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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 타오르다
우사미 린 지음, 이소담 옮김 / 창비 / 2021년 8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디어창비 #최애타오르다가제본서평단
너를 만났던 그 여름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 최애의 전부가 사랑스러웠다.
최애라면 모든 걸 바치고 싶다.
_p.68
피터 팬을 연기하는 최애가 머리 위를 날아간 순간부터 인생이 시작되었다는 아카리. 그녀의 최애 아이돌 그룹 '마자마좌'의 멤버로 활동 중인 우에노 마사키. 아카리는 세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가 두 걸음 되돌아오는 생활을 초조하게 반복하면서 간신히 고등학교에 입학한 때에 빛나는 최애를 다시 만났다.
우사미 린은 누군가의 존재 자체를 좋아하면 그와 연관된 모든 것이 좋아지는 감정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어느 덕후의 일상에 근접해서 관찰하는 듯한 생생한 묘사가 살아 있는 문장이 인상적이다.
"최애가 불타버렸다." 강렬한 첫 문장에 이어 마사키가 팬을 때렸다는 논란이 인터넷에서 들불처럼 퍼지고 재생산된다. 어린 시절과 달라지지 않은 마사키의 눈빛에 빠져드는 찰나의 순간, 아카리는 통증을 느낀다. 그녀의 시점에서 바라본 세상을 따라가다 보면 최애와 하나가 되고 싶어 하는 간절함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알게 된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 네버랜드에 가자.
(...중략...)무게를 짊어지고 어른이 되는 것을
괴롭다고 생각해도 된다고,
누군가가 힘주어 말해준 것 같았다. _p.18
최애라는 존재는 영원히 그 순간에 머물러 있는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피터 팬 같다. 어느 날 예고도 없이 팬들의 마음으로 날아든 피터 팬. 그와 함께하는 곳은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속마음을 소리칠 수 있는 네버랜드다. 아이들은 모두 어른이 되지만 피터 팬은 자라지 않고 영원히 아이로 살아간다.
피터 팬은 팅커벨이 뿌려주는 요정 가루의 힘으로 하늘을 날 수 있다. 아이돌도 팬들의 반짝이는 시선이 더해져야 무대 위로 날아오를 수 있다. 아카리는 무대와 객석이라는 일정한 간격이 있는 관계에서 평온함을 느낀다.
무엇보다 최애를 응원할 때,
나라는 모든 것을 걸고서 빠져들 때,
일방적이라도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충족된다. _p.69
온 힘을 쏟아 빠져들 대상이 내게도 있다는 사실을
최애가 가르쳐주었다. _p.70~71
아이돌을 좋아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다들 어렵지 않게 해내는 평범한 생활도 쉽지 않은 아카리에게 최애는 척추다. 자신의 척추가 공격당하는 상황에서 구경만 할 수는 없다. 인터넷에 급속히 퍼져가는 논란을 살피며 이제는 최애를 어중간하게 응원할 수 없다고 다짐한다. 몸을 깎아 쏟아붓는 수밖에 없다. 최애는 이제 아카리가 살기 위한 수단이다.
우리는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하나도 전달되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 어쩌면 누구 한 사람쯤은 알아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한다. 평생 나 자신조차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데, 타인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지켜주고 싶고 애틋해지는 '귀여움'은 최강이어서,
최애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어떻게 되더라도
그것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_p.90
최애의 행복을 바라는 무해한 마음은 최애를 통해 느끼는 통증 같은 현실 인식으로 이어진다. 모니터를 보며 최애의 기분을 함께 느끼지만 소용돌이치는 감정은 감당이 안 된다. 공연이 끝난 뒤 조명이 꺼진 무대 뒤의 현실에 아카리는 없다.
팬들이 보내는 사랑과 관심을 받고 빛나는 아이돌.
까만 밤을 최애가 돌려주는 빛에 의지해 걷지만,
달의 뒷면처럼 모든 걸 다 볼 수는 없다.
아카리가 최애의 모든 것을 통째로 꾸준히 해석하고 기록해도 최애가 보는 세계는 볼 수 없는 것처럼.
최애는 왜 사람을 때렸을까.
소중한 것을 자기 손으로 무너뜨리려고 했을까.
진상은 모른다. 앞으로 영영 알 수 없다. _p.130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려는 시도는 결국 좌절된다. 아카리는 지금까지 자신을 향했던 분노와 슬픔을 내동댕이치듯이 면봉 케이스를 내려친다.
최애의 그림자로 살고자 했던 아카리는 이제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관객의 자리에서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돌아온다.
면봉을 주웠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뼈를 줍는 것처럼 정성스럽게
내가 바닥에 어지른 면봉을 주웠다. _p.132
그녀는 면봉처럼 조각난 연약한 척추를 추스르며 당분간은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 보여주는 모습 그대로 볼 수밖에 없는 타인의 삶이 아닌 자신의 삶을.
앞으로의 길고 긴 여정을 버틸 수 있는 법을 배웠으니 괜찮다.
다시 일어서게 하는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추를 더해가며. 삶의 의지는 도미노처럼 파도치며 앞으로 나아가게 흐름을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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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게시물은 가제본서평단으로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