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나 프리발로바, 육상 여자 400m 허들 금메달'. 순간 귀를 의심했다. 처음엔 '동명이인'인 줄 알았다. 고개를 들어 TV를 봤다. 기자는 두 눈을 똥그랗게 뜬 채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그렇다. 그녀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프린터 이리나 프리발로바(러시아)와 동일인이었던 것이다.

가슴 찡한 '인간 승리'의 드라마가 있어서 더욱 멋진 올림픽. 2000년 시드니 올림픽도 예외는 아니었다. 9월 27일 밤 여자육상 400m 허들경기가 열린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는 11만 관중의 기립박수로 물결쳤다. TV로 경기를 지켜봤던 사람들도 밀려드는 감동을 어쩌지 못했다. 시상대 맨 위 칸에 서서 눈물을 글썽이는 프리발로바를 보면서 많은 육상팬들의 눈시울도 붉어졌으리라.

알다시피 프리발로바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여자육상 400m 허들 금메달리스트'라는 타이틀을 얻기 전까지 세계를 주름잡는 단거리 스타로 명성을 떨쳤다. 94년 유럽선수권에서는 100, 200m를 석권했고, 그녀가 93년 세계실내육상대회 60m에서 세웠던 세계기록(6초92)은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다. 수상경력을 일일이 나열하지 않더라도 흑인 선수들 틈바구니에서 금발의 긴 생머리를 흩날리며 폭발적으로 질주하던 프리발로바의 모습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프리발로바에게 커다란 시련이 닥쳤다. 99년 훈련 도중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부상을 당한 것이다. 주치의로부터 "선수생활이 끝났다"는 진단을 받았다. 올림픽 출전은 고사하고 정상적인 생활조차 힘들었다. 검은 장막을 씌운 듯 앞이 깜깜했다. 노랑 물감을 뿌린 것처럼 하늘이 노랬다. 하지만 선수생활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킬레스건 이식 수술을 받은 그녀는 혹독한 재활훈련 끝에 400m 허들 선수로 변신했다. 그리고 마침내 '시드니의 기적'을 일궈냈다. 당시 그녀는 32살 주부였다.

사실 올림픽 전까지 그녀의 우승을 예상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금메달이 확정되자 프리발로바 자신도 한동안 믿기지 않는 듯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2000년 2월 본격적인 훈련에 돌입한 후 정식으로 400m 허들 시합에 나간 건 시드니올림픽이 8번 째였다.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디온 허밍스(자메이카)도 떡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불굴의 투지 앞에서 일천한 400m 허들 레이스 경험은 장애물이 될 수 없었다. 그녀의 강한 정신력 앞에서는 세계 챔피언 허밍스도 힘을 쓰지 못했다. 세계 만방에 '아줌마의 힘'을 유감없이 발휘한 프리발로바는 시드니 제패 이후 조국 러시아에서 진정한 올림픽 영웅으로 추앙 받았다.

'60m에서 800m까지'. 올림픽이 끝난 후 "800m에 도전하겠다"고 말한 프리발로바. 시드니에서 마음 짠~한 감동을 선사했던 그녀는 40세까지 트랙선수로 뛰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그녀의 도전은 계속된다. 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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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하면 못 알아볼 뻔 했다. 16년 전, 고등학생 시절의 앳된 모습만 생각하고 만나러 간 왕희경 씨. "얼굴이 많이 변했죠".(웃음) 그의 말마따나 처음엔 딴 사람인 줄 알았다. 얼굴에서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건 당연한 거고, 사실은 너무 이뻐져서 말이다. 마침 주말 내내 심술을 부리던 장마비도 얌전해지고, 직사광선을 뿜어대던 햇님도 꼭꼭 숨었다. '날씨 한 번 끝내주는' 7월의 어느날 오후, 성이 '왕' 씨라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왕년의 명궁사' 왕희경(35)을 만났다.

♦ '눈물' 88년 서울올림픽 개인전

"김수녕 선수가 워낙 잘해서요". 왕희경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표정에선 아쉬움이 뚝뚝 묻어났다. 그는 88년 서울올림픽 여자양궁 개인전에서 김수녕에 이어 은메달을 차지했다. "그때 많이 울었죠". 사실 왕희경에겐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대회였다. 88년 대회는 그랜드FITA방식이 처음 채택된 올림픽. 이것은 오픈라운드를 통과한 선수들이 24강부터 6명씩 커트되어 '최후의 8명'이 메달을 놓고 대결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8강 최종결승을 앞두고서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활 쏠 때 가운데 손가락에 끼우는 걸 잃어버렸어요". 어디에 뒀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경기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마음도 초조해졌다. "결국 찾다가 없어서 다른 걸 끼고서 경기를 했어요". 시합 중간에 찾아서 바꿔 끼긴 했지만 심리적으로 많이 흔들렸다. "꼭 그것 때문에 진 건 아닐 수도 있는데 자꾸만 아쉬움이 들죠".

당시 한국 여자팀(김수녕-왕희경-윤영숙)은 개인전 금, 은, 동메달을 모조리 휩쓸었다.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3개의 태극기가 동시에 게양되는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정말 가슴 뭉클한 감동이었다. 그런데 왕희경에겐 '안 좋은 추억'이 있다고. 김수녕의 마지막 화살이 과녁에 꽂혀 금메달이 확정되자 사람들이 죄다 그 쪽으로 몰려갔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 그런데 슛오프(3발로 승부를 겨루는 연장전) 끝에 윤영숙이 아르자니코바(구소련)를 꺾고 동메달을 차지하자 사람들은 또 그 쪽으로 우르르 달려갔다. 은메달리스트 왕희경만 중간에 덩그라니 남은 것이다."2등도 잘 한 거지만 그때는 많이 서러웠죠".(웃음)

♦ '웃음' 88년 서울올림픽 단체전

개인전 다음날 열린 단체전에서 한국 남녀팀은 동반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다. 특히 여자팀은, 미국과 엎치락 뒤치락 시소게임 끝에 금메달을 거머쥔 남자팀과 달리 초반부터 독주하며 여유있게 우승했다. 일찌감치 우승을 확신한 탓인지 선수들은 그저 밝은 표정으로 악수만 교환했다. "마음이 홀가분해지더라구요".(웃음) 왕희경은 개인전에서 은메달에 그친 아쉬움을 말끔히 씻어냈다. 무엇보다도 동료들과 함께 일궈낸 금메달이라 더욱 값졌다. "개인전과 달리 단체전은 한 사람이라도 실수를 하면 안 되거든요". 아무리 '퍼펙트 골드'를 수 십 번씩 명중시켜도 한 번 '삑사리' 내면 공든 탑이 무너지는 건 한 순간 아닌가. '여고생 트리오'는 시상대에서 손을 맞잡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야말로 백만 불짜리 웃음이었다. 한국양궁은 88년 서울올림픽에서 금3, 은2, 동1개의 빼어난 성적을 거뒀다.

♦ 부담감 극복하는 게 가장 힘들었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밥 먹듯이’ 따는 양궁. 그래서일까. 많은 사람들이 '양궁은 올림픽 나가면 무조건 금메달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선수들에게는 주변의 지나친 기대가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금메달은 당연히 따는 거고, 오히려 누가 따느냐에 관심의 초점이 모아졌죠". 내색은 안 했지만 성적에 대한 압박을 견뎌내는 게 쉽지 않았다고. "남들이 봤을 땐 아무나 금메달 따면 되는 거겠지만 선수들은 또 자기 욕심이 있잖아요".(웃음) '올림픽 메달보다 더 어렵다'는 국내선발전을 거쳐 난생 처음 밟은 올림픽 무대. 금메달에 대한 욕심이 왜 안 생기겠는가. 더구나 왕희경은 당시 대표팀 맏언니였다. 그래 봤자 다 같은 고등학생이었지만.^^ '87년 세계선수권 때까지 막내였다가 갑자기 최고참이 된' 그는 운동 하랴, 후배들 챙기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모두 명심할지어다. 선수들한테 부담감 주지 말길.

예전부터 궁금했었다. 도대체 한국 양궁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세계양궁연맹은 귀신같이 활을 잘 쏘는 한국선수들을 견제하기 위해 심심하면 경기방식을 바꿨다. 하지만 그다지 효과를 보지 못했다. 숱한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코리아 궁사들은 꿋꿋하게 세계 정상을 지키고 있다. "운동량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궁금증은 일시에 풀렸다. "지구력 강화를 위해서 운동장도 많이 뛰었구요. 담력 기르려고 새벽 산행도 많이 했죠". 한국양궁이 세계를 쥐락 펴락 하는 비결은 역시 '빡센' 훈련에 있었다.

♦ 저희도 양궁부부랍니다

유난히 커플 많기로 소문난 양궁. 알고보니 왕희경도 '양궁부부'였다. 그의 반쪽은 임희식(현 IN스틸 코치) 씨.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 출전했던 선수다. 언제 처음 만났냐고 물었더니 입가에 슬쩍 미소가 번진다. "사실은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짝사랑 했었어요". 앗, 얘기가 점점 흥미로워지는 걸. 대체 언제부터 가까워졌냐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두 사람의 '사랑이 꽃 핀 시기'는 왕희경이 일본 긴키대학에서 2년 여 간 코치생활을 하던 94년 가을 무렵부터. "당시 제가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때 전화로 위로도 많이 해주고 그래서 친해졌죠". 부럽다, 부러워~ 그쪽에서 재계약을 원했지만 거절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두 사람은 97년에 결혼했단다. 왕희경은 어느덧 두 형제(성환, 수환)를 키우는 엄마가 됐다. "올해 초등학교 들어간 첫째 애가 활 쏘는 걸 좋아해요"라며 아들 자랑에 여념이 없는 그를 보자 갑자기 후훗~ 하고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누가 양궁선수 아니었댈까봐'.^^ 아울러 그는 "기회가 되면 지도자로 활약하고 싶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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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의 올림픽 첫 여자 금메달리스트는 84년 L.A올림픽 양궁에 출전했던 서향순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첫 올림픽 여성 챔피언은 누구일까? 바로 유도스타 계순희(24)다.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여자유도 48kg급 결승. 계순희의 상대는 '일본 유도의 자존심' 다무라 료코였다. 사실 계순희의 승리를 점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국제경험이 일천한 16세 소녀와 당시 84연승을 달리며 무적시대를 구가하던 유도여왕간의 대결은 보나마나 였다.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료코를 시종일관 밀어붙인 계순희는 종료 직전 효과 2개를 따내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료코는 자신의 패배가 믿기지 않는 듯 망연자실해 했다. 체육관을 가득 메운 일본관중들도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반면 계순희는 감격에 겨워하며 뺨 위를 타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16세 무명소녀의 유쾌한 반란에 전 세계가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올림픽 제패 이후 52kg급으로 상향조정한 계순희는 2001뮌헨세계선수권 정상에 섰고, 57kg급으로 올려 출전한 2003오사카세계선수권에서 또 한 번 세계를 메쳤다. 계순희의 최대 무기는 힘이다. 남자를 방불케 하는 엄청난 힘의 소유자인 그의 무시무시한 괴력 앞에 웬만한 선수들은 그냥 나가떨어진다. 찾은 체급 변경 속에서도 꾸준히 정상을 지키는 원동력은 바로 타고난 힘 덕분이다.

그는 2003세계선수권에서 세계 최강임을 다시 한 번 입증시켰다. 사실 체급변경과 바쁜 정치활동 때문에 금메달을 확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강호들을 차례 차례 제압하며 세계선수권 2연패를 달성했다. 덤으로 가장 훌륭한 기술을 뽐낸 선수에게 주는 베스트 플레이어상도 받았다. 계순희는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에서 3개 체급을 석권하는 대기록을 자축하듯 손가락 3개를 펼쳐 보이는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이 보다 멋질 순 없었다.

계순희는 북한의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 후보 1순위. 그에게는 금메달을 따야 하는 이유 3가지가 있다. 우선 '시드니의 아픔'을 씻어내야 한다. 그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준결승에서 레그라 베르데시아에 발목이 잡혀 동메달에 그쳤었다. 또 하나는 올림픽 2회 제패에 대한 뜨거운 열망 때문. 이번에 금메달을 따면 북한 여자선수 중에서는 최초로 올림픽 2회 우승의 위업을 달성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아테네 하늘에 '아리랑'이 울려 퍼지기를 소망하는 마음 때문이다. 8월 16일, 계순희는 남한유도의 기대주 이원희(73kg급)와 동반출전 한다. 2003년 세계선수권에서 나란히 정상에 섰을 때처럼 유도 경기장이 다시 한 번 한반도기로 물결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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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겨루는 인류 최대의 스포츠 잔치, 올림픽. '올림픽'이라는 말은 비단 스포츠 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 걸쳐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언제인가부터 "대규모 국제대회=올림픽"이 됐다. '게임 올림픽' '기능올림픽'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올림픽'은 어디서 유래된 말일까. 고대 그리스인들은 최고의 신 제우스를 기리기 위해 4년에 한 번씩 올림피아에 모여 종교행사를 가졌다. 이것을 '올림피아 제전'이라고 불렀는데, 올림픽은 여기서 따온 말이다. 고대올림픽(올림피아 제전)은 BC 776년부터 293회에 걸쳐 393년까지 빠짐없이 계속됐다. 하지만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인정한 로마의 테오도시우스 1세는 제우스를 떠받드는 올림피아 제전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결국 중단됐고, 1896년 쿠베르탱의 노력으로 그리스 아테네에서 근대올림픽으로 부활됐다.

고대올림픽에서는 경주, 5종경기(단거리 달리기, 멀리뛰기, 투창, 투원반, 레슬링), 복싱, 판크라티온, 나팔수 경주 등이 치러졌다. 특히 경주가 열렸던 스타디움(212.54mⅹ28.50)은 많은 전설을 갖고 있다. 스타디움의 길이를 정하기 위해 헤라클레스가 왼발, 오른발 번갈아가며 6백보를 걸었다고 한다. 경주로의 실제 코스는 출발선을 기준으로 정확히 197.27m. 따라서 헤라클레스의 발 시이즈는 320임을 알 수 있다고. 혹자는 또 말한다. 2천8백년 전에 지어진 경건한 스타디움에서 맨발로 뛸 때 “처음으로 내 몸이 하는 말을 들었다”고 말이다.

오늘날의 올림픽은 운동선수들이 힘과 기를 겨루는 장이다. 하지만 고대올림픽은 스포츠 시합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운동시합 외에도 시, 예술, 철학 등의 경연이 열렸다. 특히 올림픽 기간 동안 모든 전쟁행위가 중단됐다. 올림픽은 성스러운 축제이자 도시국가(폴리스)들의 평화를 증진시킨 대회였던 것이다.

'근대올림픽의 창시자' 쿠베르탱은 올림픽의 이상을 인간의 완성과 세계 평화에 두었다. 그러나 올림픽의 숭고한 정신은 점점 퇴색되었다. 그간 1,2차 세계대전으로 올림픽이 3차례 중단됐었고, 정치적인 문제의 개입으로 테러가 일어나고, 출전 보이콧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인류 평화의 제전'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수 없다.

아테네 올림픽 개막을 한 달 가량 앞둔 지금, 제우스의 성소에서 나체로 역량을 겨뤘던 고대 그리스인들을 다시 떠올린다. 육체를 단련시켜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어서고자 했던 그들의 순수성을 다시 음미해 본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숨결과 맥박이 느껴지는 아테네 올림픽. 혼탁한 세상, 시원한 물줄기처럼 청량감을 느낄 수 있는 대회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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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다". 2003년 4월 자국에서 열린 런던마라톤에서 세계최고기록으로 우승한 폴라 래드클리프(32)가 결승선을 통과한 뒤 내뱉은 첫 마디다. 그가 세운 기록은 2시간15분25초. 그야말로 '놀라 자빠질 만한' 기록이건만 그는 아직도 기록에 목마른가 보다.

래드클리프는 '마라톤 여제'로 통한다. 지난날 그가 이룬 빛나는 업적을 살펴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은 물론이고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풀코스 데뷔 무대인 2002년 런던마라톤에서 2시간18분56초로 우승한 그는 같은 해 10월 시카고마라톤에서 다시 정상에 섰다. 그것도 세계최고기록(2시간17분18초)로. 그리고 6개월 후 2003년 런던마라톤에서 세계기록을 1분53초 앞당겼다.

달릴 때마다 기록을 갈아치우는 여자, 래드클리프. 100m만 달려도 헉헉대는 사람들이 봤을 땐 그가 '인간'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다. 도대체 뭘 먹고 그렇게 잘 달리는 지 머릿속이 물음표로 가득할 것이다. 그는 말한다. "뛰는 걸 즐기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죠". 마라톤 광, 아버지를 둔 덕분에 일찌감치 달리기의 세계에 눈을 뜬 그는 결혼도 육상선수 출신과 했다. 어쩌면 그에게 달리기는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래드클래프의 등장은 여자 마라톤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 현재 남자 마라톤 세계최고기록은 2003년 9월 베를린마라톤에서 폴 터갓(케냐)이 세운 2시간4분55초. 10년 전까지만 해도 남녀 마라톤 세계기록은 15분 정도의 격차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10분30초로 줄었다. 여자 마라톤이 2시간 10분 벽을 돌파한다면 그 주인공은 래드클리프가 될 가능성이 크다.

래드클리프가 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할 지는 미지수다. “올림픽 때 마라톤을 뛸 지 1만m를 뛸 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만약 래드클리프가 출전한다면 월계관은 그의 차지가 될 것이다. 2004년 보스턴마라톤 우승자 캐서린 은데레바(2시간18분47초)의 기록은 세계최고기록에 3분22초 뒤져 있다. '봉봉남매' 함봉실(2시간25분31초)의 기록은 10분 가량 처진다. 다만 35도를 웃도는 무더위와 오르막 경사가 많은 난코스가 변수가 될 듯.

아테네 올림픽 마라톤은 기원전 490년 그리스 병사 필리피데스가 달린 마라톤 평원에서 진행된다. 많은 사람들이 근육질 몸매와 검은 선글라스가 트레이드 마크인 래드클리프의 역주를 보고 싶어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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