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착각 - 뇌는 어떻게 인간의 정체성을 발명하는가
그레고리 번스 지음, 홍우진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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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는 어떻게 인간의 정체성을 발명하는가 ”

예전에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읽고 이 “뇌”라는 신비로운 기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몸에서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 뇌가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파고들면 들수록 마치 양파껍질 까듯 새로운 면이 드러나는 것 같다. 이 책 [나라는 착각]의 작가 그레고리 번스는 심리학 교수이자 신경과학자 그리고 정신과 의사이기도 하다. 주로 도박, 사랑, 권력과 같은 보상에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연구했다고 하는데, 사실 이 분야가 제일 궁금한 게 사실이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는 이에 대한 소설도 썼다)

책은 크게 3개의 장으로 나뉘고 각각 편집된 자아, 만들어진 자아 그리고 꿈꾸는 자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저자는 자아가 허상이라는 점을 증명하고자 하면서 "편집된 기억으로 이루어진 자아" 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는 경향을 가진 존재라 우리가 떠올리는 과거의 기억은 매우 부정확하고 선별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게 그의 주장. 6장에 나오는 [내 안의 다중 인격들]에 등장하는 현실판 지킬 박사와 하이드인 크리스틴 비첨의 예가 대단히 흥미로웠다. 어떤 노래 가사 중에 "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라는 대목이 있는데, 진짜 우리가 모르는 다양한 자아가 숨어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들어진 자아 편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현재의 이런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는지가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된다. 작가는 여러 이론과 실험 등의 증거를 통해서 인간은 개인주의를 싫어하고 협력을 선호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나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것은 허구이고 어쩔 수 없이 집단에 순응하도록 진화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 유명한 밀그램의 전기 충격 실험도 나오고 저자 본인이 만든 "재정적 결정"이라는 실험도 소개가 된다. 이 분야가 특히 흥미로웠는데, 개인보다는 집단의식이 더 누군가의 정체성을 공고하게 만들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꿈꾸는 자아 편에서는 이야기가 우리의 뇌를 바꿀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저자는 실험을 통해서 소설을 읽는 동안 특정 뇌 영역 부분이 활성화됨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문학이 독자를 작가의 세계로 끌어들이게 되고 그동안 독자의 감각 운동 네트워크에서 변화가 발생한다는 것. 물론 TV나 영화와 같은 매체들도 시청자들에게 몰입감을 제공하기는 하지만 독서에 비해서는 다소 소극적인 활동이라 그 영향력이 미미하다고 강조한다. 쓰레기를 읽으면 쓰레기가 된다는 부분 (거짓 뉴스의 유해성) 과 진짜 원하는 삶을 위해서 가상의 후회를 통해 현재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부분도 흥미로웠던 것 같다.

미래의 당신은 단일한 존재가 아니다. 미래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미래의 당신은 가능성의 집합이자 여러 궤적을 가진 가능성의 존재다.

우리는 압축, 예측, 해리라는 과정을 통해 어떤 미래를 선택할지 결정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머릿속에 인생의 가치에 상응하는 서사의 기본 함수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서사의 교체 과정은 반드시 느리고 신중해야 한다. - 326쪽

결국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작가가 그렇게 먼 길을 돌아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뒤표지에 나와있는 " 인간은 자아를 갖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서 자아를 만들었다 " 문장에 모든 게 다 나와있다는 느낌도 든다. 우리가 먹는 것이 곧 나이고, 우리가 소비하는 서사가 곧 내가 되듯이 우리가 창조하는 이야기가 미래의 나를 만들어갈 거라는 이야기? 과거의 나는 이미 여러 서사를 통해서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그 과거가 현재를 거쳐 미래로 이어질 거라는 게 저자의 주장인 듯하다. 다양한 연구 사례와 실험들 그리고 신화와 문학 등등등 대단히 풍부한 자료들 덕분에 굉장히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책 [나라는 착각]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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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세는 천하를 잡으러 간다
미야지마 미나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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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올여름을 세이부에 바칠까 한다."

인생은 나루세처럼! 소설 [나루세는 천하를 잡으러 간다]를 읽고 이 문구를 떠올렸다. 혹은 나루세 하고 싶은 거 다 해! 라는 문구도 떠올렸으니, 책 한 권 읽고 나는 나루세의 진정한 팬이 되었나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괴짜에 마치 A.I.를 인간으로 만든 듯한 모습의 소녀 나루세. 말투는 좀 이상하고 행동도 엉뚱하지만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치고 사랑스러운 소녀가 아닐 수 없다.

나루세는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못하는게 없다. 동아리 활동도 너무 잘해서 대회에서 맹활약을 펼친다. 그런데 남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행동하고 ( 실험을 위해 머리를 빡빡 밀고 학교에 감) 2백살까지 살겠다는, 허무맹랑한 결심을 장난기 없이 진지하게 내뱉는다. 마치 방금 우주선을 타고 지구에 내려온 외계인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친구들로부터 일종의 따돌림을 받지만, 그것도 그다지 개의치 않는 그녀.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나는 나루세라는 한 인격체가 가진 여러 장점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공동체"를 사랑한다. 오쓰시의 자랑거리였던 "오쓰 세이부 백화점" 이 폐점을 하게 되는 것을 계기로 매일 그곳에 출근하다시피 하는 그녀. 중2 여름의 추억을 남기고자 하는 행동이라곤 했지만, 나루세에게는 추억 그 이상의 의미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루세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절친 시마자키를 꼬셔서 전혀 승산없는 만담 대회에 나가는 장면이 웃기면서도 놀라웠다. 이리 저리 재지 않고, 재미있겠다 싶으면 일단 하고 보는 추진력 있는 성격. 현실에 있다면 바로 친구로 삼고 싶은 그런 사람이라고나 할까?

이 책은 나루세와 친구들 그리고 지인들이 엮이면서 벌어지는 소소한 에피소드와 사적인 감정들을, 평범한 듯, 특별하게 그려낸다. 어떻게 보면 나루세의 개성 만점 성장기를 그리고 있는 듯 하면서도 나루세가 살고 있는 작은 도시 오쓰시의 풍경과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친구나 가족들의 삶도 충실하게 담아내는 점도 좋았다.

앞으로 나루세의 삶은 어떻게 펼쳐질까? 약간 뚝딱거리는 것 같지만 그 누구보다도 삶을 빛나게 살아가고 있는 소녀 나루세를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싶은 이야기 [나루세는 천하를 잡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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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회고록 네오픽션 ON시리즈 19
김연진 지음 / 네오픽션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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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흘러넘치도록 내버려둔 '악'이 인탈리엔을 집어삼켰을 때,

태초의 '악'을 자각한 말루스는 깨달았다.

저들의 악에 비하면 내 악은 선이로구나.“

선과 악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고 매우 철학적으로 접근한 듯한 책 [악의 회고록]

세상이 점점 악으로 물들고 있다고 느껴지는 이때, 선과 악은 어떻게 비롯되었을까?

라는 의문을 품어본 사람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 구조나 내용이 흥미로워서 작가 김연진씨의 이력을 봤더니, 역시

과학 전공에 철학을 즐기시는 분이라 한다.

소설 [악의 회고록]은 서사 구조가 뚜렷하고 사건이 빵빵 터지는 종류의 책은 아니다.

실제로 악이 행해지는 모습을 다루기보다는, [악의 회고록]이라는 제목처럼

악의 세상으로 스며들기 시작한 과정을 누군가의 입을 통해 들려준다.

주인공 말루스와 에스투스가 대화하는 부분이 많아서 철학자들이 나누는

대화를 담은 철학서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선과 악이라는 개념 자체가 있을 수 없었던 충만하고 이상적인 세상 인탈리엔.

이곳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들을 이끄는 위대한 정신을 믿고 따르며 모두가

한 몸, 한뜻으로 살아가고 있다. 개인으로 존재하기보다는 함께 하는 삶에

기쁨과 행복을 느끼며, 있는 그대로의 삶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사람들.

말하자면, 인탈리엔 사람들은 매일을 감사와 수용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모두가 행복한 이때, 홀로 불행한 자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바로 말루스.

공동체보다는 개인을, 수용보다는 의심을 믿는 그는 빛으로 가득한 이곳에서

어둠을 지향하는 자신의 마음을 깨닫게 된다. 조금씩 악을 실행하는 말루스.

거짓말을 하거나 남의 물건을 훔치는 등, 인탈리엔 사람들 중 다른 그 누구도

하지 않는 일을 하기 시작하는데...

소설의 주인공 말루스는 어쩌면 ”악 “의 기원이라고 볼 수 있다.

마치 에덴동산 같은 인탈리엔에서 그는 매일 터질 듯한 답답함과 고통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날, 말루스의 행복만을 기원하던 에스투스가 그에게서 악을 배우겠다고

선언하게 되고, 아주 충실하게 말루스로부터 악을 배워가기 시작하는데...

” 내가 두 개의 독립적인 세계라고 생각했던 것, 세상의 끝이라고 믿었던 것,

온갖 복잡하고 무한하고 기묘하며 어리석었던 선과 악의 뒤엉킴이 결국은

내 작은 세상 안에서만 존재하는 유희였음을 깨달았다. (..중략..) 아아, 끔찍이도

사랑스러웠던 나의 악이며. 악은 결국 나의 다른 이름이었다. 내가 나이길 바랐던 모습,

허상이었다 .“ - 189쪽 -

매우 지적이고 철학적인 소설이다. 약간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인탈리엔이라는 세상과

주인공을 이미지화하기 힘들었다는 점이다. 책 내용의 대부분이 마음 속의 악을 발견하고, 탐구하고, 고민하는 말루스의 독백과 그에게서 성실하게 악을 배워가는 에스투스의 대화로 이루어져있다. 이런 식의 철학적 논리나 지적 사유를 즐기는 분들은 정말 (X100) 좋아할 만한 소실임에는 틀림없다.


소설 전체도 물론 좋았지만 맨 마지막 부분에 말루스가 에스투스에게 보내는 회고록에

책의 모든 것이 다 담겨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선과 악의 본질에 대해서 이렇게 고민해보긴 처음인 듯 하다. 인간 "악"의 기원과 본질을 알기 쉽게 설명해준 듯한 책 [악의 회고록]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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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허버트 단편 걸작선 1952-1961 - 오래된 방랑하는 집 프랭크 허버트 단편 걸작선
프랭크 허버트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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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는 모호한 영광이죠. 날카로운 칼날 위에서 균형을 잡아가며 권력과 부에 대한

대가를 치릅니다. (.. 중략..) 권력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좋은 정부를 만드는 것입니다.

아니면 조만간 몰락할 차례가 되는 거죠. " - 단편 건초 더미 작전 중 -


" 듄친자 " ( 듄에 미친 자 )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낼 만큼, 영화 듄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번에 개봉한 듄 2의 스케일이 어마어마하고 영상미가 뛰어나다고 해서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소설 듄 시리즈를 쓴 프랭크 허버트 작가의 단편 소설집을 읽게 되었다.


SF 소설이 좀 멀게 느껴지는 이유는, 마치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함축적인 용어들과 거대한 세계관..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느꼈는데

이 책 [오래된 방랑하는 집]은 단편소설들이라 그런지 짧고 임팩트 있게 쓰여졌다.

특히 듄 시리즈를 읽기 전 프랭크 허버트 월드 입문용으로 아주 좋은 것 같다.


이 책은 1952년에서 1961년 사이 작가가 어스타운딩 시리즈나 스타틀링 스토리같은

과학소설 잡지에 투고한 단편들 중 약 30편에 달하는 이야기들이 실려있다.

진짜 놀라운 점을 말하자면, 1950~60년대 그 까마득한 시절에 쓰여진 글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스토리가 탄탄하고 풍부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이야기들이다.


첫번째 단편 [뭔가 찾고 계신가요?]와 네번째 단편 [실험쥐 시험]은 각각 지구인들의

정신 능력을 통제하고,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려는 지배 계층 외계인이 존재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설마 우리가 외계인 TV에 나오는 트루먼 쇼의 그 트루먼인가?


책의 제목과 같은 여덟 번째 단편 [오래된 방랑하는 집]속 주인공 그레이엄 부부는

운 좋게도 자신들이 머무는 7000달러짜리 트레일러 집과 10만 달러는 족히 넘을

듯한 자신들의 고급 주택을 교환하겠다는 러시 부부를 만나게 된다. 교환이 이루어

진 순간,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며 떨리는 주택, 과연 이게 무슨 일일까? 누군가는

미끼를 던졌고, 그레이엄 부부는 미끼를 확 물고만 것이고...


단편 [건초 더미 작전]과 [사이의 사제]에는 "오른"이라는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같은 주인공이 2번 등장하고 어딘가 모르게 종교적, 정치적 색깔이 짙은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 두 이야기가 "듄"으로 가는 발판을 제공한 작품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년이 넘는 세월동안 비밀리에 이루어진 여성들의 정치 참여

방식이라던가 세상의 이치를 한순간에 깨닫게 해주는 심령 훈련을 받는 주인공

오른의 모습을 보면서 당시 프랭크 허버트 작가의 SF 세계관에 좀 더 친숙해진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그는 인간보다 훨씬 더 높은 의식을 가진 우주적 존재가

지구를 비밀리에 통제하고 관리한다는 상상을 평소에도 많이 한 것으로 보인다.


"듄" 시리즈를 본격적으로 읽어보기 전에 프랭크 허버트 작가의 단편소설을

먼저 읽어보게 되어서 좋았다. 특히 외계 존재가 지구에 스며드는 방식을

다룬 부분이 굉장히 창의적이고 독특해서 재미있었고, 몇 편의 이야기는

바로 "듄"으로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같아서 더 재미있었다. 1960년대

이후에 나온 단편 소설들이 있는 책도 같이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듄의 팬이든 아니든 SF소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꼭 읽어보길 추천하고

싶은 책 [오래된 방랑하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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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아 만든 천국
심너울 지음 / 래빗홀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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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보다 더 리얼한 판타지 심너울의 21세기 마법 풍속도 "

소설 [갈아만든 천국]은 굉장히 독특한 설정과 플롯을 가지고 있다. 판타지 소설이라고 할 때, 독자들이 흔히 떠올릴 만한 "이세계" 나 "신비로운 세상"이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리얼한 한국 사회가 눈앞에 펼쳐진다. 마법 능력을 가진 인물들이 나오지만,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인간의 욕망을 다루는 "자본주의" 이다. [갈아 만든 천국] 속 판타지 한국 사회에서는 아무나 가지고 태어날 수 없는 마법 능력을 사고파는 시장이 불법적으로 형성되어 있다.

주인공 허무한은 마법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특별한 사람들 중 한 명이다. 그중에서도 A- 등급이기에 그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진 채 살아간다. 그러나 아무런 마법 능력이 없고 고향에서 횟집을 운영하면서 살아가는 평범한 부모님에게서 경제적 지원을 바랄 수 없다는 것을 아는 허무한. 그는 과외 알바를 하던 집으로부터 자신의 마법적인 힘, 즉 그의 몸을 흐르는 보랏빛 역장을 사고 싶다는 제안을 받게 되는데, 그의 선택은 과연 무엇이고, 그 결과는 과연 어떠한 것일까?

소설 [갈아만든 천국]은 여러 다른 인물들에게 초점이 맞춰진 단편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일종의 연작 소설이다. 앞 이야기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아주 흥미진진한 모습으로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어떻게 보면 5편의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거대한 원을 이루는 것 같기도 하다. 주인공 허무한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다시 허무한으로 이어지는. 어쩌면 이 소설이 세상을 바꾸는 "영웅 탄생"이라는 거대 서사시의 시초가 되는 것인가?라는 즐거운 상상을 혼자 해봤다.

굉장히 신선한 소설이다. 소설의 뒤표지에 나와 있는 " 마법이 존재하는 21세기 한국, 재능과 노력이 무시되는 응답 없는 사회의 환상 거울"이라는 문장에서 작가의 의도를 조금 읽을 수 있었다. 일반적인 판타지 소설에서는 마법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악의 무리와 맞서 싸우고 갈등을 해결하고 병을 치유하는 등, 마법 능력이라는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선한 의도를 가지고 생활한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을 생각해 봤을 때 과연 그런 능력이 선한 의도에 의해서만 사용될 것인가?

마치 영화 [반지의 제왕] 속 절대 반지를 움켜쥐었다가 탐욕을 감출 길이 없었던 존재들처럼,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채 마법 능력을 가지게 되는 인간들이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게 되지는 않을까라는 작가의 상상이 많이 반영되었다는 느낌? 이 들었다. 배경이 한국 사회라는 것도 정말 재미있었던 게, 어느새 우리 사회는 인간의 순수한 재능이나 능력보다는 자본과 권력이 모든 걸 장악해버린 " 이세계 " 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니었나 싶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뒤로 갈수록 흥미진진해진다. 약간 범죄 스릴러나 액션 영화 같은 느낌도 들기 때문이다. 나에게 과연 마법 능력이 생긴다면 어떨까? ( 바로 가까운 은행을 털겠다는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매우 독특하고 신선했던 한국형 판타지 소설 [갈아만든 천국]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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