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므레모사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8
김초엽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12월
평점 :
렘차카 특별 구역은 구글에서 찾을 수 없는 꽤 외진 곳에 위치한 지역이었다.
과거 군사 구역이자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던 곳으로
전쟁이 끝나고 찾아온 평화 사이에 렘차카 공장과 연구소에 원인 불명의 화재가 발생하였고,
통제할 수 없는 속도로 유독성 화학물질이 바람을 타고 퍼져버려 농작지, 식수원 등이 광범위하게 초토화돼 버렸다. 오염된 수돗물을 먹다 이름 모를 질병에 죽어가는 사람이 차츰 발생됨에 따라 렘차카 특별 구역은 출입 금지 구역으로 지정되어 버렸다고 한다. 그 이후 죽음의 땅, 인간이 밟을 수 없는 지역이 되어 버렸는데 온갖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던 차에 이곳에 다시 귀환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는 소문과 함께 첫 투어를 공개 모집했고 귀환자의 마을이라는 므레모사에 주인공 유안이 함께 하게 된다.
므레모사는 귀환자의 마을답게 소문이 무시무시했다.
신체가 좀비처럼 변한 사람들이 모여 좀비 마을일 것이라는 소문이 퍼져있었는데, 투어자들 또한 이 소문에 대해 내심 기대하는 눈치였다. 무언가 목적을 가지고 투어에 참여한 사람들 가운데서 주인공 유안과 레오라는 남자가 가장 목적이 불분명해 보였다. 섞일 듯 섞이지 않는 둘은 레오가 유안의 캐리어 안에 나이프를 숨겨 반입하게 되고, 이 사건을 이후로 유안이 원하든 원치 않았던 두 사람은 여행 중 스스로를 낙오시켜버린 동지가 되어 므레모사의 진실을 파헤쳐 가기 시작하며 이야기가 깊어져 갔다.
좀비 마을이라는 소문보다 내게 더 기대되던 건 므레모사에 도착하고 공기 중에 은은하게 나는 단내들과 사람의 손길이 오랫동안 닿지 않은 제한 구역을 마음껏 상상해 내는 일이었다. 귀환자들이 돌아왔으나 뭔가 섬뜩하고 오싹한 느낌을 주는 풍경들과 제3의 언어인 이르슐어 작가님의 이전 작품들이 떠오르며 장르가 SF와 공포를 오가는 느낌이 새롭고 재밌었다.
주인공은 유명인이었고, 끊임없이 자신의 몸을 움직여 생명력을 얻는 무용수였으나 자신의 다리를 잃고 기계 다리가 대신하게 되며 춤추는 일이 기쁘지 않았다고 했다. 오히려 움직임을 멈췄을 때, 가만히 있을 때 편안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통해 후반부쯤 돼서야 왜 유안이 이 여행에 참여했고, 마지막 선택을 그렇게 했을까 이해할 수 있었다.
므레모사 마을은 눈앞의 진실, 그리고 진실 너머의 진실이 존재하는 미지의 구역으로 소설의 훌륭한 배경이 아니었나 싶다.
실제론 종이 시트지를 순식간에 붉게 만들어버리는 커맨드라는 생화학 무기에 중독되어 있는 구역이지만 이것들 때문에 묘한 중독을 일으키고 알 수 없는 암시들이 므레모사를 구성하는 것들을 살아가게 만드는 힘으로 보였다.
귀환자들의 정체, 그리고 투어를 시작한 목적, 마을 사람들의 종교 의식 같은 반복되는 행동들은 재난 이후 그들만의 삶을 만들어가는 또 다른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난이란 소재가 굉장히 와닿는 요즘, SF스럽지만 어쩌면 현실적이지 않았나 싶어서 푹 빠져서 읽었던 것 같다.
마지막에 유안의 행위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삶을 포기하기보다 살아가려는 행위 같아 보였고, 하나의 메시지 같다고 느껴졌다. 굉장히 작가님스러운 열린 결말 같아서 이번 소설도 꽤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