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에다가 지퍼를 채웠나보구먼. 그러니까 검다 쓰다 말 한 토막 없지"
누군가는 끌끌 혀를 찼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승객들은 곧 입을 다물고 말았다.
고갯마루를 막 넘어선 버스가 그때부터 내리막길을 사정없이 굴러내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본능적인 공포감이 순식간에 그들의 분노와 비난을 삼켜버렸다.
당장의 위험이 더 다급해졌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사람과 시비할 계제가 결코 아니던 것이다.
시비는커녕, 그를 자극할 만한 일체의 언행을 삼가야 할 판이었다.
승객들은 치밀어오르는 화증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철저히 자제해야 할 때라고 판단하였고,
그래서 다들 긴장된 침묵 속에서 운전사의 거동만 지켜보며 숨을 죽였다.
버스는 점점 더 가속도가 붙었다.
흡사 제어장치가 고장난 차처럼 컴컴한 골짜기를 향하여 거침없이 쏟아져내렸다.
어둠 속에 텅 빈 채로 드러누운 그 길은 오른쪽 또는 왼쪽으로 자주 꺾어졌다.
그러면 승객들의 상체가 반사적으로 좌측 또는 우측으로 일제히 기울어지곤 하였다.
더러는 도로가 갑자기 사라지고 두 줄기 불기둥만 허공 중에 둥싯 떠오르기도 하였다.
그때마다 재갈 물린 차가 온통 진저리를 치면서 아슬아슬하게 몸을 틀었고,
승객들은 한꺼번에 요란한 비명들을 토해내곤 하였다.
맨 앞자리의 아가씨와 그리고, 뒤쪽의 그 어린 계집아이가 특히 다른 사람들보다
갑절은 더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피를 말리는 순간들이 흐르고 있었다.
승객들은 대부분 눈을 감은 채였다.
다들 벨트를 단단히 조였고, 팔걸이나 등받이 같은 것을 단단히 부여잡은 자세였다.
그리고는, 버스가 급경사 진 코너를 돌 때마다 갈대처럼 이쪽 저쪽으로 맥없이 쏠리면서
온통 낭자한 비명들을 거푸 토해놓았다.
여자 아이가 다시 까무러치듯 울어젖혔고,
1번 좌석의 아가씨도 마침내 어린애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아무도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갖가지 끔찍한 환상들이 눈앞에 떠올라 심장과 더불어 목구멍이 온통 얼어붙어 버린 상태였다.
나중에는 비명조차 끙끙 앓는 소리로 변하였다.
2번 좌석의 일병 역시 입을 굳게 다문 채였다.
그는 통로 바닥에 떨어뜨렸던 모자를 집어 꾹 눌러썼는데,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는 옆에서 쿨쩍거리고 있는 아가씨와, 그리고 운전사의 완강한 뒤통수를
번갈아 지켜보면서 무릎 위에 놓인 주먹을 불끈불끈 쥐어보고는 하였다.
저 중년여인의 낯빛은 온통 퍼렇게 죽어 있었다.
의자를 꽉 메운 채 출렁거리고 있는 몸뚱어리가 금세 바닥으로 쏟아질 것처럼 위태위태해 보였다.
두 팔로 머리를 감싸쥐고서 아예 통로 바닥으로 내려앉은 사람들도 여럿이었다.
어쨌거나, 그 지옥의 골짜기를 다 내려오기까지 승객들은 엄청난 공포감에 짓눌린 채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굳어 있었다.
산골짜기를 벗어나자마자 도로는 곧 어둠 속에 잠겨 있는 널따란 들판을 두 쪽으로 가르면서
일직선으로 곧게 뻗어나갔다.
가속과 급제동 사이에서 몸살을 앓던 버스는 재갈 풀린 말처럼 다시 거침없이
내달리기 시작하였다.
승객들의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나온 것은 그때부터였다.
얼어붙었던 입이 하나둘 풀리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금방 험악해졌다.
"야 이 개새끼야, 차 세워! 당장 세우지 못해?"
맨 먼저 울분을 터뜨린 사람은 점퍼 차림의 사내였다.
체구와는 달리 워낙 목청이 큰 사람이라 그의 노한 외침은 다른 온갖 소리들을 일순 덮어버렸다.
그는 오만불손하고 병약무인한 운전사를 당장 끌어내어 요절이라도 낼 듯이
살기등등하게 통로로 나섰다.
그러나, 어디에고 항상 더 성급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어서,
그보다 조금 더 앞자리에 앉아 있던 저 중년 여인에게 기회를 선점당하고 말았다.
그녀가 한 발 앞서 통로를 가로막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비대한 몸통에 비해 통로 공간은 너무 좁았다.
게다가 차는 또 엄청난 속도로 달리고 있는 상태였다.
통로를 꽉 메우다시피 하며 비척거리는 걸음걸이로 운전석 가까이 다가간 그녀는
분기탱천하여 소리쳤다.
"이봐요, 아저씨! 지금 제정신 가지고 운전하는 거욧?
도대체 무슨 억하심정으로 이러는 거요?
우릴 몽땅 떼죽음시킬 작정이 아니라면 뭣 땜에 이런 식으로 차를 몰아?
대답해봐욧. 당장!"
여차직하면 머리끄뎅이라도 틀어쥘 듯이 그녀는 삿대질을 해대며 매섭게 추궁하였다.
그러나, 운전대를 잡은 사내는 묵묵부답이었다.
대답은커녕 그녀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여자는 더 발끈하였다.
"이거 봐! 당신 귀머거리야? 사람 말이 말 같잖나 왜 대답이 없어?
귓구멍이 처막히기라두 한 거냐구?"
그래도 소용없는 노릇이었다.
운전사는 여전히 묵묵부답, 고집스럽게 앞만 내다보고 있을 뿐 낯빛 한 점 변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그 자리에 장착된 로봇이기나 하듯 사내의 옆모습은 냉담함을 넘어
오히려 무덤덤해 보였다.
"이 시건방진 사내 좀 보소. 내가 시방 지를 히야까시하는 중 아네!"
여자가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더이상 어찌 해볼 여지란 없어 보였다.
그녀는 몹시 낭패한 눈빛을 하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응원군을 찾고 있는 눈치였다.
하지만 승객들은 그녀의 거동만을 지켜볼 뿐, 갑자기 무력감 속으로 빠져들었다.
점퍼마저 입을 다문 채 통로 중간에 엉거주춤 서 있을 따름이었다.
그녀는 곤혹감에 빠졌다.
당장 뺨따귀를 올려붙이고 머리칼을 쥐어뜯고 싶은 충동으로 격렬하게 앓고 있었지만
그러나, 도무지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는 사실도 그녀는 역시 알고 있었다.
============================================ 6편에서 계속 이어 가겠습니다. =======
이야기가 거의 절정에 다다랐네요.
심야 버스 안에서의 술렁거림..
이런 상황이 되신 다면 어떤 지혜를 꺼내실까요?
사람을 당황하게 만드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어떤 표현에 대해서 침묵한다는 것은 참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 대해서 화를 내는 사람 보다는,
입을 다물고 있는 사람 쪽이 훨씬 무서울 수도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지요.
버스 안의 사람들은 무시 받은 분노에 대해서 어떻게 보상을 받을까요?
다들 한번씩 상상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