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그렇게 웃음이 터졌는지도 모르겠구나...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처음 알프스 모텔의 문을 열고,
사장실에서 그를 면대하던 첫 순간부터,
모텔 알프스의 사장이 아니라 물주전자 받쳐들고 숙박계 써달라고 객실 문을 두드리던
알프스장의 주인이어야 할 그 늙은 남자를,
그리고 그 남자가 그날 입 밖에 냈던 물레방앗간이라는 말을...
아마도 나는 좋아했던 모양이구나..
윤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사장이 건넜던 건널목도 없는 길을,
고양이 한 마리가 재빠르게 뛰어 올라가다가 문득 멈춰서 윤을 돌아보았다.
어둠 속에서 노란 눈빛이, 쨍하고 빛났다.
고양이의 그 눈빛이 윤의 가슴을 베어내는 듯했다.
그날 밤 윤은 자정이 가까워서야 집으로 들어갔다.
가져갈 것이라곤 불행밖에 없는 집의 대문에 빗장이 채워져 있는 적은 없었다.
집엔 불이란 불은 전부 꺼져 있었다.
그래도 달빛인지 골목의 외등빛인지 알수 없는 것으로 마당이 밝아,
윤은 피할 것을 피해 가며 기척 없이 남편의 방문을 열 수 있었다.
남편은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윤은 그의 침대를 마주보는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여보, 자?"
남편은 대답이 없었다.
그는 정말로 잠들어 있거나, 아니면 잠든 척하고 싶어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를 깨우기 위해 그의 발바닥을 간지럽혀 본다던가 하는 일은 이젠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의 허벅지를 송곳으로 찌른다고 하더라도 그는 그 감각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윤은 언덕길을 올라가는 사장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고 서 있었던 것처럼,
잠들어 있는 것 같은 남편의 모습을 오래 쳐다보았다.
"여보, 정말 자는 거야?"
윤이 다시 물었으나 남편은 여전히 미동도 없었다.
설령 남편이 깨어 있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남편에겐 자는 척하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었다.
그에겐 이젠 말할 수 있는 몸 같은 것은 없었다.
윤은 무릎걸음으로 천천히 남편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소용없는 일이란 걸 뻔히 알면서도 남편의 다리를 흔들었다.
남편의 다리에 저항의 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윤은 그 다리에 얼굴을 묻었다.
"그러지 마, 당신.. 당신, 아직도 살아 있는 거 다 알아.
나보다 먼저 죽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아."
그러나 남편에게서는 여전히 아무런 기척도 없었고, 윤의 눈꺼풀이 졸음인지 슬픔인지
알 수 없는 것으로 저 홀로 무거워졌다.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몫의 이부자리를 침대 아래에 펴기 위해 몸을 일츠키다 말고,
윤은 갑자기 남편의 다리를 침대 한쪽으로 밀었다.
그리고는 이번엔 엉덩이를, 가슴을 그리고 팔을....
마지막으로 남편의 얼굴을 베개 한쪽으로 밀 때까지도 남편은 눈을 뜨지 않았다.
윤은 남편의 좁은 침대에 몸을 눕히고, 남편의 저항 없는 팔을 들어 팔베게를 했다.
갑자기 뺨이 뜨끈한 느낌이 들어 손바닥으로 뺨을 문대보니 물기가 만져졌다.
눈물인지 땀인지 알 수 없는 물기가 남편에게서부터 흘러나와 그녀의 뺨까지 적시고 있었다.
윤은 자신의 얼굴에 젖은 물기를 닦아내는 대신, 천천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남김없이 옷을 벗고 벗은 몸으로 남편의 몸을 끌어안았다.
저항 없는 몸이 출렁하고 윤의 품 안으로 끌어당겨졌다.
윤은 남편의 얼굴을 자신의 목에 묻게 했다.
여보, 나를 물어... 손가락이 아니라 내 목을 물어뜯어...그리고는 절대로 놓지 마......
윤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뺨의 물기가 흥건해져 갔다.
그렇다면 울고 있는 것은 난가?
눈물 같은 건, 완전히 잊어버린 지 이미 오래였던 윤이었다.
윤은 차마 그 물기의 근원을 확인할 수가 없어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러면 아주 떠나게 될까 봐, 떠나서는 아주 돌아오지 않게 될까 봐,
그날이 바로 오늘일까 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번쩍 눈을 뜨는 윤의 눈빛이 느닷없이 반짝, 빛났다.
시어머니구나! 첫날밤, 그때처럼 늙은 시어머니가 방 안을 엿보고 있구나!
시어머니의 머리채를 휘어잡기 직전이면 언제나 그런 것처럼 윤의 눈빛이 아연, 밝아졌다.
윤은 벼락같이 일어나 방문을 와락 열어젖혔다.
그러나 그 벼락같던 행동이 무색하게 방문 밖은 텅 빈 적요뿐이었다.
시어머니의 모습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마당 한가운데로 달빛이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무엇이었나........무엇이 나를 불렀나........
대답은 긴 고양이 울음소리였다. 대문 옆 담장 위였다.
늙은 고양이 한 마리가 그녀를 내려다보며 이번에는 짧고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냈다.
윤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새끼 잃은, 어미 고양이였다.
갓 낳은 새끼들을 물속에 잠겨 죽인 어미 고양이.....
그 늙은 고양이가 새끼들을 찾고 있었다.
윤은 가만히, 방문을 가로막고 있던 자신의 몸을 비켰다.
보렴, 여기에 너의 새끼가 있다.
살아 있는 몸을 잃어버린 딱한 아들 그리고 살아 있는 몸뿐인 딸이 여기에 있다.
그리고 여기에 네 생이 끝까지 갈 기억들이 있다...
담장 위의 늙은 고양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빳빳하게 세운 꼬리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때 다시 한 번 긴 울음소리가 들렸는데, 그것은 방 안에 누워 있는 남편의 울음소리
같기도 했고 불꺼진 건넌방, 늙은 시어머니의 울음소리 같기도 했다.
담장 위의 고양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지붕 쪽으로 느리게 걸음을 옮겨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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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정신적인 사랑만이 전부인 것처럼 알고 지내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이상적인 생각이었을까요?
사람은 몸과 정신으로 만들어진 존재인데, 사랑도 한쪽으로 기울 수는 없겠죠.
사랑 뿐이 아니겠죠.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여기에 정신만이 살아 있는 윤의 남편과,
몸만이 살아 있는 윤과 시어머니라는 존재가 있습니다.
모텔 알프스는 인간의 육체가 얼마나 그 정신적인 삶을 지배하는가를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라 하겠습니다.
새끼를 잃어버린 영물인 고양이는 반 죽은 자식을 지키는 시어머니를 닮아
더욱 구슬픈 느낌을 주게 됩니다.
자신에게 딸린 혹을 달고 윤은 어떻게 살아 나갈까요?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