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건너기 소설의 첫 만남 30
천선란 지음, 리툰 그림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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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효는 캡슐 하나를 먹고 의료용 침대에 누웠다. 캡슐이 녹으면서 그 안에 있던 나노봇이 뇌로 이동하여 꿈꾸듯 구현한 AI 기술로 어린 자신을 만나게 된다고 했다. 정말 가능할지 의심을 하며 눈을 감게 된다.


자아 안정 테스트라고 했다. 우주에 나가기 전 우주 대원은 필수적으로 거치는 코스였다. 분쟁이 나지 않게 팀원들 가족과 다같이 여행을 떠나거나 싸웠던 인간들과 화해도 하고 취미로 다른 일을 찾는 것까지 우주 대원들은 모든 것을 훈련화하고 있었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일이 외로운 자기 자신과 만나는 일이라고 했다. 그렇게 공효는 어머니와 단둘이 살며 외로움이 극심했던 그 시기로 돌아가 어린 자신과 만나게 된다.


해발 고도 3,914미터의 카라쿠리호에 어린 공효와 함께 도착하는 것이 임무였고, 어릴 적 유난히 까칠했던 자신은 지금의 자신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말은 없지만 고집은 셌고, 상상력이 뛰어났으며, 외로운 엄마를 안타까워했던 옛날 기억이 떠올랐다.

무한하게 넓은 우주에 갇힌다는 표현이 특별했다. 가장 외로움을 잘 느끼는 곳에 가면 어릴 적 자신이 가장 먼저 떠오르게 된다고 했다. 화해하지 못한 어린 시절과 화해하기 위한 AI 기술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누구나 어린 시절은 자신의 근본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 결핍이 있다면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걸 많은 연구로 알 수 있는데 작가는 그런 어린 시절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노을이 침범해 붉게 변한 집에 홀로 있는 것을 싫어하던 아이, 자신의 몸집보다 훨씬 작은 거미가 어떤 것보다 무서웠던 그 시기로 돌아가 자신과 화해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AI 기술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나도 한번 겪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어릴 적 나의 모습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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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의 무덤 위픽
이하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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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순간이었다.
카푸치노를 마시고 카페 어딘가를 멍하니 응시하다가 창밖으로 아주 잠깐 돌렸던 시선이 다시 카페 안으로 향했을 때였다.

" 세상에 당신, 저를 관측한 건가요?"

중장년으로 보이며 어딘가 낯익은 얼굴에 시선을 고정할 수밖에 없었다.
감사하다며 시간이 된다면 계속 봐달라는 여자의 말에 누군지 주변에 아는 얼굴과 일치시켜 보려고 해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손을 덥석 잡히고 흥분된 언어가 진정될 때쯤 자신의 상태를 차분하게 설명했다.
자신의 상태는 쉽게 말해서 다른 사람에게 관측되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상태라고 했다. 양자역학에 파동함수를 이해시키며 최종적으로 코펜하겐 해석이라고 하는 복잡한 과학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 나를 위한 설명이었다.

5년 전 서울의 모 대학교수가 시간 도양에 대한 이론을 공개했을 때만 해도 비아냥대는 소리가 많았으나 20개월에 걸친 실험 운행을 성공적으로 끝마치며 세계의 눈길이 집중된 가운데 그저께 17차 실험이 운행되었고, 하현서는 자신을 실험에 참여시키고 28시간 만에 주인공에게 관찰되며 존재하게 된 것이었다.

양자역학은 어렵지만 무언가를 존재하게 하고 가능하게 하는 꿈의 실험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확률로 존재하게 된다면?이라는 질문은 주인공의 실험에 대한 의지와 목적을 생각해 보게 했다.
실패와 성공 사이에서 자신이 원하는 결과는 어디였을까? 수많은 무덤을 만들면서 어떤 마음으로 17차의 실험을 준비했을지 짐작이 가서 마음이 아팠던 부분이었다.
마지막까지 가고자 했던 장소의 의미를 이해하며 과학자에 대한 윤리의식을 보여준 현수의 행동이 기억에 남았고, 실험에 대한 책임을 모두 과학자에게 전가할 수 없는 과학의 현실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던 부분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관찰자 없이도 확률로 이 세상에 태어났고 존재하고 있다. 성공하지 않아도 존재할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고, 타인을 위해 무언가를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선택권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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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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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

주인공은 운전을 특히나 못했다. 기능 시험에 두 번 낙방, 도로주행 세 번 낙방 후 네번째에 면허를 합격했지만 그마저도 구 년 전이라고 했다. 
운전면허 시험 도중에 사거리를 지나다 길과 길이 교차해 차선이 잠깐 끊겼고, 그때 차선을 헷갈려 어어, 어어 하다 앞차를 들이 받았다고 한다. 그때 감독관의 힐난한 말투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내리세요 실격, 시동 끄고 내리세요."
인생에서 유일한 실패의 기억 때문에 운전을 차일피일 미루다 장롱면허가 되어버렸는데, 신규 프로젝트 때문에 충동적으로 차를 사게 되었고, 그렇게 운전 연수를 검색하다 동네 맘카페에서 추천이 많은 강사를 소개받고 도로 연수를 나서는 이야기였다.

펀펀 페스티벌

오 년 전 여름 경기도 외각 연수원 건물 강당에서 그날 처음 만나는 사람 일곱 명과 둘러앉아 있었다고 한다. 이유는 은행권에서 유행처럼 번진 합숙면접 때문이었는데 이박삼일 동안 간단한 강연과 교육을 듣고 조를 짜서 마지막 날 밤에 펀펀 페스티벌에서 면접관에 선보일 공연을 준비하게 되는 이야기였다. 각 조별로 할당된 정원이 있었고 여러 조 중 밴드조인 9조를 고르게 되었고, 그곳에서 대형 기획사 연습생 출신을 포함한 밴드를 구성하게 되며 벌어지는 에피가 다뤄지고 있었다.

공모

회사 분위기를 파악하기도 전에 회식 분위기를 파악해버렸다. 회사 회식 장소를 정하는 결정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장소 천의 얼굴에 관한 이야기였다. 
여자 혼자, 혈혈단신이라는 분위기를 몸으로 뿜어내는 여사장과 그의 관심을 얻고 싶어 하는 상사들의 몸부림으로 회식장소는 변하지 않았고, 주인공이 여자라서 불편한 건지, 남자라서 그 장소를 꼭 선택해야 하는지 헷갈리던 차에 김상무의 청탁을 받아 천의 얼굴마담의 딸의 면접을 보게 되는 이야기였다.

라이딩 크루

주인공은 어쩌다  보니 라이딩 크루를 운영하게 되었다. 성비도 적절하고 사람들 간의 합도 좋아 이렇게 계속 유지되면 좋겠다 싶었는데, 자신이 초창기부터 말했던 정원을 맞추기 위해 새로운 멤버를 한 명 더 구하게 되었고, 여성스러운 말투에 자신도 모르게 합류시킨 훈훈한 훈남과의 경쟁을 다룬 이야기였다.

동계 올림픽

와이비씨 인턴 셋 중 한 명은 방송국 대주주 모기업 회장과 인연이 있어 채용이 될 것이라고 확실해졌다면 나머지 두 명은 가망이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마지막 리포트 과제 제출을 위해 올림픽 출전 선수 자택 취재를 과제로 맡게 된다. 설날, 가족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는 시간 기자들은 선수의 자택에서 승부를 위해 숨을 죽이고 취재 열기를 띠고 있었고, 선수의 어머니는 좁은 집에 귀한 손님들을 모셔 미안하다며 연신 사과하고 있었다. 그러다 경기가 시작되고 숨 막히는 취재 열기만큼이나 긴장되는 순간이 지속되다 생방송 중 사건이 발생한다. 

미라와 라라

국문과에서 미라 언니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서른두 살에 입학한 장수생이라서 보다 하얀색 SUV를 끌고 다녀서 이목을 집중시키는 언니는 데뷔하면 사용하게 될 필명인 라라를 자신 주위에 온통 붙이고 다니는 눈에 띄는 인물이었다. 
언니는 어릴 때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주식으로 대박이 나 부자라는 이야기도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켰지만 더 중요한 건 국문과에서 글을 못쓴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언니가 여름방학이 끝나고 중편소설을 들고 왔고 이제까지의 글을 잊게 할 만큼 가능성 있는 작품을 들고 오게되었는데 그 작품에는 충격적인 비밀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작가님의 작품은 현실적이라 좋다. 있을법한 소재, 실제 존재할법한 주인공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작가님 시선으로 담아내는 데 있어, 굉장히 날카로우면서도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준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그중 연수라는 작품과 라이딩 크루란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연수는 내가 초보 때 도로 위를 나설 때의 심정이 느껴져서 그렇기도 하고, 강사님의 가르침을 읽다보니 점점 빠지게하는 강의 스타일에 정신이 안차려졌다. 거기다 기에 전혀 눌리지 않는 강사님의 포스에 나 역시도 눌려 읽다 보니 책 넘기는 속도를 느끼지 못하게 후다닥 읽게 해서 였다면, 라이딩 크루는 그냥 웃겼다. 라이딩 크루로 시작해 결국 야밤에 자존심을 건 두 남자의 결투는 어떤 것보다 비장했고, 그 장면까지 머릿속으로 상상되어 박장대소할 수밖에 없었던것 같다. 무슨 일인지 말하면 큰 스포라 소개하지 못하겠지만 꼭 라이딩 크루는 읽어보라고 강추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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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3-07-30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시험 붙자마자 운전을 하게 돼서 연수는 따로 안 받었는데 도로 시험볼 때 중앙선 침범이었는데 시험관이 엄청 화 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중앙선 침범도 차가 거의 없었던 상황에서 중앙선 라인을 살짝 침범한 건데 화를 내서 황당했던 적이 있었어요!!
 
여전히 미쳐 있는 - 실비아 플라스에서 리베카 솔닛까지, 미국 여성 작가들과 페미니즘의 상상력
샌드라 길버트.수전 구바 지음, 류경희 옮김 / 북하우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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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도착했네요 잘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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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위픽
정해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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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앉은 남자의 동공이 떨렸다. 
이 남자가 주장하는 것은 무죄인가 심신미약일까, 자신은 죽이지 않았다고 말하다가 느닷없이 죽였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게 절대 이 사건을 맡고 싶지 않아지게 했다.

5촌 당숙의 친구 아들의 친구인 이 사진작가는 누가 봐도 살인범임이 확실해 보였다.

23년 1월 18일 사진작가 유대평은 보조작가 이우리와 함께 숙박 시설로 등록한 오피스텔에 투숙하였고, 그리고 1월 19일 이우리는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이우리는 피를 잔뜩 뒤집어쓰고 기절한 듯 잠이 든 유대평과 함께 발견되었는데, 시신 옆에서 발견된 칼에서 유대평의 지문이 잔뜩 나왔고, 유대평의 손톱에서는 이우리의 유전자가 나옴과 동시에 유대평은 즉시 구속되었다.

그는 자신은 마약에 취해서 아무 정신이 없었는데, 눈을 뜨고 보니 살인자가 되어 있었다고 주장했다. 

5촌 당숙의 부탁에 맡게 된 사건이었으나 누가 봐도 빼박 살인범은 유대평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여기서 끝날 수 없으니 꼭 살려달라는 부탁과 함께 수임료를 4배 부르는 그의 대답에 그의 무죄를 강력하게 믿고 싶어지며 사건 조사가 시작된다. 

사건 당일을 제대로 기억 못 하던 유대평은 자신이 이우리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 장면과 자신의 방에 왜 이우리가 들어와있는지 의문이었다는 말뿐이었다.

변호사인 주인공은 사건을 최초 목격한 오피스텔 직원 강민준과 숙박시설에 작업을 위해 투숙했던 모델 이미래,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 천경선을 만나게 되었고, 이 사건에는 조금 더 깊은 관계가 얽혀 있음을 짐작하게 된다. 

열심히 추리하며 읽었는데 몇몇 부분은 짐작했고 몇몇 부분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라 놀라웠다.

변호사의 일부가 되어 열심히 추리해나가며 읽다 보니 순식간에 시간을 지나가게 했고, 사건은 해결돼 있었다. 

모델 이미래의 숨겨야만 했던 비밀과 살인은 안 했으나 마약은 했다던 뻔뻔한 유대평의 정말 추악한 진실이 뒷부분에 공개되어 있었고 소름 돋았던 부분이었다.

일단 중간중간 트릭은 숨겨져 있었다.
우리는 읽으면서 트릭을 찾아가는 재미를 느끼기만 하면 되는 짧지만 강렬한 추리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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