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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 망가진 책에 담긴 기억을 되살리는
재영 책수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1월
평점 :
우선 책 수선가라는 직업이 굉장히 생소했다.
어떤 일을 주로 하는지도 궁금했지만 책 수선을 통해 탄생된 책들이 궁금해서 신간 목록에서 제목을 보자마자 냉큼 집어 읽게 되었다.
작가님도 사실 생소했다고 밝히는 이 분야를 처음 접한 건 2014년 미국 유학을 갔을 때였다고 한다. 실제 전공은 순수 미술과 그래픽 디자인이었는데, 지도 교수로부터 책 수선가로 일을 하며 전공의 세부 내용(북 아트, 제지)을 배워보라는 조언을 듣고 처음 알게 되었다고 했다. 책 수선일 만큼 세부 전공을 효과적으로 익힐 수 있는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이유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지금의 작업실을 갖기 전에는 학교 건물 지하 한층 전부인 책 보존 연구실이란 곳에서 수련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곳에서는 도서관에서 보유한 온갖 도서들을 다루며 파손된 책이나 희귀 서적을 수선하며 관리하는 일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새 종이와 오래된 종이를 다루는 방법부터 시작해, 칼질과 풀질의 섬세함을 배우게 되었고, 다림질과 지우개 쓰는 법 등 기초만 해도 반년 넘게 익히며 복원의 다양한 기술을 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수선의 범위도 궁금했다. 책의 수선은 찢어진 종이를 다시 붙이는 일, 훼손된 글자를 되살리는 일, 표지를 바꾸거나 최대한 비슷하게 복원하는 일, 실로 엮인 제본이 다 풀어져 너덜거리는 양장본을 다시 튼튼하게 엮어내는 일, 책을 전체적으로 깨끗하게 세척해 내는 일도 포함되었고, 그 외에도 사진첩의 복원, 책갈피 등의 수선도 작업에 포함되어 소개되어졌다.
책을 복원은 기술 뿐아니라 책을 향한 의뢰인들의 간절한 마음을 이해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여 그 마음을 작업으로 표현해내는 것이라는 것을 작업 후기를 통해 표현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수선된 작품마다 작가님이 의뢰품을 향한 최선의 노력들이 완성된 작품으로 보여졌고 그런것들이 읽는 내내 굉장히 감동으로 느껴졌다.
소개된 사연들도 특별했는데,
26년의 세월을 함께한 낡은 성경 책의 복원 작업의 의미, 해외 여행지의 추억을 담은 여행지에서 구매한 책의 수선 이야기,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나 애정하고 수집해온 책을 수선했던 일, 할머니의 유품인 낡은 일기장을 수선 작업한 일, 한 몸처럼 세월을 함께한 낡은 옥편을 수선한 일, 곰팡이 핀 결혼 앨범의 복원기, 소중한 낡은 책갈피의 수선 등 오래되고 손때 가득한 버릴 수 없는 개개인의 사연을 소개하며 의뢰인의 기억을 더 짙게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한 후기들이 담겨져있었고, 거기다 의뢰인들이 간직하고 싶어 하는 감정들도 함께 느껴져 새로운 기분이었던게 기억에 남는다.
버릇처럼 책을 소중하게 다룬다며 모서리 자국 하나 남기지 않으려 하거나 속지 하나 구겨지지 않게 행동하던 내 모습을 반성하게 만들었다.
책은 귀하게 책꽂이에 모시고만 있는 것이 책을 사랑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가방에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도, 내 침대 주변에 돌아다녀도 생활에 함께하며 세월을 함께 하는 것이 책에 대한 최대의 예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난생 처음 하게 되었고, 책에 남겨진 흔적, 상처, 낙서가 내가 가질 수 있는 값진 추억일 수 있고, 동거동락하다보면 평생을 함께할 나의 반려 책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일 것이라는 걸 알게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