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고준
고종석 지음 / 새움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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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념 작가였으되, 경색된 이념이 인간 내면의 악마적 부분과 결합할 때 역사에 어떤 상처를 내지는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 '의도되지 않은 상처'를 찬찬히 묘사했다.-19쪽

거리로, 광장으로 나가는 걸 삼가고 누추한 밀실에서 역사의 진행에 곁눈질하는. 그러나 나는 내가 기여한 반 없는 민주주의의 덕을 보게 될 것이다. -45쪽

권력은 착한 사람을 악하게 만들고, 유약한 사람을 경건하게 만든다. 아니, 차라리 뻔뻔하게 만든다.-50쪽

사실 어떤 자연 언어에서든, 속담이나 관용구에는 '비윤리적 지혜가'담겨 있는 일이 흔하다. 나이나(넒은 의미의) 계급은 윤리와 무관하다. -73쪽

한 자연언어를 나무에 비유하자면 스타일리스트의 산문은 아름답게 뻗어나간 가지들이지, 그 몸통이 될 수 없다. 한 자연언어에는 스타일리스트이 개성적인 글 이전에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익혀야 할 어떤 표준적 문장, 교과서적 문체가 필요한 법이다. 그런 표준적,교과서적 문장을 익히지 않은 채, 섣불리 스타일리스트의 문장만을 흉내내다가는, 겉멋만 배어 있을 뿐 문법에도 어긋나고 논리도 풀어진 나쁜 문장에 버릇 들기 십상이다.-122쪽

소설이나 시의 천재를 가지고, 쓰지 못해 발광을 할 때는 세상이란 이상스러워서, 청탁을 하지 않는다. 반드시 그런 재주가 고갈되고 나서야 청탁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니깐 무릇 시인이나 소설가는 청탁이 밀물처럼 몰려올 때는 자기의 천재는 이미 날아가버렸다고 생각하는 게 좋다. 세상은 참 우습다. 그렇게 이를 갈고 속물들을 싫어할 때는 아무 소리 없다가 이렇게 내 자신이 완전무결한 속물이 된 뒤에야 속물에 대한 욕을 쓰라고 한다. 세상은 이다지도 야박하다.(이 거룩한 속물들)-136쪽

전통 사회에서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것은 극히 제한된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축복이었다. 동아시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흔히 유자 또는 선비라고 불렀고, 유럽에서는 리테라티라고 불렀다.-144쪽

누구나 자기보다 나이가 아래인 사람의 좋은 책을 처음 읽을 때 기분이 묘해진다. 그 묘한 기분은 일종의 열패감 같은 것이다. 그러나 독자와 아예 세대가 다른 젊은 저자의 책을 읽을 땐, 그 책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 열패감이 사라진다. 비교의 욕망, 경쟁의 욕망은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격렬하게 흘러나온다.-148쪽

산다는 것은 기억을 축적하는 과정이자, 축적한 기억을 잃어버리는 과정이기도 하다. 축적의 속도가 상실의 속도보다 빠를 때 사람들은 총명하다는 소리를 듣는다.-197쪽

역사의 진척(또는 후퇴) 속에서 개인의 역할이 차지하는 비중을 어느 정도로 잡아야 할지는 골치 아픈 문제다. 아무튼 아버지는 집단적 정념을 두려워했다. 아마 그것이 아버지로 하여금 공산주의를 혐오하게 만들었을 것이다.-221쪽

아이러니는, 기요틴의 발명과 사용이 사형수들의 고통을 줄여주려는 '인도주의'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224쪽

'대중화 저자(popularizer)'라는 말은 어느 사회에서나 깊은 존경심을 달아 발설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나 앎의 세계에서 이들이 맡고 있는 역할은 매우 크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은 흔히 문장이 거칠고, 대중을 매혹할 만한 문장가들은 전문 지식이 모자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식의 생산자들과 소비자들을 이어주는 대중화 저자들은 전문 지식과 문장력을 겸비해야 한다.-235쪽

사르트르는 지식인을 "자신의 지적 영역에서 쌓은 명성을 '남용'하여 기성체제를 비판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이 정의에서 '남용'이라는 말은 긍정적 뜻빛깔을 지닌다.-251쪽

극단의 탐미주의는 파시즘과 통한다. 하라키리는 신경질의 소산이다. -260쪽

그 사적인 미움은 개인의 행태를 통해서 역사를 주조한다.-261쪽

어제 소위 민주정의당이 창당됐다. 한국어를 위협하는 것은 한글학회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외래어가 아니다. 이름과 실체가 일치하지 않을 때, 그 이름은, 곧 언어는 타락한다. -301쪽

'나무'라는 작은 출판사에서 나온 <그 여자의 재봉틀>은 소위 '문지 진영'에서나 '창비 진영'에서나 다 같이 상찬을 한 작품이다. 김수영 시들이나 조세희의 <난쏘공>을 둘러싼 현상이 이 소설을 둘러싸고도 일어난 것이다. 문지 진영에서는 <그 여자의 재봉틀>의 문체와 상상력을 상찬했다. 그리고 창비 진영에서는 이 소설이 노동계급과 연대를 꾀하고 있다고 상찬했다. 문지진영에서는 <그 여자의 재봉틀>이 모더니즘의 전범이라고 말했고, 창비진영에서는 그 문체나 수법과는 상관없이 이 작품이 마치코바 노동자들의 삶을 핍진하게 그렸다는 점에서 리얼리즘 소설이라고 주장했다. -325쪽

이 손으로 다름 사람 손을 어루만질 수 있다는 것, 살갗과 살갗을 서로 부빌 수 있다는 것, 이런 게 다 행복해요-360쪽

서정시는 근본적으로 시인 자신의 노래다. 거기서는 시인과 시적 화자가 온전히 겹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긴밀히 연결돼 있다. 소설가는 자기와 무관하거나 자기에게 적대적인 인물들을 창조해, 그들이 놀 자리만 마련해주고 자기는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다. 그러나 서정시인은 그럴 수 없다. 남성 시인이 여성을 시적 화자로 삼을 때도, 노년의 시인이 어린이를 시적 화자로 삼을 때도, 시인과 시적 화자는 좀처럼 분리되지 않는다. 그것이 서정시가 수필과 공유하고 있는 운명이다. 서정시는 운문으로 쓴 수필이고, 수필은 산문으로 쓴 서정시다. -365쪽

시적 화자의 외침처럼 이 시들은 깊은 심리적 상처의 기록이다. 그러나 그의 시들은, 모든 진정한 예술이 그렇듯, 스스로 주변으로 밀려남으로써, 스스로 상처가 됨으로써, 시대의 야만성과 궁핍성을 증언한다. -3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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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산주의자다 2
허영철 원작, 박건웅 만화 / 보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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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은 무너졌다고 사회주의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크게 보자면 역사는 과장이지 완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일직선으로 진행되는 것도 아니어서, 물러서기도 하고 돌아가기도 하면서 나아가는 것이다.-22쪽

자본주의도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뒤에 몇번이나 퇴보와 전진을 계속하다가 1871년 파리 꼬뮌 이후에야 비로소 부루주아의 승리를 확인하지 않았던가. 소련이 무너지고 사회주의가 한때 퇴보했어도 반드시 좀 더 나은 사회주의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새로운 사회주의의 전형이 나와야 할 때이다. -23쪽

"지도부로서 권력을 누리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 맞는 존중만 받을 뿐이라구요? 그것이 과연 가능한가요? 역사를 보면 권력을 가진 자가 그 힘을 누리지 않고 그저 자신의 역할만 충실히 수행한다는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으니깐요"-178쪽

"지도부가 권위를 가지기는 해요. 하지만 이론과 실천에서 모범이 될 때 주어지는 거예요. 제대로 인민을 위하지 못한다면 절대 권위를 가질 수 없는 겁니다. 남쪽처럼 사람들에게 군림하는 지위가 절대 아니라는 거지요. 오히려 정책을 마련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일은 다 당원들이 맡아요."-178쪽

"그곳에서 선생님이 부딪치고 깨지고 하면서 마음으로 크게 느끼고 보신 것이 과연 무엇일까 여쭙고 싶네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일을 직접 하면서 이제껏 꿈꾸었던 이상향을 장풍군에서 경험한 것이지요."-183쪽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좀 더 높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그 점에서 나는 '인간의 의식 개조'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인간은 오랫동안 사유 제도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272쪽

맑스 이론에서 중요한 것은 사회 발전의 동력을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문제로 본다는 거예요. 생산력이 발전하면서 생산 관계는 따라서 발전한다고 맑스주의는 설명해요.

그 때문인지 맑스주의는 눈에 보이는 노동 도구를 인간의 정신이 결합하는 노동력보다 앞세웠던 것 같아요.

바로 그런점에서 맑스주의도 인간의 의식 개조에 소홀한 면이 있다는 거지요. 그렇다고 해서 정신이 물질보다 먼저라고 말하는 건 아니에요. 정신은 물질에서 파생했지만 물질세계를 바꿀 수 있는 막강한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거죠. "이론도 대중을 파악하자마자 물질적 힘으로 전화한다"라고 하잖아요.-267쪽

혁명이란 과거의 제도를 바꾸는 거에요. 왕이 하는 일을 '천명天命"이라고 했어요. 천명은 사람이 고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사람이 고칠 수 있다. 그렇게 보는 것이 바로 '혁명革命"이에요.
여기서 '혁革'은 사람의 손질이 가해진 가죽을 뜻해요. 자연 그대로의 가죽인 '피皮'와 다르지요. 곧 천명을 손질할 수 있다. 천명을 바꿀 수 있다. 그것이 바로 혁명인 것입니다. -269쪽

젊었을 때는 미래에서, 장년기에는 현실에서, 늙어서는 추억에서 산다고 하더라. -290쪽

인간이 가지는 적응력과 인내의 한계성이란, 개성의 차이는 있으나 진정 생각해도 놀랍습니다. 화장실을 합해서 한 평 정도의 공간에서 35년간의 장시간을 독방 생활 해 왔습니다. -2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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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 비타 악티바 : 개념사 18
장문석 지음 / 책세상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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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 혹은 '파시스트'는 모호함 개념이다. 물론 말의 출처는 분명하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1883~1945) 등이 주도해 1919년 3월 23일 밀라노 산세폴크로 광장 옆에 있는 상공회의소 홀에서 결성한 최초의 파시스트 운동 단체 '이탈리아 전투 파쇼'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파시즘이란 원래 '이탈리아 전투 파쇼'의 이념을 가리키는 것이다. -10쪽

그렇다면 무솔리는 '파시즘'이라는 말을 어디서 끌어왔는가? 파시즘의 어원은 고대 로마 공화정의 최고 정무관인 콘솔 consol(집정관)의 대권 auctoritas을 상징하는 일종의 왕의 홀, 즉 '파스케스 fasces'이다. 파스케는 콘솔의 징벌권을 표상하는 도끼를 나뭇가지들로 한데 동여맨 형태였다. 따라서 파스케스 자체는 '묶음'이나 '다발'을 가르킨다. -11쪽

적어도 파시즘은 19세기의 자유주의적 민족주의와는 달랐다. 자유주의적 민족주의의 철학적 기반은 명백히 개인주의였고, 그래서 개인의 자유와 민족의 독립을 통합적으로 사고하려고 했다. 반면에 파시즘은 민족을 살아있는 유기체로 간주해 개인의 자유보다는 공동체의 조화를 강조했다. 그런 만큼 파시즘은 개인주의에 반대하는 집산주의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집산주의의 또 다른 형태인 사회주의가 주로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해 민족의 특수성 대신 계급의 보편성을 강조함으로써 국제주의적 태도를 견지했다는 점에서 파시즘의 집산주의는 사회주의의 집산주의와 근본적으로 구별되었다. 그러므로 파시즘이란 반 자유주의적이고 반사회주의적인 민족주의인 것이다. -13쪽

파시즘이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 된 데는 파시즘의 개념이 원래부터 모호했다는 사실보다는 그 개념이 광범위하게 남용되었다는 사실이 더 크게 작용했다. -16쪽

(파시즘 개념 정의) 대안은 역사적으로 파시즘이라고 명확하게 명명디고 나아가 충분히 발달한 단계의 현상들, 즉 이탈리아 파시즘이나 독일의 나치즘으로 대상을 한정해 파시즘을 분석하는 것이다. 이러한 대안은 인간 해부가 원숭이 해부의 열쇠가 된다는 마르크스의 생각과도 부합한다. -20쪽

이탈리아 파시즘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파시즘이 왜 등장했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는 곧 파시즘의 기원에 대한 물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물음에 대해서는 일찍이 이탈리아의 저명한 자유주의 철학자이자 역사가인 크로제의 명쾌한 답변이 있다. 그는 이탈리아 근대사를 자유가 점진적으로 확산된 역사로 파악하면서 파시스트들을 이 자유의 역사에 난입한 야민인들에 비유했다. -34쪽

이러한 크로체의 견해는 서로 연관된 그의 두 가지 당파적 입장을 반영한 것이다. 하나는 이탈리아의 자유주의적 전통에 대한 간단없는 옹호와 긍정이다. 또 다른 크로체의 당파적 입장은 자유주의 반명제로서의 파시즘에 대한 간단없는 비판과 부정이다. -35쪽

일찍이 파시즘의 발생을 이탈리아 역사의 필연적 귀결로 파악한 이들은 다름 아닌 파시스트들이었다. 무솔리니도 파시즘이 리소르지멘토의 대업을 이어받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있다고 천명했다. -38 쪽

이탈리아에 앞서 국가 구성의 과정을 겪은 영국이나 프랑스의 경우가 보여주었듯이, 국가와 민족의 실질적인 일치화 과정은 비단 법적, 정치적 제도를 완비하는 과정을 그치지 않고 주민 전체의 의식, 가치, 태도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거대한 문화 혁명을 수반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파시즘은 이러한 문화 혁명의 과제가 미완으로 남겨진 역사적 상황에서 등장한 현상이었다. -43쪽

이러한 파시즘의 권력 장악 과정에서 흥미로운 점은, 파시즘이 풍기는 피의 냄새에도 불구하고 파시즘은 철정히 합법적인 방식으로 권좌에 무혈 입성했다는 사실이다. -48쪽

2장에서 살펴본 파시즘의 기원은 이탈리아의 국가 구성 과정이라는 긴 역사적 맥락에서 작동한 복잡한 정치적 역학 관계와 관련이 있다. 그러난 파시즘의 기원을 해명하는 데는 이탈리아의 자본주의 발전이라는 또 다른 역사적 맥락에서 작동한 복잡한 사회적 역학 관계를 이해하는 일 또한 필수적이다. -54쪽

기실 오늘날의 많은 연구자들은 파시즘을 계급적 현상으로 환원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파시즘을 거대 자본의 하수인으로 보는 견해가 너무 단순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파시즘과 거대 자본 사이의 조화와 협력보다는 긴장과 갈등의 국면을 강조한다. -57쪽

당대의 사회주의자 치보르다는 파시즘을 사회주의 혁명에 대항한 중간 계급들의 반혁명으로 파악했다. 이는 아무런 계급적, 사회적 귀속 의식도 없는 이들이 파시즘의 주된 지지자였음을 강력히 시시한다. 그렇다면 파시즘은 희망의 표현이 아니라 절망의 표현이었다. -60쪽

파시스트들이 실패한 더 중요한 이유는 모든 계급에게 똑같이 무엇인가를 약속하려는 파시즘의 발상 자체가 현실성이 없다는 점에 있었다. -73쪽

파시즘은 이탈리아에서 국가가 건설되었으되 민족이 국가에 온전히 통합되지 못한 상황을 비판하면서 민족 국가의 완성을 내세우며 등장했다.이탈리아 민족 국가의 불완전성에 대한 인식은 이미 파시즘이 등장하기 전부터 이탈리아 사회에 널이 유포되어 있었다. -79쪽

파시즘 이전의 독재자가 민중이 광장에 나오는 것에 본능적인 공포심을 느꼈다면, 파시스트들은 오히려 민중을 광장에서 끌어내어 그들의 집단적 열정을 조직함으로써 이를 자신의 권력 기반으로 삼으려고 했다. -83쪽

파시즘은 세속적인 대상을 숭배하고 신성화하기 위해서는 신화와 상징과 제의가 필요했다. -85쪽

재차 언급하거니와 역사를 설명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파시즘의 몰락의 원인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현대사에서 그 어떤 정부도 달성하지 못한 20여 년간의 장기 집권에 파시즘에 성공한 이유일 것이다. -108쪽

요컨대 이 명제는 나치즘의 병리학이 근대성의 부재나 결핍이 아니라 오히려 근대성 자체 혹은 과잉 근대성에서 비롯되었음을 웅변으로 말해준다. -134쪽

다시 말해서, 파시즘은 패망했고 그 뒤에 악마화되어 현대 민주주의 세계에서 추방되었지만, 파시즘을 역사의 예외 상대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곧 파시즘이 지나간 과거의 일회적 경험이 아니라 눈 앞의 현실적인 위협일 수 있다는 말이다. -136쪽

거듭 강조하거니와, 파시즘을 일회적 현상으로 일축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 공통되는 맥락 context은 유사한 현상 text이 다시 나타날 개연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일찍이 아우슈비츠 생존자로서 수용소의 참상을 보고해 인류의 양심을 일깨우려고 한 레비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모든 시대는 그 자신의 파시즘을 갖고 있다."-1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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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프스키 2014-05-07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밑줄긋기 사용하겠습니다. 정말 좋은 말들이고 이러하기에 항상 우리는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해야 합니다. 자유는 역설적이게도 감시에 비례하는 것은 이러한 파시즘을 두고 하는 말이죠.
 
68운동 비타 악티바 : 개념사 12
이성재 지음 / 책세상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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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운동은 1960년대 후반 유럽, 아메리카, 동유럽, 일본 등지에서 권위주의 타파, 기성 질서에 대한 거부 그리고 새로운 창의성과 상상력의 확대라는 구호를 내걸고 전개된 역사적 사건을 의미한다. -12쪽

1968년대 초에는 1964년보다 실업자가 네 배나 증가했으며 그중 절반이 25세 이하의 청년들이었다. 이와 함께 기존 좌파 정당에 대한 실망 또한 68운동의 원인이었다. 당시의 좌파 정당들은 겉으로는 혁명을 말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어떤 변화도 바라지 않았다. 노동조합 역시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점차 노동귀족화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22쪽

이미 1966년부터 학생들의 정치의식은 매우 고양되고 있었는데 그 기저에는 미국의 명분없는 베트남 전쟁이 있었다. 68운동 당시 마오쩌둥, 피델 카스트로, 체 게바라, 호치민같은 제3세계 혁명가들에 대한 학생들의 열렬한 지지는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23쪽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와 영국에서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대학과 사회의 권위주의에 저항했으며, 체 게바라와 호치민은 그들의 정신적 지도자가 되었다. -32쪽

1967년에는 상황주의자 라울 바이네겜이 <일상생활의 혁명>을 펴내고 새로운 폭동의 물결이 젊은이들을 서서히 결집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바네이겜은 정치 체계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변혁이 진정한 혁명임을 강조했다. -34쪽

마침내 3월 22일에 학생들의 저항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이날 낭테르에서는 소요사태가 발생했다. 그 전날 대학생 8명이 미국의 베트남 침공에 항의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사무실을 습격하고 미국 국기를 불태운 죄로 체포되었다. 다네엘 콘 벤디트와 학생들은 대형 강의실을 돌며 학생을 모았고 대학 본부를 점거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이 바로 3월 22일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은 이 사건을 프랑스 68운동의 기원으로 본다. -36쪽

상황주의자(situationnists) : 다다와 초현실주의에 영향을 받은 아방가르드 예술가, 지식인모임에서 출발했으며, 권태를 타파하려 했으며, 특히 인간의 창조성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억압당하고 있다고 보고 일상의 혁명을 통해 인간 소외를 극복하려 했다. 1970년대 초에 내부 분쟁으로 해체되었다. 대표적인 인물로 기 드보르와 라울 바이네겜이 있다. -27쪽

피에르 부르디외 : 프랑스와 사회학자로 후기 구조주의 입장에서 구조와 행위의 관계를 설명했다. 특히 아비투스 개념을 통해 사고,행동, 감정표현 등을 생활양식을 계급이 아닌 제도와 문화 차원에서 분석했다. 실업자 운동, 문명 파괴 반대 운동에 참여했으며, 범세계적인 지식인 연대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대표적인 저서로 <구별짓기>, <호모 아카데미쿠스>, <텔레비전에 대하여> 등이 있다. -42쪽

68운동의 강점이자 약점인 무정향성과 무조직성은 내부 분열을 가져왔다. -45쪽

"섹스를 해, 전쟁을 하지 말고(make love, no war)"-56쪽

하르베르트 마르쿠제 :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대표적인 이론가이자 신좌파 사상가로 68운동의 이론적 지도자였다. 헤겔,마르크스,프로이트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산업 사회가 인간에게 물질적 만족을 가져다주기는 했지만 인간의 사상과 행동 체게 안에 완전히 내재화해 변혁의 의지를 상실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주요 저작으로는 <에르스와 문명, <일차원적 인간>, <반혁명과 폭동> 등이 있다. -59쪽

영국의 사회학자 에릭 홉스봄은 1960년대 후반에 일어난 학생들의 시위를 보면서 "처음으로 세계가, 아니 적어도 학생 이념가들이 살던 세계는 참으로 세계적인 것이 되었다"고 말했다. -68쪽

그의 말처럼 이 시기에 로마, 파리, 베를린, 함부르크, 프라하, 도쿄 대학가에서는 동일한 담론이 퍼져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일하게 세계에서 동시에 일어난 68운동에서 학생들은 기성의 권위주의에 저항했으며 전체주의와 전쟁에 반대했다. 또한 소비사회를 비판하고 욕망의 해방을 주장했으며, 낡은 세계에서 소외되었던 흑인과 여성, 사회적 소소자의 권익을 위해 노력함으로써 현대 사회의 제반문제를 포괄했다. -68쪽

"파괴의 열정은 일종의 창조적 희열"이라는 러시아의무정부주의자이자 혁명가 바쿠닌의 말을 상기했다.-72쪽

"혁명적 사고란 없다. 오직 혁명적 행동만이 있을 뿐이다"
"내일 기쁨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가 오늘의 권태를 보상하지 못한다"-75쪽

프랑크푸르트학파는 1930년대 이후에 프랑크푸르트 사회조사연구소에 참가한 학자들을 말한다. 제 2차 세계대전 이전 세대로는 막스 호크하이머, 테오도르 아도르노,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발터 벤야민, 에리히 프롬 등이 있으며, 전후 세대로는 위르겐 하버마스와 알프레드 슈미트 등이 있다.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사상을 통합하고자 했으며, 1932년에 기관지 <사회 연구>를 창간했다. 그러나 나치의 탄압에 해외로 망명했다가 1950년 프랑크푸르트에 모여 활동을 재개했다. 이들의 사상은 일반적으로 '비판 이론'이라고 불리지만 통일성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인간 이성의 능동성, 자율성, 창조성을 통해 현대 소비사회의 질곡으로부터 해방을 추구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1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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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인 광고
이승우 지음 / 문이당 / 2005년 1월
절판


시간의 완고함, 혹은 기억의 집요함이라고 할 만한 어떤 불편함이 소설들 위에 얹어져 있는 걸 발견한다. 생의 막다른 지점에 도달한 사람의 내면에서 내 소설들은 자주 죄책감을 발견해낸다.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 기억의 집요함에 잡히고 시간의 무거움에 눌리고 회한에 빠짐으로써 사람임을 증명한다는 투의 생각이 이 소설 속에 들어 있다. 좀처럼 소설들이 명랑해지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기보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사는 것이 인생이다. -1쪽

그가 우리의 진지한 말을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터뜨린 웃음 때문에 가볍게 받아들이지 모른다는 우려가 다시 정색을 하게 했다.-15쪽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을 뿌릴 것처럼 아래로 처져 있었다.-51쪽

그녀가 완강하기 때문에 내가 물러진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물러서 그녀가 완강해진 것 같기도 하다.-55쪽

어쩌면 특혜인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언제 이 세상에 떠나게 되는지 모르기 때문에 불행하게도 그런 시간을 갖지 못하고 마지막을 맞지하지 않느냐. 감사할 일이다. 내 살아온 인생을 돌이켜 보자면 아무래도 혼자인 게 좋을 것 같구나.-75쪽

소설 속에서 시간은 리얼리티와 개연성의 엄격한 통제를 받으며 그것의 틀 안에 있어야 하고, 리얼리티의 룰을 준수한다는 걸 분명하게 증명해야 한다. 그 때문에 우연과 불합리와 부조리가 대부분인 현실 속의 사건들이 소설 속으로 들어올 때는 필연과 합리와 조리로 무장되고 재구성된다. 그 과정에서 종종 현실 속의 사건들은, 소설가들로부터, 이번 경우에서 보듯이 그 필연과 합리와 조리를 추궁당한다.-94쪽

소문 따위는, 연인 사이에 믿음이 있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러나 한쪽이 믿음을 잃어 버리는 순간, 또는 사랑을 포기해 버리는 순간 사소한 얼룩도 돌이킬 수 없는 큰 허물이 되어 버린다. 그 순간, 그 사소한얼룩은 상대방을 더 크게 불신하고 사랑하기를 부담없이 중단하기 위한, 효율적인 핑계의 기능을 한다. -99쪽

과거의 시간이 그의 감정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과거가 사라지는 법이 없다는 말은 틀리지 않다. 과거는 기억의 형태로 화석화되었다가 어는 순간 발굴된다. 기억이란 단순한 과거의 집적이 아니라 편집된 과거이다. 편집한다고 하는 것은 지우거나 덮어쓰거나 도려내거나 이어 쓰거나 돌출시키는 제 과정을 포함한다. 발굴된 기억의 화석앞에서 현실은 대체로 허술해서 어쩔 줄 모르고 허둥대거나 수습을 해보겠다고 끙끙거리거나 둘 중 하나이다. 마음을 다잡고 감춰 두었던 이야기를 끄집어냈을 그가 어느 대목에선가 어쩔 수 없이 마음의 평형을 잃고 흔들린 것이 그 본보기다.-150쪽

그녀의 가르침을 수용할 수 있으려면 내 기억이 아주 많이 흐리멍텅해져야 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기대하기가 어려웠다. 내 기억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선명해지고 단단해져 갔다. 이제 그 기억은 화석이 되어 내 가슴에 박혔다.-2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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