 앞둔 2005년이 김영하의 작품들을 읽고 소설의 흥미 정도만 느꼈던 시기였다면, 졸업을 한 후 2006년은 소설에 대한 흥미를 넘어 경이로움을 느꼈던 시기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 경이로움을 느끼게 해주었던 소설이 바로 천명관의 <고래>였다. 저자 소개란에 저자의  빛나는 스킨헤드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소설이었다.   

                                                                              

  

 

 

 

 

 

그 후 <유쾌한 하녀 마리사>라는 단편 모음집을 끝으로 신작이 나오지 않아 내심 궁금했는데 최근 <고령화 가족>이라는 신작을 발표해 반가워하던 찰나 아래의 기사를 보게 되었다. 영화 연출가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소설가. 그의 끝 없는 도전 멋지다 정말.  

얼른 그의 문학적인 영화와 영화적인 문학 둘다 만나보고 싶다.  



<이웃집 남자> 시나리오 쓴 소설가 천명관


영화 <이웃집 남자>의 각본가 천명관은 장편 <고래>, 단편집 <유쾌한 하녀 마리사>, 최근에는 장편 <고령화 가족>까지 써낸 능수능란한 이야기꾼이다. 그런데 그는 오랫동안 소설보다 영화를 더 연모해왔다. 소설가로 주목받은 다음에도 나는 소설보다 영화를 더 사랑하노라 말해서 문단의 일부를 당황시킨 장본인이다. 오랫동안 영화연출을 꿈꿔왔으나 소설가로 훨씬 더 빛을 발하게 된 그가, 하여 이제는 소설에만 전념하겠다는 생각을 먹었던 그가 다시 각본가로 펜을 잡게 된 건 <이웃집 남자>가 “나를 영화라는 첫사랑으로 이끌어준 친구의 11년 만의 연출 재기작”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자본의 세상에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악독하게 발버둥치다가 끝내 몰락해가는 어느 386세대이자 부동산 중개인의 이야기가 나왔다. 인터뷰를 한 날은 천명관 작가가 새 장편소설을 쓰기 위해 백담사 밑자락으로 들어가는 날이었다. 그는 그렇게 다시 신명나는 소설가로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말을 나눠보니 분명 첫사랑을 잊지 못한 것 같다.



-연출을 맡은 장동흥 감독과는 원래 아는 사이였나.
=그 친구 때문에 <이웃집 남자>의 작업을 하게 된 거다. 오래전에도 같이 시나리오 작업을 한 적이 있다. 명필름 시절 내가 쓰고 장 감독이 준비하다가 엎어진 것도 있다. 장 감독이 아니라면 <이웃집 남자>는 안 썼겠지. 시나리오도 한 10번을 고쳤다. 예산에 맞춰서 써놓은 걸 많이 버리기도 했고. 어쨌든 나야 써서 넘겨주면 끝이지만, 감독이 좋은 평을 받아 다음 작품을 만들 기회를 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 나를 영화와 만나게 해준 사람이 바로 장동흥 감독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시작된 인연인가.
=우리는 훈련소 동기였다. 제대하고 한 7년을 못 봤다. 제대하고 30대 초반의 나는 보험모집인을 하고 있었다. 단체보험이라고 해서 회사 상대로 하는 그런 일이 있다. 마포에 있는 한 출판사에 갔다가 거기 꽂혀 있는 잡지를 우연히 봤는데 <파업전야>를 만든 장 감독의 인터뷰가 실려 있더라. 심심하기도 하고, 보고 싶기도 하고, 내가 먼저 수소문해서 연락했다. 그때 이 친구는 막 충무로로 나오려던 시점이었고.

-그렇게 해서 충무로 사람들을 차차 많이 알게 된 모양이다.
=옆에서 보니까 영화 일이 재미있어 보이더라. 그래서 내가 할 일이 없겠나 싶었고, 장 감독에게 전태일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랬더니 이미 준비 중이라고 하지 않나. 11고까지 나왔다고. 그러면 내가 그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더니 한번 써보라고 하더라. 써서 갖다줬다. 그랬더니 “야, 이건 영화 다섯편 분량이야”라고 하더라. (웃음) 그게 내가 최초로 쓴 시나리오이자 최초로 쓴 글이 아닌가 싶다. 그 영화는 결국 여러 가지 사연으로 다른 곳에서 만들게 됐다.

-영화사 직원으로 일한 적도 있다.
=기획시대에 다녔다. 공식적으로는 그렇고, 비공식적으로는 <미스터 맘마> 때 그 영화 프로듀서였던 차승재씨를 만났다. 승재 형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얼마 뒤 승재 형이 영화세상 창립작품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의 프로듀서였을 때, 시나리오 작업을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고 나를 불렀다. 그게 공식적으로 나의 충무로 첫 번째 시나리오 작업이었다. 그래서 내가 승재 형에게 매일 그런다. 시나리오작가로 데뷔를 시켜줬으면 감독으로도 데뷔를 시켜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직접 쓴 장편소설 <고래>가 영화화될 거라는 풍문은 오래전부터 충무로에서 나돌았었다.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실은 드라마로 먼저 만들려고 했다. 송병준씨가 판권을 사갔는데 당시에 방송사에서 편성하기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나도 그 대본 작업에 한 1년 매달린 적이 있다. 그런데 판권을 사간 회사에서 송병준씨가 퇴사했고 아직 판권은 그 회사에 있다. 송병준씨는 형편만 되면 판권을 다시 가져와 꼭 만들겠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

-시나리오 작업으로 치면 <이웃집 남자>가 얼마 만인가.
=시나리오 작업은 알게 모르게 굉장히 많이 했다. 하지만 영화화된 게 얼마 없다. 내가 그동안 거의 연출쪽에만 관심이 있었으니까. 연출할 마음으로 써둔 시나리오만 한 10편쯤 된다. <총잡이> <북경반점> 같은 걸 썼다. 하지만 그런 건 계약이 다 되어 있던 상태에서 내가 쓰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가 써서 들고 다니는 건 영화화가 안 되더라. (웃음) 지금은 영화에 대해 아무 생각을 안 하려고 한다.

-연출할 마음을 접은 건가.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굳이 하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이미 여러 번 노력해봤고 그리고 안됐다. 지금은 안되는 일에 매달리지 말고 소설을 열심히 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동안에는 스스로 소설가라는 정체성을 못 가졌던 것 같다. 처음에 그게 내 꿈도 아니었으니까. 소설가…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소설가라는 정체성을 갖고 살려고 한다. 물론 여전히 속으로 나는 소설보다 영화를 더 잘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재미있는 건 소설을 쓰면 영화적이라고 하는데 시나리오를 쓰면 문학적이라고 한다는 거다. (웃음)

-그런 면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재미있게 관전하는 사람들은 재미있어 한다. 하지만 주류 문단에서는 그런 걸 결격 사유로 본다. 거기서 보면 이건 이상한 거다. 문단에서 보면 내가 약간 아웃사이더다. 소설을 쓰기는 하는데 문단에는 속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달까.

-시나리오와 소설 쓰기가 많이 다르다고 보나.
=시나리오와 소설 중 뭐가 더 쓰기 어려운가를 묻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항상 시나리오 쓰기가 더 어렵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내가 보기에 시나리오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충무로 시스템 안에서 시나리오작가가 주는 건 기술력이다. 그건 철학이 아니다. 그리고 시나리오는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일이다. 감독, 배우, 투자자, 제작자가 동의를 해야 할 문제다. 작가는 그걸 조율해줘야 할 사람이다. 소설은 그렇지 않다. 오해가 없었으면 싶은데 소설을 쓸 때 창작의 고통이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소설은 창작의 고통이 있지만 그게 해로운 스트레스는 아니다. 시나리오가 훨씬 더 스트레스다. 그런 차원에서 말했던 건데, 일부는 문단을 무시한다고, 문단을 찌질하게 생각한다고 오해하는 것 같다. 저 화류계 녀석이 뭔가 한다는 걸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다 그렇다는 건 아닌데 그런 사람들이 있긴 하다.

-연출자로서의 욕심은 또 달랐을 것이다.
=연출은 무조건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는 쪽이었다. 원작을 사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내 시나리오로. 써놓은 것 중에는 멜로도 있고 누아르도 있다. 흡혈귀를 소재로 한 것도 있다. <박쥐>보다 정확하게 5년쯤 먼저 썼다고 해야 하나? (웃음) 흡혈귀가 살인 청부업자인 이야기다. 내가 연출을 준비했던 영화에는 컬트나 B급영화적인 요소가 많이 있다. 스코시즈도 좋아하고 아벨 페라라의 <중독> 같은 영화도 좋아한다. 이른바 유럽의 예술영화들도 좋아한다. 물론 코언도. 마니아적인 취향이 있는 것 같다.

-영화 <이웃집 남자>나 소설 <고래>만 보아도 장르적 컨벤션에 능하다는 걸 짐작하게 된다.
=그 점에서라면 마음 아픈 순간이 있다. 시나리오를 들고 연출하기 위해 한 3년 싸이더스를 드나든 적이 있다. 그런데 싸이더스에서 영화 40편이 만들어지는 동안 내 영화는 결국 없었다. 나이 40에 접어들었을 때 마지막으로 엎어진 영화가 있었다. 나이는 먹고 돈은 없고, 꼭 지금 나온 소설의 주인공 상황이었다(소설 <고령화 가족>에는 10년째 백수로 지내고 있는 영화감독이 등장한다). 그런데 승재 형이 <고래>를 읽어보더니 이러더라. “그래도 네가 내공이 좀 있네. 네 길을 찾은 것 같다. 소설 열심히 써라.” 아니, 소설을 열심히 쓰라니. 칭찬인 줄 알면서도 그 말이 어딘지 서운하더라. 나는 이 모든 걸 영화를 하려고 쌓아두었던 내공인데 말이다. (웃음)

-<이웃집 남자>의 경우는 어디에 초점을 맞추었나. 이 영화의 이야기나 장르적 면모는 90년대 초반 한국적 누아르와 일맥상통한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아벨 페라라의 <악질경찰>을 떠올리면 좋을 것 같다. 나쁜 놈인데 그를 통해 구원 같은 주제 의식이 부각되는 이야기. 이런 건 선 굵은 남성영화에 가까울 것이다. 그래서 그 남자에게 집중했다. 386의 한 자화상이라고도 보았다. 과거에 보편적인 의미에서 운동권에 속해 있던 남자가 사회에 나와서는 개처럼 살아가는 거다. 우리 세대는 70년대 영화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천명관 작가는 63년생이다). 영화가 할 수 있는 것들은 그때 다 한 것이라고 본다. 그 이후 영화들은 뒤집고 섞고 해체한 거라고 본다. 80년대에 출현한 코언과 타란티노는 70년대 이후의 변주인 거다. 그런 점에서 <이웃집 남자>는 고전적 스타일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갱스터 장르의 컨벤션으로 욕망, 불행의 씨앗, 좌절, 죄의식, 파멸 등의 라인이 있지 않나. 굉장히 고전적인 영화다.

-윤제문이 연기한 주인공 ‘상수’는 어떤 인물인가.
=특별한 남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와이셔츠를 입고 다니며 약간 껄렁하면서 뭔가 정규직 같지도 않고 ‘사짜’ 냄새도 좀 나지만, 이웃집에 살고 있는 그런 인물이다. 이 남자는 육체성이 강조된다. 야전에서 살아가는 수컷이다. 넥타이 매고 다니는 회사원이 아니다. 그런 남자가 파멸해가는 것이다. 나도 고등학교만 졸업했다. 실은 친구 중에 엘리트가 많지는 않다. 처음에는 지식인들 세계가 더 낯설었다. 내 주변에는 <이웃집 남자>의 주인공 같은 이들이 많다. 그런 인물에는 익숙하다.

-오늘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영화에 대한 열정이 식은 것 같지는 않다.
=나는 31살이 되면서야 뒤늦게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같은 감독을 알았다. 그 이후 정말 소년처럼 영화를 탐닉했다. 모든 것은 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었다. 좋은 영화감독이 되는 준비과정이었다. 기술적으로도 많이 공부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의 컷을 다 외웠고 시나리오도 분석했다. 실제로 그때 당시에는 플롯을 짜는 것에서는 내가 최고의 실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 부분에서는 일종의 ‘닥터’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웃음) 그런데 그것이 영화쪽에서 발휘가 안되고 소설에서 발휘됐다. 내가 사랑한 건 저거였는데 말이다.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한다. 너는 문단에서 사랑받지 않느냐, 그런데 왜 딴짓을 하느냐. 그러면 내가 곧장 적절한 예를 들어준다. 마틴 스코시즈의 <카지노>다. 영화에서 로버트 드 니로는 샤론 스톤을 진심으로 배려하고 그 여자의 허물을 덮어주며 사랑한다. 하지만 샤론 스톤에게는 첫사랑의 남자가 있다. 근데 양아치다. 샤론 스톤은 제임스 우즈가 전화를 걸면 한밤중이라도 그 양아치에게 달려간다. 사람들이 도대체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그녀는 나도 몰라, 라고 한다. <카지노>에서 샤론 스톤에게 제임스 우즈가 그런 것처럼 내게는 영화가 그런 것이다.

-가정이지만, 누군가가 원하는 대로 영화연출을 할 수 있게 해준다면 연출에 다시 도전해볼 마음이 있나.
=내 마음에 드는, 만족할 만한 시나리오가 나에게 있는가를 먼저 생각할 것이다. 그게 있다면 내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할 것이다. 만약 그런 상태가 되면 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당분간은 하고 싶은 소설 작업이 많다. 줄리언 반스의 <플로베르의 앵무새>에 나오는 말이었던가. 사람이 정말 잘할 수 있는 건 세상에서 단 한 가지뿐이라고. 지금은 그 의미를 소설에서 찾으려고 한다.  

씨네 21. 1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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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 중인 <녹색 평론>의 3,4월 호가 3월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배송되지 않고 있다. 배송 사고에 대한 우려보다는 경영상황이 좋지 않아 출간이 안 된게 아닌가 하는 걱정부터 앞섰다. 홈페이지에서 들어가 확인해보니 다행히도 3,4월호가 발행되었다. 단순한 배송 문제인 듯하여 안심이 된다.   

취업 후 하고 싶었던 것 중 한 가지가 바로 <녹색평론> 구독하기였다. (1년 간의 방황이 있었지만)다행히도 나는 취업을 하게 되었고, <녹색평론> 또한 구독할 수 있었다. 횟수로 벌써 4년 째다. 천성산 터널 이슈가 한창이던 2004년, 지율 스님의 특강에 함께 참석한 김종철 교수의 강연을 듣고 구독 결심을 하게 되었다. 녹색 평론은 김종철 교수(물론 지금은 교수의 직함을 버리셨지만)가 발행인으로 있는 격월간 생태잡지다. 

 

 

 

 

 

 

  

<녹색평론>은 '녹색'이란 단어와 '성장'이란 단어는 애초 어울릴 수 없다는 사소한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참고서인 동시에 경제 성장이란 주술에 걸려 헤어나오지 못하는 우리에게 뜨끔한 일침을 가하는 비판서다. 

자본주의란 이데올로기에 체내화되어 생태 파괴에 일조하는 나에게는 <녹색평론>의 글들이 한 문장, 한 문장 불편하게 다가오지만 <녹색평론>의 글 읽기를 중단하지 않는 이유는 조금이라도 이 더럽혀진 세상에서 나를 정화시키고자 하는 얄팍한 의도가 있기 때문이며, 언젠가는 <녹색 평론>이 말하는 지속가능한 삶을 살고 싶은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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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은 독서량이 현저히 부족한 달이었다. '2월에는 출장도 많이 다녔고 추석도 끼어 있었으며, 고작 28일까지였어!'라며 속으로 자위해 보지만, 그건 핑계일 뿐이라며 다시금 고개 숙이며 반성해본다. 하지만 박민규란 뛰어난 작가와 재회하고, 소비에트 문학의 기수이자 위대한 작가인 막심 고리키와 처음으로 조우한 뜻 깊은 달이었던 건 분명하다.

 1. 2010년 이상문학상 작품집/박민규 외 지음/문학사상사  

 

 

 

 

 

 

 

 2. 어머니/막심 고리키 지음/열린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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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가 좋아하는 한국 작가 중 한명이라 손꼽은 이승우의 단편집이다. 문학적 조예가 깊지 못해 작년에서야 그의 대표작인 '생의 이면'을 뒤늦게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생의 이면'을 읽고 나서 단박에 치밀하고 세밀한 문체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인간 내면 깊숙히 파고드는 그의 촉수와 같은 섬세한 텍스트는 윤대녕의 그것을 보는 듯 했다.

 

 

 

 

 

 

 총 8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단편은 각기 다른 내러티브 지녔지만,  "과거 기억의 집요함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이야기" 로 그 주제는 동일하다 할 수 있겠다.

<심인 광고>를 포함한 작품집 속 등장인물들은 과거 자신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던 기억에서 한치도 벗어나기 못하고 그 영향 아래 살고 있다. 주인공들은 어느 과거의 기억에 볼모로 잡혀 그 당시 기억에 소환 당해 살고 있는 것이다. 치명적인 기억을 떨쳐내려 하지만 과거는 사라지지 않고 "기억의 형태로 화석화되었다가 어느 순간 발굴"된다. 치명적인 기억(좋지 않은 기억은 특히 그렇다)이란 바이러스는 몸 속에 잠복해 있다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선명해지고 단단해져 간다. 일상에선 사라진 듯 보이는 이 기억은 죽음을 앞 둔 순간에 비로소 그 정체를 드러내며 주인공들을 괴롭힌다. 

과연 죽기 직전에는 후회스러운 회한의 기억만 떠오를까 하는 의문이 한편으로는 들지만 그게 바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죽기 직전에도 딸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자기방어기제를 발휘하며 생을 마감하는 <심인광고> 속 주인공이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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